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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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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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유일의 전제군주제 국가로 아직까지 술탄이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나라이며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하다.
국교는 이슬람교로 군주의 칭호는 술탄이다. 수도는 반다르스리브가완(Bandar Seri Begawan).
인간개발지수가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국가이며, 국제통화기금이 선정한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GDP가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국가이다. 산유국이라 국가에 돈이 매우 많은 덕인데 이 돈으로 스웨덴 등 잘 정비된 복지 제도로 유명한 몇몇 국가와 맞먹는, 혹은 그 이상의 복지를 제공한다. 물론 자국민에게 한하지만 어쨌든 복지제도는 타 동남아시아와 비교가 안 된다. 문제는 삶의 질이 그럼에도 형편없을 뿐이다.
ASEAN, 영연방, APEC 등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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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네오 섬 북단에 자리잡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한다. 국토면적은 5,770㎢. 경기도의 면적이 약 1만㎢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 작은 나라인 셈. 인구 역시 40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나라이지만, 트리니다드 토바고나 쿠릴 열도 분쟁 지역인 남쿠릴열도의 크기와 거의 맞먹는 수치에 해당되기도 한다. 이러한 브루나이의 인구는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무슬림들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나라로 정확히는 '''무슬림 말레이인''''만 브루나이 국적자이고 중국계 브루나이인, 즉 화교나 한국 교민, 약간의 영국인 이주민들은 전부 비자를 받아 거주하는 외국인 신세다. 교민들이야 대한민국 국적이지만 문제는 붕 떠버린 중국인들이 문제다. 영국 해외여권으로 버티는 사람도 기성세대에 많고, 젊은 세대는 말레이시아가 그나마 여권을 발행해줘서 말레이시아 국적이며 일단 무국적은 면했으며 갈수록 싱가포르나 호주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골 때리는 차별 때문에 특히 영국인 등 외국인들과 화교들, 특히 핍박받는 중국계 기독교인들이 브루나이를 버리고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지역으로 많이들 건너갔다.[3]
화폐가 브루나이 달러인데 싱가포르 달러와 1:1 등가 협정을 맺었다. 때문에 그냥 싱가포르 달러를 들고 가서 시중에서 그냥 써도 무방하다. 괜히 브루나이 달러를 찾으러 다니거나 미국 달러로 이중환전하려 하지 말자.
브루나이 현실을 다룬 기사
2. 상징
2.1. 국명
정식 국명은 '''브루나이 다루살람'''(Negara Brunei Darussalam, نڬارا بروني دارالسلام)이다. 공용어인 말레이어로 브루네이(Brunei)라고 하며 '브루나이'라는 이름은 영어식 발음을 들여온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브루나이(브루네이)라는 이름은 브루나이 술탄국의 건국자 무함마드 샤(Muhammad Shah)가 이 곳을 처음 찾을 때 Baru nah(아, 이 곳이다!)라고 외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스크리트어로 '뱃사람'을 의미하는 ''varuṇ'' (वरुण)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다루살람'(دار السلام / Darussalam)은 아랍어로 dar(땅)와 salam(평화)의 합성어로 '평화로운 땅'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Negara는 마인어로 '나라'라는 뜻이므로 정식 국명을 최대한 한국어로 직역하면 '평화로운 땅 브루네이국' 정도가 되며, 영어로도 Brunei Darussalam이 아니라 Nation of Brunei, the Abode of Peace 등 최대한 직역한 국호를 쓰기도 한다.
2.2.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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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의 국기는 1959년에 제정되었다. 노란 바탕은 브루나이의 술탄(군주)를 의미하고,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는 술탄 휘하의 대신들을 의미한다. 중앙에 있는 문양은 국장이다.
브루나이는 전통적으로 술탄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국가의 상징으로도 사용해왔다. 영국 보호국 시절을 거치면서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를 넣었고, 1959년에 국장을 넣은 현재의 국기가 완성된 것이다.
2.3.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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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의 국장은 국기 중앙에도 있는 문양으로서, 깃발과 양산, 날개, 손, 초승달로 구성되어 있다. 초승달에는 국가 모토인 '언제나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라'(الدائمون المحسنون بالهدى)가 적혀져 있으며, 그 아래의 리본에는 브루나이의 정식 국호인 '브루나이 다루살람'(بروني دارالسلام)이 자위 문자로 새겨져 있다.
