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정치인)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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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광진구 갑)'''
제15대
김상우

'''제16·17대
김영춘'''

제18대
권택기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부산진구 갑)'''
제19대
나성린

'''제20대
김영춘'''

제21대
서병수

'''대한민국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제19대 후반기
김우남

'''제20대 전반기
김영춘'''

제20대 전반기
설훈


'''제33대 국회사무총장'''
'''대한민국 제20대 해양수산부장관
김영춘
金榮春 | Kim Young-choon
'''
<colbgcolor=#003764><colcolor=#fff> '''출생'''
1962년 2월 5일 (62세)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거주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연지동
연지자이1차아파트
'''본관'''
김해 김씨 경파[1]
'''재임기간'''
제20대 해양수산부 장관
2017년 6월 16일 ~ 2019년 4월 2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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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 '''가족'''
배우자 심연옥, 아들 김준현(1998년생)
'''학력'''
성지초등학교 (졸업)
개성중학교 (졸업)
부산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석사)
'''병역'''
면제(수형)
'''신체'''
175cm, 75kg, AB형[23]
'''종교'''
천주교 (세례명: 다니엘)
'''소속 정당'''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6, 17, 20
'''약력'''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통일민주당 총재비서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윤봉길기념사업회 부회장
제16대 국회의원 (서울 광진갑 /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창당발기인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광진갑 /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윤리위원장
열린우리당 의장 비서실장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위원장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사)인본사회연구소 소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제17대 문국현 대통령후보 상임선대본부장
창조한국당 최고위원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통합당 영남미래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
제20대 국회의원 (부산 부산진갑 / 더불어민주당)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
제20대 해양수산부장관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오륙도연구소장
더불어민주당 부울경 메가시티 비전위원회 상임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코로나19 비상대책특위 공동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부울경 코로나19 비상대책기구 공동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공동선대위원장
제33대 국회사무총장

1. 개요
2. 생애
2.1. 정치 입문
2.2. 열린우리당 및 민주당 시절
2.5.1. 낙선요인 분석
2.6. 제33대 국회 사무총장(장관급)
3. 정치 성향
4. 저서
5. 여담
6. 소속 정당
7. 선거 이력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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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20대 해양수산부장관, 제33대 국회사무총장, 제16, 17대, 20대 국회의원이다.
'민주화추진협의회'(약칭 민추협)의 김영삼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당시 독수리 5형제와 함께 민주 진영으로 건너왔다. 20대 때 김영삼과 함께 정치를 시작한 덕분에, 5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려 30년의 정치 구력을 가진 중진급 인사. 상도동계에 있었을 때는 '거산의 셋째 아들'로 불렸을 정도로 김영삼의 총애를 받았던 상도동계 직계 막내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최장수 해양수산부 장관 재임기록을 갈아치웠다(1년 9개월 재직 후 퇴임). 업무평가는 매우 우수한 편이었는데, 재임시절 18개 부처 장관평가 중 계속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고 해양수산부 출범 최초로 정부업무평가에서 우수평가를 일궈내 리더십과 행정업무 면에서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2. 생애


1962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서 태어났다.
현재의 부산 지역구가 있는 부산진구 성지초등학교, 부산개성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해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 학부 재학 시절인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역임하였다. 학도호국단을 없애는 대신, 부활된 총학생회의 첫 번째 회장 선거에서 당선(서울대는 이정우, 연세대는 송영길)된 뒤, 같은 해 11월 민주정의당사 점거 시위의 배후로 지목되어 구속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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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고려대총학생회장과 송영길 연세대 총학생회장의 모습.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이후 김영삼계 정치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는데, 당시 김영삼이 김영춘을 워낙 총애해서( ) 상도동계 선배들조차 김영삼에게 하기 어려운 말이 있으면 아예 김영춘에게 직접 도움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상도동계의 명실상부한 막내라고 할 수 있는 부분.

