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목록/축구
1. 리그
1.1. 대한민국
- 부산 아이파크 - 1996년 ~ 1999년. 사실 부산 아이파크는 몇차례 인수를 거치며 과거가 복잡한데, 그중 대우 로얄즈 시절이 전성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역사상 처음으로 전관왕을 달성한[1]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는 K리그 역대 최강팀 후보로 빠지지 않는다. 2000년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부도가 나서 현대산업개발이 인수한 뒤로는 리그 우승과 거리가 멀어졌다. 결국 2015 시즌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었다가, 세 차례 승강 플레이오프 끝에 2020년에 K리그1로 귀환에 성공하였다.
- 성남 일화 천마 - 1993년~1995년, 2001년~2003년. 리그 3연패를 두번 달성했다. 2011년 FA컵 우승을 차지했으나 2012년 12위를 찍고 2013 시즌 5 라운드만에 꼴찌를 먹었다. 그 이전의 시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며 문선명 총재가 세상을 떠난 뒤로 자금지원도 많이 줄면서 결국 2013년 10월 성남시 시민구단으로 변경했다. 2017시즌 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했지만, 다시 2019년에 K리그1에 귀환에 성공하였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1996년~1999년. 2008년. 특히 1999년 수원은 K리그 역대 최강팀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으며[2] 이 시기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 이끄는 부천 SK와 맞대결은 클래식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은 90년대를 대표하는 명승부로 꼽힌다. 2008년을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과 인연이 없다. AFC 챔피언스리그도 2003년 이후로 마찬가지.
- 울산 현대 - 김정남 감독(2000~2008) 재임중 2002년~2006년. 김호곤 감독(2009~2013) 재임중 2011년~2013년. 김정남 감독 재임중 리그 우승은 2005년 한번 뿐이지만, 자주 바뀌었던 리그 제도 때문에 두드러지진 않을 뿐 매해 우승권에 머무는[3]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했다. 그리고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알샤바브를 6:0으로 대파하면서 울산은 아시아의 깡패라는 별명을 얻었다.[4] 김호곤 감독은 이른바 철퇴축구를 앞세워 무패로 AFC 챔피언스 리그/2012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물론 그렇다고 몰락을 한 건 아니고, 그 후에도 같은 현대가인 전북 현대와 같이 K리그 1,2등을 앞다투는 경우가 많다.
- 제주 유나이티드 - 2010년. 짠돌이 소리를 듣던 구단이 모처럼 공격적인 투자를 하면서 중하위를 전전하던 리그 성적이 2위로 급상승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하면서 우승은 실패했다.
- 포항 스틸러스 -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2005~2009) 재임중 2007년~2009년. 황선홍 감독이 재임한 2011년~2015년. 파리아스 시절 2007년 리그 우승, 2008년 FA컵 우승, 2009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례로 달성했다. 특히 2009년 포항은 트레블에 근접했던 팀으로 K리그 역대 최강팀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다. 황선홍 시절 2012년 FA컵 우승, 2013년 FA컵 K리그 우승 더블을 달성했다. 이후 모기업 재정사정이 악화되면서 팀 투자액이 대폭 줄어 중위권으로 떨어졌다.
- 시민구단들의 리즈시절
- 인천 유나이티드 - 2005년 시민구단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으며[5] , 이로 인해 예산이 오르고 영화 '비상' 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플레이오프와도 2009년을 제외하고는 인연이 없다가 2013년 승강제 도입 후 첫 상위스플릿 진출, 2015년에는 FA컵 준우승을 하였다.
- 경남 FC - 2007년~2012년까지 단 1차례도 8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특히 2007년에는 까보레가 득점왕을 받고 팀 창단 2년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2010년에는 조광래가 사임 전까지 창단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2012년에는 위기가 있었지만 기적적인 8위로 시민구단 첫 상위스플릿 진출을 지었고, 2008년과 2012년에는 FA컵에서 준우승을 하였다. 하지만 2013년~2015년 준표강점기때는 암흑기였다가 2017년 김종부 감독의 부임 후 챌린지 우승으로 인한 승격, 2018년 K리그 1에서 2위를 기록중이며 리즈시절을 되찾았으나, 2019년엔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아이파크에게 패하면서 또 다시 강등되고 말았다.
- 광주 FC - 2014년 챌린지에서 정규리그 4위로 마감 후 플레이오프에서 강원, 안산을 차례로 격파. 그리고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경남을 1차전에서 3:1로 이기고, 2차전에서 1:1로 비기며 3년만에 클래식으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2015년에는 승격팀 첫 잔류확정을 지었다.
- 수원 FC - 2015년 챌린지에서 서울 이랜드와 대구를 차례로 격파하며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1차전에서 1:0, 2차전에서 2:0으로 이기고 비 클래식팀의 첫 승격을 이뤄냈다.
- 성남 FC - 2014년 시민구단 전환 첫 해에 FA컵 우승을 하고, 2015년에는 스플릿 시즌 첫 상위스플릿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2016시즌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었다.
- 대전 시티즌 - 2001년 FA컵에서 우승, 2003년 홈에서 엄청난 승률을 보이며 전성기가 시작되었으나 2004년부터 부진이 거듭되다가 2007년 김호 감독 부임 후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 그 후로 암흑기를 거치다 2013년에 강등되었고 2014년 아드리아노를 필두로 챌린지 우승하면서 클래식에 승격했지만 2015년 여러 잡음으로 다시 강등되었다.
