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태권도연맹

 


국제태권도연맹
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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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계
최중화계
트란콴계
오창진계
설립일
1966년 3월 22일
주소
[image] 오스트리아 Draugasse 3 (Draugasse 3, 1210 Vienna, AUSTRIA)
[image] 영국 런던 미들섹스 유슬리 High 거리 192 1층 TKD 센터 (TKD Centre, 1st Floor, 192 High Street, Yiewsley, Middlesex, London, England)
[image]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 알리칸테 주 베니도름 시 (Mercado Street No.3, 03501 Benidorm, Benidorm)
[image]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151
(역삼동 642-19 역삼하이츠빌딩 1914호)
총재
[image] 리용선
[image] 최중화
[image] 폴 와일러
[image] 오창진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역사
3. 상세
4. 틀
5. 역대 총재
6. 미디어
7. 기타


1. 개요


국제태권도연맹(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ITF)은 1966년 3월 22일에 설립된 최초의 국제적 태권도 조직이다. 태권도의 초대 사범들 가운데 한명인 최홍희에 의해 설립되어 최홍희가 종신으로 총재직을 맡았다. 한때 최홍의 본인의 노력과 북한의 도움으로 북미와 공산권 국가에 제법 퍼지기도 했지만 이후 남한의 태권도가 올림픽 공식 종목이 되며 대세가 되면서 ITF 태권도는 북한을 제외하면 크게 힘을 잃고 있다. 그래도 한동안은 주류인 WT와는 별도로 해당 지역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최홍희 총재 사후 파벌 싸움으로 여러 단체로 나뉘게 되면서 급속도로 힘을 잃고 있다.
간혹 '북한태권도'라는 명칭으로 자주 불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최홍희 문서만 봐도 국제태권도연맹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냥 남한태권도의 옛 국제기구일 뿐이며 최홍희와 다른 태권도 사범들 간의 불화로 나눠게 되면서 WT와 ITF가 공존하게 되었을 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원래 초창기의 태권도는 국내에서의 태권도의 보급을 맡은 대한태권도협회와 해외에서의 태권도의 보급을 맡은 국제태권도연맹밖에 없었고, 대태협에서 모종의 사연으로 최홍희를 사실상 허울 좋은 유배지나 다름없는(당시 태권도의 해외 인지도는 듣보잡이었으니까) 국제태권도연맹으로 유배 보냈고 정치적인 사유로 최홍희를 국내에서 추방한 후, 태권도의 올림픽 진입을 위한 새로운 국제기구 세계태권도연맹(WT)를 대태협에서 독립시켜 새로 만들었으나 이들이 모르는 사이에 최홍희의 뛰어난 무술장사 수완으로 국제태권도연맹이 의외로 너무 커져 버려서 어정쩡하게 태권도의 국제기구는 두 단체가 공존하게 되고, 현대사의 복잡한 사연과 최홍희가 북한에도 태권도를 전파해야겠다(즉 남한의 무술을 같은 민족인 북한에도 전파해야겠다)는 희대의 악수를 두면서 WT는 남한, ITF가 북한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게 된 것.
이런 시각은 최중화 계열에서 바라본 시각이고, 장웅 계열과 트란콴 계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좀 얘기가 달라진다. 장웅계열에선 일반적으로 아는 북한태권도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북한이 종주국이라 홍보하며, 트란콴계열에선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캐나다의 무술이란 의식이 강한 편이다.
ITF는 엄밀히 말하면 '옛날태권도'라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WT처럼 스포츠화하는 것도 거부하고, 강진회관처럼 실전에 집착해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킥복싱에 가깝게 개혁하는 변화도 반대하는, 말 그대로 이승만 시절 군대에서 천지형, 원효형하던 시절 태권도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최대한 실전에 걸맞게 개선해 나가는 굉장히 보수적인 단체이다. 가라데로 치면 쇼토칸[1]과 흡사하고, 브라질리언 주짓수로 치면 올드스쿨[2]과 비슷한 느낌의 단체. 실전을 표방하는 태권도 단체들이 손기술은 그냥 복싱과 거의 똑같은 데에 반해, ITF 계열(특히 장웅계열)은 정권지르기나 얼굴막기 등 가라데에서 비롯한 태권도의 손 기술과, 뒤돌려차기내려차기 등 옛날 태권도의 스포츠화되기 이전의 실전적인 발기술을 최대한 보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 역사


