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
1. 소개
좌파 성향의 인터넷 신문. 민족정론지[1] , 대한민국 팟캐스트의 기원[2] , 대한민국 민주당계 커뮤니티의 기원 중 한 곳.'''21세기 명량 사회를 졸라 향하여!'''
대한민국 인터넷 뉴미디어의 선구자격인 사이트. 해외반응의 원조. 엽기합성사진과 패러디의 원조이며 대표적인 '''자칭''' 황색언론으로, 사이트 메인 컬러도 황색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대표는 딴지 그룹 총수 김어준. 주 타겟은 386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486에서 586이 되어버린 반새누리당, NLPD 운동권, 좌파, 친민주당계 정당 성향의 중년 대졸 남성들이 되었다.
딴지일보의 특징을 꼽아보면
- 정치인과 재벌 총수들을 풍자 대상으로 삼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시도.
- 때에 따라 비속어 사용도 주저하지 않는 거침없는 문체. 예를 들어 씨바, 졸라 등의 욕설을 추임새처럼 사용한 곳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이를 황색언론의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영국의 데일리 미러나 한국의 선데이 서울과 같은 잡지도 기사에 욕설을 쓰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력한 검열과 문화적 엄숙주의에 사로 잡혀있던 한국 사회를 노골적 B급 문화의 정서로 풍자하고 비튼다는 의미가 강한 편.[3]
- 똑같은 문제를 다루더라도 웃기기 위해 한문, 영어, 사진 등 온갖 것들을 총동원한 기사. 가장 충공깽인 것이 닭알 노른자 흡입사건이라는 제목의 딴지일보 기사이다. 또한 대학들의 서열화를 비판하는 기사에서는 서울 시내의 각 대학들의 주요 건물들을 합쳐서 로봇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다루는 기사도 있는데 완성된 로봇의 외관이 빵터진다.기사. 한시 감상이라면서 만든 것들은 마징가Z나 개구리소년# 같은 것. 한문 배치를 정교하게 해놓아서 의외로 뜻도 어느 정도 맞고 내용도 상당히 재미있다.
- (그때 당시로서는) 정교한 합성사진.
반면에 막말 드립이나 욕설, 섹드립 등 최근에 엽기와 패륜성으로 욕먹는 Daily Delivery 사이트의 문화가 과거 딴지일보의 패러디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과거에 딴지일보의 기사는 주로 노골적인 풍자에 초점이 있었고, 이와는 별도로 게시판이나 댓글에는 '''악플러'''들의 활동이 있었다. 당시 활동하였던 트롤러들이 디시인사이드로 근거지를 옮긴 후로는 많이 약해진 편이다.
급격히 변하는 인터넷 문화의 변동을 따라잡지 못하고 독자층도 흩어져 부침을 거듭해왔다. 기우뚱거리면서도 창간 이후 1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과 함께 기성언론에 대한 대안으로 딴지일보가 급부상하며 재도약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2011년 대선을 앞두고 때마침 불어온 iPhone을 필두로한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본격 mb저격방송 나는 꼼수다를 팟캐스트에 방송하면서 매우 큰 인기와 인지도를 획득하며 부활에 성공했으나 야권의 대선 패배로 빛이 좀 바랜 편이다. 다만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대선에 승리했다면 딴지일보는 다시 망조가 들었을 것이다. 박근혜 시대의 딴지일보와 문재인 시대의 딴지일보의 활동상이 같을 수가 없다. 이후 다시 쌓은 인지도와 다각화된 수익 사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라디오와 까페, 강연에 사보까지 낼 정도로 사세가 확장되었다. [4]
1.1. 운영방식
'''딴지그룹'''에서 운영한다. 거대 언론사와 달리 중소 인터넷 매체 이다 보니 운영비 문제로 이런저런 사업을 펼쳐서 회사의 명줄을 유지하고 있다(딴지 홈페이지에 광고도 거의 없는 편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사업다각화, 심하게 말하면 '닥치는 대로'다. 돈 되는 건 문어발식으로 이곳저곳 찔러보는 듯. 정작 잘된 사업들은 죄다 회사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좋게 말하면 돈에 욕심이 없는, 나쁘게 말하면 돈을 벌 줄 모르는 회사.
2. 공채
2013년 이후 비정기적으로 공채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딱 1명만 뽑는다. 딴지일보 공식 계정에 의하면 2013년 공채 당시 경쟁률은 72:1이었다고 한다.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되니 일만 시켜달라는 지원자가 많은데 그런 거 안 뽑는다고. 가장 최근 공채는 2014년 8월로 여기자가 뽑혔다고 한다. 딴지일보 공채는 3차에 걸쳐 여러 가지를 보는 듯한데 면접자에 의하면 이상한 질문을 많이 한다고. 공채 공고에 의하면 비밀지령 퀘스트 등 여러 가지 던전이 있는 듯한데 비밀 각서라도 있는 모양인지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가 않는다. 딴지일보 공채
그런데 2015년도 공채는 무슨 일인지 '''2명을 뽑기로 했다. '''2015년도 공채 공채 내용 자체가 그 시기의 정치적 사안(EX.땅콩 리턴)에 대한 패러디나 논평이 포함된 것으로 보아 응시자는 이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3. 회사 구조
딴지그룹이 사명으로 실제로는 그룹이 아니라 단독법인체다. 딴지그룹의 각 팀이 각각의 사이트와 카페를 운영하는 형태.
3.1. 딴지일보
딴지그룹이 운영하는 딴지그룹의 대표사이트. 인터넷 언론사지만 2017년 현재, 다른 언론사에서 딴지 자유게시판 반응을 다룰 정도로 커뮤니티 성격이 강해졌다. 기사와 독투(독자투고), 리뷰, 갤러리, 300(딴지필진 전용 글 게시판), 자유게시판이 있다. 흔히 딴지그룹을 딴지일보라 지칭한다.
3.2. 딴지방송국
3.3. 딴G마켓
딴지일보의 인터넷 입점형 쇼핑몰로서 그룹사보 세계 유일 유료 사보를 비롯한 각종 물품을 판매한다. 본인들이 발굴한 유망상품을 파는 곳의 명칭이 바로 '''창조갱제위원회'''이다. 딴지그룹의 주 수익원. 지금은 딴G마켓이 아닌 딴지마켓이라고 표기되었다.
3.3.1. 상품 목록
팔고 있거나 한 번이라도 팔았던 적이 있는 물건들의 일람이다.
먹는 거, 못 먹는 거 등으로 나누어 팔고 있다.
딴지일보 출신 인력들이 세운 XSFM 등에서도 아래의 물건들 중 일부를 파는 경우가 있다.
- 더 딴지 관련상품
- 달고나 셋
- 고우영 삼국지 무삭제판
- 포켓EBS 빡공
- 보정속옷(남성전용) 바디뷰
- 넛지커피
- 소다 스파클링
- 굿커버
- 평산네이처 아로니아 진
- 컴스테이션 조립 PC
- 잉글리쉬 리스타트
- 국민도서관 책꽂이
- remora 아이폰 커버
- 정성농장 홍삼
- 제주 황울금
- 텐가
- 빅그린 23 샴푸
- 안티 마블링 네이처오다 유기농 한우
- 마고마카-남녀 모두에게 좋은 100% 페루산 마카
- 숙취해소제 술술풀리고
- 얼짱쭈꾸미
- 명노가리: 강원도에서 만든 반건조 노가리이다. 이름은 배우 명계남을 딴 것.
- 작은 소녀상: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소녀상을 원작자가 축소 모형으로 제작한 것. 소녀상과 의자, 모형 동판, 아크릴 케이스(추가 구매 사양) 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익금 일부가 기부된다고 한다.
3.4. BUNKER1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딴지일보의 오프라인 카페로서 카페 영업과 강연회, 특강, 딴지라디오 공개방송과 공개 녹음을 한다. 놀랍게도 음식이 굉장히 맛있다. 딴지의 전반적인 B급 성향과는 달리 훌륭한 음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4. 회사 인물(혹은 회사 밖 중요인물)
딴지일보를 거쳐간 이들을 보면 씨벌교황같은 악플러에서부터 김규항이나 진중권같이 잘 알려진 논객들까지도 한때 딴지일보에 기고한 경험이 있다. 미디어 쪽도 꽤 풍부해서, 도날드닭의 이우일이 존나깨군을 연재했고, 그 후임인 강풀이 보나마나를 연재했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한 획을 그은 달묘전설의 제작자 이드니아콘체른도 딴지일보에서 정식기자였고[5] , 아치와 씨팍 플래시 애니메이션도 딴지일보에서 방영했었다.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가 최초로 공개된 것도 딴지일보와 이후에 사라진 씨네포엠를 통해서이다.당시기사.[6] 딴지 역사에서 오랜 기간 고정적으로 꾸준히 활동한 이들 가운데 '''인지도'''를 기준으로 몇 명을 추려본다.
4.1. 총수
4.1.1. 김어준 (0代)
아마도 영원한 딴지일보의 총수. 최초의 편집장. 딴지일보의 대표이자 나꼼수의 진행자, 김어준의 뉴스공장 공장장,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진행자.
포스코를 8개월 만에 자기 발로 박차고 나왔다.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서류 복사나 하는 신입시절 자기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는 거 아니냐는 자괴감과 어느 날 새벽까지 이어진 회식 후 본인을 포함한 신입들에게 회사에 일찍 나오라고 무리한 요구를 한 뒤[7] , 사원들 군기를 잡아주기 위해서 본인이 더 먼저 회사에 나와서 가오를 잡던 간부가 스스로 그런 자기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만족하는 표정과 태도를 보인 걸 느끼던 순간의 끔찍함이었다고 한다.[8]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비참하다 못해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이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IMF 때 정리해고를 당한 후, 1998년 딴지일보를 시작했다. 원래 딴지일보는 김어준 개인 사이트로 시작을 했고, 스스로 기사를 만들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고 코드를 짜는 등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방문 안 해서 스스로 조회수를 올리는 짓을 했다고 하나, 결국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당당히 1999년 언론사 영향력 순위에서 당당히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B급 정서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초창기 인터넷 문화 형성에 나름의 공이 있다. 이 점은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에 비할 만하다. 명확한 정치 지향이 없다가 이후에 보수 쪽으로 커밍아웃한 김유식과 달리 김어준은 확실히 처음부터 보수 세력에 대해 반대했고, 특히 조선일보에 대한 적대적 포지션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쪽이 좀 더 빨랐으며 초창기에는 날카로운 정치 평론과 유력 정치인, 대권 주자들에 대한 신선한 형식의 인터뷰로 유명했다. 유명 정치인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빤스가 사각이냐, 삼각이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다.
딴지일보의 직설적인 논조와 과감하게 당시 기성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까지 거침없이 다루었기 때문에 매우 큰 관심을 받았다. 예를 들어 그동안 하급 문화 취급을 받아 아무도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으며 저평가되었던 국산 애니나 고전 만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 발굴운동을 벌였다든지 하는 일은 꽤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90년대 후반은 묘하게 고급 필진들이 모여드는 시기였다.
딴지일보의 성공으로 기성언론에 대한 비꼼과 날카로운 풍자를 내세우며 인터넷 문화와 언론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매김한다. IT거품이 한창이던 리즈시절에는 800억 원에 딴지를 인수하겠다는 오퍼도 있었다고.[9] 하지만 딴지일보 외에 여러 풍자 사이트와 유머 사이트가 등장했고, 특히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사이트들은 이용자끼리 생산-소비를 하는 형태로 사용자들의 지속적 참여로 성장을 거듭한 반면, 일방적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소비하는 포맷의 딴지 일보는 이들 사이트들에 이용자를 많이 빼앗기게 된다. 이후 상황은 아래의 역사 항목을 참고.
