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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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동의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축복받은 아라비아(Eudaimon Arabia)'라 불렀을 정도로 과거부터 부유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막대한 석유 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위낙에 중간에서 빼돌리는 것이 많기 때문에 산업적으로 발전되지 못하여 축복받은 아라비아의 칭호는 한낱 동쪽 어촌들이었던 지역들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에게 물려주고 아라비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상황이 역전되었다.
수도는 사나(صنعاء, Sana'a)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도시는 아덴이다.[12] 공용어는 아랍어이다.[13]
아덴은 예로부터 동방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 근대에는 배후에 석탄 지대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대영제국의 본토와 인도의 중간에 위치하여 제국 내 가장 큰 항구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지역 제일의 석유화학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미국 뉴욕에 이어 물동량 기준 대영제국 내 제일, 세계 2위의 항구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철수 이후 공산국가 남예멘의 수도가 되어 완벽히 몰락하였다. 터키의 이스탄불이라든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스위스의 제네바, 취리히, 브라질의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처럼 수도보다 더 유명한 몇 안 되는 도시 중에 하나이며 나라 이름중에서 Y자로 시작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2. 역사
3. 상징물
3.1.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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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예멘 통일 후 제정된 국기. 위의 요약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범아랍색에서 초록색을 제외한 3색을 빨강-하양-검정 순으로 나열했다. 빨강은 순교자의 피와 통일을, 하양은 밝은 미래를, 검정은 어두운 과거를 나타낸다. 독일 제국의 국기와 색 배치가 정반대로 되어있다는 게 특징.
북예멘의 국기에는 중앙에 녹색 별이, 남예멘의 국기에는 왼쪽에 큰 삼각형과 그 안쪽에 빨강 별이 있었다. 통일 후 두 국기의 공통적인 부분만 남겨서 지금의 예멘 국기를 제정하였다.
3.2. 국장
국장은 금독수리가 두 개의 예멘 국기를 양 발톱으로 잡고 있는 모양으로, 가운데에는 커피나무와 마리브 댐이 그려진 방패가 있고, 밑에는 아랍어로 "예멘 공화국"이라고 적힌 두루마리가 있다.
이 국장은 원래 북예멘의 국장이었다. 남예멘은 그냥 금독수리[15] 가운데에 남예멘 국기를 세로로 그려넣은 방패를 넣고 밑에 아랍어로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이라고 적어놓은 형태였다. 통일 후 북예멘 국장을 통일 예멘에 맞게 수정한 것.
3.3. 국가
제목은 '연합 공화국(الجمهورية المتحدة)'으로 예멘 통일 직후인 1990년에 제정됐다. 1979년 남예멘에서 제정된 국가에서 제목을 바꿔 사용하고 있으며 중간에 가사 개정이 이루어지기 전만 해도 가사가 지금보다 길었다.
가사 개정 전의 국가.
4. 지리
면적은 55만 km² 영토를 가지고 있다.[16] 그러나 이웃에 있는 4배 크기의 사우디아라비아 때문인지 작아보인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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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소규모이지만 예멘에서 해안 경비대를 창설해서 훈련과 장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곳 아덴만 인근에서 예멘 해군이 치안 확보에 기여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지정학적으로는 보기보다 중요한 지역이다. 바로 홍해의 입구이기 때문에, 예멘에서 마음만 먹으면 홍해를 막아서 수에즈 운하를 차단할 수 있다. 아래에서 언급되는 예멘의 내전에 사우디뿐만 아니라 미국, 이집트 등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서남아시아 아라비아 반도에 있지만, 동아프리카와도 가깝다. 그래서인지 문화적으로도 동아프리카 문화가 융화되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 동아프리카와 같이 언급될 때도 있거나 동아프리카로 분류될 때도 있는 듯 하다. 단, 동아프리카와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연관이 많았던 것일 뿐, 지리적으로는 서남아시아가 맞다.[18]
기후는 저지대는 사막기후를 띄고 있으나, 고지대는 비교적 선선하고 비가 오는 편이다. 위도가 낮은 편이라 연교차는 크지 않은 편. 남부의 항구 도시 아덴의 경우 연평균 기온은 29.1℃, 강수량은 36mm이며[19] , 해발 2250m의 고지대에 위치한 수도 사나의 경우 연평균 기온 16.2℃, 강수량 265mm로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띈다.
5.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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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대부분은 아랍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상술했다시피 지리적으로 동아프리카와 가깝기 때문에 예멘내에도 소말리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불가촉천민처럼 극심한 차별을 당하는 아크담족도 있다. 이스라엘 아랍계 유대인 상당수가 예멘 출신인데 현재도 극소수의 유대인들도 잔존해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흑인 노예들을 많이 데려온 탓에 예멘인들의 염색체에는 아프리카인들의 염색체가 10%가량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10%는 거의 모두 여성 유전자였다고 한다. 이유는 흑인 남성들은 노예로 데려오는 족족 모두 거세를 시켰기 때문이다. 아프리카男을 노예로 삼고 거세한 아랍인들…카다피가 사과하기도
6. 경제
예멘은 국민의 38%가 절대빈곤에 처하였으며 실업률이 30%인 아랍 국가 중 최빈국가이다. 이는 내전과 테러리스트들로 인한 치안 불안도 있고, 석유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그중 대다수가 족장들이 가져가는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마약으로 쓰이는 까트로 인해 생산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한되어있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예멘보다 압도적으로 잘 산다는 점과 많은 예멘인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잘사는 나라로 허드렛일을 하러 나감을 생각하면 사실 까트만이 예멘이 가난한 원인은 아니다.
또한 통일을 하면 한쪽에서 다른 한쪽에 경제 지원을 해서 둘의 경제가 대등한 수준으로 만들어줘야 하는데[20] 하지만 예멘은 통일만 했다뿐이지 그런 작업은 전혀 하지 않아 빈부의 상황이 기형적이었고(공산주의국가였던 남예멘만 기형적으로 못살았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국민들의 경제는 하향평준화가 되고 말았다.
