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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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와 다이애나 스펜서의 장남이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마운트배튼 공의 장손으로, 현재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이다. 1982년 6월 21일에 태어나 현재 42세다.
이름은 조지 5세의 3남이자 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작은 아버지인 글로스터 공작 헨리의 장남 윌리엄으로부터 따온 것으로 어머니 다이애나가 지었다. 애칭은 '윌(Wills)'. 정확한 발음으로는 ‘윌스’. 어린시절 영상을 보면 아버지 찰스가 그를 윌스라고 부른다.
2011년 캐서린 미들턴과 결혼했으며, 2013년 첫째 조지 알렉산더 루이 왕자를 낳았고, 2015년 둘째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공주를 낳았다. 2018년 셋째 루이 아서 찰스 왕자를 낳으며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2. 작위
공식적인 칭호는 '케임브리지 공작, 스트래선 백작, 캐릭퍼거스 남작, 가터 훈장의 기사, 시슬 훈장의 기사이신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공자 전하(His Royal Highness Prince William Arthur Philip Louis, Duke of Cambridge, Earl of Strathearn, Baron Carrickfergus, Royal Knight Companion of the Most Noble Order of the Garter, Knight of the Most Ancient and Most Noble Order of the Thistle)'이다.
간단히 줄여서 케임브리지 공작 윌리엄 왕자 전하(His Royal Highness Prince William, Duke of Cambridge)이다. 군 장교 신분으로서는 '''윌리엄 웨일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1]
칭호의 변천사는 다음과 같다
- 웨일스의 윌리엄 공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William of Wales (1982년 6월 21일 ~ 2011년 4월 29일)
- 케임브리지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Cambridge (2011년 4월 29일 ~ 현재)[2]
3. 생애
3.1. 유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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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6월 21일에 런던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와 다이애나 스펜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3] 나이 차이가 13살이나 나는 왕세자 부부가 결혼한 지 1년 만에 태어난 장자이자 차차기 후계자인 왕세손이라 왕실의 기쁨과 국민들의 많은 축복 속에서 태어났다.[4] 특히나 증조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의 기쁨이 대단했다고 한다.
찰스 왕세자도 빨리 궁으로 돌아가 우유를 주고싶어 했을 정도로 처음으로 본 자식에 대한 애정이 컸다. 다이애나 비와 더불어 80년대 영국 왕실의 입지를 한층 더 굳건해 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윌리엄 왕자가 입은 유아복, 신발, 가지고 노는 장난감 등이 날개 돋힌듯 팔렸고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온갖 기념품들도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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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8월 4일,[5] 버킹엄 궁전에서 성공회 유아세례를 받았다.[6] 윌리엄 왕세손의 세례식 영상
1983년, 켄싱턴 궁에서 어머니 다이애나 비, 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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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7개월의 윌리엄 왕세손. 어머니 다이애나 비의 금발과 푸른눈을 닮은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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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오스트레일리아 순방에서 어머니 다이애나 비, 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함께. 다이애나 비는 왕위계승자들은 같은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왕실규율을 어기고 윌리엄을 해외순방에 데리고 다닐 만큼 아들과 떨어져 있기를 싫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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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5월, 생후 11개월의 윌리엄 왕세손. 어머니 다이애나 비, 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함께 뉴질랜드 순방에서. 뉴질랜드 순방 기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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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 아버지 찰스 왕세자의 품에 안겨있는 윌리엄 왕세손. 증조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 이모할머니 마거릿 공주, 할아버지 필립 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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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9월, 갓 태어난 동생 해리 왕자를 보러 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함께 세인트 메리 병원을 방문하는 윌리엄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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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21일, 해리 왕자의 세례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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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큰삼촌 앤드루 왕자와 사라 퍼거슨의 결혼식에 화동으로 참석한 윌리엄 왕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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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회를 방문한 윌리엄 왕세손. 어머니 다이애나 비, 외사촌 피터 필립스, 자라 필립스, 7촌 당숙 프리데릭 공[7] 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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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찰스 왕세자, 어머니 다이애나 비, 동생 해리 왕자와 함께 켄싱턴 궁에서. 단란한 한 때.
