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종교

 


1. 종교별 현황
2. 무종교
3. 한국 종교관의 특징
3.1. 다양한 종교가 공존함
3.2. 철저한 정교분리
3.3. 현세적 종교관
4. 인터넷에서
5. 통계
5.1. 신자 수
5.2. 지역별 분포
5.3. 단체, 교당, 교직자 현황
6. 둘러보기


1. 종교별 현황



사회에서 일반인의 체감 상으로는, 개신교의 비율이 유독 높게 느껴진다. 불교가톨릭포교를 하긴 하지만 그리 열성적이지 않고, 이들의 종교 시설인 사찰성당은 중앙집권적인 형태로 권역별로 존재하면서 일반 주거 지역 근처에는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개신교의 경우 교리적으로 선교를 적극적으로 할 것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길거리나 공공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종교 시설을 일반 주거 지역 깊숙히 소규모 교회의 형태로 세우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각종 기관(학교/병원 등) 설립을 통한 사회 활동도 개신교 계열이 가장 활발하고,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사회참여에도 가장 적극적인 종교가 개신교다. 또 실제로 각 정치, 시민사회단체를 주도하고 있는 리더급 인물들 역시 개신교인들이 상당히 많다.
일반적으로는 이른바 '7대 종단', 즉 한국종교인평화회의에서 연대활동을 하는 불교,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기타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소속 종단들이 한국 사회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종교로 꼽히고 있다.

1.1. 불교


불교삼국시대 고구려 소수림왕 재위기 전진(오호십육국시대)의 승려 순도(順道)가 전파하여 포교가 시작되었고, 남북국시대를 거쳐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약 1천년간 국가 단위에서 밀어주던 종교였다. 왕실과 불교는 깊이 유착되어 있었고 불교는 국교와 같았다. 그러나 고려 말에 이를 때쯤엔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하였고, 때문에 조선 건국 이후로는 국교의 지위를 상실하고 숭유억불 정책으로 고려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세가 축소된다. 그러나 조선 때도 불교는 여전히 인기 있는 종교였으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불교는 한국에서 결코 소수 종교 수준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또한 한국어에 불교에서 유래된 어휘가 일부 사용되고, 훌륭한 인격자를 흔히 보살에 비유할 정도로 한국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1] 때문에 어느 정도 민족종교적인 색채를 띄기도 한다.
현대에는 구한말 이후에 급속도로 늘어난 기독교에 밀리고 있다. 물론 이는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포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결과이기도 하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교 인구가 처음으로 개신교 인구에 밀리는 결과를 맞게 되어, 불교계에서는 이것을 굉장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중장년층을 주요 포교 대상으로 하다 보니, 젊은 세대의 상당수가 사찰을 기피하고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를 더 자연스러워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한국의 대중 종교라는 이미지가 무너지고 젊은층 포교에 실패했다는 것을 두고 불교의 대중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2]
특징적으로는 경상도 지역에서 불교 신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서, 불교 신자의 비율이 타 지역의 2배 가량 된다.[3] 제주도 역시 불교의 점유율이 높은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 구분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기독교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종교임에는 틀림이 없다.

1.2. 유교


구한말을 지나며 영향력이 대거 축소 되었고 타종교의 유입으로 현대에 들어서 종교 인구는 미미해진게 현실이다. 유교식 제사를 지내는 비율은 높으나, 가족 모임 정도로 의미가 퇴색된 상태다. 단 주로 천주교나 개신교에서 유교식 제사나 장례식에서 신주에 절을 하는 것을 우상숭배라 판단해 거부하는 등 유교의 종교적 성격이 완전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4] 유교의 종교적 특성에 대해서 유교 (敎)는 종교고, 유학이나 유도(學, 道)는 철학이라는 말이 있는데 오히려 현대에서 개념 혼동으로 나온 말이고 과거에는 세 단어가 비슷한 의미 였으며, 주자로 비롯된 신유학 이후에는 유교도 충분히 종교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유교 문서에 나오듯이 세속적인 윤리, 도덕 관념 등에선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녀가 부모를 고소, 고발하는 것을 금지한 형사소송법 제224조, 235조의 경우처럼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법률 조항이 있을 정도이다. 호주제를 폐지할때도 "평등의 잣대로 우리 전통문화를 함부로 재단해 전통 가족문화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해체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폐지에 반대한 대법관[5]도 있었다.

1.3. 그리스도교


동아시아에서 기독교 신자 비율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필리핀과 함께 아시아 동부의 양대 기독교 강세 국가 중 하나이다. 그 외의 나라들과 비교하면 기독교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홍콩마카오보다도 더 높으며[6] 기타 네덜란드 제국이나 프랑스 식민제국식민지였던 곳들은 해당 지역의 전통대로 불교이슬람 또는 전통 종교를 믿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에도 막부가 자국의 기독교 전파를 막기 위해 스페인 제국포르투갈 제국을 쫓아내고 네덜란드와 교류한 것도 네덜란드인들은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에 관심이 별로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대한민국과 어느 정도 비슷한 사례라면 필리핀 외에는 베트남이나 몽골을 들 수 있는데, 공산정권 하에서 최근까지 탄압을 많이 받긴 했지만 그래도 베트남은 기독교, 특히 가톨릭 교세가 전체 인구의 약 7~10% 정도 되며[7], 몽골은 공산정권 종식 이후 기독교 교세가 인구 10% 수준으로 늘었다.
한국에서 가톨릭과 개신교가 교세를 불릴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신분제 사회 속에 살다가 평등을 강조하는 교리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급속도로 퍼져나간 경향이 컸다. 또한 하느님/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하늘(天)을 섬기는 한국 민속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한 몫했다. 일제강점기로 와서는 일본의 민족종교인 불교[8]신토, 그것도 이상한 방향으로 변질된 국가신토가 강요되어서[9] 거부감을 느끼던 와중 이들과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한국 불교와 민족종교들의 성장세가 주춤한 반면 상대적으로 일본이 미는 종교들과 완전히 다른 계통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던 것이 컸다. 이는 기독교가 유럽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종교였던 다른 아시아, 아프리카의 제국주의 피해국들과는 크게 이질적인 사례다.
더구나 상기했듯이 가톨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인 신앙이 전래한 국가라는 점에서 더욱 상징성이 컸고, 개신교는 구한말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선 종교 중 하나였으며 독립 이후 활발한 사회운동과 친정부적 성향으로 인해 비교적 호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1.3.1. 가톨릭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가톨릭/대한민국 참조.
가톨릭의 경우 조선 후기부터 신자가 생겨났다. 초기에는 신앙이 아닌 철학(서학)의 일종으로 전해졌으나, 이후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 없이 자체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생긴 특이한 사례이며 가톨릭 측에서도 이 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후로는 프랑스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주교부터 시작해 말단 신부까지 대부분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된 프랑스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부터 조상 제사 거부와 하느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인해 지배층에게 밉보이고 18세기 말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프랑스와 갈등하여 병인박해병인양요가 일어나기도 했다. 개항 이후 이러한 박해는 사라졌지만, 그 대신 개신교가 들어와 서양식 의술 등으로 굉장히 안정적으로 고위층에게 선교하면서 프로테스탄트 교세에 완전히 밀리게 된다.
개신교보다는 세력이 덜하지만, 아시아에서는 가톨릭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수도권 거주 중산층, 고소득층 중심으로 퍼져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도별로 종교 인구 현황을 살펴보면, 가톨릭 신자는 서울(10.7%), 인천(9.5%), 경기(9.0%) 등 수도권에 많다. 가장 낮은 비율을 기록한 도시는 울산과 경상남도로 각각 4.2%에 그쳤다. 1990년대 이후로는 가장 빠르게 교세가 커지고 있다가 2015년 조사결과에서는 다시 줄어들었다.

