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삼국시대)/요절 징크스

 


1. 개요
2. 요절한 오나라 인물
3. 장수한 오나라 인물들
4. 위나라의 요절한 인물들
5. 촉나라의 요절한 인물들
6. 기타 창작물에서


1. 개요


삼국지에서 오나라 인물들은 유독 젊은 나이에 아깝게 사망하는 요절이 많은데, 이 현상을 서술한 문서. 특히 손씨 가문과 대도독급 책사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상대적으로 문관들은 좀 오래 산 편. 실제로 이름밖에 안 남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손씨 중에 50을 넘긴 사람은 확실하게는 '''손권, 손소''' 밖에 없고 손정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며, 40대 까지라도 산 사람은 손분손린, 손분, 손호, 손환 뿐이다.
과학적인 해석으로는 장강 남쪽의 습기와 더운 풍토에 당시 북방에서 이주해온 한족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기생충이나 면역이 없는 질병 등에 시달려서 사망률이 높아지게 되었다고 여겨진다.[1] 장강 이남은 남북조 시대에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되며 수당 시대에 온 뒤에야 이 지역의 개발이 대충 완료되었다. 전근대의 극심한 영아사망률을 고려한다 해도 변변한 의술 및 약품, 항생제가 없었기 때문에 평민층은 말할 필요도 없고 지배층조차 장성해도 오래 살기 힘들었다. 오나라의 실질 통치력이 장강 중하류 일대에 국한되며 이 지역 인구가 후한 말기에 400만명에 달한 점 등을 들며 이의를 제기하는 이도 있지만 장강 중하류 지역만 따져도 한반도보다 훨씬 넓으며 산지라고는 없는 평야지대임을 감안할 때 인구밀도가 희박한 지역이었다. 장강 이남 지역은 현대에까지도 아열대 지역으로서 가축과 야생동물, 그리고 인간이 함께 거주하면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 만들어지는 곳이다. 조류 독감이나 사스 그리고 코로나 19가 바로 이곳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위나라 인물들 중 오나라와 대치하며 남방에서 근무하던 이들은 병사한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외의 이유도 있다. 손견이나 손책같이 암살당한 사람도 있으며, 손권의 아들들은 제위 다툼 끝에 어린 나이에 자결했거나 귀양 중 사망했다.
여하간 역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는 인물 가운데는 장수한 인물도 많기에[2], 왠지 오나라는 아주 늙은이와 아주 젊은이만 득시글대는 동네로 착각할 수 있게 하는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아예 연의도 작정하고 주유-감녕-여몽-육손(젋고 대체로 단명한 장수) 대 정보-황개-장소-한당(장수한 장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3]
이 요절징크스는 삼국지 후반부에도 여전했다. 개념있는 군주로 평가받는 손휴가 30세에 요절하고 막장황제로 평가받는 손호가 즉위하고 잠혼과 함께 국가 막장테크타다가 오나라가 멸망했으니, 결국 이 요절징크스가 오나라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동진, 북위, 북제, 북주의 황제들과[4], 일본 전국시대의 미요시 일족이 있다(여긴 일가가 요절했다). 한국사에서 비슷한 예를 들자면 신라 중대왕실(태종 무열왕~혜공왕)을 들 수 있다. 무열왕과 문무왕을 제외하고는 50을 넘기고 생존한 왕이 없다.[5]

2. 요절한 오나라 인물


  • 고소 - 32세(생몰년 미상). 손책의 사위이자 고옹의 장남인데도 명이 짧은데다 활약상이 적어서 그런지 삼국지연의 등 창작물에서는 철저히 묻혔다.
  • 손씨 가문
    • 손견 - 37세. 유표군과의 싸움에서 황조의 부하 궁병에게 전사.[6]
    • 손책 - 26세. 정사에서는 허공의 식객들에게 암살당함. 연의에서는 허공 식객들의 습격을 받은 후 신선 우길을 처형[7]했는데, 그의 혼령에 시달리면서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
    • 손익 - 21세. 손책과 손권의 동생. 부하 장수 변홍 등이 배신하여 암살당함. 생몰년은 184년~204년. 고우영 삼국지에 그나마 그 일화를 다룬 것이 길다.
