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역사
1. 대구 동양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 시절
1.1. KBL 출범 원년구단의 시작, 그리고 초기 2년간의 선전
1.2. 전설의 32연속 패배
1.3. 2001-02 시즌, 김승현과 힉스가 중심이었던 판타스틱 5와 명장 김진 감독이 만들어낸 첫 우승
1.4.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그리고 대구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금기
1.5. 명장 김진 감독의 이별과 스타 김승현의 부상 이후 대구의 비극
3. 고양 시대
3.1. 2011-12 시즌 : 추일승과 함께하게 된 고양에서의 첫 시즌
3.2. 2012-13 시즌 : 고양에서의 첫 플레이오프 진출!
3.3. 2013-14 시즌 :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
3.4. 2014-15 시즌 : 개막 8연승, 그러나 3연속 4강 진출 실패
3.5. 2015-16 시즌 : 14년의 한을 풀다
3.6. 2016-17 시즌 : 14년만의 4강 직행, 그러나 지난 시즌보다 4승을 더 하고도 챔프전 진출 실패
3.8. 2018-19 시즌 : KBL 사상 최초 10연패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
3.9. 2019-20 시즌 : 고양 이전 후 첫 최하위 기록, 최장수 추일승 감독과의 이별
1. 대구 동양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 시절
1996년 3월 실업팀 '동양제과 농구단'으로 창단했으며, 12월에는 신규 운영법인 '오리온레포츠'가 세워진 후 이듬해 1월 한국프로농구 출범 시 참가했다.
1.1. KBL 출범 원년구단의 시작, 그리고 초기 2년간의 선전
1997 KBL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동양제과 농구단은 대구 동양 오리온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된다.
초대 감독은 전 상무 감독 박광호였고 초대 코치는 향후 내부승진으로 팀을 맡게 된 김진 코치였다.
꼴찌 및 하위권 경험이 많았던 팀으로[1] , 그나마 고양으로 이전하면서 3시즌 연속 6강에 진출하는 등 다시 괜찮은 팀으로 돌아갔고 2016년 봄에는 우승도 했다.
원년 시즌과 1997-98 시즌에는 전희철, 김병철을 주축으로 하여 4강에 올라가는 등 선전했다. 허나 1998-99 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축 전희철, 김병철, 그리고 신인 박재일을 모두 군대로 보내며 그 기간 동안은 용병빨로 때우려는 심산으로 훗날을 기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1.2. 전설의 32연속 패배
[image]
31연패 했을 때의 순위표[2] . [3]
1998-99 시즌 전설을 쓰게 되었다. '''세계 프로 스포츠 사상 유례 없는 최다 연패 기록인 "32연패"'''를 포함,[4] 한 시즌에 꼴랑 3승을 기록하며 '''시즌 3승 42패 승률 0.067'''이라는 프로 스포츠 사상 최악의 성적[5] 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 당시 동양의 32연패와 승률 0.067이라는 불세출에 가까운 기록이 '''기네스북에 까지 올랐을 정도였다.'''[6][7] 이렇게 된 원인은 주축 선수들의 군입대, 그로 인한 스쿼드의 약화가 꼽힌다.[8] 그나마 약해진 스쿼드를 용병으로 어떻게든 메워 보고자, 센터로 그레그 콜버트, 가드에 존 다지를 영입했으나, 2승을 거두고 그레그 콜버트가 야반도주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자바리 마일스를 데려왔으나, 원래 마일스는 가드 포지션의 선수였는데 콜버트를 땜빵하기 위해 센터 포지션에 집어넣어 마일스는 전혀 적응을 하지 못했고, 존 다지는 전설의 3점 레이업으로 유명한 레전드급 식물용병이었다(…). 안그래도 국내 선수들의 기량 미달도 속상해 죽겠는데 콜버트는 그 와중에 야반도주... 결국 이후 기나긴 32연패의 블랙홀에 빠지고 만 것. [9]
이 때문인지 1998-99 시즌 올스타전에서도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단 한 명의 멤버도 뽑히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이 연패 기간에 '''KBL 한 경기 팀 최소 득점 경기를 무려 3번이나 갱신(...)'''하는 안습함도 보여준다.[10] 또한 이 연패로 인해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의 메인으로 두 번이나 연속으로 다뤄지기까지 한다.
속절없이 연패를 이어가는 동안 프런트 측에서는 어떻게든 연패를 끊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구단 관계자들은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도 지내고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 108배를 드렸다. 박용규 단장은 팔공산 동화사에 가서 불공을 드렸으며 김홍국 사무국장은 기혼 선수들의 부인들을 따로 불러 식사대접을 하며 더욱 적극적인 내조를 부탁하기도 했다. 여기에 중국의 중거리 육상팀인 마군단이 먹었다는 특수음료를 구해 선수들에게 공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연패 행진은 끊길 줄을 몰랐고 선수들은 패배의식에 물들어버렸다.[11] 그리고 1999년 2월 24일 삼성 썬더스와의 홈경기를 81-70으로 내주면서 대망의 32연패를 달성하고 말았다. 그러다 1999년 2월 28일, 광주 나산 플라망스와의 대구 홈 경기에서 드디어 32연패를 끊었다. 당시 대구실내체육관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였고, 이날 입장했던 4000명의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경기를 다시 전패해서 3승 42패의 전설을 완성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어떤 팀도 이 기록을 깨지 못하고 있다. 82경기를 치르는 NBA에서조차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2015-16시즌에 기록한 28연패[12] 와 2010-11시즌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단일 시즌동안 기록한 26연패가 최다다.
그러나 이 날 경기는 전문가들한테서 상대팀인 나산 선수들이 연패를 끊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받았다. 우선 나산 선수들은 전날 LG와 치른 경기가 연장전까지 가는 바람에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다른 경기와 달리 줄곧 베스트 5를 출전시킨 게 아니라 12명을 골고루 기용했다. 게다가 황유하 당시 나산 감독은 나산 선수들에게 "너희들 적당히 해라!"고 말했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이 경기에서 동양이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면, 최다연패는 무려 '''40연패'''까지도 이어질 수 있었다. 이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1999-00 시즌에는 전희철이 소집 해제되어 돌아왔으나 팀은 8위에 그쳤다. 2000-01 시즌에는 김병철도 상무에서 제대, 돌아오며 재도약을 꿈꾸었다. 하지만 포인트 가드 부족으로 인해 김병철이 포인트 가드 포지션을 맡게 되었고, 김병철은 이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용병마저도 신통치 못하며 2년만에 다시 꼴찌(…). 결국 2001년 1월에 최명룡 감독이 사퇴하고 김진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시즌을 마쳤다.
김진 코치는 팀을 어렵게 꾸렸으나 이미 32연패를 당한 선수단의 체질개선을 하지 못한채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보이면서 포인트 가드 난에 시달리는 동양 오리온스의 현주소를 보이면서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1.3. 2001-02 시즌, 김승현과 힉스가 중심이었던 판타스틱 5와 명장 김진 감독이 만들어낸 첫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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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1 시즌 이후 당초 LG 초대 감독이었던 이충희 감독을 영입할려했던 동양은 32연패 시절의 코치였던 김진 감독을 내부승진으로 선임하면서 호불호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게 되고 말았다.
창단 코치였던 김진 감독과 창단 선수에서 군입대를 마친 전희철과 김병철의 건재함으로도 달라질꺼라 생각했지만 신화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3순위를 받아, 메이저 대학 출신이 아닌 똘끼있는 가드를 지명하고 외국인 선수 드렙에선 '''좀 말라보이는 테크니션'''을 1순위로 지명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2001-02 시즌에 '''진정한 의미로 전설을 쓴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 대구 동양의 우승을 점치던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시즌 9승 36패로 리그 꼴찌였던데다 눈에 띄는 전력보강조차 없었기 때문.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똘끼있는 가드와 말라깽이 테크니션 콤비가 '''KBL을 초토화시키며 우승했다!'''
2001-02 시즌의 영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지금은 사람들 속에서 많이 잊혀졌지만, 이 둘의 활약으로 인해 2001-02 오리온스는 KBL 역사상 최강의 임팩트를 보여줬다. 시즌 개막전에서 SK빅스에게 95 대 87로 아쉬운 패배를 당했지만, 이후 1라운드 8경기에서 전승을 거두면서 단숨에 선두로 치고 나선 후, 시즌 내내 선두를 독주하며 36승 18패로 정규리그 우승을 거뒀다.
이 당시 오리온스의 플레이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신인 포인트가드 김승현은 내로라하는 KBL 기존 가드진을 모조리 찢어버리면서[13] 스피드와 똘끼 넘치는 패싱력으로 타팀의 앞선을 무너뜨렸다. 여기에 마르커스 힉스는 빠른 스피드와 득점력을 바탕으로 김승현과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를 펼쳤는데, 이후 김승현이 "피트 마이클, 아이라 클라크 등 수많은 우수한 용병과 손발을 맞췄지만 최고의 콤비는 마르커스 힉스"라고 회고했을 만큼 둘의 콤비플레이는 돋보였다.
마르커스 힉스는 쇼맨십도 대단했다. 경기 중 리액션이 상당히 큰 편이었고, 득점 찬스에선 호쾌한 덩크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운동 능력과 탄력이 당시 KBL 수준에선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김승현과의 궁합이 잘 맞았던 것.
여기에 기존 국내선수 에이스였던 김병철과 전희철은 이전에 본인들에게 몰렸던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껏 득점포를 가동했으며, 20순위로 뽑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라이언 페리맨은 리바운드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이며 리바운드왕에 올라, 팀의 클래스를 높였다.
당시 주전 라인업이었던 김승현-김병철-전희철-힉스-페리맨은 각 포지션 별 역할과 조화가 이상적으로 구현되어 '판타스틱 5'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슬램덩크 쇼호쿠의 주전라인업과 비교하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당시 주전 라인업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정규시즌을 1위로 차지한 이후 4강 플레이오프에선, 공격농구의 상징 김태환감독이 이끄는 창원LG를 만나 3승 2패로 물리치면서 (패-승-승-패-승) 창단 이후 첫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랐다.