경제성장률을 보면 그 처참함이 느껴지는데, 2010년까지는 고성장은 아닐지언정 3~4%의 꾸준한 성장을 보여줬으나 2011년에 가볍게 -15% 찍어주시고 다음해 약간 반등했으나(+2.1%) 2014년에 -10.6%을 2015년에는 무려 -30.4%의 무시무시한 경제파탄을 보여주셨다. 그뒤로도 쭉 마이너스 성장을 하다가 2018년에 간신히 +0.8%가 되었다... 앞으로도 갈길이 험난하고 여하튼 뭔가 엉망진창이다.
예멘이 통일이 된지 10년이 되던 2000년 5월 22일에 예멘 정부에서 외국 정부 수반들을 초청하고 외국인들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7. 정치
과거에는 아랍 세계에서 그나마 민주적인 나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선거 제도가 약간이나마 갖추어져 있고 여성을 포함한 개개인의 인권 보호가 어디까지나 여타 아랍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이루어져 있다 정도이지만. 여기까지는 좋아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다.''' 높은 실업률[21] +부패한 제도+서구식 민주주의[22][23] ='''정부의 정당성 결여'''라는 구도가 성립된다. 사실 이 선거 제도도 상당 부분 형식적인 게 상원 의원[24] 111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하원은 2003년 총선에서 살레의 소속 정당 국민전체회의(GPC)가 301석의 하원 의석 가운데 238석을 차지했고(정확히는 226석을 차지했고 12명의 무소속 의원이 당선 직후 GPC에 가입했다),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살레가 77.2%를 득표하고 야당 후보는 21.8%만을 득표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10년째 명목상으로라도 경쟁이 있는 선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25] , 이것도 10년쯤 전의 얘기지 지금은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시위대, 크게는 국민 전반에 대한 탄압, 이후 정권을 잡은 후티 세력의 쿠데타 이후 행보 등을 보면 국민들의 민주적 권리는 점점 줄어들고 불안정은 극대화되는 시리아와 리비아의 전철을 밟고 있다.예멘을 통치하는 것은 사자를 타는 것과 같다.한번 올라타게 되면 당신은 내릴 수 없다.
- 예멘 속담 -
까놓고 말해서 '''정부가 정부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 지방 부족, 알 카에다 등등 다양한 세력에 의해 예멘 정부의 통제력이 매우 약화되어 있다. 또한 전통적인 기호품인 환각 작물 까트(قات, Khat)를 대량 재배할 때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성적인 수자원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단지 모든 주요도로와 유전, 파이프라인의 "선과 점"만 통제하고 있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UN 보안 담당관 밥 아돌프 중령의 의견으로는 예멘 정부의 국가 장악력이 50%에 불과하다고.
과거 석유가 터지고 산유국이 되자 이것으로 봉건 족장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 석유가 대거 족장들의 뇌물 수입으로 들어갔고, 나라 발전도 이룩하지 못한 채 현재도 아라비아 반도 최빈국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취약국가지수 통계에서 남수단과 소말리아를 제치고 예멘이 '''1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에서 실패국가로 악명높은 북한이 고작 26위(?),[26] 그리고 역시 내전을 겪은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이 4위, 9위인걸 감안하면 이 나라가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는지 알게된다.
민주화 혁명으로 독재자 살레가 실각한 후에도 사회 혼란은 지속되어서, 북부에서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준동하고 있으며 남부에서는 남예멘의 재분리를 요구하는 분리주의자들, 그리고 이 혼란을 틈타 침투한 알 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가 살림을 차려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안정을 위해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으나, 부족주의 성향이 강한 예멘 특성상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는 않을 듯하다. 오죽하면 제2의 시리아가 되어간다고 할까. 거기에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의 스티븐 오브라이언 국장은 예멘이 모든 면에서 붕괴되고 있다고 밝혔다.#
거기에다 예멘은 샤리아를 헌법의 기초로 삼으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가 되었고, 국교로 이슬람교가 되면서 술판매도 금지되고 사회의 모든 면에서도 보수화가 진행되었다. 거기에다 여성들의 인권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고, 조혼까지도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예멘은 형법내에서 돌팔매 처형, 참수형이 허용되지만, 실제 총살이 행해지며 거기에다 불륜, 동성애, 매춘, 신성모독과 변절도 사형이 가능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8월 9일엔 소아성애자 3명이 공개적으로 총살된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8. 사회
혼란스러운 역사와 막장인 정치 상황 때문에 1인당 4정 꼴로 총기가 뿌려져 있는 상태다. 1980년대 남예멘에서는 귀찮은 협상이나 투표가 아니라 '총질'에 의한 개각을 시행하려고 했을 정도. 대통령 경호원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는데, 더 황당한 건 장관들도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장관들의 경호원들도 무장 중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결국은 대통령 측 경호원들vs장관들+장관 경호원들 간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거기다가 장관들이 죄다 족장들이라 수도 시내로 총격전에서 확대되어 '''전투'''가 확산되었다. 그런가 하면, 2008년에는 잘 조직되고 정부 경찰 제복으로 위장한 6명의 테러리스트가 미국 대사관을 공격했었다. 물론 위험 지역의 미국 대사관들은 '''요새화'''가 되어 있으므로 미국 대사관 테러는 실패했고 애꿎은 예멘 정부군만 다쳤다(...)[29](전략)... (부통령에게 스콜피온 기관단총을 쏴대기 시작한) 동시에 다른 (대통령의) 경호원들이 AK-47 소총을 들고 들어와 다른 장관들을 사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관들도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들의 경호원들도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1986년 1월 13일 남예멘의 '''개각''' 모습.[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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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개막장인데도 아랍 세계에서 가장 인구 증가율이 많은(연간 2.8%) 나라다. 이 속도면 25년 뒤 인구가 2배가 된다. 인구가 2005년에 2000만이었는데 6년 후인 2011년에는 2383만 3000명이 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많이 나아진 편이며, 한때 합계 출산율 '''9명'''대를 기록해서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정도였다.[30] 지금은 4-5명대로 낮아졌다. 문제는 예멘이 가난한 나라인데 '''국민 대다수가 문맹'''일 정도로 교육 수준도 형편없어서 이렇게 인구가 증가해봤자 국가에 부담만 되지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튀니지 혁명으로 아랍권 전체가 혁명 열기로 들끓는 가운데, 예멘에서도 혁명 열풍이 불어 결국 정부가 전복되었다. 예멘의 경우 이집트, 리비아와 함께 대표적인 정권 전복 사례. 아랍권 일대의 혁명은 전체 인구의 40~50%를 차지하는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상황인데 특히 예멘의 경우 30대 이하의 인구가 전체 인구수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피임을 금하고 아이를 많이 낳는 걸 오래전부터 권장하기에 대다수 나라들이 인구 증가율이 엄청나서 젊은 층이 많은 게 혁명 여파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을 참고.
