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학살
1. 개요
전시에 포로들을 학살하는 행위.
이를 표현하는 숙어로 Take no prisoners. 혹은 줄여서 No prisoners. Leave no survivors라는 표현도 있다. 해전에서는 No Quarter라고 표현한다. 말그대로 포로를 수용할 선실[1] 은 없으니 다 죽이라는 뜻. 비슷한 의미로 “자비는 필요없다”(no mercy)도 있다.
하도 많이 쓰인 표현이라 그런지 Take no prisoner는 영어 숙어로써 일반적인 의미인 '포로는 필요없다' 라는 의미뿐 아니라 '타협하지 않다', '단호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포로는 필요 없다'는 '포로 학살'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건 전투 끝에 포로들을 잡아놓고 보니 여러 문제가 겹쳐서 결국 포로를 죽이게 되는 상황이고, 전자로 표현하면 '''문자 그대로 전멸할 때까지''' 항복하려는 병사들을 '''전투'''중으로 강제해서 항복 자체를 받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 행위라고 보면 된다.
2. 현대 이전의 개념
고대부터 근대까지 전쟁마다 상당히 많이 자행되었다. ''''수만 년의 인류 역사에서 "포로를 죽인다는 건 잔인한 행위다!"라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은 불과 수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성문법으로 포로를 사람답게 대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약이 처음 나온 것이 1864년이며, 현재의 인권 개념이 담긴 협약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1949년에 나온 4차 협약인데, 물론 현대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 하다.[2] 대인배의 전형이자 비 기독교인임에도 당시 중세 유럽인들에게도 인정 받았던[3] 살라딘도 리처드 1세와의 교섭이 실패하자 기독교 포로들을 학살한 적이 있고 리처드 1세도 마찬가지 였다. 양측은 상대방을 적대하면서도 이걸 명분으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중세 이후부터 고위 포로들은 "돈을 받고 돌려보내주면 이득이잖아?"라는 개념이 자리잡히며 풀리는 경우가 많았고, 용병들의 경우에도 "너! 우리 편이 돼라!"며 살려주어 역으로 고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전쟁터에서 붙잡힌 대다수의 포로들은 그러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포로는 승자의 소유물이라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이세환: 어떤 역사학자들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도 해요. (리처드와 십자군이) 2,700명에 달하는 포로들을 먹여 살려야 했잖아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급이 조금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몇천명의 포로를 먹여 살린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거든요?
허준: 그렇지만 그래도 존경받는 리처드 왕께서 밤 하나 나눠주기 아쉬워서...
임용한: 포로를 안 죽여야 한다는 거는, 20세기 전쟁 때에 간신히 말로 나왔어요. 말로. 우리가 독소전쟁도 다루고 제2차 세계 대전 때도 말했지만, 2차 대전 때도 기사도가 지켜진 전쟁이 몇개 없어요.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전쟁 포로를 죽이면 범죄야.", "도시를 폭격하거나 방화를 저지르면 범죄야."라고 말한 지 불과 5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살고 있는 거에요.'''
이세환: 지금 (인권이라는) 이런 개념이 나온 지가 50여 년밖에 안 됐어요.
임용한: 아니, 중세라서가 아니고, 지금도 그렇다니까요. 지금도 쿠르드족에게 가스 뿌리고, 아프가니스탄에 독가스 뿌리고, 지금도 그런 짓을 해요. 안 하는 나라가 적어요. 지금도.
임용한 박사가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현대의 관점에서 중세를 바라보지 마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것만 보고 과거 포로 학살이 마냥 정당했다 하는건 굉장히 짧은 생각이다. 당장 기원전 인물인 항우는 신안대학살로 20만명의 포로를 죽여 민심을 잃고 결국 초한전쟁에서 패배했다. 항우보다 더 과거의 인물인 백기는 진나라 시대엔 위인으로 추앙받고 제사도 지냈으나 후대로가면 사람을 많인 죽인 죄로 벌을 받았다는 전설[4] 이 생겼고 결국 명장은 맞으나 위인인 아닌 학살자로 기록되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건 아무리 과거와 현대의 윤리관 다르다고 해도 무력화된 수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도륙하는 행위는 과거의 윤리관의 관점에서도 선을 넘는 행위로 인식됐다는 사실이다. 과거가 현대보단 선의 기준이 굉장히 크고 널널하긴 했어도 그 선을 넘으면 잔인한 행위로 보았고 비판받았다.
2.1. 선서석방
역사적으로는 종종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는데,[5] 포로를 수용할 능력이 없고 후방으로 보낼 수 없는 부대가 포로를 잡자 그냥 무장만 해제시키고 '''석방하는''' 경우도 있었다. 18-19세기 서구권의 전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런 행위를 선서석방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그냥 풀어주는 것은 아니고 "너희를 일단 풀어주긴 하지만, 형식적으로 너희는 여전히 포로다. 따라서 서류상으로 포로교환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너희는 무기를 들면 안 된다. 이렇게 맹세하고 집에 가라"는 것이다.
말만 들으면 다시 쳐들어올지도 모를 적을 놓아준다는게 황당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목숨과 이권이 달려있기에 근대시대라도 이런 관행이 당대 기준에서 생기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 '''당연히 상대방도 신사적으로 여기에 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방식'''으로, 양자가 일정한 룰을 지키며 싸우는 전쟁에서만 가능하다. 예를 들면, 교전중인 양쪽 세력 모두 상대방에 대한 확고한 인적, 자본적 우위를 가지지 못한상태로 장기간의 전쟁에 돌입하여 군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병같이 전문적인 고도의 병사도 아니고 고작해야 징집 잡병수준인 상대방 포로를 먹여줄 만큼의 여유가 없는데 그렇다고 죽이자니 불필요한 희생으로 이미지가 나빠져 아군이 불리해진다는 공감대가 있는 경우 등에 이러한 관행이 생긴 후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한쪽이 풀려나자마자 다시 무기를 들고 싸운다든지, 어느쪽이 포로를 죽여버리며 절멸작전에 돌입한다든지 등으로 신뢰체계가 붕괴해버리면 당연히 중지된다. 18세기 유럽 전쟁이나 나폴레옹 전쟁기에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미국 남북전쟁 초중반기까지도 상당히 자주 있었다. 남북전쟁 당시 선서를 하고 막 풀려난 북군 장교가 조금 뒤에 아군 상급자를 만나서 "적 부대가 어디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저는 여전히 형식상 포로이기 때문에, 포로교환 협정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답할 수가 없습니다."라며 대답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이렇게 감시가 없이도 규율이 준수가 되어야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경우에도 이런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는데 기동전을 하는 등 빠른 진격 중에 잡은 포로를 수용할 수도, 그렇다고 감시병을 붙여서 후방으로 보내기엔 병력이 아깝고, 지휘관이 신사적이면 그냥 보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그냥 마음씨 좋아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고, 나름대로 사정이 허용할 때 가능한 것이다.[6] 다만 아군에 비해 적군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적군이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라 사방 팔방으로 흩어져 더 이상 전투병력으로 기능하기 어려운 경우는 그냥 풀어주는 게 보통이다.
