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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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통 문화
2.1. 의식주 문화
2.1.1. 식문화
2.1.2. 의복 문화
2.1.3. 주거 문화
2.2. 음악
2.2.1. 나무위키에 등재된 중국 음악 목록
2.3. 미술
2.4. 문학
3. 생활
3.1. 교육
3.2.1. 강한 비종교성과 국가 무신론
3.2.2. 불교
3.2.3. 기독교
3.2.4. 이슬람
3.2.5. 신흥종교 및 사이비 종교
3.3. 생활 리듬
3.4. 해음과 금기
3.4.1. 숫자
3.4.2. 선물
3.5. 예절
3.6. 꽌시(关系)와 친구
4.5. 그 외의 스포츠
4.5.1. 올림픽 종목
5. 문화 콘텐츠
5.1. 동만(动漫: 애니메이션(动画片)&만화)
5.5.1. 중국인이 한국 드라마에서 발견한 독특한 점
8. 기타
9.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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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세기 초반의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해 한중 수교가 이뤄질 때까지 양국교류가 약 90여년간 단절되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중국의 현대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1] 중국 문화는 수천년 간 인접국 대한민국, 일본, 베트남한자를 비롯해 거대한 영향을 미쳐왔으나 근현대에 들어서 '''이런 저런 정치적 대혼란이''' 발생하면서 많은 역사와 문화가 파괴되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로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보존이 공식담론이 되어 공자맹자 등 옛 위인들이 재평가되고 취푸의 공묘가 복원되거나 하는 등 주요 유적지와 문화재는 복원되었지만, 경제개발 과정에서 배금주의가 팽배하여 베이징 올림픽 당시 베이징의 후통이 철거된다거나 상당수 유적지를 관광회사가 운영하여 고택들을 호텔로 개조한다거나 하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2000년대 이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중국 예술가들의 운동은 활발하다. 그래서 중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전통 문화의 재조명과 더불어 현대문화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발전하고 있다. 중국의 고전문화는 17세기부터 유럽에 시누아즈리라는 유행과 중국애호가(sinophile)라는 단어를 만들었을 정도고, 이에 기반한 여러 다양한 현대문화도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중국이 소프트파워가 약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나라는 다른 신흥 개도국과는 달리 엄청난 문화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시 문화대국에 등극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검열'''이 중국 문화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검열은 2010년대 이후로도 현재진행형이며 예술 발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부터 제재를 받고 있다. 한때 검열을 완화시키는 움직임이 있기도 하였지만 2015년대에 들어와서는 시진핑 1인 독재 체제를 굳히기 위해 다시 검열을 빡세게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비록 드라마나 영화, 게임에 있어서 괄목한 성장을 했기는 했지만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지적이 많다..중국/문화 검열 문서 참조.
사실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강했던 역사가 있는 나라들은 중국 문화도 자기들의 문화와 꽤 많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현재도 이런 오해[2]들이 있는 편이지만 나라가 있는 지역마다 자연환경과 조건이 다른만큼 문화가 좀 많이 다르다. 보편적으로도 거대한 영토에서 사는 사람들과 작은 영토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만들어 온 역사도 다른 경우가 많고 상당히 마인드의 차이가 나는 경우들이 많다.
대체로 근대 이전 상대적으로 문물의 힘보다 인간의 힘에 비중을 두고 거대 제국을 건설한 민족들은 외향적 성향이 생각보다 강해서 개척이나 모험 같은 도박적인 성향이 있는 활동들도 잘했다.[3] 중국만 봐도 해로를 딱히 중시하지 않아서 바다로는 덜 나갔지만[4] 육로로는 이미 한나라 시절에 실크로드 개척 및 히말라야 너머의 인도랑 한반도까지 중국인들이 돌아다녔다. 후한서 등의 기록에도 한나라 원제의 명령으로 서역 지방 개척에 나섰던 서역 부도호 천탕(陳湯)이 기원전 36년 골칫거리이던 흉노를 대파시키는 가운데 머리가 노랗고, 코가 우뚝한 이상한 모습의 병사 1천여 명의 포로를 사로잡았다 같은 내용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도 개척에 사람들을 보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던 한반도 국가(고려, 조선 등)와 일본과는 다르게 중국은 개척에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확실히 한국과는 상대적으로 자연환경의 차이도 있고 넓은 영토에서 온갖 인간들과 온갖 역사[5]를 경험해서 그런지, 학벌에 대한 태도도 확실히 좀 한국과 다르기는 하다. 학벌 항목 참조. 한족 우월주의자들도 혈통적 민족 우월주의자들과 비교를 하자면 많이 다른 면모를 보이는데, 혈통보다는 "왜 너희들은 한족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족이 되려고 하지 않느냐?"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통일, 통합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 문화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을 좋아하는 문화가 있다.
지역별로 문화적 차이가 생각보다 심하게 나서 같은 중국인끼리도 컬쳐쇼크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 경제발전 궤도에 있어서 한국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한국과 비슷한 면도 많으며 한국의 수십년전 모습을 답습한 경우도 있기에 이 점에 있어서 익숙함이 들수도 있다. 사실 대중가요와 드라마, 영화를 비롯한 중국의 대중문화도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적인 문제점도 한국에서 나오는것과 어느정도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교육열이나 아파트 문화, 야근, 음주문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알리페이, 위챗페이로 대표되는 핀테크나 마천루와 지하철, 고속철도, 고속도로 같은 엄청난 속도의 인프라 건설 속도처럼 중국이 한국보다 발달된 부분도 사실 있기는 하다.

2. 전통 문화


중국의 전통 문화는 중화민국, 홍콩, 마카오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의 전통 문화기도 하며 이들도 중화권인 만큼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 옛날 악습으로 계투가 있다.

2.1. 의식주 문화



2.1.1. 식문화


중국에서는 의식주라는 말 대신 식의주(食衣住)라는 말이 쓰이기도 하는 등 음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일부 지역의 악습으로 전통 시장에서 야생동물 고기를 판매히는데 이것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6]

2.1.1.1.

차의 근원지인 중국 아니랄까봐 술 못지않게 차도 많이 마신다. 사실 거의 식수 대용으로 마실 정도이다. 화북지방의 경우, 특히 베이징의 경우엔, 물에 석회질이 녹아나오고 흙 냄새가 강하게나는 경우가 많아서, 대개 물을 끓여서 를 달여 마신다. 커피는 그다지 인기가 없지만 요즘은 수요가 늘고 있다는 듯. 동네가 넓다보니 차를 마시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아래는 2005년까지 지역별로 차를 즐기는 방식이다.[7]
  • 베이징: 차를 마시면서 공연을 본다. 북송 시대부터 있어왔으며 경극이나 음악공연,재담 등을 보여준다. 베이징의 라오서 차관이 유명하다.
  • 쑤저우: 정원이나 풍경을 감상하면서 차를 마신다. 중국 내 명승지나 공원에서 이러한 모습을 자주 볼수 있다.
  • 광저우: 차관과 식당이 결합되어 있다. 당송시대에 상인들이 상담을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현재는 시민들의 일상 생활이 되었다. 간단한 식사를 같이 하는데 종업원이 수레를 밀고 다니면 손님들이 음식을 집는 방식이다.
  • 쓰촨: 이곳의 차관은 오락과 휴식의 기능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기서 차를 마시면서 호박씨를 까먹거나, 신문을 보고, 장기를 두며, 하루종일 수다를 떤다. 한번 입장하면 하루 종일 있어도 돈을 안받는다. 카페와 비슷하려나...?
더불어 중국에서는 결혼식을 할 때에도 서로의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려 차를 교환하며 마신다고도 한다.

2.1.2. 의복 문화


전통 의상은 한푸, 치파오 문서 참고
그러다가 192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인민복을 일상적으로 많이 입게 되었고, 특히 1949년에 중공이 대만을 제외한 나머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화되면서 너나할것없이 인민복을 입는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는 현대식 복식을 갖추어 입는 경우가 많아졌고, 또한 양복이나 티셔츠 같은 패션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현재에도 선호된다.
하지만 2020년 말부터 중국의 한복 왜곡 논란을 일으키는 등 한국의 전통복식인 한복을 자기네 소유로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1.3. 주거 문화


좌식 생활을 하는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입식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본래 중국도 한나라때까진 좌식생활권이었다. 유비가 돗자리 장수 출신이었다는 유명한 예도 있다. 그러나 위진남북조시대, 오호십육국시대를 거치며 입식생활을 하는 이민족들이 칩입해오고 그들의 입식문화가 보편화되면서 바뀐 것이다.
그러나 현대화와 이촌향도 현상을 겪으면서 아파트 문화가 널리 퍼졌다. 특히 주요 대도시 지역에서는 아파트 건축이 매우 활발하여 사실상 한국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물론 단독주택 수요가 없는 건 아니고 시골이나 중소도시, 아직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아직도 단독주택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며 부자들의 경우에는 호화 단독주택을 짓고 살기도 한다. 여러모로 한국과 비슷한 풍경이다. 아파트의 형태는 가지각색이라서 서민아파트에서 초호화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지방정부와 건설회사들의 주수입원이라는 점도 한국과 같다.

