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여담
1. 개요
이대호의 여담 문단이 방대해짐에 따라 별도로 생성된 문서이다.
2. 야구 및 스포츠 관련 여담
- 전 롯데 자이언츠 선수이자 코치였던 박계원이 이대호의 학창 시절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1992년 당시 박계원의 지인이 수영초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수영초를 찾은 박계원이 이대호의 불우한 사정을 듣고 야구장비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 2010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 어떤 초등학생이 "도루는 왜 못 하나요?"라는 질문을 했더니 100m를 15초 대에 달려서 도루를 못한다고 친절하게 답변했다.[1] 그리고 홈런을 많이 쳐서 나가면 된다라고 했다. 해당 영상 참고로 이대호의 선수 생활 통산 도루는 11개이다.
- 2010년의 몬스터 시즌을 바탕으로, 마구마구 2010년 KBO 카드 업데이트를 통해 첫 출시부터 엘리트 카드로 나온 최초의 현역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 마구마구는 2006년부터 매년 해당 시즌 성적을 반영한 새 선수들을 내놓는데, 07 리오스를 제외한 2006~2013년에 나온 모든 선수들은 처음 나올 땐 레어 카드였다. 그러나 2014년에 지속적인 엘리트 카드 추가 패치를 통해서 현재는 엘리트 카드가 있는 현역 선수들이 적지 않고, 첫 출시부터 엘리트인 경우도 많아졌다(박병호, 강정호, 유한준, 강민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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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 야구장에서 장외 홈런을 2차례 기록한 유일한 선수다.[2] 그것도 2007,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기록했다. 날아간 것은 2010년의 홈런이 더 멀리 날아갔으나, 시즌 40호 홈런이라는 사실과 함께 9경기 연속 홈런에 묻혀 버렸다고. 사직구장 바깥에 가면 당시 홈런의 낙하 지점에 이를 기념하는 동판이 있다.
- 2011년 1월 12일 무릎팍도사 이대호편이 방송됐다. 고민은 "팀이 우승을 못 해요." 강호동과 쿵쿵따를 하거나 '좀 알고 질문을 하셔야죠~'라고[3] 하는 등 예능감을 적절히 뽐냈다. 이대호의 술회에 따르면 소속 팀이 우승했을 때(고등학교 1학년) 후보 선수라 우승컵 잠깐 만지고 끝났고,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때(추신수, 정근우, 김태균 등과 함께 활약한 대회) 우승하자마자 도핑 테스트에 랜덤으로 걸려 환호도 못 지르고 끌려갔다고. 그리고 이대호의 고민은 결국 무릎팍도사도 발을 뺌으로 인해서 사상 최초로 무릎팍도사가 해결해주지 못한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똑같은 고민을 계속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으나 2014년 시즌에 팀이 퍼시픽리그 우승과 2014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면서 드디어 그의 고민이 해결되었다. 이듬해에는 한 술 더 떠서 2015년 일본시리즈 MVP도 먹었다.
-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뛰었던 안드레 이디어가 류현진이 다저스에서 뛰기 시작한 2013년부터 맹활약을 펼치면 이대호의 이름을 딴 이디호라고 별명으로 칭송받고 있다. 반대로 못하면 이디형이라고 까였다.
-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놓고 한참 갑론을박이 많았을 때, FA 자격을 얻고 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냈다. 이대호와 함께 롯데에서 클린업을 이루던 홍성흔은 팀과 상의하되 1살이라도 젊을 때 갈 수 있으면 빨리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외에 이대호처럼 FA를 얻어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 낫다고 한 다른 야구 관계자나 선수로는 이종범이 있고, 홍성흔과 비슷한 의견을 낸 건 김병현, 박찬호, 봉중근 등 메이저리그에서 몸을 담은 경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최종적으로 류현진은 후자쪽 주장을 한 인물들의 의견처럼 포스팅을 통해 진출했다.
- 롯데 자이언츠의 내야수 정훈이 이대호를 많이 따르는 편이며 굉장히 친한 편이라고 한다. 아직 무명이던 시절에는 이대호의 타격폼을 보고 스윙 연습을 했다고 하며, 원정을 갈 때면 룸메이트로 함께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대호가 다시 롯데로 돌아왔을 때도 정훈의 공이 가장 컸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이런 훈훈한(?) 장면들을 찍어내고 있다.
- 2017년 6월 23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8회초 볼넷으로 출루했으나 2사에서 이우민의 2루 땅볼로 오재원에 태그아웃을 당했다.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경기 종료후 오재원에게 좋지 않은 분위기로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꼰대호'라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멸칭이 붙어버렸다. 무슨 일에 오재원만 관련되면 오재원이 잘못했네라는 말이 나오는 그 오재원과 싸웠음에도 댓글창 분위기가 썩 좋지 못하다.[4] 다음 날 이대호는 이에 대해 해명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 2010시즌부터 2020시즌까지 2018시즌을 빼면 10시즌 소속 팀 감독이 매해 바뀌었다.
