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연극을 시작으로 해서 영화, 드라마 등 다방면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안내상이라는 이름은 '''친가에서 태어나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형 안외상은 외가에서 태어나서 지은 것이라고. 형의 이름 덕분인지 집안에서는 물건을 살 때 절대로 외상으로 구매하지 않았다고 한다.[7]
이미지가 나쁘지 않은 배우이나 의외로 범죄 경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운동권 시절" 문단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2. 상세
어린 시절에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데다가 친척형이 심하게 노는 형인 바람에 담배까지 피웠다고 한다. 그것도 9살 때. 다행히 11살에 끊었다고 한다. 오전반/오후반이 나뉘어 있어서[8] 운동장에 노는 애들[9] 이 많았고 한반에 학생이 많던 시절이라 수업시간에 교실에도 있지 않고 운동장에 있던 애들[10] 하고 놀았다고 한다. 당시 적잖은 선생님들이 말 안 듣는 애들은 그냥 냅둬버리고 가던 시절이라 그랬던 듯.[11]
2.1. 운동권 시절
1988년 연세대학교 신학과 재학 시절 학생 운동에 뛰어들었던 그는 광주(당시는 광주직할시)의 미국 문화원에 '''시한폭탄'''을 설치했지만 차질이 생긴 건지 '''터지지 않았고''', 그 길로 자수하여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위반으로 8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한 과거가 있다.[12] 이것이 바로 형사소송법에서 속인주의의 대표적인 판례인 '미국 문화원 사건'이다. 이러한 전적 때문에 미국에서 입국 거부자가 돼 약 20년이 넘은 지금도 미국에 갈 수 없는 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13][14]
그가 이런 일을 벌이려 한 것은 전두환 군사 정권이 광주에 참혹한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방관자 같은 태도로 나오자 여기에 격분했기 때문이라고.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밝힌 바로는 저 당시, 모든 것을 끝낼 각오로 준비했다고 한다. 지금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극단적 행동이었다며 반성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미국에 사과할 용의도 있다고 한다.*
2016년 4.13 총선 때 동료 배우 우현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의 지지 유세를 했다. 유세 영상 셋은 대학교 시절 민주화 운동을 같이 할 때부터 지금까지 매우 절친한 선후배 사이인데, 심지어 본인이 가난했던 연극배우 시절에는 우현과 함께 우상호의 신혼집에 들어가서 빈 방에서 2년 가까이 같이 살기도 했을 정도라고. 한편 우상호 의원의 결혼 당시, 보통 절친한 친구가 맡는 함진아비 중 하나로 우 의원의 발바닥을 때리는 역할을 한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썰전 영상
2009년 맥스 부탄가스의 광고를 찍었는데, 광고 속 핵심 멘트가 "안~터져요~" 과거 경력과 안내상의 멘트 소화력덕에 안터져요가 밈으로 종종 등장한다. 과거의 과격한 민주화 운동 행적과 부탄가스 광고의 코믹한 연관성에 대해서 본인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이 시절을 두고 “좌익모험주의에 빠져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2.2. 연극배우 시절
출소 이후, 운동권 활동을 접고 연극계에 뛰어들어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운동권 시절에 '한양 레퍼토리' 극단을 만든 한양대 연극과 최형인 교수[15] 를 알게 되었고, 이후 그곳에 들어가 설경구나 이문식, 권해효 등 후에 유명해지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 배우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것. 처음에는 연극 전공자도 아니고 특별한 경험도 없던 그를 특별대우하는 것에 불만이 있는 듯한 시선을 보낸 일부 동료들이 있었고[16] , 이 때문에 미안하면서도 괴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들어간 연극인 생활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해서 연기를 했는데, 첫 공연이 '춘풍의 처'라는 연극이었고, 안내상도 초보치고는 중요한 배역을 맡게 되었는데, 하필 노인분들을 관객으로 한 공연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연 중에 앞자리에서 '어 저기 누가 죽었네? 