깃발과 양산은 브루나이의 왕실을 상징하며, 날개는 정의와 평온함, 번영, 평화를 상징한다. 초승달은 물론 브루나이의 국교인 이슬람을 상징한다. 양쪽의 손은 브루나이 시민들을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을 상징한다.
2.4. 국가
브루나이의 국가는 '술탄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Allah Peliharakan Sultan, الله فليهاراكن سلطن)이다.
하지 모하메드 유수프 빈 아브들 라힘(Pengiran Haji Mohamed Yusuf bin Abdul Rahim)이 작사하였고, 아왕 하지 브사르 빈 사가프(Awang Haji Besar bin Sagap)가 작곡하였으며, 1951년에 국가로 지정되었다.
3. 역사
고대~중세사의 경우 6세기 경 중국 사서에 푸니라는 국명으로 중국에 공물을 바쳤다는 것 외에는 기록이 전무한 상태이다. 14세기 마자파힛 제국에 속했다가 독립해 교역국으로 점차 발전했고, 15세기 중반에 왕이 믈라카 제국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명나라의 환관 정화의 항해 시 왕이 2차례 당시 명나라의 수도 난징을 입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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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을 전부 지배하고 있었지만 가운데는 뻥 뚫려 있었는데 그 이유는 보르네오 섬 중앙부가 산과 정글이 들어찬 벽지였기 때문이다. 개척도 영국 등 서구 열강이 들어와서야 시작됐다.
1511년 포르투갈이 믈라카를 점령하면서 바닷길이 막힌 이슬람 상인들이 대거 브루나이로 이주하여 인도네시아 각 섬들과 말레이 반도, 마카오 등을 잇는 중개무역지대가 됐다. 16세기 초에는 보르네오 해안 전체와 마닐라와 술루 일대까지 지배했으나 전성기는 백여 년을 가지 못했다. 16세기 전반, 보르네오 남부의 신흥 세력 반자르 술탄국이 등장하여 보르네오 남부 해안에서 점차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대항해시대로 인해 16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세력이 술라웨시 북부와 말루쿠 제도를 거점으로 보르네오에 진출하기도 했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첫 방문에서는 마젤란이 필리핀 제도에서 사망했으나, 1578년에 스페인군이 마닐라를 거쳐 보르네오 일부 지역을 한때 지배하였다. 17세기 중반 들어 술탄이 포르투갈과 동맹해 스페인군을 쫓아냈지만 포르투갈 등 외세가 내정에 간섭했다.
한편 보르네오 남부의 반자르 술탄국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에 오늘날 인도네시아 남칼리만탄주를 중심으로 보르네오 남부 해안 전역을 영향권에 편입하는 전성기를 맞았다. 자바의 마타람 술탄국도 17세기 전반 술탄 아궁의 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보르네오 남서부를 영향권에 편입하고 남보르네오에서 반자르 술탄국과 세력 경쟁을 벌였고, 17세기에 술라웨시 남부의 마카사르와 부기스 세력도 보르네오 동부에 개입하여 반자르 술탄국과 알력을 빚었다. 이 무렵 남보르네오에서 브루나이의 영향력은 거의 완전히 소멸하기에 이르렀다.
17세기 이래로 브루나이의 영향권에 남은 것은 보르네오 북부뿐이었으며 인구도 급속히 줄어 1750년경 기준 약 4만 명에서 1830년 기준 약 1만 명이 되었다. 17세기 중반 술루 술탄국의 세력 확장으로 보르네오 북동부(오늘날의 말레이시아 사바주) 일부 지역을 브루나이가 술루 술탄국에 양도하는 일도 있었으며, 술루는 이 지역을 19세기 중반까지 지배하였다. 이후 브루나이는 내부 분열 등으로 국력이 쇠퇴해 갔고, 각 지방의 족장들이 술탄조차 무시하고 반란을 일삼았다. 특히 1839년 사라왁에서 이반족이 반란을 거세게 일으키면서 사바 주까지 파급되기도 했다. 이에 영국의 모험가 제임스 브룩(James Brooke)이 이반족을 신무기로 진압해 1841년 술탄으로부터 사라왁 왕국의 '라자'(Rajah)로 봉해졌다. 이후 그는 다약인을 사라왁 군대로 끌어들여 복무시키고 홍콩과 싱가포르의 영국 해군도 이용해 30년간 사라왁 지역의 영토를 점차 잠식해 갔다.
