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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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는 서아시아 남캅카스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수도는 예레반(Երևան, Yerevan)이다. 지리적으로는 서아시아에 속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는 유럽에 가깝고 각종 국제기구에서 유럽 소속 회원국으로 활동중이기 때문에 동유럽으로 보기도 한다.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아르메니아를 유럽으로 분류하여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는 유럽 부서(유럽국)에서 맡고 있다. 옛 소련 구성국 간의 모임인 독립국가연합 회원국이고, 더불어 2014년 10월 9일 유라시아 연합에 가입했다.
2. 상징
2.1. 국호
아르메니아어로 자국을 지칭하는 표현은 '''하야스탄(Հայաստան, Hayastan)'''이다. 고대 아르메니아어로 아르메니아를 뜻하는 하이크(Հայք, Hayk’), 혹은 하이(Հայ, Hay)와 땅을 의미하는 -아스탄(աստան, astan)[4] 이 붙어 하야스탄이 된 것인데, 이는 아르메니아 신화에서 아르메니아 민족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하이크 나하페트(Հայկ Նահապետ)[5] 의 후손이라는 의미로 하이크(Հայկ)의 이름을 딴 것이다. 비슷하게 아르메니아어는 하예렌(Հայերեն, Hayeren)이라고 부른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고대 그리스어 혹은 라틴어 표기 Ἀρμενία/Armenia에서 따와 '아르메니아', 혹은 이 이름에서 파생된 이름을 쓴다. 이 이름은 페르시아인들이 아르메니아인들을 "아르미나"라고 한 것을 따라한 것이다. 아카드, 바빌로니아 등 페르시아 이전의 고대 문명에서도 '아르미나'와 비슷한 이름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아마도 하이크의 후손 중 한 명인 아람(Արամ, Aram)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 페르시아어로는 '아르마네스탄(ارمنستان, armanestân)'이라 하며, 인접한 터키어와 쿠르드어로는 '에르메니스탄(Ermenistan)', 아제르바이잔어로는 '에르매니스탄(Ermənistan)'이라 한다.
인접한 언어권과 차이를 보이지만 '아르메니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아바르어[6] '차무크(ЦӀамухъ, C̣amuq̄)', 오세트어 '소미흐(Сомих, Somix)', 조지아어 '솜헤티(სომხეთი, Somkhet'i)'가 있다.
2.2. 국기
아르메니아 국기는 빨강, 파랑, 주황의 삼색기(Եռագույն, Eṙaguyn)이다. 아르메니아의 학자인 스테판 말하샨츠(Ստեփան Մալխասյանց, 1857년 11월 7일 ~ 1947년 7월 21일)가 디자인하였다. 아르메니아 헌법에 규정된 바에 따르면 국기의 빨간색은 아르메니아 고원과 아르메니아인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 아르메니아의 기독교에 대한 신념, 아르메니아의 독립 및 자유 등을 상징하고, 파란색은 평화로운 하늘 아래 살고 싶어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열망을, 주황색은 아르메니아인들의 창의적 능력과 근면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국기는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이 독립운동을 벌여 세워진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에서 처음 국기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이 붕괴하고 소련에 강제 병합되면서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후 1990년 10월 24일에 아르메니아 최고 소비에트에 의해 국기로 다시 채택되었고, 1991년 소련 해체로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 독립함에 따라 정식 국기로 사용하게 되었다.
2.3. 국장
아르메니아의 국장은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 시기(1918–1920)에 사용된 국장을 차용한 것이다. 원본 국장은 건축가인 알레크산드르 타나먄(Ալեքսանդր Թամանյան, 1878년 3월 4일 ~ 1936년 2월 20일)과 화가인 하코브 코조얀(Հակոբ Կոջոյան, 1883년 12월 13일 ~ 1959년 4월 24일)이 디자인하였다. 공화국의 국장이지만 아르메니아계 고대 왕조의 문장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1992년 4월 19일에 채택되었다.
방패 가운데에는 아라라트산과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가 그려져 있다. 방패를 구성하는 문장은 아르타셰스 왕조(Արտաշեսյաններ, 좌측 하단), 아르샤크 왕조(Արշակունիներ, 우측 상단), 바그라트 왕조(Բագրատունիներ, 좌측 상단), 루벤 왕조(Ռուբինյաններ, 우측 하단)를 나타낸다. 독수리는 아르타셰스·아르샤크 왕조의 상징이며, 사자는 바그라트·루벤 왕조의 상징이다. 아라라트산(Արարատ 혹은 Մասիս)은 아르메니아인에게 있어서는 민족의 영산이기 때문에 세 국장에서 모두 사용되었다.
하단에는 국가의 능력과 힘을 의미하는 검, 국가의 자유와 독립을 의미하는 끊어진 사슬, 아르메니아인의 근면함을 의미하는 밀 이삭, 아르메니아인의 지성과 문화유산을 의미하는 깃털펜, 아르메니아 삼색기를 의미하는 리본이 그려져 있다.
2.4. 국가
3. 언어
공용어는 아르메니아어이다. 아르메니아어는 러시아, 터키, 미국, 이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등 해외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쓰는 경우도 많다. 러시아 지배의 영향으로 이곳은 러시아어가 널리 사용되며[7] 소수의 쿠르드어 사용자도 있다.[8] 프랑코포니에 가입된 국가이기도 한데 이는 프랑스 영향력 및 지지를 이끌기 위해서 그런 것일 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한국도 프랑코포니 참관국 가입하려고 신청할 정도이다.
4. 역사
5. 정치
세르지 사르키샨이 독재를 시도했지만 2018년 국민의 반발로 정권교체되어 니콜 파시냔이 총리에 취임했다. 세습독재 중인 옆나라 아제르바이잔에 비하면 정치는 민주적인 편이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패배로 니콜 파시냔은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으며 야권의 반 파시냔 시위가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친 파시냔 지지자들의 반발도 심해져 정치적 혼란속에 빠져있다.
6. 경제
7. 사회
7.1. 종교
원래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신앙인 아르메니아 신화를 믿었다. 그러다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와 접촉하면서 그들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받아들였다가, 서기 4세기인 301년에 아르샤쿠니 왕조의 트르다트 3세(Տրդատ Գ)가 계몽자 성 그레고리오(Սուրբ Գրիգոր Լուսավորիչ, Surb Grigor Lusaworičʿ)로부터 세례를 받으면서 기독교가 국교화되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였다.