아들들이 여느 남자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길 바란 어머니 다이애나는 장남 윌리엄과 차남 해리의 양육을 유모에게 일임하지 않고 가급적 직접 해냈다. 기존 남자 왕족들이 유모들 손에 자랐던 것과는 대비되는 행보를 보인 셈. 여기에는 다이애나 자신의 불우한 성장배경이 큰 원인이 됐다. 다이애나는 백작 가문 딸로의 태어났지만 부모의 불화로 주로 유모들 손에 크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들을 자신이 직접 키울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다이애나의 이런 결정을 많은 영국인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환영했지만 영국 왕실에서는 반대가 컸다.
어쨌든 다이애나는 아들들에게 모유 수유를 하고, 학교도 일반인들이 다니는 학교에 진학하게 했다. 이렇게 다이애나와 그 아들들이 왕족으로서의 특권 의식을 내려 놓고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중은 열렬히 환영했다. 또한 다이애나는 에이즈 치료센터나 노숙자 쉼터에도 아들들을 데려가,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약자들에 대한 배려심을 가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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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어머니 다이애나 비와 함께 웨더비 스쿨에 첫 등교를 하는 윌리엄 왕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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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왕세손은 웨더비 스쿨과 러드그로브 스쿨을 거쳐 왕족, 귀족을 포함한 상류층(upper class) 자제들만 다니는 명문사립학교 이튼 칼리지에 입학했는데, 이는 고든스타운스 스쿨에 재학하며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던 아버지 찰스 왕세자의 뜻이였다.[8]
그러나 화기애애한 것처럼 보인 것과 달리, 왕세자 부부는 이미 신혼 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혼 11년만인 1992년에 이미 별거에 들어가 있었으며, 결국 결혼 15년만인 1996년 8월 28일에 이혼이 성립되면서 왕세자 부부의 결혼생활은 완전히 끝나고 말았다. 이혼할 때 아들들의 양육권을 반씩 나누어 가졌지만, 다이애나는 이혼한지 고작 1년 남짓한 시점인 1997년 8월 31일에 아랍계 거부인 남자친구 도디 알파예드와 함께 파리에서 파파라치에게 쫒기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윌리엄과 해리는 왕실 휴양지인 밸모럴 성에서 아버지 찰스로부터 비보를 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장례식에 참석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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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거행된 왕실장에 참석한 찰스 부자. 특히 평소의 밝은 이미지와 완전히 대비되는 윌리엄의 표정[10] 은 다이애나에게 동정적이었던 영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다이애나비의 사망 당시 윌리엄은 15세, 해리는 12세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불화와 이혼을 겪고 어머니까지 떠나보내야 했던 두 왕자는 이후 수많은 영국인들의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후에 어머니 다이애나 비 사망 20주기(8월 31일)를 앞두고 2017년 7월 22일(현지시간) ITV가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 "어머니가 프랑스 파리에서 걸어왔던 마지막 전화 통화를 짧게 끝냈던 것이 평생의 한"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게 '네가 원하는만큼 말썽을 부리는 건 괜찮지만 걸리지만 마라.'고 하셨다며 장난기 많았던 다이애나 비가 살아있다면, 손자손녀들을 골려먹는 '악동 같은 할머니가 됐을 것'이라고 농담하였다. "나와 해리는 '어머니가 우리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고 바라지 않았던 날이 단 하루도 없다." 하고 말하기도 했다.