2.2. 음악


중국의 전통 음악은 역사가 수천 년이며 얼후, , 적자 등 전통 악기들은 그 독특한 음색 덕분에 중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애호가들이 많다. 전통 음악을 바탕으로 경극등 극문화도 발달한 편. 현대 대중음악의 경우 아직 덜 알려진 편이고 발전이 다소 늦지만 중국 전통 악기를 사용, 전통 음악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음악과 가수들이 차츰 인지도를 쌓고 있다. 이런 쪽으로 유명한 그룹이 여자십이악방(女子十二乐坊). 한국에서는 한때 국악 현대화의 롤모델 쯤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중국 대중 음악 장르 중에 고풍곡(古風 혹은 古風曲 혹은 古風歌曲)이라는 장르가 있는데 중국 전통음악 멜로디를 발라드, 락, 일렉 등에 접목시킨 장르다. 개인의 창작곡도 있고 가요나 무협, 게임 OST 중에서도 고풍으로 분류되는 것도 있다[8]. 대만에서 작곡한 것들의 비중도 높고 간혹 일본음악을 리메이크, 표절한 것들도 있지만 중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 때문에 중국 뿐 아니라 동남아나 서구권에서도 고풍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종종 있다.[9]
예시
위의 고풍가곡이라는 특유의 장르가 생겨난데에는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반이 OST라는 점도 원인 중 한가지로 손꼽힌다. 중국 음악시장에서 팔리는 음원중 3분의 1이 OST 음악이다.
음악시장은 2000년대에는 인구에 걸맞지않게 굉장히 작은 편이었다. 애초에 검열의 여파가 있다고는 하지만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로는 사랑노래에 대한 검열이 풀렸기는 풀렸는데 개혁개방을 했다고는 하지만 2000년대까지는 중국인들의 평균 소득수준이 썩 높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또한 인터넷이 보급되는 과정에서 따오판이 위낙에 판을 쳤던것도 음악시장 성장에 걸림돌이었다. 그래도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이전보다 저작권 의식이 많이 개선되면서 음악시장이 인구수준에 걸맞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성장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2010년대 들어서 중국에선 K-pop처럼 대중성있는 음악인 C-pop을 주야장천 만들어내고 있으나... 문제는 결과가 썩 좋지 않다. 차라리 J-pop처럼 본인만의 색채라도 뚜렷하다면 모르겠지만, 본인만의 색채가 없다는 게 문제점. 한국의 K-pop이 무섭게 성숙해지고 있고, BTS나 블랙핑크같은 그룹들이 미국에서 데뷔를 하니, K-pop 따라하기를 하고 있다. 당장 유튜브에 C-pop이라고 치면 한국인에게 많이 익숙한 스타일과 안무의 노래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일부 무개념 중국인들이 K-pop이 중국음악을 따라했다고 말하나, 다들 개소리로 치부한다.
C-pop이 망한 이유는 중국인들이 대체로 나이트클럽 같은 감성의 음악 공연을 좋아하는 정도의 디자인 감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문화 탄압으로 인해 정체된 중국이라면 통할지 모르지만 중국이 간섭한 한국은 음악 공연 기술이 중국보다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발달해 있다. 당연히 현대 시대에 맞지 않는 뒷골목 나이트클럽 감성이 외국에 통할 리 없다. 일례로 한국인 안무가가 중국에 한 K-Pop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준비하러 파견을 나갔는데 당시 중국인 투자자가 준비가 다 끝난 마당에 기존안을 뒤엎고 문제의 나이트클럽 같은 감성의 공연으로 다시 준비하라고 강요해 망쳤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있었고 중국인들은 이를 받아들이긴커녕 비난글을 쏟아냈다고 한다.
중국의 도시 광장이나 공원같은 곳을 가보면 광장에서 단체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어르신이나 중장년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단체로 추는 춤을 광장무라고 한다. 지금은 덜하지만 마오쩌둥 당대에 집단체조와 매스게임 등 단체체조를 많이 할 정도로 단체로 뭘 하는 문화가 성행했고, 광장무도 마오쩌둥 당대부터 장려해서 성행해왔는데 중국이 가난했던 시절에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이었고 개혁개방 이후로도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실컷 추면서 사교활동 및 취미생활도 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건 덤이다 보니 광장무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젊은층들 사이에서는 광장무를 아저씨나 아줌마, 어르신들의 문화라면서 고루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으며[10] 주택가 근처나 학교 운동장에서 광장무를 하다가 소음문제로 갈등을 빚는다거나 운동을 하려는 청소년들과 광장무를 즐기는 아재들간의 자리다툼을 하는 경우도 간간히 나온다. 어쨌든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러한 광장춤 문화가 북한에서 위낙에 성행하다 보니 북한이 대표적이라지만 사실 중국도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소음 등 문제로 규제에 들어간 상태이다.#

2.2.1. 나무위키에 등재된 중국 음악 목록



2.3. 미술


중국 미술 문서 참조.

2.4. 문학


고전문학은 한시고전소설#s-2.2, 근현대 문학은 문예사 관련 정보#s-2.1.3 문서 참조.
중국문학의 시대 구분 기준은 한국과 다르다. 청대까지의 문학을 고대문학, 1840년 아편전쟁부터 1919년 5.4운동까지의 문학을 근대문학, 5.4운동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30년간의 문학을 현대문학, 1949년 이후의 문학을 당대문학으로 분류한다. 일본의 가부키와 노가 서구로 일찍부터 번역되어 영향을 준것과 마찬가지로 서상기, 모란정, 도화선, 장생전 같은 중국 고전 희곡들도 동양의 셰익스피어란 찬사를 들으며 서구에 번역되어 읽혀졌다.
한국인들은 문화대혁명만보고 막연히 중국문학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부침을 겪고도 여전히 높은 위상을 자랑한다. 세계 최대 인구대국이라 동북아에서 가장 압도적인 독서인구와 작가풀을 가지기에 아무리 정부에서 검열을 하고 통제를 해도 유수의 작가들이 튀어나온다. 성인인구 1년 평균 독서량이 한권이 안되고 돈되는 특정 경향이 독점하는 한국이 감히 비길바가 아니다.

3. 생활



3.1. 교육


한국, 일본과 비슷하게 교육열이 세기로 유명하며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대학진학률은 한국, 일본보다는 낮지만 인구가 많은데다가 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대학입시(까오카오)는 물론이고 고입입시(중카오)까지 봐야하기 때문에 주요 대도시 지역의 체감 교육열은 한국, 일본보다도 세며, 사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의 경우에는 야간자율학습이 의무다보니 저녁 시간까지 학교에 있어야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밤 늦게까지 굴리는 일은 없다고는 하지만 이것도 등교시간이 6시 30분 정도이다보니까 그럴뿐이고[11], 0교시를 하는 학교가 적잖이 있다. 그러면 등교 시간이 새벽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적지 않은 편. 물론 그 대신에 낮잠으로 보충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공부를 한다해도 안되는 학생들도 있는데 집안이 부유할 경우에는 대만이나 한국, 유럽, 미국 등으로 도피유학을 가는 경우가 적잖이 있다. 실력이 되는 학생이면 영미권 명문대학교로 입학하는 경우가 많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유학생들이 차고차게 되었기 때문에 유학을 간다해도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하고 어쩔수 없이 눈높이를 낮추어 취업하는 경우도 많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과 비슷한 풍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교육에 대해서는 별 다른 특별한말이 나오지는 않다. 다만 이게 해외유학을 보냈을때 중국계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아이러니도 있기는 하다.
한국과 다르게 9월 학기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 호주, 프랑스 등 9월 학기제를 채택한 나라들이 그렇지만 여름방학이 2개월 안팎으로 길고 겨울방학은 1개월로 짧다.[12] 또한 소련의 영향을 받아서 학교 이름이 숫자 이름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적으로 6-3-3-4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지역에 따라서 학제가 다른 경우도 존재하기는 한다.

3.2. 종교


중국도교유교의 발생지이며, 불교동아시아 각국에 퍼뜨린 나라로 종교적 역사가 깊은 나라이다. 중국 인민들은 불교와 도교 등 전통적인 종교와 함께 갖가지 민간 신앙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이후 외국 세력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이슬람교,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현재 중국인들이 신봉하고 있는 종교는 주로 불교, 도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등이 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각종 신자는 총 1억여 명에 달하며, 종교 활동 장소는 8만 5천여 처, 종교교직 인원은 약 30만 명, 종교단체 3천여 개가 있다고 한다. 종교단체들은 또 종교 교직인원을 육성하는 74개의 종교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도교는 세가 현저히 약화되고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등 기독교 교세가 늘고 있다.
중국의 전국적인 종교단체에는 중국불교협회, 중국도교협회, 중국이슬람교협회, 중국천주교애국회, 중국기독교삼자(三自)애국운동위원회와 중국기독교협회 등이 있으며, 각 종교단체는 각자 단체의 규정의 의하여 지도자와 지도기구를 선거•구성한다.
중국의 국가종교사무국은 국무원이 종교사무를 관리하는 기능 부서이다.
워낙 땅이 넓고 민족 구성이 복잡하다 보니 중국의 종교는 민족 및 지역에 나뉘어져 집중되었으며, 동일한 종교 내에서도 교파가 많다. 예를 들면 현재 중국 불교는 선종, 장전, 소승 등 3개 종파로 나뉘어 졌으며, 그 밖에도 밀종, 상좌부 등이 있다.
민족별로 회족, 위구르족, 카자흐족, 타지크족 등의 민족이 거주하는 서북지역에는 주로 이슬람교를 신봉하며, 다이족, 부랑족, 덕앙족이 거주하는 운남지역에는 주로 남방 불교가 자리잡고 있다. 또 중국 남방의 묘족과 요족[13]은 주로 가톨릭개신교그리스도교를 믿으며, 한족은 주로 도교를 믿고 그 다음이 대승불교였으나 공산화 직후 70%가 무신론으로 돌아서고 3%가 대승불교를 믿는다. 그런데 공산주의 체제로 인해 종교가 억압되어 20~30대의 젊은 세대는 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과거 불교 전래역사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당연하겠지만 교회나 성당 그리고 모스크가 뭐하는곳인지도 모른다.
드물게 티베트의 영향도 있어서인지 티베트 불교를 믿는 한족들도 있다고 한다.[14][15]

3.2.1. 강한 비종교성과 국가 무신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종교는 아편과 같다고 해서 배척되었다. 특히 문화대혁명 때는 수천년 동안 내려오던 종교적 유물들이 파괴되고 또 공자맹자와 같은 전통적 사상들까지 외면당해야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현재 중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종교가 영향을 못 미치는 비종교적 국가로, 2015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중국 국민의 61%가 확고한 무신론자라고 밝혔다.''' 무신론자의 비율로는 세계에서 가히 독보적이다. 여기에 비종교적이라고 답한 사람까지 합하면 90%에 달해 북유럽[16]이나 한국[17]의 거의 2배에 육박하고, 일본[18]홍콩[19]보다도 높은 압도적인 비율이다. 역시 미국하고도 비교당하며 미국은 인구의 약 50~60%가 종교적이라고 조사된다.
그러나 중국의 강력한 비종교적 성향은 공산주의의 영향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 예로 동구권인 러시아루마니아, 세르비아, 폴란드 등은 70%가 종교적이라고 답했고,[20] 베트남은 비종교 인구와 무신론자가 각각 41%, 13%로 중국보다 훨씬 적다. 동아시아 특유의 세속적 성향과 기독교에 대한 민족적 반감이 공산주의 특유의 국가 무신론 정책으로 인해 강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 이전 전근대 시기에도 한족 지식인들 상당수가 고대부터 괴력난신을 경계하는 철학 사조 등으로 서양 종교에 대한 회의주의가 강했다.
현재 중국은 공산주의에 입각한 국가 무신론을 추구하고 있다. 법에는 엄연히 종교의 자유는 존재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21], 실제로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정부의 제한이 너무 심하다.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덩샤오핑 시기에 종교에 대한 관용정책을 실시하여 왔지만, 이는 정부 통제를 통한 제한된 신앙의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1982년 헌법을 통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으나, 이것은 1982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제정된 ‘제19호 문서’와 1991년 공표된 ‘제6호 문서’, 그리고 1994년 반포된 ‘종교활동 장소 관리조례’ 등을 통해 정부의 정책과 통제에 협조하는 종교만이 종교활동을 인정받는 엄격한 통제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1999년 제정된 ‘사교조직 해체 및 사교활동 방지와 처벌에 관한 규정’과 '반사교 법률’ 등을 통해 조직을 갖춘 종교단체가 정부에 등록을 하지 않으면, 사교로 간주하여 조직을 해체하거나 벌금 부과 및 노동교화 등을 강제 집행할 수 있는 엄격한 통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의 종교 관련 웹사이트 역시 대부분 차단되고 있고, 정부는 인터넷망을 통해서 종교 관련 콘텐츠가 중국인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8년부터 이러한 성향은 강해지는 추세이며, 종교장소에 중국 국기를 의무적으로 설치, 미성년자의 종교장소 출입금지 등의 조치들도 새로 시행되는 중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한인교회와 한인사찰도 있어 예배/미사나 예불이 가능하다. 당연히 외국인의 종교활동은 자유라 교회 및 절에 다니는 데 제약이 없다. 대신 이런 활동에 중국인을 끌어들일 수는 없고[22], 외국인의 종교 활동 역시 허용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며, 포교가 금지되어 공공장소에서 포교활동을 하면 추방당하기도 하고, 승려나 사제, 목사 등의 종교인은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다.
물론 국가적인 관점이나 분위기가 반종교적이라는 것이고, 중국인의 비종교성이 중국인들이 미신을 완강히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신을 믿거나 종교적인 사람들도 잘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미신적인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거나[23]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탄압했고, 지금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에 오르려 할 때 종교인이라는 점은 분명 감점 요인이 되다보니 공공연히 드러내기 어려울 뿐이다. 공산당 내에서도 유물론자가 아니라면 미신적인 것들을 믿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과거 중국 왕조 중에서는 북위나 당나라 등 정식으로 선포하지는 않았어도 거의 국교 수준으로 불교를 지원하는 국가가 상당히 많았다. 특히 한족의 중화주의를 억누르고 유목민과 한족의 융화를 추구하던 유목 정복 왕조에서 이런 경향이 강했다.