1.3.2. 개신교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문서 참조.
2015년 인구 센서스 기준, '''대한민국 최대 종교'''인데, 이는 가톨릭이 일찍 들어왔지만 미국영국, 캐나다, 호주[10]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구한 말부터 한국에 집중적으로 선교한 영향이다. 신구교 모두 신자 수 역전은 평양대부흥이 있었던 1907년을 기준으로 개신교가 가톨릭을 역전한 것으로 본다.
한국의 개신교 본산은 해방 전에는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이었다.[11] 그러나 해방 이후 공산화된 이북 지역 개신교 신자들이 대거 남하했고, 정부 수립 이후에는 적극적인 선교로 성장해왔다. 탈북자들의 경우 중국에서 개신교 선교 단체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그들의 종교를 보면 개신교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대한민국의 개신교이승만 정부와 미국의 영향이라는 얘기가 있지만[12] 이승만 집권시기인 1950년대에도 소수종교였다. 앞서 가톨릭과의 교세가 역전이 된 구한말에는 1%, 해방후 50년대에는 4~5%였으나, 구한말부터 꾸준하게 교육과 의료 선교나 근대 문물, 기술 지원 등의 공헌을 앞세워 한국 민중들에게 퍼져나갔다.
그러나 개신교나 가톨릭의 교세가 신도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건 이승만이 쫓겨난 후인 6~80년대 경제 성장기이다. 그리하여 농촌보다 도시에서 기독교 비율이 높은 것이다. 이후 한국에서는 '''"기독교"라는 말이 개신교만을 뜻한다고 오해될 정도로''', 개신교 세력이 가톨릭을 웃돌게 된다. 다만 그 배후에 극우 성향 개신교 목사가 포함되어 있었던 새마을운동 과정에서 전국 각지의 민속신앙 중심지였던 당집이나 서낭당들이 대거 미신 타파나 도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대거 훼철당하는 어두운 모습도 이면에 도사리고 있었다.#
개신교 신자 비율은 90년대에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에는 계속 정체세다. 그러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인구수가 늘며 대한민국 제1의 종교 위치를 회복했다. 종교 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 홀로 인구수가 급증했다. 특히 서울 강남 3구나 평창동, 한남동, 성남 분당, 판교, 인천 송도, 부산 해운대, 대구 수성 등 고소득층이 밀집되어 있는 수도권과 광역시, 신도시에는 압도적으로 높은 신자수를 자랑한다. 이를 두고 좀 극단적인 민중신학 계열의 신학자들은 "한국 개신교가 부르주아 집단의 종교로 전락했고 민중의 적폐(!)가 되었다"고 통탄하는 분위기다.[13]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이를 환호하기만 하지는 않는데, 그들이 체감하는 실제 출석교인 수는 5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그닥 차이가 없기 때문. 더군다나 교인 수는 선방했다 해도 교인의 노령화가 심각한 추세로 10년, 20년 후의 교세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게다가 인구 센서스의 조사 자체도 좀 불분명한데 기독교 계열의 종교라면 이단이나 파생 종교(예컨대 신천지통일교 같은)[14]도 가리지 않고 개신교로 포함했기 때문에 단순히 센서스에서 개신교 비율이 최대라고 해도 정말 이들이 전부 다 개신교인지는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안그래도 개신교 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 코로나19 사태 계기로 개신교 최대의 위기가 온 상황까지 간 것이다.


1.3.3. 정교회


정교회의 경우, 앞선 두 종파보다 교세가 상대적으로 매우 작다. 조선 말기인 19세기에 적지 않은 조선인들이 궁핍과 기아를 피해 이미 조 · 러 국경을 넘어 러시아의 연해주 일대에 정착하여 체류하기 시작하였는데, 러시아는 이들에 대하여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세례를 받도록 하였다. 이러한 러시아 당국의 동화 정책으로 다수의 조선인들이 정교회 세례를 받기도 하였으며, 현재도 러시아 사할린 등에 다수의 한국인 정교회 신자들이 분포해 있고, 몇 분의 고려인 성직자들이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00년 러시아 제국 황제 성 니콜라이 2세의 명령에 의해 한국 선교단이 꾸려져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가 서울에 오면서 정교회 선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러일전쟁일본의 식민정책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8.15 광복 후 1950년에는 6.25 전쟁으로 안 그래도 어려운 선교가 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3년 참전용사였던 그리스군 종군사제에 의해 재기를 맞이했고 1956년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에 소속되면서 미국 정교회의 대리관구의 지도하에 선교가 재개되었다. 1970년 대리교구가 재편되어 미국 정교회에서 뉴질랜드 정교회로 소속이 바뀌면서 2004년 3월까지 영적지도를 받아 왔다. 1995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시노드에서는 한국 선교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한국 정교회 교구 헌장을 승인함으로써 자치권을 얻게 되었다.
한국 정교회 신자는 웬만한 중형 개신교 예배당의 교인 수보다 적은 약 4천여명이다. 미국 등 외국의 한인 정교회 신자 공동체 또한 전무하다. 위에서 조금 언급했지만 공산주의 혁명과 그에 따른 장기간의 냉전으로 인해 러시아 등 정교회의 비중이 큰 동유럽 국가들과는 오랫동안 교류가 단절되었고, 그나마 같은 자유 진영 국가로서 정상적인 교류가 있었던 그리스도 우방국이라는 상징성에 비해 교류의 규모 자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 및 서유럽 국가들의 공동체와 교류가 활발한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에 비해 정교회의 확산력은 미미할 수 밖에 없다.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마이너 소리를 듣는 성공회조차도 영미권 지역에 한인 성공회 교회들을 두고 있다.
한국의 그리스계 정교회는 신자 수를 불리기 위한 직접선교 보다는 각종 강연이나 강의, 출판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정교회를 알리는 간접선교를 주로 한다. 또한 정교회 성당을 찾아오는 방문객에게도 신앙을 소개한다. 정교회를 찾아오는 사람은 다른 기독교 교단에 속했던 사람이나 무신론자 등 배경이 다양한데, 정교회의 전례와 영성에 대해 감동받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3.4. 오리엔트 정교회


