레알 마드리드 CF/UEFA 챔피언스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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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가 소장한 빅 이어 13개. 사진의 인물은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
1. 소개
2. 기록
2.1. 통산 기록
2.2. 연표
2.3. 기타 기록
3. 우승 과정
3.1. 1956년: La Primera(첫 번째)
3.2. 1957년: La Segunda(두 번째)
3.3. 1958년: La Tercera(세 번째)
3.4. 1959년: La Cuarta(네 번째)
3.5. 1960년: La Quinta(다섯 번째)
3.6. 1966년: La Sexta(여섯 번째)
3.7. 1998년: La Séptima(일곱 번째)
3.8. 2000년: La Octava(여덟 번째)
3.9. 2002년: La Novena(아홉 번째)
3.10. 2014년: La Décima(열 번째)
3.10.1. 라 데시마 달성 전까지
3.10.2. 라 데시마를 향한 발걸음
3.10.2.1. 라이벌 완파와 결승 진출
3.10.3. 리스본의 기적
3.11. 2016년: La Undécima(열한 번째)
3.12. 2017년: La Duodécima(열두 번째)
3.13. 2018년: La Décimotercera(열세 번째)
4. 기타


1. 소개


레알 마드리드 CFUEFA 챔피언스 리그 기록과 우승 과정 등을 서술하는 문서이다.

2. 기록



2.1. 통산 기록


참가
경기



승률
득점
실점
득실 차
승점
우승
준우승
결승
4강
8강
'''49'''
'''431'''
'''257'''
'''76'''
'''98'''
'''60.0%'''
'''958'''
'''470'''
'''488'''
'''593'''
'''13'''
3
'''16'''
'''28'''
'''35'''
  • 굵은 글씨는 대회 최다 기록. 준우승을 제외한 모든 기록이 최다 기록이다.

2.2. 연표


시즌
대회명
최종 결과
경기



1955/56
유러피언 컵
우승
7
5
0
2
1956/57
유러피언 컵
우승
8
6
1
1
1957/58
유러피언 컵
우승
7
5
1
1
1958/59
유러피언 컵
우승
8
5
2
1
1959/60
유러피언 컵
우승
7
6
0
1
1960/61
유러피언 컵
1라운드(16강)
2
0
1
1
1961/62
유러피언 컵
준우승
10
8
0
2
1962/63
유러피언 컵
예선
2
0
1
1
1963/64
유러피언 컵
준우승
9
7
0
2
1964/65
유러피언 컵
8강
6
4
1
1
1965/66
유러피언 컵
우승
9
5
2
2
1966/67
유러피언 컵
8강
4
1
0
3
1967/68
유러피언 컵
4강
8
3
3
2
1968/69
유러피언 컵
2라운드(16강)
4
3
0
1
1969/70
유러피언 컵
2라운드(16강)
4
2
0
2
1972/73
유러피언 컵
4강
8
4
1
3
1975/76
유러피언 컵
4강
8
2
3
3
1976/77
유러피언 컵
2라운드(16강)
4
2
1
1
1978/79
유러피언 컵
2라운드(16강)
4
3
0
1
1979/80
유러피언 컵
4강
8
5
0
3
1980/81
유러피언 컵
준우승
9
6
1
2
1986/87
유러피언 컵
4강
8
4
0
4
1987/88
유러피언 컵
4강
8
4
3
1
1988/89
유러피언 컵
4강
8
5
2
1
1989/90
유러피언 컵
2라운드(16강)
4
3
0
1
1990/91
유러피언 컵
8강
6
3
2
1
1995/96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8
4
1
3
1997/98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1
7
3
1
1998/99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8
4
1
3
1999/00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7
10
3
4
2000/01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16
9
2
5
2001/02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7
12
3
2
2002/03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17
7
6
4
2003/04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10
6
3
1
2004/05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10
6
2
2
2005/06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8
3
2
3
2006/07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8
4
2
2
2007/08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8
3
2
3
2008/09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8
4
0
4
2009/10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8
4
2
2
2010/11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12
8
3
1
2011/12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12
10
1
1
2012/13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12
6
3
3
2013/14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3
11
1
1
2014/15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12
8
2
2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3
9
3
1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3
9
3
1
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3
9
2
2
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8
5
0
3
2019/20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8
3
2
3

2.3. 기타 기록


  • 유러피언 컵 최다 연속 참가: 15회(1955-56~1969-70)
유러피언 컵의 출범 시즌인 1955-56 시즌에 라 리가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하여 1969-70 시즌까지 빠짐없이 참가했다. 1992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전 유러피언 컵 시기에는 자국 리그 우승팀 혹은 디펜딩 챔피언만 대회 참가가 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이 기간 라 리가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한 시즌은 11시즌, 유러피언 컵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시즌은 4시즌이었다.
  •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연속 참가: 23회(1997-98~, 진행 중)
아스날이 1998-99 시즌부터 최근까지 연속으로 참가해 비슷한 기록을 이어오고 있었으나 19시즌 연속에서 끊겼으므로, 당분간 이 기록에 근접할 팀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유러피언 컵 최다 연속 결승 진출, 최다 연속 우승: 5회(1955-56~1959-60)
  •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연속 결승 진출(타이), 최다 연속 우승: 3회(2015-16~2017-18)
3연속 결승 진출 기록은 밀란(1992-93~1994-95)과 유벤투스(1995-96~1997-98)가 달성했었으나 3연속 우승은 유일한 기록이며, 레알 마드리드를 제외하면 2연속 우승도 나오지 않았다.
  • 최다 연속 4강 진출: 8회(2010-11~2017-18)
  • 최다 연승(타이): 10경기(2013-14~2014-15)
바이에른 뮌헨이 이보다 앞선 2012-13 시즌부터 2013-14 시즌까지 10연승을 달성한 바 있다.
  • 최다 연속 경기 득점: 34경기(2010-11~2013-14)

3. 우승 과정


프랑스의 스포츠 일간지 '레퀴프(L'Equipe)'의 주최로 1955/56 시즌 유러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이 출범한 시기부터 레알 마드리드가 이룬 라 데시모테르세라의 전설이 시작된다.
[UCL 매거진] 'UCL 최다 우승'… 레알 마드리드의 UCL 결승전 역사

3.1. 1956년: La Primera(첫 번째)