예멘이 북예멘과 남예멘으로 나뉘어졌을 시절에는 남예멘지역이 공산주의국가여서 여권신장이 이뤄졌지만, 예멘이 통일되면서 악명 높은 샤리아를 모든 법률의 근원으로 규정하면서부터 샤리아 법원 등의 이유로 여성들의 인권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고 거기에다 조혼까지 널리 퍼져 있다.링크링크 그리고 샤리아를 헌법의 기초로 삼으면서 예멘은 보수화가 시작되었고, 술판매도 금지되기까지 했다.링크
예멘 반군이 10대 소녀 수십명을 징발해 첩보, 의무, 경비, 소년병 모집과 같은 전투 지원 업무는 물론 여군 부대에 보내 전장에도 투입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9. 내전 및 종파 갈등
예멘 내전(2015년)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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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예멘에는 시아파가 많은 편이다. 이에 비해 남예멘은 수니파가 많다. 예멘 전체를 놓고 보면 수니파가 다수다. (짙은 녹색은 시아파, 연두색은 수니파) 과거에는 유대인도 많이 살았지만 이스라엘 건국 후에 이스라엘로 떠나 버려서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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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말 기준으로 상황을 보면 시아파 후티 반군(녹색)이 이미 수도 사나와 과거 북예멘 지역을 대부분을 장악하고 제 2의 도시이자 과거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을 포위하고 있으며, 정부군(붉은색)은 동부 사막지대로 쫓겨난 상태다. 그나마 남은 지역의 상당부분도 알카에다(AQAP)(흰색)가 통제하고 있다.
예멘 수니파와 종파 갈등을 벌이고 있는 시아파 후티 반군은 지난해 9월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정치적 실권을 쥐었다. 초기엔 대통령에게 협조적이었으나 이후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예멘을 6개 자치 지역으로 나누는 연방제로 새 헌법 초안이 작성되면서 후티의 공세는 거세졌다. 자원이 풍부한 남부까지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계획이 연방제로 막히자 쿠데타를 시도한 것.
2015년 1월 20일부터 21일까지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대통령 관저를 공격하고 예멘 최대 미사일 기지와 군사학교를 장악했다. 로이터 통신은 후티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대통령 관저의 경호원을 자체 병력으로 바꿨다고 보도했다. '''현 대통령이 반군에 의해 관저에 '포로'로 잡혀 있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가 된 것이다.'''
만일 후티가 쿠데타에 성공한다면 전면적 내전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후티는 예멘의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알 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AQAP)와도 교전을 벌이고 있는데, 후티가 정권을 쥐면 알 카에다와 수니파 무장 조직들이 반시아파 연합전선을 형성해 전쟁에 나설 가망이 매우 크다. 더욱이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서방과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국제적 고립 속에서 참혹한 내전이 치러질 수 있다. 거기다 남예멘 사회주의 세력의 분리독립 운동도 있으니(...) 때문에 미국은 후티를 도울 수도 없고 알 카에다나 남예멘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많은 상황.
결국 후티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허핑턴 포스트 기사. 후티 반군이 예멘의 의회,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의회를 세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혼란상이 극심해지고 치안이 갈수록 악화되자 독일,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와 사우디 아라비아까지도 대사관을 폐쇄하고 철수하였으며, 하디 대통령은 사직서를 내고 연금에서 풀려나자마자 자신의 지지 기반인 남부로 달아난 듯 했으나 이내 사퇴를 번복하고 남부 6개 주의 지지를 받은 뒤, 아덴을 임시수도로 선포하고 합법 정부로서의 저항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반 후티 시위도 일어나는 중이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예멘이 눈 앞에서 붕괴되고 있다''''라며 경고하였다.
2015년 3월 20일에는 가뜩이나 상황이 안 좋은 가운데, IS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 테러까지 발생해 최소 137명이 사망하기까지 했다. 기사 1, 기사 2. 같은 날, 예멘에 주둔하던 미군(규모 100여명)이 완전 철수했다. 22일에는 후티 반군이 제3의 도시 타이즈를 점령했다.
26일부터 사우디군이 예멘에 전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15만명 규모의 병력과 100여 기의 항공기를 동원하였으며, 아랍 국가들과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공습 전날 백악관에서는 사우디에 정보와 군수 지원 명령을 내렸다. 물론 미국도 군수지원이라고는 하지만, 정보자산(드론) 등을 동원해 지원하는 것인 만큼 개입이라고 봐도 타당할 듯하다. #
카타르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성명을 통해 "이번 군사작전은 하디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면서 "전투는 예멘 수니파 정부가 회복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우디 지상군 병력의 80%가 예멘에 투입된 가운데, 이미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생지옥의 참극을 벌이고 있는 수니파-시아파 종파갈등 성격의 중동 국제 대리전(이란-이라크 전쟁 시즌 2?)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후티 반군은 4월 1일에는 하디 행정부의 임시수도인 아덴까지 점령했다. 하디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로 망명.
