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사건

 

1. 공안사건은 무엇인가?
2. 한국에서의 공안사건
2.1. 대표적인 공안사건
2.1.1. 해방 정국
2.1.2. 제1공화국
2.1.3. 제2공화국
2.1.4. 제3공화국
2.1.5. 제4공화국
2.1.6. 제5공화국
2.1.7. 제6공화국
2.2. 공안사범 석방 논란
2.3. 관련 법률
3. 외국에서의 공안사건
3.1. 대표적인 공안사건
3.1.1. 미국
3.1.2. 독일
3.1.3. 일본


1. 공안사건은 무엇인가?


제3조(보고대상) ① 각급 검찰청의 장은 다음의 사건에 관하여 검찰사무보고를 하여야 한다. (중략)

8. 공안사건 (중략)

10. 정부시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만한 사건

11. 특히 사회의 이목을 끌만한 중대한 사건 (중략)

② 제1항 제8호에서 '공안사건'이라 함은 다음의 사건을 말한다.

1. '''형법 중 내란 외환의 죄'''

2. '''국가보안법 위반의 죄'''(구 반공법 위반의 죄를 포함한다.)

3. '''군형법 중 반란 이적의 죄, 군사기밀누설죄 및 암호부정사용죄'''

4.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의 죄'''

③ 제1항 제10호에서 '정부시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만한 사건'이라 함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사건, 노동관계법률위반사건 중 노동정책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건''', 수산업법위반 중 '''군사분계선 또는 어로한계선 월선조업사건''', '''기타 정부시책의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정부시책에 현저히 위배되는 사건'''을 말한다.

검찰보고사무규칙

그 외에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도 공안부에서 수사하므로 공안사건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2. 한국에서의 공안사건


한국에서는 한국 전쟁을 겪고 난 이후 한국에서는 간첩 사건이라던가 반국가단체 결성이라던가 하는 일들이 간간이 있어 왔다. 이를 위해 '대공수사'본부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뿌리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역모죄와 일제강점기의 보안법, 치안유지법, 미군정의 공산주의자에 따른 탄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다. 또 냉전 시대 서방 국가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하여 체포된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 북한에서 넘어온 진짜 간첩이나, 북한과 직접 관련은 없어도 주체사상에 실제로 감화된 진짜 공산주의자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반공'을 내세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 독재정권이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주화운동가들이나 사회운동가들까지 '빨갱이', '간첩'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공산주의 활동 혐의를 조작하여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독재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함과 동시에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몰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잃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이런 사건들이 민주화 이전에는 비일비재했다. 그리하여 최근 10~20년 동안 많은 간첩사건이나 공안사건이 재심을 요청하여 이 중 많은 사건들이 조작되었음을 인정받아 관련자들이 무죄를 언도받고 명예를 회복하기도 했다. 실제로 밑에 나열된 사건들만 해도 조작된 사건들이 적지 않다. 아니, 오히려 조작된 사건들이 실제 사건들보다 훨씬 더 많다.
현재도 공안사건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민주화 이후부터는 공안사건의 발생빈도는 옛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대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 허나 최근에도 간디 학교 최보경 사건, 박정근 사건,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같은 일이 발생하여 '''지금도 여전히 공안사건의 조작혐의는 끝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에는 독재정권 만큼은 아니지만 공안사건들이 적지않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몇몇 공안사건들이 나왔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는 김영삼 정권 시절보다도 간첩 사건들이 현저히 적었다. 그 이유는 당시 남북관계가 훈풍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시절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면서 다시 공안사건들이 독재정권이나 민주화 초기 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늘어났었다. 그러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큰 공안사건은 아예 터지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나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 받는 사람들도 대부분 작은 소규모 사건들에 불과하다. 심지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보다도[1] 문재인 정권에서의 공안사건은 거의 없는 분위기인데, 북한의 도발도 거의 없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호재와 남북관계 훈풍의 영향도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2017년까지는 공안사건이 어느정도 있었지만 2018년부터는 남북관계가 훈풍을 타면서 공안사건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다만 국보법 관련 공안사건들은 줄었으나 여전히 선거 쪽이나 노동 쪽에 관련해서는 여전히 공안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참고로 공안사건이 자주 터져 사회가 얼어붙는 상황을 '공안정국'이라고 불렀다.

