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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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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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의 중북부 내지 동북부에 위치한 자치구. 북쪽은 금정구, 남쪽은 연제구, 서쪽으로 북구와 부산진구, 동쪽으로 해운대구에 접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부산 도심이었던 지금의 중구 일대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었기 때문에 동래온천에서 출발해 서면을 지나 부산 시내를 잇는 부산전차의 종착역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몇 개의 극장이 있었는데, 90년대 무렵 마지막 남은 극장까지 모두 닫았다. 하지만 30대 이상은 아직도 이곳을 극장가라고 부른다. 더 나이드신 분은 옛날 시장터라고도 한다.
구 마스코트 '''뚜기'''는 지역 탈춤인 동래야류[5] 에 나오는 말뚝이 탈에서 유래. 나름대로 흉칙하나 귀엽게 생겼으니 . 여캐인 뚜미는... 꾸역꾸역 만들어 낸 듯 하다(...). 각시탈스럽지도 않고...
여담으로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인 박수호의 아이디가 '''동래구(DongRaeGu)'''이며 HOT6 GSL Season 1 경기 도중 트위터 실시간 트랜드에 동래구가 올라갔다. 거기에 동래구를 세계에 널리 알린 업적에 힘입어 동래구 사이버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짐작가겠지만 박수호 선수의 고향이 바로 여기이다.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본관인 동래가 바로 이곳이다.[6]
2. 역사
부산에서 가장 오래 된 지역이며 근현대 이전 부산의 역사 대부분은 동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동래 및 부산광역시/역사 항목 참조.
동래라는 지명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신라 이전 삼국시대 초기에는 거칠산국이 있었으며 신라에 정복된 뒤 신라 경덕왕 17년인 757년에 거칠산군을 동래군으로 개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경덕왕이 같이 지은 동평(지명), 기장과 함께 부산에서 가장 오래 된 지명이다. 신라~고려 때 동래군의 중심지는 원래 지금의 수영구쯤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하여 고려 시대에 지금의 동래구의 위치로 옮겼다.
조선 시대에 들어 외국과의 창구로서 발전하고 동래 관할인 부산 포구의 중요성이 늘어나면서 동래부(東萊府)로 승격되었으며, 동래부의 영역은 오늘날의 강서구, 기장군, 북구 대부분의 지역을 제외한 부산광역시 전역에 해당된다. 부산은 동래의 하위 지명이었다(동래부 부산진, 동래부 부산포 등). 오늘날에는 반대로 부산이 상위 지명(부산광역시)이 되고 동래가 그 하위 지명(동래구)이 되었다.
1895년 23부제가 잠시 시행되었을 때, 동래부는 현재의 행정구역 상으로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양산시, 경주시, 거제시, 포항시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1년 뒤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되자 동래부는 이전의 동래부로 돌아간다.
1910년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동래부가 부산부로 개칭되었다가, 1914년 부산부에서 개항장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을 동래군으로 분리시켰다. 이때의 동래군은 현재의 강서구, 중구, 영도구, 동구, 서구[7] 를 제외한 부산광역시 전역을 포함했다. 이후 동래군은 지속적으로 부산부에 편입되고, 1942년에는 현재의 동래구 지역이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해방 이후 1963년 동래군은 현재의 기장군의 영역으로 축소되었다가 1973년 양산군에 흡수되어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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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부산부에 흡수된 동래 지역에는 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57년 부산시에 구(區)제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6개 구 중 하나로 동래구가 설치되었다. 당시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8] 당시의 동래구는 현재의 금정구 남부, 수영구, 해운대구, 연제구를 포괄한 꽤 넓은 구였다. 1963년에는 부산직할시가 출범하면서 동래군 북면을 편입하였다. 이때의 동래구는 지금에 비해서 상당히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 수영강 동부 지역이 해운대구, 1988년 북부 2/3가량이 금정구로 분구하고 1995년 남아있던 면적 중 남부의 절반 가량이 연제구로 분구하여 면적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현재 남아있는 동래구 관할 지역은 조선시대 동래부의 읍치 지역을 포함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래구를 동서로 지나가는 부산 도시철도 4호선 공사 도중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의 유물이 발굴되어 공사가 지연되기도 하였다.
