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기사단
1. 소개
[1]
십자군 전쟁 당시 활약한 기독교 계열 기사단.
한국어로는 성전 기사단[2] , 성당 기사단, 템플 기사단, 신전 기사단, 성전 수도회, 청빈 기사단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영어 계열에서 잘 나오는 'Templar'도 이들을 말하거나 그걸 본딴 것이다. 한자를 많이 쓰던 1960년대 이전 출판물에서는 수도자+군인이라는 이들의 정체성 때문에 이들을 승병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상징은 흰색 바탕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 여러 십자가 중 잉글랜드의 상징이기도 한 성 조지의 십자가를 쓴다. 이 십자가는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라는 색상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형태를 가지는데, 성전기사단은 Cross pattée라고 불리는 끝이 굵은 형태의 문양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대외적으로는 '청렴한 기사'라는 이미지를 내세웠으며[3]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 1마리에 기사 둘이 타는 상징도 '''"우리는 말 하나를 기사 둘이서 같이 탈 정도로 가난함."'''을 어필하는 목적이었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타지는 않았고, 저 로고 덕택에 '''남색'''의 억울한 이미지가 덧칠되기도 했다. 거기다 십자군 전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중근동 우트르메르에서 입지가 중요해진 뒤로는 가난하기는커녕 많은 기부금에 더해 입회한 기사들의 유산[4] 을 상속하여 부유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거대 금융 자본 집단으로 성장했다.
구호기사단과 달리 프리메이슨과 함께 음모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떡밥이다. '''물론 절대 다수는 거짓이거나 날조된 사실이 많다.''' 대표적으로 다빈치 코드에서도 떡밥으로 활용되었다. 푸코의 진자는 성전기사단 음모론을 한 번 더 비틀어서 만든 걸작이다. 특히 푸코의 진자는 성전기사단의 역사로 논문을 쓰던 주인공 까소봉의 입을 빌려 성전기사단의 역사적 사실과 후세에 덧붙여진 이야기를 구분하여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봄 직하다.[5]
역사상 최고의 기사중 한 명으로 꼽히는 윌리엄 마셜이 자신이 모시던 주군 청년왕 헨리가 사망한 후 방랑생활을 할 때 이곳에 몸담은 적이 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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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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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국왕 보두앵 2세로부터 알 아크사 모스크 (솔로몬 성전)를 하사받는 초대 기사단장 위그 드 파앵
1차 십자군 전쟁의 성공으로 예루살렘은 기독교도의 손아귀에 들어왔으나 서남아시아 내 기독교도 병력은 충분한 건 아니었고, 주변엔 적들이 철철 넘치는지라 성지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오가는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119년 말엽 프랑스 귀족 위그 드 파앵의 주도로 뜻을 함께 하는 8명이 모여 구호기사단과 같은 형식으로 9인 기사단을 조직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2세는 자신의 궁전이 기거한 예루살렘 성전의 언덕에 기사단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 터가 옛날 솔로몬 성전(Temple)이 있었던 자리였기 때문에 기사단의 이름을 성전기사단이라고 짓게 되었다. 최초 9명으로 시작된 기사단이니만큼 초기에는 가난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주재 라틴 총대주교의 축복을 받았다 할 지라도, 아직 수도회로써 인가된 상황도 아니었기에 이들의 활동은 불안불안했다.
이 불안한 상황을 좋은 쪽으로 해결해 준 사람은 바로 시토 수도회의 창립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였다. 그는 훗날 2차 십자군을 창설할 때 큰 역할을 하기도 하는 사람으로써, 우트르메르의 기사 수도회 설립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1129년, 그의 수도회와 함께 교황을 설득하여 성전 기사단을 공식 수도회로 인준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그들이 교회법에 적법한 방식으로 기부, 모병, 영지 관리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0년 뒤인 1139년에는 인노첸시오 2세의 칙령으로 성지에서 활동하는 기사 수도회들에게 세속법의 의무를 대폭 면제해주는 특혜가 내려져, 그들이 성지로 향하는 동안 국경과 관세, 세속법에 구애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2.2. 성지에서의 모습
세가 불어난 기사단은 우트르메르 각지에 영토를 두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사단원의 숫자는 가장 많았을 때도 1만 명 안팎이었으므로 [6] 이들은 각지의 요새를 바탕으로 활동하다가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나 영주들이 요청할 때 규합되어 전투를 벌였다.