위에 언급된 가톨릭·정교회·개신교칼케돈 공의회를 존중하는 이른바 '칼케돈파 기독교'이고, 칼케돈 공의회에서 배제되었던 비(非)칼케돈파 기독교를 묶어서 오리엔트 정교회라고 부른다.
콥트 정교회가 현재 한국에 사제를 공식 파견하고 공소까지 구성한 유일한 오리엔트 정교회이다. 한국에 콥트 정교회 공동체가 조직된 것은 2010년경인데, 직접적인 설립 이유는 울산부산을 비롯해 콥트교를 믿는 이집트인 노동자들이 조선소 등지에서 근무하면서 조금씩 늘어났고, 마침내 한 콥트 정교회 신자에 의해 서울에 공소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사제는 호주 시드니 교구 소속으로, 보통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한국을 방문해 열흘 정도 체류한다. 한국뿐 아니라 대만필리핀, 베트남, 홍콩, 스리랑카, 네팔 등 아시아 국가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국가를 순회하며 각국에 머물고 있는 콥트 정교회 신자들을 만나고 보살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제가 한국에 머무르지 않을 때에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25명~30명, 많게는 50명의 콥트 정교회 신자들을 포함한 오리엔트 정교회 신자들이 모인다.
2019년에는 에티오피아 정교회도 한국에 진출했다. 다만 아직은 자기들만의 성당이 없어서 한국 정교회 성당을 빌려서 그곳에서 성찬예배를 보고 있다고 한다.

1.3.5.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1830년 예수의 초대 교회를 회복했다고 주장한 조셉 스미스에 의해 창설된 기독교계 신흥종교이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일부 개신교계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신흥종교의 특성상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존재하기도 하나 대체로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어 한국 내에서는 하나의 신흥종교로 인정받고 있다. 1950년대 미군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고 그 다음 해 김호직 박사가 침례를 받은 뒤, 선교사들과 함께 교세를 트기 시작했다. 현재는 한국에 성전 1개와 스테이크 16개, 선교부 3개를 운영하며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 신도수는 8만명 정도로, 10만명을 넘지 못하는 소수 종교라 인지도는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영어교실과 검은 명찰을 단 선교사들의 이미지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지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성전은 서울 창천동에 있고, 스테이크(교구)는 서울 스테이크를 비롯해 16개가 존재한다. 와드는 서울 등 대도시에는 5~6개, 이 외 도시에는 1~2개가 있으며 소도시나 읍,면에는 지부가 있다.

1.3.6. 여호와의 증인


개신교와는 교파가 다르지만 기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이들을 개신교와 구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하는 비기독교다. 수혈 거부와 특히 한국 내에서 큰 범죄로 취급받는 '''병역거부'''가 공식 교리인만큼 대한민국 사회 내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며 사이비 종교 취급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세는 어느 정도(국내 신도 8만여 명) 있는 편이다. 폐쇄적인 종교 공동체 사회 위주의 밀교적 성격 때문에 미륵불 신앙에 익숙한 동아시아 사회 내에서는 완전 토착화되었다. 국내 진보 언론들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줄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으나, 정작 여호와의 증인 교리 자체는 극보수 성향에 가깝다.

1.3.7. 통계 분류의 어려움


한국의 종교 통계는 기독교를 기독교(개신교)와 기독교(천주교)로만 나누고 있어, 보다 명확한 분류가 어려워지는 문제점이 있다. 2012년 3월 문체부가 발간한 <한국의 종교 현황>의 종교별 단체 현황에서는 정교회를 개신교 단체로 분류하는가 하면[15], 같은 단행본임에도 종교별 법인 현황에서는 한국 정교회 유지재단을 '그 밖의 종교 관련 법인체'로 분류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1.4. 원불교


원불교는 국산 신흥종교 중에서 비교적 기성종교로의 성장에 성공한 경우이다.[16]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2년 발간한 <한국의 종교현황> 단행본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원불교는 전국에 550개 교당과 1,979명의 교직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2005년 센서스 기준으로 13만여 명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관계처럼 불교와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종교이다.

1.5. 천도교


동학을 계승한 교단 중 하나인 천도교는 2012년 문체부 통계 기준 105개 교당과 630명의 교직자를, 2005년 센서스 기준 4만 5천여 명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 무교(무속 신앙)


무속 신앙은 흔히 독자적인 종단을 갖춘 종교로는 여겨지지 않으나 널리 퍼져 있으며 무속에 의지하는 사람도 있다. 더불어 자신이 불교, 유교, 기타 소수종교 등 다른 종교를 믿는 상태에서도 이 무속신앙을 같이 행하는 경우도 있으니 무속 신앙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보편적 옛 신앙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다.[17]
'무교'라는 용어는 맥락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장문의 글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 잘 쓰지 않고, 무속 신앙이라든지 하는 말로 해설해서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어에서 장단음 구분이 거의 사라졌고, 그나마도 표기가 없어 글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 보니 과반수를 차지하는 무종교와 동음이의어가 되어 헷갈리기 때문.

