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

 




'''제7대 울산광역시장
송철호
宋哲鎬 | Song Cheol-ho
'''
'''출생'''
<colcolor=#000000>1949년 5월 26일 (75세)
경상남도 부산시 보수동[1]
'''본관'''
여산 송씨
'''현직'''
울산광역시장
'''재임기간'''
제7대 울산광역시장
2018년 7월 1일 ~ 현직
'''외부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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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colbgcolor=#00959e> '''가족'''
배우자 홍영혜[39], 슬하 2남 2녀, 형 송정호[40]
'''신체'''
176cm, 85kg, B형
'''종교'''
천주교(세례명 : 토마스 모어#)
'''학력'''
부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행정학 / 학사)
울산대학교 (행정학 / 석사)
'''병역'''
육군 상병 만기전역
'''소속 정당'''

'''경력'''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제14기 사법연수원 수료
현대중공업노동조합 고문변호사
현대자동차노동조합 고문변호사
울산노동법률상담소 소장
울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KTX울산역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울산YMCA 이사장
제7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장관급)
법무법인 정우 변호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고문
제7대 울산광역시장(민선7기)

1. 개요
2. 생애
2.1. 정치 행보
2.1.1. 당선 이전
2.1.2. 당선 이후
2.1.2.1. 코로나19 초기 대응 실책
3. 논란
4. 8전 9기의 낙선 기록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여담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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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변호사 출신 정치인. 민선 7기 제7대 울산광역시장.
과거에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부울경 지역의 인권 변호사 3인방으로 불렸다.
울산광역시의 제7대 시장으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선 최초의 민주당계 정당 소속 울산광역시장이기도 하다. 1992년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분으로 14대 총선 때 울산에 도전장을 내민 이후, 2018년이 될 때까지 재보선-총선-지선을 모두 합쳐 8번의 고배를 마시고 아홉 번만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청와대까지 개입한 부정행위를 통해 이룬 결과라는 의혹을 받아 수사를 받고 있다.

2. 생애


1949년 5월 26일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2][3] 1968년 부산고등학교(21회)를 나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회사를 다니다가 사법시험에 뒤늦게 뛰어든 그는 1985년에야 부산에서 변호사를 시작해 문재인 대통령보다 출발은 늦었다.
1987년, 아는 선배와 함께 울산으로 활동 지역을 옮겨 노동자 대투쟁 때부터 노동 운동을 시작한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노조의 변호를 시작으로 부울경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했다.[4] 노무현이 3당 합당에 반대하고 지역구도 타파를 기치로 들었을 때 후배 송철호에게 울산에 출마하라고 권했다고. 그때부터 8전 9기의 인생역정도 시작된다. 14대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울산시[5] 중구에 첫 출전했다.

