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웬리/작중 행적

 



1. 개요
2. 유년기~사관학교
3. 군인
3.1. 위관
3.1.1. 소위
3.1.2. 중위
3.1.3. 대위
3.2. 영관
3.3. 장성
3.3.1. 준장
3.3.2. 소장&중장
3.3.3. 대장
3.4. 퇴역, 그리고 복귀
4. 사후
5. 승진속도


1. 개요


은하영웅전설자유행성동맹측 주인공 양 웬리의 인생을 정리한 문서.

2. 유년기~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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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웬리는 무역업에 종사하여 회사와 상선을 보유할 정도로 성공한 양 타이롱이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카트린느 르클레르란 여성과 재혼한 후에 얻은 아들이었다. 그러나 카트린느는 급성 심장질환으로 양이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고, 훈육문제로 처가와의 불화가 생겨 친권을 빼앗길 상황에 놓이자 타이롱은 양 웬리와 함께 개인 소유 상선을 타고 우주로 도망가버렸다. 이 시기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던 페잔 자치령 출신의 또래 보리스 코네프와 종종 만나서 친분[1]을 쌓았다. 또한 떠돌아다니는 무역상인 아버지와 함께 우주선에 틀혀박혀 지내는게 많아 각종 서적을 읽었고 이때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양 타이롱은 아들에게 역사말고 돈과 미술품에 더 관심을 보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이곤 했지만,[2] 나중에 양 웬리가 하이네센 기념대학 역사학과에 지원해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자[3]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주선의 핵융합로 사고로 숨을 거두게 되었고 역사학도를 꿈꾸던 양 웬리의 인생이 180도 꼬이기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아버지가 남긴 유산 대부분이 빈껍데기였던 것. 거액을 투자해서 수집했다는 미술품은 대부분 1디나르의 가치도 없는 모조품[4]이었고, 회사마저도 자금을 얻기 위해 담보로 잡아놓은 지라 수중에 돈 몇 푼없는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중에 엘 파실의 영웅이 되자 찾아와 친한 척 하는 먼 친척을 상대하면서 '그 때 학자금만 대주셨어도 군인이 되지 않았을텐데.'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만일 그랬으면 제국군에게는 '''만세!''' 였겠지만.[5]
자유행성동맹은하제국과 150년이 넘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에, 그에 수반되는 막대한 군사비 지출은 국가 예산에 큰 부담이 되어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과학 방면의 예산은 꾸준히 삭감되었고, 따라서 장학금을 받으며 역사공부를 하기는 어려웠다. 역사 공부를 공짜로 할 법을 찾고 있던 양에게 국방군 사관학교 전쟁사연구과가 눈에 들어왔고, 마감 직전에 간신히 원서를 제출하고 수석에서 아득히 먼 성적이지만 입학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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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사관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가 모아둔 '''쓰레기'''들을 대부분 버리고 일부는 임대창고에 보관한 뒤 사관학교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전쟁사 편찬실의 연구원을 목표로 했기에 전쟁사나 역사 같은 흥미를 느끼는 과목에만 집중한 결과 사관학교에서는 별로 대단하지 않은 성적의 학생이었고 특히 사격, 전투정(기) 조종, 기관 공학 등의 과목은 낙제점에 가까운 성적[6]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러나 모의 전술 시험에서 학년 수석인 말콤 와이드본을 박살내서 주위를 놀라게 했으며[7] 이것이 관계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얻어, 2학년 끝 무렵 다니던 전쟁사연구과가 폐지될 때 경쟁률이 센 전략연구과에 양 웬리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입하게 되었다. 랍이랑 같이 전사연구과 폐지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어쨌든 이후의 사관학교 성적은 '간신히 낙제를 면할 정도'였다고 하며[8] 특히나 몸을 직접 움직이는 과목과 기술 분야 대부분에서 낙제를 아슬아슬하게 면하는 점수를 얻었던 것이 작중에 언급된다. 사문회에 앞서 공개된 그의 사관학교 시절 성적은 전쟁사 98점, 전략론 개요 94점, 전술분석연습 92점, 전투정 조종 실습과 기계공학연습 59점, 사격실기 58점이었다. 55점 아래가 낙제점인 걸 보면, 본인이 흥미가 없는 과목은 간신히 낙제만 면할 정도로 성적을 받았다.
부실한 실기와 기술분야 점수에도 불구하고, 전략 전술 및 역사 과목에서 최상위권 점수를 받아 4808명 중 1909등이라는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여담으로 사관학교 시절, 혹한기 훈련 도중 낙오되어 얼어죽을 뻔했다고 한다.(외전 율리안의 일기에서 나온다.) 당시 책임자인 교관이 부사관 출신으로 대위까지 오른 장교인데, 곧 퇴역을 앞두고 있었다. 헌데, 학생이 사고로 죽으면 퇴역연금이 박탈되기에 이 장교가 열심히 찾아내 기어코 양 웬리를 구해냈다고 한다. 율리안은 이 이야기를 회상하며, 자신의 연금 문제를 걱정한 한 교관이 역사를 바꾸었다고 썼지만 알렉스 카젤느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양이 얼어 죽을 리가 있냐! 동면했다가 봄이 되면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오겠지."[9]

어쨌든 그다지 특출난 성적은 아니었으므로 평범한 소위로 임관하면서, '''때려치우고 싶어 죽을 지경인 군바리 인생이 시작된다.'''

3. 군인



3.1. 위관



3.1.1. 소위


사관학교를 졸업한 양 웬리 소위의 최초 근무지는 통합작전본부 기록통제실이었다. 군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양 웬리 입장에서는 과거 역사 기록들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었던 관계로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다만 기록통제실 근무가 안 맞은 건지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에게는 역사 기록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고는 데스크 업무도 못하는 꼴통으로 평가되었다.

3.1.2.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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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 졸업자에 대한 우대 정책에 따라 1년 후 21세의 나이로 중위로 승진하면서 전선으로 배치되었다. 주둔지는 엘 파실 주둔함대의 참모, 여기서부터 양 웬리의 군 생활이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양 웬리 본인은 그냥저냥 살아가며 대충 퇴역이나 하고 싶었으나 주둔함대 패퇴 및 도주로 제국군의 위협에 노출된 엘 파실 항성계의 민간인들을 무사히 탈출시켜 두각을 나타냈다.[10] 훗날 그의 부관이자 배우자가 되는 소녀였던 프레데리카 그린힐과 만난 것도 이 때다.
'''분명 그것은 한 사람의 젊은 영웅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위대한 영웅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었지만…'''