넓은 영토를 적은 병력으로 지켜야 하기에 항상 부족한 병력 수급 상황, 그리고 '''수도회'''로써 창설된 기사단의 특성상 평민이나 하층민도 성전 기사단원이 될 수 있었다. 물론 평민 기사(혹은 하사관)라는 계급이 따로 있었지만, 이들도 기병으로 복무하였고, 각 함대나 지역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데다, 이들을 위한 고위 칭호가 따로 있었던 만큼 큰 차별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각 기사단은 부족한 인원의 보충을 위하여 이교도들도 용병 병력으로 사용하였다. 많은 사료들에서 성전 기사단이 전투나 방어전에서 투르코폴레스 용병을 고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이들은 구호 기사단과 라이벌 각도를 만들기도 하였다. 특히 안티오크 공국의 경우에는 두 기사 수도회가 내전의 양측에서 만나기도 하였다. 안티오크의 노르만 영주들은 대대로 성전 기사단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안티오크 시내의 일부 지역과, 아르메니아 왕국, 동로마 제국과의 국경인 바그라스를 성전 기사단에게 양도하기도 하는 등 호의를 보이기도 했다.
반대로 구호 기사단은 아르메니아 왕국의 왕들과 연대하여 이들이 안티오키아 내에서 가지고 있는 영유권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결국 계승 문제로 내전을 벌이던 안티오키아 공국 내에서 각각 친 아르메니아파, 반 아르메니아파로 나뉘어 싸움을 벌인 것. 자세한 사항은 안티오키아 공국 항목 참조
2.3. 거대 금융 기관이 된 기사단
1128년에 교황에게 정식으로 인가받은 기사단은 많은 입단자들과 후원자들을 바탕으로 조직을 확대해 나갔으며, 2차 십자군 원정이 끝날 때를 즈음하여 프랑스 내 광활한 영토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조직 확대 과정에서 입단자들의 재산을 맡아 이를 바탕으로 금융업을 벌이면서 엄청난 양의 재정을 확보했고, 순례자들의 예금을 맡아 두는, 현대로 치면 다국적 은행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렇게 막대한 부를 축적한 기사단은 유럽 및 중동 각지에 광활한 영지와 독자적인 함대까지 만들었고 정부에 자금을 빌려줄 정도로 위세를 높였다. 최전성기에는 키프로스 섬 전체를 소유했다고 하며, 파리에 있는 지부는 프랑스 왕국의 비공식 재무성이라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2.4. 몰락
십자군 전쟁이 살라흐 앗 딘의 지도 아래 이슬람군의 우세로 기울면서 성전기사단은 존립 근거가 희박해지고,[7] 돈 많은 특권 집단 정도로 변질되고 있었다. 게다가 14세기에 들어 십자군 전쟁이 완전히 끝나면서 성전기사단도 사실상 그 가치를 잃었는데, 다른 기사단들은 재빨리 업종을 바꾸거나 아니면 프로이센, 발트 해, 로도스 섬 등 다른 곳으로 가서 성전을 지속하면서 어떻게든 살아갔으나 이들은 프랑스로 돌아가서 돈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돈이 부족한 프랑스의 왕과 귀족들이 주 고객이었다.
특히 13세기 말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당시 자신의 사치와 전쟁 등으로 인해 막대한 돈을 쓰고 있었는데, 돈 나올 구석이 없으니[8]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프랑스에서 돈 놀이나 하며 기사단들 사이에서도 고립된 성전기사단을 털자'''는 것이었다.
- 중세~근세, 특히 절대왕정기로의 이행을 앞둔 중세 후기~근세 절대왕정기의 귀족(군주나 영주)들에게 있어서 '현대인의 기준에서 건전한 경제관', 즉 '수입의 규모에 맞춰 지출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었다. 이는 상인이나 시민 등 부르주아 계층의 미덕이었고, 귀족에게는 오히려 수입이 크건 작건 과시적이고 화려한 지출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당장 중세 서유럽의 왕들은 대영주들 중 하나로써 대표자, 또는 그중 상위에 있는 대군주 정도일 뿐 전통적, 관습적으로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아오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왕권을 강화시키려면 전쟁이나 엄청난 사치등을 통해 '내가(왕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지속적으로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보다 조금 뒤, 절대왕권의 전성기에 베르사유 궁전 같은 호화스러운 궁전을 괜히 지은것이 아니다. 그렇게 엄청나게 호화스러운 궁전을 건설함으로써 왕의 권위와 특별함을 과시하겠다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근현대처럼 세금수취체계나 교통통신망이 발달하지 않았던 이 시대에는 효과적인 세금 수취 자체가 극히 어려웠기에 국가 재정상 이런 과시적인 소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대외원정을 통한 전리품등의 형태로 재정을 충당하는 것이지만, 유럽 내에서 이게 가능하던 시절은 중세 초기에 끝나버렸고, 따라서 어지간한 군주들로써는 이런 수단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9] 따라서 서유럽 군주들의 재정 패턴은 기본적으로 일단 돈을 쓰고, 모자라면 은행가들에게 빌리든지 조세수취권을 팔아치우든지 해서 땜빵하고, 그러다 국가 재정에 땜질도 불가능할 수준으로 빵꾸가 날 수준이 되면 그동안 강화된 왕권을 이용하여 만만한 놈을 조져서 털든지, 나 빚 못 갚는데 니가 어쩔 거냐, 왕 배 한번 째볼 거냐 식으로 해결하는 식으로 재정난을 해결했다.