1.2. 독일
-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 1970년대. 현재까지 클럽이 기록한 분데스리가 5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준우승, UEFA컵 2회 우승이 모두 이 시기에 나왔다. 1980년대 이후로는 서서히 팀의 전력이 하락해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두 번의 강등을 경험하기도 했다.
- 1.FC 카이저슬라우테른 - 1950년대, 1997/98 시즌
- 함부르크 SV -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1978년부터 1983년까지 분데스리가 3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우승 1회 및 준우승 1회, UEFA컵 1회 우승 등을 경험했다. 1986/87 시즌 이후부터는 메이저 대회에서 어떠한 컵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분데스리가 모든 시즌에 참가한 유일한 팀[6] 이라는 자존심이 있었으나 13-14시즌 강등위기에 처했다가 살아남았고 14~15시즌도 극적으로 겨우 잔류했다. 15-16시즌도 잔류는 성공했지만 역시 강등권과 3점 정도 승점에서 겨우 성공하면서 중하위권 노릇하다 17-18시즌에 강등됐다.
1.3. 스페인
- 레알 마드리드 CF - 1950년대 저승사자 군단 ~ 1960년대 'ye-ye 마드리드' 시대, 1985/86~1989/90 V5 시절, 2000년대 초반, 챔스 3연속 우승을 달성한 2010년대.
- 레알 클럽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 1999-2000 프리메라리가 우승 및 2003-04 UEFA 챔피언스리그 유벤투스, AC 밀란을 잡으면서 4강에 오르는 돌풍을 이끌었지만 10-11시즌 라리가에서 강등되었다. 그나마 12~13시즌에는 다시 프리메라리가로 승격했으나 25라운드까지 20위 꼴찌로 추락하여 또 강등위기에 처했고 결국 강등당하면서 13~14시즌은 2부리그 세군다리가에서 경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14-15시즌 다시 프리메라리가에 승격함.
- FC 바르셀로나 - 1950년대 라슬로 쿠발라와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가 활약하던 시절, 1970년대 중반 요한 크루이프가 활약하던 시절, 1990년대 초반 드림팀 시절,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 하에 호나우지뉴와 사무엘 에투가 활약하던 시절, 모든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며 전관왕(트레블)을 달성한 펩 과르디올라 감독 시절, 다시 한 번 더 5관왕(트레블)을 달성한 루이스 엔리케 감독 시절.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2013-14시즌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양강 체제를 무너뜨리고 리그 우승을 하고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시즌.
- 레알 소시에다드 - 1980/81~1981/82 백투백 우승 시절.
-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 2004/05 시즌
- RC 셀타 데 비고 - 에우로셀타 시절 (1997/98~2003/04 시즌)
- 비야레알 CF - 2005~06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도 오르며 2010~11시즌 리그 4위를 거두기도 했으나 단 1년만인 2011~12 시즌에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그나마 2부리그 2위로 다시 1시즌만에 1부리그인 프리메라 리가로 돌아와 13-14 시즌은 리그 7위를 기록.
- 발렌시아 CF - 1940년대, 1970년대, 1999/2000~2003/04 시즌
- 세비야 FC - 1940년대 중후반, 2005/06~2006/07 시즌
1.4. 잉글랜드
- 뉴캐슬 유나이티드 - 1900년대 초중반, 1926/27 시즌, 1968/69 시즌, 2000년대 초반
- 리즈 유나이티드 - 1970년대 초반 '더티 리즈' 시절[7] , 1991-92 시즌 우승~2001년 데이비드 오리어리 시절. 당시 로비 킨, 마크 비두카, 해리 키웰, 앨런 스미스, 리오 퍼디난드, 조나단 우드게이트 등 걸출한 선수들이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앨런 스미스의 리즈 시절이 바로 이 시기에 해당한다.
- 리버풀 FC - 1963~1985년 유러피언컵 결승 이전, 2004~2010년, 2019~현재진행형. 풋볼 리그 시절에는 붉은 제국으로 불리며 UEFA 유로피언컵 4회 우승(UEFA 챔피언스리그 전신)에 리그 18회 우승으로 빛나는 팀이었으나 헤이젤 참사를 겪은 이후 잉글랜드 리그의 유럽 대항전 출전 금지와 더불어 몰락의 길을 걸었었다. 특히 EPL 출범 이후로는 2019/20 시즌에서야 드디어 우승했다. 하지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기록은 리버풀의 확실한 자부심. 라파 베니테스 감독 시절에 리그 2~3위권에 진입하고 챔스 결승전에도 몇차례 출전하는등 중흥기를 이어갔으나 이후 감독들의 잦은 교체와 세대 교체 실패와 더불어 하락세를 겪다가 브렌던 로저스 2년차인 2013/14시즌 오랜만에 리그 최상위권으로 도약했다. 한동안 1위를 기록하며 우승까지 노렸으나 막판에 미끄러지며 최종 성적은 2위. 2014/15시즌부터 다시 하락세를 타고있었지만, 위르겐 클롭 부임 이후 유로파 리그 준우승,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기록하고 리그에서도 챔스권에 복귀하는 등 살아나고 있으며 2018/19시즌에는 선두를 달리며 우승 경쟁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리그 우승은 맨시티에 밀려 아쉽게 놓쳤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우승까지 했다! 그리고 2019/20 시즌에서는 7게임을 남기고 조기 우승을 거두면서 다시 전성기를 진행하고 있다.
