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경제
'''동방의 진주''' ("Pearl of the Orient, 東方之珠")
1. 개요
홍콩은 1960년대~1980년대 사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릴만큼 성장한 글로벌 무역항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은 1960년대 말에 나온 단어로 발전속도가 빠르던 대한민국과 선진 개발도상국 지위의 대만 및 홍콩, 그리고 신생 독립국이나 역시 개발속도가 빠르던 싱가포르 넷을 싸잡아 부르던 말이며 1980년대 이후 홍콩 및 싱가포르가 선진국에 진입하고 1990년대 대한민국과 대만까지 선진국이 되자 이 용어는 폐기되고 신흥공업국이라는 용어가 나오며 중국 대륙,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아랍에미리트 등 아시아 신흥국들과 터키, 리투아니아, 폴란드, 헝가리,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유럽 신흥국들 그리고 역시 ABC강대국이라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를 주축으로 한 라틴아메리카 각 국가들을 싸잡아 일컫기 시작한다.
또한 도심 전체가 거대한 쇼핑센터를 방불케해 쇼핑의 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온라인 쇼핑이 발달해 쇼핑만으로 홍콩을 오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지만 워낙 쇼핑센터와 물건 숫자가 많아 겸사겸사 식도락과 쇼핑을 같이 즐기는 경우가 많다.
홍콩은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집계하는 경제자유지수에서 1위를 고수할 정도로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운 정책을 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나 경쟁상대인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 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국가가 주도해서 경제성장을 이룩한데 반해서 홍콩은 시장이 주도해서 경제가 성장한 사례이며, 밀턴 프리드먼도 성장하는 홍콩을 보고서 홍콩을 자유방임경제의 모범적인 모델로 칭찬했을 정도이다.
경제자유도의 예를 들자면 홍콩에는 중앙은행이 없어서 통화위원회라는 조직만 있다. 중앙은행 비슷한 역할은 HSBC, 중국은행, 스탠다드차터드 은행 이 셋이 나눠서 맡는다. 그리고 법인세와 관세가 없는데다 세율도 엄청나게 낮아서 중국 대륙 부자들이 홍콩에 가서 사는 경우도 많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는 이 중국 부자들이 자산분산을 하려고 이민 문의를 많이 하였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서구를 휩쓸면서 이민간 곳에서 오히려 손해를 봐서 다들 홍콩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국가 인프라인 홍콩 국제공항, 콰이충 항구, 그리고 홍콩 지하철 및 국철 운영사인 MTR사 등 공공 인프라는 공기업으로 관리하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때는 정부가 자본통제에 나서는 등 정부도 간섭할 것은 간섭한다. 단지 간섭을 최소화할 뿐이다. 이러한 정부의 자본통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휩쓰는 2020년에도 실시하기 시작했다.
2. 역사
영국의 사실상 유일한 동아시아 내 식민지로 남은 영국령 홍콩은 1950년대 들어 1949년 중국 대륙의 공산화로 중개무역이 크게 줄어들면서 섬유 등 경공업 위주로 경제가 성장했다. 이 때 홍콩은 옷 만드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지금도 콰이충이나 삼수이포, 에버딘 등에 남아있는 아파트형 공장들이 그 때 섬유업을 하던 흔적들이다.
그 이후로 1960년대 들어 최빈국에 불과했던 대한민국과 아직까지 정정불안으로 경제발전이 더디었던 선진 개발도상국 대만이 경공업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하자 전자제품 조립 등 제조업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주로 일본에서 부품을 떼어갔다가 홍콩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홍콩 전자산업의 규모는 컸지만 기업들의 규모가 영세했기 때문에 역시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자산업을 육성한 한국, 대만 등 후발주자에게 따라 잡혔고, 개혁개방으로 중국 대륙의 문이 열린 1980년 이후 이들 산업은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리고 전술한 데로 1979년 중국이 덩샤오핑에 의해 개혁개방 정책에 나섬에 따라 금융업 등 서비스업 육성으로 방향을 틀면서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4]
하지만 천안문 6.4 항쟁 이후로 1997년 이후 특별행정구가 되어 중국으로 귀속되면 경제적 자유는 보장된다 해도 정치적 자유를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인재유출이 잇따랐다. 물론 유출되었던 인재들은 캐나다, 호주 등 외국 국적을 취득해 홍콩으로 되돌아왔으며 이들은 자녀들에게도 외국 국적을 물려주어 홍콩 내 최소 15% 이상이 중국 정부의 통제가 안 닿는 외국 국적자인 홍콩 시민이 되는 결과만 낳았다.