2.1. 정치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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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과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모습.
1988년 김영삼의 비서를 그만 두고 고려대학교로 복귀하여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렇게 YS를 떠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당시 3당합당이 일어났고, 당시 김영춘은 YS에게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저를 찾지 마십시오"라고 거부하였으나, 2년 후 민자당에서 YS가 박철언, 김종필과의 싸움을 앞두고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 잡는 싸움에 실패한다면 내가 은퇴한다. 이 싸움이 정말 두 번 다시 없는 마지막 싸움이니까 이 싸움만 니가 나를 좀 도와줘라'라며 '영춘아, 니가 나를 한 번 도와줘야 되겠다'라고 하자, 정치에 뛰어든다.
문민정부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시작해, 정무비서관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광진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때 나이 겨우 만 35세. 그 후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한나라당에서는 중앙선대위 2030위원회 총괄본부장을 지내며 이회창 총재를 돕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회창에게 "왜 TK(대구·경북)와 민정계에 업혀 정치하느냐", "대통령이 되려면 도덕적 개혁적 보수 인사로서 정책과 인맥 구성을 해야 한다"고 직언을 하는 등 정치적 자유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2003년, 노무현의 당선과 이회창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대선불복을 시사하는 등 한나라당의 개혁가능성이 0으로 수렴한다고 판단한 이부영, 이우재, 안영근, 김부겸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이 창당될 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다. 한나라당에서 상도동계로 그냥 남아 있었으면 일찍이 40대부터 거물 정치인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개혁하지 않는 독재세력과 계속 손잡을 수 없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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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 될 당시,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은 야당의 탄핵안을 저지하기 위해 11일 밤샘농성을 벌인데 이어,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탄핵안을 통과시키려는 한나라당, 민주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탄핵안 가결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끝내 탄핵안이 통과되자 김 의원은 본회의 산회 직후 연단에 올라 "나는 오늘부터 이 더러운 국회의원 배지를 떼겠다.* 당장 의원직 총 사퇴를 하자."고 말한 후 제일먼저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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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나라당 시절에는 아직까지 김영삼과 상도동계의 영향력이 상당하던 시기였다. 이때 김영삼이 김영춘을 부르면서 "여기에서 편하게 정치하지 뭣하러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탈당하냐?"라고 묻자, "선생님도 자유당에서 탈당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응수했으며 "당이 민주정의당처럼 변해가는데 저는 거기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고 대답하고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이적했으며, 현재도 민주당계 정당의 상도동계 직계 정치인이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의 강령은 김대중, 노무현 정신 계승을 명시하고 있는데, 김영춘은 김대중이 아닌 김영삼의 휘하에 있었기 때문인지, 일반적인 더불어민주당 주류 인물들과는 달리 김영삼,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내세우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30년 전에는 PK출신 정치신인(노무현, 김영춘, 김무성, 정의화 등)은 모두 김영삼이 데려갔고, 전라도 출신 정치신인은 모두 김대중이 데려갔다는 이야기에 따를 때, 나름의 이유가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2.2. 열린우리당 및 민주당 시절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잦은 충돌과, 그와 별개로 국민들의 삶이 양극화 되는 모습을 보면서 좌절감과 자괴감을 많이 겪고, 결국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사무총장으로서 당의 간판을 내리는 역할을 하고, 스스로 지역구 기반이 탄탄한 다음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 3년간 야인으로 지내면서 자전거 국토순례를 하며 틈틈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나라뒤집기>(2011)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2010년 10월, 민주당 당대표로 손학규가 당선이 되며 정계복귀를 요청하자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정계에 복귀함과 동시에 1996년부터 15년간 기반을 쌓아온 서울 광진구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고향인 부산 부산진구로 내려간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존의 광진 갑 지역구를 버리고 민주통합당 후보로 민주당으로서는 험지로 분류되는 부산의 중심지인 부산진구 갑 선거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3,500여 표 차이로 낙선하였다. 이후 재출마할 의지를 피력하며 자신이 운영하던 정책연구소인 (사)인본사회연구소를 서울에서 부산 서면으로 옮겨왔다.
2014년 지방선거에 부산광역시장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당선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 범야권 무소속 오거돈에 양보하였다. 그 해 서병수에 패배한 오거돈은 4년 후 김영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부산시장에 당선되었다.