  • 태권도/역사 - 국제태권도연맹(ITF)과 세계태권도연맹(WT)의 시각 차이 이외의 역사는 여기에.
  • ITF내부에 관한 것은 최중화 계열의 ITF 본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하나 장웅 혹은 트란콴 계열에서 다르게 사용하는 용어가 있거나 규칙이 다른 점이 있다면 같이 서술한다. 최홍희 사후 하나의 ITF에서 분열된지 오랜 시간이 흘러 기술명이나 맞서기 규칙 등이 계열간 차이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돌려차기로 예를 들면, 일본에서 활동하는 황수일 사현[3]으로 대표되는 장웅 계열에서는 회전력을 이용하여 WT에서 보이는 것처럼 찬다고 가르치나 최중화 계열에서는 몸을 측면으로 돌린 상태에서 앞을 찬다는, 직선을 강조한 움직임을 가르치는 스타일 차이를 보인다.
현재 정통성을 가진 태권도 단체는 WT지만, 설립자체는 대한태권도협회-ITF 쪽이 먼저 설립되었다. 물론 당연히 현존하는 조직인 대태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태협은 최홍희가 창설하고 회장직을 맡았던 시절의 대태협이다. 이유는 후술하겠지만 현재의 대태협은 최홍희 회장 시절을 흑역사로 여긴다. 대태협이 1959년도에 최홍희의 주도로 설립되고 이후 1961년도에 대한태수도협회로 재창설했는데, 이는 회장인 최홍희가 말레시아 대사로 해외근무를 하는 동안 최홍희와 의견 불일치를 냈던 관장들이 주도하여 멋대로 재창설된 것이다. 결국 해외 근무에서 돌아온 최홍희 총재가 재취임하여 3대 회장이 되었다. 최홍희 총재가 차후에 설립한 ITF는 초기 대태협을 창설했던 최홍희 총재의 목표와 정신이 그대로 계승된 조직이다.
WT가 ITF를 제치게 된 것에는 내막이 있는데, 태권도를 창시한 초기 멤버들[4] 한 사람이자[5] 당시 국군 장성이던 최홍희가 군 시절 아랫직급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다가 밀려나면서 캐나다로 망명을 떠나게 된 것에서 기인한다. 최홍희는 1959년 9월 3일에 대한태권도협회를 창설했고, 명칭 등 다른 5대관 관장들과 마찰을 빚어 회장직에서 물러나 1966년도에 한국에서 국제태권도협회를 창설했다.[6] 최홍희는 캐나다로 망명하는 과정에서 국제태권도연맹 본부 역시도 한국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옮기고, 그곳을 기점으로 북미, 유럽, 일본 등에서 ITF 도장을 개관한다. 이에 한국 정부에서 기존의 최홍희 총재의 흔적을 싹다 밀어버리고 새로이 만든곳이 바로 WT이다.
북한일본에는 1980년대에 ITF 태권도가 보급되었는데, 한국의 고유 무술이라는 면을 내세워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북한과 일본의 재일교포들(특히 조총련계)을 중심으로 보급된지 얼마 안 돼서 빠르게 유능한 사범들을 배출해내기 시작했다.
극진공수도와의 관계도 약간 있다. 극진 가라테는 최배달이 창시한 근대 무술로, 태권도와 마찬가지로 가라테에 기반했다. 극진 가라테는 전통 가라테와 달리 실전 가라테를 추구하는, 새롭게 창시된 유파이다. 최홍희와 최배달 생전 둘은 태권도와 극진 가라테의 교류를 논하기도 하였으며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통합까지 고려했었다고. 하지만 최배달이 한국에 체류하면서 봤던 태권도인들의 무도의 본질에서 벗어난 밥그릇 싸움에 부끄러움을 느껴 그가 그대로 일본으로 돌아가버리면서 통합은 물거품이 되었다. 다만, 태권도의 국내 보급을 위해 최배달의 생애 동안은 한국에 극진가라테를 보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최홍희 사망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장웅 IOC 위원과 최홍희의 아들 최중화가 서로 ITF의 정통 총재라고 주장하며 분열되어 있다. 속사정이 상당히 복잡한데, 여러가지 사건들을 짧게 정리해보자면 일단은 최홍희 총재는 임종까지 차기 총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지목하지 못했다. 이후 유언으로 장웅을 차기 총재로 지목을 하게 되고, 임시총회를 열어 총재에 선출된다. 이게 좀 정황이 석연찮아서 ITF내에서도 말이 많다.[7] 최중화 측과 반 장웅 쪽은 유언이 조작된 가능성을 제기하는 중. [8]
여기다가 북미 지부장이었던 트란콴까지[9] 따로 살림을 차리고 나갔다.[10]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랜기간 최중화계에서 사무총장을 맡아온 오창진이 자금 횡령으로 결국 제명당하고 자신들을 따르는 세력을 데리고 또 하나의 ITF를 세웠다. 오창진계 ITF는 ITF HeadQuater(줄여서 HQ)라고 자칭하고 있으며 기존에 최중화계에서 운영하던 틀 투어 프로그램[11]과 역시 마찬가지로 기존 최중화계에서 운영하던 무신이라는 무술 잡지사를 가지고 나가서 운영하고 있다. 오창진이 ITF를 독자적으로 세웠지만 그가 직접 총재 자리에 오르진 않고 총재대행 사무총장직을 유지중으로 총재직은 공석이었으나 2016년 4월 3일에 러시아에서 회의를 열고 총재에 올랐다. # 독립한 이후 최중화계와 서로 신나게 영업방해로 고소미전을 펼치는 상황이다. 1심에서 오창진계가 패소하여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외에도 계파들간에 상표권 분쟁 등등 여러 법적인 공방이 이어졌다. 2000년대 초중반 트란콴계에서 최중화계에 상표권으로 소송을 걸었으나 패배했고, 얼마전엔 오창진계와 최중화계가 서로 공방을 펼치다가 최중화계가 패배했다.
그에 비해 장웅계는 현재 조용한 행보를 보이는 상태. 오창진계는 DOA5의 릭의 모션캡쳐를 맡은 카타오카 토모야스 사범의 스승이자 슈퍼코리안에도 등장한적이 있고 일본 ITF 4대 천왕으로 불렸던 이종목(현 구로중앙도장 및 사무장의 스승)이 최중화계에서 제명당하고 오창진계로 옮겼고, [12] 점점 세력을 불려나가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장웅계는 북한, 최중화계가 남한, 트란콴계가 캐나다 태권도에 가깝다 보면 된다. 그리고 일본은 장웅계가 쪽수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긴 하지만 장웅계와 최중화계(엄밀히는 오창진계일 가능성이 높다)가 혼재되어 있고, 중국은 과거 대부분 장웅계였다가 최근에 올림픽버프로 WT도 많이 진출해 있고, 장웅계 중 WT로 간판만 바꾼 도장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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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계의 도복[13]