레알 마드리드는 1954/55 시즌 프리메라 리가 챔피언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유러피언 컵에 참가하게 된다. 총 16팀이 참가한 가운데, 1라운드에서 대진이 정해지고 레알 마드리드는 스위스 대표인 세르베트 FC를 만나게 된다.
1라운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세르베트 FC를 1, 2차전 합계 7:0으로 대파하고 8강전에서 세르비아 대표인 FK 파르티잔을 만나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는 1차전에서 FK 파르티잔을 4:0으로 완파하며 4강 진출을 장담했지만, FK 파르티잔의 반격은 매서웠고 2차전 후반 종료 3분 전 파르티잔이 3번째 골을 넣으며 턱밑까지 추격했던 탓에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동점 골은 허용하지 않아 종합 4:3으로 4강에 진출한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명문팀인 AC 밀란이었다. AC 밀란을 상대로 레알 마드리드는 1차전 4:2로 승리를 거두고, 2차전에서도 선제골을 넣어 앞서갔으나 밀란의 반격에 2실점을 하여 동점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다행히 남은 시간 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동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비록 2:1로 패하였지만 종합 점수 5:4으로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스타드 드 랭스였다.[1] 레몽 코파, 이달고라는 걸출한 스타들을 내세운 랭스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뒤지는 팀이 아니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시작 10분 만에 르블롱과 템플린에게 2골을 실점하며 최악의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4분 뒤 ''''금빛 화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골을 기록하여 추격하기 시작하였고 엑토르 리알이 동점 골을 기록하였다.
전반전을 2:2로 팽팽하게 마무리한 후 후반이 시작되고, 랭스가 이달고의 골로 3:2로 달아나며 분위기가 랭스 쪽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실점한 지 5분 뒤 수비수 마르퀴토스가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동점 골을 기록하자 분위기가 역전되어 주도권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왔고, 디 스테파노와 리알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이 랭스의 수비진을 유린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끈질긴 공격 끝에 페널티 아크 중앙에서 디 스테파노가 절묘한 속임 동작으로 찬스를 만들자, 리알이 골문으로 쇄도하며 골로 연결하면서 점수가 4:3으로 역전되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어 레알 마드리드가 유러피언 컵 '''초대 우승팀'''이 되었다.

3.2. 1957년: La Segunda(두 번째)


2번째 유러피언 컵은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개최되었다. 유러피언 컵 첫 번째 대회 우승팀인 레알 마드리드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예선을 지나 1라운드에서 라피드 빈을 만나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는 1차전에서 4:2로 빈을 이겼으나 2차전에서 1:3으로 패배, 5:5로 종합 점수가 동점이라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된다. 다행히 레알 마드리드는 2:0으로 라피드 빈을 꺾고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한다.
8강에서 만난 상대는 같이 플레이오프를 치렀던 팀 OGC 니스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니스를 상대로 종합 6:2 승리를 거두며 가볍게 4강에 진출한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잉글랜드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였다. 맨유는 대회를 치르면서 예선에서 만난 RSC 안데를레흐트를 무려 종합 12:0이라는 무시무시한 점수차로 짓밟고,[2] 1라운드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8강에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챔피언 아틀레틱 클럽을 꺾고 4강에 올라온 강팀이었다. 이 시기 맨유는 명장 맷 버스비가 이끄는 사단으로 이른바 버스비의 아이들이라 불렸고, 후에 보비 찰튼 등을 앞세워 유러피언 컵 우승을 달성한 팀의 시초였다. 하지만 그런 맨유를 상대로 레알 마드리드는 비교적 무난하게 3:1으로 1차전 승리를 거두었고, 2차전에서도 먼저 2골을 넣은 뒤 동점을 허용하여 무승부로 끝나 종합 5:3으로 결승에 진출했다.[3]
결승 상대는 AC 밀란을 제치고 세리에 우승을 차지한 ACF 피오렌티나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성적인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후반 24분 디 스테파노가 페널티 킥으로 선제골을 터트렸고, 후반 30분 프란시스코 헨토가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멋진 슈팅으로 쐐기를 박으며 2:0 승리를 거두어 2연속 유러피언 컵 우승을 달성한다. 1956년에 이은 두 번째 우승이었고, 5연패로 가는 디딤돌이었다.

3.3. 1958년: La Tercera(세 번째)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예선을 통과한 레알 마드리드는 1라운드에서 만난 벨기에의 로얄 앤트워프를 종합 8:1로 가볍게 꺾고 8강에 올랐다. 그리고 8강에서 프리메라 리가의 챔피언인 세비야 FC를 종합 10:2로 대파하며 4강에 오르고, 4강에서 헝가리 챔피언 바사스 SC를 꺾고 결승에 올라 AC 밀란과 맞붙는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 AC 밀란은 전 시즌 1라운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괴롭혔던 라피드 빈을 예선에서 만나 플레이오프까지 치른 끝에 간신히 꺾고 1라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AC 밀란은 이후 1라운드에서 레인저스 FC, 8강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꺾고 4강에서는 맨유까지 꺾으며 위용을 내뿜었다.
1957-1958 유러피언 컵 결승전은 대회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힌다. 2연패를 통해 유럽의 제왕으로 우뚝 선 레알 마드리드와 당시 황금기를 구가하던 '로소네리' AC 밀란이 정면충돌했기 때문이다. 당시 AC 밀란은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4]체사레 말디니[5], 닐스 리드홀름 등 레알 마드리드에 버금가는 선수진을 구축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원년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를 탈락 위기로 내몰았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도 대단했다. 난감한 상대를 맞아 레알 마드리드는 후반 14분 스키피아노에게 선제골을 빼앗기며 끌려간다. 하지만 이후 후반 29분 디 스테파노가 동점 골을 터트렸고, 후반 32분 그릴로에게 추가 골을 내줘 AC 밀란이 1점을 더 달아났으나 다시 2분 후 리알이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헨토가 결국 역전 결승골을 터트려 3번째 빅 이어를 차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3.4. 1959년: La Cuarta(네 번째)


레알 마드리드는 1회전과 8강에서 베식타슈와 비엔나 SC를 꺾고 4강에서 지역 라이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맞붙는다. 1차전에선 레알 마드리드가 2:1 승리를 거두었지만 2차전에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1:0 승리를 거두었고, 두 팀은 플레이오프를 거쳐 결승 진출 팀을 가리게 된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레알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페렌츠 푸스카스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한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가 유러피언 컵 원년 시즌 우승컵을 놓고 다투었던 랭스였다. 랭스는 이전에 유러피언 컵을 레알 마드리드에게 내주었기 때문에 의욕이 매우 강하였고, 당시 자신들의 에이스였던 레몽 코파를 레알로 보낸 뒤 그 자리를 메꾼 쥐스트 퐁텐이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앞세워 대회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당시 퐁텐은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단일 대회 최다 득점(13골) 기록을 세운 걸출한 골잡이었다. 또한 1958-1959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도 득점왕(10골)에 오를 정도로 물오른 득점력을 과시하며 상대 수비를 공포에 떨게 했다.
하지만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팀으로서 랭스보다 한 수 위임을 보여주었다. 전반 1분 만에 마테오스가 선제골을 기록하고 후반 2분에 디 스테파노가 추가골을 기록하면서 랭스와 점수 차를 벌렸고, 호세 산타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레알의 수비진이 쥐스트 퐁텐을 중심으로 한 랭스의 공격진을 무력화시켜 레알 마드리드가 2:0으로 승리하고 네 번째 빅 이어를 들어올렸다.