2.1. 정치 행보



2.1.1. 당선 이전


1992년 14대 총선에선 3위(15.4%)로 낙선했고[7] 4년 뒤 15대 총선에선 통합민주당 후보로 35.7%를 득표했으나 2.6%의 차이로 신한국당 김태호 후보에 패했다.[8] 이때만 해도 당선 가시권이었지만 1997년 이기택통합민주당신한국당에 넘길 때 영남 바닥조직들이 대부분 신한국당으로 넘어가고 만다.[9]
2회 지방 선거에서 39.4%의 득표율로 한나라당 심완구 전 시장의 재선을 위협했지만 3%p 차이로 낙선했고, 16대 총선에서도 중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38.2%를 득표함으로써 김태호 후보에게 9%p 차이로 낙선했다.
2002년 지방 선거에서는 울산 전통의 강호 민주노동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하는 대신, '''일단 입당 후 경선으로 단일 후보가 되라'''는 조건이었다.[10] 송철호는 울산에서 오랫동안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 인지도야 있었다지만 조직력에서는 민주노총 울산본부를 기반으로 한 민주노동당에 게임이 안 됐다. 그런데 '''울산연합 김창현을 경선에서 이겨버렸다!''' 이는 민주당 경선에서 이인제를 거꾸러트린 노무현의 업적에 비견될 만큼의 충격이었는데, 송철호의 인권 변호사 경력과 중도 확장성을 염두에 둔 민노당원들의 전략적인 선택이었던 듯하다.
울산시장 진보 단일 후보로 선출된 후, KTX 경부고속선 울산역 유치, UNIST(울산과학기술원) 설립 등을 공약으로 내걸며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를 상대로 초반 우세를 보였으나[11] 월드컵으로 인한 낮은 투표율 및 진보 지지층의 이완, 상대 후보의 극심한 지역주의 네거티브[12] 등의 요인으로 인해 43.8%를 얻어서 약 9.4% 차이로 석패했다. 다행히도 KTX 울산역 설치는 이듬해에 갓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으로 실현되긴 했다.
그 후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마하자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 울산시당 창당과정에 참여했고,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울산시당 지부위원장을 지내며 2004년 총선에도 출마하고자 했으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발목이 잡히며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의해 공천 배제되었다.
이후 2005년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국민고충처리위원장에 임명되어 공직에 몸담았고 차기 대선을 앞두고 위원장직에서 사퇴하여 정동영 후보 대통합민주신당 울산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정권을 넘겨준 뒤 곧이어 치뤄진 총선에선 지역배려 차원에서 통합민주당 영남측 비례대표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현실화되지 못했으며 그 뒤 탈당계를 제출해 잠정적으로 정계를 떠난 듯 보였다.
그러나 2011년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주도한 '혁신과 통합'의 인재영입 활동 일환으로 특히 문재인 이사장이 낙동강 벨트 재건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영입을 제의함에 따라 민주통합당으로 복당하여 정계에 복귀한다. 그 후 본인의 세 번째 중구 지역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2002년 작고한 김태호 의원 이후 중구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은 3선 현역 정갑윤 의원를 상대로 36.0%를 얻고 낙선해 6번째 고배를 마신다.
그 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3선 출마 제한에 걸린 기존 시장 박맹우 대신 울산광역시 남구 을 지역의 김기현을 시장 후보로 내세우며 남구 을 지역구의 보궐선거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이에 출마하기 위해 남구로 주 활동지를 옮기게 된다. 여기에 당시 정의당 조승수 울산시당위원장이 울산광역시 야권 및 민주노총, 시민사회에 "무소속 시민후보를 내자"고 제안하며 이에 통합진보당을 비롯, 야권이 호응하며 송철호를 무소속 단일후보로 추대코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에 소속 정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탈당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렇게 범야권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13] 당선가능성을 높이는 듯 보였으나 최종 44.18%의 득표율[14]로 박맹우와의 리턴매치에서 다시 패배하고 만다.
그 뒤 2016년 20대 총선에선 '''마지막'''이란 말까지 덧붙이며 출마하였으나 동구, 북구에선 성사된 단일화가 남구에선 더불어민주당측의 거부로 무산되며 약 1000여 표 차이로 박맹우 후보에게 세번째로 패배한다.
2017년 현재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복당하여 울산시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내년 2018 지방선거에서 강력한 울산광역시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현직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는 현 시장 김기현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기대되고 있는데 김기현의 재선 출마 여부와 진보진영의 단일화 성사 여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울산 시민들의 여론에 따라서 2018 울산시장 선거는 각기 다른 결말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현역 김 시장의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다자간 구도에서는 패배, 단일 구도에서는 승리라는 여론조사가 나와 진보진영의 단일화 구도가 이루어 질지 주목된다.*
다만, 지금까지의 '''선거에서 탈당과 복당 그리고 이적 등 그간 당적을 변경했던 이유'''와 '''이번이 마지막 선거라고 했던 말을 2번이나 번복한 점'''[15]에서는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할 듯 보인다. 그리고 새롭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정치적으로 야당의 입지가 많이 줄었기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이기에 이번에도 당선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어쨌건 2018년 1월 3일, 6.13 지방선거 울산광역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시장으로선 3번째이자 총선까지 합치면 본인의 9번째 출마. 당내에선 임동호 울산시당위원장, 심규명 변호사와 경선이 유력한 상태이다.
2018년 3월 12일 송철호의 친형인 송정호 전 법무부장관이 이명박 정부 시절 불법자금 수수 의혹으로 인해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았다. 송철호는 신문사의 인터뷰에서 “형님은 MB와 대학동기로 대선 당시 후원회장으로 이름만 올렸을 뿐이며, 평생 강직하고 청렴한 법조인으로 살아 오셨다”며 “청계재단 이사장을 맡으신 것도 장학사업을 주로 하는 사회공헌사업을 돕기 위한 것”[16]이라고 말했다.
2018년 4월 3일, 울산광역시장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단수공천이 확정되었다. # 다만 이 단수공천은 당헌 위반으로 인한 논란이 있어 임동호, 심규명 양 후보 모두 재심을 요청한 상태이나 결국 2018년 4월 7일 기각되고 양 후보 모두 결과에 승복하여 울산시장 후보로 확정되었다.
2018년 5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울산광역시장 후보로 정식 등록하였다. #
그리고 마침내 2018년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울산광역시장으로 '''당선'''되었다.

