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국가대표 경력
1. 개요
디에고 마라도나의 국가대표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이다.
2. 유소년
2.1. 1979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1978년 당시 마라도나는 자국 최고의 유망주를 넘어선 스타였다. 그렇기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마라도나를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엔트리에 넣어주기를 기대했고, 정치적으로 순박했던 마라도나는 군정권의 대표작에 출연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마라도나는 아직 너무 어렸어요. 신체적으로는 물론 감정적인 면에서도 그랬죠. 우리가 만약 대회에서 실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런 압박감이 만들어낼 일들을요?
월드컵 조 편성 결과 아주 어려운 조에 속했어요. 플라티니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헝가리와 한 조에 들어갔죠. 게다가 마라도나는 아직 성장기에 있는 선수였죠. 아직 근육 구조가 갖춰지는 중인 선수입니다. 만약 월드컵에서 나쁜 파울을 당하게 되면 앞으로 이어질 축구 인생 전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 (1978 월드컵 아르헨티나 감독)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메노티 감독은 굳이 마라도나를 넣지는 않았다. 이유는 실력 부족은 아니었고, 아직 마라도나는 프로무대 2년 차인 18살 청소년으로서 치열한 월드컵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소위 선수 보호 차원이었다. 결국 그 월드컵에서는 '''마라도나 없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결과로만 따지면, 대표팀도 우승을 거뒀고 마라도나는 이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게 됐으니,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되었다.
이후 마라도나는 일본에서 열린 1979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궤를 달리하는 기량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까지 진출시켰고 결승전에서 프리킥골을 터트리며 소련을 3:1로 무너뜨리는데 일조하며 우승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대회 최우수 선수에 등극하는 것은 물론 6골을 기록하며 득점 2위[2] 에 오르며 전세계에 축구 신동의 출현을 알렸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마라도나는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여하지 못한 아픔을 날려버릴수 있었고 이후에도 각종 큰 경기들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1979, 1980년 연속 남미 최우수 선수를 수상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 올라서게 된다.
3. 성인 대표팀
3.1. 데뷔
뛰어난 기량으로 15살의 나이에 성인 클럽팀에 데뷔한 마라도나는 당시 하나의 현상이 되어있었다. 아르헨티나 성인 대표팀과 U-20 감독이던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는 그런 그를 주목하고 있었고, 한번은 U-20 훈련에 동참시켰는데 자신보다 3~4살 많은 선수들을 갖고 노는 모습을 보이며 놀라게 했다.
메노티는 마라도나의 기량이 이미 U-20 수준을 넘었다고 평가했고 1977년 2월 27일 라 봄보네라에서 열린 헝가리와의 친선경기에 그를 콜업한다. 아르헨티나가 5:0으로 앞서고 있던 후반 62분, 마라도나는 2골을 터트린 레오폴도 루케와 교체 투입하며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다.
관중들은 19번을 단 마라도나가 들어서자 일제히 박수를 보냈고, 이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최연소 출전 기록이었다.
3.2.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자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기로 결정되었고 감독이던 메노티는 대표팀 감독에게는 절대 주어지지 않는 기회를 잡았다. 그의 팀은 대회를 6개월 앞두고 소집되었다. 매일 함께 훈련하면서 수없이 친선전을 치렀고 선수들은 단체 합숙에 돌입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메노티가 마라도나를 중용하지 않겠다는 심산이었다.
여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마라도나는 단지 1경기에 출전했을 뿐이였다. 또한 이미 국보 대접을 받은 탓에 외국에 진출할 수 없는 선수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약삭빠른 메노티는 젊은 선수들의 외국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아스널과 바르셀로나, 유벤투스의 제안을 받았던 마라도나의 머리는 살짝 아수라장이 됐다.마라도나가 팬들이 원할 때가 아니라 감독인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때에 출전한다는 사실을 팬들은 이해해야 한다. 그는 우리나라 축구를 제대로 보여주는 선수다. 그렇지만 겨우 17세 나이에 최고 평가를 받는 선수가 된다는 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 위험하다. 마라도나의 앞에는 엄청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의 발전은 그가 무엇을 하느냐, 어떤 조언을 듣느냐에 달렸다.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 (1978 월드컵 아르헨티나 감독)
이후 더 큰 아수라장이 이어졌다. 5월 19일 메노티는 25명의 선수를 모은 뒤 그중 3명은 올 여름 자신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선언했다. 그는 큰 목소리로 "브라보와 보타니스, 마라도나"라고 말했다.브라보와 보타니스, 그리고 '''마라도나.'''
마라도나의 경력에서 가장 슬픈 나날이었다. 하지만 대표팀 탈락을 행운으로 받아들일 여지도 있었다. 훗날 FIFA의 간부가 되는 라코스테가 마라도나의 탈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리버 플레이트 서포터였던 라코스테는 리버의 노르베르토 알론소를 대표팀에 포함시키기 위해 권력을 남용했다. 또한 유순하기만 했던 마라도나가 1978년 월드컵에 출전했다면 정부에 의해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그는 어렸지만 매우 뛰어난 선수였고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승선할 것이라는 전망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메노티는 아직 어리고 성장해야 된다는 이유로 그를 부르지 않았고 이는 마라도나에게 매우 실망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대표팀 탈락은 우리가 알고 있는 디에고의 빛나는 경력의 시발점이었다.
마라도나는 대표팀에서 제외된 그날, 이후 자신의 연료가 된 분노를 깨달았다. 화가 난 10대의 소년은 20세가 되기 전까지 100골을 터트렸고 이후 일들은 축구의 역사가 되었다.그날 나는 저녁까지 팀 훈련장에 남아 있었다. 날이 춥고 어두워져 혼자 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마라도나가 나무 옆에 앉아서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네가 얼마나 많은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는지 알아?’라고 물었다. 어린아이를 위로할 때 할 법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내게 되레 ‘아빠한테 어떻게 얘기하죠?’라고 물었다. 그는 메노티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다.
카를로스 아레스 기자
3.3. FIFA 75주년 기념 대회
1977년 성인 대표팀에 데뷔한 마라도나는 이후 메노티의 부름을 받지 못했지만 1979년 5월 22일 FIFA 창설 7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경기에 소집되며 출전할 수 있었다. 마라도나는 어린 나이 답지 않게 드리블과 패스를 보여주며 활약했고 경기는 득점 없이 종료된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마라도나는 6번째 키커로 킥을 성공시키고 무려 10번째 키커까지 가는 접전 끝에 얀 피터스의 실축으로 아르헨티나는 우승한다.
3.4. 1979 코파 아메리카[3]
197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여하지 못한 마라도나가 출전한 첫 성인 메이저 대회로 마라도나는 자신의 상징인 등번호 10번이 아니라 6번을 달고 참가했다.[4] 당시 코파 아메리카는 3팀이 한조로 상대팀인 2팀과 각각 홈, 어웨이 방식으로 4경기를 치뤄 1위팀만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3.4.1. 조별 리그
아르헨티나와 같은 B조에 속한 팀은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지쿠와 소크라치스가 이끄는 브라질과 볼리비아. 첫 경기인 볼리비아와의 원정 경기는 벤치에 머물렀고 팀도 2:1로 패했다. 이어진 브라질과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지만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하고 팀 또한 2패를 기록한다.
마라도나는 볼리비아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1골을 기록하며 3:0승리에 일조하였지만 벤치에 머무른 브라질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2:2무승부를 거두며 1승 1무 2패를 기록하며 조별리그에서 3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 대회 이후 마라도나는 1987 코파 아메리카 아르헨티나를 통해 다시 코파 아메리카를 참여하게 되는데 이는 바르셀로나에서 당한 부상과 더불어 1983 코파 아메리카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아르헨티나 리그 프리메라 디비시온 소속 선수들로만 팀을 맞춰 출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FC 바르셀로나 소속이던 마라도나는 참여하지 않았다.[5]
3.5. 1980 문디알리토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과 클럽에서의 퍼포먼스로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던 마라도나는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최초의 FIFA 월드컵인 1930년 FIFA 월드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개최된 국제 축구 대회인 1980 문디알리토[6] 에 참가하게 된다.
6개국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서독과 함께 B조에 속하게 된다. 대회 방식은 조 1위팀만 결승전에 올라 우승자를 가리는 시스템으로 치러지게 된다.
3.5.1. 조별 리그
첫경기인 서독과의 대결에서 마라도나는 센스있는 플레이와 패스, 연계, 드리블을 보여준다. 경기는 전반 41분 호르스트 흐루베슈에게 골을 내주면 후반 80분까지 끌려가다가 84분 만프레트 칼츠의 자책골과 88분 라몬 디아스의 결승골로 2:1승리를 가져간다.
이어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전반 30분 후안 바르바스의 롱볼을 바티스타[7] 와의 경합을 이겨내고 따낸 뒤 드리블로 브라질의 문전까지 돌파하며 그대로 슛을 때려 골을 만들어낸다.[8] 그러나 후반 47분 이데바우두에게 골을 내주며 무승부에 그치고 만다. 최종 순위는 1승 1무로 브라질과 동률을 이루었으나 서독에게 무려 4골을 득점하며 승리한 브라질에게 득실차로 아쉽게 1위를 내주고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다.