1.7. 대종교


대종교는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던 등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해서인지 문체부의 2012년 단행본에서 '그 밖의 종교'가 아닌 별개의 항목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실제 교세는 지명도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때 중국 본토까지 신자수를 늘렸으나 나중에 천도교와 함께 탄압당했다가 만주국이 세워지면서 순식간에 신자수가 줄어들었다. 국내에 잔존하던 단군교는 친일 행적으로 해방과 동시에 소리없이 사라졌다.

1.8. 이슬람교


신라~고려~조선 초기까지 '회회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고 중동인들이 한반도에 일부 거주하며 국가행사에 참여하거나 쌍화점 같은 문학에서 다뤄지는 등 전근대 시기에도 이슬람과의 접촉은 있었으나 장거리 교역이 사라진 조선 중기에 그 맥이 거의 끊겼고, 6.25 전쟁 시기 터키군을 통해 이슬람이 알려진 바도 있으나, 본격적으로 이슬람이 한국에 전파된 것은 70년대다. 중동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1975년 서울중앙성원이 세워진 이래 한국에 11개의 모스크와 42개의 지회를 두고 있다.
한국인 무슬림과 외국인들까지 모두 포함하면 0.3% 정도이나, 이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한국은 무슬림 수를 집계하지 않으며, 비중이 너무 작아 이슬람 인구는 기타 종교로 분류된다. 한국 이슬람교 측도 공식적으로 신도 명부를 관리하지 않는다. 신도의 대부분은 재한 외국인인데, 이들을 제외하고 한국 국민들만 놓고 보자면 6.25 전쟁터키군 주둔의 영향을 받아 개종한 주민들을 기본 베이스로 하였고, 여기에 중동/동남아 관련전공자나 현지 진출 사업가/노동자, 또는 새로 한국 국민이 된 해당 지역 출신 이민자 등 뉴커머들이 간간이 유입되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한국에선 이슬람교는 중동/아랍 계열의 인식이 매우 강하지만 정작 한국 내 무슬림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이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 출신의 외국계 한국인 및 재한외국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세속주의 성향이 어느정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의의로 지방 모스크(센터)에는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신도가 상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다른 부분은 한국화가 무척 느려 세속화, 현지화와 거리를 두는 반면 금전적인 부분만은 굉장히 잘 한국화되어 할랄 음식부터 각종 행사까지 모든 게 비싸다. 외국이면 이맘에게 식사 한 번 대접하는 수준의 무료 서비스에 가까운 종교 의식도 수십만 원 상당의 비용을 내야 하며 이걸 또 단합으로 최소 얼마라 걸어놔서 어딜 가도 대동소이한 가격을 자랑하는 등 굉장히 비싸서 믿음을 돈으로 사는 한국식 종교관에 극도로 충실하다.(...) 그때문에 비할랄음식을 섭취하거나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다.
일단 한국의 무슬림들은 주변의 눈치하고 대한민국내의 이슬람의 인식 때문인지 종교행사가 있을 때만을 제외하면 대체로 세속적으로 사는 경향이 있다.

1.9. 기타


한국의 신흥종교는 19세기부터 뚜렷한 양상을 보였다. 근대에는 주로 개벽 사상, 단군, 정도령, 미륵 신앙 등에 바탕을 둔 도 계통의 신흥 종교가 여러 교파를 형성하였다. 현대에 들어서는 개신교 계통 신흥 종교의 활동이 잦은 편이다. 통일교는 개신교에서 출발했으나 이미 개신교는 물론 기독교 자체와 한참 떨어진 별개의 종교가 된 지 오래고, 신천지하나님의 교회, 기독교복음선교회 등 기독교 계열 신흥종교는 편의상 개신교로 분류해버린다. 수입된 신흥종교로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여호와의 증인, 창가학회, 천리교, 바하이교, 라엘리안 무브먼트 등이 대표적이다. 창가학회는 몇 안 되는 불교 계통의 종교이며, 천리교는 아예 도 계통의 종교, 그것도 신토계열 종교이다.
세계 종교 중에서 신도 수로 3위인 힌두교는 한국에서는 매우 생소하며 외국인 신자들의 종교 활동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 해방촌에 '베다 문화센터'가 있는데#, 이곳은 힌두교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설립된 '국제 크리슈나의식 협회'(ISKCON) 계통이라고 한다. 한편 경기도 포천시에 국내에 체류하는 힌두교인들의 사원이 있다.
사실 힌두교의 경우 주로 한국에 거주하는 인도인들 중에 신자들이 존재하지만 그 인도인들 중엔 무슬림도 많은 편이라 아무래도 메이저한 면이 있다.
최근에는 유대교 회당이 수도권에 생겼다. 주로 한국에 귀화했거나 이민 온 교인들이 믿고 한국인 신자는 별로 없다.

2. 무종교


종교의 자유에서 '''종교에 대한 적극적인 우대조치를 요구할 권리가 직접 도출되거나 우대할 국가의 의무가 발생하지 아니한다.''' 종교시설의 건축행위에만 기반시설부담금을 면제한다면 국가가 종교를 지원하여 종교를 승인하거나 우대하는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어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제2항의 국교금지·정교분리에 위배될 수도 있다고 할 것이므로 종교시설의 건축행위에 대하여 기반시설부담금 부과를 제외하거나 감경하지 아니하였더라도,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헌법 제20조 제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오로지 종교만을 이유로 일반적이고 중립적인 법률에 따른 의무를 면제하거나 부과하는 입법을 한다면, 그러한 법률의 주요한 효과는 종교를 장려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될 것이어서, 헌법 제20조 제2항과 배치된다.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보호하거나 우대하는 조치도 무종교의 자유를 고려하면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원칙에 어긋난다.'''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종교시설의 건축행위에 기반시설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데도, 종교시설의 건축행위에만 기반시설부담금을 면제한다면 '''국가가 종교를 지원하여 종교를 승인하거나 우대하는 것으로 비칠 소지도 있다.'''