    • 손송 - 많아야 30대 정도. 손익의 아들. 재능이 뛰어났으나 231년 요절. 제갈량이 양자 제갈교에게 들은 바가 있어 그의 요절을 슬퍼할 정도였다고 한다.
    • 손광 - 20여 세에 사망.[8] 손책, 손권, 손익의 동생. 아들 손태 역시 30대에 사망.
    • [9]
    • 손유 - 39세. 손견의 아우인 손정의 차남.
    • 손교 - 30대 중후반. 손견의 아우인 손정의 삼남으로, 위의 손유의 동생. 형이 죽고 4년 뒤 사망.
    • 손권의 아들들 전원[12]
      • 손등 - 33세. 손권의 장자. 아버지보다 11년 먼저 죽었으며 막내동생 손량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10]
      • 손려 - 20세. 손권의 차남. 손등보다도 9년 먼저, 6남 손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 손화 - 30세. 손권의 삼남. 능력도 있었으나 억울하게 손권의 미움을 받고 이후 내내 권력다툼에 시달리다가 밑에 나오는 손준의 명령으로 자결했다.
      • 손패 - 최소 16세, 최대 27세에 사망.[11] 손권의 사남. 본래 손권의 총애를 받았지만 이궁의 변 당시 자기 패거리와 함께 날뛰다가 결국 눈 밖에 나서 손권에게 자결을 명 받았다.
      • 손분 - 손권의 오남. 270년에 손호한테 살해되었다. 출생년도가 정확하게 기술되었지는 않지만 손패의 동생이고 손휴의 형이니 최소 36세, 최대 47세 이다. 그런데 웃긴 건 이 인간이 손권의 아들 7명 중에서 가장 장수한 인물(...)이라는 것. 다만 사실 그리 좋은 인물은 아니었다.
      • 손휴 - 30세에 병사. 손권의 육남. 3대 황제로 자신을 꼭두각시로 부리려뎐 손침을 제대로 몰아내는 데 성공하고 나름대로 오를 잘 이끌어보려했지만 병으로 안타깝게 요절. 거기다 4대 황제 손호에 의해 손완을 포함한 아들 모두가 살해당했다.
      • 손량 - 18세. 손권의 7남이자 막내 아들. 2대 황제. 손준에 의해 16살에 폐출됐고 이후 손휴의 견제 과정에서 사망했다.
    • 손준 - 38세. 군부대 시찰 도중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돌아가더니, 과거 자기가 죽인 제갈각이 나오는 악몽을 꾸고는 갑자기 덜컥 죽었다. 그 제갈각도 죽을 때 뭔가 요상한 현상들이 있었다고 하고 하여튼 참 요상한 죽음. 뭐 오나라를 개판으로 다스렸기에 일찍 죽어 다행이지만...
    • 손침 - 28세. 사촌형 손준을 따라 오나라를 개판으로 다스리다가 꼭두각시로 세워놓았던 황제 손휴의 반격으로 사망. 이후 손휴는 손준도 부관참시한 다음 둘의 이름을 황실 족보에서 지워 고준, 고침으로 개명시켰다.
    • 손호 - 43세(242~284). 이 양반도 장수한 편은 못 된다. 참고로 죽은 후 먼 훗날 백제의자왕이 손호의 바로 옆에 매장되었다.
  • 주유 - 36세에 병사.
  • 노숙 - 46세.
  • 여몽 - 42세. 과로 + 병사.[13] 관우토벌전에 나설 때 이미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라 작전을 단독으로 못하고 육손과 같이 했다.