무엇보다 상기했듯 빡돌면 다 쏴 죽이고 손 털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보내주는가 하면, 본능적으로 살인을 꺼리게 되는 인간의 심리와도 관련이 있다. 적이 너무 미워서 어떻게든 사로잡아 죽이고 나면, 처음에는 어느 정도 통쾌하겠지만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되면 종국엔 회의감만이 남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중증 사이코패스나 판단에 냉철해야 할 지휘관이 아닌 이상, 아무리 적이라도 눈 앞에서 똑같은 피를 철철 흘려가며 전우와 다를 바 없이 비참하게 죽는다면 적도 역시 인간이었다는 사실과 결국 피를 최소한으로 흘리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최선임을 너나 할 것 없이 느끼게 된다.[7] 게다가 근현대전에 있어서는 자칫 전쟁범죄 혐의로 징역 또는 사형까지 받을 수 있기에 또 조심하게 된다. 적은 귀신, 짐승에 불과한 존재라고 지독하게 세뇌해서 너 죽고 나 죽자로 나올 수도 있지만 결국엔 상당수 후회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제네바 협약상 포로를 잡은 뒤 무장해제만 하고 방호 장구류와 식량을 지급해 다시 풀어주는 것은 합법이다.
3. 현대의 포로 학살
말 그대로 전투에서 이미 전투능력을 상실한 '''무방비 상태'''의 적군(특히 항복을 하거나, 부상을 입어 죽어가고 있거나)을 포로로 잡지 않고 무자비하게 사살하는 것을 말한다. 문화나 시기에 따라서 포로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시의 독소전쟁과 같은 일부 시대와 지역에서는 이게 당연한 일이었으나, 제네바 조약 이후로는 이게 벌어지면 (그리고 졌다면) 높은 확률로 전쟁범죄자가 되어 처벌받는다. 또한 포로 학살을 하는 쪽은 명예도 긍지도 없는 쓰레기로 취급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나, 예외적으로 상대 측에서 '''먼저 정책적으로 학살을 저지를 경우'''에 일부 병력이 보복을 하는 경우에는 자업자득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그게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특히 항복한다고 백기를 흔들다가 상대방에서 포로를 잡으려고 접근하면 수류탄을 던지거나 갑자기 사격하거나 혹은 접근했을 때 자폭하는 막장행위가 제2차 세계 대전부터 보편화된 다음에는 항복의사를 밝혀도 그걸 믿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다. 덤으로 서로 간의 언어가 엄청나게 달라서 항복한다고 소리질러도 외국어라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죽이는(...) 현실은 시궁창인 경우도 많다. 더 막장인 경우로, 어느 독일군이 항복하려고 "Nein, Nein"(안 돼요, 안 돼요)이라고 하면서 손을 들었는데 미군 병사가 웃으면서 "Ja, Ja"(돼, 돼)라고 하면서 쏴버린 경우도 있다. 이건 알면서도 죽인 거지만.
사실 꼭 무자비한 병사만이 이를 시행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얼빠지고 순진한 병사들도 언제 누가 등 뒤에서 쏘지도 모를 상황해서 눈앞에 있는 적을 향해 우발적으로 쏘는 경우도 많다. 전투 중의 혼란과 공포 때문에 무장한 적이건, 비무장이건, 손을 들어 투항한 의사를 밝혔건 눈 앞에 보이면 일단 쏘고 본다. 이럴 때는 아군 오사도 심심찮게 나온다. 무엇보다도 전쟁이라는 게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기 때문에, 멀쩡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병기가 되는 건 흔한 일이다. 상술된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초반 상륙작전 씬에서 독일군 장교가 항복한다고 양손을 들고 참호 밖으로 몸을 내밀었는데 미군 병사가 교전중이라서 그런 거 확인 할 정황 없이 냅다 쏴버리니까 독일군이 "항복한다니까! 쏘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그리고 포로를 데리고 다닐 수 없으니 그냥 사살하는 사례도 있다. 포로를 데리고 있으면 적어도 후방의 포로 전담조직에게 넘기기 전까지는 감시하는 인원과 독립된 장소가 필요하며, 식량도 챙겨주어야 하고, 부상을 입으면 치료도 해주어야 하는데, 당장 자신의 부대도 상황이 안 좋다면 포로까지 챙길 수 없으니 그냥 포로를 안 잡는 것이다. 적진 한가운데서 비밀작전을 펼치는 특수부대 같이 포로를 잡을 여유도 없고, 적에게 발각되면 끝장인 상황에서는 발견하는 적은 족족 습격해서 죽여버리는 경우가 흔하며, 독소전의 독일군 참전용사 기 사예르의 회고록 '잊힌 병사'에는 본인과 동료들이 고립되어서 백기를 든 소련군 병사들을 사살했던 일도 언급되어 있다. 당시는 독일 패망을 눈앞에 두었다. 그가 속한 부대도 소련군에게 두들겨 맞으며 퇴각 중이었다.
4. 여담
분노와는 별개로 동정심에 기반해 치명상을 입어 가망이 없는 상태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적군을 죽여주는 경우도 가끔씩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안락사 혹은 자비 사살이라고 친다.