3.5. 1960년: La Quinta(다섯 번째)


유러피언 컵 4연패를 이룬 레알 마드리드는 더 강화돤 조직력과 전력을 보여주었다. 4연패의 주역들이 버티는 가운데 '악마의 왼발' 페렌츠 푸스카스까지 가세하자 더욱 폭발적 공격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1회전 죄네스 에슈를 상대로 1차전 7:0, 2차전 5:2로 종합 12:2 승리를 거두었고, 8강에 올라 1차전 니스에게 3:2 패배를 당했지만 2차전에서 4:0 완승을 거두며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 최대 숙적 FC 바르셀로나로 유러피언 컵 최초로 엘 클라시코가 벌어졌다. 바르셀로나는 예선전에서 불가리아 챔피언 CDNA 소피아를 종합 6:2로 꺾고, 1차전에서 강팀 AC 밀란을 1차전 2:0, 2차전 5:1로 대파하여 종합 7:1로 8강에 진출하였으며, 8강에서 울버햄턴 원더러스를 상대로 1차전 4:0, 2차전 5:2 완승을 거두어 종합 9:2로 4강까지 올라와 숙적 레알과 맞붙게 된 것이다. 4강에서 벌어진 엘 클라시코는 1, 2차전 모두 레알이 각각 3:1로 승리를 거두면서 결승에 진출하였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클럽 역사상 최초로 분데스리가 챔피언에 오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였다. 프랑크푸르트의 크레스가 선제골을 넣으며 프랑크푸르트가 앞서갔지만, 레알 마드리드가 2골을 넣어 역전하여 전반을 마친다. 후반전이 시작되자 레알의 푸스카스가 해트트릭을 넘어 4골을 터트려 점수차를 크게 벌렸다. 프랑크푸르트의 스타인이 1골을 만회하였지만, 디 스테파노가 1골을 추가해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 두 선수가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진귀한 기록을 남겼고, 스타인이 1골을 더 만회해 7:3으로 경기를 끝마치면서 레알 마드리드는 유러피언 컵 5연패를 달성하였다. 참고로 프랑크푸르트의 마지막 만회 골 때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인 마르퀴토스가 어처구니 없는 백 패스 실수를 하였는데, 이에 동료가 불같이 화를 냈다. 7-2로 앞선 상황에서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팀이었던 것. 참고로 이 경기가 UEFA 챔피언스 리그(UCL)로 대회가 개편된 현재까지 결승전에서 나온 가장 점수 차가 큰 경기 중 하나이다.[6]
이 경기 이후 유명한 일화가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강인한 전력, 특히 세로 가세한 푸스카스의 실력에 겁이 난 독일 축구 협회푸스카스가 1954년에 약물 복용을 한 적이 있다며 영구 출전 금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당연히 사실 무근임이 밝혀졌고, 푸스카스는 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분노의 해트 트릭을 터뜨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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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이어 5개와 함께 있는 디 스테파노

3.6. 1966년: La Sexta(여섯 번째)


1960년대 중반은 SL 벤피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등 새로운 강자가 유럽의 패권을 다투던 시절이다. 유러피언 컵 5연패를 이룬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1961/1962 시즌 결승에 올라, 페렌츠 푸스카스해트 트릭을 앞세워 SL 벤피카와 팽팽하게 3:3으로 맞섰으나 신예 에우제비우에게 2골을 내주어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2시즌 뒤 1963/1964 시즌에도 결승에 진출했는데, 이때는 카테나치오를 최초로 들고 나와 'La Grande Inter(위대한 인테르)'라 불렸던 인테르에게 3:1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유러피언 컵 출범 후 5년 동안 모든 결승전을 휩쓸었던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이제는 독보적인 최강이 아니었고, 디 스테파노, 레몽 코파, 산타마리아 등이 팀을 떠난 뒤에는 다시 유럽 정상을 노리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1965/1966 시즌 팀의 전설이자 감독이었던 미겔 무뇨스의 지도와, 아직 팀에 남아 있던 황금 세대 페렌츠 푸스카스프란시스코 헨토, 그리고 아만시오 아마로를 비롯한 신예들의 활약을 통해서 레알 마드리드는 다시 한 번 유러피언 컵 정상에 도전하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예선전에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라운드에서 킬마녹, 8강전에서 RSC 안데를레흐트, 4강전에서 인테르를 꺾으면서 결승에서 FK 파르티잔과 격돌하게 된다.
동유럽 최강자로 성장한 파르티잔은 맨유를 꺾고 올라올 만큼 강한 전력을 구축하였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결승전에서 파르티잔의 바소비치에게 전반 10분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갔다. 하지만 후반 25분 아만시오가 동점 골, 후반 31분 세레나가 역전골을 터트렸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파르티잔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6번째 빅 이어를 차지하였다.
황금 세대가 저물고 새롭게 구성되어 유러피언 컵 우승을 달성한 이 팀은 'Yé-yé Madrid(예-예 마드리드)'라 불렸다(레알 마드리드 CF/역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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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이어 6개와 함께 있는 헨토

3.7. 1998년: La Séptima(일곱 번째)


1965/1966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거둔 뒤, 1980/1981 시즌 결승전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7] 약 32년간 빅 이어를 들지 못했고, 17년간 빅 이어에 다가갈 기회를 잡지 못했다. '독수리 오 형제'라 불린 5인조[8]를 중심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으나 유러피언 컵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고, 레알 마드리드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이 유러피언 컵도 UEFA 챔피언스 리그로 개편되었다.
그러던 중 레알 마드리드는 유프 하인케스 체제에서 1997/1998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리그에서는 최종 4위로 마칠 만큼 순탄하지 못했으나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실로 오래간만에 좋은 활약을 펼쳤다. 8강에서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4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격파하면서 고대하던 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사실 결승전 전만 해도 우승을 장담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1997-1998 시즌 라 리가에서 4위로 추락할 정도로 굉장히 부진했던 반면,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챔피언스 리그 득점 1위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와 3위 필리포 인자기를 앞세운 무시무시한 화력과, 지네딘 지단, 디디에 데샹, 에드가 다비즈가 지배하는 강력한 중원을 바탕으로 더블을 노리는 유벤투스였다. 유벤투스는 1995/1996 시즌 챔피언이자 전 시즌인 1996/1997 시즌 준우승팀이었고, 3년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한 상황이었다. 이 당시 유벤투스는 너무도 강력하였기 때문에 대다수 전문가들은 유벤투스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거친 몸싸움을 불사하며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던 후반 21분,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발칸 폭격기'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가 유벤투스의 문전에서 수비수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골을 기록하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리드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페르난도 이에로마놀로 산치스 등 수비진이 유벤투스의 강력한 공세를 잘 막으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사족을 달자면 한낱 용병에 지나지 않았던 미야토비치는 이 결승골로 영웅이 됐고 훗날 클럽의 단장까지 역임하게 된다. 또한 97년에 이어 또다시 결승에서 패한 지네딘 지단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갈망하게 되었고,[9] 이는 이후 레알 마드리드 이적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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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00년: La Octava(여덟 번째)