  • 태사자 - 41세. 병사. 정사에서는 남방의 반란을 진압하러 갔다가 병으로 사망했다. 연의에서는 장료가 있는 합비를 기습하는 작전을 꾀하다가 화살에 맞고 그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 육적 - 32세(188년~219년). '한대의 지사인 오군의 육적은 어려서는《시경》,《상서》를 사랑했고, 성장한 후에는《예》,《주역》을 익혔지만, 명을 받아 남쪽으로 가서 정벌하다가 불행히 질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해졌다. "내가 만난 운명은 영원하지 못하다. 아! 세상과 영원하지 못함이 슬프구나!" "지금부터 60년 후, 천하에는 수레가 궤를 같이하고 문자를 똑같이 사용하게 될 텐데,[14] 유감스러게도 보지 못하는구나."라고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한다. 자신도 죽으면서 나에게 주어진 수명이 너무 짧다는 투의 유언을 남겼다.
  • 능조 - 확실히 알 수는 없어도 오래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집해에서는 능조가 사망한 해를 203년이라 기록하며 이때 능통의 나이 15살이었다고 한다. 물론 종요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차가 지나치게 심한 경우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차는 20년 안팎인 게 보통인 데다가 전장에 선봉으로 나섰다가 전사한 것으로 미뤄보면 능조의 사망 나이는 35 ~ 45살 정도밖에 안됐을 것으로 보인다.
  • 능통 - 29세(189년~217년) 혹은 49세[15](189년~237년). 몰년이 20년이나 차이가 나는 이유는 기록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29세 쪽이 신빙성이 높으나,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 제갈교 - 25세(204~228). 정확히는 촉나라에서 일하다 죽었으니 촉의 인물이라 할 수 있지만 제갈근의 차남이다.
  • 제갈반 - 생몰년 미상. 제갈각이 죽으면서 제갈근의 후손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자 촉나라에서 오나라로 돌아왔는데 그 또한 요절했다고 기록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들은 남기고 갔다.
  • 진무 - 39세 추정. 합비공방전에서 전사했다.
  • 진표 - 34세. 진무의 서자로 대인군자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기대주였지만, 결국 34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 낙통 - 36세. 위의 능통의 요절 설을 지지하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 또한 요절했다.
  • 육경 - 31세(250 ~ 280). 육손의 손자이자 육항의 차남. 오 멸망기에서는 서진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 장휴 - 41세. 장소의 차남이자, 장승의 동생.
  • 장온 - 38세. 오나라 4성(육, 주, 고, 장) 장씨. 손권에게 숙청당해 주환, 고옹, 육손보다 빨리 죽었다.
그런데 이렇게 쭉 나열하고 보면 막상 자연사 비율이 낮다. 당장에 손씨일가만 봐도 자연사한 것은 손송, 손광, 손유, 손교, 손등, 손려, 손준, 손호 정도다. 이는 손권 말기 벌어진 이궁의 변과 그 이후 손준, 손침의 폭정에 잠깐 안정기를 찾은 손휴 시기를 지나 손호 시절에서 '''정치적으로 너무 죽어나갔기 때문이다.'''[16] 즉 단순 요절징크스만은 아니고 손권 말기부터 이어진 정치적 혼란과 맞닿는 면이 있는 것 다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일찍 죽어나간 감은 있다.

3. 장수한 오나라 인물들


  • 손권 - 71세(182년~252년). 아버지와 형의 생전 연령을 합친 것보다 오래 살았다. 단 너무 오래 살아서인지(?) 손권 문서의 '너무 오래 살았다' 부분에서 손권이 주벽인 이유가 이사람 저사람 일찍 죽어 그걸 술로 달래려던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있다.
  • 육손 - 63세(183년~245년). 육손은 연의에서도 그렇고 미디어 매체 대부분에서 애송이나 젊은이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이릉대전 무렵이면 40세에 접어든 시기다. 다만 오래 살아서 좋은 꼴은 못 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홧병으로 사망했으니, 결국 장수했다고는 해도 제 명에는 못 살았다.
  • 장소 - 81세(156년[17]~236년). 장남인 장승(178~244)도 67세로 사망했다.
