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쥐효과/사례
1. 타자
- 이용규(2004.11월, 2:2 트레이드)
단 애매한 부분이 있는게 입단 직후 LG에 1년밖에 없었고 거의 대수비나 대주자로만 나왔기때문에 표본이 적다. 그래서 과연 LG에 계속 있었을때 어땠을 것이냐는 질문에 확실히 계속 못했을 거라는 확신을 두기는 어렵다는 점이 있다. 게다가 이용규는 2004년 당시 LG 감독이었던 금지어 감독실까지 찾아가서 LG에 남게 해달라 요청했지만 그 금지어가 매몰차게 트레이드로 보내버리고 말았었다.[1]
그런데 의외로 이용규는 탈쥐로 LG 트윈스 갤러리에 거의 어그로가 안 올라온다. LG에 달랑 1년밖에 있지 않아 LG 출신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KIA팬들도 이용규가 LG 출신인 걸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이용규가 안타를 치건 홈런을 치건 뭘하건 탈쥐글이 없다.
- 손지환(2004년 FA 보상선수)
- 김상현(2009년 4월 19일, 2:1 트레이드)
그러다가 2016년에 그는 뉴스를 본 사람들의 어이를 상실하게 하는 대형사고를 쳐버리면서 임의탈퇴되어 사실상 선수 생활이 끝났다. 이 사건의 임팩트가 너무나 어마어마했던지라[4] 그는 더 이상 탈G로 언급조차 안 되게 되었다. 아니 애당초에 2009년 이후엔 잘하는 성적이라고 보기도 어려웠으며 상술했던 대로 유리몸 때문에 팀을 많이 옮겨다니며 또 다시 LG 시절처럼 공갈포가 되었으니[5] 애매한 경우로 보는 시선들도 꽤 많다.[6]
- 박병호(2011년 7월 31일, 2:2 트레이드)
하지만 2016년, 메이저리그에서 공의 속도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완전히 말아먹으며 마이너리그로 직행했다. 마이너리그로 간 이후에도 타율이 2할 밑으로 떨어져버리면서 삼진을 미친듯이 적립했다. 미네소타 '''트윈스'''라서 입쥐효과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농담도 있었다. 그래도 다시 한국에 돌아온 2018년에는 부상으로 경기를 좀 빠졌음에도 장타율-출루율 1위를 기록하였고, 2019년에는 다시 홈런왕을 탈환하고 프리미어 12 대표팀에도 합류했다. 명실공히 국대 4번 1루수이며, 탈G효과는 여전히 유효하다.
거론된 인물 중 유일하게 포스트시즌에서 LG를 만났는데, 2014 PO, 2019 준PO에서 만났다. 둘 다 박병호의 소속팀이겼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며, 2019년에는 시리즈 MVP까지 타가면서 LG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다.
- 박경수(2014년 11월 28일, FA)
그런데 이적하자마자 첫 해 6월부터 갑자기 타격이 폭발하며 3할 타율, OPS 1.070을 기록했고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거기에 8월 9일에는 멀티 홈런을 추가하면서 시즌 16호 홈런을 기록. 참고로 2015 시즌 8월까지 LG가 버렸던 박경수, 브래드 스나이더 모두 15홈런을 넘기는 사이에 LG 타자 중 어떤 선수도 15홈런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망의 8월 27일, 4타수 4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3할 타율을, 8월 28일 쓰리런 홈런으로 시즌 20홈런을 기록하였다. 거기다 홈런만 많은 공갈포 스타일도 아니고, 풀타임 2루수로써 아주 모범적인 타-출-장 3-4-5의 아름다운 성적을 냈다.
여담으로, 2015 시즌 8월 30일까지 기준으로 박경수보다 타격 성적이 높은 LG 타자는 아무도 없다. 시즌 성적 0.284 22홈런 73타점. 지난 성적들에 비하면 엄청난 커리어하이로 저 정도라면 진짜 콱전드가 될 기세이다. 2016 시즌에도 타-출-장 3-4-5의 매우 훌륭한 성적에다가 토종 2루수 최초 2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하면서 장타력을 갖춘 2루수임을 증명해보이며 2015 시즌 성적이 자신의 실력임을 입증했다. 2017 시즌에는 15홈런으로 주춤했으나 FA 계약 마지막 해인 2018 시즌에 커리어 하이인 25홈런을 기록했다. 박경수가 LG에서 머무른 10시즌 동안 기록한 swar가 10을 조금 넘기는데 kt 가서 단 3시즌만에 넘겨버렸다. 그나마 잘 못했다는 2017시즌도 LG에서의 2004, 2010시즌을 제외한 8시즌보다는 나은 성적이다.
그래도 박경수가 LG에서 팬들의 기대에 못 미쳐 욕을 먹었을지언정 인성이나 성실함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kt 팬덤이 신생이라 팬덤끼리 충돌할 일도 적어서 까이지는 않는다. 박경수 본인이 이적해서도 인터뷰를 신중하게 하고 있고, LG 팬덤도 그전에 콱전드라고 놀리는 등 많이 애증섞어 욕한지라 그러다가 2018시즌에 LG 전에 가르시아와 충돌이 생기면서 여론이 좀 반전되기는 했다. 그래도 금방 잊혀졌다.
- 이대형(2014년 FA로 이적, 4년 24억)
그러나 여전히 wRC+가 2007년 말고는 100 미만이라서 타격 생산력이 약하지 않냐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LG에서의 마지막 3년과 KIA와 KT에서 보낸 2014, 2015, 2016의 3년은 분명히 차이가 난다. 클래식 기록이 더 좋아진것은 당연하고 경기수[7] 와 타석수 wRC+까지 모두 의미있게 늘어났다. 안타, 루타 등 누적 스탯과 출루율-장타율 등 비율 스탯은 LG 시절 커리어 하이 2007시즌보다 뛰어나다. wRC+도 100 아래라 분명 좋은 타자는 아니지만 2007 시즌을 제외하면 이대형 커리어 상에 2014~16 시즌만큼 찍어준 시즌도 없다. 툴이라고는 주루밖에 없어서 노쇠화가 오면 직격타를 맞을 선수가 32~34세에 팀을 옮겨서 자신의 커리어 하이급 혹은 그 이상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타이틀도 이적 후보다 전에 더 많이 탔다.
- 정의윤(2015년 7월 24일, 3:3 트레이드)
탈쥐효과를 본 선수들 중에 '''LG팬들을 가장 빡치게 한''' 선수로도 이름이 남아 있다. 박병호도 옹호여론이 있는 LG팬덤이지만 정의윤은 '''단 한 명도 옹호하는 사람이 없다'''. 일단 인터뷰의 숫자부터 많고, 단 1년만에 "내 야구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여기는 못쳐도 뭐라고 할 사람들이 없다." 라는 주옥같은 명대사들을 날리며 LG팬덤 사이에서는 이름조차도 언급해서는 안되는 금지어에 들어갔다. 나무위키에서도 LG 문서에서 정의윤은 '''그 놈''', '''그 자식''', '''24번이었던 선수'''로 불리며 실명으로 언급이 안 된다. 워낙 명대사가 많은지라 '너는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냐?'는 소리도 나왔다.
허나 이는 억울한 면이 있는데, 자신은 이적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기자들이 그냥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졌고, 정의윤은 무심결에 대답하다가 탈쥐효과 관련 발언 인터뷰에 낚이고 말았다. 이후 LG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 하고 다녔음이 밝혀졌고 '탈쥐효과를 누리세요'라는 질문에 무심결에 알겠다고 했다가 '저도 탈쥐효과를 누리겠습니다'는 기사가 나왔다는 것도 알려지면서 어느 정도는 덜 까인다. 거기에다가 대신 받아 온 진해수가 홀드왕을 차지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쳐서 묻힌 감이 있다.
2. 투수
없다. 타자의 경우 팀을 나가자마자 잘하는 케이스가 넘쳐나는데 반해 투수의 경우는 '''전무하다.''' LG 트윈스가 일단 임선동이라는 금지어급 사례를 빼면 자팀 투수를 제대로 쓰지 않고 타팀에 트레이드로 내준 사례가 많지 않아서 샘플이 매우 적기도 하며 거기다 홈구장인 잠실 야구장이 투수에게 유리한 것이 요인일 수도 있다.
