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1. 개요
전직 동국대학교 미술사 교수[2] ,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2007년 광주광역시 비엔날레 디렉터.
학력 검증의 시발점이 된 사람으로, 예일 대학교 출신 미술사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사칭하며 이 위조된 거짓 학력을 기반으로 겁도 없이 한국 미술계와 문화계의 요직을 차지하며 유명인사가 되었다.
신정아는 2016년에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이사로 임명되어 2018년에 미국에서 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하였다.#
장수천, 나라종금 사건과 함께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주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생존자 중 1명이기도 하다.[3]
2. 초기 생애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아버지 신희태와 어머니 이원옥 슬하 2남 1녀 중 셋째로 출생했다.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마친 후, 서울로 진학했다. 1991년, 서울중경고등학교를 졸업한 것까지는 확실하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캔자스 대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영어 실력이 나빠서 바로 학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랭귀지 스쿨(파운데이션 과정)을 2년 다녔다고 한다. 캔자스 대학교 측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1992년 봄부터 1996년 가을까지 '''5년간 다녔으나 3학년 과정에서 중퇴'''했다고 한다. '''즉, 캔자스 대학교의 학부 과정에 입학했던 것은 확실하게 사실로 보이나, 졸업을 못 했다.''' 이유는 영어 실력 미달.
미국에서 학위를 따지 못한 신정아는 실제로는 최종 학력이 고졸이었으나,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신화적인 사기극을 벌인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녀의 거짓말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나쁜 의미로 창대했다.
3. 전성기에서 내리막까지
3.1.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시절
1997년, 신정아는 금호미술관에 자신이 미국 캔자스 대학교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금호미술관 측에서는 일단 이력서를 받아두었다가 전시장 영어 안내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했다. 그러나 신정아의 영어실력은 별 볼일 없었다고 한다. 일단 영어실력 미달로 캔자스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으니.[4]
그런데 그해 말, 박영택 수석 큐레이터(현 경기대 교수)와 박정구 큐레이터(현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가 관장과 마찰을 빚고 미술관을 그만둔다. 이때 일개 알바생에 불과했던 신정아가 큐레이터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박영택 교수는 후에 "금호미술관에서 신정아를 채용한 것은 '''큐레이터를 단순한 박물관 관리자로 생각하던 금호그룹 고위층의 무지의 결과'''입니다"라고 말했다.
2001년 5월 28일, 그녀가 기획한 전시회 기간 중 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났다.[5] 신정아는 이 사고의 책임을 지고 전시회 이후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사고와 퇴사는 관계가 없었다.
실상은 금호미술관 박강자 관장이 "큐레이터 신정아가 한 학기 더 다니면 예일대 박사학위를 받는다더라"고 하자, 박성용(2005년 작고)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그렇다면 회사를 이미 그만뒀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이에 박 관장이 "인터넷 과정으로 이수한다"고 하자, 당시 예일대 한국 동문회의 회장이기도 했던 박 회장은 "예일대에 그런 과정은 없다. 당장 사표 받아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박성용 회장은 '''예일대 경제학 박사'''이다.#
이때부터 신정아의 허위학력에 대한 소문이 미술계에 퍼졌으나, 이를 본격적으로 검증하려는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금호그룹도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들에게 득될 것이 없었으므로 쉬쉬했다. 허위학력에 속아 큐레이터를 고용했다가 잘랐다고 소문이 난다면, 누가 그 미술관에 대한 신뢰와 매력을 느끼겠는가?
신정아는 다시 위조된 학력과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경력을 활용하여 성곡미술관에 큐레이터로 취직하였는데, 성곡미술관에 스스로 찾아가 무조건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3.2. 동국대학교 입성
신정아의 학력에 대한 의혹은 이미 동국대학교 조교수 임용 당시부터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사 및 미술 관련 미학 분야는 한두 다리만 건너면 서로 모두 선·후배이거나, 아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바닥이 좁고[6] , 특히 미술사(art history)에서는 예일대가 미국 최고 명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박사 프로그램이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갑자기 미술계에 등장하였던 신정아라는 사람이 예일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운 주장이었다.
후일담에 따르면, '''예일대를 진짜로 졸업하고''' 2004년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의 장진성 교수는 "확실히 신정아가 거짓을 말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일대의 실수도 있었고, 또한 그녀가 워낙 정·관·재계의 고위인사들과 얽혀 있었으므로, 그녀의 허위사실에 대하여 쉽게 의혹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장진성 교수의 인터뷰
3.3. 수면 위로 오르는 의혹들
2005년에 조교수 임용과정에서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들이 신씨에 대한 학력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동국대 이사진들은 신씨를 계속 두둔했고, 때문에 동국대 측은 예술대학 교수들의 반발을 피해서 신씨를 교양교육원으로 발령을 내주었다.
이 학력위조 의혹 때문에 동국대 측에서는 예일대에 우편을 통하여 이에 대한 확인을 의뢰했는데, 정말로 '''예일대에서 팩스를 통해 확인해 줬다.''' 동국대 측에 팩스로 보냈던 박사학위 증명서는, 예일대 대학원 부학장 파멜라 셔마이스터가 서명한 진본이다.
나중에 사태가 커지자, 이러한 오류를 일으킨 까닭에 대해 셔마이스터 부학장은 “과도한 업무로 인한 착오였다”고 해명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신씨는 '''"예일대에 연줄이 있는 학위 브로커가 있고, 난 거기에 희생된 것"'''이라며 자신은 음모의 희생자라며 옹호하였다.
'''나아가 본인의 학위가 명백하게 조작된 사실이 밝혀진 상황에서, 신씨는 "나는 브로커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 역시 거짓 해명이었다.'''
2007년 7월 4일에 신정아가 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으로 학력위조에 대한 의혹이 퍼져나갔다. 이 때 감독으로 발탁된 과정 역시 수상하기 짝이 없다. 당시 후보 8명 중 신정아는 '''꼴찌'''였다. 영어도 형편없던 데다가 미술 행사 진행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동 1위 후보 2명이 탈락한 이유는 경험 부족과 의사소통 능력의 부재 때문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부산 비엔날레 감독과 국제 미술행사 포럼 진행자 출신이었다. 아무리 낙하산 인사를 임용한다고 해도 연줄뿐만 아니라 최소한 기본기 정도는 제대로 갖춘 사람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신정아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3.4. 결국 학력위조가 사실로 드러나다
연합뉴스에서 이미 캔자스 대학교 학사 및 석사 학위가 거짓이라는 뉴스를 발표하였고, 결국 7월 11일 동국대가 기자회견으로 "신정아는 예일대에 다닌 적이 없음"을 발표함에 따라, 신정아의 학력은 전부 허위임이 드러났다. 이렇게 학력위조가 드러나자, 예일대와 동국대가 나란히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신정아는 1심, 2심 재판에서 학력 위조와 미술관 공금 횡령으로 1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법원까지 가서 파기환송#되었고, 파기환송심에서 재차 1심으로 돌려보냈다.#.