3.1.3. 대위


동맹군은 민간인 탈출작전을 성공시킨 젊은 영웅의 탄생을 찬양하며 우주력 788년 9월 19일 10시 25분에 대위로 승진하고, 같은 날 16시 30분에 소령으로 한 번 더 승진하는 '''사실상의 2계급 특진'''이 이뤄졌다.[11] 이는 동맹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고, 그나마도 살아있는 사람에게 2계급 특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지키기 위해 두 번에 걸쳐서 승진시키는 꼼수까지 부렸다.[12][13]
이러한 벼락승진의 뒤에는 군부의 눈가리기 술책이 숨겨져 있었다. 사령관이었던 아서 린치 소장은 이전까진 어느정도 유능한 사람이라 평가받았는데, 뭔가에 홀린 듯이 자기 부하인 양 웬리와[14] 민간인들을 내팽개치고 도망가다 제국군의 포로가 됐다. 이는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씹힐 수 있는 삽질이였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영웅담을 만들어내어[15] 사람들의 시선이 양 웬리에게 쏠리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덕분에 양 웬리는 언론 인터뷰와 각종 축하행사에 불려다니느라 식욕부진이 올 정도로 시달렸다. 물론 양 웬리가 회고한 것처럼 아무리 자신이 주빈이라도 사방에 장군 계급을 단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식장에 매일 불려다니면서 정신을 온전하게 부여잡는 것만으로도 극한노동이긴 하다. 식욕부진뿐 아닌 수면부족에도 시달렸다 하니 얼마나 이리저리 불려다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조치로 인한 양 웬리의 대위 재임 기간은 '''6시간 5분'''으로, 동맹 사상 최단 기간이다. 덕분에 소령 계급을 3년 10개월 동안 달았는데 이게 훗날 양의 일생에서 '''11개의 계급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달고 있었던 계급'''이 되었다. 게다가 소령 계급에서 머무른 기간도 정상적인 승진기간보다 아주 약간 긴 정도라고 한다.

3.2. 영관


승진 후 동맹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양 웬리. 그런데 통합작전본부에서 50년 전 전설적인 업적을 남긴 브루스 애쉬비 원수가 모살당했음을 주장하는 투서가 날아들자 마침 할 일 없던 양 웬리에게 비공식적으로 조사를 명령한다. 조사에 나선 양 웬리는 우선 과거 브루스 애쉬비 원수와 함께 싸운 730년 마피아 최후의 생존자 알프레드 로자스를 인터뷰하고 애쉬비 원수가 전사한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참여한 하급장교나 장병들에게 증언을 얻으려고 출장신청서를 냈다. 그런데 상부에서는 뜬금없이 양 웬리를 한직인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참사관으로 발령내렸고 근무 하루 만에 본의 아니게 맞닥뜨리게 된 수용소장 버나비 코스테아 대령의 횡령사건을 우연과 행운, 그리고 숨은 조력자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이때 알프레드 로자스의 딸 미리암 로자스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결국 양 웬리는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의 최단 재임 행정관 기록을 남겼다.[16] 수용소장의 횡령사건과 포로수용소의 소요사태를 수습한 것도 있고, 이 비리로 인해 변경지역의 인사 정책에 변화가 생긴 덕분이었다. 또한 이 사건에서 만난 무라이 중령과 파트리체프 대위는 제13함대 신설 이후 양의 참모장과 부참모장으로 수많은 전장에서 함께 하게 된다. 에코니아의 일이 해결된 이후에는 제8함대 작전부로 전속을 했고, 이후 줄곧 전선 함대의 참모로 근무하였다.
그 이력 중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이었던 시드니 시톨레 대장의 부관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시기에 5함대 사령관을 역임했던 드와이트 그린힐 중장의 눈에 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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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행적은 뚜렷하게 묘사되지 않지만 라자르 로보스 원수가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임명되고 드와이트 그린힐 대장이 참모장으로 부임하면서 동맹군 총사령부 작전참모로 발령났으리라 추정된다.
다만 양 웬리 본인이 군인 같지 않은 겉모습과 전혀 반전이 없는 행동을 보여 참모부 내에서도 백안시 되는 처지였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로보스 원수도 양의 실적은 인정하지만 참모들의 반응을 봐서는 싹수가 노랗다고 판단하여 푸대접했다. 애초에 함대 참모, 그것도 일에 치여서 미친듯이 바쁜 보직인 총사령부 직속 참모가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고 있는 것 자체가 진짜로 인정 못받고 있다는 증거다. 한마디로, 일을 안 준다는 것.
그러나 그린힐 대장이 양을 인정하고 계속 두둔해준 덕분에 총사령부에 붙어있을 수 있었으며, 뭔가 잘 안 풀릴 때마다 양을 찾아가 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하였고, 그 때마다 내놓은 작전이 적절하게 먹혀들면서 전공을 세웠고, 준장까지 순조롭게 승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린힐 대장도 완전히 바지사장 수준은 아니어서 양의 작전안을 받아들면 이를 자신의 기준에 맞게 적당히 편집해서 채택하는데다가 로보스 원수도 2차 수정을 한 덕분에 양의 작전안은 어딘가 계속 수정받아 결국 완벽한 승리를 놓치는 모습도 간간히 연출되었다.
일단 자기 생각에는 위에 언급한 식으로 밥값은 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총사령부 내에서 평판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실제 우주함대 총사령부에서 후방주임참모를 맡고 있던 알렉스 카젤느 준장은 '''"넌 운이 좋은 사람이라더라. 엘 파실 때도 그랬지만, 남이 수치를 겪을 때 아주 조금 더 낫게 일해서 점수를 따고 승진한다고"'''란 총사령부 내부의 평가를 여과없이 그대로 들려줬다. 사실상 대놓고 매도하는 혹평이었지만 양은 화를 내기는 커녕 자신의 실제 승진 과정이 투영된 평이라면서 오히려 감탄하는 반응을 보였다.

3.3. 장성



3.3.1.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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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 전투 중 총사령부에서는 늘 경시당하고 의견을 내놔도 거절당하기만 하니 안 그래도 없던 의욕이 더욱 없어져, '''전투가 진행되는 와중에 함교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는 걸''' 그린힐 대장한테 들켰다. 이에 양 웬리에 대한 평가가 낮아진 그린힐 대장은 양을 동맹군 총사령부에서 2함대 작전참모로 전임시키는 질책성 인사 발령을 냈다.
참고로 OVA에서는 잠을 자지 않았다. 다만 전황이 썩 좋지 않게 흘러가자 자신이 할 일이 없어졌고, 결국 책상에 다리를 올려두는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이걸 본 그린힐 대장이 한숨을 내쉰다. 사유가 어찌되었던 치열한 전투 한가운데서 그런 행동을 했음에도 겨우 좌천으로 끝난 것에 대해 그린힐 대장이 매우 인격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2함대 사령관인 파에타 중장도 양 웬리의 전공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당시 동맹 전체에 16명 밖에 안되는 20대 장성이라는 점에서 '''능력은 인정하지만 어딘가 나사가 두어 개 빠진 듯한''' 작전참모를 그리 신용하지 않았다. 당시 함대의 다른 장교와의 대화를 본다면 "사령관님께서는 (양 준장이)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음, (난 걔가)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17]
그 결과 제4차 티아마트 회전 당시에도 양 웬리의 진언을 듣지 않아서 레그니처에서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에게 발렸고, 아스타테 회전에서도 양이 제국군의 각개격파 전술을 우려해 그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였지만 역시 무시했다. 결국 동맹군은 라인하르트의 은하제국 원정부대에게 각개격파를 당해서 2개 함대가 개발살나고 2함대도 기습을 받는 와중에 기함 파트로클로스가 피격되어 파에타 중장이 중상을 입자 양이 지휘권을 인계받게 된다.
다행히 양이 미리 컴퓨터에 입력해둔 작전이 성공해 2함대는 살 수 있었고, 패배를 모르던 라인하르트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때 라인하르트가 보낸 전언이 그 유명한 '''"귀관의 용전에 경의를 표한다. 다시 싸울 날까지 건재하라."'''이다.[18]
거의 가루 수준이 된 2개 함대였지만 그나마도 잔존 함대를 추스려서 완전 전멸을 피했고, 적에게 작은 반격을 하여 적 지휘관 중 하나인 엘라흐 소장을 전사시킨 공적도 있거니와 동맹군은 참패를 어떻게든 가리기 위해서 엘 파실 때와 마찬가지로 양을 '아스타테의 영웅'이라 칭송하면서 소장으로 승진시키고 신설된 제13함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3.3.2. 소장&중장


