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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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帝國年代記'''
대한민국의 대체역사소설. 저자는 김경록이다. 말 그대로 연대기이자, '''정통 대체역사소설의 계보를 잇는 작품'''[3] 이라는 평을 받는다.
2010년 여름 조아라에서 연재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출판사와 여러 문제가 있어 한동안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가, 2010년 겨울 뿔미디어로 옮겨서 가까스로 출판되었다. 2012년 11월 기준으로 14권까지 출간되면서 완결되었다. 대체역사물 중에서 장수한편. 지리멸렬하게 분량을 내다가 먹튀하듯 조기종결을 해버리는게 대세인데 반해, 지구력있고 탄탄하게 이어졌다. 다만 마지막이 클리프행어스럽게 되어서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후속작이 나왔다! 2013년 4월 말에 후속작인 제국의 계보가 출간되었다.[4] 작중의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언어를 창작한 것은 물론, 기존의 국산 대체역사 중에서 가장 폭 넓고 깊게 여러 세대에 걸친 가상의 역사적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1399년에 시작한 소설이 19세기 중반(1840년)까지 진행했다.
공교롭게도 작품 속의 시간대는 Paradox Interactive 사의 Europa Universalis IV의 시간대(1399~1820)와 거의 일치하며, '근대적 국가의 성립'·'부국강병'이라는 게임 속 목표와 작품 속 국가들의 목표가 흡사하다. 그러므로, 2부는 Victoria를 모델로 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시대? 결국 차기작인 제국의 계보가 나왔다. 실제로 작가와 제국의 계보의 공저자 이혁 둘 모두 Paradox Interactive 사의 게임들을 예전부터 즐겨왔다고 한다. 유로파 외에도 크루세이더 킹즈2를 한다고. 그리고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국의 계보의 후기에서 이러한 떡밥을 인증해줬다.
대체역사소설 치고는 독특하게도 '''반제국주의적'''인 경향을 띄고 있다. 요동상인에 의해 착취당하는 순나라사람들[5] ,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인한 이득은 소수의 부유층에게만 간다는 설명, 착취당하는 노동계급과 이를 탄압하는 정부등 대체역사소설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제국주의의 그늘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한제국 연대기》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문장인데, 한마디로 옛스런 한자어와 고어(古語)의 맛이 잘 살아있고 만연하는 구어적 문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연체를 구성하는 겹문장에서 같거나 유사한 부사[6] 가 중복되거나 혹은 지나치게 더덕더덕 달라붙어 있고, 주술의 호응이 말끔하지 못하며, 중국어나 영어를 투박하게 번역한 것처럼 어순이 뒤집혀 있거나 혹은 쉼표를 엉뚱한 자리에 박아놓는 식으로 작문이 엉망이다. 게다가 비문과 오탈자도 한장걸러 한번씩 보일 정도이고 중언부언 하느라 가독성도 떡망이다.[7] 하지만, 이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현지의 이랬을 것이다 싶은 어떤 분위기[8] 만큼은 전례[9] 없이 운치있게 잘 표현되고 있다.
고증은 군사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매우 치밀하며, 특히 국명, 인명, 지명의 경우 15세기 당시에 쓰이던 발음을 집요하게 재구하고 있다. 명나라, 일본, 심지어 동로마 제국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정세와 언어적 고증이 매우 탁월하다. 다만 전쟁이나 전투등의 군사적인 부분과 과학기술, 경제부분은 작가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묘사도 그리 치밀하지 못하고 적은 비중으로 대충 때우는 감이 있는데, 이 때문에 조아라 연재시절 밀덕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는 했다.[10]
8권 전후로 자주 보이는 비판은 주인공의 개입으로 동양의 역사가 바뀌고 '''몇 세기나 진행되었음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나 인물들의 행동이 조선과 그 인근에서는 기존의 역사와 너무 흡사[11] 한 반면에 오히려 영향력이 약한 유럽의 역사는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변했다.''' 단적인 예가 뜬금없이 에드워드 6세가 요절하지 않으면서, 엘리자베스 1세가 몰락한 것.
이에 대해 유로파 카페에 남긴 작가의 답변을 요약하자면, 요동국의 경우 등장인물 모두가 가상의 인물인데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가상의 인물이라면 독자의 재미도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였고, 제국주의 중심부국가에서 태어나 자란 조선의 인물들이 실제 역사와 어떻게 다를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대체역사물의 세계는 현실의 평행세계, 즉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이기에 역사적 개변성은 결국 작가 마음이고, 어색할 이유도 없다. 정도가 심해서 '''작가 편의주의적 전개'''가 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고증과 달리 기술적인 문제에서는 현대인 천재론이나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에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개념착상-재료수집 하는 진행[12] 이 크게 지적되고 있다. 초반부부터 시작해서 기술개발에 있어서는 이부분이 일괄적으로 지적되나, 개선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피아에서 위의 현대인 천재론에 관해서 논쟁이 붙었다. 초반 주인공 세훈이 석사 3개에 학사 학위가 여러개인데 범선을 왜 못만드냐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로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석사 학위가 물리학, 역사학, 심리학으로 사실상 김세훈이 소설에서 보여준 능력은 학위에 비해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정도면 대단하다는 반응. 물론 전문적인 이공계통 석박사 이상이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당연히 있겠으나, 기존의 환빠스틱한 대체역사와 비교하면 이공계통의 고증은 도리어 온건하고 충실하다. 적어도 유사과학을 끌어오거나 망상으로 도배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인문사회학적인 고증과 시뮬레이션은 탁월한 수준이며, 인명, 지명, 국명, 언어 등에 대해서 만큼은 편집증적으로 정확성을 기하고 있다. 유구국의 사람은 류큐어 인명, 카탈루냐어를 쓰는 아라곤 왕국의 인명은 카탈루냐식으로 최대한 정확히 재구하였으며, 키릴문자나 아랍문자같은 경우가 아닌 한은 원 표기까지 병기하였다.심지어 중세 조선어와 중세 일본 큐슈방언이 뒤섞인 진서어[13] , 북유럽에서 이민온 백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북해어라는 가상의 크레올까지 개발해냈을 정도.[14]
'''동양에서는 "제국"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다.'''[15] 때문에 "대한제국"이라는 칭호는 당시에 많이 어색했을 텐데, 작중에서 이런 국호를 이상하게 여기는 묘사가 없다. 한국사상 칭제건원을 한 국가 혹은 정체를 찾아본다면 발해(대진국), 묘청의 난(대위국) 등이 있고 대한제국도 당대에는 대한국이라고 칭했다.[16]
작중에서 민족주의적인 주장이나 언급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싱가폴 지역으로 병력을 파견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국내에서 제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역풍이 불까봐 주인공이 걱정하기도 한다. 당연히 환빠와는 거리가 먼 소설이며, '한민족'이라는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인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는 훈민정음 반포 당시를 다룬 에피소드에서 (실제 역사였다면 왕위에 올랐을) 개성공 이도의 입을 통해 한글만능론을 경계하는 언급까지 나올 정도.
다만 작품의 기본적 전개상 명과 일본과의 전쟁은 치뤄지며, 그 틈에 요동을 쳐묵쳐묵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요즈음 대체역사에서 나오는 환빠적인 전개와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조선을 실제 역사에서 이탈한 궤도로 보다 발전시킨다는 전개상 별 수 없이 조선이 강성해지고는 있다. 이런 재미도 없으면 대체역사물을 뭣하러 보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이왕 민족주의 시각에서 탈피한 마당에 굳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확장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 극도로 민감한 사람에게는 제국주의적인 태도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100년 동안 얻은게 요동, 연해주, 큐슈가 전부이므로, 딱히 '조선 킹왕짱 한민족 킹왕짱'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도 않고 실제 역사에서 유럽 각국이 벌였던 것과 같은 엄청난 확장 테크를 밟고 있지도 않다.
기술력의 폭발적인 성장도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지 않으며, 5권 말에서 16세기 유럽의 르네상스시기와 분야에 따라 조금씩 앞서거나 뒤지는 정도의 문화 및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 6권에서부터 신대륙으로의 진출에 성공하여, 7권 말에 이르러서는 북아메리카 서부 해안에 18곳에 달하는 거점을 거느리고 5만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 식민지 개척 경쟁에서 단연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해외영토의 경영이 쉽지 않아서, 제국 중앙정부가 성장하는 해외영토에 대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지다 결국 기존 도독부 지역이 하나하나 독립하여 사실상 제국이 붕괴하고 있다. 단 한국 자체의 국력은 여전히 세계열강 가운데 가장 강력한 편이고 구 도독부 이외에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를 동남아와 인도 일대에 두고 있다.[17]
《대한제국연대기》의 등장인물은 실제인물과 가공인물이 혼재되어 있다.
1. 성명왕 김세훈 1374~1447 (재위: 1415~1447)
2. 성무왕 김현도 1401~1483 (재위: 1447~1475)
3. 문덕왕 김서윤 1423~1508 (재위: 1475~1508)
4. 경흥왕 김진영 1483~1549 (재위: 1508~1549)
5. 의민왕 김유 1511~1598 (재위: 1549~1598)
6. 폐주 금양군 김제
7. 현양왕 김윤 (요동국 창건)
8. 경혜왕 김승
9. 태강왕 김행
10. 효공왕 김헌
11. 흥정왕 김회 (재위 1779~1811)
12. 김호
10권에서 대륙을 뒤덮은 내란의 파도에 몰락하고 장사 일대의 조그만 영역으로 밀려나다 11권에서 순나라가 요동의 공격을 받고 힘이 약해지는 바람에 중국 내 여러 세력의 균형이 재편되자 분할되어 멸망한다. 참고로 18세기 말에 들어 중국의 각 세력, 특히 양나라와 월나라는 중국의 일부가 아닌 독자적인 국민국가임을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서 부르짖고 있어서 중국이 통일되는 건 당분간 힘들게 될 듯 싶다.
명나라의 멸망 이후 분열된 중국의 여러 국가 가운데서 국력의 신장 속도가 가장 빠르다. 대충 강서성, 안휘성, 절강성, 복건성 일대의 강남지역을 차지한 듯. 버프를 받아 성장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 베이스다. 한국, 요동, 일본에 이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륙의 희망. 18세기 말 한국의 말레이 반도 강점을 시작으로 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극동 열강들의 병탄에 참여해 캄보디아를 보호국으로 만든다.
흔히 생각하는 화북 일대. 국초 기세는 좋았지만 인구와 경제력이 몰린 강남지역을 끝내 장악하지 못한데다 지방 군벌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해서 체제가 취약해졌는데 그때문에 외부로 눈을 돌려 위구르를 정복했지만 이후 요동의 침략으로 인해 군사력이 약화되어 위구르가 독립했고 남명의 분할까지 초래되었다. 이후 국내에 주둔한 요동군과 경제 침투를 시작한 요동 상인으로 인해 방곡령이 나올 정도로 피폐해져 가고 있다. 이를 남성물산 뒤의 성광사가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만, 천진상공대학을 설립하는 것 이외에는 성과없이 요동에게 먹혀가고 있다. 발전하는 양나라와 월나라에 대한 적대의식때문에 범중화주의에 빠져서 자신들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 주나라를 먹으려 하지만 요동과 양나라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사천지역. 식민지 제국주의의 시대를 맞아 고립된 곳에 있는 관계로 순나라와 함께 쇠락하고 있는데 순나라와 마찬가지로 발전하는 양나라와 월나라에 대한 적대의식때문에 범중화주의에 빠져가고 있다.
광동성 및 광서성, 운남성 일대. 수도 수성(광저우)가 위치한 광동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양나라와 더불어 국력을 신장시키는 중이다. 18세기 말 한국의 말레이 반도 강점을 시작으로 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극동 열강들의 병탄에 참여해 베트남을 침탈하려고 하지만 양나라의 개입으로 실패한다. 정치적으로 양나라보다 덜 근대적인 탓에 1828년 혁명에 말려들어 1839년에야 헌법과 의회를 만든다.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시대를 끝내고 아즈치 막부를 세운 이후, 국외로 눈을 돌리는데, 처음에는 진서를 치지만 실패한다. 이후 호주를 발견하여 경영하면서 일본-오가사와라 제도-필리핀-호주를 잇는 태평양 남북횡단항로를 얻게 된다. 18세기 말 한국의 말레이 반도 강점을 시작으로 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극동 열강들의 병탄에 참여해 필리핀의 여송국을 보호국으로 만들고 한국과 접전끝에 뉴기니 동부 및 솔로몬 제도를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독도 영유권 문제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에는 일본이 물러나서 당분간은 조용하게 된다. 사실 정치 체제가 여전히 전근대적이라 1828년 혁명에 말려 토막파가 생기고 경제적으로 동일본 지역을 관할하는 칸토칸레이(관동관령)의 도쿠가와 가와 그 소재지인 에도의 힘이 커서 현실 역사 이상으로 관서와 관동의 알력이 심한 편이다.
오스만에 탈탈 털리고 멸망했다가 16세기에 간신히 복권되었다. 현실의 아메리카 대륙 한귀퉁이에 식민지를 위임받은 것 외에는 조용히 지내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틈을 타 오스만 제국을 공격해서 옛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12권 들어와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식량 증대의 필요성이 있게 되어 대만에 진출하여 대만 북부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후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에도 월나라와 함께 중견국가의 자리를 유지한다.
정확히는 잉글랜드-프랑스 연합왕국. 16세기에 왕위계승전쟁을 통해 통합된 뒤, 프랑스의 북부-중부는 프랑스왕국으로써 연합왕국의 일부가 되고 남부는 아라곤 왕국령에 편입된다. 12권의 말미에서 프랑스 혁명의 촉발과 함께 프랑스 왕국은 독립 프랑스 공화국으로, 아라곤령 남부는 옥시타니아 공화국으로 각각 독립을 선포하고 이후 통합을 약속한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북이탈리아와 아라곤을 병탄한 제국이 되지만, 폴란드와 러시아에게 패하여 나폴레옹은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위한다. 옥시타니아의 일부를 아라곤에게 내주었으나 마르세유와 프로방스, 코르시카는 유지하며 벨기에 왈로니아 지역을 얻기는 했다. 불어권 지역 전역을 점령하려는 움직임때문에 정세가 불안정하다. 잉글랜드 역시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잃어 유럽 대륙의 균형자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단 프랑스 혁명 전쟁이 끝나고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자 인도 북서부에 대한 진출을 꾀하고 있다. 비록 프랑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뉴잉글랜드를 잃었지만 1840년 당시 철도 연장을 볼 때 한국과 같이 썩어도 준치라는 것을 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여진족, 월남, 페르시아, 베네치아, 제노바, 아즈텍, 잉카 출신의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생략.