같은 구장을 쓰는 팀과 비교해 봤을 때 탈돡효과는 탈쥐효과와는 많이 다른 케이스다. 탈돡효과의 대부분은 선수 본인의 실력은 있지만 팀에 자리가 없어 나간 경우고, 주로 포수나 외야수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의 진갑용, 최기문은 1999년 루키시즌에 신인왕을 차지하며 혜성같이 나타난 홍성흔에게 밀려서 나간 것이고, 2010년대의 최승환, 용덕한은 양의지가 전역 직후 시즌에 신인 포수 최다 홈런인 20홈런을 때리고 당해 신인왕을 차지하면서 주전 자리를 채갔기에 팔려간 것이다. KBO 역사상 포수 신인왕은 1990년 김동수를 포함해 3명 뿐이다. 즉, 다들 삽질만 하다가 팀을 나가서 포텐이 터진 게 아니라 두산에서도 주전 경쟁을 하다가 경쟁에 밀려 팀을 떠난 것.
트레이드로 팀을 나간 투수들 중 커리어를 지속하거나 리그에 안착한 경우 심수창과 김광수, 신재웅정도가 있는데, 이미 앞의 두 선수는 30대 중반의 나이라 롱런하기는 어려운 상황. 거기에 김광수는 은퇴했고, 심수창은 다시 LG로 돌아갔다. 신재웅은 LG시절과 크게 차이가 없다가 2017시즌 부활했으니 지켜봐야할지도? 탈쥐효과 기준인 트레이드, FA보상등을 제외하고 2016년 시점에서 LG를 나가서 가장 잘하고 있는 투수는 NC의 원종현이다. 그러나 원종현은 위 선수들과 달리 탈쥐효과로 보기는 힘들다. 자세한 건 후술. 2017년에 FA로 삼성으로 이적한 우규민은 2017년, 2018년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 그러나 2019년에는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여줬다.
2018년 시즌 SK로 이적한 신재웅이 마무리 투수로서 2승 3패 16세이브 6홀드를 기록하며 활약했고, 2019년에는 한화로 트레이드된 신정락이 이적 이후 패전처리조와 스윙맨으로 21경기 등판해 25.2이닝을 소화하며 4승 무패 1홀드 방어율 3.16을 기록하는 등 LG에 있을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신재웅은 다음 시즌인 2019년 부상을 겪으며 많이 부진했고 신정락은 순위싸움 부담이 사라진 상태에서 좋아진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 탈쥐효과 이론을 적용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그리고 2017시즌 전에 차우찬의 보상선수로 삼성으로 이적한 이승현이 2019년 들어 포텐이 터져 전반기 필승조로 자리를 잡았지만, 후반기를 부상으로 날렸다. 하지만 2020년에도 여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탈쥐효과 투수 반열에 올라가려고 하는 중이다.
3. 감독
2017년 이후로 이젠 감독 탈쥐 표본지표마저 충분하다. LG에서 가을야구를 이끌지 못하다가 LG를 떠난 뒤에는 여지없이 소속팀을 가을야구로 이끄는 기염을 토한다. 감독판 입쥐효과의 경우 현대 유니콘스의 V4를 이끈 명장인 김재박의 예가 있고 삼성 왕조의 주역이던 류중일의 LG 감독 생활이 순탄치 않게 진행되어가며 입쥐효과의 표본마저 생겨 버렸다. 헌데 류중일은 첫해를 제외하고 재기하는 조짐이 보였지만 막판에 제대로 말아먹고 사퇴하면서 입쥐효과를 받아버렸다.
- 김성근: 2002년 LG 감독 부임 첫 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만 하필 상대가... 이라 준우승을 했고 프런트와 야구관이 맞지 않는다며 2002년 겨울 LG 감독에서 해임됐다. 그리고 일본 치바 롯데 마린스 코치 등을 전전하다 2006년 말 중하위권을 전전하던 비인기 구단의 감독으로 선임됐고[8] 그 팀에서 감독으로 있던 4년 내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며 그 중 우승 3회, 준우승 1회를 기록한다. 하지만 말년에는...
- 양승호: 원래는 두산 베어스에서 잔뼈가 굵었던 인물이지만 2005년 LG 트윈스 수석코치로 입단했다. 2006년에 이순철의 중도 사퇴로 감독 대행을 맡은 경험이 있었으며 대행으로의 평도 좋았던 탓에 정식 감독 논의도 나왔지만 LG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재박의 취임이 결정되면서 그대로 팀을 떠났다. 이후 고려대 감독으로 부임해 현장에서 좋은 평을 들었고 2011년에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취임해 재임 2년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고려대 감독 당시 입시비리에 연루되면서 지도자로 받은 좋은 평가를 다 까먹고 흑역사행.
- 염경엽: LG 트윈스 코치 시절 한낱 수비코치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연과 학연을 통해 선수단 내 파벌을 조성했다는 소문이 돌며 LG 트윈스 팬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 후 서울 연고지를 같이 쓰지만 돈은 없는 팀으로 떠나 코치-감독의 순서를 밟게 되는데 가을야구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팀의 체질을 개선해 감독으로 재임하던 4년 내내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그 중 2014년은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했다. 넥센 히어로즈 감독에서 중도 사퇴한 후 맡은 SK 와이번스 단장직에서도 호평을 받는 중이며 결국 단장으로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 김기태: 2012년 전체 8팀중 7위라는 성적표를 받았지만, 그 다음해에 10년만의 지옥같은 비밀번호 DTD를 끊고 정규시즌 2위 기록을 하였다. 그러나 다음해 초반 부진한 성적을 내자 결국 Run하고 다음해에 대놓고 리빌딩 모드로 들어간 하위팀의 감독이 되었다. 결국 미래를 내다보며[9] 서서히 도약을 준비하다가 3년차인 2017년에 드디어 우승을 하게 된다. 이후 재계약을 하자마자 또윤동, 또기준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혹사의 아이콘이자 그 제자임이 드러났고, 2연패를 할 전력임에도 중위권에서 허우적대는 중이다. 그리고 2019년에는 9연패를 하며 아예 밑바닥에 자리를 잡았고, 그 이후에도 9위 kt와 2게임차 꼴찌를 하자 5월 16일자로 사퇴해버렸다. 여러모로 탈쥐 감독들은 다들 끝이 안 좋아보인다.[10]
4. 입쥐효과
- 홍현우 : 1999년에 30-30을 한 호타준족의 내야수여서 LG가 잡았지만 해태 시절의 과도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인해 부상을 당했다. 결국 LG 최초의 FA 먹튀로 등극했고 2005년에 친정팀인 기아로 가서 은퇴했다. 사실 LG로 오기 직전 시즌인 2000년 시즌에 성적이 하락하는 기세가 보였고 FA를 앞둔 시즌이다 보니 무리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LG에서는 일시적인 하락이라고 판단하여 거액으로 FA계약을 하였다. 선수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해태-KIA 시절에는 시즌 중 컨디션 난조로 성적이 내려갈 때 홈런이 나와서 그걸 계기로 컨디션을 회복하였으나 LG시절에는 잠실이 너무 넓어 홈런이 안나오다보니 제대로 안풀렸다고 한다. 처음부터 궁합이 안맞았던 셈.
- 톰 퀸란 : 현대에서는 상당한 공갈포라는 불안요소는 있었지만 힘은 확실했고 안정적인 3루 수비도 보여줬지만, LG에서는 무안타로 삽질하다 시즌 초에 퇴출. 사실 퀸란은 애초에 은퇴할 예정이었고 현대가 퀸란을 포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LG는 무슨 생각인지 은퇴 예정이던 퀸란을 잡았고 퀸란은 삽질만 하다가 방출됐다.