3.6.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이미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천재였던 마라도나는 1982년,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면서 유럽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스페인에 온 마라도나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는 클럽 경기가 아닌 스페인 월드컵이었고, 펠레를 잇는 천재로 일컬어진 이 선수의 첫 월드컵은 세계의 관심을 이끌었다. 아르헨티나 또한 마라도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대회 우승을 이끈 주역인 마리오 켐페스까지 포함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과 겹쳐 있었고 아르헨티나는 정상적인 경기를 펼치기에는 너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거짓 언론플레이를 일삼으며 "콩알만한 섬나라 놈들 우리에게 개기다가 박살났다. 무찔렀다 대영제국!" 따위의 슬로건으로 국내 신문지상을 폭격하다시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언론플레이와는 다르게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스페인에 전초 기지를 차린 5월 중순부터 아르헨티나의 전세는 밀리기 시작했으며, 그 상황은 아르헨티나에서와 달리 생생히 유럽에 머물고 있는 아르헨티나 대표 선수들에게 전달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일종의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서 훈련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나가기만 하면 포클랜드 전쟁에 대한 소견을 묻는 기자단에 둘러싸였으며 조국이 전쟁에 패배하는 꼴을 생방송으로 보고있으니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문 잠그고 하루종일 울기만 했다. 아르헨티나에게도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명분은 있었으나 문제는 이 전쟁이 레오폴도 갈티에리의 개인 야욕에 의해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3.6.1. 1라운드
마라도나가 속한 아르헨티나는 벨기에, 헝가리, 엘살바도르와 함께 그룹 3에 배정되었다. 그룹 별 1,2위 팀이 2라운드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약체 엘살바도르와 한물간 헝가리가 포함되면서 만족스러운 조에 속하게 되었다.
캄 노우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첫 경기, 마라도나는 선발 출장하며 월드컵 무대에 데뷔한다. 이미 최고의 선수답게 민첩하고 날렵한 모습을 보여주며 화려한 돌파와 패스, 연계, 프리킥 등 을 보여주며 신고식을 했다.
그러나 득점은 나오지 않았고 후반 62분 에르빈 판던베르흐의 골로 0:1로 패하며 자신의 월드컵 첫 경기를 마쳤다. 첫경기에서 패배한 아르헨티나는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이후 엘살바도르를 10:1로 이기고 온 한때 최고의 강호였던 헝가리와 맞붙게 된다.
마라도나는 팀이 다니엘 베르토니의 골로 1:0으로 앞서던 전반전 28분 베르토니가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찬 공이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며 튕겨 나오자 그대로 쇄도하며 자신의 월드컵 첫 골을 만들어 낸다.
아르헨티나가 2:0으로 앞서는 상황에서 후반전에 들어서고 57분 마리오 켐페스와 2:1패스를 주고 받으며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강한 슈팅으로 팀의 세번째 골을 만들어 낸다. 경기 결과 4:1로 헝가리를 상대로 마라도나는 월드컵 데뷔골과 추가골을 넣는 대활약을 펼치며 대승을 이끈 뒤 약체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선발 출장하여 2:0으로 제압하는데 일조한다.
비록 벨기에에게 패배했지만 마라도나는 절치부심하여 헝가리전, 엘살바도르전에서 눈부신 드리블 돌파와 골을 선보이며 역시 차세대 축구황제의 자격을 증명해내며 팀을 2라운드로 진출시킨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라도나의 축구황제 대관식은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3.6.2. 2라운드
허나 불행하게도 아르헨티나는 벨기에전 패배 때문에 결국 죽음의 조에 합류하게 되는데 파올로 로시가 이끄는 이탈리아와 남미에서 마라도나의 라이벌이자 미셸 플라티니의 라이벌이기도 한 지쿠를 포함한 황금의 사중주가 이끄는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과 같은 조가 되었다.
2라운드 첫번째 경기 이탈리아전에서 클라우디오 젠틸레의 거친 마크에 고전했고 아르헨티나도 마르코 타르델리, 안토니오 카브리니에게 골을 헌납하며 결국 2:1로 패배하고 만다. 다음 경기인 브라질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다음 라운드 진출에 희망이라도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마라도나는 브라질과 맞붙게 된다.
이탈리아전에서 젠틸레의 거친 수비에 자기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 마라도나는 이날 더욱 분전하며 화려한 돌파와 패스를 수차례 보여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골은 터지지 않았고 브라질은 지쿠, 세르지뉴 슐라파[10] , 주니오르의 연속골로 이미 승부는 0:3으로 아르헨티나는 탈락이 확정적이었다. 문제는 경기에서 패배를 절감한 마라도나는 포클랜드 전쟁으로 기분이 영 좋지 못한 상태에서 결국 경기 종료 5분을 남기고 바티스타에게 거친 복부 발차기로 다이렉트 레드 카드를 받아 쓸쓸하게 퇴장했고 마라도나의 1982 FIFA 월드컵에서의 커리어는 마침표를 찍었으며 마라도나가 빠진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전에서도 1:3으로 패배하며 월드컵 우승의 꿈을 접은 채 2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혹자는 이 대회가 마라도나 최악의 월드컵이라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마라도나가 이 대회 5경기에서 보여준 개인능력은 특유의 드리블 돌파와 창의적인 킥과 패스로 우승후보인 이탈리아와 브라질 모두에게 곤욕을 안기는 활약을 하는 등 당시 황금의 사중주로 찬양받던 지쿠, 소크라치스, 토니뉴 세레주, 호베르투 파우캉에 밀리지 않는 활약을 보여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축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닌 팀 스포츠고, 결국 팀의 탈락을 막지 못하고 개인으로서는 퇴장까지 당하니 결국 실패한 월드컵이 된 셈이다. 마라도나 최악의 월드컵은 약물 파동으로 조별리그 단 2경기를 뛰고 퇴출당한 1994 미국 월드컵이다. 마라도나가 빠진 아르헨티나는 리더의 부재로 경기력이 부실해지며 이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 잇달아 패배하며 대회 16강에서 멈추게 된다.
여담으로 리오넬 메시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실패한 것을 스페인 월드컵과 평행이론이라고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도 있다고 한다.
3.7.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마라도나의 1986년 월드컵을 포함한 참가한 역대 월드컵 기록들.
1986년 월드컵은 '''‘마라도나의, 마라도나에 의한, 마라도나를 위한 월드컵’'''이라 불릴만큼 역대 월드컵들 중 가장 단 한명에게 주목이 쏠린 월드컵이었다. 사실 마라도나는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라 있었고, 브라질의 지쿠,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와 함께 월드컵을 빛낼 것이라 주목받은 3인방 중에서도 최고수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당연히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3.7.1. 지역 예선
마라도나가 속한 아르헨티나는 남미 예선에서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와 같이 1조에 묶여 월드컵 본선행을 앞두고 경기를 벌이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최약체지만 같은 조에 베네수엘라가 속하게 돠면서 4팀중에 1등을 해야만 본선에 직행하는 상황에 빠졌다. 1등을 하지 못하면 플레이오프 토너먼트를 통해 본선행을 확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베네수엘라와의 원정 첫 경기. 마라도나는 경기 시작 2분만에 골을 넣는 등 총 2골을 터트리면서 최약체 베네수엘라에게 2:3 진땀승을 거둔다. 이 후 페루에게 이변의 희생양이 된 것과 홈 무승부에 그친 것 빼고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에게 대승을 거두며 조 1위로 본선에 직행하게 된다.
마라도나는 남미 예선에서 3골을 터트리며 동료 페드로 파스쿨리와 함께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며 아르헨티나를 본선에 직행시키면서 자신이 팀의 에이스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3.7.2. 조별 리그
월드컵이 시작되자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불가리아, 대한민국과 함께 A조에 편성되었다. 이 조는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조 수위 싸움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만일 상대적 약팀인 대한민국에게 덜미를 잡혀 2위로 16강에 진출할 경우 16강전에서 프랑스, 8강전에서 브라질, 4강전에서 서독과 맞붙을 수 있는 대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조는 특이하게도 당시 기준으로 최근 두 대회의 월드컵 우승국이 같이 묶여서 죽음의 조이다 못해 아예 '지옥의 조'였다.[11]
3.7.2.1. 1경기 vs 대한민국
아르헨티나의 킥오프로 시작한 대한민국과의 멕시코 월드컵 첫 경기, 마라도나는 전반 4분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허정무의 이른바 태권도 축구에 희생양이 되며 반칙을 얻어낸다. 그러나 허정무는 심판에게 "공을 걷어내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실수라고 어필하면서 의도적이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이것이 인정되어 퇴장을 피할 수가 있었다.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에서 때린 슛이 대한민국 선수들의 벽을 막고 나오자 페널티 박스 안 오른쪽에 있던 발다노에게 헤딩으로 연결, 발다노가 그대로 한국 골문으로 집어넣으며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첫 골을 만들어낸 후 전반 16분, 마라도나는 김평석에게 반칙을 당하면서 프리킥을 다시 한번 얻어낸다. 키커로 나선 마라도나는 골문으로 공을 올려주고 루게리가 그대로 헤딩골로 연결시키며 2:0 스코어를 만든다. 이 후 골을 터지지 않았고 전반을 마치게 된다.
후반이 시작되고 후반 46분 골키퍼 네리 품피도가 한국 골문으로 롱볼을 올려주고 수비수 조민국이 걷어낸 공을 마라도나가 그대로 낙아채면서 페널티 박스 오른쪽으로 돌파하여 중앙으로 크로스한 공이 한국 골키퍼 오연교를 지나쳐 발다노에게 전달, 발다노가 빈 골대에 그대로 집어넣으며 세 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후반 73분 박창선에게 골을 내줬지만 이 후 득점없이 경기가 종료되었다.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불가리아를 상대로 삐끗해서 무승부를 하게 된 반면,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가 한국의 수많은 파울을 이겨내고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대한민국을 농락하면서 3:1로 완승을 거둔다. 허정무의 태권도 축구, 조민국의 끌어안기 등 이렇게까지 해서 간신히 막은게 3실점이었다. 한국이 워낙에 실력이 차이가 나서 했지만 이 시절 다른 팀들도 심판만 안 보이면 마라도나를 일방적으로 두들겨팼던 것도 사실이었다.[12]
3.7.2.2. 2경기 vs 이탈리아
이어진 다음 경기는 스페인 월드컵 우승국인 이탈리아였다. 전반 5분 페널티 박스 부근 브루노 콘티와 오스카 가레와의 1:1상황에서 가레의 발에 맞고 튄 공이 옆에 있던 부루차가의 팔에 맞으며 심판이 페널티킥을 선언, 키커 알레산드로 알토벨리가 슛을 성공시키며 선제골을 내주면서 이른 시간에 끌려가게 된다.