오늘날의 사바주에 해당하는 지역은 서구 열강의 관점에서도 식민지로서 영유하기에 매력이 큰 곳은 아니어서 1860년대부터 미국인 사업가와 오스트리아 사업가 등이 브루나이 술탄에게서 지역의 권리를 받아 경영하려고 했지만 15년 가까이 실패만 거듭하다가[4] , 결국 영국인 사업가 앨프리드 덴트(Alfred Dent, 1844–1927)와 영국 외교관 러더퍼드 올콕(Rutherford Alcock, 1809–1897)이 북보르네오 칙허 회사(North Borneo Chartered Company)를 세우고 188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사바의 경영을 시작하였다. 북보르네오 칙허 회사 역시 사바주에서 브루나이의 세력권을 잠식하였다. 사라왁과 사바 지역은 1888년부터 공식적으로 대영제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한편 브루나이 술탄은 사라왁과 사바 양쪽에서 영토를 빼앗기는 와중에, 차라리 영토를 보전하려면 영국 산하로 들어가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여 영국에 보호를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1888년 9월 17일부터 브루나이 역시 대영제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그러나 브루나이의 기대도 무색하게 사라왁 왕국은 사라왁과 브루나이 양국이 영국의 보호령이 된 이후인 1890년에도 브루나이의 판다루안(Pandaruan) 지역을 합병해 버렸는데, 영국은 이에 개입하지 않았다. 1906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영국 통감(resident)이 브루나이에 주재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별 볼 일 없던 브루나이는 1929년 석유가 발견되면서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이로써 영국이 전 브루나이 지역을 적극 탐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때 일본 제국이 지배했으나 1945년 8월 15일 연합군에 항복 후 철수하면서 영국이 돌아와 보호령으로 다시 선포했고, 네팔에서 구르카족 용병을 고용해 반발에 대비했다. 그러나 점차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 러시가 시작되면서 영국은 점점 식민제국주의자로 낙인찍혀 이미지가 악화됐고, 결국 1959년에는 자치를 허용시켰다. 이후 헌법 및 의회를 마련할 준비를 취해 1962년에 역사상 유일한 총선거가 치러져 공화파 정당 브루나이인민당(PRB)[5] 이 승리했으나, 이게 왕실의 분노를 사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PRB가 해산됐다. 이로 인해 선거 결과가 무효화되어 그토록 마련한 헌법도 전부 쓰레기장으로 직행하고 말았다. 오히려 왕권이 더욱 강화돼 현재의 전제 군주정 체제가 된 것이다.
같은 시기 말레이시아 연방 성립의 움직임이 보이는 가운데 왕실은 연방 가입 자체를 거부하고 영국 보호령을 고집했는데, 이는 석유 수익 독점 및 왕권 수호를 위해서였다. 그 사이 영국이 국제 여론을 의식하며 독립을 수차례 독촉하자 1984년에 정식 독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제임스 브룩에게 삥뜯긴 사라왁은 여전히 말레이시아령이다.
독립 이후에는 현재까지 전제군주제 국가이다. 술탄의 통치가 21세기인 지금도 가능한 비결은 막대한 석유자원이다. 영국의 식민통치에서는 가장 늦게 독립했다.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편입하려다가 취소해 일부러 독립을 늦춰가며 영국의 품안에서 점진적으로 주권을 찾아 나갔다. 싱가포르와는 반대의 경우인데 싱가포르는 말레이 연방에서 축출당했다. 그래서 최근까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늦게까지 식민지였던 나라였으나 2002년 동티모르가 독립하면서 동남아 최후기 독립국이라는 타이틀은 벗었다.
1984년 독립 이후 30대 술탄인 하사날 볼키아 무이자딘 와다울라(Hassanal Bolkiah Mu'izzadin Waddaulah)는 전제정을 펴면서 독재정치를 하고 있으며, 정당은 왕실을 지지하는 국민연합당 하나만 허용되며 언론이나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제한되고 있으며, 아무리 브루나이 투자기관 책임자 제프리 볼키야가 잘못된 투자로 국가 예산을 날린다 해도 국민들은 비판할 자유조차 못 쥐고 있다. 그래서 언론자유지수도 2013년 기준으로 122위를 기록하며 남수단과 맞먹었다(...) 때문에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엄청난 오일 머니를 이용해 적극적인 복지, 취업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세금이 없으며, 오히려 1달에 1번씩 전 국민에게 일정 액수의 금액이 지급된다. 수도에 있는 모스크의 크고 아름다운 야경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또 남아있는 영토가 말레이시아 사라왁주의 림방을 두고 분리되어 있어서 말레이시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이동할 수 있게 템부롱 대교를 건설하였다.
