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image]
홈페이지
문화방송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시즌에 걸쳐 방영되었던 100부작[1] 다큐멘터리. 일요일 밤 11시 30분이라는 시간대에 방영됐음에도 꾸준히 시청률 10% 정도 찍었던 다큐 방송 계의 레전드. 프로그램 제목처럼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을 거쳐 독재정권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벌어졌던, 알면서도 침묵을 강요당했거나 은폐되었던 사건들을 다시 추적하여 공개했다.
1화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출신이 아니라면 거의 들어보지 못한 4.3 사건을 다루면서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고, 1999년 방영된 실미도 특수부대 편의 경우 실미도 사건을 매체에서 최초로 공론화하였고 이것이 나중에 영화화도 되었다. 이외에도 이 프로그램에서 방송 사상 처음으로 다룬 소재들이 상당하다. 그만큼 시대의 금기에 도전했던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가려져 있던 역사의 단면을 과감하게 사람들 앞에 꺼내면서 많은 사회적 관심과 박수를 이끌어 냈지만, 반면에 극우 진영에서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라는 점을 들면서 편향성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이전[2] 에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은 역사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편향성을 논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문제였다. 때문에 보수 지지자들조차도 극우 진영의 주장에 동의 혹은 공감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또한 제작진의 전문성 부족인지 몇몇 편은 교차검증이 부족하고 근거가 부실한 음모론 비스무레한 내용이 나가기도 했다. 6.25 전쟁 당시 주한미군의 세균전 의혹과 구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흥남 앞바다에서 원자탄 핵실험을 했다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일제 원자탄 실험설의 경우 현실은 그나마도 해군과 육군이 따로 원자폭탄 개발 계획만 잡다가 종전으로 페이퍼 플랜화되어서 흐지부지되었다는게 통설.
경쟁 프로그램으로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KBS1에서 방영한 <인물현대사>가 있다.
에로영화 중에 다른 유명 영화나 드라마 등의 제목을 패러디한 영화들이 많은데 이 프로의 제목까지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 패러디된 제목은 <이제는 말과도 할 수 있다>(...) 이게 묘하게 웃긴 나머지 패러디 닉네임을 이렇게 짓는 경우도 가끔 있다.
컨츄리꼬꼬의 노래도 있다.
발매 2002.04
가사
1. 개요
홈페이지
문화방송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시즌에 걸쳐 방영되었던 100부작[1] 다큐멘터리. 일요일 밤 11시 30분이라는 시간대에 방영됐음에도 꾸준히 시청률 10% 정도 찍었던 다큐 방송 계의 레전드. 프로그램 제목처럼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을 거쳐 독재정권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벌어졌던, 알면서도 침묵을 강요당했거나 은폐되었던 사건들을 다시 추적하여 공개했다.
1화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출신이 아니라면 거의 들어보지 못한 4.3 사건을 다루면서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고, 1999년 방영된 실미도 특수부대 편의 경우 실미도 사건을 매체에서 최초로 공론화하였고 이것이 나중에 영화화도 되었다. 이외에도 이 프로그램에서 방송 사상 처음으로 다룬 소재들이 상당하다. 그만큼 시대의 금기에 도전했던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가려져 있던 역사의 단면을 과감하게 사람들 앞에 꺼내면서 많은 사회적 관심과 박수를 이끌어 냈지만, 반면에 극우 진영에서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라는 점을 들면서 편향성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이전[2] 에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은 역사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편향성을 논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문제였다. 때문에 보수 지지자들조차도 극우 진영의 주장에 동의 혹은 공감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또한 제작진의 전문성 부족인지 몇몇 편은 교차검증이 부족하고 근거가 부실한 음모론 비스무레한 내용이 나가기도 했다. 6.25 전쟁 당시 주한미군의 세균전 의혹과 구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흥남 앞바다에서 원자탄 핵실험을 했다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일제 원자탄 실험설의 경우 현실은 그나마도 해군과 육군이 따로 원자폭탄 개발 계획만 잡다가 종전으로 페이퍼 플랜화되어서 흐지부지되었다는게 통설.
경쟁 프로그램으로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KBS1에서 방영한 <인물현대사>가 있다.
