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퀘벡'''
''' Québec '''
[image]
[image]
'''주기'''
'''문장'''

'''상징'''
'''표어'''
Je me souviens
(프랑스어: 나는 기억하노라)
'''주조(州鳥)'''
흰올빼미
'''주목(州木)'''
자작나무
'''주화(州花)'''
붓꽃
'''행정'''
'''국가'''
캐나다 [image]
'''지역'''
동부
'''시간대'''
동부 UTC-05/-04
'''공용어'''
프랑스어
'''주도'''
퀘벡
'''최대도시'''
몬트리올
'''인문 환경'''
'''면적'''
1,542,056㎢
'''인구'''
8,356,851명 (2017)
'''인구밀도'''
5.98명/㎢
'''역사'''
'''캐나다 자치령 가입'''
1867년 7월 1일 (1번째)[1]
'''정치'''
'''부총독'''
조제프 미셸 두아용(Joseph Michel Doyon)[2]
'''주 총리'''
프랑수아 르고 (François Legault)
'''CAQ''']]
'''주의회'''
'''여당'''
76석
'''CAQ''']]
'''야당'''
28석
'''PLQ''']]
10석
'''QS''']]
9석
'''PQ''']]
2석
'''무소속''']]
'''연방 하원'''
36석
'''자유당''']]
32석
'''퀘벡 블록''']]
10석
'''보수당''']]
1석
'''NPD''']]
'''연방 상원'''
13석
'''독립 상원 그룹'''
7석
'''보수당''']]
2석
'''진보 상원 그룹'''
'''ISO 3166'''
'''약자'''
QC, CA-QC
'''지역번호'''
1-438, 1-514(이상 몬트리올), 1-450, 1-579(이상 몬트리올 근교), 1-819, 1-873(이상 주 서부), 1-418, 1-581(이상 주 동부)
[image]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1. 개요
2. 상징
2.1. 이름
2.2. 깃발
2.3. 표어
2.4. 노래
3. 퀘벡인
4. 언어
5. 역사
5.1. 프랑스인 이주 이전
5.2. 누벨 프랑스
5.3. 영국령 캐나다
5.4. 캐나다 자치령
5.5. 조용한 혁명
6. 정치
7. 분리주의
8. 문화
8.1. 종교
8.2. 식문화
8.3. 이민
8.4. 스포츠
9. 경제
10. 주요도시
11. 유명인
11.1. 음악가
11.2. 스포츠 선수
11.3. 영화계 인물
11.5. 기타 연예계


1. 개요


'''le Québec'''[3]
캐나다 동부에 있는 . 캐나다에서 제일 넓은 주이며[4], 캐나다에서 온타리오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주이다. 전반적으로 영어가 우세한 다른 주와 달리 프랑스어가 우세한 언어이다.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분리주의 운동이 좀 있다. 한때는 테러사태가 발생하고 캐나다 육군을 동원한 계엄령까지 선포되는 등 굴곡진 20세기를 겪었지만 두차례의 독립투표가 부결된 이후로 분리독립파는 점차 세력을 잃어갔고, 21세기에 들어서부터 밀레니얼 세대들이 급진적인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면서 분리주의 여론은 소강상태에 있다.
생로랑(세인트로렌스) 강 하류에 대부분의 인구가 밀집해 있으며 북쪽으로 올라가면 차로도 없고 이로쿼이들이나 크리 족들이 조금 살고 있고, 최북단 지역엔 이누이트가 거주한다. 사실 이렇게 원주민 사는 동네가 퀘벡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요 도시로는 주도인 퀘벡 시와 상업의 중심지 겸 최대도시인 몬트리올이 있다. 주도인 퀘벡 시는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어져 있는데, 구도시는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관광지로 명성이 높다. 생로랑 강가에 세워진데다가 옛날의 요새, 성,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낭만적이다. 퀘벡 시는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세운 유일한 성곽도시이기도 하다. 몬트리올은 예전에는 캐나다 제일의 상업도시였으나 분리운동의 영향 때문인지 자본들이 토론토로 빠지면서 요즘은 많이 위축되었다.
주한대표부. 캐나다 헌법에 의해 퀘벡주는 해외에 독자적인 대표부를 둘 수 있으며, 한국대표부는 1991년 설립되었다. 2017년 성균관대학교에서 대표부 후원 아래 국내 최초로 퀘벡 영화제 및 퀘벡 관련 문화행사가 열렸고, 주한 퀘벡 대표부 명의로 책 80권을 기증하기도 했다.

2. 상징



2.1. 이름


'퀘벡'은 영어 발음[5]이고 실제 프랑스어 발음은 [ke.bɛk],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 표기하면 '케베크'이다. '퀘벡'은 북미 원주민 언어인 알곤킨어로 '좁은 물길'을 의미하는 kepék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Phonetic Alphabet에서 Q에 해당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현재의 캐나다 소속 퀘벡 주가 생기기 전에는 온타리오 주와 함께 영국령 북아메리카 내 '캐나다 주'(Province of Canada, 1841~1867)를 이루고 있었다. 원래 캐나다라는 이름 자체가 현 퀘벡 주 등을 좁게 가리키는 이름이었고 캐나다인이라고 하면 프랑스계 주민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을 정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퀘벡 주 몬트리올을 연고지로 하는 NHL 팀 이름이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인 것이다. 하지만 영국령 북아메리카가 대영제국 최초의 자치령(dominion)이 될 때 캐나다라는 이름을 가져갔고 원래의 캐나다 주는 퀘벡 주와 온타리오 주로 분할되어 캐나다에 가맹하게 된 것이다.
만약 향후에 퀘벡 주가 독립하게 되면 자기의 예전 이름을 이웃나라에 갖다 바치고 나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2.2. 깃발