- 팀 내 2루수로 활동했던 앤디 번즈가 이대호의 좁은 수비범위로 인해 1루-2루 사이 모든 수비를 다하는 광활한 수비 범위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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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2018 아시안게임은 출전하지 않았고 아마 국가대표 커리어는 이대로 마감될 듯.
2006년 재능이 만개한 이후로 어지간한 국가대항전엔 꼬박꼬박 불려나갔고 나가는 대회마다 괜찮은 성적을 올린, 역대 국가대표 선수중에서도 손꼽히는 성적의 보유자이다. 2017 WBC까지 기준으로 41경기 133타수 43안타(.323) 7홈런 41타점. 나가는 대회마다 최소한 평타 이상은 했는데 꼭 나가는 대회마다 무슨 일이 있어서 파묻힌 케이스- 2018년 1월 21일 집사부일체의 사부로 SBS에 나왔다. 현역 선수답게 출연진들을 신나게 굴리는 모습이 나왔다. 등장부터 출연진들을 양산시의 백운암으로 불러서 강제 등산을 하게 했다. 이대호가 훈련을 한 곳이라고 한다. 이후 하산해서는 양산 시내의 헬스장에서 또 체력 훈련을 시켰다. 이 때문에 출연진들은 기진맥진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2018 시즌 개막 이후 이대호가 부진하자 자기나 열심히 해라, 보여주기 식이었다, 연예인병 걸렸다, 연예인들 괴롭히지 말고 야구나 잘해라며 욕을 먹었다. 또한 3월 24일 일찍 시작된 개막전에 시작하자마자 팀의 연패가 지속되고 최하위(현재 10위)가 머물자 타격도 안 되고 홈런도 안되고 타격 페이스가 안되니 지난 3월 31일 NC와 5-10으로 팀이 또 패배하자(7연패 기준) 홈구장 퇴근길에 어떤 팬이 치킨박스를 던져 등에 맞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이후 바로 각성. 2018시즌 타율 0.333, 37홈런, 125타점을 때리며 롯데의 든든한 기둥역할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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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집사부일체에서 600kg에 달하는 레그프레스를 했다. 다만, 운동선수의 범주에선 하체 근력이 강한편은 아니라고 한다. 스쿼트로 환산하면 180~200kg로 역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배영은 69kg급인데 스쿼트 256~264kg, 체중 2배인 이대호보다도 50kg 이상 더 든다고 한다.
- FA 계약 선수 중 유일하게 계약 기간 중 2회 및 2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이대호가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 때문에 지도자는 하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많다. 이른바 '이대호 3대 타격 조언'이라던지...[7] 이대호가 감독될 시 일어날 일이라던지...
- 많은 돈을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까는 악성 인터넷 문화와 좋지 못한 팬서비스가 합쳐져서 잘해도 느린 돼지라고 욕먹고 못하면 돈만 먹는 돼지라고 욕먹는 대표적인 고연봉 베테랑 거포 선수이다.#[8] 그나마 김태균보다 욕을 덜 먹는 이유가 국가대표 중심타자 이미지가 아직까지 굉장히 강하고 김태균과는 다르게 일본야구[9] 에서 성공하여 메이저리그에도 진출하는데 성공해서 그런 것. 또한 야구 모르는 사람들도 홈런이 부각되는 야구 특성상 이대호와 이승엽은 알기 때문에 야구 모르는 사람들에게 형성된 좋은 이미지도 있다.
3. 그 외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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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프로필에는 194cm, 100kg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것은 2001년 입단 당시이고 지금 현재는 어느 누가 봐도 120kg을 너끈히 넘는다. 만약 192cm, 100kg라면 알렉스 로드리게스 혹은 마해영과 같다. 같은 팀의 선수들과 비교를 하면 이재곤이 191cm에 96kg으로 공식 프로필상 4kg 차이지만 누가 봐도 절대 믿을 수 없는 차이다. 2009년 올스타전 하루 전 부산에서 있었던 슬러거 이벤트에서 팬들의 질문에 127kg라고 밝힌 바 있으며, 스포츠조선 2009년 7월 27일 10대 1 인터뷰 기사에서 몸무게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총 20개의 질문 중 3개가 몸무게 및 살에 관한 질문이었다. 걔중에는 "맞을 각오를 하고 물어보는데 왜 살 안 뺌?"이라는 질문도 있었다. 2012년에는 125kg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듯. 의외로 의식하고 있는지 KBS 다큐멘터리 촬영 때 오릭스에서 낸 기사에 130kg라고 적혀있자 "저 125kg임. 확실히 체크해 주세요 OK?"라고 일어로 구단 직원에게 항변하기도 했다. 정말 많이 나갔을 때는 150kg까지 나갔다고.. 현재 구단 공식 프로필에는 130kg이라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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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체중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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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체중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짤.
- 2016년 3월부터 현대증권의 모델로 활동 했다.
