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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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몬테네그로는 남동유럽 서쪽의 지중해 연안 및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국가이다. 수도는 포드고리차(Podgorica)이다.
2. 국가 상징
2.1. 국호
몬테네그로(Montenegro)라는 국명은 이탈리아어 베네토 방언으로 '검은 산'이라는 뜻이며(Monte = 산, Negro= 검은), 이는 노출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로브첸(Lovćen)산을 가리킨다.
몬테네그로어 국명은 '츠르나 고라(Crna Gora / Црна Гора)'이다. 이 표현 역시 '검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알바니아어(Mali i Zi)나 그리스어(Το Μαυροβούνιο), 아이슬란드어(Svartfjallaland), 러시아어(Черногория) 등 꽤 많은 언어에서 '검은 산'이라는 뜻의 이름을 쓰고 있다. 중국어로도 한역(漢譯)하여 黑山(헤이산, 흑산)이라고 부르는데, 중국 대륙 쪽에서는 헤이산이라고 부르지만 대만에서는 한역이 아닌 음차(음역)를 해서 蒙特內哥羅(멍터네이거뤄, 몽특내가라)라고 부른다.
2.2. 국기
몬테네그로의 국기는 몬테네그로 헌법에 따라 국기로 지정되어 있다. 2004년 7월 13일에 제정되었고 독립하자마자 국기로 지정되었다.
중앙에 있는 쌍두독수리 문양은 국장이다. 국기 한가운데에 위치한 국장은 몬테네그로 왕국 시절의 국장이기도 했다. 당시의 국장과 현재 국장의 차이라면 왕국 시절에는 흰독수리었는데 지금은 금빛 독수리라는 차이 정도. 국장의 중심에 있는 금색 사자 문양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호 성인인 성 마르코(복음사가 마르코스)의 상징물이다. 1797년까지는 몬테네그로의 도시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추가된 것. SFR 유고슬라비아시절엔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과 같은 국기를 썼고,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시절엔 세르비아 공화국과 같은 국기지만, 파란색 부분이 하늘색인 국기를 썼었다.
2.3. 국가
3. 지리와 기후
서남쪽으로 아드리아 해와 접하고 있고, 바르(Bar) 항을 통해 아드리아해를 건너가면 이탈리아로 갈 수 있다. 서북부로 올라가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리고 두브로브니크로 이어지는 크로아티아로 나뉘며, 동북부로는 세르비아, 동쪽으로는 코소보, 남쪽으로는 알바니아와 접하고 있다.
일단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1000m에 달하는 고원지대다. 고원에 펼쳐진 평야가 대부분이지만, 북부는 해발고도가 1700m를 넘어가는지라 농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땅이 아니고, 800~1000m의 높이인 서부도 딱히 농사에 영 좋지 않다. 거의 유일한 저지 평야는 알바니아와 접해있는 슈코더르 호수가 있는 남동부 뿐으로, 수도 포드고리차가 이곳에 위치해있다. 슈코더르 호수 남쪽은 또 굉장한 산악지대가 있다. 또 포드고리차가 위치한 평야지대 + 슈코더르 호수는 분지다. 알바니아 쪽으로만 좁은 평야로 아드리아해와 만나는 지점. 몬테네그로의 다른 아드리아 해안가는 거의 절벽 또는 경사가 매우 심한 지형으로 항구도시가 발달하기엔 매우 힘든 지형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경작지가 매우 적어서, 포드고리차 남부에 초대형 계획적 농업지대가 펼쳐져 있다. 스위스에 버금가는 산악국가다.