2.1.2. 당선 이후


취임 직후 박맹우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송병기를 정무부시장 격인 경제부시장으로 임명하였다.
지선 당시 김기현 전 시장을 10%p 이상의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었다. 9월 말~10월에 실시한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직무수행평가에서 15위로 박남춘, 오거돈에 이어 뒤에서 3등이고 이전 조사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가장 최근인 2018년 11월 조사한 평가에서는 아예 최하위를 기록했다(...).#
새해 시도지사 평가에서는 12위로 올라갔다.[17] 그러나 2019년 1월 8일에 발표된 12월 조사에서는 다시 한번 꼴찌를 차지하였다. #
1월 조사에서는 다시 한번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 2월 조사에서도 역시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나 바로 윗 단체장과의 지지율은 더 벌어져 지지율이 32.4%로 16위인 김경수 지사의 43%보다 10%p 이상 더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현대중공업 본사 이전[18]과 관련된 노조 시위에서 삭발을 하며 시위 현장에 전면으로 나서 삭발식을 하고, 주주총회가 강행되어 통과된 직후엔 유감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지역 내 평가가 좋지 않은 편이고, 그 결과로 2019년 6월에 발표된 지지율까지 포함하여 8개월 동안 시도지사 최하위인 17위를 유지하고 있다.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태화강의 국가정원 지정에 성공하고, 부유식 해상풍력단지 추진에도 성공하는 등 여러가지 일을 해내고 있는 상황.
2019년 5월 태광산업 방폐물 불법 보관 사건 관련,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태광산업 방사성 폐기물이 도심 한복판에 있어서 될 일이 아니다"라면서 조속한 처리를 담판지었다. 20년을 민간 최대 방폐물로 시내에 보관되던 방폐물 처리에 전환점을 만든 것으로 인근 주민들이 안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9년 12월 시도지사 지지율에서 위에 상기했던 문제들이 터지는 바람에 비슷하게 평가가 좋지 않은 오거돈 부산시장을 제치고 20%대까지 지지율이 떨어졌다. 기사
2020년 들어서 코로나19 위기와 나쁜 지역 여론 속에서도 어려워진 자동차 업계 지원을 위해 주52시간제 한시유예를 추진하는 등 소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20년 2월 19일, 태광산업 방폐물 불법 보관 사건 처리 과정에서 고사천, 장생포 방향으로 2.25톤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울산지역 5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공장에 보관된 방사성물질을 즉각 경주 방폐장으로 보내야 한다"고 촉구했고 시정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곧 처리된다는 방폐물의 형질조차 파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시민 불안이 확산됐기 때문. 이 문제가 울산시장 입장에서 선결 과제인 것은 이때 국회에서 확인된 태광산업의 방사선 수치가 '''7.46μSv/h'''(시간당 마이크로밀리버시트)에 달해 그린피스 발표, 가장 심각한 후쿠시마 핫스팟의 수치인 '''5.5μSv/h'''를 웃돌았기 때문[19]이다.
2020년 4월 15일 열린 21대 총선에서 울산 지역구 국회의원 6석 중 북구를 제외한 나머지 5석을 통합당이 차지하면서 더욱 부담이 커지게 된데다, 4월 시도지사 여론조사에서 또다시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래도 그나마 지지율이 소폭 상승해 30% 대를 기록했다.
2020년 6월 5일에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3.6%p 오른 34.5%대를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최하위를 기록중이긴 한데, 더 이상 혼자 30%대를 기록하지는 않게 되었다.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의 지지율이 쭉쭉 떨어져 39.4%까지 내려오면서, 30% 대 동료가 한 명 생겼기 때문이다(...) #
2020년 6월 22일, 울산광역시 코로나 지역감염 발생 0명 100일째를 맞이하였다.
2020년 7월 14일, 리얼미터 정례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 월간조사에서 전월보다 2%p 하락한 32.5%에 그치면서 2달 연속으로 권영진 대구시장과 유이한 30%대 지지도를 가진 광역자치단체장이 됐다.#
자일대우상용차의 울산공장 폐쇄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울산 철수를 막지 못했다.
2020년 11월과 12월에 리얼미터에서 조사한 월간정례 전국 광역단체 평가 조사에서 28.9%로 다시 떨어졌다(...) 14위인 박남춘 인천시장(38.1%)과도 무려 9.2% 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21년 1월 7일에 발표된 2020년 하반기 한국갤럽 조사에선 긍정 43%, 부정 41%로 긍정평가가 상반기 대비 7% 증가하고 부정평가는 무려 11%나 감소하면서 골든 크로스를 이루었다. 모처럼만에 최하위권을 탈출하긴 했지만 순위는 12위였다. 송 시장보다 더 낮은 순위를 기록한 인물은 13위 원희룡 제주도지사, 14위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이 있다. 참고로 세종특별자치시는 표본 수 미달로 조사 결과에서 빠졌다.# 갤럽에서는 코로나19 대처와 함께 대규모 선박 수주 등 조선업 상황이 개선된 것이 크게 개선된 것이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한편 18일, 울산시에서 송철호 시장의 공약 이행률을 분석한 결과 80.5%에 달한다고 밝혔다.#