3.2.2. 불교


중국에서 불교 신자 수는 보통 전체 인구의 10~16%[24]로 보고 있지만 불교계에서는 6억 6,000만명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의 불교 신자수는 조사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확히 계산하기는 힘들며, 중국 불교 신자 수가 전세계 불교 신자 수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세계 불교 인구 수도 조사방법에 따라 천양지차로 나타난다. 2000년대 이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신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기독교나 이슬람교보다는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은근히 불교를 밀어주는 편이다. 중국의 젊은 층이 종교를 찾으며 기독교와 불교가 둘 다 늘고 있는데 북중국은 대승 불교[25], 허난성 + 중국 남부 해안 도시들은 가톨릭성공회로 나눠 갖는 모양새다.
화남 지방에서는 불교를 무시하고 화북 지방에서는 불교가 건재한 상황은 송나라와 요나라 때부터 이어진 현상이다. 요나라는 한족과 거란족들의 융화를 추구하며 불교를 지원한 반면, 송나라에서는 성리학이 나오며 지식인들이 불교를 멀리하게 되었다. 화북 지방과 화남 지방 지식인들의 불교에 대한 인식은 청나라 때면 더욱 심각하게 갈라지는데 화남 지방의 한족 지식인 상당수는 불교를 무지한 대중이 믿는 기복신앙 쯤으로 매우 괄시하였다.
중국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으로 현재 중국 내 불교 신자는 최소 2억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의 증가세를 감안하면 최소 몇 년 내에 4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중국을 제외한 세계 불교 신자가 3~4억 명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향후 국제 사회에서 중국 불교의 위상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적극 지원 속에 외형의 대부분을 문혁 이전 상태로 복원한 중국 불교는 출가 승려로 운영주체를 완전히 전환한 중국불교협회를 중심으로 교육, 포교, 신행, 학문 등에서도 밀도 높은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중국 불교는 중국불교협회를 중심으로 문화대혁명 시기에 잃어버린 옛 영광을 재현하는데 성공하면서 동남아는 물론 세계 불교계에서의 주도권 쟁취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세계불교포럼을 주최하면서 중국 불교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불교 단체는 태국의 세계불교도우회와 대만의 세계불교승가회가 있다. 중국이 세계불교포럼을 창설하려는 것은 대만을 견제하고, 세계 불교계를 중국이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 결과 2009년 세계불교포럼에는 전세계 50여개국에서 1,500여명의 승려들과 불교학자들이 참석했다. 따라서 “중국 불교의 패권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불교의 이러한 움직임은 1966년부터 1977년까지 10여년 동안 이어진 문화대혁명 때 파괴된 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대부분 복원하면서 얻은 자신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불교를 이끄는 중국불교협회의 중심 인물이 공산당의 신뢰를 받으며 활동해온 재가자에서 출가 승려로 전환됐고, 정부와의 공조에 기반해 몸집을 불리고 있다. 물론 외형적 성장과 함께 내적 역량을 강화하면서 종교로서의 역할까지 확대하고 있다.
중국 불교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한국과 일본 불교계는 아직까지 뚜렷한 대응이 없는 편이다. 중국 측이 매 2년마다 세계불교포럼을 개최하겠다고 선언하고 불교가 급격하게 부흥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정체국면을 맞이한 한국일본 불교가 더 이상 중국과 상대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그러나 계율 무시, 금전향락주의 등 문화대혁명 당시 불교 탄압의 빌미가 됐던 현세 이익 추구의 병폐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개방 정책에 따라 사찰재산이 인정되면서 발생하는 절 관리의 문제를 비롯해 문화대혁명 당시 수많은 승려들이 환속하면서 생겨난 장년층 승려의 공백, 전국적으로 3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학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가불자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점 등은 중국 불교가 남북조 시대부터 당나라 시대 수준의 전성기를 회복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3.2.3. 기독교


중국에서는 최소 4400만에서 1억 3천만 사이의이 그리스도교인이 있다. 통계폭이 매우 큰건 중국 공산당 산하 어용 교회만을 공식 통계로 냈을때는 2012년 공산당이 인정한 개신교 조직의 삼자애국운동(三自爱国运动)와 중국기독교협회(中國基督敎協會)는 약 2000만,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 6백만이고, 2018년 중국 공식 통계상으론 약 4400만이다. 그러나 중국의 종교 정책에 반발한 지하교회 교세가 2~3배에 달한다는 추정이 많고, 낮에는 공식교회, 밤에는 지하교회를 오가는 신도수도 상당하기에 현재 중국 기독교인의 숫자는 추정치일뿐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영국 정부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대략 공산당 산하 어용교회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인구와 맞먹는다.
지역적으로 북중국보다는 영국포르투갈, 프랑스 등 서양세가 자주 드나들었던 남중국에서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아예 기독교 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이나 마카오는 중국 전체적으로 비교했을 때 유난히 기독교세가 강한 편이고, 프랑스 조계가 있던 상하이가톨릭 교세가 강해 불교인이 대부분인 베이징과 비교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기독교가 인기있는 종교는 아니었다. 16세기부터 가톨릭이 전래되고 수용되기도 했지만 청나라 중기부터는 탄압을 면치 못했으며, 아편전쟁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어 개신교, 정교회도 같이 들어와 중화민국 시대까지 나름대로 교세를 확보하기도 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극심하게 탄압받았다. 덩샤오핑 시대부터는 어느 정도 탄압이 완화되었고 개인이 기독교를 포함해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 자유로워져 공인교회는 불교, 이슬람, 도교와 함께 당당히 중국의 종교단체로 한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아직 중국의 기독교는 국가의 통제가 강하다.
가톨릭의 경우, 주교 서임은 교황의 정식 승인을 받고 나서야 이루어져야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주교를 뽑아 임명해놓고 주교라고 우긴다. 본디 주교 서임은 교리상 교황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는 교회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 또한 사제들도 '중국 천주교 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라는 것을 만들어서 여기에 가입하는 걸 거부하는 사제들은 감옥에 가거나 가택 연금된다. 1957년에 정부 주도로 세워진 '중국 천주교 애국회'의 선언문을 보면 애국회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바티칸은 미 제국주의자본주의 세계를 위하여 일하며 사회주의 제도를 원수로 여긴다. 따라서 바티칸에서 오는 명령은 그것이 정치적인 것인지 종교적인 것인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하며, 종교 형식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그런 명령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 애국은 천직이므로 (바티칸을 포함해)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나라를 반대하면 우리도 그를 반대할 것이다.

- 김원철, "애국회, 불가피한 역사적 산물인가?", 평화신문, 2008. 11. 30.