3.2. 청년기
3.2.1. 왕족으로서의 의무
해군 장교로 군복무를 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달리 육군을 선택하여 2006년 1월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동년 12월에 육군 중위로 임관하였다.[11] 블루스 앤 로열스 연대에서 중대장으로 복무하다가 2008년 4월부터 각각 2개월씩 공군과 해군으로 전군해 복무한 다음[12][13] 이 2009년 1월부터 공군 복무를 확정하고 공군 대위로 시 킹 탐색구조헬기 조종사로 복무한 바 있다. 2012년 2월부터 1개월동안에는 포클랜드 제도 주둔 부대로 발령나서 근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그냥 폼으로 근무한 게 아니라 실제로 구조 작전에도 여러차례 출동했다고. 2013년에 전역할 수 있었지만 3년 더 복무하겠다고 복무연장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2013년 3월 18일에는 공식 행사에서 여왕을 수행하는 '''여왕 전속 부관'''(aide-de-camp)직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2013년 9월 10일, 공군을 전역하고 예비역이 되었다. 그동안 구조헬기 조종사로 1천 301시간 비행 임무를 수행했으며, 156회의 작전에 참여해 149명을 구조했다.# 원래는 복무연장을 하려 했지만 아들 조지 알렉산더 루이 왕자가 태어난데다, 왕실에서 맡은 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전역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14] 2014년, 왕세손이 구조용 헬리콥터 조종사로 취직해 민간 생활을 시작했다. '왕실 가족은 국민의 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엘리자베스 2세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2013년의 인터뷰 영상.
3.3. 결혼과 가정
윌리엄은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에서 2003년 평민 캐서린 미들턴[15] 을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중간에 한번 깨졌다가 다시 재결합, 교제 7년 만인 2010년 11월 16일에 약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 때 윌리엄이 언론에 결혼을 발표하면서 케이트의 손가락에 끼워준 사파이어 반지는 바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청혼하면서 끼워줬던 약혼반지였다.
2011년 4월 29일에 14년 전 어머니를 떠나 보냈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한 결혼식을 거행했다. 결혼식은 성공회의 혼인예배 형식으로 거행되었고, BBC 등을 통하여 영국과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패션뷰티 채널인 온스타일에서 중계방송하였다. 엘리자베스 2세는 결혼한 맏손자에게 케임브리지 공작, 스트래선 백작, 캐릭퍼거스 남작의 작위를 수여했다. 공군 대위 신분이었기 때문에 결혼 예복으로 공군 예복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예상을 깨고 육군 아이리시 가드 연대의 붉은 예복을 입은 대신 가슴에 공군 헬기 조종사 휘장을 달았다. 아이리시 가드 연대의 명예연대장 칭호를 보유하고 있어서 그랬다고.
영국에서 오랜 만에 열리는 로열웨딩인데다, 그 결혼의 신랑이 다이애나 스펜서의 장남이기 때문에 그의 결혼식 일정이 정해지자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결혼식이 열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결혼식은 오랫동안 화제가 되진 못했다.[16] 참고로 이날 국가 God save the Queen 을 제창할때 한 의장대원이 팡파르를 삑사리냈다고 한다
2011년 말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비가 땅콩 알레르기가 없음에도 땅콩 크림을 거부해 임신 의혹이 있었는데[17] 이건 그냥 루머로 끝났지만 마침내 2012년 12월 4일, 캐서린 왕세손비가 첫 아이를 임신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사칭하며 담당 간호사에게 임신에 대한 정보를 캐내 방송해 버리자, 그 간호사가 '''자살'''해 버리는 일이 생겨서 왕세손 부부가 맘놓고 기뻐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18]
2013년 7월 12일을 전후해 왕세손비가 왕위 계승 서열 3위가 될 왕자를 출산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왕자의 출산 및 육아 방식을 놓고 왕실과의 마찰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왕자의 출산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예정일인 12일을 한참이나 넘기고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7월 22일 이른 오전에 윌리엄 왕세손이 태어났던 세인트 메리 병원의 산부인과 특별 병동에 입원한 캐서린이 10시간의 산통 끝에 왕위 계승 서열 3위가 될 왕자를 순산했다. 왕자의 이름은 조지 알렉산더 루이로 생후 이틀 만에 정해졌는데, 부친인 윌리엄이 생후 1주일, 조부인 찰스가 생후 1달 만에 이름을 지은 걸 고려하면 이례적인 빠른 경우에 해당한다. 왕자의 정식 호칭은 '케임브리지의 공자 조지 전하(His Royal Highness Prince George of Cambridge)'이다.