트란콴계의 도복
계열별로 도복은 거의 똑같긴 하지만, 트란콴계는 특이하게 사현 이상부터는 팔다리의 검은 선이 굵은 한 줄에서 얇은 두 줄로 바뀐다.
트란콴계는 이것 말고도 다른 단체와 대단히 많이 달라졌는데, 그 차이가 거의 일본 고류 유술이 브라질식으로 현지화된 BJJ급이다. 기술명칭은 거의 한국어만 고집하는 일본 ITF와는 달리 캐나다의 트란콴계열은 명칭도 WT처럼 전부 영어로 통일하고, 심지어 독자적인 승단체계를 갖고 있는데, 송판을 고정시키는 전용 보드홀더에 (짜맞춰서 재활용이 가능한) 조립식 송판을 여러 장 세워놓고 격파하게 시키는 승단종목이 있는데, 'Powerbreaking'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유튜브에 찾아보면 여러 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외에 이미 한국을 비롯해 세계에서 저 세개에서 떨어져나온 군소분파들이 존재한다. 서울의 진엄회관과 수신회관, 부산에 극한회관이 존재한다. 진엄회관은 장웅계에서 분파했고 극한회관은 트란콴계에서 분파하였고 수신회관은 최중화계 출신 사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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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캐나다나 일본, 북한식 ITF와는 다른 '한국화'가 진행 중인데, 수신회관은 기존의 ITF룰에 낮은데 차기를 허용하며 얼굴에는 강화플라스틱 보호구를 차용하여 수련자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으며, 극한회관의 경우 로우킥, 각종 유술기를 넣은 극한회식 룰을 만들어 MMA처럼 대련해보기도 하며 최근엔 6단 이상부터 맨다는 유도식 홍백띠도 도입했다.
그리고 앞의 두 단체보다 오래된 '정통국제태권도연맹'이라는 분파가 존재한다. 약자는 'O-ITF'이며 총재는 최홍희 총재의 제자였던 조대성 목사. 그리고 2006년에 최홍희 장군 생전 ITF에서 6단을 받은 정순천 사현이 새로운 ITF를 발족시켰다가 결국 망했고 이후 2010년, 태권도 원로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단체 세계태권도선구자연합회(WTA)의 후원으로 ITF동호회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그 ITF동호회 역시 시원하게 망했다. 결국 지금은 캐나다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중.
현재 장웅, 최중화, 트란콴의 세력크기는 각각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장웅계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자신들과 트란콴계가 49:51로 사실상 양분하고 있으며 최중화계는 세력이 거의 미미하다고 주장하고, 트란콴계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자신들과 장웅계가 70:30 정도로 세력을 갖고 있으며 역시 최중화계는 세력이 거의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중화계는 자신들의 세력이 가장 크다고 주장하며 사실상 자기들 위주로 ITF가 통합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어느쪽을 믿을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고로 사실상 ITF는 크게는 삼분열, 자세히 보자면 사분오열 되어있는 상태이다.
ITF가 현재까지도 한국에서 북한 태권도로 알려진 이유는 ITF를 창설한 최홍희와 연관이 있다. 최홍희가 캐나다로 망명을 가고 ITF연맹이 동유럽에 진출한 뒤로, 최홍희 총재가 친북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자 북한은 최홍희 총재를 중심으로 한 ITF를 밀어붙였다. 후계도 북한 쪽 장웅이었다. 반면 남한은 최홍희의 친북 성향으로 인해 분열된 ITF와 국내 잔여 인프라를 통합하여, WT를 창설한 뒤, 북한과 경쟁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ITF가 북한과 친해지자 박정태 사범은 ITF를 떠나고 세계태권도연맹(GTF, Global Taekwon-Do Federation)[14]을 창설한다. 그러나 이후 체제경쟁에서 한국이 승리하고 태권도 세계의 헤게모니도 한국이 가져갔기 때문에 생긴 여유와 사회가 변화했기 때문에 ITF 태권도 역시도 다시금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가 가능해졌다.[15]
최중화는 한국을 방문하여 자신을 따르는 ITF 세력과 WT를 통합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WT 측에서는 IOC 위원인 장웅 측과 접촉했었던 적이 있었고 이는 지지부진한 논의 끝에 통합건은 중단된 상태. 실제로 정치적인 고려를 제외할 경우 WT와 ITF의 규모의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에 '통합'보다는 WT 산하로 '흡수'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16]
2018년 11월 남북한의 화해 무드에 힘입어 WT와 ITF(장웅계)통합 의지를 밝혔고, 2018년 안에 공동기구 창립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필두로 한 합동 시범출현과 각 연맹의 경기 규정으로 진행하는 경기대회의 공동주최를 꾸릴 예정이라고 한다. #