챔피언 결정전에선 서장훈이 버티는 서울 SK 나이츠와 상대했는데, 5차전 조상현의 종료직전 극적인 버저비터 3점슛을 얻어맞고 2승 3패까지 몰렸으나, 대구에서 열린 6, 7차전을 모두 승리하면서 4승 3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의외로 정규시즌의 압도적인 모습과는 달리 4강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모두 최종전까지 갔다.
당시 우승 영상
당시 대구 팬들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는데, 대구광역시에서 열린 KBL 플레이오프 4강전(VS LG)과 챔피언 결정전 1, 2, 6, 7차전이 모두 매진된 것도 모자라 입석표까지 모두 팔려서 당시 5,4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대구실내체육관에 경기마다 7천명 이상[14] 의 관중이 들어찼다. 당시는 인터넷 예매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대구실내체육관 앞에서 밤을 샜던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표를 구하지 못해 돌아간 사람도 1천명이 넘었다. 이 때문에 대구 팬들이 오리온스에 가지는 애정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했고, 이 시즌을 기점으로 타 지역 팬들까지도 상당수 끌어모아 전국구 구단으로 거듭났다.
오리온스는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대구 연고 프로 스포츠계의 전성기를 열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삼성 라이온즈가 창단 첫 KS 우승을 차지하며 2002년에 대구광역시 연고의 프로 스포츠 팀 2개가 우승하는,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 나왔다.
1.4.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그리고 대구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금기
그 다음 해에는 정규리그 1위[15] 를 차지했고 4강 PO에서 4위 코리아텐더에게 3전 전승으로 낙승했으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원주 TG 엑서스에게 2승 4패로 밀리면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챔피언 결정전 5차전에서 그 유명한 사건인 '''잃어버린 15초'''가 터졌고, 이 사건이 사실상 우승의 향방을 바꾸게 된다.
이후 2003-2004 시즌 3위[16] 를 했으나 6강 플레이오프에서 6위팀이었던 창원 LG 세이커스에게 1승 2패로 패퇴,[17][18][19]
2004-2005시즌에는 초반에는 상위권에서 놀았으나, 갑자기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부진에 빠졌고, 6연패를 포함, 6라운드 2승 7패로 부진하며 5할 승률까지 무너지며 6위까지 내려가버렸다.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단테 존스의 열풍을 앞세웠던 안양 SBS 스타즈의 열풍에 2패로 광탈[20] 하였다.
2005-2006시즌에는 좀처럼 치고나가지 못해 28승 26패로 6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3위팀인 원주 동부 프로미 상대로 2승 1패로 4강 진출 이후 4강에서는 서장훈-올루미데 오예데지의 센터라인이였던 2위 서울 삼성 썬더스에 3패로 패퇴했다.
2006-2007 시즌에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17승 19패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그러나, 막판에 6연승 포함, 6라운드 8승 1패로 폭주하며 4위를 기록, 디펜딩 챔피언 삼성을 2승 1패로 꺾으면서 전 해의 복수에 성공했으나 모비스에게 3전 전패로 시즌을 끝냈다. 이렇게 구단 사상 최다인 6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그럭저럭 중위권을 유지하면서 최고 인기구단의 명성을 이어가는데 성공했다.
1.5. 명장 김진 감독의 이별과 스타 김승현의 부상 이후 대구의 비극
동양 창단 코치이자 첫 내부승격 사령탑이었던 명장 김진 감독은 11년간 정든 팀을 떠나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했다. 동양-오리온스에서 통산 197승을 달성했으나 자신이 지명한 김영환의 충격적인 트레이드 이적으로 인해 이동준이 온 바뀐 구단의 분위기로 인해 결국 고인물은 썩힘을 강조하면서 1년 남은 계약기간 대신 도전을 선택하게 된다. 2007 KBL 드래프트에서 1 라운스 8 순위의 오리온스는 1 라운드 2순위의 전자랜드와 KBL 픽 트레이드를 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 감독은 구단에 섭섭함을 드러내며 평소 이적을 꿈꾸었으나 현실이 되고 말았다. 추가로,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병철의 노쇠화와 김승현의 부상누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후임으로 6년전 영입할려 했던 창원 LG 세이커스 초대 감독이었던 이충희 전 고려대-동국대 감독을 영입했다. 자신을 보좌할 코치로 김상식 수석코치를 내정했다. 하지만, 자율 속 체계의 김진 감독 농구에 적응된 오리온스 선수들이 카리스마의 이충희 감독 농구에 적응할지는 의문부호를 갖게 했다.
2007-08 시즌 팀은 개막 2연승을 타게 된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2연승 이후 확 죽어 버리며 부진에 빠졌고, 이충희 감독도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사퇴하는 등 어수선한 시즌을 보내다가 '''꼴찌'''가 되었다.(하필 그 때 김승현이 흔들렸다...) 사실 전조는 4강에 나갔던 2006-07 시즌부터 보였는데, 김승현은 이 시즌부터 혹사의 여파가 나타나면서 유리몸 기질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역대 프로농구에서도 가장 압도적 기량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 피트 마이클에게 공을 몰아주기 바빴다. 오죽하면 '''피트 오리온스''', '''대구 마이클스'''같은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 결국 김승현과 마이클의 컨디션 저하와 김진 감독의 SK 이적설로 인해 4강 PO에서 모비스에게 힘 한번 못 쓰고 무너져 버렸고, 그 결과 자유계약용병제가 폐지된 2007-08 시즌부터 김승현의 허리부상, 다른 선수들의 기량 저하 같은 불안 요소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12승 42패를 기록하며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것. 그 후 이충희 감독의 후임으로 내정된 수석코치이자 대행이었던 김상식 감독 역시 2008-09 시즌 중후반부터 이어진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시즌 도중 사퇴하는 등 2008-09 시즌도 결국 이렇다 할 반등을 못하다가 9위에 머물러, 다시 이 팀의 안습 행보가 시작되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게다가 그 와중에 김승현과 연봉 협상을 하다가 일이 틀어지자,[21]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면서 성적은 점점 더 하위권으로 처지게 되었다. 결국 2009-10 시즌과 2010-11 시즌도 2연속 꼴찌로 마무리. 2007-08 시즌부터 4시즌 간 양궁순위(?)인 10-9-10-10(십구십십) 순위를 기록하며 이 때부터 '''꼴리온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생겼다.
2. 구 대구 오리온스의 막장 운영과 문제의 연고 이전
2011년 모기업인 오리온이 검찰 수사를 받았는데, 이에 맞물려 끈질기게 팀 매각설이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 경기도 고양시에 숙소 및 '''연고지'''를 옮길 것이라는 기사가 터졌다.[22] 프로야구팀과 프로축구팀의 인기에 밀려 관중동원 최하위를 기록하는 게 이유라는데, 당연히 프로팀의 관중동원은 팀 성적과 비례하는 것.[23] 한선교 신임 총재와 함께 새롭게 거듭나려는 KBL에 연고지 이전이라는 최악의 수를 던지면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우려되었다. 결국 2011-12 시즌을 앞두고 '''연고 이전이 확정되었다'''. 2011년 3월 19일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경기가 대구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시설 면에서 다소 뒤떨어지긴 했지만[24] 32연패 기간에도 자주 찾았던 대구 팬들의 발걸음을 '''결국 끊게''' 만든 것은 결국 오리온스의 막장 운영 때문이니 팬들을 원망할 것은 아니다.
대구시민들에게 비난받았던 이유는 구단 운영이 전체적으로 완전히 막장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구단 사무실·숙소·훈련장·연습장이 대구에 없고 구단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숙소·훈련장·연습장은 용인에 있었다. 이것 때문에 '''용인 오리온스'''라는 별명이 있었다.[25] 말 그대로 경기만 대구실내체육관에서 했으며 거기다 유지 보수나 시설 보강에서는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김승현 이면 계약이 드러났고 팬과의 간담회나 싸인회 같은 팬 서비스는 전무했으며 전무후무한 32연패라는 매우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구시에서 돈을 들여 홈구장 사용료를 대폭 인하해주고 시설 보수를 해줬다는 거다. 또 32연패라는 매우 저조한 성적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시민들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었으나, 결국 구단은 제대로 뒤통수를 쳐 버린 셈이다. 당시 이전설이 나돌때 구단에서는 "검토중이다, 아직까지 결정된 건 없다" 라고 언플만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전이 확정되어서야 이전 발표를 했는데 이것은 엄연히 거짓말이자 배신이었다. 오리온스 구단은 사실 '뜨내기 구단'으로 불릴 정도로 연고지에 애착이 없는 구단으로 평가받아 왔으며 비밀스런 구단 운영 등으로 도마에 올랐었다. 막판에는 '''"그래도 떠나려면 대구시민에게 예의를 갖춰 이별은 하고 가야 한다."'''라는 지역 언론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가버렸다.[26]
하지만 오리온스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주었고 팬들은 아낌없는 성원과 응원을 해주었다. 따라서 막장 운영을 주도한 구단 측을 욕해야지, 절대 선수들에 대해서 욕을 해서는 안된다. 어쨌든 이렇게 구단이 팬들에게 제대로 병맛스러운 크리티컬 헤드샷을 날려줌으로서 분노한 팬들에 의해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흑역사로 남았다. 당시 한 오리온스 팬은 '''대구·경북 인구가 500만 정도인데 열심히 투자해서 골수팬들[27] 좀 만들어놓으면 오리온 장사도 잘 될 건데... 이미 포화 상태인 수도권에 가서 뭐하자는 거냐. 거기다 스포츠에 별 관심도 없는 인구 100만도 안되는 고양에 가서 뭘 하자는 건지...'''라는 식으로 인터뷰를 했었다.