'부산'(광역시)과 '동래'(구)의 관계는 광주광역시의 광산구(특히 송정), 대구광역시의 칠곡, 창원시의 마산, 인천광역시의 부평[9] , 서울특별시의 영등포구(과거) 등과도 비슷하나, 이 지역들이 아직도 광주, 창원, 인천 본시가지와 자기 동네를 구분하는 의식이 상당히 뚜렷하게 남아 있는 반면, 동래 사람들은 '부산'과 '동래'를 구분하는 의식이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동화되어 거의 없어졌고 부산광역시의 일부로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서울의 영등포구도 과거에는 서울과 구분하려는 독자의식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냥 서울의 일부로 여긴다.[10]
3. 지리
금정산 자락이 내려오는 극서부를 제외하고는 부산광역시 치고는 평평한 편이고, '''온천천'''이 구의 북쪽에서 내려와서 동쪽으로 흘러나간다. 구가 전체적으로 오래 된 거주지이다보니[11] 전체적으로 오래된 느낌이 나는 듯. 유명한 '''동래온천'''이 있다.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 때문에 조선시대 일본 사신들이 자주 찾았고, 일제시기에 이 지역을 근처로 일본인 중심의 온천촌이 형성되었고, '''온천장'''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아직도 동래 온천 일대는 봄만 되면 벚꽃이 만개한다. 원래 조선 사람들은 주로 동래 시장(옛 동헌 근처) 근처에 모여 살았으므로, 일제시기 두 지역 주민들 간에 알력도 있었다.
4. 금융
5. 교통
제1만덕터널과 제2만덕터널이 있어 북구 방향으로 빠르게 갈 수 있다. 주요 교차로는 미남교차로(미남역), 내성교차로(동래역 인근), 동래교차로(수안역), 안락교차로(충렬사역 인근)가 있다. 만덕터널~동래고등학교 구간은 1년 365일 내내 차가 막히는 구간이다. 심각하게 차가 많이 막힐 때에는 안락동 뜨란채아파트까지 막힐 때도 있다.
5.1. 관내 철도역 목록
교통이 우수한 편이다. 특히 도시철도는 부산시 구군들 중에서 가장 많은 노선을 보유중이다.[12] 부산 도시철도 1호선[13] , 부산 도시철도 3호선[14] , 그리고 부산 도시철도 4호선[15] 이 지나간다. 또한 동해선 동래역[16] , 안락역, 부산원동역이 위치해 있다.
5.2. 생활 환경
관할구역은 명륜동, 온천동, 사직동, 안락동, 명장동, 수안동, 칠산동 및 낙민동이며, 총 13개의 동으로 이루어져있다.
전반적으로 오래된 주거지역으로 상업지역이 연제구로 공업지역, 새로 개발된 지역이 금정구로 모두 분리해나간 상황. 사직동~온천동 구역이 그나마 번화가라고 할 만한 정도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부산의 대표 상권 중 하나인 부산대상권이 빠르게 무너지면서 반대로 동래역 주변 상권이 빠르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동래구는 40~50대 부부+학생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이 많은 편이며 비교적 조용하고 치안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주거에 적합하며 학교도 많다. 동래구가 부자들이 많이 사는 부촌은 아니지만 명륜동은 부촌으로 입지가 다져져있다.[17] 주민들 대부분이 평범한 가정들이라 타 지역에 비해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비슷하고, 동별로 생활수준 격차가 많이 나는 동부산권인 해운대구, 남구 등에 비해 동래구는 동별로 생활수준 격차가 거의 없어서 주민 간 위화감도 적은 편이다. 전통적으로 오래된 주거지역이다 보니 단독주택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지만 재개발로 인해 점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는 추세.
부산복천박물관, 사직구장 ,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 우장춘기념관 , 충렬사관리경역내기념관 , 동래고분 등이 있다.