살아났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너무 크게 하는 관객들이 많은 바람에 모든 배우들이 대기실에서 이거 잘못하면 웃음이 터질 위기라면서 잘 참자고 약속하면서 연기를 했는데, 그만 중간에 안내상이 웃음이 터져버려 중요한 노래 부분을 몇 초 놓쳤고, 안내상보다 나이가 어린 다른 여배우가 대신 그 부분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고 그 대신 노래를 불렀던 여배우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던 안내상을 불러서 '오빠, 그 따위로 할 거면 그냥 아예 연기를 하지 마라'라며 아주 크게 혼냈다고 한다. 이에 안내상은 부끄러움을 느꼈고, 다른 배우들도 똑같이 웃겼던 것을 모두 참았는데 자신만이 웃었으니 배우로서 자세를 갖추지 못했던 부분이라 생각하여 크게 자책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자기를 혼냈던 그 동생에게 크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하는데, 그 여배우가 바로 나중에 '''권해효와 결혼한 부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안내상은 '권해효가 지금 잘 사는 건 그렇게 할 말 잘하는 그 친구(부인) 덕분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문식은 그 웃음 사건 때도 함께 연기했던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안내상과 함께 연극하던 시기를 회상하며, 오히려 안내상을 꽤 멋진 형으로 기억했다.[17] 공연을 하루 앞둔 당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었는데 배우들이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내상이 극단원들에게 저건 구조를 도와주러 가야한다며 극단원 대다수를 이끌고 현장으로 가서 구조작업을 도왔다고 하는데, 이 모습을 보고 이문식은 '어? 저 형 좀 멋있는데?' 하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연극을 초반에 할 때는 '내상이 형은 연극을 오래는 못 할 거 같다'는 생각은 했다고 하는데, 몇 년을 함께 연극하다가 헤어진 뒤 안내상이 영화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과거보다 치열하게 달라진 모습을 느껴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배우생활에 적응이 된 뒤에 보니 배우들이 너무 가난하고 퍽퍽한 생활 속에 힘들어 하는 모습이 많고, 술자리를 해도 많은 연극인들이 망가지는 모습들이 너무 자주 보여 아무래도 안정성을 위해 연기를 하면서도 다른 수입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술집 사업을 시작했는데 상당히 잘됐다고 한다.[18] 그러나 나이를 먹고 안내상은 이 잘 됐던 사업을 했던 일을 많이 후회했다고 한다. 배우로서 인생진로를 결정했으면 괴롭더라도 연기에 몰입했어야 했는데, 다른 주머니를 차고 나니 연기에 소홀해지는 부분이 있었고, 그것을 느끼면서 부끄럽고 괴로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안내상의 딸의 작명을 위해 안내상의 장모가 작명소를 갔다왔는데, 아버지의 이름이 내상이면 딸이 얼마 못 산다는 소리를 들어서 태건으로 개명하였다가 몇 년 안 가 다시 본래의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그래서 한때 포털 사이트의 인물 정보에 본명이 안태건으로 나와 있었다.
2.3. 현재
사업을 정리한 2000년대부터 TV 단막극, 독립영화로 연기 플랫폼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창동의 영화 오아시스를 시작으로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차츰 얼굴을 알렸고, 드라마 한성별곡, 별순검 시즌1을 통해 점차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조강지처 클럽으로 출연 당시 찌질남 이미지가 강렬했으나,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어느 정도 회복한 듯. 그리고 해를 품은 달의 성조대왕 역과 메이퀸의 천홍철 역으로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의외로 조선 왕 역할을 많이 했다. <음란서생>의 조선 국왕, 그 다음이 비슷한 이미지의 한성별곡의 (정조를 모델로 한) 임금.
이후 연속극, 시트콤, 사극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 중.
로열패밀리, 해를 품은 달, 킬미, 힐미에서 모두 배우 김영애와 모자 관계로 출연했는데, 이를 배우개그 소재로 써먹는 사람들이 많다.
각본가 중에서는 문영남,김순옥과 PD 중에서는 김도훈과 인연이 깊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송곳의 주연 구고신 소장 역을 맡으며...인생작을 만났다. 본인이 연기커리어가 이걸로 끝나도 좋다고 할 정도. 그가 운동권 출신이란 점을 상기하면서 드라마를 보면, 가벼운 마음으로 보긴 어려운 배역. 특별출연으로 대학 동기이자 당시 함께 운동권에 있었던 배우 우현이 구고신의 친구 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송곳의 한 장면.