완편 함대의 절반 수준이며[19], 본질적으로는 임시함대인 제13함대의 첫 임무는 이제르론 회랑에 위치한 은하제국이제르론 요새 공략이었다. 이는 통합작전본부장 시드니 시톨레 원수의 결정이었는데,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양은 시톨레 제독에게 "'''가능하면 이제르론을 최소한의 피해로 탈취하여 우리의 거점으로 삼아야 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시톨레 본인은 그때 당시 양 웬리의 말을 무책임하다고 평가하긴 했지만,[20] 당시 양의 지론 자체는 머리 한 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여섯 번에 걸쳐 실패만 해왔던 그 임무를 절반 규모의 함대로 하는, 언뜻 말도 안 되는 작전에 다들 회의적이었지만, 양 특유의 야바위가 빛을 발해 이제르론 요새를 '''아군 전사자를 단 한명도 내지 않고 탈취'''하여 본격적으로 그 명성을 널리 떨치기 시작한다. 기적의 양, 마술사 양도 이때 붙은 별칭. 이것이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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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Rear Admiral Yang Wen-li

To FADM, Sidney Sithole

I desire to resign my commission as Colonel in the Free Planet Alliance Fleets.

As I would not be of use in the event of war, it is certain that my continued commissioned status is of no benefit to the Free planet Alliance fleet. It is therefore respectfully requested and urged that this resignation be accepted.

I hope my request will be taken seriously and will be fully enquired. Thanking you.

Yours faithfu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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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웬리 소장이

시드니 시톨레, 원수에게

저는 자유행성동맹 제독의 임무에서 사임하고자 합니다.

저는 전시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기에, 제가 이 임무를 계속 맡고 있는 건 자유행성동맹에 무익합니다. 그러므로 정중하게 요청드리고, 말씀 올리니 이 사표가 수리되었으면 합니다.

제 요청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제대로 숙고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들어주셔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은하영웅전설 Die Neue These 9화에서 양 웬리가 제출한 예편원

양은 이제르론을 점령했으니 더이상 제국의 침공은 없을 거고 이를 빌미로 군생활 때려치우고자 정식으로 예편원을 제출하였으나 시톨레 원수는 양의 면전에서 이를 기각했고 역으로 중장 계급을 달아줬다. 이로서 '''때려치우고 싶은 군바리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게 된다'''.[23]
이제르론 점령에 기세를 탄 동맹의 제국령 침공작전 초반에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지만[24], 암릿처 회전에서는 동맹 역사상 최악의 패전 가운데서도 현명하게 대처하여 마지막까지 제국군 주력의 발을 묶었다. 이로 인해 동맹군의 남은 전력이 무사히 탈출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참전한 함대들이 대부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데 반해 13함대는 70%가 생환하는 기적을 보여 다시 주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 OVA 기준으로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주전파와 반전파의 대립 속에서 본인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었지만 주전파가 그를 이용해먹으려는 통에 반전파는 그를 주전파와 한패 쯤으로 취급한것. 덕분에 반전파 한명을 우국기사단으로부터 보호하고 왔어도 오히려 그들과 한패냐는 소리나 들어야 했다. 물론 본인은 정치적인 면을 안보이기 위해 중립이었지 실질적으로는 반전에 가깝긴 했다.

3.3.3. 대장


암릿처 회전의 공훈으로 대장으로 승진한다. 20대에 대장을 단 경우는 있었지만 1년 안에 장성 3계급 승진(준장→소장→중장→대장)이 결정된 것은 기나긴 동맹의 역사에서도 처음이었을 정도로 이례적인 경우. 같은 해 이제르론 요새 사령관 겸 이제르론 주둔함대 사령관 겸 동맹군 최고참모회의 의원으로 부임했다.
구국군사회의 쿠데타당시, 구국군사회의는 평소 중앙 정계로부터 무시와 견제를 받아온 양 웬리가 자신들에게 동조해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양은 그들하곤 손을 잡지 않았으며, 직접 군을 움직여 군사회의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때 부관인 프레데리카 그린힐 대위의 위치가 쿠데타 지휘자였던 사열부장 드와이트 그린힐 대장의 딸이란 것 때문에 약간 애매해지자, 담담한 말투로 "그런 우수한 부관은 찾기 어렵다"며 그녀를 유임할 것을 결정하기도 했다.[25]
양 함대도리아 성역 회전에서의 승리와 반란 행성 해방, 아르테미스의 목걸이 파괴와 하이네센 치안 회복에 이르기까지 쿠데타 진압의 최전선에 서 있었으므로, 사령관인 양은 당시 자취를 감춘 욥 트뤼니히트와 그 일파를 대신하여 정권을 장악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이네센이 안정되자 병력을 수습하여 임지인 이제르론으로 돌아갔다.
이런 존경받을 만한 처신에 대한 보답인지 트뤼니히트 일파는 네그로폰테 국방위원장을 앞세워 양을 사문회에 출두시키는 '''배은망덕'''한 행동을 했는데...... 같이 하이네센에 갔던 프레데리카 그린힐 대위 및 루이 마솅고 준위와 떨어져 밀실에 감금, 격리되는 대접을 받는다. 처음에는 꼬치꼬치 따져대는 사문의원들을 신사적으로 대했으나 나중에는 이대로 냅두면 끝이 없겠다는 생각에 신랄한 독설로 반격을 가해 사문회를 개판으로 만든다. 짜증나서 '아 ㅅㅂ 진짜 사표라도 낼까?'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고 실제로 예편원까지 써 뒀는데, 때마침 켐프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끌고서 이제르론에 쳐들어오는 바람에 사문회는 취소되고 이제르론으로 급거 귀환을 하게 된다.
사령관이 휘하병력과 떨어져서 수도에 있었으며, 한 달이나 지나서 소식을 안 후 긁어모은 소수의 구원함대로 구원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르론 주둔함대와의 연계로 켐프 함대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자 켐프는 요새를 요새에 부딪히게 할 계략을 겨우 실행에 옮겼다. 양은 이 사태를 제일 우려했었고, 라인하르트는 이 작전을 썼으면 벌써 끝날 것 아니냐는 발언을 했었다.하여간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던 양은 요새 엔진의 일부만 파괴하는 전술을 써서 요새를 스핀 상태로 만들었고, 스핀상태의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는 제국군 잔존함대와 격돌, 치명상을 입은 상황에서 토르 하머까지 맞아 대폭발을 일으키고 만다.
이렇게 대승을 했지만 양의 만류를 듣지 않고 제멋대로 추격에 나섰던 동맹군 일부 함대가 구원군으로 온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 함대의 화망에 걸려 전멸당하는 옥의 티를 만들어 버렸다.