5월말, 오만의 중재로 미국과 후티 반군이 협상을 했으며, 6월 14일 제네바에서 정부 측과 후티 반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개시될 예정이다. 일부 언론에선 남북 재분할 얘기도 나온다. 완전 재분할은 아니고 상징적 대통령을 두는 느슨한 연방제라는 전망. #
6월초에 예멘 반군이 사우디 아라비아 국경 지역에 로켓과 박격포를 이용한 공격을 가했고, 이후 사우디가 AH-64로 반격을 가했다. 기사.
사우디군이 병력을 계속 예멘에 투입하고 있으나, 게릴라전을 하는 반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역으로 사우디 지잔 주를 공격해 사우디 AMX-30을 노획하는 후티 반군[31]
후티의 게릴라 전술에 크게 데인 사우디군은 공격 헬기까지 투입하여 반군의 기갑부대를 격파하고 마리브 주를 탈환했다.
그러나 후티 반군은 결국 '''사우디 내륙'''까지 진군해 들어갔다. 처음엔 지잔 주[32] 가 돌파당하고 뒤이어 반군이 아시르 주로 진군 중이라 한다.
게다가 '''아시르 주의 군사기지 한 곳을 사실상 무저항으로 후티 반군에게 내줬다고 한다.''' 교전이 벌어진 지 얼마 안 되어 죄다 도망을 쳤다는데 마치 ISIL에 맞서 졸전을 면치 못하던 무능한 이라크군을 보는 듯하다. 만약 이들을 몰아내는 데 실패한다면 내전이 더욱 격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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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도 내전은 지속되고 있고, 예멘은 완전히 실패국가가 되어버린 상태다. 국민들은 기초적인 사회 인프라도 없이 고통받고 있으며, 지긋지긋한 종파 간 갈등과 내전은 1년 넘게 끝나지 않고 있다. 내전에서의 사망자는 6400명이 넘어가고, 경제가 처절하게 망가진 상태에서, 청년 실업률은 70%에 달한다.
내전에 휩싸여 비참한 처지에 놓인 예멘을 취재한 미니다큐.
이런 상황 속에 2016년 4월부터 정부군과 후티 반군간의 평화협상이 쿠웨이트에서 논의되고 합의되었다. 그러나 휴전 협정이 이뤄져 가는 와중에도 2016년 5월 29일, 샤브와 주에 주둔한 정부군을 반군이 기습해 정부군 20명과 반군 28명이 전사하는 등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
2016년 5월에는 시리아-이라크에서 세력이 움츠러들고 있는 ISIL이 시리아와 예멘에 대규모 테러를 감행해 아덴에서 사망자가 최소 45명이 발생했고, 수백 명이 다쳤다고 한다. 예멘에서는 신병훈련소를 겨냥해서 테러를 감행했다고 한다.
2016년 10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민 시아파 반군 후티의 고위급 인사의 부친상이 열리던 사나의 알쿠브라홀을 두 차례 공습하였는데, 장례식 폭격으로 인한 논란이 국제사회에서 비난이 크게 일어나자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를 벌어서 사우디가 이를 예멘 장례식장 폭격을 오폭으로 인정한 사건도 있었다.#
그 와중에 죄없는 어린이들은 37만 명 영양실조·아사 위기라고 말했다.# 5세 이하는 무려 31%가 영양실조 상태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예멘은 2년간의 내전으로 인해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 부상자가 4만 명에 달했다.# 게다가 콜레라까지 번지면서 115명이 죽고 8,500여 명의 감염자가 발생되었고,# 한 달여 만에 콜레라 사망자가 600명에 달하고 감염자도 7만 명에 달했다.# 결국 예멘은 콜레라가 확산되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예멘에서 콜레라가 확산되자 다른 주변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예멘에서는 한달반만에 콜레라 사망자가 1천 명에 육박했다.# 그리고 2달 만에는 사망자가 1,500명에 달했고 이 중 25%가 어린이들이었다.# 게다가 콜레라 의심 환자가 30만 명을 넘으면서 점점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치닿고 있다.# 그리고 2017년 8월 30일에 폭우와 홍수로 15명이 사망하면서 콜레라확산이 높아지고 있다.#
2017년 7월 27일에 예멘 반군이 쏜 미사일이 메카(!)인근에 떨어졌다.# 그리고 2018년 1월 30일에는 예멘 반군 후티가 리야드의 공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2월 1일에 사우디군은 부인했다.#
2017년에 예멘을 통해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등 부유한 걸프국가들로 이주하는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예멘은 내전 중에 민간인 10,000명 이상이 숨졌고 이 중 1,000명은 어린이였다.#
#예멘 타이즈에서 반군의 포격으로 어린이 4명이 숨졌다.
# 예멘군이 알카에다의 거점도시 마파드를 점령했다.
2017년 11월 6일 사우디 주도의 아랍 동맹군이 예멘의 육해공을 봉쇄하였다.# 이 봉쇄조치로 가뜩이나 열악한 예멘의 상황이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 후티 반군은 봉쇄에 반발하며 사우디와 UAE에게 보복하겠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와 별개로 유엔의 예멘 민간인 구제는 허용하여 유엔이 사우디군의 통제하에 있는 예멘의 사나 공항을 이용하도록 허가해주었다. 물론 그외에는 전부 봉쇄했다.#
그리고 12월 4일, 후티 반군은 사나에 머물고 있던 '''살레 전 대통령에게 헤드샷을 날려 처형했다'''. 살레 전 대통령과 후티는 한때 한 배를 탔었으나, 이후 결별했다. # 후티 반군이 살레 전 대통령을 처형한 이유는 후티의 적국을 도와주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동맹을 제안하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는 줄타기를 시전했다는 것이었고, 결국 후티의 화를 자초하여 자신이 이끄는 무장단체, 지지자들과 함께 사이좋게 처형 당했다.