- 진필중 : 2000년에 42세이브, 2002년에 31세이브를 올린 투수이나 두산에서 킬인식에게 신나게 혹사당한 결과 LG에서는 먹튀가 되었다. 거기에 구단과도 연봉협상도 매 해를 질질 끌다시피 해서 팬들에게는 분노를 안겨주었다. 결국 2007년에는 1군에 못올라왔고 2008년에 우리 히어로즈 2군에서도 탈탈 털리다가 은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의 보상선수가 탈쥐효과의 대표적 케이스인 손지환이다.
- 박명환 : 2007년에 10승을 거둔 것을 끝으로 극심한 부진 + 부상을 겪었다. 2008~2009시즌은 0승, 2010년에는 4승을 거두었다. 40억을 받고 14승을 올린 건데 1승에 3억씩 줬다고 봐야할 듯... 결국 2011~2012년은 1군에 못 올라오고 방출되었다. 참고로 FA 계약 직전에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도핑에서 노르안드로스텐디아올이 검출되며 짐을 싸서 돌아왔다. 이 후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두산 시절에는 아프면 진통제를 맞으며 버텼지만 LG로 이적하고 난 뒤로 진통제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래서 수술을 하였으나 수술 뒤에는 부상 재발의 공포가 있었다고. 여담으로 FA 재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한뒤 재계약하면서 5억에서 5천만원까지 연봉이 떨어진 희대의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 이택근 : LG에 있던 2년 동안 상당히 오래 드러 누워서 팬들을 빡치게 했지만 두 자릿 수 홈런을 친 적도 있었을 만큼 2010시즌 한정으로 좋은 성적을 낸건 사실이다. 물론 당연히 스탯관리고 전반적으로 병원비만 지급받으며 사실상 2년간 요양했다는게 대체적인 LG팬들의 평가이다. 2011년 시즌 종료 이후 당시 기준으로 역대 FA타자 중 2위에 해당하는 4년 50억계약[11] 으로 넥센 히어로즈에 복귀해서 야구계에 엄청난 파란을 몰고왔다.[12][13] 너무 재활만 하다가 간 이미지가 강해서 LG팬들은 거의 '유학생', '슈퍼먹튀' 등으로 아예 실명 언급조차 꺼리는 상태. 현역 선수가 볼드모트화된 흔치 않은 케이스.[14][15][16]
- 마해영 : FA였던 기아 시절 나이에 따라 기량이 노쇠화 되어서 먹튀소리는 듣기는 했지만,그래도 두자릿수 홈런을 때려내긴 했다. 그리고 트레이드로 LG로 온 후 2007년 7푼 1리의 압도적 성적을 보여준다. 다만 엘지시절 두자릿수 홈런은 없다. 그리고 법정소송까지 벌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마해영 문서 참조.
- 제이미 브라운 : 2006년과 2007년 삼성에서 좋은 투구로 인정을 받았지만, 2008년 LG로 온 후 평균자책점 7.93으로 망했다.
- 정상호 : 2016년 FA를 신청하여4년 32억(옵션 2억)에 SK에서 LG로 이적했으나 젊은 포수 유강남보다도 못했고 2018 시즌까지 3년 합계 sWAR -.0.01를 찍었다. 결국 2019년 시즌 종료 후 LG에서 방출되고 라이벌 팀 두산에 입단했다.
- 제임스 로니 :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도 뛰어난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17] , 누적연봉이 무려 3650만 달러(한화 약410억원)나 되고 전성기때는 3년 2100만달러의 FA대박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LG에서 성적부진으로 2군행 통보를 받자 메이저리그에서 화려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으로 가 버렸다.
5. 탈쥐효과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경우
계약금도 없는 고졸 신고선수였고, 입단 1년차에 계속 2군에서 뛰다가 1군에선 시즌말에 단 한 경기만 출장하고 곧바로 어깨부상 때문에 방출되었다. 참고로 그 한 경기는 히어로즈와의 경기였고 상대투수는 당시 서건창의 데뷔 첫 삼진을 잡던 송신영. 별다른 성적을 내지도 못했고 게다가 부상까지 당한 미필 고졸 신고선수를 기다려주는 구단은 LG가 아니더라도 없다.[18] 이후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넥센에 입단하여 2012년 신인왕을 차지했고, 2014년에는 프로야구 최초 시즌 200안타를 기록하고 MVP도 수상하면서 한때 LG 소속이었던 것이 과도하게 부각된 면이 있다. 뒤늦게 서건창의 재능을 꽃피우게 해준 넥센 코치진과 그 이전에 입단테스트를 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 서건창을 칭찬할 일이지 LG의 안목이 나빴다고 말하거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고 말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LG에 있을 때의 성적과, 후일 LG를 떠나서 현대에서 낸 성적을 비교한다면 후자가 압도적이지만, 이는 임선동이 일본리그 못갔다고 태업을 부린 것으로 탈쥐효과로 거론하기는 어렵다. 자기 원하는대로 하다가 간 선수.
서건창과 비슷한 케이스. 입단 당시 2차 5라운드 지명으로 애초에 큰 기대를 받았던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LG에 몸담은 기간이 4년, 그나마 경찰 야구단 복무로 실질적으로는 2년에 불과했고 방출 후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6년만에 KBO 리그로 복귀했기 때문에 탈쥐효과로 들기는 무리다.
1994 시즌에 이미 주전 내야수로 뛰면서 골글도 타고 나름대로 봐줄 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 뒤 부상도 있어서 현대로 갔다. 하지만 LG를 떠나서 타격이 일취월장한 것은 사실이다. 무려 타격왕을 탄데다, 39경기 연속안타를 기록하기도 하는둥.... 당시 박종호가 LG에 입단시기에는 투고타저 시대였고 현대로 트레이드가 될 때는 타고투저의 시대였는데 아마 흐름이 잘 맞아서 준수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에 만족했다. LG 퇴단 후에 현대 - 삼성에서 뛰면서 골든글러브 2회 수상 및 우승반지 5개를 챙겼다.
심재학은 엘지 코치진의 뻘짓이 더해진 경우로, 첫 해는 타자였는데 교정 잡느라 부진하면서 계속 나간탓에 성적은 깍아먹었지만 이듬해부터 일취월창했다. 그리고 1999년 정삼흠 코치가 투수로 전향하라 해서 투수로 전업. 물론 투수로서의 결과는 3승3패 방어율 6점대로 폭망했다. 그리고 현대에서 타자로서 괜찮은 성적을 냈으며, 2001 시즌에는 두산 선수로 커리어 하이를 찍고 팀의 우승에 공을 세웠다. 다만 이후에는 KIA로 이적한 2004년을 빼면 박살이 났다.
LG 출신(당시는 청룡) 선수 중 타팀 이적 후 MVP를 탄 건 사실이지만, 청룡에 있을 1989년 시즌 홈런 5위를 기록하는 등 상당히 기대받던 선수였다. 거기다 청룡에서 보낸 시간은 2년 뿐이고 3년차에 트레이드 되어 OB에서 꾸준히 선수생활을 하여 MVP를 탄 것은 OB로 가서 5년이나 지난 후이다. 역시 그냥 OB에서 선수를 잘 키웠다고 봐야 할 듯. 본인도 두산구단도 베어스 프랜차이즈로 본다.[19] 다만 김상호와 트레이드 상대였던 최일언은 LG에서 단 3승만을 남기며 사라졌기 때문에 상당한 손해를 본 트레이드는 맞다.
LG 시절만 해도 수비도, 공격도 아쉬운 포수였다. 그러나 NC 다이노스의 특별 지명을 통해 NC로 이적한 다음, 최소한 수비면에서는 기량이 향상된 면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공격력도 다소 과대평가되면서 탈쥐효과에 해당된다는 팬들도 있으나, 탈쥐효과라 불릴 정도의 포텐 폭발인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다만 내구성이 좀 떨어지는 선수였지만 팀을 옮기면서 풀타임을 5년 연속으로 뛰면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도 이끌었다. 공격 부문에선 많이 아쉽지만 어쨌든 NC에서 꼭 필요한 선수인 것만은 사실이다.[20] 결론은 선수 입장에서야 이적 이후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했고, 연봉도 크게 올랐으니 탈쥐효과로 볼 수는 있겠지만, 리그 전체로 봤을 때는 그 효과가 미미하다.