3. 상세


보통 ITF측의 태권도를 WT 측의 태권도와 구분하기 위해 'ITF 태권도' 라고 부른다. 정식 명칭은 '태권-도'. 영문 표기는 Taekwon-do이다.[17] 하지만 인지도상 태권도라고 부르면 보통 WT 태권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ITF 태권도 수련생들도 보통 ITF 태권도. 혹은 그냥 ITF라고 칭한다. ITF 시합에서는 WT보다 자유로운 손기술을 권장하며, WT 시합과는 다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도 허용된다.[18] 본격적으로 손을 쓰기 때문에 WT와는 달리 복싱처럼 손에 글러브를 착용한다. 안면 가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식 경기에서는 허용되진 않지만 일반 경기에서 상호약속이 있거나 로컬 도장에선 수련생의 안전을 위해 헤드기어도 선택적으로 착용하기도 한다. 처음 수련을 시작하면 주먹 기술의 이해를 굉장히 높게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같은 측면에서 기술이 TF보다는 실전적이라는 평가가 많은데, 이는 WT와는 발전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WT는 스포츠화에 중점을 두고 안전하고 정형화된 '품새와 겨루기'에 초점을 두었고, ITF는 기본적으로 태권도는 개발당시부터 '무투' 라는 인식으로, 격투기로서 발전하기를 강조해 왔다.[19] 하지만 현대 ITF는 안전을 위해 안면 가격이 제한되어있는 극진공수도처럼 역시 상대방의 안전을 위해 공식 경기에서 주먹 기술도 3회 초과 연속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등의 이유로 사실상 두 태권도가 별반 다를 거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즉 두 태권도 모두 장단점이 있으니 무엇을 수련할지는 개개인의 기호에 따른 것이며 어느 태권도이든 어느 격투기이든 열심히 수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ITF 태권도의 가장 큰 특징은 운동원리이다. 사인웨이브라는 업 다운 시스템을 체계화하면서 가라데와는 완전히 다른 원리의 무술로 체계화 및 발전하였다.[20] 택견 특유의 굼실거림과도 닮아있고 태극권, 아이키도의 침추경과도 비슷한 이 움직임은 중심이 위로 갈때는 발차기를 하고 중심이 아래로 내려올 때는 주먹 등 손기술을 쓰기 용이하게 하는 움직임으로, 손 기술이 대부분이며 발차기는 몇개 할 수 없는 구조의 가라테 스타일과는 다르게 확실하고 효율적이게 태권도 수련자들이 발차기 기술들을 손기술들과 연속적으로 혼합하여 사용하게끔 만들어주며, 직선 공격위주인 가라테와는 달리 무게를 실어 옆에서 넘어오는 식의 타격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에는 WT에 비해 별로 알려져있지 않고, 근래에는 상당히 호전됐으나 이미 해게모니를 빼앗기고 이런 무술류들을 잘 안익히는 상황이라 사업확장이 용이하지는 않다. 단독으로 도장을 차린 경우는 매우 매우 매우 적고 [21][22][23] 문제는 제대로된 지도를 받기가 힘든 틈새 시장을 노리는 것 마냥 ITF 사범 자격증이 없는데 ITF 겸임/단독 도장이라고 뻥을 치는 비양심적인 업자들도 많아서 ITF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자이거나 어수룩한 사람들이 많이들 속아넘어가 시간과 돈을 버리고 있는게 현 ITF의 실정이다. 사실 ITF 뿐만 아니라 WT 태권도 도장이나 다른 격투기 도장/수련소도 이런 경우가 왕왕 있지만, ITF는 전체 도장수가 극소수라 이런 사기꾼들의 비율이 피부에 와닿을정도로 높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 제대로된 ITF를 수련받을 수 있는 방법은 이런 사기꾼들을 전부 풀어헤쳐내고 몇안되는 정상적인 지도자가 운영하는 도장을 찾거나, ITF 고단자이지만 자금 문제/개인 직업 문제로 도장을 차리지는 않고 일정 주기로 수련비를 모아 특정 장소를 빌려 열의를 갖고 찾아온 학생들을 서클 규모로 지도하는 젊은 사범들을 찾아내는 것 둘뿐이다. 굳이 근처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자신이 잘 아는 나이 좀 있는 북한이탈주민이 있다면 그 사람한테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북한군 전역자 출신이면 ITF 실력은 확실히 누구 가르쳐 줄 급은 될 것이다 .[24] 그렇기 때문에 WT에 비해 아동들이나 청소년들이 수련하기엔 거의 불가능하고 일정이상의 예산과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있는 성인들이나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의 ITF 수련자 비율은 성인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그나마 성인도 현실적인 상황들 때문에 꾸준히 수련하기는 힘들지만. 말하자면 본의치 않게 어른의 취미가 되어버린 셈이다.