- 아스날 FC - 1925년~1934년 허버트 채프먼 감독 집권기, 1996년 ~2005년 아르센 벵거 감독 집권기 초, 중반부. 그 유명한 무패 우승도 벵거 집권기에 나왔다. 하지만 200년 이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축, 대주주 스탄 크뢴케의 무관심 등으로 재정이 악화되며 현재는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 아스톤 빌라 FC - 1890년대 후반(1893/94, 1895/96, 1896/97, 1898/99, 1899/1900 V5) 및 1980년대 초반(1980/81 리그 우승 및 81/82 유러피언컵 (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000년대 와선 그래도 도깨비팀 모습을 보여주지만 중위권에 머물고 있고 마틴 오닐 감독 시절에는 빅4를 위협하는 강력한 후보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노려보기도 했지만 이후 성적이 점점 떨어져 2016년에 강등당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맷 버스비, 알렉스 퍼거슨 시절. 이 목록의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다. 이 둘이 맨유에서 이룬 업적은 여기 적기에는 너무 많다. 그리고 퍼거슨 이후 맨유는 단 한차례도 리그 우승을 기록하지 못했다.
- 첼시 FC - 2004년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부임 이후 ~ 현재진행형. 단 2015-2016년은 예외다.
1.5. 이탈리아
- AC 밀란 - 밀란 제너레이션 시절. 특히 아리고 사키, 파비오 카펠로, 카를로 안첼로티 세 감독 때가 손꼽히며, 역대 최고의 축구팀중 하나로 꼽힌다. 2000년대 중반에도 안첼로티 시절 화려한 선수진을 바탕으로 강팀으로 군림하였으나 2010년대 이후 세리에가 칼치오폴리로 침체기를 걷게 되고 AC 밀란은 급기야 13/14와 14/15시즌에는 7위권에도 못듬으로서 유로파리그도 진출 못하는 중위권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엘레니오 에레라 및 로베르토 만치니~주제 무리뉴 감독 재임기.
- SS 라치오 - 1999/2000 시즌. 이후 재정난으로 몰락.
- SSC 나폴리 - 1980년대 후반. 당대를 넘어 펠레와 함께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영입 이후 두번의 스쿠데토, 코파 이탈리아, UEFA 컵을 따내며 전성기를 보냈다.
- 파르마 칼초 1913 - 1990년대 초~중반 '파르마 AC' 시절. 이후에도 이른바 세리에 7공주로 불리며 위세를 떨쳤으며 94/95, 98/99시즌에는 UEFA컵(현재 UEFA 유로파리그 전신)을 들어올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 재정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클럽이 파산하고 인수되어 '파르마 FC'가 되고 한 차례 세리에 B에 다녀온 후에는 그저 그런 중위권 팀이 되었고, 2013/14시즌 6위를 기록해 살아나나 싶더니 UEFA 라이선스가 발목을 잡아 유로파리그도 못나갔고 결국 다음 시즌 심각한 재정문제가 터지며 리그 최하위+구단 파산+인수 실패로 팀이 재창단되고 아마추어 단계인 세리에 D로 강등되는 굴욕까지 맛봐야했다. 이후 3년간 논스톱 승격으로 곧바로 세리에 A로 복귀하며 그래도 클래스는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 헬라스 베로나 FC - 1984/85 시즌
- 토리노 FC - 일 그란데 토리노 시절 (1942~1949).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 최고의 팀이었으며, 같은지역 팀인 유벤투스 FC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최상위 구단이었다. 그러나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주력 선수들을 잃으면서 순식간에 몰락해버렸고, 현재는 오히려 유벤투스가 리그를 대표하는 명문이 된 상태.
- UC 삼프도리아 -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70년대만 해도 세리에 B까지 밀려났던 팀이 로베르토 만치니의 등장 이후 강팀으로 도약해 80년대 중반 이후 코파 이탈리아를 세번이나 들어올렸고 90/91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을, 91/92시즌에는 유러피안 컵 준우승을 일궈냈다.
1.6. 프랑스
- AJ 오세르 - 1995/96 시즌.
- AS 모나코 - 2003/04시즌. UEFA챔피언스리그 준우승까지 거두면서 이름을 알렸으나 이후로 하위권으로 밀려났고 강등까지 겪었다. 다행히도 러시아 부호의 투자를 받아 재승격을 이뤄낸 후에는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고 챔스에서도 8강까지 올라가는 등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헌데 주전 선수들이 연달아 팔려나가더니 18/19시즌 현재 다시 강등 위기...
- AS 생테티엔 - 60년대 리그앙 4연속 우승, 70년대 리그앙 3연속 우승에 75-76 시즌 유러피언컵(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같이 프랑스 최강 구단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80년대 이후 재정문제로 2부리그 강등과 승격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2000년대들어 1부리그에 안착한 이래 리그 중상위권에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2013년에는 리그 컵을 우승하고 2013-14시즌 리그 4위, 2014-15시즌 5위를 기록하는 등 조금은 살아난 모습을 보이는 중.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 1988/89 ~ 1992/93 시즌
- 올랭피크 리옹 - 2001/02 ~ 2007/08 V7 시절
- 파리 생제르맹 FC - 1990년대 초~중반. 이후에는 올랭피크 리옹,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지롱댕 드 보르도 등에 밀려있었으나 카타르 구단주의 전폭적인 투자를 받기 시작하며 2011년 이후에는 리그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사실상 현재가 리즈 시절.
