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팀 컬러
1. 전반적인 전력
'''제1장 롯데 자이언츠의 제반 문제점'''
* (1) 점수를 매우 어렵게 얻는 반면에 매우 쉽게 잃는다. - 9p
* (3) 1회와 9회의 수비가 유난히 불안하다. - 27p
* (5) 산발안타는 많이 나오나 집중타가 드물고, 병살타가 주요 고비마다 많이 나온다. - 31p
* (6) 작전을 아예 펼치지 않는 것이, 시원찮은 작전을 방만하게 펼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 34p
* (7) 연패는 쉽게 하고 연승은 어렵게 한다. - 35p
* (8) 유난히 재미가 없는 시합이 많고, 개운치 못한 시합운영으로 아주 불쾌한 패배를 한다. - 36p
* (9) 특정한 투수, 특정한 팀에 유난히 약한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한다. - 42p
* (10) 생각하는 고급야구를 못하고, 조건반사적인 우둔한 야구를 하고있다. - 47p
* (11) 투수 기용에서 실패를 많이 한다. - 52p
* (12) 트레이드에서 항상 손해를 본다. - 67p
* (13) 구단주의 우승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고, 구단에 투자가 미흡하다. - 82p
원년부터 롯데는 투수쪽은 리그를 대표했던 최동원-윤학길-박동희-염종석-주형광으로 이어지는 준수한 계보를 이어왔으나 타격은 약한 소총야구 이미지가 강했다. 일례로 남두오성의 시대였던 1992년 우승 당시에도 타율 3할이 넘는 타자가 6명이나 됐지만[2] 거포가 부족해 소총부대의 이미지가 더욱 강해졌다. 그 중에 압권인 것은 1993년 기록한 팀 홈런 '''29개'''. 아무리 이 시즌이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이었다지만 한 시즌 팀 홈런이 29개에 불과하다는 것은 앞으로 두번다시 깨지기 힘든 처참한 기록이다.'''"롯데는 항상 성적을 예단하거나, '잘 할 것이다' 이런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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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0일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시즌 2 172회에서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1]
90년대 초중반은 거기다 전력 불균형까지 심각했다. 팀의 중심타선은 좌타 일변도라 상대팀에서 좌투수가 선발로 나오면 연신 헛방망이를 휘두르다 영봉패를 헌납하기 일쑤였던 반면[3] 정작 팀내에서 쓸만한 좌완투수는 없어 상대팀의 좌타 라인업에 맹폭격을 당하는것이 아주 일상이었다. 그나마 좌완투수 기근은 94년에 주형광이 입단하면서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90년대 중반 마해영과 임수혁이 있었을 때와 99년 준우승때 박정태-펠릭스 호세-마해영이라는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를 보유했던 시절을 제외하면 거포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팀인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잠실 다음으로 홈런이 안나오는 사직구장 특성도 여기에 일조했다.
그러나 비밀번호를 찍고 그 분이 오시면서 2008년 시즌 조성환, 가르시아, 강민호의 강타선과 손민한이란 에이스를 내세워 이대호의 부진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2009년 시즌 이후에는 이대호, 홍성흔, 가르시아의 존재로 인해 8개 구단 '''최강의 거포군단'''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 위와 아래에 위치하는 조성환과 강민호도 언제든 홈런을 쳐낼 수 있는 강타자. 이 막강한 타선은 2010년 이후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 황금기에도 뚜렷한 약점이 있었으니, 너무 정공법적인 방법만 구사한다는 것. 자잘한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팀 싸인도 못 알아 보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선구안 능력은 키우지 않았는지[4] 팀 볼넷수는 4년 연속 7, 8위를 찍었고, 이 때문에 가을야구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2011년엔 제리 로이스터의 계약이 만료되고 신임 감독으로 양승호가 왔는데,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정말 안 되는 팀의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원준, 송승준의 선전과 뜻밖에 김사율과 임경완[5] , 강영식의 대선전으로 2위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2012년엔 이대호의 일본 진출로 타선의 무게감은 줄었지만, 기존 선수들의 분발과 신인들과 만년 백업 선수들의 각성 등으로 여전히 강팀의 자리를 유지하였다. 홈런은 줄었지만 강력한 불방망이 타선은 여전하며, 약하다고 평가되던 계투진은 긴급 수혈된 불펜[6] 과 기존 불펜 투수[7] 들의 분투로 한층 더 탄탄해졌다. 전반기에는 이승호와 정대현이 부상이나 부진으로 골골하며 고생을 했지만, 후반기에 이들 모두가 복귀에 성공한다. 하지만 뒷심 부족으로 포스트시즌에서 SK에게 2:3으로 패하고 말았다.