1997/1998 시즌 빅 이어를 들어올린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리그 성적 부진을 이유로 팀에게 빅 이어를 안겨준 유프 하인케스 감독을 경질하게 되었고, 이어서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거스 히딩크, 존 토샥까지 선임과 경질을 반복하면서 팀 지휘 체계에 혼란이 찾아왔다. 존 토샥에 이어서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 출신인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었다.
팀의 여건이 워낙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델 보스케가 취임한 레알 마드리드는 1999/2000 시즌 리그에서 끔찍한 부진을 겪고 있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2전 2패를 당해 조별 리그 2위로 밀려난 채 8강에 진출하여 디펜딩 챔피언 맨유를 만나게 되었다.
이때 레알과 만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1차전을 0:0 무승부로 끝낸 뒤, 홈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릴 2차전을 앞두고 '''"더 이상 레알 마드리드는 두렵지 않다."'''라며 레알 마드리드를 도발하는 심리전을 구사했다. 이에 발끈한 라울 곤살레스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해주겠다."'''라고 답하며 2차전에 들어섰다.
로이 킨의 자책골로 인해 레알이 앞선 채로 전반이 끝나고, 후반전에 들어서 양 팀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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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치열한 공방 속에서 라울은 경기 전 자신이 내뱉은 말을 스스로 증명하듯 골을 터트리고, 이어서 2분 뒤 페르난도 레돈도가 세련된 플레이로 수비를 벗기고 보낸 패스를 받아 쐐기 골을 터트려 순식간에 3:0 리드를 가져왔다. 이후 맨유는 데이비드 베컴폴 스콜스의 PK 골로 2골을 만회해봤지만 이미 늦었고 팀은 맨유 원정에서 3:2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했다. 참고로 이 경기와 2002/2003 8강 1차전에서 라울에게 2골을 실점하며 고배를 마시게 되었던 퍼거슨은 이후 라울을 매우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반 니스텔로이와 함께 투 톱을 이뤄 자신의 팀에 두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하거나 라울이 레알을 떠나는 순간에도 마이클 오언이 없었다면 라울을 영입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애착을 보였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조별 리그에서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뮌헨이었다. 그 때문인지 전문가들은 역시나 뮌헨의 우세와 결승행을 예측하며 레알의 결승행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니콜라스 아넬카의 활약으로 종합 3:2로 바이에른 뮌헨을 누르고 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의 숙적 FC 바르셀로나를 종합 5:3으로 꺾고 올라온 발렌시아 CF였다. 이로써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초로 같은 리그 소속 팀 간 결승전이 성사되었다. 당시 발렌시아는 아르헨티나 출신 명장 쿠페르 감독의 지휘 아래 전 유럽이 주목하는 신흥 강호로 성장하던 때라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경기는 매우 팽팽하게 진행될 것이라 예측되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마자 레알 마드리드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내며 발렌시아를 강하게 몰아세웠다. 전반 39분에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의 헤딩 선제골을 기선을 제압한 후, 후반 22분 스티브 맥마나만이 멋진 발리 슛으로 골을 기록하며 발렌시아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그리고 이 대회 최고의 활약을 펼친 라울이 후반 30분 약 70m를 질주한 뒤 쐐기 골을 넣으며 공동 득점 1위에 오름과 동시에 팀의 승리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참고로 이 경기는 당시 유럽 클럽 축구의 주류로 떠오르던 라리가의 강성함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대회 역사상 최초로 같은 국가 클럽 간 맞대결이 결승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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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빅 이어는 레알 마드리드의 차지가 되었고, 이 대회의 주역이였던 라울 곤살레스, 그리고 골문을 지켰던 이케르 카시야스는 향후 팀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3.9. 2002년: La Novena(아홉 번째)


2001/2002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델 보스케 감독의 3번째 시즌이자 창단 100주년을 맞게 되었다.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은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피구를 영입하며 시작했던 ''''갈락티코스'''' 정책을 이어가기 위해 프랑스 국가 대표이자 유벤투스의 에이스인 지네딘 지단을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로 영입, 이전 시즌 4강에서 떨어져 실패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다시 노리게 된다.
하지만 시즌에 들어서 리그에서는 발렌시아와 데포르티보가 선전하며 혼돈 상태에 빠지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각각 3, 4위를 기록하였고 발렌시아가 우승, 데포르티보가 준우승을 거두어 타이틀을 얻는 데 실패하였다. 또한 코파 델 레이 역시 결승에서 데포르티보를 상대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머무는 바람에 남은 것은 챔피언스 리그뿐인 상황에 이르렀다. 심지어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은 레알 마드리드의 창단일인 3월 6일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렸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완벽한 100주년 잔치를 놓친 셈이었고,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 본선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는 무난히 타 팀들을 꺾고 8강에 진출하였으나, 상대는 전 시즌 자신들을 탈락시켰던 숙적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레알 마드리드에게 '지네딘 지단을 영입해도 결과가 달라질 건 없다'고 자만하였다. 그리고 뮌헨의 홈 구장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열린 1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제레미의 선제골로 앞서가다 81분과 87분에 에펜베르크, 피자로에게 연속 골을 허용해 2:1로 역전패하게 된다. 뮌헨이 1차전을 가져가면서 상황은 뮌헨이 말했던 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2차전이 열린 레알의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지네딘 지단이 뛰어난 활약으로 뮌헨을 고전시켰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 이반 엘게라가 선제골을 넣고 구티가 추가 골을 보태며 2:0으로 승리, 합산 스코어 3:2로 디펜딩 챔피언 뮌헨을 꺾고 4강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100주년 결승행 티켓이 걸린 4강전 상대는, 운명의 장난인지 최고의 숙적 바르셀로나로 결정되었고 41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엘 클라시코''''가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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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1차전에서 지단이 선제골을 넣어 1:0으로 앞서갔고, 후반 종료 직전 맥마나만이 추가골을 넣으면서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를 2:0으로 눌렀다. 이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가 캄프누에서 20년만에 거둔 승리였다.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는 거세게 몰아쳤지만 결국 1:1 무승부로 끝났고, 레알 마드리드는 숙적 바르셀로나를 누르고 2년 만에 다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무대로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이었다. 레버쿠젠은 8강에서 리버풀 FC, 4강에선 퍼거슨의 맨유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선제골은 이른 시간에 나왔다. 전반 8분 만에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긴 스로잉 패스를 받은 라울이 감각적인 퍼스트 터치로 골망을 가르며 레알 마드리드가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전반 13분, 프리킥 찬스를 얻은 레버쿠젠의 수비수 루시우가 헤더로 골을 기록하며 동점을 만들었고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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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fantastic. fantastic![10]