- 2009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해운대에 특별 출연. 특별 출연한 야구 선수들 중 유일하게 대사가 있다! 다른 선수들은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여러분'이라고 뭉뚱그려 나오는데 이대호 혼자 따로 배역으로 나온다. 배역은 이대호 선수 역. 영화 내에서도 4번 타자 주제에 병살타나 치고 있다며 까고 있는 설경구를 향해 "마, 딱 봐놨어 니... 딱 거 있어라 니능... 딱 거 있어!!"라는 대사를 친다. 이 대사 뒤에 '니는 가도 죽고 안 가도 죽어!!!'도 있었다는데, 이미지를 생각해 편집되었다고...[10] 장원준은 이 신을 찍을 때 달려나오다 넘어져 유일하게 NG를 낸 사람이 됐다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설경구가 너무했다기 보다는, 사직 야구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풍경에 가깝다. 설경구처럼 그물까지 뚫고 들어가 뭐라고 하지야 않겠지만... 그 와중에 까메오로 한명재 캐스터와 허구연 해설위원이 캐스팅되었는데 퀄리티가 MBC SPORTS+ 야구 중계다. 장원준은 덤. 이때 이대호는 '아 연기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막상 슛 들어가보니 설경구가 정말로 사직구장에서 술마시고 욕하는 아재들처럼 리얼한 연기로 순간 이대호의 뚜껑을 열어버렸고, 열이 확 받아 진심으로 대사를 치며 한 번에 OK 사인을 받았다고 술회. 나중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설경구를 볼 때까지도 분이 안 풀렸다나... 그리고, 이 영화 캐스팅 롤에 올라가면서 출연료도 천만원 받았다고 한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평가하길 '상대 배우의 감정까지 끌어올려주는 명배우'라고 설경구를 평가했다.
- 2009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시상자로 참석, "천만 관객 동원 배우다"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말하고 나서 멋쩍은 듯 한숨을 쉬는 거 보면 자신이 생각한 건 아니고 대본에 있었던 듯 하지만, 절친한 개그맨 이동엽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에도 종종 저 말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즈음 거대 캐릭터 풍선이 만들어졌다.#
- 2009년 12월 26일, 신혜정 씨와 결혼하였다. # 시즌 중에 사직구장 전광판을 이용해서 영상 메시지를 날리고, 이어 3만 관중 앞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무명선수 이대호가 부상으로 신음할 때 정성껏 간호해주고 심리적 안정을 찾게 해 준 여자친구로, 2001년 롯데 선수단이 임수혁선수 돕기 일일 호프를 했을 때 만났다. 2001년 무릎 부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할 때 보호자가 필요했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당시 여자친구이던 와이프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신혜정 씨는 당시 대학생이었고 시험 기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뒷바라지를 해주었으며, 7시간의 장시간 수술 뒤 이대호가 1L 소변통을 가득 채웠는데 아무 내색 없이 받아서 치워줬다고. 처음에는 '이대호가 너무 크다'며 싫어했으나 적극적인 구애에 곧 사귀기 시작, 오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였다. 2010년 이대호의 포스를 보면 신혜정 씨의 공헌이 큰 듯하다. 이대호 본인도 그렇게 느끼는 듯 인터뷰에서 "결혼하고 용됐다고 해 달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 아래 서술한 대로 넉넉지 못한 가정 환경에서 어렵게 자라서인지,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며 꿈도 가족끼리 외식하는 것이었을 정도로 소박. 그래서인지 아내와 딸이 야구장을 찾으면 꼭 홈런이나 타점이 나오는 활약을 한다고. 그에 비해 자신을 키워주다시피 한 형 이차호 씨가 야구장을 찾으면 지는 징크스가 있어 아예 보러 가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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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을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체격이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신수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밝힌 바에 의하면, 야구를 위해 수영초등학교로 전학 가서 교실에 갔더니 웬 고등학생이 뒷줄에 앉아 있더라고... 감독한테 말했더니 꼭 데려오라고 구박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야구를 권유했다고 한다. 한편 이대호 본인은 바로 아래 서술할 불우한 가정 형편 때문에, 당시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박정태를 외삼촌으로 둔 추신수가 무척 부러웠다고 한다.
- 마지막 주먹다짐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다른 야구부원이 6학년에게 맞고 오자, 찾아가서 코피가 터지도록 두들겨 팼던 것이었다고 한다. 워낙 큰 덩치 탓에 중학생 이후로는 감히 싸움을 걸어오는 또래가 없었다고...