- 결국 이 시대에 정부(왕)을 상대로 돈놀이를 한다는 건 현대 국가의 국채를 사는 것 같은 안정적인 투자처가 아니라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한 사업이었다. 왕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려면 일단 빌려주다가 재정 파탄도가 올라가면 다른 금융업자에게 폭탄을 돌리고 발을 뺀다거나, 왕이 '다른 데 빚을 째고 말지 얘네 빚을 째면 뒤탈이 염려된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다거나, 정 뭐하면 왕의 권력으로 조져지기 전에 일정한 수준에서 빚을 탕감해주는등의 요령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성전기사단의 경우 다른 기사단들이 다 눈치껏 기독교 문명권의 외곽으로 나가 성전으로 방패를 치고 있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는지, 프랑스 왕의 영향권 한복판에 가만히 남아 자신들이 얼마나 영양많은 먹잇감인지 홍보라도 하듯 돈놀이까지 하고 있었고 결국 필리프 4세의 음모에 걸려들고 만다.
결국 기사단원들은 고문 끝에 모두 입회식에서 십자가를 짓밟고 모욕했으며 바포메트를 숭배했다는 자백을 하게 된다. 물론 재판이 열리자 이들 전원은 그 자백을 부인하고 억울함을 호소했으며, 그래서 재판이 꽤나 길어졌다. 그러나 프랑스 왕의 꼭두각시인 교황은 그저 왕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니, 결국 1311년~1312년에 개최된 빈 공의회에서 교황은 성전기사단의 해체를 결정했다.
사실 교황은 성전기사단이 약간 의심스러운 구석은 있었을지라도, 날조되고 누명씌워진 악마숭배 같은 말도 안되는 혐의에서는 무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교황청 자체 조사를 통한 시농 양피지 문서(21세기에 바티칸 고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등을 통해 성전기사단에게 교회 사면령을 결정했으나 이는 왕의 압력으로 인해 공표가 늦어졌고, 철저히 묻혔다.
결국 성전기사단은 악마숭배자 단체로 몰려 강제로 해산당했다. 재판 중에 대부분의 기사단원들이 고문을 견디지 못해 죽고, 자크 드 몰레와 기사 1명만이 살아남아 사형 판결을 받고 화형당한다.
필리프 4세가 갑자기 성전기사단을 잡아들인 이유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이후 수없이 많은 추측을 낳았는데, 현재 일반적인 평가로는 재정 궁핍에 시달리던 필리프 4세가 최대 채권자였던 성전기사단의 채무를 없애고,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11]
다만 오늘날의 연구에 따르면 그렇게 몰수된 많은 재산들이 상당 부분 구호기사단과 같은 다른 조직에도 흘러들었다는 점을 들어 정치적인 목적이 더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요컨데 국민 국가 관점에서 보나 왕권 강화 관점에서 보나 프랑스 왕의 입장에서 군사력, 재력, 종교적 권위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데다가 국제적인 영향력까지 행사하고 있는 성전기사단은 언젠가는 반드시 숙청해야 할 대상이었다.
여러 기사단들이 다른 곳으로 가든, 업종을 아예 전환하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인데, 눈치 없는 성전기사단이 화를 자초한 셈이다. 프랑스 왕이 확실하게 성전기사단을 잡기 위해서 이단 혐의를 씌우긴 했지만 그게 아니라도 반역 음모라든가, 이들이 권력을 앞세워 벌인 온갖 탈법 행위라든가 하는 걸 만들어내 처형할 수도 있었다.[12] 해결책은 재산을 다 들어 바치는 것뿐인데, 그걸 할 수 있었으면 성전기사단이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질 리가 없었다.
