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역사

 



'''닌텐도 하드웨어의 진화 과정'''
[펼치기 · 접기]
[image]
[image]
[image]
'''가정용 콘솔'''
'''휴대용 콘솔'''
'''콘솔 컨트롤러'''[26]

1. 개요
2. 화투패 회사의 변화 과정(1889년 ~ 1970년대)
3. 퍼스트파티와 서드파티가 공생한 전성기(1970년대 ~ 1996년)
4. 서드파티의 이탈과 암흑기(1996년 ~ 2005년)
5. 라이트 유저를 공략한 중흥기(2005년 ~ 2010년)
6. 다시 찾아온 암흑기(2010년 ~ 2014년)
7. 이전과는 달라진 경영방침 (2014년)
8. 신세대 사업 전개 시작, 모바일로의 발걸음(2015년)
8.1. 모바일 시장 진출(2016년)
9. 닌텐도 스위치로 재도약(2017년~ )
10. 외부 링크


1. 개요


닌텐도의 역사를 정리한 문서.

2. 화투패 회사의 변화 과정(1889년 ~ 1970년대)


[image]
1889년 9월 23일,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内房治郎, 1859~1940)에 의해 화투를 제조하는 개인 상점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임천당 골패)로 창업했다.[1] 이 시기의 로고는 '''동그라미 안에 福자.''' 닌텐도 곳파이에서는 화투를 만들었을 때에 손맛이 들어 치는 재미가 들게 끔 바닥에 내려칠 때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화투의 앞, 뒷면 사이에 석회가루를 넣었다. 열심히 화투를 치다보면 석회가루가 터져서 화투를 다시 사야했기에 닌텐도에서는 누구나 손쉽게 화투를 사도록 담배 가게를 유통점으로 개척했다. 이 화투는 현재도 판매하고 있고, 이 당시에 사용하던 가게는 현재도 연구소로 쓰고 있다고 한다. 닌텐도(任天堂)라는 이름이 실제로 어떤 뜻으로 작명됐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일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라는 사훈이 있는 걸 봐서는 그런 뜻이 아닌가 추측을 하게 된다. 근데 지금 닌텐도의 행보를 보면, 임의로 즐길 수 있는 게임기의 천당이라는 뜻이 일지도 모른다.[2]
1929년에 데릴사위 야마우치 세키료(山内積良)가 2대 사장이 되어 1947년에는 '주식회사 마루후쿠'[3]로 바꾸었다. 그러다가 1949년, 세키료가 죽자 손자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뒤를 이어 마루후쿠의 3대 사장이 됐다. 원래는 데릴사위인 그의 아버지가 이어야 하지만 실종(잠적)[4]으로 같은 해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중퇴하고 22세의 나이에 뒤를 이었다. 1950년에는 '닌텐도카루타(주)'로, 1951년에는 '닌텐도곳파이(주)'[5]로 각각 사명을 바꾼 뒤 세계 가장 처음으로 플라스틱 재질 트럼프 카드를 생산해(1953년) 히트를 쳤고, 디즈니 캐릭터들을 인쇄한 디즈니 트럼프(1959년)로 다시 한번 대히트, 일본 최대의 카드생산회사가 된 동시에 세계 최대의 카드 생산회사를 목표로 삼았다.[6]
그러나 야마우치가 견학을 간 세계 최대의 카드 제조회사인 미국의 USPC[7]가 생각보다 초라한 조그만한 회사임에 충격을 먹었고, 카드를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고 느낀 이후 이것저것 사업을 벌이게 된다. 택시라든가, 러브 호텔이라든가, 유모차라든가, 디즈니 캐릭터 후리카케라던가, 인스턴트 라이스라든가. 닌텐도가 실패한 여러가지 사업 아이템 인스턴트 라이스의 경우, 오늘날의 '햇반'과 달리 컵 야키소바처럼 온수를 부었다 따라내는 방식이다. 그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정작 중요한 맛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실패. 야마우치도 시식해보고 “먹을 게 못된다”라고 혹평했다. 이 모든 사업이 전부 실패해서 닌텐도는 도산 위기에 처했다.
결국 야마우치 사장은 1963년에 회사명을 마지막으로 현재의 이름인 '주식회사 닌텐도'로 바꾼 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느낌에서 아이들의 놀이기구를 만들어 보자."라고 결심, 아날로그 장난감들로 원펀치 투펀치 잽을 날리며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공장 설비 유지보수 엔지니어였던 요코이 군페이를 중심으로 1966년에 만능팔인 「울트라 핸드」를 개발했고, 야구공을 칠 수 있도록 던져주는 야구공 피칭 머신인 「울트라 머신」, 잠수함의 잠망경을 닮은 「울트라 스코프」 등 일련의 울트라 시리즈를 발표했다. 울트라 시리즈가 히트하자 닌텐도는 태양전지와 반도체 기업이던 일본 샤프의 우에무라 마사유키를 영입해 장난감용 레이저 광선총을 개발했다. 특히 닌텐도에서는 기발하게도 오일 쇼크로 문닫은 볼링장들을 인수해 광선총용 실내 사격장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한편 장난감 사업의 일환으로 1968년에 N&B Block 이라는 레고 짝퉁을 만든 흑역사도 있다. 심지어 판촉광고에 레고블럭과 호환된다는 간 큰 홍보문구를 내세웠다가 결국 레고사로부터 소송을 당했으나 승소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판매를 중단했다고 한다. 닌텐도 위키아의 관련문서

3. 퍼스트파티와 서드파티가 공생한 전성기(1970년대 ~ 1996년)