국토 북부에는 타라 강이 북쪽으로 흐르는데, 이 강물이 땅을 침식작용으로 깎아내려 깊이만 약 600~1650m, 길이는 144km에 달하는, 그랜드 캐니언 급의 대규모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다.[1] 사막지대인 그랜드 캐니언에 비해 이쪽은 녹지라 분위기는 매우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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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 협곡(Kanjon Tare, Tara River Canyon)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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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르제비차 다리(Most na Đurđevića Tari, Đurđevića Tara Bridge)
알바니아, 코소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부는 산세가 매우 심하고, 세르비아와 만나는 최북단도 산세가 심한 편이다. 아드리아해의 연안국이지만, 큰 항구도시가 없기 때문에 해상편으로 몬테네그로에 진입하긴 어렵고, 결국 육로와 항공편을 이용해야 한다. 해상편은 이용하기 굉장히 불편하다. 기차편이 없으므로 육로를 이용한다면 백중백 국제선 버스를 타야한다. 어느쪽에서 오더라도 앞에 설명한 지리 때문에 굉장한 산길을 넘어오므로 멀미에 약하다면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세르비아와 코소보쪽에서 온다면 단단히 각오해 둘 것. 이쪽에 비하면 대관령이나 문경새재 옛길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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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유럽 최다우지'''이기도 하다. 츠르크비체(Crkvice)같은 경우 총강수량 '''4,000mm'''에 달한다. 물론 지중해권 답게 '''가을~봄'''에 몰아서 내리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지리가 이렇게 처들어가서 정복하려는 제국의 입장에서는 참 다스리기 어려운 땅이 맞고 게릴라전 벌이기 딱 좋은 동네라 오스만 제국, 아니 동로마 제국 시절부터 이 동네는 제국의 핵심 꿀땅인 그리스와 발칸 반도 평원 지대를 기습하고 도망쳐 숨어 들어가는 비적들의 땅으로 악명 높았다.
4. 행정 구역
23개의 지방자치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州)와는 성격이 다소 다른게 민족 구성이 다소 복잡하다. 옛 수도는 체티네이다. 여담이지만, 어지간한 여행정보를 죄다 다루는 론리플래닛에서는 일개 도시인 코토르는 비교적 자세하게 쓰여있는 반면, 몬테네그로의 수도인 포드고리차는 딱 1페이지가 할애되어 있다(...).
- 포드고리차(Podgorica), 체티네(Cetinje)
- 부드바(Budva), 티바트(Tivat), 코토르(Kotor), 페라스트(Perast), 헤르체그노비(Herceg Novi), 바르(Bar), 울친(Ulcinj, 알바니아어로는 울치니 Ulqini)
- 닉시치(Nikšić), 플레블랴(Pljevlja), 모이코바츠(Mojkovac), 베라네(Berane), 로자예(Rožaje), 플라브(Plav)
5. 언어
공용어이자 국어는 몬테네그로어로, 그 외에도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보스니아어 역시 헌법에서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서로 차이가 없는 같은 언어이다. 세르비아어와 몇 가지 차이가 있다면 키릴 문자보다는 라틴 문자 표기가 많이 쓰인다는 점과 ś, ź의 두 글자[2] 가 추가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 외에 단어 몇 개가 약간 차이나는 부분이 있다. 그 외에도 알바니아어 역시 헌법에서 규정된 공용어이다.
6.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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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토르(Kotor)의 전경
위 지리 문단의 설명과 같이 산세가 험준해서 바꿔 말하면 경치가 좋은 곳이 많다. 아드리아해 바다 바로 앞까지 경사져 상당히 웅장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절경이라 관광객도 많이 찾고, 타라 강은 레프팅 등의 스포츠 장소로 인기가 좋다. 통칭으로 타라 협곡으로 불린다. 일부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있다. 타라 협곡의 또 다른 명물로는 주르제비차 타라 다리가 있다. 이 골짜기의 그나마 가장 무난한 곳에 1940년 다리를 지어, 높이가 172m밖에 안된다. 국토 중북부를 칼로 베어가듯 가로질러가는 캐니언에 다리가 딱 하나 있으니 제2차 세계대전 때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3] 다행히 파괴되지는 않았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단독으로 몬테네그로만 들르는 경우는 별로 없고, 이미 거의 국민관광지가 되어버린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멀지 않아 짧게 다녀가는 일정으로 몬테네그로 남부의 해안도시들을 다녀가는 경우가 많다.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등은 베네치아나 두브로브니크에 비해 아직 관광지 물이 덜 든 동네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항공편으로 온다면 대개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내린다. 다만 포드고리차 공항은 군사지역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00시부터 07시까지는 공항이 폐쇄되므로 참고할 것.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으므로 미리 몇가지 현지에서 써먹을 몬테네그로어 단어를 적어놓자.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와 사실상 같은 언어라 둘 다 어지저찌 통용된다.다만 '관광'하면 흔히 생각하는 화려한 문화유산 같은 것은 나라가 원체 작다보니 그리 유명하지 않다. 특히 수도이자 최대도시인 포드고리차는 관광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여겨지는지, 론리플래닛 동유럽판에서 소개된 21개국 중 '''유일하게''' 수도의 여행정보가 소개되지 않은 나라가 몬테네그로였다. 그러나 옛 수도인 체티네나 물 위에 떠 있는 베네치아풍 마을 페라스트(Perast) 등 명소가 많다.