2.5. 몰락 이후
최후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던 마지막 기사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가 결국 사형이 확정되자 '''"프랑스 왕과 교황이 1년 안에 주님 면전으로 끌려나와 자기 앞에서 죄를 고백하게 될 것이다!"''', 즉, 왕과 교황이 1년 안에 죽을 거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필리프 4세와 클레멘스 5세 모두 1년도 안 되어서 죽었다. 이외에도 자크 드 몰레가 필리프 4세의 세 아들들(루이, 필리프, 샤를)에게도 저주를 퍼부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것에 대한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성전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가 내린 저주 에피소드는 실제로 존재했던 에피소드 + 후대의 구전 창작으로 변형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에게 행해졌던 부정행위에 맞서, 한때는 위대했던 이 영웅들의 혐의를 풀어주는 것 같은 전설들이 존재하는데, 무죄를 주장하여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한 무리의 성전기사들이 당시 성전기사단의 유죄를 적극 주장했던 법률가 기욤 드 노가레(Guillaume de Nogaret)[13] 를 보고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를 퍼부었다고 하는데, 정확히 8일후에 노가레가 죽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자크 드 몰레는 화염에 휩싸이면서 만일 성전기사단이 결백하다면 교황은 40일 만에, 왕은 일년안에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를 이행하기 위해 하느님의 법정으로 불려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14] 아마 이 내용이 후대에 조금 더 살이 붙어서 오늘 날 전해지는 화형의 저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일이 있은 후, 정확하게 꼭두각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는 33일만에, 필리프는 8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필리프 사후, 그의 세 아들들이 모두 왕좌에 올랐는데, 필리프 사망 약 14년 만에 이 세 아들들마저 모두 사망해, 카페 왕조 직계 혈통의 3백년 역사와 그에 걸친 통치가 막을 내렸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으며, '그가 처형(그러니까 화형) 중에서 두려워 하는 내색 없이, 하느님께서 복수를 해주실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목격이 존재한다.(An eyewitness to the execution stated that Molay had shown no sign of fear and had told those present that God would avenge their deaths)'[15] 고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필리프 4세의 세 아들들의 자손들은 모두 요절하거나 대가 끊겨 결국 모두 '''멸족했다.'''[16] 필리프 4세가 죽고 세 아들들과 손자가 차례차례 뒤를 이었는데 모두 아들 없이 죽어 카페 왕조가 무너지고 만다.
- 장남 루이 10세(완고왕): 필리프 4세의 뒤를 이었으며 아들 장 1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딸 잔이 있었으나, 살리카법 확대 해석으로 즉위하지 못했다. 하지만 잔은 오래 살았고 나바라 왕국의 여왕으로 즉위하여 후손을 남겼다.
- 차남 필리프 5세(장신왕): 조카 장 1세의 뒤를 이었으나, 외아들 필리프가 1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만 딸 네 명은 모두 오래 살아서 시집을 갔고 그 중 이사벨은 후손도 남겼다.
- 삼남 샤를 4세(미남왕): 형 필리프 5세의 뒤를 이었으나, 외아들 샤를이 태어나자마자 죽었고[17] 딸 3명도 모두 요절하거나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 손자 장 1세(유복자왕): 루이 10세의 유복자로 아버지 루이 10세가 죽기 전에 이미 뱃속에서 왕위 계승자로 결정났었다. 따라서 태어나자마자 왕에 즉위했지만 갓난아기가 뭘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삼촌 필리프(필리프 5세)가 섭정을 맡았다. 그러나 생후 5일만에 사망했다.[18]
- 필리프 드 발루아: 필리프 4세의 동생 샤를 드 발루아의 아들이자 필리프 4세의 조카.
-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 필리프 4세의 차녀이자 샤를 4세의 누나 이자벨의 아들로 필리프 4세의 외손자.
- 나바라 왕 펠리페 3세: 필리프 4세의 동생 루이 데브뢰의 아들로 필리프 4세의 조카인 동시에 루이 10세의 사위.[19] 필리프 4세의 조카인 동시에 손녀 사위가 된다.
이렇다 보니 프랑스 혁명으로 부르봉 왕조가 몰락한 것이 성전기사단을 계승한 프리메이슨의 음모 때문이라는 음모론 떡밥까지도 존재한다. 루이 16세의 목이 떨어질 때 누군가 '''"자크 드 몰레, 이제 네 복수가 끝났다!"'''라고 외쳤다는 말도 존재는 하지만 실제로 그랬지는 불명확하다.
2.6. 후예
기사단은 1312년 정식으로 해체되었으나,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다지 탄압이 없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이들은 이름을 바꾸고 잠적하거나 다른 기사단에 흡수되는 형태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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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슬람과의 최전선에서 국토 회복 운동이 진행 중이던 포르투갈 지부는 1312년 포르투갈 국왕 디니스 1세의 중재를 받아 이름을 '''그리스도 기사단'''(Ordem Militar de Cristo)으로 바꾸고 계속 활동해 나간다. 대항해 시대에는 항해왕자 엔히크를 비롯한 왕족들이 그리스도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가 되고, 바스코 다 가마 같은 유능한 탐험가들이 기사단원이 되어 바다로 진출해 포르투갈의 융성에 한 몫 거들게 된다. 포르투갈에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들어선 현대에도 그리스도 기사단은 여전히 존속 중이며, 포르투갈 대통령이 기사단장을 맡고 있다. 홈페이지
사족으로, 스코틀랜드로 간 일부 기사들이 영국 왕의 전투를 돕다가 나중에 프리메이슨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역사학자들은 이것도 성전기사단에 대한 무수한 날조 및 음모론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3. 직급 및 계급 체계
- 기사단장: 성전기사단의 총지휘관.