2019년 4월 3일부터 브루나이는 샤리아법을 통과시키면서 비난을 받고 있고 거기에다 동성애자까지 처벌하고 투석형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샤리아법을 통과시키자 브루나이 정부가 소유하는 호텔사용을 보이콧하거나 하는 등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주변국들은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JP모건도 브루나이 왕실이 소유한 호텔을 직원이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지자 브루나이 측은 샤리아법 시행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4. 행정 구역
국토가 역사적인 이유로 대폭 줄어들어 도시 국가 수준이기에, 행정구역이 구(district) 수준(원어로는 daerahs)으로, 4개의 구로 나뉘어 있다. 세부적으로는 그 밑에 하위 행정구역으로 38개의 mukims를 두고 있다.
5. 사회/종교
쉽게 표현하자면, '''동남아시아판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소국이다 보니 국제 사회에서 인지도는 부족하지만, 자유와 인권 탄압 측면에서 브루나이는 중동의 산유국 신정국가들 뺨칠 정도다. 국왕이 2014년에 샤리아를 국법에 적용하겠다고 선언할 정도. 기사. 이 나라의 법률은 그야말로 막장이고, 종교에서도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만큼 광신이 극에 달해서 모든 비 이슬람 타 종교들의 선교 행위를 금지는 물론 심지어 사형까지 시키는 걸로 악명이 높다. 외국인 선교사는 무조건 추방한다. 성차별도 극심하여 여성들에게는 히잡 착용이 강요되며, 심지어 타 종교인들과 외국인에게도 이 법규가 적용한다. 언론에 대한 탄압도 정말 악랄해서 언론은 무조건 검열과 통제를 받으며 이슬람과 왕실, 정부, 국가에 대한 비판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브루나이는 언론자유지수에서 항상 낙제를 한다. 출판과 인터넷에 대한 검열도 하며 집회의 자유도 없다.
이러다 보니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으며, 악랄한 인권탄압국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이 악명 높은 샤리아 국법은 '''왕족만은 무조건 예외'''라서 불공정하기 그지없다.[6]
그럼에도 대다수 국민들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폭넓은 복지와 독재로 특어막혀진 반발 여론+원래부터가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국민성[7] 때문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지내는 듯 하다.
하지만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국민들에게 주는 유일한 당근인 오일머니에도 한계가 있어 내부 불만이나 각종 문제가 계속 커지고 있다. 게다가 생각있는 브루나이 국민들은 왕실의 독재와 종교를 이용한 억압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매우 크다. 그러다 보니 많은 브루나이인들은 자국의 억압을 피해서 해외로 이민을 많이 가고 있으며, 생각 있는 인재들도 억압적인 조국을 위해 일할 생각이 없어 많은 수가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으로[8] 이민으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브루나이는 두뇌유출이 심한 국가이며, 이는 브루나이 내의 심한 골칫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이미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도 2006년, 저서 가로세로 세계사 2권에서 이대로 브루나이의 안정과 평화가 지속될 지도, 국민들이 입과 귀가 틀어막힌 채 언제까지 인내심을 지닐 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이들이 언젠가 언론, 출판, 집회/결사의 자유, 다당제 허용 등 민주주의적인 가치관을 점차 자각한다면 나라 자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혼란을 겪을지도 모르면서 '민주주의는 아시아의 해묵은 숙제'라는 식으로 논리를 귀결시킨다.