2012년 시즌 이후 홍성흔과 김주찬이 FA로 팀에서 나가며 타선의 무게감이 더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팀컬러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대학 감독 시절 저지른 비리가 드러나며 불명예를 떠안고 퇴진된 양승호에 이어 김시진 감독이 새롭게 부임, 과거의 투수왕국의 팀컬러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리고 2013년 시범경기에서 팀 방어율 1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안정된 마운드와는 달리 과거의 화끈했던 배트는 시범경기동안 5위의 팀 타율 0.239를 기록하였다. 이 와중에 팀 득점은 24점으로, 9개 구단중 아예 꼴찌를 찍었다. 2012년에 이어서 2년연속 시범경기 꼴찌.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김시진 강점기였던 2013년과 2014년은 그야말로 최악의 시즌중 하나였다. 2013년엔 타선은 손아섭 말곤 제대로 치는 타자가 없고, 선발진은 그나마 쓸만했지만 4, 5선발이 제대로 구멍이 났으며, 불펜은 정대현과 김사율이 퍼지며 결국 노예로 구르던 김성배가 마무리로 뛰었다. 2014년 역시 암울한 타선과 투수진으로 인해 가을야구 실패.
2015년 이종운 시기는 그냥 롯데 팬들이 가장 기억하기 싫어하는 해 중 하나. 역대급 용병 3인방이 있었음에도 이종운 감독이 투수진을 전원 선발화라는 헛소리로 갈아마셔버리며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물론 이종운 감독은 시즌과 함께 바로 아웃...[8][9]
2015년 이후부터는 대부분 투수들이 스플리터 계열의 구종을 거의 필수적으로 장착하고 나오고 있다. 누구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포크볼 장착에 부적합한 투수들 빼고는 전부 장착하고 있다. 그 덕에 매년 탈삼진율도 1,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문제는 볼질도 그만큼 많다는 것과 포수들이 죽어난다는 것. 양날의 검이다.
2017년에는 다시 각성한 손승락을 축으로 조정훈, 박진형의 분전으로 2012년을 연상케하는 양떼불펜의 활약으로 정규리그 3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으나 아쉽게도 이 팀컬러가 오래가진 못했다.
2. 포수왕국
흔히들 포수 왕국 하면 두산 베어스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롯데도 알게 모르게 양질의 포수를 대거 배출했다. 심재원 - 한문연부터 시작해서 1992년 우승에 일익을 담당한 김선일, 1995 플레이오프의 주역이었던 강성우, 마림포의 한 축이던 임수혁, 흔치 않던 스위치 히터 포수 최기문, 그리고 2010년대 KBO를 대표한 포수 '''강민호'''까지...오히려 롯데에서 주전이 되지 못해 타 팀으로 건너간 포수도 제법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제일 최근인 2015년 5월에 트레이드된 장성우.
1990년대에는 김선일-강성우-임수혁의 트로이카를 구성해 타격이 강한 임수혁을 지명타자로 자주 활용할 정도로 포수층이 두터웠고, 김선일 은퇴 후에는 이 자리를 최기문이 채워줘 최기문-강성우-임수혁 트로이카가 1999년 플레이오프의 기적을 만들어내는데 공헌했다. 이후 임수혁이 부득이하게 이탈하고 강성우도 트레이드되어 떠나 한동안 최기문에게 쏠린 시기가 있었으나 이 때 최기문은 포수로서 3할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최전성기. 이후 강민호가 일약 주전 포수로 발돋움해 강민호-최기문 체제가 2000년대 중반에 만들어졌고 여기에 장성우까지 가세해 2008년부터 강민호-최기문-장성우 트로이카가 또다시 결성되었다. 최기문 은퇴 후에는 용덕한이 이 자리를 채워줘 강민호-용덕한-장성우의 새로운 트로이카가 또 결성. 특히 용덕한의 존재 때문에 장성우를 안심하고 군복무를 보낼 수 있었다. 쓸만한 포수가 없어 쩔쩔매던 몇몇 팀 팬들 입장에선 허탈할 정도로 포수 걱정은 안해도 됐던 팀.