그래도 이걸로는 아직 많이 부족했고, 업계에서 버티고 있는 대기업들을 이길 수단을 찾던 닌텐도에서 결정한 것은 당시로서는 첨단 산업이었던 전자 완구, 즉 게임기였다.
게임기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닌텐도에서는 1977년에 요코이 군페이를 중심으로 개발정보부를 신설했다. 요코이 군페이는 샤프와 협력하여 닌텐도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 & 워치를 출시해 일본 내 흥행에 성공했고, '레이더 스코프'라는 제목의 아케이드 게임을 만들어 역시 인기를 끌었다. 이때, 오일 쇼크로 인해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던 시기에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막 졸업한 젊은 디자이너가 '''아버지빨로 낙하산으로 꽂혔으니''' 그가 바로 '''미야모토 시게루'''였다.
1980년, 닌텐도는 해외 사업에도 자신감을 갖고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의 사위인 아라카와 미노루를 초대 사장으로 첫 해외 지사인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를 설립, 미국에 레이더 스코프 게임기를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인기를 끄는데 완전히 실패하여 악성 재고만 쌓여갔고, 창고비용 조차 감당하지 못해서 설립한 지 몇 달도 안돼 '''야반도주'''까지 계획할 정도로 나락에 빠졌다(...). 아라카와의 SOS를 접수한 미야모토 시게루는 당시 개발이 끝났으나 라이센스 획득 문제로 인해 아직 출시하지 못하고 있던 뽀빠이 아케이드를 약간 수정한 게임을 긴급히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로 보냈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동키콩'''이다. 아라카와와 그의 직원들은 밤새도록 레이더 스코프의 기판을 동키콩 기판으로 교체하고 새로운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이후 시험 삼아 근처 바에 설치한 것이 엄청난 인기를 끌어 미국 전역에서 주문이 폭주했고, 재고를 모조리 털어낸 것은 물론, 이후 몇 달만에 6만대를 팔아치우며 대박을 쳤다.[8]
이 과정에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 본사는 계속 월세를 미납하고 있었는데 이에 분노한 건물주 마리오 시갈리가 찾아와서 항의했다. 그런데 닌텐도 직원들은 자신들을 갈구는 이 건물주 아재에게서 엄청난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리는데 그게 바로 이 회사 최고의 간판인 '''슈퍼 마리오 시리즈'''였다. 그래서 동키콩에 등장하는 악당 노동자의 외모를 마리오 시갈리와 최대한 비슷하게 바꿔버리고 이름도 아예 대놓고 '''마리오'''라고 지어버렸다. 그리고 이 마리오는 닌텐도에서 마치 데이터 이스트카르노브를 대하듯 자신들이 개발하는 게임에 여기저기 마구 투입시켰다. 처음에는 자신을 갈구는 건물주가 영 좋지 않아서 만들었지만 점차 이 '마리오'라는 캐릭터에게 정이 들었고 결국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슈퍼 마리오 시리즈라는 게임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동키콩의 활약으로 단 2년만에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는 창고비용을 걱정하던 처지에서 연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수백 평의 HQ 건물을 보유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1983년, 미국의 메이저 영화 배급사 유니버설 픽처스동키콩에 대해 킹콩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걸고는 오히려 닌텐도에게 180만 달러(인플레이션 감안 현재 가치 4677만 달러)를 갖다 바치고 자폭하면서(...) 닌텐도의 사명이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세계에 알려지며, 국제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그 해 말, 북미 게임업계에서 발생한 아타리 쇼크 사태를 시작으로 가정용 게임기 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 전체가 큰 손실을 입은 상황에서 닌텐도에서는 게임에 필요한 부분 밖의 기능은 모두 없애서 성능을 극대화시키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중시한, 그 유명한 '''패미컴'''을 발매하고는 당시에 아케이드 시장을 이끌어나가고 있던 몇몇 회사를 세컨드 파티로 영입했다. 또한 닌텐도에서는 먼저 소프트를 테스트해서 일정 이상의 퀄리티인 게임만 닌텐도 라이선스를 주는 방식(서드파티 제도)을 도입한 등 전체적인 게임의 퀄리티를 높여서 비디오 게임 산업과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다시 살려내었다. 즉, 아타리 쇼크로 거의 사장된 가정용 게임기 업계는 충분한 관리만 따르면 명품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그리고 패미컴의 북미/유럽판인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즉, '''NES'''를 출시함으로써 닌텐도는 아타리 쇼크의 폐허 위에서 솟아올라 세계 게임 산업의 왕좌에 오르게 되었다. 덕분에 서구권에서는 닌텐도를 '''비디오 게임 산업을 살려낸 구세주'''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패미컴 시절에는 닌텐도라는 명사가 게임기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쓰였다고 하니, 그 당시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mp3 플레이어를 브랜드 불문하고 '''아이팟'''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한국에서 빵 사이에 마시멜로를 넣고 초콜렛으로 코팅한 과자를 '''초코파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이후에 발매된 슈퍼 패미컴 역시 패미컴의 뒤를 이어 일본 양대 RPG(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전부 닌텐도로 몰림으로써 일본에서 경쟁한 플랫폼인 PC 엔진메가 드라이브를 물리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다만, 패미컴 시절과는 달리 서구권에서는 아케이드 게임의 이식에 충실했고, 서양 게이머들의 입맛에 맞는 액션과 슈팅, 스포츠 장르가 많았던 메가 드라이브가 슈퍼 패미컴보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여담으로, 패미컴과 슈퍼 패미컴이 연이어 히트한 90년대 초반의 닌텐도는 경상이익만 이미 1천억엔을 넘은 회사였는데[9], 이건 당시 삼성, LG(당시 금성), 대우, 현대 등등의 한국 10대 그룹 경상이익 총합을 다 합쳐도 닌텐도에 못 미쳤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사원 700여명 남짓의 '작은' 기업에서 애들 장난감이라 생각하던 게임기 하나로 이정도의 결과를 내놓자 새삼 거대한 일본의 경제력과 닌텐도라는 회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서[10] 삼성, 현대, 해태 등등에서 게임기 사업에 발을 들인 계기가 된거 같기도 한데[11] 사실 닌텐도라는 회사는 일본내에서도 신기한 대우를 받았다. 단적으로 당시에 비슷한 매출을 기록한 후지쯔만 해도 사원수가 5만여명이었으니. 사원 1인당 경상 이익이 1억엔대인 회사는 당시 잘나가던 일본내에서도 가장 처음이자 거의 유일한 기록이었다고.

4. 서드파티의 이탈과 암흑기(1996년 ~ 2005년)


슈퍼 패미컴의 히트 이후에 발표한 가상현실을 컨셉으로 잡은 휴대용 게임기인 버추얼 보이는 출시한지 1년도 안돼서 실패했고, 슈퍼 갑으로 성장한 닌텐도에서 엄청난 갑질을 시작하자 수많은 서드파티들이 다른 회사로 이전하여 닌텐도 64소니플레이스테이션에게 1위의 자리를 넘겨주었고[12], 결국 게임큐브에 이르러서는 플레이스테이션 2에게 결정타를 맞아 거치형 시장은 간신히 수지타산을 맞추는 수준까지 몰락하고 말았다.
사실 플레이스테이션의 제작회사인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는 원래 닌텐도에 부품을 납품한 일종의 서드파티 회사였다. SCE에서는 닌텐도와 합작해서 슈퍼 패미컴용 CD 드라이브를 개발하려고 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일이 추진되었지만 결국 닌텐도에서 이를 중단했다. 롬 카트리지 시스템이 닌텐도에 더 이익이 있을거라는 계산 밑에서이다. 이 점은 닌텐도 64를 참고하기 바란다. 결국 SCE에서는 만들던 것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제작. 단숨에 게임계를 제압해버렸다. 닌텐도에서는 소니와 CD 게임기 등에 대해 평가절하 했지만 결국 당대의 승자는 소니가 되었다.
하지만 야마우치 사장의 "오락산업은 언제 불황이 될지 모르고 언제 호황이 될지 모른다."라는 말 덕분인지 몰라도 전성기 시절에 모아놓은 자본력으로 적어도 회사가 기울어지진 않았으며, 닌텐도 64로 나온 슈퍼 마리오 64(1996)와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1998)는 3D 게임의 기본이 된 등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다만 이 시기부터는 CD 3D 서드파티 게임이 주류가 되어 퍼스트 파티로서는 닌텐도 브랜드 밖에는 내세울 만한 장점이 점점 약해졌다. 닌텐도 64 이후 닌텐도의 가정용 콘솔의 게임 소프트 중에서 대략 8할 이상이 닌텐도가 개발 및 제작에 참여한 게임인 것을 보아도 당시 닌텐도의 암흑기는 그 영향력이 컸다.
'''다만 휴대용 게임기 산업에서는 게임보이 이후로도 이어서 완벽한 패권자로 군림했다.''' 1989년도에 나오자마자 빅 히트를 친 게임보이는 1996년까지 전세계 4000만대를 팔아치우게 되었고, 90년대 중반, GB의 수명이 다 되어간다고 생각되었을 무렵에 등장한 '''포켓몬스터'''의 신화적인 히트는 휴대용 시장을 다시 한 번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내었다. 휴대용 시장에서 게임보이의 경쟁기종들이 하나같이 경쟁기종으로서의 임팩트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보니, 확실히 휴대게임기 시장에서는 90년대 끝까지 닌텐도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휴대용 시장 자체가 아직 틈새시장에 불과한 시점이었는지라, 회사 전체의 수입은 전성기 때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고, 그나마의 수입도 매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 상황은 NDS의 발매 이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5. 라이트 유저를 공략한 중흥기(2005년 ~ 2010년)