현재 퀘벡 주의 주기는 파란색 바탕의 백합이 사각형 귀퉁이에 들어가 있고 중앙에 십자가가 있는 형태이다. 이름은 플뢰르들리제(Fleurdelisé). 1948년에 지정되었다. 네 귀퉁이의 백합과 중앙의 십자가, 그리고 파란색 바탕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물론 백합은 프랑스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image]
몬트리올 노트르담 성당에 나부끼는 몬트리올 시기(市旗), 캐나다의 단풍기, 그리고 퀘벡의 백합기.
지금은 캐나다 전체의 상징인 단풍 문양은 과거에는 퀘벡 및 프랑스어캐나다의 상징이었으나 그러한 깃발의 의미는 완전히 역전되어 대신 프랑스 본토의 상징이기도 한 백합의 문양이 퀘벡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관공서, 상점, 주택, 자동차 등 퀘벡 도처에서 단풍기와 백합기가 쌍으로 휘날리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마치 퀘벡인의 복잡한 정체성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2.3. 표어


표어는 ''' "Je me souviens(나는 기억하노라)." ''' 이는 자신들의 선조들의 전통, 혈연, 기억을 잇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퀘벡인들과 영어권 캐나다인들 사이에서는 더 섬뜩한 의미로 통하는 표어이다. 저기서 기억한다는 의미는 '''프랑스계의 후손으로서 영국령 캐나다에 합병된 뒤 영국계 캐나다인들로부터 겪었던 차별의 역사를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캐나다인들 사이에서도 보편적인 인식이라, 퀘벡 경찰과 온타리오 경찰 두 명의 공동 수사를 그리는 '''bon cop bad cop'''이라는 캐나다 영화에서 작중 토론토 경찰인 마틴 워드가 이 표어에 관해 똑같은 견해를 가지고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6] 게다가 이 한이 맺힌 표어를 퀘벡 주 자동차 번호판 위에 버젓이 적어놓기까지 하니 온 도로 위에 이런 문구가 돌아다녀 어그로가 끌릴 수밖에(...)[7]
캐나다의 모든 주들 유일하게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표기된 주 표어이며, 평화국가로서 대외 이미지가 밝고 명랑한 편인 캐나다에도 복잡한 집안 사정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셈이다.

2.4. 노래


퀘벡을 상징하는 공식적인 주의 노래는 없다. 그러나 퀘벡 분리주의 진영에서는 1975년에 만들어진 Gens du pays(나라의 사람들)이 비공식 국가 역할을 한다.

이 노래는 퀘벡의 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질 비뇨(Gilles Vigneault)가 작사 및 작곡했다. 내용은 나라의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며 살자는 훈훈한 가사다.
20세기 초반까지는 현재 캐나다의 국가인 O Canada가 퀘벡인(나아가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상징하는 노래로 쓰인 바 있으나 20세기 초반에 캐나다의 국가로 쓰이기 시작한 이래로 퀘벡인만을 상징하는 노래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3. 퀘벡인


