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image] '''모나코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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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공국
Principauté de Monaco
'''
[image]
[image]
'''국기'''[1]
'''국장'''
'''면적'''
2.2km²[2]
'''인구'''
38,300명(2019)[3]
'''인구밀도'''
19,634.85 명/km²(2018)
'''수도'''
모나코
'''접경국'''
[image] 프랑스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의원 내각제, 단원제
'''공작'''
알베르 2세
'''국무장관(총리)'''
피에르 다투트(Pierre Dartout)
'''공용어'''
프랑스어[4]
'''전체 GDP'''
6억 4010만 달러(2019)
'''1인당 GDP'''
'''165,421달러'''(2019)[5]
'''홈페이지'''
정부, 관광청( )
'''위치'''
[image]
[6]


'''풍경'''
[image]
'''출처'''
[image]
'''출처''' [7]
'''나라 전체를 한 번에 볼 수 있다.'''[8]



1. 개요
2. 정치
2.1. 정당
3. 역사
4. 국기
5. 경제
6. 공가
7. 문화
7.1. 언어
7.2. 스포츠
8. 평균 수명
9. 외교
9.1. 프랑스와의 관계
9.2. 이탈리아와의 관계
9.3. 대한민국과의 관계
10. 오해
11. 창작물에서
12. 기타

모나코의 행정구역

1. 개요


'''모나코 공국(Principauté de Monaco)''', 약칭 '''모나코(Monaco)'''는 서유럽프랑스 동남부 해안에 위치한 도시국가이다.
서유럽으로도 분류되고 남유럽으로도 분류된다. 10세기 제노바의 명문가인 그리말디(Grimaldi) 가문이 건설한 대(對) 프랑스 무역기지에서 출발했다.
크기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데다[9] 딱히 두드러진 국제적 활동을 하는것도 아니어서 유럽 이외 지역들, 특히 동양권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나라 자체 인지도보다는 프랑스 축구리그 리그 1의 축구클럽 AS 모나코 FC 인지도가 더 높을 정도. UN 정식회원국 중에서는 가장 작다.[10] 인구도 3만 3천명 정도로 적다. 하지만 땅이 워낙 작다 보니 땅에 비해서는 매우 많은 인구다.[11] 그래서 인구 밀도는 세계 2위.
바티칸 시국에는 국경 역할을 하는 성벽이 있어 이탈리아 영토와 구분 가능하지만 모나코는 좁은 1차선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기 때문에 구분이 쉽지 않다. 심지어 바를러의 사례처럼 한 건물 내에 모나코와 프랑스 영토의 경계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
인도네시아와 국기가 종횡 비율만 다를 뿐 배색이 '''똑같다.'''
면적은 독도(0.187453km2)의 약 11배이며 여의도 면적보다 더 작다. 산과 바다 사이 좁은 땅에 건물이 빽빽 들어서, 유럽홍콩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도박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성한 유럽 대표 유흥도시인 만큼, 미국 라스베이거스아시아마카오와 흔히 비교, 거론된다.[12] 특히 마카오는 들어오는 사람에 비해 육지가 부족해서 바다를 간척해가며 늘려나가는 특성도 모나코와 똑같다. 국토 전역이 프랑스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레지옹의 알프마리팀 주[13]에 둘러싸여 있다.
세계에서 백만장자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며, 무려 인구의 30%가 백만장자다. 단순히 보자면, 동네 사람 세 명 중 한 명은 자산이 10억 이상이라는 뜻.

2. 정치



모나코 공(公, Prince)이 다스리는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국민의회(Conseil National)는 총 24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4명 중 16명은 지역구에서, 8명은 정당득표에 따른 비례대표제를 활용하여 선출한다.
그러나 실상은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프랑스 내의 자치령이나 다름없다.[14] 예를 들면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와 달리 모나코의 총리(국무장관)는 다수당의 당수[15]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정부가 추천한 인사 중에서 모나코 공이 임명한다. 2002년 이전에는 총리가 반드시 프랑스인(프랑스 시민권자)이어야 했는데, 그 이후로는 헌법을 수정해 모나코인'''도''' 총리가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 총리인 세르주 텔은 프랑스 외교관이다. 심지어는 공가(公家)의 대가 끊기면 프랑스에 합병된다는 조약이 있었으나, 2005년에 재갱신하면서 이 조항을 없앴기 때문에 그나마 나라 망할 염려는 줄어들었다. 프랑스 입장에서 이제 와서 이런 콩알 만한 나라 삼켜서 얻을 이득도 없고.