그리고 1년 만인 2014년 7월 말부터 "왕세손 부부가 공주를 임신했다”라는 소식이 뜨기 시작했다. 최초로 저 내용의 기사를 낸 곳이 타블로이드지였고 소스도 측근이라고 나와서 신빙성이 낮았다. 그러나 2014년 9월 초에 왕실과 CNN에서 왕세손비가 임신 초기이며 입덧이 심해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켄싱턴 궁에서 요양 중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예상대로 2015년 5월 2일에 딸을 순산했으며 장소는 아버지 윌리엄 왕세손과 오빠 조지 왕자가 태어난 세인트 메리 병원. 이름은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Charlotte Elizabeth Diana)로 5월 4일 정해졌다.
둘째인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가 태어난지 2년이 경과한 2017년 9월 4일, 미들턴비가 셋째를 임신하였다는 영국 왕실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다. 셋째아이의 성별이 남성이어도, 2015년 개정된 왕위계승법에 따라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는 계승순위에서 밀리지 않고 4순위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2018년 4월 23일 셋째 루이 아서 찰스 왕자가 태어났다.
3.4. 결혼 이후
할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이 윌리엄이 앉아서 조지와 놀고 있을 때 "일어나라"고 카메라 앞에서 혼낸 적이 있다.
자녀교육을 위해서 런던으로 이주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19년 4월, 첨리 후작부인 로즈(Rose, The Marchioness of Cholmondeley)와 불륜루머가 보도되었다. 로즈는 케이트 미들턴의 친구이기도 하다. 왕실은 공식적인 해명을 거부하였다.#[A]
그러나 사진이나 동영상 등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결국 불륜 루머는 찌라시로 판명 났다. 사실 더썬에서는 케이트 미들턴이 첨리 후작부인과 크게 싸우고 절교했는데 윌리엄 왕자가 이를 중재하려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찌라시 기사를 냈다. 그런데 이것도 더썬의 추측인데다 이 기사가 트위터에서 돌아다니면서 갑자기 윌리엄이 바람피운 거 아니냐는 식으로 변질되었고 이러한 루머가 진짜 기사인것처럼 돌아다니고 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 왕실에서도 4월 9일 반박 입장을 냈다. #
향후 10년간 5천만 파운드(약 750억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글로벌 환경 프라이즈(상)인 '어스샷'(Earthshot)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4. 왕위 계승 문제
아버지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순위 2위이다. 자칫하면 장수왕의 아들 조다가 먼저 죽어 손자인 문자명왕이 왕위를 계승한 케이스처럼 될 가능성도 있다. 찰스가 너무 고령인데다 불륜으로 인기도 안 좋기 때문에 영국인들은 차기 왕은 그냥 아버지는 패스하고 아들이 바로 즉위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하지만 영국의 왕위계승법상으로는 왕세자인 찰스를 건너뛰어 윌리엄이 바로 즉위할 수는 없다.
윌리엄이 즉위하려면 형식상으로라도 찰스가 잠시 즉위했다가 퇴위하는 형식이 필요하며, 찰스 본인은 '''영국 역사상 최고령 왕세자'''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왕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내비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서 윌리엄이 조기 즉위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해도 무방. 하지만 잔머리를 굴려서 서류상으로만 찰스가 아주 잠깐 동안 왕으로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실제로는 찰스를 건너뛰고 엘리자베스 2세가 윌리엄에게 직접 양위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러면 찰스를 철저하게 바보 취급하는 것으로 차라리 찰스가 왕위에서 배제되는 게 낫긴 하다. 그런데 찰스가 잠깐 재위하거나 아예 재위하지 않는다고 해도 엘리자베스 2세가 100세 넘게 장수할 가능성이 있기에[19] 윌리엄은 대략 40대 중후반에 왕위를 물려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의 즉위명은 윌리엄 5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013년 10월 타임지에는 '오히려 찰스 왕세자가 왕위 계승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찰스 왕세자가 환경 및 문화유산 보전 운동과 자선 사업 등을 매우 즐겁게 하고 있는데 왕으로 즉위하면 그걸 다 중단해야 하기 때문.# 물론 왕실의 공식 입장은 이를 부정하고 있는 중이다.