퀘벡처럼 언어가 민족의 구분점으로서 확연하게 작용하고 있는 곳도 드물 것이다. 흔히 퀘벡 출신 사람을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혈통적 구분이라기보다는 언어적 구분, 즉 '''프랑스어권 캐나다인이라고 받아들이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퀘벡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다 프랑스계 조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여느 이민사회가 그렇듯이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등도 섞여있기 때문에, 혈통보다는 프랑스어가 모어인지가 '''퀘벡인'''을 결정짓는다. 즉, 퀘벡인은 퀘벡에 살며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이다. 퀘벡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당신은 어디 사람입니까?'하고 물어본다면 프랑스어 화자의 십중팔구는 캐나다인이 아닌 '''Québécois(e)'''라고 답할 것이다. 반면에 영어 화자에게 묻는다면 거의 모두 캐나다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성(姓)이 딱 봐도 프랑스계인 사람이라도 다른 주에서 영어를 쓰며 살고 있는 경우에는 스스로를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영어권 캐나다인이 영국인이 아니듯 퀘벡인들 역시 프랑스어를 쓴다고 해서 프랑스인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전 프랑스 본토로부터 방치된 이후 이들은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퀘벡의 '''Canadien(ne)'''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이해하자면 프랑스나 영국, 더 나아가 캐나다로부터도 죄다 독립한 퀘벡인 정도? 통계도 제각각인 측면이 있는데, 한 통계에 따르면 28.9%의 퀘벡인이 스스로를 프랑스계라고 답했으나 스스로를 캐나다인이라고 답한 퀘벡인은 60.1%이었다. 한편 2010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퀘벡의 프랑스어 화자들의 3분의 1은 자신을 오롯이 '퀘벡인'(Québécois, 케베쿠아)이라고 지칭하고, 39%는 '캐나다인'이라고 인식은 하나 그 전에 앞서 '퀘벡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고 한다. 약 20% 미만이 자신을 '퀘벡인이자 동시에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하며, 7%는 자신을 '퀘벡인' 전에 '캐나다인'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오직 '캐나다인'이라고만 소개하는 사람들은 1%에 그쳤다.#[8]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퀘벡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에도 소수나마 살고 있다는 것이다.[9] 특히 영어/프랑스어 양쪽이 공용인 뉴브런즈윅 주에 살고 있는 아카디앵(Acadien)들이 있으며, 이들은 스스로를 퀘벡인들과 완전히 남남이라고 인식한다. 온타리오에도 스스로를 프랑코옹타리앵(Franco-Ontarien)이라 칭하는 소수의 프랑스계가 있으며[10], 한국에도 《내 생애의 아이들》 등의 작품이 번역된 퀘벡 소설의 대모 가브리엘 루아(Gabrielle Roy)도 매니토바위니펙의 프랑스어권 동네 생보니파스(Saint-Boniface) 출신이다. 아카디앵들과 프랑코옹타리앵들은 각각의 프랑스어 억양이 또 퀘벡 프랑스어와는 다르다. 게다가 이렇게 대서양 연안 북미 전반의 프랑스계 커뮤니티는 국경 건너 미국에도 있다. New England French라 부르며 역사적 기원은 퀘벡, 아카디아인들과 마찬가지지만 익히 알려진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 상실, 미국 독립 전쟁, 영미간 국경 확정 과정을 겪으면서 미국측에 살게 된 프랑스어 모어 커뮤니티는 메인, 버몬트 주와 뉴욕 주 북쪽 끝자락에도 전통적으로 존재해 왔으며, 이들은 역사적 기원과 문화적 맥락은 캐나다의 옛 동족(?!)과 공유하지만 법적 의미로 '캐나다인'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으니 굉장히 복잡미묘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보자면 7년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퀘벡과 카리브 해 식민지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는데, 이때 프랑스는 아이티 대신 돈도 안되고 골치 아픈 퀘벡을 버린다. 그렇기에 이후 샤를 드 골이 속죄한답시고 자유 퀘벡 만세를 외친 것. 이들에게 프랑스는 그냥 같은 말을 쓰는 나라 정도다. 물론 그 한 가지만으로도 미칠 수 있는 문화적 영향력이 상당하기는 하다만. 한국에서는 퀘벡을 보고 흔히 '작은(?) 프랑스', '북미의 프랑스' 같은 표현도 쓰는데 사실 프랑스와의 유대감은 생각만큼 크진 않다. 오히려 뉴욕 주, 버몬트, 뉴햄프셔, 메인 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문화적으로 미국에 더 가깝다.[11] 스포츠도 축구, 럭비를 좋아하는 프랑스인들과는 다르게 아이스하키, 농구, 미식축구를 많이 보기도 하며 교육 시스템에서도 그랑제콜 과정이 있지만 입학선발과정 및 고등교육을 보면 북미에 더 가까운 편.
한 예로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대영제국의 일원으로 참전하는 것에 영 관심이 없는 퀘벡인들을 꼬시기 위해 당시 보수당 정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프랑스를 도웁시다.'''(...)라는 캠페인까지 벌였는데 퀘벡인들의 반응은, '''"우리가 왜 남인 프랑스를 도와야 하나요?"'''... 사실 그럴 만도 한게 이때만 해도 벌써 프랑스와 주종의 연이 끊어진 지 '''150년도 더 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보수당 정부는 강제징병까지 실행했으나 도리어 역효과로 항쟁까지 불러오고, 그러다 전쟁이 1년 뒤에 끝나자 이 일은 흐지부지 마무리가 되어 더 큰 사건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향후 70년간 퀘벡 주 연방투표에서는 1958년을 제외하면 모두 캐나다 자유당이 승리하게 된다.(...)[12]
다만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사정이 좀 달라져서, 이때는 연합군을 도와 추축국과 싸우기 위해 퀘벡인들이 상당히 협조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4. 언어



4.1. 프랑스어


1977년 퀘벡주 의회에서 통과된 Bill 101의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유일한 공용어이다.
퀘벡 주는 교육환경에서도 프랑스어가 우세하여, 한국의 고3, 대학교 1학년 과정에 해당하는 대학 예비학교인 CEGEP 과정도 프랑스어 학교가 주류이다. 퀘벡 주민들이 퀘벡주 내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선 CEGEP에 진학해야 하며, 대학진학 희망자들은 2년 과정을 밟고 고졸취업 희망자들은 3년 과정을 밟는다. 토론토 대학교 등 지역 바깥 대학교에 들어가려면 굳이 안 가도 된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프랑스어권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영어권 CEGEP에 진학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 주법 14조를 통해 프랑스어 사용을 강제한 퀘벡 주정부도 고심하고 있는 중. 몬트리올에선 영어권 CEGEP도 있어서 그나마 사정이 나으나 퀘벡시에서는 2016년 시내 유일한 영어권 CEGEP 입학 희망 인원이 정원을 350명이나 초과했다고 밝혔다. 반대로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는 초등학교 과정에서의 프랑스어 몰입교육과정 등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2013년 퀘벡주 영어권 CEGEP 학생들이 졸업에 프랑스어 시험을 의무화하는 법률에 반발하여 집단으로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역 스포츠팀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에서도 SNS 계정에서 프랑스어와 영어 게시물을 각각 따로 올리며, 감독을 선정할때 영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는다. 한 때 Randy Cunneyworth가 감독대행으로 취임했을때 프랑스어를 하나도 못한다고 몬트리올 미디어와 팬덤에서 대차게 까여서, 오너인 Geoff Molson이 공개사과를 하고 다음 후임 감독은 영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뽑겠다고 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Cunneyworth 본인도 감독을 하는 동안에 최대한 프랑스어를 배우겠다고 약속했었다.

4.2. 영어


퀘벡 주에도 영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이 대략 10% 못 되게 있다. 영어권 주민의 역사가 오래된 몬트리올이나 오타와가 가까운 가티노같은 도시에서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 큰 불편은 없지만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모든 간판은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고 영어 한 마디도 못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몬트리올에서조차 영어는 번화가의 식당, 쇼핑몰, 기타 등등 소비업에서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통용된다. 엔지니어들의 경우엔 영어만 해도 되는 직장들이 소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면 생계가 곤란해질 정도이다.
물론 여타 영어권 주들로 일하러 가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많으며 당연하겠지만 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친다. 젊은이들은 대체로 영어를 하는 편이다.

4.3. 이누이트어


누나빅이라는 지역에서 쓰인다. 누나빅은 퀘벡 북쪽의 약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이 지역은 아북극 지역으로 인구가 극히 희박하고 그 인구조차 절대 다수 이누이트 또는 아메리카 원주민이다. 퀘벡 남쪽의 통상적인 백인 문화권과는 다른 지역이다.