- 집사장: 성전기사단 내의 기사단장 아래의 2인자이자 행정 업무를 담당.
- 원수: 성전기사단의 군대를 지휘.
- 부원수: 성전기사단의 군대에 소속된 보병대를 지휘.
- 기수: 기사단에 소속된 평민 기사들을 지휘.
- 보급감: 기사단의 보급을 담당.
- 지역 사령관: 기사단령에 소속된 각 지역을 담당.
- 성주: 지역 사령관 아래에서 각 성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지휘.
- 기사: 귀족 출신 기사.
- 평민 기사: 비귀족 출신 기사.
4. 매체에서
위에서 언급된 음모론 때문인지, 겉으로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기사단이지만, 그 속은 사악한 음모를 꾸미려는 악의 축이자 위선자 집단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다(...).
- 도미네이션즈에서 중세 시대에 고용 가능한 용병으로 등장한다.
- 성전기사단의 흰 옷과 그 위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는 다음 항목에 나오는 기사단의 모티브가 되었다.
- Pirates, Vikings and Knights II의 기사단
- 소드 아트 온라인의 혈맹 기사단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템플 기사단
-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미라쥬 나이트
- 움베르토 에코가 쓴 푸코의 진자의 진 주인공. 까소봉, 벨보, 디오탈레비가 너울벗은 이시스 전집을 기획하며 성당기사단의 행적을 추적하다 거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꾸며넣으며 '장난'을 시작하게 되고, 이는 곧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파멸로 향하게 된다. 본 문서에 나온 음모론들을 비롯해 기사단에 대한 온갖 잡설을 풀어 놓으면서도 옆길로 세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고가는 에코 옹의 필력이 대단하다. 이윤기는 성당기사단이라고 번역했다.
- 내셔널 트레져에서는 이집트부터 고대 로마에 이르기까지, 고대 제국들의 보물이 모여 있는 솔로몬의 신전을 발견한 십자군 기사들이 보물을 유럽으로 옮긴 이후에 이 보물들을 지키기 위해 결성했으며, 그들의 후예들이 미국으로 보물과 함께 이주하며 프리메이슨을 결성한 것으로 나온다. 또한 보물이 개인이 아닌 인류 모두의 것이라는 모티브를 보면 기존의 악역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도시전설 창작물인 SCP 재단/세계관에서는 SCP재단과 함께 인류를 변칙개체로부터 보호하려는 단체인 세계 오컬트 연합의 일원으로 나온다.해체될때 살아남은 단원들이 비밀리에 제결성했고 피직스 분과라는 단체가 탄생할 때까지 연합의 주요 군사력이엿다.
- 둠 시리즈의 리부트인 둠(2016)에선 이들을 모티브로 한, 먼 옛날 악마와 싸웠던 밤의 감시단이라는 기사단으로 등장한다. 기사들은 주인공인 둠가이가 악마를 상대로 영원한 투쟁을 벌일 당시 전우가 되어 함께 싸웠으며, 이들의 문명은 일찍이 천국과 관련된 초고대문명이 아닌지 팬덤에서 추측 중이다.
-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의 종교 기사인 템플러의 모티브가 성전기사단을 모티브로 했다.
- 월드 오브 다크니스 - 메이지 디 어센션에서 플레이 가능한 세력 중 하나인 이질적 동맹(Disparate Alliance)의 일원으로 나온다. 정식명칭은 솔로몬 성전의 기사단(Knights of the Temple of Solomon)으로 본래는 오더 오브 리즌의 일원이었던 카발 오브 퓨어 소트(Cabal of Pure Thought) 산하의 기사단 중 하나였으나, 빅토리아 시대에 오더 오브 리즌이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으로 탈바꿈 하면서 기존의 종교적 색채를 지우려던 차에 반발을 일으킨 세력 중 하나로 이에 테크노크라시가 당시 기사단 본거지 중 하나를 HIT Marks[20] 로 밀어버렸다. 그 후 기사단은 테크노크라시를 탈퇴하고 이질적 동맹(당시에는 크래프트)에 가입한다.
