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시
1. 개요
충청남도 중남부에 위치한 시. 대천해수욕장·무창포해수욕장 등으로 유명한 해양관광도시이다.
1914년에 남포군, 오천군을 통합했으며, 1986년 1월 1일 보령군 대천읍이 대천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으로 보령시로 다시 통합[3]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쪽으론 태안군, 홍성군 서쪽으로는 서해에 접하고 동쪽으로는 청양군, 부여군이 있고 남쪽으로는 서천군과 인접하고 있다.
인구는 수년 전부터 지속적인 감소세에 놓여있으며#, 10만에서 간당간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에 대해 보령시 곳곳에 아파트 단지가 지속적으로 건설 중이며, 2015년에는 한국중부발전 본사가 이전한 후 인구가 반짝 증가하여 인구 쪽은 가망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지만...이후 2016년부터 다시 감소세에 들어서더니 결국 2021년 1월을 기점으로 인구 10만 명이 붕괴되었다.
시청에서 밀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는 '''비바 보령'''(VIVA BORYEONG). 이는 주산면과 주포면에 걸쳐있는 주렴산 만세운동에서 비롯된 것으로[4] , 주렴산 만세운동은 보령 주산면 출신 이철원(李哲源) 선생이 학생 전위대로 독립운동을 하던 중 3.1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결심하고 동지를 모아 3월 15일 간재 장날(주산 5일장)을 기해 거사하기로 계획했으나 기밀이 누설되자, 다음 날인 16일 밤 애국지사들과 주렴산 국수봉에 올라 횃불을 밝히며 태극기를 산 정상에 꽂고 독립선언서에 혈서로 서명한 후 징을 치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고 기록돼있다.
대천해수욕장 등 대천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나마 안다는 사람들 중에도 보성과 보령을 서로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 보성과 헷갈리고 제천과 헷갈리고 대전과 헷갈리고.
2016년 11월 13일 21:54 기준 보령시에 규모 3.5의 지진이 났다. 민원과 신고전화가 폭주하긴 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는 걸로 보인다.
2. 역사
마한 때 만로국이 있었다 여겨지며, 백제 때 결기군(結己郡) 신촌현(新村縣)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결성군(潔城郡) 신읍현(新邑縣)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지금까지 쓰이는 이름 보령현으로 개칭되었다.
본래는 보령, 오천, 남포의 세 고을이었으나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통폐합되어 현재의 보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군청을 주포면 보령리에서 대천면으로 이전하였다. 때문에 보령 출신이나 현지인들은 대천, 오천, 남포를 다른 지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실 남포와 오천 사이 거리가 꽤 멀기도 한데다, 중심지인 대천을 기준으로 대천 이남 사람이 대천 북쪽으로 올라갈 일은 천북에 굴 먹으러 갈 때밖에 없고, 대천 이북 사람이 대천 남쪽으로 내려올 일도 거의 없어서 교류가 굉장히 적다. 그리고 대천 사람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남쪽과 북쪽 모두 갈 일이 없으니 사실상 도시만 같지 서로 얼굴 마주할 일이 거의 없는 셈. 이 외에도 장항선 철도역이 있는 웅천과 청소를 따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웅천-남포간 구분과 청소-오천간 구분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1962년 대천면이 대천읍으로 승격했다. 1970년에는 미산면 성주출장소, 1971년에는 주포면 주교출장소, 1983년에는 오천면 어항출장소가 각각 설치되었다. 한편 삽시도리 가운데 외파수도·내파수도·외도가 서산군(현 태안군)에 흡수되었다.
1986년에는 대천읍이 대천시로 승격, 분리되었다. 1989년에는 미산면 성주출장소가 성주면으로, 주포면 주교출장소가 주교면으로 각각 승격하였다.
1995년 1월 대천시와 보령군이 보령시로 통합하였고, 3월 2일 웅천면은 웅천읍으로 승격되었다.
3. 지리
대부분의 지형이 해변산골이라 산 바로 옆에 바다가 접해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5] 덕분에 보령댐을 지어 호수로 만들었을 정도. 대천천이 동서로 흘러 시내를 남북으로 가른다. 서쪽 해안을 제외하면 주변 산지가 시가지를 안고 있는 모양새다. 북으로는 홍성군, 동으로는 청양군과 부여군, 남으로는 서천군과 붙어있다.