3.3.4. 원수


우주력 799년,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중 페잔 방면 침공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한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로이엔탈 함대의 맹공을 받아 여러 가지로 한 방 먹었지만 반격도 때려주는 등 용호상박의 공방전을 벌이다가, 페잔이 점령되었다는 소식 및 최고군사위원회에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책임은 우리가 진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것이 최초로 '''재량권'''을 인정받은 때였다. 원님 행차 후 나팔 불기를 하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며 이제르론 요새를 포기하고 란테마리오 성역으로 가서 패주하고 있는 아군을 구한 다음, 하이네센으로 귀환하여 2월 13일 32세의 나이로 '''원수'''로 승진. 이것은 과거에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전사하여 추서 된 36세의 브루스 애쉬비보다도 이른, 동맹군 사상 최연소의 원수 승진 기록이었다.
이 때 도망간 최고평의회 의장 트뤼니히트를 대신하여 정권을 이끌고 있던 각성한 월터 아일랜즈 국방위원장 로부터 자유로운 전략 전술 재량을 보장받고 함대를 재편성하여 출동하였다. 이때 과감하게 동맹의 수도 하이네센이 있는 바라트 성계의 방어까지 포기한 다음, 동맹의 각 보급기지를 자유자재로 누비며 고정된 근거지를 만들지 않고 정규군의 정식 함대로 게릴라전을 하는 획기적인 전술을 구사하며 수송선단 습격전을 통해 어그로를 끌고 라이가르 성역 회전에서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헬무트 렌넨캄프, 타실리 성역 회전에서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등 내로라하는 제국군 장수들을 순회관광시켰다.
이렇게 양이 1개 함대로 제국 함대 몇 개를 박살내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라인하르트는 직접 전선에 나서게 된다. 라인하르트는 라인하르트 직속함대를 포함한 전 함대가 우르바시를 떠나 동맹령 각지를 점령할 때 뛰쳐나온 양 함대를 라인하르트 직속함대가 상대하는 사이 제국군이 분진합격 전술로 양 함대를 포위섬멸할 계획을 세웠다. 어쨌든 이는 양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였으므로, 양은 라인하르트와 결전에 임하게 된다.
결전에 임하기 직전, 양은 드디어 부관 프레데리카 그린힐에게 프러포즈하게된다. 본래 이런 일에 서툴렀던 만큼 양은 제대로 말조차 못했지만 결국 프레데리카의 승낙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벌어진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양은 중간에 난입한 뮐러 함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함대전 끝에 거의 승기를 굳히는 단계까지 갔으나, 자유행성동맹의 본성인 바라트 성계볼프강 미터마이어,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지휘 하의 제국군에게 포위되어 정전 협정이 맺어지게 된다.
이 때 양 함대는 수도성계의 피해를 무시하고 전투를 계속하면 라인하르트를 우주의 먼지로 만들 수 있었다. 보통 양 웬리는 전황을 완전히 우세하도록 이끌고 나면 통신으로 적함에 항복권고나 도주권고를 먼저 보냈지만 이번엔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사전에 아일랜즈 위원장에게 밝힌 대로, 이 전투는 라인하르트 사살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인하르트가 전사하는 쪽이 자신의 안전에 가장 좋은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양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정전 협정에 따랐다. '''당시 양 함대의 주력은 라인하르트의 기함 브륀힐트를 주포 사정권 안에 2번이나 포착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기존의 호위함대를 나이트하르트 뮐러가 도착하기도 전에 박살 낸 상태로, 두 번째는 뮐러의 함대도 상당 부분 개발살 내고 난 뒤...''' 무조건적인 항복 소식을 접한 라인하르트 본인이 더 어이없어할 정도.[26]
그 뒤에 역사상 단 한번뿐인 양과 라인하르트 간의 회담이 열렸다. 이 때 양의 군인 같지 않은 모습을 보고 경악한 제국군 제독들이 꽤 많았다. 여기서 양은 라인하르트에게 '''제국 원수'''자리를 권유받았지만, '''자신에게 안 맞는 물을 마시면 체한다'''며 사양했다. 앞으로의 거취를 묻는 라인하르트에게 "퇴역해서 연금이나 받아먹고 살래염('ㅅ')"이라 답하자 라인하르트는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결코 양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라도 그가 돌아오면 기꺼이 받아줄 생각이었으며, 이는 오베르슈타인이나 렌넨캄프를 제외한 다른 제국군 제독들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라인하르트처럼 양 웬리에 대해 불패의 적장, 먼치킨이지만 증오하거나 미워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졌다. 양에게도 함대전에서 외통수를 맞았던 비텐펠트도 적군으로 만나면 으르렁이지만 아군으로 만난다면야 그럭저럭이라고 생각했다. 되려 렌넨캄프가 폭발하여 양을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제거하려다가 역습당해 절망에 빠져 자결할 때도, 오베르슈타인이나 렌넨캄프 휘하 인사들을 제외한 제국군 장성들은 양의 정당방어로 이해하거나 아예 이 기회에 동맹과 양의 연결고리를 끊고 양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자고 뜻을 밝혔을 정도이다.
그리고 적인 제국에서도 양 웬리는 당연하지만 괴물로 여겨져 그에 대하여 엄청나게 연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페잔을 통하여 카더라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동맹이 항복한 다음에 드러난 것은 보면 수십권에 달하는 책이 출간됐고 양에 대하여 사생활 부분까지 상세하게 조사하며 제국 전략 연구가들이 엄청나게 연구하고 있었다. 물론 동맹도 마찬가지라서 양에 대한 책과 다큐가 엄청나게 나오는 등[27] 그의 전략을 미치도록 연구 분석하고 있었다.