2009년 11월 파기환송 2심에서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미 4월에, 1년 6개월의 형을 마치고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였다.
3.5. 거짓말의 증거들
물론 예일대 박사학위는 말짱 거짓말이며, 미국 캔자스 대학교를 다니다가, 영어 실력 미달로 중퇴 후 귀국했기 때문에 실제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 가기 위해 중퇴했다는 말도, 한국에서 활동할 당시 미술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게다가, 신정아는 '''예일대 박사 과정을 인터넷으로 이수'''했다고 주장했다.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학부생들조차도 들으면 배꼽을 잡고 웃을 헛소리다.
자신은 수업료를 납부하고[7] '리포트'를 제출하고[8] 논문을 쓰고 디펜스의 과정을 다 마쳤으며[9] 이 과정에서 자기를 도와준 린다 트레이시라는 미국 여성이 자기를 속인 것일 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신은 브로커가 멘토인 줄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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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논문 대필자에게 속았을 뿐, 학위는 위조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 물론 이 주장은 논문 대필 주장으로 학위 위조 주장을 물타기 하려는 것이겠으나, 당연히 논문 대필도 딱히 더 낫다고 보긴 힘든 '''사기 행위'''일 뿐이다.
대한민국 검찰청에서는 신정아의 변명 역시 대부분 거짓말이며, 린다 트레이시 또한 신정아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신정아의 PC에서 예일대 학장의 싸인이 담긴 그림 파일과 워드 문서로 졸업장을 직접 위조한 증거가 발견되었고, 수업료 송금 흔적이 전혀 없고, 신정아가 캔자스 주립대 재학 시 만났고, 린다 트레이시를 소개받았다는 '제임스 로리'라는 남자가 학적부나 직원 명부 어디에서도 발견이 되지 않는 등, 신정아의 변명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궤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인터뷰를 보면 신정아는 저 사람들의 이름을 말할 때 '린다 트레이시'라고 했다가, 다음 순간에는 '트레이시 린다'라고 말한다. 자기와 몇 년 동안이나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람의 이름을 저렇게 틀리게 말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 사람들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않냐??"고 묻자 "그 사람들이 나에게 먼저 연락하는 시스템이라서 나에겐 그들의 정보가 없고, 학위를 받은 후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서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둥의, 첩보 드라마 뺨 치는 개드립을 쳤다.
3.6. 사건의 여파
이 사건의 여파로 학력위조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떠올랐으며, 다른 문화계 인사들의 허위 학력까지 드러나서 문화계가 발칵 뒤집히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별 지식이 없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음모론 신봉자들과 범죄자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동국대 측에서 예일대에 신정아의 학력 정보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을 때, 예일대 측에서는 "신정아는 예일대 졸업생이 맞다"며 잘못된 확인 문서를 보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게 된 동국대는, 예일대 측에 사과를 요청하고 500억 대의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래서 예일대는 동국대에 코가 꿰여버렸다. 예일대의 입장에서는 그저 환장할 노릇.
하지만, 이 부분은 명백히 예일대의 잘못이 맞긴 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학장'이 직접 사인한 증명서를 보내줬으니까 예일대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확인만 제대로 해 줬어도 신정아가 교수로 임용되는 일은 없었고, 동국대가 망신당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신정아 사태로 벌어진 피해에는 예일대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예일대 측은 "동국대가 해당 소송을 철회한다면 공식 사과 기자회견, 10만 달러를 들여 국내 일간지에 전면 사과 광고, '''동국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최고 수준의 교육 협력 관계'''를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동국대 측은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소송을 계속 진행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동국대가 예일대와의 복수학위 제도를 따내서 로스쿨 유치 실패를 한 번에 만회하려 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동국대는 1차 재판에서 승소했다. 한편, 예일대는 손해배상소송을 각하해 달라는 요청을 자기 나라에서 했으나 그 요청 망했어요. # 2012년 6월 손해배상 여부가 가려질 예정. 6월 12일 미국 법원은 "예일대가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았다"면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러한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우리에게도 저런 놈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군에 있는 모든 위관급 장교들에게 학력 인증[10] 을 실시했다. 그런데 학사장교에서 허위학력으로 임관한 자원들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
이에 국방부에서는 이미 전역한 42기 2명만 구속 수감했고 이들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예비역 계급을 중위에서 병장으로 강등조치까지 했다. 또한 전역을 불과 1주일 남겨둔 44기, 중위 계급을 달고 복무하고 있던 46기, 갓 소위로 임관한 48기 등의 장교들의 임관을 무효화시키고 병이나 부사관으로만 군복무가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후보생인 50기의 경우는 퇴교 조치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이에 그치지 않고, "현역 복무 또는 후보생으로서 받은 급여 일체를 환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더군다나 이렇게 적발된 인원들은 이미 전역한 학사 42기만 '''구속 수감'''하고, 나머지는 '''어떠한 사유로도 입영 연기가 절대로 불가능한 현역병 입영 통지서'''를 발급했다. 아무튼 사실 이 사건 때문에 부실했던 학력 검증이 더욱 강력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각계 각층에서 학력검증 열풍이 일어나 유명인, 주로 연예인들이 학력위조 사실을 줄줄이 자수를 하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졌다. 실지로 학력검증 열풍 때 들키거나 자수한 사람들 중에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비난받은 사람은 자신의 일에 필요한 학력이 미달된 영어강사나 평소 학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던 케이스가 많았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학력위조 참조.
생각해보면, 학력위조 문제로 말미암아 외국에서 취득한 학력=가짜일지 모른다는 사회상 불신이 깊이 서렸고 무개념을 양산했고, 타블로 같은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겼다. 전혀 상관없는 말이지만,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민족주의를 운운하면서 국내의 학력 취득만을 신봉하는 무개념 빠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4. 곁다리들
4.1. 서울대학교 입학 사칭
자신이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캔자스 대학교로 유학을 갔다고 국민일보 2000년 12월 29일자에서 말했다. 서울대는 학력 파동 당시 "신정아가 시험을 본 적도 없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역시 이 말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서울대에서 반박하자, 신정아는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었다"고 잡아떼다가, 언론사 아카이브 추적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 다시 확인되었다. "서울대에서는 틀에 박힌 수업을 들었는데, 캔자스 대학에서는 창조성을 길러줬다"는 말을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캔자스 대학교는 서울대를 포기하고 갈 정도의 대학교가 아니다.[11] 특히 한국에서 활동할 생각이었다면 비교 대상도 안 될 정도로 국내 인지도, 동문진이 큰 차이가 있다.