2.3. 제20대 국회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일찌감치 단수공천을 받았다. 이미 2012년부터 약 4년 동안 지역을 거의 박박 기다시피 하면서 선거운동을 해왔기에 이번에는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2]
그러나 상대인 나성린은 경선을 뚫고 공천되었고, 부산에서 유일하게 야당 간판을 달고 3선이 되었던 조경태의 새누리당행, 야권의 분열 등으로 인해 악재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여론조사 결과도 나성린에게 크게 뒤진 상황이었다(2016. 3. 23. 부산일보 여론조사: 나성린 57.3%, 김영춘 25.7%). 반면에 새누리당은 부산 싹쓸이를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송사 출구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왔고, 실제로는 개표이후 계속 앞서갔다. 그리고 개표 90% 시점에서 당선을 확정해 설욕에 성공하였다. 총 득표 45,706표 (49.6%). 부산시당 위원장으로서 부산에서 5석을 건짐과 동시에 부산의 심장인 서면까지 공략에 성공하여, 더불어민주당의 영남권 약진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 당선자 전재수, 김해영, 박재호, 최인호와 더불어 '新'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다.
이후 3선 국회의원으로서 대한민국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4. 해양수산부장관


해양수산부장관 경험은 김영춘에 대한 '586 좌장' 수식어가 아닌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내게 한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된다.
김영춘은 2017년 5월 대선 당시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김덕룡으로부터 문재인 지지선언을 이끌어내, 대선 승리공신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김영춘을 해수부 장관으로 지명하였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바로 다음날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
문재인 정부 1기 해수부 장관 임명 이후, 세월호의 구조 책임 문제로 사라졌던 해경을 부활시켰다. 뉴스 이후,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세월호 진상규명과 후속대책을 약속하고, 일본 대사를 접견해 해양 수산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해양 경제 활성화를 위해 포항과 울산 등 해양도시에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이었던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출범시키고, ‘재조(再造·다시 만듦)해양’의 의지로 해양강국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등, 해수부의 위상을 제고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부산에 유치되어, 부산 정치인으로서 힘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2018년 5월 8일 머니투데이에서 발표한 ''''18개 부처 장관평가에서는 종합 1위''''를 기록했다. 여야의원들은 ▲야당과의 관계 설정, ▲높은 부처 장악력, ▲여야 없는 중립적인 정책설명 등을 김영춘 장관의 장점으로 꼽았다. *
2019년 4월 3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1년 9개월 재직 후 퇴임하여, 역대 최장수 재임 장관 기록을 달성하였다. 연합뉴스 기사: * 문재인 정부에서 김영춘이 이끄는 해양수산부는 사상 최초로 ''''정부업무평가'에서 '우수'등급''''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아 행정가로서 김영춘의 능력이 인정받았다고 평가된다. 뉴스핌 기사: * 김영춘이 퇴임하자마자 해수부의 업무평가가 B등급으로 곤두박질 친 것을 보면 김영춘이 일을 잘 하긴 했던 모양.*
[image]
2018년 남극 세종기지 건설 30주년 기념 방문 중

2.5.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한강 이남' 최대의 총선 격전지가 될 것으로 보였던 부산진구 갑 총선은 상도동계 막내이자 PK 민주당의 대표 주자 중 한 명과 친박계 중진의원이자 전직 부산시장이 맞붙는 승부처가 되었다. 지역 언론에서는 이를 양당의 대표적인 차기 대선주자인 이낙연황교안이 맞붙는 종로구에 비교하기도 했다. *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김영춘 후보가 소속된 부산진구 갑에서만 총 '''15번'''의 여론조사가 실시되었다. 각 여론조사 모두 오차범위 이내의 경합이었다. 특이한 점은 국제신문(폴리컴, 3월 20~21일), 부산일보(한국사회여론연구소, 3월 25~26일)(한국사회여론연구소, 4월 6일)와 부산MBC(한길리서치센타, 4월 4~5일)의 지역 언론이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서병수 후보가 앞섰고 매일경제(알앤써치, 3월 23~25일),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 3월 31일~4월 1일), TV조선(메트리스리서치, 4월 2일), KBS(한국리서치, 4월 2~4일), 국민일보/CBS(리얼미터, 4월 4~5일), JTBC(한국갤럽조사연구소, 4월 4~5일), 서울경제(엠브레인리퍼블릭, 4월 6일), 문화일보(엠브레인리퍼블릭, 4월 7일), 뉴시스(리얼미터, 4월 7일), SBS(입소스, 4월 5~8일) 처럼 전국언론과 중소언론이 의뢰한 여론조사 및 회사 자체조사(싸이리서치, 3월 30일)에서는 김영춘 후보가 앞섰다.[3]
선거 당일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는 43.5%를 획득해 서병수의 49.6%에 6.1% 차이로 뒤쳐졌고, 최종 결과 김영춘 45% : 서병수 48.5%로 3.5% 차이 낙선하였다. 보수표를 깎아먹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무소속의 정근 후보가 예상 밖으로 5.5%밖에 득표하지 못하면서, 서병수 후보에게 보수표가 몰린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등 집권여당은 도합 180석의 대승을 거두었는데, 부산에서는 의석수가 오히려 기존 6석에서 3석으로 줄어들었다.