3.4. 퇴역, 그리고 복귀


동맹이 제국에 패배한 이후, 라인하르트의 제국 원수직을 사양한 뒤 군을 은퇴하고 프레데리카와 혼인한 양은 꿈에 그리던 연금 생활을 느긋하게 즐기고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국가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연금이 팍 깎였습니다를 시작으로 금새 불운이 닥친다. '''"양 웬리 같은 녀석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고 오해한 제국군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와 제국의 눈치만 보는 동맹 정부에 의해 감시와 견제를 받게 된다.
결국 동맹정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자, 양은 이전의 부하들과 함께 하이네센을 탈출한다. 이 사건 때문에 '''12년간 꼬박꼬박 납부한 연금은 2개월치 밖에 못 받았다.''' 그 2개월치 받은것도 레벨로 의장의 예산 긴축 정책으로 다 받지도 못하였다. 안습.... 22.5%가 깎여나갔다고.. 레벨로 의장 본인부터가 자진해서 봉급을 깎아버려서[28] 뭐라고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원래 계획하고 있었던 시기인 '최소 몇년 후'보다 너무 빨랐기 때문에 양은 별다른 대책이 세워져 있지 않았고, 제국과 동맹의 추이를 살펴보다가 결국 자금 문제 때문에 엘 파실 독립정부에 협력한다. 그리고 자신의 함대를 '엘 파실 혁명군'으로 재조직하였다.
이를 통해 다시 재조직된 양의 군대는 이제르론 요새를 '''빌려 준 물건 돌려받듯이 탈취하고''' 라인하르트와의 결전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3.5. 최후


이후 양은 회랑 전투에서 제국군의 양면에 걸친 공격과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슈타인메츠파렌하이트 제독을 전사시키는 등 크게 선전한다. 하지만 이때 함대운용을 맡는 에드윈 피셔가 전사해서 향후 전술을 펼치는 데 큰 애로사항을 느꼈는데 마침 지병이 도진 라인하르트는 일단 한 발 물러서 양과의 대화를 시도하게 된다. 양 역시 바라는 바였기에 회담 요구에 응했다.
하지만 순양함 레다 II호를 타고 회담장으로 가던 도중, 지구교의 사주를 받은 앤드류 포크가 지휘하는 무장상선의 습격을 받는다. 이때 때마침 나타난 제국군 구축함 2척이 포크를 공격하여 양을 구출하지만 사실 이 제국군이야말로 지구교의 진짜 함정이었다.
회담장으로 가는 것 때문에 백병전에 대한 준비가 없던 레다 II호에서는 우호적인 척 하며 선내에 진입한 제국군 군복을 입은 지구교도들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프란체스크 롬스키 주석을 비롯한 엘 파실 독립정부의 중진들이 살해당했고, 적을 피해 선내를 헤매다가 어느 이름도 없는 지구교도[29]가 쏜 블래스터에 왼쪽 허벅지의 '''동맥신경다발'''을 관통당했다. 양은 신속히 스카프로 지혈을 시도했지만 끝내 피는 멎지 않았다.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다고 그렇게 빨리 사망할 수 있는가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현재도 이 부위를 다칠 경우 빨리 응급조치를 취하고 지혈한 후 제대로 된 병원에 보내지 않으면 확실하게 죽는다. 게다가 혼자선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시피했고, 동맥이 파열된 상태라면 스스로는 지혈을 확실하게 하기도 곤란하다.[30]
'''결국 마술사는 돌아오지 못하고...'''

'''"이런 이런, 기적의 양이 피투성이 양이 되어버렸어... 미안, 프레데리카. 미안, 율리안. 미안, 모두들...."'''

[image]
'''우주력 800년 6월 1일 새벽 2시 55분, 양 웬리의 시간은 서른 세 살로 정지했다.'''
양을 구출하기 위해 전함 율리시스를 타고 달려온 율리안 민츠가 그를 발견하기 '''겨우 10분 전'''이었다.
사망 당시의 계급 및 직위는 '舊(전) 자유행성동맹군 원수,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 사령관 및 요새 사령관', 그리고 '엘 파실 혁명군 총사령관'. 향년 33세.
참고로 오스카 폰 로이엔탈과 동년 출생하여 동년 사망했고, 수많은 전투에서 서로 포화를 나누었으나 전투중 화면상에서나 직접 육안으로나 대화를 하거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여담으로 OVA의 성우 토미야마 케이는 양이 사망하는 장면을 연기하고 얼마 뒤에 암으로 별세하였다.
[image]
원작과 OVA에서 프레데리카 그린힐이 '그이는 이렇게 죽어서는 안되는데...'하며 애통해 하면서 상상한 모습이다. 노인이 된 양 웬리가 뜰에서 어린 손주와 놀아주다가 잠자듯이 조용히 숨을 거두는 묘사.
참고로 양을 암살한 지구교도가 정확히 누구인지, 이름이 뭔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원작에서도 율리안이 양의 죽음에 슬퍼하다가 나타난 지구교도들을 토마호크로 도륙내고, 몇몇 잡힌 자들은 어떤 자백도 하지 않고 전부 처형or자살했으며 제국군 구축함으로 위장한 배를 타고 달아나는 데 성공한 다른 지구교도들은 나중에 진짜 제국군에게 걸려 도주하다가 격침되어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4. 사후


그의 사망 이후, 양 웬리와 함께 주요 인사들을 잃은 엘 파실 독립정부는 해체되었다. 하지만 구 '양 웬리 함대'의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구성된다.
다만 구 '양 함대'의 주요 인물들의 밀실 야합에 의해 등 떠밀리다시피 아내이자 부관이었던 프레데리카 그린힐이 정부수반, 갓 스물의 중위 율리안 민츠이제르론 혁명군 사령관이 되어 후세에 일부의 역사학자들은 이 공화정부의 성격을 가리켜 '''고아와 미망인의 연합정권'''라고 한다나.
이제르론 공화정부에서는 양 웬리의 사진을 자유행성동맹 건국의 아버지인 알레 하이네센과 함께 걸어두었다. 물론 집집마다 걸어 놓은 것은 아니고 총회의장, 중앙위원회, 주석 집무실, 혁명군 사령부에만 걸어 놓고 나머지 장소에서는 전부 금지였지만, 이제르론 공화정부의 정통성이 자유행성동맹과 양 웬리에게서 계승되어 온 것임을 보였다.
자유행성동맹이 붕괴되고 제국의 직할령(노이에란트)이 되어버리자 저항 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그 저항세력의 이름조차 양 웬리의 이름을 딴 조직이 부지기수였다. 저항 세력의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양 웬리의 휘하의 함대와 이제르론 요새는 제국에 대항하는 '마지막 보루'이므로 설사 관련이 없다 해도 양 웬리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와의 연결을 암시하는 것이 유효한 프로파간다였을 것이다. 이제르론 군이 제국군에 대해 승리했을 때 그 소식을 들은 저항세력들은 "양 웬리 만세!!"를 외쳤으며, 제국에 대항하는 시위 활동에서도 "양 웬리 장군 만세!"가 반드시 터져 나왔다고 한다. 저승에서 본인이 들었다면 쓴웃음을 지었겠지만... [31]
한편 제국 측 또한 양 웬리의 기이할 정도의 능력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확실히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제국 수뇌부가 양 웬리의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했을 정도였다.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가 나 이외의 사람에게 죽었다는 게 말이나 되냐!'''라는 식으로 격분했고 비텐펠트는 '이것도 혹시 양의 계획 아닐까?'하고 양이 그런 허접한 수에 죽었다는 데에 대해 의문을 품었으며 [32] 결국 제국 측에서 양 웬리와 그나마 친분이 있던 뮐러를 단장으로 한 '''조문단'''을 정식으로 파견해 경의를 표하기도 했고 동시에 자신들의 복수를 스스로 할 기회를 지구교 때문에 날려먹었다며 분하게 여기기도 했다.
사후 그의 시신은 나중에 하이네센으로 옮겨져 묻힐 때까지 보존 처리되었다.
그가 생전에 남긴 공적이 너무 크다 보니 후세 사람들은 양 웬리가 동맹군 최고사령관 또는 총사령관, 좀 자세하게 말하면 통합작전본부장과 우주함대 총사령관을 역임하고, 최고사령관의 칭호를 받았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는 '이제르론 요새 사령관 겸 이제르론 주둔 함대 사령관'으로, 동맹군 최고위직인 동맹군 3대 장관에 오른 적은 없었고 국가원수가 겸임하는 동맹군 최고사령관에 오른 적은 더더욱 없다. [33][34]