바티칸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자체적으로 임명한 주교들을 정식 주교로 인정치 않고 있으며, 중국 정부와도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고 대만과 수교하고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처럼 공산당이 주교들을 추천하면 바티칸에서 임명하는 방식으로 중국 정부와 조율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합의가 된 것은 아니다.
물론 중국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관제 가톨릭 교회에 귀의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교리에서 굉장히 제약이 많아서, 가톨릭인데도 교황을 언급할 수 없고, 공산주의 사상과 배치되는 예수의 재림 역시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의 재림은 대표적인 일례일 뿐이고, 크고작은 기독교 교리 중에 공산당의 입지에 불리하게 작용할 만한 내용들을 수시로 제한받는다.
이러한 공산당의 정책에 반발하여, 교황의 수위권을 따르는 중국가톨릭 신자들은 중국 천주교 애국회 교회에는 나가지 않고 지하에서 자체적으로 종교활동이나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하 교회는 중국 정부의 탄압의 대상이며, 적발될 경우 바로 감옥행이다.
개신교에 대해서도 국가 통제가 강하기는 마찬가지. 역시 삼자교회라는 관제교회 산하이다. 이것 역시 기독교 교리와 교회 운영에 꽤 많은 부분을 수시로 간섭당하는 절름발이 신세이다. 개신교에서도 관제교회 신자는 비교적 소수이며 대부분이 지하교회를 다니고, 이들 역시 탄압 대상이다.
지하교회 중 처소교회라 불리는 곳들은 예배미사를 몰래 드린다. 중국 공안에 걸리면 당연히 체포이며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0 상하이 엑스포 때 한바탕 빡센 단속이 몰려왔다.
정교회에 대해서는 아직 중국 정부 차원에서 분명하게 인정하는 조직이 없이 본당별로 암묵적인 인정을 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정교회 산하 자치교회인 중국 정교회의 특성을 고려해 중국 정부가 타 그리스도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외국인 선교사와 성직자의 활동을 금지하고,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이나 유학도 금지하고 있어 보이지 않는 철저한 내부 통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가공인종교에 들어가 있지 않은 종교라 새로이 예배 처소를 건립하는 등에 있어 애로사항이 많다. 지금은 신자 수가 거의 남지 않고 단지 중국 주재 러시아인들을 중심으로 사목하고 있다. 중국 정교회 재건을 위해 모스크바 총대주교는 중국 정부에 교회 등록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 한편 세계 총대주교(콘스탄티노폴리스)는 1996년에 홍콩에 대만과 남아시아, 극동 지역을 관장하는 교구를 설립했다. 최근 중러 협의를 통해 중국의 정교회 성소자(신학생)들이 러시아 정교회 신학교에서 유학 가는 것이 허용되어 중국에서의 장래 사목 활동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홍콩/마카오에는 식민모국의 영향[26]으로 기독교의 영향력이 중국 전체에서 볼 때 유별나게 강했다. 현재는 무종교 내진 무신론자와 기독교인이 절반씩을 나눠 갖는 모양새이다. 홍콩 그리스도인과 마카오 그리스도인의 역사는 포르투갈 정복자가 중국 남부 광둥 성에 온 17세기 대항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한국보다도 오래됐다. 홍콩이나 마카오 교회는 한국과 달리 아파트에 달랑 십자가 세우고 天主敎堂이라고 쓴 게 전부라, 대형교회에 익숙한 한국인은 잘 못 알아본다. 땅이 좁아 오래된 교회가 아닌 바엔 대개 그렇게 아파트에 교회가 입주했다. 중국 본토의 공인교회는 교황을 언급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등 제약이 많아 이게 싫은 사람들이 홍콩/마카오로 건너가기도 한다. 2014년 우산 혁명에서도 젊은 기독교인들이 한 축을 담당했다.
중국의 위인 중 기독교를 믿는 위인이 꽤 많다. 양안 공통의 국부 쑨원과 그의 친구인 쑹쯔원 일가 등이 대표적인 예이며 대륙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장제스도 그리스도인이고[27] 쑨원의 부인 쑹칭링 역시[28] 그리스도인이다. 생각보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셈. 중국어에는 礼拜 즉 예배에서 온 礼一, 礼二등의 요일 표현도 있는데 몇몇 유럽권 언어처럼 예배를 드리는 일요일을 기준으로 요일을 나눈 것이다. 오늘날에도 홍콩 등 그리스도인이 많은 곳에서 구어로 쓰기도 한다.
중국 내에서는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포함)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을 두고 중국 정부가 고심 중이라고 한다. 특히 기독교는 마오쩌둥 사망 이후 종교의 자유가 제한적으로 보장되면서 매년 10%의 성장을 기록해왔다. 퍼듀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펜강 양(Fenggang Yang) 교수는 최근 영국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곧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될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중국 내 종교: 공산주의 지배 아래 생존과 부흥’(Religion in China: Survival and Revival under Communist Rule)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양 교수는 2010년 퓨리서치센터의 연구 결과 약 5800만 명을 넘었던 기독교 인구가 2025년에는 1억6천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중국 내 개신교 인구가 미국을 앞지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 교수는 “가톨릭을 포함해서 중국 내 전체 기독교 인구는 2030년까지 약 2억 4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은 종교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한 1949년 당시, 마오쩌둥은 교회를 정부 아래 두고 기독교 선교사들을 추방했다. 중국 기독교인들은 문화혁명기인 1960년대와 마오쩌둥의 집권기인 1970년대 극심한 핍박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불과 같이 계속해서 성장해 나갔다.
중국이 이를 두고 고심하는 이유는 중국의 공산당은 "마르크스 주의를 따르는 제1당으로서 과학의 대중화를 통해 인민들이 출생, 노화, 질병, 죽음, 행운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종교의 영향력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힌 중국 국가 종교 사무국 국장 왕쭤안(Wang Zuoan)의 인터뷰에서 보듯 중국이 공식적으로 과학적인 무신론을 이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기독교가 공산당을 효과적으로 견제한 경우도 있었고 중국 내 기독교인들은 속세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불교인과 달리 고학력자들의 사회적인 활동이 왕성한 탓에 공산당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기독교의 서구색 역시 중국에서 문제를 삼는 요소다. 중국은 아편전쟁 때부터 이미 서구 열강의 침략을 당한 역사가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도 냉전을 겪으면서 서방에 대한 의식이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하여 중국에서 기독교는 언제나 '서양 종교'라는 딱지를 달고 다니며, 근현대사 등을 다룰 때에도 과학의 발전에 역행하는 꼰대세력,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편이다. 불교 역시 외래종교이지만 이미 충분히 중국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도 옅은 편이고, 중국을 홍보하는 문화적 콘텐츠[29]로 써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대접이 좋은 편이다.
2010년대에 시진핑 정권이 자국 내 중국 공산당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해나가는 정책을 펴면서, 기독교 종파들에 대한 종교탄압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추세다. 상기한 미성년자는 종교시설에 출입할 수 없게 한 조치도 그렇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시설 철거나 교회 행사 방해, 또는 공산당 입맛에만 맞는 교리를 강요하는 등 각종 탄압의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현재진행형.

3.2.4. 이슬람


이슬람도 소수인 편이지만 정착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리고 사실 이슬람을 믿는 한족회족들만 봐도 이슬람이 극소수라 말하긴 힘들다. 회족들은 중국 전 지역은 물론 해외 차이나타운까지 퍼져 있으며, 돼지고기 금식 등 자신들만의 풍속을 유지하지만 겉모습도 영락없는 한족이고 언어도 보통화나 지역 방언을 써서 본인이 회족이라 말 안 하면 모른다.
중국 무슬림은 한족 중 이슬람을 받아들여 별도 종족화된 회족[30]. 튀르크 혈통의 소수민족들로 북방 황인종 모습을 한 카자흐키르기즈, 유럽인과 동아시아인이 섞인 모습인 우즈베크, 위구르인, 타타르인 역시 전형적인 북방 황인종인 살라르인[31] 등이 있으며 특이하게 백인종 계열로 페르시아계 혈통과 비슷한 이란계 혈통인 타지크인(정확히는 와키인, 사리콜리인)들도 있다. 신강에서 인종적으로 완전 백인종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거진 이 타지크인들로 이들은 이란인이나 북인도인과 관련이 더 있으며 언어도 파슈툰어(여기서는 페르시아어가 아닌 이란계 민족들의 언어) 방언인 중국의 타지크어로 알려진 사리콜리어와 와키어를 쓴다.
당나라 시절 장안, 광저우 등으로 유입된 아랍 출신 무슬림들이 중국 이슬람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그 이후로도 한족 중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회족이라는 별도의 소수민족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에도 현재 중국령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위구르인들 역시 인구 대다수가 이슬람이다.
현재 중국에서도 이슬람은 합법 종교이지만 국가 무신론을 추구하는 나라답게 이런저런 통제가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대 들어서 시진핑 정권에서는 이런 추세가 더 가속화되고 있다. 성지 순례를 최대한 제한하는 정책을 펴거나 테러리즘 방지라는 미명 하에 반이슬람+친공산주의적 강제교육을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유명 모스크를 철거하려는 시도를 하려다 무산되기도 하였다.
중국 내에서 한족과 동화를 가장 많이 반대하고[32] 독립 열기가 높은 위구르인들의 경우, 독립운동이 종종 이슬람 극단주의와 얽히는 경우가 있다. 다만 다에쉬가 팔레스타인 독립 운동에 부정적인[33] 것과 마찬가지로 위구르인 극단주의 테러 단체는 여타 위구르 민족주의 단체와는 서로 선을 그은 상태이다.

3.2.5. 신흥종교 및 사이비 종교


사이비 종교들도 판을 치며 동방번개라는 신종 사이비와 중생파라는 요상한 교리의 기독교 이단 사이비가 존재한다. 민폐 급의 사이비는 바로 전능신교[34]로 1973년생의 양항빈이라는 여자를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며 신으로 숭배한다. 또한 파룬궁도 중국에서는 금지 종교이다. 파룬궁의 ㅍ자라도 언급하는 순간 살해당할 수 있다고 한다.

3.3. 생활 리듬


  • 중국의 모든 지역은 베이징 인근을 통과하는 동경 120도선을 자오선으로 하는 단일 시간대로 통합되어 전 국토가 같은 표준시를 쓴다. 즉 베이징에서 오전 7시면 머나먼 티베트 지역에서도 오전 7시. 시간까지도 통일하고 조종하는 중국 정부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 동부 지역이라면 문제없는데 서부로 갈수록 표준시와 일출몰 시각과의 '시차'로 애로사항이 꽃핀다. 같은 시각이라도 베이징에는 날이 샜는데 티벳은 아직 꼭두새벽인 등. 비슷한 크기의 미국이 (알래스카하와이와 이외 속령의 시간대를 제외하더라도!) 4개의 시간대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이런 식으로 시간대가 실제와 다르기에 중국 최서단 지점에서는 오차가 3.1시간이나 난다. 실제 시간과 2시간 이상의 오차가 나게 법정 시간대를 정해 놓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은데 3시간이나 차이 나는 곳은 사실 없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티베트의 경우는 실제로는 UTC+6으로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과 같고, 쓰촨 성이나 윈난 성은 원래는 UTC+7이 맞긴 하다. 그리고 만주는 UTC+9를 쓰는 게 맞다. 하지만 UTC+7,9의 경우 어차피 1시간 차이 밖에는 나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문제가 제기되는 편은 사실 아니다. 당장 태국-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싱가포르도 1시간 씩 시차가 있으나 문제없이 교류한다. 아무튼 넓은 국토에도 불구하고 표준시가 같기 때문에 실제 시간에 따른 생활패턴이 다르다. 가령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11시가 공식 출근시간이다. 때문에 중국에 연락해야 될 일이 있을 경우 해당 지역 시간대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 중국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고 일찍 잠든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2시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저녁 9시 뉴스에 해당하는 종합 뉴스는 7시에 방송되며,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아침 7시 정도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등교를 끝마친다. 밤 10시는 상당히 늦은 시각이므로, 이 시간 이후에 시끄럽게 떠들거나 전화를 하거나 하는 건 큰 실례다.
  • 중국 직장인들은 하루 2번 출근한다. 보통 점심시간이 여름에는 2시간(12:00~14:00)이고 겨울에는 2시간 반(12:00~14:30)으로 길어, 집이 가까우면 귀가해 식사를 하고 잠깐 잠을 자기도 한다. 한국과 같은 야근은 없다.[35] 그런데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것도 '퇴근한다'고 표현하고, 오후 근무를 하러 직장으로 갈 때도 '출근한다'고 표현하니 주의하자. 해외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은 이런 점으로 불편해한다.

3.4. 해음과 금기


중국에서는 글자의 발음이 비슷하거나 같은 것을 '''해음(谐音)'''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특정한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시대에 따라 많은 부분이 변하기 마련이기때문에 개인차나 세대간 차이도 어느정도 존재한다.

3.4.1. 숫자


  • 중국인들이 8을 선호하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아래에 나온 것처럼 다른 선호되는 숫자들도 있지만 8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선호된다. '부자가 된다'라는 단어인 发财(파차이)와 八이라는 글자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36]
  • 9도 선호하는 숫자인데, 영구적이다, 장수하다라는 뜻의 '久'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jiǔ)
  •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7을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한국·일본과는 반대로, 중국인들에게는 7은 기피하는 숫자이니 주의. 7은 장례식과 관련된 숫자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7일 후에 지전을 태우는 소칠을 지내고, 49일째는 칠칠제(七七祭)를 지낸다. 물론 젊은 중국인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한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외국의 영향을 받아서 7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 6 역시 선호하는 숫자이며, 이는 6(六)의 중국어 발음 'liù'가 '매끄럽다'(일을 매끄럽게 잘한다)는 의미의 한자 溜와 같기 때문이다. 위의 8과 더불어 가장 선호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이 것이 이유인지 중국 인터넷 방송 등에서 BJ의 (게임 등에서의) 슈퍼플레이가 나오면 채팅창이 666으로 도배된다.
  • 한국과 일본과 베트남마찬가지4(sǐ)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기피숫자이다. 중국은 엘리베이터에도 4층 표시가 없다.[37] 어떤 한국택배업체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한국에서처럼 끝자리가 2424라는 전화번호를 받아서 영업했는데 이 숫자는 儿死儿死(아이가 죽어요)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기피하는 번호인데도 용감하게 썼다가 결국 진출한지 얼마 안 가 폐업 크리.[38]

3.4.2. 선물


  • 중국인에게는 시계를 선물하지 않는 게 좋다. "시계를 선물한다"는 뜻의 송종(送钟)은 장례를 치르다는 뜻의 송종(送终)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특히 나이가 많은 어른에게는 최악의 선물로 꼽히기도 한다. 다만 손목시계는 钟으로 칭하는 않기 때문에 괜찮을지도...?[39] 2017년 차이잉원 총통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텍사스 주지사 애벗으로부터 시계를 선물받아서 대만 내부에서 논란이 되었다.
  • 녹색의 모자(绿帽子)역시 중국인들이 기피하는 요소다. "배우자가 바람을 핀다"는 의미의 은어이기 때문이다.