2.1.2.1. 코로나19 초기 대응 실책

2020년 2월 22일 울산 내 첫 번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자가 나온 이후로 추가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초반 송철호 시정의 행정력이 여러차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 우선 울산1번 확진자의 이동경로에 대해 초기 대응이 문제가 되었는데, 울산 지역 내에서의 동선만 공개하여 확진자가 거주하는 대구나 여행 차 방문한 부산 내에서의 동선은 함께 공개하지 않았고, 시 차원에서 이동경로를 발표한 이후 늦은 저녁 울산1번 확진자가 울산 남구 무거동 소재의 신천지울산교회를 2월 16일에 방문한 사실이 추가적으로 밝혀지는 등 혼란이 지속되었다.[20]
  • 확진자 이동경로가 담긴 안전안내문자 발송이 타 지자체에 비해 심각하게 느리고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으로 울산1번 확진자에 대한 안전안내문자 내용은 이동경로가 담긴 게 아니라, 단순히 '울산시 홈페이지에 이동경로 게시'라는 통보가 전부였다. 이 때문에 시민들이 정보 확인을 위해 울산광역시청 홈페이지로 몰려가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21] # 거제1번 확진자[22]와 울산2번 확진자가 연달아 발생한 이후부터는 이동경로를 안전안내문자로 발송하고 있으나, 빠른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
  • 울산4번 확진자가 검사 후부터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이틀간 자가격리를 실시하지 않고 두 번이나 새벽기도를 나가는 등 야외를 활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 이에 대해 울산시 역학조사 관계자는 "확진자가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질병관리본부 지침상 자가격리대상이 아니어서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질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응지침(지자체용)에 따르면, '의사의 소견에 따라 신종 코로나가 의심되는 환자는 자가격리가 원칙'이라고 명시되어 있다.[23] 결국 안일한 확진자 관리로 인해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만 높인 꼴이 됐다.