5. 역사



5.1. 프랑스인 이주 이전


원래는 타 지역이 그렇듯이 소수의 원주민들이 살던 곳으로 1534년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이 지역을 발견하여 이 일대를 프랑스 왕령으로 선언하였다. 1604년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이 펀디 만 일대를 탐험하고 원주민과 모피를 교환하였으며 이를 통해 겨울을 나는 법을 배운 샹플랭 일행은 그 일대에 일시적으로 정착을 하였다. 하지만 남쪽의 잉글랜드인들의 북상에 위협을 느낀 샹플랭은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세인트로렌스강을 거슬러 올라가 1608년 모피 교역소를 세웠는데 이 교역소가 퀘벡 시의 시초가 된다.

5.2. 누벨 프랑스


이후 이 일대는 식민지화가 진행되어서 리슐리외에 의하여 일백조합인상사(Compagnie des Cent-Associés)가 설립되어 식민지 교역을 독점하였고 지속적으로 원주민과의 모피 교역을 확장해 나갔다. 몬트리올도 이런 확장을 통해서 1642년 건설된 도시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적은 인구로 인하여 식민지 운영이 쉽지 않았고, 루이 14세는 '왕의 딸들(Filles du roi)'이라 불리게 되는 약 800명의 여자들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 '왕의 딸들'을 소재로 한 소설이 있다.
1660년 당시, 프랑스 정착민들의 인구는 겨우 2500명이었다. 17세기에서 18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정착민들이 상당수 왔지만, 죽거나 프랑스로 되돌아가는 수도 많았다. 오늘날 캐나다와 미국에 거주하는 프랑스계 1천만 명은 초기 정착민 2,600명의 후손들이라고 하며, 이들은 유전적 다양성이 적어 관련 의학 연구에 유용하다고 한다.
하지만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 맺어진 위트레흐트 조약에서 루퍼츠랜드와 뉴펀들랜드 섬, 노바스코샤 지역이 영국에 할양되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여전히 퀘벡을 포함해 캐나다의 대부분 지역을 통제하고 있었다. 1756년 일어난 프랑스-인디언 전쟁은 퀘벡 역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오하이오 지역에서 영국군과 충돌한 프랑스군은 몽칼름 후작의 지휘 하에 주요 전투에서 승리를 하며 영국군을 봉쇄했는데 1758년에 이르러 영국의 피트는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제임스 울프 장군과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역공을 개시한다. 이러한 역공으로 인해 프랑스군은 퀘벡 시 일대까지 물러났다. 1759년 9월 퀘벡 근교의 아브라함 평원에서 양측 군대가 회전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몽칼름 후작과 울프 장군 모두 전사를 하는 격전 끝에 영국군이 승리하였고 완전히 포위를 당한 퀘벡시는 결국 영국군에게 항복한다.
그렇지만 아직 몬트리올의 프랑스 군과 총독은 항복을 하지 않았고, 이들은 본국에서의 지원을 기다리며 퀘벡을 탈환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퇴각했다. 하지만 이미 이 시점에서 본국에서의 수송선은 영국 해군과의 해전에서 패퇴한 시점이었으며 결국 1759년 영국군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7년 전쟁의 종결과 함께 맺어진 파리 조약에 따라서 퀘벡은 영국에게 할양되었다.
말하자면 신세계를 정복하려고 왔다가 자신들이 정복당한 상황. '정복당한 정복자'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5.3. 영국령 캐나다


전쟁의 와중에 충성심에 의문을 품고 강제로 축출시킨 아카디아의 프랑스 인들을 제외하면 파리 조약 이후 퀘벡 지역 프랑스인들은 그럭저럭 영국으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받고 여전히 그들의 언어와 종교 그리고 민법을 고수하는 게 가능했다.
미국 독립과 함께 영국계 왕당파 5만 명이 캐나다에 이주를 하면서 영국은 상 캐나다(Upper Canada)와 하 캐나다(Lower Canada)로 지역을 분할하였는데, 이 중 하 캐나다가 바로 지금의 퀘벡 주이다. 이런 상태는 19세기까지 이어졌으며 이 당시 양 캐나다에서 지속적으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자 1841년 통합령을 통해 양 캐나다를 하나로 합친다. 이어 1867년 공표된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안에 따라서 캐나다 자치령이 출범한다.

5.4. 캐나다 자치령


캐나다 자치령은 출범 직후 4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퀘벡 주였다. 캐나다 자치령은 이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따라서 주권을 가지고 독립을 하게 된다. 이 당시 퀘벡은 상당 부분의 경제권이 영국계들에게 있었으며, 특히 미국의 산업적 발전과 연계하여 몬트리올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많은 영국계가 몬트리올에 거주하게 되었다. 한편 프랑스계들은 많은 수가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가톨릭 교회의 강력한 규범 아래에서 생활을 하였다. 일부 프랑스계들은 도시로 이주하여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그 결과 퀘벡의 주요 자본은 영국계가 장악하고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프랑스계들은 하층민으로 머물게 되었다.