현재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종교는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도전승을 지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이다. 1세기에 바르톨로메오와 타대오 두 사도가 아르메니아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했다. 그리고 301년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언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되었다. 313년에서야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한 것은 392년이니 91년이나 빨랐다. 이렇다 보니 아르메니아 국민 90%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자들이다. 이 밖에도 많지 않지만 가톨릭(주로 아르메니아 가톨릭), 정교회[9] , 야지디교, 이슬람[10] 도 소수 있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영향력 때문에 아르메니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 6일이며 12월 25일은 그냥 평일이다.
8. 군사
아르메니아군은 1988년 2월 당시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당시 아제르바이잔군에 대항해 아르메니아 민병대가 결집된 것으로 시작해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지 몇 달 뒤인 1992년 1월 28일에 정식으로 창설했다. 현재 아르메니아는 내륙국의 특성상 해군은 없지만 육군과 공군은 존재하며 5만의 현역 군인과[11] 21만의 예비역들을 보유하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징병제 국가로, 아르메니아 남성들은 2년간 군 복무를 한다. 2020년 기준으로 연 국방비 지출은 6억 3400만 달러로 GDP의 5.5%를 차지한다.
2004년 12월 28일에 그리스 평화유지군 일환으로 코소보에 3개 분대가량의 병력을 보냈으며, 2009년 7월에는 아프가니스탄전 마지막 해 끝바지에 병력들을 보내기도 했다.
주위의 강대국(러시아, 터키, 이란 등)이 있어서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안보위협이 꽤나 큰 나라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주범인 오스만 제국의 계승 국가 터키와 역사적으로 사이가 매우 안 좋다. 그러나 터키와 갈등은 과거사라고 할 정도[12] 이며 오히려 이웃나라인 아제르바이잔과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이때문에 아르메니아는 국가예산 중 국방비의 비중이 매우 높은데, 2018년에 책정된 국방비만 6억 달러인데 이는 아르메니아 GDP 대비 4.8%이며[13] , 2019년의 국방비 증가율은 무려 25%, 2020년에도 14%의 매우 높은 수준으로 증액 예정이다. 이 때문에 국내외에서도 말이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14] 이는 가상적군 1순위인 아제르바이잔군을 따라잡기 위한 무리수로 보이지만, 사실 아제르바이잔은 오일머니를 사용한 돈지랄이 가능하며 인구와 영토에서 아르메니아보다 압도적이기 때문에 소국인 아르메니아로서는 따라가기 힘든 실정이다.
2014년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 중 나고르노카라바흐 국경에서 아제르바이잔군과의 무력 충돌로 인해 아르메니아군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2016년 4월에도 아제르바이잔이 아르차흐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기습받은 아르메니아군은 일부 후퇴하였고, 아르메니아군은 88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다. 물론 아제르바이잔군 또한 95명이 사망하였다.[15] 이후 4일 만에 양국 간의 합의로 정전이 이루어졌다. 늘 벌어지는 국경 분쟁 충돌을 넘어, 22년 만에 경상남도 크기만 한 땅의 영유권을 놓고 전면전을 치른 것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아르메니아가 질적으로 우위였으나, 아제르바이잔군이 오일머니와 터키, 이스라엘 등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제 무기로 전력을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아르메니아의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왔다.[16] 게다가 아르메니아로선 난감해하는 게 이스라엘 관계를 중요시하는 미국이 과거와 달리 아르메니아보다 아제르바이잔을 편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아르메니아로선 더더욱 친러시아적 외교 및 군사관계를 가지고 있다.[17]
2020년 7월 12일에 국경지역에서 아르메니아 군인들과 아제르바이잔 군인들이 교전을 벌였다. # 12일에 시작된 교전은 계속되었다.관련 기사. 양국에 동원령과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아르메니아가 구소련제 9K33 오사로 아제르바이잔의 공격헬기 2대를 격추시키고 아제르바이잔의 T-72 3대를 격파했다.# 그러자 아제르바이잔이 터키제 바이락타르 TB2 무인기로 아르메니아의 9K33 오사를 격파했다.#
그러나 2020년에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군은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결국엔 패전하면서 많은 병사들을 잃었고 군장비들도 많이 파괴되었다. 재건할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제 러시아에게 군장비 지원을 애원해야 하는 판국인데 친서구 정책으로 러시아와 갈등을 빚은 상황이라서 그렇다. 게다가, 러시아군이 5년동안 주둔하나 이후 러시아군이 철군하면 아제르바이잔군 영향으로 아르차흐를 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문제는 서구이니 미국에서 돕고자 해도 러시아가 절대 놔둘 리 없다는 점, 러시아를 무시한다고 해도 군장비를 아르차흐나 아르메니아 쪽에 들여올 수도 없는 지리적 요건이 타격이다. 그러나 러시아도 이번 전쟁에서 아르메니아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점이다.[18]
8.1. 전쟁
9. 현황
- 캅카스 3국 중에서는 모든 면에서 자원이 열악한 나라가 바로 아르메니아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경제 개발에 힘쓰고 있다. 아르메니아를 강타한 아르메니아 대지진 당시 안 그래도 부족했던 공업은 모두 작살났고, 자원도 부족하지만 수려한 자연환경과 서늘한 기후를 이용해 피서지 홍보와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웃나라 아제르바이잔이 석유 생산 덕분에 '불의 나라'로 불리는 것과 대비되어 '돌의 나라(Քարաստան, Karastan)'로 칭해지고 있으며, 실제로 석재가 풍부해 많은 석조 성당들이 있다. 하지만, 이 나라를 들어오려면 러시아나 조지아를 거쳐서 오기 때문에 남오세티아 전쟁 당시에는 이 나라도 타격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아제르바이잔과의 분쟁으로 해외 관광객들도 여행을 기피하는 나라가 되어버려서 아르메니아로서도 아제르바이잔과의 대립은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주는 문제이기도 하다.[19] 거기에 2020년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여파까지 불어닥쳐 아르메니아 주요산업인 관광업계가 그야말로 개박살이나 많은 실직자를 냈기에 이번 전쟁 패배 이후 경제적으로 타격이 큰[20] 아르메니아에게 골치아픈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
- 이 나라의 인구는 300만 명일 뿐이지만 정작 미국[21] 과 이란, 터키[22] , 아제르바이잔(아르차흐 공화국)과 러시아[23] 을 포함해 해외 70개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은 600만 명이 넘어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해외 거주 인구가 본국 인구를 훨씬 초과한 나라다.[24] 이들이 보내는 달러 송금과 홍보가 아르메니아의 경제를 유지하고 국가를 알리는 데 그럭저럭 도움을 준다. 앙리 베르뇌유(Henri Verneuil)의 '나의 어머니(원제: Mayrig)'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원제: 588 rue paradis)'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들의 삶을 조금 이해할 수 있으리라.