7. 몬테네그로인
근처 나라인 크로아티아와 함께 미남이 많은 곳으로 꼽히며 크로아티아나 체코에 비해서는 검은 머리의 남유럽풍 미남 미녀들이 많은 편. 주변 국가에서는 남자 여자답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또한 남슬라브계 국가답게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장신 국가로 유명한 네덜란드인들 못지 않게 매우 큰 편이다. 20대 남성 평균 신장 '''183.3cm'''으로 네덜란드와는 겨우 0.5cm 차이.
8. 역사
8.1. 고대
6세기 초 동로마 황제 헤라클리우스의 권유로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아드리아 해 해안과 세르비아 중서부에 5개의 공국을 형성했는데, 현 몬테네그로 지역에 그 중 하나인 두클랴(Дукља)라는 공국이 있었다.
8.2.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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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세르비아 공국들. 오른쪽의 회색 영역은 세르비아(Србија) 혹은 라슈카(Рашка), 왼쪽은 북쪽부터 순서대로 파가니야(Паганија), 자후믈레(Захумље), 트라부니야(Травунија), 두클랴(Дукља)이다.
두클랴는 10세기 중반 세르비아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라슈카가 동로마 제국에 정복당해 직할령으로 편입되자, 세르비아계 공국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고 콘스탄틴 보딘(Константин Бодин, 재위 1081~1099)의 재위 하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보딘 사후 몰락하다가 세르비아 왕국 네마니치 왕가(Немањић)의 초대 군주 스테판 네마냐(Стефан Немања, 재위 1166~1196)의 지배하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14세기 스테판 우로시 5세(Стефан Урош V, 재위 1346~1355)의 죽음 이후 네마니치 왕가의 대가 끊기자 제타 공국(Кнежевина Зета)으로 독립했다. 제타 공국은 정교회를 믿었던 네마니치 왕가와의 차별화를 위해 가톨릭을 국교로 채택했다.
8.3. 근세
이후 1498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점령지의 행정을 지방 엘리트들의 개종과 예니체리 징집으로 포섭하여 한두세대 정도의 시간을 두고 중앙의 통치 아래로 끌어 오는 걸 주 정책으로 삼았다.[4] 그런데 몬테네그로 지역은 일단 자체적인 지형만으로도 상술한 제대로 다스리기 더럽게 힘든 지형이고, 이 지형이 또 역사적 상황과 시너지 효과를 내어 오스만 제국의 발칸 반도 정복 과정에서 끝까지 오스만 체제를 거부한 발칸 반도 공국의 유랑민들이 대거 몰려 들어와 리즈 시절의 오스만 제국에서도 그냥 손 놓아버리고 몬테네그로 토착 유지들에게 맡겨버렸고 결과적으로 정교회 주교들의 자치령이 수립되어 사실상의 독립을 영유했다.
1696년에 다닐로가 정교회 체티네 주교가 되었고, 세습제를 확립하면서 몬테네그로 구왕가인 '페트로비치네고시(Petrović-Njegoš) 왕조'의 시조가 된다. 물론 성직자는 자녀를 가지지 못하기에 숙질계승으로 세습했다.