출처 : (기반시설부담금에 관한 법률 제8조 제1항 등 위헌소원 등 (2010. 2. 25. 2007헌바131, 2008헌바37ㆍ71, 2009헌가1, 2009헌바18ㆍ239ㆍ283(병합))

이 헌법재판소 판례는 헌법상 무종교 또한 똑같은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모든 종교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는 것 또한 무종교의 권리를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한다는 것.
한국갤럽이 2014년 면접조사를 통해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 보고서에 따르면 2, 30대의 종교인 비율이 10년 전에 비해 각각 14%, 11% 감소하여 종교 인구의 고령화 현상이 현저하게 드러났다. 젊은층 이탈로 ‘종교 인구’ 비율 줄어

3. 한국 종교관의 특징


한국은 불교기독교가 엇비슷하게 공존하고 있는데, 전혀 계통이 다른 세계 종교가 나란히 존재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다. 캐나다, 싱가포르 같은 다문화 국가 정도밖에 없다.

3.1. 다양한 종교가 공존함


한국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종교를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일례로 신라화랑의 사상이나 최치원유불도의 조화를 주장했고, 고려 시대의 문벌귀족들은 '현세는 유교, 내세는 불교'라는 식으로 둘을 충돌시켜 보지 않았으며, 혜심만 해도 '''유교와 불교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유불일치설, 한국사를 열심히 공부했다면 어디서 봤을 법하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도 궁극적으로는 유교 중심 질서의 확립과 사원에 대한 정치 경제적 탄압이었지, 직접적으로 승려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한국사에서 종교인들이 대거 죽은 일 자체는 적지 않으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종교 문제'가 주된 이유로 죽은 경우는 몹시 드문 편이다. 대개 '정치 문제'가 1번이고, 거기에 부차적인 요소로 '종교 문제'가 엮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8] 반란 일으킨 거라면 몰라도. 물론 가톨릭을 박해하긴 했지만 가톨릭 박해는 주로 서인 세력이 남인 축출을 위한 정치적 이유에서였고, 제사 거부 등 기존의 윤리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가 많았기 때문이다.[19] 때문에 이 가톨릭 박해는 당시로서는 서양 세력에 대한 체제 보전과 방위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었다. 제주도에선 가톨릭 교인들이 우상숭배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반달리즘을 행하고 육지부에서 온 악덕 징세관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온갖 세금을 거두어 참다못한 제주도 민중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나 성당을 불태우고 수백 명의 가톨릭 신자들과 프랑스인 신부까지 목을 베어 버렸던 이재수의 난까지 터졌다.
개신교는 가톨릭에 대한 박해가 끝나고 난 후에 들어와서 안전하게 들어와 엄청난 반사 이익을 보았다.
수많은 종교들이 국내에 산재하고 있지만, 종교 분쟁이 '''피를 보는 극단적인 수준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유럽만 해도 400년도 안된 과거에 사코 디 로마, 17세기 영국 내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등 이 모든 게 다른 다른 종교간 대립도 아니고 기독교 내부에서 천주교와 개신교 종파들 간의 싸움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현재까지 지속되는 종파간 대립의 예시는, '''중동 아랍계 국가들 같았으면 여기저기서 하루에도 수십 번은 유혈사태가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예를 들자면 레바논은 마론파 가톨릭교도들과 이슬람의 갈등 때문에 내전을 겪었고(물론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정치, 경제적인 갈등이 컸지만), 이집트도 소수 콥트교도와 다수 무슬림 사이의 충돌이 잦다. 또 이스라엘은 유대교나 드루즈교 외의 타 종교에 대한 박대가 심한 것으로 악명높다. 여타 선진국들이 갈등, 반목, 화합을 겪으면서 나오는 대표적인 사회문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종교인데 수백년 동안 수많은 삽질을 거듭한 끝에 겨우 안정세가 되고 정교분리가 된 것을 감안하면 일본과 함께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다. 아마도 한국에서 종교 분쟁이 유혈 사태로 번지지 않는 이유는 수많은 신도들을 거느리는 대형 종교 세력의 사람이 아직 국가 수장의 위치까지 오른 적이 없고, 그래서 종교가 정치화 되어 세력 확장이라는 명목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적 없다는 주장이 있다.[20]
또 집단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인 출신학교 본관, 결혼여부 가족관계처럼 종교 여부에 대한 질문은 하지만 '''유달리 종교에 관한 논쟁은 하지 않는다.''' 애초에 친목을 위해서 종교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재미동포 사회의 한인교회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슬람 국가에서 보이는 교리 간 충돌이나 극단적 순수 종교주의 자체가 드문 탓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온 가족이 서로 종교가 다른 경우도 있다! 물론 현재에도 종교가 다르다고 개종 안 하면 결혼을 반대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건 사회생활이 아니라 결혼을 가족의 결합으로 여기기 때문이고, 또 종교가 다르다는 것 자체 때문에 결혼을 반대하는 경우는 독실한 개신교도 일부 정도 뿐이다. 종교가 다를 경우 결혼을 반대하는 건 제사 거부, 교회 출석 강요 등 라이프스타일 충돌을 걱정해서 그런 편이고, 이런 부분에 대해 미리 합의가 되어 있다면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많다. 사회 생활에서도 다양한 종교 성향끼리 회사나 조직을 운영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한국은 무종교무신론이 일반적이다. 종교적으로 경직된 국가의 사회에선 무신론, 무종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당장 미국만 해도 정치인이 자신이 무종교인 내지는 무신론자임을 밝히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 취급이며, 특히 이슬람교의 경우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은 최소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취급이지만 무종교는 인간의 기본인 “자신보다 고차원적 존재인 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감사함”도 모르고 사는 몰염치한 동물급 사고방식이라며 더 죄악시 할 정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에서 무종교, 무신론은 완벽에 가까운 보장을 받으며, 대부분의 시민들도 무신론/무종교을 지지한다.
이러한 특징은 분명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적어도 종교를 이유로 사회가 분열하거나, 특정 종교 신자에 대한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21] 대부분 신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기보다는 '''신이고 나발이고 알 게 뭐야?''' 정도[22]. 어떤 종교를 가지든 인생목표가 종교적인 숭고함이나 진리 구현보다 세속적인 입신양명이나 돈인 경우가 많다. XX신, 여신, XX[23], X느님[24], 보살 등의 용어를 쓸 때도 종교적 색채는 하나도 안 들어간 채 재미삼아 쓰는 상황이며 아무도 이것을 가지고 종교에 대한 신성모독이니 등으로 비판하려 하지 않는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과 프랑스에선 학교나 국가대표팀에 여러 인종이 고루 섞여 있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종교가 다양하게 섞여 있는 한국에서 다양한 종교인들이 어우러져 사는 건 자연스러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종교로 인해 큰 갈등을 겪은 역사가 없다보니, 소수 종교인들에 대한 제도적인 배려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대표적인게 양심적 병역거부의 합법화. 서구의 경우 종교를 이유한 병역거부의 역사가 깊어 이를 20세기 초반에 합법화했지만, 한국에는 그런 역사가 짧다보니 논의 자체가 서구에 비해 100년 이상 뒤쳐져 있다.