여담으로, 초강경 이슬람 국가이다 보니 기독교공포증이 만연하여 기독교를 탄압하는데다 크리스마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한다. # 중국인들의 교회는 특히 대놓고 박해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한인교회도 없고, 선교사는 포교하다 걸리면 태형당한 후 추방이 원칙이다. 불교나 도교, 힌두교 등도 대놓고 차별을 안 할 뿐 사원 증축 등을 금지하고 이 때문에 브루나이 불교도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이례로 절에 스님이 없다(...). 애초부터 타종교 성직자, 즉 기독교 목사/신부나 불교 승려, 유대교 랍비 등은 비자 발급도 안 해준다. 젊은 세대는 서구화와 죽어버린 전통 등으로 인해 반쯤 무종교화되어 부처님오신날이나 기타 소원 하는 게 있거나 재미 삼아 점 볼 때나 절에 갈 정도로 쇠퇴해 사실상 사라진 지 오래다. 태국 같은 데 생각하면 안 되며, 실제로 많은 불자들이 태국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 나라 중국인의 절반은 불교계, 절반은 기독교계이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계 중국인들에게는 대놓고 실시하는 극도의 종교탄압 때문에 참다 못한 기독교인들이 홍콩이나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 등 이웃의 기독교인이 많은 타국으로 대거 빠져 나갔다. 심지어 성직자 양성에 필요한 신학교조차 금지한 통에 없어서 신부가 없어 카쿠레키리시탄 같이 되어가는 경향도 보인다. 개신교 역시 목회자가 없는 예배당이 많다. 불교계 중국인들도 말만 불교지 요즘은 거의 사실상 무종교인에 불과하며, 이들은 종교색이 없어 그나마 브루나이 정부가 '덜' 차별하는 편이라는데, 그래봤자 국적도 안 주는 불쌍한 처지라는 점은 도찐개찐이고, 기독교인들이랑 피차일반으로 박해받는다. 그래서 불교계 중국인들도 견디지 못하고 대거 태국으로 가버렸다.
이 나라의 기독교공포증이 얼마나 심하냐면, 중국인 교회의 경우 사전 예고도 없이 종교경찰[9] 들이 뜬금없이 처들어와 문을 닫아버리는 사례도 잦다. 이웃한 말레이계의 이슬람권 나라들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10] 와 비교해 볼 때 이 2개국은 일단 종교적으로 차별과 홀대는 하지만, 기독교 활동을 정부에서도 인정해주고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 폭동이나 난동, 범죄를 제외하면 신앙 생활도 그럭저럭 보장되는 편인데 비해, 브루나이는 막말로 모가지 날아가기 딱 좋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대략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차이다.
특히 기독교 선교는 엄금 대상으로, 성경을 들고 다니면 포교로 간주되어 종교 경찰에 그 자리서 잡혀가고 태형을 당하기도 한다. 동성애는 태형이나 사형이 가능하며, 사형도 약물주입 등의 현대식 사형이 아니라 투석형, 즉 돌을 던져 때려 죽이는 무지박지한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한다.[11] 법령. 이는 자국민뿐 아니라 브루나이 영토 내 외국인[12] 에게도 적용시킨다 하니 주의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항공사들도 브루나이 영공 통과 시 알아서 주류를 제공하지 않는다.
중국계 기독교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술을 파는 것도 나쁘게 보고, 중국계 기독교인 여성들이 레깅스나 핫팬츠, 민소매 등 짧은 옷을 입는 것도 음란하다며 불경하게 생각한다.[13] 반면 말레이인 여성들은 100% 무슬림이라 히잡을 뒤집어 쓴다. 이런 분위기만 보면 거의 사우디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여성들에게 부르카라도 강제할 듯 하지만, '''습한 기후''' 때문에 다행히도 히잡만 강요해대는 선에서 끝나고 부르카는 입지 않는다. 이런 가혹한 박해에도 중국계의 절반 이상이[14]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으며, 자주 폐쇄되기도 하지만 중국인 교회도 남아 있다.
한 마디로 중국인은 브루나이에게 있어 미운 오리다. 그나마 불교계 중국인이면 어찌 공존이 가능한 풍토인데, 기독교계 중국인이면 극단적인 박해와 차별을 받는 처지. 이러한 브루나이의 중국계 기독교인 탄압에 관한 뉴스가 심심하면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가톨릭 및 개신교 언론에 뜬다.
이 나라는 가톨릭과 개신교 둘 다 한인교회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정도로 기독교 박해가 심하다. 브루나이에 체류하는 약간의 교민들도 중국인과 똑같이 취급받아 국적 취득이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 나라의 지도부들에겐 한국인도 그냥 성가신 이교도이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추방 사례도 잦다.
중국계의 50%를 차지하는 불교도, 20%를 차지하는 도교 신자들도 똑같은 처지이며, 기독교 중에서 가톨릭도 개신교 못지않게 차별당한다. 불교 사원도 허가 없이 증축이 불가능하고, 불교 포교도 기독교처럼 금지되어 있다.