- 참고로 미국 정계에도 아르메니아계들이 자리잡아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당시 미국이 아르메니아에 102억 달러 지원금을 보태줄 정도였다. 이로 인하여 아제르바이잔에선 반미 움직임이 거세져 친미 및 친서구 정책을 취하던 애뷜패즈 엘치배이 정권이 붕괴되었다. 이후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서기장이자 독재자인 일함 알리예프가 권력을 물려받자, 친러 정책을 펼치고 대를 이어 집권하면서 지금도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한편 아르메니아가 친러 정책을 실시하자 미국은 반발하며 지원금을 끊었다. 100억 달러가 넘던 차관을 제공케 한 아르메니아계 정치인들은 왜 미국의 돈으로 친러국가를 돕냐는 비난에 시달렸고 정치적 입지가 약화된데다, 터키에서도 반발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로버트 카플란같은 미국 기자는 아르메니아는 이스라엘, 아제르바이잔은 아랍과 같은 이미지라서 더 이상 미국이 아르메니아를 지원했다가는 아랍권/이슬람권 국가들이 반발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완벽한 무지의 소치. 아르메니아 대학살 문제만 봐도 이 언론이나 저 언론이나 마치 당연한 사실인양 떠드는 단합된 이슬람권이란 환상이 박살나는 전형적인 국제 문제 중 하나이다. 이슬람이 대다수인 시리아, 이라크, 신정국가인 이란은만 해도 예전부터 지금까지나 아르메니아인들의 피해를 인정하며 자국내 아르메니아 난민과 후손들을 돌봐주고 학살이라고 비난해왔다. 에르도안 정권 취임까지만 하더라도 세속국가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이슬람 정체성을 억누르려 했던 터키는 반대편에서 그런거 없다 혹은 과장되어 있다 대립각을 내세우는 '이슬람적' 문제가 있을까. 당장 그 이스라엘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나온 대외 성명이나 정책 행보만 보더라도 자기들 보기엔 완전하게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사건인 홀로코스트에 비견되는 점도 불편해하고, 몇안되는 중동권 내 우방국인 터키 눈치 본다고 아르메니아 학살 부인론에 가까운 스탠스를 취해왔고, 그 미국만 하더라도 무려 2019년 11월에서야 상원을 중심으로 아르메니아 학살을 공식 인정하는데 긴 세월이 걸렸던 반면 정치적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는 억압하더라도 공산국가 소련과 시아파 신정국가 이란을 일찍부터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추모하며 아르메니아 편을 들어줬다. 애초에 선동가들에게 편리하기 짝이 없는 '이슬람권 vs 서방'이란 단순한 일차원적 대립구도가 한방에 박살나는 국제 이슈가 아르메니아 문제인데 안타깝게도 언론 매체의 얄팍함으로 인해 아르메니아 자체의 역사적 문맥에서 문제를 보지 않고 대충 자극적인 구도로 몰아가려는 어설픈 좆문가들이 많이 꼬이기도 하는 이슈이다.
- 더불어 미국이 아르메니아 편든 것도 옛날 이야기가 되었는데 아제르바이잔은 세속정책을 취하면서 이스라엘과 우호를 맺고 나아가 자국 석유를 이스라엘에 많이 수출하면서 달라졌다. 이젠 이스라엘군 전체 연료 40%를 아제르바이잔이 책임지면서 이스라엘로선 미국과 더불어 아제르바이잔이 중요한 우방이 되어버렸다! 이스라엘군이 아제르바이잔 군 공군기지를 임대해 훈련도 하고 양 군이 같이 군사훈련도 할 상황이 되면서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아제르바이잔에 들러 양국관계를 우호적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스라엘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부정하는 상황까지 이르면서, 유태인 입김이 정계와 경제계에서 큰 미국이 친아제르바이잔 정책을 취하고 아제르바이잔도 미국과 친해지고자 노력하면서 미국내 아르메니아계 정치인들 입지도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갈수록 군사적, 외교적 우호를 크게 맺으며 미국에 맞서 반목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위에 상술한 대로 아제르바이잔과 벌어진 국경분쟁에서도 미국은 입다물었다. 에르도안을 대놓고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도 유엔상원 결의안 통과를 두고 나토 회원국인 터키와 척을 지는 짓이라고 일단 결의안은 통과하겠지만 더 배상을 요구하라느니 터키에 뭐라고 하지 못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사실, 이러자면 필리핀 침공 당시 미국이 벌인 필리핀인 학살이라든지 미국도 학살에 연루된 게 있어서 미국이 저지른 학살 결의안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프랑스만 해도 수십여년전부터 아르메니아학살 결의안 뭐라고 하다가 프랑스가 비슷한 학살을 저지른 알제리 반발을 듣고 있다. 게다가 정작 2020년 전쟁 당시 프랑스고 오스트리아고 캐나다건 아르메니아 지지하던 나라는 돕고 싶어도 도무지 올 수 없는 불리적 여건에 속수무책이고 정작 전쟁이 끝나자 그동안 프랑스를 돕겠다 아제르바이잔을 비난하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땅으로 인정해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먼 이번 전쟁으로 얻은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7개 주로 만족하고 이제 전쟁을 끝내고 앞으로 아제르바이잔보고 전쟁을 벌이지말라는 중재안이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실망하는 분위기다.
- 이 열악한 경제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르메니아와 원수지간인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 일부러 아르메니아를 비껴가는 철도선인 BTK(아제르바이잔 바쿠, 조지아 트빌리시, 터키 카르스 앞글자) 철도선을 부설하면서 아르메니아는 고립된다. 아르메니아의 저지 노력[25] 이 터키의 극심한 반발과,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박살난 자국 경제 사정을 개선하고자 했었던 조지아의 반발로 무산되면서 아르메니아는 BTC 파이프 자원 라인에 이어 철도 수송같은 교통에서도 왕따이다.