4. 틀


WT의 태권도와 다르게[25] ITF는 품새를 이라고 부른다.[26]
각 틀의 명칭, 동작의 수, 연무선은 한국 위인의 이름이나 호를 따거나,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상징한다.[27]
모두 24가지 틀이 있으며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순서
이름
동작
급·단
설명
1
천지
19개
9급
문자 그대로 하늘과 땅이란 말인데 이것은 우주의 창조와 인간의 시초를 뜻한 것으로서 초심자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틀이다. 그리고 연무선(+)을 두 번 돌게 한 것은 한번은 하늘을 그리고 또 한번은 땅을 각각 의미한 것이다.
2
단군
21개
8급
기원전 2333년조선을 창조한 전설에 가까운 단군성조를 뜻한 것이다.
3
도산
24개
7급
평생을(1876-1938) 조선독립운동과 학계에 헌신한 안창호 선생의 아호를 딴 것이다.
4
원효
28개
6급
686년 신라불교를 전수한 원효대사를 뜻한 것이다.
5
율곡
38개
5급
조선의 철학가이자 학자인 이이(1536-1584) 선생의 아호를 딴 것으로서 38개 동작은 그가 탄생한 지역위도를 그리고 연무선(士)은 선비를 각각 의미한 것이다.
6
중근
32개
4급
조선 주둔 초대 일본인 총독이며 조일합병의 괴수로 널리 알려진 이등박문할빈역에서 처단한 애국자 안중근 의사를 뜻한 것으로서 32개 동작은 그가 1910년 려순감옥에서 순국할 때의 년령을 의미한 것이다.
7
퇴계
37개
3급
한학의 권위자인 대학자 이황(16세기) 선생의 아호를 딴 것으로서 37개 동작은 그가 탄생한 지역의 위도를 그리고 연무선(士)은 선비를 각각 의미한 것이다.
8
화랑
29개
2급
제7세기 신라시대에 청소년으로 구성된 하나의 군사단체로서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도를 뜻한 것이다.
9
충무
30개
1급
오늘날 잠수함의 모체로 알려지고 있는 거북선을 1592년에 발명한 리순신 장군의 시호를 딴 것으로서 이 틀이 왼주먹공격으로 끝마친 것은 넘쳐흐르는 충성심에 사로잡혀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다 발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순직한 것을 상징한 것이다.
10
광개
39개
1단
만주 대륙의 대부분을 포함한 모든 실지를 회복한 고구려 제 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을 의미한 것이다. 연무선(土)은 실지를 회복하고 또 강토를 넓힌 것을 표시하며 39개 동작은 그가 왕위에 오른 391년의 처음 두 수자를 뜻한 것이다.
11
포은
36개
1단
유명한 시조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를 읊은 고려 말기의 충신이자 물리학의 선구자인 정몽주(14세기)선생의 아호를 딴 것으로서 연무선(一)은 그의 변함없는 충절을 표시한 것이다.
12
계백
44개
1단
백제의 명장 계백장군(660)을 뜻한 것으로서 연무선(l)은 엄격한 군기를 표시한 것이다.
13
의암
45개
2단
3.1 독립운동(1919)때의 조선민족을 대표한 손병희 선생의 아호를 딴 것으로서 45개 동작은 1905년에 동학천도교로 개명선포할 때의 그의 년령을 의미한 것이며 연무선(l)은 조선민족의 번영을 위해 바친 그의 백절불굴의 정신을 뜻한 것이다.
14
충장
52개
2단
제14세기 익호장군으로 용맹을 떨친 김덕령 장군의 시호를 딴 것인데 마지막 동작이 왼손으로 끝난 것은 장군이 27세에 모략으로 전라북도 려순[28] 옥중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할 때 할 일을 다하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처형된 것을 의미한다.
15
고당
39개
2단
평생을 독립운동과 학계에 헌신한 애국자 최만식[29] 선생의 호를 딴 것으로서 39개 동작은 그가 탄생한 지역의 위도와 투옥한 회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주체
45개
2단
사람은 만물의 지배자이며 또한 모든 것을 자기의 뜻대로 결정하는 존재라는 주체 철학적 사상. 사람은 자연을 자기 의사에 복종시키며 자기 운명은 자기가 결정한다는 사상인데 이는 배달민족의 상징인 백두산에 뿌리를 박은 것이다. 연무선(山)은 백두산을 의미한 것이다.
16
삼일
33개
3단
이것은 1919년에 력사적인 3.1 독립운동이 선포된 3월 1일을 의미한 것이며 33개 동작은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의 조선민족대표를 뜻한 것이다.
17
유신
68개
3단
삼국통일에서 이름을 떨친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을 뜻한 것으로서 68개 동작은 통일된 668년의 마지막 두 수자를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준비자세에서 칼을 오른손으로 뽑아야 할 것을 왼손으로 뽑은 것은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에게 불리한 전쟁을 한 것을 의미한다.
18
최영
46개
3단
고려말기(14세기)의 수상이며 삼군도통사였던 최영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최영 장군의 충성심과 애국심 그리고 겸손한 풍모는 온 국민의 의표가 되었으나 그의 부하였던 리성계(리왕조의 시조)반란으로 처형당했다.
19
연개
49개
4단
고구려의 명장 연개소문을 뜻함인데 49개의 동작은 그가 안시성싸움에서 당태종이 이끈 근 30만의 당나라군사를 물리치던 해인 649년의 마지막 두 수자를 표시한 것이다.
20
을지
42개
4단
이것은 고구려 명장(제7세기)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딴 것으로서 연무선(乙)은 그의 이름의 첫 자를 의미한다. 동 장군은 612년에 당나라[30] 양제가 이끌고 우리 나라를 침입한 약 100만에 가까운 대군을 유격전으로 완전히 분산격퇴시킨 유명한 전략가였다. 그리고 42개 동작은 이 틀을 만들었을 때의 저자의 나이를 뜻한 것이다.
21
문무
61개
4단
신라 제 13대 왕인 문무대왕을 뜻하는 것인데 61개 동작은 그가 왕위에 오르던 661년의 마지막 두 수자를 표시한 것이다. 문무왕의 시체는 그의 유언인 '나의 혼은 그곳에서 영원히 내 나라를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방위하리라'대로 바다 안에 있는 대암산에 매장되였고 신라문화의 극치로 알려져 있는 석굴암은 바로 이 왕묘를 지키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 한다.
22
서산
72개
5단
임진왜란(1520-1604)때에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 최현응의 호를 딴 것인데 72개 동작은 그의 제자인 사명당의 도움을 받아 승병을 일으킬 때의 년령을 뜻한 것이다. 용감무쌍한 이 승병들은 1592년 평안도까지 침입해온 왜적을 완전히 물리칠뿐만 아니라 리순신 장군과 련합작전하여 통천 앞바다에서 거의 전멸시켰다 한다.
23
세종
24개
5단
이것은 조선력사상 가장 뛰어난 제왕의 한 사람으로서 1442년에 세계 최초의 측우기와 1443년에 한글을 발명한 세종대왕을 의미한다. 연무선(王)은 대왕을 의미하며 24개 동작은 훈민정음수자를 뜻한 것이다.
24
통일
56개
5단
이것은 1945년 남북으로 갈라진 조선통일할 데 대한 결의를 표시한 것이며 연무선(l)은 단일민족을 뜻한 것이다.
설명 출처: 최중화계[31], 장웅계[32]
오래 전, 창헌류 시절에 태권도를 배웠던 장년층·노년층이라면 위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창헌류의 20개 틀에서 의암, 연개, 문무, 서산 틀을 추가한 게 위 24가지 틀이기 때문이다. 단, 개량과 해석의 차이로 세세한 부분은 다를 수 있다.
본래 창헌류에서는 주체 틀이 아닌 고당 틀이 이 순서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중화계 ITF와 오창진계 ITF에서는 '주체' 틀 대신 '고당' 틀을 가르친다. 고당 조만식6.25 전쟁이 발발할 무렵까지 이북에 남아 북한 정권에 저항하다, 북한 지도부에게 살해된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에, 북한 측이 '고당' 틀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이승만의 호를 딴 '우남' 틀이 모두 42개의 동작으로 있었지만, 4.19 혁명이 일어난 해인 1960년에 삭제되고 충장 틀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 심지어 이기붕의 호를 딴 '만송' 틀도 있었다고 한다. #
이름에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데, 무에타이유도에서 각각 태국색이나 일본색이 별로 느껴지지 않듯이 꼭 국가색이 느껴져야만 하냐는 의견도 있다. ITF도 WT와 마찬가지로 태권도의 세계화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지나치게 특정 국가의 색이 강할 경우 오히려 세계화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 멀리 갈 것 없이 태권더 박에서 중근, 봉창[33], 통일 등등 ITF 틀 이름으로 조롱당하는 걸 생각해 보자.