3. 논란



3.1.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



검찰이 송철호 울산시장의 측근 송병기 울산시 부시장의 업무 일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임종석 비서실장을 통해 2017년 10월 송철호 시장에게 울산시장 출마 요청을 했고, 이 직후 청와대가 송 시장의 당내 경쟁자를 정리하려 했다는 취지의 메모를 발견하였다.#
송병기 부시장의 2017년 10월 13일 업무 일지엔 '(대통령) 비서실장 요청'이란 제목의 메모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임종석 전 실장이 송 부시장에게 특정한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메모엔 대통령을 가리키는 'VIP'라는 말이 나온다. 'VIP가 직접 후보 출마 요청 부담(면목 없음)으로 실장이 요청'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송 시장 출마를 원하고 있으나 직접 요구를 하기엔 '면목'이 없어, 이 요청을 비서실장에게 대신하게 했다는 것이다.
다른 메모를 보면 'VIP 출마 요청'이 적혀 있는 2017년 10월 13일 메모 하단엔 송철호의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A, B씨에 대한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A(○○발전), B(자리 요구)'라고 돼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송 시장의 경쟁 후보들을 다른 자리로 보내는 식으로 '교통정리'를 하려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메모엔 송철호의 당내 경쟁 상대 B씨가 지목되며 '중앙당과 BH(청와대), B 제거→송 장관 체제로 정리'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박근혜의 '공천 개입' 사건과 유사하다는 법조계 지적이 나온다.'''[24]
경향신문에 따르면 청와대가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울산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이던 무소속 강길부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송철호를 지지하게 하려고 “정무적” 조치를 논의한 정황이 나왔다.#
송철호 후보의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억울하다"며 "송철호 시장은 늘 반칙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데려온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임동호 전 최고위원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자리 제안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한병도 당시 정무수석비서관이 울산시장 경선 불출마를 권유하면서 고베 총영사 자리를 제안했고, 본인이 이를 거절하자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도 미안하다는 취지로 연락을 했다는 게 임동호 전 최고위원의 주장이다. # #
송병기 부시장의 업무수첩에는 '당내 경선에서는 송철호가 임동호보다 불리하다'는 메모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한편 자유한국당은 임종석과 한병도를 검찰에 고발했다. #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송철호 시장 측이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최고위원측에 출마를 포기하는 대신 자리를 제안했다는 임동호 전 위원측의 진술이 있었다고 한다.
송병기 울산 부시장의 수첩에 "임동호 처리 건, 과기부 차관, 빅10 공기업 사장, 오사카 총영사 요구"라는 메모가 있는 걸 검찰 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송철호 캠프 내에서 임 최고위원 경선 포기 대가로 여러 논의가 있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공직선거법은 당내 경선에서 자리 제공 의사를 표명하는 것도 위법행위로 보고 있는데 송병기의 수첩에는 '청와대 보고'라는 말과 함께 물 문제, 원전해체센터, 공공의료기관 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였다.
검찰은 이와 관련 2018년 1월 송철호와 만남을 가진 장 모 전 청와대 균형발전 선임행정관도 불러 관련성을 조사했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국회의원의 공소장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해서 추미애 현행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이 공소장 제출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공소장은 자의적이고 비밀스러운 기소를 막기위해 '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갈만큼 당연히 공개되며,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비공개 됨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선출한 입법부가 삼권분립에 따른 감찰행위를 수행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것.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해 제 필요할때만 삼권분립을 운운한다며 비판이 쏟아지는 분위기다.
#
2019년 11월 하순에 들어 전임 시장 김기현의 낙선과 송철호 시장의 당선에 큰 영향을 미쳤던 울산지방경찰청의 측근 비리 수사가 청와대가 배후에 있는 선거 개입 기획 수사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낮은 시정 평가와 함께 묶어 재선은 불가능해질 가능성은 물론 정치 생명이 끝장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2020년 1월 29일, 검찰이 송철호 시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4. 8전 9기의 낙선 기록


어지간한 후보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낙선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시장, 국회의원 낙선기록을 모두 합치면 무려 '''8번'''으로(국회의원 후보로 낙선한 기록 6번, 울산광역시장 2번.) 청와대로 간 양산시송인배[25], 이미 정계를 은퇴한 부산광역시김정길 후보[26]도 한 수 접어줄 정도.[27] 특히 박맹우 후보와의 전적은 3전 전패로 단 한 번도 맞붙어 이겨본 적이 없다.[28] 이렇기에 20대 총선 때 지지자들이 "우리 송철호 변호사님 좀 제발 국회에서 일하게 해주세요"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2018년 제7대 지방선거에 출마했는데 아예 '''울산 홍진호'''라는 수식어로 기사가 떴다. 그리고 정계입문 이후 26년 만에 드디어 그동안의 한을 일거에 날리는 52.8%의 과반 대승을 거두면서 칠순을 앞두고 생애 첫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지역구를 중심으로 활동해야 하는 국회의원과는 달리 울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울산시장 자리에 올랐으니 국회의원 낙선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29]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2 - 1995
정계 입문

1995 - 1997
합당[30]

1997 - 2002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02 - 2003
입당

2003
열린우리당 합류를 위한 탈당

2003 - 2005
입당

2005 - 2008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

2008
입당

2008
합당[31]

2008 - 2011
정계 은퇴

2011 - 2013
입당
정계 복귀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합당[32]

2014 - 2017
지선 출마를 위한 탈당

2017 -
복당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 중

19,685 (15.42%)
낙선 (3위)
[33]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39,743 (35.73%)
낙선 (2위)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광역시장

148,126 (39.44%)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울산 중
33,548 (38.16%)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광역시장

162,546 (43.61%)
[34]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울산 중

37,412 (37.51%)
[35]
2014
상반기 재보궐선거
울산 남 을

16,379 (44.19%)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28,216 (40.64%)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광역시장

'''317,341 (52.88%)'''
'''당선 (1위)'''
'''초선''' [36]