11권 말을 기준으로 대한제국의 영토는 세계 곳곳에 걸쳐 있다. 외방의 도독부뿐만 아니라 상남, 숙주와 같은 특별한 영토들도 있는 상태. 그러나 사실상 느슨한 연방체제에 가깝게 변모하고 있다. 성장하는 해외 영토를 제국정부가 통제하는 것이 갈수록 곤란해지는 듯 보인다. 작중에서 그런 묘사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여 결국 요동이 정식으로 왕국으로 승격되었고 진서나 영주를 비롯한 다른 영토 역시 독립성이 강화되는 조짐을 보여 조정에서 이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을 고심하고 있으나, 시간이 갈수록 요동 및 각 도독부의 독자성이 커지고 있다. 결국 10권에서 요동이 사실상 독립했고, 12권에서 영주가 동영 연방 공화국의 이름을 달고 독립했다. 13권에서 내지는 그나마 남은 도독부인 북해와 진서에 대해서 장기적으로 직접 통치를 생각하고 있으며 내지와 요동 둘 다 식민지 제국주의 정책을 꾀하여 중국 내륙, 인도, 동남아로 진출하여 식민지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북해와 진서에 대한 직접 통치를 꽤하면서 이들에게 주어야 할 당근을 주지 못하고 무리한 동화정책을 꽤하는 바람에 독립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옛 조선의 영토를 은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국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땅이다. 내지 8도 사람들과 타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진 않지만 얇은 벽이 존재한다. 10권에서 입헌체제를 수립하는 한편 요동의 제도를 도입하여 근대국가 체제가 확립되고 있다. 외지의 독자성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해군력에 있어서는 내지가 세계 최강 수준이긴 하다.[37] 대신 국가 예산의 상당수가 해군으로 가고 군대 또한 육군을 줄여서 해군을 유지할 정도라고 한다. 결국 12권 들어 영주가 독립하는 등 이전보다 국력이 쇠했다는 걸 인정할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전세계에서 4대 강국 안에 들어가며,[38] 기술적으로 요동이 앞서지만 인구에서는 오히려 내지가 이 작품 내내 요동에 비해 압도적이고 산업규모면에서는 12~14권에서도 세계 최강이다.[39] 비록 영주를 잃었지만 어차피 독자성이 커져 더 가지고 있어봤자 비용만 많이 든다고 판단하고 원료공급지와 상품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식민지화를 꾀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참정권 확대와 공화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식민지 제국주의가 말레이반도 강점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극동 열강의 동남아시아 식민화의 문을 열게 되고, 내지는 말레이반도, 티모르 제도와 뉴기니 서부를 강점하고 태국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인도로 진출하여 실론을 병탄하고 뱅골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중산층이 늘면서 결국 참정권 확대가 이루어지게 되지만 소외된 계층이 늘었다.
김세훈이 반정을 일으킬 당시에 최고 공신가문이라 할 수 있는 제주 고씨가 사실상[40] 국주로써 세습지배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요동이나 유구와 같이 독립된 나라는 아니나 자치권은 있는 듯. 군주도 국왕이 아니라 국주라 불린다.
수부(지금의 도청 소재지 격)는 기주부(나가사키). 대마도와 이키 섬, 큐슈 전체와 혼슈 남서부의 야마구치, 시모노세키 일대를 통제한다. 경인동정[41] 당시 협력한 다이묘들의 영지와 작위를 보존시켜줘 조선에 충성하는 칸조쿠 다이묘[42] 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 기상과 박상의 본거지이다.
8권(16세기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백제공 대내씨가 혼슈에 걸쳐있던 영지를 일본 다이묘 모리씨에게 잃고, 큐슈본토로 그 관할이 축소된다.
또한 중세 한국어와 중세 일본어의 크레올 언어인 진서어가 등장한다.[43]
9권에서 실제역사에서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이 진서를 침공하여 대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본토에서 투입된 병력의 선전으로 겨우 일본군을 몰아낼 수 있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는 진서도독부의 직할령과 기해동정 이전의 구 다이묘 출신들이 지배하는 영지로 분할되어 있고, 종교는 가톨릭이 급성장세인듯 보인다. 언어는 전반적으로 일본어도 한국어도 아닌 진서어로 굳혀져가는 듯 보인다. 9권에서 진서대학을 설립하여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강조하기 시작하고 있다. 13권 들어 내지에서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를 맞아 진서를 직할령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진서민족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9권 이후로는 거의 공기였다가 14권에서 내지가 선포한 연방법에 의한 동화정책에 그렇지 않아도 차별과 경제 악화, 문화 차이로 불만을 팽배해진데다 진서 민족주의가 퍼진 상황에서 3년간의 독립전쟁이 벌어져 결국 기주와 도서지역은 경상도에 귀속하고 국가원수를 한국 황제로 하되 나머지는 진서에서 정부, 상하원을 알아서 구성하는 진서자치국이 성립하지만 이를 한국에 의한 기만으로 본 완전독립파와의 내전이 14년간 이어지다 김효의 글과 이를 중재하려는 세력의 힘, 그리고 북해의 독립 움직임으로 인해 진서에 신경쓸 겨를이 없게 된 한국이 기주를 진서로 반환하고 완전독립에 대한 협의를 하겠다고 함에 따라 내전이 종결되지만 동족상잔으로 인한 상흔이 깊게 패였다. [44]
수부는 영안부(블라디보스토크).[46] 연해주 일대[47] 와 고혈도(사할린), 모실도[48] (홋카이도)와 같은 북방의 여러 섬들에 걸쳐져 있는 제국의 보와 진들을 관리하고 있다.[49] 초기에는 신대륙까지 관리하며 영진도독부라고 불렸으나, 7권 말에서 신대륙을 담당하는 도독부가 새로 생겨나며 북해도독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풍부한 모피를 이용한 무역이 도독부의 주요 수입. 영진 도독부에서 군역을 살다 제대한 장병들이 군대에서 총을 불하받아 모피 사냥꾼으로 전직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북해 도독부의 모피를 찾으러 떠난 엽사(포수)들과 영길도(함경도) 함주부(함흥)와 북해도독부를 기반으로 둔 소위 함상들의 공.
9권에서 요동의 북륙(동시베리아)진출 및 영주에서 건너오는 모피의 증가로 사실상 기간산업이 괴멸되어 가는 상황으로 보인다. 인구도 가장 적고 땅도 척박해 산업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다. 제국 전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데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 여진족이 영주 동쪽의 만주로 이민을 가 부족해진 인구를 네덜란드 상인 주선하에 독일등지에서 이민을 받아 채우려고 하는데, 이게 근대적인 이민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11권에서 유럽 이민 세력과 유럽에 유학갔다 유럽의 분위기와 비슷한 북해에 정착한 한국인 유학파들의 힘으로 영안대학을 세우게 되며, 베링의 항해를 통해 모실도에서 아이누, 일본과의 국경을 획정하게 된다. 13권 들어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를 맞아 북해에 대해 내지에서 직할령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기존의 도독부는 느슨한 통치를 했으나 연방법에 의해 들어선 북해도 정부는 탄압은 강화하면서 참정권등의 권리는 유보하는 바람에 불만이 쌓이면서 독립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있다. 19세기 당시 인구의 과반수는 북유럽 출신의 백인이나 내지 출신과의 혼혈이고 한국계인 사람들조차 이들이 쓰는 네덜란드어의 크레올인 북해어에 능통한데다 한국어 역시 북해 특유의 방언을 써서 진서와 마찬가지로 내지와 문화가 다른데다 그래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는데다 발전이 늦어 연방법을 실시한다고 했을 때 내지와 같은 권리를 얻을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불만이 쌓인 것인데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인종인 사람들이 연대하는 것에 김효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에대해 한국인의 반응은 매우 냉담하다. 중국을 통채로 주더라도 북해와는 바꿀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수부는 성경심양부(심양). 요동반도와 북륙을 관리한다. 심왕 진영의 치세에 몽골의 공격을 방어하고 오히려 역습, 동몽의 상당 영토를 획득하였다.[50] 여진, 한족, 조선인들부터 그리스 유민들까지 각종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나 큰 갈등은 없다. 자유롭고 유연한 분위기 때문에 황성의 4대 학당에 버금가는 어립심양문리과대학이 심양에 위치해 있고, 제국 최초의 그리스정교 성당인 성사도심양대주교구가 심양에 위치한다. 심요대도독은 심왕가가 겸작하여 제국 내의 번국이지만 정치체제뿐만이 아니라 화폐까지 달리 찍어낼 정도로 자치성이 강하다. 요동군은 원래 제국 정부가 관리했지만 자금 부족과 관리 미비로 현재는 심왕가에 넘어간 상태. 숫자는 13만밖에 되지 않지만 혹독한 훈련과 질좋은 무기체계로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이다.[51]
사실상 7권 현재 (16세기 중반)에는 심요 도독부라기 보다는 심왕이 다스리는 하나의 왕국.
갈수록 독립기조가 강경해져서, 독립문제와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내전을 한차례 겪고 이후 내지를 침공하는 등의 또 한차례 진통을 겪은 끝에 요동국이라는 정식 왕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정식 왕국이 되면서 근대국가 체제로 가는 길을 얻었으며 내지와 달리 입헌 혁명을 겪지 않으면서 온건하게 입헌 체제를 확립하는데 성공했다. 그 때문에 황제가 유명무실해진 내지에 비해 국왕의 권한이 상당한 편이다. 11권에서 의무교육 도입과 해군력 강화, 참정권 확대 및 중상주의 정책을 펴는 한편, 기존의 성리학이 완전히 유명무실해지고 과학 등을 위주로 하는 격물학이 주류가 되는 등 근대국가화가 거의 이루어졌다. 다만 의무교육은 완전히 확립되는 것이 1세기가 걸렸다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와서야 실현되는 듯 하다. 내지와의 관계는 양국의 입헌체제 확립 이후 파이프가 거의 사라져 이를 우려한 양국 정부는 고등판무관을 각각 황성부와 성경부에 두기로 하는데, 현실의 외교 및 첩보와 비슷하게 흐르고 있다.[52] 그리고 13권에서 러시아와의 접전끝에 앙가라강-예니세이 강 하류-북극해로 이어지는 동경 95도 일대를 국경으로 획정하는 한편 동남아시아 식민지화에도 참여하여 보르네오 섬을 점령한다.
문화적으로는 한국어를 상용하나, 내지의 국어와는 다르게 서북방언의 영향을 짙게 받은 요동방언(료동어)를 사용한다. 독자적인 정서법과 어휘들을 정립하였으며, 당연히 두음법칙도 내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대충 문화어의 더욱 고전적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한국의 민족주의와는 다른 요동만의 민족주의가 등장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이제는 더이상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과 친척지간인 다른 문화권에 속한다고 여기는 듯 보인다. 성경 심양부 서문거리를 중심으로 연극공연문화가 발달하였으며, 찻집(카페)도 성행하고 있다. 이른 산업화와 함께 거대자본들이 등장하였으며, 이들은 순나라 경제를 마비시키고 제국주의적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 근대국가로 향하면서 국왕 전제를 일부 철폐하긴 했으나 여전히 왕권이 강한 편이고(내지에 비해서), 중앙집권적인 수직체계로 징병제의 유지, 의무교육의 시행등을 행하고 있다. 물론 긍정적인 결과도 많지만, 부정적인 결과로 제국주의적 성향의 강화, 국수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정서의 발현, 그리고 이웃 국가에 대한 침탈등이 소설 속에서 비판적인 어조로 드러나고 있다.
수부는 창주부(밴쿠버). 신대륙을 관할하는 도독부이다. 심왕가의 자손인 혜성군 주현이 탐험끝에 창주(영주진으로 개척되었다가, 고을의 등급이 오르면서 창주부로 이름을 고쳤다.)를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하였다. 모피무역과 아즈텍, 잉카와의 무역을 위해 사람들이 갈수록 모여들어 처음에는 영진도독부에 묶여있었으나 7권 말에 영주도독부로 떼어냈다. 개척 50여년만에 1부 1군 5진 16보를 두고 인구를 5만 가까이 거느린 도독부가 되었다. 1548년(건양 25년) 현재 수부인 창주부에는 1만 2천, 그 다음가는 도시인 대곡군(시애틀)에는 5천, No.3급인 대정진(샌프란시스코)에 2천이 거주한다. 군대는 영주파견대가 주둔하여 치안과 방위를 담당한다. 11권에 나온 지도에 따르면 영주의 영역은 알래스카 반도를 시작으로 현실의 멕시코의 켈리포니아 반도까지이며 이는 태평양과 로키산맥 사이에 있다. 10권에서 누르하치의 여진이 대평원 지대에서 만주를 세워 최초로 외부세력을 맞닥뜨리게 되자 원교근공책[53] 으로 동부해안의 네덜란드 세력과 동맹을 맺게 되었다. 11권에서 그때까지 내지에서 원료 공급지와 상품 시장으로만 보았지만 많은 이민이 와서 인구가 늘고 입헌 혁명을 비롯하여 국내에 시끄러운 일이 있을 때 영주를 신경쓸 겨를이 없게 되는 바람에 영주의 독자성은 점점 커지게 되어, 특정 산업의 도입을 제한하지만 별 실효가 없는데다 새로운 산업을 틈새로 발전시켜 경제적인 독자성이 커지고, 계몽주의나 자유주의 서적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독립을 향한 첫발을 내딛게 된다. 결국 12권에서 내지가 동남아 지역의 원정을 꿈꾸며 그에 대한 비용을 영주에서 걷는 세금을 늘려서 얻으려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독립전쟁을 벌이고 결국 동영 연방공화국의 국호로 독립을 하는데, 이들이 실현한 공화주의는 내지는 물론 유럽에도 영향을 주어 연합왕국 치하에 있는 프랑스가 공화국으로써 연합왕국을 나오고 아라곤 치하의 남프랑스도 옥시타니아로 떨어져 나와 서로 연방을 맺어 유럽 정세가 어지럽게 돌아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현실의 미국처럼 행동하는데 신대륙에 있는 각 식민지들의 독립을 도와서 독립한 나라들과 기존의 토속 국가들의 모임인 대륙회의[54] 를 만들고 현실의 먼로 선언 비슷한 신대륙의 일에 구대륙이 간섭하지 말라는 선언도 한다. 일단 명색이 공화국이다 보니 검열제도없이 사상의 자유가 있지만 황인종과 백인 이외의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로 인한 시민권 제한과 노동 착취가 있다.
원 역사의 싱가폴에 위치하는 제국의 무역항. 도독부는 아니지만 상당한 사람들이 거주한다. 따로 행정 부처가 있지 않고, 외부(外部) 아래의 상남서(署)라 불리는 관청에서 관할하고 있다. 인도양 무역의 요충지로 나상, 호상, 경상, 송상들을 비롯한 제국 대상단들의 상회가 위치하며, 신사라는 계급의 유지들이 상남을 다스리다시피 한다. 대부분이 제국인들이기에 제국의 명령은 꽤 잘 따르는 편.[56] 군대는 상남파견대와 해군 상남분견대가 주둔하여 치안 유지 및 주변 해역을 통제한다. 12권 들어와 제국이 인도 및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면서 이를 위한 거점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13권에서 출정이후 말레이 총독부가 믈라카에 설치된 뒤로 상남은 이 지역을 배후지로 삼아서 급성장하고 있는 듯 보인다.
원 이름은 소코트라. 소말리아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떠있는 섬이다. 나상의 행수 조계응이 이곳을 점령하고 상단령으로 삼는다. 이곳을 통해 아프리카 항로는 물론, 홍해를 통해 알렉산드리아로도 상행을 보낸다. 주민들 대부분이 그리스 정교를 믿기에 심양대주교구가 이 섬으로 수사들을 보낸다. 9권에서 나상의 몰락 이후 숙주 자체의 상단이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1600년대 중반에 제국 최고상단이 된 송상에서 그 상단을 인수해 버린다. 이로써 인도양을 지배하던 나상의 역사는 완전히 종언을 고한다. 그리고 12권에서 네덜란드-스웨덴-오스트리아와의 동맹으로 연합왕국에 대항하려는 제국이 마리아 테레지아와의 국혼을 추진하면서 유지비용만 들고 전략적 가치가 거의 사라진 이곳을 스웨덴에 할양하게 된다.