- 큰 덩치만 보면 누가 봐도 잘 사는 집안에서 잘 먹고 큰 듯하나, 어린 시절이 꽤 불우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집을 떠났을 때 할머니가 홀로 키워줬다고 한다. 추신수의 권유로 이대호가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자 삼촌들이 모여서 가족 회의를 했고, 그 끝에 "야구 선수가 되도록 한 번 밀어 줘 보자."로 결론. 이후 삼촌들이 사직 야구장에 많이 데려갔다고 한다. 학창시절 이대호는 야구 선수로 대성해서 할머니를 호강시켜드릴 생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경남고 2학년 때 그만 돌아가셨다고 한다. 1년 뒤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되어 2억 원이 조금 넘는 거금을 계약금으로 받고도 할머니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그리고 이대호가 프로에 입단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친어머니가 다시 같이 살자고 전화도 왔다고 하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운동 선수의 체격은 선수 어머니의 신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대호의 경우는 어머니의 키가 169cm였다고 한다. 이대호의 나이, 즉 어머니의 연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큰 체격이라고 볼 수 있다. 고교 재학 중 부모님 같았던 할머니를 여읜 후에는 형인 이차호 씨가 이대호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3살 터울의 형은 할머니를 덜 고생시켜드리고 싶어, 우수한 학업 성적에도 불구하고 빨리 취업을 하기 위해 공고에 진학해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고, 이대호가 프로 지명을 받은 뒤에야 뒤늦게 군대에 입대했다고 한다. 군 전역 후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이대호가 속한 스포츠 매니지먼트 그룹인 O2 S&M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여담이지만 이대호의 형 이름이 '이차호'로, 원래 뜻으로 따지면 이차호가 첫째이니 차호가 '대호'라는 이름을 갖고, 이대호가 둘째이니 '차호'라는 이름을 받아야 하는데, 할머니가 호적 등록 과정에서 한자를 헷갈려 이 둘의 이름을 뒤바꿔 버리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 다른 특출난 야구선수들에 비해 문신이 없는 편이다.
-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선행 활동이 많다.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오프 시즌마다 자비로 구입한 연탄을 팬클럽, 동료들과 함께 달동네 독거노인들에 직접 방문하여 배달하고, 독거노인들을 직접 목욕시키거나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못다한 효도를 대신하려고 그런다고. 특히 연탄 배달은 2006년부터 시작해서 매년 이어져 오고 있다. 2020년에도 연탄 봉사에 나서며 15년째 매년 겨울 연탄 봉사를 하고 있다.
- 부산우유 광고로 부산우유 제품 중 요네뜨라는 광고를 찍었는데... 간에 기별이나 가나?
- <1박 2일>의 6대 광역시 특집에 부산을 소개하기 위해 출연. 갑작스러운 섭외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 친화력이 높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쉽게 남들에게 다가서기 힘들어 하는 이대호와 이승기 모두 쉽게 친해져 거의 의형제급의 친한 사이가 되어 헤어졌다. 이 와중에 이대호는 복불복에 강한 집착을 보이기도 했으며, 예의 황금 배트를 노리고 오는 도둑이 있을까봐 불안해하는 아내를 위해 "집에는 복불복으로 짝퉁 방망이 갖다 놨습니다. 그거는 가져가도 돈이 안 됩니다아~ 진짜 방망이는 은행에 있습니다아~" "부산에 은행이 한 100개 있으니까 한군데 골라 보십시오오~"라고 드립치는 등, 예능감을 터트렸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자리에서 이승기가 "우리가 <무릎팍도사>보다 먼저 나가는 거야?"라고 했다는 후문. 녹화는 2009년 12월 8일에 마쳤고, 2010년 1월 초에 방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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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지간한 경우 외에는 얼굴에서 싱글거림이 떠나지 않는 선수라 이것과 같은 짤방도 있다.# 반대로 과거에는 이런 시절도 있었다.[11]
- 2011년에 개봉한 영화인 <위험한 상견례>에선 롯데 어린이 야구단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 어린이'가 등장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80년대 말. 실제 모습과 아역 배우의 씽크로율이 상당하다.
- <응답하라 1997>의 8화에 '경남고 투수 이대호'가 등장한다. 스카우팅을 위해 경남고를 방문한 성동일이, 이대호에게 좋은 투수의 자질이 보인다며, 경남고 감독에게 이대호를 투수로 키울 것을 강추하는 에피소드가 짧게 지나간다.
- 2011년 7월 18일, 불교 조계종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본래 2006년부터 불교 신도였다고...
- 2011 MVP 시상식때 2표 받았지만 특유의 능글거림을 뽐냈다. %
- 2012년 9월에 이대호의 사촌동생 이병호가 <슈퍼스타 K 4>에 지역 예선에 출전하여 만만치 않은 가창력을 보이며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슈퍼위크에 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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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라커룸에 나이트 삐끼가 준 명함을 꽂은 적도 있다. 본인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런 듯.
- 2012년 10월 31일, 모든 야구 게임에서 이대호의 이름이 이태산으로 바뀌었다. 단 나는 야구감독이다에서 "장거포"로 이름이 바뀌는 등 예외도 있긴 하지만. 이쪽은 매우 일찍 바뀌었다. 2013년 초에는 이대호의 이름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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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의 딸 예서 양의 얼굴이 공개되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이대호 판박이네.", "부산 내에서 길을 잃으면 누가 봐도 사직 야구장으로 데려갈 정도로 닮았다."
이대호의 딸 예서 양의 얼굴이 공개되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이대호 판박이네.", "부산 내에서 길을 잃으면 누가 봐도 사직 야구장으로 데려갈 정도로 닮았다."