4.2. 불륜
학력위조 이외에도 충격을 던져준 것은, 신정아가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내연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연의 관계 자체는 변양균과 신정아가 결국 시인한 것으로, 변양균은 유부남에 자식도 있었으니 빼도 박도 못할 간통이다.
자서전 4001에 따르면 이때 신정아는 변양균을 "변"에서 따와서 "똥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정말로 똥 같은 놈이 되었다. 신정아는 이후에 아름다운 인연이라며 자신의 불륜을 미화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건지 그냥 개념 상실인 건지는 각자 판단에…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무현 정부의 실세로, 기획예산처 차관과 장관으로 기용된 후 장관급인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용된 엘리트 공무원이었다. 이 불륜 의혹이 제기되자, 노무현은 "깜도 안 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감싸고 도는 발언을 했다가 진실이 드러나고 큰 비난을 받았다. 만일 내연의 관계에 있는 여자를 권력을 동원해서 밀어주었다면, 이것은 단순한 학력위조만이 아니라 권력형 비리로까지 커지기 때문이다.신정아 비호, '깜'도 안되는 의혹이라더니청와대의 오만과 변 실장의 거짓말
변양균은 노무현의 측근으로 상당히 지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젊은 나이에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실제로 예일대 경제학[12] 석사 학위도 갖고 있다. 때문에 변양균 같은 인텔리가 고졸 학력인 신정아의 거짓말에 어떻게 놀아났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으며, 심지어 "변양균은 신정아의 거짓말을 눈치챘지만, 어떤 개인적 약점을 잡힌 나머지 모르는 척을 한 거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신정아의 학력위조가 들통나서 나락으로 치닫는 와중에도, 변양균은 재판에서 신정아를 옹호하는 증언을 하였으며[13] , 신정아는 자서전에도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한때 연인이었던 사람의 치부를 낱낱이 세상에 까발리는 게, 과연 진실로 사랑했던 연인에 대한 예의일까? 게다가 변양균을 폄하하거나 우습게 보이는 내용을 많이 적고 있다. 호텔비는 항상 신정아에게 부담시켰다든지, 사건이 터진 후 그의 본모습에 실망했다든지.
변양균이 신정아의 정체를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참고로 변양균은 2015년 7월 팬택을 인수하여 그 근황을 알렸다.
재판 당시 보여준 이들의 묘한 분위기 때문에 "출소 후 변양균이 이혼하고 둘이 결혼하는 거 아니냐"는 추측도 돌았으나, 변양균은 이혼하지 않았다. 변양균의 부인은 암 투병 중으로 알려져 있으며, 외도 당시에도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고. 이후 변양균은 오랫동안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는데, 2012년 1월 10일에 출간한 책의 후기를 보면 일단 크게 후회하고 있으며, 이 사건으로 타격을 받은 노무현과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가족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언급도 있는 걸 보면, 일단 가족 관계는 별 문제가 없는 듯.
결국, 변양균은 도덕적 잘못을 인정하고 공직 생활을 그만둬야 했으나, 재판에서 신정아와 관련된 권력형 비리 사안들은 무죄를 받았고, 신정아와 상관없는 권력 남용 부분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으니 감옥에 간 건 아니다.
뱀발로 신정아의 자서전에 '''변양균과의 첫날밤'''(...) 얘기가 나오는데, 그야말로 '''킹 오브 가관'''이다.
둘 사이가 처음으로 깊은 관계로 접어든 것은 그해 늦가을, 그러니까 2003년 11월 초였다. 똥아저씨는 어느날 1박 2일로 가을 단풍구경을 가자고 했다. 하루를 자고 오자는 뜻이었기에 나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23살이나 어린 나와 1박 2일 주말여행을 가겠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다니, 똥아저씨가 '선수' 아니면 나에게 '올인'했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날 여행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도저히 내 손으로 쓸 수가 없어, 똥아저씨가 법정에 제출한 서명 증언 진술서로 대신한다. (133쪽)
변양균 진술: 신정아와 나는 그동안 몇 번 만나던 중에 제가 일출을 보러 가자는 제의를 하여, 2003년 11월 9일에 신정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동해안으로 갔습니다. (중략) 장시간 실랑이 끝에 결국 성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관계 후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신정아는 그것이 첫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이도 30살이 넘었고 미국 생활도 오래 했기 때문에 당연히 남자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계속 출혈이 있어서 제가 생리대를 사다주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134쪽)
4.3. 문화일보 누드 공개
학력위조에 고위급 인사와의 불륜까지 겹쳐 성로비 의혹이 솔솔 흘러나오던 중, 문화일보는 <신정아 누드 사진>을 때려박아 완전히 '''창녀''' 혹은 '''꽃뱀'''의 이미지로 낙인을 찍었다. 다만 제목은 1면에 났지만, 실제 누드 사진은 3면 정도에 모자이크 처리 후 실었다.
문화계 유력 인사의 집에서 찍은 누드 사진이 발견되었다는 이 기사에서, 문화일보는 "속옷 눌린 자국이 없으니 벗은 지 오래된 거고, 이건 작품용이 아닌 사적인 사진"이라는 둥[14] , 아예 성로비를 기정 사실로 추측성 황색 기사를 작성했다.
이로 인해 주로 여성계에서 공격을 받았다. 신정아가 희대의 범죄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사가 이런 식의 보도를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습게도 신정아 누드 사진을 올린 그날, 문화일보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하루 종일 접속자 폭주로 다운됐다.
신정아는 문화일보에 소송을 걸었고, 1심은 "선정적 사진을 통한 신문판매량 증대 등 악의적 동기가 인정되므로 문화일보는 신씨에게 1억 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바 있다. 최종적으로는 8,000만원 받고 합의하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신정아는 이 사진이 합성이라고 주장했으며, 이후 본인이 사진 작품을 위하여 합성했다고 사진작가 황규태가 신정아에게 미안하다고 편지를 보냈다.
신정아가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대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을 표시한다.
4.4. 동국대와 예일대의 법정공방
예일대와 동국대 간의 소송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동국대는 2005년 예일대로부터 신정아의 박사학위에 문제가 없다는 답신을 받고 신씨를 미술사학과 조교수로 채용했다가 2007년 허위 학력 논란이 일자 재검증을 요청했다. 그러나 예일대는 당초 학력 확인 문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동국대는 이 때문에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고 로스쿨 유치에도 실패했다며 2008년 예일대를 상대로 5,000만 달러(약 58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08년 8월 예일대는 재판 화의조정(Settlement)에서 동국대가 소송을 취하하면 “공식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10만 달러를 들여 일간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겠다.”, “동국대의 평판 회복을 위해 세계적 수준의 교육협력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라는 제안을 하였지만 동국대는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거절 하였다.