  • 여대 - 96세 (161년[18]~256년). 오나라에서는 가장 장수했다.[19]
  • 사섭 - 90세. 장소와 동갑인 손견보다도 19세가 많았다.
  • 우번 - 70세 정도에 사망. 이미 190년간에 성인인 것, 손권의 재위 이전에 귀양갔으나 10년만에 죽었으므로 160년대부터 230년대까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고옹 - 76세(168년~243년). 손권이 즉위한 225년부터 19년간 승상에 재임했다.#
  • 주연 - 68세(182년~249년). 그것도 육손 사후에 도독 자리에 올라가고 그 후에 사망. 연의에서는 사실상 요절.
  • 보즐 - (?~247년)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200년부터 주기로 일했고 210년에 파양태수에 있는데 태수가 될 수 있는 나이를 약 30대로 추정하고 출생년을 180년으로 추측하고 몰년이 247년이므로 60대 후반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제갈근 - 68세(174년~241년). 동생보다 7년 먼저 나서 7년 뒤에 죽었다. 아들 제갈각(203~253)도 51세까지 살았으니 요절은 아니지만 군사활동을 거하게 말아먹은 대가로 죽임을 당했으니 제 명에 못 살았다.
  • 주치 - 69세(156년~224년). 정보, 황개, 한당과 함께 손견 시절부터 섬겨온 원로.
  • 정보 - 손견 시절부터 섬겨온 4명의 공신중 한 사람. 연배가 장수 가운데 가장 많아 '정공'이라고 불렸다. 아쉽게도 출생년도를 알 수가 없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진 알 수 없다.
  • 황개 - 손견 시절부터 섬겨온 4명의 공신중 한 사람. 아쉽게도 출생년도를 알 수가 없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진 알 수 없다.
  • 한당 - (?~227년) 손견 시절부터 섬겨온 4명의 공신중 한 사람. 적벽대전 이후 리타이어하는 정보, 황개와 달리 이릉대전에서까지 활약했다. 아쉽게도 출생년도를 알 수가 없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진 알 수 없다. 다만 손견과 비슷한 나이라고 가정할 시, 최소한 70은 넘겼을듯 하다.
  • 감녕 - 의외로 나이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략 215년이나 219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20] 활약기간이 짧아 요절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젊을 때는 인정받질 못하고 좀 늦은 나이에 겨우 빛을 봐서 그렇다.
  • 유찬(留贊) - 73세(183년~255년). 그것도 전사.
  • 육개 - 72세(198년 ~ 269년).
  • 시의 - 81세. 생몰년도는 알 수 없다.
  • 주환 - 62세(177년 ~ 238년). 연의에서는 소년장수로 나오지만, 정사에서는 장수했다.
  • 범신 - 69세(206 ~ 274).
  • 정봉 - (?~271). '어려서 용맹하여 소장(小將)이 돼, 감녕(甘寧), 육손(陸遜), 반장(潘璋) 등에게 속했다.'라는 정사의 기록이 있는데, 감녕의 사망추정연도가 215년이나 219년 이므로 정봉이 10대에 감녕의 부대에 임관했다고 가정하면 최소 60대 후반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21]
  • 엄준 - 78세(생몰년도 미상)
  • 장굉 - 60세(153 ~ 212)
  • 주처 - 62세(236 ~ 297). 서진의 인물이지만, 삼국통일 전에 동오의 사람이다.
  • 손씨? - 손책의 딸이자 육손의 아내이자 육항의 어머니, 육경의 할머니. 육경이 태어날때(253년) 제갈씨의 친족이라 쫒겨난 육경의 어머니 대신에 육경을 키우고 육경이 심상을 치렀는데, 손책의 딸치고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 그러나 육경을 키웠다는 사람이 단순히 그의 할머니라 기록되어 있어 지칭하는 사람이 다를 가능성(육손의 측실이나 후처)도 있다.