조지아로선 아르메니아가 터키, 아제르바이잔과 원수 사이라 이득으로 돌아오는 셈이다(내셔널 지오그래픽 2010년 8월호 참조). 아직은 미정이지만 카자흐스탄 이웃인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같이 석유와 가스자원이 넘치는 나라들까지 이 나부코 파이프 라인과 연결되면 터키의 입지는 더 단단해지고, 아르메니아는 여전히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일부 아르메니아 극우들이 테러라도 가하여 이걸 막아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했을 만큼 아르메니아에선 반발이 엄청나다. 하긴 아르메니아가 철도선을 유치했더라면 터키에게 영향력도 과시했을 테고 자국에게 엄청난 경제적, 외교적 이득을 가져왔던 것을 놓치니 화가 날 법하다.
하지만 조지아/경제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조지아의 무역 수출입 관련 1, 2, 3위가 바로 러시아, 터키, 아제르바이잔이다. 조지아로서는 러시아와 전쟁 및 영토 문제로 이가 갈리지만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에게는 그런 앙금이 없을 뿐더러 경제적으로도, 나아가 미래의 국가적 이득을 위해서라도 두 나라와는 원수질 일이 없게 해야하는 현실이기에 아르메니아와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적당하게 잘 지내는 이웃 나라로 지낼 수 밖에. 조지아도 아르메니아와 어느 만큼 무역 수출입이 중요하지만 이 세 나라 무역수출량을 더하면 조지아 전체 무역량 절반에 가깝다. 아르메니아도 조지아의 이런 현실을 알기에 조지아에게 화낼 수도 없고, 화내봐야 아르메니아 손해만 크다.
- 그리고 90년대부터 터키가 동부지역의 물 부족 현상을 풀고자 짓는 거대한 댐[26] 문제로 터키와 또다른 갈등이 있다. 이 댐이 완공되면 과거 아르메니아 왕국 시절 수도이던 아니를 비롯한 무수한 아르메니아의 유적들이 물에 잠기게 되기 때문. 이 문제를 두고 생존의 터전을 빼앗겨 반발하는 쿠르드족도 뜻이 통하여 양측이 이 문제에서 손을 잡을지도 모른다.
- 2009년 10월 10일, 터키와 아르메니아가 일단은 국교 정상화 문서에 조인하였다. 뒤이어 악다마르 성당을 터키 측이 재건하고 2010년 95년 만에 예배 허용, 2013년부터는 매해 예배 및 아르메니아 청소년들에 대한 세례식을 허용하면서 터키와는 조금은 사이가 나아진 편이다. 물론 터키는 이를 허용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의 반발과 자국 극우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 2004년 2월 19일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군사학교에서 언어 연수[27] 를 같이 받던 아르메니아군 장교인 구르겐 마르가랸 소령 (1978~2004, 사망 당시 중위로 26세)을 아제르바이잔군 대위였던 라밀 사파로프(Ramil Səfərov,1977~ )가 도끼로 살해한[28] 사건이 벌어졌는데. 사파로프 대위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가 헝가리 당국이 아제르바이잔 정부로부터 처벌한다는 약속을 받았다면서 2012년 8월 31일 수형자 이송 협약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송했고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사파로프 대위가 도착하자마자 즉시 석방시키고 소령으로 진급까지 시켜버리는 막장짓을 했다. 거기에 2년 뒤에는 중령으로 추가 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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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시위대가 들고 있는 저 사진에서 당연히 왼쪽이 가해자 사파로프. 오른쪽은 피해자 마르가랸. 사후 소령으로 2계급 추서되고 전사자로 기려져 국장으로 장례를 베풀었으며 고인과 유족은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2013년에는 예레반에 마르가랸 추모관까지 세워졌다.
분노한 아르메니아의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은 즉각 헝가리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으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양국 사이에 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번 건은 하도 병크라 아제르바이잔과 헝가리를 편들어주는 나라는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하지만 아르메니아가 약소국이며 겨우 1명이 죽은 사건이라 그런지(...) 국제적으로 별다른 관심이 없다. 헝가리는 아르메니아가 국교단절을 해도 관심이 없는데다, 아제르바이잔은 헝가리 편을 들며 여전히 배째라 하고 있고 터키나 주변 나라들은 모른척하거나 별 반응이 없다. 미국은 일단 비난은 했다. 백악관안전보장회의 대변인 토미 비에터(Tommy Vietor)는 오바마 대통령은 알리예프 대통령이 라밀 사파로프가 본국으로 귀환하자마자 그를 사면해 준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며, 사파로프에 대한 사면 결정은 역내 긴장 완화와 화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현재의 노력에 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 측의 실망을 아제르바이잔 측에 전달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토미 비에터는 “미국 측은 헝가리 정부가 사파로프를 아제르바이잔으로 송환한 조치에 대한 해명을 요청한 상태” 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산하 민스크그룹의 공동 대표인 러시아와 프랑스는 이 사안을 두고 비난하지 않았으며 곧 미국에서도 유로마이단이나 다에쉬같은 문제로 묻혀져버렸다. 물론 유엔사무총장인 반기문도 이걸 비난하고 나토에서도 비난 성명을 냈지만 당시 국제 정세에서 더 큰 일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여기서도 더 길게 언급되지 못했다.
2013년 9월, 피해자 구르겐 마르가랸의 아버지 아르투시 마르가랸이 아들을 죽인 범인이 저렇게 잘만 살아있고 영웅화되었다는 것에 항의하여 칼로 배를 찔러 자살을 시도하다가 응급치료를 받아 목숨은 구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새패로프는 대령으로 진급했다. 한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2020년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했다.