- 이대호가 미국에 뛰는 사이 아들이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해야갤 등 일부 커뮤니티에선 이를 놓고 노리고 원정출산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대호와 아내의 집안 사정이 익히 알려져 있는데다 원정 출산 관련 법은 진즉 개정되어 조금만 찾아보면 아니란 게 드러났던지라 금방 수그러들었다. 미국에 간 2016년 시즌이 끝나고 6년만에 고향팀인 롯데자이언츠에 복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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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집사부일체 출연 당시 밝힌 사실로, 매년 겨울훈련 기간인 11월~12월 두 달간은 고기 두점에 샐러드, 견과류로만 이루어진 간소한 식단을 짜서 체중관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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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엄격하게 준수하는 듯.
- 팬서비스가 좋지 못하다는 이미지가 많은 선수이다. 이러한 악성 루머가 많은 이유는 어린 팬이 사인을 요청하자 무시한 채 앞만보고 걸어가는 듯한 사진이 발굴되어 넷상에 많이 퍼뜨려 졌기 때문. 그러나 사실은 뒤에 있던 문규현에게 싸인을 요청한 것이고 이대호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갔다고 사진상의 사인을 요청한 당사자가 페이스북에 밝혔다. 참고글 1 참고글 2 커뮤니티 반응은 '전국구 스타인 이대호도 아니고 당시 백업 선수였던 문규현에게 사인을 요청한 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정도. 결론적으로 이대호의 팬서비스는 박용택처럼 천사같은 수준이 아닐 뿐 해줄 땐 해주는 선수이며, 팬들의 사인 요청을 받고도 딴청을 피우며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팬이 주는 선물만 받고 튀는 최악의 팬서비스쉽으로 악명이 높은 몇몇 선수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르신이나 어린아이 팬한테는 더 잘해주는 편.
- 동갑인 김태균과 함께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였다.
4. 별명
- 빅보이, 돼호
통통 한 체격으로 인해 언론에서 흔히 쓰는 별명은 빅보이이지만[13] 일반적으로는 이름을 살짝 바꾼 돼호, 혹은 거기서 조금 더 바꾼 돼랑이(돼지+호랑이. 이대호의 호를 虎라고 봐서) 등등으로 불린다. 간혹 이대호가 부진하면 바로 돼지로 격하. 밑에 나올 부산우유 CF 때문에 우유돼지 추가. 반면 성적이 잘 나올 때는 조선의 4번 타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롯데 선수들끼리만 사용하던 "백설공주"라는 별명이 MBC ESPN 중계를 통하여 알려졌다. 저 뜻이 뭔가 하면, 백만인을 설설 기게 하는 공포의 주둥이... 2007년도에 이대호를 제외한 롯데 타선이 부진할 때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라고 부른 것이 '공주'의 원조인듯.# 또 가끔씩 나오는 호수비에 대한 경탄의 의미로 수비요정이라고 불릴 때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끔.
-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의 여러 별명 중 언론에서도 자주 쓰일 정도로 공식화된 별명. 물론 실제 응원에서 자주 쓰이는 문구이며, 최훈의 베이징 올림픽 야구 카툰 정리 편에서 대중화했다.
'조선의 xxx' 라는 표현은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등장한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06 도하 참사 당시 이대호가 홀로 대표팀에서 분투했고 네티즌들이 별명을 붙여는 줘야 겠는데 '대한민국 4번타자', '국민타자' 라는 별명은 이승엽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에 붙이지 못하고 명성황후의 대사에서 따와 조선의 4번타자로 붙인 것으로 보인다.[14] 한편 도쿄 대첩에서 역전타를 치면서 조선의 4번타자라는 별명이 평소 야구를 안보던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는데, 현대 한국에서는 조선이라는 이름이 북한이나 일제시대 한반도의 명칭(조선/조센)과 연관이 되다보니 이들 중 몇몇은 '대한민국의 4번타자'라고 수정하라며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별명은 확실히 북한이나 일제시대 조선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인터뷰에서 이대호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으로 꼽았는데 이런 논란거리가 된 이후로는 저 별명을 거북해하는 듯 하다. 다만 별명이 사장될 정도로 논란이 크진 않았고, 하도 오래 쓰인 별명이다보니 논란이라 할 만한 여론은 대부분 사라졌고 2020년 기준으로도 흔히 쓰인다.
그 외에도 영화 YMCA 야구단에서 비롯된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해당 영화의 주인공인 송강호의 풍채(...)가 이대호와 비슷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선의 xxx' 라는 표현은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등장한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06 도하 참사 당시 이대호가 홀로 대표팀에서 분투했고 네티즌들이 별명을 붙여는 줘야 겠는데 '대한민국 4번타자', '국민타자' 라는 별명은 이승엽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에 붙이지 못하고 명성황후의 대사에서 따와 조선의 4번타자로 붙인 것으로 보인다.[14] 한편 도쿄 대첩에서 역전타를 치면서 조선의 4번타자라는 별명이 평소 야구를 안보던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는데, 현대 한국에서는 조선이라는 이름이 북한이나 일제시대 한반도의 명칭(조선/조센)과 연관이 되다보니 이들 중 몇몇은 '대한민국의 4번타자'라고 수정하라며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별명은 확실히 북한이나 일제시대 조선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인터뷰에서 이대호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으로 꼽았는데 이런 논란거리가 된 이후로는 저 별명을 거북해하는 듯 하다. 다만 별명이 사장될 정도로 논란이 크진 않았고, 하도 오래 쓰인 별명이다보니 논란이라 할 만한 여론은 대부분 사라졌고 2020년 기준으로도 흔히 쓰인다.
