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즘/민족주의
1. 개요
Ethnic nationalism
'''Nationalism'''(민족주의, 내셔널리즘이나 국민주의로 번역)은 민족(여기서는 nation을 지칭)을 구성한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율성, 통일성, 정체성을 달성하려고 유지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운동 이다. Nationalism을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한 귀속의식이나 소속감, 동질감인 집단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Nationalism'''은 흔히 '''Ethnic nationalism'''과 '''Civic nationalism'''으로 분류된다.[1] 이중에서 Ethnic nationalism의 ethnicity는 그리스어 ethnos에서 유래하였는데,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ethnos를 혈연 친족관계(ὁμόαιμον), 언어(ὁμόγλωσσον), 문화와 관습(ὁμότροπον)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내셔널리즘 중에서 혈연, 공통의 조상, 공통의 역사, 문화, 언어, 종교, 영토를 공유하는 ethnic group을 집단 정체성(nation)의 요소로 정의하는 내셔널리즘이다.
내셔널리즘 중에서 이 Ethnic nationalism(종족 민족주의, 민족주의로 번역)에 대조되는 내셔널리즘으로, 가치관을 공유하는 시민들의 정치적 계약과 합의에 의한 내셔널리즘인 '''Civic nationalism'''(시민 민족주의, 시민 국민주의, 정치적 민족주의, 공민적 민족주의로 번역)이 대안으로 존재하며, 내셔널리즘 전체에 대한 대안으로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가 존재한다.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말이 Nation과 Nationalism을 지칭하기도 하고, 아니면 ethnic group과, ethnic nationalism을 지칭하기도 해서, 많은 혼동이 존재한다. nation이 민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는지, 국민으로 번역되어 사용되는지, 혹은 민족이 Nation을 지칭하는지, ethnic group을 지칭하는지 주의하자.
1.1. 명칭 문제
한국에서 민족주의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개념에 대해 Nationalism과 Ethnic nationalism 사이에 혼동이 있다.
관점에 따라서, 민족은 혈연, 문화, 언어, 종교, 지역 등과 같은 객관적 요소에 의해서 정의된다는 관점(Ethnic nationalism)이 있고, 같은 민족이 되겠다는 의지라는 주관적 요소에 의해 정의된다는 보다 넓은 관점(Nationalism)이 존재한다. 이는 민족이 지칭하는 개념이, 더 넓은 상위 개념인 Nation이냐, 아니면 좁은 의미의 혈연적 문화적 공동체 개념인 Ethnic group이냐의 차이이다.
Nationalism을 19세기 말 일본에서는, 독일의 블룬츨리(Bluntschli)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서 이를 종족적 성격으로만 이해하고 민족주의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정치적 사회계약론적 공동체를 국민으로 번역하였다. 중국에서는 양계초(량치차오)가 서구의 Nationalism을 일본의 민족주의 용어를 사용해서 번역하였다. 구한말의 지식인들은 양계초의 사상에 매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Nationalism을 민족주의로 번역해왔지만, 한국에서의 민족주의는 근대주의적 Nationalism 의미보다는, 원초주의적 의미의 Ethnic nationalism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Nationalism이 전통적으로 민족주의로 번역되어왔고, National state는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로 표현이 혼용되어서 번역되어왔다. 예를들어 프랑스 대혁명을 통하여 민족주의가 등장하였다는 말의 민족주의는 내셔널리즘중에서 Civic nationalism을 지칭하는 개념이지, 절대 혈연 문화를 공유하는 Ethnic nationalism의 의미가 아니다.
Nation과 Nationalism을 민족과 민족주의로 번역하는 전통적 시각과, 국민과 국민주의, 혹은 음차 그대로 번역하는 관점이 존재한다. Nation과 Nationalism을 민족과 민족주의로 번역하는 전통적 시각에서는, 민족주의(Nationalism을 지칭)가 종족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 지칭)와 시민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로 분류된다고 번역하며, 이에 반하여 Nation과 Nationalism을 국민과 국민주의로 번역하는 용례에서는 국민주의(Nationalism 지칭)가 민족(국민)주의(Ethn(ic national)ism 지칭)와 시민국민주의(Civic nationalism)으로 나누어진다고 번역한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소속 김정훈 연구위원도 한국인의 에너지, 민족주의 / 종족에서 시민으로에서 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종족 민족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한, 서강대 전재호 교수의 '민족주의들 한국 민족주의의 전개와 특성'을 한겨레신문에서 소개하는데 민족주의를 '종족적 민족적 정체성'과, '정치적 국민적 정체성'으로 구분하며, 종족 민족주의와 시민 민족주의로 복수의 민족주의를 서술하고 있다. 복수의 민족주의가 존재하는 까닭 또한 전재호 교수의 민족주의론 대학공개강의를 KOCW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민족주의론 OCW 공개강의 마지막 강의에서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강진웅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nation이 정치적 차원과 문화적/종족적 차원이 있다고 하면서,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민족의 개념:국민과 종족 사이 민족주의(Nationalism을 지칭) 전반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 논문이다. 내셔널리즘에 국민적 성격과 종족적 성격이 모두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상상의 공동체? 민족, 국민 그리고 그 너머 Nation과 민족, 국민의 번역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논문이다. 저자는 Nation을 국민으로 번역하자고 주장하지만, 양측의 의견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민족' 개념의 형성 박찬승 교수의 논문에서 민족과 관련된 용어와 개념의 발전을 설명한다.