한 골을 헌납해준 마라도나는 수비 두명을 벗겨내고 이탈리아 골문으로 드리블 하여 슛을 때리는 등 골을 넣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전반 34분, 리카르도 지우스티가 이탈리아 골문으로 전진하며 발다노에게 패스, 발다노가 그대로 침투하는 마라도나에게 로빙 스루 패스로 연결한 공을 마라도나는 가에타노 시레아의 압박을 이겨내고 탄력 넘치는 점프로 이탈리아 골문에 집어넣으며 동점골을 만들어낸다. 전반을 1:1로 마치게 되고 시작된 후반전이 득점 없이 끝나게 되면서 경기는 무승부로 종료된다.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인 이탈리아를 상대로 그가 득점하자 아르헨티나 우승에 회의를 가지고 있던 기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태도를 바꿨다. 마라도나가 과연 월드컵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3.7.2.3. 3경기 vs 불가리아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불가리아전, 전반 4분 쿠치포가 불가리아 골문 근처에서 공을 따내고 돌파 후 크로스로 발다노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이른 시간에 앞서간다. 마라도나 또한 묘기같은 패스, 4명을 돌파하면서 슛, 오프사이드 오심으로 취소되었지만 발다노에게 건네준 아웃사이드 패스와 힐패스 등 천재성을 보여준다.
이윽고 후반 77분 자신에게 측면으로 전달된 공을 불가리아 수비수 젤랴스코프를 터치 한번으로 벗겨내고 드리블 후 중앙으로 크로스하여 발다노의 헤딩골을 어시스트, 공격포인트 또한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어내고 아르헨티나를 조 1위로 16강전에 진출시킨다.
지옥의 조라 평가받았던 조별리그에서 3경기 모두 마라도나는 화려한 개인돌파 능력과 킥 감각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쾌조의 스타트를 보인다.
3.7.3. 토너먼트
3.7.3.1. 16강전 vs 우루과이
아르헨티나를 이끌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시킨 마라도나의 16강 상대는 엔소 프란세스콜리가 이끄는 우루과이. 마라도나는 전반 15분 우루과이 진영으로 길게 넘어온 공을 수비수와의 경합을 이겨내고 잡아내어 문전으로 침투하는 발다노에게 그대로 올려줬지만 머리에 빗맞으며 앞서나갈수 있었던 찬스를 날린다. 전반 24분에는 페드로 파스쿨리가 반칙을 당하면서 얻어낸 프리킥을 찼지만 아쉽게도 골대에 맞고 만다.
다행히 전반 42분, 수비하던 에두아르도 아세베도의 발에 맞아 흘러간 간 공이 파스쿨리에게 그래로 전달되면서 골을 터트리며 1:0으로 앞서간 채 전반을 마치게 된다.
후반전에 들어서고 마라도나는 후반 47분 주스티가 롱볼로 건네준 볼을 아세베도의 태클을 이겨내고 잡아낸 후 골문까지 드리블로 몰고간 뒤 호르헤 바리오스를 제치고 문전으로 침투하는 파스쿨리에게 내줬지만 빗맛으며 추가골의 기회를 날려버린다. 후반 59분에는 직접 우루과이 진영으로 넘어온 공을 받아 슛을 때리지만 골키퍼 페르난도 알베즈의 품에 안기고 후반 66분 발다노에게 1:1찬스를 만들어줬지만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흘러나온 공을 집어넣었지만 넣는 과정에서 반칙을 저지르며 노 골이 선언된다. 후반 90분에 파스쿨리에게 다시 한번 단독 찬스를 만들어줬지만 긴 볼터치로 인해 골키퍼에게 막히고 만다.
경기는 결국 1:0으로 종료되고 아르헨티나는 8강전에 진출하게 된다.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 시종일관 압도적인 개인전술을 보여주며 우루과이를 휘젓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경기 내내 밀리던 우루과이에게 거친 태클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 우루과이전이 마라도나의 이 대회 최고의 경기력이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조차 있을 정도다. 그러나 마라도나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찬스를 4개나 만들어 주며 활약했지만 공격수들이 기회를 놓치는 등 골운은 그리 좋지 못하였다.
3.7.3.2. 8강전 vs 잉글랜드
8강전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4년전 포클랜드 전쟁에서 조국에게 패배를 안겨준 잉글랜드. 마라도나는 패배의 수모를 갚아줌과 동시에 4강전에 올라갈 절호의 찬스를 잡게 된다. 두 나라의 국가가 연주되었고 경기가 열리는 에스타디오 아스테카는 또다른 전쟁을 치르는 분위기였다.
잉글랜드의 킥오프로 경기가 시작되고 마라도나는 전반 8분 드리블로 테리 펜윅의 반칙을 유도, 펜윅의 옐로 카드와 프리킥을 얻어낸다. 직접 찬 프리킥은 수비벽을 맞고 잉글랜의 골문으로 뜨지만 골키퍼 쉴튼이 골문 밖으로 쳐내며 코너킥으로 이어지고, 코너킥 상황에서 넘어온 공을 글렌 호들이 헤딩으로 걷어내며 다시 아르헨티나에게 볼 소유권이 넘어온다. 볼을 소유한 마라도나는 왼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고 공은 발다노의 머리에 맞지만 공중으로 뜨며 아르헨티나의 첫 공격 기회는 득점 없이 날라가고 만다.
잉글랜드 또한 지지 않고 12분 아르헨티나 골문쪽으로 날라온 공을 네리 품피도가 미끄러지면서 잡지 못하며 기회를 잡지만 피터 비어슬리 찬 공이 골대 옆그물에 맞으며 무산된다. 그 후 마라도나는 반칙을 얻어내는 등 활약하지만 별다른 득점 기회는 나오지 않은채 시간이 흘러가다 31분 공을 잡아낸 후 잉글랜드의 골문으로 돌파하다 반칙을 당하며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낸다. 마라도나는 비어있는 골문 방향으로 센스있게 공을 툭 차며 프리킥을 처리하지만 옆으로 나가고 만다. 33분에도 지우스티가 프리킥을 얻어내지만 프리킥은 수비벽에 막혀 코너킥으로 이어지고, 이어진 코너킥에서 올라온 공은 쉴튼에 품에 안기며 득점 기회는 무산되고 만다.
전반 36분, 공을 잡은 마라도나는 하프 라인 아래서부터 드리블로 호들과 펜윅을 벗겨낸뒤 슛을 하지만 게리 스티븐스의 발에 막히고 튕긴 공을 스티브 호지가 미끄러지면서 잘 처리하지 못하며 코너킥을 얻어낸다. 부루차가가 올려준 코너킥은 득점 없이 무산되고 39분에는 마라도나가 쿠치포에게 패스를 연결하고 잉글랜드 골문으로 올라가던 중에 펜윅에게 손으로 얼굴을 가격 당하지만 팀 닥터에게 치료받고 반칙 없이 경기는 진행된다. 전반 남은 시간은 두 팀다 별다른 득점 기회없이 흘러가고 그렇게 0:0으로 전반전을 마치게 된다.
하프타임을 마치고 아르헨티나의 킥오프로 후반전이 시작된다. 후반이 시작한지 30초 만에 발다노가 헤딩 경합 도중 반칙을 얻어내고 마라도나가 크로스를 올려주지만 잉글랜드의 볼이 선언되면서 공격 기회는 무산된다.
그리고 후반 51분, 공을 잡은 마라도나는 드리블로 호들, 피터 레이드, 펜윅을 차례대로 벗겨낸뒤 발다노에게 패스하고 잉글랜드의 골문으로 침투하였다. 그런데 발다노가 트래핑한 공이 높이 뜨게 되고 호지가 그걸 걷어낸다는 것이 애매하게 처리되면서 쇄도하던 마라도나와 골키퍼 쉴튼 사이로 절묘하게 날아온게 된다. 마라도나는 골을 넣기 위해 쉴튼은 공을 쳐내기 위해 동시에 점프를 했는데, 이 때 마라도나는 이마가 아닌 손으로 공을 건드리며 골인을 시킨다. 자세히 본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명백한 핸드볼 파울이었지만[13] 알리 벤 나세르 주심은 그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불가리아 부심 보드단 도체프가 골이 맞다고 하자 FIFA 규정에 따라 더 좋은 위치에 있던 부심의 판정을 받아들여 골로 인정을 하여 점수는 1:0이 된다.
마라도나는 피터 쉴튼이 핸드볼이라고 외칠 때 골 세리머니를 하며 아르헨티나 동료들에게 "빨리 와서 나를 껴안아! 우리가 머뭇거리면, 심판 또한 머뭇거리고 골이 안 될 거라고."라고 외쳤다. 이후 잉글랜드 선수들이 마라도나에게 핸드볼을 인정하라고 항의하였지만 마라도나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냐고 하면서 친구들과 축구할 때도 손으로 골 넣어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젠 월드컵에서 해버렸다고 한 후 아무도 못 봤는데 거기다가 대고 "미안해요. 핸드볼 맞아요."라고 하냐고 하면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손으로 공을 친 걸 알았죠.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요. 순식간의 일이었고 선심은 제가 손으로 친 걸 못 봤죠. 항의가 있었지만 심판은 저를 보고 '골'을 선언했죠. 기분이 좋았어요. 영국인에 대한 복수 같은 거였죠.