7. 여담


  • 울산의 노무현으로 불린다. 둘 다 인권변호사로 노무현은 부산에서, 송철호울산에서 지역구도 타파의 기치를 걸고 낙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2002년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됐지만 한 사람은 또 낙선했다. 후보 단일화 때문에 당적을 민주노동당으로 잠깐 옮기기까지 했었는데 무위로 돌아갔다. 원래 노무현, 문재인과 부울경 인권변호사 3인방으로 유명했고, 문재인의 30년 절친이며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나이로는 노무현보단 동생이고 문재인보단 형이지만 법조인으로선 제일 후배이다.
  •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도 송철호는 계속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갓 40을 넘긴 상황에서 시작된 도전이 당시 60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울산시당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울산 지역의 선거를 진두지휘 했지만, 또 지역주의의 벽 앞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노 대통령은 낙심한 그를 안타깝게 여겨, 2005년에 국민고충처리위원장 자리를 맡겼다. 그러던 와중에 어느덧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이 되었는데, 그때 그에게
> 盧: 내 대통령 퇴임 끝나고 나서 우리 (선거) 또 나가자.
> 宋: 대통령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동안 대통령님이나 저나 그렇게 깨지고 이제 대통령님까지 하셨으면 명예도 있고 그만하셔도 안 되겠습니까?
> 盧: 무슨 소리고. 우리가 지역주의를 극복했나? 지역주의가 하나도 극복이 안됐는데 우리가 대통령 뱃지 하나있고 당신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인데 그거 한 번 했다고 만족한단 말이가. 또 깨지더라도 더 부딪히고 이 지역주의가 극복될 때까지 또 싸워야지!
> 宋: 대통령님 임기 마치고 나가시면 분명히 또 떨어집니다.
> 盧: 떨어지더라도 해야지. 세계에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준이 이거 밖에 안 된다고 보여줘야지.
> 宋: 그러다가 해외토픽에 나옵니다.
> 盧: 해외토픽 나오면 더 좋지.
라고 했다고 한다.
  • 거듭된 낙선으로 인해 송철호 본인도 2011년에는 정치를 아예 관두자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몰래 이사까지 갔는데, 당시 문재인 변호사가 이호철 전 민정수석을 보내 만나자고 해서 만났더니...
> 文: 형! 이사했다며?
> 宋: 응.
> 文: 다시 이사가소!
> 宋: 내는 내 마음대로 살지도 못하나?
> 文: 그게 운명인데 어쩝니까?
그래서 넉 달 만에 다시 되돌아 갔단다. 그리고 정말 7년 뒤에 울산시장이 되면서 한을 풀었다.
  • 위 두 문단을 정리하면 2018년 6월, 8전 9기 만에 울산시장에 당선된 송철호는 당시 본인이 계속된 낙선에 지쳐 그만두려고 했는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이 얼마 안 남았을 당시 아직 지역주의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자신이 물러나면 우리 선거에 또 나가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노무현의 나이상 대선을 제외하고 선거에 다시 도전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37]

송철호는 이미 깨질 대로 깨지고 이미 대통령까지 하신 몸이 명예도 있으면 그만해도 되지 않냐고 하자 지역주의가 전혀 사라지지 않았는데 대통령 한 번 했다고 만족하냐면서 또다시 부딪쳐서 지역주의 극복할 때까지 싸울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은 문재인까지 합쳐 부울경의 인권변호사 및 노동변호사 3인방으로 유명했던 인물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노무현이 부산에서 도전하고 대통령이 된 동안 송철호는 울산에 계속 도전하고 낙선하는 상태였다. 그는 당시 포기하려고 하던 후배에게 같이 싸우자고 했던 것이었다.[38]