5. 역대 총재


대수
이름
국적
임기
비고
1
최홍희
대한민국, 캐나다[34]
1966년 3월 22일 ~ 2002년 6월 15일

2
장웅
북한
2002년 9월 22일 ~ 2015년 8월 26일
종신명예총재
3
리용선
북한
2015년 8월 26일 ~

대수
이름
국적
임기
비고
1
최홍희
대한민국, 캐나다
1966년 3월 22일 ~ 2002년 6월 15일

2
최중화
캐나다
2002년 11월 7일 ~

대수
이름
국적
임기
비고
1
최홍희
대한민국, 캐나다
1966년 3월 22일 ~ 2002년 6월 15일

2
트란 트리유 콴
Tran Trieu Quan
, 캐나다
2003년 6월 13일 ~ 2010년 1월 12일

3
파블로 트라젠버그
Pablo Trajtenberg
아르헨티나
2010년 2월 12일 ~ 2019년
[35]
4
폴 와일러
Paul Weiler
독일
2019년 4월 28일 ~
[36]
대수
이름
국적
임기
비고
1
최홍희
대한민국, 캐나다
1966년 3월 22일 ~ 2002년 6월 15일

2
최중화
캐나다
2002년 11월 7일 ~ 2015년 10월 2일

3
오창진
대한민국
2016년 4월 3일 ~


6. 미디어


한국에서는 WT가 완전히 자리잡고 있고 국기로 지정되어있는 데다가, 버젓이 계승되어온 옆동네 택견의 역사까지 통째로 삼키려고 했을정도로 그 성세가 대단하다. 또한 상술했듯 국가 단위에서 ITF를 배척한만큼 ITF가 묘사되는 경우는 적고 설령 묘사를 한다고 해도 태권도 역사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따라서 최소한의 수준을 만족하는 퀄리티로 ITF가 미디어에서 다뤄진 사례는 외국의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특히 일본에서는 상술한 조총련계열의 수련 덕에 ITF 인구가 절대 다수인데다가 인프라가 잘 조직되어 있어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쪽에서 수준 높은 교육 자료나 화제성이 높은 오락매체로 제작되고 있다.[37] 제작사 측에서 따로 WT라고 명기하지 않는다면 '일본에서 묘사된 태권도' = 'ITF'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한편, 외국 영화에서 그려지는 태권도는 대부분 ITF다. 특히 감독/액션 감독의 연령대가 높을수록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 한창 홍콩에서 무술영화 붐이 불던 시절 활약하던 홍콩의 태권도 배우들은 한국에서 아직 최홍희가 대태협 회장이던 시절이거나 이후 ITF를 보급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이땐 아직 WTF는 외국에 태권도를 보급하지도 않던 시절이다. 예를들어 <흑권>에 출연했던 이준구 사범은 군대에서 창헌류 태권도를 배웠었기에 흑권 오프닝에서 도산틀, 충무틀, 광개틀을 시연하기도 했고, 전설적인 한국계 홍콩 배우인 왕호와 황정리 모두 창헌류 시절 태권도를 배운 이들이다. 이소룡 또한 이준구 사범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배웠기에 자신의 영화에서 ITF 특유의 이동 옆차기를 즐겨 사용했다. 또한 홍콩영화의 악역계의 전설 노혜광 또한 탈북자에게서 ITF를 배웠던 배우다. 즉, 외국 관객들이 생각하는 태권도의 화려하면서도 절도있고, 상대를 골로 보내는 치명적인 킥 콤비네이션의 판타지는 ITF를 베이스로 하는 경우가 많다.
  • 비디오 게임
    • 태권도: 1994년 휴먼에서 제작한 슈퍼패미컴 독점으로 출시된 대전 격투 게임이다. 한국어 자막과 한국어 보이스를 지원하여 한국인이라면 오늘날에도 즐기기에 크게 무리가 없는편.
    • 철권 시리즈 - 백두산, 화랑: 반다이 남코가 제작한 철권 시리즈의 캐릭터이다. 두명 다 아류가 아닌 공식 도장에서 정식으로 수련한 태권도인들이라 화랑은 2단이라는 세부적인 설정도 갖고 있다.[38][39] 철권 시리즈는 한국에서도 국민 격투게임으로 흥행했던 만큼 가장 유명한 사례다. 이를테면 철권 3 오프닝에서 화랑이 시연하는 품새는 화랑틀이며 승리 포즈 역시 삼일틀의 중반부이다.
한편 두 캐릭터 모두 초창기엔 ITF 기술들만을 사용했지만 최근 작으로 올수록 WT 태권도측의 화려한 기술들이 한두어개씩 추가되기도 했다. 또한 화랑의 경우 소위 에양이라 불리는 피스키퍼(는질러차기)나 오른 반월차기(째차기), 볼 브레이커(달치기)등 택견 기술들도 갖고 있다. 모션캡쳐 담당은 황수일 사현.
  • DOA 시리즈 - : 릭 본인부터가 ITF의 본산인 캐나다인인데다가 기술표에서도 영문으로 표기한 철권과 달리 ITF의 공식 기술명을 가나문자로 음차하여 옮겨 적는 등 여러모로 테크모측에서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모션캡쳐 담당은 카타오카 도모야스 사범.
  • 만화/애니메이션
  • 갓 오브 하이스쿨 - 리수진, 리수혁, 강만석, 마보라: 한국측 창작물로서는 드물게 나온 ITF 캐릭터. 다만 WT와 정부에서 주장하는 북파태권도로 소개되며 기술의 고증은 본작에 나오는 다른 무예들과 마찬가지로 이름만 따온 정도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만화적 연출로 가공되어 흥미위주로 봐야하는 수준이다.
  • 싸움독학 - 성태훈
이 외 ITF에서 모티브만 얻거나 WT 태권도를 묘사한 미디어 작품의 경우 태권도 문서 미디어 매체 단락 참조. 예를 들어 김갑환전훈, 강일SNK의 태권도 캐릭터들과 캡콤스파 시리즈에 나오는 한주리의 경우 기본 자세에서 볼수있듯 분명 ITF 모티브이긴 하나, 해당 게임들의 특성상 상술한 <갓 오브 하이스쿨>보다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 해당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추어 재창작이 크게 이루어진 경우다.