그 외에도 영화 YMCA 야구단에서 비롯된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해당 영화의 주인공인 송강호의 풍채(...)가 이대호와 비슷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한편 야갤 유행어로는 "이게 사람이야 이대호야"가 있다. 일본에 간 이후 오릭스 팬으로부터 이대포라고 불리는듯.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자 이데온으로도 불리고 있다. 오릭스가 그리 강한 팀이 아니여서 한국처럼 많이 이야기되고 있진 않지만 나름 이대호의 덩치에 관한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일례로 일본방송 "우치무라사마즈" 에서 풋살을 할때 덩치 큰 AD가 도와주러 나왔는데 그걸 본 오오타케 카즈키가 "너 이대호냐? 오릭스의 거포."라는 드립을 쳤고 빵 터트렸다. 그리고 그 AD는 끝날 때까지 이대호 AD로 불린건 덤.
- 비득점권의 악마
소프트뱅크 첫 시즌에 비득점권에서 홈런을 자주 때려 2ch에서 붙여준 별명. 거액으로 사왔는데 영양가 없다고 비꼬는 별명이다.
- 이대호 도루하는 소리
네이버에서 '이대호'를 치면 "이대호 도루하는 소리"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심지어 본인도 저 말을 알고 있었다. 양승호 감독이 롯데 감독 시절, 롯데 프런트에서 라인업에 간섭하려고 하자 "이런 식이라면 나 내일 경기에 1번 이대호 2번 홍성흔 3번 강민호 4번 문규현 쓴다고."라고 일갈하기도 했다고 한다. 출처
- 돼덕스
2011년 11월 13일 열린 부산고 VS 경남고 라이벌 매치 투수로 나와서 투심 패스트볼을 선보이자 돼덕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대호가 던지는 패스트볼은 등심패스트볼이라고 명명했다. 또 그의 공에 걸리는 테일링은 돼일링, 공이 떨어지면 PORK볼[15] 이라고 불린다.
그날 던진 구속이 130km/h가 나오는 위엄을 보이기도. 중계하던 한명재 캐스터가 이를 보고는 "앞으로 130km/h 밑으로 던지는 투수들은 이대호 선수에게 '나 투수다'라고 얘기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16]
그날 던진 구속이 130km/h가 나오는 위엄을 보이기도. 중계하던 한명재 캐스터가 이를 보고는 "앞으로 130km/h 밑으로 던지는 투수들은 이대호 선수에게 '나 투수다'라고 얘기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16]
- Holy 드립
그 외에 Ho-Lee가 영어 holy와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응용한 별명들이 주류였다. 적시타를 치면 Ho-lee grail(성배), 삼진을 먹거나 병살타를 치면 Ho-lee shit(...).
- 치타호
[image]
2018년 초 이대호와 롯데의 성적이 좋지 않자 한 어그로가 꼴갤문학으로 인간 이대호 시리즈를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꼴갤에서 인기를 모았는데, 그 중 "이대호는 다른 경주견들이 먼저 달려가는 것을 바라보는 치타"로 비유하며 비꼰 글이 역으로 이대호가 성적 반전을 이루면서 성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치타호라는 별명이 붙은 이대호를 비롯해 슬로우 스타터 기질이 있는 선수들에게 이 치타 드립이 성행하게 되었다.
2018년 초 이대호와 롯데의 성적이 좋지 않자 한 어그로가 꼴갤문학으로 인간 이대호 시리즈를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꼴갤에서 인기를 모았는데, 그 중 "이대호는 다른 경주견들이 먼저 달려가는 것을 바라보는 치타"로 비유하며 비꼰 글이 역으로 이대호가 성적 반전을 이루면서 성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치타호라는 별명이 붙은 이대호를 비롯해 슬로우 스타터 기질이 있는 선수들에게 이 치타 드립이 성행하게 되었다.
- 야구주머니
KBO 복귀 후 주장을 맡은 이후에 불리기 시작한 별명. 주장직에서 내려온 후에도 쭉 불리고 있다.
- 꼰대호
이대호가 꼰대라고 비꼬는 별명. 후배 오재원이나 김재호와의 마찰, 한 살 아래인 문규현의 뺨을 치며 훈계한다던가, TV에서 본인이 직접 담배 피우는 불량 여고생들을 발견하자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하고 훈계했다는 내용을 미담처럼 자랑스럽게 얘기한다던지 하는 구시대적 위계질서, 좋게 말하면 예의범절이고 나쁘게 말하면 권위주의 문화를 강조하는 꼰대스런 일화가 유독 많아서 붙은 별명이다.