5.5. 조용한 혁명


20세기 초까지도 전근대적, 가톨릭적 구습에 얽매여 있던 퀘벡은 1960년대부터 '조용한 혁명'(Révolution tranquille)으로 일컬어지는 급격한 근대화, 세속화 과정으로 말미암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했다.
1960년,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집권한 퀘벡 자유당(Parti libéral du Québec, PLQ)은 주 정부 주도의 강력한 경제 개발을 실시하며 퀘벡의 경제 주도권을 영국계로부터 빼앗기 시작한다. 특이하게도 퀘벡 자유당은 중도우파를 표방하나 일부 정책들에서 사민주의 색채를 띠기도 한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영국계들이 소유하고 있던 수력 발전회사인 '이드로 케베크'(Hydro-Québec)의 국유화였다.
정교분리 정책이 이루어져 사회적으로 가톨릭 교회가 담당하고 있던 교육, 의료 부문을 정부가 통제하기 시작하였으며, 프랑스어의 사용이나 프랑스계 문화 보존에 대한 법률이 지속적으로 통과되었다. 사회 복지와 노조에 대한 지원도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조용한 혁명으로 불리며 퀘벡의 프랑스계들은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아닌 퀘벡인으로 인식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영어 금지령 등 이러한 퀘벡 정체성 찾기 정책들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퀘벡을 떠나 온타리오 등 영어권 캐나다로 빠져나가고 원래 캐나다 최대 도시였던 몬트리올도 영어권의 토론토에 인구에서 밀려 제2의 도시로 떨어졌으며, 올림픽 개최의 후유증으로 적자와 부채에 허덕이는 등 부정적 변화도 없진 않았다.

6. 정치


캐나다에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와 함께 진보 성향이 강한 주로 유명하다. 특히 현 집권여당 자유당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고향이자 정치적 근거지로도 유명하다. 2011년 연방 총선때는 보수당이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퀘벡 주에선 신민당퀘벡 블록의 득표율 합이 66%, 보수당은 16%를 득표했을 정도로 저조했다. 2011년 총선 당시 보수당이 66%를 득표했고 신민당은 16%를 득표한 앨버타 주와는 정반대.
2019년 연방 총선에서도 총 의석 78석 중 자유당이 35석, 보수당이 10석, 퀘벡 블록이 32석, 신민당이 1석을 차지하며 진보 진영이 강세를 보였다. 득표율은 자유당 34.2%, 보수당 16%, 퀘벡 블록 32.5%, 신민당 10.7%, 녹색당 4.5%, 인민당 1.5%. 특기할만한 사항으론 2010년대 자유당과 신민당에 지지 기반 다 뺏기면서 군소정당으로 몰락했던 퀘벡 지역 정당 퀘벡 블록이 다시 부활했다는 점이 있다.

[image]
2018년 주 선거 선거구별 결과. 파란색이 퀘벡미래연합, 붉은색이 퀘벡 자유당, 주황색이 퀘벡연대, 민트색이 퀘벡당.
그러나 주 선거에선 예전같지는 않은지 2018년 주 선거에서는 자유당과 퀘벡당이 망하고, 보수당과 제휴를 맺고 있는 퀘벡미래연합이 의석수 기준 단독 과반을 채워 집권했다. 다만 보면 알겠지만 득표율 기준으론 여전히 진보 진영이 많이 앞서긴 했다. 즉, 퀘벡미래연합이 분열 효과를 톡톡히 본 셈. 한편, 이전엔 한자릿수 지지율을 보였던 퀘벡연대[13]는 이 선거에선 16%의 득표율을 얻으며, 기존 3석에서 10석으로 의석이 늘어나는 등 상당히 선전했다.
2020년에 들어서 소선거구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퀘벡 주 주 의회 선거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당 미래연합의 선거개혁안은 80명은 기존처럼 가지지만 나머지 45명을 비례대표 선출하자는 것이다. 이는 초과연동을 제외하면 스코틀랜드, 웨일스 자치의회 선거방식과 비슷하다.

7. 분리주의




8. 문화



8.1. 종교


언어 외에 퀘벡을 특징짓는 요소는 가톨릭이다. 종교적 다양성과 세속화가 가속화되는 현재로서야 지금은 그 특징이 많이 약해졌지만, 퀘벡은 서구 사회 중에서도 상당히 늦게 근대화가 이루어져서 20세기 중반까지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삶의 전반에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던 곳이었고, 개신교 세력이 지배적이었던 미국과 영국령 캐나다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이라는 점은 퀘벡의 정체성 중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퀘벡의 지도를 놓고 보면 생(Saint)이나 생트(Sainte)로 시작하는 지명이나 거리 이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성인(聖人)의 이름에 의탁함으로서 거친 퀘벡을 개척해 나가려고 한 과거 이주민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퀘벡의 최대 공휴일은 바로 세례자 요한의 축일인 6월 24일이다. 퀘벡 주에서는 수호성인이라는 점도 있거니와 해당 축일이 바로 한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 퀘벡인들에겐 더욱 각별하다. 비록 1960년대 퀘벡의 현대화 과정에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 감소와 세속화로 말미암아 이 날의 공식명칭은 민족의 축제(La Fête Nationale)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세례자 요한 축일이라고 널리 불리고 있다. 캐나다 국경일에도 쉬긴 하는데 이들에게는 그냥 쉬는 날일 뿐, 이 날에 이사 등을 한다.
2010년 10월 17일, 앙드레 베세트(André Bessette) 수사가 캐나다 최초의 성인, '몬트리올의 성 안드레아'로 시성되었다. 축일은 1월 6일.

8.2. 식문화


퀘벡의 독자적인 식문화라 부를 만한 문화는 없다고 봐도 좋다. 프랑스 식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바게트포도주, 치즈 등이 더 많이 소비되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기름지거나 단 음식, 육류가 많은 것이 특징. 그리고 메이플 시럽(Sirop d'érable)의 최다 생산지이기도 하다. 프랑스어권임에도 캐나다 타 지역처럼 북미권 특유의 투박하면서 기름진 느낌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아침식사부터 계란에 베이컨을 곁들이는 등 영어권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프랑스 본토의 아침식사가 크루아상이나 초코빵에 커피로 땡인 것과 대조적이다.
[image]
푸틴(Poutine). 1950년대 퀘벡의 농촌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감자튀김체다 치즈와 그레이비 소스를 끼얹은 단순한 음식. 맥도날드에서도 맥푸틴(푸틴)을 팔 정도로 인기가 있다. 맛은 그레이비의 질에 따라서 천차만별. 물론 칼로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대개 1,400~2,000 kcal정도다.
[image]
빵 사이에 훈제한 고기만 잔뜩 끼운 몬트리올 스타일 스모크드 미트 샌드위치. 위 사진은 Schwartz's Deli 라는 몬트리올에서 가장 오래된 80년 된 가게의 사진이다.
[image]
크리스마스에 주로 먹는 고기파이 투르티에르(Tourtière)
[image]
디저트로 먹는 설탕 파이.
특이하게 거위보다는 오리 푸아그라를 사용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고열량 음식들이 많고 디저트를 즐겨먹지만 캐나다 전체에서 비만률이 제일 낮은 주로 뽑혔다. 링크.