여담이지만 예부터 자연재해가 적어 보령(保寧)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살아보면 자연재해는 적지만 비나 눈(서해안 지역 특성상 특히 눈)이 자주 내리는 편이다. 파도는 꽤 강한 편이라 2008년에는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4. 교통
5. 경제
일제 강점기 때 석면광산으로 유명했던 도시고, 그 당시 석면광산 개발로 인해 석면광산 근처의 오천면과 청소면 일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천식 환자가 유달리 많으시다. 과거 석탄 붐이 불었을 땐 성주면에 있는 탄광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석탄 붐이 사그라든 지금은 수도권에 가깝고 바다에 인접한 위치를 무기 삼아 관광도시로 변모하였다.
어째 일반적으로 보령제약, 보령메디앙스 내지는 보령약국이랑 관련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이 꽤 많은데, 설립자 고향이 보령이라는 것 외에는 관계없다.[6] 그나마 그 때문에 저들 회사의 한자가 똑같긴 하다.
그리고 자동차 덕후라면 약국이고 제약이고 뭐고 '''변속기'''가 제일 먼저 생각날 것이다. 그 악명높은 '''보령미션'''을 바로 한국GM 보령공장에서 만든다. 또한 원자력 발전소와 경쟁할 수 있는 규모[7] 이자 국내 최대의 화력발전소인 보령화력발전소가 보령시 오천면에 자리잡고 있다. 이미 있는 발전소만으로 국내 최대이며, 추가로 발전소를 또 짓는 중인데 2기로 기존 발전소 전체출력을 내는게 가능한 규모라고.
5.1. 금융
6. 관광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가까운 편이라 피서철에 대천해수욕장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인다. 1998년 이후 매년 7월 중순 경에는 보령머드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8] 대천해수욕장 덕에 대천항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편이다. 한화리조트 대천 파로스도 있다.
만 위의 오천항은 작은 규모를 가지긴 하였으나, 키조개 축제로 유명하다. 또 9~11월 꼴뚜기낚시철에는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그 외 웅천읍에는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한 무창포해수욕장이 있다. 또한 이곳의 남부에서 나는 돌 중에서 오석으로 불리는 검은 돌은 최고의 벼루 재료 중 하나로 꼽힌다. 비단 벼루만이 아니라 비석으로도 사용되는 최고급 돌 중 하나다. 덕분에 예전에는 석재 산지로 유명했으나, 최근 들어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대가 끊길 판이라는 듯. 오석 석공이라는 일은 한국에서 하는 일 가운데서도 손에 꼽히는 중노동이다. 또 성주산과 오서산이 계곡으로도 매우 괜찮은 곳이며, 삽시도는 이미 유명한 섬 관광지. 관광자원은 꽤 많이 산재해 있다. 또 폐광을 이용한 석탄 박물관도 위치해 있다. 서해안 관광도시 치고 계곡과 산, 호수 관광지가 있는 특이한 케이스.
조석간만의 차가 매우 커서 물이 빠졌을 때 갯벌밖에 보이지 않는 천수만에서는 수많은 새떼도 목격할 수 있다. 옛날보다 많이 줄긴 했다만 그래도 많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새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천수만 옆 해안길을 지나기가 힘들었을 정도.
이외 문화유적지로는 성주면 성주사지가 유명하다. 성주사지는 신라 말 구산선문 중 하나로 한때는 2000여명의 승려가 머물며 전국 최고의 절로 손꼽히던 곳이었다. 신라 이후에도 대사찰로 존재했지만 조선시대부터 태조 이성계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점점 불교가 쇠퇴하게 되자 같이 쇠락하게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들에 의해 성주사가 모두 불타버리게 된다. 결국 지금은 드넓은 성주사 절터와 그 위에 남은 몇 가지의 유물만이 이곳이 절터임을 알려주고 있다. 대표적 유적인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비석은 대한민국의 국보 제8호이고 옆에 성주사지 5층석탑(보물 제19호), 성주사지 서삼층석탑(보물 제47호), 돌계단, 석등 등이 있다.