브루나이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화하면서 절도범의 손목을 자르거나 동성애자, 간통을 저지른 이에게 투석형까지 허용하는 샤리아법을 2019년 4월 3일부터 실시한다고 하자 인권침해 논란이 커지고 있으며, 앰네스티 측에서도 비판했다. #, # 거기다 브루나이에서 시행되는 샤리아법은 외국인 관광객(!)까지 적용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 # 이 때문에 브루나이 정부에서 소유하는 호텔 불매 운동도 퍼지고 있다. # 결국 샤리아법이 비난 속에서 2019년 4월 3일부터 시행되었다. # 도이체방크는 브루나이의 동성애자 투석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브루나이 투자공사가 소유한 호텔의 이용을 금지하기로 밝혔다. # 미국과 프랑스도 비난하며 폐기를 주장했고, 캐나다도 반발하면서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 하지만 국제 사회의 비난을 그렇게 많이 받는데도 브루나이는 오히려 처벌보다는 예방목적이 크다며 항변한 것이다. #
새로운 추기경 13명 가운데 브루나이 출신이 포함됐다. #
6. 경제
7. 복지
사우디랑 여러모로 비슷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복지 측면에서는 왕가만 부자고 국민들은 빈곤한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복지 수준이 끝내주고 국민소득도 더 높다. 다만 이게 사우디 왕가에 비해 브루나이 왕가가 국민을 더 존중한다거나 해서 그런건 절대 아니고 그저 워낙 인구가 적은 도시국가 규모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복지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의료, 교육 등은 전부 무료이며 해외 유학을 희망한다면 나라에서 전액 지원해준다. 복지라긴 뭐하지만 산유국인만큼 중동 산유국들처럼 기름값도 매우 싼 걸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국민들을 위해 최고급 주택단지를 계획했는데 워낙 전통식 수상가옥에서 살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수상 주택에 그 최고급 설비를 도배'''해준 걸로도 유명하다.[15] 매년 새해 초에는 술탄이 전 국민을 왕궁으로 불러 70~100만 원의 용돈을 하사한다. 그러나 2014년 유가가 정점을 찍고 저유가로 인한 타격으로 긴축정책으로 이러한 복지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8. 왕가
국왕 일가가 엄청나게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 볼키아 국왕은 2011년 <포브스> 지 통계 기준으로 태국의 라마 9세에 이어 2등으로 부유한 통치자라고 인정받았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못지않다. 일단 왕궁부터 사방팔방 대리석과 금으로 도배되어 있고, 생일잔치라도 하면 왕족들이 금 도배를 한 명품 스포츠카와 세단, 심지어는 '''수만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로 도배를 한 벤츠와 벤틀리[16] ''' 같은 명품차들을 줄줄이 끌고 온다.
그뿐만이 아니라, 1996년에 국왕의 50세 생일파티가 열렸을때 볼키아 국왕이 선보인 엄청난 돈지랄은 영국의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 등 경축 사절로 참석한 세계 각국의 왕족들도 놀라게 했을 정도. 여기서는 초대 가수로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를 전액 지원 + 개런티까지 포함해서 열었다.''' 무엇보다 입장료가 '''전액 무료'''였다. 이때문에 브루나이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등 인접국가들에서도 마이클 잭슨 공연을 보러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 사건 때문에 마이클 잭슨은 거액을 받고 인권 탄압 국가의 광대 노릇을 했다고 한동안 구설수에 시달렸다. 게다가 공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공항에 벤츠들이 쫘악 세워져있다.
한마디로 브루나이 왕가는 그 막장 사우디아라비아 못지않은 돈지랄의 끝판왕이다.
참고로 술탄의 남동생인 제프리 볼키아가 사업 투자 실패로 엄청난 돈을 날려먹어서 국제적으로 비웃음을 받기도 했으나, 정작 브루나이 국민들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못하고 있다. 2013년엔 헐리우드 스타 린제이 로한이 브루나이 왕위 서열 3위인 하지 압둘 아짐 왕자의 신년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런던의 최고급 호텔에서 데이트를 즐겼던 것으로 보도됐다. 문제는 로한의 초대 비용으로 쓴 돈이 한화로 약 1억원.
또 국왕은 세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으로 올라있다. 약 '''4,000대''' 이상 소유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한 정비사만 해도 100명이 넘게 상주 중이라고 한다. 차고에 가면 페라리 등 세계 유수의 명차를 종류별, 색상별로 볼 수 있다. 또 특수 주문 제작한 모델들도 많은 듯. 예를 들어 페라리 456 세단이라든지, 황금으로 도금한 롤스로이스 등등.