딴지일보에 있어서 김어준의 영향력은 상당히 애매하다. 딴지일보의 명실상부한 얼굴마담이지만, 정작 딴지일보 편집권에는 0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어준이 구속되면 딴지 대박난다고 필진들이 구속기원 릴레이한 것은 농담이라고 해도, 김어준의 정치성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글들이나 김어준이 진행한 프로젝트 부를 대놓고 비판하는 이들이 딴지에서 필진 이름달고 원고료 받고 글을 쓴다.
4.2. 편집장
4.2.1. 김도균(1代)
딴지일보 초대 편집장. PC 통신으로 인연을 맺은 김어준과 함께 딴지일보를 만든 창업공신에 포함되는 인물이다. 딴지일보 1~5호는 김도균이 글을 쓰고, 김어준이 편집과 디자인을 해서 완성되었다. 숭실대 무역학과 재학 중에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졸업 이후에는 딴지일보를 벗어나서 패션 회사에 취업을 했다가 8개월 만에 월급 1/3 수준에 그나마다 나오다 말다하는 딴지로 복귀. 이후 1년간 딴지일보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부터 이미 김어준은 내부 제작보다는 외부활동에 주력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해당인터뷰. 이후 국내 최초의 여행용품 사업체인 트래블메이트를 설립해서 독립, 이후 CEO로 재직 중. 덤으로, 조현민의 '''명의회손''' 발언 상대방이 김도균이었다.
4.2.2. 최내현(2代)
딴지일보 2대 편집장. 1차 전성기 때의 딴지일보를 상징하는 인물. 노무현 사망 이후와 나꼼수 폭발 이후 2,30대 사이에서 딴지일보가 주목받았다면 지금의 4,50대 사이에서 주목받는 딴지일보는 그가 편집장으로 있었던 시절이다. 2003년 말 딴지일보를 나와 필진이었던 함주리, 카오루, 펜더 등과 함께 미디어몹을 차렸다. 시사투나잇의 헤딩라인 뉴스를 비롯한 시사콘텐츠들을 제작. 이후 TV잡지 드라마티크(Dramatique)를 발행하며 출판, 언론업계에 종사. 현재는 한국인터넷콘텐츠협회 회장, 페이퍼하우스 CEO를 맡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고려아연 창업주의 손자다. 즉 재벌 3세.
4.2.3. 한동원(3代)
딴지일보 3대 편집장. (3대 편집장은 철구). 딴지일보 공채 1기 출신. 소설가 겸 영화전문 평론가로 씨네 21이나 한겨레 등에서도 영화관련 리뷰를 올리곤 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전 글들을 모아두고 있기 때문에 당시 기사를 확인하기도 쉬운 편이다. 관련글로는 '적정관람료' 시리즈가 유명한데, 화제 개봉작의 장점을 '요금 인상 요소'로, 단점을 '요금 인하 요소'로 총합해서 원래 티켓값에서 어느 정도 가치인지 평가하는 게 특징이다. 2016년 현재도 딴지일보에 관련 글들이 종종 연재되고 있다.
4.2.4. 김용석 - 너부리 (4代)
딴지일보 4대 편집장. 딴지일보의 제2의 전성기를 재현하고 있던 시기의 편집장이다. 필명은 너부리. 딴지일보 공채1.5기[10] (2014년 들어 살림살이가 나아진 탓인지 꾸준히 공채가 진행되고 있다.딴지일보 공채) 12년에 걸친 딴지일보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편집장직을 맡았다. 과거 남로당(연애통신의 전신)창설과 고우영 삼국지 복간에 공을 세웠다. 읽은 척 메뉴얼의 저자. 본격 게시판 방송 진행자. 다만 2013년 이후에는 영업과 마켓 위주로 활동하였고, 2016년 연말에 퇴사했다. 이후 데마시안 사업본부장이 되었다.
4.2.5. 김창규 - 죽지않는돌고래 (5代)
현 딴지일보 편집장. 전 딴지일보 취재팀장이자 부편집장. 필명은 죽지않는돌고래. 홍석동 납치 사건을 비중있게 다룬 탓에 이 사건의 용의자들로부터 용의자 체포 순간까지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기사와 방송이 추리 소설을 보는 것 같은데 2년 이상 실시간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내용이 압권이었다. 김규열 선장 사건의 공론화 이후, 홍석동 납치 사건의 범인을 체포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워서 다시 한번 유명해졌다. 인터넷 도박 사건은 제보자를 통해 범죄자를 역해킹해 잡아냈다.
부산 출신. 트위터를 보건데 롯빠인 듯하다. 근데 본인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아부나이 니홍고에서 한 말을 보아 야구에는 큰 관심이 없고 야구를 잘 모르는 축빠에 가까운 듯하다. 아외로워(필명) 이용 기자의 증언에 의하면 젖이 크다고 한다.(여유증?) 딴지 라디오 그것은 알기 싫다에 나와 탐사 보도를 터뜨리거나, 하반신 친일파이자 만화를 그리지 않는 시사 만평가 마사오와 함께 아부나이 니홍고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이 방송에선 마사오에 의해 여자와 만날 때 술에 약을 타거나 하는 캐릭터로 낙인 찍히고 있다. 실제로는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며 공개 방송 당시의 사진을 보면 범생 이미지다. 시크한 기사와 달리 딴지라디오나 필진들 사이에선 옷을 못입는다(방상내피만 입고 다닌다), 얼굴이 빨개진다, SNS를 해킹한다, 데스크를 맡더니 필자를 더럽게 괴롭힌다 등 놀림감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것은 알기싫다 죽지않는돌고래 항목 아부나이니홍고 죽지않는돌고래 문서
2013년부터 너부리 4대 편집장이 마켓과 딴지 라디오 광고 등 영업 위주로 활동하고, 기사 등은 죽돌이 담당했다. 2016년 연말 너부리 편집장이 퇴사하면서 공식적으로 편집장이 되었다. 2017년 2월 결혼했다. 이 때문에 적지 않던 여성 팬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4.3. 기자, 필진, 팟캐스터
4.3.1. 김구라
김구라 페이지 참조. 정작 본인은 딴지일보 시절에 대해서 쉬쉬하고 있다. 공개 석상에서 당시의 일을 언급하면 굉장히 불쾌하게 반응한다. 다만 나꼼수 이후에 공중파 방송에서 딴지일보와의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다. 유명 연예인들을 마구 씹는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으로 유명했는데 이때 씹어댔던 연예인들과 이제는 방송국에서 호흡을 맞춰야 하니 당연한 처사이다. 나중에 여러 프로그램에서 문희준 등 여러 연예인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는 했다. 경제적으로도 빈곤했던 시기고 딴지에서도 성인용품 판매를 하던 시기라 월급 대신으로 성인용품을 가져가야 했고 딴지일보 인터넷 방송국을 접을 때 월급 대신 방송기기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지금도 비속어를 많이 쓰는 편이다.
4.3.2. 크리티카
딴지 초창기부터 리즈시절동안은 한국 가요계 및 대중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한 논설위원 중 한 명으로 98-99년 딴지의 초창기 시절 '음악대기자 김 기자'로 불리다가 2000년 초반 딴지 법인출범 (기업화)을 기점으로 논설위원 '크리티카'로 개명함.
딴지 초기 리즈시절, 딴지일보 섹션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대중음악웹진인 '딴따라 딴지' (서태지의 '울트라매니아' 컴백 인터뷰 등)를 총괄 기획하고 만든 딴지 창업 공신인물 중 하나로, 딴따라 딴지 음반레이블 설립, 딴지 라디오방송을 가능케 했던 딴지 레코딩/방송 스튜디오 설계 및 건립, 그리고 공연사업을 기획하고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파토(원종우)가 평직원으로 속해 있던 딴지 '엔터테인먼트 사업부'의 수장이었다가 이후 공연사업 실패 책임을 지고 밀려 나간 인물. 그 자리를 뒤이어 파토(원종우)가 이어받게 됨.
동명의 온라인 게임과는 당연히 무관.
4.3.3. 정다연 - 몸짱아줌마
봄날아줌마, 몸짱아줌마로 유명한 정다연 씨의 출발은 딴지일보였다. 독자투고 게시판을 통해 밝힌 자신의 나이와 몸매가 화제가 되자 직접 딴지일보에서 인터뷰를 진행, 그녀를 발굴해 냈다. 인터뷰 이후 딴지일보 지면을 통해 운동법과 운동 동영상을 올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지금은 일본, 중국 다이어트 시장 진출에 성공한 잘 나가는 사업가. 딴지 출신 중 사업상으로는 가장 크게 성공한 인물이다.
4.3.4. 이우일
저 이름도 유명한 존나깨군을 딴지일보에서 연재했었다. 존나깨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충공깽이 극에 달하는 웹툰이다. 만화 내용이 정말로 자지보지자지보지이다. 애초에 딴지일보에서 존나깨군을 연재할 때 김어준이 이우일에게 마음대로 연재하는 대신 고료 역시 없다는 조건을 내세웠는데 그걸 이우일이 응했다. 현재 이우일은 존나깨군의 이미지를 지워버리기 위해서인지 학습만화의 그림만 계속 그리고 있다.
4.3.5. 씨벌교황
4.3.6. 원종우 - 파토
딴지일보의 논설우원. 논설우원은 논설위원을 비튼 딴지일보만의 직함. 파토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너부리 편집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잠시 임시 편집장을 맡은 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보다 과거 역사에 한 줄을 그은 적이 있는데, 배드 테이스트란 이름의 원맨 밴드로 국내 최초로 인디음반을 만든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외부페이지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현재 딴지일보에 계속 글을 쓰며 과학과 사람들 대표로 활동. 과학 전문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튠즈 팟빵 위키피디아 원종우 문서
4.3.7. 이성주 - 펜더
딴지일보에서 밀리터리를 담당하는 기자. 22사단 출신[11] . 필명은 펜더. 필력이 좋고 유머를 섞는 것에 능해서 책을 굉장히 많이 낸 인기작가이다. 팬더의 전쟁견문록 상하,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 같은 밀리터리물도 볼 만하지만, 의외로 대박은 역사 쪽에서 터졌다. 엽기 조선왕조 실록 시리즈의 작가가 이 사람이다. 이후 엽기 세계사, 엽기 조선풍속사, 엽기조선인물실록, 아이러니 세계사,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실록 등 딴지에서 배출한 인물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잘 나가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건들건들 채널의 원년맴버이기도 하다.
그가 과거에 썼던 기사 중에 가장 충공깽으로 평가받는 것은 '징병제를 폐하라'이다. 그렇다고 군대무용론은 당연히 아니고, 군을 현대화시켜서 알보병을 줄이고 모병제로 가야한다는 주장이며 국방세를 주장하여 군복무하지 않을 사람들은 일정액수의 세금을 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노르웨이, 터키, 몽골 등의 징병제 국가에서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30만 크로네(한화 4000만 원), 터키는 2만 6천 리라(한화 800만 원), 몽골은 152만 투그릭(한화 70만 원)의 국방세를 내면 병역 대상에서 제외되며 이 돈은 사병의 월급으로 활용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방관련 좌담회를 할 때 실명을 거론하기까지했던 국방 관련 성공한 덕후이다.
그가 국방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참으로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낸 매우 친한 친구를 군대에서 잃었다. 이에 이성주는 한이 맺혔고 그래서 국방을 들고파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가 쓴 기사인 징병제를 폐하라의 맨 마지막 부분에는 그렇게 죽은 친구에게 쓴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승찬아...