소니에서 PS2의 빅 히트를 발판으로 휴대용 게임시장 역시 넘보기 위해 PSP를 출시하였을 때, 닌텐도에서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같은 시기에 NDS를 출시했다. 그리고 닌텐도의 그 동안의 경험과 역량, 그리고 2002년에 새로 취임한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의 야심찬 계획을 담고 출시된 NDS는 그 동안의 게임기 시장의 주류였던 거치형 콘솔마저도 압도한 히트를 쳐, 휴대용과 거치형을 모두 아우르는 게임업계 전체의 주류시장을 차지하게 되었다.[13]
2004년 말에 출시한 NDS는 듀얼 스크린과 터치 스크린이라는 획기적인 기획 등으로 2005년 쯤에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역대 휴대용 콘솔 1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 히트를 발판으로 하여, 2006년에 닌텐도에서는 마침내 체감형 게임기인 Wii를 출시. 이 역시 총 기기 판매량 1억을 넘는 대박을 치게 되었고, 겜덕후들에게 "닌텐도가 부활했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목을 다시금 받았다. 이후 2006년엔 한국닌텐도도 설립하였고, 한국에서도 오랜 암흑기 끝에 대박을 치게 되었다. 이 시기엔 패미컴과 슈퍼 패미컴의 영광을 사실상 되찾았다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다. 그리고 2010년 5월에는 소니와의 오랜 싸움에서 승리하였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6. 다시 찾아온 암흑기(2010년 ~ 2014년)


DS와 Wii로 인해 한때 7만 가까이 도달했던 닌텐도의 주가는 이후 계속해서 떨어져 2012년 1월 27일 기자회견 당시 9980까지 떨어졌다가 10250으로 회복하는 등 큰 혼란을 보였다.
하지만 단기 수익이 하락한 가장 큰 이유는 외화(달러)로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엔고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120원 하던게 80원 이하로 떨어진 셈. 하지만 일본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1달러당 75엔을 바라보고 있던 2011년 11월, 엔고 현상이 떨어질 날은 머나먼 일인 듯 했다. 하지만 닌텐도에서는 막대한 환차손을 보면서도 가격을 조정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2012년 4월 26일에 2011 회계년도 결산 발표가 났다. 결론은 상장 이후 50년만에 처음 겪어본 적자. 닌텐도는 2011년 회계연도(2011년 4월 ~ 2012년 3월)에 423억엔(약 5909억원)의 순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오로지 엔고에 따른 달러자산 손실 때문일까? 물론 엔고도 영향이 없다고 할수는 없으나, 엔고를 감안하고 보아도 영업적자가 373억2000만엔이다. 매출은 3년 연속 감소에다가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6% 줄어든 6476억엔(약 9조470억원)이다. 엔고와는 무관하진 않으나 대개의 원인은 쉽게 말해 안 팔려서 적자 난 것.(기사)
일본 내 언론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2010년 들어서는 일본내에서 Wii가 플레이스테이션3보다, NDS가 PSP보다 적게 팔리기 시작했다. 3DS 판매가 호조를 보이긴 했지만 소프트 판매량은 미묘한 수준. 물론 세계로 눈을 돌리면, 아직까지는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해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2012년 닌텐도에서는 Wii U를 출시했다. 하지만 출시 직후부터 Wii U의 평은 그리 좋지 못했고, 결국 소매점들이 게임큐브의 재림을 우려했을 정도로 Wii U기대 이하의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경쟁사들과 비교해 킬러타이틀이 적은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할 게 없다는 것을 계속 지적했다. 2013년 초, 닌텐도에서 낸다고 한 작품은 많지만 출시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시기를 서드파티가 감당해 주면 좋겠지만, Wii U의 성능이 차세대기(PS4엑스박스 원)에 비해 좋지 못해 서드파티의 참여가 좋지 못하다.
물론 꼭 그래픽이 좋아야만 좋은 게임인 것은 아니나, 현대의 게임은 대체적으로 좋은 그래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위해서 빠른 연산 속도와 메모리 확보가 필수이다. 이때 성능이 낮은 Wii U로 엇비슷한 퍼포먼스를 보이려면 다른 콘솔에서보다 더욱더 최적화가 잘 이루어져야만 하고 이는 많은 비용으로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저사양 게임을 만들 때에 비용이 덜 드는 이점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최적화를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쓰인 부품들의 세대가 다르다 보니 차세대기에 적용된 고급스러운 효과를 적용하기는 힘겹다.
개발비가 덜 드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픽은 더 안좋고 거기다 판매량마저 시원치 않으니 서드 파티는 점점 닌텐도를 외면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친숙하지 못한 Wii U의 패드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게임 제작사가 적은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었다. 하긴 닌텐도 퍼스트 파티 게임조차도 패드를 잘 활용한 게임이 별로 없으니 서드 파티로서는 더욱 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닌텐도에서 그때까지 하이스펙 타이틀의 개발을 등한시한 것도 발목을 잡고 있다. Wii U가 닌텐도 첫 HD 그래픽을 제공하는 하드웨어로, 당연히 닌텐도에서는 그때까지 HD 그래픽의 게임을 개발한 경험이 없던지라 게임 개발과정에서 많은 난항이 있었고, 출시가 예정돼있던 퍼스트 파티 타이틀의 투입이 대폭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드 파티의 게임이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퍼스트 파티 타이틀까지 발매가 지연되자 Wii의 막바지와 마찬가지로 소프트 부족 현상이 일어났고, 결국 Wii U는 스타트 대쉬에 실패.
하지만, 닌텐도 3DS는 사정이 나쁘지 않은 편으로, 제2의 파판7 사태라고도 불리는 몬스터 헌터 4의 3DS 출시를 전환점으로 많은 킬러 타이틀을 내놓고 있다. 경쟁기인 PS Vita가 힘을 쓰지 못해 DS - PSP 시절 시장을 이등분[14]한 것과 달리 사실상 원탑체제를 유지중이다.[15] 닌텐도의 재정을 흑자로 돌렸을 정도까지는 아닌 듯 하지만. 그리고 처음에는 비난 일색이었던 2DS 역시 막상 출시된 뒤에는 호의적인 평이 많이 늘었다.