훗날 할머니가 타계한 후 아버지 찰스가 왕위에 오른다면 찰스가 90대 이상 장수할 시 윌리엄은 60세 경에 왕위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아니면 찰스가 얼마 재위하지 않고 생전 퇴위할 시에는 생각보다 빨리 왕이 될 수도 있다.
5. 가족관계
5.1. 조상
5.2. 자녀
6. 사진
7. 대중매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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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스톰트루퍼로 등장하였다. ... 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그 후 주연인 보예가의 인터뷰에서 윌리엄과 해리의 출연 분량은 통편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카메오 출연은 본인들이 원해서 했던 일이니 만큼, 아마도 더 높은 곳에서 압력이 내려온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8. 기타
- 윌리엄 왕세손은 아스톤 빌라의 열렬한 팬이다. 이유는 주변사람들이 다 강팀을 응원했지만, 그게 재미없다고 느껴 적당한 중상위권 팀을 골랐다고 한다.[26] 아스톤 빌라 홈경기 때 중계화면에 윌리엄 왕세손이 가족들을 데리고 관전하러 온 것을 잡아주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스톤 빌라 구단은 윌리엄 왕세손의 첫 아이가 태어나자 이를 축하하며 선물로 HRH 이니셜이 새겨진 등번호 1번 홈 유니폼을 보냈다. 2015년 5월에 치뤄진 FA컵 결승에서 아스톤 빌라와 아스날이 맞붙었는데 아스날은 빌라를 대파했고 관전하던 윌리엄의 표정은 말 그대로 썩어들어갔다.[27] 또한 2006년부터 잉글랜드축구협회 즉, FA의 회장이다.
- 럭비의 열성 팬인자, 잉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럭비 풋볼 유니온)의 명예 총재인 해리 왕자와 달리, 윌리엄 왕자는 웨일스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1 아버지인 찰스 왕세자 역시 2019년 일본에서 개최한 럭비 월드컵 기간 동안에 일본까지 방문하여 웨일스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도 하였다. #2 참고로, 영국 왕실의 앤 공주(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는 30년 넘도록 스코틀랜드 럭비 유니온 대표팀을 서포트하는 후원자이기도 하다. 또한 앤 공주는 매년 머리필드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Six Nations 챔피언십 대회의 스코틀랜드 경기에 지속적으로 참관하고 있기도 하다.#3
- 1991년 골프클럽에 머리를 맞아 수술을 했다.
- 2008년에 가터 기사단에 가입, 현재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앤드류 왕자), 막내 작은 아버지(에드워드 왕자)와 함께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다.
- 이미 사진을 통해 접했겠지만 엄청난 역변을 겪은 사례로 손꼽을만하다. 어릴 적에는 그야말로 동화 속의 왕자님 이미지였다가 성인이 되면서 훈남으로 진화했지만 불과 10년 남짓 지나면서 노안이 되어버려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 배우 김지석이 영국에서 중고등학교 다닐때 지역 수영대회에 나가려고 수영장에서 자주 연습했는데 그때마다 옆 레인 선수가 윌리엄 왕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친해져서 같이 밥도 먹고 놀러도 다녔다고 한다.
- 나이가 들면서 미남과는 멀어졌지만 10대 시절엔 꽤 미소년으로, 전세계 소녀들의 왕자님이었고[29] 인기도 좋았다. 실존하는 미소년 왕자였다보니 순정만화에 단골로 등장했는데, 90년대 한승원 작가의 국내 순정만화 빅토리 비키의 왕자 존은 윌리엄을 모델로 한 캐릭터이다. 심지어 이 만화 속 주인공의 성도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의 성을 그대로 딴 '스펜서'다.
- 본인도 191cm의 장신이고 어머니인 다이애나 역시 178cm의 장신인데 아내인 캐서린 역시 175cm의 장신이다.[30]
- 왼손잡이이다. 다만 그림을 그릴 때 오른손도 종종 사용하는것을 보면, 양손을 자유롭게 쓰는 듯 하다.