7. 기타


  • 상술했듯 국내엔 수련자도 적을뿐더러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적다. 본 문서는 엔하위키 시절부터 리그베다 위키 영리화 사태로 서버를 내렸을때까지 4천자도 되지 않았다. 문서 생성도 겨우 2011년이다. 당연히 WT 태권도를 설명하는 태권도 문서와 하늘과 땅차이며, 그나마 2015년경 부터 국내 수련 인구가 늘어난 것인지 문서 기여자수와 기여횟수가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도장은 전국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아마 북한과 연관이 되어서인듯 하며 이미 WT계열이 뿌리를 내려 전파가 쉽지 않은 모양. 또한 국제태권도연맹에 문의한 결과 ITF태권도장은 대한민국에서 단 한곳도 없다고 한다! 또한 ITF 태권도 도장들도 그냥 이름만 내건 태권도 도장일 뿐이라고... 또한 교육생들은 있으나 허가가 나질 않아 못열고 있다고 한다. 다만 해당 이야기는 오창진계의 ITF 태권도 홈페이지의 전화번호에 문의한 것.
  • 상술했듯 여러 계열들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두 태권도의 창시자를 최홍희임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계승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기술적인 차이는 없다. 각 계열의 차이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사인웨이브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의 차이. 그나마도 표현만 다를 뿐이지 내부를 들여다보면 거의 차이점이 없는 수준이다. 따라서 조직마다 체계가 완전히 다른 택견과는 다르게 어디서 어느 계열로 배우든지 사범의 실력만 확실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이러한 단절된 체제구조를 장기간 유지할경우 결국 계열간 차이는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ITF의 이익과 성장을 위한 활동에도 자원과 인력을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태권도 수련자들 대부분은 최홍희 총재 시절 때처럼 하나의 통합된 조직을 바라고 있다.
  • 북한과 엮여있다 보니 종종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곤 한다. 최중화가 한국에 전향할때 인터뷰에 의하면 북한 통전부 공작원들이 ITF 사범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흔하고 심하게는 전두환 암살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다만 ITF 내부 갈등 가운데 나온 말이기 때문에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황수일의 경우 조총련 출신이다 보니 친북 반미 성향의 글을 한국 커뮤니티에 올린 경우도 있다. 단 정치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 대부분 정통성 면에서 문제가 있는 장웅계고 캐나다에 뿌리내린 트란콴 계열이나 한국에 뿌리내린 최중화, 오창진 계열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도록 하자.
[1] 쇼토칸 가라데는 극진회관 계열처럼 실전성을 위한 지나친 마개조도 거부하고 WT처럼 스포츠화하는 것 또한 거부하며 가라데 본연의 손기술을 복싱이나 무에타이 등 타 무술과의 싸움에서도 활용 가능하도록 개선해 나가는 쪽을 선호하며, 그 결과 쇼토칸만의 유니크한 스탠스를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2] 뉴스쿨 특유의 스포츠화도 거부하고 맨스플래닛의 거의 루타리브레랑 똑같은 수준의 마개조도 거부하며 최대한 호이스 그레이시 시절의 실전성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3] 15년도 전까지는 나무위키에서는 사범으로 표기했다. ITF에서 사범은 4~6단을 가리키는 말이고, 7~8단은 사현으로 불린다. 황수일 사현은 2015년에 7단이 되면서 사현이 되었다.[4] 일본 검도를 기초로 우리 고유의 것을 만들고자 노력하여 일본의 색채를 뺀 검선도처럼, 일제강점기 해방 후 가라데를 수련했던 사범들중에 가라데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 민족에 잘 맞는 새로운 근대적 고유 무술을 개발하려고 했던 이들을 말한다.[5] 최홍희가 중심이 되어 개발되었다. 사실상 현재의 태권도는 최홍희의 기여 부분이 가장 크기 때문에 태권도 개발자라 하면 최홍희라고 하는 것.[6] 마찰도 분명 있었으나 밀려난 것이 아닌 일부러 사임했다고 보는게 확실할 것이다. 국태협의 창설 목적이 대태협과 확연히 다른데, 대태협의 관장들에게 염증을 느낀 최홍희가 조직의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개념의 운영은 다른 조직에서 운용하고 싶어했을 터이기 때문이다.[7] 이는 장웅이 기존의 태권도 수련자가 아닌 것도 한몫한다. 기본적으로 ITF 조직의 위원들은 유단자여야 하기 때문. 그래서 수련생들 사이에서는 장웅 총재 계열의 사범들에게는 사범이라고 인정해주는 것과 달리 장웅 총재를 장웅 총재가 아닌 '장웅' 으로 낮춰 부른다.[8] 이에 대해 최홍희는 장웅이 아니더라도 아들 최중화를 지목하진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생전에 총재 문제에 한해서는 부자간의 의견이 일치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견 차이로 생전 최홍희 총재와 최중화 총재의 사이가 썩 좋지 않았으며 최근에 최홍희 총재의 미망인이 장웅 ITF쪽 행사에만 참여하는데다가 장웅 ITF의 총재가 된 리용선 총재와 함께 찍은 사진까지 있는 걸로 보아 장웅 총재를 후임으로 지목한 것이 북한의 개입이 아닌 창시자 본인의 뜻으로 정한 것이며, 이는 ITF의 정통성은 장웅 쪽에 있다고 하는 이도 있다. 참고로 리용선 총재는 총재가 되기전 ITF 7단이었다. 