백업 포수들도 상당히 쟁쟁하고, 그 백업 포수들의 질도 우수하다. 장성우, 용덕한이라는 한 방과 무지막지한 수비력의 포수 둘을 필두로 김준태, 김사훈, 안중열 등 공수 중 한 분야 이상은 확실하고 잠재성도 뛰어난 포수들이 계속 배출되었다.
그래서 팬들도 포수 보는 눈이 높다. 강민호가 부상으로 빠진 2016년 후반기에는 김준태가 주전으로 나오고 있는데, 다른 팀들 입장에선 충분히 쓸 만한 포수지만 강민호에게 충분히 적응된 롯데팬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포수 수비의 기본기가 떨어지고 나은 건 볼배합 밖에 없다고... 결국 나중에 김사훈과 돌아가면서 출전하면서 김준태도 충분히 나아지자 자제 하는 중.
그러나 2018년 강민호가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롯데의 주전 포수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안중열이나 나종덕 나원탁 등 젊은 유망주는 몇 있지만 아직 공수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못 보여주는 중. 또한 프런트도 양의지를 영입할 생각이 없다고 하고 있었고 결국 양의지는 NC로 갔다.
2019년 시즌에는 김준태, 나종덕, 안중열 등 롯데의 포수들이 눈이 썩는 저질 수비 또는 액체질소를 끼얹는 타격을 보여주면서 롯데팬들은 고통받고 있다. 오죽하면 강백호가 롯데와의 경기에서 포수를 보고, 신용수가 긴급하게 포수를 볼 때 롯데 주전포수들보다 타격 및 프레이밍도 낫다는 소리가 나왔을 정도. 그리고 6월 기준으로 롯데 포수 3명의 WAR는 전원 마이너스[10] 로, 전원이 WAR가 0보다 큰 타팀과 대조적이다.[11] 강민호의 이탈 이후 포수뎁스 약화 문제는 롯데가 강팀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고 있다.
그나마 2019년 11월 21일 한화 이글스와의 2:2 트레이드로(장시환,김현우↔지성준,김주현)으로 지성준을 영입하며 한숨 돌렸고, 해당 시즌 후반기에 올라와 안정적인 수비를 보인 정보근도 기대할만한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다.
2020시즌 들어서는 김준태가 그나마 공수 양면에서 점차 좋은 모습(공격은 적어도 2016년보다 조금 못한 정도로 돌아온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정보근은 반-풀타임 주전으로 돌고 있지만 체력문제로 공수 양면에서 다소 고전하고 있다. 그리고 지성준은 2군에서 수비를 조련받던 도중 시즌 도중 미성년자와의 부적절한 관계 사건으로 인해서 사실상 팀에서 제명되었고 이름을 바꾼 나균안은 투수로 전향했다. 결국 강태율, 김강현 중 그나마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제3포수로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3. 올스타전 최강팀
유독 KBO 올스타전과 인연이 깊다.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팀의 인기가 많은 탓에 베스트 포지션을 뽑는 팬 투표에서 전 포지션을 석권한 적도 있다. 뽑히기만 잘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뽑혀 가면 괴물같은 활약을 선보여 올스타전의 슈퍼스타로 군림하기도 한다. 팬들은 올스타전만큼이나 정규시즌에서도 활약해 주기를 항상 바라고 있다...
올스타전 최우수 선수인 ''''미스터 올스타''''의 절대 다수가 롯데 자이언츠 출신이라는 점이 그 증거이다. 현재까지 무려 15번이나 롯데 선수가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는 진기록을 낳았다. 이쯤 되면 이벤트 경기에서는 진짜로 우주 최강 수준.
그 중 박정태는 1998, 1999년 연속으로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어 KBO 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2년 연속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된 기록을 갖고 있다.