3.5. 예절


  • 유교의 탄생지라 예법에 엄할 것 같은 느낌과는 달리 대체로 개인주의 성향이 두드러지고,[40] 의외로 한국인들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특히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 앞이기 때문에 하면 안된다.'는 개념이 별로 없기에[41] 이런 불문율이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꽤 쇼크를 준다. 일단 어른 앞에서의 예의범절이 한국과 크게 다르기도 하고 보편적인 예절 문화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바지에 손을 집어넣고 거시기를 긁는 남성 등 공공장소의 에티켓 문화가 아직까지 희박한 곳이 많다. 물론 선진지역인 홍콩마카오 특별행정구는 보편적인 에티켓이 발달해 있다.
  • 한족의 경우 남에게 무관심한 문화가 고대부터 어느 정도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한국식으로 단체 정신이나 생활을 강제로 강요하다가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친한 친구라고 해서 남의 사생활이나 개인 정보에 대해 의도적으로 알려고 하면 징그럽게 볼 수도 있다. 정말 엄청 친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심지어 험담을 해도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 같으면 진짜 싫어하는지 의심하거나 정신병자처럼 보기도 한다. 특히 싫어하는 사람을 잘 기억하는 한국과 다르게 잘 기억하지 않는 편이니 대화를 나눌 때 주의하는 게 좋다.
  • 중국 사람과 사업상/개인적으로 친해지려면 호걸이 되어야 한다. 유방 (한고제)/유비가 괜히 중국식 영웅의 대표가 아니다! 다들 배포가 크고 정말 친해지면 위에 서술된 것처럼 국적, 나이 그런 거 없이 따꺼(형님) 이라고 부르며 의형제를 맺고 가족보다도 잘해준다. 따꺼 말만 믿고 서류도 안 쓰고 몇 만달러치 외상/선입금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친한 사이라면 의심은 내보이지 않는 게 좋다. 정 거절할 일이 있으면 내가 이 돈을 당신에게 빌려주고는 싶지만 나도 가족의 일원이어서 보탬이 돼야 하고 물론 당신은 나의 형제고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아깝지 않지만 등등...당신 개인의 사정보다는 가족이나 동료 등 다른 사람을 내세우며 거절하자. 호쾌한 동네이면서도 아부가 잘 통하기 때문이다. 따꺼 되기도 쉽다. 관광 가서 야밤에 가이드랑 동네 술집 주인 셋이 술 먹고 마음 잘 맞으면 그냥 도원결의 맺는다. 게다가 1, 2년 후에 찾아가도 기억 한다. 물론 그렇게 의리 실컷 나눈 사이라도 더 큰 사업, 더 부자 손님을 위해서는 배신하거나 이용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의를 위해서 그런 것이라면서 그 사실에 당당하다. 요약하면 자기에게 심각한 손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는 어떤 부탁이든지 다 해주지만 자신에게 심각한 손해가 될 거 같으면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생긴다.
  • 안면만 알고 친한 사이가 아니면 "시간이 생기면 자기 집에 놀러와"고 말한다거나, 방문객이 돌아갈 때 "언제든지 다시 와", "방학이 되면 같이 고향에 가자" 등의 말은 그냥 인사치레이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정 헷갈리면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이 내용은 일본도 마찬가지인 문화다.
  • 안방에 들어갈 때도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간다. 이것 때문에 고시원이나 전세, 월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중국인들의 이러한 습관에 질색한다. 안 해도 되는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평범한 중국인들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들은 예전부터 입식생활권이었고, 정부 주도로 아직 많이 남아있는 전통 가옥들의 경우[42] 그냥 돌 타일 깔아놓은 맨바닥이라 잘 때 외에는 신발을 벗을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대에는 일부 서구권 국가들의 문화처럼 신발을 신더라도 실내화로 갈아신는 등 타협을 본다는 듯.[43]
  • 남자의 경우 동아시아 치곤 상의탈의에 관대하다. 대도시에서는 덜 하지만 조금만 시골, 혹은 도시 속에서도 전통 가옥이 밀집해 있는 구역에서는 아저씨들이 상의탈의를 하거나 배만 내놓는 일명 '베이징 비키니'가 유명하다. 물론 젊은층이거나 대도시일수록 상의탈의를 혐오하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긴 하며 2019년부터 일부 도시에서는 아예 법적으로 금지시켰다.
  • 중국에서는 허리나 머리를 굽혀 인사하는 건 대단한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컬처 쇼크 중 하나가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인사하는 것. 물론 한국 사람 입장에서 한족식 인사가 너무 건방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하면 어색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한국식으로 인사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 중국에서는 담배 권유가 친근감의 표시라 담배를 권유받았을 경우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我不抽烟了.)"라고 이야기하거나 일단 담배는 받지만 피우지 않거나 한다. 비흡연자라도 피우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예의일 정도로 담배가 일상에 녹아 있어 한 때는 담배를 딱 잘라 거절하는 건 좀 심하게 말해 "좆까" 수준의 표현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전후하여 정부에서 차츰 금연을 권장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 담배 자체에 대한 해악이 꽤 많이 알려지고 있고, 국가에서도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금연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적어도 버스나 기차 안에서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우는 수준은 아니며, 가끔 무식한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기사가 당장 버스를 세우고 담배를 끄도록 지시한다. 그러나 홍콩 MTR에서는 승강장[44]에서 담배를 피우는 중국인들 때문에 홍콩인들과의 마찰이 있기도 하다. 현재는 베이징 지하철도 역사 전체가 금연구역이 되었고, 공항에서는 흡연자를 발견하면 신고하라는 공안부의 광고 스티커를 볼 수 있다.
  • 윗사람이 칭찬을 하면 감사의 말 외에도 '평소의 가르침 덕분입니다.'나 '항상 배려하시고 키워주셔서' 같은 겸손한 말도 해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식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대답만 하면 건방지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시상식 수상소감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부모, 스승 등에 대한 감사인사를 붙여야 하며, 국제대회처럼 좀 규모가 있는 행사에서는 국가에 감사한다는 말도 붙인다.
  • 중국에서 무척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폭죽을 터트리는데 문제는 폭죽 자체의 소리도 시끄럽고[45] 그 많은 사람들이 때를 맞춰 한꺼번에 폭죽을 터트리다 보니 외국인들은 귀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받는다. 다행히 외국인들을 배려한 중국 정부의 정책으로 베이징에서는 춘절(중국 최대의 명절)에만 폭죽을 터트릴 수 있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개인적으로 축하할 일이 있으면 맘놓고 쏴대기 때문에 주의하자. 그러나 2018년부터 5환로 이내에 있는 지역은 미세먼지 절감을 이유로 폭죽이 금지되었다.[46]
  • 중국 결혼식에는 주례가 없는 경우도 있다.
  •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으면 한국의 해외로밍처럼 받는 사람도 돈을 낸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전화를 가려서 받는다. 그래서인지 2010년대 이후 들어서는 정말로 전화통화를 해야하는게 아닌 이상 카카오톡이나 라인에 대응하는 위챗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
  •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지만, 민감한 정치적 문제는 가급적이면 화제로 꺼내지 말도록 하자. 비록 변하고는 있으나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에 국가 통제가 심한 나라라서, 정치적인 문제로 대화해 봤자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 그대로의 답변이 돌아온다.[47]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교육받은 대학생이나 유학생들의 경우 중국인이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 수위의 발언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훨씬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그리고 자국의 역사적 입장 때문에 한국인들과 의견차가 나오는 부분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국전쟁의 경우 거두절미 하고 '중국은 조선 인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자원해서 참전했다'라며 자기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을 하러 참전했다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 야진(押金)이라고 하는 보증금 문화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한국처럼 집을 살 때는 물론, 호텔에 투숙하거나, 물건을 대여할 때 등등 훨씬 넓은 범위에서 사용된다. 아직은 신용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것이라고 한다.

3.6. 꽌시(关系)와 친구


꽌시(关系, 정식표기는 관시가 맞다.)는 우리말 관계(關系)의 현대중국어 발음으로, 매우 부정적인 신조어처럼 여겨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삼국지와 같은 중국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의(義)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받은게 있으면 갚아야 하고, 한번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는 공과사를 불문하고 끝까지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본인의 체면에 관계된 것이며, 이런 일을 무시하면 체면이 손상된다고 여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이런 봉건사회의 미덕이 연고주의로 변질되어 부패의 온상이 되었기 때문에, 꽌시라는 말은 부정적인 어감이 강해졌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문화에서 볼 수 있는 꽌시의 예는 정말 다양하다.[48] 중국 작품이라면 어지간해선 알게 모르게 녹아들어있으며, 사실상 중국인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인구수가 많고 땅이 넓다보니 적은 많고 믿을 만 한 사람은 적으니 그만큼 자기 주변의 사람을 챙긴다는 개념에 가깝다.
꽌시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중국인은 대중에게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지만 자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는 예의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인간관계가 철저히 나와 가족 그리고 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거(큰형님)’라는 호칭이 많이 등장하는데 일반적인 중국인 사이에서는 그렇게 많이 쓰지 않는 표현이고 일반인들은 보통 ‘거거(형)’라는 표현을 쓴다.
중국에서의 친구란 나이가 거의 같으면서 친밀하게 오래 사귄 사람이 아니라 사회생활 중에 만나서 알게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꽌시에 따라 단계가 있어서 친구라고 불린다고 남이 아닌 게 아니다. 친구를 부를 때의 호칭도 다 따로 있다.
  • 신펑요우(新朋友)는 남, 심지어 적과도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단계로서 단순히 새로 알게 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냥 지나가다 이름만 알고 얼굴만 안 사람들도 친구라 부르는 것. 경쟁자나 적으로 출발할 게 뻔해도 처음 알면 신펑요우다. 직역하면 새친구 정도.
  • 하오펑요우(好朋友)는 좀 신펑요우에서 진전되어, 주고 받는 우호적인 단계에 이른 친구를 말한다. 직역하면 좋은 친구.
  • 라오펑요우(老朋友)는 친구 관계의 정점으로 자신의 주변 사람들까지 소개하고 꽌시를 맺게 하는 단계로서 여간한 물건을 허락받지 않고 써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등 일반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이다.[49]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 사이에서 꽌시를 맺었다고 하면 최소한 이 수준의 관계를 유지했다고 볼수 있다.
  • 슝띠(兄弟)는 최종적인 단계다. 형제라는 한자어 의미 그대로 의형제 관계의 꽌시로서 친구를 넘어서 가족, 한 몸처럼 여기는 단계이다. 당연히 서로 한 몸이나 다름이 없으니 사기나 배신 등은 이 단계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50] 이 단계에서는 약간 더 나아가면 쳰시옹디(干兄弟) 아예 서로 가족을 책임지겠다고 하거나 서로의 가족끼리 가족을 맺기도 한다.