5. 승진속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라이벌 겸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2개의 축중 하나인 중요한 인물이므로 당연히 승진속도에 대해서도 양자간 비교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양대 인물의 소속국가와 상황등 그냥 비교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보통 이런 비교에서는 군대 계급의 승진속도를 따지는 일이 많다.
일단 객관적인 기간면에서는 라인하르트의 압승인데, 16세에 소위로 임관해서 20세에 원수까지 달았으므로 걸린 시간은 4년이다.[35] 하지만 양 웬리도 만만치 않은데 사관학교를 졸업해서 소위로 임관한지 13년만에 역시 원수가 된다. 자유행성동맹군 역사상 최연소 원수인건 덤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능력 + 황제의 총애를 받는 누나 + 황제의 각별한 관심 덕에 워낙 상식을 초월하는 승진속도를 보여서 상대적으로 느려보이는 것이지, 양 웬리의 승진속도도 거의 치트키 수준이다. 애초에 30세에 제독이 되는 것도 모자라서 33세에 자유행성동맹군 최연소 원수가 된 것만 봐도 흐더더... 당장 그가 최고 사령관으로 있던 양 웬리 함대만 해도, 더스티 아텐보로를 제외하면 양보다 젊은 장성은 없다.[36]
게다가, 일부 구간에 한해서는 양 웬리가 라인하르트보다 더 빠른 승진속도를 자랑했다. 첫번째는 엘 파실 탈출작전의 공로로 인해 중위에서 소령까지 약 6시간에 걸쳐 사실상 2계급 특진을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스타테 회전에서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제국령 침공작전암릿처 회전을 거치면서 1년 안에 준장에서 대장이 되는 3계급 상승을 달성한 것이다. 이걸 보면 양 웬리도 자신이 주도해서 공을 세울 기회가 있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건 양이 활개치도록 상황이 조성되었기 때문인 것도 있다(...).
그렇다면, 라인하르트보다 승진속도가 9년이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장에서 원수로 올라가는 기간이 3년이었지만, 그건 공을 못세워서가 아니라 통합작전본부장과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라는 상관들이 다 대장이라서 하위직책에 있는 사람이 원수 직함을 달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과 함께 승진을 못하는 대신 훈장이라도 줘서 대강 때웠으므로 어느 정도 합당한 사유가 있다. 따라서 승진속도에 지장을 준 것은 바로 '''영관급에서 승진속도가 극단적으로 느려졌기 때문이다.''' 양 웬리의 군경력상 가장 긴 3년 10개월간 소령계급을 단 것을 비롯해서 영관급에서 잡아먹은 기간은 6년이다. 물론 일반적인 승진속도와 비교하면 매우 빠른 것이지만, 위관급에서의 승진속도와 장관급에서의 승진속도를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느리다. 이에 비해서 라인하르트는 영관급에서 체류한 기간이 고작 1년... 이런 이유로 인해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직할부대를 이끌고 전략적인 면에서 활약을 펼칠때, 양 웬리는 지휘권이 없는 일개 영관장교로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양 웬리의 잘못은 거의 없고, 자유행성동맹군의 인사배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주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유행성동맹군의 입장에서는 계급은 낮지만 이미 영웅이 된 사람을 후방의 한직으로 돌리기에는 문제가 있으며, 그렇다고 구축함이나 순항함의 함장을 시키기에는 미덥지 않을 뿐 아니라 전사할 확률이 높으므로 죽을 확률은 적으나 전방의 주요 직책인 함대 참모나 우주함대 총사령부 직속 참모에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하고나니 양 웬리의 타인 설득 능력 부족 + 상관들의 저평가가 시너지를 일으켜서 '''무늬만 참모'''가 되는 악재를 만난다.[37]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함대 참모나 총사령부 참모는 24시간 내내 바빠서 쉬지를 못하는데, 혼자서 한량놀음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쓸모없는 작자로 낙인찍혀서 일감도 안주는 상태라는 것이다. 원래 참모라는 직책은 신임을 받으면 말콤 와이드본처럼 빠른 출세가 보장됨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계급 이상의 능력과 지휘권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신임을 받지 못하면 병사 1명도 지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방관자 노릇이나 하다가 전출당하는 양날의 검 같은 직책이다. 그러므로 시드니 시톨레드와이트 그린힐같이 양 웬리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영관급을 벗어나는 기간이 더 늘거나 아예 거기서 군경력이 종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동맹 자체에서 영웅을 경원시하는 풍토가 있음도 눈여겨봐야 하는데 제국은 초대군주 루돌프 폰 골덴바움전쟁영웅인것 때문인지 전쟁영웅을 천시하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문벌귀족들은 군 경력을 쌓는게 가장 빠른 출세길이었고 이는 평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라인하르트가 세력을 빨리 키울수 있던것도 그 자신 본인이 전쟁영웅이었고 그래서 승진으로 계급이 빨리 올라갔으며 휘하 부하들 역시도 비슷했기 때문 반면 동맹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인지 전쟁영웅을 경원시했다. 가령 다곤 성역 회전의 영웅 링 파오,유수프 토패롤의 경우 다곤 성역 회전 이후 경원시되었고 730년 마피아중 하나이자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의 영웅인 브루스 애쉬비의 경우 링 파오,유수프 토페롤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가 동맹 정부로부터 두려움을 샀고 양 웬리도 전쟁영웅이라는 이유로 민중들에게는 환대를, 정부로부터는 두려움을 샀다. 조안 레벨로에게서는 아예 대놓고 "당신이 루돌프처럼 되면 어떻게 하냐" 라는 말을 들었으며[38]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진압에 큰 공을 세웠음에도 훈장만 받았다. 더군다나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이후 돈 유언비어 중에도 "양 웬리 원수는 엘 파실 독립정부로 갔고 곧 거기서 정부 수반이 되어 제국과 투쟁할것이다." 라는 내용이 있었고 엘 파실 독립정부에서도 전쟁영웅이라고 환대받았지만 반대로 그 점 때문에 독립정부를 집어삼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샀다. 오랫동안 제국과 동맹은 전쟁을 벌였지만 제국에 비해 동맹은 전쟁영웅을 경원시했고 그랬기에 양 웬리의 승진에도 영향이 간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또 양 웬리의 영웅 이미지 자체부터가 동맹정부와 동맹군에서 급조해낸 이미지임을 감안해야 한다. 엘 파실 탈출작전은 분명 대단한 공훈임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서 린치의 추태를 감추기 위함이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여기에 평소 양 웬리의 이미지는 그저그래서 엘 파실 탈출작전 후 양 웬리가 유명인사가 되었을때 그를 뒷담화로 까던 이들이 "소령으로 끝날 놈이 너무 빨리 소령이 되었으니 인생 좆망" 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문제는 이것이 '''영 틀린 말은 아니라는 얘기.''' 위에 나온 동맹군에서의 양 웬리의 저평가를 다시 말하자면 양 웬리가 능력이 없던건 아니나 그 재능을 굳이 드러낼 생각이 없었기에 한량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나마 시드니 시톨레, 드와이트 그린힐 등 양 웬리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당한 군공을 세울 기회가 생겼기에 승진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눈에 확 띄는 군공을 세울 기회는 없었다. 즉 남들이 "타이밍 잘 잡은 주제에..." 를 상쇄할 무언가가 없던 것 여기에 라인하르트의 경우 소함대긴 하지만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나름대로의 함대 지휘를 할 수 있었기에 자신의 재능을 그런대로 살릴 기회가 많았는데 양 웬리는 애당초 참모였다. 첫 함대 지휘를 맡은 것도 아스타테 회전에서였으며 그나마도 본래 사령관이었던 파에타의 중상으로 임시로 맡았다. 즉 라인하르트가 지휘를 처음 해본건 우주력 794년 양 웬리는 796년으로 2년이나 차이가 난다. 반대로 아스타테 회전 이후부터는 급작스레 승진속도가 빨라지는데 이는 제국령 침공작전의 실패로 동맹군의 인재들이 대거 사망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분함대건 함대건 지휘를 맡기에는 에드윈 피셔 같은 인물이 없어서 에로사항이 꽃핀다. 양 함대에서의 양은 그저 전술지시만 내려주는 기계에 불과했고 실상 함대운용은 다 피셔가 했기 때문
결국 급조된 이미지인 만큼 그 이미지 덕에 특정 구간에서는 승진이 빨랐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그 후에도 승진속도가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었고 그 이미지빨 승진속도를 유지하려고 기를 썼다면 모를까 자신의 이미지가 급조된 것임을 잘 아는데다가 딱히 공적 세우는 데 혈안이 된 것도 아닌 양 웬리가 그것에 무신경하니 다시 승진속도는 급하락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처럼 본인이 함대지휘를 맡아 큰 공훈을 세운다면 모르겠으나 참모직 전전+한량이니 승진속도가 라인하르트보다 늦을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양 웬리와는 달리 라인하르트는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제3차 티아마트 회전,제4차 티아마트 회전 등에서 굵직한 공훈을 세웠으니 승진 속도가 더 벌어지는건 당연지사 양 웬리도 결국 아스타테 회전,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암릿처 회전에서 이기고서야 각각 소장, 중장, 대장을 딸 수 있었으며 그나마도 그 후에도 도리아 성역 회전,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등 승진하고도 남을 공훈을 세웠는데도 진급이 늦었다.
총평을 하면 라인하르트에 비해 양 웬리가 승진이 늦은건 후광 없음+동맹군 내부의 구조적 문제+동맹 자체의 영웅 경원시 풍토+이미지빨 특정구간의 승진+그런데 그 이미지 유지 못함+귀차니즘+공훈을 세울 기회 부족등 여러 복합적인 일이 얽혀 벌어진 일이다. 라인하르트와 비교하면 마이너스 요소가 많았던 탓[39]