'''大韓帝國年代記'''
1. 개요
2. 줄거리
3. 특징
4. 세계관
4.1. 시간 흐름
5. 등장인물
5.1. 심왕가(瀋王家, 10권 이후의 요동국왕가)
5.2. 황실
5.3. 조정
5.4. 군인
5.5. 상인 및 상단
5.5.1. 구 나상 계열
5.5.1.1. 인물
5.5.2. 호상 계열
5.5.2.1. 인물
5.5.3. 계영양행(함상) 계열
5.5.3.1. 인물
5.5.4. 내상 계열
5.5.4.1. 인물
5.5.5. 남성물산(13권 이후 성광사)
5.5.5.1. 인물
5.6. 중국
5.7. 일본
5.8. 동로마 제국
5.9. 카스티야
5.10. 아라곤
5.11. 류큐
5.12. 후금국
5.13. 아이누 모시르
5.14. 연합왕국
5.15. 스웨덴 왕국 및 오스트리아 대공국
6. 대한제국의 영토
6.1. 내지 8도(14권에서 13도)
6.2. 탐라국(14권에서 제주자치국)
6.3. 진서 도독부(14권에서 진서자치국)
6.3.1. 행정구역
6.4. 북해 도독부
6.5. 심요 도독부(10권 이후의 요동국)
6.5.1. 행정구역 (7로 1계)
6.6. 영주 도독부(12권부터 동영 연방공화국)
6.7. 상남서
6.8. 숙주
7. 지명대조 (괄호 안이 실제 역사의 지명)
8.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의 대체역사소설. 저자는 김경록이다. 말 그대로 연대기이자, '''정통 대체역사소설의 계보를 잇는 작품'''[3] 이라는 평을 받는다.
2010년 여름 조아라에서 연재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출판사와 여러 문제가 있어 한동안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가, 2010년 겨울 뿔미디어로 옮겨서 가까스로 출판되었다. 2012년 11월 기준으로 14권까지 출간되면서 완결되었다. 대체역사물 중에서 장수한편. 지리멸렬하게 분량을 내다가 먹튀하듯 조기종결을 해버리는게 대세인데 반해, 지구력있고 탄탄하게 이어졌다. 다만 마지막이 클리프행어스럽게 되어서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후속작이 나왔다! 2013년 4월 말에 후속작인 제국의 계보가 출간되었다.[4] 작중의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언어를 창작한 것은 물론, 기존의 국산 대체역사 중에서 가장 폭 넓고 깊게 여러 세대에 걸친 가상의 역사적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1399년에 시작한 소설이 19세기 중반(1840년)까지 진행했다.
공교롭게도 작품 속의 시간대는 Paradox Interactive 사의 Europa Universalis IV의 시간대(1399~1820)와 거의 일치하며, '근대적 국가의 성립'·'부국강병'이라는 게임 속 목표와 작품 속 국가들의 목표가 흡사하다. 그러므로, 2부는 Victoria를 모델로 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시대? 결국 차기작인 제국의 계보가 나왔다. 실제로 작가와 제국의 계보의 공저자 이혁 둘 모두 Paradox Interactive 사의 게임들을 예전부터 즐겨왔다고 한다. 유로파 외에도 크루세이더 킹즈2를 한다고. 그리고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국의 계보의 후기에서 이러한 떡밥을 인증해줬다.
2. 줄거리
22세기의 대한민국 우주청 5급 사무관인 김세훈은 토성으로 가는 탐사선에 탑승했다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1399년의 조선국 탐라(제주)에 불시착 하게 된다. 원나라로부터 반환되어 조선 전라도에 귀속된 탐라에서 주인공은 15세기의 정세를 하나 둘씩 바꿔나간다.
3. 특징
대체역사소설 치고는 독특하게도 '''반제국주의적'''인 경향을 띄고 있다. 요동상인에 의해 착취당하는 순나라사람들[5] ,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인한 이득은 소수의 부유층에게만 간다는 설명, 착취당하는 노동계급과 이를 탄압하는 정부등 대체역사소설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제국주의의 그늘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3.1. 작가의 뛰어난 문장력과 고증
《대한제국 연대기》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문장인데, 한마디로 옛스런 한자어와 고어(古語)의 맛이 잘 살아있고 만연하는 구어적 문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연체를 구성하는 겹문장에서 같거나 유사한 부사[6] 가 중복되거나 혹은 지나치게 더덕더덕 달라붙어 있고, 주술의 호응이 말끔하지 못하며, 중국어나 영어를 투박하게 번역한 것처럼 어순이 뒤집혀 있거나 혹은 쉼표를 엉뚱한 자리에 박아놓는 식으로 작문이 엉망이다. 게다가 비문과 오탈자도 한장걸러 한번씩 보일 정도이고 중언부언 하느라 가독성도 떡망이다.[7] 하지만, 이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현지의 이랬을 것이다 싶은 어떤 분위기[8] 만큼은 전례[9] 없이 운치있게 잘 표현되고 있다.
고증은 군사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매우 치밀하며, 특히 국명, 인명, 지명의 경우 15세기 당시에 쓰이던 발음을 집요하게 재구하고 있다. 명나라, 일본, 심지어 동로마 제국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정세와 언어적 고증이 매우 탁월하다. 다만 전쟁이나 전투등의 군사적인 부분과 과학기술, 경제부분은 작가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묘사도 그리 치밀하지 못하고 적은 비중으로 대충 때우는 감이 있는데, 이 때문에 조아라 연재시절 밀덕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는 했다.[10]
3.2. 일부에 국한된 역사적 개변성
8권 전후로 자주 보이는 비판은 주인공의 개입으로 동양의 역사가 바뀌고 '''몇 세기나 진행되었음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나 인물들의 행동이 조선과 그 인근에서는 기존의 역사와 너무 흡사[11] 한 반면에 오히려 영향력이 약한 유럽의 역사는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변했다.''' 단적인 예가 뜬금없이 에드워드 6세가 요절하지 않으면서, 엘리자베스 1세가 몰락한 것.
이에 대해 유로파 카페에 남긴 작가의 답변을 요약하자면, 요동국의 경우 등장인물 모두가 가상의 인물인데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가상의 인물이라면 독자의 재미도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였고, 제국주의 중심부국가에서 태어나 자란 조선의 인물들이 실제 역사와 어떻게 다를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대체역사물의 세계는 현실의 평행세계, 즉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이기에 역사적 개변성은 결국 작가 마음이고, 어색할 이유도 없다. 정도가 심해서 '''작가 편의주의적 전개'''가 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3.3. 기술혁신과 제도구축 과정 묘사의 빈약함
고증과 달리 기술적인 문제에서는 현대인 천재론이나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에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개념착상-재료수집 하는 진행[12] 이 크게 지적되고 있다. 초반부부터 시작해서 기술개발에 있어서는 이부분이 일괄적으로 지적되나, 개선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피아에서 위의 현대인 천재론에 관해서 논쟁이 붙었다. 초반 주인공 세훈이 석사 3개에 학사 학위가 여러개인데 범선을 왜 못만드냐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로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석사 학위가 물리학, 역사학, 심리학으로 사실상 김세훈이 소설에서 보여준 능력은 학위에 비해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정도면 대단하다는 반응. 물론 전문적인 이공계통 석박사 이상이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당연히 있겠으나, 기존의 환빠스틱한 대체역사와 비교하면 이공계통의 고증은 도리어 온건하고 충실하다. 적어도 유사과학을 끌어오거나 망상으로 도배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인문사회학적인 고증과 시뮬레이션은 탁월한 수준이며, 인명, 지명, 국명, 언어 등에 대해서 만큼은 편집증적으로 정확성을 기하고 있다. 유구국의 사람은 류큐어 인명, 카탈루냐어를 쓰는 아라곤 왕국의 인명은 카탈루냐식으로 최대한 정확히 재구하였으며, 키릴문자나 아랍문자같은 경우가 아닌 한은 원 표기까지 병기하였다.심지어 중세 조선어와 중세 일본 큐슈방언이 뒤섞인 진서어[13] , 북유럽에서 이민온 백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북해어라는 가상의 크레올까지 개발해냈을 정도.[14]
3.4. 대한 '제국'?
'''동양에서는 "제국"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다.'''[15] 때문에 "대한제국"이라는 칭호는 당시에 많이 어색했을 텐데, 작중에서 이런 국호를 이상하게 여기는 묘사가 없다. 한국사상 칭제건원을 한 국가 혹은 정체를 찾아본다면 발해(대진국), 묘청의 난(대위국) 등이 있고 대한제국도 당대에는 대한국이라고 칭했다.[16]
4. 세계관
작중에서 민족주의적인 주장이나 언급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싱가폴 지역으로 병력을 파견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국내에서 제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역풍이 불까봐 주인공이 걱정하기도 한다. 당연히 환빠와는 거리가 먼 소설이며, '한민족'이라는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인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는 훈민정음 반포 당시를 다룬 에피소드에서 (실제 역사였다면 왕위에 올랐을) 개성공 이도의 입을 통해 한글만능론을 경계하는 언급까지 나올 정도.
다만 작품의 기본적 전개상 명과 일본과의 전쟁은 치뤄지며, 그 틈에 요동을 쳐묵쳐묵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요즈음 대체역사에서 나오는 환빠적인 전개와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조선을 실제 역사에서 이탈한 궤도로 보다 발전시킨다는 전개상 별 수 없이 조선이 강성해지고는 있다. 이런 재미도 없으면 대체역사물을 뭣하러 보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이왕 민족주의 시각에서 탈피한 마당에 굳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확장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 극도로 민감한 사람에게는 제국주의적인 태도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100년 동안 얻은게 요동, 연해주, 큐슈가 전부이므로, 딱히 '조선 킹왕짱 한민족 킹왕짱'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도 않고 실제 역사에서 유럽 각국이 벌였던 것과 같은 엄청난 확장 테크를 밟고 있지도 않다.
기술력의 폭발적인 성장도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지 않으며, 5권 말에서 16세기 유럽의 르네상스시기와 분야에 따라 조금씩 앞서거나 뒤지는 정도의 문화 및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 6권에서부터 신대륙으로의 진출에 성공하여, 7권 말에 이르러서는 북아메리카 서부 해안에 18곳에 달하는 거점을 거느리고 5만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 식민지 개척 경쟁에서 단연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해외영토의 경영이 쉽지 않아서, 제국 중앙정부가 성장하는 해외영토에 대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지다 결국 기존 도독부 지역이 하나하나 독립하여 사실상 제국이 붕괴하고 있다. 단 한국 자체의 국력은 여전히 세계열강 가운데 가장 강력한 편이고 구 도독부 이외에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를 동남아와 인도 일대에 두고 있다.[17]
4.1. 시간 흐름
- 1권 - 2110년 5월 6일(프롤로그), 1399년~1406년(7년)
- 2권 - 1406년~1414년(8년)
- 3권 - 1415년~1434년(19년)
- 4권 - 1435년~1453년(18년)
- 5권 - 1457년~1494년(37년)
- 6권 - 1496년~1517년(21년)
- 7권 - 1516년~1542년(27년)
- 8권 - 1550년~1579년(30년)
- 9권 - 1579년~1612년(33년)
- 10권 - 1616년~1662년(46년)
- 11권 - 1672년~1730년(58년)
- 12권 - 1741년~1777년(36년)
- 13권 - 1775년~1809년(34년)
- 14권 - 1810년~1840년(30년)
5. 등장인물
《대한제국연대기》의 등장인물은 실제인물과 가공인물이 혼재되어 있다.
5.1. 심왕가(瀋王家, 10권 이후의 요동국왕가)
- 김세훈 - 초반부 주인공. 제1대 심왕. 22세기의 한국인 우주비행사로 1399년 탐라에 포류하게 된다. 탐라성주 고봉례의 신임을 얻어 총병을 키우고 1404년 갑신반정을 통해 섭정공의 지위에 올랐다. 이 반정을 통해 이방원을 쫓아내고 이성계의 손자중 멍청한 놈을 골라 왕위에 올린 다음, 이 일 때문에 촉발된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고, 예전 고려 왕족이 원나라 때에 가지고 있었던 심왕(瀋王)의 작위[18] 를 명목상 뺏어오는데 성공한다. 섭정공에서 물러난 뒤에도 의정부 의정(議政)을 역임하고, 대한제국의 수립 이후에는 내각 재상(宰相)을 지내다 1438년 아들인 김현도에게 재상직을 넘기고 정계에서 물러났다. 1447년 향년 73세로 사거(死去). 시호 성명왕(成明王).
- 김현도 - 세훈의 아들. 제2대 심왕. 아버지가 은퇴한 뒤에 대한제국 재상의 지위를 물려 받아 국가의 안녕을 다진다. 명나라와의 2차전에서 승리하여 산해관 동쪽 지역을 할양받았다. 다른 신하들과 함께 황제를 압박해 심왕의 작위의 원래 본거지인 심양에 심왕부를 세운다. 시호 성무왕(成武王)
- 김서윤 - 제3대 심왕. 현도의 아들, 세훈의 손자. 젊은 시절, 할아버지 세훈의 수발을 들며 저술활동을 돕는다. 세훈의 사후 전시에 합격하여 한림원에서 개성공 이도의 밑에서 수학하며 정치보다 학문에 흥미를 느낀다. 학문만 파고들자 아버지 현도가 심왕세자로서 심양을 통치하라며 심양으로 보내버린다. 이후 심양에 머물면서, 요동의 행정을 조직하고 심양을 번영하는 도시로 성장시킨다. 삼촌인 계영양행의 행주 김현진을 통해 사해(四海)의 각종 서적과 물자를 모아서 심양 한복판에 어립장서각이라는 제국 최초의 도서관 겸 박물관을 세운다. 훗날 심양을 방문한 조광조가 어립장서각을 보고 감탄하며 그를 칭송한다. 제3대 심왕. 시호는 문덕왕(文德王). 서윤의 때부터 심왕가는 더이상 제국 중앙조정에 관여하지 않게 된다.
- 김진영 - 제4대 심왕. 시호 경흥왕. 문덕왕 서윤의 손자. 최초 주인공 세훈의 고손자(4대손). 아버지가 30대의 이른 나이에 먼저 죽어 세손으로서 심왕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몽골의 요동 침입 당시 내지의 지원 없이 요동군만으로 이를 격퇴하고 몽골의 수도 카라코름까지 점령하여 영토를 할양받았다. 이 사건으로 중앙으로부터의 멀어짐을 두려워한 내각대신들과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후에 서경덕과 심양 학사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태양력을 채택했다가 중앙조정에서 감히 번국주제에 역법을 선포했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자 태양력을 황제가 반포하고 다시 받아쓰게 된다.
- 김유 - 제5대 심왕. 시호 의민왕. (재위: 1549~1598)[19] 경흥왕 김진영의 아들. 초반 주인공 세훈의 5대손이자, 제5대 심왕. 정부인이 황실의 공주로, 황성부 조정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왕비와 궁내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후처로 들인 것이 바로 누르하치의 고모뻘 되는 정빈 목씨이다. 본처에서 얻은 자식들과 후처에게 얻은 자식들이 훗날 왕권을 두고 다투게 된다. 일본이 진서를 침공한 왜란에 출정했다가 1598년 진중에서 병사.
- 김민 - 예양대군. 의민왕 김유의 차남. 학문을 좋아한 문치 스타일의 인물. 형이 폐위된 후 동생인 금양대군과 왕위계승을 경쟁한다. 아버지 김유가 진서로 출병할 때 세자로 책봉 받고 김유가 죽자 왕위에 오르려 했으나 동생 금양대군이 군부의 지지를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켜 궁에 감금되었다가 죽게 된다.
- 김제 - 제6대 심왕. (그러나 죽고나서 왕위 박탈, 시호 없이 금양군으로 격하)금양대군. 의민왕 김유의 삼남. 요동 자립파. 오랜기간 왕위계승을 노리고 있다가 결국 이가 어긋나자 쿠데타를 일으켜 형을 몰아내고 스스로 심왕에 즉위. 여진족을 탄압해 누르하치가 결국 신대륙으로 이주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요동을 정식 왕국으로 승격시키고자 내지를 공격하지만, 심복이었던 한의직이 조카 김윤의 편을 들어 역관광당하고 결국 병을 얻어 죽는데 폐주로 간주되어 시호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소원대로 요동이 번국에서 왕국으로 정식 승격된다.