2. 방송 리스트
- 시즌 1
- 1회 1999-09-12 제주 4.3
- 2회 1999-09-19 끝나지 않은 동백림 사건
- 3회 1999-10-03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
- 4회 1999-10-10 6.29의 진실
- 5회 1999-10-17 여수 14연대 반란
- 6회 1999-10-24 잊혀진 죽음들 - 인혁당 사건
- 7회 1999-10-31 박동선과 코리아게이트
- 8회 1999-11-07 박정희와 핵개발[3]
- 9회 1999-11-14 노근리 사건의 진실
- 10회 1999-11-28 20년의 침묵 - 김형욱 실종사건
- 11회 1999-12-12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강제 해직
- 12회 1999-12-19 실미도 특수부대
- 13회 1999-12-26 간첩? 이수근
- 시즌 2
- 14회 2000-06-25 ○○사단의 사라진 작전 명령서
- 15회 2000-07-02 일급 비밀! 미국의 세균전[4]
- 16회 2000-07-09 94년 한반도 전쟁위기
- 17회 2000-07-16 KT 공작의 실체, 김대중 납치 사건
- 18회 2000-07-23 녹화사업의 희생자들 - 군대가서 죽은 아들아
- 19회 2000-07-30 베트남전의 포로, 실종자들
- 20회 2000-08-06 일본 커넥션 - 쿠데타 정권과 친한파[5]
- 21회 2000-08-20 금기의 시대 - 건전가요와 금지곡
- 22회 2000-08-27 남북교류의 선행자들
- 23회 2000-09-03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 전태일과 그 후
- 24회 2000-09-17 분단의 너울, 연좌제
- 25회 2000-09-24 어둠속의 외침 -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6]
- 26회 2000-10-08 땅에 묻은 스캔들 - 정인숙 피살사건
- 27회 2000-10-15 민족일보와 조용수
- 28회 2000-10-22 고문, 끝나지 않은 전쟁
- 시즌 3
- 29회 2001-04-27 보도연맹 1 - 잊혀진 대학살
- 30회 2001-05-05 보도연맹 2 - 산 자와 죽은 자
- 31회 2001-05-11 장도영과 5.16
- 32회 2001-05-25 반민특위 - 승자와 패자
- 33회 2001-06-01 3억불의 비밀 - 한일 협정
- 34회 2001-06-08 조국은 나를 스파이라고 불렀다 -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7]
- 35회 2001-06-22 6.25 일본 참전의 비밀
- 36회 2001-06-29 푸에블로 나포 사건
- 37회 2001-07-06 또 하나의 분단 - 재일동포[8]
- 38회 2001-07-13 자유언론실천선언[9]
- 39회 2001-07-20 200억톤 물폭탄의 진실 - 금강산댐 사건
- 40회 2001-07-27 이승만을 제거하라 - 에버레디 플랜
- 41회 2001-08-03 마녀사냥 - 도시산업선교회
- 42회 2001-08-10 전향공작과 양심의 자유
- 43회 2001-08-17 박정희와 레드 콤플렉스 - 황태성 간첩사건
- 시즌 4
- 44회 2002-01-06 국가 보안법(1부) - 반공의 총과 칼
- 45회 2002-01-13 국가 보안법(2부) - 자유 민주주의를 위하여
- 46회 2002-01-20 비밀결사 - 백의사
- 47회 2002-01-27 버림받은 희생, 삼청교육대
- 48회 2002-02-03 김일성 항일투쟁의 진실[10]
- 49회 2002-02-17 강요된 해방구 -86년 건국대 점거농성 사건
- 50회 2002-02-24 북파공작원-조국은 우리를 버렸다
- 51회 2002-03-03 천황(天皇)을 살려라-도쿄전범재판의 흑막
- 52회 2002-03-10 53년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
- 53회 2002-03-24 재개발의 그늘, 폭력철거
- 54회 2002-03-31 8 · 18 판문점 도끼 사건
- 55회 2002-04-07 '정화작전, 삼청계획 5호'의 진실
- 56회 2002-04-14 '73인의 외침'-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 57회 2002-04-21 망각의 전쟁 - 황해도 신천 사건
- 58회 2002-04-28 91년 5월 죽음의 배후[11]
- 시즌 5
- 59회 2003-01-26 한반도 전쟁위기 1994 · 2003
- 60회 2003-02-02 미국의 검은 방패, 미사일 디펜스
- 61회 2003-02-09 섹스 동맹 - 기지촌
- 62회 2003-02-16 45계획, 10.27 법난의 진실
- 63회 2003-02-23 반한 베트콩, 한민통의 진실
- 64회 2003-03-02 강요된 화해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65회 2003-03-09 서해교전과 NLL
- 66회 2003-03-23 북파공작원-2
- 67회 2003-03-30 한국, IMF로 가다
- 68회 2003-04-06 노동자 의문사,박창수는 추락하지 않았다.[12][13]
- 69회 2003-04-20 USFK, 주한미군
- 70회 2003-04-27 동맹의 거울 - SOFA
- 71회 2003-05-04 인권의 무덤, 청송감호소
- 72회 2003-05-11 맥아더와 한국전쟁-1부,태평양의 시저
- 73회 2003-05-18 맥아더와 한국전쟁-2부,또 하나의 전쟁
- 시즌 6
- 74회 2004-02-29 3.1절 특집 독립투쟁의 대부, 홍암 나철
- 75회 2004-03-07 만주의 친일파
- 76회 2004-03-21 분단의 기원
- 77회 2004-03-28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병장
- 78회 2004-04-04 79년 10월, 김재규는 왜 쏘았는가
- 79회 2004-04-11 투기의 뿌리, 강남공화국
- 80회 2004-06-20 중국의 6.25 참전
- 81회 2004-06-27 ‘신의 아들’과의 전쟁
- 82회 2004-07-04 1972년 7월 4일, 박정희와 김일성
- 83회 2004-07-11 1994년 그 해 여름-조문 파동과 공안정국
- 84회 2004-07-18 <한국전쟁과 포로> 3부작 1부 : 철조망 속의 지배자들
- 85회 2004-07-25 <한국전쟁과 포로> 3부작 2부 : 철조망 속의 전쟁
- 86회 2004-08-01 <한국전쟁과 포로> 3부작 3부 : 철조망의 안과 밖
- 시즌 7
- 87회 2005-03-20 <육영수와 문세광> 1부 :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알았다
- 88회 2005-03-27 <육영수와 문세광> 2부 : 문세광을 이용하라
- 89회 2005-04-03 8인의 사형수와 푸른 눈의 투사들
- 90회 2005-04-10 허문도와 국풍81