한편 이 인터뷰로부터 3년이 지난 2014년 8월에 고양시 인구수가 결국 100만명을 넘겼다. 그리고 프로야구 제 10구단도 이미 구단이 4개나 있던 수도권에 자리를 잡고 어느정도 흥행에 성공하였다. 아직까지는 확답하기 이르지만 구미에서 의정부로 이전한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도 구미 시절보다 흥행에 성공하면 지방은 스포츠 불모지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으며 농구와 배구의 수도권 집중 현상도 막을 방법이 없어진다.
2.1. 이랜드그룹과 관련된 일화
2016년 2월, 석주일이 아프리카 방송에서 전주 KCC 이지스의 연고 이전설과 관련해서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연고 이전 비화를 털어놓았는데, 이랜드그룹에서 오리온그룹에게 "너네 구단 삼. 대신 수도권으로 연고 이전 해야한다는 조건이 있어."라고 손을 내밀었고, 오리온그룹에서 농구단 매각을 위해 연고 이전을 했지만 정작 이랜드그룹이 "우리 축구단 만들기로 했음. 미안."이라며 말을 바꿔버린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이 부분에서 석주일이 오해한 건 2012년에 이랜드 그룹이 추진한 건 축구단 창단이 아니라 LA 다저스 인수였다.이랜드그룹, LA 다저스 구단 인수 참여(2012년 1월 30일 기사) LA 다저스 인수와 프로축구단 창단을 동시에 준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LA 다저스를 인수한 구겐하임 컨소시엄이 제출한 인수 금액은 21억5000만 달러, 당시 2조 2천억 원에 달했기 때문. LA 다저스 인수 실패 후 KBO 리그와 K리그를 저울질 했고 폐쇄적이어서 더 이상 팀 창단을 유보한 KBO 리그 대신 선택한 게 서울 이랜드 FC인 것이다.
즉, 오리온그룹이 회사 사정도 나빠지고 해서[28] 팀을 매각하려고 새 주인이 될 뻔한 이랜드의 요구에 따라 연고지를 옮겼다고 보면 되겠다. 결국 이랜드가 LA 다저스 인수에 힘을 쏟느라 무산되었긴 하지만. 물론 구단 자체가 대구에 대한 애정이 아예 없었다는 것도 생각할 필요는 있다.
3. 고양 시대
3.1. 2011-12 시즌 : 추일승과 함께하게 된 고양에서의 첫 시즌
계속되는 성적부진으로 인해 과거 KTF 매직윙스 시절에도 연고이전 전문가(?)로 알려진 MBC SPORTS+에서 해설위원으로 일하던 추일승 전 KTF 매직윙스 감독을 오리온스 7대 감독으로 선임한다.
같이하게 될 코칭스테프로는 서동철 전 삼성 수석코치와 성준모 코치를 부르게 된다.
추가로, 추일승 감독은 대구체육관의 훈련시설문제를 제기하며 심용섭 단장과 한배를 같이 타게 된다. 결국 꺼내든 카드는 연고이전.
결국 충격적인 연고지 이전을 단행하면서 로고를 변경하는 등 대구 동양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의 흔적을 모두 없앴다.[29]
이렇게 갖은 욕을 다 먹으면서 고양시로 연고를 이전했으나, 여기서도 현실은 시궁창. 2005~2007년 모비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용병 크리스 윌리엄스가 정말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나머지 선수들의 경기력은 꿈도 희망도 없는 수준. 시원하게 개막 6연패를 찍으며 1998-99 시즌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다만 개막전에 '''6045명'''의 구름관중이 찾는 등 관중 흥행 면에서는 참패는 면했다. 그 와중에 이동준이 KCC와의 경기에서 부상당하며 진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했으나, 루키 최진수가 이동준의 공백을 말끔히 메우고, 김승현을 서울 삼성 썬더스에 내준 후 김동욱을 영입하며 김동욱 영입 후 4승 7패로 그럭저럭 팀이 정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동욱 영입 전 3승 17패로 빌빌대던 모습과는 나름 대조적.
유독 창원 LG 세이커스에 약했다. 2006-07 시즌까지는 호각을 이루었으나, 2007-08 시즌 이후 지금까지 오리온스는 LG를 25번 만났는데 '''단 2번 이겼다'''. 덤으로 이때 특정 구장 역대 최다 원정 연패 1위인 오리온의 창원 원정 13연패도 이때 나왔다. 2008-09 시즌 LG가 한때 부진하면서, 오리온이 초반 좋았을 때 이겼으나 결국 상대전적은 2승 4패. 그 이후 '''전패'''하면서 LG전 16연패를 기록하다가, 2011년 11월 5일 드디어 연패를 끊었다. 그 후 12월 23일 LG와의 홈경기, 그 이후에도 LG전을 2번 더 승리하며 올 시즌 LG에게 4승을 챙겼다.
12월 27일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홈경기에서 승리하며 다시 탈꼴찌에 성공. 그리고 2012년 2월, 처음 3라운드 5승 22패 대삽질 때문에 삼성과 꼴찌싸움을 하는 바람에 6강은 물건너 갔지만, 크리스 윌리엄스-최진수-김동욱의 삼각 편대가 완벽하게 돌아가면서 더 이상 만만하게 볼 수 없는 팀으로 탈바꿈하였으며, 4라운드부터 매 라운드마다 5승씩 기록하여 SK마저 밀어내고 8위로 올라섰다. 막판에서야 3연승에 성공한건 덤. 결국 '''5년만에''' 20승을 채우며 8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김승현 ↔ 김동욱 트레이드 전, 3승 17패로 빌빌대던 시즌 초반과는 달리 김동욱 영입 후 17승 17패의 5할 승률을 이루어 내며 차기 시즌에 희망을 안겼다. 13.1득점 3.9어시스트를 기록한 김동욱은 2011-2012 시즌 프로농구 기량발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2. 2012-13 시즌 : 고양에서의 첫 플레이오프 진출!
2012년 5월 4일, 전태풍을 영입하면서 약점이었던 포인트가드 자리마저 채우며 2012-13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했고, 결국 1라운드부터 6승 3패의 강세를 보였다. 2라운드에는 6연패를 포함하여 2승 7패로 약간 삐끗하고 있지만... 대박이라고 평가받던 레더가 연습경기 중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다 시즌 중 야반도주를 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그나마 2R 17순위로 데려온 리온 윌리엄스가 197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골밑을 굳건하게 지켜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김동욱, 최진수가 부상으로 결장했고 새로 뽑은 스콧 메리트가 팀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어 남은 시즌의 전망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시즌 전 다크호스로 꼽혔던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현실. 결국 6연패를 당했으나 SK, 모비스, 전자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6팀 역시 계속 삽질을 하고 있는 덕분에 3라운드까지 12승 15패로 여전히 6강 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 후 그 6팀 중 인삼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여전히 삽질하고 있는 덕분에 6라운드에 돌입하면서 승률이 5할을 넘기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5위에 랭크되어서 치열하게 6강 싸움을 전개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지난 시즌에 비해서는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홈경기에서도 그나마 성적이 나기 시작하면서 관중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6라운드에서 6승 3패를 하며 5위를 무난하게 유지하며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고, 6라운드에서 막판 4연승을 한 덕분에 더불어 5할 승률(27승 27패)도 달성했다. 피트 마이클이 활약한 2006-07시즌 이후 6년만의 5할 승률과 플레이오프 진출. 6강 상대인 안양 KGC인삼공사를 맞아 안양 원정경기에서 2경기를 내줬지만 안방에서 78-74,72-65로 내리 2연승을 거두었다. 특히 '''2013년 3월 26일 경기는 고양에서의 첫 플레이오프 경기 및 승리였다.''' 하지만 끝내 안양에서 벌어진 마지막 5차전에서 3쿼터에 밀리며 경기를 잡지 못했고, 69-78로 패배하며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4강 진출 실패.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다.
3.3. 2013-14 시즌 :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
시즌을 앞두고 팀 컬러를 고양시를 상징하는 메인 컬러인 보라색으로 바꾸었다. 자연히 홈 유니폼과 고양체육관 코트도 보라색으로 탈바꿈.
개막전부터 나름 올스타급 멤버를 갖췄다고 생각한 오리온스였으나, 오히려 전태풍과 김동욱이 호흡이 맞지 않고 최진수가 개막전부터 부진하며 kt와의 개막전에서 65-83 패배, 이후 3연패를 더 하였다. 그 후 저조한 성적을 올리다[30] 2라운드를 기점으로 KGC전 이후 살아나 4연승을 펼쳤다. 다만 이후 어이없는 오심 논란이 휩싸이며 서울 SK 나이츠홈 27연승의 제물이 되어버린 뒤 한풀 꺾인 모습을 보여줬다.
2라운드에는 전태풍이 어느정도 활약해 줬고 이현민도 나름 좋은 활약을 펼치고, 김승원이 어느정도 성장세를 보인 것도 있으며, 용병진인 리온 윌리엄스와 랜스 골번은 두 선수 누구도 위압감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전태풍과 김동욱이 호흡이 잘 맞는다고 보기는 어려웠으며, 여전히 최진수는 살아날 기미만 보여줄 뿐 완전히 살아나지는 않았고, 김동욱은 먹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윌리엄스조차 작년의 훌륭한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12월 18일 부산 kt 소닉붐과의 4:4 트레이드로 전태풍, 김승원, 김종범, 랜스 골번을 kt로 보내고 앤서니 리처드슨, 김도수, 장재석, 임종일을 데려왔다. 그 이후 KGC인삼공사의 상승세를 저지하고 모비스를 제압하면서 오리온스는 돌풍을 일으키더니 서울 삼성 썬더스와 공동 6위까지 올라섰다. 장재석의 맹활약이 가장 큰 요인. 그리고 2월 5일 KGC인삼공사의 경기를 이기면서 7연승에 성공했는데, 이 7연승은 3714일 만의 연승이다! 거기에 8일에는 1위 울산 모비스를 '''87 - 67'''이라는 스코어로 20점차로 완파하고 '''4403'''일 만에 8연승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외에도 2013년 12월 31일부터 이어온 (역시 상대가 모비스였다. 73-71 4Q 짜릿한 역전승.) 홈 경기 8연승도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2월 11일, SK와 3차 연장까지 가는 끝에 87-94로 패배하면서 9연승에 실패했고, 이후 후반 상승세가 꺾이면서 27승 27패로 5할 승률을 기록하면서 작년과 같은 승패, 그렇게 6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결국 정규시즌 상대성적 6전 전패의 3위 SK나이츠랑 6강 PO를 치른다.