2019년 기준으로 그야말로 소처럼 일하는 배우 중 한명으로 미니 시리즈, 장편 가리지 않고 매 해마다 수많은 드라마에 크고 작은 역할로 출연하고 있다. 특히 막장 드라마계의 양대산맥인 문영남, 김순옥 작가의 단골 배우 중 한명으로 특히 김순옥의 경우 왔다! 장보리 이후 '''모든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2019년 초 종영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처연하게 바라보는 아들 역할로 열연을 펼쳤다. 극 중 모친이 치매라는 사실이 밝혀지는게 드라마 후반부였는데, 드라마 전반에 걸쳐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늙어버린 딸(실제로는 엄마)을 바라봐 시청자들에게 의문을 샀다. 그러나 그것이 늙어버린 딸 때문이 아닌, 치매에 걸려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단게 밝혀지자, 배우의 디테일한 연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2019년 3월, MBC에서 방영한 더 뱅커에선 은행장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야심가 부은행장 역으로 다시 한 번 연기변신에 나섰다.
2020년에는 배설물로 커피콩을 만드는 사향고향이 대신 인간의 배설물로 딸을 대박치게 하는 참신한 소재의 루왁인간으로 다시 시청자들에게 나섰다. 또한 영화 저 산 너머와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 김영석 역과 국방부장관 역을 맡아 출연했다.
2019년 초반까지는 나이에 비해 동안이었지만, 위 프로필 사진에서 드러나듯이 중반부터 점차 백발이 생기기 시작했다. 환갑에 가까워지는 나이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일.
아래 출연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엄청난 다작배우이다. 2019년엔 특별출연까지 포함해 무려 '''11작품'''에 나왔고 특별출연을 빼고도 8작품이며 2020년에도 8작품에 출연했다. 2021년에도 벌써 3편이나 캐스팅되며 다작배우 이미지를 굳히는 중. 오죽하면 나오는 말이 드라마계의 이경영이다. 놀랍게도 매번 다른 작품에 나오면서도 다른 연기력을 선보여 명품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2.4. 설경구와의 관계
설경구가 송윤아랑 재혼하기 전 전처가 안내상의 여동생이다.
설경구와 안내상은 상술된 '한양 레퍼토리'라는 같은 극단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는 동료 출신[19] 이지만 설경구가 이 극단에 별로 오래 있지 않고 다른 극단으로 나갔기 때문에(극단 학전으로 갔다.) 사실 이 시절 함께 활동한 기간이 별로 긴 것도 아니다. 영화배우가 된 이후에도 이창동이 메가폰을 잡고 문소리, 설경구가 주연을 맡은 2002년작 영화 <오아시스>에서는 안내상이 설경구의 큰형으로 나왔고, 강우석 감독의 영화 공공의 적에서는 안내상이 강철중 역할의 설경구보다 후배인 부하형사[20] 로 나와 함께 출연했다.
2013년 7월 30일 tvN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해 설경구와 술 친구로 지내고 있다. 현재도 서로 잘 챙겨준다고 언급했다. 또한 안내상은 여러번 설경구를 친근하게 언급한다.
3. 여담
[image]
위와 같이 셜록의 한 짤과 같이 합쳐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의 유튜브에 친구야 시장하니?라는 특집성 주제로 운동권 시절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과 출연하였다.[21] 1부2부
4. 주요 출연작
4.1. 영화
4.2. 드라마
5. 수상
[1] 90년대 후반에 잠시 안태건으로 개명하였다. 본문 참조.[2] 후술하겠지만 농담이 아니라 진짜 본명이다.[3] 남양주시 호평동에서 안내상 형제떡집이라는 이름의 떡집 운영 중.[4] 밑에 있는 항목 내용 중 포털사이트에 형과 아버지만 등록되었다고 해서 여동생의 존재를 없다고 언급된 적이 있으나, 결론적으로 여동생이 존재한다. 승승장구에서도 언급되기도 하였다. 그 중 1명이 배우 설경구의 전처다.[5] 학창시절 열렬한 개신교 신자였고 이에 따라 장신대에 입학했다. 장신대 시절 만난 연대에서 학생운동하던 형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안내상은 크게 감명을 받아 입시를 다시 쳐서 연대 신학과로 가게 된다.[6]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무종교라기보다는 개신교 신앙은 가지고는 있으나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러나 2017년 말 기준으로 교회에 다시 나가서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고 한다.