나 성주다. 간만에 네 생각나드라...너 가고 나서 파주에 가서 아버님 어머님 찾아 뵙고 인사드려야 했는데, 상황이 그래서 못 갔었다. 위에는 어떠냐? 살 만하냐?
그때.. 네 워크맨 그거 서비스 센터에 맡기지 못하고, 괜히 네게 짜증내던 게 지금도 마음에 걸려서 네 생각하믄 가슴 한 구석이 아린다. 네 총각딱지는 내가 떼주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그 약속 못 지켰다. 친구야... 미안타... 한 50년 있다가 너 사는 데 나도 갈 거니까... 그때까지 내 자리 좀 잡아줘라... 살다보니 어찌어찌 여기에 내 이름 걸고 글도 쓰게 됐다. 나 글 팔아서 먹고살게 됐어.
그래. 네 몫까지 열씨미 살 테니까 너도 위에서 나 사는 거 잘 지켜봐라. 보고싶다....
4.3.8. 허경영
딴지가 발굴해낸 인물. 주류 언론에서 거들떠 보지도 않은 그를 최초로 인터뷰하여 세상에 알린게 바로 딴지일보이다. 그것도 '''2000년'''에. 하지만 주류언론이 허경영을 진지하게 띄워주고 난 이후에는 오히려 허경영을 다루지 않는다. 딴지일보는 대개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막상 유행이 되면 빠지는 스타일.
이제 우리나라는 구원받았다!
총재님과의 임진각 잠깐 이너뷰
허경영 총재 대선 출마 선언식
허경영 총재 대선 출마 선언식(2)
출마 포기하신 허경영 총재님
허경영 총재의 시국진단
열린우리당 허경영 후보
허경영 Call Me 기자회견장을 가다
4.3.9. 개발수뇌
초기에 딴지일보 사이트 수뇌부 소속의 개발담당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는 딴지일보 개발/운영을 맡은 (주)한국지식정보서비스 대표(트위터 프로필에는 (주)KIPIS라는 회사 CEO라고 되어있고 딴지일보에는 운영 업체가 (주)한국지식정보서비스라고 되어있는데 같은 회사로 보임.) 이면서 최근 설립한 데마시안이라는 MCN 설립자이자 대표이사이다.
SLR클럽 사태 초기에는 사이트 관리를 직접 하였으나 현재는 다른 관리자들이 있다. 본격 게시판 방송이라는 팟캐스트의 진행자 였으나 중도 하차했고 가끔 다른 진행자 대타로 출연한다. SLR클럽과 이후 타 사이트에서의 회원 이주와 정착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수뇌부 중 커뮤니티 이용자들과 소통을 주로 담당하는 편. 실제 딴지 소유주나 다름없다는 설도 있었다. 딴지 소속으로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이 실제로는 개발수뇌로부터 급여를 받는다고 한다. 팟캐스트 방송에 따르면 딴지일보 사이트의 개발관련 업무를 봐주고 구글 광고 등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으로 운영비용을 충당하는 관계라 밝혔으나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후원자로 보인다. 자유게시판 이용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용자들은 애칭으로 '개발순애', 혹은 '순애'라 부른다. 이용자들의 건의와 의견을 잘 들어주고 말만하면 다 만들어 준다. 딴지일보와의 인연은 2010년경 부터라고 한다. 업체간의 계약 관계가 아니라 나꼼수가 한창이던 시절에 딴지를 돕기위해 자원봉사처럼 왔다가 '코가 끼고', '발목이 잡혔다'고 한다. 중간중간 개발수뇌 회사의 이슈 때문에 그만둘 뻔 하다가 SLR클럽 이주 사태가 터지면서 딴지 사이트 전체의 개발 및 기술적인 운영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듯하다. 개발수뇌 본인이 SLR클럽에서 오랫동안 자게이로 활동하던 유저 중 한 명이었는데, SLR클럽 사태가 결국 유저들의 난민화로 이어지자 이들을 딴지일보에서 받아보자는 생각에 딴지일보 수뇌부를 꼬셔서 딴지 사이트에 자유게시판을 만드는 등의 개발을 주도하였다.[12] 딴지일보 필진이 쓴 개발순애와 딴지의 관계 비하인드 스토리
2016년 12월 개발수뇌가 데마시안이라는 새로운 컨텐츠 업체를 설립했다. 딴지일보의 주요 인력이 데마시안으로 이직하였다. 딴지일보에서 컨텐츠 제작에 관여하던 사실상 모든 인원이 이직 또는 전속 형태로 소속을 옮겼다. 확인된 것만 너부리 편집장, 홀짝, 호요요, 너클볼러, 박새로미, 오이시러, 빡가능, 거의없다, 마사오, 미노루, 플로리에, 박근홍. 나꼼수 등을 담당했던 김태용 PD 등 여러 명의 기술직들도 이직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더하면 상당한 규모의 대규모 퇴사 및 이직이 발생했다. '본격 게시판 방송'에서 밝히길 딴지일보 노동문제가 이직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데마시안 설립 후에도 개발수뇌 회사가 딴지일보를 관리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서 많은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http://www.ddanzi.com/ddanziNotice/175136350#56 사실이 아니라 드립이라고 밝혀짐.
현재 개발수뇌는 건강문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16년에 수술과 입원 인증샷을 올린 적이 있으며 그 후로 계속 투병 중이라고 한다. http://www.ddanzi.com/free/100552536 http://www.ddanzi.com/free/101866287
2017년 12월 31일부로 딴지와 계약 해지로 완전히 손을 떼고 탈퇴한 후 떠났다.
2018년 11월 딴지일보에서 함께 본격게시판방송을 진행하였던 플로리에와 혼인하였다. http://www.demasian.com/7600379
4.3.10. 필독
전 딴지일보 부편집장. 본명은 홍대선. 테무진 to the 칸, 초한쟁패의 저자
현재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안알남)라는 팟캐스트 방송중 재미와 퀄에 비해 순위가 낮았으나 2018년 8월 현재 취미 카테고리 4위, 전체순위에서도 60~70위권을 유지 중이다.
4.3.11. 신짱
전 기자(?). '독거노인'이라는 핸들네임을 쓰던 사람과 합작해서 <시사묵시록>이라는 2007~2008년 당시 대한민국 주요 이슈들을 풍자하는 패러디 동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4.3.11.1. 시사묵시록
요약하면 정몽구 판결, 디워, 황우석 파동을 근간으로 이것저것 짜깁기한 엉망진창 풍자영상이다. 한때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사용된 BGM 중에 What a Wonderful World 원곡 및 라몬즈의 커버 버전(전체적으로 나오는건 커버버전이고, 원곡이 딱 한장면에 나온다.)이 브금으로 쓰인 게 저작권에 걸려서인지 음소거되었다가 영상 자체가 날아갔다. 따라서 이 줄거리는 다소 정확하지 않을수 있다.
정몽구 비자금에 대한 재판 결과로 사회봉사명령이 떨어졌고[13] , 이 뉴스를 감방에서 들었던 한화 김승연 회장이 빡돌아서 난동을 피운다. 다음 대통령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다.[14] 그 와중에 심형래는 디워가 흥행에 실패한 후 디워의 후속작으로 화려한 디워(...)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런데 심형래 신상에 트러블이 생겨가지고 그는 만일에 대비해 Plan B로 평소 친분이 있었던 황우석[15] 에게 자신의 복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황우석이 뭘 잘못했는지 심형래 복제과정에서 영구 바이러스 돌연변이[16] 가 일어났고, 돌연변이원 격리가 실패하면서 영구 바이러스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한다(...) 이 영구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지능이 퇴화되어서 사이비 종교 광신도처럼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되는 듯하다.[17] 이때 뭔가 한반도 남북관계에 잡음이 번져서 전쟁이 시작되는데, 미국이 북한에 광우병 소고기 사골 액기스(...)를 넣은 폭탄을 북한에 폭격한다. 북폭의 결과로 마침 퍼지고 있던 영구 바이러스가 광우병(?)과 시너지를 일으켜 북한인구의 1/3이 영구 바이러스에 걸렸으며[18] 이 영구 바이러스 북폭에 오사마 빈 라덴이 감명을 받았는지 자기 생화학 병기에 영구 바이러스를 집어넣은뒤(...) 미국에 보복으로 테러를 날려서 미국도 영구 바이러스에 걸리고... 그렇게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이 되어서 지구는 영구 바이러스와 뉴클리어 아포칼립스로 거의 쑥대밭이 되고 극소수의 인류만 살아남는다, 이때, 뜬금없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데,[19] 재림예수가 남은 인류의 상황을 살펴봤지만 그나마 생존인류는 사실상 영구 바이러스에 걸려서 이성을 잃고 사이비종교 놀이만 하는(...)[20] 잉여로 전락한 상태. 가망이 없다 판단한 예수 그리스도는 빡돌아서 [21] 인류보완계획이랍시고 소행성을 날려서 지구를 싸그리 날려버린다.[22] 그리고 끝.
4.3.12. UMC/UW
그것은 알기싫다 진행자.
4.3.13. 마사오
딴지일보 필진, 아부나이 니홍고 진행자, 마사오닷컴 CEO
4.3.14. 물뚝심송
딴지일보 전필진, 그것은 알기 싫다 전 패널.
구강암 재발로 2018년 5월 12일 아침 향년 50세에 사망.
4.3.15. 춘심애비
딴지일보 필진. 이 아이디인 이유는 푸들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그 푸들 이름이 '춘심이'라서다.
4.3.16. 너클볼러
딴지일보 기자, 파워 투 더 피플 보조 진행자. 2016년 말 데마시안으로 이직하였다.
4.3.17. 게으른수다쟁이
전 미디어전략 팀장.
4.3.18. 카인
전 딴지일보 기자, 딴지일보 필진.
4.3.19. 꾸물
딴지일보 전 팀장. 본격게시판 방송 고정출연.
4.3.20. 찌지리
딴지만평을 그리고 있는 웹툰 작가.
5. 역사
5.1. 초창기
1998년 7월 출범 직후의 딴지일보는 사실상 김어준의 개인 홈페이지였다. 거의 모든 기사는 김어준이 혼자서 작성했고 일부 투고기사나 체험담, 합성 사진은 후배들을 족쳐서(!) 얻어냈다고 한다. 당시의 기사는 IMF 직후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적극 반영한 정치풍자, 재벌과 수구언론에 대한 조롱, 엽기적인 체험담 등이 주를 이루었다.창간호 및 2호 이미지 실명은 아니라 조선일보는 좆선일보[23] , 김영삼은 기명사미, 삼성, 현대, 대우는 삼승, 헌데, 데우 식으로 표현.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나 엄용수의 정치인 성대모사 같은 정치풍자적 요소에 PC통신 유머게시판의 유머작가들 글이 혼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당시의 기사는 후에 ‘아날로그 딴지日報’ 라는 이름의 총4권짜리 출판물로 출간되기도 했다.
사이트나 기사의 기본 레이아웃은 당시 조선일보 홈페이지인 "디지틀 조선일보"를 기준으로 했고 폰트는 가는으뜸체[24] 를 사용했다. 사이트 주소의 경우 당시에는 ddanzi가 아닌 ddanji를 사용했다. [25] 넷츠고에서 호스팅했을 때의 주소가 ddanji.netsgo.com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 기사로 조선일보의 외신 왜곡 보도 행태를 밝혀낸 '좃선일보 김대충 주필의 지좃대로 영문법'(보조페이지1 보조페이지2)이 유명하다.