1766년에는 표트르 3세를 자칭하는 남자가 나타나서 페트로비치네고시 가문의 바실리예 주교를 러시아로 쫓아내고 지배권을 획득하기도 했는데, 그는 사실 '작은 슈체판(Šćepan Mali)'이라는 농부였다. 하지만 상당히 유능한 인물로 오스만과 베네치아의 공격을 물리치고, 기겁해서 제거하려던 러시아로부터도 결국 인정을 받아 한동안 몬테네그로를 잘 다스리다가 1773년 오스만에 암살당했다. 그리고 1782년 다시 페트로비치네고시 가문에서 페타르가 주교가 된다.
8.4. 근대
그렇게 페트로비치-네고시 가문의 숙질간 세습 주교제가 이어지다 1852년 다닐로 2세 주교가 세속군주임을 선언하고 '''몬테네그로 공국'''을 선언, 다닐로 1세가 된다. 하지만 딸만 하나를 둔 채 1860년 요절하여 또 숙질계승으로 니콜라 1세가 즉위한다. 니콜라 1세는 1918년 세르비아에게 폐위될 때까지 58년간(몬테네그로 공으로 50년, 1910년 몬테네그로 왕국 선포 후 왕으로 8년) 재위하면서 12명의 자녀를 낳아 10명이 성인으로 자라 이탈리아, 세르비아, 러시아의 왕족들과 혼인관계를 맺어서 "유럽의 장인"이라고 불렸다.[5] 하지만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선 몬테네그로라는 나라도 있었냐?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를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였다.[6]
8.5. 현대
공국이었던 몬테네그로는 1910년에 '''몬테네그로 왕국'''을 선언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동맹군에게 국토가 점령을 당하고, 전쟁이 끝나나 했더니 맏사위인 세르비아 국왕에 의해서 독립을 상실하고[7]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하여 1919년 1월 몬테네그로 내에서 녹백내전(녹군은 독립 진영, 백군은 친유고 진영)이 일어났으나 백군이 이겼다. 니콜라 1세와 몬테네그로 왕실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프랑스에 망명정부를 세웠으나, 1929년 니콜라 1세의 손자이자 왕실 수장 미하일로(1908-1986)[8] 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합병을 인정하여 망명정부가 끝난다. 이 사람의 인생도 파란만장한데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에서 가난하게 살고있던 추축국 측이 괴뢰국의 대표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고, 전쟁 후 티토에게서 두둑한 종신연금을 받았지만, 결국 티토 정권에 실망한 뒤 프랑스에 살면서 반티토 활동을 하다가 죽었다.
그러다가 1940년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군에 의해 점령되며 몬테네그로는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었다. 몬테네그로인들은 이탈리아군에 대항하여 봉기하지만, 이탈리아는 이를 진압하고 이 과정에서 몬테네그로인들을 학살했다. 1943년 이탈리아는 물러갔고, 나치 독일이 1년간 지배하다가 1944년 해방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몬테네그로도 독립 단위인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원으로 다른 나라들이 다 떨어져나갈 때도 신유고 연방, 세르비아 몬테네그로(Државна Заједница Србија и Црна Гора,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가연합, 통칭 신 유고 연방)를 구성했지만 신 유고연방에서 코소보 문제가 불거지는 와중에 분리 떡밥이 나왔다. 사실 몬테네그로는 유고슬라비아의 해체시기에도 끝까지 남을 정도로 세르비아에 대해서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지만,[9] 1990년대의 전범국가이기도 한 세르비아와 같이 있다가 제재와 폭격을 같이 당하다보니 독립 노선이 대두하게 됐다.
결국 2003년 신유고 연방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바뀌면서 3년 뒤에 몬테네그로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고, 결국 국민투표로 2006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했다.[10] 이로써 세르비아는 신유고 연방 시절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해안지대였던 몬테네그로를 잃고 내륙국으로 전락했다.