이 문서는 토론에 따라서 한국학계에서 전통적으로 종족 민족주의로 번역되는 Ethnic nationalism을 위주로 서술한다.
2. 상세
민족주의는 전근대적 계급세계가 사라지고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발흥으로 탄생한 사상이다. 민족주의는 자유주의와 함께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발전하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 전쟁 을 통하여,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는데, 전쟁 초기 열악한 프랑스군이 승리하는데 민족주의적 열망이 큰 역할을하며 군사적 효율성이 입증되었고, 이에 유럽각국도 자유주의는 아니더라도 민족주의는 적극 장려하게 되었고, 국민개병제처럼 국민국가의 형성에 기여하게된다. 애초에 민족적인 차이가 다른민족과의 갈등을 통해 부각되기 떄문에, 전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피히테는 하나의 민족에 기반이 되는 것은 그 민족의 언어에 있으며, 민족은 고유의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고, 이러한 언어는 민족의 발전을 통해 같이 성장한다고 보았다.
한국의 경우 원활한 통치를 위해 통일신라 정부가 제창한 일통삼한(一通三韓)[2][3]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몽골제국의 침공으로 인하여, 좀 더 보완하고 계승해서 형성된 게 시초이며[4] 이것이 구한말 서양의 내셔널리즘을 들여와 민족주의로서 사상화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본 제국의 제국주의에 압제당하였던, 일제강점기 영향으로 저항적 민족주의 성격을 강하게 띄며 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중국과 일본 등 과거 한국을 침략했던 외부세력에 배타적이라는 특징이 있다.[5]
3. 어록
'''"민족주의란 한 국가가 발전하고 한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이다."'''
'''쑨원'''
'''"내 몸이 남의 몸이 될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 없으며,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보다 완전한 영원함은 없다."'''
'''백범 김구'''
[* 동일한 문구가 내셔널리즘 문서에도 인용되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쑨원이나 김구의 경우 민족주의에 가깝고, 아타튀르크의 경우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국민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쑨원의 경우 (청나라의 만주족이 아닌) 한족이 권력을 장악해야 중국이 산다고 이야기했을 만큼 강경한 '''한족 내셔널리스트'''였고, 백범 김구 역시 백범일지를 읽어보면 한민족의 부흥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반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경우 "자신을 터키인이라 믿고 터키의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모든 사람은 터키인"이라 규정했으며, 이러한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터키라는 새로운 '민족국가'에 대한 애국·애족심을 심으려 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의 아나톨리아 외부 영토 상당수를 자의적으로 포기했던 것, 엔베르 파샤로 대표되는 범튀르크주의와 미묘한 노선 갈등을 겪었던 것도 이 때문이고. 물론 이는 민족국가의 성격이 강한 동북아시아와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는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터키의 정치적 특성 차이 때문이 가장 클 것이다. 다만 그것보다 본래 유목민이었던 튀르크계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인 점도 있다. 이란은 튀르크계의 주요 정착지라 많은 튀르크인들이 이주했고 이주 이후 튀르크계가 몽골계 같은 새로운 침략자 등을 제외하면 계속 이란을 지배하는 수준까지 도달했으나 이란인들이 잘 동화되지 않아서 튀르크인들의 숫자가 적다. 그래서 근대 민족주의가 이란에 들어오자 튀르크계는 물량에 밀려 허무하게 망했다. 터키 역시 순수 튀르크인들만 인정하면 인구에서 크게 밀리기에 사실상 다른 민족들까지 튀르크 민족으로 인정한 것에 가깝다. ]'''"민족이란 인간의 육신을 구성하는 장기와도 같다. 민족이 고통에 처했을 때는 마치 우리들 스스로가 고통에 처한 것처럼 노력해야 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몇 해 전의 일이다. 일본의 어느 잡지사 편집장이 내 집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박경리'''
4. 비판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온갖 종류의 극단주의로 이어지기 쉬운 사상이다. 역사적으로도 민족주의는 전체주의, 쇼비니즘, 전쟁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는 근대사 전반이 입증하며, 가장 과격한 사례는 20세기의 2차대전이었다. 21세기에도 무수한 나라들이 민족주의를 동원해 이웃 국가와 분쟁을 일으킨다. 이렇듯 권력층이 민족주의로 자국민들을 세뇌한 경우가 많지만, 반대로 대중이 스스로 민족주의의 광기에 빠진 사례도 많다. 예컨데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현대 서구권에서는 내셔널리스트란 단어 자체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20세기 전반부 서구권의 역사가 민족주의로 인한 과오의 역사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오늘의 인간 사회를 더욱 공평하게 하고 인류의 상호 유대를 더욱 완전하게, 더욱 튼튼하게 하려는 데에 또 하나의 장애가 있다. 민족주의와[8]
인종 차별주의가 그것이다. 최근에 비로소 정치적으로 독립한 민족들이 방금 얻은 민족의 통일이 아직 견고하지 못하므로 통일을 보호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도, 옛 문화를 지닌 민족들이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자랑하는 것도 극히 자연스럽기는 하나, 정당한 이 감정도 전인류를 감싸주는 보편적 사랑으로 더욱 완전해져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는 민족들을 고립시키므로 민족의 참된 이익을 잃게 한다. 특히 국가 경제가 매우 빈약해서, 발전 계획을 실천하려거나 상업적, 문화적 교류를 증진시키며 강화하려면 서로의 모든 노력과 지식과 자금을 집결시켜야 할 국가들에 있어서는 민족주의가 말할 수 없이 해로운 것이다.'''[9]
교황 성 바오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 3. 26.