7. 이전과는 달라진 경영방침 (2014년)


Wii U의 판매부진 및 여러 악재가 더해지면서 닌텐도에서가 기존의 노선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인가 하는 우려는 계속 되었으며, 결국 2014년 1월에 발표된 2013년 손실이 발표되면서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결국 닌텐도에서는 2014년 1월 30일에 새로운 경영방침을 발표했다. 해당 설명회의 실시간 트윗을 모은 글. 설명회 전문.
새로 발표한 경영방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닌텐도 게임을 다른 플랫폼으로 출시할 일은 여전히 없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정책은 그대로 유지한다.
  • 하드웨어 개발 강화. 이는 계속 이슈가 되었던 닌텐도 플랫폼의 저성능에 대한 자책으로 보인다.
  •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출시할 일은 없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한 서비스는 올해 런칭으로 예정. 이 애플리케이션은 유저-유저 및 유저-닌텐도 사이의 소통을 위한 장이 될 것이라 한다. Mii버스 PC 버전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결국 2016년에 자사 캐릭터를 이용한 스마트폰 증강현실게임의 출시로 이어졌다. 물론 이 게임은 닌텐도에서가 직접 개발,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다.
  • 스마트폰 서비스는 디바이스 베이스가 아닌 ID 베이스로, 휴대기기/플랫폼과 공유. 이는 닌텐도에서가 이상하게 고집을 부려온 디바이스 귀속 방침을 버린다는 의미로도 해석되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 2015년부터 신흥시장 진출. 여기서 신흥시장이란 건 다른 플랫폼을 말하는 게 아니라 게임이 아닌 다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며, 건강과 관련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다음 10년을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예로는 닌텐도 피트니스, 현재 새로 출시한 링 피트 어드벤처 등이 있다. 아래의 자사 캐릭터 IP를 게임 외 분야에도 적극 활용한다는 점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유연한 소프트 가격 도입
  • 자사 캐릭터 IP를 게임 이외의 분야에도 적극 활용 예정[16] - 사실 이전에도 애니메이션 등의 미디어 믹스가 된 전례가 많았다. 그러나 이전까지는 그저 라이센스 정도만 줬지 제작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부터는 회사 차원에서 미디어 믹스 제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출시된 것이 게임 연동 피규어인 아미보. 이 중에선 가장 큰 프로젝트는 테마파크 어트랙션인 슈퍼 닌텐도 월드.
  • Wii U에 버추얼 콘솔로 DS 소프트 출시
2014년 4월 28일5월 2일에 일본 다이아몬드誌에서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이를 재확인시켰다.원문 전편 원문 후편 번역
  • 닌텐도는 시대에 맞추어 유연하게 변신해온 기업이다. 닌텐도를 비디오 게임기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황스러울것.
  • 야마우치 히로시 前 사장이 엔터테인먼트 사업 이외의 영역에 진출하지 말라고 했으나 "엔터테인먼트 = 비디오 게임"으로 생각하진 않았다[17].
  • 특정 타겟을 노리는것이 성공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나, 닌텐도의 개성의 하나는 대상 고객을 과도하게 노리지 않는 것이며, 이렇게 폭 넓은 고객에게 진심으로 접근하는 것을 추구하는 회사는 적기 때문에 닌텐도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단기적으로 보면 확실히 효율이 나쁠지도 모르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닌텐도 DSWii가 태어났다고 생각한다.[18]
  • Wii는 발매 직후부터 단번에 퍼진 느낌이 있기 때문에 오해 받기 쉽지만,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는 모두가 순식간에 퍼지는 것이 아니라, 소문으로 서서히 퍼지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 세상이 생각하는만큼 닌텐도는 스마트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부 성공 경험이 시끄럽게 전달되는 한편(반대로), 그늘에서 몸부림 치고 있으며, 과거부터 다양한 실패도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세상이 요구하는 '똑똑한 성공"을 얻기위한 도움 닫기 기간 인지도 모르겠다.
  • 하드·소프트 일체형 비디오 게임기를 경영의 핵심으로하는 것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2014년 1월 오는 3월 끝나는 2013회계연도에서 당기 순손실 250억엔(약 25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었는데, 미국 시장에서 3년 연속 적자를 낸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닌텐도에서 Wii의 후속작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Wii U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 극심한 부진으로 겨우 500만대가 넘어서는, 당초 계획상 판매 대수였던 900만에 크게 못미치는 판매 대수인데다, 출시 한달만에 300~400만 판매를 넘어선 플레이스테이션 4엑스박스 원 등과 비교되어 더욱 참혹한 결과로 비추어지고 있는 상황.
언론 등에서는 대체로 닌텐도에서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게임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것이 오산이고, 무엇보다 신형 Wii가 스마트폰 게임과는 차별화된 그래픽을 가진 게임을 원하는 유저들을 사로잡기에는 성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닌텐도의 이와타 대표가 "게임기를 수만엔에, 게임 소프트웨어를 수천엔에 파는 전통적 방식이 힘을 잃었다"라는 발언을 하여 닌텐도의 자사 하드웨어 집중 전략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관측을 낳기도 했지만,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을 고수하는 닌텐도가 '젤다'나 '마리오' 같은 자사의 초히트 게임들을 닌텐도의 하드가 아닌 스마트폰용 게임으로 '내던지는' 유래없는 선택을 하는건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결국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로 2014년 1월 20일에 닌텐도 주가가 한때 전 거래일(17일) 대비 19%나 밀리면서 '''1990년대 이후 최대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주가가 큰폭으로 하락하는 건 주식회사라면 흔한 일이지만 일본에서 잃어버린 10년에 허덕였을 때에도,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아랑곳없는 모습을 보인 닌텐도라서 언론의 주목을 모았다. 다만 떨어진 주가는 얼마 안있어 다시 회복세를 보였다.
2014년 2월에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재팬 아시아, 일본 마이크로소프트 지사와 함께 공동으로 자녀 보호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2014년 4월 22일에 닌텐도에서는 대만에서 닌텐도 제품을 취급하던 자회사 닌텐도 유한 회사를 해산하고 대만쪽 직원들은 대부분 해고한 다음 모든 업무를 홍콩 닌텐도로 이관한다고 밝혔다. 닌텐도 유한 회사는 1991년에 설립되어 닌텐도에서 지분 100퍼센트를 보유한 형태로 23년 동안 이어졌으며, 뉴스 등에서는 이 해산을 닌텐도 본사의 적자로 생긴 부진으로 인한 자회사 축소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평소 닌텐도 최고 경영자 등이 공공연하게 '현금을 잔뜩 보유하고 있으므로 구조조정 같은 거 안해도 괜찮다'고 떠들던 닌텐도이지만, 이번 사태로 어디까지나 일본 본사나 적어도 중요 지사 한정인게 되어버렸다. 한편으로는 2014년 1월에 중국 정부에서 상하이 자유무역지구 개방과 함께 14년 동안 금지해온 콘솔 게임 봉인을 해제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중국 대륙쪽에 판매 중심을 옮기기 위한 조치의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하나의 중국을 의식한게 아니냐 하는 것.
2014년 5월 7일에 2013 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실적 발표를 통해 매출 5천717억엔(5조7천490억원), 영업손실 464억엔(4천666억원), 순손실 232억엔(2천333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번 매출은 지난 1월에 발표된 예상 매출 5천900억엔(5조9천330억원)에도 못 미치는 결과다. 닌텐도의 5년 연속 매출 감소와 3년 연속 영업적자에 이와타 사토루 대표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책임을 완수하는 것은 그만두는 게 아니라 사업의 추진력을 회복시켜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것”이라고 답해 연임 의사를 확고히 내비쳤고 새로운 사업 추진력으로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밝히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2014년 10월 29일에 2014년 3분기에 영업순손익을 242억 엔(2,343억원)의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Wii U마리오 카트 8등이 꾸준한 실적을 거두고 3DS에는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for 닌텐도 3DS / Wii U 등의 킬러 타이틀이 많이 나온 덕에 기기견인이 상당히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또한 예상치를 훨신 윗도는 수익이 나온 것은 또 엔저로 인한 환차익으로 재미를 보아서이기 때문이다.
2015년 1월에 발표한 2015년 3월기 제3사분기 결산발표에서는 나쁘지만은 않은 결과를 발표했다.
  • 3DS 총 708만대
  • Wii U 총 303만대
  • 포켓몬스터 오메가루비·알파사파이어 935만장
  •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3DS 619만장
  • 마리오 카트 8 477만장
  •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Wii U 339만장
분기 순이익은 595억 1500 만엔으로 작년 동기 대비 5배에 가깝다. 다만 이건 작년 동기가 워낙 폭망해서 그런거고(...), 전반적으로 볼 땐 나쁘지만은 않은 매출을 올렸으며, 그 전 분기에 이어 '''일단 흑자가 나왔다'''는데 의의가 있다. 일단 닌텐도가 완벽하게 회복했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적어도 심각한 경영난에서는 벗어나는데 성공한 걸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 발표에서 Wii U는 퍼스트/세컨드 파티 게임(또는 서드 파티 독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증명하였으며, 이는 Wii U가 앞으로 출시될 퍼서트/세컨드 파티 게임들에 크게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의미다. 2015년 라인업도 만만치 않은 타이틀이 있고 그 중엔 '''젤다의 전설 신작'''도 포함되어 있지만 퍼스트/세컨드 파티 특성상 제한될 수 밖에 없는 타이틀의 양 때문에 이 소수 기대작들이 얼마나 견인해 줄 지 관건이다.[19]