그외 알려진 다른 취미는 '''실물 항공기 수집'''. 실제 공항 크기의 규모를 자랑하는 수집장에 가면, 보잉 747부터 세스나 172까지 약 300여 종의 각종 실물 비행기가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수집품이 '''모두 실제 운항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된다'''는 것. 그리고 국왕이 조종사 면허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전용기를 직접 조종하기도 한다. 항공 사업을 했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항공기를 모아놓으면 정비하는 게 번거롭기 때문에 별로 안 좋다.
원래는 바이크 수집이 취미였는데, 싫증이 나서 수집한 바이크를 '''모두 수장해버리고''' 새로 시작한 취미가 자동차 수집. 여담으로 볼키아 국왕은 과일중에서 딸기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왕비가 한국인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그런 정보는 찾을 수가 없다. 약 50년 전에 왕족 중 한 사람이 한국인과 결혼한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브루나이의 차량 번호판은 신분제에 따라 자릿수가 다른데, 번호판 자릿수가 낮을 수록 높은 신분인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가장 높은 왕족은 한자릿수에서 두자릿수 번호판을 장착하고, 일반적인 차량들을 보면 숫자가 대여섯자리 정도이다.
9. 언어
공용어는 말레이어. 표준 형태는 브루나이 표준 말레이어로 말레이시아의 표준 말레이어, 인도네시아의 인도네시아어와 거의 같아 말이 서로 통한다. 그런데 실제 브루나이인들은 표준 말레이어보다는 브루나이 말레이어를 말하는데 이쪽은 표준 말레이어와 차이가 커서 표준 말레이어 화자 및 인니어 화자와 소통하기 힘들다.
로마자를 쓰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달리 아직도 아랍 문자를 곳곳에서 사용한다. 그래서 간판만 보면 마치 아라비아 반도에 온 듯하다.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아랍어도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도 영국의 지배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함께 영국식 영어도 사용되고 있고 표기도 영국식을 따르고 있다. 브루나이에서 쓰이는 브루나이 영어는 사투리 차이가 있는 편이다. 물론 다른 동남아처럼 특유의 현지 언어 억양이 들어가있다. 그래서 알아 듣기가 더럽게 어렵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확히는 표준중국어를 공용하는데 푸젠 성과 광둥 성, 차오저우, 객가 등이 공존하기 때문에 표준어 없인 중국계라도 서로 말이 안 통해버린다. 푸젠 성의 방언인 민남어와 객가어가 최대고 그 다음이 광동어와 조주어이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브루나이내 화교들도 중국어를 모르는 경우 영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10. 스포츠
스포츠론 축구가 인기 많지만 동남아 최약체급이다. 오죽하면 1982년 일본은 브루나이와 가진 경기를 겨우 2:1로 이겼다고 감독이 경질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2000년대 와서도 마찬가지라서 2001년 아랍 에미리트에게 0:12로 대패당한 바 있다. 이 나라의 축구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브루나이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204개 국가가 참가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 IOC 회원국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참가하지 못한 흑역사가 있다. 불참 이유는 '''마감 시한까지 선수등록을 하지 못해서''' 라고(...)
아시안 게임에서의 성적도 형편 없어서 역대 아시안 게임에서 획득한 메달 수가 달랑 동메달 4개 뿐이다. 이 중 3개는 가라테에서, 1개는 세팍타크로에서 획득했다.
11. 외교
12. 관광
이슬람 국가이기에 주류 판매가 전면 금지되어 있지만 본인이 직접 들고 가서 마시는 건 괜찮다. 국적기인 로열 브루나이 항공 또한 주류를 제공하지 않으며 대신 장거리 노선 탑승 시 일반석에도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 특전이 있다. 특이하게 비행기 이륙 시 쿠란을 낭송하며 기내 개인 TV에 쿠란 앱을 깔아놓는다.[17] 실제로 그런 장면이 2015년 7월 17일 정글의 법칙 in 브루나이 편을 통해 전파를 탔다.
한국인 불교도도 되도록 불경이나 염주 등을 안 들고 다니는 게 좋다. 포교 목적으로 오인되어 이민국에 억류 당하여 조사 받은 다음 추방 당할 수 있다. 그리고 무타와들이 설치고 다니며 성경 및 불경 등은 그 자리서 뺏는다. 브루나이는 헌법상으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지만 포교는 금지되어 있다.
한국인이 브루나이를 방문할 경우 30일간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고 여권 유효 일이 6개월 이상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는 다르게 여행지로서 메리트는 별로 없는 곳이라 한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다. 관광객 대부분이 유령국가, 사치국가라고 욕하니 말 다한 셈.