5.2.1. 명륜동
명륜동은 2009년까지만 해도 주택들이 많은 조용한 동네였으나 2010년 초중반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지금은 중상층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동래구에서 가장 부촌인 동이다. 명륜아이파크1차/2차, 명륜쌍용예가, 명륜sk뷰, 센트럴파크하이츠, 힐스테이트, 명륜자이 등 아파트 단지들과 명륜1번가를 주축으로 메가마트와 대동병원 주변에 동래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 술 먹기 좋은 곳,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 많이 쓰인다. 공공기관으로는 부산지방기상청, 동래우체국 , 동래보건소 등이 있으며, 문화시설로는 근처에 롯데백화점 동래점, 롯데마트 동래점, 농심호텔 및 허심청, 그리고 동래 홈플러스(homeplus-express) 및 CGV영화관이 있다. 지금은 명륜동이 동래구의 중심지나 다름없다.
5.2.2. 온천동
온천동은 동래온천 및 금강공원을 비롯해 동래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여러 유형 및 무형 문화재들이 있어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며, 숙박업 및 요식업들이 발전되어있다.
과거 온천동의 동래 럭키아파트는 부유층이 많이 사는 아파트였으며, 지금도 역시 부산에서 중산층이 많이 살고있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금강로26번길 일대 주변에는 대형 단독주택들이 꽤나 있으며, SK허브스카이, 벽산 아스타, 동래효성해링턴플레이스, 반도보라스카이뷰, 동래 SK뷰, 동래럭키, 동래대우아파트, 명륜자이아파트 등의 아파트 단지들도 많은 편이다. 온천동은 문화, 교통 및 지리적으로도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농심허심청 및 호텔,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가 있다. 허심청은 오래 된 온천 목욕탕이지만 부산에서 가장 큰 목욕탕이므로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외에 녹천탕, 가족 목욕탕 등 목욕탕 천국 동네이다.
5.2.3. 사직동
사직동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사직야구장이 있다는 점이다. 저녁 시간에 야구를 보고, 근처에 술집을 가는게 이 곳의 필수 코스이다. 이 곳 역시 아파트가 많은 편이다. 주변에는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법원, 부산교육대학교, 홈플러스 매장이 있다.
5.2.4. 수안동
수안동은 동래구의 중앙에 위치한다. 조선 시대 동래 읍치의 동헌이 있던 곳이다. 서쪽과 남쪽은 온천천이 있다. 수안동의 가장 큰 특징은 동래 부동헌과, 동래 경찰서, 동래구청 등 주요 행정기간들이 밀집되어 있고, 동래 시장도 있다. 특히 동래 시장과 수안 인정시장은 같이 붙어 있어 노인층에게 인기가 많은 곳 중 하나다. 또한 노인층을 위한 술집과 콜라텍이 많이 밀접되어 있다. 동래 구청 직원들도 이 곳에서 식사를 많이 한다. 수안동, 낙민동 주민 인구수가 많지 않아 두 곳 모두 합혀서 수민동 주민센터에서 같이 관리한다. 인근에는 수안역(4호선)이 있다. 동래역(1호선)은 걸어서 10분정도 걸린다.
5.2.5. 낙민동
동해선 광역전철이 개통되면서 동래역이 생겼다. 온천천을 거점으로 연제구의 연산동과 이웃하는 법정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낙민동은 동래구의 다른 동보다 규모나 면적에서 비교적 작은 편이다. 온천천 유역의 주거지역으로 동해선 동래역과, 부산 도시철도 4호선 낙민역이 소재하고 있다. 1960년대에 미나리깡밭이나 연밭이었던 일대를 매립하여,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단지[18] 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2020년 1월 현재 복천동의 旧 동래구청 철거 및 신축이 결정되면서, 동해선 동래역 인근에 임시 구청을 지어서 사용중이다. 작은 동네임에도 작은 공장들이 제법 많이 있다. 온천천 공원이 있어서 가볍게 운동하기에도 좋은 동네다.