그래서 기존 민족주의의 대안으로 21세기에는 국경을 초월한 '''열린''' 민족주의가 제시된다. 이러한 담론들은 주로 서구권에서 활발하다. 미국에서는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국민주의가, 유럽에서는 친 EU 성향의 유로내셔널리즘이, 아랍에서는 부족을 초월한 아랍 민족주의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반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열린 민족주의나 이타적 민족주의의 개념에도 비판적이다. 이런 방식의 민족주의도 근본적으로 '''"우리 민족 ≠ 다른 민족"''' 이라는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족에 따라 집단을 나누는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는 한, 민족으로 구분된 집단 간에 배타성과 폭력성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반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아랍 민족주의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유로 내셔널리즘은 포퓰리즘적 극우주의와 결합하며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보다 회의적인 반민족주의자들은, '이타적이거나 열려있는' 민족주의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열린 민족주의나 이타적 민족주의는 모두 민족주의 진영의 기만적인 자기포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반민족주의나 열린 민족주의 담론도 서구권 외의 지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그 외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민족주의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중동, 동남아, 동북아를 포괄한 아시아 대륙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해당 지역에서는 아예 극우적이거나 파시스트적인 주장들도 폭넓은 지지를 받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서구권에도 민족주의자들은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민족주의에 대한 경각심도 높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민족주의가 내포한 문제점들을 아예 인지조차 못하고 맹목적으로 민족주의를 찬양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한중일로 대표되는 동북아 지역에서는 역사 해석에 있어서 객관적 관점보다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우선시되고, '투철한 민족주의자'라는 말은 부정적인 어감보다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동북아는 21세기 들어 민족주의와 그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극심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해당 지역의 경제력과 국제적 영향력이 21세기 들어 급격히 팽창했다. 이는 해당 지역의 나라들에 그동안 억눌려있던 민족주의적 열망을 표출하고 영향력을 과시할 기회를 주었다. 다음, 아시아에서는 과거사 문제와 패권 경쟁이 현재 진행 중이다. 이런 민족 및 국가 간 갈등 속에서 각국 수뇌부는 국민들의 결집을 위한 도구로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중국은 동북아 삼국 중에서 민족주의를 넘어선 국수주의적 성향이 가장 심한 곳이고, 극우세력이 집권한 일본도 점점 민족주의가 강해지는 추세이다. 한국도 국력의 한계로 인해 패권주의를 추구하지만 않았을 뿐, 좌우진영 모두 민족주의를 줄기차게 강조해왔다.
중동 및 서아시아 지역에서도 종교 극단주의 못지 않게 극단적 민족주의의 영향력이 강하다. 이는 세속주의 진영은 이슬람 극단주의에 맞서 국민들을 결집시킬 도구로 민족주의를 앞세우고, 부패한 정부 역시 국민들의 불만을 억누를 도구로 민족주의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에서는 이슬람교 말고는 국민들을 결집시킬 도구가 민족주의 밖에 없기도 하다. 이는 해당 지역이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된데다 사회적 억압이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민족주의자들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라 할 수 있는 인권, 평등, 자유 등의 가치조차 서구적 색채로 규정지어 배척한다. 왕실을 비롯한 지배층도 자신들의 부패를 국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민족주의를 열심히 써먹고 있다.
북한의 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대화된 형태이다. 이는 통치 세력이 체제의 부당함을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민족주의적 세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민족주의의 '이기성 및 폐쇄성'을 극대화시키고, '자기연민'을 충족시키는데 동원하며, 인종주의와 순혈주의까지 지녔다. 이러한 극단적인 민족주의는 남한에 대해서 북한의 '정통성'을 강조하는데 쓰인다. 국가의 정통성 고취를 위해 신화 속 인물인 단군의 가짜 단군릉을 만들어서 역사왜곡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외국에 대한 적개심 배양을 위해서도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신천군 사건을 미군에 의한 신천대학살이라고 왜곡하여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고취시키거나, 납북 일본인 문제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정당한 복수로 주장하고, 조총련계 재일 조선인교포들을 '째뽀'라고 부르면서 경멸하고 차별한다. 또한 한국사회에 대한 우리민족끼리 프로파간다를 펼친다.