8. 신세대 사업 전개 시작, 모바일로의 발걸음(2015년)


[image]
2015년 3월 17일 17시경, 일본의 모바일 게임업체인 DeNA와 업무・자본 제휴를 맺는다는 취지의 공동기자발표회를 통해 자사 IP를 스마트 디바이스로 확대해 나갈 것을 발표하였다. 기자회견 전문 번역 이는 이전부터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생각이 없다고 발언해온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결심한 사항으로, 다소 경직된 문화를 가진 닌텐도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한 닌텐도 IP의 게임은 2015년 연내에 선보일 예정으로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다만 UX를 중요시 여기는 닌텐도답게 기존에 나온 게임의 이식작 등은 내놓지 않을 것이며, 철저히 모바일엔 모바일 전용 게임을 내놓을 거란 방침이다.
또한 스마트 디바이스로의 진출과 더불어 이와타 사장은 '코드네임 NX'라는 차기 게임전용 플랫폼을 발표하며 이후로도 콘솔 플랫폼을 소홀히 하진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차기 플랫폼의 정보는 2016년에 발표하고 싶다는 발언을 하며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Wii U가 발매된지 아직 3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 발표가 너무 이르다는 평도 없진 않지만, 게임보이 어드밴스에뮬레이터 문제 등으로 인해 2001년 발매 이후 불과 3년 뒤인 2004년에 닌텐도 DS에게 자리를 내준 것을 생각하면, 닌텐도 측에선 더 이상 Wii U를 끌고 가기엔 어려운 것이라 판단하고 재빨리 9세대로 세대 교체를 하려는 생각을 한 듯하다.
이 발표 후 닌텐도의 주가는 수직상승하여 2011년 6월 이후 약 3년 9개월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닌텐도에서는 2015년 E3때 NX나 스마트폰 게임들에 대해서 발표를 안한다고 선을 그었다. 무엇을 발표할지는 이제 미지수.
한편, 2015년 5월 8일, 닌텐도에서는 2014년 회계연도(2014년 4월 1일~2015년 3월 31일) 실적발표에서 매출액 5497억 8000만 엔, 영업이익이 247억 7000만 엔, 순이익이 418억 4300만 엔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회계연도 연간 기준으로 영업이익을 낸 것은 4년만에 처음으로 전년도에 닌텐도가 영업손실 464억 2500만 엔, 순손실 232억 2200만 엔을 기록하였던 것에서 흑자 전환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매출액은 전년도에 기록한 5717억 2600만엔에서 3.8% 감소하여 2009년에 매출액이 정점을 찍은 이후 6년 연속 감소하며 여전히 매출액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2015년에 모바일 시장 진출 발표 후 닌텐도의 주가는 승승장구 했고, 5월 말에 출시한 스플래툰이 일본 매장 내에서 죄다 매진되어 버릴 정도로 엄청난 판매량을 보이면서 Wii U의 판매량이 약간 감소했다.[20] 특히 스플래툰의 성공은 항상 오래된 IP만 우려먹는다는 비판을 날려버렸고, 개발자로써의 닌텐도의 능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효과를 주었다.
아미보 역시 매우 순조롭게 팔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판매 수량을 못따라가 품절하는 사태가 속속 터지면서 사실상 닌텐도가 다시 옛 위상을 되찾을 것 만 같았다.
'''그러나 2015년에 열린 E3 2015는 다시 한번 닌텐도에서 서드 파티들을 버린 대가가 무엇인지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특히 닌텐도와 Wii U 유저들에겐 앞으로의 타이틀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길 것인지가 큰 과제가 되었다. 심지어 보여줄게 없다면 차라리 E3를 아예 참가하지 않았거나[21], 저번 닌텐도 다이렉트를 하지 않고 그때 발표한 내용들을 이번에 발표하는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평도 있다.
게다가 E3가 끝난지 1달도 채 되지 않아서 7월 13일에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7월 11일 경에 암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미야모토 시게루와 다케다 겐요가 임시로 사장 일을 맡는다고 했다. 현재 NX의 발표와 모바일 시장 진출이 남아있는데, 이와타가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닌텐도의 앞날은 현재 매우 불확실하다.
이와타 사토루 문서에도 있지만, 14일 오전 2시에도 트위터의 #ThankYouIwata 태그는 자꾸만 늘어나고 있었고, 전세계 많은 게이머들과 심지어 다른 경쟁 게임사들의 대표인물들도 애도를 표하였다.
그리고 2015년 8월 27일, 포케토루(pokemon shuffle)이 출시되었고, 2015년 9월 10일에 포켓몬 GO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 두 게임 모두 DeNA와 협력해서 만든 게임들이 아니다.
2015년 9월 16일부터 키미시마 타츠미[22]가 이와타 사토루의 후임으로 닌텐도 사장으로 부임한다.
2015년 10월 29일, 결산설명회를 통해 향후 계획이 더 공개되었다.
  • 아직 발표안한 Wii U와 3DS용 타이틀이 많이 있다. 이는 NX의 발표로 인해 초조해 하는 Wii U 유저를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서드 파티 개발사들의 로컬라이징도 적극 지원할 것이다.
  • 드디어 계정제 시스템이 발표되었다. 이 계정제 이름은 닌텐도 어카운트로, 콘솔-모바일 기기-PC를 아우른다. 클라우드 시스템을 당연히 지원한다.
  • 신규 스마트폰 게임은 'Mii Tomo' 이며, 이듬해 3월 발매로 미루어졌다. 홍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나...
  • NX에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자사 IP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하며 아미보가 그 일환이라고 한다.
  • 설명회 이후 주식시장에선 닌텐도의 주가가 9%, 협력사인 DeNA의 주가가 15% 떨어졌다. 스마트폰의 전개 일정이 미뤄진데다 공개 타이틀인 Mii Tomo의 내용도 기대 이하인 것이 원인이라는 평.
여담으로, 닌텐도의 팬들 사이에서는 '''"닌텐도에서 게임기뿐만 아니라, 스마트폰도 직접 만든다면 어떨까?"'''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실제로 닌텐도에서 출시한 게임보이나, 패미콤 같은 모양을 가진 스마트폰을 직접 만들어 본 컨셉 디자인의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게임기와 스마트폰이 합쳐진 상상도를 보기만 해도 '''"아! 딱 닌텐도에서 만든거 맞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친숙하고 흐뭇하다.# ## ### ####