4. 스포츠


소위 '''중국 4대 스포츠'''로 알려진 '''탁구, 농구, 배드민턴, 축구'''는 중국 스포츠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당장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살펴보더라도 이 3대 종목의 인기를 금방 실감할 수 있다. '''농구의 결승전 티켓은 15만 원, 배드민턴도 15만 원, 탁구 A등급은 10만 원에 육박하였다.''' 이러한 3대 종목의 결승전 티켓은 부리나케 매진되었다. 중국에서 열린 3대 종목 리그는 각 시즌마다 수많은 중국인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역도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림픽의 경우 대만과의 국호문제 때문에 동계대회는 1980년부터, 하계대회는 1984년부터 참가했다. 특히 하계대회에서는 '''13억 인적자원에서 나오는 우수한 인재풀'''을 앞세워 1984년에는 금메달 15개를 따내며 황색돌풍을 일으켰지만(첫 출전에 4위한거다.) 1988년에는 금메달 5개를 따내다가 1992년부터 꾸준히 TOP 4 안에 들더니 2008년에는 금메달 51개를 따내며 1위를 차지했다. 동계대회에서는 계속해서 진전이 없다가 2002년에는 '''쇼트트랙의 전설인 양양'''이 우승한 이후부터 금맥이 터지기 시작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China_at_the_Olympics) (역대 하계올림픽 메달 집계순위 : 1984년 4위, 1988년 11위, 1992년 4위, 1996년 4위 , 2000년 3위, 2004년 2위, 2008년 1위, 2012년 2위, 2016년 2위)
중국이 선전하고있는 올림픽 종목들은 '''중국이 1980년 이후에나 적극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는걸''' 생각했을때 최근 굉장히 휩쓸고있는 것이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순에서는 한개 차이로 영국한테 밀려 3위를 했고 총메달 합계순에서는 2위를 했다. 총메달순으로 따지면 2008년에 미국한테 밀려 2위한 것으로 된다.

4.1. 축구


다른 건 다 잘하는데 유독 축구만큼은 '''엄청나게 못한다는 평가'''가 있다.[51] 심지어 '''"중국에는 이미 메시 급의 재능을 가진 선수가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밭을 갈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메시 급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과 메시 급의 선수가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소리다. 축구 자체를 즐겨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인재를 키워서 뽑는 일은 별개의 일인데 중국의 현 축구 인프라는 메시 급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메시 급 실력을 지닌 선수로 키우기에 부족한 편이다. 특히 유소년 축구의 경우에는 기반이 너무도 취약하여 축구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나 축구를 즐겨보는 사람들이 선수층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0년대 후반에서야 유소년 축구 육성작업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멀었다. 우월한 인구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엘리트 운운하기에 앞서 관련 축구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 미국이나 러시아 등도 축구가 다른 종목들에 상대적으로 비해 약하긴 하지만, 두 나라 다 FIFA 월드컵 준결승에 진출한 적도 있을 정도로[52] 단 한번이라도 강력했던 적이 있었던 반면 중국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만 유일하게 지역예선을 통과했을 뿐이며[53] 그나마도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득점도 못 하고 3전 전패한 유이한 팀이었다.[54]
2000년대 초반에는 중국에서 떠오르는 신흥 스포츠였었지만 중국의 축구굴기로 이제는 확실히 중국의 인기있는 스포츠 중 하나다. 축구굴기로 일단 중국 슈퍼리그에 투자자가 많이 모여서 '''쇼미더머니'''로 무장하고 있다. 쇼미더머니에 힘입어 광저우 헝다가 2013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55] 중국의 막대한 시장성 덕분에 FIFA에서 밀어주는 것도 있어서 FIFA 월드컵을 개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월드컵 개최에 따른 효과를 알면서도 그동안 자신감이 없어서 망설였으나 자신감이 갑자기 폭발했는지 2026년에 월드컵 개최를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말한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문제점 때문에 FIFA 관계자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FIFA가 월드컵 개최를 할 때 중요시하는 부분이 개최국의 축구 인프라 확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중국이 월드컵 개최에 성공하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으나 연이어 터지는 축구협회의 엄청난 병크에 결국 2026 월드컵 개최를 스스로 포기했다. 한편 201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중국의 슈퍼머니가 유럽 축구계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는데, 특히 2016년에는 중국의 거대 기업들이 AC 밀란 인수[56]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소지분 확보[57] 등 본격적으로 유럽 구단의 운영에도 큰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대에 대한 건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4.2. 농구


NBA도 중국 시장 덕분에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스포츠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덕분에 NBA에서도 중국에 특별 이벤트 경기를 벌이러 NBA 에이스들을 데려가기도 한다. 이런 농구 붐에 자국 농구화 업체들도 돈을 많이 벌어서 그런지 NBA 스타들과 계약하기도 한다.[58] 그밖에도 중국프로농구리그인 CBA의 경우 결승전 최고 시청률 30%를 찍는 경우도 종종 있다. 덕분에 중국에서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도 농구는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간다.[59] 아시아권에선 단연 원탑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데 아시아 농구선수권 대회만 하더라도 '''무려 15회 우승'''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거두고 있다. 2위인 필리핀이 5번 우승, 3위인 이란이 3번, 한국과 일본이 2번 우승한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의 우승기록을 합치더라도 중국을 따라가는 것은 힘들다. 2019년에는 자국에서 농구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했지만...홈텃세를 살리지 못하고 예선 1라운드에서 폴란드, 베네수엘라에 패배하며 순위결정전으로 추락, 이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나이지리아에게 또다시 패배하며 올림픽 직행 좌절과 동시에 최종예선으로 추락, 농구판 미네이랑의 비극을 거하게 경험하며 씁쓸하게 마무리했다.[60]
중국 농구 국가대표팀도 참조해 볼 것.

4.3. 야구


야구의 경우 국내 리그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2년간 쉴 정도로 협소한 편이었지만 2014년부터 베이징 소재의 종합스포츠그룹인 헝다그룹[61]의 스폰서로 지원 받아 재개되어서 선수들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월급이 한화 17만원(1000위안)에서 34만원으로(2000위안) 2배로 늘어났었으나 다시 2016년부로 중지되었고 2019년에 재출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선수들의 급여는 한화로 17만원(1000위안)수준으로 이마저도 시즌 중인 2달간만 지급받기 때문에 선수들의 연봉은 500만원이 아닌 '''50만원'''도 채 되질 않고 그렇기에 99% 투잡을 병행하고 있다. 게다가 평균관중수는 3백여명 이하를 기록하였다. 야구리그의 인지도면에서는 김연경이 뛰고 있는 '''여자'''배구 리그보다도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하게 낮은 수준일 정도이며, 실제 중국의 인기 스포츠 20위 안에도 들지 못할 만큼 야구의 인기가 상당히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시아권에서 한국, 일본, 대만보다는 못해도 야구는 좀 하는 나라에 속하기 때문에 WBC를 비롯한 국제대회에 자주 참가하고 생각보다 선전(?)하고 있다. 근데 그렇다고 중국이 인프라나 관심도에 비해서 좋은 성적을 낸다기엔 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중국야구보다도 여건이 나은 나라가 일본, 한국, 대만 외에는 없다. 즉, 중국의 야구 인프라는 그래도 아시아에서는 4등이고 세계적으로 봐도 15위 정도는 하는 수준이다. 또한 2016년부터 국가체육총국에서 야구를 프로화로 추진하면서 2025년에 프로리그를 창설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 차후 야구 발전이 기대되는 국가이고 실제로 한국인 코치와 심판들을 중국에 초청하기도 했었지만, 사실 현재까지 뚜렷한 실체가 전혀 없다. 참고로, 이 나라 야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중국 야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조하면 된다.
kt wiz주권 선수가 2017년 WBC에서 중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했다.

4.4. 바둑


바둑의 경우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은 아직도 바둑이 사회적 인식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기 때문에[62], 세계 대회 16강쯤만 되어도 90후세대(90년 이후 출생)를 주축으로 한 중국 기사들이 절반 이상을 포진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스폰서가 되는 세계 기전도 많이 열리며, 바둑리그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종종 한국의 기사들이 중국 바둑리그에 용병으로 출전하기도 한다.
인구가 많다 보니까 국민 인기 스포츠라는 오해도 있지만 중국에서 바둑을 둘 줄 안다고 응답한 비율을 환산하여 추산한 바둑인구는 8800만 명 수준이다. 한반도 인구보다는 많지만 중국 인구에 비하면 고작 '''6%'''밖에 안 된다. 한국갤럽에서 대한민국에서 바둑 둘 아냐, 바둑에 관심이 있냐 물었을 때 대답한 비율이 '''25%''' 정도로 추산하면 못해도 1,000만명은 된다는 계산이다. 국민 스포츠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중국의 국민 스포츠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위상 때문인지, 중국 바둑 기전은 엘리트 스포츠인 국제 기전은 많지만 국내 기전은 일본 바둑 기전보다 적다. 다만 중국바둑갑조리그의 위상이 넘사벽이라 개인기전의 부족을 리그전으로 어느정도 만회하고 있다.