이후 몬테네그로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 세르비아의 뒤통수를 쳤다.[11] 이게 다 세르비아의 자업자득인 셈. 다만 세르비아인들도 바보는 아니어서 2010년대쯤부터는 자신들이 이웃들과 함께 서로 싸질러 놓은 사고의 규모와 발칸 반도를 넘어선 코소보 문제의 민감함을 모르는게 아닌 탓에 몬테네그로의 결정을 섭섭해하면서도 크게 비분강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9. 정치
체제상 공화국이지만 옛 왕가의 역할이 완전히 없어진 한국이나 이탈리아, 이란, 이라크, 이집트,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네팔[12] 그리고 주변 발칸권 국가들인 세르비아와 불가리아 등과 달리[13] 옛 페트로비치네고시 왕가에 상당한 수준의 실권이 주어지고 있다. 법적으로 왕조의 존재가 명문화돼 있으며 왕은 몬테네그로 대통령과 같은 월급을 받고 옛 수도 체티녜에 집이 제공되며 외교적 의전(State Protocol)을 행할 권한도 법적으로 보장돼 있어 국빈을 맞이하는 역할을 실제 정치인들과 같이 하므로 사실상 헌법에만 공화정으로 명시되어 있고, 실제론 입헌군주국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때문에 동유럽에서 왕정복고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이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왕실 가문이 단절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몬테네그로 사회민주당(DPS) 소속의 밀로 주카노비치(Milo Đukanović) 총리가 장기집권을 한 바 있다. 1991-98년까지 총리를 지냈고, 이후 98-02년간 대통령을 역임했다가 이후로도 계속 총리를 하고 있다. 독립 이후인 2006년 같은 당의 젤코 슈투라노비치가 총리직을 잠시 맡았으나 건강 문제로 사임하면서 다시 주카노비치가 총리가 되었다. 이후 2010년 같은 당의 이고르 룩시치가 또 총리를 맡았으나 12년 총선 이후 다시 주카노비치가 총리가 되었다. 2016년 총선에서도 여당 사민당이 승리했지만, 과반의석은 실패했다.#
몬테네그로 검찰이 친서방 성향의 두슈코 마르코비치 총리를 암살하고 쿠데타를 벌이려 한 계획의 배후로 지목되는 등 정국불안이 있는 편이다.# 이로써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가입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이다. 그리고 몬테네그로의 나토 가입에 도널드 트럼프도 서명하자 그동안 몬테네그로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던 러시아가 반발하여 미러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그동안 몬테네그로의 와인을 수입해왔는데 이를 금지했다. 그리고 2017년 6월 5일부로 29번째로 가입하게 된다.
2018년 4월 16일에 몬테네그로는 대통령 선거가 열렸고 친서방총리인 밀로 주카노비치가 승리했다.# 하지만 주카노비치 대통령이 뇌물을 줬다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4월 20일에 대규모 시위가 발생되었다.#
2019년 12월에 종교재산법안을 의결했는데, 이 법안은 종교계가 현 자산을 "1918년 이전부터" 보유했다는 점을 증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증명하지 못하는 자산은 국유로 몰수된다. 이에 세르비아계들은 세르비아 정교회의 자산을 박탈하고 종교적 소수파인 몬테네그로 정교회를 육성하기 위한 계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4]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2020년 8월에 야당이 총선에서 이겨 정권교체가 되면서 법안도 날아갔다.
코로나19가 퍼진 상황속에서 2020년 8월 30일에 총선이 시작됐다.# 비공식 집계결과 친러 성향 야권이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30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야당측은 승리를 선언했다.#
10. 경제
11. 군사
나토(NATO) 가입 이후 군사방면이 크게 변화했는데, 영공을 그리스 공군, 이탈리아 공군에게 맡길 방침이다.#
12. 외교
13. 문화
13.1. 공휴일
총 8일로, 전반해에 모여있는 편이다.
1월) 새해 첫날(1일), 정교회 성탄절(7일)
4월) 정교회 사순대재, 부활절 (매년 일자가 바뀐다.)
5월) 노동절(1일), 승전일(9일), 독립일(21일)
7월) 정부수립일(13일)
이 나라는 대부분 국민들이 관광업이나 어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공휴일이건 주5일제건 별로 의미가 없다. 죄다 자영업이다 보니 1년 365일 일한다. 이 나라에서 공휴일이 의미가 있는 곳은 정부청사밖에 없다.(...) 그래서 공휴일을 몇 개 지정을 안 하는 것이다.