6강 PO 1차전 서울학생 원정은 쿼터 내내 5점차 안팎으로 밀리다가, 4쿼터에서 멀어지면서 73-84 패배, 다다음날 열린 6강 PO 2차전에서 3쿼터 한 때 '''20점차'''까지 앞섰지만 장재석의 개그 이후로 SK쪽에 분위기를 완전히 뺏겼다. 4Q에 한때 6분 이상 무득점으로 공수 모두 무기력해진 오리온스는 김선형-헤인즈의 SK에게 78-80으로 충격의 대역전패를 당하게 되며 홈 고양으로 돌아온다.
3차전에서는 리차드슨의 활약과 삭발한 장재석의 활약으로 81-64로 승리. 2패뒤 첫 승이었고 정규시즌 포함 SK전 8연패를 끊었다. 그러나, 4차전에서 판정논란과 허일영-박상오, 최진수-심스의 신경전까지 이어지며 경기는 과열되었다. 31-48 상황에서 오리온스는 동점까지 쫓아갔지만 코트니 심스를 막지 못하면서 결국 60-63으로 아쉬운 석패. 시리즈를 1승 3패로 6강 PO에서 탈락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당시 야전사령관 이현민은 4차전 경기가 끝나고 눈물을 보이며 안타까워했다.
2013-2014 정규리그 상대전적은 상위권팀 3위 SK에게는 6패 압살[31] , 1위 LG는 1승 5패 절대 열세, 2위 모비스는 3승 3패 동률을 기록했으며, 중위권팀 5위 KT는 3승 3패 동률, 4위 전자랜드는 2승 4패 열세를 기록했으며, 하위권팀 9위 KGC는 6승 압살, 8위 삼성은 5승 1패 절대 우세, 7위 KCC, 10위 동부에게는 4승 2패 우세를 기록했다. 특이점은 3위 SK에게 전패했으나 경기내용은 매 경기 접전이었고 2라운드 패배는 오심, 5라운드 패배는 3차 연장까지 간 패배다. 2위 모비스에게도 3승 3패 동률로 상대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줬고, 하위권팀에게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은 승패가 같았던 5위 KT랑 3승 3패 동률이었으나 공방률에서 뒤지면서 6위로 밀려난 것이 아쉬웠다.
3.4. 2014-15 시즌 : 개막 8연승, 그러나 3연속 4강 진출 실패
시즌 이후 FA로 베테랑가드인 임재현을 영입했다. 시즌 전 드래프트를 앞두고 4:4트레이드 과정에서 김도수의 도핑 파문때문에 트레이드 이후 지명권의 양도 여부를 놓고 많은 추측이 오고 갔는데 kt의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고 2라운드 지명권을 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인드래프트에서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드래프트에서 '''1순위'''[32] 와 7순위의 지명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드래프트의 최대어인 이승현을 지명하는데 성공했다. 7순위에는 듀얼가드인 이호현을 뽑았고, 3라운드에서 성균관대 출신 빅맨 김만종을 뽑았다.
당초 메인 용병으로 1순위 찰스 가르시아를 뽑았으나, 트로이 길렌워터의 기량이 더 좋다는 소식이 시즌 전부터 꾸준히 전해졌고[33] , 아니나 다를까 개막 이후 3경기 연속으로 트로이 길렌워터의 공수양면으로 맹활약 속에 연승을 달렸다. 개막 전 몸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 성실성의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하는 의구심을 길렌워터는 연이은 활약으로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오랜만에 오리온스에 나타난 대형신인 이승현도 시즌 초반 좋은 활약을 보여줘 홈팬들을 설레게 했다. 찰스 가르시아마저 기대하지 않았던 외곽슛을 잘 꽂아넣고 호쾌한 덩크를 보여주며 열정적인 모습과 친화력으로 팀에 긍정적인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특히, 서울 SK 나이츠전에는 전기 시즌에 당했던 6연패를 끊어내는 승리(83-67 勝)라 팬들을 기쁘게 했다.[34] 이후 작년 정규시즌 우승팀인 창원 LG 세이커스와 포스트시즌 우승팀인 울산 모비스 피버스까지 홈에서 81-74로 제압하며 5연승을 달리며 단독 1위를 달린다. 10월 23일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의 홈경기에서도 김강선의 위닝샷으로 81-79 2점차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며 개막 6연승을 이어나갔다.[35] 10월 25일에는 부산 kt 소닉붐을 이기고 기어이 7연승을 달렸고 게다가 10월 27일에 KCC까지 제압하면서 개막 8연승으로 2011-12 시즌 원주 동부 프로미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10월 30일에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을 이기면 최초로 개막 9연승 겸 1라운드에서 전승을 이룰 수 있었으나, 오세근이 복귀하고 이승현이 2쿼터에 파울 트러블에 걸리는 등 8연승을 달렸던 경기력을 전혀 펼치지 못하고 고전했다. 결국 KGC에게 59-68로 패배하면서 연승이 끊기고 말았다.
여기서 패배한 뒤로 동부에 76-85, 모비스에 91-100으로 패하며 쭉 연패해 3연패까지 갔으나, 11월 8일 KCC전에서 이현민과 트로이 길렌워터가 활약했고, 복귀한 김동욱이 선전하면서 연패를 끊는 데 성공했다. 11월18일 kt와의 경기에서 이재도 전창진 인터뷰 내용중 오리온스는 이현민의 오른쪽 드리블로 파생되는 공격를 막으면 된다는 언론+심리 플레이에 말리게 된다. 그 이후로 타팀들도 이현민과 길렌워터를 공략할 방법을 가지고 오며 상승세가 주춤하게 된다.
2015년 1월 12일 서울 삼성 썬더스와 2:2 트레이드를 단행, 이호현과 찰스 가르시아를 보내고 '''리오 라이온스(!!!)'''와 방경수를 받았다. 라이온스 효과로 14일 SK에 비록 67-74로 패했지만 4쿼터 중반까지 접전을 펼치면서 좋은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중위권에서 버티다가 2월 7일 kt전을 기점으로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2월 15일 LG전에는 '''104득점'''으로 맹폭하면서 23점으로 대승하며 고양에서의 통산 100승을 하게 되었다. 2월 21일 울산 모비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라이온스의 활약으로 80-69로 승리하면서 '''3시즌 연속 PO 진출'''을 확정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SK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는 연장 접전끝에 88-90으로 패배하면서 5위로 시즌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6강 플레이오프 1,2차전은 창원에서.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62-82로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2차전에서 길렌워터의 불도저같은 공격력으로 76-72로 승리했다. 이날 길렌워터는 36점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은 일등 공신이 됨. 3차전에서도 전반에 대등한 경기를 보이다가 4쿼터 66-56으로 10점차까지 앞섰지만, 종료 24초전, 김시래의 위닝샷을 내주며 73-74 1점차 석패. 그러나 이튿날 후 4차전을 77-63으로 따내며 2년 전과 같이 5차전으로 돌입, 전반에 대등한 경기를 보이다가 3쿼터에 오리온스는 무너진다. 4쿼터 초반 54-73으로 19첨차까지 뒤지며 패색이 짙었지만, 김동욱,이승현의 슛이 폭발하며 83-80으로 역전에 성공한다. 그러나... 김종규에게 파울자유투를 내주고 다시 재역전을 당한 뒤, 리오 라이온스가 1점 차, 3점 차 상황에서 2번의 결정적 기회를 날려먹으며 탈락하였다. '''오리온스는 3시즌 연속 6강에 진출했으나 4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2014-15 시즌 정규리그 상대전적은 상위권팀 1위 모비스 3승 3패 동률, 2위 동부, 3위 SK에게 1승 5패 절대 열세, 중위권팀 6위 전자랜드 4승 2패 우세, 4위 LG 3승 3패 동률, 하위권팀 9위 KCC 6승 압살, 10위 삼성 5승 1패 절대 우세, 7위 KT, 8위 KGC에게 4승 2패를 기록했다. 특이점으로는 1위 모비스에게 작년에 이어 3승 3패 동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른 상위권팀 2위 동부, 3위 SK에게 2승 10패 절대 열세를 보이면서 5위에 그쳤다.
2014-15시즌을 총평하자면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초반에는 2라운드로 선발한 트로이 길렌워터가 활약해줬고, 이승현도 활약해주면서 개막 8연승을 달렸으나 트로이 길렌워터, 이승현이 분석당하면서 성적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과의 트레이드로 리오 라이온스를 데려왔고 초반에는 효과가 없었으나 시즌 막판 6연승을 달리면서 트레이드 효과를 보았다. 그래도 이승현이 바로 프로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용병 수비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인 이승현은 고려대의 두목답게 골밑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평균 10.7점 5.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허일영은 부상이 있었지만 평균 9.6점 4.4리바운드 3점슛 1.8개 3점슛 1위에 오르면서 오리온스의 슈터 역할을 해주었다. 이현민은 후반기 무릎 부상으로 인한 출전시간 감소에도 불구하고 평균 6점 5.3어시스트 데뷔 후 첫 어시스트 1위를 기록하며 오리온스의 사령관 역할을 했다. 용병은 트로이 길렌워터는 평균 19.8점 5.9리바운드 득점 4위를 기록하며 오리온스의 에이스 역할을 해주었다. 아쉬운 것은 빠른 체력 저하와 시즌 중반 부진이었다. 그래도 후반기에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6강 PO에서는 데이본 제퍼슨과의 득점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제 역할을 다 했다. 삼성과의 트레이드로 온 리오 라이온스는 시즌 평균 19.7점 9,3리바운드 득점 5위 리바운드 3위, 오리온스 이적 후에는 평균 16.7점 6.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오리온스 농구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트레이드 당시 많은 농구팬들이 우려했던 트로이 길렌워터와의 마찰을 없었다. 하지만 5차전 제외한 6강 PO에서의 부진이 아쉬웠다. 찰스 가르시아는 삼성으로 트레이드 전까지 평균 10.8점 4.6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2015-16 시즌부터는 '고양 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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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팀 명칭을 바꿀 예정이었으며 팀명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지만 결국 '오리온스'라는 팀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차기 시즌부터 팀 명칭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되었다.근데 문제는 그 이후... 15-16 시즌 문단을 참조.