- 김율 - 인양군. 의민왕 김유의 서자. 황성 유학중 훗날 황제에 즉위하는 흥친왕과 인연을 맺고 황성에서 활동한다. 아버지 의민왕 김유를 따라 종군하였다가 결국 그 사이 형인 금양대군 김제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탈취하자, 요동으로 돌아와 형과 싸우다 전사한다. 부인이 허난설헌.
- 김윤 - 제7대 심왕 및 초대 요동국왕. 시호 현양왕. 인양군 김율과 허난설헌 사이의 아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황성부에 피신해 있는다. 장성하여 누르하치와 함께 김제에 저항하다 사로잡혀 유폐당한다. 김제가 제국 내지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주살하려고 종군시키지만 세자와의 알력을 가진 장인 한의직이 도리어 세자를 주살하고 김윤을 옹립하여 왕위에 오르게 되고 요동은 황실의 승인을 받아 정식으로 왕국으로 승격된다. 이후 왕국의 제도를 확립하면서 요동이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고, 내지에서 일어난 입헌혁명에 기민하게 대처하여 온건한 형태의 입헌군주국체제를 수립하는 등의 많은 업적을 쌓았으나, 네덜란드 출신의 타스만의 후원요청을 뿌리치고 이후 그의 호주 발견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바람에 타스만이 일본의 후원을 받아 호주를 발견하여 호주의 종주권이 네덜란드와 일본으로 넘어가게 하는 실책을 범하기도 했다.
- 김승 - 2대 요동국왕. 시호 경혜왕. 10권의 마지막에 아버지 김윤이 승하해 왕위를 잇는다. 1662년 즉위 당시 41세였는데 아버지대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룬 탓에 그걸 정착시키는데 전념한 모양인지 특이할 만한 업적이 없는 재위를 지냈다.
- 김행 - 3대 요동국왕. 시호 태강왕. 별다른 업적없는 아버지의 뒤를 이은 탓인지 국가 발전을 위한 업적을 쌓기를 원하지만 의무교육 도입에 난항을 겪는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용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데 있어 완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익을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을 등용하면서 그들의 힘을 보태주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구 세력들을 몰아붙이지만은 않고 타협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뜻을 이루게 되는데, 의무교육 도입 외에 공회의 선거권을 늘리면서 요동국국회로 발전시키고 선거권 확대로 자본가들이 참정권을 얻게되면서 중상주의 정책을 펴서 이웃 순나라를 공격해서 요동국이 자유롭게 통상할 권리를 얻고 내지에 의지하던 해군을 다소나마 자립시키기 위해 해군력을 증강한다.
- 김헌 - 4대 요동국왕. 어릴 적 이익을 스승으로 모셨기 때문에 자유주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성격이 고지식하고 완고한 편이라 3남 김유에게 좌절을 안기기도 했다.
- 김유 - 김헌의 3남. 정경대군. 군문에 있을 때 순나라 주둔군에 있었는데, 요동군이 순나라에서 벌인 행동에 개탄하여 남성물산을 만들어 순나라-요동-유구간의 삼각무역을 통해 순나라 사람들을 다소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아버지에게 제약을 받고 심복인 최양일이 내지 평양에서 공화주의자 탄압에 말려들어 연루되는 등의 사건으로 좌절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남성물산을 최양일과 유청령에게 맡기고 북륙에서 사냥으로 소일을 하다 낙마하여 사망한다. 죽기 직전 남성물산에 대한 모든 권리를 유청령에게 완전히 넘겼다.
- 김시유 - 김유가 순나라에 있던 시절 구해준 여인 유청령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 김헌이 김유와 유청령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김유가 따로 한씨와 정식 결혼해서 공식적으로는 대가 끊긴 군가의 군호를 이어받을 뿐이지만, 김유의 외아들이다. 1775년 시점에서 요동 대련에 있는 기숙학교에 있으나 최양일의 주선으로 내지에 있는 박지원의 제자가 되고, 제도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지만 어머니의 사망으로 남성물산을 물려받아 이를 경영하게 되고 장인이 제안한 최초의 철도부설사업으로 성광사로 발전하게 되고 최초의 사진사업까지 하게 된다.
- 김현 - 김시유의 장남. 학자의 길을 걷다 뒤늦게 사업을 한 아버지보다 더 사업감각이 뛰어나다. 그러나 인정이 없고 엘리트주의를 가지다보니 동생 김효가 이에 반발한다. 결국 성광사를 크게 키우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꿈꾼 남성물산의 이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다른 재벌과 다를 바 없게 된다.
- 김효 - 김시유의 차남. 이전부터 형과의 관계나 나빴지만 원산에서의 노동쟁의에 대한 형의 행동을 보고 실망하여 제도대학에서의 학업을 버리고 영안대학으로 가는데, 이후 가족과 만나지 않는다는 언급[20] 으로 보아 사회주의 운동을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어느정도는 그랬지만 진서와 북해의 독립운동에 가담한 이후 결국 국외추방당해 동영으로 망명하는데 19세기에 세계적으로 퍼진 민족주의에 대한 실체를 폭로함과 동시에 이를 비판하고 세계대전을 암시했다.
- 김회 - 5대 요동국왕. 김헌의 장남으로 숙부인 김시유를 개인적으로 좋게 보는 건 아니지만 정략적인 자금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성광사의 뒤를 잘 봐주고 있다. 북륙에 대한 러시아와의 국경 확정과 동시에 분열된 몽골의 세력 정립으로 북쪽에 대한 정세 안정을 이루어 내는 한편 순나라 및 보르네오 섬에 대한 제국주의 진출을 꾀한다.
- 김요섭 - 김효의 장남. 아버지의 망명으로 동영에서 자라 변호사 일을 하다 아버지의 유작 원고를 보고 북해의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 김호 - 6대 요동국왕. 김회의 사망에 몇달 앞서 왕세자인 아버지가 사망해서 장손인 김호가 즉위했는데 왕실의 힘이 약해지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영향력은 남기고 싶어서 성광사를 통해 왕실의 자금을 횡령에 가까운 방법으로 늘린다. 대한제국 연대기 2부인 제국의 계보에서는 여전히 1860년대 까지 왕위에 남아 아직 노구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모습으로 요동국을 통치하며 국왕권력의 강화 및 대한제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내지를 침공하여 평양을 점령하고 강화를 맺어 완전한 요동의 독립을 이룬다. 반면에 그 아들인 세자의 모습은 안습.
5.1.1. 요동국 역대국왕(10권 이전은 심왕가)[21]
1. 성명왕 김세훈 1374~1447 (재위: 1415~1447)
2. 성무왕 김현도 1401~1483 (재위: 1447~1475)
3. 문덕왕 김서윤 1423~1508 (재위: 1475~1508)
4. 경흥왕 김진영 1483~1549 (재위: 1508~1549)
5. 의민왕 김유 1511~1598 (재위: 1549~1598)
6. 폐주 금양군 김제
7. 현양왕 김윤 (요동국 창건)
8. 경혜왕 김승
9. 태강왕 김행
10. 효공왕 김헌
11. 흥정왕 김회 (재위 1779~1811)
12. 김호
5.2. 황실
- 이성계 - 제1대 조선국왕. 왕자의 난 이후에 이방과(작중 공정왕)에게 왕위를 물려 준 뒤, 아들 이방원이 왕위마저 뺏어가자 격하게 대립하다가 세훈에게 대파당한다. 조용히 은거하다가 죽은 듯.
- 이방원 - 제3대 조선국왕. 폐주. 1404년, 이성계의 사주를 받은 조사의의 반란 와중에 주인공마저 탐라에서 거병해 양쪽에서 공격받자, 결국 명나라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결국 패배하여 명나라로 도주해, 그곳에서 조선을 뒤흔들기 위한 식읍 3천호짜리 솔양군왕의 작위를받고 조용히 살다가 결국 목숨을 잃는다.
- 이도(충녕군) - 우리가 익히 아는 세종대왕. 아버지를 따라 명나라로 쫓겨난 뒤에도 학문을 꾸준히 연마한다. 그러나 관직의 출사할 길이 없으니 유랑생활을 하던 중에, 형인 양녕군이 명나라의 황위계승에 연루되어 척살당하자, 조선과 명나라 경계의 동녕관으로 도망했다가 결국 다시 정치적 상황의 변화로 조선에 입국.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집현전 등에서 강의를 하는 등 학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백부인 정종의 양자로 입적하여 개성공에 봉해지고 다양한 학문적 업적을 남긴다. 장영실과 함께 세훈이 도입한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격물학'에 대해 저서를 남기기도 한다. 말년에는 동로마제국에서 건너온 학자들이 들고 온 그리스 고전에 대해 신숙주와 함께 번역 작업도 했다. 생전에 그 공로로 개성공(開城公)에 봉해져 옛 개성의 궁궐인 수창궁을 저택으로 하사 받고, 그 후손들(실제 조선왕가)은 개성공의 작위를 이어 받게 된다.
- 안평군 - 이도의 아들. 실제 역사에서는 수양대군에게 척살당한 불운의 안평대군이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안견등의 화공을 우대하고, 그에게 이탈리아 작품의 모작까지 구해다 준다. 작중의 설명에 따르면 엄청난 돈이 깨진듯.
- 목종(穆宗) - 제4대 조선국왕. 이방원에게서 빼앗은 왕위에 허수아비로 앉혀진 불쌍한 왕. 이성계의 셋째 아들이자 이방원의 형인 익안대군 이방의의 아들 이석근이다. 그의 핏줄이 대한제국의 황실로 이어진다.
- 흥정제 - 진종. 제5대 조선국왕, 제1대 대한제국 황제. 세훈한테 대권을 뺏겼다는 생각에 빈정이 잔뜩상해 3권에서 칭제건원 하자는 소리에도 온갖 거부를 놓다가 결국 황제의 관을 쓰는 인물. 최만리와 의기투합하여 충청도에서 근왕파의 친위반정을 도모했으나, 결국 토벌당하고 죽을 때 까지 입다물고 내전에서 산다.
- 가경제 - 제2대 황제. 흥정제에게서 황위를 물려 받아 거의 50여년을 통치하면서 나름 제국의 전성기에 군림(?)한 황제. 현도의 재상통치와 뒤 이은 내각신료들의 집단체제를 거쳐오며 아무 말 않고 옥좌에 앉아서 도장찍는 황제의 본분(?)을 다했다. 스스로도 그 정도에 만족한 듯. 그의 치세기간 동안 제국은 외적으로는 영토의 확장과 발전을 거듭했지만, 내적으로는 각종 모순이 쌓여서 다음 대의 황제 소흥제 때의 정치적 난동기가 찾아오게 된다.
- 소흥제 - 제3대 황제. 내각의 힘에 밀린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사림당과 훈구당을 이용해 사화와 친위 쿠데타까지 일으키며 권력 장악에 힘쓰나, 정작 황권을 전횡한지 몇년 되지도 않아 뇌출혈로 졸도. 자신은 황권을 휘두를수 있었지만 정작 제국의 홍범(헌법)은 고치지도 못해 그가 남긴것은 엉망이 된 대한제국의 내각과 추밀원뿐이었다.
- 건양제 - 제4대 황제. 윤원형 일파에 휘둘림.
- 선덕제 - 제5대 황제. 8권에서 황권강화를 시도하나, 불량 은화를 찍어내 물가가 폭등하면서 정치적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매독에 걸려 비명횡사.
- 순화제 - 제6대 황제. 삼촌 태정제에 의해 폐위됨. 귀양길에서 태정제에 의해 죽는다.
- 태정제 - 제7대 황제. 쿠데타를 통해 황제에 집권. 중앙집권적인 황권강화에 처음으로 성공한다. 유럽으로 따지자면 절대군주쯤 되는 포스. 혼란스럽고 흔들리던 제국을 안정시키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진서를 지켜내는 등 상당한 치적을 쌓았으나 상업을 위축시켜 나상의 몰락을 불러오게 했으며 제국이 활기를 잃고 침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묘호는 세조.
- 흥안제 - 제8대 황제. 황권강화를 가져온 아버지를 쫓아 완벽한 절대군주가 되고자 시도하나, 반동을 불러와 입헌혁명을 초래하고 만다. 송시열이 주도한 의회군에 의해 완전히 털털 털리고, 황제로서는 최초로 법정에 세워져 사약을 받고 목숨을 잃는다.
- 태화제 - 제9대 황제. 송시열 주도의 의회에 의해 옹립. 최초의 입헌군주. 10권의 내용에 따르면 실권은 없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한 듯. 황실 관련 분량이 확 줄었다.
- 건희제 - 제10대 황제. 두번째 입헌군주. 태화제와 마찬가지로 실권은 없으나 서양 문물을 좋아하는 게 세간에 괴벽으로 여겨질 정도인데, 북해도독부에 영안대학이 설립되자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자신이 직접 현판을 써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망시 위문 사절의 수가 극적으로 줄은데다 시호 또한 순종 정황제를 받아 황실의 힘이 약해졌음이 대놓고 드러나게 되었다.
- 천통제 - 제11대 황제. 부황을 이어 즉위. 11권에서 치세 30년 가까이가 다루어지나 별 역할을 하지 않는다.
- 홍문제 - 제12대 황제. 입헌혁명 이후 오랜만에 정사에 관심을 가지는 황제. 그러나 자신의 권한과 위치를 바꿀 생각이 있는 정도는 아니다. 국제 관계를 위해 이례적으로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했는데, 결혼 전 서로에 대해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마음을 터놓아 금슬은 좋은 편이다. 즉위 40주년 기념 행사를 계기로 국가의 상징으로서의 위치를 안정시키는 한편 말레이 반도 출병으로 식민지 제국주의의 길을 열었다.
- 융무제 - 제13대 황제. 외모는 마리아 테레지아로부터 물려받아 잘 생겼다고 한다. 아버지가 재위 후반에 시작한 식민지 제국주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친다.
- 이산 - 12권에서 오랜만에 나오는 개성공가의 인물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정조. 식민지 제국주의를 펴는데 있어 실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의 딸이 김헌에게 출가한다.
- 건명제 - 제14대 황제.
5.3. 조정
- 하륜 - 줄 잘못 섰다가 이방원과 함께 쫓겨나는 사나이.
- 이서
- 김종서 - 북방개척과 각종 사업에 공이 있어 순천공에 봉해진다.
- 황희
- 맹사성
- 고봉례 - 조선초 탐라의 성주. 세훈을 잘 발탁해 써먹다가 딸인 고상희와 결혼시킨 덕에 졸지에 가문에 서광이 비쳤다.
- 고봉지 - 고봉례의 동생. 세훈에게는 처삼촌. 갑신반정 때 세훈을 따라 한성에 들어와서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다.
- 고상온 - 고봉례의 아들. 세훈에게는 처남. 군문에서 잘나간다.
- 양은계
- 송거신
- 박연
- 장영실
- 최해산 - 최무선의 아들. 탐라의 실정에 수상함을 느낀 이방원이 보낸 기술염탐꾼. 그러나 반정에 휘말려 세훈에게 줄을 선다. 덕분에 훗날 공조판서까지 지내며 잘 나간다. 아들 최공손까지 그 덕을 봐서 가문이 줄줄이 잘된 케이스.
- 최공손 - 최해산의 아들. 줄을 잘탄 아버지 덕분에 가문이 잘 나가는 듯. 한명회와 조정에서 파당을 짓고 대립한다.
- 신숙주 - 머리가 좋아서 멸망 직전의 동로마제국, 즉 비잔티움 제국까지 교역사절단을 다녀오기도 한다.