2012년 6월 미국 코네티컷 주 지방법원은 예일대의 약식 재판[15] 요청을 받아들여 배심원 재판을 생략하고, 판사 터커 멜란컨이 "예일대 측이 고의로 신씨의 학위를 잘못 확인해줬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동국대가 제기한 명예훼손 및 부주의 주장에 대해 소송 기각하였다. 즉, 학위 확인 잘못은 단순 실수이기 때문에 재판 대상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자 동국대 관계자는 "1심 재판의 진행 과정과 결과가 매우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이라며 "동국대가 예일대의 불법행위로 심각한 피해를 봤고, 이에 대한 합당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다"고 말하였고 곧바로 항소하였다.
2013년 8월 코네티컷 주 제2항소법원에서는 이러한 동국대의 주장을 이유없다고 기각하고, 오히려 예일대의 소송비용까지 동국대에 부담시켰다.
이에 예일대는 같은 달 위 판결을 근거로 한국 법원에 “미국 법원 판결에 따른 소송비용을 지급하라”며 집행판결 소송을 걸었다. 청구 금액은 29만 7,000달러. 변호사 비용 제외. 변호사 비용만 100만 달러라는 설도 있다.
2014년 1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0부(안승호 부장판사)는 예일대의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결국 동국대는 소송에 진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물어줘야 했다. 당시 한국 인터넷 여론은 동정 일색이였고, 후폭풍으로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를 공약으로 내세운 보광스님이 2015년 6월 11일 동국대 18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첫째 예일대가 언론에 거짓 인터뷰를 해서 동국대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렸다는 ‘명예훼손’, 둘째 예일대 직원이 허위 팩스를 보내고 신씨 관련 학위 경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과실’ 이렇게 2가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무슨 일만 있으면 국가가 국민들이나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여 각종 손배소에 콩밥 먹이는 일이 잦아서 “명예훼손은 범죄이며 이를 범하면 콩밥 또는 벌금이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드라마에서 언론사들, 심지어 지나가던 파파라치가 수시로 외치는 말이 수정헌법1조다. 미국은 헌법 1조에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천명해 놓았고, 이를 근거로 공인의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소송의 핵심 쟁점인 동국대의 명예 훼손은 미국에서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즉, 한국식 법감정으로 세계 최고의 법률가를 배출하는 예일대를 상대로, 예일대의 소재지인 코네티컷에서[16] 소송을 걸었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여기에 더하여 예일대가 1심 소송이 걸린 후 재판 화의조정에서 화의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예일대 측이 오류를 발견한 즉시 사과하였고, 진실을 알면서 회피했다는 “악의”가 없었다는 근거가 되었다.
2번째 핵심 쟁점인 예일대의 ‘과실’만이 빼도 박도 못할 예일대의 실수이다. 법원에서는 이 부분만 정식 재판으로 넘기고(2012년 2월 10일) 나머지는 다 기각했다. 그러나 예일대는 2월 21일 과실 부분도 함께 기각해 달라며 법원에 재고 신청하였다.
예일대의 논지는 신정아 스캔이 중요한 것이지, 동국대와 예일대 사이에 발생한 “잘못된 팩스를 보낸 일” 같은 것은 사소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첫 번째 쟁점인 명예훼손과 사실상 같은 문제이며, 예일대 관계자가 잘못된 조사의 결과를 “동국대에 말했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한 것이며, 이 역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니 미국수정헌법1조에 의해 보호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동국대는 명예훼손 문제를 과실 문제로 우회해서 제기하는데, 이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결국 첫 번째 쟁점인 공인의 “명예훼손”은 미국에서 성립하기 어려운 죄명이니 기각, 2번째 쟁점인 “과실”은 발생하기는 하였으나 사실상 “명예훼손” 문제의 우회상장에 지나지 않으니 기각해주세요. 라는 것이다.
이미 법원에서 “과실”부분은 배심원에게 넘기도록 결정이 났으나, 예일대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이를 뒤집는, 미국 법원에서도 매우 이례정인 결정이 이루어져 결국 “과실” 부분마저 소송 기각되었다.
항소심에서도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따랐다. 다만 동국대의 모든 손실은 예일대의 언론 인터뷰로 발생한것이지, 다른 부분은 동국대의 손실과 관련이 없었다는 논리로 해당 사건을 분석 했다. 그런데 미국은 언론 인터뷰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보장한 국가라서...
화의조정때 예일대에서 사과도 하고 돈도 배상해준다고 했지만, 동국대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명예 회복이였다. 그런데 미국은 명예훼손이 인정되기 힘든 법구조이며 그것도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으니 처음부터 지는 게임이였다. 차라리 “과실” 부분에만 더 초점을 맞추거나 미국에서 흔히 쓰는 방식인 재판전 화의조정 단계에서 서로 적당히 타협하는게 어떤지 아쉬움이 있다.
4.5. 불교계 권력투쟁
동국대에서의 신정아 학력위조 폭로는 당시 불교 조계종 내부 여-야 권력투쟁 와중에서 나온 결과라는 시각이 강하다.
스님과 언론의 신정아 벗기기
조계종내 권력다툼 ‘신정아’로 표출된듯
우선 조계종은 국회와 비슷한 중앙종회가 있으며 여기에는 여러가지 종책연구(종단 정책 연구) 모임들이 정치정당과 비슷한 존재를 갖고있는데,당시 조계종 권력구도는 총무원을 차지한 여권세력(무량회, 무차회, 화엄회 등)에 대해 동국대와 불교방송을 차지한 야권세력(보림회, 금강회)이 대립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신정아 학력위조와 정부연계의혹을 제공한 장윤스님은 조계종 여권소속(무량회)이며[17] 당시 동국대 주류였던 이사장 영배스님과 이사 영담스님 조계종 야권파(보림회) 소속이다.
2004년부터 장윤이 중앙대 병원인수문제를 검찰에 넘기자 영배,영담은 이를 문제삼아 장윤을 이사에서 해임했고 이후 장윤은 동국대 이사진을 압박할 호재로서 신정아 가짜학위 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 초기에는 장윤의 주장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신정아와 변양균 커넥션 뒤에 더 큰 몸통(이해찬 총리, 권양숙 여사)이 있다고 주장하기 하면서 신정아 문제는 이슈가 커지게 되었다.