3.2. 철저한 정교분리


대한민국 사회의 이러한 종교 성향은 한국의 정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의 정치 상황은 세속주의정교분리 성향이 '''대단히 강하다.''' 특정 종교의 신앙을 강령으로 한 종교 정당이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원내 진출한 경우는 헌정 사상 한번도 없었으며, 이들 종교 정당 소속 대통령 후보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의미한 득표를 한 사례도 없다. 각종 선거에서 종교 자체가 판세에 직/간접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지지 성향이 뚜렷하게 갈리는 사례도 거의 없다. 보수 개신교 성직자들이 보수 우파 세력과 밀접한 연관을 띄고 있고 정계에 영향을 끼치는 사례가 있는 등 정치와 종교가 아주 무관하지는 않지만,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대의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형태다. 그나마 이러한 활동조차도 대중들의 반감 때문에 겉보기와는 달리 대부분 조심스럽게 행해지고 있다.[25] 정치인이나 정당이 특정 종교의 색채를 대대적으로 표방하는 것 자체로 선거에서 마이너스를 먹고 들어가는 형국이다.
때문에 종교의 자유로운 인정과는 별개로 세속 권력에 종교 세력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일반 대중들이 매우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주요 정치인들이 조금이라도 특정 종교에 편향된 입장을 취하면 여론의 강한 비판을 받게 되는 곳이 한국의 정치계이다. 오죽하면 한국 정치계에서 성공하려면 '기불릭' 신자이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기'''독교로 잘못 불리는)개신교, '''불'''교, 가톨'''릭'''이 대표하는 종교계 전체를 아우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즉 특정 종교에 편향되지 않아야 정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강력한 세속주의-정교분리 성향은 한국의 체제 유지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국가 중에서는 종교 세력이 세속 권력까지 일정 부분 이상을 차지해서 정부의 정책 및 법률에 간섭하는 사례가 존재하는데 이는 당연히 정부 및 체제의 유지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26]

3.3. 현세적 종교관


신라 말에 크게 유행한 미륵 신앙 등 한국의 종교는 항상 현세의 행복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세속적인 국민성과 연관시켜볼 수 있다. 사실 전술한 통계에서도 보듯이, 한국인은 국민의 절반이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는 매우 세속적인 국가이다. 이러한 세속적인 국민성 덕에 신자들마저도 적지 않은 수가 구원이나 해탈보다는 현세에서의 복을 바란다. 이는 수능철에 성당, 교회, 절만 가봐도 잘 알 수 있다(...).[27] 이러한 세속적 국민성은 종교의 시선을 떠나서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대표적인 예로, 현세 지향적인 이런 마인드 덕에 많은 한국인은 인생의 목표, 혹은 자녀 교육의 목표를 경제적 번영으로 잡는다. 심지어 효도의 척도도, "내가 돈 잘 버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서구권에서 종종 속물이라는 비판을 듣곤 한다. 지구촌 어디에서나 부자되는 게 인생의 목표라는 사람은 차고 넘치지만, 한국의 경우 정서에 반영될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듯, 그러나 이런 건 , 라는 사회에서의 도덕적 의무란 개념이 다른 서양에서 동양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잘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성급한 평가다.
한국인의 종교관과 강한 세속성은 사실 한국인뿐만 아니라 한자문화권 전체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이쪽 동네는 아득한 옛날부터 '입신양명'이 인생의 목표이자 효도의 척도이던 지역이니(...)[28] 또한 경제나 사회명예적으로 몰락하면, 즉 의무감에 짓눌리지만, 만약 입신양명에 실패하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다. 하늘을 뚫을 기세인 자살율 역시 전세계 최고 수준의 비종교성과 세속성을 자랑(?)하는 한중일의 공통 고민거리다.
의무감에 짓눌려 사는 것도 맞지만, 자살에 이르는 이유는 이보다 명료하다.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가기보다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동시에 부모님의 적극적 협조에 따르는 게 당연시하기 되었다. ''' 부모님께서 제시한 길 밖에 모르는 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구식 출세 방식이 더 이상 쓸모 없게 되어 부모와 자신이 투자가 물거품이 되거나 모두가 기대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게 될 경우, '''그동안 헛살아왔는가, 남탓하기보다 자신이 기대에 못 미쳐서 대단히 죄송스럽다 등 극심한 절망에 빠지게 된다. ''' 특히 부모님 믿고 외길만 걸어와 다른 길에 대해 무지해서, 한 가지 방식만 알고 지내다가 어느날 예측 불가한 시련으로 모든 게 좌절되면 상심이 너무 클 수 밖에.
그런데 자살을 말릴 때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보면 보통 '자살하면 부모에 대한 최대의 불효다' 하는 내용이 많다. 서양이나 이슬람 문화권처럼 '자살은 죄다, 지옥 간다'는 식의 표현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즉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입신양명보다 덜 중요한 가치관이거나, 혹은 이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반면 이슬람권이나 인도 같은 나라들은 자살율이 낮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교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신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요한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의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면 세속주의 가치관의 사람들은 본인, 남, 환경 탓을 해서 스트레스를 무진장 받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신의 뜻이지"라고 생각하며 넘긴다. 즉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은 신이 의도한대로 살아간다는 운명론적 인식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인식이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일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신의 뜻이지"라고 넘겨버려 외국인들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기차가 6시간이나 연착했는데도 현지인들은 화도 내지 않고 "신의 뜻이지"하고 넘기는 식이다.