그러나 경기는 전반이 종료되기 직전에 카를루스가 올린 크로스를 지네딘 지단이 멋진 왼발 발리 슛으로 연결, 지금까지도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이자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골'''로 꼽히는 골을 터트리며 팀의 리드를 되찾아왔다.
지네딘 지단의 골이 터진 뒤, 전반이 종료되고 기세가 꺾일 법도 했던 레버쿠젠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맹공격을 퍼부었고, 거세지는 경기 속에 급기야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골키퍼 세자르가 후반 23분 부상으로 쓰러지자 부랴부랴 이케르 카시야스가 교체 투입되었다. 하지만 카시야스는 남은 시간 동안 발락, 뇌빌 등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최고로 평가받았던 레버쿠젠 선수들이 쏟아낸 무수한 슈팅들을 엄청난 선방으로 막아내 팀의 리드를 지켰다. 세자르의 갑작스러운 부상은 이날 경기 최대의 변수였다는 점에서 카시야스의 선방은 매우 값진 활약이었다. 결국 스코어 2:1로 레알 마드리드가 레버쿠젠을 꺾고 승리를 거두었다. 카시야스는 당시의 맹활약을 발판 삼아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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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이어를 들고 우승을 자축하는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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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이어를 든 지단
이로써 레알 마드리드는 9번째이자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다.

3.10. 2014년: La Décima(열 번째)


스페인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프랑스 오픈 10회 우승을 찾으려면 프랑스 오픈#s-4 문서 참조.[11]
전 세계 축구 팀 중 '''유일하게''' 레알 마드리드만이 가진 타이틀. '''오랜 세월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기다려왔던 소망'''이다.

3.10.1. 라 데시마 달성 전까지


지네딘 지단의 환상적인 골과 함께 9번째 빅 이어를 차지한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갈락티코 정책이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아 실패로 끝나고, 오랜 기간 동안 챔스와 멀어진 모습을 보였다. 챔스 우승을 거둔 바로 다음 시즌에 4강에서 탈락하더니 그 이후론 6년 연속 16강에서 떨어졌고, 그 중 특히 올림피크 리옹에게만 3번이나 덜미를 잡히며 굴욕을 겪었다. 리그에서도 점점 바르셀로나에게 밀리게 되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16강 마드리드라는 조롱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다시 레알의 회장으로 부임하고, 갈락티코의 부활이라는 이름 아래 호날두, 카카, 외질, 알론소, 디 마리아 등 과거에 이은 갈락티코 2기 멤버를 구축하고 이어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고 선수단의 조직력이 되살아나면서 그동안 이어져오던 16강 징크스와 리옹 징크스를 깨부수고 다시 챔피언스 리그에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무리뉴 재임 기간 동안 결승 문턱인 4강에서 3번이나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며 정상을 탈환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게다가 재임 기간 말, 카시야스를 필두로 한 선수들과의 불화설이 불거지며 매끄럽지 않은 감독 생활을 해야만 했다.
결국 이에 대한 책임으로, 2013년 여름 무리뉴 감독이 사임하고,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부임했다. 그리고 메수트 외질곤살로 이과인이 팀을 나간 뒤 이스코, 가레스 베일 등이 영입되는데, 레알 마드리드는 초기에는 영입된 가레스 베일의 부진과 언론의 흔들기 등으로 내외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안첼로티가 구상한 BBC 라인이 완성되고 카시야스와 디에고 로페스 골키퍼를 번갈아 사용하는 이원화 정책, 그리고 앙헬 디 마리아의 중앙 미드필더 이동이 성공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3.10.2. 라 데시마를 향한 발걸음


레알 마드리드는 16강에서 샬케 04를 상대로 원정 1차전에서 BBC 공격진이 모두 2골씩 터트리면서 6:1 대승을 거두었고, 2차전에서도 3:1 승리를 거두며 2연승 합계 9:2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났다. 도르트문트는 전 시즌 4강에서 종합 4:3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팀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1차전 베일과 이스코, 호날두의 골로 3:0 승리를 거두었으나 2차전 마르코 로이스에게 2골을 얻어맞으며 위기에 처하고, 카시야스의 활약으로 간신히 종합 점수 3:2로 4강에 진출했다.
4강에 올라온 레알 마드리드가 상대하게 된 클럽은 2011/2012 시즌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둬 레알을 4강에서 탈락시킨 팀이자 당시 디펜딩 챔피언인 바이에른 뮌헨이었고, 뮌헨의 감독은 레알의 천적이라 불리던 펩 과르디올라였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도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6전 4승 2무 0패를 기록하던 중이라 뮌헨 킬러라고 할 수 있었지만, 레알 마드리드가 역대 전적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열세였고 더군다나 원정에서는 10전 1무 9패로 단 1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 전문가들이 뮌헨의 결승 진출을 예상하는 가운데 1차전이 시작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안첼로티 체제하에서 무리뉴의 역습 축구 대신 지공을 추구하는 팀으로 바뀌었지만, 이때 뮌헨을 상대로는 노골적으로 역습을 노리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전반전 초반에 뮌헨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가면서 반코트 게임을 펼치는 듯했고 팬들 역시 뮌헨의 득점은 시간 문제라는 반응을 실시간으로 쏟아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레알 마드리드는 18분에 이스코, 호날두, 코엔트랑, 벤제마로 이어지는 완벽한 카운터 어택을 작렬시켜 리드를 잡았고, 이후에도 뮌헨의 티키타카를 어렵지 않게 방어하면서 적은 공 점유로 효율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전반전 리드를 지켜내어 경기는 1-0 승리로 마무리되었는데, 뮌헨 입장에선 3-0이 나왔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수준 차이가 느껴지는 경기였으며 펩 과르디올라는 답답한 전개를 보다 못해 물병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레알 마드리드가 1점 리드를 잡은 상황에서 2차전을 준비하기 위해 알리안츠 아레나로 향하였다.

3.10.2.1. 라이벌 완파와 결승 진출

2차전 역시 바이에른 뮌헨이 점유율을 확보하고, 레알 마드리드는 틈틈이 나는 역습 기회를 노리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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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하게 진행되던 경기는, 역습을 통해 얻은 코너킥 기회에서 루카 모드리치가 올린 크로스를 세르히오 라모스가 헤더로 연결하면서 급격히 기울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헤딩을 하는척하다가 귀신같이 세르히오 라모스가 돌진하여 골을 넣은것이다. 뮌헨은 만회 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끌어올리며 더 공격적으로 임하였고, 그로 인해 생긴 광활한 뒷공간 덕분에 레알은 역습을 하기 더욱 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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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습을 통해 얻은 프리킥 기회에서 디 마리아가 올린 크로스를 라모스가 받아 다시 한 번 헤더로 골을 넣으면서 레알이 승기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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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은 당황하여 공격을 제대로 풀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프랑크 리베리다니엘 카르바할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리플레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히기도 했다.[12] 이후 호날두가 그림 같은 역습을 마무리하는 골을 터트려 메시가 세운 챔피언스 리그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을 경신하였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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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경기 막바지에 호날두는 프리킥 골까지 추가하면서 적지에서 4:0 대승을 거두고 2연승, 합계 전적 5:0 완승으로 12년 만에 결승에 진출한다. 이로써 16강, 8강, 4강 모두 독일 클럽을 만나 5승 1패를 기록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지역 라이벌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고 결승전 최초로 마드리드 더비가 열리게 되었다.