8.1. 모바일 시장 진출(2016년)


이 해부터 닌텐도가 본격적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에 진출하였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이하 SIE)는 그 이전에도 KNACK과 연동할 수 있는 넥의 퀘스트, 리틀 빅 플래닛 3과 연동할 수 있는 런 색보이 런을 출시하였고 이후 포워드웍스SIE 재팬 스튜디오, 니폰이치 소프트웨어, 스퀘어 에닉스와 공동으로 모바일게임을 제작해 출시할 예정이며 SIE의 형제뻘 되는 애니플렉스에서도 Fate/Grand Order를 출시했고, 그 이후로도 마기아 레코드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외전, 키라라 판타지아를 연이어 출시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엑스박스 시리즈 IP 모바일 게임이 없었을 뿐이었지 마이크로소프트 자체 제작 모바일 게임은 있었다. 이로서 콘솔 3사의 모바일 게임 경쟁 시대의 막이 올랐다.
2016년 3월에 Miitomo가 출시되었다. Mii에게 옷입히고 다른 Mii랑 대화하는 앱인데, 닌텐도 측에서도 애초에 이건 게임보단 SNS라고 했다. 게임으로서의 기능은 별로 없다. 초반에는 닌텐도에서 만들었다는 점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다운받았으나 늦게 나온 SNS라는 한계점 때문에 금방 인기가 사그라들었다.
2016년에 파이어 엠블렘동물의 숲을 모바일 버전으로 내놓을 것이란 발표가 있었고. 각각 파이어 엠블렘 히어로즈, 동물의 숲: 포켓 캠프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2016년 4월 27일에 닌텐도에서 2015년 회계연도(2015년 4월 1일~2016년 3월 31일) 실적발표가 있었는데 매출액은 5044억 5900만엔, 영업이익이 328억 8100만엔, 순이익은 287억 9000만엔이라고 발표했다. 닌텐도가 기록한 2015년 회계연도 매출액 5044억 5900만엔은 2014년 회계연도 닌텐도 매출액 5497억 8000만엔에서 8.2%가 감소하며 무려 7년 연속으로 매출액이 하락했다. 그나마 영업이익은 전년도에 247억 7000만엔이었는데 32.7%가 증가하였고 순이익은 반대로 418억 4300만엔에서 59.2%가 감소했으나 순이익 감소는 닌텐도 스위치의 개발 및 생산 투자의 영향이 있어서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2016년 5월에는 닌텐도는 퍼스트 파티 IP를 이용한 CG 영상 사업에 진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단순히 라이선스를 주는 수준이 아니라 파트너사와 함께 컨텐츠를 자체적으로 제작하겠다고 하며, 파트너사는 세계적으로 규모가 있고 경험도 있는 업체를 모색중이라고 한다.
2016년에 출시 예정이던 NX의 출시일을 2017년으로 연기한다고 했다.
E3 2016에선 2015년보다 더욱 초라한 라인업을 가져왔지만, 드디어 타이틀이 공개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가히 압도적인 인기를 구사하면서 게임 개발사로써의 닌텐도는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2016년 7월에 출시한 포켓몬 GO가 전세계적으로 대인기를 끌다 못해 '''아예 사회적 현상이 되기 시작하면서''' 단 하루만에 주식이 20% 넘게 폭등하며 미국 앱스토어에서는 하루만에 최고 매출 1위로 올랐다. 7월 주가가 두배나 뛰어올라 3만을 찍었지만 8월에는 2만대로 다시 내려온 상황이다. 닌텐도에서 개발한 게임은 아니라서 닌텐도가 모바일 게임도 잘 만든다고 할수는 없지만 닌텐도의 IP가 모바일에서도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6년 9월 7일(현지시각)에 아이폰 7 발표장에 미야모토 시게루가 깜짝 출연하여 마리오 시리즈 첫 모바일 게임인 슈퍼 마리오 런을 발표하였다. iOS 선행 출시라고 했다. 이쪽도 발표 이후 주가가 폭등하였다.
2016년 10월 20일, 드디어 NX가 닌텐도 스위치라는 이름으로 정식 공개되었다. 그리고 이 날을 기점으로 로고 디자인이 회색에서 아타리 스타일(빨간 배경에 흰색 글씨)로 변경되었다. 광고 말미에 타사 휴대폰 광고처럼 해당 로고가 붙는다. 해당 광고가 적용된 첫 게임은 3DS판 마리오 파티 스타 러시.[23]
통칭 닌텐도 3대 게임이라 불리는 마리오,젤다,포켓몬이 각각 눈부신 활약을 한 년도로 마리오,포켓몬은 모바일 게임으로 나와 흥행에 성공하고 젤다는 신작을 발표해 게이머들 사이에서 닌텐도의 명성을 재확인 시켰다.
2018년 4월 27일, Cygames와 협력해 만든 모바일 플랫폼 전용 게임 드라갈리아 로스트를 발표했다. 기존 IP를 모바일 게임으로 이식한 것이 아닌 닌텐도의 오리지널 신작 IP 모바일 게임은 이 게임이 최초.