디에고 마라도나
잉글랜드 팬들은 분노하며 야유하였고 잉글랜드 선수들과 바비 롭슨 감독 또한 벤 나세르 주심에게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어찌됐든 마라도나의 핸드볼은 골로 인정되었고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3분 후인 후반 54분,
'''호들, 공을 넘겨줍니다.'''
'''쿠치우포가 엔리케에게'''
'''엔리케가 마라도나에게'''
'''마라도나를 두 명이 방어하지만 축구 천재 우측으로 달려갑니다. 또 하나 제치고 패스하려다 계속 가네요. 마라도나! 좋아요! 그렇죠! 골!!!!! 골!!!!! 울고 싶네요! 오 주여 축구여 영원하라! 골! 마라도나!!! 마라도나! 울어도 괜찮아요. 정말 기억에 남을 질주였어요! 나는 새 같았죠! 어느 별에서 왔기에 이토록 한 나라 전체를 열광하게 만드는 걸까요?'''
'''축구, 마라도나 그리고 이 감동을 주신 주여, 감사합니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 신의 손 골 이후 그가 터뜨린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을 보며 아르헨티나 해설자가 외친 말'''
엔리케의 패스로 공을 잡은 마라도나는 압박하는 비어슬리, 레이드를 3번의 터치만에 벗겨내고 하프라인 아래부터 혼자서 68미터를 드리블하면서 테리 버처, 펜윅과 잉글랜드 골문을 지키던 쉴튼까지 총 5명을 제쳐버리고 골을 넣어 버린다. 이 순간 아르헨티나의 해설자는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라고 극찬했고, 포클랜드 전쟁으로 아르헨티나에 감정이 좋을 리 없는 잉글랜드의 해설자도 "왜 그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지를 증명하는 골입니다. 슬프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선수입니다."라고 역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야말로 잉글랜드와의 전쟁에 패해 낙심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는 최고의 선물같은 골이었다.'''"왜 그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지를 증명하는 골입니다. 슬프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선수입니다."'''[14]
'''8강 상대였던 잉글랜드 해설자'''
후반전이 시작한지 10분만에 마라도나는 2골을 집어넣어 2:0 스코어를 만들며 아르헨티나는 4강 진출에 한발짝 앞서나가게 되고 4강에 올라가기 위해서 최소 2골을 넣어야되는 잉글랜드는 선수를 교체하고 슈팅을 아끼지 않으며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인다. 65분 마라도나는 공중볼 경합 중 펜윅에게 머리를 얻어맞으며 프리킥을 얻어낸다. 부루차가는 키커로 나서 직접 골문을 향해 프리킥을 찼지만 쉴튼에게 막히고 만다.
후반 68분, 잉글랜드는 프리킥을 얻어내고 크리스 와들이 강력한 프리킥으로 아르헨티나 골문을 위협했지만 품피도의 선방에 막힌다. 만회골을 얻기 위해 계속 아르헨티나 골문을 노리던 잉들랜드는 후반 80분, 교체 출전한 존 반스가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게리 리네커가 헤딩으로 집어넣으며 추격골을 성공시킨다.
한 골만 더 먹히면 연장전에 가야되는 상황에서 마라도나는 잉글랜드가 추격골을 넣자마자 마르세유 턴으로 단숨에 잉글랜드 선수 2명을 벗겨내고 카를로스 다니엘 타피아와 2:1 패스를 통해 잉글랜드를 농락하며 문전으로 올라간다. 타피아는 공을 잡고 수비수 스티븐스를 벗겨낸뒤 강력한 슈팅을 하지만 아쉽게도 골대에 맞고 튕겨 나오고 만다. 이후에도 마라도나는 83분 잉글랜드의 오른쪽 코너에서 시간을 끌며 버텨내고 발다노가 후반 85분에 얻어낸 프리킥을 처리하지만 골문 왼쪽으로 빗나가고 만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아르헨티나는 실점할 뻔한 위협적인 장면이 있었지만 잘 버텨내며 경기가 종료, 4강전에 진출하게 된다. 마라도나는 엠블럼에 키스하며 4강 진출에 기쁨을 누렸다.
경기가 끝나고 마라도나는 인터뷰에서 손으로 넣은 첫 골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신의 손에 의해서 약간, 나머지는 마라도나의 머리에 의해서 득점한 것이라는 애매한 답변을 해서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15] 당시 아르헨티나와 영국은 포클랜드 전쟁 이후 굉장히 사이가 나빠진 상태였고[16]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로 인해 국민들은 이래저래 우울해진 상태였다. 이 때 마라도나가 전쟁에서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겨준 잉글랜드를 시원하게 꺾어 주었고, 특히 한 골은 명백한 반칙으로 적국 잉글랜드에게 엿을 먹이는 행위였고 한 골은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골이라는 완벽하게 다이나믹한 구성이었기에 더욱더 그는 아르헨티나에 위안과 희망을 안겨다 줬고 국민 영웅의 이미지를 굳히게 되었다.
이날 외신의 표제가 "All against Maradona"였을 만큼 에이스 킬러를 위시한 테리 펜윅이 그를 전담 마크하며 기를 죽이려고 태클하고 손으로 치고 린치를 가했지만 마라도나는 기가 죽기는 커녕 오히려 투쟁심이 불타오르면서 잉글랜드 전에서 19회의 드리블 돌파[17] 와 70회가 넘는 터치를 기록하면서 아르헨티나 공격을 이끌었고 신의 손과 하프라인 아래서부터 약 70여 미터 가량을 단독 드리블로 골키퍼까지 6명을 제치고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을 창조해내면서 축구 스타를 넘어선 초인의 모습을 보였다.
영국 언론도 신의 손은 괘씸하지만 그래도 두 번째 골은 정말 엄청났다는 반응을 보였고, 당시 잉글랜드 선수들은 "신의 손 골이 무효라도 어차피 마라도나한테 골을 먹고 졌을 것이다."라고 경기 후 소감을 전했고 득점에 성공한 게리 리네커는 마라도나가 넣은 두 번째 골에 대해 "박수를 치고 싶었다. 나는 이제까지 상대 골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라며 인터뷰했다.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바비 롭슨 또한 신의 손 첫 골은 추악한 사기꾼의 손이라고 일갈하였지만 두 번째 골은 잔혹한 기적이라고 평했다. 당연하게도 축구 역사상 최악의 골과 최고의 골의 희생양이 된 당사자였던 잉글랜드의 피터 쉴튼 골키퍼[18] 는 당시 마라도나의 첫 번째 골을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하였다.[19]
3.7.3.3. 4강전 vs 벨기에
4강전 상대는 8강에서 스페인을 잡고 올라온[20] 엔조 시포가 이끄는 벨기에. 주심 안토니오 마르케스 라미레즈가 경기 휘슬을 불고 경기는 벨기에의 킥오프로 시작되었다.
경기가 시작한지 2분만에 엔리케가 공중볼 경합 중 반칙을 당하며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게 된다. 마라도나와 부루차가가 공을 올려주기 위해 준비하고, 부루차가가 차는 척 페인팅을 주고 측면으로 침투한 상황에서 키커 마라도나는 센스있게 오른쪽으로 침투하던 부루차가에게 패스하였고 공을 잡은 부루차가가 벨기에 문전으로 크로스했지만 아쉽게도 벨기에 수비진에 막히며 첫 공격 기회는 무산된다. 2분 후 코너킥을 얻어낸 아르헨티나는 부루차가가 크로스를 올렸고 다시 벨기에 수비진에 막히지만 공을 잡아낸 마라도나는 문전에 있던 호세 루이스 브라운에게 크로스, 브라운의 머리에 맞은 공은 장마리 파프의 품에 안기고 만다. 전반 초반부터 몰아치던 마라도나는 6분, 발다노가 패스한 공을 받은 마라도나는 3명의 벨기에 선수들을 달고 페널티 박스 왼쪽으로 드리블하며 슈팅하지만 에릭 헤러츠의 발에 맞고 약해지며 파프가 안전하게 잡아낸다.
전반 초반부터 몰아치던 마라도나는 7분, 발다노와 공을 주고받으면서 찬스메이킹을 해주고 발다노가 그대로 슈팅하지만 골대 옆으로 나가고만다. 9분 공격 상황에서 가슴으로 공중에 뜬 공을 받아낸 마라도나는 그대로 슈팅하지만 골대에 맞고 튕겨져 나오고 발다노가 침투해 골문에 집어넣지만 핸드볼로 골은 취소된다. 전반 12분에도 부루차가가 침투하는 마라도나에게 패스를 찔러주고 공을 잡은 마라도나[21] 는 중앙으로 침투하던 부루차가에게 크로스를 올려주지만 막히고 만다.
전반 31분, 부루차가가 하프라인 아래에서 마라도나에게 롱볼을 보내주고 수비수 렌킨과의 몸싸움을 이겨내고 공을 잡아낸 마라도나는 중앙의 지우스티에게 패스하지만 지우스티의 슛은 골대 옆으로 나가버리고 마라도나의 몸싸움도 반칙으로 선언된다. 마라도나는 전반 45분 동안 볼운반, 찬스메이킹, 드리블을 보여주며 벨기에를 강하게 몰아붙였지만 득점 없이 종료되고 하프타임 후 아르헨티나의 킥오프로 후반전이 시작된다.
후반 51분 부루차가가 오른쪽 측면에서 엔리케가 패스한 공을 받고 중앙쪽으로 올라오다가 벨기에 골문으로 침투하던 마라도나에게 패스를 찔러주었고 벨기에의 스테판 데몰과 조르주 그륀이 압박했지만 마라도나는 그대로 공을 왼발로 가볍게 툭 차며 벨기에 골문에 집어넣으며 선제골을 터트렸다.