훗날 노무현이 세상을 떠난 후에 송철호는 연속된 낙선으로 포기하려 하자 당시 노무현의 운명을 이어받아 노무현의 뜻을 이루려 했던 문재인 변호사에게 그게 우리 운명인데 어쩔 겁니까 하여 강요(?)로 도전 그만두지 못하게 막았다고 한다. 그리고 송철호 변호사는 8전 9기 끝에 제7회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으로 당선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당시 송철호 변호사는 무서운 사람들에게 걸렸다면서 쫄았다고.
  • 원래 그의 가족은 일정 때 만주에서 살다가 해방 후 부산으로 왔고 송철호도 부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 댁인 익산에서 사춘기를 보냈다고. 그럼에도 송철호는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아버지는 부산에서 혼자 돈을 계속 버셨는데 송철호가 부산고 시험에 합격하자 그제서야 아버지와 같이 살 수 있었단다. 그의 정적들은 울산 선거에 나온 그를 '전라도'라며 깠는데, 이게 실제로 먹혀 계속 고배를 마셔야 했다.
  • 당선 이후, 부울경의 당선된 민주당 정치인들이 봉하마을로 가서 고 노무현 대통령에 있는 묘에서 참배를 하였다. JTBC 기자와의 답변에 이렇게 답하였다.
> 대통령님이 새삼 그립고 그 높고 깊은 그 뜻이 새삼 이 땅을 지키고 계시구나.
  • 송정호 변호사는 검사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냈지만, 2007년 대선에서는 MB맨이 됐다. 후원회장이 돼 이명박의 당선을 도왔으며 청계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 2014년 7.30 재보선 때 당시 문재인 의원이 같이 선거 유세를 다녔었다. 식사 영상. 당시 울산 남구 을 지역구는 새누리당 김기현 의원이 울산시장이 되면서 공석이 된 상태였다. 무소속이지만 야권 단일 후보였던 송철호는 새누리당 박맹우 후보에게 패배(55% : 44%)하긴 했으나, 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했던 진보 성향 후보가 얻은 득표율 중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약 3년여 뒤 문재인 의원은 우리나라의 열 아홉 번째 대통령이, 송철호 당시 후보는 일곱 번째 울산시장이자 역대 첫 민주당 소속 울산시장이 됐다. 다만 14대 재보궐때와 16대 총선때는 무소속으로 나와서, 일부 보수성향표가 송철호에게 갔을 확률이 있다.
  • 영화 변호인에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를 변호하기 위해 참석한 100여인의 변호사 명단 중 깨알 등장한다.
  • 2020년 연기대상에서 새해 연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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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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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2] 본인피셜로는 그의 가계는 일제강점기중국 둥베이에서 살았는데, 그래서 형 송정호 전 법무장관은 선양(도시)에서 태어났다고. 해방 후 가족이 모두 월남하면서 본인은 부산 태생이 됐단다. 형이 익산 태생으로 잘못 알려진 이유는 모친이 돌아가신 후 7남매가 익산 할머니 댁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기사[3] 부산 보수초교에서 익산 팔봉초교로, 익산 남성중을 졸업했다.[4] 당시 PK(현재의 부울경)에서 가장 유명한 노동-인권 변호사로 셋을 꼽자면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송철호가 꼽힐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세 사람은 실제 오랫동안 재야에서 함께 손을 잡고 활동했다.[5]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한 것은 1997년.[6] 그 김태호 전 경남지사 아니다.[7] 1, 2위였던 통일국민당 차화준 후보와 민주자유당 김태호[6] 후보 사이의 격차는 '''11표'''차였다.[8] 당시 같은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간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득표율이 '''3.5%'''로 표가 분산되지 않았다면 당선되었을 득표율이었다.[9] 이 여파로 19대 총선20대 총선에서 낙동강 벨트의 재건이 어느정도 이루어지기 전까지 부울경 지역은 민주당 계열 정당들에게 줄곧 불모지로 남아있었다.[10]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긴밀히 연락하여 영남에서 승산이 있는 곳은 울산광역시 하나뿐이라며 반드시 승리해줄 것을 당부했기 때문에 평소 생각도 안 한 민주노동당 당적까지 갖고 도전했다고.[11] 선거 전 마지막 울산MBC 여론조사까지 18% 격차로 앞서고 있었고 기사 박맹우 후보 측에서도 열세임을 인정하고 있었을 정도였다.[12] 본인과 송철호의 부친이 영남이 아닌 호남(전북) 출신이라는 내용이었다. 한 지역 일간지는 대놓고 호남 출신이 어떻게 울산광역시장이 될 수 있냐는 식의 기사가 실린 호외를 거리에 뿌렸다고(...) 당연하지만, 송철호는 부산 출신에다, 행정관료로 97년부터 있었고, 박맹우는 울산 관련 정치생활이 당시 기준으로 고작 5년이었다.