- 성삼문
- 한명회 - 사실상 현도 이후의 내각을 전횡함으로 인해 제국의 정치를 일보후퇴시킨 주역.
- 김시습
- 서거정 - 2대에 걸쳐 국정을 좌지우지 하던 김세훈, 현도 부자가 물러간 뒤에 처음으로 심왕가 이외의 인물로서 내각재상의 자리에 오른 인물. 그러나 그의 리더십 부재로 내각(옛 의정부)과 추밀원(일종의 귀족의회)에서는 최공손VS한명회의 파당정치 구도가 구축되기 시작한듯 보인다.
- 임승준 - 진서도독부(일본 큐슈) 출신으로 일본계이다. 소흥제 재위 당시 사림과 황실의 후원을 받아 문란해진 양전, 수척사업(토지제도 정비 및 인구조사)과 노비문서 폐지[22] 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자신들만이 도학정치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 조광조와 같은 신진사림과는 달리 타협과 중용을 아는 현명한 대신. 조광조 일파의 축출과 소흥제의 사후에 권력투쟁으로 어지러워진 내각의 재상이 되어 훈구와 사림을 골고루 등용하고 군제 개혁과 이외 백성들을 위한 각종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진행한다. 말년에는 백내장을 앓게 되어 재상직에서 물러났으나, 대장금의 안압[23] 시술을 받아 시력을 되찾는다. 하지만 겨우 반년도 되지 않아 결핵으로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의 업적에 비하면 고통스러운 최후.
- 조광조 - 자신들만이 진정한 군자라고 믿는 신진사림. 황권 강화를 원한 소흥제의 지원과 임승준의 백으로 재상까지 오르지만, 정작 황제가 자신을 밀어줬던 이유는 생각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개혁을 밀어붙이며 심지어 황권까지 법으로 제약하려 한다. 열받은 황제가 쫓겨난 훈구당 대신들과 손을 잡고 일으킨 친위쿠데타로 체포되어 사약을 마시고 사형당했다. 패기는 있었지만 임승준과는 달리 타협과 중용을 모르는 막무가내의 사내.
- 서경덕 - 평양 및 관서, 요동 일대에서 명성이 자자한 유생이자 천문학자, 수학자. 어립심양문리과대학의 학유들과 공동으로 제국의 새 역법을 만든다. 또한 지구구형설과 지동설을 믿고 그것을 허기[24] 를 이용한 성리학의 논리로써 증명하였다. 황진이와의 사건은 이 소설에서도 언급된다. 물론 넘어가진 않고 그냥 이뻐하는 제자정도로 마무리 지은 듯.
- 허엽 - 서경덕의 제자로 새로 생긴 영주도독부(신대륙)의 대도독으로 파견되어 영주의 호적조사 및 세금징수, 군사 징집의 임무를 맡는다. 아즈텍 제국이나 카스티야의 누에바 카스티야, 아라곤령 콜롬비아, 타완틴수유(잉카)에 영사를 파견하여 외교적 임무를 다하게 한다.
- 이황
- 조식
- 이이 - 심왕부 도평의사사 예악협판. 인양군 김율의 스승.
- 송시열 - 태정제 사후 전제정치가 더욱 강화되자 그에 반발하여 삼남지역의 진위대와 함께 입헌혁명을 일으켜 성공했다. 이후 본래 역사의 올리버 크롬웰과 유사한 행동을 한다.
- 이수광 - 외무대신 자리를 맡았다가 스스로 자청하여 지위가 더 낮은 영주도독으로 가서 영주 동쪽의 대평원 지역의 홍타이지의 만주를 정탐하는 한편 동부 해안지역의 네덜란드 세력과 동맹을 맺어 만주와 만주의 동맹인 이로쿼이 동맹을 견제하는 단초를 마련하였다.
- 이익 - 계몽주의자로 커피와 담배를 즐기며 시국에 대해 논하다 이를 몰래 정탐하던 요동국왕 김행이 불러 신분제도와 병역에 대해 묻는데, 신분제 철폐와, 세계가 어지러운데 그마나 요동은 평온하다보니 여력이 있다고 하면서 해군의 강화를 제안했다. 다소 급진적이지만 마음에 든 김행은 이익을 등용시키면서 중용의 길을 걷지 않으면 이익 자신과 국가에 위험할 수도 있다고 조광조와 임승준의 예를 들며 은근슬쩍 압박을 주나, 이익은 한신의 예를 들면서 역시 은근슬쩍 토사구팽을 하지 말라고 받아친다.
- 채제공 - 보수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로 국내에서는 공화주의자를 탄압하고 국외로는 영주의 상실을 대신해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식민지화를 꽤하고 있다.
- 박지원 - 계몽주의자의 마지막 총아로 김시유에게 언어학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 정약용 - 김시유가 하던 언어학 연구를 뒤이어 해나가는 인물. 형 정약전은 김시유의 스승이었고 자신은 김시유의 아들인 김효를 가르치는 등 성광사 가문과 인연이 깊다.
- 김조순, 김정희 - 현실 역사에서는 경주 김씨와 안동 김씨의 입장상 서로 사이가 안 좋은데 여기서는 같은 보수당에 속해서 북해의 독립에 대한 탄압을 실시한다. 그런데 김정희의 경우 제국의 계보에 따르면 대한제국 연대기와 제국의 계보 사이 시기에 북해의 실태를 직접 겪은 후 북해에 대한 온건파로 전향하여 역사와 같이 안동 김씨 측과 대립하게 된다. 또한 이하응의 정치적 후견인이 된다.
이 외에도 수 세기간에 걸쳐 실존했던 당대 인물들이 시도때도 없이 나온다.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5.4. 군인
- 천칠개 - 안동 출신으로 사병으로 입대했다. 경인동정(일본 대마도와 큐슈를 정벌할 때) 당시 전공을 세워서, 천민 중 최초로 일종의 육군사관학교라 할 수 있는 육군진무관을 수료해 장교가 된다. 후임 소만식과의 명콤비. 장교가 되자 이름을 천안석으로 고친다. 진서, 영진, 상남 등 여러 지역에서 공을 세워육군 중장에까지 오른다. 이후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장교가 되어 군인 집안이 된다.
- 소만식 - 천칠개의 고향 후배이자 군대 후임. 경인동정 당시 천칠개와 함께 공을 세워 부사관으로 승진하고 천칠개와 함께 진서와 영진, 상남에서 활약한다. 상남 근무를 끝으로 은퇴해 가족과 상남에 정착하여 '안동여숙'이라는 여관을 연다. 훗날 천안석의 막내아들 천정욱이 안동여숙에 들르게 되고 소만식의 손녀와 결혼해 안동여숙을 물려받게 된다.
- 장계 - 소흥제 연간 황성부의 시위대장이었으나, 조광조의 극단적인 개혁정치에 반발한 황제와 훈구대신들과 손을 잡고 친위쿠데타에 협조하여 사림 세력들을 체포한다. 이 사건으로 일약 군권을 장악하게 되어 군부대신까지 오르게 된다.
- 이순신 -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진서에서 벌어진 왜란에 종군한다. 다만 여기서도 불패의 명장. 일본 해군을 괴멸시켜 해상권을 장악한다. 이로 인해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일본 육군은 패하게 된다. 역사와 달리 비극적인 죽음을 맞지 않고 대승하여 당당하게 귀환한다. 종전 후 온양백작의 작위를 받고 군부대신에 영전한다.
- 원균 - 진서에서 벌어진 왜란에 종군한다. 전장에서 싸우지 않고 내빼는 등 비겁한 모습을 보이다가 종전 후 분노한 황제에 의해 목이 잘려 성문에 내걸린다.
- 권율 - 진서에서 왜란이 발생할 당시 군부대신으로 총사령관이 되어 직접 진서로 출병한다. 신립이 대패하며 고전했으나 이순신의 해군의 활약으로 해상권을 장악하여 일본군의 보급을 막은 덕분에 일본군을 막는데 성공한다. 종전 후 이순신과 함께 공을 인정받아 군부대신 자리를 이순신에게 물려주고 작위를 받아 추밀원으로 들어간다.
- 신립 - 진서로 출병했으나, 실제 역사에서처럼 배수진을 치고 기병돌격을 하다가 일본군에 대패한다.
- 이괄
- 임경업 - 입헌혁명 당시 근황파 측에 서서 의회파에 끝까지 맞서 싸우다 의회군에게 체포되어 평양에서 총살당한다.
- 베링(백빈연) - 네덜란드 출신 이민 2세다. 해군 장교로 북해도독부 산하 지역의 토지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북방 항로를 항해하는데, 이 과정에서 모실도(홋카이도섬)의 한국-아이누-일본의 지배 영토를 획정하게 되었다.[25] 그 후에도 탐험을 여러차레 하면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해협(베링해협)을 발견하여 북해도독부와 영주도독부의 경계를 확정했다. 그가 발견한 해협은 그의 이름을 따서 서양에서는 베링 해협, 동양에서는 백빈연 해협이라 불리게 된다.
5.5. 상인 및 상단
- 송상 - 개성을 근거지로 하는 상단. 나상의 막대한 자금동원력에 밀리지만 뒤늦게 서방항로에 뛰어들고 명나라와의 무역을 확충해 좀 잘나가는 대한제국의 No.2.였으나, 후반부로 갈 수록 나상을 바짝 뒤쫓아 이제는 포르투갈과 연합전선을 구축해 나상의 인도양 무역로를 완전히 좀먹고 있다. 마테오 리치가 인도 고아에 파견된 송상 상인을 만나 세례를 주는 장면이 나온다. 나상의 붕괴 이후 기존 유럽항로와 동남아 항로를 이용해 대한제국 최고의 상단으로 성장. 나상의 마지막 잔존세력이라고도 볼수 있던 숙주를 기반으로 한 인도고금상사를 인수하면서 나상 세력을 완전히 흡수, 합병하게 된다.
- 경상 - 황성(옛 한성부)를 중심으로 하는 상단. 수도가 베이스니 어느 정도는 먹어준다. 또한 송상, 나상에 이어 인도양 무역에 뛰어들어 포르투갈의 위협을 피해 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하여 지중해에 처음으로 상단을 도착시키는 등, 꽤나 탄탄한 제국 상단 No. 3. 하지만 10권 들어 수도 주변의 중계무역에 치중하고 국제 무역에서는 발을 뺐다.
- 구상 - 대구 기반의 상단.
- 박상 - 진서(조선 점령 이후의 큐슈의 명칭) 박주(하카다) 기반의 상단. 이들은 일본과의 중계무역을 기반으로 급속도로 성장하여, 진서 특유의 중간계층인 '가누비토'[26] 를 형성시켰다. 이들은 종교적으로는 예수교 신부들에 의해 진서일대에 포교된 가톨릭을 추종하고, 언어는 진서어를 사용한다. 심지어 박주에 대성당까지 건립했다. 일본의 진서침공으로 인한 그로기를 회복하고, 자존심 회복을 위해 진서대학의 설립을 주도한다.
- 기상 - 진서 기주부(나가사키) 기반의 상단.
5.5.1. 구 나상 계열
- 나상 - 탐라의 '나'상. 세훈이 작심하고 키워줬으니 만큼, 상계에서는 당연히 압도적으로 앞서나간다. 5권 작중에서는, 인도양에서 상시 무역중인 교관선(범선)만 50여척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세력으로 성장한다. 심지어 인도양에 떠있는 소코트라 섬을 점령하고 숙주라는 상단령으로 편입시킬 정도. 그러나 6권부터 아프리카 항로를 통해 밀려드는 포르투갈의 함대를 막느라 실적이 점점 부진해지고 있다. 8권 이후로는 거의 괴멸 상태에 빠진듯. 인도양 무역을 거의 포기하고 숙주를 중심으로 인도양무역을 담당하는 상단을 독립시켜 버렸다. 전성기가 지나가 몰락추세에 접어들고 결국 태정제의 상업 통제가 결정타가 되어 태정제 사후 해체된다. 그리고 이는 입헌 혁명 이후 전라도와 제주의 상인들의 새로운 상업기지를 세울 것을 원하게 되자 조정에서 네덜란드 상인을 불러 나상의 주 거점이던 목포를 개항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5.5.1.1. 인물
- 오상기 - 세훈이 처음 시작했던 제주를 중심으로 한 상단을 물려 받아 소위 '나상'을 수십년간 이끌며 세훈의 뒤에서 상업적인 베이스를 갖추어준 인물. 서방항로가 대박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른바 대한제국 상계에서 No.1.
- 바호디르 - 1405년 명과의 전쟁 당시에 우연찮게 조선의 반대편에서 명과 싸우고 있던 티무르 제국의 관료 청년. 남경에서 강화협상 당시에, 조선인 두명과 티무르 제국인 두명을 서로 교환해 앞으로의 우의를 다지자는, 본인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조약에 의해 결국 조선땅으로 가게 된다. 10년간 사역원 등에서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다가 오상기와 결탁해 페르시아로 가는 항로를 개발하기로 한다. 결국 평생에 걸쳐 결국 페르시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해내고 만다. 집념의 사나이.
- 조첨식 - 오상기의 손주사위.
- 조계응 - 조첨식의 아들. 호상의 모도이의 사위. 나상의 함대로 예멘 앞바다의 소코트라를 점령하고,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해낸다.
5.5.2. 호상 계열
- 호상 - 공주를 베이스로 하는 상단. 요즘들어 남양무역, 즉 인도네시아 방면에서 활약하면서 뒤늦게 선두주자들을 쫓아가고 있다. 하지만 6권부터 시작된 포르투갈 함대의 방해로 무역 실적이 점점 부진해지면서 똥줄타는중. 11권쯤 이르면 거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구세대의 상단으로 전락한 듯 하다.
5.5.2.1. 인물
- 모도이 - 공주를 기반으로 한 호상의 행수. 아무것도 없는 빈농 출신이었으나, 시류를 잘타 공주제국신보를 발행하는 사업가의 자리에 이른다. 말년에는 호상에서 꽤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오른듯. 조계응을 사위로 삼았다.
- 모승호 - 모도이의 아들. 잘나간다. 지금의 인도네시아 일대인 마자파히트 왕국에서 용병노릇을 하며 명예도 얻고 돈도 긁어 모은다. 사돈지간인 조계응이 알렉산드리아 항로를 개척하는 데 투자한다.이후 동유럽 지역에서 용병대로 활동
- 천정욱 - 천칠개의 아들. 호상을 따라 마자파히트로 가는 남양항로 개척에 따라 나섰다가, 나중에 상남에 들러서 소만식의 손녀와 눈이 맞아 결혼하고 아주 자리 잡는다. 5권에서는 '안동여숙'을 물려 받아 나상의 귀환항로에 따라온 베네치아 상인 빈첸초 모나텔리와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5.5.3. 계영양행(함상) 계열
- 함상 - 함주 기반의 상단. 세훈의 아들 김현진의 계영양행이 장악한듯. 지금의 연해주 일대와의 모피무역으로 독특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신대륙을 발견한 혜성군 주현 역시 계영양행의 사람이었다. 한때는 신대륙의 대 제국 무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었으나 요즘들어 포토시 광산이라는 대박을 터뜨린 내상에게 조금씩 밀리는 듯. 신대륙의 창주부, 대곡진을 비롯한 많은 개척지가 함상이 세운 곳들이다. 하지만 10권 들어 모피산업이 사양세에 접어들면서 점점 실적이 부진해지는 중. 거기다 12권 마지막에 영주의 독립으로 내상과 더불어 몰락하고 있다고 나온다.
5.5.3.1. 인물
- 김현진 - 세훈의 둘째 아들. 젊은 시절 군문에 머물다가, 훗날 나와서 함주부(함흥)을 중심으로 계영양행이라는 상업조직을 만들고 모피무역에 뛰어든다.