동명의 미니어처 게임 잡지도 있다. 이쪽은 제작사 이름부터 Privateer Press.(사략 출판사)
5. 예시
5.1. 실제 사례
아래 소개되는 것들은 현대 관점에서는 패악질이나, '''당시의 관점에서는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지 않는 일들이었던''' 것들이 많음을 명심하자. 학살을 옹호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이,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고대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포로학살을 자주 볼 수 있다.[8] 일단 포로를 먹여주기가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9] 무조건 석방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보다 인도적인 일은 노예로 팔아버리는 것이었고, 중세까지도 이렇게 전쟁포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예가 되는 일이 흔했다.
- 주필산 전투 - 당태종이 고구려에 종군한 말갈병 3,300명을 파묻었다. 당태종 본인은 정관의 치로 유명한 개념있는 군주였고, 고구려인 포로들에 대한 대우 역시 그 당시 관점에선 상당히 개념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10] 유독 말갈인들에 대해서만 이렇게 잔혹하게 처분한 것은 의문. 당과 고구려의 전쟁에서 말갈군들이 고구려인이 아닌데도 참전했기 때문에 주변 민족에 대한 경고 차원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말갈병들이 당 태종의 진영을 침입한 고르고 고른 최정예 무사들이어서 그런 것이라는 말도 있다. 옛날 전쟁에서는 무사들이 없으면 군사 편성이 어려웠기 때문.
- 관도대전 - 조조에 의해 자행된 포로 학살 사건. 사서에 따라 다르지만 조조에게 사로잡힌 포로는 무조건 죄다 조조가 파묻어버렸고 포로로 잡히지 않은 나머지 원소군 7~8만 군사도 이 전후로 조조가 다 죽여 버렸다.[11]
- 십자군 전쟁 당시 대인배로 유명한 리차드 1세와 살라흐 앗 딘 유수프도 상황이 꼬이면 포로들을 종종 학살했다. 특히 살라딘은 성전기사단이나 구호기사단이 잡히면 거의 대부분 처형했는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무장친위대나 소련 정치장교들이 가혹하게 처분받은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 태평천국운동 당시 청군 - 당시 청나라군은 태평천국군이 항복하면 즉시 처형을 기본방침으로 삼았다. 지휘관급이 항복한 경우 능지형에 처했다. 태평천국군도 항복은 곧 죽음이라는 일념하에 끝까지 저항했고, 덕분에 이 전쟁은 14년 이상 지속되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됐다.
- 독소전쟁 - 당시 나치 독일은 소련군 포로들을 잔인하게 대하였다. 독소전 당시 독일에 잡힌 자료에 따라 최대 57%에서[12] 최소 20%까지 달라지는데 이렇게 들쭉날쭉한 이유는 학자마다 서로 증거로 제시하는 자료가 일치되지 않고 제각각이어서다. 일단 대부분의 학자들은 적게 잡아도 25~30%는 된다고 보는 쪽이기는 하다. 다만 이전에 57%는 러시아 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라 신뢰성이 없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57.5%라는 수치는 영국의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이 제시한 수치이다.[13]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 당시 스탈린의 삽질과 독일의 기습으로 제때 후퇴하지 못한 수십~수백만에 달하는 소련군이 포위망에 갇혀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기에 엄청난 숫자의 포로가 발생하였으며 나치의 인종 정책은 포로로 잡힌 이들 중 유대인과 공산당원, 정치장교를 즉결 처형시켰고, 살아남은 포로들도 각종 노역에 투입되어 죽어나갔다. 당연히 이들을 가두는 수용소는 그냥 허허벌판에 가시철조망을 두른 후 수용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들에게 물자와 의약품 또한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포로들은 물품 부족과 질병으로 떼거지로 죽어나갔다. 부가적인 문제로는 독일군은 갑자기 늘어난 포로들에게 지급할 식량이나 의약품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줄 생각도 없었으니 별 의미는 없다. 그런데 정작 스탈린은 포로로 잡힌 이들을 배신자라고 불렀으며 이들의 가족들까지도 연좌제로 굴라그로 보냈다.[14] 이렇게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 소련군 병사들은 이대로 굶어 죽든가, 전쟁이 끝나고 굴라그로 끌려가든가, 아니면 독일군에게 붙어서 당장 목숨을 구하든가를 택해야 하는 눈물 겨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소련군 포로들의 모습은 기 사예르 독일 국방군 상병의 수기인 잊혀진 병사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당사자인 포로들은 열심히 싸워놓고도 조국으로부터 배신자라고 불리니 정말 분통이 터질 노릇.
>소련군 포로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4명이 하루에 잡곡 한 공기를 배급받았으며 어떨 때에는 하루 종일 물만 주었다. 이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 죽은 포로들의 시체들을 뒤졌는데 이것이 발각될 경우엔 즉결 총살되었다...
소련군에게 사로잡힌 추축군 포로들의 운명도 썩 좋지는 못해서 독일군 300만을 포함하여 도합 500만에 달하는 추축군 포로들은 15~36%가량이 사망했으며[15] 그중 SS 포로의 생존율은 더욱 낮았다. 다만 소련측의 경우 초반의 상황이 워낙 열악해서 그런 거고[16] 일단 소련측의 상황이 호전된 이후에 잡힌 포로들의 운명은 썩 좋다고는 못 해도 전쟁 초반에 비해선 그래도 나아졌다. 그나마 국가 단위에서 제네바 협약은 형식적으로나마 지키기는 했으나[17] 복수심에 불타는 상황에서 개개인이 그걸 얼마나 잘 지켰을지? 독소전에 관해선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글랜츠와 안토니 비버의 저서에서도 기술된 내용이다.
소련군에게 사로잡힌 추축군 포로들의 운명도 썩 좋지는 못해서 독일군 300만을 포함하여 도합 500만에 달하는 추축군 포로들은 15~36%가량이 사망했으며[15] 그중 SS 포로의 생존율은 더욱 낮았다. 다만 소련측의 경우 초반의 상황이 워낙 열악해서 그런 거고[16] 일단 소련측의 상황이 호전된 이후에 잡힌 포로들의 운명은 썩 좋다고는 못 해도 전쟁 초반에 비해선 그래도 나아졌다. 그나마 국가 단위에서 제네바 협약은 형식적으로나마 지키기는 했으나[17] 복수심에 불타는 상황에서 개개인이 그걸 얼마나 잘 지켰을지? 독소전에 관해선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글랜츠와 안토니 비버의 저서에서도 기술된 내용이다.