예멘은 내전중에 콜레라에 이어 디프테리아(!)까지 확산중이라서 10명중에 1명이 디프테리아로 사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 보건시설은 55%가 파괴되면서 의약품공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8년 1월 28일에는 예멘 정부를 돕던 분리주의 세력이 임시정부청사를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되었고, 예멘 정부군과 교전하는 과정에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그리고 아덴전역에서는 분리주의진영의 시위가 일어났다.# 거기에다 남예멘 분리주의세력은 남부 과도위원회를 결성하고 1월 28일에 아덴의 정부청사를 정부군과의 전투끝에 점령했고, 1월 29일에는 병력을 증파하는 등 남예멘 분리주의세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아덴에서 정부지지자들과 남부분리주의자들이 충돌하면서 12명이 사망하고 130여 명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예멘 정부군과 남부 분리주의세력간에 교전이 일어나자 아흐메드 빈다게르 총리는 사우디로 도피할려고 하고 있고,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은 사우디로 피신했다.#
결국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중재를 위해 대표단을 아덴으로 파견했다.#
2018년 2월 3일에 사우디주도의 아랍동맹군이 예멘 반군을 폭격하면서 군사시설, 학교, 민가 등을 표적으로 삼아 어린이까지 대거 희생되었다.#
2018년 4월 11일에 후티 반군은 전투용 드론으로 사우디 남부 국경지대의 공항과 석유시설을 공격했다.# 그리고 사우디군은 2018년 5월 7일에 예멘의 사나에 위치한 옛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2018년 5월 3일 아랍에미리트가 뜬금없이 자국 군대를 파견하여 소코트라 섬을 점령했다.# 시아파 반군 후티에 맞서 원 정부인 하디 정부 편을 들며 예멘 내전에 개입해 온 아랍에미리트는 2017년 말부터 하디 정부에서 남예멘 분리주의 조직 남부 과도위원회로 편을 갈아탔고 이 분리주의 조직은 2018년 초 하디 정부를 몰아내고 임시 수도였던 아덴을 장악했다. 아랍에미리트가 군대를 파견하면서 공항, 항구, 정부 관공서 등 주요 시설에 게양되고 있던 예멘 국기를 내리고 아랍에미리트 국기를 내걸었으며 아랍에미리트가 예멘 정부에게 소코트라 섬의 99년 기한의 조차를 주장했다는 소식이 나오는 것을 보면## 남예멘 분리주의 조직을 지원하여 예멘 정부가 자국군의 행동에 신경쓰지 못하도록 만든 후 소코트라 섬을 아랍에미리트의 일부로 영구히 합병할 속셈인 듯하다. 하디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의 소코트라 섬 점령이 예멘의 주권 침해라며 강력히 비난했으나 본토에서 벌어지는 내전에 신경쓰느라 바쁜 하디 정부는 아랍에미리트는 이런 행각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99년 조차드립까지 나왔지만 점령 2주만에 사우디의 중재에 의해 이미 UAE군은 철수한 상황이다.#
2018년 6월 13일 사우디 주도의 아랍 연합군과 예멘 정부군은 후티의 물류 요충지인 호데이다 항구를 탈환하기 위한 대공세에 들어갔다.# 그래서 하루만인 6월 14일에 아랍 연합군은 호데이다 남부의 나킬라 마을을 탈환하였고#, 6월 16일에 호데이다의 공항을 완전히 포위하고 공항의 후티 반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6월 19일에 후티 반군은 사우디군과 호데이다에서 격전을 벌였지만,# 결국 예멘 정부군과 아랍 연합군은 호데이다항구를 탈환했다.# 하지만 호데이다 전투가 확장되면서 시민들중에는 피난을 떠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예멘 내전이 길어지면서 미국은 내전에 개입(!)을 시사했다.# 예멘은 의료기관 등의 붕괴로 콜레라가 확산되었는데 새로운 콜레라(!)가 확산될려는 조짐을 보이자 사나 정부는 살충제를 살포했다.## 그리고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예멘내 직원들의 안전문제와 위협때문에 결국 직원들을 철수시키기로 밝혔다.# 그리고 프랑스도 6월 16일에 예멘에 특수부대(GIGN?)를 파견돼있다고 르 피가로가 보도했다.#
거기에다 내전으로 인해 난민들의 대부분이 다른 중동권국가나 북아프리카지역으로 피난을 갔고 일부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유럽권, 호주, 심지어는 멀리 제주도에까지 이주했다.# 그리고 19만명의 예멘 난민들은 예멘의 주변국으로 피난갔고 그마저도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 놓여 있다.# 2018년 7월 5일에 미국은 예멘 난민들의 임시특별보호기간을 연장했다.# 그리고 사우디군과 아랍에미리트군의 호데이다 공세로 최소 12만 1,000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되었다.# 그리고 7월 27일에 사우디군과 아랍에미리트군은 다시 호데이다를 공습하면서 유엔의 중재는 무산되었다.#
2018년 8월 2일에 그리피스 유엔특사는 9월 6일에 예멘 평화회담이 제네바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리피스 특사는 다음달에 열리는 평화회담에서 과도정부구성과 무장해제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예멘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콜레라가 다시 재발할 우려를 낳고 있다.# 그리고 예멘내에서 1천만명이 굶어죽을 위기에 놓여 있다.# 예멘에서 사우디군을 포함한 연합군의 공격으로 어린아이들이 수십명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자 합동장례식이 8월 13일에 치러졌다.# 스테판 두자릭 UN 대변인은 "예멘은 최근 들어 전염병 위험이 크게 늘었다"며 "지난 4월 이후로 의심되는 사례가 110만 건에 달한다"고 말하면서 예멘내 콜레라확산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2018년 9월 6일에 제네바에서 열릴 예정인 평화회담에서 예멘정부와 반군은 직접 대면하지는 않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2018년 9월 5일에 마틴 그리피스 유엔 예멘 특사는 2년 만에 재개되는 예멘 평화회담을 앞두고 "양쪽의 신뢰구축이 첫 단계"라며 이번 회담이 정례적 절차로 자리 잡도록 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후티반군이 불참하면서 평화협상이 잠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결국 예멘 반군이 불참하면서 평화회의는 시작도 못하고 무산되었다.# 그리고 결렬되자마자 내전이 다시 발생되었다.# 그리고 WFP는 호데이다 항구에서 인도주의 구호활동을 겨냥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거기에다 유엔난민기구는 예멘에서의 상황은 최악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예멘은 내전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있다.# 예멘은 4년째 내전에 접어들면서 520만명의 어린이들이 기아위기를 겪고 있다.#