[1] 서로 친구라고 말하기 보다는 못된 장난질에 협력하던 공범 정도로 회고한다.[2] 본인은 돈이 많으면 남에게 꿇리지 않고 살 수 있고 미술품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고 말했다.[3] 이 때 양 웬리의 나이는 15세[4] 명나라 만력제 시기 만들어진 만력적회만이 유일한 진품이었는데, 집안에 보관하고 있다가 훗날 우국기사단이 행패를 부릴때 내던진 가옥파괴탄으로 인해 깨졌다. 양 웬리의 반응은 "젠장, 아버지가 남겨준 미술품 중 유일한 진품이었는데...".[5] 양 웬리 본인은 뒷날 어쩌면 이게 다행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했다. 본인이 역사를 좋아하는것과는 별개로 사실 본인의 역사와 관련된 능력은 아주 평범했고 그랬다면 그냥 군에 징병되어 그렇고 그런 군인으로 살다가 더 빨리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6]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기준 전부 C[7] 자존심이 상한 와이드본은 정면 대결을 피하고 도망만 다녔다면서(와이드본의 보급선을 길게 잡아늘린 후에 끊어버리고, 이후로는 정면도전에 응하지 않고 버티면서 보급품을 고갈시켜버리는 작전으로 이겼다.) 길길이 날뛰었지만 당사자인 양은 부족한 실기 점수를 만회해서 다행 정도로만 생각했다. 참고로 당시 나이 17세[8] 어느 나라건 사관학교는 교과목 중 낙제점이 하나라도 나오면 강제 퇴교시킨다[9]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3권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 김완, 이타카(2011), p.131[10] 게다가 카젤느는 그가 퇴역 연금을 바라는걸 알고 있었기에 엘 파실 전투 후에 사표를 쓰고 싶어했던 양 웬리에게 "한 5년 이상은 근무해야 퇴직금 나올텐데 어떻게 할래?" 라는 식으로 반 협박을 했다.(나머지 이유는 지금 퇴직하면 괜한 곳에 불려다닐 것이기에 차라리 군에 남아 있는것이 낫다는 것) 뭐, 엘 파실 전투의 탈출작전이 워낙 회자되어서 어차피 이곳저곳에 불려다니는 것은 피하지 못했지만...[11] 이는 외전 나선미궁 기준이고, 원작 1권에선 6월 12일 9시 대위 승진, 오후 1시 소령으로 승진했다.[12] 때문에 명백히 대위 계급을 달고 있었는데 다들 소령이라 불렀다(...) 심지어 같은 대위계급을 달고 있는 굿윈 대위는(이후 양 웬리에게 들어올 메스컴 요청 등을 책임질 일종의 매니저 역할이었다.) 양 웬리에게 경례도 하고 소령이라고 불렀다.[13] 당시 양 웬리는 21세로 친구 장 로베르 랍이 이로서 우리들 중 너가 제일 출세했다는 말을 한 것을 보면 그 말콤 와이드본마저 아직 소령이 되지는 못했다는 말이 된다. 하기사 양의 경우에는 특수사정이 있었고 은영전 초고속 승진의 라인하르트마저 1년에 1계급 수준이었으니 아무리 와이드본이 대단해도 대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14] 린치 소장은 주둔 동맹군 모두를 데리고 도망간게 아니라 측근을 포함한 일부 군인만을 대동했다. 버려진 군인도 상당수.[15] 물론 없는 영웅담을 만든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꼈을 거품을 제거하고 봐도 지휘부가 싹 도망간 상황에서 남은 병사들끼리 민간인 3백만명을 무사히 대피시키리란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16] 이 때문에 양이 에코니아를 떠나는 파트에서 양의 참사관 재임기간도 역대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의 최단 재임 기록이며 대위 기록보다는 길지만 그쪽과 비교하는건 오히려 이상한 거라고 서술되어있다.[17] 참고로 서울문화사판은 나이 계산을 한국식으로 해서 29세를 30세로 표기해놓곤, 20대 장성이란 원작 설명을 그대로 썼다.[18] 라인하르트는 제3차 티아마트 회전에서도 완벽하게 역전된 전황에서도 붕괴된 11함대를 침착하게 추스리고 후퇴시킨 알렉산드르 뷰코크우란푸를 상대로 전문을 보내려 했다가, 과거 브루스 애쉬비 원수가 전사한 것에 대해 조의를 표해서 승진이 막힌 과거 하우저 폰 슈타이어마르크 상급대장과 같은 처지가 될까 우려하여 포기했다.[19] 6,400척에 70만.[20] 그도 그럴게 본인이 지휘한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의 모습을 보면 시톨레 본인도 이제르론을 함락시켜도 최소한의 피해로 함락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길 만하다.[21] 상상해보자면 방금 전 역대급 군공을 세운 사람이 갑자기 때려치겠다고 때려쳤다면 국민들이 받을 충격은 둘째치고 한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사람이 군대를 때려치우냐는 등의 이런저런 논란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등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애초 천직마냥 잘하는 직업을 때려치우겠다는 모습도 제3자에게는 납득가기 어려울테고[22] 그 동안 이제르론은 한번에 수십만 대군이 갈려나가면서도 점령 못했는데 양은 이걸 '''무혈입성'''으로 성공했다(...) 혈전 끝에 점령해도 당장에는 칭송들을 일인데 무혈입성이라는 미친 업적을 달성했으니... 더욱이 다루기 까다롭다는 로젠리터를 통해 성공시킨 작전이다...[23] 엘 파실 전투 이후에도 양은 군생활을 때려치우고자 했으나 그 때는 임관한 지 몇년 안 돼서 이 때 때려치워봤자 연금이 안 나와서 못했지만 이 때에는 연금이 나올 수 있는데도 못 했다. 