2.1. 정당



한 때 의회에 있었던 르네상스는 모나코 대성당[16]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권익 대변을 위해 만들어진 당이라서 정치적 위치나 성향을 가늠할 수 없다.

3. 역사


국가명은 헤라클레스의 전설에서 나온 말로 이곳에 헤라클레스가 지나갔다고 신전을 세웠는데 이 주변에서 유일한 헤라클레스 신전이라고 "외로운 헤라클레스(Hercules '''Monoecu'''s)" 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
1191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제노바 공화국에게 모나코 근방의 지역을 하사해 제노바령이 되었다. 이후 제노바가 근처의 땅들을 개척하여 1215년 무역 거점으로 개척한 곳이 바로 모나코다. 그러던 중 1297년 제노바의 유력 가문인 그리말디 가문이 무력 점거했으나 바로 제노바 정부군에게 격파당하고 제노바령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집념의 그리말디 가문은 기어이 1419년에 모나코를 돈으로 구입하면서 이 지역(Rock of Monaco)의 명목상의 영주였던 아라곤 국왕에게 통치권까지 함께 구입해 공식적으로도 그리말디 가문의 거점이 되었다. 1612년에는 Prince를 자칭하였고, 1642년에는 프랑스루이 13세에게 공작위를 하사받으면서 제노바령이면서도 프랑스의 보호국이라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그 이후로는 제노바 공화국 내의 자치령으로 남아있다가, 제노바 공화국이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하면서 이곳도 프랑스의 통치를 잠시 받았다.
일차적으로 멸망했던 모나코 공국은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1815년 다시 부활했는데, 이때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그리말디 가문도 다시 복귀해 반독립적인 미니 국가로 남아있었지만 1860년 토리노 조약으로 사르데냐 왕국이 모나코를 둘러싸고 있던 니스 지역을 프랑스에게 양도하면서 프랑스 영토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 와중에 모나코 동부의 2개 도시[17]가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하는데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하기 이전부터 이 지역은 그리말디 가문의 과도한 세금 징수로 인해 불만이 쌓인 상태였고 프랑스군의 점령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독립을 선언해 사르데냐 왕국 편입을 시도했다. 결국 질린 그리말디 가문이 1861년 410만 프랑을 받고 점령당한 2개 도시를 프랑스에 팔아치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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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지도. 파란색이 팔아버린 영토, 주황 부분이 현재 모나코 영토. 이렇게 영토가 축소되어버린 이후 모나코는 카지노와 조세피난처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전에는 전제 군주국이었다가 1910년 혁명(Monégasque Revolution)이 일어나 알베르 1세는 이에 굴복, 1911년 헌법을 채택하고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알베르 1세에게는 유일한 후계자 루이(나중의 루이 2세, 재위 1922~1949)밖에 후계자가 없었고, 이에 계승 위기가 발생하여 후대에는 나라가 프랑스에 합병될 위기에 처했다. 루이의 유일한 딸 샤를로트는 사생아라 계승 자격이 없었는데 그 다음의 추정 후계자인 외사촌동생이 독일 공족[18]이라 프랑스가 압력을 넣어 샤를로트를 루이의 후계자로 정하게 만들었다. 샤를로트는 모나코 공가에 정식으로 입적되고 발렌티누아 공작[19] 칭호를 수여받는다. 다만 정식 혼인관계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정통성의 약점이 있어서 샤를로트는 1944년에 본인의 계승권을 아들에게 양도하여 공위를 계승하지 않았다.[20] 그렇게 해서 모나코 공위를 계승한 아들이 그레이스 켈리의 남편으로 유명한 레니에 3세다. 사실 그 이전에도 모나코에는 여성 군주가 두 명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계승 위기가 발생했던 전례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모나코 대공 루이 2세는 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모나코 주민의 대다수는 이탈리아계 였고, 프랑스는 비시 정부가 수립되었기 때문에 국내에는 혼란이 많았다.
1943년 이탈리아군이 침공하여 모나코는 파시스트 정권의 지배 하에 들어갔으며 독일군도 주둔했다. 하지만 루이 2세의 비밀 명령을 받은 모나코 경찰들은 파시스트 정권에게 색출되기 전에 유대계 주민들에게 출국을 경고하는 등, 위험을 무릅쓴 활동을 했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몰락한 직후에는 나치 독일의 점령하에 들어가기도 했다. 루이 2세의 손자 레니에는 연합국을 지지했으며, 연합국의 승리로 모나코의 독립은 회복되었다.