신정아 문제가 학력위조 수준이 아닌 변양균과의 커넥션 문제로 확산되자 불교계에서는 언론에서 신정아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며 반발(a.k.a 물타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정아가 몰고다니던 BMW의 실제 주인이 조계종 승려라는 게 확인되는 등 관련 의혹들의 문제를 언론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5. 자서전 출판과 관련 논란
감방에서 나온 후, 2011년 3월 자신의 수감번호를 제목삼아 4001[18] 이라는 자전 불쏘시개 에세이를 출판했는데 2주 만에 주간 베스트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학력 논란의 전말, 변양균과의 만남, 교수 채용 과정, 그리고 일부 유력 인사에 대한 자신의 감정 등을 언급하고 있다. 유력 인사의 실명을 거론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한 서린 여자의 복수극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고위급 인사들을 실명으로 기재해서 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정운찬은 자기 몸을 노리고 부단히도 애썼다는 식으로 써놨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 중 한 명.
2011년 3월 23일, 자서전 발간으로 다시 한 번 화제에 올랐는데 많은 정치인이나 주요 인사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자신과의 돈독한 관계를 폭로하는 내용이라 후폭풍이 일어났다. 3월 23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는 '''재고 소진'''되고 1쇄 15,000부가 금방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였다.
자서전 내용중에 눈에 띄는 것들로는, 정운찬 총리가 자신을 서울대에 임용하는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중대 결정을 할 때마다 자신을 찾거나, 자신의 충고를 들었다던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돈독한 관계라고 하지를 않나 순 구라 투성이다. 가장 화제가 된 "외할머니는 유명 재야정치 인사의 부인."이라는 점이다.
정운찬은 이에 대해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물론 신정아가 자서전에 쓴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증거는 없고, 거의 모두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내용들이다. 애초에 신정아가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라는 걸 고려하면 들을 가치가 전혀 없는 이야기들이다. 또한 이미 유죄로 판명된 학력위조에 관해서는 일관되게 '''자신 또한 브로커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자서전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기는 학위만 없을 뿐, 박사에 준하는 공부를 마쳤으며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우중 같은 사회 저명 인사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을 정도의 인재'''라는 것인데…
참고로 박사는 공부해서 받는 학위가 아니다. 박사과정이 그저 추가적인 지식만을 머리에 집어넣는 공부를 하기 위한 코스라면 몇년씩 걸릴 이유도 없고 학위논문 심사를 할 이유도 없다. 누군가의 지도가 있으면 연구의 일부분을 수행할 수 있는 석사와는 달리, 박사는 자기가 주도하여 독자적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일종의 공식 자격이다. 그 자격은 박사 과정에서 실적으로 증명한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소리이자 고인드립이자 희대의 사기극.
4001을 보면 상당히 중요해 보이는 내용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간 너무도 상습적인 거짓말로 거짓을 진실로 믿는 “리플리 증후군”으로까지 의심받는 사람이 쓴 책 내용을 근거로 나무위키 문서를 수정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4001에서 이러이러한 뻥을 치더라.”까지는 써도 되지만 “나무위키에는 A 사건이 15일에 일어났다고 쓰여 있지만 4001에는 A 사건이 16일에 일어났다고 쓰여 있는데, 단순한 날짜 정정이니 상관없겠지”하며 4001에 맞추어서 수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 남부구치소에서 수용생활을 했을 때의 체험담을 자세하게 써놓았는데, 이 부분이 재미있어 그런지 아니면 희대의 사기 수법을 보고 배우려고 했는지, 교도소 수용자들 사이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19] . 당시에는 수용자 도서 구매 때 10여 권씩 한번에 교도소로 반입될 정도여서, 그 시기 수용생활을 한 수용자치고 안 읽어 본 사람이 없을 정도. 이후로도 교도소 사동별로 있는 책꽂이를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공지영은 신정아의 자서전 4001의 서문과 본문의 문장이 너무나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이 책이 대필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 대필은 한국의 회고록이나 자서전에 항상 나타나는 문제이다. 외국의 경우는 자서전이라고 해도 자신이 직접 쓰지 않았으면 전문 작가가 개입했다는 것을 서문에 명시하는 게 보통이나, 한국에서는 그것조차 생략하여 누가 썼는지 구분할 수 없다. 특별히 자신이 모두 썼다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면, 혹은 내용 자체를 다른 작가가 창작했고 그 작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대필 의혹을 입증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또 이 자서전은 신정아가 직접 쓰지 않고 대필을 했더라도 내용은 평소에 주장하던 내용과 다를 게 없는 것으로 봐서는 내용 자체는 신정아가 생각한 그대로라고 봐도 좋을 듯.
소설가로서 공지영의 안목을 믿는다면, 신정아의 글을 출판사에서 고용한 고스트 라이터가 많은 부분을 읽을 만한 글로 윤문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거친 결과물이라 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6. 자서전 그 후
2011.4.16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했다. 학위는 가짜인 대신 모종의 매력이 넘치는 팜므파탈일 거라는 상상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저 방송 내용에 할 말을 잃었다. 이 방송은 신정아의 먼 친척과 인터뷰를 통해 외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고, 모 정치 인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등, 신정아의 주장이 허위라는 걸 속 시원히 밝혀주었고 빼도 박도 못할 증거들로 국민들에게 신정아가 형편없는 거짓말쟁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졌다.
1주일 후, 4월 22일 시골의사 박경철이 진행하는 케이블 방송 MBN의 공감 플러스에 환하게 웃으면서 나와서 또 다른 변명이나 늘어놓았다. 박경철도 넘어갔다. 박경철의 공감 플러스가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줄 미처 몰랐네요.
한겨레에서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인터뷰를 했다. '참 괜찮은 사람' 또는 '여자 허경영' 제목에서 보듯이 신정아에게 상당히 옹호적이다. 신정아가 죄질에 비해 과도하게 매를 맞았다고 지 맘대로 전제로 깔고 인터뷰를 하고있다. 당연히 댓글들의 반응은... 직접 확인해보시라.
일단 김어준이 한 분석치고는 신정아에게 너무 평이하고 쉬운 태도를 보인다.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김어준은 황우석 논란 때에도 이른바 황빠의 거두로 활동했었고 참여정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로 일관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인터뷰를 잘 읽어보면 도저히 팩트체크가 불가능할 정도의 일종의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로 판단하기도 한다. 사기꾼, 꽃뱀이라기보단 정신병자라는 것.