세이브 더 칠드런은 예멘내 520만명의 아동들이 기아의 위험에 처해 있다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만수르 하디 대통령은 2018년 10월 15일에 경제정책을 형편없이 집행하면서 통화가치의 폭락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총리를 해임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호데이다 항구에서는 일주일간 내전으로 인해 최소 150명이 사망했다.#
2018년 11월 8일에 마틴 그리피스 유엔 특사는 예멘 평화협상을 12월에 재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2018년 11월 16일에 예멘 정부와 반군은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거기에다 예멘은 내전이 길어지면서 알카에다(!)까지 부활할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약 4년간 이어졌던 예멘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이번에는 2018년 12월 6일에 스웨덴에서 평화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12월 11일에 예멘 정부와 후티 반군은 스웨덴에서 열린 회담에서 수감자 교환 규모를 1만5천명으로 합의하고 명단을 서로 공개했다.# 그리고 예멘 반군측은 유엔 특사가 제시한 합의문중의 일부를 수용하기로 밝혔다.# 그리고 예멘 정부와 후티 반군은 호데이다에 대한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휴전된지 이틀만인 12월 14일에 호데이다에서 다시 교전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12월 18일 0시를 계기로 호데이다에서 휴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후티 반군은 호데이다 항구에서 철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엔측은 호데이다 항구에서 철군했다고 주장하는 후티 반군과 정부군의 실행 여부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그리고 굶주린 주민들에게 돌아가야할 식량들이 후티반군들에 의해 빼돌리면서 판매되는 일이 발생되자 세계식량기구는 이를 중단하라고 강력 경고했다.# 게다가 예멘은 지원되는 식량의 대부분이 도둑맞는 사태를 맞이하면서 유엔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9년 1월 16일에 호데이다 항구에 6개월간 75명의 감시단을 파견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2019년 1월 28일에 예멘 북부의 난민 캠프에 포 공격이 행해져 8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1월 29일에 예멘 정부군과 반군은 내전 4년만에 상대편 수감자를 교환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9년 2월 19일에 호데이다 내 병력철수의 개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멘은 2019년 4월부터 콜레라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위기를 겪고 있다.# 심지어는 메뚜기떼가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등 농업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예멘의 식량 부족 문제가 사상 최악 수준으로 심각해져 수많은 어린이가 죽음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결국 나무위키에서도 예멘 내전 문서가 분리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이쪽으로...
10. 문화
10.1. 언어
공용어는 아랍어이지만, 예멘 내에서는 예멘 아랍어를 포함한 여러 아랍어 방언에 속하는 언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소코트라 섬에서는 소코트라어라는 언어도 사용되고 있다. 영어는 예전에 남예멘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중요한 외국어이지만, 교육받은 사람들에 한해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예전에 남예멘이 공산주의국가였기때문에 일부 러시아어사용자들도 존재하고 있다.
10.2. 종교
종교는 이슬람교가 국교로 지정되어 있고 샤리아 법원까지 있다. 이중 수니파가 다수이고 시아파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예멘에도 소수의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일부 기독교신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예멘은 통일이후에는 샤리아를 헌법의 기초로 삼으면서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다 변절하는 경우에도 사형에 처하는 나라로도 알려져 있다.#
10.3. 음식
질 좋은 커피가 유명한데, 예멘 모카 마타리는 한국에서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팬시와 더불어 세계 3대 커피라 불릴 정도.[33] 예멘산 커피는 특유의 복잡한 맛과 향으로 애호가들에게 높게 평가받고 있다. 예멘의 커피는 100% 건식 가공되며, 그 방법으로는 커피 열매(체리)째로 바짝 말린 뒤 맷돌에 으깨어 커피에 필요한 부분만을 얻어내는데, 그 과정상 불량률이 매우 높은 데다 전근대적인 유통 구조 때문에 등급에 사기를 치는 일도 종종 있다. 사실 건식 가공을 하는 지역들도 이후 경제 발전 및 생산량 증가로 인해 수세식 가공이나 허니 프로세싱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예멘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건식 가공에서 예멘 커피 특유의 복합적인 맛이 나오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괜찮은 맛의 블렌드 커피에는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원두이기도 하다. 중세부터 커피를 재배하여 수출한 국가이기도 하다.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가 근처이며, 당시 가장 큰 커피 수출 항구가 예멘에 위치하고 있어 커피 무역에 관한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던 곳이다. 이 항구 이름이 바로 '''모카'''다.