4. 국기


국기가 인도네시아 국기나 폴란드 국기와 비슷하다. 그 탓에 인도네시아에게 국기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인도네시아도 모나코 못지않게 역사가 길어 거부당했다. 다만 세로와 가로의 비율이 다른데 모나코 국기는 4:5로 정사각형과 가깝고 인도네시아 국기는 2:3으로 모나코 국기보다 가로 비율이 높다.

5. 경제



6. 공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비 ''''그레이스 켈리''''로도 유명하다. 아카데미상 수상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1954년 화보 촬영차 모나코에 왔다가 레니에 3세 공의 작업에 걸린 것. 레니에 3세는 12캐럿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는 등 지속적인 구애를 펼쳐 1956년에 결혼했다. 이 덕분인지 이후 모나코에 미국인 관광객이 폭증.
이 드라마틱한 결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 및 추측과 카더라 통신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나시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화계에서 은퇴하고 세기의 결혼식 이후 그레이스 공비는 3자녀를 낳고 살다가 1982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다만 그레이스 공비와 레니에 3세 공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인 카롤린 공주, 알베르 2세, 스테파니 공주는 어머니만큼 못하다는 평이 대세다. 물론 두 공주들은 젊었을 때 외모로 꽤 날렸다. 큼직큼직한 미모보다는 오목조목 예쁜 얼굴을 선호하는 동양인들의 취향은 아니지만[21] 서양인들한테는 제법 먹히는 미모. 특히 카롤린 공주가 아름다웠고 지금도 곱게 나이에 비해 늙은 편. 카롤린 공주의 장녀인 샤를로트 카시라기가 젊었을 때의 카롤린 공주를 아주 빼닮았으며, 패셔니스타 이미지까지 더해 인기가 높다. 스테파니 공주는 다소 남상이긴해도 젊었을 땐 떡벌어진 어깨에 개성있는 미인이었으나... 지금은 애들 때문이라도 정신 차리고 살고 있다만, 파란만장한 인생 탓인지 공식 자리에서도 표정이 늘 어두운 데다 비교적 곱게 늙은 편인 언니 카롤린 공주에 비해 할머니와 다름없을 정도로 폭삭 늙었다. 알베르 2세는 지금의 모습에선 상상도 못하겠지만 젊었을 때 사진을 보면 훈남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둘 다 닮지 않은데다 그레이스 공비의 아들치고는 좀 많이 아쉽다는 평. 의외인 점(?)은 머리카락만 있다면 지금도 나이에 비해선 그리 늙어보이진 않는다.
현 모나코 공인 알베르 2세가 2011년 6월 30일 결혼식을 올렸는데, 약혼녀 샤를린 위트스톡이 '''도망가려다 실패했다'''는 충격적인 기사가 나왔다.# 일단 결혼에는 성공했지만 샤를린은 결혼식장에서 펑펑 울었고, 세 번이나 도망가려다 실패했다는 기사까지 떴다.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진짜 막장.
예전부터 알베르 2세는 여성관계에 대한 소문이 안 좋았다. 모델들과 난교 파티를 하고, 거절하는 모델은 쇼에 못세우게 했다는 등... 심지어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모델도 있었다. 오죽하면 좀 머리가 굵어진 모델들, 그 바닥 생리에 적응된 모델들은 알베르 왕자가 접근하려 하면 냅따 토낀다는 말이 있다. 거기다 결혼 전부터 알려진 사생아가 1남[22] 1녀[23]로 2명 있다. 이 아이들은 알베르 2세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 결혼 자체가 참 말이 많았다. 2010년에 알베르 공이 남아공에 있는 샤를린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딸과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리자, 때마침 월드컵 시즌이라 축구 경기를 보려고 대기 중이었던 샤를린의 아버지가 "'''알았다. 그런데 축구 시합 봐야 되니 그만 끊어라'''"라고 했다고.
원래부터 모나코 공가의 여자들이 외부에서 온 여성에게 빡센 것은 유명하다. 그래서 알베르 2세와 샤를린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 집안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샤를린을 '''매우''' 걱정했다. 그 이유는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큰시누이 카롤린 공주 때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식에 신부보다 더 눈에 띄게 보이는 것은 무례인데, 알베르 2세의 결혼식에서 큰시누이 카롤린 공주는 새파란 옷에 엄청나게 큰 모자를 착용하여 시선을 끌었다. 샤를린 공비에 대한 사전 협박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공식자리에서 보면 샤를린 공비는 카롤린 공주와 같이 있을 때 표정이 꽤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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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로 샤를린 공비는 패셔니스타로서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사랑을 받으며[24] 모나코 공비 역할도 일단 잘 해내고 있다. 허나 2013년 3월 공식행사에 참석한 샤를린 공비[25]의 모습을 보면, 원래 샤를린 공비의 외모가 다소 슬프게 생기긴 했지만 공식행사에서 찍힌 사진인데도 표정이 매우 어두워 보인다. 이 사진이 유독 좀 어둡게 나오기는 했으나, 웃고 있는 다른 사진들을 봐도 왠지 억지로 환하게 웃는 느낌이 드는게 많아서... 그도 그럴게 결혼 이후로 급격하게 주름이 많아졌고, 2014년 기준으로 결혼하고 3년이나 지났는데 아이 소식이 없는 것도 어두운 얼굴의 한 이유가 되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시조카 안드레아 카시라기와 샤를로트 카시라기는 잘만 아이를 낳았다.