3.5. 2015-16 시즌 : 14년의 한을 풀다
직전 시즌 종료 이후 노경석과 박찬성이 은퇴하고 성재준은 상무 입대로 팀을 떠났다. FA대상자 및 FA영입이 없었으나,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FA협상에 실패한 문태종을 사인 앤 트레이드 형태로 영입했다. 총액 3억 8천500만원(연봉 2억 6천950만원·인센티브 1억 1천550만원)에 1년 계약이며, 상응하는 대가는 신인 1라운드 지명권.[36] 또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임대 형식으로 뛰었던 정재홍이 팀에 복귀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7순위를 받으면서, KBL에서 검증된 선수인 애런 헤인즈를 영입했다. 2라운드에서는 단신의 포인트가드인 조 잭슨을 선발했다. 순번이 낮았기에 만족스러운 픽이라는 평가는 나오지 않았지만, 삼성-모비스-LG-SK를 거친 헤인즈라는 검증되고 안정적인 능력을 갖춘 KBL 8년차 빅맨과 16년만에 KBL 무대에 재등장하는 포인트가드 용병 조 잭슨의 조합은 큰 화제를 모았다. 추일승 감독은 문태종, 헤인즈 등의 영입을 바탕으로 다시한번 우승에 도전하겠다며 계약 마지막해인 만큼 본인이 하고 싶은 농구, 빠른 공격농구를 원없이 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시즌 전 열린 2015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와 중앙대학교를 연파하며 준결승에 올랐고, 준결승에서는 외국인 선수 한명이 부상으로 뛰지 못한 전주 KCC 이지스를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거두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애런 헤인즈 및 문태종이 여전한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조 잭슨 또한 인상적인 스피드와 공격능력을 보여주며 활약했다. 또한 자비를 들여 미국에 가서 스킬트레이닝을 받아 화제를 모았던 정재홍이 가드진에서 눈에 띄는 모습을 선보여 기대를 모았다. 결승전에서는 대학 최강 고려대와 맞붙어, 한수 위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손쉽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승현은 모교 후배들과의 맞대결에서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여주며 대회 MVP를 차지하였다.
여러모로 큰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시즌이었지만, 불법 스포츠도박 사건에 장재석 포함 2명의 선수가 연루되며 시즌 전망에 빨간불이 켜졌다. 장재석은 천만원여의 불법 스포츠도박 혐의를, 또다른 A선수는 경기 정보 전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최종 수사 결과 장재석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출장정지를 포함한 징계를 받게 되었다.
2015-16 시즌 개막 직전인 9월 10일, 설문조사로 변경 예정이었다가 팬들 결정에 의해 유지 예정이라던 팀명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변경하였다. 농갤러들이 작명한 이름들(...) 또 11월 1일부터 운영권이 오리온레포츠에서 오리온으로 넘어갔다.
개막 직후 동안의 오리온은 상당히 공격적인 색깔의 농구를 했다. 평균 득점은 9월 17일 기준 87득점으로 리그 1위이며, 어시스트도 19 개로 리그 2위이며, 자유투 성공률도 81.3%로 리그 1위이다. 1라운드를 마친 시점에서의 성적은 지난해와 같은 8승 1패, 다만 지난 시즌과는 다른 것이, 지난 시즌에는 길렌워터 혼자만의 활약으로 이 성적을 거두었다면, 이번 시즌은 헤인즈 외에도 문태종, 김동욱, 허일영 등의 국내선수들이 활약을 보였다는 것. 지난 시즌 2라운드부터 시작된 DTD가 길렌워터에 대한 분석이 되며 막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미 8시즌 째를 뛰고 있는 헤인즈의 성적이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데다 이승현의 부상이 그리 심하지 않아 빠른 시일 내에 복귀를 할 것이 예상되므로 지난 시즌과는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 게다가 헤인즈, 문태종, 이승현, 김동욱 등 BQ가 높은 포워드들이 인사이드를 흔들어 놓고 허일영, 전정규와 같이 캐치 앤 샷이 정확한 선수들에게 좋은 패스를 줌으로써, 2라운드가 끝날때까지 평득 1위, 3점슛 성공률 1위의 압도적인 공격지표를 보이고 있어 '''고양 스테이트 오리온스'''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그런데...
11월 15일 전주 KCC 이지스와의 경기에서 헤인즈가 '''무릎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대체용병 제스퍼 존슨, 징계에서 복귀한 장재석 등이 팀에 합류했지만 헤인즈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며 팀 조직력이 급격히 무너졌고, 초반 21경기에서 18승 3패를 기록하던것과 대조적으로 곧장 서울 SK 나이츠의 7연패를 끊어주더니 12경기에서 4승 8패에 그치며 순위 역시 모비스에게 1위를 내주고 2위로 한계단 내려앉고 말았다. 12월 25일 SK전에서 헤인즈가 40여일만에 복귀전을 펼치며 반전의 기대감을 심어주는가 싶었지만, 1쿼터만에 다시 발목부상을 입어 교체아웃되고 말았다. '''결국 하루 전인 24일에 출국했던 제스퍼 존슨을 바로 다시 대체로 불러들이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2016년 새해 첫 경기였던 1월 2일 안양 KGC와의 홈 경기에서는 외곽 3점슛을 무려 13개나 성공시키며 106:78로 대승을 거두었다. 1월 6일 서울 SK와의 홈 경기에서도 외곽슛을 12개나 성공시켰고 특히 2쿼터에 30점을 넣으며 화력이 집중되며 80:75로 승리를 가져갔다. 그리고 그 시점에 조 잭슨의 경기력에 물이 올라왔다.
모비스가 주춤하는 사이에 '''1월 24일 삼성전 승리로 1위로 올라섰다!!''' 헤인즈와 허일영 등의 부상 속에서도 조 잭슨의 각성과 나머지 선수들의 분발 속에서 이루어낸 선두 탈환이다.
하지만 1월 30일 모비스와의 1위 맞대결에서 4Q에 75:80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2위로 내려앉았다. 또한 이날은 상무에서 전역한 최진수의 복귀 경기. 2월 4일 KGC전에서 헤인즈를 조기 복귀시키는 수를 썼지만 아깝게 72:75 3점차 석패, 2월 5일 KCC가 모비스를 제압하면서 오리온은 '''3위'''로 내려갔다. 최하위 전자랜드를 이기며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라틀리프가 '''없는''' 삼성에게 73:81로 충격패하며 선두권 경쟁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모비스와의 홈 리턴 매치에서 73:88로 압패한다. 오리온이 넣은 73점 중 38점이 헤인즈의 득점, 국내선수들을 포함한 나머지 선수들의 득점은 35점에 그쳤다. 또한 게임이 안풀려 흥분한 조잭슨은 0득점 7턴오버.. 이날 패배로 오리온은 4강직행이 어렵게 되었다.
일단 KCC와의 6라운드 경기를 잡아야 경우의 수가 남게 되는 상황. 하지만 KCC에게 전주 원정에서 종료 직전 전태풍에게 3점슛을 얻어맞으며 71:73 통한의 패배, 4강 직행에 실패하는 순간이었다.[37] 뒤이은 2월 18일 동부전에서 80:73승리를 거두며 오리온은 32승 22패로 3위를 확정지었다. 그리고 이 날 상대했던 동부는 일찌감치 6위를 확정지은 상태여서 10년만에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붙게 되었다.[38]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부터 104점'''을 내면서 78점을 득점한 원주 동부를 압도하였다. 2차전은 조 잭슨(24점)-헤인즈(23점)의 47점 합작과 4쿼터의 사나이 문태종의 결정적인 3점슛으로 24점으로 분전한 맥키네스의 동부를 84-76으로 제압했다. 오리온은 3차전마저 이승현의 20점 활약으로 79-67로 가볍게 승리, 2006-07 시즌 이후 4강 플레이오프에 '''9시즌 만에''' 광속진출했다.
4강 PO의 상대는 울산 모비스. 1차전 울산 원정에서 추일승 감독은 모비스의 야전사령관인 양동근의 수비를 그보다 20CM나 큰 최진수에게 맡긴다. 결과는 대성공, 오리온은 양동근을 묶어뒀고 대등한 경기를 이어갔다. 4Q에 터진 문태종의 3점과 조 잭슨의 천금같은 자유투, 그리고 공격 리바운드!! 69:68로 오리온은 적지에서 짜릿한 선승을 거둔다. 이튿날 이어진 경기에서도 수비농구를 이어가며 62-59로 승리하며 적지에서 2승을 모조리 따내며 고양 홈으로 향한다. 3차전 열린 고양에서 오리온은 1쿼터 득점에 고전하다 2쿼터 헤인즈, 조 잭슨이 같이 달리면서 10점차 내외로 스코어를 벌린 뒤, 4쿼터에 굳히기에 성공하며 76:59로 승리, 3전 전승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광속 진출한다.