7. 문화
현재까지 보령시 영화관의 변천사는 다음과 같다.
이전까지 보령에 영화관이라고는 구 대천역 근처의 명보극장이 유일했다. 그러다가 2012년 8월 4일에 구 역사를 기준으로 명보극장 반대편에 롯데시네마가 개점했다.[9] 규모도 7관/1000석 정도로 크고 더 좋은 품질의 3D 상영[10] 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며, 이후 얼마 동안은 기존의 명보극장과 새로 개점한 롯데시네마의 양대 산맥 체제를 유지하다가, 사람들이 점점 급감하게 되자 2013년 2월 말에 명보극장은 폐업을 하게 된다.'''명보극장 - 롯데시네마&명보극장 - 롯데시네마 - (멸종) - 명보극장 - 명보극장&메가박스 - 메가박스 - (멸종) - 명보극장 - 명보극장&CGV 보령'''
그렇게 롯데시네마가 보령의 유일한 영화관이 되었으나, 롯데시네마는 이후 운영을 하면서 개점 후에 한 번도 3D 영화를 내건 적이 없었다. 관객이 적다 보니 수익성이 떨어져서 그러는 것 같은데, 관객도 얼마나 없었는지 2013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관내 대천고등학교 전교생이 며칠에 걸쳐서 롯데시네마로 영화를 보러 갔었고 1년 후인 2014학년도 수능 이후에도 어김없이 갔다. 이렇게 관내 학생들 나들이 장소로는 잘 활약하는 듯했으나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고질적인 수익성 악화와 각종 소송 분쟁으로 인해 결국 2014년 9월 1일 자로 무기한 영업중단을 선언했다.
3관짜리 명보극장으로도 잘 돌아가던 곳에 괜히 7관짜리 롯데시네마가 들어오는 바람에 수요 분산을 일으켜, 여태까지 잘 지내고 있던 영화관을 폐업시킨 것[11] 도 모자라 결국 자신까지 타산이 안 맞아 망해버린 것이다.
이후 얼마간 보령시민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매회 홍성CGV까지 원정을 가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지만, 2015년 4월 23일에 명보극장이 재개관하면서 다시 보령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폐점한 롯데시네마 자리에 이번에는 메가박스가 들어온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 9월 25일을 기점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2015년 10월 24일 기준으로 정상 영업중이고 무려 럽장판도 상영하였다![12] 당연히 특전도 지급되었다. 반면 명보극장은 언제 문닫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공인중개사 건물이 되었다. 그야말로 소리없이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2017년 11월 25일 보령 메가박스가 폐업하였다. 롯데시네마가 폐점했던 것과 동일한 원인이라고 한다.
2017년 12월 23일 부로 명보시네마가 재개관 했다.
2018년 1월 18일 CGV 보령이 개점했다.
서브컬쳐쪽으로 보자면 뭐라 쓸 것도 없는 불모지이다. 오프라인 쪽으로는 전멸이니 오프라인에서 뭐 해보려고 찾는다면 그냥 인터넷으로 즐기거나 사정이 나은 대전 혹은 서울을 가자.
그나마 적자면 10년도 더 전 이야기지만, 구 대천역과 롯데리아 중간에 위치한 주황색 3층 벽돌집 1층에 만화책 대여점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없어진지 오래라 건물주 할아버지가 자전거 보관용으로 쓰시고 계시다. 하지만 창문에 노란색 테이프로 "만화"라고 쓰여있는 흔적은 아직 남아있다. 명천동쪽 '파x나무'와 보령 메가박스 옆 건물에 '느x나무' 정도가 만화를 빌려볼 수 있는 상태. 지역 내 대표적인 서점이 시내의 한내책방과 시내 외곽의 종로서적이 있었는데, '''종로서적이 폐업을 하였다'''. 한내책방은 라이트노벨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종로서적은 보령시내에서 라이트노벨을 오프라인으로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서점이었다. 다만, 명천동 먹자골목에 있는 정인문고에서 인기 타이틀에 한하여 만화책이나 라이트노벨이 가끔씩 들어온다고 한다. 애초에 오덕시장이 작으니 한내책방조차 1층은 문제집 등으로 채우고 2층은 교양/시험 서적으로 차있다.