- 91회 2005-04-24 <한국의 진보> 3부작 1부 : 공장으로 간 지식인들
- 92회 2005-05-01 <한국의 진보> 3부작 2부 : 인민노련[14] 혁명을 꿈꾸다[15]
- 93회 2005-05-08 <한국의 진보> 3부작 3부 : 혁명의 퇴장,떠난 자와 남은 자
- 94회 2005-05-15 무등산 타잔 박흥숙
- 95회 2005-05-22 스포츠로 지배하라! - 5공 3S정책
- 96회 2005-05-29 10.26 궁정동 사람들
- 97회 2005-06-05 프락치
- 98회 2005-06-12 끝나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 일본의 원폭개발
- 99회 2005-06-19 2005 한반도 위기 '북한은 핵을 갖고 있다'
- 100회 2005-06-26 100회 특집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7년의 기록>
3. 여담
에로영화 중에 다른 유명 영화나 드라마 등의 제목을 패러디한 영화들이 많은데 이 프로의 제목까지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 패러디된 제목은 <이제는 말과도 할 수 있다>(...) 이게 묘하게 웃긴 나머지 패러디 닉네임을 이렇게 짓는 경우도 가끔 있다.
컨츄리꼬꼬의 노래도 있다.
발매 2002.04
가사
[1] 시즌 1과 6는 13회, 시즌 7 14회, 시즌 2~5 15회.[2] 문민정부의 김영삼도 최소한 6월 항쟁과 1989년까지는 민주화세력의 주요 지도자 중 한명으로 꼽혔으나, 이후 3당합당을 기점으로 기존 보수 질서에 반 쯤 편입되어 버린지라 보통은 진보 취급을 안 해준다.[3] 2004년에 나온 관련기사. 박정희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계획 배경-전모. 참고로 이 기사는 나중에 황우석 사건에서 맹활약하게 되는 강양구 기자가 작성했다.[4]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뒤집히자 미군이 한반도 북부지역에 세균무기를 사용했다는 내용. 실제 전쟁 직후부터 공산권에서 이런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여러가지로 개연성이 부족한 음모론이란게 대부분의 평가다.[5] 가장 대표적인 세지마 류조에게만 연결되어 있지만, 일본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나 한국정치사에 '코다마 불충사건'이라는 유명한 일화까지 낳은 야쿠자 코다마 요시오 등도 다루어졌다.[6] 5.18의 직접적 영향에 있는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이 가장 먼저 있었고, 그 다음이 부산, 이어서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 사건,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순으로 이어진다.[7] 구미시에 있던 유학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간첩단으로 주장한 사건. 2019년 시점에서 한국에서는 재심이 없었지만, 미국에서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보도한 신문사들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했다.[8] 민단 vs 조총련의 이념대결.[9] 여기서 이어지는 것이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이고, 이 때 해고된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만든 신문사가 한겨레이다. 선언은 동아일보 기자가 했는데, 링크는 한겨레에 걸려 있는 것이 그 때문. [10] 보천보 전투와 김일성 가짜설을 다루었다.[11]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도 참조할 것.[12] 유튜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ejwr74grQI.[13] 박창수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자 전노협 중앙위원으로 1991년 파업 도중에 구속되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5월 6일 의문의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남자의 방문을 받은 후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는데 그 이후 추락사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노태우 정권은 병원에 엄청난 수의 백골단을 투입해서 영안실 벽에 구멍을 뚫고 시신을 강제로 탈취한 다음에 일방적으로 자살로 발표하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김종빈 검사는 훗날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총장이 되었다. 훗날 병원 내부에 다수의 안기부 요원들이 박창수를 감시하고 있었다는게 확인되었으나, 2004년에 노무현 정부의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규명불능'으로 사건을 종결하였다. 그러나 박창수 씨는 2014년에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로 인정받았다.[14]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의 약칭.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존재하던 현장 노동계급에 기반을 둔 가장 큰 전위운동조직으로 이름과 달리 실제 활동범위는 전국구였다. 1991년 노동자 계급 혁명노선폐기와 공개적인 진보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신노선을 발표하고,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을 공식 창당하였다가, 민중당(1990년)과 손을 잡고 1992년도에 통합민중당을 만들면서 사라졌다. 당시 인민노련의 지도부는 노회찬(정의당.국회의원), 조승수(정의당.전 국회의원), 송영길(더불어민주당.전 인천시장), 신지호(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등이었다.[15] 당시 PD계열이었던 인민노련 지도부와 새롭게 떠오른 NLPDR 주사파와의 이념 투쟁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다.[16] 백일째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