13.2. 스포츠
구 유고슬라비아 출신 국가답게 나라 작은 나라지만 몇몇 구기 종목에서 스타가 배출되고 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 시절부터 핸드볼과 수구는 강국이었고, 몬테네그로 출신 선수들도 여러명 있었으며, 몬테네그로 독립 후에도 세계 상위권에 드는 강국으로 올라섰다. 축구에서도 인재들이 나오고 있다.
축구에서는 세리에 A AS 로마와 유벤투스 소속이었던 알 자지라 클럽의 미르코 부치니치(Mirko Vučinić)와 AS 모나코의 스트라이커 스테반 요베티치(Stevan Jovetić)가 이 나라 출신이고, 대한민국 프로축구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 FC서울,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구 FC 등에서 커리어를 보낸 데얀 다미아노비치(Dejan Damjanović)와[15] 성남 일화, 수원 삼성 출신인 제난 라돈치치(Dženan Radončić) 그리고 프로배구 수원 KEPCO 45의 용병 밀로시 출라피치(Miloš Ćulafić)도 이나라 출신. 수원 FC의 수비수인 블라단 아지치도 체티네 출신. 그리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스테판 사비치도 몬테네그로 출신.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선수는 현재 몬테네그로 축구협회장으로 재임중인, 90년대 AC 밀란의 10번으로 당대 최고의 천재 플레이메이커로 명성을 떨쳤던 데얀 사비체비치(Dejan Savićević). 우리나라에서는 K리그의 레전드 공격수 데얀의 강력한 영향으로 인해 몬테네그로를 '데얀국'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국대 축구 관련은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참고할 것.
핸드볼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손꼽히며, 여자 부문이 특히 강하다. 2011년 세계 선수권에서는 인구가 2000배 가량이나 많은 중국을 무려 42대 15로 제압하기도 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는 준결승에서 스페인을 한점 차로 꺾고 결승에 진출, 대한민국을 제치고 결승에 진출한 노르웨이와 금메달을 놓고 겨뤘다. 결승전에서는 노르웨이에 져 은메달을 획득하며, 몬테네그로로 독립하고 하계올림픽에 2번째로 진출하면서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따는 감격을 누렸다. 뒤이어 치러진 2012년 유럽 선수권에서는 강팀이 즐비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우승까지 했다.
수구도 인기있는 스포츠인데, 남자부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모두 4위까지 올라갈 정도로 강팀이다. 두번 다 공교롭게도 세르비아에 져서 동메달을 놓쳤다.
구 유고의 다른 나라들만큼은 못하지만 농구도 인기가 있으며 유로바스켓 3회 진출, FIBA 농구 월드컵 1회 진출을 기록중이다. NBA 출신 선수들로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7년간 활약한 '페코트럭' 니콜라 페코비치(은퇴)와 올랜도 매직의 올스타 센터 니콜라 부체비치가 있다.
14. 여담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이 영어의 1인칭 대명사 목적격과 같은 .me라서 근래에 몬테네그로와 무관한 사이트에서도 애용하기도 한다.
서구권에서는 이유는 불명이지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사례와 비슷하게 특히나 구 유고 국가들 사이에서 몬테네그로인들은 게으르고 느리며, 잠꾸러기라는 편견이 상당히 퍼졌다(...) 너무 깊게 박혀서 이제는 몬테네그로인들이 스스로 자조하는 유머이자 한국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처럼 '먼저 쉬고 나중에 일하자'라는 국민성, 관광 홍보용으로 사용할 정도. 심지어 게으른 사람을 뽑는 대회인 게으름뱅이 올림픽까지 열렸다. 경기 방식은 그냥 제일 오래 누워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방식. 37시간이 최대 기록이라는 듯.(...) 정작 몬테네그로에는 공휴일이 별로 없으며, 국민 대부분이 관광,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등 실제 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15. 창작물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여기서 니콜라 1세로부터 훈장을 받았다고 나온다.
007 카지노 로얄에서 제임스 본드가 르 쉬프와 도박을 하는 곳으로 나왔다.
스퀘어 에닉스의 히트맨 시리즈 모바일 스나이퍼 챌린지 히트맨:스나이퍼의 배경이다.