- 2020년 현재 아제르바이잔과 아르차흐 지역을 놓고 1992년 이후 다시 전쟁을 하고 있는데 전황이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결국 26년전과 달리 외교적으로 더 압도적인 아제르바이잔에게 10월 들어서 연전연패를 거듭하여 아르차흐 전역 42%를 빼앗겼다. 아르차흐 2번째 도시인 슈샤까지 겨우 하룻만에 점령당한 아르메니아는 11월 10일 러시아 중재를 통한 평화협정이라고 하고 사실 항복선언을 해버려 1991년 전쟁전,국경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쉬냔 총리가 미국에게 아르차흐에 평화유지군 (미군,나토군)을 파병해 아르차흐 공화국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만일 이를 미국정부가 허락할시 옛날의 키르키스스탄 처럼 러시아 군대와 서방군대가 같이 주둔하는 기묘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 물론 러시아가 허락하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라 미국은 응하지 않았고 거꾸로 러시아군이 아르메니아 지역에 주둔하면서 평화유지군으로 남게되었다. 사실상 항복선언과 같이 80%가 넘는 아르차흐를 아제르바이잔에게 넘긴 터라 파시냔 총리는 역적 신세로 욕먹었으나 지지자들도 반격하여 이건 파시냔 총리 홀로 책임이 아니라고 반발 시위까지 벌어졌다. 아무튼,아르차흐에 차후 5년동안 주둔하기로 한 러시아군이 물러난 다음이 문제. 남은 아르차흐 지역조차 아제르바이잔군이 먹는다고 덤벼들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젠 아제르바이잔 나고르노 카라바흐가 된 옛 아르차흐 쪽에 터키군까지 주둔하기로 했다. 키르기스스탄도 미군 주둔 받아들였다가 러시아의 엄포와 협박에 결국 미군을 다 내보냈는데 하물며, 아르차흐에 미군 주둔을 러시아가 인정할리 없다. 오히려, 러시아에서 아르차흐를 아제르바이잔이 마저 먹던지 마음대로 하라고 방관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번 전쟁으로 아르차흐 쪽 대공망 무기가 싸그리 박살났는데, 아제르바이잔에 포위된 꼴에 아르메니아에서 도우러 갈 수도 없다. 스테파나케르트와 아르메니아 연결 도로를 이번 종전 협정으로 허용했으나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 도로쯤은 얼마든지 제공권 장악한 아제르바이잔이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나 프랑스가 이걸로 만족하고 전쟁은 벌이지말라는 강요를 하긴 하지만, 이젠 아제르바이잔에게 빙빙 포위되어버린 아르차흐 지역이 되었다.
10.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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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리 주 (주도: 바나조르)
2. 시라크 주 (주도: 규므리)
3. 아라가초튼 주
4. 아르마비르 주 (주도: 아르마비르. 주요 도시로 종교도시인 에치미아진이 있다.)
5. 코타이크 주
6. 예레반 특별시(수도)
7. 아라라트 주
8. 바요츠조르 주
9. 슈니크 주
10. 게가르쿠니크 주
11. 타부시 주
11. 외교
12.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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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한테는 잘 알려져있지 않고 국토도 작지만, 사실 러시아 등 옛 공산권에서는 예전부터 관광지, 휴양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캅카스 산맥 지역답게 옆나라 조지아처럼 스위스 뺨치는 웅장한 자연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고 오랜 역사답게 에치미아진, 노라방크, 코르비랍, 게그하드 등 그런 자연과 어우러진 기독교 유적지도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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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륙국인 아르메니아에 있어서는 바다나 다름없는 세반 호수가 있다. 원래는 1416 km²로 서울특별시의 2배를 넘어가는 큰 호수였지만 스탈린 시절 호수의 물을 관개공사에 쓴다고 호숫물을 마구 퍼가는 통에 면적과 수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다행히 아랄해처럼 되지 않도록 보존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아르메니아 브랜디가 유명하며, 물이 깨끗한 청정국가다. 조지아처럼 장수촌으로도 유명한 편이다.
비슷한 처지였던 조지아가 먼저 적극적인 한국인 360일 무비자와 적극적인 홍보로 그나마 캅카스 국가 중에서 한국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고 인지도가 올라간 반면 아르메니아는 이 쪽에 좀 늦는 편이었는데 2018년 드디어 한국인 180일 무비자를 시행하게 되었다.
미승인국인 아르차흐 공화국을 여행하려 할 경우 비자를 발급받아 갈 수 있으나 이후 아제르바이잔에 입국 시 이 지역을 여행한 사실이 드러나면 입국을 거부당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아르메니아 본토를 방문하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어 보통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한 후 아르메니아를 여행하는 것이 좋다.#
13. 스포츠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지만 유럽축구에서 늘 하위권.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종종 강호들을 상대로 1승을 거두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AS 로마의 미드필더 헨리크 미키타리안이 아르메니아 출신 최고의 축구 스타이다. 자세한 건 아르메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하지만 아직 자국 리그 실력은 여전히 부진한데 2013년 5월자 유럽리그 랭킹에선 아르메니아 리그는 50위라는 굴욕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 아래가 안도라, 페로 제도, 산마리노같은 유럽 최약체 나라 리그들이니 말 다했다.(여담인데 역사적 라이벌인 이웃 아제르바이잔 리그는 37위) 이후 2017년에는 44위로 오르긴 했지만 라이벌 아제르바이잔 리그는 25위까지 순위가 올라갔다...거기에 2020년에는 아르메니아 2부리그에서 승부조작이 걸렸다. 연루되어 처발받은 팀만 해도 5개팀이나 될 정도로 대대적인 승부조작이라고 한다.
올림픽에선 이웃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레슬링, 유도, 역도에서 꾸준한 성적을 낸다. 옆동네 아제르바이잔이 레슬링또는 배구 쪽이라면 이쪽은 유도가 조금 더 강한 느낌. 하지만 나머지 종목 모두가 안습인 점은 아제르바이잔과 똑같다.
WWE 챔피언 세스 롤린스는 시카고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친아버지가 아르메니아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릴때 멕시코계인 양아버지의 성을 따라 로페즈로 성을 바꾸었다. 세스 롤린스의 실제 이름은 콜비 로페즈이다.
종합격투기 관련 선수중에도 게가드 무사시, 다니엘 사라피안, 카로 파리시안, 매니 감부리안 같은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유명한 테니스 스타인 앤드리 애거시의 부친도 아르메니아계 이란인이다.