2014 시즌의 브래드 스나이더는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을 빼면 미미했다. 2015 시즌, 넥센으로 이적하면서 탈쥐효과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 말도 많았지만. 시즌 초반에는 여전히 부진했었다. 그러나 2군에 내려가고 다시 올라와서는 충분한 활약을 해주며 탈쥐효과의 외국인 선수 예시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 특성상 에릭 테임즈급 포텐 폭발도 아니고, 트리플 A에서의 꾸준한 활약 등을 생각해보면 탈쥐효과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kt 위즈로 이적하고 난 이후 갑작스럽게 잘 하게 되자[21] 일부 팬들이 탈쥐효과를 언급하며 이진영을 옹호하고 LG 트윈스를 까기에 바빴는데, 사실 원래 이진영은 이 정도 클래스를 가진 선수다. 그리고 애초에 선수생활 초반 SK에서 9년(데뷔 직후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 1년까지 10년)이나 있었고 그때도 우승멤버 겸 국가대표까지 하며 원래 상당히 잘했던 선수에, 그 후 2011과 2012년에 입쥐를 하였으나 생각보다 평균적으로 성적이 떨어지지 않은 선수다. 2011년 부상으로 인한 부진과 2012년은 수비 도중 부상으로 그냥 성적이 하락, 2015년 주장직을 맡고도 노쇠화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준 것 빼고는 LG 입장에서 준수했던 FA영입 선수였고, 수원 kt 위즈 파크가 타자 친화구장이기 때문에 이 정도 성적을 내는 건 사실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LG 트윈스는 이진영의 공백인 우익수의 자리를 채은성으로 잘 메운 터라서 리빌딩이라는 원래 목적 역시 달성해버렸기 때문에 애매한 케이스.[22] 아무튼 정성훈, 홍성흔과 역대 FA선수 중 몸값을 모범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준수한 성적을 냈다. 다만 유리몸이라는 케이스가 걸렸을 뿐 위 항목대로 당시 성적도 준수했지만 야구가 한참 떨어질 때는 저 성적이 보통이라는 단어 밖에 없지 현재 위상으로는 대단함의 극치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실을 말하자면 커리어하이 시즌을 찍은게 LG 트윈스 시절 2009~2010시즌이다.
메이저리그로 콜업되고 호투를 이어가며 이 선수도 탈쥐효과가 아니냐는 얘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데, 루카스는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11승까지도 거둬본 투수이다. 게다가 LG에서도 10승 이상 찍어주며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려준 투수였다. LG에서 재계약을 실패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멘탈 문제 때문. 즉 실력은 원래부터 좋았다. 게다가 좋은 성적도 오래 못가고 금방 성적이 폭락하더니 결국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다.
서건창과 마찬가지로, 부상으로 인해 LG 시절에는 1경기도 등판한 적이 없었다. NC로 가서 잘한 건 맞지만 그 중간에는 4년이라는 긴 공백기가 존재한다. 이 기간동안 자비로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하여 간신히 NC로 올 수 있었던 것이지 LG의 잘못이 아니다.[23] 이런 이유때문에 라이트팬이나 유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NC 팬들 중에서는 원종현이 LG 출신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도 제법 많다. 단순히 LG에 있었다는 이유로 탈쥐효과로 엮는 것은 애당초 무리수다. 하지만 2020시즌 불안불안했지만 마무리를 담당하였고 한국시리즈에서도 마무리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우승반지까지 획득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윤정우는 눕동님께서 2012년에 LG에 2차 드래프트로 데려왔지만 그 해 1군 경기에 출장한 적도 적은 데다[24] 2012 시즌 이후 상무에서 병역을 해결하고, 2015 시즌에 1군에 한 번도 올라와 보지 못하고 시즌 후 눕동님께서 다시 2차 드래프트로 KIA로 데려온 셈이라... 이쯤되면 눕동님의 양아들. 다만 2016 시즌 후반기에 1군에 올라오며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17시즌 초반 4:4 트레이드로 SK로 넘어간 뒤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다가 2019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011년 LG 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고 2012년 6월 1일 1군으로 콜업되어 백업 내야수로 기대할 만한 선수라는 활약을 했으나 2013년에는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6경기밖에 나오지 못했다. 2014년 드래프트로 두산으로 이적 후에는 시즌 초 어떻게든 써먹으려는 송일수 감독에 의해 대수비, 대주자로 출장했으나 하도 답이 안 나오는 1할대의 타격 때문에 결국 2군으로 내려갔고 2016년 퓨처스 리그가 끝난 후 스스로 방출을 요청하면서 두산에서 퇴단했다. 이후 입단 테스트를 거쳐 삼성에 이적했는데 2017년에는 백업으로 좋은 출발을 하였고 2018년에는 무난하게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후 늦게나마 터지며 내야백업으로 공수에서 준수한 활약을 하였다. 중간에 두산을 거치긴 했지만 늦게나마 터지며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걸 갖고 탈쥐효과 운운하는 것은 무리다.
LG에서 수비 코치로 활동하던 시절 엄청난 비판을 받았었고 파벌설 루머까지 나돌며 제대로 된 실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넥센 히어로즈 감독으로 취임한 뒤 첫 해에 첫 포스트 시즌 진출, 다음 해에 한국시리즈 진출이란 화려한 성적을 거두자, 호사가들 사이에서 '코치도 탈쥐효과'란 말이 나왔다. 하지만 본래 염경엽은 LG 이전에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1년 수비 코치를 한게 지도자 경험의 전부였고 그외에는 스카우터, 팀 매니저 등 프런트에서 활동해서 처음부터 경험이 부족했다. 부족한 경험으로 실적을 내지 못하다가 다른 팀으로 간 뒤 점점 경험을 쌓으면서 능력이 향상된 유형이라 LG 만의 책임으로 보긴 곤란하다. 애초에 김재박 감독이 당시 현대 코치진들을 대거 빼가자 김시진 후임감독이 급하게 코치직을 맡게 된 사례였다. 원래 보직이 스카우터와 운영진이 소속이고 코치는 얼떨결에 맡게 된 이유로 그 당시 현대 선수들 뎁스가 워낙 약했다. 그래도 본인은 수비코치직 해보는것도 소원이라고 했는데 그걸 이루었지만 현대시절은 어쩔 수 없었고 LG 시절은 본인에게는 좋지 않았을 것이다.
- 이성열 : 2018년에 한화에서 터졌으나, 아무래도 두산, 넥센 두 팀을 거치고 난 뒤에야 한화에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한 선수라 탈쥐라고 하긴 어렵다. 2010 시즌 이성열이라면 또 모를까...[25]
- 이병규 : 유망주 시절 리틀 이병규(일명 작뱅)라 불렸으며 마침내 주전으로 자리잡아 팀의 동명이인 선수인 이병규과 같이 주전으로 활약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유리몸으로 잦은 부상으로 갈수록 출전기회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전으로 활약할 실력을 가진 선수로 건강할 때는 좋은 활약을 했지만 부상에 시달리며 2017년에는 19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고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2018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는데 2018시즌 롯데에서는 "건강한 작뱅은 무섭다."라는 말을 증명하듯이 좋은 활약을 하였다. 이병규는 부상이 많았지, 본래 좋은 실력을 가진 선수이기 때문에 탈쥐효과보다는 건강 문제로 보는 것이 맞다.