또한, 학문적 연구에서도 이 민족주의로 인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한국의 경우, 고대사 및 고대 언어 연구와 관련하여 한민족 또는 한민족이라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모두 '한국계' 및 '한국어족(언어적 계통에 관한 것)'이라는 꼬리표를 달곤 한다. 대표적으로 가야의 언어와 관련해서도 한반도 내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주변 언어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하여 언어적 분포 양상을 살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과정을 생략하고 턱없이 부족한 자료만 갖고서 '가야는 수백 년 동안 삼국과 함께하였으니 이들의 언어는 고대 한국어 계통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당위성을 내비치기도 한다.[10] 이렇게 따지면 한국은 1000년이 넘도록 중국의 영향 하에 있었으니 중화민족의 국가로 보아도 논리상 할 말이 없어지며, 또한 이는 현재도 중국 내에서 중국티베트어족이 아닌 언어들이 소수 민족의 언어로 쓰이는 등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민족적 차원에서 논의할 사항을 벗어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객관적으로 수집한 자료가 적을 때에는 이와 같은 귀속에 대해 '모른다'라고 답해야 함에도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인해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이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모두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결국 한국, 넓게는 동아시아가 자신들의 고대사적 분야들의 연구와 관련하여 세계적으로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민족주의부터 최소한 학문적 차원에서만큼은 타파할 필요가 있다.
5. 각국의 사례
Nationalism이 처음 생긴 프랑스는 오랜 세월 동안 한 국가를 중심으로 통일되어있었던 반면 어느정도 연속적이기는 하나 언어가 오크어와 오일어로 나뉘었고, 바스크나 브르타뉴 등 언어가 아주 다른 소수집단이 있었기 때문에 (물론 프랑스인 대부분을 하나의 종족집단으로 볼 수는 있지만) 혈통적인 민족 중심보다 국민 중심의 내셔널리즘을 형성하였다.
반면 독일에서는 독일 통일 과정[11] 에서 민족주의가 대두되었다. 독일 통일을 위한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서 민족주의가 이용되었기 때문에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가 발전하였다.
터키의 경우, 공화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범국민적인 존경을 받고 있으며 그가 제창한 튀르크 민족주의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넓게 퍼져 있다.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은 보수 우파에 이슬람주의와 민족주의를 더한 성향이며, 반대로 케말 본인이 창당한 공화인민당은 1960년대 이후 좌파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띠게 되면서 좌익 민족주의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했다. 이외에도 이름부터 민족주의행동당인 극우 민족주의 정당, 반대로 공산주의에 가까운 급진 좌파이면서 민족주의 성향을 띠는 군소정당 애국당(VP) 등이 존재한다.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권은 이민자 국가라는 특성상 단일민족국가란 것이 애초부터 성립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혈통적 개념의 민족이 아닌 정체성으로서 미국인이란 개념을 견고하게 수립하였고 현재는 서구 국가들 중 내셔널리즘이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내셔널리즘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백인이라는 점에서 혈통으로서의 민족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셔널리즘 성향이 강한 공화당 지지자가 대다수 백인인 것 역시 이를 방증한다.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이나 흑인들을 국민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공공연한 차별을 자행한 역사는 현재까지도 미국 내셔널리즘을 백인 중심으로 한정 짓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1960년대에 흑인민권운동이 한참 진행 중일때 말콤 엑스 등의 급진파와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흑표당 등의 단체가 흑인 민족주의를 주창한 바도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묻혔다.
중남미는 과거 제국주의나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Nationalism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중남미의 민족주의는 좌익 내셔널리즘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12] 중남미 국가들 자체가 다인종 국가들이기 때문에 한국, 일본과 달리 서구권에서는 극우로 간주되는 Ethnic nationalism에 기반하지는 않는다.
동아시아에서는 초기에 서양의 개념 Ethnism이 종족주의로 번역되고 Nationalism이 민족주의로 번역되었던 바 있다. 동아시아의 경우 유럽과는 달리 비교적 정적인 국경선 내에서 각 민족이 민족국가를 형성해왔으며, 때문에 한국과 일본 모두 (엄밀히는 사실이 아닐지라도) 단일민족국가 신화를 유지하는 편이다.[13] 중국 역시 다민족국가라고는 해도 한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며, 정치적으로 중화민족이라는 허구적 존재를 띄워준다. 때문에 한중일 모두 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편이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구별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동아시아에는 두 개의 중국과 두 개의 한국/조선이 있다는 것.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자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귀화한 디아스포라들이 귀국해서 국적을 취득 혹은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거나, 귀화 절차를 다른 외국인보다 쉽게 해주는 나라들도 왕왕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 중국, 대만, 이탈리아, 알바니아. 특히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를 반환받을 때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중국계 주민들에게 일괄적으로 중국 국적을 부여하였다. 또한 중국이나 대만은 일반적인 외국인에 대한 귀화제도가 없지만, 중국에서 나가 사는 화교들에 대해서는 국적회복 방식으로 귀화가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대만의 경우 할아버지 대에 청나라나 중화민국 국적자가 있으면 국적회복의 방식으로 대만 국적을 준다.