2.5.1. 낙선요인 분석


  • 김영춘이 장관으로 임명되고 너무 오래 자리를 지키는 바람에 지역구 관리에 소홀하게 된 것이 낙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이 있다.[9][10][11] 김영춘으로서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며 부산에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유치하기도 하고, 북항 재개발에 적극적이었던 등 부산지역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인데, 억울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는 향후 부산시장 선거 등에서 재평가가 필요한 대목이다.
    • [甲설] "장관을 지내서 낙선했다"는 분석은 타국의 사례를 볼 경우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애초에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겸임하는 것은 내각제적인 요소인데, 대한민국은 비록 대통령제 국가이지만 이렇게 내각제 요소가 일부 가미되어 있다.[4] 정작 장관을 지낸 국회의원인 진선미 등은 접전 끝이었기는 하지만 어쨌든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렇게 지역구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겸임하는 것은 내각제, 특히 영국식 웨스트민스터 시스템을 따르는 나라(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서는 흔한 일인데,[5] 만약에 김영춘이 "장관직을 지내서 낙선했다"면, 이런 나라에서는 내각 구성원들은 다 떨어져야 맞다. 즉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봐야 할 수도 있겠다.
    • [乙설] 그 진선미조차도 상대방이 연고가 없는 후보여서 그렇지 연고가 있었던 후보였다면 장담 못했고, 도종환도 만약 상대방의 공천 실패가 아니였다면[6] 장담 못했다. 거기다가 김영춘은 부산광역시에서 고작 초선이다.[7], 이런 상황에서 장관직으로 간다면 지역구민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게다가 대한민국이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는 통치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겸하는 정치구조적인 쟁점과, 그 장관직 수행으로 인하여 지역구 관리에 소홀하게 되는[8]문제는 별개로 구분해야 된다.
    • [甲설] 그러나 예외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법이다. 김영춘이 부산 출신 국회의원의 소신을 가지고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 부산을 위해서 일은 하였으나 부산 시민들이 인지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거나, 인지했더라도 "국회의원"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오해하여 낙선한 것일 수도 있다. 위에서 "만약에 김영춘이 장관직을 지내서 낙선했다면, 이런 나라에서는 내각 구성원들은 다 떨어져야 맞다"라고 써 놓았는데, 너무 성급한 일반화라고 본다.
  • 부산의 정치 문제에선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정치현안 관련 이슈에서 빼놓을 수 없다.* 부산 지역민들은 빨리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해결하라며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2017년 대통령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게 상당한 지지를 보였다. 이는 캐스팅보트인 기성 세대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엄청난 기대를 불러왔는데, 김현미 장관의 어마어마한 시간지연으로 "신공항 빨리 해결하라고 3번이나 찍어줬는데 바뀌는게 없다" 같은 이유들이 작용했다. 특히나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21대 총선에서 어지간한 곳을 제외하면 4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을 정도라 특히나 아쉬움을 삼킨 부산의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김현미미래통합당에서 부산을 되찾기 위해 보낸 X맨이다"라고 비꼬는 등 김현미에 대한 반응도 매우 안 좋고, 민주당에서도 PK와 TK를 따로 분리하고 봐야하는데 괜시리 한데 묶어서 보는 바람에 당 전략이 실패한 것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김영춘으로는 어떻게든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대해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는 셈이다.
  • 유시민은 선거 이후 '알릴레오'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낙선한 김영춘, 남영희, 박수현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할 정도로 '유시민의 180석 발언'이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서울경기인천, 대전충청, 전라남북, 제주 등에서의 더불어민주당 싹쓸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TK와 PK 보수 유권자들을 결집시켰다는 평가가 많다.*
  • 오거돈 부산시장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당선 실패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이 요인을 보면 전 부산시장이었던 서병수를 뽑아준 구민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 부산경실련은 21대 총선 후 미래통합당이 15석, 더불어민주당이 3석을 기록한 부산 총선 결과에 대하여 부산지역 전문가와 오피니언리더 등 110명에게 문의한 결과, "오거돈 부산시장의 시정에 대한 실망 및 비판"이 1위를 기록했다. * 실제로 21대 총선을 앞둔 2020. 4. 8. 리얼미터에서 발표한 전국 시도지사 지지도에서 오거돈 부산시장은 37.2%를 기록해 전국 시도지사 17명 중 16위에 머물렀다. * 오거돈에 대한 최악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경쟁후보였던 서병수 전 부산시장에 대한 부정평가를 상쇄시킨 측면도 있었는데, 결국 오거돈 시장은 마지막까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며 2020년 4월 23일 시장직을 전격 사퇴하기에 이른다. 어떻게보면 김영춘 개인에게 있어서는 부산시장 선거를 오거돈에게 양보했던 것이 2년 뒤 예상치 못했던 나비효과로 돌아온 것.