그러다 2014년 6월 초에 드디어 샤를린 공비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정식으로 공표됐다. 모나코가 아직도 남자 우선 공위 계승 전범을 고수하고 있다 해도 이 아이는 '''알베르 2세가 결혼으로 얻은 적법한 자녀'''이므로, 남동생이 태어나지 않는 이상은 딸이더라도 공위 계승권에서 가장 앞서게 된다. 그리하여 이로서 카롤린과 안드레아는 공위 계승권에서 멀어지게 됐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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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쌍둥이 남매 자크와 가브리엘라가 태어났다. 가브리엘라가 2분 일찍 태어난 누나이지만, 모나코는 남자 우선 공위 계승제이므로 자크가 1순위 공위 계승자가 되었다.
모나코를 통치하는 그리말디 가문에는 저주가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자손 대대로 집안이 막장이다. 13세기에 그리말디 가문으로 구성된 모나코 점령군 중 한 남자에게 버림받아 마녀가 된 여자가 그라말디 가문에 '''"너희 그리말디 가문의 누구라도 결혼하여 행복이란 것을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저주를 내렸다고. 실제로 알베르 2세의 증조부인 알베르 1세 이래로 결혼생활이 평안한 모나코 공들이 없었다. 그나마 정상인(?) 아버지 레니에 3세도 그레이스 공비가 사고로 일찍 죽어 말년에 20년 넘게 홀로 살았다.
레니에 3세의 세 자식들도 죄다 결혼에 실패했는데, 장녀 카롤린 공주는 여기저기 염문을 뿌리고 나이트클럽에서 춤추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는 등 막장으로 살다 17살 연상의 첫번째 남편 필립 주노와 맞바람 작렬해서 이혼 후,[27] 3살 연하의 두번째 남편 이탈리아 석유업계의 재벌가문 막내아들 스테파노 카시라기와 속도위반으로 결혼하여 세 자녀를 출산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나[28] 남편이 사고로 사망해 과부가 되고, 그 이후에 다소 긴 침체기를 겪다가 3살 연상의 '''친구 남편'''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을 빼앗아 세번째로 '''또 속도위반으로''' 결혼해 딸도 낳으며 겉으로나마 평화로운 안정기를 갖는 듯 했으나, 아우구스트 공은 폭행 관련으로 구설수에 자주 올랐으며## 2009년 6월부터 지금까지 별거 중이다. 게다가 아우구스트 공은 태국 푸켓의 해변에서 젊은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29]
차녀 스테파니 공주는 젊은 시절에 뒷날의 패리스 힐튼처럼 온갖 막장짓으로 부모 속을 썩였으며[30] 명색이 공주임에도 모델과 가수로 활동하겠다고 나서기도 했고,[31] 심지어 서커스 단원으로 활동하겠다며 서커스단과 유랑 생활을 하기도 했다. 결혼과 이혼을 두 번 한 데다[32] 몇 차례나 유부남들과 바람이 나서 가정을 깨기도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장남 알베르 2세는 자신의 사생아들에게 질려 '''도망가려던 여자를 붙잡아 강제 결혼'''의 위업을 달성.[33] 이러니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콩가루 집안 중 하나가 되었다.
콩가루 집안답게 집안 구성원간의 사이도 당연히 대대로 좋지 않다. 카롤린 공주와 스테파니 공주의 사이가 그레이스 공비 사후부터 심각하게 안 좋은 건 워낙 유명하고, 알베르 2세가 원래 결혼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카롤린 공주가 알베르 2세의 결혼을 방해했다는 말도 꽤 있었다. 이유인즉 알베르 2세가 정식 결혼으로 아이를 얻지 못하면 공위를 자기 아들인 안드레아 카시라기가 잇게 되므로.
그런데 어릴 적 그렇게 예쁘고 멀쩡하던 안드레아도 술, 담배, 마약으로 맛이 갔고, 2013년 3월 한 살 연상의 콜롬비아 재벌의 상속녀 타티아나 산토 도밍고와의 사이에서 아들 알렉상드르 '사샤' 안드레아 스테파노 카시라기 부터 낳고8월 31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영국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2015년 4월에는 딸인 인디아 카시라기가 태어났고 최근 2018년 5월에는 셋째아들을 얻은 상태다.
홍일점인 둘째 샤를로트 카시라기는 15살 연상에 애딸린 모로코프랑스인 코미디언 겸 배우인 가드 엘마레와 2011년에 교제를 시작하여, 2013년 8월에 약혼하고 그해 12월 아들을 출산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채 집안 차이를 이유로 2015년 결별했다. 가드 엘마레와 결별한 후 얼마 되지 않아 11살 연상의 이탈리아 귀족 출신 영화감독 람베르토 산펠리체와 만남을 가져 여러가지 추측이 나돌았으나, 1년여의 연애 끝에 람베르토 산펠리체와도 결별하였다. 그 이후에도 여러 남자들과 엮이다가 최근 임신한 몸으로 프랑스 배우인 드미트리 라삼과의 약혼과 결혼을 발표했다.
여담으로 그리말디 가의 남계 조상 중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친구인 폴리냐크 백작부인의 후손이 있다. 레니에 3세의 아버지가 바로 폴리냐크 백작. 모나코 대공 루이 2세의 딸인 샤를로트와 결혼해 레니에 3세가 태어났다. 허나 그라말디 가문의 저주답게 레니에 3세의 부모도 이혼했다. 참고로 레니에 3세의 어머니 샤를로트는 원래 사생아 출신이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도 일명 '''모나코 왕자'''라 불리며 꽃미남 열풍에 일조한 안드레아는 카롤린과 카시라기의 아들이다.