동부와 모비스 두 팀 모두 걸출한 토종 빅맨과 함께 언더사이즈 빅맨으로 재미를 많이 봤던 팀인데, 효과적인 도움 수비로 페인트존의 득점을 최소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허웅, 두경민, 전준범, 송창용, 양동근과 같은 외곽 슛터들의 공격마저도 장신 포워드진들의 스위칭을 통하여 움직임을 철저하게 봉쇄하여 수비가 약하다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의 발전을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수비로 일을 낸 셈. 그 결과 동부와의 6강 PO에서는 평균득점 90점대의 공격농구를, 모비스와의 4강 PO에서는 평균실점 60점대의 극과 극을 달리는 농구를 보여주며 조직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챔피언 결정전 1차전 전주 원정에서는 전반전에 주도권을 잡다가 3쿼터부터 밀리게 되고, 결국 4쿼터 막판 김민구의 연속 3점 두방으로 분위기가 넘어가며 82-76으로 석패한다. 이 날 문태종과 김민구의 신경전이 있었고 김민구의 행동이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 2차전은 오리온이 경기초반부터 좋은 슛감을 이어갔다. 1쿼터 석연찮은 판정으로 이승현이 일찌감치 3파울에 걸리며 2쿼터 8점차까지 쫒아오는 빌미를 제공했으나, 후반전 다시 오리온의 페이스를 찾으며 4쿼터 일찌감치 가비지 타임에 들어갔다. 조 잭슨은 4쿼터에 김태홍을 상대로 인유어페이스를 꽂아버리며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왔다. 최종 스코어는 99-71의 대승. 99점의 스코어로 팀 파이널 최고득점 기록을 경신했고, 28점의 점수차는 파이널 최다 4위의 점수차 기록이다.
홈인 고양에서 열린 3차전에서는 2차전과 마찬가지로 에밋과 그로 파생되는 공격루트를 연쇄적으로 차단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에밋은 27점을 기록하여 나름 분전했지만 에밋을 제외한 다른 공격수들을 모조리 10점 이하로 틀어막는 전략이 적중하였다. 오리온의 공격은 2차전과 같은 파상공격이었다. 그 결과 3쿼터에서부터 가비지 타임이 나기 시작하여 KCC를 92-70으로 여유롭게 따돌렸다. 이러다보니 4강 플레이오프에서 패배를 당했지만 오리온을 세경기 평균 69점대로 틀어막은 모비스는 오히려 잘 막은게 아니냐면서 뜻밖의 재평가를 받았다(...). 2차전, 3차전에서 오리온은 3점슛 10개, 12개를 각각 성공시키며 모두가 놀랄 만한 화력을 선보였다.
하루 쉬고 열린 4차전에서 KCC는 오리온의 외곽슛을 나름대로 봉쇄하려 노력했고, 신명호가 3점슛을 무려 4개나 넣으며 14득점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했지만 파울을 지나치게 많이 저지르다 4쿼터에 신명호, 하승진, 전태풍 등 주전 선수들이 전부 5반칙으로 퇴장당하고 분위기가 급격하게 반전되었다. 오리온은 82-81로 1점차까지 쫓겼지만, 결국 최진수가 4쿼터 막판 쐐기를 박는 결정적인 3점슛을 성공시키며 오리온에게 승기를 가져다 주었고 결국 덩크까지 꽃아넣으며 94-86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 날은 KCC가 오리온을 봉쇄하기 위해 나름 새로운 전략을 준비해 왔지만 지나치게 많은 파울 때문에 자유투를 더 내 주었고 거기에서 승부는 갈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리온이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3승 1패가 되었다. 오리온은 우승에 1승만을 남겨두고 전주로 가게 되었다.[39]
전주에서 열린 5차전에서 KCC는 전태풍, 김효범, 김지후 등 슈터들의 맹활약과 에밋, 힐, 하승진의 득점력을 앞세워 모처럼 오리온을 압도했고, 전반전 한때 20점차 이상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후반 들어 오리온은 이승현의 외곽포가 터지고 조 잭슨마저 살아나며 3쿼터가 끝나고 4점차까지 따라잡는 저력을 보였고, 4쿼터 문태종의 3점슛으로 역전까지 성공한다. 그러나 에밋의 활약과 4쿼터 막판 송교창의 결정적인 팁인 슛을 막지 못하고 94-88로 아쉽게 패배하며 챔피언 반지 획득을 6차전으로 미뤘다. 이날 헤인즈는 11득점 야투율 21%의 극도의 부진을 보여 5차전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그러나, 고양으로 돌아온 6차전에서 '''120''':86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대승을 거두며 '''2001-02 시즌 이후 14년만이자 고양 연고 이전 후 5년만에 첫 우승을 달성했다.''' 120점은 역대 KBL PO 한 경기 최다득점 타이 기록이다.[40] 1쿼터 KCC는 김지후, 김효범의 3점슛으로 기세를 잡지만 오리온은 이에 허일영의 3점슛으로 맞불을 놓고 상대의 턴오버를 놓치지 않으며 크게 앞서나간다. 2쿼터부터는 허일영을 포함, 헤인즈, 조 잭슨, 이승현, 김동욱, 최진수 등 모두가 득점포가 마구마구 터졌는데 '''3쿼터까지 이들이 쌓은 점수는 98점.''' NBA에서도 쉽게 나오지 않는 스코어였다. 결국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는 4쿼터에 22점을 추가하며 '''120점'''의 '닥공 농구'를 완성시키며 팀을 14년 만에 챔피언으로, 고양을 5년만에 챔피언의 땅으로 탄생시켰다.
오리온은 이날 KCC 선수들의 형편없는 수비력에 힘입어 마음껏 코트를 휘젓고 다녔고 3점슛도 13개나 터졌다. 패스 감각이 뛰어나고 BQ가 좋은 선수들이 백도어 컷인[41] 으로 페인트 존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고, 빠른 템포의 공격을 통해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공간을 만들어내며 엄청난 야투율을 보이는 오리온 선수들을 KCC 선수들은 도지히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챔피언 결정전 MVP는 이승현이 차지하였다. 이승현은 6강 PO, 4강 PO, 챔피언전 모두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정규시즌에도 그러하였듯이 상대 외인 빅맨들을 본인 특유의 파워로써 막아냈고, 간간히 팀에 도움이 되는 외곽슛도 터뜨렸으며, 특히 CP에서는 매치업 상대로 키차이가 20cm가 넘은 하승진 을 공, 수 양면에서 압도하며 팀에 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챔결만 놓고 봤을 때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였던 조 잭슨이나 김동욱이 MVP를 차지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기는 팬들도 있었다. 그래서 팬들이 조 잭슨 자체 MVP 만들어 주기도(...)
상대전적은 1위팀 KCC와 3승 3패 동률이었으나 챔피언결정전에서 4승 2패로 승리하였고, 2위 모비스에는 2승 4패로 열세였으나, 4강에서 3:0으로 박살냈다. 중위권 4위 KGC, 5위 삼성 상대 3승 3패, 6위 동부 상대로 4승 2패를 기록했다. 하위팀 7위 kt 및 9위 SK 4승 2패, 8위 LG 3승 3패, 꼴찌 전자랜드 상대로는 스윕했다.
3.6. 2016-17 시즌 : 14년만의 4강 직행, 그러나 지난 시즌보다 4승을 더 하고도 챔프전 진출 실패
FA자격을 얻은 문태종, 허일영, 김강선을 잔류시켰고 입지가 좁아진 포워드 김민섭은 SK로 팀을 옮겼다. 이에 따른 샐러리 캡 확보 목적으로 삼성과 이현민, 방경수 ↔ 박재현의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42] 외국인선수 헤인즈와 조 잭슨 모두에게 재계약을 제시했지만 잭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향후 5년간 KBL선수자격정지처분을 받게 되었다. 가드진 중 한호빈, 박재현이 군문제로 17-18시즌 후반까지 자리를 비우므로 신인드래프트, 외국인선수 선발 등에서 가드진 보강이 당장 절실해졌다. 1군급 가드가 정재홍, 김강선 외에는 없고, 이마저도 포인트가드는 정재홍 혼자다.
그리고 시즌을 앞두고 다시 유니폼의 색을 빨강색으로 바꿨다. 드래프트에서 울산 모비스와 함께 4순위까지 전부 지명하며 대인배 구단이란 찬사를 듣고있다.
우승후보란 평이 무색하지 않은 듯, 개막 이후 5승 1패를 찍으며 선두를 달렸다. 기존 선수들의 활약도 준수하지만, 특히 잭슨의 공백을 메운 새 용병 오데리언 바셋은 특유의 빠른 스피드와 조 잭슨 보다 업그레이드된 피지컬로 주목을 받았다.
전반적인 1라운드의 평가는 '''다 좋은데 말이야, 장재석과 정재홍만 없었으면 좋겠군.'''
그런데 2라운드 도중 '''또다시 헤인즈가 12월 9일 KGC전 고양 홈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제스퍼 존슨을 다시 불러들였다. 다행히도 일단 헤인즈 없이도 외국인 선수 1명으로도 7승 5패로 선방. 2라운드의 평가는 '''임팩트를 잃어가는 슈터들과 바셋, 그러나 안정감이 갖춰지는 최진수와 정재홍'''
12월 31일 밤 10시에 SK 나이츠와 2016 카운트다운 매치를 펼쳤다. 가장 늦은 시간에 시작된 경기로 기록될 정도로 갑작스러운 변경이었지만 경기 이전부터 흥행 대박 조짐을 보였고, 만원 관중(6,083명)을 이루며 대성공을 이루었다!! 경기 이외의 이벤트가 부족하단 지적을 받은 KBL이 간만에 머리를 잘 굴렸단 평가. 하지만 경기는 포인트 가드들의 대삽질과 골밑 열세로 인해 한때 15점차로 앞서던 경기를 4쿼터에 다 따라잡히며 74:77로 대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3라운드에는 헤인즈의 부상, 제스퍼 존슨의 들쭉날쭉한 컨디션, 오데리언 바셋의 운영능력 부족 등의 악재등에도 불구하고 이승현, 문태종, 최진수, 김동욱, 장재석 등의 포워드 농구를 통해 이러한 악재들을 상쇄시켜가고 있다. 3라운드 성적은 6승 3패를 기록하여 공격 1옵션 외인이 빠진것을 감안했을때 엄청난 선방. 하지만 지난해와는 달리 조 잭슨처럼 오데리언 바셋의 포텐이 터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
4라운드에는 헤인즈가 복귀해서 DTD 없이 인삼과 삼성을 상대로 대차게 1위 경쟁을 할 수 있을까 기대를 했지만 하필 헤인즈 복귀전인 전자랜드 전 홈경기에서 이승현이 리바운드 도중 빅터의 발을 밟는 바람에 발목이 돌아가는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다행히 김동욱, 장재석, 최진수의 맹활약으로 2점차 신승을 거두긴 했지만 가뜩이나 약한 포스트가 너덜너덜해질 위기에 처했다. 4쿼터 막판엔 아예 가드를 빼고 경기를 할 만큼 포가진의 경기력이 못미더운 상황에서 공수의 핵심이 이승현을 잃었으니 여파가 헤인즈 이상으로 클 듯 하다. 이승현이 2월 03일 LG전에서 복귀한 이후로 오리온은 다시 예전의 위용을 되찾았다.