6. 민족주의는 우파만의 사상인가?
일반적으로 민족주의는 좌파보다 우파와 같이 노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유럽에서는 마르크스 이후 세계주의-국제주의를 지향해왔던 좌파 사회주의 세력과 대비되어 우파는 민족주의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걸 "민족주의 우파 vs 반민족주의 좌파" 식으로 도식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14] , 좌파 민족주의(여기서 민족은 nationalism을 말한다) 노선을 고수하는 세력 또한 수없이 존재했다. 제국주의에 고통받는 약소민족 민족주의는 좌파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배격했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와 달리 20세기 들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이 나타난 것이 그 예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런 약소민족은 제국주의 국가가 약화되거나 사라져버리면 민족주의형 독립운동가들이 독재자로 타락하거나, 혹은 ethnism 특유의 인종주의, 극단적 정체성 정치와 배타적 정서 때문에 내부의 약자, 소수자 탄압이나 제노포비아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중 제일 극단적인 사례가 짐바브웨이며, 한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좌파 민족주의 지지자들은 민족 볼셰비키 같이 사회적으로 극우라도 경제적으로 좌파같은 소리하면 은근히 옹호하는 경우가 있다.[15][16]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이 경제적 불평등을 유발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본주의가 문화적 타락과 민족 정체성을 파괴한다는 점(개인 자유의 확대[17] )에서 반대할 수도 있다. 실제로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약소 민족의 통칭 좌익 민족주의라는 것이 존재하기 전에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사상이 존재했는데, 그게 바로 초기 파시즘이다. 1차대전의 영향으로 자본주의, 자유주의, 국제주의적 사회주의 등의 외세의 영향력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우리 민족 공동체(Volksgemeinschaft)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은 앞서 말한 외세의 이념을 배격한 "우리식 사회주의"에[18] 대한 주장으로 이어졌고 그대로 나치로 이어진다.
물론 민족 볼셰비즘이나 제노포비아와 관계 없는 좌파 민족주의(nationalism) 정당도 존재한다. 이러한 정당들은 주로 식민지로 지배당한 역사가 긴 지역 혹은 국가들에서 주로 등장한다. 아일랜드의 신 페인, 스코틀랜드의 스코틀랜드 국민당, 터키의 쿠르드 지역 정당 인민민주당 등. 이들 정당은 민주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융합하여 기존 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 정당들보다 조금씩 더 선명한 좌파 색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다.
서구권에도 내셔널리즘 nationalism과 민족주의 ethnism는 구분한다. 예를들면 르펜이나 트럼프는 nationalist지만 히틀러는 ethnism이라고 보며 nationalism 속에는 좌파가 존재하더라도 ethnism 자체는 거의 white nationalist나 나치의 게르만주의 등 극우적인 이념으로 연결된다.
한편 이러한 분류는 국가마다 다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남한과 북한이라는 정치체제에 대한 충성심과 한민족이라는 민족에 대한 애족심이 교차하여 상당히 복잡한 스탠스를 지닌다. 우선 한국의 주류 정치세력 중에서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내셔널리즘을 공공연하게 거부한 세력은 단 하나도 없다. 한국은 건국 이래 좌우익 세력이 모두 민족주의를 내세워온 역사가 있고, 최근에는 우익 세력이 민족주의에서 멀어져가고 친미, 친일 성향을 나타내면서(뉴라이트 등) 오히려 좌익 계열에서 민족주의가 더 두드러지는 흐름을 보인다. 특히 NLPDR 등은 명백히 좌익 성향인데 서구에서 보기에는 극우와 통할 만한 강경 민족주의를 내세우기도 한다. 인터넷 문화로 예를 들면, 루리웹이나 오늘의유머 등지가 경제적으로는 재벌에 부정적이고 복지를 중시하며, 북한에 대해서 평균 국민 감정 대비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데 반해, 일본에 대해서는 상당히 적대적인 성향을 보인다. 인터넷 진보 세력의 경우 이슬람 계열 난민 문제에 대해서 극렬히 반대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극좌 스탈린주의를 표방해왔던 북한도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우면서 극단적인 민족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7. 한국에서의 민족주의에 대한 시각
서구권에서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경험으로 인해 민족주의라는 인종차별, 인종청소와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와 연관된 멸칭으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지식인 중 일부를 중심으로 이와 같은 비판적인 인식이 있지만[19] 한국의 경우,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프로파간다에 경도된 NLPDR과, 환빠와 같은 폐해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만연하다. 거기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보수층은 친일, 친미, 자유주의 성향이 강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
민족주의 중에서도 반미, 친북 성향의 민족주의의 경우 1980년대 학생 운동권을 중심으로 크게 퍼지기 시작한다. 이는 당시 운동권들이 군부독재정권이 독재에 대한 정당화를 위해 북한에 대한 공포, 적개심을 이용한다거나,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군부독재정권을 지원하고 한반도의 분단 상태를 의도적으로 지속시키려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은 분단 체제 타파가 민주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에 반미, 친북 성향의 민족주의가 크게 대두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민주화가 실현된 1990년대에도 학생 운동권 세력 내에서는 지속되었으며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1990년대 한총련의 구호와 노래를 보면 온통 반미, 자주, 통일에 대한 단어로 뒤덮여 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에 반발하여 벌어진 촛불시위 역시 그러한 반미 성향의 민족주의 발현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 있었던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김산호의 대쥬신제국사 이현세의 남벌(만화) 같은 대중작품과 황우석 사태, 디워 논쟁 등을 보면 민족주의가 매우 강했음을 보여준다.