1.7. 기타
- 던디 유나이티드 FC - 1980년대
- 레인저스 FC - 2012년 파산 이전까지
- AFC 아약스 - 여기도 리즈시절에 제대로 들어가는 팀이다. 유러피언 컵을 1971~73년까지 무려 3회 연속 우승하던 팀이다! 이는 레알 마드리드 CF ,바이에른 뮌헨와 더불어 3번 연속 우승한 3팀 중 하나! 바에이른 뮌헨과 더불어 UEFA 주관 메이저 대회 우승,트레블,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한 2개뿐인 구단이기도 하며 거기에 1994-95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4번이나 우승하여 챔피언스리그를 6번째로 우승을 많이 한 구단이었다..그러나...2000년대 와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커녕 16강 진출조차도 어렵고 유로파리그 32강만 가도 잘하는 형편으로 떨어졌다. 물론 리그에서야 여전히 강호지만 유러피언컵 클럽 대회에서는 리즈시절에 대하여 가장 까마득한 좋은 추억을 가진 팀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2018-19 시즌, UCL 4강에 진출하며 다시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 FC 안지 마하치칼라 - 2011년~2013년. 사실 리즈 시절로 보기에는 아리송하지만 역대 성적이 2부리그 우승 2번뿐인 팀에서 사무엘 에투와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거액으로 영입하고 거스 히딩크를 감독으로 앉히며 리그 성적 3위를 거둬 팀 역사상 아주 짧은 리즈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3년도 안가 구단주 자본 문제로 리그 꼴찌로 강등당하고 승격하고 도로 옛 하위팀으로 돌아왔다. 2015-16 시즌도 강등권인 18라운드까지 16위에서 맴돌고 있다.
-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 1985-86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결승 상대가 FC 바르셀로나. 이는 동유럽 축구 역사상 첫 클럽대회 우승. 하지만 2000년대 와선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도 겸사겸사하는 신세이다. 뭐 그렇긴 해도 적어도 루마니아 리그에선 여전히 최강급으로 군림하며 리그 최다 우승을 기록 중이고 2010년대 와서도 리그 우승 후보이자 리그 우승을 여럿 거두고 있으니...리즈 시절의 그 유래가 된 팀보다야 낫긴 하다.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2000년대 중반까지. 기존에는 에레디비시 빅 3로 불렸지만, 재정난으로 2005/06 시즌 이후 리그에서 중위권 수준으로 전락했다. 다만 2011~12 시즌은 오랜만에 리그 2위를 차지하면서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됐다.
2. 국가대표팀
-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 유로 2004 시기만이였다. 그 뒤로도 그 이전에도 다른 축구대회에서는 예선 또는 1라운드를 통과한 적이 없나 했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첫 16강 진출이란 기염을 토했다.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 1950년 ~ 2014년, 물론 이 전성기를 확실히 끝낸 집단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잭 찰튼 감독시절. 특히 유로 1988 ~ 1994 미국 월드컵까지
-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월드컵에서도 1승도 거두지 못하던 나라(다만 항목 참고하면 알겠지만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1승도 못 거두고도 무재배로만 16강에 오르는 행운을 누리긴 했다)가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그야말로 폭발하며 전 월드컵 대회 준우승팀(90 월드컵 우승은 서독) 격인 독일까지 제치고 4강에 올라가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그 뒤로 유럽에서 동네북급.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펠레가 축구선수로 데뷔한 순간부터 미네이랑의 비극 직전까지. 미네이랑의 비극을 겪고 난 이후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전력이 많이 약해졌고, 심지어 201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월드컵 최다 우승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조별 예선에서 광탈하는 수모를 겪었다.
-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 월드컵이라는 것이 창설되기 직전인 1920년대~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까지. [8] 하지만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4강에 오르고, 201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으로 다시 살아나는듯 했으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은 대륙간 플레이오프까지 치렀다가[9] 16강으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선 8강으로 올라가서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자국에서 열린 1998년 월드컵 우승 ~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전 세네갈 쇼크전까지. 지단을 주축으로 프랑스 대표팀의 축구 스타일은 '"아트 사커'"라 불리며 그 명성을 드높였고,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뿐만 아니라 2년뒤 열린 유로 2000 대회 우승,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허무한 1라운드 광탈, 이후 유로 2004, 2008, 2012에서 고전했다. 그나마 지네딘 지단이 투혼을 불사른 2006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긴 했다. 최근에도 유로 2016 대회에서 개최국으로써 황금 세대를 앞세워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받았으나 결승전에서 우주의 기운이 모인 포르투갈에게 통한의 패배를 하며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적절한 세대교체를 통해 앞에서 말한 황금세대를 앞세워 정확히 20년만에'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결승까지 진출해 다시 타이틀을 되찾았다.