4. 위나라의 요절한 인물들


우선 조위는 '''수명이 매우 길었던 주요 인사들이 꽤 많다.''' 허저, 서황, 장합, 만총, 문빙, 전예, 곽회, 견초, 장패, 하후패 등의 무장들은 물론 고유, 유소, 사마의, 동소, 유엽, 종요, 진군, 왕랑, 화흠, 진교, 위진, 장제, 신비, 유방, 손자, 최림, 노육, 왕릉 등 조위 건국 전 군벌 시절 조조 때 출사했던 중신들이 조조의 손자 조예 때도, 심지어 아예 조방, 조모 때까지 조정의 요직을 해먹은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 중 최강자는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부로 영제 때 태어나 삼국정립과 삼국 중 촉과 위가 망하는 것까지 보고 오가 망하기 8년 전 '''93세(만 9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만약 독발수기능의 난 등으로 진의 오나라 침공이 늦어지지 않았더라면 오까지 멸망하는 것을 볼 수도 있었으리라. 즉 '''당대 기준이 아니라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충분히 장수한 인물들이 즐비하다.''' 이것만 보면 조위가 촉한과 손오의 양면공략을 이겨내고 당대 절대 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렇게 나라를 보위하는 핵심 인재들의 수명이 매우매우 길었던 것도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몇몇 핵심 인물들이 요절했는데, 특히 황제 조씨 집안 인물들 상당수가 요절했다. 위나라의 첫 황제 조비가 만 40세를 넘기지 못했고, 다음 황제 조예도 35세 전후해서 사망한 것으로 여겨지며 조비의 형제들은 조창조식 역시 각각 30대 초중반, 40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생년이 정확하지 않아 요절인지의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군부의 주요 인물들인 하후상, 조휴, 조진이 모두 군부에서 중점적으로 활약한 기간이 길어야 10년 남짓에 불과하여 50세 이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꽤 높다. 훗날 조위가 호족 대표격인 사마씨에게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허무하게 왕권을 빼앗긴 건 조조의 뒤를 이어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초석의 역할을 해야만 했던 조비와 조예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요절하였고 그것을 붙잡아 줄 친족들도 하나같이 오래 살지 못하면서 중심이 계속 흔들린 반면, 신권을 대표하는 주요 신하들 의 수명은 매우매우 길어서 자연스럽게 신권은 강화되고 황권이 악화됐던 측면이 크다. 결과적으로 '''조위의 장수징크스(...)는 양날의 칼'''이었던 셈...[22]
참고로 위 인물들이 일찍 죽은 이유는 당시 의학의 한계라기보단 자기관리 부족으로 21세기에도 일찍 죽기 좋은 생활습관을 유지했거나 심리적 요인이 크다. 조비, 조예는 평소 주색과 매우 가까웠고 조식은 오랜 주벽과 정계에서 완전히 배제된뒤 발생한 스트레스, 조진은 비만, 조휴는 석정전투 패배후 화병, 하후상은 조비에게 애첩이 살해당한 심적 고통으로 죽었다. 별개로 조창은 조비에게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추가로 조조 휘하 문관들 중 장수한 인물들이 많은 반면 핵심 참모들 중에서는 곽가가 단명하였고 (170~207) 순욱도 50세를 넘기지는 못했다(163~212). 순유는 157년생, 214년 사망으로 평범했고, 참모들 중 고령이었던 정욱(141~220), 가후(147~223), 종요(151~230)가 모두 대단히 장수하여, 젊은 참모들부터 먼저 죽어 나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나이는 (정욱>가후>종요)>순유>순욱>곽가인데 몰년은 반대 순서로 곽가>순욱>순유>(정욱>가후>종요).