[13] 본래 소속 정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 통합진보당, 정의당 모두 자체적으로 후보를 내지 않았으며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은 송철호 후보 선거사무원으로 등록까지 하고 그의 선거운동을 도왔을 정도.기사[14] 울산광역시가 생긴 이래 진보성향 후보로 울산광역시 남구 을 지역구에서 얻은 최고 득표[15] 2014년 보궐선거, 2016년 총선까지 총 2번. 만약 내년 지방선거까지 출마하게 되면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한번 더 써야할 것이다.[16] 출처 http://www.uj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2824[17] #[18]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인한 물적분할을 통해 현대중공업 본사를 서울로 이전하는 것. 현재 현대중공업의 본사는 울산에 있고, 서울엔 본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연락사무소가 존재한다.[19] 울산 남구 도심에 후쿠시마 핫스팟이 존재하는 격.[20] 결국 울산2번·3번 확진자 역시 2월 16일 신천지울산교회를 방문하여 울산1번 확진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21] 굳이 시청 홈페이지에 접속하지 않더라도 시 자체 브리핑을 기반으로 작성된 전국 언론사 뉴스, 울산시 공식 SNS 등을 통해 이동경로를 파악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만 공개할 것이라면 애초에 긴급재난문자 시스템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22] 2월 20일 울산 동구와 남구를 방문하였다.[23] 신종 코로나 의사환자(Suspected case)는▶중국을 방문한 후 14일 이내에 발열 또는 호흡기증상(기침, 인후통 등)이 나타난 자 ▶확진환자의증상발생 기간 중 확진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후 14일 이내에 발열 또는 호흡기증상(기침, 인후통 등)이 나타난 자 ▶의사의 소견에 따라 신종 코로나 감염증이 의심되는 자다. 경증이지만 자택 내 자가격리가 불가할 경우에 시는 적절한 자가격리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24] 박근혜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 인사들을 대구·경북 지역에서 당선시키려고 청와대 자체 여론조사를 하게 하고, 당시 새누리당 공천위에 친박 인사들 명단을 전달하게 했다는 혐의(선거법 위반)로 재판에 넘어갔었다. 법원은 이를 박근혜가 선거 중립을 지키지 않고 친박 인사들을 지원한 것으로 판단, 공무원의 정당 경선 관여 혐의 등으로 2018년 11월 징역 2년을 선고한 바 있다.[25] 5번 낙선[26] 7번 낙선, 그래도 김 후보는 재선의원에다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도 지냈다.[27] 이분보다 더한 낙선 기록을 갖고 계신 분으로는 김포의 터줏대감 김두섭 전 의원과 서울 강서 갑의 백철 씨, 코리아당의 상임고문인 정재복 씨가 있다. 김두섭 전 의원은 제14대 총선에서 승리하기까지 8번이나 낙선한 경력이 있다. 국회의원을 지낸 이후에도 5번을 더 낙선해 총 1승 13패의 승률을 기록했다. 다만 백철 씨와 정재복 씨는 11번 출마해 11번 모두 낙선했다.(...)[28] 더욱 안습한 것은 '''40% 초반의 득표율'''을 내고도 낙선했다는 점이다. 또한 이때는 투표율이 낮았거나, 단 '''2%차이'''로 석패했기에... 심지어 3번째에 나온 선거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해 패한 거다!! 하지만 이때 만약 민주당으로 복당해서 공천을 받았다면 당선 확률이 100%였을것이기 때문에 안타깝다 할 수 있다.[29] 박남춘 인천시장이나 양승조 충남지사처럼 금배지를 내던지고 광역단체장이 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현역 의원들 스스로도 금배지보다는 광역시장/도지사 자리를 더 좋게 친다는 말.[30] 개혁신당#s-1과 신설 합당[31] 민주당과 신설 합당[32]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33] 현 울산광역시 중구, 참고로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된 연도는 1997년이다.[34] 7회 지선 이전 비보수 계열 정당 후보 최고 득표율[35] 여담으로 이 당시 4,288표를 얻고 낙선한 사람은 이후 다음 선거에서 울산 중구 후보로 출마했다. 그 결과는... [36] 9번의 선거 중 첫 당선[37] 노무현은 향년 62세인데,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들 중 60대는 흔하다. 노무현이 다른 대통령들보다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 (노무현은 1946년생이다.)[38] 만약 노무현이 고향 김해에서 출마했다면 충분히 당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2008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간판으로 최철국이 노무현 효과에 힘입어 재선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바 있다. # 다만 노무현의 성격과 인생, 그리고 지역주의 타파라는 의지, 다시 도전해도 깨질 가능성이 높다던 당시 대화를 볼 때 정말로 나갔으면 김해가 아니라 부산에 재도전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