4. 인터넷에서


인터넷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이유 때문인지 현실에 비해 종교적 분쟁이 많이 일어난다.[29] 주로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 간의 분쟁이 대부분이다. 기독교인을 자칭한 사이비와 같은 프레임으로 묶여서 죄없는 다수 종파 기독교인들이 이에 휩쓸리는 빈도도 높다. 특히 개신교는 교황에게 충성하며 하나로 뭉쳐있는 가톨릭과 달리 각기 다양한 종파가 존재하기에 사이비를 만들기도 쉽다.[30] 다만, 교리를 이유로 소수자를 혐오하는 일부 극우 개신교 세력과 비개신교인 간의 갈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현실과 가상 사이의 온도 차이는 아무래도 종교는 친한 사람과도 입에 담기가 껄끄러운 면이 있는데 자칫하면 싸움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과 종교 논쟁할 수도 없고, 결국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 분쟁이 많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넷상의 반기독교 심리를 잘 알고 있기에 어지간하면 얘기를 안 꺼내려 하지만 어그로를 끄는 일부 반기독교인들이[31] 미친 듯이 아예 커뮤니티와 전혀 상관없는 종교 자료를 도배질하거나, 무슨 이야기만 하면 그쪽으로 말을 돌리는 등 앞뒤 안 가리고 까서 심하면 커뮤니티가 붕괴되기도 한다. 그래서 종교 관련 화제는 정치 떡밥과 함께 커뮤니티의 금기로 취급되고 있다.
이슬람 역시 국내 영향력이 워낙 약하기도 하고, 뉴스를 통해 극단주의 단체들의 악명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에서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가리지 않고 이슬람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현실에서는 애초에 국내 세력이 미미한 이슬람에 대해 반대하는 움직임은 적은 편.
사실 정치 얘기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보다 인터넷에서 정치 논쟁이 훨씬 많이 벌어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일이니만큼, 본격적인 종교 갈등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32] 실제 DDoS 같은 전자 테러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강도는 약한 편이다.

5. 통계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종교인구 통계가 전수집계에서 표본집계로 바뀌었다. 그러나 '''표본이 전체 모집단의 20%인 1,000만 명이 넘기 때문에 신뢰성은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젊은층의 경우 휴대폰 앱을 이용하여 자진 설문조사를 시행한 경우도 있어서 오히려 신뢰성이 증가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총 64개 항목 중에 딱히 종교만 표본조사만 한 것도 아니며 전수 12개, 표본 52개 항목이다. #
표본집계 항목의 결과는 2016년 12월 공개되었다.

5.1. 신자 수


신자 수
전체 국민 비율 %
조사 연도
'''종교없음'''
'''불교'''
'''개신교'''
'''가톨릭'''
'''원불교'''
'''유교'''
'''천도교'''
기타[33]
1985
57.4
19.9
16
4.6
0.2
1.2
0.1
0.5
1995
49.3
23.2
19.7
6.6
0.2
0.5
0.1
0.5
2005
46.9
22.8
18.3
10.9
0.3
0.2
0.1
0.5
2015
'''56.1'''
'''15.5'''
'''19.7'''
'''7.9'''
'''0.2'''
'''0.2'''
'''0.1'''
'''0.3'''
출처 :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1985, 1995, 2005, 2015)

5.2. 지역별 분포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대전, 광주와 호남 지역에서는 기독교 인구가 많은 편이고, 부산과 대구 등 영남 지역과 충북, 제주에서는 불교 인구가 많다.
지역별 종교 분포 %

'''불교'''
'''개신교'''
'''가톨릭'''
'''종교없음'''
전국
15.5
'''19.7'''
7.9
56.1
서울
10.8
'''24.2'''
10.7
53.6
인천
8.8
'''23.1'''
9.5
57.9
경기
10.7
'''23.0'''
9.0
56.7
강원
16.4
'''17.5'''
6.7
58.7
대전
14.0
'''21.8'''
7.4
56.2
세종
13.8
'''19.9'''
7.9
57.8
충북
'''16.4'''
15.8
7.4
60.0
충남
13.8
'''20.7'''
6.2
58.7
광주
9.5
'''20.0'''
8.6
61.1
전북
8.6
'''26.9'''
7.5
55.0
전남
10.9
'''23.2'''
5.6
59.3
대구
'''23.8'''
12.0
7.7
55.8
경북
'''25.3'''
13.3
5.2
55.4
부산
'''28.5'''
12.1
5.4
53.1
울산
'''29.8'''
10.9
4.2
54.5
경남
'''29.4'''
10.5
4.2
55.1
제주
'''23.4'''
10.0
7.9
58.0
출처 :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2015)