환승객용 당일관광 프로그램도 이용자가 없어서 잠정 중지중이고 공항 보세구역에 면세쇼핑 상점이 전무한 수준이다. 그나마 터미널에는 상점이 좀 있는편. 시내 번화가에 기념품 상점이 딱 1개 존재한다.
유류 산업 말고는 2차 산업 분야의 비중이 적어서 그런지 대기 질은 굉장히 깨끗하다. 최근에는 왕실 전용 호텔도 일반에 공개하고[18] 잘 보전된 자연환경을 이용해서 관광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듯하다.
13. 군사
14. 출처
-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지역/주제편): 동남아시아, 천년 문명의 신비에서 21세기 변화와 개혁의 주역으로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8. p202~210.
[1] 영어가 상용어로 광범위하게 쓰이며, 중국계/인도계를 중심으로 중국어/타밀어도 통용된다.[2] 그 외 싱가포르 달러가 협정을 통해 통용된다.[3] 덕분에 브루나이 전체 인구에서 기독교인 비율은 8%로 쪼그라들었다. 원래는 좀더 많았으나 브루나이 독립 후 대놓고 왕가가 기독교를 영국 침략자 종교라고 싫어하며 심하게 핍박하니 전부 홍콩으로 도망간 것.[4] 이때 제임스 브룩과 비슷하게 미국인 사업가가 브루나이 술탄에게서 '라자' 칭호를 받기도 했지만, 이 미국인 '백인 라자'는 결국 식민지 건설에 실패하고 떠나야 했다.[5] 원어명인 Parti Rakyat Brunei의 약자다.[6] 사실 이는 사우디와 이란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은 악랄한 이슬람 율법으로 통제하고 탄압하면서 정작 특권층은 제대로 지키지도 않으며, 설령 들키더라도 심한 경우를 제외하곤 항상 처벌받지 않는다.[7] 사실 이런 잘못된 국민성의 문제는 비단 브루나이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들 전체에서 발생하고 있어 이슬람 국가들이 발전하지 못하는 원흉으로 지적받고 있다.[8] 호주나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으로 많이 가며, 거의 중국계가 이주한다. 호주의 동남아시아 출신 중국계 호주인들이 대개 크리스천들인 이유도 이들 브루나이 화교들 덕이 크다.[9] 무타와라고 한다.[10] 인도네시아는 중국계가 전통이 살아있는 수마트라만 빼면 98%가 기독교인이다. 특히 자바 섬의 중국계 인니인들은 진작에 네덜란드에 동화되어 루터교를 믿고, 이름도 서양식 이름과 인니식 이름을 섞어써서 무슬림과 구분한다.[11] 다만 2019년 기준으로 아직 집행된 적은 없다.[12] 항공기 내에 있는 외국인도 포함한다.[13] 이 나라는 엄청나게 '''덥고 습해서''' 짧은 옷을 입는 게 불가피하다. 건조해서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한 아라비아 반도나 북아프리카와는 다르다. 그래서 비 무슬림 여성들은 나시나 숏팬츠 등의 짧은 옷을 자주 입고, 남자들도 반팔에 반바지가 대세다. 회사들도 노 타이 근무가 대부분일 정도다. 에어컨도 빵빵하다.[14] 그래도 아직까지 인구의 8%가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어서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15] 실제로 여행프로그램을 보면 항공사진으로 찍은 반다르세리브가완의 수상주택단지는 여느 동남아의 수상주택들처럼 매우 낡고 낙후되어 보이는데, 정작 안에 들어가면 전부 흰 대리석으로 내장이 깔려 있고 고급 가구나 최신 전자기기들이 가득한 부잣집의 풍경이다.[16] 그중 한대는 벤틀리 도미네이터라고 양산차가 아닌 주문제작 SUV이다. 즉, 생산하지도 않는 차량을 오직 이 왕가를 위해 벤틀리가 제조해서 판매한 것. 2016년 벤테이가를 출시하기 이전까지 벤틀리가 만든 유일한 SUV이다. 물론 벤틀리 최초의 판매용, 양산 SUV는 벤테이가가 유일하고 최초가 맞다.[17] 사실 이건 대부분의 이슬람계 항공사의 공통사항이다.[18] 일반적으로 모든 생활이 복지로 충족되고도 남으니 국민들이 생업이 아니라 취미 비슷하게 일에 종사하는 나라라서 왕실 호텔의 종업원들은 명예로운 직업으로 선망의 대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