TV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인 것이, 느낌표(MBC)의 위대한 유산 74434와 같은 프로그램이나 주몽(드라마) 등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예능/드라마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 선수가 부정행위를 저질러서 심판에게 경고받으면 심판을 욕하는 수준이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민족주의가 비교적 약해진 편이다. 대학가에서도 반미자주 민족주의를 설파하는 세력은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고 대학가의 학생 운동은 성평등, 성소수자 인권, 장애인 인권 등과 같이 소수자 보호 중심으로 변모하였다. 또한 2000년대 중후반부터 계속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젊은층의 반감 역시 자연스레 북한과의 일체감을 강조하는 민족주의가 쇠퇴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민족주의자인 백범 김구가 남긴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라는 말에 근거하여, 한국의 민족주의는 외세 침략을 방어하려는 성격이 강한 민족주의이며, 가해자가 된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20] 그러나 당장 한국에서 만주고토와 대마도를 점령해야 한다는 극우적인 주장이 일각에서 지속되고, 호응도 존재하는 것을 볼때, 모든 한국인들이 침략에 반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령 평화적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폐쇄적 성향을 띄고 갈라파고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또한 김구는 확고한 반공주의자였지만, 반공보다는 민족을 더욱 중요시했기 때문에 이것이 미군정과 갈등을 빚는 요인이 되었다. 어쨌든 백범 김구가 의도한 바는 같은 민족이 갈라지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이었으나, 의도한 바와는 달리 북한의 김씨 왕조가 이를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변질시킨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한국이 이스라엘처럼 가해자가 된 피해자 위치에 서지 않은 것은 국력 부족과 분단으로 인한 특수한 상황일 뿐이었다. 2019년 이후 한국 인터넷의 착짱죽짱 드립만 보더라도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21]
현재 일각에서 주장하는 탈민족주의 담론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지식인 사회에서,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반성하며 나온 것을 한국의 지식인들이 수입하였기 때문에, 서구열강 관점의 한계점이라는 주장도 있다. 서구국가들을 분석할때나 적합한 민족주의에 대한 근대주의적 주장[22] 이 탈민족주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모습을 살피면, 이 문제를 현재 한국의 지식인들이 주체적으로 소화해 접근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초기에 서구열강에 대하여 저항적 방어적 성격이었던 일본의 민족주의가, 민족주의 자체의 배타성이 결국에 공격적으로 발전하여, 일본의 제국주의가 되고, 한국이 제국주의로 변화한 민족주의에게, 피해를 입었기에,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세계시민주의나 시민 내셔널리즘으로 바뀌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아시아는 국가 생성 배경이 유럽과 매우 다르다. 유럽은[23] 언어적으로 공통의 뿌리를 공유하며 심지어 언어 간의 경계를 나누는 것 자체가 모호한 경우도 많다.[24] 이렇듯 민족 간의 애매한 경계와 공통 조상의 공유는 자연스레 민족주의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으며 공통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좋은 기초가 된다. 또한 유럽 국가들은 양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민족주의를 꼽게 되고 이에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 통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현재까지도 유럽에서 민족주의라고 하면 나치즘, 전쟁을 떠올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이와는 다르다. 동아시아는 민족 간, 언어 간의 경계가 매우 뚜렷하며 이러한 경계가 수천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이어져 왔다. 따라서 공통의 정체성 공유가 유럽에 비하면 매우 약할 수밖에 없다.[25]
또한 일제강점기에 식민지로 압제당했던 역사적 경험으로, 궁극적으로는 민족주의가 필요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일본이 민족주의적 침략을 반성하지 않는한, 한국의 민족주의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예컨데 박경리 작가는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서구의 시민 내셔널리즘 개념도 어느 정도 논의되었는데, 일본제국이 민족동화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그에 대한 반발심리로 혈연/인종적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시민 내셔널리즘은 묻혀버렸다.