5. 선수협 판공비 셀프 인상 논란
[단독] 이대호 선수협회장, 판공비(업무추진비) 2배 '셀프 인상'
2020년 12월 1일 SBS의 단독 뉴스로, 이대호가 선수협 회장에 취임한 후[17] 협회장 판공비(업무 추진비)가 24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2.5배 인상'''되었고, 게다가 이 돈이 '''이대호의 개인 계좌에 현금으로 입금되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이에 이대호 측은 "공익을 위해서 썼다." 라고만 밝히고 말을 아끼는 상황. 하지만 세간에는 도대체 어느 단체에서 판공비를 개인의 계좌로 받느냐는 것이 쟁점이 되고있다.
이후 이대호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던 친형 이차호씨가 자신의 인스타에 해명글을 올리면서, 판공비 두배 인상은 '셀프 인상'이 아니라 공석이었던 협회장을 뽑기 위해 '''일종의 메리트로 함께 의결한 것'''이며, 법인카드의 형태가 아닌 개인 계좌로 판공비를 지급한 것은 선수의 입장에서 법인카드 지출 사유를 매번 체크하는 것은 어려우니 편의상 협회장의 상여로 소득처분및 세금공제후 현금으로 지급한 것이고 이 역시 이사회에서 의결된 사항이라고 반박했다.
논란이 일자 이대호 측은 다음날인 12월 2일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
12월 2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호텔리베라에서 이대호의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먼저 이대호는 3분 29초간 낭독한 입장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또한 "너무 많은 금액을 지급받은 것이 아니냐는 질타에 대해서는 당시 이사회 결의 과정에서 좀 더 깊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고 입장을 밝혔다. # # # #
이어 이대호는 자신의 법률대리인 주민 변호사와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SBS 이성훈 기자[18][19] 의 '판공비 인상을 발의한 사람이 이대호 선수 본인이 맞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대호는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 또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다른 선수들도 다 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라고 답변하며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는데 나중에 다른 답변을 하던 도중에 판공비 인상 이야기를 본인이 꺼냈다고 말하고 말았다. 또한 이대호는 "회장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당선이 될 줄 알았으면 저는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때 당시에는 제가 고사하던 자리였기 때문에 전혀 생각도 안했습니다." 등의 반박을 했다.
그러나 이대호는 이사회 회의록 요구에 대해선 응하지 않으며 법률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물러섰다. 또 회계 상으로 임원 월급으로 처리되는 만큼 증빙 내용을 하나 하나 기록할 이유 또한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박재홍 회장때까지 판공비는 법인카드로 처리되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대호 회장 및 김태현 사무총장시기 현금 지급으로 바뀌었는지는 의문.[20]
하지만 해당 기자회견 내용과 정면 반대되는, 12월 2일 새벽 4시에 보도된 스포츠경향의 기사가 있다. 이에 따르면, 이대호가 이사회에서 선수협 회장으로 사실상 확정되자 판공비로 '''1억'''을 달라고 했고, 옆에서 같이 박자를 맞춰주는 다른 구단 고참 선수가 한 명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대호가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이사회 멤버들이 선수협 사무국에 "최대한 책정할 수 있는 회장 판공비가 얼마인가?”라고 물었고, “5, 6000만 원이 최대.”라고 답하자 이들이 판공비를 곧바로 6천만 원을 책정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박 기사를 작성한 김은진 기자는 선수협 회장의 판공비 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2019년 여름'''에 들었지만, 선수협의 존재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를 기사화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2020년 연말인 현 시점에서는 이미 상당수의 야구 관계자들과 스포츠 기자들이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12월 2일 저녁 SBS의 후속 보도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이사회에 참석했던 선수들의 이야기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미 사실상 이대호를 추대하는 분위기였고, 이대호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너희들이 나 회장시키려는 거 안다"고 발언한 내용도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대호가 판공비를 1억원으로 인상할 것을 제안했으나 수도권 구단 일부 선수들과 선수협 사무국이 반대해 6천만원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
한편 SBS의 취재에 응한 박재홍 전 선수협 회장은 '제가 회장이었을 때는 판공비를 사용할 때 증빙자료를 남겼다.'고 답했다. 즉, 어느 순간부터 '''보수 개념으로 변질된 판공비'''가 근본적인 문제이며, 이대호 본인이 회장이 될걸 뻔히 알지만 정식 선출만 안된 상황에서 '셀프 인상'했는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12월 7일 체육시민단체 '사람과 운동'이 이대호, 김태현 전 사무총장, 선수협 이사들을 업무상 배임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12월 10일 이대호 측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가 “이대호가 선수협에 1억 원을 기부했다”고 전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 구체적인 기부 내용이나 후속보도는 아직까지 없는 상태다.