2.1. 대표적인 공안사건


'''※ 여기에 수록된 공안사건들은 실제로 수사에 들어가 재판 결과까지 나온 사건들로만 한정하였다.'''
'''※ 간첩, 무장공비를 제외한 북한의 국지적 도발은 이 문서가 아닌 북한/대남 도발 문서를 참고하라.'''
실제 간첩사건/무장공비/북한과의 커넥션이 있었던 경우 ●
('''북한과는 관계가 없지만''') 자생적으로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표방한 경우 ○
전모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경우 ◎
조작된 경우/고문치사/민주화운동 탄압 ★
조작 의혹이 있는 경우 ☆
탈북자와 관련된 사건 ▲
외국인이 관련된 사건 △
필화사건[2]

2.1.1. 해방 정국



2.1.2. 제1공화국



2.1.3. 제2공화국



2.1.4. 제3공화국



2.1.5. 제4공화국



2.1.6. 제5공화국



2.1.7. 제6공화국



2.2. 공안사범 석방 논란


  • 문재인 정부에서 사드 반대 집회(30명), 밀양 송전탑 반대 집회(5명),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집회(19명), 한·일 위안부 합의 반대 집회(22명), 세월호 관련 집회(11명), 광우병 촛불 집회(13명), 쌍용차 집회(7명) 참가자 등 각종 공안사범들을 2019년 삼일절에 대거 특별사면시키기로 결정해 '코드 특사' 논란이 일고 있다. 전체 4378명의 특별사면 대상 중 공안사범은 107명으로 2.44%를 차지했다. 작년과 비교해 숫자로는 약 4배, 비중으로는 6.4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것... [21]#

2.3. 관련 법률



3. 외국에서의 공안사건


외국에서도 반공을 내세우는 나라나 정권에서는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사상과 연관하여 공안사건이 존재했다.사실 좌파의 역사와 연관된 책자에도 공안사건들은 무수하게 많이 나온다.[22] 거기서도 몇몇 사건은 조작 논란을 맡고 있다. 사실 외국과 선진국들에서는 식민지시대와 냉전시대를 제외하면 공안사건이 거의 없었으나, 냉전시대 때는 친미국가들의 공안조작사건들에 대해 모르는 척 하기도 했다. 그래도 선진국에서는 공안사건이 냉전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던 실정이지만, 9.11테러 이후 전 세계에서 테러가 일어나면서 선진국들 또한 공안처벌과 사회운동 탄압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3.1. 대표적인 공안사건


공산당 혹은 공산주의 단체(사회주의 단체),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와 관련된 경우 ●
아나키스트와 관련된 경우 ○
전모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경우 ◎
조작된 경우/고문치사/사회운동 탄압 ★
조작 의혹이 있는 경우 ☆
필화사건 ※

3.1.1. 미국


  • 사코와 반제티 사건 - 1921년 ○[23]
  • 로젠버그 부부 간첩 사건 - 1950년 ◎☆
  • 매카시즘 - 1950년대

3.1.2. 독일



3.1.3. 일본



[1] 과거 민주당 정권 시절의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는 반공주의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북한의 도발이 빈번했기 때문에 공안정국이 제법 유지되었다.[2] 작가가 쓴 글을 공안당국이 문제 삼는 경우[3]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4]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법무부장관을 했던 강금실의 아버지가 이 사건에 억울하게 휘말려 든 사건으로도 유명하다.[5] 구상 시인이 이 사건에 걸려들어서 구속되었던 적이 있다.[6] 사건의 중심에 있던 조봉암은 이 사건으로 사형당했다가 2011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7] 만화와 관련된 또 다른 필화사건들은 항목 참조[8]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이 사건은 단순 대북접촉과 동조행위를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9] 통혁당에 관계했던 핵심적인 인물들이 북한과 연계되어 있었으며 (교육, 자금지원) 통혁당 전라남도 조직은 북한에서 남파된 인사에 의해서 처음으로 조직이 만들어졌고 북한의 주체사상(1970년대 이전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을 자신들의 조직이념으로 삼았다. 다만 통일혁명당에 참여한 인물 중 일부는 북한과의 연계사실을 몰랐다는 주장도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10] 관련 링크[11]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이수근이 간첩 혐의를 받아 사형당한 사건이다. 2008년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12] 일본 공산당이 이 사건에 엮였다.[13] 다만 사건의 진위에 관련하여 음모론이 존재한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14] 민주화운동가부터 자생적 공산주의, 사회주의자까지 끼어있던 복잡한 지하조직이었다.[15] 이 사건의 피해자였던 권인숙이 당한 사건 전후 정권과 언론의 행태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16] 2017년 11월 30일 서울고법 무죄판결.[17]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18] 이 사건은 당사자들이 간첩 혐의를 부정했고, 사건을 수사한 안기부 요원의 양심선언까지도 있었지만 결국 재심에서는 간첩조작과 관련된 혐의는 판단하지 않고 그들이 고문 수사를 받았다는 것만 부당하다고 판결했다.[19] 이들이 후에 그 유명한 다함께가 된다.[20] 다만 이 사건의 경우는 특이하게 보수세력이 북한에게 무력시위요청을 한 사건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21] 그러나 12월에 사면되었다[22] 사실 공안사건의 의미대로라면 공산주의,사회주의,좌익의 역사는 공안주의의 역사와도 맞아 떨어진다. 왜냐하면 공안사건은 그들 세력에 대한 탄압을 의미했기 때문이다.[23] 사건의 피해자들은 아나키즘 성향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