8.3. 이민


신대륙답게 이민 유입 인구가 많다. 덕분에 낮은 출산율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아주 서서히 증가하는 중. 2011년에는 8백만에 달한다고 한다. 주로 이민을 받는 나라는 프랑스어가 널리 쓰이는 나라인 모로코, 알제리, 그리고 프랑스. 왠지 프랑스인들에게는 '프랑스(특히 파리)보다 덜 시끄럽고 더 느긋하게 살 수 있으면서도, 월급은 두 배(!)나 높은 곳'으로 이해되고 있는 듯. 특히 유학도 많이 오는데 몬트리올 대학교의 경우 특히 상경, 이공계의 경우 전체 학생의 30% 가량이 프랑스 국적 학생들로 채워져서 교육 당국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상경은 HEC 몬트리올, 이공계는 에콜 폴리테크닉인데 심지어 이 두 단과대는 '''그랑제콜''' 협회에도 가입되어 있다. 협정에 따라 세금을 한 푼도 안 낸 프랑스 국적의 학생들도 퀘벡 주민들과 같은 학비를 납부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국에서 500명만 입학 가능한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낙방한 학생들의 경우 다른 그랑제콜이나 일반 대학으로 진학하기 보다는 몬트리올 대학 진학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공동 학위 과정이 있기도 하고, 영어가 주류인 북미에서 유학했다는 자체가 학벌을 중요시하는 프랑스 내에서는 큰 메리트이기 때문. 결국 2015년 퀘벡 주로 유학 온 프랑스 학생들도 퀘벡 주민들이 내야 하는 등록금의 3배를 내야 하지만 여전히 캐나다 국적이 없는 외국인들이 내야 하는 등록금의 '''반값'''이라 원성을 사는 중이다. 기사.[14] 이 때문에 퀘벡인들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15] 등 타 주 대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이민 유입은 주로 몬트리올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퀘벡 주 전체를 놓고 보자면 다른 주에 비해 이민인구 비율은 꽤나 낮은 편이다. 특히 지방으로 가면 신대륙답지 않게 거의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상당히 동질적인 인구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흔히 퀘벡 사람들은 몬트리올이 '국제적인 도시'라는 인상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몬트리올이 북미의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더 국제적이거나 다채로워서 그렇다기보다는 퀘벡 주 안에서 상대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퀘벡 본토인들에게 그렇게 느껴지는 탓일 가능성이 크다.
캐나다가 으레 그렇듯 한국인 이민도 꽤 있으나 프랑스어가 필요하다는 언어 문제로 밴쿠버토론토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 그리고 얼마 안 되는 한국인들도 프랑스어를 배우기보단 영어만 쓰면서 산다. 그러나 몬트리올에서 살면서 프랑스어를 못한다면 알게 모르게 무시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영어를 못하고 프랑스어만 쓰는 사람들은 많아도 프랑스어를 못하고 영어만 쓰는 몬트리올 사람은 잘 없기 때문이다. 어떤 한국인 이민자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별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프랑스어 구사 여부라고도 한다. 몬트리올에 이민 온 예전 중국인 이민 세대는 영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도움이 되는 프랑스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2012년 들어 퀘벡 정부가 이민법을 강화해 프랑스어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신규 이민자들은 프랑스어를 아주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예전 세대들보다는 좀 더 잘하는 수준이 되었다. 프랑스어만 잘하면 이민이 오히려 쉽게 되어서 프랑스 쪽에서 건너온 한국인도 늘고 있는 추세.
2019년 르고 정부는 Loi 9을 통과시켜 16,000건의 이민 신청서들을 취소시켰다.#

8.4. 스포츠


캐나다의 묻지마 아이스하키 사랑은 기본이고, 아이스하키의 발상지가 퀘벡 맥길 대학교[16]라, 주의 최고 인기팀은 단연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이다. 현지 사람들은 대부분 별명인 '''햅스'''(Les Habitants을 줄인 말)로 부른다. 또한 주도 퀘벡 시에 한때 레 노르딕 드 퀘벡이라는 NHL 팀이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퀘벡 시를 떠나 콜로라도 애벌랜치가 되었다. 그 중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어권 지역이라 선수수급과 관중동원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였다는 카더라가 있다. 그러나 상당수 선수들이 비프랑스어권 선수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 합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매츠 선딘, 조 새킥, 그리고 페터 포스베리 등은 한때 퀘벡 노르딕스에서 스타 플레이어들로 명성을 쌓았던 비프랑스어권 선수들이다. 또한, 아이스하키계에서 유독 뛰어난 골텐더를 많이 배출하는 주가 퀘벡 주이다. NHL 역사상 최고의 골리로 평가받는 햅스 레전드 파트릭 루아(Patrick Roy), 뉴저지 데블스의 NHL 통산 최다승, 최다경기, 최다완봉 기록 보유자 마르탱 브로되르(Martin Brodeur)등 퀘벡 출신 골리들의 NHL에서의 활약상은 다른 주나 다른 국가를 압도한다. 이는 파트릭 루아를 통해 완성된 이른바 퀘벡 버터플라이라는 하나의 골텐더 수비 방식으로 전승될 정도.
몬트리올의 경우는 퀘벡 주 최대 도시고 빅 마켓이라 MLB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존재했다. 하지만 2004년 재정문제로 팀이 매각되어 미국으로 팔려가 워싱턴 내셔널스가 되었다. 엑스포스가 떠난 이후 햅스 외의 미국 4대 스포츠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외에는 MLS앵팍트 드 몽레알, CFL의 몬트리올 알루에츠가 있다.
또한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재정부담으로 올림픽 개최 후유증을 크게 겪기도 했다.