한국은 통일신라 이후 하나의 국가로 고려, 조선을 거치며 오랜기간 단일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해체시키려는 의도로 "민족"이라는 것은 근대에 와서야 생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며 그 전까진 한국에 민족의 개념 같은건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민족"이라는 한자 단어자체는 근대에 생긴 단어이지만 "민족"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개념이나 의식은 그 훨씬 이전부터 동아시아에 있던 개념'''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오드 아르네 웨스타드 교수는 '''한국에서 하나의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은 현대 nation의 개념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오래되었으며 중국과도 매우 다르고 일본에서 발견되는 것보다도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 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나라 없는 민족, 나약한 민족의 비참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광복을 맞은 이후 '다시는 나라를 빼앗겨선 안된다'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21세기가 되어서는 점차 민족주의에 대한 의식이 옅어져 가면서 이것이 일부는 세대 갈등으로도 나타났다. 특히 1990년대생들이 성인이 된 201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대단히 옅어져서 오히려 국뽕 딱지가 과도하게 붙는 것과 같이 민족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게 되었다. 특히 한류의 유행으로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한국인들의 문화적 컴플렉스도 많이 극복되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로도 민족주의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고 오히려 적정 선에서는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강하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주변 국가들, 특히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 및 도용 때문이다. 중국의 과도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2010년대부터 2020년대 기준으로 한국 문화가 그래도 인지도가 생긴 곳은 거의 구대륙(유라시아) 및 북미권에 집중되어 있다. 문제는 중국이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개발이 미진해 한류의 영향력이 약한 지역에 중국이 은근슬쩍 한국 문화들을 자기네 고유의 전통 문화인 양 속인 채 발을 먼저 들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소시지나 햄버거 등을 국적을 따지지 않고 향유하듯이 문화를 국경 없이 향유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세계적으로 서구권의 음식들은 딱히 국적을 따지지 않고 그냥 즐기는데, 서구권 그 어느 나라도 과도하게 '이건 우리네 전통 음식' 운운하며 홍보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전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한국에서도 민족주의가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 것'과 '너희 것'이라는 구별 의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강하다. 한국이 진정으로 탈민족주의에 성공하려면 일본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이 우선이며, 특히 중국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다시 언급하자면 한국에서 탈민족주의가 주류로 자리잡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국가가 바로 일본과 중국인 셈이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이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창궐하는 일뽕 역센징들과 자국 혐오 국까들의 여론몰이와 어그로들로 인해 오히려 민족주의화 되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까가 빠를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8. 같이 보기
- 시민 내셔널리즘 - 내셔널리즘으로 분류되지만 혈연적 개념의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1] 내셔널리즘을 서구권의 시민 민족주의와 동구권의 종족 민족주의로, 혹은 프랑스형식과 독일형식으로 분류된다고도 말한다. 프리드리히 마이네케의 구분법을 한스 콘이 학문적으로 정의한 이분법이다.[2]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를 삼한(三韓)이라고 칭하는 등 외부와는 구별된 동족 의식이 있었다.[3] 고구려의 남진 정책 또한 일부 영향을 끼쳤다.[4]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에 가서야 나오게 되지만 "외부와는 다른 하나의 한반도 고유 토착 세력" 정도의 의식은 이때도 있었다. 참고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 삼국유사이다.[5] 혹자는 미국에게도 우호적이지 못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상들이 보통 그렇듯, 한국의 민족주의도 성향에 따라 조금씩 추구하는 바가 달라지기 때문에 함부로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6] 정확한 원문은 'It is quite possible, to be both. I look upon myself as a man. Nationalism is an infantile disease. It is the measles of mankind.' saturday evening post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발언.[7] 패전의 위기를 역이용해 민족이 위험에 처했다며, 국가의 결집과 전쟁 여론 동요를 꾀하는 민족주의가 전체주의 및 파시즘과 결합했을 때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8] 이탈리아어 회칙에서 nazionalismo라 되어있다. 민족주의냐 내셔널리즘이냐로 한국어 번역 논쟁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 민족주의라 번역했으므로 존중 차원에서 그대로 나뒀다.[9] 이탈리아어 회칙: Altri ostacoli si oppongono alla edificazione di un mondo più giusto e più strutturato secondo una solidarietà universale: intendiamo parlare del nazionalismo e del razzismo. È naturale che delle comunità da poco pervenute all’indipendenza politica siano gelose di una unità nazionale ancora fragile, e si preoccupino di proteggerla. È pure normale che nazioni di vecchia cultura siano fiere del patrimonio, che hanno avuto in retaggio dalla loro storia. Ma tali sentimenti legittimi devono essere sublimati dalla carità universale che abbraccia tutti i membri della famiglia umana. Il nazionalismo isola i popoli contro il loro vero bene; e risulterebbe particolarmente dannoso là dove la fragilità delle economie nazionali esige invece la messa in comune degli sforzi, delle conoscenze e dei mezzi finanziari, onde realizzare i programmi di sviluppo e intensificare gli scambi commerciali e culturali.