이후 신정아는 전남대학교 법학과를 상대로 특강을 했다. 주제는 <좋은 변호사와 나쁜 변호사>라는데 특강 중에서도 "나는 끝까지 진실을 주장하다가 구치소까지 다녀왔다"는 개소리를 했다. 인터넷상에서의 대체적인 반응은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와 "전남대 까기"가 주로 보인다. 전남대 비난에 대해서는 사서 욕을 먹는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
최근에 미래기획위원장 곽승준 교수와 인터뷰를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얘기는 위에 나열된 것과 거의 다를바가 없다. 의사소통이 중요한 것을 일깨워주는 인터뷰라고 했다고 한다. #
청담동 일대 고급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여전히 나름대로의 인맥을 유지하는 모습이 목격된 바 있다. 몰고 다니는 차는 검은색 에쿠스.
2013년 9월 25일, 뉴시스 기사에 따르면 TV조선의 신설 토크쇼 강적들의 진행을 맡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결국 신정아의 섭외는 불발되었다.
신정아 사건을 모티브로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도 만들어졌다. 주연은 이다해.
2014년 1월 20일 신정아, 미얀마서 봉사활동… “지금은 책 낸 것을 후회한다” 라며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2014년 8월 15일 MBN의 아궁이#s-2에 출연. 스캔들 이후 7년간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방송 후의 반응은 좋지 않은 편이다.
드라마 작가 임성한이 압구정 백야를 구상할 때 작품에 나오는 그림들을 감수해주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임성한 작가와 친해졌다고. 심지어 드라마 카메오로도 출연했으나 MBC 내부심의로 방송분이 삭제됐다. #
조영남의 제시로 조영남이 만난 부처님 큐레이터를 맡게 되었다.
2016년 3월 23일. 과거 출연이 불발되었던 TV조선 강적들 <미술계를 주름잡는 사모님> 편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사회적 물의를 안겨주었을 분만 아니라 특정 업계를 송두리째 작살을 내놓고 수많은 청년 작가 및 큐레이터 지망생들의 미래를 앗아갔는데도 꿋꿋이 사는 것을 보면 참의지의 한국인.
또한 조영남이 방송에 나와서 얘기한 바로는 둘이 공동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조영남 대작 사건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자, 신정아는 조영남이 직접 그린게 맞다고 보증하며 나섰다. 결국 조영남은 2017년 10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열린 1심 선고에서 사기 혐의에 대해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받았으나, 2심과 대법원 최종판결은 무죄로 확정되었다...조영남 대작 사건 항목 참고.
2018년 11월 16-17일 양일간 미국 애틀랜타 한국학교와 애틀랜타 한국 교육원을 찾아 자신을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총괄본부장'이라고 소개하며 동포를 만났다고 한다. #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은 교육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해외에 있는 한글학교를 위한 교과서를 공급하고 한글학교 교사들을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단체다. 신정아는 2016년에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이사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7. 쟁점
7.1. 신정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세력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신정아가 김대중의 사생아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 앞에서 어떤 젊은 여성이 친부를 만나게 해 달라면서 난동을 부린 사건을 토대로 한 모종의 도시전설인 듯.
또한 비슷한 경로로 김대중의 부인인 이희호가 신정아의 실제 "외할머니"이고 친할아버지는 재야인사 K씨라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전혀 근거가 없으며, 신정아의 거짓말을 DJ와 이희호의 자서전 내용과 억지로 짜맞춘 궤변이고[20] , 김대중을 반대하는 조갑제 닷컴에서도 부정되고 있으며, 극우논객인 지만원의 시스템 클럽에서나 사실인양 회자되고 있는 형편이다. 조선일보에서 사실을 추적해보았으나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7.2. 신정아를 옹호한 언론의 병폐
오마이뉴스의 조은미 기자는 고졸의 신정아가 잘나신 학계와 고위 미술계를 예일대 졸업장이라는 종이 쪼가리 하나로 속여 넘겼으니, 이는 학벌사회의 허위성을 증명한 거라 통쾌하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 한국의 지나친 학벌풍조를 풍자하는 기사지만, 너무 감정적으로 접근해 신정아의 중범죄를 희석시키는 걸로 읽힐 수도 있으니 제대로 된 기사라고 보긴 힘들다.
명백한 사기행위를 예로 들어 학벌사회의 허위성 운운하는 것은 알카에다의 테러행위로 미국 중심의 세계에 통렬한 일침을 가했다는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이는 신정아 옹호는 아닐지언정 명백한 병폐가 맞다. 기사링크
다만 명백한 범죄자인 신정아와, 피해자인 장자연을 동일 선상에 놓는 건 매우 유감스러운 에러라 하겠다.
사건 당시엔 듀나 게시판 등에서는 신정아 사건으로 재판이 벌어진 것이 대부분 무죄인것을 봐서 언론의 병폐이고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으나, 자서전 출간이 워낙 큰 사고였던 탓에 지금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7.3. 거대 언론과 신정아의 상호이용
신정아가 이렇게 크게 사기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신문사들이 초기에 신정아를 컬럼의 고정필진으로 쓰고 여러 번의 인터뷰를 하는 등의 삽질을 했기 때문이다. 젊고 교양있는 전문직 여성을 컬럼 필자로 구하려던 이들의 기호에 신정아는 거짓이었지만 딱 맞는 스펙이었으며, 신정아는 이를 이용해서 자주 신문지상에 필자로 나타났다.
기껏해야 기고하는 글은 잘봐줘야, 중고딩 감상문 수준으로 딱히 소재가 참신하지도 않고, 감성도 날카롭지도 않고 미지근하고 밋밋한 글이다. 읽어보길... 마치 어려운 분야를 스스로 택해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는 식으로 미화한다. #
신정아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한 1997년부터 거짓학위가 밝혀지는 2007년까지, 신정아를 다룬 기사는 70여건이었으며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신정아는 여러 기자들에게 이런저런 선물과 향응을 베푸는 걸로 유명했는데, 심지어 어떤 기자에게는 명절에 고향 가는 비행기표까지 끊어주었다. 아시아나항공을 끼고 있는 금호그룹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할 때 있었던 일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골때리는 스토리가 있는데 자세한 것은 자서전 4001 참조. 이를 통해 언론사의 인맥을 길렀고, 이에 넘어간 기자들은 신정아를 언론에 띄워주었다. 신정아는 이를 통해 유명인사가 되었고, 뉴스의 사실확인이라는 언론의 기본 사명조차 수행을 못 한 이 기레기들은 당연히 아무런 언급없이 넘어갔다.
여기에 제대로 낚인 것이 동국대다. 언론 타는 유명인사를 채용하여 학교 이름을 높이려다가 망했어요.