골을 터트린 마라도나는 61분 침투하던 엔리케에게 로빙 스루 패스로 찬스를 만들어 주지만 엔리케의 슛은 골대에서 크게 빗나가고 만다. 선제골이 터지고 12분 후인 후반 63분 벨기에의 패스를 끊어낸 쿠치우포가 중앙에서 마라도나에게 패스해주고 공을 잡은 마라도나는 벨기에의 중앙에 겹겹히 쌓인 수비진을 30미터 가량 돌파하며 추가골[22] 을 넣어버리는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후반 67분에도 발다노의 패스를 받고 그대로 벨기에의 골문으로 수비수 헤러츠를 달고 드리블하며 슈팅하지만 아쉽게 골대를 벗어나고 만다. 81분 아르헨티나 골문에서 하프라인 위쪽에 있던 마라도나에게 롱볼이 날아오고 그륀의 태클을 이겨내고 공을 잡아낸 마라도나는 중앙으로 쇄도하던 발다노에게 패스, 그러나 발다노가 찬 공은 위로 높이 뜨고 만다. 발다노는 상심하고 마라도나는 격려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후 서로 공격을 주고 받으며 남은 시간이 흘러가고 경기가 종료되며 아르헨티나는 결승에 진출한다. 이날 마라도나의 개인 지배력은 1986 월드컵을 통틀어 가장 빛난 경기로 뽑히는데 결승골을 포함한 두 골, 백스핀 맥여서 넘겨주는 원터치 패스와 바디 밸런스를 이용한 드리블 돌파, 볼운반, 찬스메이킹, 센스, 게임 조율로 아르헨티나를 결승에 올려놓으며 모든 면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3.7.3.4. 결승전 vs 서독
8년만에 월드컵 우승 기회를 잡은 아르헨티나의 결승전 상대는 스페인 월드컵에 이어 2연속 결승에 오른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로타어 마테우스가 이끄는 서독. 경기는 멕시코 축구의 성지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게 진행되었다.[23]이 순간을 못 잊을 거예요. 아무도 우릴 믿지 않았죠. 우리가 지길 바란 국민들을 포함해서 패배주의자에게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해요. 우린 결승전까지 올라왔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디에고 마라도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 진출 이후 인터뷰에서)
주장완장을 찬 마라도나는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팀원들을 다독이며 사기를 올렸고 투쟁심을 불어넣었다. 114,600명의 관중들이 입장한 가운데 마라도나는 루메니게와 함께 선두에 서서 경기장에 들어섰고, 그를 따르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전혀 위축되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우승에 대한 열망으로 기대에 차 있었다.
결승에 진출한 두 나라의 국가가 경기장에 울리고 선발 선수들이 킥오프 전 결승 사진을 찍은 뒤 자리를 잡자 주심 로무알도 아르피 필류가 경기 휘슬을 불었고 서독의 킥오프로 경기가 시작됐다. 전반 시작 2분, 서독의 진영에서 볼을 가로챈 마라도나는 왼쪽 측면 좋은 위치에 있던 올라르티코에체아에게 크로스를 올려주었지만 오프사이드에 걸리고 만다. 1분 후 마라도나는 반칙을 당하며 프리킥을 얻어내고 부루차가가 키커로 공을 올려주지만 서독 수비진에 막히고 만다.
전반 17분 서독의 한스 페터 브리겔이 브라운에게 걸려 넘어져 반칙을 당하며 아르헨티나 골문 바로 앞에서 프리킥을 얻게 된 상황에서 골키퍼 품피도가 잘 막아내지만 주심 아르피에 의해 똑같은 위치에서 다시 한번 프리킥이 주어지고 마라도나는 판정에 불만을 보이며 옐로 카드를 받고 만다. 다행히 마테우스가 찬 프리킥은 지우스티의 몸에 맞으며 위기를 넘긴다. 그리고 21분 경 오른쪽 측면에서 쿠치우포가 마테우스를 상대로 얻어낸 프리킥을 부루차가가 문전으로 올려주었고 브라운이 헤딩으로 공을 골문에 집어넣으며 선제골을 기록, 아르헨티나가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25분 부루차가가 서독 골문 앞 공격 상황에서 마테우스에게 반칙을 당하며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게 되고 키커로 나선 마라도나는 골을 노리며 프리킥을 차지만 위치를 잘잡은 하랄트 슈마허의 품에 안기고 만다.
프리킥 상황 후 별다른 공격 기회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8분 후 마라도나는 부루차가와 연계를 통해 서독 문전으로 쇄도하지만 부루차가의 마지막 힐패스가 약간 길었고 슈마허가 앞으로 나오면서 걷어낸 공이 마라도나를 맞고 라인 밖으로 나가버리면서 격차를 벌릴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만다. 마라도나는 서독의 반칙과 대인 마크에 별다른 활약 없이 전반전을 1:0으로 마무리한다.
하프 타임 후 당시 서독의 감독이던 프란츠 베켄바워는 45분만에 루디 푈러를 그라운드로 올려보내고 아르헨티나의 킥오프로 경기가 시작된다. 47분 품피도가 서독 쪽으로 길게 롱볼을 올려주고 발다노가 헤딩으로 쇄도하던 마라도나에게 패스, 마라도나는 슈팅했지만 마테우스를 맞고 라인 밖으로 나가고 오프사이드가 선언된다. 1분 후 마라도나의 패스를 받은 부루차가가 서독 골문으로 드리블하며 좋은 기회를 잡았지만 칼하인즈 푀르스터의 육탄 방어에 막히고 만다. 후반 55분 품피도가 골문 근처에 있는 발다노에게 공을 내줬고, 발다노는 마라도나에게 패스해줬고 마라도나는 엔리케에게 연결, 엔리케는 드리블하며 하프 라인 위로 올라갔고 앞에 있던 발다노에게 패스했다. 순간적으로 서독의 수비가 무너지며 발다노는 골키퍼 슈마허와 1:1 상황이 되었고 침착하게 오른쪽 구석으로 차 넣으며 2:0으로 격차를 벌리는데 성공한다.
서독은 2골을 먹히며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브리겔의 슈팅이 수비하던 브라운의 발에 맞으며 코너킥이 선언된다. 토마스 베르톨트의 머리에 맞은 공은 다행히 품피도가 안전하게 잡아낸다. 아르헨티나도 지지 않고 엔리케가 오른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렸고 발다노가 헤딩으로 연결하지만 아쉽게 골문 옆으로 나가고 만다. 시간은 계속 흘러 어느덧 70분대에 접어들고 안드레아스 브레메가 올린 크로스가 엔리케를 맞으며 코너킥으로 연결된다. 브레메가 코너킥을 준비하고 올라온 크로스를 퓔러가 헤딩으로 떨궈주고 그걸 루메니게가 놓치지 않고 골문으로 집어넣으며 추격골을 만들어낸다. 한 골을 내준 아르헨티나는 81분 지우스티가 마라도나에게 센터링하고 마라도나는 터치 한번으로 센스있게 마크하던 푀르스터를 제껴낸 뒤 슈팅하지만 골문 옆으로 나가고 만다.
82분, 서독이 다시 한번 코너킥을 얻게 되고 브레메가 크로스, 베르톨트가 떨궈주고 퓔러가 헤딩으로 공을 아르헨티나 골문으로 집어넣는데 성공, 2:2 동점을 만들며 베켄바워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만나는 상대마다 압도했던 마라도나는 푈러가 동점골을 넣던 순간 당연하게도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당황하였다. 급해진 아르헨티나는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엔리케가 디트마르 야콥스의 반칙으로 프리킥을 얻어내지만 마라도나의 프리킥은 서독의 수비벽에 맞고 튕겨져 나오고 만다.
그렇지만 후반 85분, 마라도나는 막판에 독일 수비진들이 집중력이 흐트러진 틈을 타 부루차가에게 스루 패스를 찔러주었고, 패스를 받은 부루차가는 그대로 서독 골문으로 직진하며 침착하게 왼쪽 구석으로 공을 차 넣으며 아르헨티나는 다시 한 번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부루차가가 골을 넣은 뒤 마라도나는 동료들과 환호하며 기뻐했다.
앞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88분 부루차가와 2:1 패스를 통해 공을 잡은 마라도나는 마테우스와 야콥스가 동시에 건 태클을 엄청난 바디 밸런스로 이겨내고 서독 골문으로 직진하지만 페널티 박스에서 푀르스터의 마지막 커버 태클에 넘어지고 만다.[25] 그러나 아르피 주심은 프리킥을 선언한다.
얻게 된 프리킥 상황에서 키커로 나선 마라도나는 골문 오른쪽 구석을 겨냥하며 때렸지만 슈마허의 선방에 막히고 만다. 튕겨나온 공은 독일의 노르베르트 에더가 지켜내고 발다노의 반칙으로 서독에게 공이 넘어온다.
아르헨티나는 90분 부루차가를 마르셀로 트로비아니와 교체해주며 시간을 끌기 시작한다. 93분 서독 쪽으로 공이 넘어오고 마테우스가 롱볼로 아르헨티나 문전으로 공을 올려주는 순간 아르피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며 경기가 종료된다. 아르헨티나의 우승 순간, 마라도나는 환호하며 동료 지우스티와 우승의 기쁨을 나눴고 수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으로 들어와 기뻐했다. 서독은 전담 마크하던 마테우스가 뚫리면 그 다음에 푀르스터, 야콥스, 브리겔 등이 돌아가면서 그를 마크하면서 마라도나를 잘 봉쇄하였지만 결국 그의 천재성 한 번에 무릎 꿇고 말았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우승 세리머니를 하기 위해 단상 위에 올라왔고 주장으로서 선두에 선 마라도나는 미겔 데 라 마드리드 멕시코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 뒤 그에게 트로피를 전달 받았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트로피를 쥐게 된 마라도나는 위로 높이 들어올리며 세리머니를 했고 키스까지 하며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단상에서 월드컵 트로피를 전달받은 마라도나는 다시 경기장으로 내려왔고 그는 수많은 군중들에게 둘러싸였고 높이 들어올려졌다. 들어올려진채 경기장을 돌며 마라도나는 월드컵을 다시 한번 높이 들어올렸다. 누가 뭐래도 마라도나의 날이었다.'''Diego: Hola Mama.