7. 문화




7.1. 언어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다. 프랑스와 밀접하다보니 프랑스어가 모나코의 공용어이다. 그외에도 리구리아어 모나코 방언, 이탈리아어도 쓰이고 있다. 영어는 모나코가 관광지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언어이고 널리 통용되고 있다.

7.2. 스포츠


2012년까지 루이 2세 스타디움에서 UEFA 슈퍼컵이 열리기도 했다. 루이 2세 스타디움은 박주영이 뛰었던 AS 모나코 FC의 홈 구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FIFA나 UEFA 회원국은 아니다. 그래서 AS 모나코 FC도 프랑스리그인 리그 1에 나온다. 더불어 국가 대표팀이 아예 없어 유로컵이나 월드컵 예선에서도 못 본다.[34] 인구도 3만명 정도로 적지만, 국가 면적 때문에 국가별 인구밀도 수치에서는 압도적으로 1위다. 어쨌든 2000년대 들어서야 일단 축구협회가 창설되었다.
NF-보드에 가입해서 그쪽에서 열리는 국제경기인 VIVA월드컵에 자주 출전했다. 그런데 VIVA 가입국이 대부분 비공인국. 일단 국제적으로 제대로 공인받는 국가임에도 비공인국들 노는데 끼어서 놀고 있었다. 아무리 미니국가라도 비공인국들 사이에 끼어서 놀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비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VIVA 월드컵에서는 사미족 대표팀(북유럽의 유목민 소수민족.)에게 21 대 1로 지는 굴욕을 당했다. 그래도 체첸 대표팀을 13 대 1로 꺾기도 했고, 독립국인 바티칸을 2 대 0으로 이기기도 했다.2006년에 사미와의 2번째 경기마저 0:14로 대패했다.심지어 8년뒤인 2014년에는 엘란 바닌에 0:10으로 또 대패하였다.
모터스포츠 면에서는 매년 포뮬러 1 모나코 그랑프리가 열린다.[35] 별도 서킷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랑프리 시즌에만 몬테 카를로 지역의 시가지 통행을 막고 일반 도로를 서킷으로 활용한다. 도로 폭도 좁고 워낙 복잡해서 추월이 힘들기로 악명이 높지만 모나코 특유의 경관과 잘 어우러져 포뮬러 1을 대표하는 그랑프리이다. 모나코 서킷 참조.
참고로 모터스포츠 트리플 크라운은 F1의 모나코 GP, WEC의 르망 24시, 인디카의 인디 500이다.
모나코 출신 포뮬러 1 드라이버도 있다. 현재 스쿠데리아 페라리 소속 샤를 르클레르.
그리고 2021년에는 모나코를 베이스로 하는 모나코 F1 레이싱 팀이 포뮬러 1에 새로 참가할 예정이다. 현재는 계획중에 있으며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몇 시즌내로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WRC의 개최전은 항상 모나코에서 하며 명칭은 '''몬테-카를로 랠리'''이다.
매년 9개의 대회가 개최되는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대회 중의 하나인 마스터스 1000 몬테카를로 오픈이 개최된다. 그러나 모나코가 아니라 모나코와 인접한 프랑스의 접경도시에서 개최된다.