치열한 선두싸움을 전개하면서 결국 삼성과 KGC와 함께 2017 플레이오프의 첫차에 탑승했다. 잔여 경기를 전패하더라도 전자랜드 전승 시 동률이 되는데, 전자랜드에게 4승을 선착하면서 5위 이상을 확보해놨기 때문이다. 그러나 3월 04일 KGC전에서 최대 20점차까지 압도당하다가 82-88로 패하면서 일단 선두 싸움에서 잠시 물러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시즌 KGC전 총 득점이 526-520이라 동률일 경우 오리온이 우선순위가 된다.
하지만 그 경기 이후로 최근에는 시즌 첫 5연승을 달리며 막바지 선두 싸움에 불을 붙이고 있다. 3월 22일 현재 성적은 35승 17패. 1위 안양 KGC(36승 15패)와는 1.5경기차다. 오리온이 정규리그 우승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크게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안양이 남은 3경기에서 2패 이상을 당하고, 오리온은 남은 2경기를모두 승리하면 37승 17패로 동률이 되는 것이며, 두 번째는 KGC가 3연패를 하고 오리온은 남은 2경기에서 1승 이상을 거두며, 마지막은 KGC가 3연패를 당하고 오리온이 2경기를 모두 전승하는 것이다. 일단 오리온은 KGC와 동률이 되면 득실 마진에서 6점을 앞서기 때문에 우승이 확정된다. 다만 KGC는 남은 3경기 일정이 창원 LG-서울 SK-부산 KT로 3경기가 7-8-9위 팀이다. 다만 시즌 막판 들어 고춧가루부대의 위력을 뽐내는 KT와 아직 6강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LG와의 경기는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우승 현황은 안갯속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3월 22일 KCC전에서 83-100으로 패배하면서 2위가 확정되었다. 3월 26일 홈 마지막 경기에서 LG에 95-85 승리하며 정규리그 최종 성적은 지난 시즌보다 4승을 더 거둔 36승 18패로 2위.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전자랜드를 상대로 고전하다 5차전 끝에 겨우 올라간 삼성 썬더스와 맡붙는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오리온은 완벽히 멘탈붕괴 된다. 코트의 스윙맨 역할을 해 주던 김동욱의 결장, 이에 헤인즈에 의존한 플레이, 골밑은 라틀리프에게 영혼까지 털려대며 61-78로 완패한다. 3쿼터 때 종료된 스코어는 36-61 (...) 4쿼터 42-75로 33점차 까지 끌려 가며 경기를 어렵게 풀었고, 결국 뒷심을 발휘하며 61-78로 경기 마무리. 2차전마저 골밑에서 라틀리프를 이기지 못하며 77-84로 진다. 고양 1,2차전 홈 경기를 다 내주면서 시리즈의 향방은 어렵게 지은 셈.
그러나 3차전에서도 4쿼터 54-62까지 끌려가던 게임을 73-72로 뒤집었다. 종료 직전 임동섭의 슛을 이승현이 위닝 블록슛으로 마무리 지으며 시리즈를 4차전까지 끌고 갔고, 4차전에서도 전반 20여 점 차까지 벌려 놓다가 79-76으로 승리하면서 다시 고양으로 돌아가 5차전을 맞이한다. 하지만 5차전에서 라틀리프의 여전한 대활약과 김태술의 결정적인 3점슛으로 84-91로 패하면서 4강에서 탈락했다.
이후 팀의 기둥이자 포워드 농구의 핵심인 두목호랑이 이승현은 상무 입대, 장재석은 공익근무로 2시즌간 자리를 비우게 되고, 김동욱은 FA로 친정인 삼성으로 돌아갔으며, 정재홍도 SK로 이탈해 가뜩이나 답없는 가드진이 더 빈약해져버렸다.
상대전적은 1위팀 KGC와 3승 3패 동률, 3위 삼성에는 4승 2패로 우세였으나, 4강에서 2:3으로 패배했다. 중위권 4위 모비스 상대 3승 3패 동률, 5위 동부 상대 4승 2패 우세, 6위 전자랜드 상대로 3점차 승리 1회, 2점차 승리 4회를 기록하며 5승 1패를 기록했다. 하위팀 7위 SK 및 8위 LG 5승 1패 절대우세, 9위 kt 3승 3패 동률, 꼴찌 KCC 상대로는 4승 2패 우세를 기록했으나, 전반 15점이라는 굴욕을 안기도 했다.
3.7. 2017-18 시즌 : 부산 kt 소닉붐과 함께 극한직업 체험 중
- 군입대 : 이승현, 장재석
- 이적 : 김동욱(삼성), 정재홍(SK)
- 계약 포기 : 애런 헤인즈, 오데리언 바셋
- 영입 : 송창무(SK), 민성주(kt)
- 외국인 선수 영입 : 드워릭 스펜서, 버논 맥클린
그리고 3쿼터까지 비등비등한 경기를 펼치다 유독 4쿼터에 무너지는 경기가 잦은데 이것은 해결사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특히 DB와의 상대전적이 압살인 이유도 막판 문제 때문인데 2~3경기정도는 잘만 앞서가다가 끝내 역전당했기 때문. 작년까지 이 해결사의 역할을 김동욱이나 문태종이 해주었는데 김동욱이 삼성으로 이적하고 문태종은 노쇠화로 인해 개인기량이 하락하였다.
그래도 6라운드에서는 목표를 하던 라운드 5할(5승) 이상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KCC와 모비스의 순위경쟁에 타격을 줬고 시즌 내내 8위를 기록하던 LG를 9위로 밀어내고 8위로 마감했다.
3.8. 2018-19 시즌 : KBL 사상 최초 10연패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
문태종은 현대모비스로 이적했다. 용병으로는 재쿠안 루이스와 대릴 먼로를 영입했고, kt에서 박상오, LG에서 최승욱을 영입했다. 첫 경기에서 안양 KGC를 상대로 이기며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이틀 뒤 절대 1강이라 불리는 현대모비스에게 29점 차로 대패했고, 이틀 뒤 SK를 잡았지만 이후 연패를 거듭하고 있다. 11월 8일 창원 LG전에서도 패배하여 8연패에 빠졌다. 서울 SK에서 뛰던 리온 윌리엄스를 영입하는 강수까지 두며 전반전에는 대등하게 맞섰지만, 후반전에 LG의 빠른 농구에 무참히 짓밟히며 패배. 고양 이전 이후 연패 신기록을 갱신했다. 현재 2승 9패 승률 0.182로 꼴찌다. 이 기록.... 어디서 많이 봤다 싶을텐데 16~18시즌 동안 2라운드까지 올렸던 부산 kt의 성적과 완벽하게 똑같다. 11월 10일과 11일 부산과 인천을 오가는 백투백 일정도 모두 패배하며 10연패에 빠졌다. 팀 상황도 여의치 않은데 4일간 3경기를 모두 원정경기로 치르는 강행군까지 운도 지지리도 없다. 11월 11일 기준 2승 11패 승률은 무려 0.154를 기록하고 있다.
11월 16일 잠실에서 서울 삼성을 26점차로 대파하고 기나긴 10연패를 탈출했다. 먼로가 복귀하고 귀신같이 연패를 탈출했다.
11월 17일 KGC전에도 허일영의 석점 슛 7개를 앞세워 역전승을 따내며 먼로가 복귀한 뒤 2연승을 거두고 있다.
12월 29~30일 삼성과 현대모비스와의 백투백 홈경기를 모두 쓸어담으면서 공동 5위 그룹과 2.5게임차까지 추격했다.
1월 10일에는 DB 상대 9연패 탈출에 성공과 동시에 LG를 8위로 밀어내고 6위와 '''0.5경기 차''' 7위까지 올라왔다.
이후 KCC, LG, SK, KGC를 상대로 3승 1패를 기록하며 18승 19패 공동 7위[43] 를 기록하며 이승현이 복귀할 때까지 버텨내는 데 성공했다.
3월 16일 KGC전을 승리하면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최종 순위는 5위.