- 김주현 - 김현진의 손자. 혜성군이라는 군작을 받았으나 유랑과 모험을 좋아하여 젊었을때 제국 곳곳을 방랑하다가 큰아버지가 물려받은 계영양행에서 자금과 배를 빌려 북방 항로를 탐색하였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영주(밴쿠버 일대)를 척지하여 제국의 국경을 신대륙까지 넓히고 조정으로부터 사실상 그곳의 통치를 위임받아 신대륙에서 제국 국민들을 다스려 왔다. 말년에는 그가 세운 영주진이 창주부로 승격되고[27] , 그는 창주공작의 작위를 받는다.
- 윤희상 - 신대륙을 발견한 혜성군 주현의 부관. 혜성군이 세운 영주진의 남쪽에 대곡보(시애틀 일대)를 세운다. 또한 탐험욕이 강해 신대륙 곳곳을 탐험하여 아즈텍 제국을 발견하고 외교관계를 맺는다. 이 외교관계덕분에 아즈텍 제국은 후에 닥쳐올 카스티야의 침략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28] 말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곡보는 대곡진으로 승격되고, 대곡백작의 작위를 받는다.
5.5.4. 내상 계열
- 내상 - 동래 기반의 상단. 함상에 뒤이어 신대륙 무역에 뛰어들었으나, 세력도 약하고 무역할것도 드물어 딱히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하다가 타완틴수유로부터 받은 신천은광(포토시 은광)이라는 대박을 터뜨림으로써 단숨에 함상과 동등한 위치까지 뛰어올랐다. 덕분에 함상은 상당히 열이 받은 상태[29] . 1600년대 중반에는 타완틴수유와 멕시카 왕국과의 무역로를 독점하여 제국 제2의 상단이 된다. 하와이 왕국의 통일을 도와주고 하와이 제도의 독점적 기항권을 가져서 타국이나 타 상단의 배를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12권 마지막에 영주의 독립으로 계영양행과 더불어 몰락하고 있다고 나온다.
5.5.4.1. 인물
- 방동일 - 내상의 행수로 신대륙을 개척하여 정동보를 세운다. 후에 얼떨결에 타완틴수유로부터 포토시 은광을 받고, 신천은광으로 개명하여 은을 캐서 그동안 부진하던 내상의 실적을 만회한 대박을 터뜨린다. 영주도독부가 세워지며 그가 세운 정동보는 대정진으로 승격되고, 대정자작의 작위를 받는다.
- 안용복 - 상인으로 호주에 표류해서 일본측에 억류당하지만 간신히 빠져나오는데, 이후 하와이에 정착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잠시 내지에 돌아와서 자신의 경험담을 책으로 낸다. 이것이 한국인이 하와이에 대거 이주하는 계기가 된다.
5.5.5. 남성물산(13권 이후 성광사)
- 남성물산 - 요동국왕 김헌의 3남 정경대군 김유가 만든 회사. 순나라-요동-유구간의 삼각무역을 통해 요동의 간섭과 순나라 자체의 가렴주구로 어려운 순나라 국민을 조금이나마 돕고자 만든 회사이나, 김유의 신분으로 인한 제약과 평양에서의 공화주의자 탄압에 연루되어 어려움을 겪는다. 그럭저럭 유지될 정도로 버티다가 영주의 독립 이후 내지와 영주(동영 연방공화국)의 무역이 끊겨 내상과 계영양행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틈을 타 요동에 적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그 빈틈을 공략했고, 한국의 말레이 반도 강점때 현지 토착자본을 키우려고 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만 이후 순나라에서의 사업을 정리하는 등 자본의 논리에 맞추어 행동하기 시작한다. 사업에 있어서 김시유대에 철도부설사업, 사진기 사업으로 큰 성장을 이루어 냈다. 이후 김헌 대에 이르러 김헌의 엘리트주의에 의해 다른 요동 자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전락한다.
5.5.5.1. 인물
- 최양일 - 김유의 심복. 김유가 순나라 주둔군에 있던 시절 그의 부관 역할을 하면서 여러가지 교육을 받고 남성물산의 실무 책임자가 되었는데, 평양에서의 공화주의자 탄압에 연루되어 고생하기도 했다. 김유의 사망 직후 김시유의 스승으로 박지원을 추천한다. 유청령과 김시유 2대의 사업의 실무자 및 고문 역할을 성심성의껏 다 해주었다.
- 유청령 - 순나라 여인으로 김유의 정부[30] . 부패한 요동군 병사들에 의해 죽기 직전에 김유에게 구출되었다. 김유가 군문을 떠난 이후에도 따르지만 국적이나 신분의 문제로 김헌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김유와 결혼을 하지는 못했지만, 김유의 외아들 시유를 낳았다. 김유의 사망 직전 남성물산에 대한 모든 권리를 받는데, 최양일이 내지에서 조만간 말레이 반도에 출병할 것인데 어떠할지 묻자 남을 침략하는데 이익을 얻기 싫다며 동영 연방 공화국과의 무역 루트를 뚫기로 한다. 이후에도 말레이반도에 토착 자본을 키울 수 있게 노력하기도 했다.
5.6. 중국
5.6.1. 명나라
10권에서 대륙을 뒤덮은 내란의 파도에 몰락하고 장사 일대의 조그만 영역으로 밀려나다 11권에서 순나라가 요동의 공격을 받고 힘이 약해지는 바람에 중국 내 여러 세력의 균형이 재편되자 분할되어 멸망한다. 참고로 18세기 말에 들어 중국의 각 세력, 특히 양나라와 월나라는 중국의 일부가 아닌 독자적인 국민국가임을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서 부르짖고 있어서 중국이 통일되는 건 당분간 힘들게 될 듯 싶다.
5.6.2. 양나라
명나라의 멸망 이후 분열된 중국의 여러 국가 가운데서 국력의 신장 속도가 가장 빠르다. 대충 강서성, 안휘성, 절강성, 복건성 일대의 강남지역을 차지한 듯. 버프를 받아 성장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 베이스다. 한국, 요동, 일본에 이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륙의 희망. 18세기 말 한국의 말레이 반도 강점을 시작으로 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극동 열강들의 병탄에 참여해 캄보디아를 보호국으로 만든다.
5.6.3. 순나라
흔히 생각하는 화북 일대. 국초 기세는 좋았지만 인구와 경제력이 몰린 강남지역을 끝내 장악하지 못한데다 지방 군벌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해서 체제가 취약해졌는데 그때문에 외부로 눈을 돌려 위구르를 정복했지만 이후 요동의 침략으로 인해 군사력이 약화되어 위구르가 독립했고 남명의 분할까지 초래되었다. 이후 국내에 주둔한 요동군과 경제 침투를 시작한 요동 상인으로 인해 방곡령이 나올 정도로 피폐해져 가고 있다. 이를 남성물산 뒤의 성광사가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만, 천진상공대학을 설립하는 것 이외에는 성과없이 요동에게 먹혀가고 있다. 발전하는 양나라와 월나라에 대한 적대의식때문에 범중화주의에 빠져서 자신들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 주나라를 먹으려 하지만 요동과 양나라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5.6.4. 주나라
사천지역. 식민지 제국주의의 시대를 맞아 고립된 곳에 있는 관계로 순나라와 함께 쇠락하고 있는데 순나라와 마찬가지로 발전하는 양나라와 월나라에 대한 적대의식때문에 범중화주의에 빠져가고 있다.
5.6.5. 월나라
광동성 및 광서성, 운남성 일대. 수도 수성(광저우)가 위치한 광동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양나라와 더불어 국력을 신장시키는 중이다. 18세기 말 한국의 말레이 반도 강점을 시작으로 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극동 열강들의 병탄에 참여해 베트남을 침탈하려고 하지만 양나라의 개입으로 실패한다. 정치적으로 양나라보다 덜 근대적인 탓에 1828년 혁명에 말려들어 1839년에야 헌법과 의회를 만든다.
5.7. 일본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시대를 끝내고 아즈치 막부를 세운 이후, 국외로 눈을 돌리는데, 처음에는 진서를 치지만 실패한다. 이후 호주를 발견하여 경영하면서 일본-오가사와라 제도-필리핀-호주를 잇는 태평양 남북횡단항로를 얻게 된다. 18세기 말 한국의 말레이 반도 강점을 시작으로 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극동 열강들의 병탄에 참여해 필리핀의 여송국을 보호국으로 만들고 한국과 접전끝에 뉴기니 동부 및 솔로몬 제도를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독도 영유권 문제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에는 일본이 물러나서 당분간은 조용하게 된다. 사실 정치 체제가 여전히 전근대적이라 1828년 혁명에 말려 토막파가 생기고 경제적으로 동일본 지역을 관할하는 칸토칸레이(관동관령)의 도쿠가와 가와 그 소재지인 에도의 힘이 커서 현실 역사 이상으로 관서와 관동의 알력이 심한 편이다.
- 오우치 모리미 - 오우치 일족의 다이묘. 줄 잘 타서 조선군에 붙었다가, 나중에는 아주 작위를 받고 귀족이 된다. 딸 오우치 에히메가 현도와 혼인관계.
- 시부카와 미츠요리
- 쇼니 미츠사다
- 코쿠네 카츠시게
- 오토모 치카아키
- 시마즈 히사토모
- 아시카가 요시모치 - 쇼군
- 하시바 히데요시 - 실제 역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가 죽지 않았기에 그 수하장수로 등장한다. 그러나 진서침공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지만 현실역사와 마찬가지로 그의 죽음으로 진서 정복은 실패한다.
- 오다 노부나가 - 혼노지에서 죽기는 커녕 살아남아 아즈치 막부를 세우는 포스를 보여준다. 한국을 뒤쫓아 상공업 중시정책과 신식 교육의 실시를 펼친다. 해금령을 시행하기 보다는 오히려 국제교역무대에서 일본의 자리를 한 자리 확보하려는 듯. 그 결실로 이후 네덜란드와 함께 호주를 개척할 수 있게 된다.
- 오다 카즈시게
- 도쿠가와 이에야스
- 도쿠가와 이에나리
5.8. 동로마 제국
오스만에 탈탈 털리고 멸망했다가 16세기에 간신히 복권되었다. 현실의 아메리카 대륙 한귀퉁이에 식민지를 위임받은 것 외에는 조용히 지내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틈을 타 오스만 제국을 공격해서 옛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 한학정 - 티무르 제국과 인질 맞교환에서 불행하게 서쪽으로 가게 되었다가 나중에는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까지 끌려가게 된 불행한 조선인. 그러나 이곳에서 뿌리를 잘 내려 나름 학문적 업적도 남긴다. 그리스명, 요안네스 안노스.
-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32] - 한경조를 거두어준 동로마제국의 학자.
- 한경조 - 한학정의 막내 아들. 어머니는 그리스인. 동로마제국까지 오게된 신숙주 사절단의 귀항로에 함께 올라 조선으로 가게 된다. 심양에 아주 정착해 심왕가에서 봉직하며 그리스, 로마 철학서 따위를 조선어로 옮기며 산다. 이후 후손들이 심왕부 최고의 명문가로 번창하게 된다.
- 알렉시오스 수사 - 조선명 안력서. 한경조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와, 그리스 정교 심양대교구 주교가 된다.
- 이사키오스 안노스(한경호) - 동로마에 남아 부친 한학정을 모시고 산 유일한 아들. 셋째 아들이다.
- 알렉시오스 안노스 - 한경조의 증손자, 이사키오스 안노스의 손자, 테베리오스 안노스의 아들. 오스만 술탄에게 쫓겨 동로마 제국의 황제를 칭하지 못하고 모레아스(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전제군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안드레아스 팔라이올로고스 황제의 군대 지휘관이다. 아라곤-베네치아-제네바-동로마 연합군 대 오스만 제국의 전쟁에서 수완을 발휘해 에피루스(알바니아 남쪽)지역을 되찾고, 덕분에 동로마제국은 다시 부활하였다. 공을 인정받아 에피로스 지방의 총독이 된다.
- 이레네 안노스 - 알렉시오스 안노스의 어린 여동생. 미모가 뛰어나 그 소문이 자자했다. 동로마제국이 복권된 뒤 황태자에게 시집을 간다. 미래의 동로마 황후.
5.9. 카스티야
- 에르난 코르테스 - 원 역사에서는 아즈텍을 정복했으나 작중에서는 조선인들의 개입 때문에 실패한다. 그러나 동쪽 해안 상당수를 점령하고 누에바 카스티야라는 식민지를 세워 그곳의 총독으로 인정받는다.
- 피사로 - 원래대로라면 잉카(타완틴수유)를 정복했겠으나, 아라곤의 방해와 대한제국의 개입으로 정복은 커녕 알거지가 되어 누에바 카스티야로 쫓겨난다. 그가 터를 닦은 리마 시는 아라곤과 대한제국 상인들의 자유무역시로 변한다. 어찌보면 불쌍한 인물. 물론 살제 역사에서 한 짓을 보면 더 당해도 싸다.
5.10. 아라곤
- 페르난도 왕 - 카스티야 이사벨 여왕과 결혼하여 카스티야-아라곤 혼인동맹을 통해 스페인을 탄생시키지만, 이후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다시 동맹의 결별을 주도하여 아라곤의 왕으로만 남는다. 그의 아들인 엔릭(카탈루냐어 이름) 왕이 아라곤의 왕위를 이어 받는다. 이로써 스페인의 통일은 물건너 갔다. 아라곤은 이후 카스티야와는 별도로 독자적으로 대한제국과 연대해 신대륙 개척에 나선다.
- 프란세스 데 피뇰[33] - 아라곤령 콜롬비아 총독. 피사로의 잉카 정복전을 사사건건 막아세우다 못해 나중에는 조선군까지 끌어들여 막는다. 사실상 대한제국을 타완틴수유(잉카)로 진출시키는 데 공헌한 일등공신.
5.11. 류큐
12권 들어와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식량 증대의 필요성이 있게 되어 대만에 진출하여 대만 북부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후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에도 월나라와 함께 중견국가의 자리를 유지한다.
- 쇼신 왕 - 류큐의 장래를 고민하다 대한제국에 붙기로 결정. 중앙집권화를 고민하다 그리스 정교 수사를 끌어들임. 나중에는 내상과 결탁해서 류큐인 선원과 배, 그리고 자금을 지원해 신대륙까지 보내 6권에 류큐인 거주지인 히가시우미누구스쿠(東海城)가 정동보 외곽에 세워졌다고 나온다.[34] 또한 11권에 나온 신대륙 지도를 보면 칠레 일부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으로 나온다.
- 사이 온 - 유구령 대만의 총독.
5.12. 후금국
- 누르하치 - 요동내전에서 패배하고 그동안 살아오던 북해도독부를 떠나 영주도독부 동쪽의 대평원에 여진족의 나라인 후금국을 건국하고 초대 대칸이 된다.
- 홍타이지 - 누르하치 사후 후금국의 대칸이 된다.
- 도르곤 - 대곡백작의 2남인 윤양일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한다. 이로쿼이 연맹과 동맹을 맺어 총과 화약을 공급해주기로 약조한다.
5.13. 아이누 모시르
- 삼쿠사이누 - 아이누족을 규합해 수석총으로 무장하여 마츠마에 번을 강 유역에서 격퇴한 아이누의 영웅.
- 오니비시 - 삼쿠사이누의 손자. 아이누의 최초 군주로 등극.