이 의견들과 같은 입장인지 다른 입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중화가 역량이 부족하다거나 도덕적인 문제가 있었던건 아니기 때문에 최중화가 2대 총재가 되기보다는 3대에 임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9] 베트남계 캐나다인이다. 캐나다로 이민간 이유는 베트남 전쟁때문[10] 트란콴은 아이티에 갔을때 하필이면 지진이 나서 사망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인인 트라덴버그가 총재직을 이어받았다.[11] ITF의 틀에 담겨진 뜻을 찾아 한국을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며,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했다.[12] 다카키 코지 사범은 이후 다시 최중화계로 복귀. 그의 행적으로 미뤄 언제든 옮길 가능성도 있다.[13] 입은 선수는 황수일.[14] 세계태권도연맹(WT)와는 다른 단체.[15] 물론 가능해졌다 뿐이지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WT를 지지한다. ITF의 태권도는 인정하지 않는다.[16] 공산권 개방 후 동유럽 쪽에서 WT에 가입하면서 ITF 계열 단체가 많이 흡수됐다. 중국의 경우도 ITF 태권도를 교육하다가 한중 수교 및 올림픽 종목 등록 후 하루아침에 WT로 갈아탔다. 그나마 남은 ITF도 세개로 쪼개지면서 더욱 쪼그라들었다. [17] 태권은 기술을, 도는 정신수양을 뜻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태권과 도라는 글자 사이에 선을 넣어 구분, 강조한다.[18] WT에선 손으로 몸통만 가격 가능하다. 그러니 호구 때문에 데미지가 잘 들어가지 않는데다 점수도 낮아서 도태되었다.[19] 최홍희의 기록에 따르면 일본의 대표적인 무도인 가라데처럼 한국인 체형에 잘 맞는 격투기를 개발하고자 했다고 한다. WT와의 차이점을 보고싶다면 릭(DOA)의 모션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ITF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20] 초창기에는 창헌류라는 최홍희 본인이 수련했던 가라데를 기반으로 만들어져서 가라데와 흡사한 면모가 많았지만, 망명 후 연구 끝에 이를 도입하며 후에는 차별화에 성공한다. 초창기의 태권도를 찾아 보고싶으면 유튜브에 사인웨이브 도입 해 이전의 연도숫자와 태권도를 같이 넣어 검색하면 된다.[21] ITF사이트에서 보면 ITF 도장은 총 9개이다 사이트 주소 [22] 일부 광역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실제로 수련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답이없는 수준[23] [24] 혹시 북한군 출신 탈북자에게 배울 때 그 사람의 소속 출신을 잘 살펴보자. 간혹 총은 잡아보지도 않은 건설부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특수부대나 민경부대라고 속여서 야매로 가르쳐주고 튀거나 거짓말 하다 걸리는 경우가 있다.[25] 주로 태권도장에서 배우는 태극품새는 어린이용이다. 원래 어린이용인 태극품새와 성인용인 팔괘품새가 있었는데, 태극품새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던 태권도로서는 태극품새에 힘을 실어줬다고.[26] 한자 型. 중일 무술에서 말하는 투로나 카타의 그것이다.[27] 다만, 실제 역사와 다른 점도 몇몇 있으며, 원문인 '태권도백과사전'이 북한에서 출판된 관계로 맞춤법은 문화어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28] 전라북도에는 '여순(려순)'이 없다. '여순'은 여수시·순천시를 한꺼번에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모두 전라남도에 있다. 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이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었지만, 이곳을 가리키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위의 '중근' 틀의 '려순감옥'과 헷갈렸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역사에서 김덕령한성부에서 옥사했다.[29] 조만식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30] 수나라를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31] 최홍희가 쓴 '태권도백과사전'(전 15권)을 인용했다. 이 사전은 북한에서 출판되었기 때문에, 맞춤법과 어휘는 문화어를 따르고 있다.[32] 마찬가지로 최홍희가 쓴 '태권도백과사전'(전 15권)을 인용하되, 내용은 요약했다.[33] 다만, '봉창'이란 이름을 가진 틀·기술은 없다.[34] 최홍희는 북한국적을 취득한 적이 없다. 그의 마지막 국적은 캐나다이다. [35] 2015년에 연임하고, 2019년에 퇴임.[36] 독일 Inzell에서의 총회에서 선출.[37] ITF와 통틀어 비교할 때, 일본의 WT 계열 도장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해도 좋다고 할 비율이다.[38] WT 수련자들이라면 화랑이 2단 밖에 안된다는 것에 의아할텐데 ITF에선 WT에 비해 승급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려 늦어지게 되는 것을 감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39] 일본의 ITF의 경우 꾸준히 수련한다는 전제하에 최소 4년의 수련기간이 있어야 2단이 될 수 있다. 친한파로 유명한 일본의 가수 각트가 자택에서 사범에게 전담으로 수련받는 방법으로 본래는 최소 3년이 걸리는 1단을 2년만에 땄다는 카더라가 있다. 일본에서 4단(사범 칭호)을 따는 자격을 얻는데까지 보통 20년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