- 말메디 학살 -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아르덴 대공세 중 말메디에서 독일 제1SS기갑사단의 파이퍼 전투단이 투항해오는 미군을 학살한 사건. 몇곳에서 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여기에 대해서 포로가 도주하기에 우발적으로 죽였으며 이는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18] 이 또한 악성독빠들이 독일군의 전쟁범죄를 은폐하려는 거짓주장이다. 말메디 학살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이때 독일군은 가만히 서있는 포로들을 특별한 이유 없이 기관총 사격으로 죽여버리고 웃으면서 시체를 짓이기거나 확인사살까지 하는 악랄한 짓을 저질렀는데 이는 어떻게 하든 쉴드를 칠 수 없는 악랄한 전쟁 범죄이다. 당연히 이 학살의 범인들은 전후 재판을 통해 사형 등의 적절한 처벌을 받았다. 다만 나중에 이걸 갖고 미군이 독일군 포로를 똑같이 대우해도 상관없다는 명령을 일시적으로 내린 게 문제가 되기는 했다. 그냥 전쟁범죄자들만 잡아다 처벌하면 그만인 사안이었기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 제42보병사단은 포로로 잡은 제17기갑사단 무장친위대 병사 200명을 총살했다. 유해는 1976년 뉘른베르크에서 발견되었다. 모두 하나같이 근거리에서 총을 맞고 죽어있었다고. 친위대에 대한 증오가 종전까지 지속되었다는 증거.
- 다하우 학살 - 다하우 강제수용소가 해방될 당시 수용소를 지키고 있던 SS 경비병들은 미군에게 항복했으나 수용소의 참상을 보고 분노한 미군들에 의해 학살당했다. 아예 경비병들을 해방된 수용자들에게 던져줘서 복수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쟁범죄가 맞으나 자업자득이라는 평이라 동정을 받고, 병사들 또한 형식적인 조사만 받고 처벌받지 않았다.
- 태평양 전쟁 - 2차 세계대전에서 콰이강의 다리에 나온 것은 엄청나게 관대한 수준이고 언브로큰같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포로수용소를 경험해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생지옥이었다. 당장 국내에도 발간된 언브로큰 책을 읽다보면 아예 민족멸살을 하는 절멸수용소만 아니지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거의 판박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전후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연합군 포로의 사망률은 27% 수준이지만 중국군 포로의 사망률은 56% 정도이며 이를 고려하면 전체 사망률은 40% 정도로 추산된다. 중국 측에서는 70~80% 정도가 사망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실여부는 불명.
- 난징 대학살 - 일본황군의 가장 큰 전쟁범죄 중 하나로 2000년대 들어 당사자인 중국과 대만[19] 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재조사 및 영상화가 이뤄지고 있다.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이미 오송 전투 에서부터 독일식 무장을 갖춘 근대화된 중국군[20] 에게 일본군이 큰 피해를 입었고 원한이 커져 당시 수도인 난징까지 대본영 명령도 씹으면서 점령했고 3만명 당 17명 정도의 헌병이 있었을 정도로 군기율이 떨어져 총, 칼, 수류탄, 생매장 등 온갖 방법으로 중국군 포로들이 학살당했다. 물론 단순 원한보다는 일본군 운송 시스템이 전근대 적 이라 보급이 부족해 포로들을 먹일 식량도 없었고 포로는 원래부터 인간취급 안하던 일본군 풍습으로 사령부 부터가 방조하다 못해 주도적으로 포로학살을 하게 끔 해 당시 사령관인 마쓰이 이와네가 전후 전범재판 에서 교수형 당했다.[21]
- 서울대병원 학살사건 - 이 경우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서울대병원을 접수한 뒤, 병원의 군인 환자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스위스 용병 - 포로를 생포하지 않는 전멸전을 선호했다. 적들은 그들의 무자비함에 혀를 내둘렀으며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 신안대학살 - 항우가 이미 귀순한 포로 20만 명을 야밤에 습격해 죽이고 파묻어 버렸다. 항우의 대표적 오점. 기원전 207년 당시에도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참고로 위만의 고조선 망명이 기원전 195년이다.(...) 그 옛날에도 도덕적 질책을 받은 것은 물론 라이벌 유방에게 좋은 프로파간다가 되었다.
- 아쟁쿠르 전투 - 영국군의 승리가 아직 확실시되기 이전 시점에, 프랑스군이 후방의 수송대를 공격한 걸 알게 된 영국의 왕 헨리 5세는 포로로 잡은 프랑스군 중 몸값을 낼 능력이 되는 고위귀족을 제외한 포로들을 학살하게 했다. 배후가 습격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포로 감시로 병력을 빼놓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지, 헨리 5세가 특별히 잔인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귀족인 영국의 기사들이 기사도 때문에 그 명령을 내키지 않아하고 머뭇거리자, 그들을 프랑스군의 잔당을 상대하게 하고 평민 병사들에게 직접 학살하게 했다. 평민 병사들은 귀족인 기사들에게서 금니 등 약탈물을 챙길 수 있고 귀족인 기사들을 평민 병사인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는 쾌감 때문에 신나게(?)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을 포함해 영국군이 약탈을 저지르고 다니자 부르고뉴파가 아닌 아르마냑파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지역에 반영감정이 생겼고 이후 프랑스군도 영국군을 물리치고 포로를 잡았을 경우 몸값을 낼 능력이 없는 포로를 똑같이 학살하는 경우도 생겼다. 잔 다르크가 영국군을 물리쳐서 승리했을 때 프랑스군이 포로를 학살하는 그런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승전의 기쁨도 잊은 채 죽거나 부상당한 영국군 포로를 직접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위해 위로해주고 기도하기도 했다.