- 유명한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에서는 성전기사단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등장한다. 일반인들은 정체조차 모르고 비밀에 싸인 집단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마치 달사의 세계랄까 혹은 흡혈귀가 판치는 세계에 등장하는 종교 집단과 매우 흡사하다. 자신들의 말로는 라이미라크 교단의 검이라고... 이러한 설정 때문인지 어느 마비노기 게임 소설에서는 대놓고 성전기사단을 악의 축으로 끼워 넣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마비노기 세계 내에선 밀레시안과 대립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 미디블2: 토탈 워에서는 성전기사단 길드 유치로 고용가능하다. 기사단 답게 높은 사기와 강력한 돌격력으로 초반 기병이 약할때나 스코틀랜드, 베니스같이 기병이 약한 국가는 상당히 유용하게 써먹을수 있다 미디블2: 토탈 워 - 킹덤즈 브리타니아 켐페인에서는 잉글랜드만이 쓸 수 있는데 이도 에드워드 왕세자를 십자군에 출정시켜야한다. 특히 템플기사단 서전트와 석궁병도 등장한다. 또한 크루세이즈 캠페인에서는 예루살렘 왕국의 고유 병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 영국 걸작 어드벤처 게임 브로큰 소드 시리즈[21] 에서도 현대까지 남아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성물을 모으면서 자신들을 방해하거나 취재하는 이들을 가차없이 제거하는 비밀 조직으로 나왔다.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 등장하는 프로토스의 군대인 기사단(Templar) 역시 성전기사단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 스페인의 좀비 영화 시리즈인 블라인드 데드 시리즈에선 한술 더 떠 살아생전 두 눈이 불에 지져진 뒤 사형당했다가 세월이 지나 좀비로 부활해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다닌다. 줄줄이 시리즈로 나오며 호평받은 걸 보면 성전기사단이 좀비로 나와도 별 거리낄 건 없는 모양이다. 1971년에 1편이 나왔는데 두 눈이 없다 보니 소리만 듣고 사람을 공격한다. 이 소리로 주로 사냥감을 알아차리는 좀비란 설정도 많은 영향을 준다. 그런데 좀비임에도 어찌 말까지 구해서 잘만 타고 다니며 사람을 죽이는데 기사(?)답게 사람을 칼로 목을 베어버리기도 한다.
- 미니어쳐 게임 인피니티에서는 판오세아니아의 기사단 중 하나였다. 성당기사단(인피니티) 참조.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선 살라딘 캠페인과 바바로사 캠페인에 등장하는데, 사기 종족인 튜튼족이다. 바바로사에선 1번만 나오고 게다가 동맹이니 별 상관은 없지만, 살라딘 캠페인에선 3번에 걸쳐 등장하며 게다가 적이다. 뭐 사라센 문명도 약체는 아니지만, 특수 유닛인 맘루크가 기병 상대로만 강력하여 튜튼족 특수 유닛인 흉악한 방어력을 가진 보병을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더구나 난이도가 극악인 3번과 6번 미션에 나오는지라 상대하기 버겁다. 기본적으로 1:4, 1:5 비율로 적을 상대하는 미션들이라...
- 오우거 배틀 시리즈 세계관 내 초강대국인 로디스 교국의 군사집단의 모티브. 설정상 16개의 기사단이 있으며 각 직급명에 '템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지휘관급은 각기 갑주에 새겨진 철십자 문양이 인상적이다.
- 템플 나이트(일반사관) : 엘리트 전사가 주류이며 검술과 마법에 두루 정통. TO의 암흑기사단은 솔저의 스탯(...)에 거의 모든 마법 사용가능, 득의무기 검이 설정되어 있다. OB64의 명황기사단은 리더설정 가능(물론 적전용)에 전방3회 공격으로 취급이 좋은 편이다.
- 템플 커맨드(상급사관, 연대장급) : 1000명의 템플나이트를 통솔하는 기사의 직급이며 16기사단 중 최정예인 암흑기사단은 수하에 부리는 템플나이트가 30명밖에 안 된다. 그 지위에 걸맞게 각기 무예가 출중하며 경이적인 위력의 전용 필살기를 보유하고 있다.
- 데스 템플러(기사단장, 군단장급) : 일국의 군주를 능가하는 힘과 권한을 행사하며 개인의 전투력은 일반 기사 100인에 필적한다고 한다. TO의 란슬롯 타르타로스, OB64의 리처드 그렌델이 대표적.
-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에서 등장한다.
-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십자군이 활성화된 뒤 등장한다. 보통 기사단처럼 돈을 기부하거나 신앙심을 대가로 기사단을 고용할 수 있다. 또한 금융업을 벌인 사실을 고증해 돈을 빌릴 수 있다. 유대인과 달리 이자는 붙지 않지만 상환의 대가로 여러 가지 요구를 하는 게 특징. 예루살렘을 탈환한 경우 봉신화가 가능하다.