4.5. 그 외의 스포츠


탁구의 경우 한국e스포츠마냥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 심지어 '''선수들마다 각자만의 필살기를 가지고 있다.''' 국공내전의 강행군 중에서도 정비시간에 군인들이 탁구를 즐겼다 하니 그 인기와 저변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스페인테니스, 한국양궁에 필적할지도 모른다. 관련기사[63] 그러나 2017년 대회에서는 일본, 한국을 상대로 연속 충격패를 당했다.[64] 남자단식의 경우 이미 세계랭킹 1위도 독일 선수들에게 내줄 때가 있는 등 예전만한 중국 독주체제는 아니다.
역도 또한 중국의 스포츠 아이덴티티에서 빼먹을 수 없는 종목 중 하나이다. 올림픽 역도에서 '''현재는 없어진 소련 다음으로 역대 메달 집계 2위'''이며, '''남성 세계 신기록의 절반, 여성 세계 신기록의 대다수가 중국 소유'''다.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해외 유튜브권에서 올라오는 스퀏 데드리프트 혹은 역도 하이라이트에 중국 선수가 굉장히 많이 등장하기에 그 위상을 대충 짐작 가능하다.
항우장사, 역발산기개세 같은 역사들의 괴력을 좋아하던 문화가 있어서 그런지도.
https://en.wikipedia.org/wiki/Weightlifting_at_the_Summer_Olympics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Olympic_records_in_weightlifting
배드민턴 역시 강세를 보이는 종목으로 '''역대 올림픽에서 가장 메달을 많이 따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올림픽 '''사격, 다이빙, 태권도, 쇼트트랙에서도 역대 메달 집계 2위'''이다. 특히 여자 쇼트트랙의 경우 양양(A)[65], 왕멍, 저우양 등이 세계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사례.
육상의 경우에도 꽤 강한 면모를 보인다. '''중국 한 국가의 100m 10초대 미만 선수들이 백인 전체의 100m 10초대 미만 선수의 2배'''이다. 그래봤자 2명이긴 하지만. 쑤빙톈의 100m 최고 기록은 '''9.91로 흑인계를 제외한 타인종 중에서는 최강'''이다. 비록 도핑 문제로 시끌시끌 했지만 1980년대 말~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육상팀 '마군단'이 있었고, 2000년대에는 110m 허들을 류샹(육상)이 유명하다. 여자 중장거리 종목에선 왕쥔샤를 포함한 선수들이 오랜기간 세계기록을 독식해왔다. 이 중에, 3000m기록은 아직도 왕쥔샤가 가지고 있다.
피겨스케이팅 페어종목도 유명하다. 2000년대부터 국제대회를 휩쓸고 다녔고 밴쿠버때 쉔 슈에/자오 홍보 조가 우승을 하며 50년만에 올림픽 단상에서 러시아를 끌어내렸다.
여자 테니스의 경우 리나 같은 선수가 세계 대회 우승하면서 개인 구기 종목은 확실히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필드하키 등의 여러 종목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상당한 발전을 하고 있지만 아직 강호라고 불리기는 조금 거리가 있다.
수영에서도 세계 정상급 선수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2000년대부터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 평영 금메달리스트 뤄쉐줸을 필두로 2007 멜버른 세계선수권 남자 접영 200m 은메달리스트 우펑, 2008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 은메달리스트 장린 등의 선수가 나왔으며 2010년대 들어서는 간판스타 쑨양을 비롯해 예스원(2012 런던 올림픽 여자 개인혼영 2관왕), 자오류양(2012 런던 올림픽 여자 접영 200m 금), 쉬지아위(2016 리우 올림픽 남자 배영 100m 은), 푸위안후이(2016 리우 올림픽 여자 배영 100m 동), 왕슌(2016 리우 올림픽 남자 개인혼영 200m 동) 등의 유명 선수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다.
러시아의 삼보(무술), 태국의 무에타이 영향을 받은 현대적 군용무술 산타(격투기)가 있다.
2010년대 들어서 종합격투기 종목에도 꽤 진출하고 있다. 장웨일리UFC 여성부 챔피언이고 송야동 , 아오르꺼러 등등. 인구나 올림픽 성적에 비하면 아직 별로이기는 하다.
e스포츠의 경우 원래 종주국인 한국에 밀렸으나, 중국 특유의 압도적인 자본력과 선수층으로 2018년부터는 한국과 1위를 다툰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66], 클래시 로얄 월드 파이널에서 우승하고, 아직 한국이 건재한 오버워치 월드컵에서도 준우승하면서 맹추격중이다.
아이스하키는 여자부는 비교적 강세인 편으로 우리나라가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이긴것[67]을 제외하면 실력차가 넘사벽이다. 반면 남자부는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에 참가하던 시절 노르딕 바이킹스 팀이 05-06 시즌 한 시즌만 참가 한후 탈퇴, 차이나 드래곤팀이 2007에서 2017까지 참여했으나 팀 자체가 국가대표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2010~2014 사이에 있던 4시즌에서 무려 182연패[68]라는 초라한 성적과 승점자판기라는 별명을 남긴채 팀이 해체하여 현재 아시아리그에는 중국팀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현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출전을 염두해 2016년부터 KHL에 참가중인 쿤룬 레드스타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있다.[69]
배구도 꽤 한다.#
하지만, 럭비만큼은 약하다.[70] 축구보다도 더 약하기 때문에 럭비 내에서도 중국 시장을 딱히 논히지 않고 있다.

4.5.1. 올림픽 종목


탁구, 배드민턴에서 역대 1위를 하고 있고, 없어진 소련 제외하면 역도에서 1위다. 다이빙, 사격, 태권도, 쇼트트랙에서는 역대 2위. (여담으로 태권도 쇼트트랙은 한국이 잘 하는것)
https://en.wikipedia.org/wiki/China_at_the_Olympics

5. 문화 콘텐츠



5.1. 동만(动漫: 애니메이션(动画片)&만화)



5.2. 게임



한국과 마찬가지로 e스포츠에서도 나름의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는 나라이다. 특히 한국이 스타크래프트를 시발점으로 e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면 중국은 워크래프트3를 시작으로 e스포츠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00년대 중국 워크래프트가 보여준 행보는 가히 파격적인데 중국 오크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FLY100%, 루 웨이량은 전성기 당시 팬카페 가입자수 100만을 찍으며 국민적인 스타에 오르기도 했다.
플라이 이외에도 인피, TH000, 스카이 등의 슈퍼스타들이 있었지만, 단연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선수는 한국 출신의 Moon, 장재호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에 외국인 프로게이머로 초대되었을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가질 정도였으니 당시 워크래프트가 중국에 미쳤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한류스타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현재도 오버워치, 하스스톤 등 블리자드 게임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며 리그 오브 레전드 롤드컵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e스포츠 문화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상태이다.

5.2.1. 모바일 게임


2010년대 들어 중국산 모바일 게임이 한국에도 수입되어 들어 오고 있다. 또한 만화/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하거나 2D~2.5D 풍의 일러스트를 사용한 이차원 게임이 많아지기도 했다.#
한국,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루팅, 커스텀롬, 에뮬레이터에 대해 관대한 편인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71] 현재까지 처럼 단순 루팅조차 차단하는 사례가 아직 없고,[72] 본가에서는 단순 루팅조차 차단하는 일본 게임들도 중국에 와서는 단순 루팅 정도는 허용하는 쪽으로 바뀌며, 중국산의 경우 아예 에뮬레이터를 공식 지원하는 경우도 흔하다.[73] 이런 환경이 조성된 배경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74]

5.2.1.1. 목록

  • Cheetah Mobile#s-3.2의 게임들: 해당 항목 참조
  • The Pascal's Wager: Annunciation: 중국어 타이틀은 帕斯卡契约. TipsWorks[75] 개발, 자이언트 네트워크[76] 유통. 다크 소울 시리즈와 장르적 유사성이 있다. 출시일 미정. 한국어로는 대체로 '파스칼 웨이저'라고 표기하지만 공식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 강철의 왈츠
  • 넷이즈#s-2.1의 게임들: 해당 항목 참조
  • 검지영요: 한국에서는 '시그널'이라는 타이틀로 서비스중. 사람에 따라서는 이 게임을 중국 게임이라기보다는 한국, 중국, 일본 3국 합작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 권황98종극지전OL: 한국에서는 핑거팁스라는 곳에서 '더 킹 오브 파이터즈'98 UM온라인 for Kakao'라는 타이틀로 서비스중.
  • 기동전대:아이언사가
  • 기적난난: 한국에서는 파티게임즈에서 '아이러브니키 for Kakao'라는 타이틀로 서비스중.
  • 몽환모의전: 중국에서 랑그릿사 시리즈의 IP를 활용해 만든 모바일 게임.
  • 명일방주
  • 벽람항로
  • 붕괴3rd
  • 붕괴학원 2: 위의 붕괴3rd의 전작. 한국에서는 '카와이 헌터'라는 타이틀로 서비스된 적이 있다.
  • 빵집소녀: 아래 소녀전선의 프리퀄. 다만 줄거리의 시간 순서대로는 이쪽이 나중이다.
  • 소녀전선
  • 왕자영요: 한국에서는 넷마블에서 '펜타스톰'라는 타이틀로 서비스중. 단, 한국판의 베이스는 왕자영요 자체가 아니라 왕자영요의 대만판 및 글로벌판인 전설대결(傳說對決, Arena of Valor)이다.
  • 전함소녀
  • 창람경계: 한국에서는 플레이위드에서 '아홉번째 하늘: 약속과 배신의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서비스한 적이 있다.

5.3. 영화



5.4. 중국 드라마


줄여서 중드라고 한다.

5.5. 중국의 방송


아무리 검열이 심하고 국영방송이 주류를 이룬다고 하지만 각 지역별로 방송사들이 존재하는데다가 각 지역방송사들중 메이저급 방송사들은 대륙급의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에 경쟁이 매우 치열하며 중국의 인구수를 반영하듯 세계 2위 급의 방송시장을 자랑한다. 중국의 방송 항목 참조.

5.5.1. 중국인이 한국 드라마에서 발견한 독특한 점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한국 드라마를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거나, 모든 중국인들이 한국 드라마만 보고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으며 신기해왔다는것도 한류 초창기의 일이다.
  • 라면을 삶아 냄비 뚜껑에 건져서 먹는다.[77]
  • 소주를 마시고 나서는 꼭 "캬~" 하는 소리를 낸다.
  • 노래방 장면이 자주 나오고 빈 술병에 숟가락을 꽂아 마이크 대용으로 사용한다.
  • 온 가족이 찜질방에 자주 간다. 그리고 항상 그곳에서 삶은 계란을 먹는다.
  • 체했을 때는 손가락을 딴다.
  • 치킨을 시키면 항상 맥주를 같이 먹는다.[78]

6. 성문화


참고항목 영문위키 : 중국의 성, 일요신문 기사
과거에 비해 현재의 중국은 성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성문화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과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성개방을 딱히 반기지는 않는다. 매춘포르노는 금지되며 공식적으로 공안의 검열을 받는다. 다만 포르노의 경우에는 검열을 뚫고 엄청나게 범람하고 있고 고위직들이나 돈많은 기업인들이 개혁개방과 함께 첩을 두는것도 예삿일이 아닌 취급을 받는다. 덧붙여서 2010년대 중국의 소득수준이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해외여행객들도 늘어나며 해외 성매매도 상당한 사회문제가 되고있는 중. 한국에서 포르노가 법적으로는 금지되어있지만 볼 사람은 어떻게든 다 보는 것과 똑같다. 또한 성교육과 성문화에 대한 인식도 나이 많은 세대와 젊은 세대가 큰 차이를 보인다. 동성애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나 홍콩,대만의 개방된 동성애 문화의 영향도 있고 인구비율에 비추어 동성애자 숫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의 목소리도 점점 나오고 있다. 양성평등 역시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7. 문화 검열


중국/문화 검열 문서 참조. 대표적인 사건으로 문화대혁명이 있다.[79]