5.1.1. 초창기 딴지의 영향력 - 딴지일보 유사 사이트
한국 인터넷에서 '패러디'와 비꼬기를 주제로 한 인터넷 뉴스사이트가 생겼다는것은 해당 언론사의 성향이 어떻든 화제거리가 되기에 알맞았기에 곧바로 어느 정도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도 이어졌고, 아류 웹사이트 또한 숱하게 생겼다. 주로 딴지일보와 똑같은 언론사 패러디가 많았다. 당시 검색엔진에서 딴지일보와 비슷한 '패러디 사이트'랍시고 추천을 해주던 아류 사이트의 몇 가지 예시는 다음과 같다. 그러나 워낙 오래된 사이트인 데다가 단명했다보니 archive.org에도 잡히지 않아서 1998년 전후로 인터넷을 했던 이들 중 일부만 기억할까 말까 하는 것들이다.
- 망치일보
- 보일아동
- 수세미일보
- 좃센일보
- 한스키조
- 왕따그룹
그나마 형식면에서는 딴지일보를 훌륭히 따라해서 딴지일보 아류사이트들중에서는 퀄리티가 제법 출중했었다. 이름 비틀어쓰기도 딴지일보와 비슷한데 삼승과 헌데는 비슷하게 써먹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스테지와 알라들(...) 이라고 하질 않나 대우 레간자를 레감자로 비틀기도 하였다.
신제품 소개랍시고 각종 괴이한 가상의 제품들을 발표하는 기사를 썼다. 예를 들면 미팅 기획상품으로 롯데월드 정글탐험 같은 곳에서 미팅하는 '서바이벌 폭탄 미팅'(위키니트가 기억하고 있는 기사제목이 정확하진 않음)[30] 이라든가, 차 안이 넓어서 카검열삭제하기 좋다는 '널버카'라든가... 기업 패러디에서 끝나지 않는 골때리는 기사도 많았는데 당시 월드컵 열풍으로 각종 축구선수 사진 얼굴(국적 불문)에 동물 얼굴을 합성해놓고 한국의 새로운 대표팀 선수를 소개하는 기사를 쓰지 않나 마침 스타크래프트열풍이라 스타크래프트를 패러디한 '왕따크래프트' 발표 기사도 넣었다. [31] 수명 자체는 망치일보보다도 짧았지만 임팩트는 나름대로 컸었다. 사이트주소는 www.wangdda.com이었으나 왕따그룹이 망한후 무슨 포르노사이트의 도메인으로 잠깐 쓰였다가 지금은 비어버린 도메인이다. 다만 워낙 오래된 사이트다보니 archive.org에서 조차 잡히지 않는다.(...)
- 데한블교죠계중(...)
5.2. 도약기, 중흥기 (~2000년대 중반)
딴지의 리즈시절. 딴지일보가 인기를 끌자 투자자들이 모이고 기업으로서 구색을 갖추게 된다.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에 사옥을 마련하고 공개채용을 통해 내근직만 30명 가까이 거느린 중소기업에 가깝게 성장했다. 이 시기를 거쳐 간 편집장으로 김도균, 최내현, 한동원, 고철구 등이 있고 이때 딴지가 밀던 것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대세가 되었다. 몸짱열풍, 우리는 강팀이다, 고우영 삼국지, 관광청 양심업체 인증 등이 대표적인 사례. 당시 딴지 일보의 영향력은 상당해서 김어준은 대선후보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과의 단독 인터뷰를 따내곤 했다. 녹취록을 그대로 풀어낸 것 같은 현장감, 김어준 특유의 코멘트가 들어가는 이 독특한 인터뷰 형식을 '대선후보 일망타진 인터뷰', '뽕빨인터뷰'라 부르며 그 뒤로 딴지일보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여러 사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최초로 딴지일보와 연계된 파생상품은 "똥꼬프리" 팬티로, 엉덩이가 훤히 드러나는 엽기적인 팬티였다. 사실 이건 딴지 초창기 때 있었던 패러디 광고란에 실었던 합성 이미지였는데, 이것이 실존했던 것이다. 결국 원산지인 동남아에서 수입해서 딴지일보 마크 박고 팔았다. 무엇에 쓰는 용도인지는 본인들도 못 밝혀낸 듯. 이건 원래 작스트랩(Jockstrap)이라는 명칭이 있는 팬티로(간혹 T백과 비교해서 O백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나 이 별칭은 극소수), 야구선수나 미식축구 선수들이 주로 입는 팬티다. 원래 용도는 낭심 보호구로, 이것과 함께 그곳(...)을 보호하는 딱딱한 재질의 컵이 세트로 되어 있다. 이 팬티는 그 컵을 고정시켜주는 용도. 요즘 야구선수들이 포수를 제외하고는 이걸 잘 안 하다가 윤희상이 영 좋지 않은 곳에 공을 직격당해 실려가기도.... 근데 엉덩이가 훤히 드러나는 것이 섹시 포인트로 작용해서인지, 남성용 섹시 팬티로도 나오는 제품군이 있다. 이후 딴지일보를 중심으로 한 여러가지 파생상품 사업을 늘려나갔고, 아예 "딴지점빵"이라는 이름의 쇼핑몰을 차렸다가 명랑완구(성인용품) 전문몰인 "딴지몰"로 독립시켜 나갔고, 이 딴지몰과 연계한 성인정보사이트 "남로당"[32] 도 차렸다. 이후 이 딴지몰과 남로당은 에이스하모니라는 업체가 인수, 부르르라는 사이트로 개편했다. 이 때문에 이 사이트에서는 아직도 딴지일보 시절의 향기(?)가 많이 묻어나온다.
관광사업에도 진출했다. 딴지관광청이라는 이름으로 양심적인 여행사를 찾아나가는 작업과 더불어 "니 꿈을 이뤄주마" 프로젝트도 개최했다. 그럴 듯한 사연을 적어보낸 독자들을 뽑아 공짜로 여행을 보내주는 프로젝트였다. 이것도 큰 호응을 얻어 노매드라는 여행사이트로 독립했다. 이 노매드는 딴지일보 침체기에 독립해서 여행사로 탈바꿈했다. 때문에 노매드에도 딴지관광청 시기의 기사가 아직도 숨어있다.
이 시기의 업적 중 가장 큰 것은 고우영 삼국지 복원이다. 당시 출판권이 아직 우석출판사에 있어서 당장 종이책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딴지일보 사이트에서의 연재를 거쳐 CD-ROM으로 구성된 전자책으로 출시되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이 시기에는 딴지일보의 웹툰이 흥하던 시기였다. 그 유명한 존나깨군이 이 시기에 연재되었고 이외에도 Ftv라 불리는 채널 형식의 플래시 애니매이션 형태의 웹툰도 연재했다. Ftv에서는 궁디보이, 스투피드, 야니, 복수tv 등의 플래시 애니매이션을 연재했다. Ftv에서 연재하는 플래시애니매이션은 작품들이 하나같이 존나깨군 수준으로 그만큼 논란이 많았다. 궁디보이는 엉덩이가 입이고 소화기관이 정반대로 되어있다. 궁디보이 마지막 화에서는 궁디보이가 슈퍼히어로가 되어 전두환과 노태우를 처단하는데 전두환과 노태우의 동작이 왠지 108식 어둠쫓기와 똑같다.
5.3. 침체기 (2003년~2009년 초)
2002년 월드컵을 정점으로 점차 하향세를 타던 딴지일보는 이 시기에 위기를 맞는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의 출범의 영향이 가장 컸다. 딴지일보의 성향에 가장 어울리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거대 한나라당 및 기성 구세대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와 조롱을 모토로 삼았던 딴지일보는 더이상 맞서 싸울 만한 적을 찾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탄핵 역풍으로 대승을 거두면서 정점을 찍었다. 한나라당 정권의 안티 역할을 대신할 새로운 역할을 구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초기에만 그랬고, 노무현의 대표적인 비하발언인 놈현을 최초로 부르짖었으며링크아카이브, 김어준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는 등 반 정부 성향 사이트가 되긴 했다.
또한 경쟁매체가 등장했다. PC통신과의 경쟁시대였던 2001년경까지와는 달리 2002년 이후 딴지는 '비보수 성향 언론'으로서는 오마이뉴스 등 기존 매체에 더 가까운 웹 언론에 밀렸고, 다음, 야후, 엠파스 등 메이저 검색엔진들이 웹툰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이 점에서도 독창성을 잃어버렸고 심지어 딴지에 연재하던 웹툰작가 대부분을 메이져 언론사나 검색엔진에 내주게 되었다.
게다가 '디시인사이드'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딴지처럼 업데이트가 불규칙적이고 그 간격이 길지도 않고 보다 유저 참여형이고,이용자의 수도 많으며, 다른 매체와 구분되는 딴지의 특성이던 병맛도 훨씬 강한 디시에 딴지일보는 상당수 독자들을 빼앗겼고 특히 딴지의 강력한 서브 게시판이었던 고물상, 딴지독투 등 독자 참여 게시판의 경우 이용자 대부분이 디시인사이드로 옮겨 파리만 날리게 되었다.
또 초고속 정액제 인터넷의 보급 완료(02년 9월)로 야한 성인컨텐츠를 얻으러 딴지일보의 하부 사이트인 남로당을 기웃거리던 성인 남성들도 웹하드와 외국계 포르노 사이트로 대부분 빠져나가서 딴지는 수익사업을 거의 접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가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는 루머까지 퍼지면서, 김구라 등의 웹 방송과 2002년 16대 대선, 노무현 탄핵 등 특별한 정치적 이슈가 있는 때를 제외하고는 업데이트도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안습한 상황이 벌어졌다.
여기에 최악의 자충수가 터진다. 2004년 황우석 사건 당시 딴지일보 대표 김어준이 미국의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황빠들의 편을 든 것이다. 다소 어이없는건 딴지일보는 초능력자와 같이 비과학적인, 검증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것이었다. 초능력자를 사칭하는 사기꾼에 대한 기사도 많았고 국내에서 해주던 초능력자 XXX 같은 류도 강하게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이때는 그런 비판정신은 온데간데 없었다. 근데 그렇게 의외는 아닌게 초기 황빠들중에는 유사과학은 물론 인문학적 과학비판 논리를 혐오하는 과학주의자들이나 이공계, 이과 전공자들이 많았다. 과학자가 과학을 위해 하는 일에 문과충 기자나 사회과학자 그리고 우매한 대중따위가 토를 달아? 가 그들의 사고방식이었던 것. 물론 사건 터지고 돌아서긴 했지만 흑역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딴지일보는 김어준의 지시로 끝까지 황우석을 옹호하는 논조를 유지했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 결과적으로 2005년 이후 딴지일보는 크게 위축되었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8년 겨울부터는 업데이트를 중단한 채 메인화면을 걸어 잠그고 동면에 들어갔었다.
5.4. 회복기 (2009년 4월~2014년 10월)
2009년 4월부터 딴지일보는 업데이트를 재개한다. 이름만 일보였지 사실상 한 달에 한 번 업데이트 될까말까 했던 웹진이었던 이때부터 진짜 일보가 되었다. 단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에만 업데이트 되고 주말판은 없다. 업데이트 시간과 분량도 정확하지 않고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다르다. 어떤 날은 오후 3시에 바로 그날 기사가 올라오기도 하고 늦는 날은 오후 7시가 되어야 당일분 기사가 뜬 적도 있었다.