시드르 꿀 (Sydr Honey)도 특산품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대형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사막 기후가 많지만 그래도 자급자족할 먹을 거리는 충분히 재배할 수 있었으나 마약성 잎사귀인 카트 재배(물이 많이 필요하다)로 다른 작물을 재배하지 않고 여기에만 물을 많이 써서 지금은 먹을 거리인 밀가루와 여러 가질 죄다 수입해오고 있다. 더불어 사막화마저 가속화되고 있는 형편임에도 까트 중독자가 많아서 이 문제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년도 안 가서 까트도 수입해와야 하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엉망이 된다고 한다. 즉 내전 상황이 아니라도 먹을 것 문제로 헬게이트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혹시 한국인이 예멘에 가서 까트를 씹거나 복용하고 귀국시엔 마약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10.4. 조혼
예멘은 돈을 받고 '''어린 소녀를 강제로 결혼시키는 조혼(早婚)이 잦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가난하다 보니 교육 수준이 낮은 데다가 설사 교육을 받는다 해도 좋은 직장은 구하기도 힘들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지참금을 받고 딸을 일찍 시집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인데,[34] 1980년대까지는 결혼 최소 연령을 15세로 지정했지만, 1990년대 이후 ‘딸의 결혼 시기는 부모가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해당 법을 무효화했다. 예멘 보건사회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5세 이전에 결혼한 여성은 전체 여성의 25%에 달한다 한다.[35] 때문에 이런 일도 있다. 예멘의 소녀 신부 대부분은 성숙 연령기에 이를 때까지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 예멘에서는 가난한 가족의 경우 어린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을 절감하거나 결혼 대가로 신랑 측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어 딸을 조기 결혼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예멘은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조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0.5. 스포츠
나라 사정이 저러다 보니 스포츠도 별다른 특징이 없다. 그나마 축구가 인기가 있긴 하지만 별다른 성적을 낸 게 없다. 자세한 것은 예멘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고할 것. 걸프컵에서도 동네북.
10.6.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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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사나의 천년된 '예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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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맨해튼' 시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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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왕궁이던 다르 알 하자르
예멘의 전통 주택과 성채. 북부 내륙 도시들에는 동화 속에 나올만한 초콜릿 과자집처럼 생긴 고층 가옥들이 남아있다. 더 많은 사진은 이곳을 참조
정세가 불안하기 전인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중세적인 풍경을 보존하고 있는 괜찮은 여행지로 배낭여행자 커뮤니티에서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수백 년 전의 옛날 모습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가 많다. 예멘 사람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예전에는 예멘의 도시를 걷다보면 그들의 언어(아랍어)로 인사를 하거나 영어로 '''"Welcome to Yemen"'''이라고 많이 할 만큼 친절하다고 한다. 수도 사나를 비롯해 세계유산인 자비드, 지블라, 타이즈, 다마르, 핫자, 아므란, 샤라자, 카우카반, 툴라, 타림, 세이윤, 시밤 등 유서깊은 도시들이 매우 많다.
특히 '시밤' 마을은 사막 한가운데에 흙으로 만든 집들이 9~10층으로 고층 빌딩을 이루고 있어 '세계 최초의 마천루', '고대 세계의 맨하탄' 등으로 불리며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던 세계적인 관광지였는데,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치안으로 여행하면 안 되는 곳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랍의 하와이[36] 라고 불릴 만큼 천혜 관광자원이 가득한 나라이기도 하다. 온갖 대추야자 열매와 일절 개발되지 않은 바다와 산과 호수가 가득하여 그야말로 환상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 많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 소코트라 섬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을 정도다.
내전으로 인하여 안타깝기도 하지만 되려 사람이 설치지 않아서 저런 자연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부정할 수가 없다. 2009년 여길 여행한 이의 책을 보면 되려 내전 지역이나 위험 지역을 피하고 무슬림 같이 하고 지내면서 현지인들과 친해지면 더 물가도 싸고 사람들이 순박해서 더 좋았다고 쓴 적도 있다. 게다가 이런 위험 덕분에(?) 외국인이 안 와서 너무나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지역에서 실컷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왔다고 한다. 한편 아덴과 호데이다 등 항구들은 현대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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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부 셰하라 지역의 석조 다리. 판타지물의 풍경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이 아름답다고 한들 예멘은 엄연히 여행'''금지''' 국가다. 정부에서 가지 말라는 곳. 이곳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2009년 3월경에는 예멘 지역을 여행하던 한국인 관광객을 향한 폭탄테러로 인해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사태를 수습하고자 방문하던 공무원과 유족들에게도 테러 공격이 가해졌다. 2009년 6월 15일에는 독일인 선교단과 선교를 하러 간 한국 여성 엄영선(당시 34세)과 독일인 개신교 선교단들이 납치되어 총살되기도 했다... 결국 2011년 6월 28일부터 반년(6개월)동안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었다. 참고로 그 테러 참사가 일어난 도시는 상술했던 시밤이다. 희생자 가족들은 여행제한국가로 가는 걸 정부가 막아달라고 호소했고, 결국 예멘은 여행금지국가가 되었다.
11. 외교
12. 창작물에서
영화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의 배경이다.
- 블랙 옵스 2에서도 등장한다. 이전에 비해 발전한 것은 그저 군인의 무장 뿐, 여전히 막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파리드는 메넨데즈와 합류하기 위해 예멘군을 닥치는 대로 사살해야만 한다.
- 언차티드 시리즈의 3편에서 중후반부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역시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로 함부로 입국할 수 없는 나라 취급을 받고 있다보니 주인공인 드레이크가 취재 기자로 위장하여 보물의 단서를 찾기 위해 입국한다. MBC 드라마 애정만만세에서는 가정 상황 때문에 예멘으로 떠날까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 프리즌브레이크 5 에서 메인 배경으로 등장을 한다. 내전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 크툴루 신화의 압둘 알하자드가 이 곳의 수도 사나 출신이다.
- 폴란드볼에서 독일 제국과 비슷하게(위아래 반전) 생겨서 가끔 이용되는 편이다.