9. 닌텐도 스위치로 재도약(2017년~ )


이와타 사장 별세 이후 게임 시장에서 존재감이 더욱 희미해져버린 닌텐도는 작정하고 칼을 갈아 거치기와 휴대기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를 내세워 8.5세대 게임기 전쟁의 선구자로 발판을 깔아놓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런칭 타이틀인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대흥행에 성공하면서 '''세상에서 첫 1달간 가장 빨리 팔린 게임기'''의 타이틀을 거머 쥐었다.
스위치의 놀라운 성공으로 Wii U 시절 항상 목말라왔던 서드파티의 관심 또한 크게 늘었다. 젤다 시리즈 이후 마리오 카트 8 디럭스, 첫 공개 이후 점점 반응이 좋아져서 기대작이 된 ARMS, 스플래툰 2등이 지속적인 견인을 이어옴으로써 '''연 생산량을 2배로 올려잡는 흥행'''을 기록했다. 아직 초기이지만, 닌텐도 스위치의 흥행은 미래가 밝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증명하듯이, 2017년 5월 닌텐도의 주가는 2008년, 즉 2차 전성기 이후로 최대치를 갱신했으며 이는 전년 포켓몬 GO 덕분에 오른 수치를 더욱 초과한다.
E3 2017에서 새로운 대형 게임들을 대거 발표하며 성공적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는 IGN 선정 E3 2017 최고의 게임에서 선정 되었으며, 발매 예정 게임중 메트로이드 프라임 4는 메트로이드 프라임 시리즈의 부활을 알리며 두터운 서양 팬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현 상황을 보면 적어도 2018년까지는 순조로울 것으로 보이며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란 평도 받고 있다.
2017년 9월 19일, 크레디트 스위스 증권이 닌텐도의 앞으로의 수익에 대해서 아웃퍼폼, 즉 호조로 계산했으며 앞으로의 목표 주가를 55,000대로 잡았다. 이 수치는 2007년 이후 최고수치. 또한 앞으로의 스위치 5년간 판매량을 1.3억대 가량으로 추측했다.[24] 한마디로 '''제3의 전성기'''를 누리는 중.
2017년 10월 27일, 닌텐도는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를 발매해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에 버금가는 대박을 친다. 반년전에 발매한 브레스 오브 와일드와 비슷한 수준의 엄청난 평가를 받으며, 미국과 유럽에서 주간 가장 빠르게 판매된 타이틀 기록을 따고 10개월 동안 천만 장 이상을 판매했다. 이렇게 한 해에 천만 타이틀을 두 개나 내놓는 충격과 공포의 행보는 이번 세대에 닌텐도가 얼마나 칼을 제대로 갈고 나왔는지 알 수 있게 만들어준다.
닌텐도 삼대장이라고 불리는 마젤포의 정규 시리즈가 오랜만에 전부 발매된 해이기도 하다.[25] 마리오 시리즈는 발매 텀이 들쑥날쑥하고,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2년 단위로 나오고, 포켓몬스터만 거의 1년 단위로 발매되기에 생각보다 겹치는 해가 드문 편이다.
2018년에는 한 해 동안 북미 최다 판매 콘솔에 등극했고, 닌텐도는 미국내 전체 비디오 게임 시장의 연간 수익 중 34%를 차지하면서 게임 퍼블리셔들 중에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12월 7일'''에 출시된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얼티밋의 판매량으로, '''출시 한 주'''도 안 돼 '''북미에서만''' 500여만장을 찍고, 12월 말까지 500여만장을 더 팔아 무서운 속도로 한달만에 천 만 타이틀에 등극, '''같은 해 4월'''에 출시된 갓 오브 워(2018), '''9월에 출시한''' 스파이더맨 PS4를 누르고 2018년 NPD 소프트웨어 판매 순위 5위에 랭크 되었으며, 이는 독점 게임으로서는 2010년 헤일로 리치의 기록을 능가해 비디오 게임 역사상 최다 한 달 판매량을 찍은 것이다.#
2019년 5년, 스위치 일본 내 판매량이 PS4(+Pro)의 판매량을 추월하면서 사실상 일본 내 주력 게임기가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PS4(+Pro)의 누적 판매량은 5년 3개월간 쌓은 것인데 스위치는 발매 2년 2개월만에 추월했다는 점이다. 전세계 판매량도 순조로운 바 PS4 전세계 판매량을 추월할 날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2019년 10월 31일 닌텐도는 상반기(일본 회계연도 기준 2019년 4월~9월) 실적을 공개했다. 이번 상반기에 닌텐도는 매출 4,439억 엔(한화로 약 4조 7,930억 원), 영업이익 942억 엔(한화로 약 1조 171억 원), 당기순이익 620억 엔(한화로 약 6,694억 원)을 기록했다. 작년 대비 영업이익이 53.4% 늘었다. 이 영업이익은 '''2009년 이후 10년만에 최고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이다. 닌텐도는 2019년 1분기에는 스위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자사 예상보다 모두 많이 팔렸고, 2분기에는 자사 및 타사 소프트웨어가 실적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4월부터 9월까지 닌텐도 스위치 소프트웨어 총 판매량은 5,849만 장으로 2018년 동기보다 38.8% 증가했다. 특히 디지털 매출이 2018년 동기보다 83% 늘어난 716억 엔인데 이에 대해 닌텐도는 스위치 게임 디지털 버전 매출과 유료 온라인 서비스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구독자가 모두 점진적으로 늘어난 효과라고 설명했다.
2016년 슈퍼 마리오 런 이후로 진출한 모바일 게임 시장도 매출 효과를 보고 있는데, 진출 이후 2020년 1월 26일까지 약 10억 달러(한화로 약 1조원)의 이익을 냈다고 한다.# 특히 아동층보다는 청소년층 이상의 수요를 노린 파이어 엠블렘 히어로즈가 6억 5600만 달러의 수익을 내서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기록했고, 가장 최근에 나온 마리오 카트 투어는 슈퍼 마리오 런을 제치고 출시 4개월 만에 8600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는 점이 괄목할 만한 점이다. 수익의 약 90%가 일본과 미국에서 나왔다. 게다가 이 수치는 포켓몬 GO와 같은 포켓몬의 모바일 게임은 제외한 수치다. 포켓몬 GO는 2019년 10월 기준 30억 달러(약 3조원)의 수익을 냈으며, 이것까지 포함하면 닌텐도는 더욱 많은 수익을 낸 셈이다.
하지만 닌텐도의 모바일 게임들도 여느 모바일 게임 회사들처럼 캐주얼 게임 위주로 출시하고 있으며, 과금 유도 및 P2W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이는 닌텐도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모바일 게임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AAA 게임 하나를 이식해서 내는 것보다는 과금 요소가 있는 게임들이 압도적으로 이익을 내기 좋은 구조고, 이용자들도 욕하면서 과금하는 판국이라 결국 과금 유도형 캐주얼 게임이 넘쳐나는 것이 모바일 게임 시장의 현 상황이다. 더군다나 닌텐도는 오래전부터 자신들만의 플랫폼을 구축해놓은 상황인데 안 그래도 품질 관리가 잘 안 되는 모바일 게임 플랫폼에서 굳이 AAA 게임을 낼 이유가 없다. 닌텐도 또한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프랜차이즈를 내새운 과금유도형 캐주얼 게임을 주로 내고 AAA 게임들은 닌텐도 스위치를 통해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과 같은 모바일 게임 시장 상황이 닌텐도한테는 호재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초창기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콘솔로 나오던 AAA 게임들이 스마트폰으로 마구 이식되면서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던 닌텐도한테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AAA 게임들은 주로 유료 게임인데다가 불법 복제 문제등도 불거져서 개발비 대비 수익성이 좋지 않았고, 과금 유도형 캐주얼 게임들은 간단한 조작 체계나 간단한 수준의 그래픽으로도 고수익을 내고 모바일 게임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버리면서 대다수의 게임 회사들은 AAA 게임을 모바일 게임으로 내지 않게 되고, AAA 게임을 원하는 게이머들 덕분에 콘솔/PC 게임 시장은 유지되었으며, 닌텐도 3DS 역시 스마트폰 사이에서 생각보다 긴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닌텐도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 진출과 동시에 콘솔과 모바일 게임 시장의 중간을 노린 닌텐도 스위치를 출시했고 이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10. 외부 링크