3.10.3. 리스본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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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기적 문서 참조.

3.11. 2016년: La Undécima(열한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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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의 11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주장 세르히오 라모스
레알 마드리드는 구단에 라 데시마를 안겼던 카를로 안첼로티가 수뇌부의 의아한 판단으로 경질된 뒤 라파엘 베니테스를 감독으로 맞이하고,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2015/16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파리 생제르맹, 샤흐타르 도네츠크, 말뫼 FF와 같은 조에 편성되어 5승 1무, 조 1위로 가볍게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PSG와의 2경기에서 상당히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고, 리그에서도 분위기가 좋지 않아 비관적인 전망이 대세를 이루었다. 결국 베니테스가 중도 경질되고 카스티야를 이끌고 있었던 지네딘 지단이 선임되었다.
16강 상대는 AS 로마로 결정되었고 지단이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1차전 원정 경기에서 호날두와 헤세의 골로 2-0으로 승리했고, 2차전에서도 호날두와 하메스의 골로 2-0으로 승리해 합계 4-0으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로마가 준비를 잘 하고 나와 고전했지만 라모스, 바란, 페페 세 중앙 수비수가 엄청난 수비력으로 공세를 막아냈다.
8강 상대는 볼프스부르크로 결정되었다. 볼프스부르크는 리그 중위권에서 허덕이던 상황이라 8강 진출 팀 중 벤피카와 더불어 가장 쉬운 상대로 여겨졌고, 지단 부임 이후 승승장구하던 레알 마드리드가 손쉽게 4강에 오를 것이라 점쳐졌다.
하지만 1차전 원정 경기에서 다닐루가 지킨 오른쪽 측면이 율리안 드락슬러에게 파괴당하며 0-2로 패배했다. 리그에서 바르셀로나를 잡고 기세가 오른 상황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그러나 2차전 홈 경기에서 호날두가 필드 골 1골, 코너킥 헤더 1골, 직접 프리킥 1골로 해트트릭을 작렬시켜 어렵지 않게 2점 열세를 뒤집고 4강에 진출했다.
4강 진출 팀이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으로 추려졌고 레알 마드리드는 맨체스터 시티와 맞붙게 되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최다 우승팀을 만나게 되었다.
1차전 원정 경기에선 두 팀 다 100% 컨디션을 보여주지 못한 가운데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조금 우세했지만 조 하트의 선방이 빛났던 경기. 다만 두 팀 모두 홈 경기력과 원정 경기력의 차이가 극심한 팀인데 1차전이 맨체스터 시티의 홈이었으니 레알 마드리드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었고, 결국 2차전에서 베일의 슛이 페르난두에게 맞아 자책골로 이어져[14] 1-0 스코어가 되었고, 그게 결승골이 되어 레알 마드리드가 1-0 승리를 거둠으로서 2년 만에 결승에 올랐다.
이로써 총 성적은 6경기서 4승 1무 1패였다.
결승전 상대는 2년 전 리스본에서 대결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아틀레티코는 8강에서 바르셀로나를, 4강에서 바이에른을 꺾고 결승에 안착, 마지막 레알 마드리드만 잡으면 '''레바뮌을 모두 잡고 우승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전반 15분 세르히오 라모스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15], 후반 75분 야닉 카라스코의 동점 골로 또다시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서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채로 승부차기를 하게 된다. 양 팀의 3번 키커까지 모두 득점한 상황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4번 키커 후안프란이 실축하고 마지막 키커인 호날두가 득점을 성공하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5:3으로 승부차기에서 승리해 '라 운데시마'를 달성하였다. 이 우승으로 2002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던 지네딘 지단은 감독으로서 다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게 된다. 지네딘 지단 감독은 선수 시절, 코치 시절,[16] 감독 시절 전부 빅 이어를 든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3.12. 2017년: La Duodécima(열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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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의 12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주장 세르히오 라모스
지네딘 지단 감독의 첫 풀 시즌이었던 16-17 시즌, 주축 선수들이 유로 2016을 소화하기도 했고 UEFA 슈퍼컵FIFA 클럽 월드컵을 소화하는 힘든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과연 개편 이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챔피언스 리그 2연속 우승을 달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조별 리그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스포르팅 CP, 레기아 바르샤바와 한 조에 편성되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치열한 접전을 주고받아왔던 도르트문트와 2번의 무승부를 기록한 데 이어 레기아 바르샤바에게 3-3 무승부라는 고춧가루를 맞으며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조 1위를 할 경우 만날 수 있는 상대가 맨시티, 바이에른, PSG인 데 비해 조 2위일 경우 유벤투스, 아스날, 벤피카, 레스터였기 때문에 유벤투스만 피한다면 조 2위가 훨씬 유리했고, 실제로 도르트문트와 2:2 무승부를 거두면서 조 2위가 확정되자 현지 팬들은 오히려 매우 기뻐했다.
16강 상대는 전 시즌의 로마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클럽인 SSC 나폴리였다. 1, 2차전 모두 전반전에는 나폴리의 강한 압박에 고전하여 선제골을 실점했지만, 잘 이겨낸 후 주도권을 잡아 3골을 넣는 패턴으로 2연속 3-1 승리를 거두며 합산 스코어 6-2로 8강에 진출했다.
그렇게 8강에 올라가서 만난 상대는 마드리드의 유럽 대항전 최대의 라이벌인 FC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라 데시마'를 안긴 카를로 안첼로티가 적장으로 있었고,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리그에서 매우 중요한 일정들을 앞두고 있었으며 리그 경기력 역시 당시만 해도 바이에른이 확실히 좋았기 때문에 상당히 힘든 싸움이 예상되었다.
우려대로 1차전 원정 경기에서는 전반전에 주도권을 내주며 아르투로 비달에게 선제골을 실점했다. 그러나 전반 종료 직전 비달이 페널티킥을 치명적인 실축으로 날려버렸고, 후반전 들어 상대 수비수 하비 마르티네스를 퇴장시키고 멀티골을 넣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대단한 집중력을 보여준 수비진의 맹활약으로 2-1 역전승에 성공했다.
2차전 홈 경기에서는 전반전을 0-0으로 마쳤지만, 후반전에 아르연 로번,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를 앞세운 뮌헨의 공세에 고전하며 [17]결국 정규 시간 동안 1-2로 패배하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후반 종료 직전 아르투로 비달이 퇴장당했고, 연장전에서 수적 우위를 살려 밀어붙이며 결국 4-2 승리, 합산 스코어 6-3으로 4강에 진출했다. 이날 해트트릭을 기록한 호날두와 상대 측면을 파괴한 마르셀루의 활약이 엄청났으며 호날두는 이날 해트트릭을 하며 통산 100골을 완성했다.[18]
이로써 레알 마드리드는 바이에른을 상대로 5연승을 달성했는데, 이는 양 팀의 맞대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기 전적도 11승 2무 11패로 동률을 이루었고, 토너먼트 전적은 6:5로 한 발짝 앞서나갔다. 그리고 '라 데시마' 시즌에 수석 코치로서 안첼로티를 보좌했던 지단이 불과 3시즌 만에 감독으로서 안첼로티를 쓰러뜨렸다.
4강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또다시 만나 챔피언스 리그에서 4번 연속으로 마드리드 더비가 성사되었다. 이전 3차례 만남에서는 레알이 전부 웃었고, 이 시즌 아틀레티코가 13/14 이후 가장 힘든 시즌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도 레알 마드리드의 우세가 점쳐졌다.
결국 예상대로 1차전 홈 경기를 호날두의 해트트릭으로 3-0 승리로 장식했다. 이 경기에서는 이스코를 2선 프리롤로 세워 1선과 3선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긴 지단의 전략과 바스케스 투입이 빛을 발했다. 이어진 2차전 원정에서는 아틀레티코의 압박에 순식간에 2골을 실점했지만 벤제마의 환상적인 돌파를 통해 이스코가 중요한 원정 골을 넣었고, 결국 1-2로 패배했으나 1차전 호날두의 해트트릭 덕분에 합산 스코어 4-2로 챔피언스 리그 2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로써 토너먼트에서 결승전 전까지 총 5승 1패를 기록했다.
대망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그간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발목을 잡아온 유벤투스 FC였다. 전반전은 유벤투스의 압박과 촘촘한 수비에 고전하여 1-1로 마쳤지만, 이것은 역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스쿼드 중 두 번째로 평균 나이가 많은 유벤투스가[19] 레알 마드리드에 비해 4km를 더 뛰어서 나온 결과였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가 후반전 시작부터 라인을 올리고 전방 압박을 강화하여 주도권을 가져오더니, 카세미루의 굴절된 중거리 골을 시작으로 지쳐 가는 유벤투스의 중원과 수비진을 완전히 무너트리며 4-1 대승을 거둬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최초로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한 팀이 되었다. 또한 이로써 1997/98 시즌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6연승''' 행진을 이어갔는데, 이것은 마드리드가 챔피언스 리그 원년부터 5연패를 달성하면서 세운 5연승 기록을 스스로 뛰어넘은 '''역대 최고 기록'''이다. 5년 만에 이뤄낸 리그 우승과 더불어 더블 우승을 달성한 것은 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 경기에서도 멀티 골을 기록하며 시즌 챔피언스 리그 12골, 토너먼트에서만 10골을 넣는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리고 UEFA 공식 홈페이지에서 선정한 MOM도 호날두가 가져갔다.
이 시즌 우승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8강전에선 바이에른의 4년 연속 라 리가 팀 상대 탈락이라는 기록을 완성했고, 4강전에선 아틀레티코에게 4년 연속 레알 마드리드 상대 탈락, 결승전에선 유벤투스의 결승전 5연패와 7회 준우승을 안기면서 여러모로 상대 팀들에게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많이 만들었다.