올스타전에 독특한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주로 선데이 유니폼을 즐겨 입었고 2015년에는 기부와 연관된 행사 컨셉답게 유니세프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출전 선수들의 유니폼 마킹도 독특했다. 2010년 올스타전에는 팬 투표 최다득표자로 선정된 홍성흔이 '''최다득표'''라는 이름을 새기고 등번호에는 '''감사'''라는 기괴한 마킹의 유니폼을 착용했다. 롯데 선수들로만 베스트 포지션이 꾸려진 2012년에는 송승준 대신 올스타전에 선발된 쉐인 유먼이 '양승호감'이라는 이름을 새기고 등번호에 '''♥'''를 새겼고 팬 투표 최다득표자였던 강민호는 '''가문의 영광'''이라는 이름에 등번호로 '''쌩유'''라는 문구를 새기고 나왔다.(...). 김시진 감독 이후로는 이런 특이마킹이 올스타전에서 안 보이는 편.
3.1. ''' 미스터 올스타 목록'''
4. 어린이날 최약팀
롯데는 전통적으로 어린이날만 되면 막장스러운 경기력으로 패배하여 부산 어린이들의 동심을 파괴한 경우가 많다. 어린이날 전체 전적이 14승 24패로 승률 0.368에 불과하며, 경기 외적인 요인들로도[16] 유독 어린이날에 트라우마가 많았다. 이 때문에 부산의 어린이들은 야구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거나 인터넷에서 야구 이야기만 나오면 쌍욕을 퍼붓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날 성적이 극도로 안 좋은 점에는 경기 장소의 영향도 있다. 구덕 야구장에서 경기를 치른 1985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어린이날마다 원정을 다녀야 했고 어린이날 홈경기 권한이 배정된 1998년에도 사직 야구장이 아닌 마산 야구장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다. 롯데가 어린이날마다 홈경기를 치르지 못하거나 마산 야구장 등을 전전해야 했던 것은 부산광역시가 2007년 이전까지 사직 야구장에서 어린이날 큰잔치 행사를 개최하여 사용 일정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이 생기고 어린이날 큰잔치 장소가 벡스코로 이전된 이후부터 사직 야구장에서 어린이날 홈경기를 격년으로 치르게 됐다. 다만 어린이날 사직 홈경기 전적이 1승 6패인건 함정. 그것도 2007년 1승 이후로 내리 6연패.
아래는 역대 어린이날 경기 전적.
5. 외국인 선수 선발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선수로 1998년에 내야수 덕 브래디를 데려와서 뛰게 하였으나[22] 여러모로 신통치 않아 재계약을 하지 않고 이듬해 펠릭스 호세를 영입했다. 비록 KBO 리그에서 뛴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1999년, 2001년 시즌 단일 시즌의 임팩트는 KBO 역대 최고의 타자 중 1명으로, 롯데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선수. 같은 시기 호세의 소개로 영입된 에밀리아노 기론도 평작 정도의 투수는 되었다. 그러나 이후 KBO 막장 용병의 한축을 당당히 꿰차고 있는 존 갈과, 희대의 대수비 용병으로 존갈에 버금가는 명성을 날렸던 에두아르도 리오스등을 영입하며 용병 농사에서 흉작에 흉작을 거듭하게 된다. 백인천이 직접 데려온 보이 로드리게스도 흑역사로 분류된다.
2008년 이후로는 로이스터 감독의 인맥인 카림 가르시아, 존 애킨스, 라이언 사도스키 등 준수한 외국인 선수를 선발해 외국인 선수 선발에 대해서는 별 말 없는 상태였다. 2011년 브라이언 코리는 대책이 없던 가르시아 방출 이후에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보내 준 경우. 제리 로이스터 해임 이후 롯데 스카우트진은 그야말로 숨 쉬고 돈만 받아 먹었다.
2012년에는 라이언 사도스키와 쉐인 유먼이 외국인 투수로 뛰었다. 특히 유먼은 롯데 선발진에서 에이스 대접을 받았는데, 이당시 워낙 성적이 좋아 류먼진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12년 시즌 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쉐인 유먼과는 당연히 재계약을 했고, 부진했던 사도스키가 고향으로 떠나게 되었다. 사도스키의 자리에는 스캇 리치먼드를 영입했는데 스프링캠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퇴출되며 대신 크리스 옥스프링을 들여오게 된다. 그리고 옥스프링도 2013년 시즌에 13승을 거두면서 성공적인 한국 복귀시즌을 치루었다.