언론사가 얼마나 신정아에게 제대로 낚였는지, 심지어 신정아가 예일대 박사학위를 받는 거짓말을 마치 공공의 경사인 양 주요 신문이 보도했을 정도이다. 이것은 해외 유수의 명문대에서 외국인이 미술사 박사를 취득하기가 매우 어렵고 드문 일이기 때문에 한국 미술계의 경사로 축하하는 차원에서 나온 기사가 아닐까 한다. 가짜학위 취득을 신문에 대대적으로 선전까지 한 신정아가 얼마나 배짱있고 대담한지 보여주는 일화.
7.4. 인맥
예일대 박사 소지자에 국내 유수의 미술관 큐레이터, 대학교수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등에 업고 한국 최고의 상류층과 어울렸다.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 등 정치계 실세 인사가 멤버로 있는 친목회에 고정멤버가 되어 매달 모여서 식사를 하는 정기 모임에 나갈 정도였다. 나경원은 당시 신정아를 지인에게 중매하려 한 적도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유명 배우인 고현정 또한 신정아의 미술관으로 자주 찾아와 점심을 함께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고, 신정아가 몰락했음에도 지금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신정아는 미술계 원로들에게 공을 들여 귀여움을 받는 등,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인맥을 다지는데 심혈을 기울였다[21] .
다만, 신정아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신정아의 학위위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신정아와 친분을 쌓았던 것에 대해 절대 함구하거나 부인하고 있고, 당시의 기사들도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그간 신정아의 비리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지금도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무는 것에 대해 '''"신정아가 고위층의 많은 비밀과 비리들을 알고 있고 그로 인해 관련인사들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 신정아의 비리를 문제삼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그의 사기행각을 지속하는 데 도움을 준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범죄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변양균 말고도 사귀던 애인이 여러 명 더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8. 과연 실력은 있던 사람이었는가?
그렇다면 큐레이터/교수로서의 신정아는 어땠을까?, 아직까지도 일부는 "신정아가 학위만 없었을 뿐이지, 실력은 나름대로 있는 사람이 아니었냐?"라고 말하는데, 그녀의 수업을 들어본 학생들의 평가는 당연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학력은 둘째치고 경력도 없는 사람에게 무슨 실력이 있겠는가'''?
황우석은 최소한 확실한 학위나 경력은 있는데, 신정아는 '''경력조차 없는 사람'''이다. 황우석 박사도 스너피 복제는 진실로 판명났다. 물론 둘 다 언론플레이로 망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어쩌다가 신기한 이벤트 마냥 그림일기를 제출하게 했다든지, 박물관 현장에서 수업했다든지 등등을 수업시간에 도입해서 없는 실력에 허세를 부리기도 해서 속은 학생도 꽤 있었다고 한다. 또한 물론 가르치는 과목이 전공이 아닌 교양과목이었으니까 자세히 모르는 것은 대충 얼버무려도 된다. 이런 태도에 속아넘어간 것이 분명한 듯 하다.
수업시간에서도 워낙 허세가 쩔었으며, "뭔가 있어보이는" 식의 태도가 신기해 보여서 학생들이 참신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긴 했었다. 그나마도 가르칠 실력이 되지 않아 휴강을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정아는 전문가 집단인 교수들이나 다른 큐레이터들 사이에서는 이미 실력이나 자격을 의심받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동료 큐레이터들이나 작가들과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 덕에 거만하고 잘난 척이나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은 학력위조로 떡칠한 실력이니 자신이 전혀 없으니까 겁이 났던 듯.
그의 실무능력이란 것도 외국에서 히트를 쳤던 기획을 무단으로 베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열심히 일했다고 하지만, '''"실력이 없으니까"''' 남들보다 2배로 왔다갔다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척이라도 했겠지.
또 미술사라는 분야는 미술 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요소도 들어가 있기에, 원어민도 박사 학위 따기가 쉽지 않다[22] . 그림 한 장이라도 그 그림이 가지는 사회적/역사적 의미와 문화와 대중에 미치는 영향 등등을 알아보고자 공부하는 사람들이 큐레이터인데, 신정아가 그런 걸 알았을 리가 만무하다. 그냥 히트치는 전시를 주관하는 게 큐레이터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9. 기타 개인사
인간관계를 조종하는 기술이 대단히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인물관계를 보면 알지만, 사실 신정아와 직접적으로 대면한 사람들이 신정아를 그리 나쁘게 말하는 사례는 없다.
김어준이 '참 괜찮은 사람'[23] 이라고 묘사하고, 변양균 역시 '첫사랑' 운운하며 닭살돋는 표현을 공식석상에서 썼는데, 웃기는게 이들의 신정아 묘사를 아무리 봐도 '''신정아를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해야 할 객관적인 이유'''는 전혀 찾을 수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신정아의 인관관계 조종 기술을 높게 평가하지 않으면, 위에 언급된 두 사람을 포함한 신정아와의 인맥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바보가 되어버린다.
여러 증언, 모습을 보아 나이 많은 사람, 권력자, 자신에게 이득이 될 법한 사람에 한하여 철저하게 아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권력자들이 바라는 것을 철저하게 충족시켜 주고 자신의 이득을 꾀한다. 반대로, 자신에게 도움이 안되는 밑의 사람은 철저하게 무시하는 전형적인 중간 관리형 착취자의 모습을 보인다. 즉, 아부를 매우 잘 한다.
이는 위에 언급된 '인간관계를 조종하는 기술'과도 연관성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음대로 젊은 작가들의 전시일정을 취소하면서 예의도 갖추지 않은 채로 일방적인 통보를 하는 등, 예의범절이 없는 행동 등으로 큐레이터 시절, 신정아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신진작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어르신들이나 원로작가들에게는 엄청 극진했다. '''즉, 약자 앞에서는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약해지는 비겁한 소인배다.'''
평소에 명품이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는 등 그야말로 허세가 쩔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자신에게 이득이 될 높으신 분들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의 '값어치'를 높이려는 전략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가짜 학력 타이틀 역시 이와 비슷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부의 위력을 높히려고 '강화'를 해놓은 것이다.
어쨌든 한 때 별명이 '에르메스의 여인'으로 주위에 고가의 에르메스 넥타이를 선물하는 걸로 유명했다. 명품 구매비는 어머니가 대주거나, 박물관 공금 횡령으로 스스로 조달하기도 했다. 신정아는 사문서 조작 및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횡령이 여기서 더 형량을 받는 죄이다.
타고 다니던 차는 E46 BMW 3시리즈 세단이다. 지금이야 수입차들의 가격대가 옛날에 비해 많이 내려갔고 리스나 할부 등으로 차를 사는 경우가 많아서 BMW 3시리즈 정도의 수입차는 고소득층이 아니더라도 탈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 수입차의 가격대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서 수입차 자체가 국내에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며, 큐레이터가 고소득 직업도 아닌데 큐레이터의 소득으로 타고 다니기는 벅찬 차종이었다. 그 승용차는 어머니가 사 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명의는 조계종 소속 승려 심 모씨로 되어 있다.