엄마!''''''Doña Tota: Hola my love.
그래, 내 사랑.''''''Diego: Tota, I love you Mama.
사랑해요, 엄마!''''''Doña Tota: My life! my life.
내 아들! 나의 전부.''''''Diego: I love you lots. Mama.
정말 사랑해요, 엄마.''''''Doña Tota: I love you too. Go rest my son. Today you made me the happiest mother on Earth.
나도 사랑해. 가서 좀 쉬렴. 오늘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란다.'''
'''월드컵에서 우승 후 모친 도냐 토타와의 대화.'''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우승컵을 들고 조국으로 귀국, 부에노스 아이레스 에세이사 공항은 그들을 찍으려는 기자들과 인파들, 경찰들로 가득 매워졌다. 힘겹게 공항을 빠져나오고 마라도나와 동료들은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대통령궁인 카사 로사다에 모였다. 마라도나는 발코니에서 동료들과 함께 아르헨티나를 외쳤고, 발코니와 마주하고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는 그들을 환영하며 반겼다. 단순히 축구 선수를 넘어서 시대의 역사가 되는 순간이었다.'''It was as if Argentina was celebrating its savior: a little black kid from a very poor neighborhood. Who fights. Who stirs things up. Who wins.
아르헨티나는 구세주를 찬양하는 것 같았어요. 빈민가 출신의 작고 까만 아이가 싸우고 뒤흔들고 승리했죠.'''
'''다니엘 아르쿠치 (스포츠 저널리스트)'''
마라도나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과 함께 평점 1위로 최우수 선수인 골든볼, 득점 2위 실버슈[26] , 베스트 11[27] 에 선정되었으며 Opta 통계 5골 5도움, 10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이후 단일 월드컵에서 이보다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의 101번의 슈팅 중 56%를 직, 간접적으로 만들었으며 8강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19회의 드리블 성공과 더불어 53번의 드리블 성공[28] 을 기록했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단일 경기, 월드컵 최다 기록이다.[29][30] 또한 대회 7경기 중 6경기에서 공격포인트 기록, 유일하게 공격포인트가 없는 우루과이전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피파울 역시 53회로 역대 최다 기록이고[31] 어시스트는 대회 1위이자 역대 2위,[32] 찬스 메이킹 또한 27회로 대회 1위이자 역대 5위[33] 를 기록했다. 또한 실리주의, 역습 축구를 강조했던 카를로스 빌라르도 감독으로부터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주문받았고, 태클 성공 11회(성공률 84.6%)와 리커버리 26회로 이에 응답했다. 그야말로 한 명의 축구 선수가 하나의 대회를 가장 완벽하게 지배하고 통제했다면, 그 선수가 바로 86년 월드컵의 디에고 마라도나였다.
아르헨티나는 1986년 월드컵 예선부터 본선에 힘겹게 올라갔고 예선 기간중에 심지어 중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1:0 패배까지 당한 적이 있을만큼 형편없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이유때문에 아르헨티나에 대한 인식은 강팀이긴 하나 강력한 우승후보는 아니었고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는 엘로 랭킹 12위에 위치하며 8강권 전력 정도로 평가받으며 더더욱 마라도나의 원맨 퍼포먼스가 빛을 발했다. 만약 마라도나가 1970 월드컵의 펠레와 같이 확실한 우승권팀에서 뛰었다면 팀적인 경기력 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자신에게 몰리는 집중 마크도 분산되면서 나오는 개인적인 퍼포먼스도 엄청났을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8강권 수준의 팀을 토너먼트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하면서 우승으로 끌어올리는 천재성을 보여주었기에 그는 아르헨티나 축구의 상징이 되었다.
물론 다른 선수들이 마라도나가 만들어준 수없이 많은 찬스를 날린 것은 사실이나 1986년 월드컵의 멤버들이 그렇게 수준 떨어지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 카를로스 빌라르도는 신예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자기 전술에 맞춰서 뽑아서 비판을 많이 받기는 했으나[34] 그래도 다들 어느정도 준수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었다.[35] 실제로 1986년 월드컵 당시에 마라도나와 같이 뛴 스트라이커 호르헤 발다노는 이미 명문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 CF의 주축이 되는 선수였으며 중앙 미드필더인 호르헤 부루차가 역시 나름대로 명성이 자자했던 선수였다. 수비수였던 세르히오 바티스타 역시 준수한 선수였으며, 주장이었던 다니엘 파사레야는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번 차지한 베테랑으로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36]
그러나 본선에서 마라도나는 자신에게 쏠린 압박과 스포트라이트, 상대팀의 반칙에 맞서 투쟁의 화신으로서 아르헨티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며 우승컵까지 들었고, 확실한 것은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가 아니었다면 지쿠나 미셸 플라티니, 혹은 최근의 지네딘 지단 등 그 자리에서 뛰는 어떤 슈퍼스타를 데려온다 하더라도 우승하기 힘들고, 설사 우승을 한다치더라도 그 팀에서 마라도나만큼의 활약을 할 수는 없는 것이 확실하다. 지쿠는 1980년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중심에 있던 선수였으나 우승과 인연이 없었고,[37] 플라티니는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4강에 오른데다 UEFA 유로 1984를 혼자 쓸다시피하는 엄청난 포스를 내뿜었음에도 마라도나의 1986년 퍼포먼스에 가려졌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FIFA 월드컵은 국제대회로서 개최되는 규모와 권위도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이며, 각국에서 최정상급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슈퍼스타들만 모여서 최고의 기량과 퍼포먼스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포함한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사력을 다해 경기에 임한다는 점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FIFA 월드컵 우승은 더더욱 값지고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3.8. 1987 코파 아메리카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에서 개최한 대회로 9팀이 참가해 조별 리그에서 A,B,C 3개 조로 나누어 한 조당 3팀으로 조 1위만 4강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과 나폴리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살아있는 축구의 신으로 등극한 마라도나는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위해 참가한다.
3.8.1. 조별 리그
아르헨티나는 페루, 에콰도르와 같은 A조에 배정되었다. 마라도나는 개막전 페루전에서 후반 47분 좌측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트래핑으로 잡아 놓은 뒤 그대로 골문으로 집어넣으며 선제골을 터트리고 골대를 맞추는 등 맹활약했으나 후반 59분 레이나에게 골을 내주며 무승부에 그친다.
다음 경기인 에콰도르전에서 엄청난 드리블과 침투를 보여주며 후반 67분 페르쿠다니가 얻어낸 페널티 킥과 후반 85분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2골을 기록한다. 경기 결과는 3:0 완승으로 아르헨티나를 4강 토너먼트에 진출시키며 역시 마라도나라는 찬사를 받는다.
3.8.2. 4강전
4강에서 만난 상대는 1980년대 아르헨티나의 천적 우루과이. 마라도나는 혼자서 수차례 단독 돌파와 키패스를 뿌려 주었지만 카니자와 파스쿨리가 찬스에서 마무리짓지 못하고 선 수비 후 역습으로 나온 우루과이의 육탄방어와 전반 43분 안토니오 알사멘디의 골에 1:0으로 결국 고배를 마시고 만다.
결국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결승전으로 가지 못하고 콜롬비아와 3위 결정전을 치르게 된다. 마라도나는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센스 있는 플레이를 보여줬지만 공격 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한채 2:1로 패배하며 최종 순위 4위로 대회를 마친다. 3골을 기록했고 대회 베스트11과 브론즈볼[38] 에 선정되지만 4강 탈락이라 결국 빛이 바랬다.
3.9. 1989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
브라질에서 개최한 대회로 10개국이 참가했다. 대회 방식은 예선 리그를 5팀씩 A,B 두개의 조로 나뉘어 경기를 진행하여 각 리그의 상위 2팀이 결선 리그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1987 코파 아메리카 이후 주전들이 노쇠화 내지 이탈한 아르헨티나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년 전인 이 대회에서부터 이미 전력 약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3.9.1. 예선 리그
칠레, 우루과이, 에콰도르, 볼리비아와 만나게 된 마라도나는 첫 두경기인 칠레, 에콰도르전에서 선발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프리킥이 골대를 맞는 등 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한다. 다행히 아르헨티나는 칠레전 카니자의 골로 승리를 거뒀고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 득점없이 무승부를 거두며 1승1무로 여유를 가지고 저번 대회 4강에서 자신들을 떨어트렸던 난적 우루과이를 만나게 된다.
전반 17분 루게리가 이른 시간에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로 불리해지지만 마라도나는 후반 67분 카니자에게 스루 패스를 찔러주고 카니자가 그대로 골대에 슛을 때린게 우루과이 골키퍼 하비에르 제올리의 손에 맞았지만 그대로 들어가며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이어진 볼리비아전에서도 특유의 플레이메이킹과 드리블로 에이스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아르헨티나는 2승 2무로 조 1위로 결선 리그에 진출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약점은 최전방으로서 주전 공격수였던 호르헤 발다노가 은퇴하고 그 공백을 메꿀 대체자가 마땅치 않아 믿을만한 공격수는 클라우디오 카니자 하나밖에 남지 않아서 예선 리그 내내 득점력 빈공에 시달렸다.[39]
3.9.2. 결선 리그
결선 리그와 상대하게 될 팀은 브라질, 우루과이와 파라과이. 최전방의 무게감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에이스인 마라도나는 분전했지만 다시 만난 우루과이와 홈팀 브라질에게 한골도 기록하지 못하며 연달아 2:0으로 패배하고 만다. 이미 우승은 물 건너간 상황에서 맞이하게 된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벤치에 머무르며 대회를 마감한다.