2.6. 제33대 국회 사무총장(장관급)


제21대 국회 개원 이후, 박병석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유인태 사무총장의 뒤를 이은 21대 국회 첫 사무총장으로 내정되었고#, 2020년 6월 29일, 찬성 177표로 김영춘 국회사무총장 임명안이 가결되면서 공식적으로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 사무처를 총괄하는 장관급 포지션으로, 국회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 직원들까지도 관할하는 총책임자 자리이다. 이로서 김영춘은 해양수산부에 이어 국회라는 대규모 조직을 관할하는 장이자 행정가로서의 경험을 축적하게 됐다. 이는 향후 큰 정치적 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8월 30일 발표된 국제신문-폴리컴 2021년 재보궐선거 부산광역시장 지지도 조사에서 11.9%를 기록하며 전체 3위, 여권 1위에 올랐다.# 여권 후보 중은 유일하게 두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으며 1위를 기록한 국민의힘 김세연 전 의원이 9월 4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의 뒤를 이어 전체 2위가 된 셈.
9월 18일 일요서울 심층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내에서 김해영 전 최고위원과 변성완 부산시장 대행의 지지율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자 김영춘 국회사무총장에게 출마를 적극 권유했고 김 사무총장 역시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12월 17일, CBS와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만약 민주당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2월까지 입법할 경우 보궐선거에 무조건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2020년 12월 22일, 부마항쟁 이후 2020년까지 약 41년간의 한국 현대사를 당대사로 다룬 고통에 대하여 : 1979~2020 살아있는 한국사를 출간하게 되었고, 15일엔 YTN 라디오에 출연하여 "역할있다면 피할 생각 없다.“고 의사를 밝히는 등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2020년 12월 28일 국회사무총장식을 사임하고 부산으로 다시 돌아갔다. 후임 총장으로는 21대 총선에서 컷오프[12]이춘석 전 의원이 내정되었다. 이춘석 전 의원이 1월 8일 본회의에서 국회사무총장으로 공식 임명되면서 사무총장 사퇴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

2.6.1.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


오거돈 부산광역시장불필요한 신체접촉을 이유로 2020년 4월 23일에 돌연 사퇴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선거 전까지는 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을 맡고 2021년 4월 7일에 시장 보궐선거를 치러야 할 상황이 됐다.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내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로 김영춘이 대두될 가능성이 높아졌다.*[13] 김영춘은 2014년과 2018년에 부산시장에 출마하려다 무소속 오거돈에 후보직을 양보한 전례도 있다(김영춘은 이에 대하여 이후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다만 총선에서 낙선한 사람이 바로 재보궐선거에서 마저 낙선하면 진짜로 정계 은퇴 수순을 밟아야할 정도로 큰 위험부담이 있다. 특히나 PK 지역 총선 부진에 더해 오거돈 사태까지 터지면서 "동남권 신공항을 바로 통과시키는 지역호재가 있지 않는 이상 민주당은 부산에서 향후 10년 동안 힘들다."란 비관적인 얘기도 나오는 상황이라서 김영춘이 이러한 것들을 다 끌어안고 출마할지는 미지수.
하지만 2021년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졌잘싸 구도로 상당한 득표에 성공하면, 2022년 3월 벚꽃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허니문 기간인 2022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다는 점에서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2021년에 무조건 김영춘이 안 나온다고 단언하는 것도 섣부르다. 결국 김영춘 개인의 선택과 당에서 누구를 밀어주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여론때문인지 오거돈의 사퇴 뉴스가 나온 2020년 4월 23일 오전 11:15~16 사이 김영춘의 이름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1~10위 사이에 랭크 되는 등, 관심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6개월 앞둔 2020년 10월, 언론에서는 김영춘과 서병수의 리매치를 예상하고 있다.* 서병수 의원이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굳힐 경우, 그의 사퇴로 공석이 될 부산진구 갑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함께 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부산 정치의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의 대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근 검찰로부터 라임 사태 연루의혹 관련 소환조사를 통보받은 상황이라, 경우에 따라서 상황의 변화도 예상된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처리한다고 약속을 확실하게 해주면 보궐선거에 무조건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12월 28일 국회사무총장직 사퇴 이후, 경남으로 내려와 김해 봉하마을에 조성된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 후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 북항 재개발 지역 등을 연달아 방문해 부산 지역 현안을 챙기고 있다고 한다.#
이어 2021년 1월에는 변성완 부산시장 대행, 김경수 경남지사, 송철호 울산시장을 연달아 만나면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사실상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보궐선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중에는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고, 여론조사 가상대결은 민주당 후보로는 거의 김영춘 전 사무총장을 내정한 채로 이뤄지고 있다.
1월 12일, 부산 영도구의 한 카페에서 공식 출마 선언 예정이다.# 이로서 민주당 후보로서는 처음으로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으로 밝혔다.