- 장평대전 - 조괄에 의해 참패한 조나라 40만 군대를 진나라 백기의 군대가 사로잡은 후 참수하고 파묻어버렸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봐도 손꼽히는 포로 학살 사건. 다만 이 경우는 포로를 노예로 파는 관습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저격수 - 저격수들의 경우 적군들의 증오심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포로로 잡힌 즉시 그 자리에서 그냥 쏴죽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아니 그냥 쏴 죽이면 오히려 자비로운 수준이었고 끔찍한 보복을 가한 뒤에 죽여버리는 일도 빈번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온화한 성품으로 유명한 미군의 오마 브래들리조차 저격수 포로들에 대해 '보통보다 더욱 거칠게' 대하는 것을 용납할 정도였으니 일선의 병사들이 어떻게 대했을지는 불보듯 뻔했다. 게다가 그나마 상식이 통하던 서부전선에서도 이랬는데 동부전선, 즉 지옥도가 펼쳐졌던 독소전쟁 전선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특히 여군 저격수를 다수 운용했던 소련의 경우에는...저격수 항목에도 있지만 독일군에게 살해된 러시아 여성 저격수의 시신을 조사하던 중 시신의 몸속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보니 야삽부터 우의까지 "독일군 보병 1명이 쓸 군장 한 세트"가 처박혀 있었다고 한다(...) 잡히면 그야말로 죽기 전까지 그야말로 지옥을 체험하게 된다.
- 다에쉬 - 사기진작 및 선전을 위하여 잡은 포로들을 총살하거나 참수하거나, 화형시키거나 익사시키는 등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처형하면서 영상이나 사진을 트위터 등에 올리며 악명을 떨쳤다. 현재는 이라크 정규군이 대놓고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영상을 업로드하는 등 잡히는 족족 반대로 당하고 있다.
- 태봉과 신라의 관계 - 태봉국의 궁예는 신라를 멸도로 칭하고 귀순해오는 자를 모조리 죽였다고 한다.
- 한국전쟁 당시의 조선인민군 - 일사천리로 내려가야 하는데 포로는 걸리적거리기 때문에 포로 중 상당수는 포박한 뒤 뒷통수에 총알 하나씩 박아넣고 버렸다. 대표적으로 서울대의대 학살사건, 후퇴 중에 벌어진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 등이 있다.
- 5.18 민주화운동 - 항쟁 막바지에 벌어진 광주 재진입작전 당시 전남도청을 공격, 재점령한 육군특수전사령부는 도청 청사 내부에서 손을 들고 항복하는 시민군을 즉결처분했다.
5.2. 가공의 사례
창작물에서는 적이나 아군의 무자비함을 강조하는데 쓰이는 일종의 클리셰로도 볼 수 있다. 제네바 조약 이후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에는 지휘관이 직접적으로 죽이라는 명령은 하지않고 항복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끝까지 저항해서 '''어쩔 수 없이''' 모두 사살할 수 밖에 없었다는 방식으로 에둘러 표현하곤 가버린다. 사람 대 사람이 아닌 사람 대 인격이 없는 외계인이나 괴물과의 싸움을 그린 작품에서도 보이는데 연구용으로 의계인 몇 마리 생포하거나, 번식용 숙주로 인간 몇 명 잡아가는 것 외에는 서로를 절멸시키기위해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
- 기동전사 건담 제08MS소대 - 무선대기 임무 중이었던 미켈 니노리치 하사와 엘레도어 마시스 하사가 정찰임무를 핑계로 근무지 이탈해서 근처 마을에 술마시러 갔는데, 문제는 그 마을이 지온군 점령 하라서 술집에 대기하고 있단 지온군에게 잡힌다. 애초에 한두 명도 이니고 난장판이 된 술집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걸 보면 한두 명이 탈영한게 아닌듯.... 하여 자신의 소속을 보병연대로 속이고 일단 귀순하려는 척 하나 지온군은 그냥 죽이려고 한다.[22] 그리고 그후 보초를 때려눕히고 탈출.
- 걸카페건 - '배달원[23] '이 인류에게 반역하고[24] 외계기술을 빌리기 위해 수많은 인간들을 뇌만 남겨 강제로 사이보그화시켜 마약성 약물까지 써가면서 조종하자, Rose 08소대가 저지하여 조종당한 뇌들[25] 을 포로로 잡아 보존 장치에 보관하였다[26] . 당시 작전을 지휘한 점장은 포로이긴 하지만 엄연히 배달원에게 이용당한 전쟁의 피해자들인 뇌들에게서 사이보그화로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잃어버려 괴롭다고 호소하는 목소리[27] 를 들었고 그들을 전부 살려서 Rose로 회수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고뇌하다가 평생 사이보그로 살고 싶지 않다면 살고 싶지 않아도 되고 그럼에도 사이보그로 살고 싶다면 살아도 된다고 제안하였고 이에 단 한 명의 뇌를 제외한 모든 뇌들이 스스로의 신체기능을 유지하는 보존장치를 꺼뜨려 자살을 택했다. 그 후 점장은 인간의 몸을 잃고 기계의 몸으로 강제로 평생동안 살아가야 하는 포로들의 고통만 생각한 나머지 자유의지만 강조하고 전부 살려보내지 못했으니 사실상 포로를 학살했다는 PTSD에 걸려 마약성 진통제에 극단적으로 의지할 뻔하다 주노 에몬스에게 저지당한다. 이 경우 결정권자가 포로를 인도적으로 대했고 직접적으로 학살하지 않았지만, 결정권자 본인이 자기 자신의 행위를 포로 학살이라고 규정하여 죄책감을 심하게 느꼈으므로, 포로 학살에 분류되었다. 정황상 점장이 의도한 것은 포로들을 무사히 회수하여 인간의 몸을 되찾게 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으며 포로들을 안심시키고자 한 말이 보존장치를 끄고 집단자살하게 만드는 최악의 결정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 단테스 인페르노 - 단테가 십자군 원정 때 식량이 떨어져가자 잡아놓은 이슬람인 포로들을 학살했다. 친구였던 프란체스코에게 우린 이교도들을 죽이러 온 거라고!라고 말한 걸 볼때 종교적 이유로 포장된 광기임이 확실하다. 결국 그 죄를 친구인 프란체스코가 대신 다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 - 초반부 오마하 부분에서 미군이 독이 오를 대로 올라 그냥 안 쏘고 불싸질러 죽이고, 위의 신안대학살틱한 장면도 보이며, 미군 병사가 손들고 항복한다고 부르짖는 독일군을 총으로 쏴버린 뒤 동료병사가 "뭐라고 그러던 거야?"라고 묻자 "'나 밥먹으려고 손씻었어요!'라는데?"라고 답해준다. 하지만 영화 외적으로 밝혀진 바로는, 사실 그들은 독일인이 아니라 체코에서 끌려온 병사들이었고 대사도 체코어로 "우리는 독일인이 아닙니다! 누구를 죽인 적도 없습니다! 살려주세요!"였다. 스필버그 감독은 전쟁의 비인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집어넣은 장면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장면에 따로 자막이 없었기에 체코어도 독일어도 모르는 대부분의 관객은 그냥 독일군이 독일어로 말하다 죽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이것도 감독이 의도한 바라고 볼 수도 있다.