허나 KCC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3.9. 2019-20 시즌 : 고양 이전 후 첫 최하위 기록, 최장수 추일승 감독과의 이별
3.10. 2020-21 시즌 : 강을준호의 출범
[1] 전설의 1998-99 시즌부터 2000-01 시즌까지 10-8-10위, 2007-08 시즌부터 2011-12 시즌까지 10-9-10-10-8위.[2] 1999년 2월 21일, 현대 다이냇 vs 나래 블루버드 경기 이전에 나온 순위표 화면이다.(4라운드 시점에서의 순위)[3] 최종순위는 기아의 6라운드 전승으로 대우와 위치를 바꿨고, 나래가 4위, LG가 5위가 되었으며, 6위 삼성은 25승 20패로 마감했다. SBS는 22승 23패를 기록하고도 탈락.[4] 종전 한국 기록은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18연패. 이후 2008~2009년 V리그에서 수원 KEPCO 45가 28연패로 삼미의 기록을 3위로 끌어내렸다. 세계 기록상에서는 2011-2012년 멕시코 프로농구 리그의 불칸스(해당 시즌 종료 후 해체)가 타이 기록을 세웠다.[5] 종전기록은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0.188.[6] 이때 시즌 경과는 3연패-2연승-'''32연패'''-1승-7연패.[7] 참고로 시즌 최다 패 기록은 2005-06 시즌 전자랜드의 46패. 54경기로 전환된 이후의 기록. 물론 최저 승률로 따지면 얄짤 없다.[8] 당시 동양의 라인업은 신인 정락영, 기아 출신으로 은퇴를 눈 앞에 두었던 이훈재 같은 타 팀에서 후보급인 선수들이 주전으로 나왔다.[9] 콜버트가 있을 때는 비록 2승 6패 승률은 2할 5푼이지만, 개막 후 2경기 연속 1점차 패배, 3점차 패배 1번으로 졌잘싸라도 했다는 얘기다. 콜버트의 야반도주 이후, 5점차 이내 패배는 겨우 2번 뿐이었다.[10] 59점 → 57점 → 55점 . 현재는 이 기록을 안양 KGC인삼공사가 갖고 있으나(41점, 동부가 52득점으로 양팀 합산 최소 득점기록도 경신) '''공교롭게도 KGC인삼공사는 그 시즌에 우승했다.'''[11] 당시 감독이던 박광호 감독도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꽤 고생했고 박 감독의 딸도 중학교 졸업식에서 담임선생님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우리 친구의 아버지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해주자"라는 말에 울음을 터뜨릴 정도였다.[12] 그나마 두 시즌에 걸쳐서 기록한 것이다. 순전히 단일 연패로 치면 그 직전시즌 말미에 10연패와 개막 후 18연패다. 물론 당시 필라델피아가 기록한 개막 18연패 역시 NBA 역사상 공동 1위 기록이다.[13] 당시 포인트가드 중 김승현을 견제할만한 가드는 신기성 정도였는데, 그 신기성은 당시 군복무 중이었다.[14] 좌석 점유율로 따지면 '''130%''' 가량이다.[15] LG와 동일하게 38승 16패를 기록했으나 상대전적에서 4승 2패 우위로 동양이 1위를 했다.[16] 전자랜드와 동일하게 32승 22패를 기록했고, 상대전적 또한 동률이었으나, 득실마진에 앞서서 3위를 기록했다.[17] 이 때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창원 LG의 라인 아웃이 심판이 바로 앞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심판이 보지못했고, 결정적으로 종료 몇초 앞두고 바비 레이저의 텝슛이 '''실런더룰'''이라는 이유로 득점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오리온스는 종료 0.4초전에 LG 빅터 토마스에게 3점슛을 얻어맞으며 연장전에 들어갔고, 연장에서도 가 미치면서 결국 84:81로 패배하게 된다.[18] 이 패배 이후 오리온스는 팀 해체설까지 나왔을 정도였다.[19] 아이러니 한 것은, 잃어버린 15초 사건과 라인아웃 오심, 실린더룰 적용 당시 심판이 장준혁 심판이였다는 거다.[20] 상대전적이 3승 3패로 동률이었고 대구에서의 맞대결은 오리온스가 전승했으나 6강 PO에서 주니어 버로와 김성철을 막지 못하며 무너졌다.[21] 샐러리 캡 제도를 피해서 연봉 이외에 엄청난 액수의 뒷돈을 지급하는 이면 계약을 체결했는데 나중에 돈을 줄 수 없다고 발뺌했다. 결국 이 사실을 폭로하자 협회는 김승현만 징계하면서 팀을 감싸 돌았고, 2011년에 구단과의 재판에서 승소했다.[22] 사실 오리온스는 경기도 고양시로 연고지 이전을 추진하면서 대구시를 배제한 채 고양시와 체육 시설 이용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할 장소와 시간까지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인데도 오리온스 관계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정도의 말만 했다. 그런데 오리온스는 연고지 이전을 위해 이미 전 해부터 '''먼저 고양시에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공분을 불러일으켰다.[23]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2007년부터 시작된 비밀번호 직전 시즌까지 대구 오리온스의 인기는 KBL 최고였다. 한때 같은 지역 야구팀 삼성 라이온즈의 인기를 앞지를 정도로. 제 아무리 수도권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해도 추일승 감독 취임 이후 플레이오프 진출, 챔피언결정전 우승 등 성적이 나지 않았더라면 과연 관중 몰이가 되었을까? 실제로 같은 고양시를 연고지로 삼았던 축구 팀인 고양 자이크로 FC는 종교 성향 논란을 넘어서 개막장 성적과 매끄럽지 않은 팀 운영으로 K리그 23개 구단 중 독보적인 관둥 동원률 꼴찌를 기록하면서 결국 2016 시즌을 끝으로 K리그를 떠나 아마추어로 재전환했다.[24] 새로 생긴 고양실내체육관의 시설이 좋은 반면 대구실내체육관이 워낙 낡긴 했다. 그렇지만 대구시는 오리온스를 배려해서 '''체육관 사용료를 10%만 받았으며 34억원을 들여 체육관 개보수까지 다 해줬다.''' 따라서 대구시는 오리온스한테 지원을 할 만큼 다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5] 원년 창단팀이면서 그동안 서울에 있는 구단 사무실, 용인에 있는 숙소·훈련장·연습장을 쓰고 있었다. 2010년 9월에야 연습장과 훈련장을 대구로 옮겼는데 사실 용인에 있던 시설을 사용할 수 없게 된 내부 사정이 작용한 탓이 컸다. 그나마 구단 사무실도 여전히 서울에 있었고, 결정적인 것은 '''1년 뒤 냅다 도망쳤다는 거'''다.[26] 이 당시 어떤 대구 골수팬은 '''KBL 원년부터 연고이전 직전시즌까지 모아뒀던 모든 어센틱 유니폼들을 전부다 칼로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걸 오리온스 사무실에 택배보낸 인증을 올린다'''. #[27] 사실 오리온스의 막장 운영 때문에 지친 수많은 골수팬들이 떠나갔고, 그나마 남아있는 골수팬들은 그냥 연고지 구단 버프나 그저 악에 받쳐서 계속 응원하는 것 뿐이었다. 어쨌든 제대로 투자해서 서비스를 향상시켜 골수팬들을 다시 모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28] 보유하고 있던 영화(메가박스: 중앙일보 계열사인 제이콘텐트리에 매각) 및 미디어 사업사(온미디어: CJ그룹에 매각, 현 CJ E&M)를 팔았고, 편의점 사업(바이더웨이: 사모펀드에 매각 후 롯데그룹의 인수로 코리아세븐과 합병.), 패밀리 레스토랑(베니건스: 바른손에 매각) 등도 모두 매각했다.[29] 이미 대구 시민의 관심은 안드로메다 너머로 갔었다. 다만 지금도 홈페이지나 기사(특히 2002시즌 우승 등 대구 연고시절을 다룬 기사)에 비난글과 야유글이 가끔 올라오기도 한다.#[30] 시즌 초반엔 관중 흥행도 저조했다. 11월 23일 경기 이후에야 드디어 관중수가 제자리로 돌아왔다.[31] 6강 플레이오프 1승 3패[32] 오리온스는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은 적이 없었다. 이제야 한을 푼 셈.[33] 센터진이 취약해 키가 큰 가르시아를 먼저 뽑았고, 길렌워터의 경우 관심은 있었으나 트라이아웃 때 체중이 많이 나간 상태여서 불성실한 선수로 판단해 안 뽑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길렌워터가 추일승 감독을 보고는 "열심히 할테니 꼭 뽑아달라"고 애원해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34] 저번 시즌에 오심 논란은 물론 이기고 있던 경기 버져비터 맞고 패배하는 등의 악몽이 있어서 이번 승리의 의미가 매우 컸다.[35] 그 전까지 개막 6연승은 4번이 있었는데 그 중 3번은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했다.[36] 그런데 오리온으로부터 넘겨받은 1라운드 지명권에서 LG가 6순위에 뽑히는 바람에 이 트레이드의 승리자는 고양 오리온이 되었다. 그리고 이 드래프트 결과로 인해 농갤에서는 거상 추일승이라면서 추감독을 찬양했다(...) 그래도 LG는 이 픽으로 뽑은 정성우가 신인상을 차지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지도.[37] 이 경기는 이후 엄청난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데, 경기 다음날 아침 I Love NBA 커뮤니티의 한 회원이 3쿼터 3분 56초를 남기고 '''24초 동안 샷클락이 멈춘 상태'''였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몇 시간 후 여러 기자들을 통해 공론화되면서 시끌벅적해졌다. 이에 KBL은 규정상 재경기는 없다고 일축했다. 막판까지 승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접전이었던 걸 감안하면 저 24초의 나비효과가 어떠했을지는 단언하기 힘들며, 2003년 당시 TG삼보와의 결승전 때 샷클락 오류에 이어 '''또 이런 일을 겪게 된''' 오리온 팬들의 분노는 엄청났다. 승자인 KCC도 '리그 스폰서라 모종의 혜택을 받은 거 아니냐'며 온갖 비아냥에 시달려 이겨도 찝찝한 상황.[38] 참고로 2005~2006 시즌은 2015~2016시즌과는 반대로 동부가 3위, 오리온스가 6위를 거두며 만났다.[39] 파이널 포맷이 2-3-2였으나 NBA 플레이오프와 동일하게 2-2-1-1-1 포맷으로 변경되었다.[40] 이전에 서울 삼성이 2001년에 기록한 바 있다.[41] 초반에는 그 안습한 BQ를 자랑하는 장재석이 백도어 컷인을 3개나 주워먹었고, 3,4쿼터에는 조 잭슨의 드리블 한번에, 패스 한 번만으로 골밑이 아예 찢어발겨졌다.[42] 이현민은 이후 김태술과 KCC로 사인 앤 트레이드.[43] 말이 공동 7위이지, 공동 5위 DB, LG와는 0.5경기, '''공동 3위''' KCC, KT와는 '''1.5경기차'''밖에 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3위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