5.14. 연합왕국
정확히는 잉글랜드-프랑스 연합왕국. 16세기에 왕위계승전쟁을 통해 통합된 뒤, 프랑스의 북부-중부는 프랑스왕국으로써 연합왕국의 일부가 되고 남부는 아라곤 왕국령에 편입된다. 12권의 말미에서 프랑스 혁명의 촉발과 함께 프랑스 왕국은 독립 프랑스 공화국으로, 아라곤령 남부는 옥시타니아 공화국으로 각각 독립을 선포하고 이후 통합을 약속한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북이탈리아와 아라곤을 병탄한 제국이 되지만, 폴란드와 러시아에게 패하여 나폴레옹은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위한다. 옥시타니아의 일부를 아라곤에게 내주었으나 마르세유와 프로방스, 코르시카는 유지하며 벨기에 왈로니아 지역을 얻기는 했다. 불어권 지역 전역을 점령하려는 움직임때문에 정세가 불안정하다. 잉글랜드 역시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잃어 유럽 대륙의 균형자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단 프랑스 혁명 전쟁이 끝나고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자 인도 북서부에 대한 진출을 꾀하고 있다. 비록 프랑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뉴잉글랜드를 잃었지만 1840년 당시 철도 연장을 볼 때 한국과 같이 썩어도 준치라는 것을 보이고 있다.
- 리처드 6세 - 프랑스 혁명 당시의 잉글랜드 및 프랑스 국왕.
5.15. 스웨덴 왕국 및 오스트리아 대공국
이 외에도, 여진족, 월남, 페르시아, 베네치아, 제노바, 아즈텍, 잉카 출신의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생략.
6. 대한제국의 영토
11권 말을 기준으로 대한제국의 영토는 세계 곳곳에 걸쳐 있다. 외방의 도독부뿐만 아니라 상남, 숙주와 같은 특별한 영토들도 있는 상태. 그러나 사실상 느슨한 연방체제에 가깝게 변모하고 있다. 성장하는 해외 영토를 제국정부가 통제하는 것이 갈수록 곤란해지는 듯 보인다. 작중에서 그런 묘사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여 결국 요동이 정식으로 왕국으로 승격되었고 진서나 영주를 비롯한 다른 영토 역시 독립성이 강화되는 조짐을 보여 조정에서 이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을 고심하고 있으나, 시간이 갈수록 요동 및 각 도독부의 독자성이 커지고 있다. 결국 10권에서 요동이 사실상 독립했고, 12권에서 영주가 동영 연방 공화국의 이름을 달고 독립했다. 13권에서 내지는 그나마 남은 도독부인 북해와 진서에 대해서 장기적으로 직접 통치를 생각하고 있으며 내지와 요동 둘 다 식민지 제국주의 정책을 꾀하여 중국 내륙, 인도, 동남아로 진출하여 식민지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북해와 진서에 대한 직접 통치를 꽤하면서 이들에게 주어야 할 당근을 주지 못하고 무리한 동화정책을 꽤하는 바람에 독립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6.1. 내지 8도(14권에서 13도)
옛 조선의 영토를 은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국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땅이다. 내지 8도 사람들과 타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진 않지만 얇은 벽이 존재한다. 10권에서 입헌체제를 수립하는 한편 요동의 제도를 도입하여 근대국가 체제가 확립되고 있다. 외지의 독자성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해군력에 있어서는 내지가 세계 최강 수준이긴 하다.[37] 대신 국가 예산의 상당수가 해군으로 가고 군대 또한 육군을 줄여서 해군을 유지할 정도라고 한다. 결국 12권 들어 영주가 독립하는 등 이전보다 국력이 쇠했다는 걸 인정할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전세계에서 4대 강국 안에 들어가며,[38] 기술적으로 요동이 앞서지만 인구에서는 오히려 내지가 이 작품 내내 요동에 비해 압도적이고 산업규모면에서는 12~14권에서도 세계 최강이다.[39] 비록 영주를 잃었지만 어차피 독자성이 커져 더 가지고 있어봤자 비용만 많이 든다고 판단하고 원료공급지와 상품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식민지화를 꾀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참정권 확대와 공화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식민지 제국주의가 말레이반도 강점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극동 열강의 동남아시아 식민화의 문을 열게 되고, 내지는 말레이반도, 티모르 제도와 뉴기니 서부를 강점하고 태국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인도로 진출하여 실론을 병탄하고 뱅골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중산층이 늘면서 결국 참정권 확대가 이루어지게 되지만 소외된 계층이 늘었다.
6.2. 탐라국(14권에서 제주자치국)
김세훈이 반정을 일으킬 당시에 최고 공신가문이라 할 수 있는 제주 고씨가 사실상[40] 국주로써 세습지배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요동이나 유구와 같이 독립된 나라는 아니나 자치권은 있는 듯. 군주도 국왕이 아니라 국주라 불린다.
6.3. 진서 도독부(14권에서 진서자치국)
수부(지금의 도청 소재지 격)는 기주부(나가사키). 대마도와 이키 섬, 큐슈 전체와 혼슈 남서부의 야마구치, 시모노세키 일대를 통제한다. 경인동정[41] 당시 협력한 다이묘들의 영지와 작위를 보존시켜줘 조선에 충성하는 칸조쿠 다이묘[42] 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 기상과 박상의 본거지이다.
8권(16세기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백제공 대내씨가 혼슈에 걸쳐있던 영지를 일본 다이묘 모리씨에게 잃고, 큐슈본토로 그 관할이 축소된다.
또한 중세 한국어와 중세 일본어의 크레올 언어인 진서어가 등장한다.[43]
9권에서 실제역사에서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이 진서를 침공하여 대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본토에서 투입된 병력의 선전으로 겨우 일본군을 몰아낼 수 있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는 진서도독부의 직할령과 기해동정 이전의 구 다이묘 출신들이 지배하는 영지로 분할되어 있고, 종교는 가톨릭이 급성장세인듯 보인다. 언어는 전반적으로 일본어도 한국어도 아닌 진서어로 굳혀져가는 듯 보인다. 9권에서 진서대학을 설립하여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강조하기 시작하고 있다. 13권 들어 내지에서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를 맞아 진서를 직할령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진서민족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9권 이후로는 거의 공기였다가 14권에서 내지가 선포한 연방법에 의한 동화정책에 그렇지 않아도 차별과 경제 악화, 문화 차이로 불만을 팽배해진데다 진서 민족주의가 퍼진 상황에서 3년간의 독립전쟁이 벌어져 결국 기주와 도서지역은 경상도에 귀속하고 국가원수를 한국 황제로 하되 나머지는 진서에서 정부, 상하원을 알아서 구성하는 진서자치국이 성립하지만 이를 한국에 의한 기만으로 본 완전독립파와의 내전이 14년간 이어지다 김효의 글과 이를 중재하려는 세력의 힘, 그리고 북해의 독립 움직임으로 인해 진서에 신경쓸 겨를이 없게 된 한국이 기주를 진서로 반환하고 완전독립에 대한 협의를 하겠다고 함에 따라 내전이 종결되지만 동족상잔으로 인한 상흔이 깊게 패였다. [44]
6.3.1. 행정구역
- 수부- 기주부
- 경제 중심지- 박주부[45]
- 도독부 직할령
- 살주백령
- 백제공령
- 축주후령
6.4. 북해 도독부
수부는 영안부(블라디보스토크).[46] 연해주 일대[47] 와 고혈도(사할린), 모실도[48] (홋카이도)와 같은 북방의 여러 섬들에 걸쳐져 있는 제국의 보와 진들을 관리하고 있다.[49] 초기에는 신대륙까지 관리하며 영진도독부라고 불렸으나, 7권 말에서 신대륙을 담당하는 도독부가 새로 생겨나며 북해도독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풍부한 모피를 이용한 무역이 도독부의 주요 수입. 영진 도독부에서 군역을 살다 제대한 장병들이 군대에서 총을 불하받아 모피 사냥꾼으로 전직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북해 도독부의 모피를 찾으러 떠난 엽사(포수)들과 영길도(함경도) 함주부(함흥)와 북해도독부를 기반으로 둔 소위 함상들의 공.
9권에서 요동의 북륙(동시베리아)진출 및 영주에서 건너오는 모피의 증가로 사실상 기간산업이 괴멸되어 가는 상황으로 보인다. 인구도 가장 적고 땅도 척박해 산업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다. 제국 전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데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 여진족이 영주 동쪽의 만주로 이민을 가 부족해진 인구를 네덜란드 상인 주선하에 독일등지에서 이민을 받아 채우려고 하는데, 이게 근대적인 이민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11권에서 유럽 이민 세력과 유럽에 유학갔다 유럽의 분위기와 비슷한 북해에 정착한 한국인 유학파들의 힘으로 영안대학을 세우게 되며, 베링의 항해를 통해 모실도에서 아이누, 일본과의 국경을 획정하게 된다. 13권 들어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를 맞아 북해에 대해 내지에서 직할령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기존의 도독부는 느슨한 통치를 했으나 연방법에 의해 들어선 북해도 정부는 탄압은 강화하면서 참정권등의 권리는 유보하는 바람에 불만이 쌓이면서 독립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있다. 19세기 당시 인구의 과반수는 북유럽 출신의 백인이나 내지 출신과의 혼혈이고 한국계인 사람들조차 이들이 쓰는 네덜란드어의 크레올인 북해어에 능통한데다 한국어 역시 북해 특유의 방언을 써서 진서와 마찬가지로 내지와 문화가 다른데다 그래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는데다 발전이 늦어 연방법을 실시한다고 했을 때 내지와 같은 권리를 얻을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불만이 쌓인 것인데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인종인 사람들이 연대하는 것에 김효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에대해 한국인의 반응은 매우 냉담하다. 중국을 통채로 주더라도 북해와는 바꿀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6.5. 심요 도독부(10권 이후의 요동국)
수부는 성경심양부(심양). 요동반도와 북륙을 관리한다. 심왕 진영의 치세에 몽골의 공격을 방어하고 오히려 역습, 동몽의 상당 영토를 획득하였다.[50] 여진, 한족, 조선인들부터 그리스 유민들까지 각종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나 큰 갈등은 없다. 자유롭고 유연한 분위기 때문에 황성의 4대 학당에 버금가는 어립심양문리과대학이 심양에 위치해 있고, 제국 최초의 그리스정교 성당인 성사도심양대주교구가 심양에 위치한다. 심요대도독은 심왕가가 겸작하여 제국 내의 번국이지만 정치체제뿐만이 아니라 화폐까지 달리 찍어낼 정도로 자치성이 강하다. 요동군은 원래 제국 정부가 관리했지만 자금 부족과 관리 미비로 현재는 심왕가에 넘어간 상태. 숫자는 13만밖에 되지 않지만 혹독한 훈련과 질좋은 무기체계로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이다.[51]
사실상 7권 현재 (16세기 중반)에는 심요 도독부라기 보다는 심왕이 다스리는 하나의 왕국.
갈수록 독립기조가 강경해져서, 독립문제와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내전을 한차례 겪고 이후 내지를 침공하는 등의 또 한차례 진통을 겪은 끝에 요동국이라는 정식 왕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정식 왕국이 되면서 근대국가 체제로 가는 길을 얻었으며 내지와 달리 입헌 혁명을 겪지 않으면서 온건하게 입헌 체제를 확립하는데 성공했다. 그 때문에 황제가 유명무실해진 내지에 비해 국왕의 권한이 상당한 편이다. 11권에서 의무교육 도입과 해군력 강화, 참정권 확대 및 중상주의 정책을 펴는 한편, 기존의 성리학이 완전히 유명무실해지고 과학 등을 위주로 하는 격물학이 주류가 되는 등 근대국가화가 거의 이루어졌다. 다만 의무교육은 완전히 확립되는 것이 1세기가 걸렸다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와서야 실현되는 듯 하다. 내지와의 관계는 양국의 입헌체제 확립 이후 파이프가 거의 사라져 이를 우려한 양국 정부는 고등판무관을 각각 황성부와 성경부에 두기로 하는데, 현실의 외교 및 첩보와 비슷하게 흐르고 있다.[52] 그리고 13권에서 러시아와의 접전끝에 앙가라강-예니세이 강 하류-북극해로 이어지는 동경 95도 일대를 국경으로 획정하는 한편 동남아시아 식민지화에도 참여하여 보르네오 섬을 점령한다.
문화적으로는 한국어를 상용하나, 내지의 국어와는 다르게 서북방언의 영향을 짙게 받은 요동방언(료동어)를 사용한다. 독자적인 정서법과 어휘들을 정립하였으며, 당연히 두음법칙도 내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대충 문화어의 더욱 고전적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한국의 민족주의와는 다른 요동만의 민족주의가 등장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이제는 더이상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과 친척지간인 다른 문화권에 속한다고 여기는 듯 보인다. 성경 심양부 서문거리를 중심으로 연극공연문화가 발달하였으며, 찻집(카페)도 성행하고 있다. 이른 산업화와 함께 거대자본들이 등장하였으며, 이들은 순나라 경제를 마비시키고 제국주의적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 근대국가로 향하면서 국왕 전제를 일부 철폐하긴 했으나 여전히 왕권이 강한 편이고(내지에 비해서), 중앙집권적인 수직체계로 징병제의 유지, 의무교육의 시행등을 행하고 있다. 물론 긍정적인 결과도 많지만, 부정적인 결과로 제국주의적 성향의 강화, 국수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정서의 발현, 그리고 이웃 국가에 대한 침탈등이 소설 속에서 비판적인 어조로 드러나고 있다.
6.5.1. 행정구역 (7로 1계)
- 도읍- 성경부 (구 심양부)
- 경조로 (성경부)
- 남양로 (여순부)
- 동림로 (건주부)
- 안서로 (금주부)
- 강북로 (철주부)
- 경남로 (요양부)
- 동녕로 (동녕부)
- 북계
6.6. 영주 도독부(12권부터 동영 연방공화국)
수부는 창주부(밴쿠버). 신대륙을 관할하는 도독부이다. 심왕가의 자손인 혜성군 주현이 탐험끝에 창주(영주진으로 개척되었다가, 고을의 등급이 오르면서 창주부로 이름을 고쳤다.)를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하였다. 모피무역과 아즈텍, 잉카와의 무역을 위해 사람들이 갈수록 모여들어 처음에는 영진도독부에 묶여있었으나 7권 말에 영주도독부로 떼어냈다. 개척 50여년만에 1부 1군 5진 16보를 두고 인구를 5만 가까이 거느린 도독부가 되었다. 1548년(건양 25년) 현재 수부인 창주부에는 1만 2천, 그 다음가는 도시인 대곡군(시애틀)에는 5천, No.3급인 대정진(샌프란시스코)에 2천이 거주한다. 군대는 영주파견대가 주둔하여 치안과 방위를 담당한다. 11권에 나온 지도에 따르면 영주의 영역은 알래스카 반도를 시작으로 현실의 멕시코의 켈리포니아 반도까지이며 이는 태평양과 로키산맥 사이에 있다. 10권에서 누르하치의 여진이 대평원 지대에서 만주를 세워 최초로 외부세력을 맞닥뜨리게 되자 원교근공책[53] 으로 동부해안의 네덜란드 세력과 동맹을 맺게 되었다. 11권에서 그때까지 내지에서 원료 공급지와 상품 시장으로만 보았지만 많은 이민이 와서 인구가 늘고 입헌 혁명을 비롯하여 국내에 시끄러운 일이 있을 때 영주를 신경쓸 겨를이 없게 되는 바람에 영주의 독자성은 점점 커지게 되어, 특정 산업의 도입을 제한하지만 별 실효가 없는데다 새로운 산업을 틈새로 발전시켜 경제적인 독자성이 커지고, 계몽주의나 자유주의 서적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독립을 향한 첫발을 내딛게 된다. 결국 12권에서 내지가 동남아 지역의 원정을 꿈꾸며 그에 대한 비용을 영주에서 걷는 세금을 늘려서 얻으려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독립전쟁을 벌이고 결국 동영 연방공화국의 국호로 독립을 하는데, 이들이 실현한 공화주의는 내지는 물론 유럽에도 영향을 주어 연합왕국 치하에 있는 프랑스가 공화국으로써 연합왕국을 나오고 아라곤 치하의 남프랑스도 옥시타니아로 떨어져 나와 서로 연방을 맺어 유럽 정세가 어지럽게 돌아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현실의 미국처럼 행동하는데 신대륙에 있는 각 식민지들의 독립을 도와서 독립한 나라들과 기존의 토속 국가들의 모임인 대륙회의[54] 를 만들고 현실의 먼로 선언 비슷한 신대륙의 일에 구대륙이 간섭하지 말라는 선언도 한다. 일단 명색이 공화국이다 보니 검열제도없이 사상의 자유가 있지만 황인종과 백인 이외의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로 인한 시민권 제한과 노동 착취가 있다.