그러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함께 딴지일보가 급부상한다. 고종석, '딴지일보'는 정론지이다. 시사IN 상술되었다시피 민주당계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단 이유로 사이트 침체기를 겪었던 김어준은 노무현 정권 말기의 반정부적 성향에서 자신은 친노였다고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침체기를 겪으면서 소멸 위기를 맞이하던 딴지라서 행적이 그렇게 드러나지도 않았던데다 요즘처럼 과거자료에 대한 교차검증이 대단하던 시기도 아니었기에 이 전략은 먹혀들었고, 이명박 열풍을 타고 친민주당 성향의 사이트가 자취를 감췄던 시점에서 다음 아고라와 더불어 대표적인 친민주당 성향을 띈 사이트로 자리잡게 되었다.
2009년 10월에는 온두라스 한인 억류 사건(한지수 사건)을 보도했다. 논설우원 원종우(파토)가 제보 접수에서 무죄 선고까지 딴지일보를 통해 공론화 시키는 데 성공. 결국 한지수 씨는 무죄 선고 후 국내로 귀환했다.
온두라스 한지수 씨 사건 현재 상황
한지수 사건 특종 탐사보도 - 네덜란드 압력의 실체를 파헤친다
한지수 사건 긴급독점
온두라스 한지수 씨 최근 근황
한지수 씨 무죄
온두라스 살인누명 한지수 씨, 2년 반 만에 귀국 MBC
2010년 말에 필리핀 불법구금 사건(김규열 선장 사건)을 처음 보도했다. 취재팀장 김창규(죽지않는돌고래)가 살인누명을 쓰고 복역하다 무죄를 선고받고 나온 제보자를 통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김 선장의 존재를 확인하여 2년간의 끈질긴 보도로 공론화에 성공, 2011년 11월에 석방됐다. 이후 완전히 무죄를 증명하겠다며 귀국하지 않은 김규열 선장은 2012년 12월 재판 중 재수감, 2013년 12월 6일에 옥사했다.
김규열 선장, 누가 죽였나, 딴지일보
'억울한 해외 옥살이' 캡틴 김의 죽음..외교부는 뭐했나, 시사매거진2580, MBC
2012년 초부터 2년간 14편의 기사와 딴지라디오 그것은 알기 싫다를 통해 홍석동 납치 사건이 보도되었다. 취재팀장 김창규(죽지않는돌고래)가 살인범에게 직접 협박을 받거나 편지를 주고 받으며 해외수사대와 공조하는 등 탐사보도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딴지일보의 취재기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최다 방송을 기록하며 송년특집으로 3대 살인살인으로 재조명 되기도 했다.
2014년 3월14일, 한겨레 하니TV에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김어준의 KFC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하였다. 딴지라디오의 레전드 방송인 나는 꼼수다를 만든 인물답게 1주일도 안 되어 조회수가 20만을 돌파하는 등 식지 않은 인기를 증명했다. 진영논리적이고 마초스러워 보이는 태도 때문에 안티가 엄청 늘어나긴했지만... 12화부터 프로그램 제목이 김어준의 파파이스로 바뀌었는데, KFC 본사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고 한다.
5.5. 해킹 사건
http://cfile2.uf.tistory.com/image/113EAA414E2FB94135967A
2011년 7월, 해킹을 당해 여태까지 축적됐던 모든 데이터와 자체 백업이 날아갔으나 천만다행으로 1년 전 다른 작업 때문에 해놨던 외부 백업으로 복구하였다.
그러나 2010~2011년 사이의 자료는 복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참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0&aid=0000021839
이 해킹 사건의 범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당시 딴지일보에 '무신론자와 함께하는 성경 공부'[33] 라는 기독교 비판 기사가 연재되었는데, 이 기사에 분노한 사람들이 일부러 치밀한 해킹을 하여 딴지일보를 폭파시켜 버린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34]
5.6. 재도약기 (2014년 말~2015년 중반)
해킹 사건 이후 2011년 12월 27일, 새 딴지일보 사이트가 완성되었다. 빠르게 복구하려고 그랬는지 오픈소스 CMS인 워드프레스를 사용하였다. 업데이트도 재도약기와 비슷하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제로 이루어졌다.
2012년 12월에는 다시 홈페이지가 접속이 불안정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 이 문제는 2013년에 재개편이 되면서 해결. 하지만 2013년에 더 딴지를 창간하면서 일부 기사는 중간에 끊어놓고 나머지 부분을 더 딴지에서 연재하고 있다. 더 딴지는 유료서비스이다.
2013년 3월 4일자로 또 다시 리뉴얼했다. 딴지마켓과 딴지라디오를 담당하던 개발수뇌가 딴지일보를 다시 XpressEngine 기반으로 리뉴얼 하였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이 이전의 똥색 딴지 스타일로 회귀하였다. 이전 기사도 모두 정리되어 하나의 게시판으로 정리되었으며 일부 게시판은 폐쇄되었다.
2010년 이전의 기사는 이미지가 모두 깨져나오고 있으며 링크도 모두 변경된 상태로 현재도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며 과거 서비스들을 보수하고 있다. 현재 딴지일보는 연애통신,딴지관광청 노매드등의 과거 계열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돈 될 만한 사업은 진작에 다 독립시키고 정작 본인들은 손가락 빠는 상황.
사이트 구성은 기사가 내걸리는 마빡, 휴대폰 동영상 실시간 서비스인 슛, 블로거들을 모아놓은 300, 독자투고 게시판인 독투불패, 사진게시판인 사건과실화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슛은 사실상 사장된 상태. 슈에 대한 관계자들 말을 빌리면 내부 사람들이 슛 하지 말자고 다 반대할 때 총수가 말하길 우리가 애플한테 꿇릴 게 뭐냐!!!! 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놓고 요새는 땡큐 잡스(...) 팟캐스트 방송 그것이 앓기 싫다에서.
현장 취재기사나 탐사보도 같은 특종은 한 달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수준. 결국 전체적인 방향은 보도 중심의 조간신문보다 논평위주의 석간신문에 좀 더 가깝다. 기성 언론의 무미건조한 기사와는 차별화를 꾀하면서 좀 더 음지의 얘기를 다루거나 뭔가를 풍자하는 기사들이 많다.
2009년 4월부터 폭발적인 업데이트와 함께 옛 독자들이 돌아왔고 트래픽이 급증했다. 여기에 탄력을 받아 2009년 11월 9일, 딴지일보는 사이트 리뉴얼을 단행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300이라는 이름의 블로거 시스템인데 필진 대신 블로거들을 모집해 글쓰는 공간을 내주고 여기서 편집부가 기사를 추려내는 방식이다. 이는 최내현편 집장이 독립하면서 세운 미디어몹의 영향을 다시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성격의 시스템으로 또 한겨레의 한토마 필방을 들 수 있다.
언제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번듯한 광고나 스폰서는 사실상 없는 것 같고 작은 배너광고와 상업인증이라는 이름으로 자영업자 규모의 가게들에게서 스폰받는 것으로 버티는 듯. 종종 사이트 유지에만도 힘이 부치는 듯한 인상을 내비친다. 접속자가 조금 몰리는 시간엔 간혹 페이지가 다운되거나 하는 등. 다행히 2011년 들어서는 접속 자체에 문제는 전혀 없는 상태다.
총수라는 직함을 달고 활발히 외부활동을 하는 김어준의 딴지일보에 대한 영향력은 의외로 약한 것으로 보인다. 직함은 총수지만 2010년 6월 총선을 앞두고 안희정 충남도지사(당시는 후보)와 인터뷰를 한 게 가장 최근의 활동이다. 재도약기의 딴지일보는 사실상 김용석 전 편집장(필명 너부리)이 논조와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월 1일 방영된 2010 연말정산 뒤끝공제특집에서 전화연결로 목소리만 출연한 적이 있다. 여담으로 김어준이 주진우과 함께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소를 당해 재판을 받았다가 무죄판결을 받자 딴지직원들이 매출 올릴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워 하기도했다.(...)
성인지향의 콘텐츠도 다수 포함하고 있어 미성년자들은 출입을 자제하는게 좋다.
2014년 들어서는 상업적인 요소를 더해서 생존을 위한 노력이 강해졌고, 그 결과 기적같은 전개가 있다. 몇 년째 월급이 안 밀리는 신기한 상황이 발생했다. (해당기사 딴지일보는 어떻게 월급이 안 밀리게 되었나? 참고). 그리고 2차 공채가 진행되었다. '''일단 굶어죽지만 않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조용하게(?) 지내던 딴지일보에 메가톤급 격변이 찾아왔으니...
5.7.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이후
링크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5.7.1. SLR클럽 회원 이주 (2015년 중반)
여성시대 해명글 조작 사태와 탑시 사태로 인해 SLR클럽을 박차고 나온 자게이들 중 일부가 딴지일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딴지일보 웹 담당자인 '개발수뇌'가 SLR클럽에서 놀다가 사태가 심상치않음을 느끼고 독단으로 자유게시판을 열어서 자게이 난민들을 딴지일보로 유도한 것. 덕분에 안 그래도 느리기로 소문난 딴지일보 서버가 트래픽을 견디지 못해 게시판 오픈일 정오(!!!)에 뻗어버리고 '개발수뇌'가 한밤중에 서버를 사러가는(…) 일까지 발생했다. 너부리 편집장은 서버비를 걱정하는 자게이들에게 "살다보면 손님 대접하느라 정작 집주인은 끼니를 거르기도 하는 거지 뭐.”라면서 조용히 딴지마켓 링크를 걸어놓았다.(…) 이후 포럼, 갤러리, 소모임, 장터도 개설 예정이라는 것으로 보아 SLR클럽의 컨텐츠를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사이트 덩치를 키워보겠다는 전략인 듯하다.
이 사건에 대해서 김어준의 파파이스 50회에서 관련 내용이 나왔는데 난민 유입 보고를 받은 김어준 총수가 너부리 편집장에게 이유를 물었고 난민들이 고국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듯 하다고 하자 "그럼 받아 줘야지,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고 돌아갈 때까진 잘 놀다 가게."라고 했다고. 이후 너부리 편집장 왈 "서버비는 어떻게 합니까?", 총수 왈"니가 벌어서 메꿔." 대화 끝. 딴지마켓 링크를 괜히 남긴 게 아니다(...) 총수의 마지막 말. "잘 놀다 가시라." 근데 돌아가는 분위기는 난민이 국민 될 기세.
이주민들은 주로 딴지마켓에서 쇼핑한 내역을 인증하며 신입놀이를 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의외로 먹을 것들에 평가가 아주 좋다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개발수뇌는 개발순애(...)라고 불리며 유저들의 아이돌이 되었다. 딴지의 직접적 관계자는 아니고, 사이트관리는 거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한데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7월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는 점이 있다면, 글 번호 수정문제. 따라서 과거글을 지우면 이후의 모든 글 번호가 바뀌는 사태가 벌어졌다. 30만 번째 글이 무려 8시간(...) 동안이나 바뀌고 있기도 했다. 사실 이건 XpressEngine의 태생적인 문제라 수정은 쉽지 않을 듯하다. XE는 사이트 내의 모든 게시판의 글을 하나의 DB 테이블에 저장하기 때문에 게시판만의 글 고유 번호가 존재하지 않는다. 근데, 개발수뇌는 결국 이 문제를 수정하였다.