8. 평균 수명


모나코는 세계에서 평균 수명이 가장 긴 나라이다. 2017년 CIA the Worldfactbook에 따르면 모나코인은 평균적으로 89.4년을 산다고 한다. 2위 일본보다 4년 정도 더 길다. 남성들의 평균 수명은 85.6세이고 여성들의 평균 수명은 무려 93.4세이다. 실로 경이적이라 할 정도로 장수하는 셈이다.

9. 외교



9.1. 프랑스와의 관계


모나코는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모나코는 프랑스와 관계가 깊었고 모니카측에서 19세기에 프랑스에 영토를 할양하기도 했다. 모나코는 프랑스의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공용어이고 프랑코포니회원국이다. 국방은 프랑스에서 모나코 국방을 담당하고 있다.

9.2. 이탈리아와의 관계


이탈리아도 역사적으로 모나코와 관계가 깊다. 리구리아어의 모나코 방언도 이탈리아어와 가깝고 이탈리아어도 모나코에서 쓰이고 있다.

9.3.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공식적으로 2007년에 수교를 맺었다.[36][37] 1988년에 열린 서울올림픽에는 자국 선수단을 파견했다.
수교를 늦게 맺은 이유는 2005년 조약 갱신 후 모나코가 완전히 독립적인 외교권을 갖추게 된 뒤부터 세계 각국과 수교를 맺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나코는 상주 경관이 없고 주프랑스 대사관에서 겸임한다. 작은 나라다보니 외교부도 작아서 수교 업무 처리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10. 오해


  • 모로코와 이름은 비슷해서 사람들이 많이 혼동하지만, 대륙부터 전혀 다른 나라이다. 모로코아프리카 북서쪽 끝에 있으며 모나코와는 국토부터 36만 배 가량 차이 난다. 하지만 둘 다 지중해에 접해 있다는 공통점은 있다.
  • 여담으로 Monaco는 이탈리아어로 모나코 공국이나 독일의 뮌헨을 뜻한다. 정확하게는 모나코 공국은 Principato di Monaco, 뮌헨은 Monaco di Baviera 즉 '바이에른의 모나코'라는 뜻으로 표기한다. 물론 모나코의 어원은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외로운 헤라클레스의 ‘외로운’이란 뜻의 Monoecus에서 온 것이고, 뮌헨의 어원은 '수도자들'인 Mönchen에서 온거라 실상 매우 다르다.
  • 이 나라의 세습 통치자의 호칭을 영어로 Prince라고 하는데, 이것을 모나코 왕자라고 오역한 것을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왕자는 왕의 아들인데, 모나코의 통치자는 왕의 아들이 아니라 엄연한 군주다. 모나코 공(公)이 정확한 표현이고, 국왕이라고 번역해도 그럭저럭 무난하다.[38] 이런 수난은 같은 처지인 리히텐슈타인의 군주도 당한다. 다만 언론 노출도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11. 창작물에서


  • 모파상의 단편 소설 '행복한 사형수'의 무대로 나온다. 나라가 작고 인구수가 적은 국가에서 벌어지는 사형수 처리문제를 우스꽝스럽게 담고 있다.
  • 순정만화에서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동화속의 백마탄 왕자님이 사는 동네로 등장하곤 한다.
  • GOSICK의 배경이 되는 나라인 '소뷔르 왕국'은 위치로 볼때 모나코를 모델로 한 가상 국가로 추측되고 있다.
  • KARA The Animation구하라가 활약하는 공국이 모나코 공국을 모델로 삼은 가상국가로 추정되는데 모나코 공국의 경찰로고에 약간의 변형을 한 로고가 그 증거다.