2014년에는 쉐인 유먼, 크리스 옥스프링과 재계약 하였고, 외국인 선수의 추가 영입이 가능해짐에 따라 베네수엘라 거포 루이스 히메네스를 영입하게 되었다. 이로써 2012, 2013년 시즌에 치명적인 단점으로 언급되었던 팀 타격능력을 어느 정도 확보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그 히메네스가 후반기 들어 타자 카리대 2호기, 헤비급 지미 파레디스가 되어버리며 폭망해버렸고, 결국 암흑기 탈출 이후 최초로 망한 용병이 되어버렸다. 유먼과 옥스프링도 영 좋지 않은데, 유먼은 방어율이 폭등했고 옥스프링은 타선의 지원을 못 받는 상태이다.
한줄로 요약하면 '''암흑기를 탈출한 2008년 시즌부터 2014년 시즌을 빼고는 용병 영입에서 나름 수확을 거두었다.'''
한편, 라이언 사도스키는 야구계에서 은퇴를 했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용병 스카우트가 되어 한국야구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015 시즌에 영입한 짐 아두치, 조쉬 린드블럼, 브룩스 레일리가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어 사도스키의 능력이 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 야구 컨설팅업체 GSI와의 커넥션 때문에 일부 롯데팬들에게 욕을 먹는 편.
2016년에는 린드블럼과 레일리는 작년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준수한 성적을 올려주는 반면에, 아두치는 허리부상으로 골골대다가 금지 약물 복용으로 퇴출되었다.[23] 아두치의 빈자리에는 저스틴 맥스웰이 왔지만 그럭저럭하다가 번트연습 중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어버리며 먹튀로 전략했다.
2017년에는 앤디 번즈를 영입해 그간 골치를 썩였던 2루 수비 문제를 해결했다. 타격에서도 끝내 3할을 넘기며 시즌을 마무리한 것은 덤.
2018년에는 조쉬 린드블럼이 구단의 만행으로 인해 두산으로 이적했고 대체선수로 월드시리즈 우승 경력이 있는 펠릭스 듀브론트를 영입했는데, 전반기 제구력으로 부진했으나 4~5월 체중감량 이후 점차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8월 들어 제구력 난조를 보이면서 부진하는 중. 결국 웨이버 공시되며 선발진에 비상이 걸렸다. 앤디 번즈 역시 타격은 고사하고 최대 장점이던 수비력 부문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2019년에는 카를로스 아수아헤와 제이크 톰슨을 영입하였다. 그러나 각각 부진과 부상을 이유로 퇴출되었으며 제이콥 윌슨과 브록 다익손을 도중에 영입하였으나 둘 다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재계약에 실패했다. 5년 동안 선발 마운드를 굳건히 지켜준 브룩스 레일리도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이견이 생기며 결국 결별했다.
2020년에는 아드리안 샘슨과 댄 스트레일리, 유격수 딕슨 마차도를 영입하였다. 8월 27일 기준 기대보다 낮은 모습을 보이며 부진한 아드리안 샘슨을 제외한 두 외국인 선수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는 평을 듣고 있다. 스트레일리는 투수 WAR, 탈삼진 부문에서 리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고, 평균자책 부문에서도 2위, 우완투수 한정 1위를 달리며 롯데 선발진의 주축이 되었다. 마차도는 3할대 초반의 쓸만한 타격과 좋은 득점권 타율, 그리고 KBO 역대 최고라고 해도 손색없는 엄청난 수비를 보이며 역대 롯데 유격수 sWAR 1위를 달성했다.
6. 기타
트레이드마다 실력도 안 되는 롯데 선수들[24] 을 구단에 들여오는 부산고 출신 모 OB의 행보로 인하여 두산 베어스 팬들 사이에서는 도움이 안 되는 팀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논란이 된 선수가 3억짜리 부산고 핵폐기물 . 반면 롯데는 두산과의 트레이드에서 나름의 소득을 얻은 사례가 많은데[25] , 이는 앞서 언급한 트레이드 호구 이미지와 배치된다.