6월에 접어들면서 역대가장 많은 사용자를 가지면서도 가장 빠른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너부리는 왜 기존유저들 말을 안들어준거냐며 기존 독투등 유저층이 반발하는 중. 이에 너부리는 해명글을 올리며, 그동안 어디 손보고 싶어도 여력이 없었는데 이제 새 사용자들의 유입으로 한 번 고쳐볼 여력이 생겼다며 삼겹살을 사겠다고 한다. 7월 초, 독투게시판이 개편되고 소모임이 생기는 등 그동안 딴지일보가 겪었던 변화 중 가장 다이나믹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7월 20일쯤에 이르러 딴지마켓에 중고장터 베타버전이 시작되었다(!!). 언론사이트로서의 정체성은 그대로이면서 커뮤니티로서의 기능도 강화하고 있다.
현재 새벽 시간대 딴지 자게는 그동안 SLR과 오유에서 맘껏 누릴 수 없었던 은꼴, 품번 정보 등 다양한 뻘글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시에 문제도 발생하고 있는데 SLR시절의 강력한 제재가 사라지면서 소라넷 후기나 소라넷을 옹호하는 도를 넘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과거 인터넷 문화가 정립되기 전에는 엽기적인 글을 올려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요즘에 그런 글을 올리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35] 해결방법은 회원들이 알아서 절제하거나, 딴지일보 운영진들의 제재가 있어야 하는데 오늘의유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문제가 많고 운영진들의 제재는 예전처럼 사실상 없을 듯하다. 결국 알아서들 자제하고 있다. 야짤이나 후방주의 글이 올라오지 않는건 아니나, 음란물덕에 구글 광고가 끊기는 꼴을 유저들이 보고 미안해하며 알아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그래도 올라와서 가끔 광고가 끊긴다.
불과 세 달간, 딴지일보의 성장세는 엄청나다. 알렉사 순위기준 국내사이트 55위에 안착했다.분석글 이전에는 수백위권 바깥이었음을 생각하면 엄청난 결과. 그래프상으로는 아직까지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어디선가 계속 유저가 모여들고 있다. 100일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글 번호 놀이 때마다 밑장빼기로 날아간 글이 상당함에도 자유게시판에서만 50만 개 이상의 글이 작성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주민들이 적은 전문글 몇 개가 딴지기사로 올라가기도 하는 등 유저와 사이트 모두 이익을 보고 있다.
8월 18일, 편집장 너부리가 휴가를 간 사이 딴지의 모든 DB가 7시간 동안 마비되어 자유게시판 등 전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갈 곳 잃은 딴게이들은 직장에서 충실히 일할 수 있어서 슬프다는(...) 반응을 보였다.
딴지일보는 자유게시판에서 방송거리를 찾아보겠다며 '본격 게시판 방송' 을 시작했다. 멤버는 딴지일보 편집장 너부리, 이 사태의 주범 개발수뇌, 여성으로 추정되는 자유게시판 유저 플로리에, 웹툰작가 자유게시판 유저 고소한고래밥. 이렇게 4명이다. 개발수뇌와 고래밥의 목소리 톤이 낮아 내용이 지루하면 잠이 온다는 평이 있다. 방송의 내용은 각자 일주일간의 의미있던 게시물을 선정하고 글을 소개해 주는 것이 주된 내용. 더불어 자유게시판을 떠들썩하게 하는 유저를 매주 한 명씩 인터뷰하는 코너가 있다.
딴게이라 불리는 주 이용자층은 30-40대 남성이 다수이다. 간혹 ㅊㅈ라 불리우는 여성 유저들이 인증하는 경우도 있고 20대 남성들도 보이곤 하는데 주류는 아재들이라 부장님 개그가 난무하고 아내와의 19금 이야기가 자주 올라온다. 경제력 있고 자녀가 있는 경우가 많아 딴지마켓 구매인증이나 딸바보 인증 게시물의 경우 핫게에 올라갈 확률이 매우 높다. 정치적으로는 친민주당 성향이 강하고 그중에서도 친 노무현, 친 문재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딴게이들은 친목질에 너그러운 편이다. 사실 SLR의 문화가 딴지일보로 내려온 것이다. 몇몇 네임드 유저들은 무한 뻘글 생산이나 자작 카툰으로 유명한 편이며 간혹 딴게이 번개 모임을 열기도 하였다. 이 부분도 SLR에서 내려온 문화이다.
5.7.2. 뽐뿌 회원 이주(2015년 후반)
9월 12일, SLR클럽의 탑시 병크를 이어서 뽐뿌 해킹사태가 일어나고 화가 난 유저들이 뽐뿌를 탈퇴하고 방황하는 걸 보고 개발수뇌와 유저들은 또 다시 영업(...)을 하러 뽐뿌로 놀러갔다. 게시판에는 뽐뿌출신 유저들이 인증글을 남기며 딴게이들과 노는 중. 개발진은 뽐뿌 클럽, 휴대폰 클럽, 해외직구 클럽 등을 즉각 개설하여 난민들을 또 수용하기로 했다. 이들이 사태가 진정되고 뽐뿌로 돌아가든 가지않든 놀다가라며 기존유저들과 함께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9월 16일 오후, 뽐뿌 해킹사태가 심각해지며 게시판 XSS해킹을 당하고 있어서 딴지로 유입되는 트래픽이 갑자기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개발진이 더 많은 트래픽에 대비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서버가 버벅대고 있다. 개발진과 편집장은 즉각 뽐뿌에서 이주하는 인력을 위한 종합게시판 구축 예고를 했다. 2차로 딴지일보 게시판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는 계기가 될 듯.
9월 17일 오전, 사이트 전체가 대대적인 디도스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너부리 편집장의 트위터에 따르면 며칠새 방문자수가 급증했고 지금은 디도스 공격이 들어오고 있다고.
10월에는 오늘의 유머와 디시인사이드를 제끼고 조선일보나 네이트와 동급인 트래픽 순위에 안착했다. http://www.alexa.com/topsites/countries;0/KR
11월 말, 100만 번째 글이 올라왔다. 딴지일보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세의 게시판이다. 뽐뿌, SLR, 오유 할 것 없이 이곳저곳에서 유저들이 흘러들고 있다. 100만 번째 글을 차지하기 위해 유저들이 동시에 글을 올려 스스로 디도스공격을(..) 하기도 했다. 서버는 모에선도 맞았다. http://www.ddanzi.com/free/55868276#37
5.8. 2018년 개편
개편공지
개발수뇌와의 협업이 종료되어 딴지가 다시한번 큰 개편을 진행하였으나 개편은 엉망이었다. 많은 오류와 구린 디자인 그리고 미완성된 기능들에 개인정보 노출사고까지 일어나면서 4개월이 넘도록 정상적인 모습을 못찾고 있다. 개발수뇌 이탈과 개편까지 잘못되면서 사이트 트래픽이 크게 하락했고 2018년 4월 기준 Similar Web 기준 100위권밖으로 벗어났다.
6. 컨텐츠
정치적 논조를 떠나서 읽어볼 만한 재미있는 기사들이 많다. 특히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기사들이 내용이 알차다. 패러디의 원조답게 세태를 꼬집는 날카로운 필력이 돋보인다. 현재는 출판될 정도로 수준있는 연재물들이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기사로는
게임방 마우스 불알 연쇄도난사건 현상수배
읽은 척 매뉴얼
징병제를 폐하라 1 - 딴지일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내용은 엄청 참신했으나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 정서에 가장 큰 직격탄을 날린 내용이었다는 점이다.
징병제를 폐하라 2-1
징병제를 폐하라 2-2
징병제를 폐하라 마지막-1
징병제를 폐하라 마지막-2
마징가는 실존한다 - 마징가 Z의 부품을 각 대학교 건물로 위장해 놓았다는 내용으로 한국의 학벌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깨알 같은 마징가 Z의 파일럿이 육사생도라는 점. 각 대학교의 주요 건물들을 합쳐 만든 마징가 Z는 외관이 엄청 웃기다.
여성들의 포르노, '야오이'를 아시는가 - 한국에서는 주류와 인터넷 매체를 불문하고 다룬 적이 없었던 야오이, 즉 BL에 대해서 처음으로 다룬 기사. 내용은 비교적 고정관념(?)에 충실하다.
일본 에니메이션을 까발려주마
우리는 강팀이다
DJ가 옳았다
MB가 당했다
박찬호가 노모를 줘패란 말이냐?
오락실에 GGR을 허하라
한국을 지킨 사람들- 정보통신 편
미국은 한국의 속국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속국이었다!(개정판)
달착륙 음모론 1
달착륙 음모론 2
인기가수 불로장생법을 알켜주께
인기가수 불로장생법(2)
고양이 자기부상 열차
영화 속 자막 씨바거림을 허하라
테무진 to the 칸
홍석동 납치 사건
등이 있다. 현 시점에서는 링크가 다수 깨져있으니 인터넷 아카이브 등을 참고바람.
6.1. 벙커깊수키(벙커1깊수키+더딴지)
2012년 말에 더 딴지가 창간되었다. 딴지는 원래 필진에게 고료를 줄 수 없는 영세업체였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2009년 활동한 필진들에 의하면 외부 조력자의 도움으로 원고료가 꽤 쏠쏠하게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최소한 대문에 해당하는 마빡에 올라간 글이라도 원고료를 조금이라도 지불해야 필진들이 늘어날 것이다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유료컨텐츠로 등장한 것.
그런데 그것이 진짜로 일어나버렸다. 딴지일보 까페 벙커1에 가면 벙커깊수키라는 오프라인 잡지를 팔고 있는데 최근 더딴지와 통폐합을 거쳐 온, 오프라인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그런데 2013년 초부터 딴지일보 필진들이 원고료를 받고 깜짝 놀란다고. 인터넷 매체 중 가장 원고료가 높다는 말도 나온다.
기사의 수준이나 퀄리티는 매우 낮아 후원목적으로 판매는 되지만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딴지일보의 콘텐츠라는 게 비전문가 필진들의 블로그글 수준인 경우가 많다.
결국 2017년을 마지막으로 폐간된 것으로 보인다.
7. 논란
7.1. 사건사고
7.1.1. 삼성 휴대폰 폭발사건
2011년 1월 현재 삼성전자 휴대폰 환불남 사건과 관련해 공식입장을 표명했다.http://www.ddanzi.com/news/56126.html# 환불남 사건이란 삼성 휴대폰이 충전 중 폭발했다며 MLB파크, 딴지일보, 위키트리 등 사이버 공간에 장투라는 닉네임으로 고발성 글을 올리고 보상을 요구해온 20대 남성이 고의로 증거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뉴스보도.
딴지일보는 2010년부터 이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인터뷰와 진행상황을 보도했었다. 문제는 당시 삼성 타도에 너무 심취했던 건지 기본적인 사실관계 검증(환불전력, 같은 기종의 핸드폰을 이용한 실험 등)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한쪽의 주장만을 가지고 무작정 악덕대기업 vs 선량소시민의 구도를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국과수의 전자렌지를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는 검사결과가 나온 뒤에도 '이건 삼성이 증거를 조작한 것이고 국과수는 원래 무능한 집단이다'라는 억측성 변명기사를 메인에 내보내기도 하였다.
이것이 억측이라면 그 증거가 국과수로 바로 직행한 것이 아니라 몇 개월간 삼성을 거쳐서 국과수로 간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언론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사건의 직접적인 증거가 이미 피의자 손에 몇 개월간 방치된 상황에서는 "악덕 대기업 vs 선량 소시민"의 구도라고 까는 것 자체가 억측에 가깝다.