12. 기타


세계에서 제일 인구 대비 경찰이 많은 나라다. 2011년 기준 인구 36,371명 중 519명이 경찰(인구 70명당 경찰 1명.) 군대도 있긴 있는데, 겨우 255명이라 장교프랑스에서 빌려온다.[39] 군인의 역할도 모나코 왕의 개인경호와 소방서와 세관경비 의장대를 겸하므로 실질적인 방위군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
이스라엘 바깥에서는 유대인 인구 비중이 제일 높은 나라이다.[40] 인구통계에 따르면 2.9%의 인구가 유대교를 믿는단다. 모나코에 유대인이 많은 이유를 꼽으면, 일단 모나코가 모든 면에서 많이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가 현재 유럽에서 유대인 인구가 최대 5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 정도로 많은 나라라서 유대인이 많다는 특징이 모나코에도 영향을 끼쳤고, 모나코가 세계의 백만, 억만장자들이 많이 투자하는 나라라서 부자인 사람이 많은 유대인이 많이 모나코에 투자하고 이주했기 때문이다.
미국 래퍼 50cent window shopper 뮤직비디오는 여기서 찍었다.

[1] 인도네시아 국기와 배색이 같으나 비율이 다르다. 모나코는 3:4 , 인도네시아는 2:3 [2] 강남구 대치2동(2.00km²), 고양시 덕양구 행신3동(1.94km²),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1.94㎢)과 비슷한 넓이이고,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와 면적의 절반 보다 작은 크기이며, 국립대전현충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치이다.[3]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1동, 주엽1동과 비슷한 인구다.[4] 헌법에 규정된 공용어는 프랑스어뿐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북부 이탈리아 방언인 모나코어, 이탈리아어, 오크어도 많이 통용된다.[5] UN 기준 1인당 GDP 1위다. IMF나 세계은행의 경우 목록에서 제외했다.[6] 적색 원 안에 그려진 지역이다.[7] 출처로 가서 다운 받아보면 굉장히 큰 크기다. 바탕화면 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8] 잘 보면 여기에 프랑스 국경 내의 건물들도 있다. 그만큼 프랑스와의 밀접도가 높다.[9]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바티칸 시국이다.[10] 교황청 (외교적으로는 교황청이란 표현이 바티칸보다 더 적합하다. eg.주한교황청대사관)은 유엔 정식회원국이 아닌 옵저버 회원국가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처럼 유엔에 대표를 파견할 수 있으나 표결에 참가하지 못한다. 다만 옵저버 국가도 유엔이 인정한 합법정부는 맞다.[11] 모나코 인구밀도대로 한국 국토 면적에 적용하면 무려 인구가 16억명 이상, 즉 세계 최대 인구 국가가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모나코 국적만 얻고 모나코에 안 사는 이들이 많아서 저 인구에는 거품이 좀 있다.[12] 가령 마카오는 아시아의 모나코, 모나코는 유럽의 라스베이거스 라던지.. 그래도 라스베이거스가 대규모 도박으로 먼저 유명해진 덕인지 라스베이거스를 미국의 모나코나 마카오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13] 중심도시가 '''니스'''인 바로 그 동네이다.[14] 제1차 세계대전 즈음에 모나코 공의 계승권 문제가 있었는데, 원래의 계승자가 프랑스의 원수인 독일인이었다는 이유로 '''사생아를 후계자로 삼으라고 압력을 넣은 적'''이 있다.[15] 다수당의 당수는 국회의장이 된다.[16] 숙박업과 요식업, 엔터테인먼트, 도박업등을 운영하는 모나코에서 가장 큰 회사이다. 2012년 기준 4,436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17] 멘토네와 로카부르나. 고작 2개 도시라고는 하지만 '''이 2개 도시가 모나코 면적의 95%를 차지했다.'''[18] 우라흐 공 빌헬름 카를. 1918년 한때 리투아니아 국왕으로 추대되기도 했다.[19] 모나코의 계승자에게 주어지는 칭호로 영국의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20] 남편은 베르사이유의 장미로 유명한 폴리냑 백작부인의 후손이다. 하지만 결국 이혼했다. [21] 다만 카롤린 공주의 장녀 샤를로트 카시라기는 동양인이 봐도 예쁘다는 평이 많다. 한국에서도 은근히 인지도가 있을 정도. 