또한 위나라 출신이라도 남방에서 근무한 이전은 요절하였고, 악진과 장료도 합비 방어를 맡은 뒤 오래 살지는 못했다. 단 만총과 왕릉은 장수하였다. 또한 반대로 남방 출신이거나 꽤 오래 근무한 화흠과 유엽은 조조 밑으로 온 뒤에 꽤 오래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5. 촉나라의 요절한 인물들


촉한은 그나마 손오보다 낫지만 이쪽은 사망원인들을 보면 대부분 곱게 죽지는 못했다. 과로사, 전사, 암살이 대부분인데, 유비가 60대, 관우, 장비, 제갈량이 50대 까지 살아서 그렇지[23] 이릉대전에서 전사한 수많은 장수들을 제외하더라도 곽준이 40세로 40줄 턱걸이 했고 방통이 겨우 36세, 그나마 오래 산 마초법정도 각 47세, 45세로 50을 못 넘겼다. 제갈교, 장포, 관흥, 관통, 관이도 단명했다. 특히 장포와 제갈교는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물론 요화, 장익, 초주, 종예, 등지, 허정, 내민, 강유 등 장수한 사람도 있지만.
촉한은 요절도 요절이지만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후부터 관우, 법정과 황충, 장비, 마초가 1년 간격으로 사망하여 군부의 핵심이 4년만에 증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 유비마저 이릉에서 망하고 마초가 죽은지 1년 후 사망하는 사태가 터져버렸다. 특히 단명한 인재들 중에는 방통, 법정, 마초, 관평, 유봉, 제갈첨 등 촉한의 핵심 인물 내지는 코어 유망주들이 즐비하다. 유봉은 본인의 처신과 위치때문에 그러려니 해도 방통과 법정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자마자 죽어버렸고 마초는 엄청난 능력에도 본인의 PTSD로 추정되는 증상때문에 죽었다는게.. 관평도 관우 밑에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올리는 도중에 전사했고 제갈첨은 젊은 나이에 강유와 동궐 다음인 위장군과 상서복야에 오를정도로 명성이 자자하고 능력면에서도 촉망받는 인재임에도 유선, 마막, 황호의 삽질로 인해 전사하고 말았다.

6. 기타 창작물에서


삼국지 시리즈에선 통솔력을 제일 많이 올려주는 손자병법[24][25]고정도가 손가 대대로 전해져서 이들이 사로잡히면 얄짤없이 처형당하고 빼앗기는 수모를 겪는다. 물론 손가는 대대로 강력해서 사로잡기가 힘들다. 그러나 절영, 조황비전이나 적로 등 도주가 확실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조조유비에 비하면 쉬운 편이다.[26] 몇 몇 시리즈에서는 수명연장 아이템이나 이벤트가 나오는데, 오나라 세력으로 플레이를 할 경우 수명연장 아이템과 이벤트 챙기기는 필수다.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 오나라 진영이 아이돌 군단(…)이 되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일단 손견손책이 일찍 죽은 데다가 오의 첫 군권 1인자인 주유도 일찍 죽었기 때문인데, 삼국지 시리즈처럼 시간상의 구현보다는 서열과 포지션이 중요한 게임이다보니 위 세 인물보다 서열이 낮거나 후대인물일수록 젊게 묘사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래도 처음에는 근엄한 군주상이었던 손권은 결국 5편부터 수염민 청년이 되었고 사마의보다는 4살, 제갈량보다 겨우 2살 어린 육손이 미소년이 되었으며 육손보다 1살 많은 주연도 자연스럽게 미소년화. 노장 감녕은 요절한 능통과 친교를 넘어 친구먹게 만드는 바람에 청년이 되었다. 이 범주에 벗어나는 인물은 황개한당, 정보뿐이다. 후반기 무장 일부는 이거 때문에 등장할 길이 막혀 버렸다. 육항시적은 아버지가 미청년이 되는 바람에 쇼타가 되지 않는 이상 나올수가 없다.(육항은 진삼국무쌍 BLAST에서 결국 쇼타 미소년으로 나온다.)