3.10.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3.10.1. 조별 리그
마라도나는 당시 마약 문제가 심각했지만 월드컵 출전을 위한 광기 어린 투지로 몸을 만들었고 역사에 남기를 원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는 대회 직전 발목 부상으로 그 후유증 때문에 1986년 멕시코 월드컵만큼의 절정의 컨디션은 아니었다. 또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 당시 주전 공격수 호르헤 발다노의 은퇴와 호르헤 부루차가, 세르히오 바티스타, 오스카 루게리, 리카르도 지우스티, 네리 품피도 등등 주전들의 노쇠화로 아르헨티나의 전력 역시 크게 약화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마라도나의 발목 부상 후유증과 아르헨티나 팀의 전력 약화로 인한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대회 개막전부터 로저 밀러가 이끄는 카메룬과의 경기에서 1:0으로 패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소련전에서는 마라도나의 코너킥이 소련 선수를 맞고 나온 공을 받은 훌리오 올라르티코에체아가 다시 한번 크로스를 올리고 페드로 트로글리오가 헤딩골을 넣으며 트로글리오의 선제골에 관여하며 2:0 승리에 일조한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루마니아전에서는 당시 '발칸의 마라도나'라고 칭송받던 게오르게 하지와의 대결로 주목받는다. 전반이 득점없이 종료되고 후반 62분 마라도나는 코너킥에서 크로스로 페드로 몬손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였다. 그러나 68분 가브릴 발린트에게 골을 얻어맞으며 무승부에 그친다. 아르헨티나는 1승 1무 1패로 루마니아 승점이 같았으나 다득점에 밀려 3위로 밀려나지만 다행히 각 조의 3위팀들에서 1위를 차지하며 겨우겨우 16강에 올라가게 된다.[40]
3.10.2. 토너먼트
3.10.2.1. 16강전 vs 브라질
조별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아르헨티나는 결국 조 3위로 16강에 올라 C조를 1위로 토너먼트에 오른 숙명의 라이벌 브라질과 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당시 브라질은 코파 아메리카 우승, 예선과 조별 리그에서도 무패로 순항하며 강력한 우승 후보를 주목받았으며 이에 축구 관계자들은 브라질의 승리를 예측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아르헨티나는 경기전 예상과 다르지 않게 경기 내내 브라질에게 얻어 터지다시피 하면서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 내내 브라질의 집중마크를 당하던 마라도나는 후반 36분경 단독으로 하프라인을 넘어서 40미터 가까이 질주하며 브라질 선수 3명을 제친 후[41] 클라우디오 카니자에게 킬패스를 찔러 줘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마라도나는 이날 대놓고 파울작전으로 나온 브라질의 겹수비에 고전했으나 이 한방으로 승부를 종결하는 천재성을 입증했다.[42] 골이 터진 후 브라질은 총공세를 가했으나 주장 히카르두 고메스가 퇴장 당하고 아르헨티나의 저항 및 정교한 역습에 고전하면서 결국 패배하였고 아르헨티나는 8강에 올라가게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브라질의 라자로니 감독은 인터뷰에서 "도대체 우리가 왜 졌는지 모르겠다. 설마 마라도나가 거기서 오른발로 패스를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라고 말할만큼 아르헨티나의 승리는 이변이었다. 다만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가 있었고 승리에는 단 몇 초의 천재성으로 충분했다.
3.10.2.2. 8강전 vs 유고슬라비아
8강 상대는 드라간 스토이코비치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마라도나는 전반 초반 폭발적인 드리블 돌파로 유고슬라비아 수비수의 이른 퇴장을 만들어내면서 이름값을 해냈지만 팀은 스토이코비치의 활약상에 고전하며 연장전까지 승부를 보지 못하고 승부차기에 들어선다.
스토이코비치의 실축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3번째 키커로 나선 마라도나는 골키퍼의 선방에 실축하고 만다. 다행히 골키퍼 세르히오 고이코체아가 유고슬라비아의 브르노비치, 하디베치치의 킥을 연속으로 막아내면서 4강에 진출하게 된다.
3.10.2.3. 4강전 vs 이탈리아
우승에 대한 강한 열의로 당시 문제이던 마약을 끊고 월드컵에 집중하던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의 4강전 상대는 개최국 이탈리아였다. 경기가 열리는 지역은 나폴리였고 그는 그곳의 신이었다. 또한 구장은 그의 신전인 스타디오 산 파올로였다.나폴리에서 이태리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라니 이탈리아 연맹이 실수한 거예요! 아주 큰 실수. 문제될 만한 상황도 예상했어야죠. 아르헨티나를 나폴리에 배정하면 안 됐죠. 절대...
알베르토 비곤 (1966/67 시즌 나폴리 감독)
마라도나는 나폴리인들에게 아르헨티나를 응원해달라면 인터뷰 하였고, 나폴리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영광을 안겨다 주었지만 남미의 마라도나와 멸시와 차별을 겪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조국인 이탈리아 사이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하냐는 선택 속에 크나큰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이탈리아 여론은 남북부 사이의 분쟁을 이용하여 남미 팀을 응원해달라는 마라도나의 발언에 분노에 차 들끓었다.나폴리에서 6년을 보냈어요. 이젠 사람들이 저를 잘 아니까 아르헨티나를 응원해주리라 믿어요. 갑자기 너무 많이 바라면 안 되겠지만 분명 제가 기뻐하길 바랄 거예요. 아르헨티나를 응원해주면 좋겠어요. 그 응원이 필요하기도 하고 저도 그분들이 절 필요로 할 때 늘 열심히 했으니까요.
디에고 마라도나 (경기 전 인터뷰에서)
경기날이 밝았고 나폴리의 이탈리아 관중들의 생각은 분명해졌다. 아무리 마라도나가 나폴리의 신이라해도 응원하는 팀은 자신들의 조국 이탈리아였다.[43][44]
경기는 전반 17분 이른 시간에 살바토레 스킬라치에게 골을 얻어맞으며 결승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골을 넣어야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마라도나 또한 골을 넣기 위해 슈팅을 때리며 공격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0:1로 끌려간 채 전반을 마치고 후반전에 들어서게 된다. 아르헨티나는 계속 이탈리아의 골문을 두드리며 골을 노렸다. 후반 67분 공을 잡은 마라도나는 측면의 훌리오 올라르티코에체아에게 공을 전달하고 올라르티코에체아가 중앙으로 올린 공을 카니자가 그대로 헤딩골로 연결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만든다.
경기는 정규시간 내에 승부를 끝내지 못하고 연장에 들어서게 되고 연장전에서도 공방전이 이어지는 와중에 마라도나는 연장 후반 이탈리아 수비진을 헤집으며 올라르티코에체아에게 공을 전달하지만 올라르티코에체아의 슛은 아쉽게 골대를 빗나가고 만다.
그러나 결국 골은 터지지 않으며 승부차기에 들어서게 된다. 앞서 세르히오 고이코체아가 로베르토 도나도니의 슛을 막아내면서 유리해진 상황에서 마라도나는 키커로 나섰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조국의 결승 진출을 원하고 있었고 하지만 득점하면 이탈리아와의 유대는 영원히 깨질 듯했다. 마라도나는 침착하게 공을 골대에 차 넣으면서 8강전과 다르게 승부차기를 성공시킨다.
이어진 이탈리아의 5번째 키커 알도 세레나[45] 가 찬 슛을 고이코체아가 선방하며 아르헨티나는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마라도나는 동료들과 결승 진출의 기쁨을 누렸고 그때부터 모든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그에게 등을 돌렸다. 아무도 그를 옹호하지 않았고 당시 마약 문제가 수면에 들어나게 되는 시발점이었다.
3.10.2.4. 결승전 vs 서독
결승전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있는 AS 로마의 홈구장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렸다.
아르헨티나의 결승전 상대는 4년전 결승에서 격돌했던 서독. 서독은 당시 로타어 마테우스, 위르겐 클린스만, 안드레아스 브레메로 이루어진 게르만 삼총사와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루디 푈러 등 쟁쟁한 선수들로 명성을 떨치며 역대 최강이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초호화 전차군단의 위용을 자랑하던 팀이었다. 경기장에 들어섰고 분위기는 4강전과 달랐다.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던 팬들은 있었던 나폴리와는 달리 관중들은 서독을 응원했다.
이탈리아인들은 아르헨티나 국가 연주가 나오자 일제히 야유를 보내면 서독이 이탈리아의 복수를 해주기를 기원했다. 아르헨티나가 싫어서가 아니라 마라도나가 싫어서 였다. 이탈리아인들은 이미 그에게 등을 돌렸고 정말 싫어했다.[46]
1990년 월드컵 결승전 경기는 파울로 얼룩진 경기였다.[47] 마라도나는 볼을 잡기만 해도 거친 태클이 들어와 흡사 미식축구 경기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서독은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이끌었고 이를 막던 아르헨티나는 페드로 몬손[48] 과 구스타보 데소티가 퇴장당하는 등 편파 판정에 시달렸으며 에이스인 마라도나는 드리블로 루디 푈러의 파울을 유도해내며 옐로 카드를 얻어내지만 경기 내내 서독의 집중마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후반전에 데소티의 퇴장에 항의하다가 옐로 카드를 받기도 했다.