- 온갖 명품 시계를 수집하는 동생 해리 왕자와 달리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 미드사이즈 쿼츠 모델 시계만을 착용하는데 모친인 다이애나가 생전 마지막 생일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2020년에도 여전히 착용하고 있다
- 2020년 4월에 아버지처럼 코로나19에 감염되었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총리와 왕세자에 왕세손까지 감염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여론이 불안해질 것을 우려해 일부러 숨겼다고 한다.
[1] 영국 왕실의 직계 왕족들은 성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 영국이 아니더라도 유럽의 고위 왕족들은 성을 사용하지 않고 'ㅇㅇ(나라/지역)의 ㅁㅁㅁ(이름)’ 이라고 칭했다.(ex: 헤센의 알릭스, 그리스-덴마크의 필리포스) 즉, 윌리엄 웨일스이란 이름 역시 아버지의 영지인 웨일스라는 지역명을 성으로 사용한 것.[2] 결혼하면서 작위를 받았다.[3] 병원에서 태어난 최초의 왕이 될 전망이다. 아버지 찰스 왕세자를 비롯한 선대 왕들은 모두 궁전이나 집에서 태어났다. 참고로 윌리엄 왕세손의 사촌이자 앤 공주의 장남인 피터 필립스는 병원에서 태어난 최초의 왕족이였다.[4] 아기가 태어나던 세인트 메리 병원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왕세자비가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아들이다(It’s a Boy)!” 라고 환호하며 노래를 불렀다. 이 당시 영국 왕실은 살리카법은 아니였지만 장자 우선 계승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5] 이 날은 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생일이기도 했다.[6] 이날 수유시간이 계속 늦어져 배고픔에 심하게 울었기 때문에 다이애나 비가 세례식 내내 손가락을 물리고 있어야 했다. [7] 조지 5세의 4남 켄트 공작 조지 왕자의 친손자이다. 아버지는 조지 왕자의 늦둥이 차남인 켄트 공자 마이클. 윌리엄 왕세손의 아버지인 찰스 왕세자와는 같은 증조부를 둔 사이로써, 6촌 관계다.[8] 여왕의 장남이자 차기 후계자로 귀하게 자랐던 찰스 왕세자는 훈련소같은 교풍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으며, 급우들에게 따돌림도 심하게 당했다고 한다. 이는 찰스 왕세자의 남동생들이자 윌리엄 왕세손의 삼촌들인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도 마찬가지였다. 찰스가 두 아들의 학교로 이튼을 선택한 이유는 상술한 바와 같이 이튼의 재학생들은 대부분 귀족들이기 때문에 같은 계층의 사람으로써 사고방식, 생활습관 등에서 교우관계를 맺기가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학우들 입장에서도 시기심 등으로 왕자를 따돌리긴 커녕, 훗날 사교계에 나갔을 때 왕족과 학창시절 동창이라는 것은 굉장한 스펙(?)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서로서로가 좋은 상부상조다.[9] 엘리자베스 2세가 장례식 참석을 반대했으나, 토니 블레어 총리의 설득으로 별탈없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워낙 이혼녀를 싫어했던 탓에 다이애나까지도 탐탁치 않게 여겨서 왕실 전체가 다이애나의 장례식에 불참할 것을 강요했을 뿐, 엘리자베스 2세 본인의 의견이 아니었다는 설도 있다. 만약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강요대로 다이애나의 장례식이 왕실의 무관심 속에 거행되었다면, 지금쯤 왕정 체제가 폐지되었을 수도 있었다. 당연한 것이 이혼한 게 찰스 왕세자 탓인데 다이애나를 미워해서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았다면, 그땐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음모론으로 '왕실에서 다이애나를 죽였다.'는 소문들이 돌며, 영국의 국민들은 찰스 왕세자를 천하의 개쌍놈 취급하고 있었다.[10] 아버지 찰스 왕세자로부터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오열했다고 한다.[11] 영국군은 한국군, 미군과 달리 사관학교가 정규 학위를 주지 않는 과정이다. 