- 크루세이더 킹즈 3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전작처럼 같은 종교(가장 대표적인 이 문서의 성전(성당)기사단의 경우 천주교)를 믿을 때 고용할 수 있는 기사단으로 등장하며, 대가로는 돈을 요구하고 신앙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대출이 가능한 것도 여전하다. 큰 차이는 자신이 직접 성전기사단을 창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창설한 성전기사단은 무료로 고용할 수 있는 대신, 창설할 때 홀딩이 건설된 남작령 하나를 내주어야 한다. 기사단에게 임차한 남작령은 완전한 자치구가 되어 세금 등을 걷지 못하며 원할 때 박탈할 수 있다. 성전기사단의 원조인 천주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도 현재 개혁 신앙[22] 상태이며 기사단을 개설할 신앙과 돈만 있다면 기사단을 만들 수 있고, 기사단의 이름은 해당 종교에 걸맞은 것으로 부여된다. 가령 아사트루(북유럽 신화)를 믿고 성전기사단을 만든다면 욤스비킹, 오딘의 발키리와 같은 이름이 나온다.
- 킹덤 언더 파이어의 나이트 템플러가 바로 성전기사단이다. 물론 이름만 빌려온 유닛. 초창기엔 개사기 유닛으로 유명했고 마구 너프를 먹은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했다. 해당 문서 참고.
-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악역 기 드 뤼지냥이 이끌며, 선역에 가까운 구호기사단과는 달리 순 악역 광신도 집단으로 묘사되며 이슬람교도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도륙내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이들이 "하느님께서 원하신다!(God wills it!)"라고 외치는 장면은 광기로 가득차 보인다. 구호기사단 또한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성전기사단의 저 외침에는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중에서 발리앙의 아버지 고드프루아와 함께 등장하는 구호기사단원은 "신앙은 믿을 게 못 되오"라는 대사로 시작해서 "야만적인 학살을 자행하는 자들 중 너무 많은 이들에게서 신앙으로 가득찬 눈을 보았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 학살을 자행하는 자들이 이 성전기사단원들이다.
작중 예루살렘 왕국은 온건파인 보두앵 4세가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유럽인과 아랍인이 서로 어울려 사는 이상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성전기사단만 계속 아랍인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살범 기사들이 처형당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성전기사단이 이러는 이유는 이슬람교도들을 여전히 적으로 보고 '주의 뜻에 따라'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현 정권에 반항함과 동시에 아랍 세계를 도발해서 전쟁을 흭책했던 것이다. 그런 주제에 군사적 역량은 떨어지는지(...) 전쟁이 결정되자 신나서 출병하긴 했는데 무작정 행군만 하다 물 부족으로 허덕이며 살라딘에게 대패한다.[23] 예루살렘 왕국에 있던 성전기사단원들은 하틴의 뿔 전투에서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
- 퇴마록 말세편에서도 주인공들의 적으로 등장하나, 몇몇은 협력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 폴라리스 랩소디에서는 애져버드라는 이름으로 오마쥬되어 나온다. 이 단체의 최후가 딱 성전기사단의 최후와 판박이. 그래도 성전기사단과 달리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용병단으로 바뀌어 살아남다가, 휘리 노이에스에 대항해 폴라리스를 도우려는 퓨아리스 4세의 의도로 '바이올 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한다. 하지만 막상 폴라리스에 도착하고 나서는 노스윈드 해적단들이 악마와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배신을 때린다.
- 한국 소설 아켈다마에서는 기사단장 화형이라는 비보를 접한 기사들이 신을 저주하며 악마와 그 앞잡이 이스카리옷 유다를 섬기는 아켈다마 기사단으로 180도 전향한 후, 오늘날까지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계의 흑막으로 암약하고 있다...는 설정이었으나 소설 속에서 실제 보여주는 행동은 미녀들을 납치해다 조교해서 성노예로 만들거나 인신 공양이나 일삼는 것 따위다.
- 헬싱에서는 제13과 이스카리오테라는 비슷한 이름의 교황청 특무 기관이 있긴 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기사단은 5권 즈음 런던 침공을 위해 모일 때 3천 명이 등장한다. 이른바 '제9차 공중 기동 십자군 레콘키스타.'[24] 참여 인원은 다음과 같다.
- 쿨란테 검의 벗 기사 수도회 (The Knights of the Sagely Brethren represent the Knight Order of the Sword of Courland) 340명
- 카라트라바 라 누에다 기사단 (The Knights of the Order of Calatrava La Nueva) 118명
- 성 스테파노 기사단 토스카나 군단 (The Knights of the Military Order of Santo Stefano di Toscana) 257명
- 몰타 기사단 (The Knights of the Order of Malta) 2,457명
이로써 총 3,172명이 참전했다. 확실히 이스카리오테 제13과는 다르다. 하지만 실상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광신도인 건 매한가지. 다만 이스카리오테가 교황의 지시를 받아 이단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암살자 집단이라면, 위의 기사단은 진짜 교황청 직속 사병 집단과 다름이 없다.