8. 기타



9. 외부 링크


[1] 더 멀리까지는 조선청나라를 매우 혐오했기 때문에 명 멸망 때부터 거의 단절 수준이 지속되어 왔다고도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거의 400년 동안 단절 상태이다.[2] '중국어에도 존댓말의 영향이 강하다', '중국도 수시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낼 것이다' 등등.. 실제로 중국은 문어체에서의 존댓말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며 제사도 한국처럼 시시때때로, 또는 큰 스케일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끔 단촐하게만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3] 화교나 싱가포르 등으로 그 영향이 구체적으로 남아있어 확인하기도 쉽고 영토가 불분명하던 시절에 간쑤성과 랴오닝성 등의 일부 지역들은 초기에는 이민족들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들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중국 땅이 다 되어버렸다. 심지어 사나운 유목민들이 있던 지역들마저 유목민들의 극딜을 버텨가며 개척을 상당히 잘했다.[4] 물론 어디까지나 비교적이고 이미 중세 시절부터 동남아시아 일대로 진출한 중국인들이 꽤 있다. 특히 해외의 화교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들이 동남아시아다.[5] 그래서 그런지 온갖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에 대한 기록 내용의 다양성도 매우 풍부하다.[6] 야생동물 취식은 어디까지나 남중국의 일부 지역 위주다. 특히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주목받는 박쥐 고기도 중국 다수 지역에서는 괴식 취급이다.[7] 서성, '한권으로 읽는 중국문화', 넥서스, 2005, p229[8] 게임이나 만화 등의 서브컬처 쪽과 연계되어있는 음악이 많아서 중국 내에서는 고풍곡이 약간 오타쿠스러운 장르로 여겨지는 듯하다.[9] 유튜브에 古風으로 검색하면 많이 나온다. 동영상에 중국풍 일러스트 나오면 100%다.[10] 한국으로 치면 등산카페에서 활동하는 것과 비슷하게 취급된다 보면 된다.[11] 한국은 아무리 빨라도 7시 30분 이전에 등교시키는 학교는 없다. 8시에서 8시 30분 정도가 대부분.[12] 겨울이 춥기로 유명한 러시아에서도 겨울방학은 1개월 안팎으로 매우짧고 여름방학은 3개월로 긴 편이다.[13] 한족과 밀접한 관계의민족으로 버마인의 조상으로 추정되나 언어는 몽몐어족으로 시노티베트어족과는 어족차원으로 완전히 다른 어족이다.[14] 현재 중국이 티베트를 지배하다보니 반대로 티베트인들의 영향으로 인한 여파도 있겠지만, 몽골인의 원나라, 만주족의 청나라도 티베트 불교를 믿기도 했었다.[15]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는 한족인 인물로는 장위안이 있다.[16] 국가마다 다르지만 비종교적인 인구가 30~50%를 넘는다.[17] 비종교적인 인구 49%, 무신론자 7%[18] 비종교적인 인구 31%, 무신론자 31%[19] 비종교적인 인구 36%, 무신론자 34%[20] 다만 러시아는 비종교인이 38%라는 조사결과도 있다.[21] 공산당은 무신론을 지향하기 때문에 당원은 제외. 사실 이건 법규가 아닌 당규 차원이지만 말이다.[22] 종교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일', 예를 들자면 집이 먼 사람들을 위한 차량 기사 - 師父(시푸)라 하며, 한자가 무술하는 그 '사부' 맞다 - 로 "고용"하는 것은 가능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23] 지금도 귀신이나 유령을 다룬 매체들이 종종 검열된다. 이에 대해 중국에서는 "중국에는 귀신이 없다. 공산당이 다 잡아갔기 때문"이라 비꼬기도 한다.[24] 중국의 어마어마한 인구를 감안하면 이 정도도 매우 많은 거다.[25] 그 중에서도 중국의 불교인구 대다수가 믿는 정토종이 최대종파이고 그 다음으로 선종, 티베트 불교 순으로 많이 믿는다. 참고로 같은 북중국에서도 지역별로 우세한 종파가 다른데 동북3성쪽이나 내몽골에선 티베트 불교가 허베이성, 산둥성, 산시성 등 화북지역에선 정토종이나 선종이 우세하다.[26] 영국령이었던 홍콩에는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 /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에는 가톨릭[27] 이 사람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성경의 구절을 읊으며 소감을 표현했다(...)[28] 이 분은 중국 공산당의 요직에 있었다. 1981년 타계.[29] 예를 들어 소림사 등.[30] 전술했듯 겉모습은 다른 한족들과 전혀 다를 바 없어 자기가 말 안하면 모른다. 류시시가 대표적인 회족 여배우인데 이름도 그렇고 배경지식이 없으면 회족이라고 생각이 안들 것이다.[31] 칭하이 성간쑤 성, 쓰촨 성 그리고 티베트 북부 등에 정착한 튀르크계 민족으로 겉모습은 역시 한족이나 회족과 별 다를바 없고 종교와 언어로 구분한다.[32] 물론 한족적으로 동화된 위구르인들도 적지않은편이다.[33] 심지어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인 하마스에 다에쉬가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켜서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민족주의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민족주의 성향의 독립 운동 계열과 충돌하는 것[34]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의 약자로 서울 구로구에 교회가 있다. 이들의 교회는 정통교회와 달리 십자가상이 없어 구분 가능하며 집회 풍경도 평균적인 예배나 미사와는 다르게 괴이하다! 맥도날드 살인사건이라는 끔찍한 사건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다.[35] 물론 버는 돈이 하도 적다보니 별수없이 야근하는 사례도 없지는...아니 상당히 많다. 특히 임금수준이 오르기 이전에 공장에서 일할때는 더더욱 그랬고, 악덕기업들이 이를 악용했다.[36] 八이 부채꼴,즉 뻗어나가는 모양이어서 사업이 잘 풀린다는 의미도 있다.[37] 4층표시를 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4로 끝나는 층수를 전부 건너뛰고, 13층마저도 건너뛴다.[38] 이렇게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대부분 망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중국을 잘 모르고 한국식으로 덤볐기 때문이다.[39] 손목시계는 手表라고 한다.[40] 이러한 점은 중국에 공산당이 들어선 이후 현대 중국에서만 이렇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고사성어, 사자성어, 속담만 봐도 이게 오늘날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중국인은 원래 충과 효 등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개개인의 야심적 성향이 강했다. 오히려 한국은 신라 골품제부터 시작해서(고구려, 백제도 비슷한 단계적 신분제가 있었다 한다.) 조선까지 계급, 나이, 신분 등에서 철저하였으나 중국은 사람들이 숭배하는 영웅들부터가 출신이 노예라도 주인이 선을 넘어서 기분에 거슬리게 말하면 대륙의 기상으로 죽이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황제나 왕, 혹은 번왕까지도 해먹었다.[41] 문화상 과거부터 남의 눈치나 보는 행동을 소인들이나 하는 일로 생각해서 대인이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상이 있다.[42] 그냥 모양만 남겨놓은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생활한다.[43] 최근에는 일부 서구권 국가들의 문화에서도 아예 실내화건 뭐건 벗고 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44] 일본도 2000년대 이후 철도 승강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회사가 늘고 있다.[45] 폭죽 소리가 클수록 액운을 가져오는 잡귀들을 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46] 당장 2017년부터 같은 이유때문에 석탄 보일러가 금지되었다.[47] 이 때문에 국민성 개그에서 정치에 관련된 질문을 할 경우 중국인들은 "난 고국에 가족이 있소"라는 답변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48] 수호지같은 고전이나 무협물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의협 개념은 꽌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49] 단, 개방 이후 다른 나라 문화의 영향으로 이 단계에서도 물건을 쓸 때 허락 받는 걸 예의로 여기는 새로운 문화가 생기기도 하고 있으니 약간 주의할 필요가 있다.[50] 했다가는 상대방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비난과 멸시를 받는다.[51] 중국이 그나마 잘하는 농구는 높이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약팀의 선수들이 미치지 않는 이상 이변이 1도 없는 종목이다. 하지만 축구는 '공은 둥글다'라는 축구 격언에서처럼 얼마든지 약팀이 강팀을 잡을 수 있는 이변이 속출하는 종목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태국에게 1:5로 발리는 등 축구에 있어서는 여전히 엄청나게 못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 중이다.[52] 미국은 첫 대회인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에서, 러시아소련 시절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에서 각각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런데 둘 다 공통점이 있었던 게 둘 다 그 대회 준우승국에게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는 거다.[53] 아시아 강팀들인 대한민국, 일본이 개최국이라, 지역예선에 참가하지 않아서 가능성도 좀 더 높아졌던 거다.[54] 중국은 3전 3패 무득점 9실점, 사우디아라비아는 3전 3패 무득점 12실점.[55] 하지만 중국 스포츠의 병폐인 승부조작과 매수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으며 축구시장에 점점 많은 돈이 쏟아져 들어옴에 따라 더욱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2011년에는 중국 축구협회 간부까지 매수에 얽혀 구속되기도 했다.[56] 그러나 AC밀란은 2018년 구단주가 빚을 갚지 못해 구단이 파산나버렸다.[57] 쑤닝전기가 소지분을 확보했다.[58]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클레이 탐슨은 ANTA와 계약했는데 이 때문에 NBA 갤러리에서는 오프시즌에 중국에 놀러간다고 놀린다.[59] NBA가 공식 웨이보를 개설하고, 공식경기와 프리시즌 투어 등을 중국에서 하면서 지속적으로 중국을 관리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60] 반면 이란은 필리핀을 여유있게 꺾으며, 올림픽 직행 티켓을 따냈다.[61] 광저우 헝다의 모기업인 부동산재벌 헝다그룹이 절대 아니다. 베이징 소재의 소규모 기업이다.[62] 2013년 6월말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중 만찬에도 창하오 9(九)단이 중국 문화, 스포츠계의 대표 중 1인으로써 초청될 정도.[63] 기사 페이지 내 광고가 많으니 클릭시 참고.[64]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의 월드컵 예선에서 중국이 이례적으로 한국을 꺾어서 더 화자되고 있다.[65] 2018년 평창 올림픽 기간까지 IOC 선수위원을 역임했다.[66] 하지만 한국인 용병 없이는 한번도 이긴적이 없다[67] 그나마도 승부치기였다.[68] 연장패 및 슛아웃패를 포함한 비공식기록이며, 공식연패는 13-14 시즌 42경기 전패로 최소 42연패다.[69] 허나 이 레드스타팀도 주전은 중국인이 많은 편은 아니다.[70] 특별행정구 홍콩은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 2인자이다. 한국과의 라이벌로도 유명하다.[71]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요즘은 Xposed 정도는 검사해서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앞서 말한 것들에 대해 관대하다고 해서 부정행위에까지 관대한 것은 절대 아니다.[72] 중국 밖에서 서비스하는 경우는 여기에 포함하지 않는다.[73] 주로 앱플레이어에 게임을 끼워넣은 형태로 배포한다.[74] 다만 이 문서(원문은 여기)대로라면 기술적으로 단순 루팅까지 차단은 가능하나 중국에서 루팅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어 실제로 시행할 경우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게임사들이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75] 중국 회사다.[76] 정식 사명은 上海巨人网络科技有限公司. 줄여서 巨人网络.[77] 중국의 식사예절은 덜어 먹을 땐 밥 위에다가 덜어먹기 때문이다.[78] 한류의 영향을 받아서 치맥을 즐기는 중국인도 늘어났다.[79] 이름 때문에 문화 쪽으로 먼저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문화대혁명은 권력싸움이 본 의도였다. 문화쪽도 피를 많이 보고 검열도 있었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