- 스래쉬 메탈 밴드인 메가데스의 노래 Take No Prisoners는 전쟁과 인명 살상을 일삼는 정부가 반성이나 죄책감도 없이 국민의 의무를 들먹이는 것을 냉소적으로 비웃는 내용이다.
- 스타쉽 트루퍼스, 영원한 전쟁을 비롯한 인류와 소통이 불가능한 외계 종족의 전쟁을 다룬 대부분의 SF물 - 외계 종족과는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하고 전쟁 자체의 목적이 상대 종족의 절멸을 목적으로 하기에 포로를 잡는 일이 없이 모두 죽이는 게 일반적이다. 단 예외적으로 상대 종족의 신체적 특성을 연구하기 위한 생체실험용으로 몇 명을 생포하는 경우도 있다. 단 두 종족 간의 소통이 가능해서 외교관계가 수립되어있고 양쪽 다 문명화된 종족인 경우, 특히 은하계에 여러 종족들이 공존하는 경우에는 인간들끼리의 전쟁처럼 포로를 잡는 경우가 많다.
-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 마지막 임무에 제라드 듀갈의 UED 원정대가 차 행성의 정거장에서 사라 케리건의 군단에 패배하고 항복을 선언하자 케리건은 "우린 포로를 잡지 않는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나 보도록 하지."라면서 먼저 보내준다. 이후 쫓아온 저그 군단이 함대를 거의 다 박살냈다.(이때 듀갈은 저그가 도착하기 몇분 전에 자신의 기함 알렉산더 안에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28]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롤렌토의 초필살기. 와이어를 지면으로 날려보내 거기에 걸리면 그대로 상대를 낚아채 목을 매달아버린다. 무적시간도 많고, 하단 판정이라 밥줄 중에 밥줄.
-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제1차 세계 대전 중, 후퇴하던 오스만 제국의 패잔병들이 아랍인 마을을 학살한 것을 보고, 열받은 로렌스가 휘하의 아랍인 부대를 이끌고 "포로는 필요없다! 포로는 필요없다!" 하면서 오스만 제국군을 향해 돌격하여 모조리 죽이는 장면이 있다. 전쟁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엇갈리는 씁쓸한 장면. 가공의 사례로 분류되있기는 하지만, 아랍독립전쟁 당시 빈번하게 있었던 일이다. 당시 피지배 민족들의 민족주의적 각성을 극도로 경계하던 오스만 제국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에 대해 가차없이 학살을 가했는데, 대표적인 대상이 아르메니아인과 아랍 부족들이다. 당연히 호전성에서는 전혀 뒤지지 않는 아랍 부족들도 오스만 병사들을 사로잡을 경우 똑같이 보복했다.
- 위 워 솔저스 - 초반부,베트남군이 프랑스군을 매복 공격해 궤멸한 뒤, 부하가 부상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질문하자 베트남군 지휘관이 '모두 사살하라. 그래야 놈들도 더 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 엠퍼러: 배틀 포 듄 - 등장 유닛인 사다우카 근위대의 이동대사(집단이 아닌 개인) 중 "포로는 필요없다(Take no prisoner)."가 있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알터랙 계곡: 얼라이언스 사령관인 반다르 스톰파이크는 간혹 아군 전체에 버프를 주며 "포로는 필요없다! 우리 땅에서 이교도들을 몰아내라!"라는 대사를 한다.
- 정도전(드라마) - 10화에서 왜장 아기발도가 첫 등장하면서 "포로는 필요없다. 움직이는 것은 모조리 베어라. 돌격!"이라는 대사를 한다.
- 집결호(영화) - 초반 구지디의 9중대가 포로는 필요없다고 장교를 쏴죽이자 관심부대로 찍히게 된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 - 소련군 캠페인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잔인하게 학살한다. 왜 욕을 쳐먹는가 하면, 반대 경우는 은근슬쩍 생략했다. 이 때문에 제작진들은 나치라고 엄청 욕먹고 있다. 독일군 캠페인은 없지만 전작의 독일 전차 군단 캠페인에서의 독일군들은 나치와 무관하게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선 의로운 청년들처럼 묘사된 것과 비교된다.
-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 - Vendetta 미션 시작에 스탈린그라드 광장에서 독일군이 무방비 상태의 소련군을 학살하는 장면이 있지만 후에 독일군이 역관광당하기 시작하자 빅토르 레즈노프가 앞장서서 똑같이 되갚아 준다. 이때 한 행동에 따라서 마지막 미션 시작 전에 체르노프의 일기장의 문구가 바뀐다. 또한 축출 미션 초반에서 포로가 된 소련군이 '우리 동무들이 와서 널 죽일 것이다.' 라고 말하자. 독일군이 '네 동무들은 여기 없어' 라며 사살한다. 이때 주인공이 독일군을 죽이면 소련군 포로는 살고 독일군을 가만히 냅두면 죽는다. 또 철의 포위망 미션에서도 독일군 포로들을 사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 콜 오브 듀티의 다른 시리즈의 미군들은 포로를 사살할 경우 포로 사살은 금지라며 게임오버된다.