9. 경제


경제의 중심지는 몬트리올이다.
게임 제작 및 유통회사인 유비소프트는 본사를 프랑스에 두고 있지만 게임 개발을 맡은 유비소프트 몬트리올, 유비소프트 퀘벡 등은 각 이름에 맞는 퀘벡 주의 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퀘벡은 대체에너지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기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대체에너지산업에 1980년대부터 투자해왔다. 덕분에 퀘벡의 총 대체에너지 생산량은 중국, 브라질, 미국 다음가는 4위이고, 퀘벡의 1년 전기생산량의 98%가 대체에너지에서 나온다.#

10. 주요도시


  • 몬트리올(Montréal) : 퀘벡 주의 최대도시. 프랑스어 발음은 몽헤알에 가깝다. 퀘벡 주 내 인구 1위 도시
  • 퀘벡(Québec) : 퀘벡 주의 주도이며 퀘벡 주 내 인구 2위 도시
  • 가티노(Gatineau) : 오타와 연방수도 광역권에 들어가는 접경 위성도시, 퀘벡 주 내 인구 4위 도시
  • 셔브룩(Sherbrooke) : 미국 국경으로부터 1시간거리에 위치한 국경도시이다. 퀘벡 주 내 인구 6위 도시
  • 사그네(Saguenay) : 퀘벡 시티로부터 약 200km 거리에 위치한 도시로 생쟝호수 일대에서 최대도시이다. 종키에르(Jonquière)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퀘벡 주 내 인구 8위 도시
  • 트루아 리비에르(Trois-Rivières) : 몬트리올, 퀘벡, 셔브룩 등 주내 상위 1, 2, 6 도시권들의 정중앙에 위치한 교통 요충지, 퀘벡 주 내 인구 9위
  • 시쿠티미(Chicoutimi)
  • 라발(Laval) : 몬트리올 광역권의 도시
  • 롱괴이(Longueuil) : 몬트리올 광역권의 도시
  • 센느테르 (Senneterre)

11. 유명인


아직은 퀘벡이라는 곳이 나라가 아니라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곳이기도 하고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쓴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꽤 있기에 퀘벡인이 외지에서 유명해지면 그냥 '캐나다인' 아니면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퀘벡 하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유명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어느정도 유명한 퀘벡인을 몇 명 뽑아보자면.. 기욤 패트리!

11.1. 음악가


퀘벡이 낳은 몇 안 되는 세계적인 스타. 소위 세계 3대 디바이자 한국에선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을 부른 가수로 유명하다. 당연히 한국에선 팝송 가수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퀘벡 및 프랑스어권에선 프랑스어로 노래한다. 물론 이외 지역에서는 영어로 노래를 부르며, 실제 영어 실력도 유창하다. 그래서인지 퀘벡인인지 아는 사람도 드물며, '디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북미에서의 활동 못지않게 프랑스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며 인기가 좋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셀린 디옹이 말하는 퀘벡 프랑스어가 프랑스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양으로,[17] 종종 프랑스 코미디언들에게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 레진 사샤뉴
아케이드 파이어의 멤버. 아이티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뉴에이지 작곡가. 첫날처럼(Comme au premier jour), 조용한 날들(Les Jours Tranquilles), 바다 위의 피아노(Un Piano Sur La Mer) 등으로 유명하다. 이쪽은 왠지 프랑스인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뉴에이지 음악가로 레바논 이민자 2세 출신이다. 다만 이름은 영어식인 것이 아이러니하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수퍼 비르투오소로 테크닉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피아니스트이며 Circus Galop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 프랭크 밀스(Frank Mills)
피아니스트. 한국에서는 80년대 뉴스데스크 날씨예보 삽입곡인 'Music Box Dancer'로 유명하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몬트리올 쁘띠 부르고뉴 출신이다.
  • 맨 아이 트러스트(Men I Trust)
2014년,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결성된 3인조 인디밴드이다. 구성원인 Jessy Caron, Dragos Chiriac, Emma Proulx 세 명 모두가 퀘벡 출신이다. 2019년 발매한 정규음반 'Oncle Jazz'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이 꽤나 생겼으며, 2019년 여름에는 내한하기도 했다.
1994년,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결성된 록밴드이다. 포스트록 계의 명반, 'Lift Your Skinny Fists Like Antennas to Heaven(2000)'으로 유명하다.

11.2. 스포츠 선수


  • 펠릭스 랑젤: (前) 오버워치 리그팀 댈러스 퓨얼 소속 메인탱커, 2017 오버워치 월드컵 캐나다 소속인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11.3. 영화계 인물


프랑스 문화권이 지배하고 있는 퀘벡이다 보니 영어권계 캐나다 영화계와 다른 퀘벡 영화라는 게 있다. 물론 캐나다 특성상 영어권 캐나다 영화계하고도 교류가 있는 편.
고전 배우. 서부영화나 전쟁영화 등에 자주 출연했다. 슈퍼맨의 아버지 역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성을 보면 알겠지만 프랑스계 퀘벡인은 아니다. 영국계 퀘벡인이라는 특이한 케이스고 어릴때 미국으로 넘어가 데뷔한 1939년 미국 시민권을 따서 퀘벡 특유의 프랑스 이미지가 없다.
그을린 사랑과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로 유명해진 감독.
퀘벡 출신 배우 겸 감독. 호러 팬들에게는 프랑스 호러 영화인 《마터스》에 나온 걸로 유명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유대인 이민자 3세다. 영국계 퀘벡 문화권에서 성장했다.[18]
글렌 포드처럼 영국계 퀘벡인이다. 다만 포드와 달리 영어권 캐나다 영화 쪽으로 활동이 많은 편이다.
영화 감독. 그의 장편 데뷔작부터해서 지금까지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에서도 꾸준히 소개되어 왔다.