[1] 2020년 현재 '''131년'''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인 두산도 닌텐도보다 7년 늦게 창업했다.[2] 「닌텐도 이야기」라는 책에서 해당 사훈의 의미로 닌텐도라는 사명이 지어졌다는 점이 나온다. 막상 야마우치 히로시 본인은 "증조부가 붙인 이름이지, 사훈은 아니다. 그런 사훈이 있으면 게임 회사 같은 건 안 한다."라는 듯한 발언을 했다.[3] 상기한 동그라미 안에 福자 마크를 사명으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마루(丸)는 ○ 또는 숫자 0을 뜻하고, 후쿠는 福의 일본어 발음이다.[4] 사실 이건 좋게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는 바람피우고 잠적한 것이다. 어차피 히로시가 대를 이었을 시점에는 사망했지만.[5] 주식회사가 되어서 (주)가 붙은 것 뿐 사실상 창업 당시의 사명으로 환원한 셈이다.[6] 잭커 전격대에 나오는 트럼프들도 닌텐도에서 만들었다.[7] 마술을 하는 사람들이 카드 마술용으로 자주 쓰는 바이시클 카드를 만드는 회사로 유명하다.[8] 이때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가 법무 및 재무담당으로 계약했던 변호사 하워드 링컨은 닌텐도로부터 자산을 보호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마침내 그 듣보잡 회사가 망해서 파산 절차를 의뢰하려고 전화한 것이 아닌가 했다고 한다. 그는 킹콩 저작권 재판에서 승소하는데 도움을 준 이후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부사장으로 선임되었고, 1994년에는 아라카와를 이어 2대 사장에 취임하였다.[9] 1990년 9월 13일의 발표에 따르면 매출 4,400억엔, 경상 이익 1,270억엔[10] 당시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게임기는 완구, 즉, 어린이용 장난감으로 간주되었기에 아동용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회사의 수익이 그 정도라는 사실이 희귀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주력사업군에서 어린이용 장난감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1] 마이크로소프트엑스박스 문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하드웨어 성능 하나만 갖고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게임기 산업이다. 엑스박스가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 제작할 수 있는 개발환경의 조성, 즉,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제작되었기 때문이다.[12] 서드파티 이전의 경우 특히 스퀘어가 소니로 옮겨서 파이널 판타지 7을 플스로 낸게 가장 치명타였다.(나중에 스퀘어와 합쳐지는 에닉스역시 비슷한 시기 신작을 PS로 많이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닌텐도 64의 경우 북미시장에서는 세가 새턴과 엎치락뒤치락(혹은 닌텐도의 근소 우세?)할정도로 선방했다는 점에서 위안점.[13] 플레이스테이션 1과 2와 함께 하드웨어 베스트 셀러 위치를 차지했다.[14] 사실 이등분이라 해 봤자 1:1에는 한참 못 미친다. PSP의 최전성기 당시 게임 판매량이 DS의 30% 정도며(그마저도 대부분 몬헌에 의한 판매량) 전체적으로 기기 판매 수는 DS 2 - PSP 1 정도다. 그나마 PSP가 휴대기 시장에서 닌텐도와 제대로 경쟁한 거의 유일한 기기이기 때문에 나름 선전했다고 평가받는 듯 하다.[15] 특히 PS Vita가 더욱 힘을 못쓰는 북미, 유럽 등 서양에서 더더욱 드러난다. 그나마 일본, 한국 등 아시아에서는 PSP3DS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PS Vita가 어느 정도 힘을 쓰고 있는 편이다. 한국은 막장에 가까웠던 3DS의 서비스도 한몫했다.[16] 여기에는 해외 게이머들 가운데서 닌텐도 레고를 기대하는 반응이 매우 많았다. 그리고 레고 슈퍼 마리오가 나왔다.[17] 엄밀하게 얘기하면 틀리는 말이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비디오 게임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지고 어느새 이것이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대명사처럼 되버려서 그렇지,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은 그 분야가 광범위하다.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같이 모든 이들이 부담없이 즐길수 있는 TV프로들 역시 엔터테인먼트의 한 종류이다.[18] Wii U에서는 역으로 이러한 전략이 발목을 잡아서 폭 넓은 고객을 잡으려다가 그 어느 고객도 잡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19] 대난투는 출시일 직전까지 트위터를 통해 매일 스샷과 함께 정보를 올렸으며, 현재는 스플래툰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이는 출시되는 타이틀 사이의 공백이 길기 때문에 그 공백을 매꿔 기다리는 유저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마케팅 전술이다.[20] 2015년 닌텐도 회계연도 1분기(4월 1일~6월 30일) Wii U 전세계 판매량이 47만대인데, 전년도 같은 분기 판매량이 51만대이다. 하지만 차세대 게임기 NX를 전격적으로 발표하여 정상적이라면 Wii U 판매 감소 현상이 나타나야 한 것을 감안하면 선방한 것.[21] 허나 이건 매우 위험한 의견이다. 게임 콘솔 제작사가 E3에 참가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건 해당 콘솔 소유자는 물론 주주들에게 엄청난 악영항을 주고, 그 여파는 다름아닌 닌텐도 자사에 돌아오게 된다.[22] 전 닌텐도 아메리카 사장[23] 이례적으로 포켓몬스터소드·실드는 광고 말미에 로고를 붙이지 않았다.[24] 동기간동안 NDS 판매량의 1.13배, PS2 판매량의 1.5배 정도. Wii 전체 판매량을 상회하는 수치다.[25] 지금까지 단순 이식작을 제외한 세 시리즈가 동시에 발매된 해는 2002년(슈퍼 마리오 선샤인, 젤다의 전설 바람의 지휘봉, 포켓몬스터 루비·사파이어), 2004년(슈퍼 마리오 64 DS, 젤다의 전설 4개의 검+/젤다의 전설 이상한 모자, 포켓몬스터 파이어레드·리프그린/포켓몬스터 에메랄드), 2006년(뉴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젤다의 전설 황혼의 공주, 포켓몬스터DP 디아루가·펄기아), 2009년(뉴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Wii, 젤다의 전설 대지의 기적, 포켓몬스터 하트골드·소울실버), 2013년(슈퍼 마리오 3D 월드, 젤다의 전설 신들의 트라이포스 2, 포켓몬스터 X·Y), 2019년(슈퍼 마리오 메이커 2,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2019),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