-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 1950년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에서 각각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특히 1950년대에는 매직 마자르라고 불리며 당시 세계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다. 특히 푸스카스를 주장으로 해서 1952년부터 54년 스위스 월드컵 준결승까지 A매치 34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1956년 반소 민주화운동 이후 주축 선수들이 1960년대 이후 서유럽으로 망명하면서 하향세를 보였다. 유로 1964 3위와 유로 1972 4위 이후 유로컵이고 월드컵이고 각종 메이저 대회에서 별다른 성과를 도통 거두지 못하고 있다.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2008년 전까지 우승후보는 커녕 성적이 안 좋아서 샴페인, 뻥페인, 필페인이라 불었었다 .근대 유로 2008에서 두번째로 유로에서 우승 이후에도 월드컵 성적이 1950년 월드컵 4강 1회가 최고기록이라서 2010년에도 놀림받고 있었으나 1950년 60년 이후 4강에 진출하고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해서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게다가 유로 2012에서 우승해 우승후보로 꼽혔으나, 브라질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1:5로 대역전패하는 등의 굴욕을 쌓고 광탈했다가, 러시아 월드컵에선 16강으로 마감했다.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1930년에는 지금과 달리 우루과이와 극강의 팀이었다. 오죽하면 1930, 1934, 1938년 월드컵도 수준에 안맞아서 출전을 거절했다. 이때 많은 나라를 a매치로 학살해서 초기의 별명이 비공식 챔피언이었다. 그러다가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유로 1968에서 3위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24년만에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유로 1996에서 3위를 기록했다.더군다나 2014 브라질 월드컵 때는 1994년 지역예선 광탈 이래 20년만에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마침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 4강까지 진출한 뒤, 프랑스전에서 패배한 벨기에와의 '3.4위 결정전'에서 패배하여 대회 4위로 마감했다.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초창기 월드컵에서는 꼼수로 우승했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 하지만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더니 그 다음 월드컵에서는 계속 죽을 쑤고 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지역예선부터 스페인에게 밀려 플레이오프로 밀려나더니 플레이오프에서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없는 스웨덴에게 밀려 60년만에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바람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 1970년대, 1980년대 후반. 1970년대에는 희대의 대스타 요한 크루이프를 앞세운 토탈 풋볼 전술로 월드컵 결승에 2회 연속 진출했고, 88년 유로 대회에서 오렌지 삼총사의 활약으로 네덜란드 역사상 첫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 1974 FIFA 월드컵 서독에서 주포 그제고시 라토와 중원 사령관인 카지미에시 데이나, 브와디스와프 즈무다,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 등을 앞세워 통산 월드컵 최대 성적인 4강에 진출했으며 라토는 그해 월드컵에서 득점왕을 수상했다. 그 이후 4연속으로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시들해졌다가 그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때 본선에 진출했지만 한국에 일격을 당하면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를 필두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었으나, 권토중래는 커녕 1승 2패로 광탈해 버렸는데, 광탈도 광탈이었지만 특히 최종전이 상당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예선부터 본선 전까지의 차범근호 - 예나 지금이나 살얼음판인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그야말로 깡패와 같은 위용을 자랑하였다. 심지어 이 당시는 5개팀으로 이루어진 조에서 1위를 해야만 월드컵 직행이던 시절인데도 잔여경기를 2경기나 남겨두고 월드컵 직행을 확정지어버린다. 홈에서 차례로 카자흐에게 3-0 승, 우즈벡에게 2-1 승, 도쿄대첩 2-1 역전승, 이어 홈에서 UAE에게 3-0 완승한 후 악명높은 카자흐 원정을 1-1 무승부로 선방하고 곧바로 우즈벡 원정 5-1 대파, 8경기 중 6경기를 치른 시점에 5승 1무(16득 4실)로 승점 16점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기록해버리며 1위 확정. (이 시점 2,3위인 UAE와 일본은 서로 비겨버리면서 겨우 승점 8점과 7점에 그치고 대한민국 자력 1위를 확정시켰다.) 이렇게 아시아 예선을 완전히 압살하며 여유넘치게 진출을 조기확정한 때는 이때가 유일하다. 바로 직전 월드컵 예선 때 얼마나 힘들게 월드컵 진출했는지만 생각해봐도 이는 고무적인 일임은 확실했다. 진출이 확정된 차범근호는 곧바로 사생결단의 일본에게 잠실 홈경기에서 0-2로 패하였지만 워낙 대표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고 1위는 이미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된다는 한일전에서 패배하였음에도 당시 크게 비판받지는 않았다.(공동개최국인 일본에게 적당히 져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UAE측에서 제기되기는 하였다.) 이리하여 최종예선의 성적은 6승 1무 1패(19득 7실)라는 압도적 성적이었으며 대표팀의 인기는 당시 기준 역대급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전국민적 기대를 받게 되지만 이후 본선에 가서의 현실은 모두가 알다시피 좋지 않았으며, 그렇게 짧았던 전성기가 마무리되었다. 세계대회에서의 호성적과 별개로 아시아 예선에서 이와같은 압도적인 모습은 이후에 다시 볼 수 없었다.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홈이라는 이점이 있었지만 이전까지 단 1승도 못거두던 팀이 별안간 승승장구하여 조 1위로 2라운드에 진출하지 않나... 날고기는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차례차례 꺾고 4위를 기록했었다.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 사상 최초로 원정 첫 16강을 기록했었다.
-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동메달 - 자세한 건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동메달 결정전 문서 참조.
-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8강. 마찬가지로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를 꺾었고, 8강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3:5로 패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 44년만에 진출했을 때 브라질을 상대로는 1-2로 석패해 다시 부활할거라 예상이 되었지만, 포르투갈을 상대로 치른 44년만의 리매치에선 0-7로 박살이 나면서 완벽하게 침몰하였다.