또한 모형점이 하나 있는데, 모형점 사장이 건프라를 좋아한다고 한다. 모형점이 학생x학을 말하는것같은데, 90년대 중반 대천초등학교 맞은편에 있었다가 몇 년전 연경 옆으로 이사했다. 또 다른 모형점 가게가 요양병원 옆에 들어올뻔 했으나 무산되고 지금은 다른 가게가 운영하고 있다.
8. 정치
일부 언론에서 언급하는 충남 서해안권 벨트 중 하나로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 중 하나이다. 충남 서해안권 벨트 중에 아산시는 2000년대, 서산시와 당진시는 201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타지역과 격차가 벌어지면서 사실상 떨어져 나간 반면, 보령시는 다른 군 지역과 발전도의 차이가 크지 않아 아직까지 주변부와 정치 성향이 비슷하여 충남의 보수세를 이끄는 지역으로 분류된다. 특히 지역주의 성향이 두드러진 탓에 김종필의 영향력이 큰 곳으로 분류되었다.
다만 충남 서해안권이라 하더라도 지역적인 이슈에 따라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할 때도 있는데, 충남 서해안권의 특징상 상대적으로 몰표 성향이 더 강하게 두드러질 때가 많다. 대표적으로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연합을 이뤄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무려 53.92%를 얻어 김종필과의 연합이 강한 영향을 주었음이 확인되었고,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수도이전 공약을 내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51.75%를 득표해 보령에서 과반수 이상의 표를 주었다. 그러나 이 두 선거를 제외한 나머지 선거에서는 충청권 기반의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이 강세를 보였고 이들이 지리멸렬해진 시기에는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 기존 보수정당이 강세를 보인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 보수성향이 짙게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충청권의 또 다른 맹주였던 김용환의 지역구였고, 자유선진당의 류근찬이 17, 18대 내리 2선을 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김태흠 후보에게 패배하여 낙선하였다. 이 와중에 자유선진당은 선진통일당으로 당 이름을 개명한 뒤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새누리당과 합당하였는데, 전 국회의원 류근찬과 전 보령시장 이시우[13] 는 이에 반발하여 선진통일당을 탈당하여 민주통합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열린 민선 6기 보령시장 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나온 김동일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한 현직 보령시장 이시우 후보를 누르고 보령시장이 되었다.
자유선진당의 세가 약화되고 박근혜가 전면에 나선 2012년부터는 보수성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제18대 대통령 선거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전부 새누리당이 이겼을뿐만 아니라 적게는 45%에서 많게는 60% 이상까지 새누리당의 후보가 보령에서 득표했을 만큼, 양강 체제가 구축된 시기에는 새누리당이 막강한 세력을 확보했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보수세가 크게 약화되어 보령시 전반적으로 집권 여당에 대한 강한 비토여론이 조성되었지만, 보수세가 강했던 지역이라 국정농단 및 탄핵사태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승부의 예측이 매우 어려운 곳으로 꼽혔다. 5월 9일에 투표를 마감하고 나온 결론은 더불어민주당 및 문재인의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이전에 민주당이 승리한 두 대선에서는 충청권 기반 정당과의 연합, 충청권에 큰 혜택을 주는 공약 덕분에 기존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다수 투표를 했던 것이지만, 이번 선거에는 그 어떤 연합도 없었을 뿐더러 충청권에 이슈를 줄만한 공약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결과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문재인 후보는 관내투표에서는 졌다. 관외를 제외한 사전투표+당일투표 합산만 살펴보면 문재인 31.61%, 홍준표 33.22%, 안철수 25.10%를 기록해 홍준표 후보가 승리했으나, 관외투표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45% 이상의 표가 몰리면서 간발의 차로 결과를 뒤집었다. 도농간의 민심 격차가 크게 드러났는데, 문재인 후보는 대천시내 5개동 중 대천5동을 제외한 4개동에서 승리를 가져갔다. 대천5동의 경우 대천해수욕장을 낀 외곽지역으로 사실상 농촌 지역이었음을 감안하면, '''시내는 문재인, 농어촌은 홍준표'''라는 구도가 나타났다. 옛 보령군 10개면 중 과반이 넘는 6개면에서는 안철수에 밀려 3위를 차지했다. 홍준표 후보는 모든 읍면 지역과 대천5동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천안, 아산, 공주, 논산, 서산, 당진에서는 40% 이상 나온 지역이 없었거나 많아야 한두곳 정도였던 반면에, 보령에서는 40% 이상 지역이 네 곳이나 나왔고, 홍준표가 이긴 곳은 전부 30%를 가볍게 넘었다. 심지어 문재인이 이긴 대천1,2동에서도 30%를 넘겨 5% 차이의 접전 양상을 띄었지만, 이들 지역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가 70% 가까이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득표율이 크게 하락했다.