결국 자칭 피해자가 범행을 자백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딴지의 환불남 인터뷰
편집장이 이에 관해 공식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으나, 해명글 중 '진실이 '''아닌''' 권리에 '''배팅'''했다' 라는 구절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애초에 진실을 저버리는 언론은 언론이 아닐뿐더러 배팅이라는 말도 매우 부적절한 단어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본분인 ''''알아낸''' 사실을 적는' 것을 무시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을 때 자신이 '원하는 쪽을 선택해서 '''진실이라고''' 주장'하겠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논조를 적과 아군의 구분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전제도 잘못되었지만 베팅이라는 단어는 무조건 자신은 어딘가의 편을 들 것이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침묵할 생각 자체가 없다는 것을 뜻하고 있어서 더 문제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좋지만 진실을 외면하며 무작정 그들의 편을 들어봐야 남는 것은 더 큰 무관심과 독자들의 실망뿐이다.
그리고 2월, 드디어 장투와의 면회를 통한 인터뷰기사가 올라왔다. http://www.ddanzi.com/news/56774.html 10분이라는 짧은 면회시간에 이루어진 인터뷰라 내용 자체는 많지 않지만장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기사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는 등 결국 인터뷰다운 인터뷰 대신 감정에 호소만하다가 끝이 났다.
이후에도 이들은 "물뚝심송"등 논조를 같이하는 운영진의 힘을 업고 끊임없이 황우석이나 타진요처럼 인지부조화를 시전하는 작태를 보였고, 이들의 저열한 논리에 질린 사람들이 딴지를 떠나기까지 했다. 삼성그룹의 경제적 독점구조나 오너 일가 사유화 체제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이들이 삼성을 비판하는 논리는 "이러이러한 일을 했으므로 삼성은 나쁘다."가 아니고, "삼성은 나쁘다"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다음에 모든 팩트와 논리를 거기에 끌어다 맞추는 수준을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7.1.2. 벙커원 열정페이 사건
김어준 및 딴지의 내부모순과, 그들이 팔아먹던 진영논리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 사건[36] 거기다 한 건이 아니었다.
7.1.2.1. 첫 번째 사건
[image]
발단. 2016년 8월, 딴지일보의 오프라인 카페인 벙커원에서 주방 인턴기간 후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한 유저의 글이 올라왔다. 계약사항과 업무에서의 아쉬운 점을 피력한 내용으로 벙커원이 바르게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내용에 실망감과 우려를 표현하는 반응이 많았다.
게시판의 다른 유저들이 본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1. 근로계약서의 작성 2. 퇴사 시에 벙커원 측의 레시피의 요구여부 3. 임금지급지연과 임금표 공개여부.[37]
- 벙커원 PD의 글. 매니저의 문제라고 쓰고 있지만, 딴지 내의 열정페이 문제가 심각함을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다. http://www.ddanzi.com/free/122610620#201 http://archive.is/JrkgG
- 매니저의 해명글 http://www.ddanzi.com/free/122955967 http://archive.is/Fd3ea
의혹이 있던 글들에 대한 해명이 깔끔하지 못한 관계로 웬만하면 50을 제대로 넘기지 않는 비추천을 세 자리씩이나 받고 말았다. 게다가 마지막의 딴지, 그런 회사 아닙니다. 라는 구절 때문에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오죽하면 게시판을 관리하는 개발수뇌마저[38] 이렇게 대차게 까버렸다.'''"딴지, 그런 회사 아닙니다."'''
위 벙커원 PD 글에서도 나와있지만, 딴지일보가 온라인 언론사 중에서도 작은 규모라 그동안 통했던 주먹구구식의 운영이[39] 개선되지 않다가 이렇게 터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딴지가 노동문제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 라는 반응이 다수.
- 김어준의 해명글.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결국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가 잘못한 건 맞는데 내부 문제니까 자세한 건 밝힐 수 없다다. 이전까지 딴지일보가 까대던, 비정규직과 열정페이에 대응하던 막장 기업들의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http://www.ddanzi.com/free/123175709 http://archive.is/DRLcF
- 분노한 당사자의 글. 김어준이 더 이의만 제기하면 너만 쪼잔한 사람이 된다라고 반협박조로 말했다고 한다. http://www.ddanzi.com/free/123193302 http://archive.is/6N00x
- 딴지 원주민(초기 개설 때부터 파리날리던 시절까지 남아서 친목질+텃세부리는 무리) 중에서는 당사자의 과거 글을 추적, 당사자의 심리분석이라는 조리돌림 글까지 게시한 상태. 그런 글이 무려 200명이 넘게 추천을 받았으니 이쯤되면 답이 안 나온다. 이 글뿐만 아니라 사실상 조리사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추천을 받고있다.[40] http://www.ddanzi.com/free/123240114 http://archive.is/TFBPL
- 당사자가 김어준을 만나고 대화록을 정리해 올린 글. http://www.ddanzi.com/index.php?mid=free&search_target=user_id&search_keyword=smokistis&document_srl=123426729 http://archive.is/v5tKR
게다가 당사자가 마지막으로 올린 글에서 김어준이 말했다는
노동청 가는 건 맘대로 해라,
우린 그에 합당한 범칙금만 내면 된다,
그런데 게시판에 글을 쓰는 건 옳지 않다,
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마야씨 형이라면 싸대기 때리고
정신차리라 하고 게시판부터 못 보게 할 거다,
마야씨만 다칠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다,
이건 진짜 형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거다,
하여간 총수가 일을 키우는 데는 재주가 있는 모양인지 그나마 잠잠하던 분위기가 이 글을 기점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 반응은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직원 월급 떼먹은 점주가 회유하는 방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어처구니 없는 글이 올라옴에도 분위기는 김어준의 이런 태도를 찬양하면서 당사자를 욕하기에 바쁘다! 물론 이를 비판하는 글도 존재한다. 하여간 이해한다는 측과 이딴 대응을 하냐는 측이 섞여 게시판은 그야말로 혼파망. 팝콘을 튀기는 다른 게시판에서는 "자기들은 정의롭다고 큰소리 뻥뻥 치더니 보수 진영이랑 다를 바가 뭐냐?" 면서 조롱받고 있는 상황.
김어준과 나꼼수를 진행했던 정봉주 전 의원은 정봉주의 전국구 93화에서 이 문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더불어 정봉주 자신이 운영하는 청담동 벙커원은 충정로 벙커원과 다르다며 자신들은 시급 8천 원이며 곧 1만 원으로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담으로 정봉주는 말로만 시급 1만 원을 주장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당사자와 총수 사이에는 어떤 약속을 한 상황이고, 당사자는 그 약속 이행을 열흘(9월 7일)까지 기다린다고 합의한 상황이다. 약속 내용은 개인적인 문제라 공개하지 않았다.
9월 10일 업로드 된 내부팟캐스트인 본격게시판 방송에 참여하는 실질적인 관리자 너부리가 변명이 섞인 사과발언을 했다.#15분 경 부터 들을 수 있다. 15년간 딴지가 어떤 내부사정이 있었는지에[41] 대한 간략한 변명과 함께 잘못한 것이 맞는다는 발언을 하였다. 관리자의 입장인 본인도 나이브하고, 게으르고, 무지했었다는 발언을 스스로 하며 잘못을 인정했다. 또한 매니저의 미숙한 대응글과 당사자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빠르고 원활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하지 못한 점을 언급했다. 남들의 실책은 잘 보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실책은 완전히 놓치고 있었던 것.'''"부끄러운 거예요. 저희 스스로."'''
7.1.2.2. 두 번째 사건
부당해고 가해자를 위해 부당해고 당한 사람을 버리다니
2016년 9월 9일 새벽 또 하나의 글이 딴지게시판에 올라온다. 자신의 지인이 벙커원에서 부당해고 당했다는 내용. 본문에 의하면 이 사건 역시 3개월 수습 후 정직원 채용을 약속했으나 근로계약서는 미작성했고, 수익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해놓고 파트타이머를 2명 더 뽑았다고 한다. 이에 해고 당사자는 노동위에 제소를 넣은 상태라고.
위 사건에서 김어준 총수가 쓴 글에 "이와 같은 사례가 한 건 더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사건이다. 해고당사자는 복직을 희망하고 노동위에 제소를 했으나, 노동위에서 딴지 측이 "사측에서 이미 한 번 퇴사했던 직원이 다시 돌아오면 다른 직원들이 불편할 것을 염려하여 해고당사자의 복직을 거절하였다."라고 말했다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대되었다.
후기 글링크에서는 "회사와 협의 중이라는 해명글을 써달라."라는 요구를 했고, 이에 해고당사자가 "범죄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부탁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고 하자 "지금으로서는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라고 언급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9월 13일자로 업데이트된 본격 게시판 방송 에서는 딴지 측 의견보다는 사건과 관련된 팩트만 드라이하게 짚고 넘어갔는데[42] 이 사건이 위의 첫 번째 사건보다 앞선 시기에 일어난 일이며, '''김어준 총수가 노동위에서 뭔가가 왔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위의 첫 번째 사건이 터지고서야 진상 파악에 나섰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일에는 발 벗고 나서는 김어준 총수가 정작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의 노동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피해자 측이 인터넷 여론전을 시작하자 그제서야 사태파악과 문제해결에 나섰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7.1.3. 세월호 유가족을 비하한 기자
2010년 인물과사상사에서 한국의 반일민족주의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책인 <김치 애국주의>[43] 가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는 과거 딴지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네티즌이었다.
<김치 애국주의>는 겉표지에 "일본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써 놓았으면서도 정작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일본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인 뉴스 기사나 인식이 죄다 거짓말이며, 한국인들은 우매하고 미개하기 때문에 훌륭한 선진국인 일본을 질투하는 나쁜 족속이라는 식이었다.
문제는 이 <김치 애국주의>의 저자가 일본어 트윗으로[44]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위를 싸잡아서 비하하고 조롱하는 트윗을 계속 날렸다가, 뒤늦게 레디앙에서 박노자 교수가 쓴 칼럼에 의해 그 사실이 발각되었다는 것이다.출처[45][46][47]
사실 이런 식의 한국 민족주의 혐오와 일본 찬양은 딴지일보의 초창기부터 쭉 이어진 전통이다. 아주 오래된 일이라 기억하는 네티즌들이 있을지 모르나, 초창기 딴지일보에 이른바 "대일밴드"라고 해서, 한국의 반일 시위를 조롱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온 적도 있었다. 그밖에도 2000년대 초반 딴지일보에 3.1운동을 가리켜 "그저 쌀이 모자라 배가 고파서 일으킨 소동에 불과했지, 무슨 조선 독립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자들과 정부가 3.1운동을 독립 운동이라고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올라와서 분개한 네티즌들이 댓글로 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아울러 2003년 초반에는 동남아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는 한국 언론들의 기사가 전부 거짓말이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가 딴지일보 메인 화면에 올라왔는데,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2020년 현재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이나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의 현실을 본다면, 딴지일보에서 한류를 부정하려던 기사들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알 수 있다.