3. 개인
이 항목은 '''먹튀/축구''' 문서를 참조하면 좋다. 먹튀라는 말 자체가 비싼 값에 사왔더니 리즈 시절의 실력에 한참 못 미칠 때 나오는 표현이니.
- 아드리아누 레이치 히베이루 - 2004~05 인터밀란 시절. 이 때만큼은 제2의 호나우두로 불릴만큼 독보적인 스트라이커였으나 그 이후로는 독보적인 민폐로 각성(...)
- 안드리 셰브첸코 - AC 밀란 시절. 이 시절 셰브첸코는 무결점의 스트라이커로 칭송 받으면서 2004년에는 발롱도르까지 수상한다. 그리고 2006년, 첼시로 떠나게 되는데...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09~10 시즌 바이에른 뮌헨 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기 직전까지. 이 기간 동안 슈바인슈타이거는 12~13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 및 분데스리가 사상 최초의 트레블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전차군단의 통일 후 첫 월드컵 우승에 일조했다.
- 베슬리 스네이더르 - 09~10 시즌 인터밀란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이 시절 스네이더르는 인테르의 세리에 A 최초 트레블 달성과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전승준을 이끌었다. 선수 본인은 2010년에 받은 개인 수상이 09-10 UEFA 챔피언스 리그 어시스트왕, 2010 UEFA 올해의 클럽 미드필더상,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회 실버볼과 브론즈슈까지 수상하고 이후 발롱도르에서도 4위를 차지했다.
- 카카 - AC 밀란 시절. 이 시기 카카는 이적하자마자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았고, 특히 2007년에는 팀을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차지했다. 그리고 2009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게 되는데...
- 파트리크 비에이라 - 아스날 FC 시절. 이 시기 비에이라는 97-98 시즌 더블, 01-02 시즌 더블, 03-04 시즌 EPL 무패 우승, 레 블뢰의 유로 2000 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던 시기였다.
- 페르난도 토레스 - 리버풀 시절. 특히 2008년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의 뒤를 이어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첼시로 떠나게 되는데...
- 호나우두 - 1996~1999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4년. 그 이후에도 수준급의 스트라이커였으나 축구황제로서의 호나우두의 명성은 이 시절과 월드컵에서의 활약 덕분이다. 이후 2000년부터는 부상으로 고생하다 2002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다시 부활하여 03~04 시즌까지 맹활약하였다.
- 호나우지뉴 - 2004~2006년. 이 시절에는 화려하면서도 실속있는 개인기와 연계 플레이 로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축구계 정점을 찍었다.
- 라다멜 팔카오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 이 때의 팔카오는 라리가 최고의 인간계 공격수라는 칭호와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9골이나 넣으며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넘어 남미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던 시기였다.
- 로빈 반 페르시 - 11-12 시즌 아스날, 12-13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마이클 오언 - 리버풀 FC 시절. 이 시기 오언은 팀의 미니 트레블을 비롯한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2001년에는 발롱도르까지 수상하였다.
- 데쿠 - FC 포르투 ~ FC 바르셀로나 시절. 이 시기 데쿠는 FC 포르투의 2002-03 시즌 UEFA 컵 우승과 2003-0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FC 바르셀로나의 2005-06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포르투갈의 유로 2004 준우승과 2006 FIFA 월드컵 독일의 4위를 이끌었다. 특히 2004년에는 발롱도르 2위와 UE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 네마냐 비디치, 리오 퍼디난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두 선수 모두 2000년대 후반 축구사에 길이남을 중앙수비조합인 퍼디치 조합을 이루어 EPL과 UEFA 챔피언스 리그를 비롯한 수많은 트로피들을 팀에 안겨준 시기였다.
- 이케르 카시야스 - 2006/07시즌 레알 마드리드 ~ 유로 2012. 이 시기의 카시야스는 성 이케르라 불리며 라 리가를 넘어 세계 No.1 골키퍼의 자리를 확고하게 지킨 시기이자 굳이 레알팬이나 스페인팬이 아니어도 타팀, 타국대 팬들에게도 호감을 얻던 시기였다. 또한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세 번의 라 리가 우승과 한 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고, 2010/11 시즌에는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를 2002/03시즌 이후 오랜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올려놓으면서 팀의 16강 징크스 극복에 크게 일조하고 다음 시즌에도 2회 연속 4강 진출에 일조한다. 그리고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부동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유로 2008,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유로 2012를 차례대로 우승하는데 크게 일조하며 조국의 메이저대회 3연패를 이끌고, 개인으로서는 세 대회 모두 대회 베스트일레븐에 골키퍼 자리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FIFA 월드컵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누린다. 그리고 이 시기의 카시야스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FIFA/FIFPro 월드 XI 5회 연속 선정, 2007년부터 2012년까지 UEFA 올해의 팀 6회 연속 선정 되는 등 역대 각 베스트일레븐 최다 선정 기록을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12/13시즌부터 기량의 저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하향세를 겪게 되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32강 네덜란드전에서 1:5 패배를 경험하고 그 다음 벌어진 칠레와의 경기에서도 0:2로 패하며 조국 스페인의 조별리그 광탈을 겪고만다. 동시에 이 시기 동안 여러 루머들과 구설수들까지 엮여버리면서 카시야스의 호감 이미지는 많이 벗겨지게 된다.