1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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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는 서아시아 북부지만 동유럽과도 지리적으로 꽤 가까운 만큼 유럽 문화의 영향도 있으며,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종교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기독교 문화가 아르메니아에서 나타나기 전에는 사산 제국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외에도 지배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었고 근현대에는 러시아와 소련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또한 소련의 정책으로 강제이주된 일부 중앙아시아 일대 이주민들이 정착하기도 하면서 이들과도 같이 공존하면서 영향을 받았다. 그 외 주변 캅카스 제족들과도 여러 왕래 및 교류를 했었다. 특히 러시아 로스토프주와 아제르바이잔 북중부에 주로 거주하는 우디인(러시아어: Удины, 아제르바이잔어: Udilər)은 아르메니아 본토와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오늘날까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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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문화도 역시 서아시아와 유럽의 영향으로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존재하는데, 의외로 이란의 대표적인 빵 라바시(لواش)는 아르메니아의 라바시(Լավաշ, Lavash)가 기원이라고 한다. 2014년 라바시를 아르메니아의 문화 유산으로 지정하자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측에서 반발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동유럽과 카프카스에서 많이 먹는 돌마(Dolma, 아르메니아어로 Տոլմա), 터키에서 많이 먹는 쾨프테(Köfte, 아르메니아어로 Քուֆթա), 난(Naan)과 흡사한 마트나카시(Մատնաքաշ, Matnakash) 모두 아르메니아에서 소비되는 대표적인 요리이다.
의외로 레바논 요리랑 겹치는 메뉴가 많다. 근세 아르메니아인들 대다수가 오스만 제국에 거주했던 걸 생각하면 그리고 레바논 요리가 어떤 요리인지 생각해보면 이해 가능하다. 실제로 해외에 아르메니아 식당을 가보면 파는 메뉴가 레바논 식당하고 많이 겹친다. 그 외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사이에 있는 만큼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과도 비슷한 의식주 문화들이 보인다. 조지아, 아제르바이잔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이들 못지 않게 와인이 발달되었다.
15. 여담
국명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어로 '하야스탄'이다. 본래 스탄은 영어의 ~랜드와 일맥상통하는 페르시아어 접미사인데, 아르메니아도 이란의 접경국이고 한때는 페르시아계 제국들의 지배를 받았기에 아르메니아어에도 이 접미사가 받아들여져서 아르메니아어로 '아르메니아인들의 땅'이라는 뜻의 하야스탄이 국명이 된 것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피해 각지로 흩어졌는데 그 결과 해외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 내부의 아르메니아인들보다 많을 지경. 그리고 근면한 국민성 덕에 성공한 경우가 많아,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 "아르메니아인=부유층"의 공식이 성립할 정도. 이렇게 성공한 동포들이 송금한 돈으로 국가도 운영하고, 동포들이 각국의 의회에 로비해서 아르메니아 학살도 알리는 등 이스라엘 닮은꼴이라 할 만하다.
여담이지만 이런 해외 아르메니아인들이 보낸 돈 덕에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는데, 아르메니아인들이 해외로 뜬 까닭이 아르메니아 대학살 때문이므로, 끝내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의 원인을 제공한 터키는 아제르바이잔에게 은근슬쩍 빅엿을 먹인 셈이다.(...)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부정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미묘한 사실.
아르메니아 독립 이후 현재까지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아르메니아 태생이 아니다. 초대 대통령 레본 테르페트로샨은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태어난 아르메니아계로 한 살 때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주했고, 2,3대 대통령 로베르트 코차랸과 세르지 사르키샨은 아르차흐 공화국 스테파나케르트 출신이다.
타라 덩컨 시리즈를 집필한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이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이다.[29] 그 외에도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기에 총리직을 역임한 에두아르 발라뒤르(Édouard Balladur), 유명 샹송가수인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 실비 바르탕(Sylvie Vartan)도 아르메니아계이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애텀 에고이언(Atom Egoyan)도 아르메니아계 혈통이다.(정확히는 아르메니아-이집트인) 감독 자신도 이 혈통에 대해 상당히 의식하고 있어 1993년 아르메니아를 방문한 경험을 담은 '캘린더'나[30] 2001년 아르메니아 역사를 다룬 (위의 산 이름에서 따온) '아라라트'라는 영화도 찍었다.[31] 영국 배우 앤디 서키스(Andy Serkis)도 이 나라 혈통이다. 러시아의 외교부 장관인 세르게이 라브로프도 아르메니아계 혈통이며 우크라이나의 전 총리 율리야 티모셴코도 부계가 아르메니아 혈통이다.
아르메니아인의 성씨는 끝에 '얀(-յան; 영어로는 -yan)'이라는 접사가 붙는데 이는 '~의 자식'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자면 마미코니안(Մամիկոնյան), 에고얀(Էգոյան)[32] , 하차트리안(Խաչատրյան)같은 식이다. 'ев'나 'ов' 돌림의 성을 쓰는 러시아 혹은 ‘-son’으로 끝나는 영미권 성씨(Jackson, Thompson, Johnson 등.)과 비슷한 식이다. 이 성씨를 지녔다면 100% 아르메니아인 혹은 아르메니아계 혈통이 섞인 사람이라고 보면 좋다. 이외에도 '죽음의 의사'로 잘 알려진 미국의 의사인 잭 키보키언(Jack Kevorkian)이나 미국의 메탈 밴드인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멤버인 다론 말라키안(Daron Malakian)[33] 등이 있다. 그리고 미국 최고의 어그로꾼 카다시안 가족도 아르메니아계. 아버지 로버트 카다시안도 유명했다.[34]
이 나라에서 생산하는 브랜디가 소련 시절에 꽤 인기있는 상품이었다. 지금도 세계 25개국에 수출하고, 국빈 방문 때 꼭 들르는 곳 하나에 브랜디 제조장일 정도라고.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과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도 방문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이 윈스턴 처칠에게 아르메니아 브랜디를 1년 동안 음미하라며 300병을 보냈다고 한다. 더구나 아르메니아가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위하여 비밀리에 브랜디를 선물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술을 엄히 금하는 이란 고위 성직자들이 이런 선물에 환장한다는 이야긴 이란에서도 유명하다! 참고로 아르메니아 브랜디는 우리나라에서도 동대문 인근에서 구입할 수 있다. 출처
앞서 말한 대로 세계 최초 기독교 나라임을 자부하는 아르메니아이지만, 가톨릭에게도 개신교에게도 이단시받으면서 이슬람과 더불어 다른 기독교 종파들에게 오랫동안 시달려왔다. 그래서인지 자국 정교회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국교화 요구까지 있었다. 급기야 지난 2006년에는 자국 종교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를 제1종교로, 그리고 이슬람을 제2종교로 인정하며 나머지 기독교 종파와 다른 종교들을 금지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큰 반발을 부른 외국 선교사들의 아르메니아 입국 및 선교 활동 탓이 컸다. 그러나 사실상 지금도 타 소수종파의 아르메니아 선교는 이뤄지고 있으며, 정부의 법령도 해석이 애매한 편이고[35] 타종파 선교가 팍팍할 지언정 일단 공식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는 보장하고 있다.