[10] 한 언어의 계통을 논하는 것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주변 언어들에서 차용한 표현은 아닌지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고 매우 객관적이고 공정한 연구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니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연구 성과가 사실상 없다시피하다.[11] 여기서 독일 통일이란 1990년 동서독의 통일이 아닌 19세기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 통일을 가리키는 것이다[12] 대표적인 예로 베네수엘라가 있다.[13] 민족의 범위를 어디로 설정하느냐의 차이가 있긴 하나, 유전자적 의미의 민족을 의미한다면, 한국 역시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다. 한국인은 스키타이 등의 북방 유목민족과 한반도 남부의 토착민족간의 혼혈을 통해 발생한 민족이며, 한반도에 국가가 형성된 이후에도 중국이나, 여진, 거란 같은 유목민족들, 일본에서도 유입되었다. 일본 역시 한반도에서 건너간 외래 민족과 아이누로 대표되는 토착 민족들이 아이누 정벌 과정에서 피가 섞여 현재의 일본인 유전자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류큐 왕국을 병합하여 오키나와 현으로 삼는 등을 통해 다양한 출신자들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보통 단일민족이라고 얘기할 땐 이런식의 얘기를 하는게 아니고, 어떤 한 국가가 아주 오랜시간 단일 문화와 단일 언어, 단일 역사를 공유하면서 그 구성원들이 서로 동질성을 장기간 공유해오며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다면 단일민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1000여년 이상을 하나의 국가로 구성해 살아오면서 그런 공유를 해오며 정체성을 이루어 왔다. 완벽히 일치하진 않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동물에 비유를 들자면 셰퍼드는 인위적으로 기존의 여러 품종들을 교배해 만든 새로운 품종이다. 하지만 그게 "셰퍼드"라는 하나의 품종으로 정립되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이 셰퍼드는 순종이다(또는 순종이 아니다)'와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그리고 호수에 잉크 몇 컵 섞는다고 물이 변하는건 아니듯 중간에 소수 외국인들이 들어왔었다고해서 한국인의 ethnic이 사라지지 않는다.[14] 당장 프랑스혁명기 자코뱅부터가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성향을 모두 띄었으며, 1848년 유럽 중심부를 휩쓴 혁명에서도 빈 체제로 대표되는 구 봉건세력의 질서에 반기를 든 시민들이 공화제와 함께 민족국가 수립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대립하던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은 국가를 부정한 집산주의 아나키스트였던 동시에 범슬라브주의 옹호론자였다. 반면 부르봉, 합스부르크, 비텔스바흐 등 봉건귀족세력이 오히려 국경을 넘어 맺어진 혈연관계에 따라 생판 모르던 나라를 물려받는 등 탈민족/초국가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15] # 대표적으로 한국에선 박노자가 이런 주장을 한 적이 있는데, 한국의 NL은 순진해서 그런 이론을 받아들였다고 쳐도, 민족 볼셰비키는 20세기 초에 독일 파시즘에 감명을 받은 전(前) 사회주의자들과, 민족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나라를 재탄생시키기 위해(당시는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이 삥뜯기던 시절이다), 우리식 사회주의 이론을 이용한 초기 파시스트들의 융합을 거쳐 탄생한 이념이다.[16] 이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고 서양쪽 좌파도 마찬가지 인데, 그쪽에서는 자국의 민족주의는 비판하지만 비서구, 비백인의 민족주의 경우 "동양은 다르다"라는 '''오리엔탈리즘'''까지 섞여서 더심한 경우도 많다.[17] 좋았던 옛날과는 달리 젊은이들이 이상한 문화에 빠져있고, 여자들이 집안일 안하기 시작하니까 "이게 다 자본주의에 의한 타락 때문이다"라고 결론 내리면서 민족주의적 반자본주의(민족 사회주의)가 싹트는 것. 마르크스주의자들 중엔 파시즘이 사회주의 내지는 반자본주적 성향을 가진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류들이 있는데, 자본주의자들에 의해 실권을 잃었지만 엘리트 마인드를 가진 중간계급이 좋았던 옛날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강령으로 대중을 선동하여 반동을 이끌 것이다는 주장은 칼 마르크스가 직접 공산당 선언에서 '''봉건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경고한 바 있다.[18] 독일의 파시스트인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국수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이며 민족의 이익을 위해 계급투쟁을 버리고 조합주의로 전 민족을 단결시킨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를 주장한다.[19] 민족주의가 국수주의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나온 것은 1945년 이전까지의 독일과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정책을 시행했던 식민제국으로 인한 부정적인 사례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20] 백범 김구가 평화주의적 민족주의를 내세우긴 했지만, 본인은 평화주의자가 아닌데 평화주의자로 잘못 서술되어 있었다. 백범은 광복후 국내에서,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백의사를 동원하여 백색테러를 시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21] 중국의 전체주의, 패권주의('중화민족 부흥'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주의적이다), 반인권주의 태도의 비판은 마땅하지만, 자유주의적 관점의 비판이 아닌, 인종적으로 혐오하며 인명을 경시하는게 문제다.[22] 서유럽국가도 아닌, 유럽에서도 발칸반도 국가들 같은 특수한 상황에나 적용될법한 주장을 보편인양 주장하는 경우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23] 헝가리 등 몇개의 예외를 제외하면 유럽 언어들은 모두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24] 예를 들어 스페인 서부의 갈리시아 지역에서 쓰이는 갈리시아어는 스페인어보다 오히려 포르투갈어에 더 가깝다.[25]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가 강한 근거는 되겠지만, 민족주의로 인한 문제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