결국 후반전이 끝나기 전 석연치 않은 페널티 킥 판정으로 결국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페널티 킥 득점이 결승골이 되어 아르헨티나는 1:0으로 패배하며 월드컵 우승 2연패에 실패한다.[49]
그에게는 최악의 결승전이었다. 이탈리아와의 유대를 깨면서까지 결승에 올라올 만큼 조국의 우승을 누구보다 꿈꿨지만 결국 준우승에 그쳤다. 결국 경기가 끝나고 마라도나는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렸고 잔인했던 월드컵을 마무리 했다.
이미 30대에 접어들던 마라도나는 이전 월드컵만큼의 절정의 파괴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대회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더불어 마라도나의 천재성이 번뜩였던 대회로 평가된다.[50]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결승전까지 올라간 팀 치고는 7경기 5골 밖에 넣지 못했는데, 마라도나는 2개 어시스트, 2골의 기점이 되는 드리블 돌파를 하며 아르헨티나 득점의 4골, 즉 80%를 기여했다. 무엇보다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4년 전보다 더 전력이 약해져 ELO 랭킹 19위였다.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는 La Ripublica 평점으로는 6.43으로 골키퍼 세르히오 고이코체아 다음으로 팀내 2위(즉 필드 플레이어로는 팀 내 1위), 가제타 평점으로는 6.50으로 팀내 평점 1위를 기록했다. 특히 6.5 이상부터 잘한 선수로 간주하는 가제타 평점 상 6.5 이상은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팀 내에서 유일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마라도나는 대회 브론즈볼을 받았고, 대회 공식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는데 '''역대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 중 2대회 연속, 2대회 이상 대회 공식 베스트 11에 선정된 것은 마라도나가 유일하다.''' 그만큼 본인에게도 매우 아쉬웠을 법한 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24년후 마라도나의 뒤를 이은 또다른 천재가 복수전에 나서지만...[51]
3.11. 아르테미오 프란키 트로피
1990, 91년 대표팀에서 15개월 출장 징계로 한 경기도 뛰지 못한 마라도나는 대표팀에 복귀해 1993년 아르테미오 프랑키 트로피[52] 에 참가한다.
199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아르헨티나의 상대는 1992년 유로에서 우승한 덴마크. 전반 12분 아르헨티나 문전으로 올라온 크로스를 크라비오토가 걷어내려다 그만 자책골을 기록하며 이른 시간에 0:1로 끌려가게 된 상황에서 마라도나는 시메오네에게 패스, 시메오네가 바티스투타에게 패스를 주었고 그대로 바티스투타가 찬 공을 카니자가 골문으로 집어 넣으며 동점을 만든다.
경기는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하며 승부차기에 들어선다. 마라도나는 첫번째 키커로 나와 피터 슈마이켈을 상대로 정확히 왼쪽 골포스트 쪽으로 슛을 성공시킨다. 골드벡의 슛을 고이코체아가 선방해 내면서 다음 아르헨티나 키커가 승부차기를 성공하면 승리하는 상황에서 훌리오 살다나가 성공시키면서 우승을 차지한다.
3.12. 1994 FIFA 월드컵 미국
3.12.1. 지역 예선
축구계를 은퇴한 것만 같았던 마라도나는 34살의 나이로,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 출전한다. 이는 사실 자의반 타의반 떠밀려 나온거나 다름없는데, 마라도나가 은퇴한 아르헨티나는 지역 예선에서 콜롬비아에게 홈에서 무려 0:5라는 기록적인 대패를 당하는 등 졸전을 거듭하다 지역 예선에서조차 탈락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남미예선에서 브라질, 콜롬비아, 볼리비아에 밀려 탈락하게 되고 호주와의 플레이오프까지 몰리게 된다. 호주와의 경기에서 패배하면 미국 월드컵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 결국 여론은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마라도나를 다시 대표팀에 소집해야 한다는 데에 이른다. 결국 호주와의 플레이오프 직전 마라도나는 대표팀 복귀를 선언, 호주를 플레이오프에서 1승 1무(1무는 1:1, 1승은 1:0. 그나마도 그 골은 마라도나의 어시스트)로 꺾고 본선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기적적으로 본선에 진출했지만 당시 축구 관계자들은 아르헨티나는 우승 후보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53]
3.12.2. 조별 리그
마라도나는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골을 넣는데 관여했고, 후반 60분에 패스플레이를 통해 골을 기록하며, 4:0 대승을 거두는데 일조한다.[54]
이어지는 2차전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동점인 상황에서 빈 공간에 있던 동점골의 주인공 클라우디오 카니자에게 패스를 찔려주며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카니자가 그대로 결승골을 집어넣으며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결과는 2:1로 아르헨티나가 승리한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 본선에서 마라도나는 이미 전성기에 비해 운동 능력은 많이 하락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역시 천재적인 축구 감각만큼은 살아 있어서, 플레이메이커로서 팀을 진두지휘하는 면모를 보이며 아르헨티나는 초반 두 경기에서 6득점 1실점을 기록하며 지역 예선에서의 불안함을 씻어내고 브라질과 함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두 번째 경기 후 실시한 도핑검사에서 금지약물인 에페드린 양성 반응으로 미국을 떠나야만 했고,[55] 강자의 면모를 상실한 채 이 대회에서 이전까지 나이지리아에 3:0으로 지는 등 아르헨티나보다 당연히 한 수 아래라 여겨지던 불가리아한테 졸전 끝에 2:0으로 패해 조 3위로 떨어져 간신히 16강에 안착하는 한심한 상황이 연출되었다.[56]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버텼지만, 아르헨티나는 16강전에서 게오르게 하지의 루마니아와 난타전을 벌인 끝에 패하며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마라도나는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을 허무하게 끝낸 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단순히 위대한 축구 선수로서의 그가 끝났던 것이 아니라, 위대한 아르헨티나의 표상이 끝났던 순간이었다.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는 축구를 1년 넘게 쉬고 남미로 복귀한 34살의 노장이었음에도 자신이 출전한 2경기에서 완벽한 공수조율 플레이메이킹을 하면서 클래스를 보여줬다. 하지만 도핑에 걸리게 되고 월드컵에서 추방당하면서 플레이메이커를 잃게 된 아르헨티나는 무기력하게 월드컵에서 떨어지고야 만다.[57] 아르헨티나에 마라도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58]
4. 역대 대회 기록
이탈리아 관중들이 아르헨티나 국가 연주가 나올때 야유를 보내자 마라도나는 '''Hijos de puta(개새끼들)'''라며 분개했다.[47]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대부분의 팀들이 수비 위주의 전술을 펼친 까닭에 골 흉년이자 파울이 남발하던 다소 불명예스러운 대회였다.[48] 페드로 몬손은 역대 월드컵 최초로 결승전 퇴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49] 마라도나는 이 페널티 킥 판정이 부당했으며, 월드컵을 도둑 맞았다는 주장을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며, 시상식 내내 억울함의 눈물을 흘리는 마라도나의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50] 물론 8강전, 4강전 승부차기를 모두 승리로 이끌며 대회 베스트11에 선정된 고이코체아와 16강전 결승골, 4강전 동점골을 넣은 카니자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51] 놀랍게도 아르헨티나는 1990년, 2014년 모두 파란색 유니폼, 독일은 하얀색 유니폼을 입었다.[52] 이 대회는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챔피언과 코파 아메리카가 1985년과 1993년 두 번 개최한 협회 축구 대회였다. 유럽과 남미 최고의 클럽들이 참가하는 인터컨티넨탈컵에 동등한 국가대표 경기였으며 이 트로피의 명칭은 1983년 도로 사고로 사망한 고(故) 아르테미오 프란치 UEFA 전 회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85년 대회는 프랑스가 우루과이를 2:0으로 꺾고 승리했다.[53] 이러한 지역예선에서의 졸전 때문에 혹여 1994년 아르헨티나가 가장 약했던 시절로 알고 있는데 아이러니한건 1991년과 199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는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 때 아르헨티나는 코파 아메리카에서 그 브라질도 꺽는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였는데, 코파 아메리카에서의 경기력과 남미 예선에서의 경기력이 그야말로 천지차이인게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54] 바티스투타의 해트트릭과 마라도나의 활약이 컸다.[55] 에페드린을 단독으로 사용하면 약간의 체중 감량효과밖에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카페인과 함께 섞어 투여하면 38 또는 64%의 exhaustion cycle 증가 효과가 있다.출처 마라도나는 이런 식으로 7종의 약물 칵테일을 섭취한 혐의로 퇴출되었다. 이후 마라도나는 도핑 결과에 대해 FIFA의 음모를 운운하다가 20여 년이 지난 뒤 도핑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전체가 도핑을 했다.'''라고 말했다.[56] 3패를 기록한 그리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팀이 모조리 2승 1패를 기록한 상태였고, 아르헨티나는 불가리아와 득점과 실점까지 같았으나 불가리아에게 패하는 바람에 승자승에 뒤쳐져 3위로 밀렸다.[57] 수비형 미드필더로 참가한 페르난도 레돈도는 후방 조율과 볼운반은 출중해도 2선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58] 레돈도도 레돈도지만 이 때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월드컵에서의 경기력이 아쉬웠다. 물론 이 대회 5골을 넣긴 했지만 1991년과 199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무썅을 선보이며 조국의 연속 우승을 안긴 경기력만큼은 아니였다. 게다가 1991년과 1993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당시엔 디에고 마라도나가 없었을 때였다. 바티스투타가 코파 아메리카에서의 모습을 월드컵에서 그대로 보여주었으면 아르헨티나는 더 선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59] 금지 약물 복용으로 중도퇴출.[60] 콜롬비아와의 3위 결정전에서 패배하여 최종 순위 4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