5.2.6. 안락동
안락동은 동래구와 해운대구의 경계선상에 있는 법정동이라고 할수있다. 동해선 광역전철이 지나가며 해운대구로 이어지는 충렬대로의 원동IC교차로 및 안락교차로를 중심으로 교통의 중축을 이루고 있다. 롯데캐슬 애브뉴, 안락경동리인, 안락SK아파트, 안락뜨란채1차/2차, 안락현대, 안락SK쁘띠매종, 센텀 더블루하이츠 등의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위치해 있다. 동해선이 개통되면서 안락역이 개통되었으며 동해선이 개통된 덕분에 해운대구 좌동과 기장 일대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의료기관인 부산항운병원, 부산봉생병원, 미래병원이 밀집되어 있다. 한국전력공사 동래지사가 위치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 부산에서 순절한 호국 선열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렬사(忠烈祠)가 있다. 근처에 반여홈플러스가 있으며, 안락로 132 하하빌딩 주축으로 상권 및 요식업들이 발달되어 있다. 기존엔 버스 및 차량통행이 많고 철도음영지역이라 교통이 매우 혼잡한 상습정체 구간이었으나. 4호선 충렬사역, 동해선 안락역, 부산광역시 BRT가 차례로 개통한 이후로 대중교통 이용이 획기적으로 편리해졌다. 2020년 부산원동역이 개통됨으로써 교통이 한결 편리해졌다.
5.2.7. 명장동
금정구 서동, 해운대구 반송동, 기장군을 갈때 거쳐가는 곳이다. 아파트 재개발을 많이 하지 않아, 옆동네 안락동과 많이 비교되는 곳이다. 대부분 70~9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주택과 아파트가 많다. 명장동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명장역(4호선) 지하철이 지나가며, 주변에 학교가 많다. 명장초등학교, 명동초등학교, 명서초등학교, 서명초등학교, 안락초등학교, 학산여자중학교, 학산여자고등학교, 혜화여자중학교, 혜화여자고등학교, 충렬중학교, 충렬고등학교, 금정고등학교, 용인고등학교, 부산맹학교, 그외에 명장동에 속하지는 않지만 근처에 있는 충렬초등학교, 혜화초등학교, 반안초등학교, 반안중학교, 부산골프고등학교까지 학교가 많아 아이들 키우기에는 좋을 수 있지만 학교 수에 비해 아이들 수가 매우 적다. 1990년대~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구가 많을 때에는 PC방과 문구점, 오락실, 분식점, 학원 등 아이들의 위한 장소가 많았으나 점점 인구 감소로 인해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 되어 버렸다... 명동초등학교의 경우 시골 학교처럼 한 반에 10명조차 안 되는 인원이 입학하기도 하였으며, 부산 폐교 위기의 학교 1위로 꼽히기도 했다. 그래도 학교가 많기 때문에 등학교하는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명장동의 심각한 문제는 워낙 노인층이 많아 돈 소비률이 낮아 병원, 음식점, 휴대폰 가게 등이 생기면 얼마 못 버티고 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있는 음식점이나 가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장사를 해오던 사람들 뿐이다. 명장시장에도 노인들만 갈 뿐, 젊은층은 안락동에 가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최근에 금정고등학교 근처에 e편한세상 대림아파트 재개발을 시작으로 충렬중학교 근처가 재개발이 될 예정이니 한줄기 희망을 보이고 있다.
5.2.8. 복천동
칠산동과 함께 행정동인 복산동의 법정동을 이룬다. 동래구청과 동래교육청이 있는 동래구의 중심지이며, 가야문화가 발생한 지역임을 알려주는 복천동고분군과 박물관이 있다. 주변 초등학교에서 복천 박물관은 필수 견학 코스이다. 원래는 재개발 지역으로 꼽혔으나 땅 속에 유물들이 많이 묻혀서 재개발이 되지 못해 옛날 모습 그대로인 채로 방치되어 있다. 따라서 대부분 오래된 주택과 빌라만 있으며, 주로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5.2.9. 칠산동
이 곳 역시 복산동과 비슷한 곳이다. 동쪽으로는 명장동, 서쪽으로는 수안동이 위치한다. 매우 작은 동네이기 때문에 칠산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주요 기관은 동래고등학교, 동래읍성지, 법륜사가 있다.
6. 관광명소
- 사직 야구장 - 롯데 자이언츠 홈구장.
- 부산사직체육관 - 부산 kt 소닉붐 홈구장.
- 충렬사 - 임진왜란 때 왜구와 맞서 싸운 선조들을 기리기 위한 시설로 안락동에 위치해 있다. 송상현 장군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곳으로. 안락서원 자리에 지어졌다. 영내에 동래읍성의 장대 중 하나인 동장대와 군관청이 있다. 군관청은 원래 수안경찰서 인근에 있던 것을 이전해온 것이다.