그래서 대학 졸업하고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12] 이때 헬기 조종 훈련 중에 연인 캐서린 미들턴의 집에 착륙해 논란을 빚기도 하였다.[13] 영국 왕실가의 왕자들은 육해공 어느 사관학교를 나왔더라도 타군에 일정기간 복무해야한다. 예를 들어 윌리엄 왕세손처럼 육군 장교로 임관해도 해군, 공군에 일정기간 복무하는 식인데...이는 만에 하나 있을 전쟁 시, 영국군 최고지휘관으로서 육.해.공군을 모두 지휘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14] 역사를 보면 왕족들 중에서 조지 3세의 아들인 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푸스처럼 평생을 군인으로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끝없이 반복되는 왕실 행사와 연회 복잡한 예절규칙 등에 지쳐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군인으로서의 삶이 차라리 편하다'''라고 생각하는 데서 나온 결정으로 보인다. 높으신 분의 고뇌라고 할까. 마찬가지로 윌리엄 왕세손의 남동생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 왕자 또한 계속 군에 남아 있으려 했지만, 왕세자를 노리는 탈레반의 잦은 습격과 반대여론에 밀려 결국 전역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왕실에서 독립하며 왕실의 그늘에서 벗어났다.[15] 본명은 캐서린 엘리자베스 미들턴(Catherine Elizabeth Middleton)이지만 케이트(Kate)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들은 대개 '케이트'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린다.[16] 실제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관련 기자회견 시청률이 윌리엄 왕세손 결혼식 시청률을 뛰어넘었다. 결국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이 더 큰 화제가 되는 바람에, 이 결혼식에 대한 화제는 열흘도 되지 않아 묻혔다.[17] 서양에서는 임신 중에 땅콩을 먹으면 태아가 땅콩 알레르기가 생길 위험이 있다고 하여 꺼린다.[18] 물론 왕세손 부부가 잘못한 일이 아니다.[A] 원 기사 삭제로 인한 대체 기사[19] 윌리엄의 증조할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101세에 별세했다. [20] 요르요스 1세의 4남이다.[21] 한창 무럭무럭 자라던 시기였는데, 연초에 찍힌 첫 사진은 그야말로 '''귀여움의 극치'''였다면, 이후 사진의 모습은 '''동화 속의 왕자님'''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실제로 영국 미남 랭킹 1위에 뽑혔을 정도로 웬만한 아역 스타를 씹어먹을 정도였고 영국 국내는 물론 캐나다, 호주, 미국 등의 여러 나라 소녀들을 설레게 했다.[22] 역변의 위기라는 마의 16세를 잘 넘겨서 훈남으로 진화. '''그런데…'''[23] '''다른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아니 부모 양쪽 모두 그런 증상은 없었는데 대체 왜?! [24] 리즈시절은 둘째치고, 불과 10여년 전의 모습과도 완전히 딴판이다.[25] 이미지 문제 때문에 아예 밀어버렸다고 한다. 아내 캐서린 미들턴의 미용사가 해 줬다고 하는데, 그 비용이 180 파운드, 한국 돈으로 26~27만 원이었다고.[26] 여담으로 이 내용을 BBC에서 게리 리네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곧바로 그 결정을 살짝 후회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정확히는 좀 더 맘 편하게 응원할 방법이 있었다고(...). 링크[27] 그런데 아스톤 빌라는 15-16시즌 강등됐다.[28] 사실 눈매와 금발벽안은 어머니 다이애나를 닮고 긴 얼굴형과 코, 입매 등 전체적인 외모는 아버지 찰스 왕세자를 닮았기 때문에 탈모가 겹치자 더 늙어보인다는 말도 있다.[29] 현재 아내가 된 케이트 미들턴 역시 그 소녀 중 한 명이었다.[30] 이 때문에 아들인 조지 왕자의 키가 2미터가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31] 콘스탄티노스 2세의 장남인 파블로스 왕세자의 아들로, 왕세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