5.3. 단체, 교당, 교직자 현황


조사년도
2001
2002
2008
불교
단체
96
105
103
교당
20,495
22,072
21,935
교직자
37,001
42,362
49,408
개신교
단체
167
170
125
교당
65,168
60,785
58,612
교직자
125,548
124,310
95,596
가톨릭
단체
1
1
1
교당
1,228
1,258
1,511
교직자
12,561
12,536
14,597
출처 : 문화관광부 종교현황책자(2001, 200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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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양에서는 이 경우 성인(saint)에 흔히 비유한다.[2] 사실 동아시아 삼국(한중일)에서 불교가 기독교에 비해 수치상 열세로 보이는 현상이 한국에서만의 위기나 문제점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중국도 홍콩이나 마카오 등 옛 서구 식민지와 가까운 강남 지방이나 허난 성 등지는 중국의 바이블 벨트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기독교인의 비율이 더 많다.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도 안 된다는 일본도 신사나 사찰에 신자가 줄어서 신사에서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는가 하면, 신도 고령화로 시주가 줄어서 사찰 운영이 어려워지자 스님들이 전력회사(...)를 설립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자구책이 한국 불교는 다소 모자라지 않느냐는 것이 중론. 사찰 운영에 승려들만이 아니라 신도들도 포함시키자는## 의론이 나온 것도 이러한 불교 대중화 대책과 연관이 있다.[3] 지역별로 세세하게 나누면 울릉군 같은 예외도 있다. TK 지역에 설정된 조계종 교구만 5개나 되고 PK까지 합치면 9개다.[4] 그러나 현재는 천주교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장례식을 할 때 등 절을 하는 것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5] 권성 대법관[6] 마카오는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지만 가톨릭 신자가 5~6% 정도로 한국보다 낮다. 홍콩 역시 개신교(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개신교가 6%, 가톨릭이 5%로 각 종파는 물론 전체 기독교 신자 비율이 한국보다 낮다.[7] 식민지배 시절 프랑스의 영향이 크다.[8]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선종의 분파인 조동종.[9] 다만 국가신토도 기독교의 체계에 맞춰 기존의 신토를 변형한 것에 가깝다.[10] 성공회의 발상지인 잉글랜드 출신과 장로회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 출신.[11] 다만 정말 평양 및 한반도 서북 지역(평안도)이 완벽하게 개신교 일색이었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도 있다. 종교별 인구 분포로 보면, 해방 당시 북한 지역에서 신자 수 280만 명에 달했던 종교는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아니라 천도교였기 때문.# 기독교는 신구교 합쳐도 불교 신자보다 수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이 세 종교 모두를 합친 인구는 천도교 신자의 인구의 절반도 채 안 되었다. 결국 이북 지역은 기독교의 산지가 아닌 천도교의 세가 강했던 지역인데, 왜인지 기독교 일색의 지역으로 곡해되고 있다. 다만 1936년 신문 기사에 따르면, 비신자들도 일요일을 습관적으로 주일이라고 부르고, '일요일에는 새벽부터 예배당과 성당에서 치는 종 소리 때문에 늦잠 자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하는 기사가 있는 걸 보면 다른 지역에 비하면 그나마 교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이기는 했던 듯. 심지어 김일성 자신도 장로교 집사 가문 자식이었다.# 애초에 주체사상 자체가 기독교 교리 체계에 유일신 창조주 야훼 대신 ‘위대한 영도자 수령 어버이’를 집어넣었을 뿐이라는 지적이 있을 정도.#[12]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재미 한국인들과 한국계 미국인들의 종교 역시 개신교가 압도적이다.[13] 사실 가톨릭 내에서도 한국 가톨릭에 대해 이와 비슷한 비판이 나오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신구교 막론하고 신자가 부촌에 집중되는 양상이 나타나기 때문.[14] 신천지나 통일교는 '''당연히''' 이단이다.[15] 개신교 성향 단체로 인식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소속되어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16] 군대 내에 별개의 교단으로 당당히 활동 중이며, 군종장교도 3명 배출했다. 수는 적지만 전국 곳곳의 부대에 원불교 교당이 있는 곳도 여럿 보인다. 게다가 여러가지 사회참여로 인지도도 꽤 있다.[17] 구미권이 아닌 지역 중에 이런 지역이 꽤 있다. 아이티의 경우도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인데 원시 종교의 일종인 부두교가 혼재된 양상이 꽤 있다. 물론 가톨릭이 아니란 건 아니고, 순수한 신앙은 아니란 것이다.[18] 반면 중국의 삼무일종의 법난, 특히 회창법난의 경우 죽어나간 스님들도 엄청나게 많고, 스님만이 아니라 무슬림이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경교 신자들도 많이 죽었다. 그나마 불교가 선종 즉위 후에 박해를 면하고 다시 교세를 일으킨 것과는 달리 나머지 종교는 삼무일종의 법난으로 제대로 타격을 입어서 당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예전의 교세를 회복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19] 이 시대 쯤엔 동아시아의 기존 윤리관을 무시하는 가톨릭의 행태 때문에... 조선뿐만 아니라 청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대부분에서 가톨릭을 배척했다.[20] 다만 종교 분쟁 그 자체와는 별개로, 서북청년단의 사례처럼 특정 종교가 주축이 되어 유혈사태를 일으킨 적은 존재한다.[21] 다만 이건 정상적인 기성 종교들의 이야기이고, 일부 논란 있는 소수 종교 신자의 경우는 대인관계에 악영향이 오거나 차별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사회적으로 확실하게 물의를 끼치고 있는 경우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수혈 거부 및 헌혈 거부로 의료계에서 외면받고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게 대표적 사례. 물론 이 쪽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만(…) [22] 한국보다 종교적 엄숙함을 강조하면서 교리를 꼼꼼하게 지키지도 않고, 심지어 자기 멋대로 왜곡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가 많다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한국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23] 갓조국, 갓나다 등.[24] 유느님, 연느님 등. 심지어 예시로 든 두 사람은 서로 종교도 다르다(유재석-불교, 김연아-가톨릭).[25] 물론 전광훈 등 대놓고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종교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는 부정적으로 본다.[26] ex) 이란.이란은 '''헌법'''에 국가원수를 시아파 지도자인 라흐바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의원 내각제나 입헌 군주제처럼 국가원수가 상징적인 자리인 것도 아니다. 라흐바르는 '''입법, 행정, 사법권을 전부 가지며 군통수권자이다.''' 게다가 라흐바르의 선출에는 국민이 개입할 수 없고 전문가 회의에서 결정하며 '''사실상 종신'''이다. 이란 헌법에서 라흐바르가 국가원수인 근거를 '시아파의 구세주인 마디가 재림할 때까지 이란의 정치를 시아파 율법 전문가들이 맡아 대리로 통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걸 보면, 정치에 종교가 개입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21세기에 이런 개막장 통치체제가 성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7] 하물며 종교 시설이 아닌 동네 산에 올라가봐도 바위나 나무에 이런 거 비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 다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곳들은 일종의 명소(?) 취급 받기도 한다.[28] 효도의 극의가 세상에 자기 이름을 떨치는 것이라는 얘기는 심지어 '''조선시대 아동용 교과서'''인 <사자소학>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인식이 사라질 일은 어려울 듯 하다. 자식이 부모 걱정 안 시키고 자기 앞가림(특히 금전적으로)하는 건 분명히 효도다.[29] 한국에서 가장 공격받는 종교는 개신교랑 이슬람교. 반대로 시선이 좋은 종교는 불교와 천주교이다. 호감도는 높지만 신자수는 빠른 속도로 감소중인게 문제다.[30] 모르는 사람은 십자가만 달면 전부 같은 기독교로 오해하는게 실상이다.[31] 알다시피 반기독교에는 종교인과 무교인이 있고, 그 중에서도 종교에 부정적인 적대적 무교인과 공존을 추구하는 유화적 무교인이 있고, 그 중에서도 공격적이며(즉, 자신이 적대해도 타인에게는 강요하지 않는게 아니라 강요까지 하는) 적대적인 타 종교/무교인이 이런 떡밥을 돌린다. 소수 중에 극소수이지만 한 번 불태우면 커뮤니티를 망가트리기엔 충분하다. 개신교인 연예인의 기사나 SNS에 온갖 악플을 쏟아부으며 공격하는 집단도 대체로 이들이다.[32] 단 정치나 이념적 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폭력적으로 진화되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상호폭행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기도 하고[33] 증산교, 대종교 등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