샤를로트 카시라기보다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스테파니 공주의 장녀 폴린 뒤쿠르에도 동양인이 봐도 예쁘다는 평은 있다.[22] 이혼하여 전남편과 함께 사는 아들이 2명 있는 토고인 니콜 코스테가 낳은 에릭 알렉산드르 스테판 코스테.[23] 미국인 타마라 로톨로가 낳은 자스민 그레이스.[24] 초기에는 워스트 드레서였다. 수영선수 출신+네덜란드 혈통답게 큰 골격과 넓은 어깨에 대한 컴플렉스로 자꾸 감추려는 패션을 고수했었다고. 이에 아르마니가 아예 작정하고 과감하게 어깨선을 드러내는 패션으로 일국의 왕비다운 위엄과 고급스러움, 지적인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개조시켰다. 패션의 철칙 중 하나가 모순같이 들리지만 하나는 단점을 커버하기고 다른 하나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기다. 최악의 패션법도 마찬가지로 단점을 부각시키기와 단점을 너무 의식해서 감추려하기다. 이건 결국 타고난 감 아니면 경험으로 어떤 것을 고를지 선택해야 하는 문제.[25] 샤를린 공비가 아버지뻘 되는 남자를 통해 팔자 고친 케이스라 보기 힘들다. 샤를린 공비 집안 자체가 남아공 갑부이자 유럽 상류층 사교계에 진출한 명문가이다.[26] 여담이지만 이 임신 소식이 곧 이혼을 뜻하는 것 아니겠냐는 카더라가 있다. 결혼할 때부터 5년 내로 공위를 계승할 적법한 자식을 낳으면 이혼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샤를린이 결혼했다는 카더라가 돌았기 때문. 그러나 루머에 가깝다. 그리고 정말 이혼할 경우, 친권과 양육권 모두 모나코 공가에 귀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샤를린 공비는 갓난아이와 생이별하게 될 것이기 때문.[27] 그레이스 공비는 이 결혼을 엄청 반대했었다.[28] 실제로 스테파노 카시라기는 카롤린 공주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자였으며, 이 당시 카롤린 공주의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 그 자체였다.[29] 아이러니한 게, 엄연한 군주국인 모나코 왕실보다 없어진 왕실인 하노버 왕실 몸값이 더 높아서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과의 결혼으로 유럽대륙 정식 왕족 반열로 대우받고 있다. 그렇기에 카롤린 공주로선 굳이 이혼을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30] 레니에 3세와 그레이스 공비는 하도 망나니같이 놀아제끼는 스테파니 공주를 'Wilde Child'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픈 레니에 3세를 곁에서 가장 정성스레 보살펴준 효녀의 면모도 있었다. 근데 정작 왕위는 아들 알베르 2세가 받았고, 스테파니 공주는 가장 적은 재산을 물려받았다.[31] 정작 본인 명의로 발매한 앨범은 혹평받고 망했다. 그나마 잘 알려진 건 마이클 잭슨의 노래인 In the Closet에서 Mystery Girl 명의로 나레이션 한 것 정도. 음색은 꽤 괜찮다.[32] 첫 남편과는 애 둘을 먼저 낳고 결혼했다. 허나 첫 남편의 외도로 초고속으로 이혼한 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서커스단장과 동거하다 헤어지고 레니에 3세의 시종과 사랑이 빠지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시끄러운 사고들을 많이 일으켰었다. 임신중독증으로 졸도하거나 병원에도 자주 실려갔던 적도 있었다.[33] 카더라일 가능성도 있으나 공식 자리에서 억지로 미소짓는 듯한 샤를린 공비의 표정을 보면...[34] 안도라, 리히텐슈타인, 산마리노같은 다른 유럽 내 작은 공국이나 심지어 덴마크페로 제도 같은 섬조차도 UEFA 및 피파 가입국이다.[35]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2020년에는 취소되었다.[36] 북한과는 외교 관계가 아예 없다.[37] 현재 대한민국과 수교를 맺지 않은 나라는 시리아, 쿠바, 코소보 이렇게 3개뿐이다. 대한민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북한대만, 서사하라, 팔레스타인 등은 제외했다.[38] 사실 이라는 단어도 군주가 아닌 작위로서의 왕이 존재하므로 군주에 대한 호칭은 번역하기 복잡하다.[39] 세계 최소 군대는 앤티가 바부다의 245명.[40] 통계상으로 이스라엘 다음으로 유대인 비중이 높은 나라는 팔레스타인이지만, 이건 유대인 정착촌 때문에 그런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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