-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시리즈 - 멀티플레이에서 매치 시작 시 스페츠나츠는 "포로는 필요없다, 동무들!(Take no prisoners, Comrade)"이라고 한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 - 멀티플레이 용병측의 시작 전 대사중 "And remember. No prisoners"가 존재한다.
-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 극중에서 HYDRA의 멤버인 럼로가 '하이드라는 포로를 살려 두지 않는다. 그게 룰이지' 라고 팔콘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 토탈워 시리즈 - 전통적으로 모랄빵이 터져서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면 전혀 저항을 받지 않고 죽이게 된다. 예외적으로 미디블 2:토탈워에서만 포로를 잡고 다른 작품에서는 그냥 죽인다. 이 현상을 한 양덕은 "제길, 포로 시스템 정말 재밌었는데, 엠토의 유럽인들은 포로를 안 잡고 쇼토2의 뻐킹 사무라이놈들은 포로로 안 잡혀..."라고 표현했다.
- 폴아웃 시리즈 - 시대가 세기말인지라 포로를 잡는 곳은 진짜 몇 없다. 대부분은 포로를 잡은 세력의 지도자 마음대로이고(라고 해도 주로 끔살), 그나마 인권이 발달한 뉴 캘리포니아 공화국은 포로 처분에 대한 상세한 법규가 있으며, 이쪽은 포로에 대한 학대를 금지한다. 애초에 여기 세계관의 전쟁전 미국 자체가 포로 대우에 대한 개념이 없어 포로학대, 학살, 생체실험이 빈번하게 일어났기에 NCR의 행동은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이다.
- 폴아웃3/Operation Anchorage - 미군이 포로로 잡았던 중공군을 대놓고 현장사살하고 있다. 그리고 최종보스인 징웨이 장군 역시 전투 시작 전에 미군 포로 하나를 참살하고 전투를 시작한다. 단순 교육용 시뮬레이션에서 이런 모습까지 집어넣는 것을 보면 실제 당시 세계가 얼마나 캐막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런데 사실 징웨이 장군이 처형한 포로 말고도 미션 도중 중공군에게 잡힌 다른 미군 포로들도 있는데 이들은 구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중공군은 미군 포로를 안 죽이고 있(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는 뜻. 물론 상기한 징웨이 장군은 최종보스라서 일부러 포로 처형 장면을 넣은 듯 하지만
- 폴아웃: 뉴 베가스 - NCR과 군단 외에는 '포로'란 개념이 없다. 엔클레이브는 생체실험용으로 황무지인들을 잡아가며, 포로에 대한 폭력과 고문을 금하는 NCR과 달리 카이사르의 군단은 포로를 도구로 이용한다. 노예라도 된다면 다행. 잔인한 고문은 기본 옵션이고, 이후 대부분은 십자가에 매달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며, 혹은 즉석 사살 후 군견의 먹이 내지 식용(!)으로 애용한다. 그리고 극히 일부는 추첨 시스템을 도입한 복불복 살인쇼나 본진의 아레나에서 경기용 검투사로 굴려지는 등 유희용으로 소모된다. 가끔은 포로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병신으로 만든 다음 포로 자체를 살아있는 부비트랩으로 만드는 악랄함도 선보인다. 반대로 군단은 적의 포로가 될 바에는 자살을 강요하며 적에게 항복했다가 살아돌아온 경우에는 끔찍한 꼴을 당하는 모양이다.
- 플래닛사이드 2 - 신흥 연합국 홍보 영상에서 포로따위 필요 없다고 말한다. 적대 세력인 테란 공화국과 바누 자치국의 사상이 신흥 연합국과 너무 달라 그렇게 말한 것일수도 있지만, 이 세계관은 포로로 잡혀봤자 자살 등으로 사망하면 워프게이트에서 부활한다. 즉, 문자 그대로 포로따위 잡아봐야 의미가 없어서 그렇게 말한 모양.
- 허트 로커 - 초중반부 자동차에 설치된 폭탄을 해체하는 장면에서 폭탄해체를 방해한 저항세력 저격수가 잡힌다. 포획과정에서 부상을 입어 기절했으며 출혈이 있는 상태였는데, 포획된 저격수를 살펴보고 있는 의무병에게 지휘관은 "죽겠군?"이라고 묻는다. 그러나 기절한 저격수를 살펴본 의무병이 15분 정도만 안정을 취하면 의식이 깨어날 거라고 하자. 지휘관은 재차 "죽겠군"이라고 이야기한다. 지휘관의 언사에 벙찐 의무병의 표정과 무표정으로 긍정하는 다른 병사들을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29]
- 헤일로 시리즈 - 코버넌트는 인류와의 전투에서 보통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포로를 잘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 300에서 테르모필레 첫 전투에서 "포로는 필요없다!" "자비는 필요없다!"를 외치고 푸쉬로 쓸고 지나간뒤 부상병을 하나씩 찔러서 확인사살한다.
- 대부분의 RTS 게임 - 지휘관이 전투를 포기하고 항복하거나 부대가 괴멸되어 전투의지를 상실한 경우에도 맵상에 잔존하는 적 유닛은 무조건 사살된다. 심지어는 AI상 중립유닛으로 취급되어 공격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이들 패잔병들이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강제어택으로 모조리 죽여버리곤 한다! 재밌는 점은 게임 플레이상으로는 전혀 포로를 잡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게임의 미션들에서는 적에게 붙잡힌 포로를 구출하는 미션이 있다는 것. 당연하지만 시스템상으로 포로를 구현하면 게임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 보병 유닛들 한정으로 전황이 불리해지면 알아서 항복하고 그런 포로들을 모으면 맵이 밝혀지는 시스템을 구현하려 한 흔적이 더미 데이터로 있으나 너무 게임이 복잡해져서 발매 시에는 삭제되었다. 다만 예외가 있긴한데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확장팩에서 독일군 미션중 하나에서 영국군 코만도가 종종 두손 번쩍들고 항복하면서 아군 진영으로 걸어온다. 그리고 이 포로들은 사살이 안된다.