2015년 12월 6일 FA로 LG로 이적한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첫 해 시범경기에서는 타율 1할에 25개의 삼진으로 시범경기 삼진왕의 불명예를 얻었다.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도 4월에는 그저 그런 성적만 기록했으나 2군에 내려갔다 복귀하는 등 조정을 거친 뒤 롯데전에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날린 대타 역전 만루 홈런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여 슬슬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결국 6월중순부터 7월까지 팀 내 홈런의 분위기를 정의윤과 함께 이끌며, SK의 21경기 연속 팀홈런 신기록 달성의 주역이 되었다. 2016시즌 6월 현재 14개의 홈런을 치며 보상선수 역대 최다홈런 기록을 세웠으며 특히 6월 28일 수원 kt 경기에선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대폭발했다. 7월 2일 LG 트윈스와의 잠실 경기에는 정의윤과 함께 9회초에 백투백 홈런[26] 을 치며 탈쥐의 위엄을 대대적으로 선보였고, 다음 LG전에서도 정의윤에 안타에 이은 투런포를 쳐내어 연이틀 홈런으로 친정팀에 제대로 비수를 꽂았다. 오죽했으면 정의윤과 최승준으로 거포 2명을 졸지에 얻게 된 솩갤러들은 모 솩갤러가 탈쥐하세요 그대[27] 를 직접 불러서 올렸는데 이게 힛갤까지 갔다. 심지어 8월 18일 기준 최승준의 홈런 수(19개)가 정상호의 안타(18개)보다 많았다. 그러나 2016시즌 후반 부상으로 주춤하더니 2017시즌 들어서는 1군에 종종 나오긴 하지만 작년같은 활약은 못 보여줬다. 2018시즌은 1군에서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고(27경기 타율 .250, 4홈런 11타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면서 팀의 우승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다. 시즌 후 남태혁이 kt에서 이적하면서 더욱 심한 경쟁에 돌입하게 됐지만 2019시즌에도 이렇다 할 기회를 받지 못하고 시즌 후 방출되었다. 그나마 한화에서 다시 기회를 얻게 됐으나 2020년 6월 9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2014년, kt wiz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이적했다. LG 팬들이 유망주가 떠났다며 아쉬워했지만 1군에서 뛰어본적도 없었던 선수인지라 탈쥐라고 보기에는 많이 애매하다.
6. 입쥐효과를 받지 않은 선수
2001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홈런 개수는 입쥐 전후와 비교하면 많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는 당시 대구시민구장이 탁구장이라 불릴 정도로 타자 친화구장이었고 잠실은 예나 지금이나 타 구장에 비해 비교적 홈런이 잘 나오지 않는 구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큰 흠은 되지 않는 편. 그리고 양준혁은 전형적인 이미지의 홈런타자와는 거리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LG에서 커리어하이를 세웠다.
해태에서 LG로 이적한 이후 기량이 폭발하여 1997, 1998, 1999시즌 LG의 에이스로 거듭났었는데 1999시즌에는 당시 김용수를 제외한 LG 투수진은 전멸한 상태나 다름 없을 때 최향남이 거의 유일하게 사람 구실을 했었다.
보기 드물게 탈쥐효과가 부정적으로 터진 사례. 원래 삼성에 있다 자기 포지션의 뎁스가 상당히 깊어 LG로 이적했는데, 오히려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제 몫을 다 했고 18년도 삼성으로 다시 돌아가서는 아예 2루수 주전자원이 되게 생겼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2루수와 함께 폭망하면서 드물게 LG를 떠난 선수 중 실패한 사례가 되었다.
한화에서 애증의 존재였다가 2011년 트레이드로 LG로 입단하였는데 입단 후 2012년에는 방어율 2.19를 기록하며 리그 최강 우완 계투진으로 각성하고 2014년엔 희대의 타고투저 시즌임을 감안하면 나름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국대 멤버로 뽑혀서 병역특례 혜택을 받은 것은 덤. 2013년과 2015년 이후로는 한화에서의 모습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문에 KIA의 나지완이 까이듯 심심찮게 까이기도 했다. KIA에서 대표팀 승선에 실패한 안치홍이 동정을 받았듯 LG는 반대급부로 2014시즌 맹활약한 신정락이 공익으로 잠시 떠나자 보고 싶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LG에서 커리어 로우를 찍은 적이 있긴 했지만 시즌을 거듭하면 할수록 사람 구실은 하고 있다는 점이고. 김용의의 당시 기대치[28] 를 생각하면 LG에서 포텐이 만개한 케이스라고 봐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16년엔 전반기에는 부진했지만 후반기에는 1번 타자로 출전하면서 거의 4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보여주면서 2016년에는 커리어 하이를 찍을 수도 있다. 외야수로 뛸 때의 수비가 아쉬운 면이 크긴 하지만.
기아에서 넥센 등을 거쳐 왔는데 오히려 커리어 하이는 엘지에서 쌓고 있다. 이는 구장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소사의 경우는 기아와 넥센 시절에서도 유독 잠실 야구장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투심 패스트볼을 구사하던 2016시즌 안타왕이 될 뻔한 것을 빼면 원래 뜬공 투수라서 그런 듯.
2018년부터 2019년 전반기까지 망했고, 2020년에는 7월 이후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단, 차우찬의 경우 류중일 감독 시절에 당한 혹사의 여파로 봐야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김현수는 2018년 타격왕을 차지하며 입쥐를 무시했으나... 2019년 초반기와 준플레이오프 때 역대급 부진에 빠지면서 입쥐와 그 반대의 기로에 선 상황이다. 물론 김현수는 두산 시절에도 포스트시즌만 되면 계속 부진했다. 두산은 상대적으로 강팀이여서 이게 가려진 것이지 중심타자 역할을 해야하는 LG에서 그 단점이 더욱 부각된 케이스.
보다시피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 해결사 '''한대화''', 국대 에이스+1점대 클로저 '''봉중근''', 국민 우익수 '''이진영''', 2000안타 겸 KBO 역대 우타자 최다안타 2위 '''정성훈''' 등등 대부분이 '''크보 전체에서 손꼽히는 레전드들'''이라는 것이 특징이다.7. 이적 배경
여기서는 팀을 떠난 선수가 어떤 이유로 팀을 떠나게 됐는지 배경을 서술한다.
- 홍현우, '''이용규''' ↔ 이원식, 소소경(2004.11.2): 이 트레이드의 주 목적은 FA 먹튀가 되어버린 홍현우 털어내기였지만 결과적으로 핵심은 이용규가 되었다. 이용규는 LG 시절 .129의 타율을 기록했던 선수였지만 KIA로 넘어가자 '''3할 타자'''로 대 변신하였고 태극마크도 달고 병역특례도 받고 2010년에는 '''3점홈런, 만루홈런'''을 기록해 1이닝 팀 사이클링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1년에도 타율 0.333, 출루율 0.427, OPS '''0.828'''를 기록한 뒤 결혼까지 하여 이용규는 박병호와 함께 탈쥐효과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반면에 이원식은 2005년 13경기 16이닝 평균자책 3.38찍고 1년만에 은퇴하였고 소소경도 2005년에 2경기 뛰고 은퇴하였다. 결국 이 트레이드는 LG가 KIA에게 선사한 조공 트레이드 1호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되었고 그리고 이순철이 LG팬들에게 대차게 까이고 금지어로까지 지정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이용규 대신 살아남은 '''이대형'''은 해가 지날수록 깝깝한 공격력을 보여주면서 이 트레이드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재미있는 건 이후 이대형은 LG를 떠나 KIA로 갔는데, 희대의 타고투저 덕을 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부상병동이던 KIA에서 끝까지 사람구실을 해준 거의 몇 없는 선수였다.KT로 이적해서는 탈쥐효과3년연속 3할타율을 기록중이고 2016년엔 도루까지 회복했다.
- '''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2009.4): LG가 KIA에게 선사한 조공 트레이드 2호. 정성훈 영입으로 자리가 없어진 김상현 처리는 물론 선발 투수를 급히 보강하기 위해 이뤄진 트레이드 였지만 결국 추진자인 김재박 감독은 강철민을 써보지도 못했다. 김상현과 박기남은 2009년 KIA가 우승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2009년에는 KIA 팬들이 사랑해요 LG를 입에 달고 살게 하였다. 둘 중에 한 명 만 잘 해줘도 무조건 KIA의 승리였는데 둘 다 터져서[29] LG가 제대로 조공한 게 되어 버렸다. 참고로 처음에는 김상현과 강철민의 1:1 트레이드였다. 박기남은 KIA에서 못먹는 감 찔러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찔러본 거였는데, LG가 너무 쉽게 승낙해서 놀랐다고.