1월 13일, 오후 2시 여권 후보 중엔 처음으로 부산시장 보궐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 사과하면서 출마 선언을 시작했는데 해수부 장관 시절을 회고하며 "해운 재건 계획 등으로 비록 지난 시장 선거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부산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 진정한 반성은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철저히 검증하고 평가해달라"고 당부했다.
보궐선거 1호 공약으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과 함께 이와 연계할 준고속열차 설치를 내세웠다.# 동시에 낙후된 서부산권에 아마존닷컴, 알리바바 등 글로벌 물류기업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1월 21일, 부산을 방문한 이낙연 대표와 함께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방문해 2월 임시국회 때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여당 단독으로라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월 27일, 변성완 전 부산광역시장 권한대행이 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경선은 김영춘 vs 변성완 vs 박인영의 3파전이 되었다. 2월 7일에는 민주당의 영남권 국회의원과 부산·울산·경남도당 위원장과 함께 가덕도 대항전망대에 다시 방문하여 가덕도신공항건설촉진특별법안 국회통과 결의대회에 참여했다.#
2월 17일 있었던 민주당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는 다른 후보들과 함께 국민의힘이 내세운 한일해저터널 제안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편 알리바바를 부산에 유치하겠다는 김영춘의 공약도 현실성이 없다며 타 경선 후보에게 비판받기도 했다. #

3. 정치 성향


'''김영춘''' "저는 정말 자부심을 크게 가지고 있는 것이, 그렇게 젊은 정치를 했던 청년 YS정신, 염산테러를 당하면서도 박정희한테 굴복하지 않았던 그 김영삼의 정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야당 총재를 제명시키던 정권과의 그 험한 싸움을 감당했던 70년대 말의 그 김영삼 총재의 정신, 이게 내가 자부심으로 갖고 있는, 내가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였다는 자부심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청년 YS의 제자라는 것입니다."(딴지일보 인터뷰, <착륙을 준비하는 부산 갈매기, 김영춘을 만나다>, 2012. 4. 3.)

김영춘은 상대당 국회의원들("김영춘 장관은 야당에서도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이나 지지자들("김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은 보통 인물론"*)로부터 "인물이 좋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데, 그 이유는 김영춘이 가지는 특유의 색깔 때문이다.
김영춘은 정파적인 색깔을 드러내기 보다는 정파를 떠난 합리적인 성향이 짙다. * 대통령을 지냈던 YS가 총애하던 30대 정치인으로서 일찍부터 큰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김영춘은, 이회창의 만류를 뿌리치며 돌연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미니정당인 열린우리당을 택하는 정치적 선택을 한다. 또한 열린우리당이 문을 닫을 때 대부분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여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재기를 노릴 때, 김영춘은 열린우리당 실패의 책임을 지고 불출마선언*을 한 후 '사람 중심 경제'를 외쳤던 문국현 대선캠프에 합류하는 등, 거대 정파 속에서 이익을 찾는 인물이 아니다.
김영춘은 2013년에도 "386 정치인들은 줄서기에 급급해 약자를 대변하지 못했다"며 반성문을 쓰기도 하는 등* 정파나 집단의 대리인이 되기 보다는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자기반성 의지가 강한 인물인 것이다.
한편, 김영춘은 스스로에 대하여 진보라기 보다는 개혁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정동영이 "확실한 진보"를 외칠 때 김영춘은 "합리적 보수도 함께 가야한다"*고 외치는 등 진보 보다는 리버럴(liberal)로서 민주당 정치인으로서의 컬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의 권력세습을 단호히 비판하고 인권과 민주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위와 같은 특색 때문에 김영춘은 계파나 조직이 없다. 그러한 점 때문에 본인을 스스로 '타협과 책임의 정치'에 능한 정치인으로 표현한다*.
김영춘은 계파와 정파를 뛰어 넘어, 지방분권을 실현하고 경제, 사회, 정치, 통일 등 모든 것을 내다보는 총체적인 국민적 토론에 근거한 개헌을 주장한다 *. 대통령제 4년 중임제 개헌을 통해 적대적인 증오와 대립의 정치를 끝내고, 준연방제 개헌*을 주장한다.