7.2. 비판
7.2.1. 독투
딴지는 10만 회원 이상을 가진 곳 중 벌금 무는 걸 감수하고 아직 실명제를 하지 않는 유일한 사이트였다.[48] 독자 투고 게시판이라는 곳이 있는데 애초에 무기명 게시판으로 시작된 독투는 한국인터넷 어디보다 더 신랄한 독설과 인신공격이 판을 치던 곳이다. 기사 쓰는 관계자들이 아닌 독자들의 투고게시판이니만큼 게시판에서 오는 각종 이야기의 '''대부분은 딴지 본지의 기사편집 논조와 당연히 관련없다.''' 이 독투에 상주하던 유저들은 자타칭 '''딴지스'''라고 호칭했다. 한때는 디씨가 그냥 커피라면 딴지독투는 TOP인 수준이었다. 씨벌교황이 독투에서 디씨로 수출된 것만 봐도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씨벌교황이 악명은 가장 높지만, 씨벌교황 외에도 몇몇 어그로들이 디씨에 유입되었다는게 2000년대 중후반 디씨의 통설이였다. 당시 유명한 찌질갤러리였던 패션 갤러리에서도 몇몇 어그로들이 독투 출신이라거나, 심지어 1~2기 WOW 갤러리에도 독투(+패갤 경유) 유입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갤러리 문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2004년경을 기점으로 아햏햏으로 대변되던 햏,하오체 시대가 막을 내리는 동시에 일반인이 디씨하면 떠올리는 막말+반말투 및 경칭사용이 최소화되는(형,횽 정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 이젠 그마저도 잘 안 쓰인다.) 식으로 커뮤니티의 전반적인 어투가 크게 변화된 것이 그 영향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이후에도 이 잔재로 리플이 거칠고 싸움 또한 자주 일어나는 편이다. 개발수뇌에 의해 결국 2015년에 그 역사를 뒤로한 채 폐쇄되었다.
7.2.2. 진영논리
딴지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실상 또 하나의 진영논리였다는 지적이 있다. 기존의 기득권 및 수구보수 진영을 강하게 비난하고 풍자하지만 정작 딴지 자신들도 이러한 세력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애초에 김어준 본인도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서 그랬듯이 평소 '''보수는 나쁜 짓 하는데 왜 민주는 자꾸 쪼냐'''는 태도를 보였다.
총수가 그런 관점을 가진 사람이고 구성원이나 독자층들도 이에 공감해서 그런지 딴지에선 그런 패권주의적인 논리가 당연시되고는 한다. 한마디로 보수는 부패하고 타락한 짓을 해도 커버치고 또 정치판에 기어나오고 하는데, 우리 민주당계도 다소 뒤가 구려도 덮어주자는 논리.
이는 대한민국 민주당의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였던 청렴성과 도덕적 순수성을 스스로 땅바닥에 내팽개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정책으로도 차별화는 되지만, 정책은 어디까지나 유권자 개개인들의 취향의 문제인지라, 도덕적 우월성만큼의 파괴력은 없다. 하물며 정권이 바뀐 후 정론지를 자처하면서도 편파적 보도나 정파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보도로 병크를 툭툭 터뜨리는 딴지가 과연 정론지인지 의문이 가는 대목.
김훈이 말했듯이 딴지도 팩트에 논조를 맞추느냐, 논조에 팩트를 맞추느냐의 기로, 즉 언론이 되느냐 정당/정파의 기관지가 되느냐에 서 있는 상황. 딴지일보의 지지자들도 딴지가 한국의 기타 기성언론들처럼 정치적 지향성에 따라 팩트의 판단에 문제를 일으킬 경우 강하게 비판하며, 딴지의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간 대부분의 사건들도 이러한 현상에 연관되어 있다.
주류 언론과 정/재계의 모순 및 그들간의 유착을 비판하는 딴지로서는 오히려 주류 언론의 왜곡보도를 닮아간다는 점은 정말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는데, 딴지일보가 앞으로 더 발전하려면 이 점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현재대로라면 딴지는 절대 정론지가 될 수 없다.
안티조선 운동이 초창기 의도와 달리 진영논리에 빠져 민주당 계열 정당 돕기 운동본부로 전락했듯이, 딴지도 마찬가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안티조선을 외치면서 결국 자신들도 지지정당만 다른 '또 하나의 조선일보'가 되었다는 얘기인데(사실 이 부분은 '조선일보는 까야 제맛'이라는 전제가 되어 있다(...)), 이건 딴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위 반(反)새누리 진영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해 김어준 총수는 '조선일보는 편파적이어서 나쁜 것이 아니라 편파에 이르는 과정이 나쁘기 때문에 나쁘다, 한겨레고 경향이고 모든 언론은 편파적이다.' 라고 했다. 즉, 편파적인 언론임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대신 편파에 이르는 과정을 정의롭도록 한다는 것. 일각에서는 언론이 중립적인 것만큼 나쁜 것이 없다고 한다.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고, 편집을 어떤 식으로 하던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완벽하게 중립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의 오류는 편파적이건 얍삽하건 언론기사와 주장의 진실 여부 자체는 객관적으로 판명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딴지일보가 '보수언론에서 거짓말과 말장난을 통해서 사람들을 교묘하게 호도하는데 반해 민주는 자기검열 때문에 진다' 라고 라고 주장하는 것 까지는 상관없지만, 동시에 부도덕에 부도덕으로 맞서서 얻은 승리 역시 이전 승리자들과 마찬가지로 비난받을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민주당계 진영에게 강함에 대한 희망, 승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신화적 투영을 주기 위해 보수파의 행동을 따라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는 구호는 일견 쾌감과 '사이다' 를 느끼게 할 수 있겠지만 전형적인 심연을 이기기 위해 심연을 배우자는 모습이다. 그 구호가 단순히 불굴의 의지로 끝난다면 모르지만 실제로 딴지일보는 과거 황우석 사건, 삼성 휴대폰 사건, 열정페이 사건 등 여론의 승리 혹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희생하거나 보수의 불의를 답습하는 모습을 여럿 보여주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딴지일보는 더 이상 자신들이 주장하는 '민주 + 당당함' 이 아니라 또 다른 적당히 부패한 이익진영 중의 하나로 침전해 있다고 보이는 것이다.
최근엔 아예 김어준과 주진우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경우 영구제명을 하고 있다. 이것만 봐도 사이트의 폐쇄성을 알 수 있다. *
이라고 망상글을 쓰고 있다. 이딴 글이 추천이 15라는 게 믿기지 않겠지만 현실이다. 특히 "저는 김어준을 성웅 이순신급으로 보고 있습니다."라는 희대의 개소리는 종교게시판이 아닐까 의심되는 수준이다.혼자서 삼성그룹 상대
혼자서 적폐 언론 모두 상대
댓글 공작 깨부수고 있고'''
문재인, 이재명, [[정봉주],] 박원순 이렇게 메인들만 해도 모두 털보손을 거쳐감.
털보가 항공모함
이동형은 이지스함으로서 호위하는 형국
다른사이트, 주변인들의 정치적 여론에 대해 항상 주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 나아가 타사이트로 접속하여 조직적으로 여론전을 행하고 있다. 소위 밭갈기라는 행위로써 딴지 유저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 #
확증편향에 빠진 이용자들이 많다 보니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카더라 식으로 특정 사안이나 집단, 인물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혹하게 몰아세우는 경우가 많다.
다른 커뮤니티도 비슷하지만 딴지는 집단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물론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게 밝혀져도 입을 싹 다물고 그 흑역사를 거론하는 순간 비추가 찍혀 유배지로 향하게 된다. 이런 딴지의 모습에 질려 탈퇴하는 오랜 회원들도 적지 않은 편. 그래서 외부에서 유입되는 인원들도 적지 않지만 반대로 빠져나가는 인원도 적지 않아서 딴지 이용자의 규모는 시간이 오래 지나도 거의 일정하다.
7.2.3. 공지사항 전체 열람불가로 인한 진입장벽
2020년 11월 들어서 재조명된 문제점인데 사이트 공지가 최신 공지밖에 올라오지 않고 옛날 공지들이 멀리 묻히는데 검색도 제대로 안되는 UI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 오래된 장수 사이트일수록 유입자가 공지사항 전체를 보고 사이트에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숙지하는 것이 기본인데 공지사항이 최신 일부만 보이는 점에서 유입이 옛날 공지를 보지 못해 딴지일보 내부 규칙을 어기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7.3. 김어준 총수의 대외 활동
2009년 이후부터 김어준 총수는 딴지일보 보다는 독자적인 대외활동에 치중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한때 SBS와 CBS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나 2008년 이후 모두 짤렸다. 2009년부터 한겨레 신문사 하니TV에서 '김어준의 뉴욕타임스'를 진행하고 있다.
2011년 4월부터는 총수 김어준이 정봉주 '''17대''' 국회의원과 시사IN 주진우 기자, 김용민 시사평론가 등과 함께 '''가카 헌정방송'''인 딴지라디오 '나는 꼼수다'를 팟캐스트로 방송하였다. 팟캐스트 전체순위 '''국내 1위. 전 세계 정치사회부문 2위'''를 달리고 있'''었'''다. 국내 2위는 두시탈출 컬투쇼였으니 프로그램의 인기가 어떤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터. 참고로 전 세계 정치사회부문 1위는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오디오 강의다.
그러던 와중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 같은 해 7월 중순, 어떤 해커가 아예 작심하고 사이트를 날려버린 것. 무슨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2010년 여름 이후의 데이터를 살려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해킹이라고. 총수성명[* 일설에 의하면 당시 딴지일보에는 블루칼라(본인의 말로는 모태 기독교인으로 태어나서 30년 동안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으나,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고 오랫동안 고민을 한 끝에 결국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한다.)라는 필명을 쓰는 네티즌이 기독교 교리 그 자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른바 '무신론자를 위한 성경공부'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이 게시물들이 인터넷상에서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분개한 기독교인들이 해킹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8. 시스템/구조
2015년 5월 개발수뇌가 자유게시판을 만들고 망사 이용자를 유인한 후 갤러리, 리뷰, 펌프 등을 만들며 현재의 구조를 갖추었다. 모바일 사이트가 이때야 생겼다. 이후 지속적으로 PC버전, 모바일 버전 사이트가 개선되었다.
한때 글 작성 시에 작성순에 따라서 고정된 번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글을 지우면 그 이후의 글들의 번호가 모두 바뀌어 버리는 문제가 있었으나 수정되었다.
2016년 8월경 그동안 없었던 통합검색이 적용되었다.
아래와 같이 사이트 구성이 나쁘기로 유명했었던 사이트지만 2016년 현재는 과거의 모습과 달리 모두 개선되었고 메뉴의 명칭도 모두 수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으로 불리는 이용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개발수뇌가 특유의 불도저 스타일로 밀어붙였다.
과거의 딴지일보는 웹사이트 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딴지일보는 아주 특출할 만큼 나뻤고 메뉴의 직관성이 부족했다. 재미있는 이름을 지어내는건 좋지만, 메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문구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메뉴가 여기저기 붙어 있어 전형적인 '버튼이 많이 달린 리모콘'과 같았다. 기사의 정리도 언제나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중구난방으로 이것저것 흩어져 있으며, 카테고리나 태그를 붙여서 정리할 생각이 아예 없는 모양이다. 덕분에 10년 이상 쌓인 많은 기사들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몰락기에 있었던 구 딴지의 경우, 검색 기능이 붙어있기는 한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과거의 기사나 컨텐츠를 검색하는 것이 아주 어려웠다. 지금은 그나마 검색 기능이 돌아가기는 하는 편이다. 사이트의 지향점이 웹진인가, 인터넷 커뮤니티인가, 서비스 제공인가도 명확하지 않았으나 2015년 현재는 딴지일보는 커뮤니티로 딴지라디오와 BUNKER1은 서비스 제공으로 구조를 갖추었다. 2012년에는 조선일보를 까기 위해 조'''선'''일보(朝'''鮮'''日報)를 따라한 조일보(朝日報)를 창간해서 유닛으로 굴렸 다. 해킹사태 이후에도 계속되는 DDoS 공격으로 접속불량에 시달려 왔지만 2013년 3월에 개발수뇌가 전체 시스템을 재구축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기반으로 서버를 이전하여 갑자기 접속이 원할해지자 딴지일보 기자들과 유저들이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