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
1. 王史
왕의 행적을 중심으로 두는 역사 서술법.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전통적 사서(史書)는 거의 이런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한국사의 관찬 정사인 삼국사기, 고려사나 중국 24사에서 본기(本紀) 부분이 바로 재위한 왕을 중심 기준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엄밀히 정의하자면 이는 왕이나 황제와 같은 전제군주제 국가 지도자의 연대기를 개념의 범주에 포함하겠으나, 본 문서에서는 메타 문서적 가치를 살리기 위하여 대통령 등 보다 다양한 형태의 국가 지도자 연대기를 아울러 열거한다.
1.1. 현실
1.1.1. 아시아
1.1.1.1. 한국
- 고조선/왕사
- 부여/왕사
- 고구려/왕사 - 보덕국, 소고구려
- 백제/왕사
- 신라/왕사 - 장안국, 후백제(?), 태봉(?)
- 가야/왕사
- 발해/왕사
- 고려/왕사
- 조선/왕사(대한제국 황사 포함)
- 대한민국 대통령/명단
1.1.1.2. 중국 및 대만
1.1.1.3. 일본
1.1.1.4. 몽골 제국
1.1.1.5. 티베트
1.1.1.6. 베트남
1.1.1.7. 태국
1.1.1.8. 말레이시아
1.1.1.9. 싱가포르
1.1.1.10. 인도
1.1.1.11. 사우디아라비아
1.1.2. 유럽
1.1.2.1.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 포함)
1.1.2.2. 바티칸
1.1.2.3. 스페인
1.1.2.4. 영국
1.1.2.5. 프랑스
1.1.2.6. 독일어권 국가
1.1.2.7. 러시아
1.1.3. 북아메리카
1.1.3.1. 미국
1.1.3.2. 캐나다
1.1.4. 남아메리카
1.1.4.1. 브라질
1.1.4.2. 아르헨티나
1.1.5. 오세아니아
1.1.5.1. 호주
1.1.6. 국제기구
1.1.6.1. 유엔
1.2. 픽션
2. 王師
왕의 스승이 되는 승려.
나라를 대표하는 승관직은 앞서 신라의 국통(國統)이 있었다.[1] 국통을 역임한 혜량, 자장율사 등은 왕의 고문을 맡았고 신라 말까지 존속했다. 고려 태조인 왕건에 의해 왕사 제도가 만들어졌으며, 조선 건국 초기인 태조 이성계까지 유지되었다. 고려의 경우 정치 이념에 불교의 영향력이 컸고 고려의 백성 대부분이 불교를 신봉했으므로 정권과 백성의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불교의 고승을 왕사로 임명했던 것. 조선 초기에도 고려의 국가 체계가 아직 남아있었고 건국 세력 중 무학대사 등 불교계의 인물도 있었으며, 왕 및 왕족 중에서도 불교 신자가 상당수 있었으므로 왕사 직책이 임명되었다. 물론 이후에는 세종대의 신미처럼 이름 있는 승려도 왕사라는 호칭을 사용할수는 없었으며, 숭유억불의 일환으로 불교계를 탄압하면서 왕사 제도도 자연히 폐지되었다.
2.1. 목록
- 연도는 음력을 기준으로 함.
3. 王師
천자의 군대
위에 한자어는 원래 이 뜻으로 쓰였다. 이 낱말의 역사는 유구한데 무려 상나라에서 갑골문에 쓰였다. 비슷한 뜻으로 왕려(王旅)와 왕족(王族)이 쓰였는데 모두 왕의 군대란 뜻으로 쓰였다.[4][5] 나중에 진시황에 이르러 황제가 천자의 공식 칭호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천자의 군대는 여전히 왕사라고 불렸다.
王師未報收東郡 城闕秋生畫角哀(왕사미보수동군 성궐추생화각애 ; 왕사가 동군-장안長安-을 수복했다는 소식 아직 없으니, 성궐-남경南京 성도成都-에 가을 기운 생겨 화각 소리 구슬프다.)
두보, 야로(野老)
今我以王師(금아이왕사 ; 이제 나는 왕사로서)
최치원, 토황소격문
이처럼 모두 당송시대에도 황제의 군대를 왕사라고 불렀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황제의 군대를 친왕병(親王兵)이라고 불렀다. 그 친왕이 맞다. 심지어 에도 시대 말엽에도 천황의 군대를 왕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6] 이 낱말의 생명력은 3천년은 가뿐히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황군(皇軍)이란 낱말이 정말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말이란 것이다.[7]王師北定中原日(왕사북정중원일 ; 왕사가 노녘으로 중원을 평정하는 날이 오면)
육유(陸游), 검남시고(劍南詩藁)
4. 삼국시대의 인물들
왕사(삼국지) 문서 참고.
5. 왕사슴벌레의 줄임말
왕사슴벌레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