3.13. 2018년: La Décimotercera(열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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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의 13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주장 세르히오 라모스
레알 마드리드는 시즌 전반기에는 지난 시즌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일찌감치 국왕컵 탈락과 리그 우승 경쟁에서 뒤쳐진 상태에 놓였고, 지단을 경질하고 BBC를 모두 팔아 해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경기력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챔피언스 리그 3연패에 올인하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초반부터 불안함을 다소 노출했었다. 조별 리그 1차전인 아포엘전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멀티골, 세르히오 라모스의 골로 3:0 승리, 2차전 도르트문트전에서 호날두의 멀티골, 가레스 베일의 골로 3:1 승리를 거두며 가볍게 출발했다. 그러나 3차전 토트넘전에서 라바엘 바란의 자책골과 호날두의 PK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한 뒤 4차전 토트넘 원정에서 델레 알리의 멀티골과 에릭센의 골을 허용하면서 호날두의 만회골에도 불구하고 1:3으로 완패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조별 리그 5차전 아포엘 원정에서 호날두, 벤제마의 멀티골과 모드리치, 나초의 골로 6:0 대승, 6차전 도르트문트전에서 보르하 마요랄, 호날두, 루카스 바스케스의 골에 힘입어 3:2 승을 거두고 조별 리그를 마무리하였으나, 토트넘에게 밀려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가 개막할 때 이미 리그에서 분위기가 굉장히 나빴음에도 도르트문트를 완파하는 모습을 보여서 잠시 낙관적인 여론이 나오기도 하였으나, 토트넘에게 1무 1패를 기록하고 2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되어 레알 마드리드의 3연패를 예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16강전 상대는 파리 생제르맹으로 결정되었다. PSG는 바이에른 뮌헨을 밀어내고 조 1위로 16강에 올라온 상황이었기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예년보다 많았다. 하지만 홈에서 치러진 1차전에서 호날두의 PK 골을 포함한 멀티골, 마르셀루의 쐐기골로 3:1 승, 2차전 호날두와 카세미루의 골로 2:1 승, 합산 스코어 5:2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 상대는 전 시즌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유벤투스로 결정되었다. 원정 1차전에서 호날두의 멀티골, 마르셀루의 골로 3:0 승리를 거뒀다. 2차전에서는 만주키치에게 멀티골, 마튀이디에게 실점하여 0:3으로 끌려갔으나 호날두의 PK 득점으로 1:3으로 경기를 마쳤고, 합산 스코어 4:3으로 4강에 진출했다.
4강전은 전통적인 챔스 라이벌 바이에른 뮌헨과 치르게 되었다. 2011/12 시즌부터 7시즌간 무려 4번째 맞대결. 바이에른 뮌헨은 스페인 클럽에게 강하기로 유명한 유프 하인케스 감독을 소방수로 데려온 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레알 마드리드가 질 수도 있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4강 1차전 원정 경기에서 마르셀루와 아센시오의 득점으로 2:1 승리를 챙겼고, 2차전에서는 벤제마의 멀티골이 터지면서 2:2, 합산 스코어 4:3으로 결승 진출을 확정했다. 전체적으로 바이에른이 점유율, 슈팅 수 모두 우위를 가져가며 공격했지만 라모스, 바란, 나바스의 엄청난 수비력, 지단의 용병술, 몇몇 바이에른 선수들의 삽질 등이 겹치면서 끝내 경기를 뒤집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서는 반대쪽에 리버풀과 로마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바이에른보다는 객관적 전력이 떨어지는 팀들이었으므로 우승 7부 능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이후 결승에는 리버풀이 올라왔다.
키예프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51분 상대 골키퍼 로리스 카리우스의 실수로 인해 벤제마가 선제골을 만들어 냈다. 이후 코너킥 수비 상황에서 사디오 마네에게 바로 동점골을 실점했지만, 교체 투입된 베일의 바이시클 킥 골과 로리스 카리우스의 두 번째 미스로 인한 베일의 추가골로 3:1 승리, 13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UEFA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래 근접한 팀도 없었던 3연속 우승을 달성함과 동시에 13/14 시즌부터 5시즌간 4회 우승을 기록했다.
우승 과정을 보면 이전 시즌인 16/17 시즌에 이어 지옥 같은 대진을 또다시 이겨내고 달성한 3연패라 가치가 크다고 평가받는다. 16/17 시즌 토너먼트 대진도 나폴리-바이에른-아틀레티코-유벤투스로 난이도가 정말 높았는데, 이 시즌 대진은 PSG-유벤투스-바이에른-리버풀로 4강까지는 계속해서 리그 1위 팀들만 걸렸다. 게다가 굳이 따지면 리버풀도 역대급 명장 펩이 이끄는 프리미어 리그 1위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완승을 거둔 데다 프리메라 리가 1위인 바르셀로나를 이긴 AS 로마까지 꺾고 올라온 팀이다. 가히 이번 3연패는 도장깨기의 정점을 찍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3연패의 시작이었던 15/16 시즌의 경우 대진 운이 많이 따랐다고 폄훼하는 목소리도 있는 편인데,[20] 베스트 일레븐이 거의 바뀌지 않은 채로 최악의 대진을 2번이나 뚫어냈으므로 대진과 관련된 평가절하는 거의 사라졌다.
이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가 기록한 13회라는 횟수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통산 우승 횟수 2위인 AC 밀란(7회)보다 6번 많은 수치인데, 현재 우승 횟수가 6회를 넘는 팀은 레알 마드리드와 밀란 외엔 없다. 또한 당시 국가별 우승 횟수를 보면 스페인이 압도적 1위이고 이탈리아와 잉글랜드가 각 12회로 공동 2위였다.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가 이를 추월하여 소속국 스페인을 제외하면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 기록에 맞먹는 '국가'는 없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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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18년 12월 FIFA 클럽 월드컵에서도 3연패를 달성하며 3년 동안 유럽과 세계 클럽 대항전을 모두 제패한 클럽이 되었다.