- 마이콘 - 2008/09 시즌 ~ 2010/11 시즌 인터밀란 . 이 시기의 마이콘은 그야말로 라이트백이라는 포지션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우측면 지배자고 여겨질 만큼 뛰어난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The Right라는 별명까지도 생길 정도였다. 특히 2009/10 시즌에는 소속팀 인터밀란의 구단 및 세리에 A 사상 최초의 트레블 달성에 크게 일조하면서 UEFA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하였고, 얼마 안 있어 개최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비록 조국 브라질은 8강에서 탈락했지만 마이콘 개인으로서는 이 대회에서도 엄청난 맹활약을 펼치며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결국 2010년 엄청난 활약을 펼친 마이콘은 FIFA/FIFPro 월드 XI과 UEFA 올해의 팀의 라이트백 자리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 앙헬 디 마리아 - 2013~14 시즌 레알 마드리드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이 시기의 디 마리아는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의 10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크게 일조하며 라 데시마를 달성하였고, 얼마 안가서 개최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조국 아르헨티나의 준우승에 크게 일조한다. 이 2014년의 활약으로 디 마리아는 FIFA/FIFPro 월드 XI과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 송종국 - 2001년 ~ 2002/03 시즌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이 시기 송종국은 2001년 K리그 신인상에, 2002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4강 신화의 주역이자 대회에서 687분을 뛰고 조별리그 포르투갈 전에서는 당대 최고의 윙어였던 루이스 피구를 막아내는 활약을 보이고, 3/4위전 터키 전에서는 마지막 골까지 넣는다. 이후 2002/03 시즌에는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이적하여 조별리그 유벤투스 전에서 팬들에게 회자될만한 엄청난 활약을 비롯해 팀내 붙박이 주전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부터는 감독과의 불화, 현지 부적응, 사생활 문제 등으로 인해 하향세를 겪는다.
- 고종수 - 1997년~2001년. 이 때의 고종수는 안정환, 이동국과 함께 K리그의 흥행을 이끄는 트로이카였고, 심지어 히딩크로의 황태자로 불린 시기였다.
- 설기현 - 2000년 로얄 앤트워프 시절 ~ 레딩 FC 시절. 이 시기의 설기현은 처음 로얄 앤트워프에 입단해 첫 시즌 25경기동안 11골(리그 10골,컵 대회 1골)을 넣고 차범근 이후 역대 두 번째 유럽리거 시즌 10골을 기록한다. 이후 2001년에 벨기에의 명문팀 RSC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해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이후 2002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 되고 2002년 발롱도르 후보자 1차 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2002~03 시즌에는 시즌 13골을 기록하고, 2003~04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여 예선라운드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기록을 세우고 마찬가지로 예선 라운드이긴 하지만 한국인 첫 챔피언스리그 골도 기록한다. 이후 잉글랜드의 2부리그인 챔피언십 리그 팀인 울버햄튼 원더러스로 이적하고, 이 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친다. 그 다음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하여 32강 조별리그 2차전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의 골로 연결되는 조재진의 헤딩을 크로스 패스를 날리면서 귀중한 무승부에 일조하고, 곧바로 레딩 FC 이적하면서 골과 어시스트를 꾸준히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 다음 시즌 풀럼 FC로 이적하면서 조금씩 부진에 빠지기 시작하고, 이후 중동 무대를 거쳐 K리그에 오지만 K리그 무대에서 영 좋지 먹튀급의 활약을 펼치게 된다.
- 잔루카 잠브로타 - 유벤투스 FC 시절. 이 시기 잠브로타는 당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속팀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하며 최고의 풀백 중 하나로 꼽힌 시기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소속팀 유벤투스의 여러번의 세리에 A 우승 뿐만 아니라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조국 이탈리아의 유로 2000 준우승, 2006 FIFA 월드컵 독일 우승에도 크게 일조하였고, 2006년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2006년 FIFA/FIFPro 월드 XI과 UEFA 올해의 팀에 모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 하비에르 사비올라 - 1998년 리베르 플라테 ~ 2001년 FIFA U-20 월드컵. 이 시기 사비올라는 2001년 FC 바르셀로나에 이적하기 전까지 86경기에서 45골을 터트리며 디에고 마라도나 이후 10대 시절 가장 완성된 기량을 선보인 선수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였고, 2001년 FIFA U-20 월드컵에서는 두 번의 해트트릭을 포함한 11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MVP를 독식하고, 이 11골은 역대 FIFA U-20 월드컵에서도 단일대회 최다골 1위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 후안 마타 - 2011/12 시즌 ~ 2012/13 시즌 첼시 FC 시절. 이 시기의 후안 마타는 처음 첼시로 이적한 데뷔시즌인 2011-12 시즌에는 구단의 사상 첫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크게 일조하며 빅 이어를 안겨주고, 그리고 팀의 통산 7번째 FA컵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면서 시즌 더블을 기록하고 본인은 그 시즌에 통산 52경기 12골 20도움을 기록하며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유로 2012에서는 비록 후보였지만 결승전에 교체출전하여 스페인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 다음 시즌인 2012-13 시즌에는 구단의 사상 첫 UEFA 유로파 리그 트로피를 안겨주고 본인은 그 시즌에 시즌 통산 19골 35도움을 기록하고 리그에서만 17도움을 기록하며 그 시즌 EPL 도움왕을 수상하면서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두 시즌 연속 수상하였다.