사실 그럴만도 한게 엘 파실 전투에서야 웬만한 능력자였으면 가능했을 지 몰라도 은영전 최악의 난공불락 요새, 이제르론 요새를 먹어버렸으니 양이 예편원을 쓰고 제발 때려치우게 해 달라고 징징거려도 제대로 될 일이 아니다.[21] 또한 시톨레 역시도 양이 그만둘려는 것에 "자네의 13함대는 어쩔려는 건가?" 라고 한데서 보듯 갓 결성된 13함대의 존속, 운용 등의 문제점도 있다. 이것도 그럴만한게 다른 함대라면 몰라도 13함대는 상설함대용이 아닌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을 위해 만들어진 함대로 실패하면 그냥 냉큼 해체시켜버려도 상관없을 함대였는데 역대급 기적을 일궈내며 이제르론을 먹어버리니[22] '''당장은 해체할 수가 없게 된 것.''' 그럼 양 웬리를 예편시키고 새 함대 사령관을 앉히면 안 되겠냐 싶겠지만 이미 이런 역대급 기적을 이뤄낸만큼 장병들이 새 사령관을 환영할지도 의문이고 애당초 이런 반쪽짜리 함대를 가지고 그런 일을 해낸건 양 웬리니까 가능한 일이었기에 결과적으로 양 웬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13함대 사령관에 앉으면 양 웬리의 공백만큼 전투력이 하락한다. 결국 사령관을 바꿔봐야 좋을 게 없는 셈.[24] 애초에 오베르슈타인의 청야전술로 인해 침공 초반에는 전투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다. 제국군이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한 이후 동맹군 함대는 죄다 탈탈 털렸고, 그 와중에도 양 웬리의 13함대는 켐프의 함대를 상대로 전력을 보존한 상태에서 퇴각할 수 있었다. 물론 도중에 암릿처로 무조건 집결하라는 상부의 명령 때문에 좀 피해를 보기는 했지만 이건 로보스가 바보인거고. 게다가 암릿처에서도 뷰코크의 5함대와 마찬가지로 무사히 빠져나갔다.[25] 웃긴건 드와이트 그린힐은 양 웬리가 자기 딸을 해임하고 구금했을거라 한 반면 쇤코프는 그린힐을 해임할 리 없다고 보았다.[26] 양 웬리에게는 이 결정의 결과가 씁쓸한데, 뷰코크와 롬스키 모두 이후 이 결정을 안 좋게 평가했다. 뷰코크는 동맹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브륀힐트를 저격해야 했다고 말했고(물론 당시엔 춘우 지엔에게 한 거지만) 롬스키는 아예 대놓고 차라리 버밀리온 때 브륀힐트를 날려버렸다면 좋았을 거라고 (한탄하듯이) 말했다.[27] 양 본인에게 자서전을 쓸 생각 없느냐고 꼬시려던 출판사 관계자가 찾아온 적도 있었다.[28] 그것도 양 웬리보다 더 많이 깎았다(...)[29] OVA에선 다른 동료들을 데리고 양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가 분노에 찬 율리안 민츠에게 처참하게 끔살당하는데 토마호크로 얼굴이 동강난다. 다른 지구교도도 다를 거 없이 팔 잘리고 목이 날아가며 완전히 오체분시된다.[30] 실제로 소말리아 내전을 다룬 블랙 호크 다운이라는 영화에서도 해당 부위에 총상을 입은 후 지혈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죽는 젊은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31] '''내레이션으로 직접 언급되었다.''' 하지만, 「양 웬리 본인이 들었다면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그 사람들은 진지했다'''」는 문장도 뒤에 붙어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양 웬리의 이름을 팔아먹는 기회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진지하게 양 웬리를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여기고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는 이들도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것.[32] 이는 다른 제독이 똑같이 '그런 허접한 계획을 양이 썼겠냐'라고 하고 이걸 모두 동의하면서 반박했다. 양의 실력이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33] 은영전 인물들 중 그나마 통합작전본부장과 우주함대 총사령관격인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모두 앉아본 인물은 프레드릭 제스퍼와 시드니 시톨레 둘 뿐이다.[34] 흥미롭게도 '최고사령관'이라는 직위 자체는 단 인물이 있었다. 바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으로 립슈타트 전역 시기에 제국군 3대 장관을 모두 겸임했으며 동시에 제국군 최고사령관 직위까지 달았다.[35] 이정도는 그 루돌프 폰 골덴바움조차 달성하지 못한 기록으로 20세에 소위로 임관하여 28세 퇴역 당시 소장이었다.[36] 참고로 아텐보로 역시도 능력은 알아주는지 자유행성동맹이 멸망하지 않았다면 양 웬리에 이어서 살아서 원수가 될 수 있었을 인물로 꼽혔다.[37] 무엇보다도 상부에서 양을 잘 안 써준다는게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 뷰코크의 5함대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능력을 알아본 뷰코크가 자주 써먹었겠지만 하필 파에타의 2함대에 소속된 까닭에 잉여에서 못 벗어났다.[38] 이 사람이 개념인이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39] 라인하르트는 야심 떄문에 공훈을 세워 승진하고 싶어함+공혼을 세울 기회 많음+그 기회 잘 살림+누나빨이라는 플러스 요소가 있던 반면 마이너스 요소라봐야 문벌귀족들의 견제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