- 복천동 고분군 - 특히 인근에 조성된 복천박물관에서 가야시대의 유물을 직접 볼 수가 있다. 입장료가 공짜로 바뀌어 부담없이 들어갈 수가 있으니 가야, 그 중에서 금관가야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볼 것을 추천.
- 동래온천(온천장)
- 금강공원
-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 동래읍성 - 일제강점기 때 철거된 성곽과 장대(북장대, 서장대)가 복원되어 있다. 성문은 복천동 고분 인근의 북문과 인생문만 복원되어 있다. 대부분 구간은 복천동 일대에 복원되어 있지만 일부 구간은 충렬사 영내에 남아 있다.
-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수안역)
- 동래부동헌 - 조선시대의 광역시 격인 동래도호부의 시청사라고 할 수 있는 관청. 부산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19]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 까지 보건소 같은 공공기관 건물로 사용되어 형태가 많이 변형되었다.
- 동래향교 - 조선시대 고등 교육기관으로 서울 명륜동과 마찬가지로 명륜동에 위치해 있다. 유림들이 매년 봄가을로 공자에게 제사를 지낸다. 동래 향교는 근처에 안락서원도 있어서 조선시대 당시 동래 고을의 교육 중심지였다.
- 온천천
7. 음식
유명한 음식으로 '''동래파전'''이 있다. 일본인들에게 본격적으로 파전을 알린 것이 바로 동래 파전. 비교적 굵은 파를 넣은 두툼한 해물파전을 부친 후 계란을 깨서 뚜껑을 덮어 만든다. 이런 스타일의 파전은 동래가 원조. 지역명주인 산성막걸리[20] 와 함께 먹으면 일품이다.
근데 정작 원조라고 하는 집은 맛은 훌륭하지만 가격과 양이 좀 창렬하다. 초창기에는 시장통의 가판에서 파는 서민적인 음식이었지만 유명세를 타면서 고급화로 전환, 식기와 그릇을 놋으로 된 것을 썼고 그와 동시에 가격도 그에 걸맞게 바뀌었다. 그래서 가격대가 워낙 쎈지라 지역 주민들은 잘 안간다.[21] 금강공원 올라가는 길에도 파전집이 있다. 그 유명한 동래파전과는 스타일이 다르지만 삼대천왕에 나올 정도로 나름 네임드니 참고바람.
8. 교육
1898년 설립된 동래고와 동래중(설립 당시는 동래부학교. 당시는 한 학교였다가 1951년 분리되었다.) 같은 역사가 오래된 학교도 있다. 동래고 외에도 일대에 걸출한 고등학교가 많이 있어서 부산의 전통적인 8학군에 속한다. 사립고등학교들도 문제 사학들이 다른 구로 옮겨가거나 분구되어 모조리 떨어져 나간 상황이라, 다른 지역구의 사립학교들과 비교하면 대부분 학력수준이나 시설이 준수하고 사학비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며, 공립고등학교들도 대체적으로 시설 및 학교 수준이 준수해서 학군 자체는 남구, 해운대구와 함께 부산 내에서 최상위급이라 할 수 있다.[22] 최고 전성기때인 1980~90년대에는 지방 최고의 학군으로 통하는 대구광역시 수성구와도 비교되거나 뛰어넘었을 정도의 위용을 자랑했었다. 1980년대 부산 3대 부자(동일고무벨트 김진재, 동서대학교 장성만, 동성화학 백제갑)중 2명의 자제(김진재 아들 김세연, 장성만 아들 장제국)가 동래구 학군 고등학교에 재학했었을 정도로 1980년대 당시 부산지역 실세들의 자제들이 동래구 학군에 많이 있었다. 심지어 1987년, 1988년에는 학력고사 전체 수석을 2연속이나 동래구 고등학교에서 배출되어서 전국적으로도 지명도를 얻었으며 이때 분양된 복천동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는 동래 학군이 가장 과열되었던 시기에 분양되다보니[23] 전국에서 투기꾼들이 몰려들어서 이슈가 되었을 정도였다. #
반면 대학은 없는데, 원래는 있었으나 금정구, 연제구가 차례차례 분구하면서 이런 안습한 상황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부산대학교(금정구)와 부산교육대학교(연제구)가 떨어져나갔다.