- '''정의윤''', 신재웅, 신동훈 ↔ 임훈, 진해수, 여건욱 3:3트레이드 (2015): 2015년 후반기에 이루어진 트레이드이다. 당시 LG는 큰 잠실 구장 특성상 수비 범위 넓은 빠른 외야수를 원했고, SK는 작은 행복드림구장 특성상 한방있는 선수를 원했다. 그리고 그 두 팀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 트레이드를 했다. 당초 트레이드는 정의윤과 임훈 1:1로 하려 했으나 선수를 끼워 맞추느라 3:3이 된 것이다. 트레이드 직후 SK에서는 정의윤을 4번 붙박이로 출전시켰으며 정의윤은 9월 월간 MVP를 따게 된다. 임훈 또한 LG에서 좌익수로 꾸준히 나오며 준수한 성적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2016년에 둘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게 되고 말았는데 정의윤은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시즌 초반 타점 1위를 달리는 것에 비해 임훈은 가끔 출전하고 만다. 2017 시즌 이후 평가해보면 LG도 손해만 본것이 아닌게 진해수가 커리어하이를 찍으면서 홀드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기 때문. 허나 2018년에는 진해수소폭탄으로 리셋된 사이 신재웅이 활약하면서 다시 LG의 손해로 평가받는다.
- 최승준(보상선수)↔정상호(FA)(2015 시즌 종료 후): SK는 FA로 LG에 이적한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2013년 2군 홈런왕을 차지한 최승준을 지명한다. 시범경기 내내 최승준은 연거푸 삼진만 당하며 SK 팬들 사이에서도 최승준에게는 탈쥐효과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나왔다.하지만 정작 시즌이 시작하고 1달이 약간 지나고 나서 최승준은 자신의 잠재력을 뽐내기 시작했고 6월에만 홈런 10개를 쏘아 올리고 특히 6월 28일 KT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쏘아올리며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다. 그에 반해 정상호는 신인들에게 주전 포수 자리를 내주면서 가끔 나온다.
그리고 결국에는 7월 2일 대참변이 터졌다. 2대 1로 앞서던 상황에서 마무리로 올라온 임정우에게 정의윤과 최승준이 백투백 솔로홈런을 날린 것. 취약한 포수진 보강을 위해 정상호를 영입한 LG였지만 정상호가 32억 받는 백업포수로 전락해 먹튀가 되어버리고 이 참변이 터지는 바람에 양상문의 목을 조이는 결과가 되었다.
2017년 이후에는 최승준도 1군에서 그다지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애매해지긴 했지만, 정상호가 백업에 머물러있는것도 마찬가지라서...
- '''박병호''', 심수창 ↔ 김성현, 송신영 2:2트레이드 (2011): 당시 2011년 내려가기 전 4강싸움을 하던 LG는 불펜에 믿을맨이 없는 투수진이 문제였고 그렇기 때문에 즉시전력인 송신영과 유망주 투수 김성현을 영입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대는 많이 받았지만 터지지 못한 유망주 박병호와 덤으로 심수창을 보낸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에 뒷돈이 있다던가 하는 '''넥센의 역대급 조공 트레이드'''로 평가받았지만....
막상 까보니 박병호는 파괴신이 되어 KBO리그를 평정한 다음에 넥센에 포스팅 비용 1,250만을 안겨주면서 천조국의 트윈스로 건너갔고[30] . 심수창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1승을 넥센에서 깼다. 반면 LG는 송신영이 불펜에서 활약하긴 했지만 팀이 광속으로 추락하는 걸 막지 못했다. 게다가 송신영은 LG에서 꼴랑 19경기 뛰고 FA를 통해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되던 투수 유망주 김성현은 뭐 다들 잘 알다시피.... 결국 손해보는 트레이드가 되었다. 여기에 2018년 2011 시즌 직후 LG 트윈스가 넥센 히어로즈 구단에 뒷돈으로 15억 원을 줬다는 중앙일보 기사가 나왔다. LG, 아리송한 ‘FA’ 참조. 이렇게되면 LG는 반시즌 반짝 쓴 송신영과 승부조작범을 받겠다고 KBO 최고의 슬러거에 15억을 그대로 조공해버린 셈이다.
- 서건창 방출 후 신고선수: 사실 이 경우는 '''서건창이 대단한 경우'''로, 당시 LG 트윈스가 1타석 출장에 그친데다가 부상 중이었던 선수를 방출한 것이기 때문에 LG 트윈스의 잘못은 없다.
- 박경수 2014 FA : 관심만 받고 터지지는 않던 내야수였던 박경수가 2014시즌 종료 후 FA를 신청하였다. 그 당시에 박경수가 홈스틸을 2번이나 기록하고 후반기 성적이 최고로 올라왔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결국 구단은 잔류를 시키지 않았으며,[31] 그로 인해 kt 위즈로 이적하고 말았는데, 안 터지던 포텐이 타자 친화구장을 가진 kt에서 폭발하며 주장까지 맡는 대선수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kt는 신생팀 혜택으로 보상선수를 내 주지 않아도 되었었기 때문에 결국 이득은 아무것도 없이 조공만 해준 셈.
8. 구단별 손실 관계
트레이드를 한 팀별로 LG의 손익분기점을 따져보면 KIA, 넥센과의 트레이드는 사실상 LG팬들이 잊고 싶은 완전한 '''흑역사''', SK와의 트레이드는 정의윤, 최승준, 임정우, 정상호, 진해수 등을 고려해보면 손해는 맞지만 앞선 두 팀보단 덜하다. 롯데, 두산, 한화와의 트레이드는 소소한 이득을 봤거나 이득을 따지기 힘든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 김상현, 박기남, 이용규 등을 보낸 KIA와, 박병호, 김성현, 송신영, 이택근의 사례에서 명분도 실리도 완전히 잃은 넥센의 경우에는 명백한 손해이다. 위 두팀과는 아무래도 선례가 좋지 않아서 트레이드 형식으로 전력보강을 한다는 것은 팬 정서상 거의 힘들 것으로 보였지만, 2013년 4월 24일 LG는 뜬금없이 넥센 상대로 최경철을 받고 서동욱을 주는 트레이드를 다시 단행했다. 2013년에는 최경철이 부상으로 많은 경기 출장을 못했기에 아주 약간의 넥센 WIN쪽이라고 생각되었으나, 2014년 전반기에 서동욱은 1할대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최경철은 LG의 구멍난 포수자리를 메워주는 정도를 넘어서서 아예 LG의 주전 안방마님으로 활약하며 클러치 히터 등으로 활약하면서 준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게 된다. 이로써 이 트레이드는 LG의 우세로 기울고 있다가... 서동욱은 KIA 타이거즈로 복귀했고 최경철은 부진하다 스스로 방출을 요구해 상호 합의 하에 방출 후 삼성으로 이적했으나 금지 약물 복용이 적발되어 72경기 출장 정지를 먹고 튄 셈이 되었다.
박현준을 받은 SK와의 트레이드도 흑역사로 볼 여지가 있겠지만, 그래도 한 시즌이나마 선발로 잘 써먹었고, 같이 이적해 온 윤요섭이 2012년, 2013년에 어느 정도 활약을 했고, kt로 넘어가면서 투수 유망주 이준형을 받아왔으니[32] 아주 실패한 트레이드로 보기는 힘들다.
한편, 탈쥐효과에서 삼성 라이온즈 문서는 2013년까지 아예 없었는데, 재계 라이벌인 삼성그룹의 선수 트레이드는 사실상 절대 불가라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 이 불문율은 '''23년'''[33] 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다 2012년 시즌 후에 23년간 이어져 온 불문율을 깨뜨리고 LG가 현재윤·김효남·손주인을 받고 삼성이 김태완·정병곤·노진용을 받는 3:3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 이 딜은 양쪽 모두의 승리라는 것이 중론. 현재윤은 부상이 있긴 했지만 13시즌 잠시나마 LG의 주전포수 역할을 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고, 손주인은 17년까지 붙박이 2루수 주전으로 활약하며 강승호, 김용의, 박지규 따위의 수비형 선수를 볼 일이 없게 해 줬다. 김태완과 정병곤은 잠깐이었지만 13년도 삼성의 대타/대수비 역할을 잘 해주면서 우승반지를 가져가기도 했다.