그 밖에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을 빼면 아랍권 이슬람 국가들도 터키에게 지배를 겪어 지금도 이를 가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조금은 사이가 좋은 편이다. 다만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당시에는 미국이 옹호하기도 했고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가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에서 학살을 저질렀다는 점 때문에 아르메니아를 비난하는 의견들도 종종 나오기도 했다.
그렇긴 해도 터키보단 낫다는 시각도 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 학살 당시 같이 오스만 제국군에게 최대 10여만이 학살당한 시리아도 아르메니아 학살에 아르메니아 편을 들며 터키에 항의할 정도. 이런 사정으로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 탄압은 없다. 다만 아르메니아에서 이슬람의 비중은 낮다.[36]
이웃나라인 터키와 이란에서도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살아간다. 터키같은 경우는 5~7만, 이란 거주 아르메니아인은 10만~50만 정도. 부정확한 숫자인 것은 두 나라 모두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데다 자세한 조사를 안 해서(...)
미수다에는 한국남편과 결혼한 슈샨 하콥얀(Shushan Hakobyan)이라는 아르메니아인 여성이 출연했다.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여파로 쿠르드족의 독립 요구에 굉장히 민감해 한다. 당장 독립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이 여파로 쿠르드족의 결집 강화도 우려한다. 쿠르드족의 독립은 지역에 새로운 예측 불가능의 변수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터키의 동부 거대 댐공사 계획으로 쿠르드족과 힘을 모아야 하는 또다른 현실이 있다. 거기에 시리아 북부에서는 IS 등에 대항해 쿠르드족과 아르메니아인이 연합 전선을 형성하기까지 하고 있다. 일단 원론적으로 1차대전 이후 터키 공화국에게 억압 받았다는 역사를 공유하므로 PKK, 인민 민주당, 이라크령 자치지구 같은 쿠르드족 독립 단체들과는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쿠르드족 독립 단체들은 대학살 인정과 학살 당시 쿠르드족의 참여에 대한 사과 같은 과거사 문제는 문제시하지 않고 넘어갔다. 사실 쿠드르인들도 이 학살 당시 무수히 학살되면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였지만 쿠르드족 항목에 나오듯이 여러 곳으로 분열되어 벌어진 상황이다. 이들이 오스만 제국 편들어 학살한 것도 있으나 이들도 그러지 않았더라면 학살당했다는 의견도 있고 또한 이들에게 사죄배상을 하라고 해도 나라도 없는 이들에게 이런 요구를 듣어줄 수도 없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해봐야 터키에 이를 가는 반터키 쿠르드 세력을 적으로 만들어버릴 셈이니 차라리 아군으로 만드는게 낫다. 문제는 쿠르드인들도 아라라트산을 성지로 받아들이기에 이들이 독립국가를 세운다면 아르메니아로서도 좋을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콜롬비아에 아르메니아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다. 콜롬비아 킨디오 주에 위치한 곳으로 인구는 약 29만 2천 명. 콜롬비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3개 도시(보고타, 메데인, 칼리) 사이에 있다. 이름이 위의 나라 이름과 똑같은 까닭은, 아르메니아 학살을 추모하는 뜻[37] 으로 원래의 비야 올긴(Villa Holguin)이라는 이름에서 바꾸었다고 한다.
캅카스 산맥에 있어서 산들이 많고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캅카스의 알프스"로도 불린다.[38]
[1] ''Hayastani Hanrapetutʿyun'' [hɑjɑstɑˈni hɑnɾɑpɛtutʰˈjun\] 아르메니아어로 아르메니아는 하야스탄이다.[2] 경상도 면적보다 약간 작은 크기[혼합된체제] 5.35점[3] 출처.[4] 스탄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 페르시아어에서 온 접미사이다.[5] 아르메니아의 단군왕검 같은 존재이다.[6] 러시아 연방 북캅카스 연방관구 다게스탄 공화국에서 사용된다.[7] 모어 기준 2009년 0.8%, 제 2언어까지 합하면 2011년 기준 52%[8] 물론 친러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며 이웃 국가들인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반러 감정 때문에 러시아어 배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9] 아르메니아의 정교회 신자들은 대체로 러시아계 및 조지아계 주민들이 많지만 고려인도 있다.[10] 아르메니아의 무슬림들 중 오스만 제국 시절 아르메니아를 지배하던 터키인이나 이슬람교로 개종한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족 그리고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의 지배기에 이주해온 러시아계 타타르족 등의 후손들은 주로 수니파를 믿으며 이란계 주민들은 주로 시아파를 믿는다.[11] 육군이 4만 5천명, 공군이 7천명이다.[12] 적어도 터키와 외교적, 역사적 문제로 으르렁거리지만 국경에서 무력충돌은 2000년대 와서 없다.(아르메니아 독립 이후 90년대 와서도 갈등이 있었으나 무력 충돌이 없었다.)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은 국경에서 얼마전까지 총격전 벌이고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다.[13] GDP 대비 비율은 2018년 SIPRI(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자료 기준[14] 쉽게 비교하자면, 선군정치를 울부짖는 북한이 11.5%, 아르메니아만큼 사방이 적인 이스라엘도 4.3%밖에 안 된다. 참고로 2017년도 한국군 예산은 약 40조 원(대략 350억 달러), GDP의 2.3%로 이렇게 보면 별로 많지 않아 보이지만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과 비교하면 영토, 물적, 인적자원 모두 빈약한 아르메니아는 엄청난 갭이 있다.[15] 이 가운데 브콘탁테에 아르메니아군을 참살하는 동영상까지 올라왔다고 한다.[16] 아제르바이잔에는 유사시 이란을 공격하기 위한 이스라엘군 무인기가 배치되어 있으며, 몇대는 아제르바이잔 공군이 구입했다.[17]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말이 동맹이지 사실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에게 자기가 주인인 마냥 횡포를 부린다. 러시아 탈영병이 아르메니아 여성에게 강간을 저질렀는데 처벌도 없고 그냥 본국으로 갔다. 게다가 러시아도 무조건 아르메니아 편을 드는 건 아니다. 국력으로 보아 아제르바이잔이 훨씬 높으니....[18] 정확히 말하면, 아르메니아 민주정부가 친서방 노선을 타면서 '''도와주지 않은 것이다'''. 