대선 이듬해 열린 제7회 지방선거 결과도 치열한 접전 양상이 펼쳐졌다. 물론 시장직은 김동일 시장이 재선을 성공했으나, 시의회는 6:6 비율로 나왔다. 또한, 시의회 정당 득표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11.1%차이로 1등을 했으며, 시의회 지역구 선거에서는 인구에 따라서 몇 등이 당선되는 게 결정하는데 만약에 모든 선거구가 동일하게 2등이나 3등으로 당선한다는 가정하에 따져본다면 더불어 민주당이 제1당이 되었을 것이다. 도의원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이 되었고, 충남도지사 결과는 더민주 양승조 후보가 53.44%를, 한국당 이인제 후보가 43.99%를 기록했다. 결과를 보면 아무리 민심이 바뀌었다고 해도 기존의 보수세가 남아있고, 김동일 시장의 개인기 때문인지 자유한국당이 많은 악재에도 그나마 살아남은 편이지만[14] 전에 비해서는 많은 변화가 온 것이 사실이다.
9. 하위 행정구역
보령시/행정 문서로.
10. 사건사고
11. 기타
관광, 산업단지, 발전소 등으로 외부인 출입이 잦은 지역 특성상인지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 때인 6월 3일에 확진자가 1명 발생하였다. 국내 1차 확산지이기도 했던 평택시 소재 병원에 병문안을 갔고, 이후 LNG 터미널 공사를 위해 보령으로 들어왔다가 발병하였다고 한다. 출처 이 때문에 한때 충남 도내에서 가장 많은 자가 격리자가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출처. 자가격리자가 잠수를 타고 시내를 활보하는 바람에 경찰이 찾으러 나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출처.
다행스럽게도 이후에는 별 일이 없었으며, 6월 29일을 기해 시에서는 메르스 종식을 선언했다. 따라서 한때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던 제14회 보령머드 임해하프마라톤과 제18회 보령머드축제는 예정대로 개최되었다. 출처.
KBS 2TV 드라마 사모곡과 SBS 드라마 만강에서 작품의 배경으로 나온다. 주교면, 주포면 등이 중심지. 임충 작가의 창작인지, 아니면 원래 보령 지역에 전해져 오는 민간 설화를 각색한 것인지는 불명.
12. 출신 인물
- [15]
- 권두현 - 前 경기도 행정2부지사[16]
- 김광식
- 김광제
- 김종배(언론인)
- 김태호 - PD(대천 시내)
- 남희석 - 개그맨, 보령시 웅천읍이 고향이다, 그의 딸 이름도 이 지명을 따서 보령이다. 웅천역 근방엔 남희석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목욕탕이 유명하다. 하지만 이제 주인이 바뀌었다.[17]
- 박태현(1886)
- 이대형 - 야구선수, 실제 자란 건 광주지만 출신은 보령이다.
- 이문구 - 작가, '관촌수필'과 '우리동네' 연작으로 유명하다.
- 이선희 - 가수, 주산면 출신.
- 이지송 - 기업인, 前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 박훈(법조인)
- 류근찬 - 前 기자, 앵커. 現 정치인.
- 김태흠 - 現 보령시·서천군 제19~21대 국회의원.
- 이에리사 - 前 탁구선수, 국회의원
- 안소미 - 개그우먼, 대천면 출신.