정의윤, 신재웅 - 임훈, 진해수 트레이드는 정의윤이 15시즌은 물론 16시즌에도 대폭발한 반면 임훈은 15시즌 그럭저럭 좌익수로 선방하면서 LG가 아주 손해본 트레이드는 아니라는 평이었으나 16시즌 들어 망해버리면서 SK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정상호 - 보상선수 최승준+보상금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건 그간 탈쥐효과로 놀림받아온 루즈 트레이드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두 선수는 어렵게 비교할 필요도 없이 16안타 vs 17홈런으로 이미 LG가 어마어마한 손해를 봤다. 거기다 정상호는 예의 유리몸끼가 도져서 6월까지 제대로 나오지도 못했다. 리빌딩 운운하더니 자기 팀대신 SK 중심타선 리빌딩해준 양상문 감독에 대한 LG팬들 사이에서 신뢰는 한동안 가라앉았지만 양상문이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키자 다시금 평가가 바뀌었다.
2017시즌에는 정의윤과 임훈이 지난 해만한 활약을 못 하는 가운데(그래도 정의윤은 그럭저럭 했다) 진해수가 리그 홀드왕 타이틀을 먹어버리면서 양팀 모두 손해는 안 본 트레이드로 남았다.
2018년 군필 키스톤 강승호와 30대 노망주 문광은을 트레이드 하였다. 내야 유망주들은 그래도 그럭저럭 있는 반면 투수진이 심히 부족한 LG와 키스톤콤비 자원이 이래저래 부족한 SK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는데, 강승호가 이적하자 마자 뛰어난 활약을 하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하며 또 하나의 탈쥐사례가 추가될 가능성이 생겼었다. 그런데 강승호가 음주 접촉 사고를 내고, 문광은은 한동안 1군에서 보이지 않다가 2019년 갑작스럽게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며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어 트레이드의 손익관계가 뒤집어질 가능성이 생겼으나, 문광은이 2020시즌 끝나고 팀에서 방출되면서 사실상 SK의 승리였다. 그런데 강승호가 최주환의 보상선수로 나가면서 두 팀 모두 아무런 이득 없이 끝났다.
9. 정리
역대로 살펴보자면 LG 트윈스에서 터진 선수도 많고 밖에 나가서 망한 선수도 많다. 하지만, 탈쥐효과는 선수 입장에서 따지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탈쥐효과에 해당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LG에서는 저조한 성적 끝에 일부는 은퇴 종용까지 받는 등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가, 탈쥐 이후 우수한 성적으로 팀의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안정적인 선수생활과 고연봉을 보장받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가 있다기 보단 2000년대 들어와서 LG의 처참한 6668587667의 성적으로 타팀 팬들에게 주목을 받은 면이 크다는 쉴드가 있는데, 사실 이는 '''MVP'''라는 단적인 예로 간단하게 논파가 가능하다. 선수층이 두꺼워서 대형 트레이드가 자주 일어나는 MLB와는 달리 선수층이 얆아서 대형 트레이드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KBO 리그에서는 보통 각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거나 그에 준하는 선수들이 MVP를 받기 마련이다. FA자격 취득에 고졸 9년, 대졸 8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중간에 군복무 2년까지 고려하면 FA시장에 나올 때 쯤이면 이미 전성기를 지나서 노쇠화의 길을 걷는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간혹 MVP를 노릴 수 있는 선수가 FA시장에 나온다 하더라도[34] FA나 포스팅을 통해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노리는데다가 해외 진출을 안하더라도 이정도 선수면 팀의 간판선수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소속팀에서 안간힘을 쓰고 붙잡기 마련이라 이적 후 MVP 수상은 더더욱 나오기 힘들다. 이 때문에 30년이 넘는 KBO리그 역사에서 타팀으로 이적한 다음에 MVP를 받은 선수가 고작 6번! 문제는 '''이 6개 중 5개가 전 소속구단이 LG인 선수들이 받았다는것.'''[35] LG가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MVP를 배출한 적이 없는 구단이란 걸 생각해보면 정말 기이할 노릇. 2013년과 2015년에 처음 1군에 올라온 NC 다이노스와 kt wiz도 각각 2015년과 2020년에 MVP를 배출하였다.
이적생 출신으로 MVP를 받은 6명 중 유일하게 LG 출신이 아닌 나머지 한 명은 쌍방울에서 이적해서 현대에서 2000년 MVP가 된 박경완인데, 이쪽은 쌍방울의 사정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팀의 기둥을 판'''[36] 현금 트레이드였기에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힘들다.
또한 LG가 보낸 선수 중 KBO 골든글러브를 1회 이상 받은 선수로는 윤덕규, 김상현, 이용규, 김재현, 김상호, 박종호, 심재학, 임선동, 박병호, 그리고 서건창 등등이 있지만, 타팀에서 LG로 이적한 선수 중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사례는 1994년의 한대화와 2001년의 양준혁뿐이다. 게다가 이 두 선수는 이미 이전팀에서부터 '''다수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선수들'''였음을 감안하면 LG에 들어와서 성장했다고 할 수 없다. 한대화는 LG에서의 3년간 팀 내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고 양준혁은 LG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1년 타율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단 한대화는 나이 때문에 2년 반 동안 LG에 있다가 쌍방울로 가서 은퇴를 했고 양준혁은 2년간 3할 타율 25홈런을 쳤지만 FA 계약 조건 때문에 LG에서 계약을 다시 고려했지만 친정팀 삼성이 먼저 다가와 러브콜을 하면서 이듬해 모두가 잘아는 유명한 2002년 한국시리즈 에서 본인이 이루고 싶던 친정팀의 우승과 본인 커리어 첫 우승을 갖는다 단 그 때 10년연속 3할 달성이 실패되었지만 2003년 다시 부활했다.
이 외로 탈쥐효과로 기록들을 갱신하는 등 어마어마한 사건이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손지환의 '''무보살 삼중살'''이나 이용규의 '''3점홈런과 만루홈런으로 팀 이닝 사이클링 홈런''', 박병호의 2012년 3관왕(홈런, 장타율, 타점)에 이은 2013년 4관왕[37] & 2012년, 2013년 MVP 수상이 있다.
유독 이 팀은 탈쥐효과와 인연이 없다. 다만 롯데는 감독 쪽으로 딱 한명을 받았다. 그 감독 덕분에 2위까지 해봤지만 그 감독은 바로 흑역사화...
탈쥐효과에 반론을 제기한 최훈의 웹툰이다. 결론만 따지자면 이게 다 잠실 때문이다라는 말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당장 같은 잠실 구장을 쓰고 있는 두산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실 최훈이 LG팬이라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 결국 최훈도 탈쥐효과를 인정했다.