오나라의 요질인물 관련해서는 진삼국무쌍 2에서 특이하게 반영되었는데, 특수 엔딩 조건과 연관된 "저하늘의 별이 되는 무장" 이 3명으로 끝나는 위랑 촉과 달리 이 세력 혼자 4명이나 된다. 정확히는 주유, 손견, 손책, 태사자의 4명.[27] 오나라로 무쌍모드 엔딩후 스탭롤 직전에 달을 배경으로 저하늘의 별이 되어 사라져가는 4명을 보고 울컥한 분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1] 사기 '굴원가생열전'에는, 가의가 장사왕의 태부로 좌천되어 갈 때에 이를 염려하는 장면이 있다.[2] 이쯤 되면 서성(52세), 제갈각(51세)같이 어중간한 축이 오히려 묻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제갈각은 병에 걸렸거나 자연사가 아니라 중요한 원정을 말아먹고서도 남탓만 하다가 결국 손준과의 권력 싸움에서 살해당했다.[3] 그런데 사실 육손은 63세까지 살았고, 감녕도 단명한 건 아니다. 아마도 육손이 아직 정정할 때 홧병으로 사망해버렸고 감녕은 다소 늦은 나이에 겨우 데뷔해서 좀 활약하다 죽었기에 그런 듯 하다.[4] 보면 알겠지만 위-서진시절에는 보통은 평균 많으면 오래 살았음에도 강남으로 오니까 수명이 줄었다. 또한 북위, 북제, 북주 역대 황제들도 20대에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고, 오래 살아봐야 40대 정도였다.[5] 단, 성덕왕의 경우 어린나이에 즉위했기에 36년을 재위했고, 경덕왕도 22년을 재위했다. 전근대에는 50살 이상의 장수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외적으로 재위가 길었던 내물 마립간 ~ 법흥왕을 제외하면, 선덕여왕 이래 신라 왕가 전반이 그렇고 하대 왕실을 포함해도 경순왕을 제외하면 장수한 임금이 드물었다. 신리 왕실은 초기부터 근친혼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대가 내려오면서 당시 의학으론 집어낼수 없는 유전병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6]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는데 어쨌든 요절했다.[7] 신하들과 연회를 벌이고 있다가, 백성들의 '우길이 온다!' 라는 말을 듣고 신하들까지 우루루 일어나 맞이한 일(...)로 격분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손책의 분노가 마냥 이해 못할 것만은 아닌 것이 황건적들의 수장인 장각이 혹세무민을 하여 온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었으니 화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8] 참고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손권은 19세 때 손책이 죽은 이래로 5여년 만에 어머니와 동생 둘까지 몽땅 잃었다. 가뜩이나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확립하는 데 정신 없었을 텐데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 [9] 아버지 손견이 192년에 죽고 오빠 손권이 182년에 태어났으므로, 손부인의 생년은 183년~192년 사이이다. 삼국지집해에서는 '이릉대전 이후 손권이 유비와 다시 화친을 맺으면서 손부인을 도로 촉으로 보냈는데, 도착하기 전에 유비가 죽었고 그의 부고를 들은 손부인은 장강에 투신자살했다'고 하며, 연의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한다. 유비가 죽은 것이 223년이니 당시 손부인의 나이가 31~40세로 계산이 나온다. 어쨌든 얼추 30대 정도. 