12월 15일 체육시민단체 사람과 운동은 이대호 선수협 전 회장과 김태현 전 사무총장, 오동현 고문변호사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발을 했다고 밝혔다. #
[1] 순경 공채에 지원한 대한민국 남성의 100m 달리기 평균 기록이 15초 중반대인 걸 감안하면 이대호의 주력은 일반인 기준으로 평균 이상이다. 오히려 그 덩치에 이 정도 주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프로 선수들의 운동 능력은 상상 이상이라는 걸 알 수 있다.[2] 1차례 이상 기록한 선수는 2011시즌에 당시 LG 소속이었던 조인성과 2014시즌의 황재균, 2015시즌 최준석, 댄 블랙, 이승엽이 장외 홈런을 쳤다.[3] 여기서는 진지하게 보면 그럴만도 했던게 강호동의 질문이 '본인이 1할 타율을 쳐서라도 우승하면 좋겠냐'고 물었고 이대호는 '내가 1할을 치면 당연히 우승을 못한다'고 앞서 답했다.[4] 바로 작년 메이저리그에서 1년 있었을 때는 상대 내야수와 갑작스럽게 부딪치고서도 쿨하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고, 국내 복귀 후 미디어데이 인터뷰에서도 예전보다는 부드러운 선배가 되겠다는 발언을 누군가 캐내어 올리면서 더더욱 까이고 있다.[5] WBSC 프리미어 12의 도쿄 대첩에서 역전 안타를 친 당시의 사진. 오른쪽에 서있는 선수는 나카타 쇼.[6] 2006년은 타율 4할을 넘기고 2홈런 10타점을 기록했지만 도하 참사(야구), 2008 올림픽은 .360 3홈런이었지만 준결승, 결승의 이승엽에 묻혔고, 2009 WBC는 출루율 4할대를 찍고도 .278의 타율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으며, 2010 아시안게임은 .368 1홈런이었지만 추신수에 묻혔고, 2013 WBC는 타율.455를 찍고도 대회탈락으로 묻혔다. 다만 2015년 프리미어12는 .222 1홈런으로 부진했지만 준결승전의 결정적인 역전타로 주목받았고 역으로 2017 WBC때는 다같이 못했지만 이대호 본인도 정말 못했기에 주목받았다.[7] 이대호가 후배들에게 해준 조언으로, 정훈 - 공보고 공치라, 황재균 - 매일 안타 하나씩 치고 볼넷 골라 나가다가 가끔 몰아치면 3할, 한동희 - 그냥 휘두르면 공이 와서 맞을 것.[8] 고의 여부는 그렇다치고 분명히 핀토의 실투가 위험한 부위로 날아온 상황이라 흥분할 만 했는데도 오히려 화낸다고 까이고 있다. 참고로 헬멧을 썼다 해도 153km 정도의 패스트볼에 헤드샷을 당하면 머리에 충분히 충격이 갈 수 있다. 과거 박석민이 레이예스의 147km 헤드샷에 맞아 두피에 피가 약간 고이는 부상을 입은 적도 있고 배영섭 역시 리즈의 150km대 패스트볼에 헤드샷을 당해 후유증에 시달려 기량 저하의 원인이 되었고 결국 2018년 방출되어서 SK에서 1년 뛰다가 은퇴했다.[9] 사실 김태균은 2011년을 너무 크게 말아먹어서 그렇지 2010년에는 성공까지는 아니여도 나름 쓸만한 수준이었다. 초반에 폭망하고 점점 가면서 쓸만한 수준까지 갔으며 당시 일본시리즈에서도 장타가 없지만 3할 4푼 5리에 2타점까지 치면서 괜찮게 활약했다. 게다가 비록 롯데가 외국인을 너무 못뽑는걸 감안해도 이승엽 이후 데스파이네가 오기 전까지 마지막 20홈런 타자였기도 했으니 실패보단 절반만 성공에 더 가깝다.[10]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저 대사 이후에 마 니는... 이후에 목소리가 안나옴을 알 수 있다.[11] 여담으로 저때 투수는 김진우.[12] 잘못된 경제효과 계산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당연히 말도 안 된다. [13] 결혼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인데도 여전히 '보이'이다(...).[14] 윤학길이 현역시절 '고독한 황제'가 아닌 '고독한 황태자'란 별명이 붙은 것도 '황제'인 최동원이 건재했기에 롯데 팬들이 자기 팀 에이스임에도 차마 1인자와 연관된 별명을 붙일 수 없어 황'태자'를 붙였는 데 같은 맥락인 듯.[15] 포크볼은 Forkball이다.[16] 유희관은 종종 120후반대 직구를 던지기도 한다.[17] 2019년 3월부터 선수협회장을 맡고 2020년 시즌 후 사임 의사를 표했다.[18] 이번 사건을 단독으로 보도한 기자로, SBS 스포츠 유튜브 라이브인 '야구에 산다'에 정우영 캐스터와 함께 출연하고 있다. 꽤나 많은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했고 미디어 출연으로 인지도도 어느정도 있지만, 작년 고양 히어로즈 처우 논란처럼 헛다리를 짚은 적도 있다.[19] 해당 기자회견에서 기자는 사실관계에 착오가 있었음을 이대호에게 사과하며, 판공비가 사실상 보수처럼 지급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했다.[20] 물론 그 사이에 전임 이호준 회장도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