[1] 그런데 2018시즌 중반에 뒤늦게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04년 당시에 이용규 본인이 타구를 최대한 강하게 보내는 타격폼을 추구하면서 코칭스태프와 마찰이 있었다고한다. 즉, 실력보다 이런 문제땜에 미운털 박혀서 보내진거로 볼 수 있다.[2] 아이러니하게도 진필중은 입쥐효과의 대표사례이다.[3] 두 달만에 17홈런을 쳐 버린 최승준에 의해 깨졌다. 근데 이쪽도 탈쥐. 그뿐만 아니라 당시 최승준을 가르친 SK의 코치 중 한 명이 바로 손지환(메인인 진짜 타격코치는 정경배였지만, 어쨌건 손지환도 보조타격코치였으니 손지환도타격지도 자체는 했었다.)이다. 당시 인터넷 스포츠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4] 신생팀 kt 위즈의 이미지를 땅바닥으로 꺼뜨렸고 '''자위즈'''라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선사했다.[5] 정확히 말하면 2009 시즌이 플루크라고 봐야맞다. 고향팀 복귀+주전 3루수 자리 확보+최희섭과 내는 타선 효과로 인한 심리적 안정이 좋은 성적을 내게 해준거라고 볼 수 있으며, 잠실보다 작은 구장이었던 무등 구장에서 주로 경기를 치뤘으니 구장 덕도 안 봤다고는 못한다. 아무튼 이렇게 1년을 반짝했다보니 약물한 거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는 편인데, 사실 약물 복용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더 알고 싶다면 선수 항목으로.[6] 실제로 2015시즌의 부활이 있기 전, 그러니까 KiA에 있었던 2010~2012시즌엔 비록 홈런은 어느 정도는 때려줬지만 별 의미 없는 공갈포 모드에 2할 초중반대의 부진한 타율을 기록한 데다가 각종 부상으로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였고, SK 와이번스에 있었던 2013시즌에도 많은 출장을 했지만 타율이며 홈런이며 모두 이렇다 할 성적을 못낸 수준이었던 데다 2014시즌에는 아예 가끔씩 출전하는 1.5군 내지는 2군 선수 모드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KIA 시절엔 좀 나은 편이었지 SK 시절 후반엔 꽤 잊혀지고 있던 선수였다. 특히 SK때에는 부진 외에도 싸인 사건으로 팬들에게 찍힌 적 또한 있었으니 선수 본인에게나 팬들에게나 구단 차원에서나 김상현을 흑역사로 취급한다.[7] 2015년부터 144경기로 늘어났다고 해도 100경기 약간 넘게 나오던 과거 3년과 달리 거의 전경기에 다 나올 정도로 이후 3년은 달랐다.[8] SK 와이번스의 창단 초창기는 1999시즌 97패를 적립했던 최약체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을 그대로 인수했기에 꿈도 희망도 없는 독보적 꼴찌였고 2003년과 2005년을 빼고는 뚜렷한 성적을 낸 적이 없던 팀이었다. 그나마 초대 감독이던 강병철이 이승호,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채병용을 신나게 굴리며 구단을 성장시켰고 2대 감독 조범현이 야수진들을 탄탄하게 단련시켜 꾸준히 가을야구를 갈 수 있는 전력으로 만들어놨다. 김성근은 부임 직전 SK 와이번스가 6위를 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지만 조범현 감독이 선수 육성을 잘해놓고 갔다며 극찬했다.[9] 이 선수 역시 FA 보상선수의 또다른 신화를 썼다.[10] 위에 있는 염경엽도 넥센과 SK 소속 때 마무리는 좋지 않았다.[11] 이택근 이전까지 FA타자 최고액은 심정수의 4년 옵션 포함 60억이였다.[12] 이 액수가 하나의 기준이 되면서 다음해인 2012시즌 종료뒤에 김주찬이 4년 50억 계약을 맺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고, 다시 한해 건너 2013시즌 종료뒤에는 이용규 4년 67억, 정근우 4년 70억으로 본격적인 FA대폭등 시대가 도래하였다.[13] 이런 FA대폭등은 마침 프로야구의 인기가 대폭발한 시점에 가장 돈없다는 히어로즈가 4년 50억이라는 충격적인 액수를 들고 나오면서, 최소한 우리가 저기에 밀릴 수는 없다는 데에 각 구단 고위층들과 팬들의 생각이 일치한 결과이다. 여기에 여러 재벌들이 모기업의 악재를 상쇄하기 위해서 기업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회수가 불가능한 정도의 거액을 쏟아붓기 시작하였다. 그 정점이 바로 2016시즌 종료뒤에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이대호의 150억 계약이다.[14] 다만 이택근은 이미 넥센 시절부터 허리부상이 있어서 충분한 휴식과 재활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현금트레이드 이후 팀분위기 때문에 무리한 출전을 강행하다가 몸상태가 최악으로 망가져서 사실상 유리몸에 먹튀로 전락한 측면도 있다.[15] 거기에 중견수비만 가능한데 외야수가 넘쳐나는 LG트윈스 팀상황상 때문에 잘 하지도 못하고 본인도 꺼리는 1루수와 좌익수로 출전하면서 수비불안 때문에 스스로를 망치고 말았다.[16]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제껴놓고 본인이 유학드립친 것과 50억 드립을 치며 구단을 물 먹인건 엄연히 잘못된 행동이며 팬들에게 야구에 대해 불성실한 자세를 취한다는 소리를 들었던건 엄연히 본인의 잘못이다.[17] 메이저리그 통산 1400안타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KBO리그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중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는 많았으나 제임스 로니만큼 높은 경력을 가진 선수는 거의 없었다. 이 분 빼고. [18] 그러니까 서건창이 히어로즈에서 첨 뛰었었더라도 똑같았을거란 말이다.[19]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한때 소원했지만, 2011년 시구를 하고, 이후 우승 축하 영상을 보내면서 다시 관계를 회복.[20] 여담으로 김태군이 2017 시즌이 끝나고 나이 서른에 입대할 때까지 NC는 그를 대체할 포수를 단 하나도 키워내지 못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부 육성도 시도했고, 미국물 먹은 유망주를 밀어보기도 했고, 은퇴한 선수를 현역으로 복귀시키기도 하고, 초고교급 유망주였던 투수로 초고교급 유망주였던 포수를 바꿔도 봤으나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결국 2018 시즌 종료 후 구단의 선택은 현질(...). [21] 물론 2015시즌과 비교한 경우이다. 2015시즌을 제외한 LG시절과 비교해보면, kt 위즈 시절에 LG 시절보다 잘한 시즌이 없다.[22] 실제로 LG는 이진영을 보냄으로써 채은성 이후에 이천웅 이형종 등 다수의 외야진이 나오며 외야의 뎁스가 엄청나게 좋아졌다. 그것도 외야 자원이 셈솟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23] 오히려 LG는 원종현이 부상당했을 때 그를 신고선수로 전환시키면서까지 기다려줬다.[24] 이 당시 시즌 후반기에 주로 출장을 하였고, 대부분이 대수비.[25] 실제로 이성열 또한 김상현과 마찬가지로 홈런만 쳤지 다른 스탯상으로는 2010년 이후에 바로 수직낙하하여 탈쥐효과의 효력은 없었다고봐도 무방. 잘 생각해보면 한화에서 부활한건 LG를 떠나고 10년이나 지난 일이다.[26] 팀이 스코어 1:2로 지던 상황에서 정의윤은 동점 솔로홈런, 최승준은 역전 홈런을 쳤다.[27] '걱정말아요 그대' 의 패러디.[28] 사실 당시 두산에서는 있으나 마나한 위치긴 했다. 입단한지 얼마 안 돼서 트레이드 된 것도 있고.[29] 김상현은 KIA로 트레이드된 이후 성적만으로도 정규시즌 MVP와 홈런왕을 모두 달성했다. 그리고 박기남은 수년간 좋은 백업 선수로 활약하며, 이범호와 김상현의 부상을 잘 메웠다.[30] 같은 해 심수창과 송신영은 한화 이글스에서 만난다[31] 사실 당시에 팬들도 프랜차이즈 박용택의 FA에 더 신경을 썼지 박경수는 큰 관심이 없었다. 또한 후반기의 활약이 FA로이드로 보일 여지도 있었다.[32] 이 윤요섭+박용근-이준형 의 2:1 트레이드는 kt가 투수 유망주를 쩌리들을 받고 내주었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33] LG의 전신인 MBC 청룡 시절에는 삼성과 두 차례 트레이드를 했지만 LG로 바뀐 후에는 FA 계약과 보상선수 이동을 제외하고 두 팀 사이의 트레이드가 없었다. 2002 시즌 종료 후 LG에서 웨이버 공시된 뒤 삼성으로 간 심성보는 규약상 트레이드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트레이드라고 하기는 어렵다.[34] 성적이 좋아 빨리 1군에 자리 잡고 국가대표로 군면제를 받으면 20대 후반에 FA가 가능한데 야구선수는 보통 이때가 한창 전성기일 시점이다.[35] 1995년 김상호, 2009년 김상현, 2012~2013년 박병호, 2014년 서건창.[36] 트레이드 당시 26세의 군필 주전포수 그것도 '''골글을 수상한 포수'''였다. 야구에서 포수의 가치를 생각하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절대로 트레이드 시장에 나올 일이 없는 위치다.[37] 홈런, 장타율, 타점, 득점. 볼넷 1위는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