6. 관련 문서
[1] Quarter, 사람이 생활할 공간으로서의 자리란 의미로 쓰인다. 숙소란 개념도 포함한다. 군대에서 들어보는 BOQ나 BEQ의 Q도 이 단어의 약자이다. '차지할 자리'란 뜻에서 벌이에서 자기가 받을 수 있는 '몫'을 말할 때도 쓰인다.[2] 과거 미군이 운용한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잔혹한 테러범 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집어 넣었는데 처우가 너무나 부실해 논란이 되었다.)나 아프리카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군벌세력 간의 내전만 봐도 알 수 있다.[3]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하는 몇 안 되는 비 기독교인이 살라딘이다.[4] 당나라 때 어느 소가 벼락에 맞아 죽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소에 '백기'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기가 사람을 많이 죽인 죄로 소로 태어난 것도 모자라 벼락을 맞아 다시 죽은 것으로 여겼다는 전설이다.[5] 일단 같은 말이지만 의미가 전혀 다르다. 엄연히 붙잡힌 포로들을 풀어주는 것이지 포로 취급도 안 하고 일어난 게 아니다.[6] 2차대전 초반, 독일군에 의해 대공황에 빠진 프랑스군의 소부대들이 쾌속진격하는 독일군 전차부대앞에 나타나 항복하겠다고 하자 지휘관이 소리쳤다고 한다. "총을 버려라! 그리고 어디로든 가버렷!"[7] 참고로 인간은 인간끼리만 싸운다고 할 수 있다. 아직 터미네이터 세계가 도래하지 않은 이상 해수구제사업이든 뭐든 전쟁이라 하기엔 일방적인 인간의 승리다.[8] 현재도 제네바 협약을 제대로 지키는 나라는 선진국뿐이다.[9] 생산력이 현대시대보다 훨신 떨어지기 때문에 아군의 보급도 굉장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10] 구당서, 신당서에 부하장병들에게 포로로 잡힌 고구려인들을 금전으로 속환하여 풀어주었다거나, 고향으로 돌려보내줬다거나 하는 기록들이 많다. 물론 당태종이 단순히 선량하다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유화책을 펼쳐서 고구려인들의 전쟁 수행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11] 다만 포로로 잡히지 않은 병사들을 죽인건 조조가 전투에서 승리-추격전을 하는 과정에서 죽인거라 포로 학살과는 거리가 멀다.[12] 극히 소수의 견해로 60% 이상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이쪽은 그리 신빙성이 없으므로 논외로 한다. 저 수치는 전후에 소련의 수용소까지 갔다가 살아남은 수치가 아니냐는 추측 또한 존재할 정도이다.[13] 다만 니얼 퍼거슨이 포로사망률 자체를 좀 높게 잡는 편이기는 하다. 아래에 서술된 독일군 포로의 사망률도 최대치에 가깝게 잡고 있다.[14] 스탈린의 아들도 포로가 되었는데 예외는 없었다고 한다.[15] 14.7%는 Richard Overy가 <독재자들>에서 제시한 수치이며 Ferguson은 에서 35.8%의 사망률을 제시했다. [16] 초반에 산업지역과 곡창지대를 다 털려서 식량조차 자급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스탈린도 조국을 침략한 자들에게 식량을 줄 생각도 없기는 했지만 진짜로 실천하지는 않았다.[17] 이것도 소련 학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미국, 영국, 독일 학자들이 의심이 가는 내용이라고 반박했다-출처: Eastern Front of World War II 1939-1945 해당 서적은 국내 미출간.[18] 물론 도주하는 포로에게 무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19] 당시 중국의 국체는 중화민국[20] 이라곤 하지만 그건 개인 무장과 군장, 훈련 정도 얘기고 일본군 보다 강하긴 했지만 포병, 기갑, 해,공군 은 거의 없던거나 다름없어서 교환비가 압도적으로 손해였고 난징 전투만 해도 8만명 정도가 포로로 잡혀 학살당했다.[21]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당시 마쓰이 이와네는 와병으로 잠깐 전장을 떠나있었고 방계황족인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가 사령관 대리로 난징에서의 전투 및 학살을 주도했다. 역으로 마츠이가 추후 학살에 대해 듣자 황족인 아사카는 못건드려도 동조한 자기 부관들은 몹시 책망했고 후에 일본에 돌아와서도 난징 방향으로 사당을 세워 추모했다 한다. 아사카노미야는 후에있는 신적강하 를 제외하곤 별다른 불이익 없이 90대가 되는 나이까지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22] 애초에 지온군은 당시 아프사라스만 수리하고 떠날 생각이었기에 포로같은 거추장스러운 것까지 데려갈 여유가 있을리가 없었다. 애초에 아픈 민간인한테도 총질하는데 포로따위 필요할 리가.[23] 공식적으로 이름을 알아내는 데에 실패하여 배달원이라 불린다.[24] 정확히는 외계기술로 인류 전체를 통 속의 뇌로 사이보그화시키면 자기 자신은 인류에게 반역한 것이 아니라 공헌한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신념으로 행동한 듯하지만 도덕과 윤리를 저버린 점에서 이미 매드 사이언티스트 악당이다. 게다가 자기 계획이 실패하자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말하면서 지금까지 훔쳐온 정보를 스파이짓으로서 제공하겠다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25] 이미 인간으로서의 몸이 완전히 기계로 대체되어 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26] 당시 지무유는 08소대의 신병이라 전장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심한 구역질을 보였다.[27] 뇌파를 해석한 것.[28] 사실 케리건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지구 집정 연합에서 보낸 원정대였고, 이들이 지구로 돌아가면 당연히 이보다 더 강력하고 규모가 큰 원정대를 또 보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변함이 없으리라는 뜻의 말을 군단의 심장에서도 한다. 다만 지구 원정대와 달리 살려줘도 심각한 위협은 되지 않는 테란 포로들은 살려주기도 했다.[29] 이후에 장면은 다시 EOD팀으로 넘어가고 한 발의 총성만 울려퍼진다. 참고로 사살하는 게 확인됐으면 100% 형사 처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