'''김영춘'''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다. 모든 지방 경제는 수도권에 의존해 연명을 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 방치하면 썩어서 돌이킬 수 없을 지역의 경제 잠재력을 다시 활성화함으로써 대한민국 전체의 경제 성장 동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부산일보, 김영춘 “부울경 메가시티 최종 목표는 준연방제 개헌”, 2020. 1. 14.)


4. 저서


'''연도'''
'''출판사'''
'''제목'''
2021
호밀밭
희망에 대하여 : 부울경 메가시티(공저)
2020
이소노미아
고통에 대하여 : 1979~2020 살아있는 한국사
2014
호밀밭
김영춘의 부산희망찾기 길에서 만난 부산, 부산의 길을 찾다!
2011
도서출판청람
나라 뒤집기 사람의 정치학
2011
세상의모든책들
대한민국 자전거 & 도보 여행
2006
범우사
新 40대 기수론
2003
새로운사람들
내 손으로 바꾸는 정치

5. 여담


  • 17대 국회의원 시절 유시민에 대해서 '저토록 옳은 말을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것도 재주'라고 한 발언이 유명하다. 김영춘은 위 표현이 언급된 글에서 유시민의 정치스타일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시민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제21대 총선 막판에 '범진보 180석' 발언으로 PK 지역 보수 유권자들을 결집시켜 본의 아니게 김영춘의 낙선에 기여했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나온다(...)*
  •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해 2021년에 호를 '가덕'으로 지었다고 한다.가덕 김영춘 동남방언으로 '가득'을 발음할 때 '가덕'에 가깝게 들리는 점도 있어 마음에 든다고 밝힌 바 있다.
  • 김영삼은 김영춘과 이명박을 모두 아꼈고,[14] 김영춘 또한 상도동계의 일원으로써 김영삼이 서거할 때 까지 계속 친밀하게 지냈으나, 그의 후임으로 신한국당 총재가 된 이회창이나, 상도동계 대부분의 지지를 받아 17대 대통령이 된 이명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보다 비판을 하는 것을 보면 김영삼과 달리 이회창, 이명박과의 친분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영춘은 상도동계 수장으로 모시던 김영삼이 이명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과는 달리 이명박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로 일관했으며 김영춘이 이명박에 대해 내린 평가는 긍정적인 평가가 거의 없다.
  • 김영춘의 가장 큰 정치적 후원자는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문정수 전 부산시장으로, 모두 김영춘의 후원회장을 맡은 바 있다. 강금실은 선거철마다 김영춘에 대한 지지글을 이어가며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 같은 당 후배인 최인호, 허인회와 더불어 출구조사의 대표적 피해자이기도 하는데(...) 피해 사례는 아래와 같다.
    • 15대 총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 당선 유력으로 나왔으나 새정치국민회의 김상우 후보에게 패배.
    • 19대 총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 경합우세로 나왔으나 새누리당 나성린 후보에게 패배.
    • 21대 총선: JTBC 예측조사에서 경합우세로 나왔으나 미래통합당 서병수 후보에게 패배(김영춘 53.5% : 서병수 38.7%).
  • 의외의 당적으로 창조한국당에 입당한 적이 있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뒤 17대 대선 때 참신한 이미지로 나름의 지지를 모으고 있던 문국현이 이끌던 창조한국당에 입당했었는데 얼마 안 가서 18대 총선을 앞두고 문국현의 독선적인 당 운영을 비판하며 탈당했다.