정사에는 동오로 귀환한 뒤 손부인의 행적에 대해 기록이 없으며, 재혼했다는 언급도 없고 해서 형제들처럼 요절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삼국지집해의 서술이 사실이라면, 손부인이 유비와의 정 때문에 그를 위해 순사#s-2했을 가능성은 없고(연의에서나 잉꼬부부였지 실제로는 사이가 매우 나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손부인 입장에서 보면 '친정에서는 재화친을 명목으로 자기를 무슨 공물 보내듯 보내 버렸고, 고향으로 돌아올 기약도 없고, 안 그래도 양국 간 악감정이 남아 있는데다 본인은 유선 납치를 주도한 전력이 있어 더욱 미움받을 게 뻔하고, 이미 유비가 새장가를 든 뒤라 유비의 정실부인 대접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걸어 볼 만한 건 유비가 혹시나 호의를 조금 베풀지도 모른다는, 그렇게 높지도 않은 가능성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손부인이 도착하기 전에 유비가 죽으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새로운 황제는 자신에게 납치당할뻔 했기에 자신을 미워할게 뻔하니 이에 절망하여 삶의 의지를 버렸을 가능성은 충분하다.[10] 이 사람이 요절한게 오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비극의 서막이어서 더 비극적이다. 안 그랬으면 정통성도 능력도 출중한 손등은 완벽한 후계자였을 것...[11] 다만 교체될 태자 후보로 지명된 점으로 보아 20대 중반이였을 확률이 훨씬 높다.[12] 참고로 손권의 자식들은 명군감이였던 유능한 인물들이 많았다. 촉한이나 조위가 창업주의 자식들 때에서 함량 미달의 군주들이 나와 나라가 휘청거리거나 멸망의 단초가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동오는 분명히 후계자 쪽으로는 축복받았다. 하지만 자식들이 유능하면 뭐하나, 손권 자기가 다 망쳐놓았는데...[13] 적벽대전~이릉대전에 이르는 부분이 삼국지연의에서 오나라가 가장 주목받는 부분인데, 여기서 오나라 측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4명의 총사령관중 앞의 3명이 병으로 줄줄이 요절한다. .[14] 수송 체계와 문자의 통일, 곧 중국 통일을 의미한다.[15] 사실 49세면 당시 기준으로는 일찍 죽은 건 아니다.[16] 앞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손패의 자손들도 손호가 죽였다.[17] 손견과 동갑이다.[18] 그렇다. 유비와 동갑이다. 그런데 유비의 아들뻘인 손권의 아들들 7명 중 4명보다 오래 살았다(...). 유비도 63세로 꽤 장수한데다가 손권의 아들들 중 5명이 유비 사후에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19] 촉에는 향년 97세의 집진장군 내민(생몰년도 미상)이, 위에는 향년 105세의 은사 장천이 있다.[20] 다만 이 경우 감녕의 나이를 최대한 많게 보았을 때(150년대 초반~중반 정도에 출생했을 것으로 가정했을 시) 얘기고 최대한 적게 보았을 경우(160년대 초반~중반 정도에 출생했을 것으로 가정했을 시)에는 50대에 사망한 것이라서 딱히 장수했다고는 보기 힘들게 된다.[21] 부대에 임관이 가능한 최소 나이로 가정한 것이므로 70대 이상까지 살았을 확률이 더 높다.[22] 그래서 조위를 멸하고 삼국통일한 서진은 황족의 권위를 강화시켰지만 '''그 댓가는...'''[23] 유비 63세, 관우, 장비 50대 후반 남짓, 제갈량 54세. 심지어 관우와 장비는 자연사도 아니고 각각 전사/암살이며 제갈량은 지나친 과로로 죽었음에도 이 정도다. 연의에서 70대까지 사는 황충조운은 정확한 생년이 밝혀져 있지 않다.[24] 손견손무의 자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게임에선 대부분 손자병법을 지니고 있는 걸로 나온다.[25] 삼국지 8에서는 손자병법서가 지력+5(여담으로 삼국지 8은 통솔력이 없다.) 아이템으로 등장하는데, 총 4개(물론 그 중 1개는 손가(家)가 가지고 있다. 나머지 3개는 성도, 말릉(=건업), 오에서 구입 가능.)가 등장해서 희소성이 약간 떨어진다. 삼국지 9삼국지 10에서는 통솔+10 아이템이지만, 삼국지 10에서는 손가(家)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장사의 상회(장사의 규모가 특도시일 때 상회가 생긴다.)에서 구입할 수 있다.[26] 특히 삼국지 11에서는 유비가 특기마저 도주인지라 가장 생포하기 힘든 게 유비이다. 반면 일기토로 잡기는 조조나 유비쪽이 쉽다. 손견과 손책의 무력이 유비나 조조의 무력보다 최소 10 이상 높기 때문이다.[27] 다만 동영상의 시간 배분상 이중 3명만 나온다. 한 명이 빠지면 다른 한 명이 채우는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