여담이지만 1970년대에 럭키금성그룹 (現 LG그룹)에서 동래구에 사립 공업고등학교를 하나 만들 뻔 했다고 한다.# 지금의 동래 럭키 아파트자리가 과거에 금성사 공장이었는데, 1970년대 후반에 금성사 공장 이전이 추진되면서 그 자리에 사립 공업고등학교를 만들어서 자사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려 구상했으나, 계획 변경으로 그 자리에 사립 공업고등학교 대신에 대단지 아파트인 동래 럭키 아파트를 짓게 되었다고 하며, 사립학교 계획은 부산의 공업고등학교 대신에 진주 연암공업대학으로 실현되었다.
8.1. 관내 각급학교
고등학교
- 금정고등학교 (명장동 432)
- 대명여자고등학교 (명장동 534)
- 동래고등학교 (칠산동 360)
- 동래원예고등학교 (온천동 406)
- 동인고등학교 (사직동 981-90)
-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 (온천동 386-1)
- 부산중앙여자고등학교 (명륜동 661-5)
- 사직고등학교 (사직동 632-8)
- 사직여자고등학교 (사직동 981-1)
- 부산용인고등학교 (명장동 103-1)
- 부산혜화여자고등학교 (명장동 산13)
- 충렬고등학교 (명장동 151-5)
- 학산여자고등학교 (명장동 산85-6)
- 남일중학교 (안락동 165-1)
- 동래중학교 (명륜동 661-10)
- 동신중학교 (명장동 26-1)
- 동해중학교 (명륜동 8-25)
- 부산내성중학교 (온천동 1458-20)
- 사직중학교 (사직동 598-1)
- 사직여자중학교 (사직동 977-5)
- 안락중학교 (안락동 175-9)
- 여명중학교 (사직동 130-1)
- 온천중학교 (온천동 1622)
- 유락여자중학교 (온천동 433-3)
- 충렬중학교 (명장동 149-9)
- 학산여자중학교 (명장동 85-6)
- 혜화여자중학교 (명장동 41-4)
- 교동초등학교 (명륜동 105-1)
- 금강초등학교 (온천동 1263)
- 낙민초등학교 (낙민동 303)
- 내산초등학교 (온천동 700-1)
- 부산내성초등학교 (복천동 72)
- 달북초등학교 (온천동 1608-2)
- 명동초등학교 (명장동 433-2)
- 명륜초등학교 (동래로 91)
- 명서초등학교 (명장동 502-1)
- 명장초등학교 (명장동 273-1)
- 미남초등학교 (온천동 1460-1)
- 사직초등학교 (사직동 592)
- 수안초등학교 (수안동 7-1)
- 안남초등학교 (안락동 175-16)
- 안락초등학교 (명장동 104-5)
- 안민초등학교 (낙민동 85-10)
- 안진초등학교 (안락동 1252)
- 여고초등학교 (사직동 126-1)
- 예원초등학교 (사직동 1018)
- 온천초등학교 (온천동 397-4)
- 충렬초등학교 (안락동 467-1)
- 혜화초등학교 (명장동 산10-1)
- 부산맹학교 (명장동 263-5)
9. 정치
3당 합당 이전에는 통일민주당 등 개혁정당의 세가 있었지만, 3당 합당 이후에는 고령화 등으로 인해 중구, 동구, 서구 다음으로 보수정당의 세가 가장 센 지역이었다. 대표적으로 이 곳에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6선을 지냈을 만큼,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견고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37.65%의 표를 몰아줘 33.03%에 그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4.62% 차이로 근소하게 이겨 3당 합당 이후 29년만에 처음으로 민주당계 정당이 이기게 되었다. 앞으로는 이 지역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이 실정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정당 후보에게 선전하거나 당선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동별로 확인해도 문재인의 선전이 두드러지는데 부산 안에서도 보수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받은 그 동안의 결과와는 달리 동 단위로도 문재인이 이긴 지역이 홍준표보다 많았다. 총 7개 동에서 승리를 가져와 6개 동에서 승리한 홍준표보다 많은 곳에서 이겼다. 이 결과는 동래구에서 갈라진 연제구와도 대략 비슷한데[28] , 동래읍성을 기준으로 동쪽 및 북쪽 지역은 보수성향이, 서쪽 및 남쪽 지역은 진보성향이 강한 것이 드러나 구역별로 정치성향이 달라졌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민주당이 동래구에 기반이 없음에도 전국 평균보다 높은 득표율을 얻은 곳이 나온 것이 주목할 만한 성과였지만 사직동(사직2동 제외), 온천동(온천3동 제외), 복천ㆍ칠산동, 명장동, 안락1동에서는 여전한 보수세로 민주당을 여전히 좋아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졌다.