[1] 성전 기사단 '주님, 평화를 주소서' 성가[2] 예루살렘의 성전산에 위치해 있는 '성전(聖殿)'에서 유래하였다. 성스러운 전쟁을 뜻하는 성전(聖戰)은 아니다.[3] 수도사면서 기사였으므로 정결 청빈 순명의 원칙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4] 성전기사단에 가입하면 수도자가 되기 때문에 결혼하여 후손을 남길 수 없다. 따라서 입회자의 유산은 기사단에 흡수된다.[5] 프리메이슨의 일부 핵심 인물들이 성전기사단원을 자처한다.[6] 이는 평민 기사와 종군 사제들을 모두 포함한 숫자이다. 실제 서임받은 기사의 숫자는 훨씬 적었다.[7] 당시 전투에서 기사단의 총장이 포로가 되면서 항복보다 죽음을 택하는 성전기사단의 명예가 실추된다.[8] 당대 왕들은 왕권이 강하다 해도 그저 대영주들의 대표자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절대 왕권이 있었어도 국가가 부유하지 않은터라 돈은 언젠가 떨어졌을 것이다.[9] 이후 근세에 세력을 떨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신대륙에서 수탈한 막대한 귀금속을 기반으로 권위를 강화했다.[10] 기사랑 단원들을 포함하여 230명이 체포되었다.[11] 특히 필리프 4세는 프랑스 내의 유대인들에게서 세금을 징수하여 거두기도 했고 내지 못하는 유대인은 추방하기까지 했다.[12] 원칙대로 하면 영주들이 흔히 벌이는 농노에 대한 살해도 그 농노가 교회 법상 사형이 마땅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거나 정신 이상자인 이상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었다. 단지 영주들의 권위를 생각해서 모른 척했을 뿐이다. 훗날 샤를 7세 시절에 질 드 레를 처형할 때도 이런 식으로 처리했고, 실제 유럽에서 왕이나 대영주들이 마음에 안 드는 소영주와 기사를 합법적으로 처리할 때 흔히 쓰던 방법이기도 하다.[13] 1260~1313. 프랑스의 법률가·정치가. 프랑스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법률을 가르치다, 국왕 필리프 4세의 측근이 되어 그의 왕권강화를 위하여 힘썼다. [14] 사실 이것도 거의 저주와 같은 말이긴 하지만.[15] 영문 위키피디아 Jacques de Molay 문서, Legends(전설) 문단의 하위문단인 Curse(저주) 문단, 23:33, 13 September 2020 버전.[16] 다만 차녀 이사벨라는 영국의 에드워드 2세에게 시집을 가서 2남 2녀를 낳았다. 이사벨라는 무시무시한 여걸로서, 무능한 남편 에드워드 2세를 유폐하고 죽였는데 일설에는 때려죽였다고도 한다. 자세한 것은 브레이브 하트 항목 참조. 그녀의 장남 에드워드 3세는 에드워드 2세의 뒤를 이었으며 백년전쟁을 일으키게 된다.[17] 마차 사고가 나서 급히 제왕절개를 통해 출산시켰는데 어머니 마리아, 샤를 모두 사망했다.[18] '섭정을 맡은 필리프 5세가 손을 썼다 카더라'라는 설이 있으며 심지어 형 루이 10세가 요절한 것도 필리프 5세의 짓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정황이나 심증만 약간 있으며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만약 정말 필리프 5세가 관여한 것이라면 프랑스의 수양대군이 되는 셈이다.[19] 루이 10세의 외동딸 잔과 결혼했다.[20] 테크노크라시가 제작한 일종의 전투 로봇으로 중세 때 만들어졌던 초판은 판금갑옷을 걸친 기사처럼 생겼지만 현재는 일반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21] 동서게임채널에서 파검이란 제목으로 CD로 낸 바 있다.[22] 민간전승 정도였던 옛날 종교나 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대로 된 신앙으로 만든다는 설정[23] 출병한 기사단원들이 물 부족으로 허덕이고 지쳐가는 모습을, 아랍군 진영의 풍족하고 생생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대화 내용으로 유추해보면 살라딘의 군대는 강을 따라 행군했기 때문에 물이 풍족했으나 기사단은 무작정 사막 한가운데로 내달렸기 대문에 물 부족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24] 스페인어로 재정복이라는 뜻이다. 8차 십자군 당시의 표제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