- 사무엘 에투 - FC 바르셀로나 ~ 인터밀란 시절. 먼저 FC 바르셀로나 시절의 에투는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고 04-05 시즌 24골, 05-06 시즌 26골, 08-09 시즌 30골에 라 리가 우승 3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08-09 시즌 트레블을 팀에 선물하였고, 국가대표에서도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에투 본인도 2005년에는 FIFA 올해의 선수상 2위, FIFA/FIFPro 월드 XI,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2006년에도 라 리가 득점왕,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UEFA 올해의 클럽 공격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득점왕에 FIFA/FIFPro 월드 XI, UEFA 올해의 팀에도 2년 연속으로 선정, 2008년에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득점왕 등 개인 커리어와 팀 커리어 모두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던 시기이다. 그리고 인터밀란 시절에도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09~10 시즌 인터밀란의 세리에 A 클럽 최초의 트레블을 포함하여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를 팀에 선물하였다. 또한 에투 본인도 10-11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 디에고 밀리토 - 2009/10 시즌 인터밀란, 2011/12 시즌 인터밀란. 2009/10 시즌에 이적한 인터밀란에서는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UEFA 챔피언스 리그를 가리지 않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면서 팀의 세리에 A 클럽 최초의 트레블 달성의 일등공신이 되었고[10] 밀리토 개인으로서도 리그에서는 22골로 득점 2위,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6골을 넣으며 득점 4위를 기록하는 것과 동시에 UEFA 올해의 클럽 최우수 선수상과 최우수 공격수상,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 등 클럽에서 받을 수 있는 상들은 거의 다 휩쓸었다. 이후 2011/12 시즌에서는 리그에서 24골을 넣으며 세리에 A 득점 순위 2위를 기록하면서 잠깐 부활하게 된다.
- 디에고 포를란 - 비야레알 CF ~ 2011 코파 아메리카 아르헨티나. 비야레알 시기부터의 포를란은 이적 첫 시즌부터 리그 38경기 25골로 라리가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하고. 두 번째 시즌에도 모든 대회를 통틀어 45경기 13골, 마지막 세 번째 시즌에는 리그에서 36경기 19골을 넣는 활약을 선보인다. 그 다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에는 이적 첫 시즌에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53경기 23골 5도움을 기록하고 두 번째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33경기 32골 10도움이라는 무시무시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생애 두 번째 라리가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한다. 세 번째 시즌에도 모든 대회를 통틀어 56경기 28골 10도움을 기록하고 특히 UEFA 유로파 리그에서는 9경기 6골의 활약으로 팀의 사상 첫 유로파 리그 우승을 이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을 월드컵 4위로 이끄는 것과 동시에 포를란 본인은 5골을 넣는 활약상과 함께 대회 골든볼 수상, 대회 베스트 XI에 선정되었다. 아틀레티코에서의 마지막 네 번째 시즌은 이전 시즌들과는 다르게 모든 대회 통틀어 42경기 10골 5도움이라는 아쉬운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10골은 넣어주었다. 바로 이어진 2011 코파 아메리카 아르헨티나에서도 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으면서 우루과이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다.
- 앨런 스미스 - 2000~2001 시즌. 리즈 시절의 어원이 된 인물.
[1] 리그, 아이다스컵, 프로스펙스컵 우승[2] 전무후무한 기록 4관왕 달성. 리그, 슈퍼컵, 대한화재컵, 아디다스컵. 현재 K리그는 슈퍼컵과 리그컵을 모두 폐지했기 때문에 사실상 달성 불가능한 기록이다.[3] 2018년 최강희 감독이 기록을 깰 때까지 210승으로 리그 최다승 감독이었다.[4] 다만 아챔 우승은 전북. 울산은 전북에게 패해 4강에서 탈락했다.[5] 당시 챔스티켓은 2장이어서 우승해야만 얻을 수 있었고, 패배했다.[6] 바이에른은 강등된 적은 없지만 통합리가 창설 멤버에 들지 못했다. 통합 분데스리가가 63년 시작됐지만 DFB가 1부리가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같은 연고지의 2팀을 넣는 것을 거부함에 따라(당시에는 바이에른보다 TSV 1860 뮌헨이 더 강팀이었다. 남부 오베르리가에서 1860은 우승, 바이에른 뮌헨은 3위를 해서 참여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연고지가 같아서 거부되었다.) 참여하지 못하였고, 2년 후인 65-66시즌부터 분데스리가에 군림했다.[7] 전성기 당시 멤버였던 빌리 브렘너는 홈구장 엘런드 로드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8]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마크에 별이 4개인 이유는 월드컵이 생기기 이전에 치룬 올림픽 축구종목에서 2번 우승했기 때문이다. 우루과이만 유일하게 올림픽 우승도 월드컵 우승과 동급으로 치는데 당시 우루과이의 실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월드컵 우승2번인데 별이 4개인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이다. 문제는 1950년 월드컵을 끝으로 4강이 최대성적이라는 게 문제. 그나마도 지역예선 광탈이 더 많았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당시에는 플레이오프에 떨어져서 코스타리카와 맞붙어서 겨우 올라오는 바람에 지역예선을 포함해서 월드컵 역사상 최다경기 기록팀(총 27경기)이라는 기록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나마도 에콰도르가 칠레를 이기면 플레이오프의 기회조차 없었다. 위의 프랑스는 2006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이라도 했다.[9] 근데 이 대륙간 플레이오프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부터 4대회 연속이다.[10] 특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는 혼자서 두 골을 넣으면서 결승전 공식 MOM에 선정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