9.1. 관련 문서
10.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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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명륜동
10.2. 명장1동, 명장2동
10.3. 복산동
10.4. 사직1동, 사직2동, 사직3동
10.5. 수민동
10.6. 안락1동, 안락2동
10.7. 온천1동, 온천2동, 온천3동
11. 기타
- 부산지방기상청이 명륜동에 위치한다.
12. 출신 인물
- 가스파드: 만화가
- 공유: 배우
- 김슬기: 배우
- 김정복: 전 국가보훈처장
- 김진: 배우. 본명은 김경진. 남자 셋 여자 셋의 '안녕맨'으로 유명하다.
- 도남선: 언론인. (주)아시아미디어센터 대표이사. 동래고등학교 81회 졸업생.
- 박수호 :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이다. 실제 아이디도 동래구(...) 다만 동래구라는 발음이 외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아 현재는 약자인 DRG로 사용한다.
- 이승훈: WINNER의 멤버.
- 이학주 : 프로게이머
- 장제원: 제18, 20, 21대 국회의원[29]
- 최용수: 축구인. 출생지는 금정구고 초등학교도 그곳에서 다녔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동래구로 이사가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 한해빈: 걸그룹 구구단의 멤버
- 황금심: 가수
- 박상식(1845~1882): 조선후기 문인.동래부 읍내면 동부 안민리(현 수민동 일대)에서 태어나 동래부의 상급 향리인 부청선생을 지냄. 1880년 김홍집이 이끄는 제2차 수신사에 향서기 직책으로 참여하여, 한 달간 도쿄에 체류 후, 당시 상황을 기록한 사행일기인 동도일사(東渡日史)를 집필한다.
동도일사는 기존의 수신사 관련 기록에는 없는 부분이 상당 부분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큰 기록물이다. 특히 수신사의 일정 및 일본과 청나라의 접촉, 조선과 일본 간의 현안 문제, 조선이 제2차 수신사를 파견한 목적과 일본의 태도가 잘 드러내는 기록물이다. 조선이 파견한 통신사 12차례와 수신사 4차례에 많은 부산 사람들이 일본을 보고 왔는데, 이 부산 사람 중에 사행일기를 쓴 사례는 1763년 통신사 사행일기인 계미수사록과 1880년 수신사 사행일기인 동도일사, 단 두 개뿐이다. 때문에 당시 수신사 연구에 굉장히 중요한 자료이다. .[30]
[1] 9개 법정동, 13개 행정동[2]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3] 부산 지역 구·군 청사 가운데 제일 오래됐다. 동래구 청사는 1963년에 지어졌다. 2000년대 초반 꾸준히 이전 논의가 있었으나 다수의 반대로 무산되고 바로 뒷편에 신관을 짓기로 결정됐다. 2016년 현재 본관과 신관 둘로 나누어 운영 중이며 이로 인해 구청 주변을 둘러싼 담을 허무는 등 구청 일대를 새로 정비했다.[4] 2020년 현재는 더이상 낡은 구청을 감당할 수 없어 현재 자리 그대로 철거 후 신축할 예정이다. 전국의 지자체 청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만큼 보존가치가 있었지만 이전지가 마땅치 않았다. 특히 지역 유지들이 구청은 읍성 안 쪽에 있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옛 읍성 안쪽에는 이렇다할 자리가 없었다. 결국 현 부지에 재건축하기로 결정되었다. 공사 기간 동안에는 동해선 동래역 인근의 낙민동 임시청사를 사용하고 있다.[5] 동래는 조선시대부터 일본과의 교류와 왜관의 존재로 인해서 한량들과 기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풍류가 많이 발전하였다. 동래 학춤이라거나 동래고무라거나 대놓고 동래한량춤이라거나. 