그 심 모씨는 신정아의 어머니가 소유한 절에 기거했다는 승려인데 제3자 명의를 빌려 자동차를 사 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상식과 상충한다. 승용차 소유에는 현금으로 구매해 사유하는 방법 이외에도 리스로써 법인이 소유하기도 하는데 위 예는 그 두 방법 중 어느 하나도 아닌 대포차라는 의미이며, 학위위조가 밝혀지기 전까지 신정아를 계속 옹호했던 대학 이사진도 모종의 연결이 있었으리라.
'''평소에 현찰을 뭉텅이로 가지고 다니면서 고가품조차 모두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에게 한 턱 쏘거나, 명품을 살 때 현금 지불을 보고 놀랐다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나중에 신정아의 가택수사 과정에서 침대 밑에서 현금상자가 발견되었다.
신정아의 어머니도 소유하던 사찰의 이중매매와 관련, 사기죄로 고소된 바 있다. 이쯤 되면 집안 내력이다.
뇌물수수, 업무방해, 직권남용, 횡령 등이 무죄 판결받았고, 사문서 조작과 횡령은 법원에서 유죄로 판결받아 복역했다. 팩트가 궁금하다면 찾아볼 것.
이후로도 정신을 못 차리고 허세나 부리며 몇몇 동정하는 시선을 보내는 언론의 음모론 같지도 않은 음모론을 이용하여 정권에서 피해받은 사람 행세하려고 했으나... 당연히 묻혔다. '''애초부터 범죄자가 지껄이는 것이니 설득력도 없는 것이 당연지사다'''.
1995년 6월 29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의 생존자로 언론(조선일보)에 보도된 적이 있다.
[1] 원래 불교 집안이였으나, 훗날 개신교로 개종했다.[2] 엄밀히 말하면 "전직 교수"라고 할 수 없다. 그녀는 학력 사칭으로 애초에 교수가 될 자격조차 없었으며, 이후 사기 행각이 발각되어 교수직을 박탈당한 것이기 때문.[3] 이전에 벌인 사기극 때문에 진위가 의심되었으나, 이름과 고향이 일치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기사 기사 인용글[4] 이후 2000년대 미술계 거장이 내한했을 때 기자회견에서 신정아가 영어로 질문하는 것을 들은 한 학자는, 자칭 '예일대 박사'의 영어 실력이 너무나 형편없어서 놀랐다고 한다.[5] 당시 기획한 전시회는 어린이 대상 전시회였으며, 관람객 40여명이 가스에 질식하고 그 중 어린이 관람객 1명은 이산화탄소 과다 흡입으로 중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사고 열흘 후 사망했다.[6] 지금은 그 경향이 약해졌으나 미술학계는 서울대를 필두로 소수의 대학들이 주름잡고 있었다.[7] 그러나 수업료를 납부한 송금기록이나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금호미술관에서 퇴출당할 때도 펄쩍 뛰며, "예일대에 보낸 학비 송금 통장을 보여주면 되냐"고 되물었다고 한다.[8] 미국 대학에서 제출하는 과제는 보통 에세이(essay)나 페이퍼(paper), 노트(note) 등이며, 리포트(report)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신정아의 경우 애초에 미국에서 제대로 대학을 다닌 적이 없기에, 1990년대 한국 대학에서 사용하던 '리포트'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정말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에세이 혹은 페이퍼를 제출했다고 말했을 것이다.[9] 해당 학과의 박사 디펜스 과정은 2011년에야 도입되었으니, 이 또한 새빨간 거짓말이다.[10] 규정상, 장교는 정규 4년제 대학 또는 이에 준하는 교육기관 졸업자만 가능하다. 간부사관의 경우만 예외.[11] QS 세계 대학 랭킹 372위로 한국의 이화여대 ~ 한국외대 수준이다. 미국 국내에서도 100위도 안 되는 수준이니 상위권이라고는 최소한 기준을 낮춘다고 해도 할수없는 수준이다.[12] 행정학 아니다. 네이버 참고 바람.[13] 위증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14] 작품용 누드의 경우 속옷 자국이 보이면 예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보통 촬영 2~3시간 전에 모두 탈의하고 가운만 입은 채로 대기한다. 그건 도색 잡지용 사진 기사들조차 아는 기본 상식이라고 한다.[15] 미국은 민사도 배심원 재판을 하지만, 대부분의 재판이 사법 거래와 약식 재판으로 대충 끝난다. 미드 슈트를 봐도 "심리까지 가게 되면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며 모든 재판을 사법 거래로 간단하게 처리한다. 미국에서 약식 재판은 원고와 피고가 주장하는 팩트에 분쟁이 없을 때, 분쟁이 없는 사실에 어떤 법을 적용할지 판사에게 결정해 달라고 청원하는 것이다. 미국 민사 소송에서 거의 모든 피고가 “원고의 주장이 근거가 없으니 굳이 배심원 재판까지 가지 말고, 판사가 직접 판단해 기각시켜 달라”며 약식 재판을 요청한다.[16] 미국은 해당 지역 사람만 해당지역 판사가 될 수 있다. 다른 지역과 인사이동도 없고, 일 잘한다고 고등법원으로 승진하는 것도 없다. 즉 코네티컷 사람만 코네티컷 법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데, 코네티컷에 있는 세계 최고의 법대가 어디게?[17]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지관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며 총무원장의 8대 가신으로 꼽히는 사람이었다.[18] 책 제목인 4001은 신정아가 1년 6개월간 수감되었던 시절의 수인번호라고 한다.[19] 수용자들은 범죄물을 선호한다. 음란물은 더 좋아하고. 강안남자·대도·범털·용주골블루스 같은 책이 인기 많다. 부동의 1위는 MAXIM이지만 그것은 잡지이니 열외하고.[20] 신정아가 화제성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자기가 이희호 여사와 관계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려고 한 거짓말로 보인다. 심지어 본인과 아무 상관없는 대 원로배우 김지미의 이름까지 팔고 있다. 김지미는 이에 대해 그런 일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21] 한 기자는 "힘 있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데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22] 당장 미술사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만 해도 700페이지에 글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고 내용도 쉬운 편이 아니다. 하물며 석사, 박사 학위를 영어로 공부한다는 건...[23] 아이러니한건 김어준이 싫어하는 높은 분들처럼 남한테 피해가 가도 본인 보신에만 신경쓰고 종국에는 큐레이터를 위시한 대한민국의 '''가난한''' 젊은 예술인들의 미래를 사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