4. 기타


  • 레알 마드리드가 라 데시마를 이룬 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모여 기념 곡이자 새 응원가인 'Hala Madrid y nada más' 음원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라 운데시마 이후 플라시도 도밍고가 단독으로 부른 편곡으로 재발표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레알 마드리드 CF/응원가#s-8 참고.
라 데시마를 이루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가 거쳤던 과정을 9분으로 압축해 만든 영상이 올라왔다.
라 데시마 이후 이런 셔츠도 만들어졌다(...). 라모스가 동점 골을 넣은 93분(Minuto 93)을 의미한다. 여러모로 아틀레티코 능욕(...).
  • 레알 마드리드는 라 데시마 달성을 기념하여 'Reyes de Europa(유럽의 왕)'라는 이름의 방을 꾸미고 그곳에 빅이어들을 진열했는데, 열세 번째 우승을 달성하자 진열장의 공간이 부족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 그래서 한동안 트로피가 진열되지 못하고 있다가 약 일주일 뒤에 진열되었다. #
  • 열세 번째 우승에 성공한 17/18 시즌에 농구 팀도 유럽 농구 챔피언스 리그에 해당하는 대회인 유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레알 마드리드가 역사상 최초로 UCL, 유로리그 동시 우승을 달성한 팀이 되었다. 참고로 이때 농구 팀의 유로리그 우승은 통산 10번째로 라 데시마 달성이었으며, 이 역시 유로리그에서 현재까지 유일한 기록이다.

[1] 지금 랭스는 리그앙의 그저 그런 팀일지 모르겠으나, 당시 랭스는 프랑스 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유러피언 컵에 참가한 강팀이었으며 1952년부터 1962년까지 10년간 5번 리그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의 지배자였다. 그리고 이 전성기가 끝난 뒤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랭스는 단 1번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였다.[2] 1차전 2:0, 2차전 10:0(!).[3] 당시 19세였던 보비 찰턴이 벤치에서 디 스테파노의 1차전 플레이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4] 우루과이 국대 시절 마라카낭의 비극 당시 동점골을 넣은 장본인이다.[5]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이다.[6] 이후 1974년에 바이에른이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재경기 포함 5:1로 승리하고, 1994년에 밀란이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4:0으로 승리하여 타이 기록을 세웠다.[7] 이 당시 감독은 부야딘 보슈코브였다.[8] 독수리 오 형제의 일원은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미첼(1963), 미겔 파르데사, 마르틴 바스케스, 마놀로 산치스이다.[9] 지단은 유벤투스가 95/96 시즌 우승을 차지한 이후에 보르도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했다.[10] 이 골이 터지자 소리친 해설자의 멘트.[11] 사족으로 나달도 레알 팬이다.[12] 이날 리베리는 카르바할에게 완전히 삭제당했는데, 경기까지 패색이 짙어 흥분을 참지 못한 것. 하지만 뺨을 맞은 카르바할이 되레 여유만만한 인터뷰로 리베리를 약올렸다.[13] 덧붙여 기록을 경신한 호날두는 이런 세리머니를 하였다. [image][14] 공식 기록은 페르난두의 자책골로 되었지만 페르난두를 스치지 않았어도 골대 안으로 향할 각도였기 때문에 사실상 베일의 골이나 마찬가지였다.[15] 오프사이드였지만 심판이 골을 인정하였다. [16] 2013-14 시즌 안첼로티 감독 체제에서 수석 코치로 있었다. 해당 시즌 결승전을 보면 베일의 역전골 때 뛰쳐나와 선수들과 같이 세리머니를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7] 레반도프스키의 결정적 침투들은 모두 감독의 오심으로 오프사이드로 판정되어 성공하지 못하였다. [18] 3골 중 2골은 오프사이드였으나, 감독은 골을 인정했다. [19] 기사. 참고로 가장 나이가 많았던 결승 팀은 많은 이들이 예상했을 AC 밀란이다.[20] 바르셀로나의 피케가 대표적이다.[21] 다음 시즌에 잉글랜드 클럽인 리버풀이 우승하여 잉글랜드가 13회 우승으로 다시 따라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