그래서 원래는 민간에서 시행하던 탈춤도 동래지역에서는 한량들 위주로 이루어져 의상이 화려하고 여유로운 춤을 보여주는데, 이는 완전히 예능화 된 봉산탈춤 정도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그런 것 치고는 원래 수영야류에서 이어져서 그런지, 한자 표현을 마구 틀리는 경향이 있다.[6] 정확하게는 조선시대 동래부에서 유래되었다. 시조를 모신 사당인 정묘사는 동래구에 없고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다.[7] 이 중 강서구를 제외한 나머지가 바로 1914년 당시의 부산부 영역이다.[8] 즉, 1957년부터 1973년까지는 '부산시 동래구'와 '경상남도 동래군'이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거기에 1957년~1963년 7년간은 동래구와 동래군 둘 다 경상남도 소속.[9] 다만 부평은 역사적으로도 원래는 인천과 별개의 고을이었다.[10] 부산과 동래는 동래도호부라는 같은 고을에 속했지만, 서울(강북)과 영등포는 한성부와 시흥군이라는 제각기 다른 고을이었다.[11]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부산의 중심지였다.[괄호] A B 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2] 2호선과 부산-김해 경전철 빼고는 다 온다.[13] 동래역, 명륜역, 온천장역. 참고로 이 3역은 모두 온천천을 따라 건설되어 있으며 지상역이다.[14] 미남역, 사직역[15] 명장역, 충렬사역, 낙민역, 수안역, 동래역, 미남역[16] 도시철도 동래역과는 한참 떨어져 있으니 주의[17] 7~80년대 까지 온천동만큼은 부산 최고의 부촌 중에 하나에 속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굴지의 유명 기업들 중에서 LG그룹, 태광그룹, 대상그룹, 쿠쿠 같은 동래구를 기반으로 창립 혹은 성장한 기업이 여럿 있다보니 유명 기업을 창립한 이들 혹은 이들 기업의 중역들이 한때 동래구에 거주했던 적도 있었고, 특히 동래 럭키아파트는 전성기 시절에는 정말로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었다. 1980년대에는 부산 3대 부자 중에서 2명이 동래구에 거주했던 적도 있었다.[18] 낙민한일유앤아이, 동래우성아파트, 중앙하이츠2차, 동원로얄듀크, 동래한양아파트 등[19] 동헌 보다 큰 건물로 동래객사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20] 어원인 금정산성은 현재 금정구로 분구되었다.[21] 허영만의 식객에서도 동래파전편 후기에 피자를 즐겨찾는 세태를 보고 한탄하는 글을 남겼다. 허나 서술한 바와 같이 가격도 워낙에 비싼데다 만화에서도 제대로 된 동래파전편 만들기가 무척이나 어렵다고 묘사되었다. 게다가 후기에 삽입된 단칸 만화와 같이 파는 안키우냐고 묻자, 비싼 땅에 파 키워 무엇에 쓰느냐며 욕만 먹는다.[22] 2014학년도 기준 부산지역 일반고 수능성적 TOP20개 학교 중 동래구 소재 고교가 7개를 차지하여 가장 많았다. #[23] 당시 언론에서 비슷한시기에 분양된 대구 수성구의 우방 궁전맨션 아파트와 라이벌 플래그가 섰을 정도였다.[A] A B 법정동 '''수'''안동 + 낙'''민'''동[B] A B 법정동 '''복'''천동 + 칠'''산'''동, 동래읍성 및 동래시장이 있는 전통적 중심지[24] 16대 총선부터 합구되었다.[25] 93.2.27 의원직 사퇴(청와대 비서실장 임명)[26] 93.4.23 재보궐선거[27] 13~14대의 동래구 을은 지금의 연제구에 해당된다.[28] 총 8:5로 문재인이 승리했다. 동래구에서 한곳만 뒤집었다면 동률을 이룰 수 있었다.[29] 지역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30] 출처: '부산선비, 근대 일본을 목격하다 동도일사', 박상식 지음, 부산박물관 옮김, 서해문집 출판,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