폴란드볼 애니메이션에서 하도 유럽국기가 비슷하다 보니까[16] 참다참다 화가난 미국한테 인사를 했다가 멱살을 잡혀서 넌 누구냐? 라는질문에 몬테네그로라고 했다가 '''마운틴(Mountain) 니그로negro(흑인비하발언)로 강제개명 당했다...'''
[혼합된체제] 5.77점[1] 이쪽은 면적으로 그랜드 캐니언의 10분의 1 정도 된다.[2] 2009년 도입되었으나 두 글자의 도입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2017년 2월부로 국회에 의해 공문서에서 사용이 배제되었다.[3]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돌아가려면 180km 이상 손해본다.[4] 오스만 제국에서는 현지 지배층의 개종과 그 자제들을 제국의 행정, 군사 엘리트로 끌어 넣는 간접 통치 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부분 토착 귀족과 유지들을 개종시키고 이들의 자식들을 코스탄티니예로 보내며, 이 와중에 끝까지 반항하는 세력은 철저하게 갈아 버린 다음에 밀레트 제도에 따라 농촌 단위로 농민들을 묶어 자치를 실시한다. 그런데 몬테네그로와 보스니아의 일부 지역은 워낙 월경지적 성격이 강하고, 지형이 험난하며, 제국 중앙 정부에 포섭당할 생각도 없어서 끝까지 이 간접 통치의 과도기가 결국 영구적으로 정착해 버렸다. 오스만 제국령 유럽 밖을 보자면 바르바리 해적들이 자치하던 북아프리카 영토나 맘루크들이 지배하던 이집트 등이 추가된다.[5] 또다른 당시 유럽의 장인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 이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왕비 엘레나가 니콜라 1세의 넷째딸이다.[6] 김영사의 앗! 시리즈 혁명이 이글이글에선 20세기 초만 해도 몬테네그로란 나라가 유럽에서 미지의 나라였다고 나왔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중세풍 옷차림이나 여러가지 생활양식이 남아있기까지 했다.[7] 세르비아 페타르 1세의 왕비가 니콜라 1세의 맏딸 조르카였지만 1890년에 셋째아들을 사산하고 사망.[8] 몬테네그로 왕가의 현 당주 니콜라 2세의 아버지다.[9] 사실 기원을 따지고 보면 세르비아인과는 같은 민족이었고 문화도 공유했다. 민족 정체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근대부터.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공산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세르비아인이어도 몬테네그로에 살면 몬테네그로인이라는 식으로 인구조사에 응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본인 정체성을 세르비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몬테네그로 인구의 30% 가까이 된다.[10] 특이하게 독립 가결선이 50%가 아닌 55%였는데, 55.5%의 찬성표가 나와서 독립했다. 만약 부결되었다면 2009년에 한 번 더 독립 투표를 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월드컵 도중에 독립했는데(2006년 6월), 월드컵에서는 마지막으로 축구팀 세르비아-몬테네그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기로 했다.[11] 기사 참조. [12] 그러나 이란과 네팔의 경우 왕정폐지로 축출당했던 레자 팔라비 전 왕세자와 갸넨드라 전 국왕이 왕정복고를 주장하거나 해외망명을 접고 이란으로 귀국하겠다고 이란 정부에게 이란으로의 귀국이나 일시방문을 요청하고 있다. 자세한건 팔라비 왕조, 왕정복고, 갸넨드라 문서 참조.[13] 다만 불가리아는 왕정 폐지 이후에 시메온 2세 전 국왕이 공화정의 총리를 역임했던 바 있다.[14] 정교회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세르비아 정교회는 공인된 자치교회이고, 몬테네그로 정교회는 1993년에 창설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교구를 비롯한 어느 공인된 정교회 조직으로부터도 승인을 받지 못한 교회 조직으로 몬테네그로 정교도의 30%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15] 데얀은 몬테네그로 국대 선수로도 활약한 바 있다.[16] 라트비아를 오스트리아로 착각하고 아일랜드를 이탈리아라고 혼동한데다가 루마니아를 차드하고 불렀다가 욕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