또한 10개 구단 공동 머천다이즈 상품을 내놓을 때[26] 롯데만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롯데그룹의 사업분야가 해당 머천다이즈와 겹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회사가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1] 한준희 해설위원은 야구를 즐겨 보기도 하며 야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데,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 시절부터 골수 롯데 팬이다. [2]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는 5명[3] 특히 삼성의 성준, 김태한, 쌍방울의 박성기, LG의 김기범같은 선수들이 롯데에 특히 강했다. 재미있는 것은 한때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이었던 LG의 이상훈은 나름 잘 공략했다는 점.[4] 황금기 이후로도 박정태가 타격코치로 취임한 다음 선수들과 선구안 부분에서 이견이 있기도 했다. 그걸 보여주는 사례가 박정태 코치와 다르게 선수단 논의를 통해 초구는 골라내고 쳤던 용덕한.[5] 임작가 시절때 욕(...)먹어도 천사같이 웃는다고 '임천사'라는 별명이 있다.[6] 이승호, 정대현, 김성배[7] 김사율, 최대성, 이명우. 그러나 최대성은 2012 시즌 이후 수술 시기를 놓치면서 부상에 신음하게 된다.[8] 이 이후 SK 와이번스 2군 감독으로 갔는데 SK 팬들은 이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9] 그리고 이 해 부산 아이파크도 프런트의 방만한 운영으로 결국 K리그 2로 강등되었고, 부산 kt 역시 2차 비밀번호인 779A를 찍기 시작하였다. 여러모로 2015~2019년은 부산 스포츠에게는 2000년대 초반을 뛰어넘는 암흑기를 맞았던 셈. 그나마 2019년 후반 들어 롯데가 15년만에 꼴찌를 했지만 아이파크는 유스 시스템의 대대적인 정비로 이동준, 김문환 등을 발굴해내며 4년만에 K리그 1으로 돌아왔고, kt는 허훈-양홍석의 드래프트와 서동철 감독의 부임으로 비밀번호를 끊어내고 19-20 시즌에는 허훈이 리그 3년차에 MVP를 수상하는 등 다시 희미한 서광이 비치고 있다.[10] 6월 4일 경기종료 이후 타격 WAR 안중열 -0.16, 김준태 -0.44, 나종덕 -0.62.[11] 주전경쟁을 해야 하는 3명의 WAR가 저 정도면 타팀의 거의 백업의 백업 선수 수준으로, 롯데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출전포수 WAR의 합이 마이너스다. 득점생산력을 나타내는 수치인 wRC+, 출루 수치인 wOBA도 거의 꼴찌 수준.[12] 초대 미스터 올스타로 선정된 덕에 매년 올스타전 때마다 '미스터 올스타'의 상징처럼 언급이 된다.[13] KBO 올스타전 사상 유일한 미스터 올스타 2연패[14] 2006년 올스타전 당시 두산 소속으로 받은 이후 2번째.[15] 2008년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서 MVP를 받은 적 있다. 1군과 2군 올스타전에서 모두 MVP를 수상한 선수는 아직 전준우가 유일하다.[16] 1998년 마산아재의 버스 뒤집어 사건이나, 2009년의 SK 선수단 습격사건 등[17] 이게 위에 서술된 마산아재 버스 뒤집어 사건. 롯데의 역전패로 경기가 끝나고 나서 마산아재들이 버스를 막고 당시 감독이던 김용희를 상대로 즉석 청문회를 벌였다.[18] 홀드 : 권혁,안지만,권오준(이상 삼성)[19] 홀드 : 김성배(롯데)[20] 홀드 : 윤길현(SK)[21] 홀드 : 서진용(SK)[22] 참고로 2순위 지명 선수로 1순위로 뽑은 빅터 콜은 계약 합의에 이르지 못해 영입에 실패했다.[23] 다만 아두치가 복용한 옥시코돈은 마약성 진통제로, 오히려 근육 및 운동능력을 저하시키는 약물에 해당한다. 개막 30일 전에 신고만 하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용병신분에 통증을 고할 수 없던 상황.[24] 단 장원준은 제외.[25] 대표적으로 노경은, 오현택, 김동한.[26] 특히 식품, 청량음료 분야에서 많이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