[7] 사촌들의 이름은 면상, 진상, 화상이라고 한다. '상'자 돌림을 써야 하는데 친척이 약 서른 명이어서 그렇다고.[8] 한 집안에 아이가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4명 이상이던 시절의 이야기. 교실의 숫자보다 학생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썼던 정책이다. 안내상의 경우 1970년대에 경험한 이야기지만 오전반/오후반 제도는 사실 1990년대까지도 꽤 많이 존재했다. 저출산 풍조가 퍼지고 학교 시설이 대폭 개선된 1990년대 후반부터 오전반/오후반 문화가 사라진다.[9] 오전에는 오후반 애들이 미리 와서 놀고, 오후에는 오전반 애들이 방과 후 집에 안 가고 놀곤 했다고 한다.[10] 요즘처럼 체계가 잡혀 있는 학교라면 수업시간에 학생이 학교 운동장에 나가면 담임선생님 말고도 다른 교직원 전체의 눈에 띄기 십상이니까 그렇게 못 하겠지만, 그가 학교 다니던 70년대 초중반-80년대 초반 당시는 대한민국의 초등학생 수가 가장 많던 시대이다. 한 반에 80-100명씩, 15개 학급이 2부제 수업을 할 정도니 타 반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고 담임교사라도 얘가 오전반인지 오후반인지 알기 힘들다.[11] 당시엔 2년제 사범학교, 고졸 과정인 사범고등학교 출신 선생님들이 꽤 흔하던 시절이기도 하다.[12] 당시 몇몇 동조자들이 있었는데 동조자 중 한 명이 당시 고려대생인 박시백 화백이라고 한다. 둘은 88년 말에 함께 선고실효. 중앙대생인 박철민도 그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13] 본인이 밝히길 그럴 것 같다는 거지 실제로 입국 거부 대상인지 확실히는 모른다고 밝혔다. 미국에 갈 일이 한 번 있었지만 스케줄상 취소했고, 본인도 그다지 가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14] 실제로 2016년에 괌을 방문했다고 한다. 괌은 미국의 해외 영토로 미국 본토와 동일한 입국 절차를 거친다.[15] 그의 제자 중에 일반인들이 알 만한 유명 배우가 많을 정도로 훌륭한 교육자 겸 연극인이다. 그의 남동생이 배우 최용민.[16] 두 살 어리지마 연극 경력은 선배인 이문식이 라디오스타에서 농담식으로 "낙하산으로 들어왔는데 바로 주인공을 꿰찼다"고 언급했는데, 확실히 이러면 기존 동료들이 곱게 보기 힘들다. 지금도 미중년이지만 당시 안내상은 미남이었기 때문에 잘 생겨서 비중이 높은 역할을 맡은 듯. 물론 이문식은 이후 안내상, 그리고 그의 대학 동기 우현과 절친이 된다.[17] 그러나 대신 연극배우 자체로는 얼마 못 갈 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적으로 아는 형으로는 좋은데, 동료배우로 연기력 쪽은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18] 그의 인생 절친 겸 배우 우현도 비슷한 시기에 따로 술집을 차렸는데, 안내상의 사업과 우현의 술집 장사가 모두 매우 잘됐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우현은 안내상처럼 배우가 아니라 연극 제작, 즉 제작비 관련된 일을 주로 했었기 때문에 입장이 조금 달랐다. 우현은 그렇게 제작하던 연극이 몇 편 꽤 흥행이 되자 몇 년 뒤에 배우로 데뷔한다.[19] 설경구와 안내상의 여동생이 서로 처음 알게 된 것도 이 시기로 알려져 있다.[20] 안내상이 강철중(설경구)에게 뒷통수를 얻어맞는 장면도 있다. 잠복근무 중에 배탈이 난 설경구가 악취가 심한 방귀를 뀌자 안내상이 '어욱, 아니 강형사님, 좁은 차안에서...'라며 지적하자 설경구가 '너는 방구 안 뀌냐 이 새끼야?'라고 하면서 안내상의 머리를 때리고 볼일 보러 나간다. 이외에는 접점이 없다. <공공의 적>에서 안내상이 조연도 아닌 단역급이라 출연한 장면이 매우 적다.[21] 우현도 같이 나왔다.[22] 주인공 홍종두('''설경구''')의 형.[23] "이쉐키들 이러니까 전교 꼴등하는거지. 이놈 쉐키들이...하여튼 이 엽전놈의 새끼들은 좋은 말로 해선 안돼. 조져야 돼! (운동장에서) 뛰어!!(선착순)"[24] 윤초원 아빠[25] 정조가 모델.[26] 시즌2에서 별순검이 해체되면서 경무청을 떠나게 되었고, 대박 난 소머리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잠깐 출연한다.[27] 직업이 비슷하기도 하여, 팬들 사이에서 2007년작 '''별순검 시즌1'''에 나온 '''배복근''' 순검의 후손이 아니냐는 썰이 있다.[28] 서원시장[29] 서울특별시장[30] 남선호(우도환 扮)의 아버지 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