- 윤복희 - 가수
- 이기묵 - 前 서울/충남지방경찰청장, 경찰위원회 상임위원
- 이영옥 - 배우
- 이원욱 - 제19~21대 국회의원[18]
- 박장순 - 레슬링 선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74kg급 금메달리스트
- 고영주 - 기업인, 방송문화진흥회(MBC의 대주주) 이사장
- 권영민#s-3 - 교수, 문학평론가
- 김용환(기업인)
- 김용환(1932) - 국회의원
- 김국환 - 가수
- 김현집 - 군인
- 이정섭 - 前 환경부 차관
- 이재선 - 정치인
- 김준혁 - 프로게이머#
- 구논회 - 학원인, 국회의원
- 김양제 - 前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 충남지방경찰청장
- 김영선 - 국회의원
- 고현수 - 군인, 前 제1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 김각영 - 법조인. 김대중 정부 말기에 제32대 검찰총장으로 재직
- 김동일 - 現 보령시장
- 김삼화 - 제20대 국회의원
- 김용환 - 경제관료, 정치인
- 김의재 - 공무원, 정치인
- 김창석 - 법조인. 前 대법관
- 김효재 - 언론인, 정치인, 前 청와대 정무수석
- 박현성 - 무술인 및 지도자, 복서
- 백용호 - 교육자 출신 관료
- 신준희 - 언론인 출신 정치인
- 오영교 - 정치인
- 윤영선 - 前 관세청장
- 이근영 - 기업인
- 이시우 - 정치인, 前 보령시장
- 이원장 - 군인, 정치인
- 이태복 - 정치인
- 이팔호 - 경찰 공무원. 10대 경찰청장
- 정일영 - 前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제21대 국회의원[19]
- 정형희
- 조성진(기업인)
- 진영광
- 최교진
- 최병욱
- 츄정 - 아프리카TV BJ
[1]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2] 2020년 12월 기준[3] 여담으로 대천시 쪽이 더 인구가 많고, '''대천해수욕장'''에, 주요 문화시설도 거진 대천에 몰려 있음에도 보령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졌는데, 이는 주민 투표로 결정된 사항이다. 대천이라는 이름에 내 천(川) 자가 들어가서 수해 등에 불길하게 여겨져서 그랬다고. 실제로 지역 하천인 "대천천"이 어르신들 사시는 구시가지 근처를 흘러가는데 예전엔 이따금씩 범람했다고 한다.[4] 그래서 그 이전에 자주 쓰이던 구호는 '''만세'''보령이었다. '만세운동의 보령'이라는 의미와 '만 세대가 지나도록 평안한 고을(보령이라는 한자의 의미)'이라는 의미 두 가지를 중의적으로 표현한 말.[5] 우리 나라가 워낙 녹지가 풍부한 산악지형 국가다 보니 산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보령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볼수 있는 외지인에게도 익숙한 모습이다. 즉 보령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바닷가 동네의 표본 중 한곳[6] 보령제약 설립자는 김승호.[7] 설비용량이 5.3GW 수준.[괄호] A B 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8] 대천해수욕장 중심가의 길이름을 영어명인 '머드'로라고 지정할 정도로 이 축제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9] 사실 건물은 몇 년 전에 이미 완공되었지만 이때까지 계속 빈 건물로 방치됐었다.[10] 3D는 명보극장에서도 가능했지만 그곳은 연식이 꽤 된 곳이라 아무래도 품질이 좋지 않았다. 가봤던 사람들 말로는 자막만 3D라는 평이 있을 정도[11] 단 명보극장 주인은 꽤나 자산가여서 그냥 '너네 혼자 잘해봐라!'하며 내쳤다고 봐야 한다.[12] 주말 한정 상영. 10주차까지 상영하였다.[13] 사실 정치 입문은 평화민주당에서 하였다.[14] 심지어는 자유한국당에서 충청남도의 시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기초단체장이다.[15] 실제 노홍철의 고향은 서울특별시이다. 잘 알려져 있는 충남 서천군 기산면 두북리 산 63-1번지는 노홍철의 아버지의 고향이다. 즉, 노홍철의 본적.[16] 9급공무원으로 시작하여 1급공무원인 부지사 자리까지 올랐다.[17] 1990년대 후반에 방영했던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에서도 남희석이 데이트 코스로서 고향에 있는 아버지의 목욕탕을 찾기도 했다.[18] 지역구 : 경기도 화성시 을[19] 지역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