러시아는 자기 앞마당인 캅카스에서 유럽과 미국의 영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꼬웠기 때문에 터키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것.[19] 헌데 정작 아르메니아의 옆나라인 조지아는 1991년 소련 해체 과정에서 독립 이후 인접국이자 구 소련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와 한바탕 전쟁도 하고 전쟁 종전 후에도 이웃 강대국인 러시아와 남오세티야, 압하스 등 자국내 미승인국들간의 분쟁, 대립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와 달리 해외 관광객들이 여행을 많이 와서 나름 인기 많은 관광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남오세티야 전쟁 문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러시아는 조지아를 아주 멸망시키려던 게 아닌 전쟁이었고(한마디로 까불지마라라는 경고 의미가 더 컸다.) 이후 러시아는 조지아에 무력으로 뭉개거나 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조지아는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파이프라인이 오고가는 만큼, 러시아가 조지아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붙이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의 반발을 비롯하여 러시아로서도 머리가 아프기에 별다른 무력도 없고 이웃 나라들인 터키나 아제르바이잔과 경제적 충돌도 없기 때문에 국경에서 허구헌날 아제르바이잔과 치고박고 싸우는 아르메니아와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다만, 조지아도 아제르바이잔과 양국 국경지대에 위치한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을 두고 영토 분쟁이 있지만, 이조차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관계와 달리 국경에서 총질을 벌여 서로 사상자를 낸 적은 없다.[20] 15만 정도 아르차흐 공화국에서 10만 가까운 피난민들이 아르메니아로 와서 살고자 하는데 이들이 살 집에서부터 생활지원비 등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미 전쟁 사상자 보상이나 전쟁으로 살던 집을 잃은 피해자들이 머물 집까지 싸그리 준비한 아제르바이잔과 달리 아르메니아는 아직도 이런 거 준비조차 못하고 있다.[21] 별의별 인종이 사는 인종의 용광로 미국에도 제법 많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이 있고, 미국 정계에 제법 영향력이 크다! 다만 비즈니스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최악의 비즈니스 상대로 아르메니아인을 꼽는다(…) 특히 사기치는 데엔 그야말로 도사라고 한다. 이런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GTA 5의 스토리 초반부에 등장하는 프랭클린과 라마의 상사인 시몬 예타리안이다.[22]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시절부터 살고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대략 자체통계로 5만 정도 살고있다. 아르메니아 학교도 있고 병원도 있고, 아르메니아어 신문까지 나올 정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갈등은 현재진행중이지만 현재 터키인과 아르메니아인은 딱히 갈등할게 없기 때문에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터키에서 아르메니아인하면 근면하고, 손재주가 많은 민족이라고들 생각하는데, 특히 금은세공업에 능해서 오래전부터 아르메니아인들이 이 일을 하고 있었다. 무슬림 남성은 금을 착용하는 것도 그렇고 취급하는 것도 금기시하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아르메니아 장인들이 금세공일을 했다.[23] 이쪽도 미국처럼 아르메니아계를 상당히 머리 좋고 사기 잘 치는(...) 소수민족으로 알아준다.[24] 라이벌인 아제르바이잔도 해외 거주 인구가 본국 인구보다 많은데, 대부분이 이웃 나라 이란에 많이 산다.[25] 세계은행을 통한 자금 라인을 일시적으로 막아냈으나 오래가지 않아 터키가 이스라엘의 제재 조치로 보복하겠다는 반발에 움찔한 유태인들이 자금을 정상화하면서 실패.[26] 참고로, 터키는 이미 1998년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면서 이라크와 시리아를 상대로 '물 자원의 무기화'를 선언한 전력이 있는 나라다.[27]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토에서 후원해 헝가리에서 다국적 여러 나라 장교들을 받아들아 3개월 군사학,언어 연수등을 하고 있었다.[28] 그것도 잠을 자고 있는 걸 도끼로 수십번 난도질해 끔살했다. 좀 더 자세한 건 아제르바이잔 항목을 참고할 것.[29] 아르메니아 공주라는 카더라가 있지만 스스로 자칭하는 것일 뿐 사실이라 보기는 힘들다.[30] 작중 고백에 따르면 정말 어렸을때는 영어도 서투르지만 아르메니아어도 못하는 상당히 모호한 정체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부인인 아시니 칸지안과 사귀게 되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31] 아라라트산은 구약성경에 나온 그 산 맞다. 게다가 아르메니아-조지아-아제르바이잔-터키 일대에서는 이곳이 노아가 방주를 정박하였고, 대홍수 이후 인류가 나타난 성소라 취급받는다. 그러나 현재 산 자체는 터키 영토에 있으며, 터키는 아르메니아가 이 산에 다가오는 걸 강력하게 막고 있다. 거기다 이 산은 쿠르드인들의 성지이기도 해서(...) 아르메니아와 쿠르드인들이 이 산을 둘러싸고 갈등도 많았다. 참고로 오래가지 못했지만, 1927년 쿠르드인들이 이 주변에 아라라트 공화국을 잠깐 세우기도 했다. 현재도 이 산을 가려면 꽤나 힘들다. 가는 길이 험하고 주변에서 숙박시설을 찾을 수도 없으며, 거주하는 쿠르드인들은 이방인들을 거부한다.[32] 단 예시로 언급된 아톰 에고얀의 가문은 서부 아르메니아 출신이라 Եղոյեան라고 표기한다.[33]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멤버 전원이 아르메니아계로 다른 멤버들의 이름은 탄키안, 오바디안, 돌마얀이다.[34] O.J 심슨의 변호를 맡은 걸로 유명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3세. 카다시안이 성을 안 바꾸는 이유는 로버트 카다시안이 더 유명해서라는 루머도 있을 정도.[35] 대표적으로 타종교로의 '지나치고 반복적인' 개종시도를 하면 처벌받는다고 법률을 제정했는데, 이 '지나치고 반복적인'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해석조차 정확히 내리지 않았다.[36] 201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812명에 불과하다. 쿠르드인이 최대 소수민족이긴 한데 4만이 채 안되며 대부분 야지디교도들이다. 참조[37] 정확히는 1894~1897년 아르메니아 서부에서 일어난 하미디안 학살.[38] 때때로 남캅카스 지역을 서아시아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중앙아시아로 보는 경우가 드물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