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7 - 1988
정계 입문

1988 - 1992
탈당

1992 - 1993
입당[15]
정계 복귀

1993 - 1995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

1995 - 1997
복당

1997 - 2003
합당[16]

2003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

2003 - 2007
창당

2007
합당[17]

2007
창조한국당 합류를 위한 탈당

2007 - 2008
입당[18]

2008 - 2010
탈당

2010 - 2011
복당
정계 복귀

2011 - 2013
합당[19]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20]

2015 - 2020
당명 변경

2020
국회사무총장 취임으로 인한 탈당

2020 -
국회사무총장 사퇴후 복당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지역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22,309 (27.93%)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37,446 (50.79%)'''
'''당선 (1위)'''
'''초선'''[21]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44,519 (50.73%)'''
'''재선'''[22]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부산진 갑

34,238 (35.76%)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5,706 (49.58%)'''
'''당선 (1위)'''
'''3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48,287 (45.02%)
낙선 (2위)

'''역대 선거 벽보'''
<^|1> {{{#!wiki style="margin: 0 -10px -5px"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16대 총선 (서울 광진구 갑)
17대 총선 (서울 광진구 갑)
19대 총선 (부산 부산진구 갑)
20대 총선 [[부산진구 갑|{{{#000000,#fff (부산 부산진구 갑)
]]
21대 총선 (부산 부산진구 갑)
}}}}}}}}}

8. 둘러보기







[1] 김해 김씨 경파(京派) 24세손, 수로 74세손 '榮'자 항렬이다. 같은 정당의 정치인김부겸과 유명유튜버 김보겸에게 그는 아저씨뻘이다. 참고로 김부겸의 부친 성함은 김영룡(金榮龍) 씨.[2] 중앙정치계에서 지방으로 진출하는 정치인들이 대개 자녀 교육 등을 고려해 가족을 수도권에 두고 단신으로 지역구 활동을 벌이는 것에 비해 전 가족을 모두 이끌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주해 왔다는 대목에서 부산 시민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3] 해당 문단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4] 대통령제의 기원인 미국을 포함해서, 순수 미국식 대통령제를 표방하는 중남미 국가들은 국회의원의 장관직 겸임을 엄금하고 있다.[5] 무조건이 아닌 이유는, 양원제인 경우, 상원의원을 임명할 수는 있는데 상원의원은 임명직인 경우가 많아서 어지간해서 지역구의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6] 상당구를 기반으로 정치를 한 정우택을 공천시켰다(...)[7] 실제로 김영춘은 광진구 갑에서 재선하고 부산진 갑에선 초선이였다.[8] 관례 상 지역구 의원이 장관이 되면 국회에 거의 가지 않는다. 의원으로서 배정받은 상임위원회에도 거의 출석하지 않고, 소속 정당이 중요 법안처리를 앞두고 표 단속을 위해 의원 총동원령을 내리지 않는 한 본회의에서도 투표를 하지 않는다.[9] 대구의 김부겸도 비슷한 시기에 장관을 지낸게 낙선 요인이 됐다는 의견이 있다. 여담일 수도 있겠지만, 진영 장관의 지역구(용산구)도 미래통합당으로 넘어갔으며, 진선미 등 장관을 지낸 사람들 일부도 접전 끝에 겨우 당선된 사례가 있다.[10] 특히 같은 민주당인 전재수, 최인호, 박재호의 경우, 뛰어난 지역구 관리로 평판도 좋았고 이를 기반으로 21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야당에서 더블 스코어로 완전 찍어누른 조경태, 하태경의 경우에도 개인의 대중적 호감도와는 별개로 지역 친화적인 모습으로 매우 유명하기도 하다.[11] 참고로 20대 총선 당시 연제구 선거에서 김희정김해영에게 패한 이유 중 하나가 여성가족부 장관을 하면서 지역구 관리를 잘 못한 것도 있었다.[12] 실제로는 김수흥에게 당내 경선에서 밀렸다[13] 더불어민주당의 부산지역 현역 의원인 박재호, 최인호, 전재수 등 3명의 출마 가능성도 있지만 보궐선거 시점이 제21대 국회 임기 초반인데다 민주당 입장에서 부산 의석을 더 잃으면 손해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현역 의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여유롭고 여전히 지역 평판이 좋은 김영춘을 내세울 명분이 있다.[14] 이회창은 추후에 관계가 다소 나빠져서 제외.[15] 김영삼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16]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17]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18] 문국현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19]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20]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21]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 변경[22] 2007.10.11 대통합민주신당 탈당
2007.10.30 창조한국당 창당 합류
2008.05.23 창조한국당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