6.6.1. 행정구역 (7도)[55]
- 연양도 - 가장 북쪽. 알래스카 해안 지역쯤에 해당.
- 창해도 - 중심지인 창주부를 포괄하는 지역. 가장 오래된 식민지로 밴쿠버 일대의 캐나다 서해안 브리티시 콜롬비아 지역.
- 곡양도 - 창해도의 바로 남쪽. 워싱턴 주 일대로 시애틀이 여기 해당
- 서해도 - 오리건 주 지역으로 추정
- 정안도 - 샌프란시스코 일대로 추정된다. 11권에서 이 지역에서 금광이 터졌다고 나온다.
- 남양도 - 가장 남쪽. (대충 로스 엔젤레스, 샌디에이고 지역쯤)
- 동강도 - 동쪽의 개척지역. (네바다 혹 유타 주? 일단 로키산맥이 여기에 해당하는 건 확실한 듯.)
6.7. 상남서
원 역사의 싱가폴에 위치하는 제국의 무역항. 도독부는 아니지만 상당한 사람들이 거주한다. 따로 행정 부처가 있지 않고, 외부(外部) 아래의 상남서(署)라 불리는 관청에서 관할하고 있다. 인도양 무역의 요충지로 나상, 호상, 경상, 송상들을 비롯한 제국 대상단들의 상회가 위치하며, 신사라는 계급의 유지들이 상남을 다스리다시피 한다. 대부분이 제국인들이기에 제국의 명령은 꽤 잘 따르는 편.[56] 군대는 상남파견대와 해군 상남분견대가 주둔하여 치안 유지 및 주변 해역을 통제한다. 12권 들어와 제국이 인도 및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면서 이를 위한 거점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13권에서 출정이후 말레이 총독부가 믈라카에 설치된 뒤로 상남은 이 지역을 배후지로 삼아서 급성장하고 있는 듯 보인다.
6.8. 숙주
원 이름은 소코트라. 소말리아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떠있는 섬이다. 나상의 행수 조계응이 이곳을 점령하고 상단령으로 삼는다. 이곳을 통해 아프리카 항로는 물론, 홍해를 통해 알렉산드리아로도 상행을 보낸다. 주민들 대부분이 그리스 정교를 믿기에 심양대주교구가 이 섬으로 수사들을 보낸다. 9권에서 나상의 몰락 이후 숙주 자체의 상단이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1600년대 중반에 제국 최고상단이 된 송상에서 그 상단을 인수해 버린다. 이로써 인도양을 지배하던 나상의 역사는 완전히 종언을 고한다. 그리고 12권에서 네덜란드-스웨덴-오스트리아와의 동맹으로 연합왕국에 대항하려는 제국이 마리아 테레지아와의 국혼을 추진하면서 유지비용만 들고 전략적 가치가 거의 사라진 이곳을 스웨덴에 할양하게 된다.
7. 지명대조 (괄호 안이 실제 역사의 지명)
- 고혈도 (사할린) - 북해도독부
- 고슈 (오스트레일리아) - 일본령 호주
- 기주부 (나가사키) - 진서도독부
- 대창해 (태평양)
- 동령대간 (로키산맥)
- 만주 (미국 중서부 프레리)
- 멕시카 왕국 (아즈텍)
- 모실도 (홋카이도) - 북해도독부
- 박주부 (후쿠오카) - 진서도독부
- 북륙 (동부 시베리아) - 요동국
- 북해 (연해주)
- 삭방 (극동 시베리아) - 북해도독부
- 삭방해 (오호츠크해)
- 상남 (싱가포르)
- 성경부 (선양) - 요동국
- 안력제도 (알류샨 열도)
- 영안부 (블라디보스토크) - 북해도독부
- 유나바루[57] (타이베이) - 유구왕국령
- 임석 (캄차카 반도) - 북해도독부
- 정안도 (캘리포니아) - 영주도독부
- 진서 (큐슈)
- 창주부 (밴쿠버) - 영주도독부
- 천도제도 (쿠릴 열도) - 북해도독부
- 카지아가리누쿠니[58] (칠레) - 유구왕국령(14권에서 자치국화)
- 타완틴수유 (잉카)
- 하라오제도 (팔라우) - 일본령
8. 관련 문서
[1] 연대기 9권 계보도 참조[2] 12권 참조. 대략 북에서 남으로 순서[3] 물론 이론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아래에도 상술되겠으나 작품의 전반적인 질에 어울리지 않는 실수들이 좀 있다. 그러나 현재 장르시장의 상태, 특히 대체역사물의 현황이 좋지 않음을 고려하고 거의 두 달 꼴에 한권씩 나온 것을 감안한다면 불평할 거리는 못된다.[4] 후속작은 대한제국 연대기의 저자 김경록과 이혁의 공저다[5] 역사에서 조선말기 방곡령과 같다. 즉 현실에서 일본상인들이 하던일을 소설에서는 요동상인들이 하고 있다...[6] 매우, 다행히, 여전히, 이미, 특히, 당시, 사실상 등.[7] 문법나치나 얼치기 속독가는 읽지 않는것이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작가의 치밀하고 정성스러운 고증과 언어학적 조예에 비추어보면 그야말로 아쉬운 부분.[8] 중동지역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대목에서는 페르시아 시나 우화의 번역을 읽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고, 진서와 일본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은 일본 대하소설같은 느낌을 준다.[9] 한국 대체역사소설.[10] 하지만 밀리터리 고증문제는 단지 조선군이 죽어나가는 모습이 불편하다고 예단할 문제가 아니다. 작가가 만든 조선군은 17~18세기 유럽군과 비슷한 수준인데, 당시 서구세력과 비서구세력의 전투력에는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나, 마드레 데 데우스호 사건, 정성공의 젤란디아 요새 공성전, 포르투갈 용병 등의 활약을 보면 고작 수백명의 유럽군을 수천, 수만명으로 쉽게 이기기 힘들었던 것이 당시 유럽군의 모습이다. 동수라면? 유럽군 사상자 수백명 이하에 비유럽군은 몇만명씩 피해를 입던 것이 당시 전쟁이다. 여기서 오스만 제국을 들고 나오면 곤란한데, 오늘날에야 터키가 지리적으로 아시아 국가라 오스만도 아시아로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오스만도 엄연히 유럽의 일부로 여겼기 때문. 당장 러시아 황제가 오스만을 '아시아의 환자'라 불렀는지 '유럽의 환자'라 불렀는지만 생각해도 각이 나오는 문제다. 또한 '오스만 = 터키' 가 아니라는 건 '로마 제국 = 이탈리아', '비잔틴 제국 = 그리스' 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 어쨌건 작가의 밀리터리 지식이 기존에 출간된 역사소설이나 대체역사물 작가들에 비해 부족한 것은 맞다. 단지 조선군이 훨신 더 진보된 수준이고 주인공에 가깝기 때문에 지적을 더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일 뿐이다.[11] 예를 들면 임진왜란 초기 부분을 재탕했다. 최전방에 있다가 사망하는 송상현과 정발, 배수진 사용하다가 전멸한 신립, 무능한 수군제독 원균과 잘 싸우는 이순신이 그대로 재현된다. '''위치만 일본 인근으로 바꿔서.'''[12] 극초반을 이런식으로 얼렁뚱땅 해치웠다.[13] 큐슈 일본어의 기층 위에 한국어식 음독이 대거 편입된 형식였는데 14권에서 알파벳으로 표기하려는 움직임이 나오는데 이게 진서 독립의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14] 작가가 역사학이나 언어학 분야의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있거나, 최소한 어느 정도 소양이 있음이 분명하다.[15] 동양에서 제국은 '천자국'에 해당했고, 왕국에 해당하는 개념은 '제후국'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제국항목 참조.[16] 대한제국 최초헌법이 '대한국 국제'이고 공문서에서도 일관되게 대한국, 대한, 한국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17] 요동국을 제외하면 진서나 북해는 제국의 영토로 남았다고 봐도 무방하기도 하다.[18] 처음에는 고려왕의 후예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심복들의 노력을 통해 김세훈의 가문이 이것을 얻게 된다.[19] 연대기 9권의 계보도 참조[20] 아버지 사후에 어머니 임종까지 보기는 했다.[21] 연대기 9권 계보도 참조[22] 제국은 공식적으로는 모든 신분차별을 폐지하였지만, 기존 양반의 족보를 인정해주고 옛 천민들의 노비문서를 없애지 않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심하게 존재하였다.[23] 가는 침을 눈 속에 넣어 백내장 덩어리를 밀어내는 것[24] 虛氣. 성리학의 용어.[25] 현실의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마주보는 북쪽 해안 지역은 한국령이고 남부 오시마 반도는 일본령, 나머지 지역은 아이누의 영토로 하며, 이후 아이누는 정식 왕국을 세우게 된다.[26] 작중의 가공언어인 진서어 단어이다. 한자로는 間人. '가운데' 내지는 間의 한국식 발음에서 유래한 가누와 일본어 히토의 합성어로 보인다.[27] 원래 신대륙 일대는 영안부(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감독하는 영진도독부에 묶여 있었지만, 그 덕분에 신대륙의 거주민들이 늘어나서 말년에는 영주도독부로 신대륙 담당 도독부가 새로 생겨난다.[28] 카스티야 군대가 슬픔의 밤 사건으로 쫓겨나자, 조선 상인들이 즉각 개입하여 몬테수마에게 조선인 용병과 총, 대포를 매각한다. 덕분에 이듬해 진행된 테노치티틀란 공방전에서 아즈텍이 승리한다.[29] 원래 타완틴수유로부터 받은 포토시 은광은 함상이 받은 것이었으나,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한 상단 수뇌부는 지분 반절을 내상에, 반절을 정부에 넘겨주었다. 그것도 공짜로![30] 12권 시점에서 요동국에서는 처첩제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31] 실존인물[32] 실존 인물이다.[33] 아라곤은 지금의 스페인어와 같은 카스티야어가 아닌 카탈루냐어를 사용했다. (이 두 지역간의 반목은 아직도 남아있다. 엘 클라시코 참조.) 카탈루냐어식 이름을 고증해 작품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34] 류큐어 지명이라 발음법이 일본어와 다르다. 일본어로 읽는다면 토카이조나 히가시우미노조 정도가 되었을 듯. 사실상 류큐어를 고증한 최초의 대체 역사소설.[35] 그런데 아들 이굉은 어머니의 미모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흠좀무[36] 실제역사에서 그렇게 늙어버린 이유가 남편 프란츠 1세가 사망하고 40대가 되면서 슬픔을 과식으로 달래서 살이 쪘다는것을 생각하면 홍문제가 후회할 일은 없을듯 하다.[37] 11권에서 요동이 독자적인 해군력을 갖추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내지의 해군력에 의지했다.[38] 18세기에 상시 10만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는 요동과 내지, 양나라와 연합왕국뿐이다.[39] 18세기 당시 세계최대의 공업지대는 평양과 황성부 일대이다. 거기다 19세기에도 세계에서 가장 도시화가 이루어진 지역이 경기와 관서지역이고 1840년 기준 철도 연장 세계 1위, 인구 5만 이상 도시도 세계 2위인데 1위가 한국인구의 2배 반인 양나라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많은 거다.[40] 탐라공작위는 여전히 심왕가에 귀속되어 있으나, 고씨가문이 지배권한을 위임받아 통치하는 형식.[41] 세훈이 주도하여 벌인 큐슈 점령전[42] 일례로 오우치 가의 가주 오우치 모리미는 조선군에 협조하여 백제공이라는 작위와 영지의 존속은 물론, 자신의 딸이 대한제국의 No.1 실력자 세훈의 아들인 현도와 혼인하게 된다.[43] 8권에 보면 송강 정철이 진서의 관리로 부임해 왔다가 진서인 귤씨에게서 진서어에 대해 배우며 일본 정세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세 일본어, 특히 큐슈방언의 음운구조 위에 조선어의 어휘가 섞인 듯한 느낌의 언어이다.[44] 실제로 일부 부속도서는 한국령으로 남는다.[45] 진서자치국 때부터 수도가 된다.[46] 원래는 원나라 때 지명인 영명성을 따서 영명진이었으나, 영진도독부가 성장하자 고을의 품계를 올려 영안부로 고쳤다.[47] 그보다 더 크게는 현실의 러시아 극동 지역 전체라고 보면 된다.[48] 아이누어로 홋카이도를 모시르라고 했는데 이곳을 부르는 조선어 이름은 등장하지 않다가 11권에서 모실도로 나온다.[49] 이 보와 진들은 해안가에 드물게 설치되어 있고, 사람이 상주하기도 하지만 계절에 따라 머무르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영토로서 통치한다기 보다는 모피무역 및 항로통제용으로 설치한 시설로 보인다.[50] 관련 내용이 나오는 6권에서는 실제 획득하지는 않은 듯 보인다. 책에 실린 지도를 참조하여 볼 때도, 심요 도독부나 영진 도독부의 실제 영토는 정확한 경계가 없이 흐릿하다. 경계지역은 유목민족과 정주민의 잡거지로 보인다. 경계지대에서는 주둔군에 의한 경비순찰이 이루어지는 정도였으나, 폐주 김제가 이쪽에 대한 개척을 하면서 러시아와 접하게 된 걸 보면 최소한 이전보다 북륙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 게 맞는 듯하다.[51] 6권 기준으로 초보적인 강선을 새긴 총과 대포를 개발한다. 한마디로 드라군의 운용이 가능하다는 소리.[52] 요동 측에서의 첩보기관인 특무사가 요동 측에 불리한 정책을 펴는 내지 의원 김일경을 장길산을 이용해 암살하기까지 한다. 그때 요동 측 고등판무관은 우리가 이러는 것처럼 내지 측에서도 똑같은 일을 할 거라고 하는데 내지 측 역시 같은 첩보기관인 제국 익문사를 두고 있다.[53] 사실 만주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영주에서 만주에 식량을 수출해서 이익을 보고 있기도 하고 있는데다, 영주측에서 동쪽으로 탐험을 갈 때 일부러 만주를 피해가다 곤경에 처하자 도리어 만주 측의 도움을 받아서 속행할 수 있었다. 다만 제국 산하에 있던 부족이 대놓고 독립적인 행보를 보이는데다 최초로 경계를 마주선 외부세력이 되다보니 경계를 하는 수준.[54] 현실의 미주 기구와 같은 거라고 보면 될 듯...[55] 12권 참조. 대략 북에서 남으로 순서[56] 제국의 통제를 잘 따르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제국 본토와 거리가 멀어 자유지대나 다름없다. 이곳을 통해 인도양으로 구형 총포가 쉴새없이 불법적으로 팔려나갔으며, 모승호라는 자가 이곳의 군부대를 통해 밀수한 총포들로 용병대를 꾸려서 인도양 일대를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57] 한자로는 여나원(與那原)[58] 한자로는 풍동국(風東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