11.4. 정치인


캐나다의 15대 총리. 현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19]의 아버지이다.

11.5. 기타 연예계


  • 도미니크 노엘
2000년대 KBS 예능 프로 미녀들의 수다에 캐나다 대표로 출연했던 도미니크는 몬트리올 출신으로, 현재는 연세대 유학을 마치고 캐나다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다.
[1] 온타리오,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과 함께 가입.[2] Lieutenant-gouverneur du Québec. 캐나다 총독(gouverneur général du Canada)이 임명하므로 'Lieutenant'가 들어간다. 명목상 주를 대표하는 직책이지만 실권은 없다.[3] 퀘벡시와 구분하는 유일한 방법은 관사의 유무이다.[4] 준주까지 포함하면 누나부트가 가장 넓다.[5] 그러나 실제로는 /kwibék/, '퀴벡'에 가까운 발음을 한다.[6] 이 표어를 언급하며 퀘벡에 대해 비꼬며 이제 그만 좀 털어내라는 등, 섬뜩하다는 식의 대사가 있다. 이 표어가 단순히 퀘벡의 선조를 기리겠다는 메세지로 받아들여졌으면 저런 리액션이 나올 이유가 없으며, 영어권 캐나다인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7] 보통 다른 캐나다 영어 주 번호판에 적히는 문구는 굉장히 비(非)정치적인 메세지들이다. BC주의 Beautiful British Columbia, 온타리오의 Yours to discover , 앨버타의 Wild rose country 등 뭔가 자연 친화적 혹은 모험적 요소를 강조하는 반면 이런 섬뜩한 역사적 원한을 언급하는 주는 퀘벡이 유일하다. [8] 이런 식으로 두 개의 정체성을 놓고 어느 쪽을 더 강하게 인식하는지 물어서 설문 대상자들의 정체성 인식에 관해 통계를 내는 것을 모레노 설문(Moreno Question)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사회학자인 루이스 모레노 페르난데스(Luis Moreno Fernández)가 1986년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처음 시도했기에 모레노 설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9] 반대로 퀘벡 주에도 영어를 쓰는 캐나다인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몬트리올이나 퀘벡시 같은 대도시의 경우는 프랑스어가 일상적이긴 하지만 영어도 통용된다. (다만 지역 분위기상 프랑스어를 쓰면 좀 더 친근하게 대하는 점은 있다고.) 다만 시골에선 프랑스어가 압도적이다. 아래 글렌 포드가 퀘벡 주 출신 영어계 캐나다인이다.[10] 주로 온타리오주의 핵심경제영역에서 벗어난 북부 중앙지역 일대에 거주한다. 대표적으로 서드버리(Sudbury)와 수세인트마리(Sault Ste. Marie)등의 도시들에서 온타리오 프랑스계 커뮤니티가 소수 명맥을 잇고있다.[11] 다만 미국에서 퀘벡 접경 지역들(예를 들어 뉴욕 주 북쪽 끝부분)은 퀘벡의 영향을 받아 역으로 프랑스어를 자주 볼수 있는 동네다. 뉴욕 주의 플래츠버그 시만 해도 영어/프랑스어 사인을 공용한다. 여기는 사실 가장 가까운 대도시가 몬트리올이라서 (고작 90 km 남짓 떨어져있다) 몬트리올의 영향이 크다.[12] 캐나다는 연방국가로 연방의회 선거와 주의회 내 선거가 따로 행해지며, 주의회 내 당도 연방정당과 따로 존재한다. 이러다 보니 지역 제휴정당이 없는 주도 있거나 지역정당 이름에 진보가 들어가는데 정작 실제 이념이 보수당과 가까운 경우도 생기는 편. 매니토바, 온타리오 주의 보수정당 이름이 '''진보'''보수당이다. 다만 주 내에서는 보수당 출신의 모리스 뒤플레시가 새로운 보수정당인 국가연합당을 창당, 연방 보수당과의 관계를 단절 후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해 퀘벡의 암흑기(Grande Noirceur)를 이끌게 된다. 심지어 카톨릭 교회와의 유착이 심각해 대놓고 "천국은 파란색(국가연합당), 지옥은 붉은색(자유당)" 식의 색깔론 드립을 치기도 했다.[13] 신민당과 제휴 관계를 맺고 있지만, 신민당보다 급진적이며, 프랑스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멕시코의 국가재건운동과 스탠스가 비슷하다.[14] 바로 아래 뉴욕 주에서는 퀘벡 주로 잘 안 오는데, 일단 선택 가능한 대학이 많다.[15] 여기선 아예 몬트리올 대학교는 유럽언어기준 B1~B2 프랑스어 실력이 있어야 교환수업이 가능하다.[16] 농구의 발상지로는 캔자스 대학교가 있다.[17] 밑에 언급된 기욤 패트리도 이 때문에 비정상회담에서 '이건 프랑스어가 아니다'는 디스를 당했다.[18] 그가 다닌 웨스트 힐 고등학교는 영어 몬트리올 학교 연합에 속해있다.[19] 아버지가 현직 총리일 때 태어난 고로 출생지와 유년기 성장지는 온타리오 주 오타와이지만, 현재 국회의원 지역구는 몬트리올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