13. 둘러보기
[1] 구 남예멘 국가를 살짝 변형해서 국가로 지정했다. 두 국가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2] 사나는 현재 후티 반군 세력이 강제 점령하고 있다.[3] 아덴은 현재 남부 분리주의자들이 통제하고 있다.[4] 국제법상 합법 정부인 아덴 정부의 대통령.[5] 임기: 2012년 2월 27일 ~ [6] 사나 후티 정권 최고정치회의의 대통령.[7] 임기: 2018년 4월 19일 ~ [8] 국제법상 합법 정부인 아덴 정부의 총리.[9] 임기: 2018년 10월 18일 ~ [10] 사나 후티 정권의 총리.[11] 임기: 2016년 10월 4일 ~ [12]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한 오래된 도시다.[13] 영어는 주요 외국어이지만,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한정되어 있다. 남예멘 지역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기에 일부 러시아어 사용자가 존재한다.[14] 예멘 공화국이 생기기 이전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인 1969년 ~ 1972년 색이 같고 비율은 다른 비슷한 국기를 사용했다.[15] 정확히는 '살라딘의 독수리', 이라크, 이집트 국장의 독수리가 바로 이거다[16] 한반도는 22만km²[17] 인구 역시 사우디 인구가 2700만이라서 거의 대등한 수준(80%).[18] 비슷한 예시는 이집트, 수단. 이집트 역시 아프리카(좀 더 정확히는 북아프리카) 동부에 있기 때문인지, 동아프리카와 엮이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이집트까지 합쳐서 동북아프리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아예 아랍화된 흑인이 사는 완전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 수단은 동아프리카로도 분류되기도 한다.[19] 사막기후지만 오만이나 카타르, 바레인같이 아라비아 반도의 해안가 지역처럼 습도가 70%에 달하는 등, 동남아를 능가하는 살인적인 더위를 자랑한다.[20] 독일이 통일 후 구 동독지역에 엄청난 돈을 들이부었다.[21] 위에서도 말했지만 30%의 실업률에 청년실업은 40%이다[22] 즉 다수결 원칙, 다원화된 의견(물론 '''반정부적인 의견도 포함된!'''), 다양한 문화의 수용 등인데, 이런 게 아랍권에서는 절대로 환영받는 제도가 아니다. 일단 종교에 대한 이견,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데다 그마저도 종파로 인한 갈등, 여기에 아랍 특유의 부족사회로부터 시발된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는 아랍국가들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기 어렵게 만든다.[23] 현재 중동권에서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라고 볼 수 있을 만한 국가들이 별로 없다. 그나마 튀니지나 레바논, 터키, 이란, 키프로스,이라크 정도? 하지만 튀니지는 2011년 재스민 혁명 과정에서 겨우 민주화된 데다 아직 민주주의 정치가 실험 중인 상태에 있고, 터키는 야당과 의회도 존재하고 선거로 국회의원과 대통령등을 선출하지만 과거에 잦은 군부의 정치 개입으로 사실상 군부독재였고, 최근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집권으로 점점 독재국가화되고 있는 실정이고, 이란은 직접 선거에 의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지만 대통령 위에 최고지도자가 있는 사실상의 신정체제 국가여서 진짜 민주주의 국가라고 볼 수 없고, 키프로스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터키계와 그리스계가 분단되어 대립하는 터라 안정된 나라라고 볼 수 없다. 이라크는 아예 두 종파간에 내전까지 벌인 경험이 있었다. 즉 실질적으로는 레바논 뿐이다.[24] 말이 상원이지, 아랍 왕정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일종의 자문 위원회다. 단순히 자문 기능만 있고 입법 기능은 없으며 입법 기능은 오로지 하원만이 담당한다.[25] 2012년 살레의 퇴임 직후 대통령 선거가 있기는 했으나, 현직 대통령인 압드 라부 만수르 하디가 단독 후보로 출마해 100% 지지율로 당선되었다.[26] 일단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내분과 종파간의 내전, 이로인한 대규모 난민 문제가 없기에 순위가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정부의 합법성(State Legitimacy) 분야에서는 남수단과 공동 '''1위'''를 차지했다(...).[27] 토마스 L. 프리드먼,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서울: 창해, 2003, pp.91-92[28] 사실 말이 장관이지 이들은 각 부족의 대표들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갑자기 자기 마음대로 개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런 꼬라지는 북예멘도 별 차이 없었다.[29] 특히나 리비아의 미국 대사관 테러 때문에 위험 지역의 미국 대사관들의 요새화는 더욱 삼엄해졌다.[30] 참고로 한국도 한창 출산율이 높았을 때는 6명대였고, 타 국가들도 대체로 6-7명대였다.[31] 동영상에서 노획해가는 전차는 포신 중간의 배연기(프랑스제 전차포는 포신 중간에 배연기가 없음)나 써멀 자켓과 포탑 형상, 전차장용 총탑, 엔진룸 형태 등을 볼 때 AMX-30이 아니라 M60a3이다.[32] 예멘 내전 초기 사우디가 접수했다.[33] 물론 세계 3대 좋아하는 한국과 일본 한정이다. 일본에선 예멘 대신 탄자니아가 들어가곤 한다.[34] 과거 한국에서도 가난했을 시절에 좀 산다는 집에 식모로 내보내는 일이 많았던 것과 일맥 상통한다.[35] 이것도 이슬람 탓을 하기 쉽지만, 사실 조혼은 전 세계적으로 흔하던 일이다. 옛날에는 평균 수명이 워낙 적어서 일찍 결혼하던 문제도 있긴 하지만, 7세기 이슬람권에서도 8살 소녀와 결혼(정확히는 양녀로 받아들였다가 좀 큰 다음에 결혼했다) 기록이 있고, 지금도 인도나 서남아시아 비이슬람 지역이나 아프리카 및 중남미 원주민들에겐 꽤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법적으로 금지되어 몰래 결혼하거나 외부인들에겐 양녀거나 친척이라고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2011년 6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참고). 구한말 미국인 선교사들이 설립한 이화학당은, 어린 여학생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시집가는 폐해로 골치를 앓았다. 선교사들이 부모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방학을 없애 학생들을 집에 보내지 않기도 하고, 결국은 "재학 중에는 금혼"이라는 교칙을 정했다. 이 교칙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다가, 시대가 바뀌면서 오히려 기혼 여성의 대학 입학과 학습을 방해하는 부역효과를 낳게 되어, 2003년 이화여자대학교는 금혼 교칙을 폐지했다.[36] 이건 오래전 YTN에서 틀어주던 국제뉴스로 나온 바 있는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