홍콩 당국은 이를 부동산 활성화로 풀려고 했지만 1997년 태국발 1997년 외환 위기로 홍콩의 거품경제는 붕괴되었고 홍콩 경제도 한 동안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땐 모두가 어려웠던지라 싱가포르도 모범생 소리를 들으면서도 손해를 꽤 본 편이고 대한민국은 다들 알다시피 나라가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으며 인도네시아는 진짜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그리고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붕괴 이후 회복하던 일본의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중국 경제의 급성장과 함께 홍콩경제도 다시 정상을 되찾았고 중국 대륙 대기업들의 자본금이 홍콩에 유입되면서 홍콩의 금융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중국 본토의 고도성장과 함께 중국 본토의 금융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홍콩이 중국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줄어들어 존재감이 옅어지고 있다.[5] 그러나 홍콩의 경제적 강점, 예를 들면 발달된 금융업과 높은 대외개방도, 높은 경제적 자유도, 행정 및 사법 시스템의 높은 신뢰도 등은 중국 본토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국 경제 규모가 아무리 커져도, 중국 본토 그 어디도 홍콩을 대체하지 못한다. 그리고 홍콩 경제도 중국 자본 덕에 이익을 보면 보지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특히 중국과 해외를 중개하는 금융업은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 큰 혜택을 보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저가아파트 공급 중단 및 대륙의 투자자금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이 무지막지하게 폭등하면서 임금수준에 비해 집세부담이 과중해지고 있으며, 평범한 중산층들이 수십년 넘게 일한다해도 집을 구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정도로 부동산 거품이 심각해졌다.
홍콩의 경제 시스템은 영국 통치 체제에서 확립되었지만 오늘날의 홍콩 특별행정구에서도 일국양제의 차원에서 잘 유지되고 있다. 홍콩의 정치는 중국 공산당의 간섭과 제도적 문제로 인해 민주적이지 않지만 공산당은 홍콩의 경제에 대해 거의 간섭하지 않는걸 넘어 홍콩을 아예 다른 나라로 분리하다시피 하며 홍콩과 중국본토 간 교역은 전부 국제무역으로 친다. 그리고 외국인이나 다국적 기업에는 홍콩 정부가 오히려 혜택을 주면 주지 해롭게 하진 않으며 이로 인해 홍콩의 많은 기업인들과 자본가들은 정치적으로 친중파 성향을 띄고 있다.[6] 이는 싱가포르의 예와 같이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를 전혀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에 대응해 2020년 6월 29일(미국시간)에 미국 상무부는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에 따라 '''홍콩에 부여한 특별 지위(관세 면제, 대중국 금융규제 적용 예외)를 박탈했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추후 중국의 조치를 보면서 더 강한 제재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사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과 같이 미국 의회를 통과한 홍콩 수출규제법과, 2019년 연장한 NDAA에 따라 홍콩에 군사 및 치안 장비를 수출 금지한다고 밝혔다. 기사 2020년 하반기 이후의 홍콩 금융허브 지위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전면전으로 금융허브 홍콩의 위상이 흔들리자 홍콩의 지위를 노리는 아시아 각국의 물밑 움직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3. 물가
한국 대비 40% 비싸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느 정도냐면 기본적으로 홍콩 달러 100$를 한국돈 15000원으로 생각하면 된다.
3.1. 음식
음식은 꽤 싼 편인데, 웬만한 음식이 30~50 홍콩달러 수준이며 140원 환율을 기준으로 하면 4500~7,000원인 셈이다.
유명한 운남국수체인인 남기국수의 경우 기본메뉴는 약 35$, 완탕면도 기본메뉴가 약 35~40$ 정도 한다. 딤섬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에 속한다. 딤섬의 경우 메뉴에 따라 특, 중, 소 등으로 나누는데 보통 소는 30$, 중 35$, 특 40$ 하는 식이다.
아무래도 홍콩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외식문화가 발달해 있어 식사를 집에서 해결하지 않으니 밥값이 싸지게 된다. 싱가포르도 물가 비싸기로 악명높으나 밥값만은 싸서 호커센터에서는 한국 돈으로 1000원에 뒤집어 쓰는 편이다.
하지만 '차찬텡'에서 취급하는 위의 음식들과는 다르게 요리의 개념으로 들어가게 되면 가격이 매우 비싸지게 된다. 홍콩식 해산물 요리는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비싸다. 유명한 게 요리인 Spicy Crab[7] 의 경우 사이즈에 따라 다르지만 작은 사이즈가 마리당 약 500$ 이상 주어야 하고 큰 사이즈는 1,000$ 이상 받는게 수두룩하다
그런데 한국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그런게, 홍콩에서 해산물 요리는 살아있는 식자재를 사용한다. 바다를 끼고 있는지라 갓 잡아서 어항에 쳐넣은 뒤 꺼내서 요리한다. 기후 특성상 한국과 다르게 생선회는 즐기지 않지만[8] 생선찜이나, 게, 조개 등을 대부분 한국에서는 회로 먹을 활어 상태로 요리한다. 일본이 냉동한 선어를 즐기는 것과는 크게 다른데 이는 유기물 부패속도가 빠른 동남아시아 특유의 기후 탓이 크다.
2017년에서는 물가 상승 때문인지 일반적인 대중음식점인 차찬텡의 음식 가격대가 35~50 홍콩달러 대[9] 를 형성했다. 그래도 특가메뉴의 경우는 딱 40달러 전후로 제공되고 밀크티/커피가 덤이다.
그리고 차찬텡에서는 해당 점포에서 비싼 메뉴라고 해도 굉장한 가성비를 보장한다. 일례로 2015년 기준으로 후술할 차찬텡인 맥심/MX의 고가 메뉴 중 54 홍콩달러 짜리 스테이크세트중 하나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다리, 베이컨, 소세지, 구운 옥수수, 감자튀김, 구운 토마토, 빵으로 덮은 스튜, 소스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기들이 그릇에 꽉꽉 들어찰 정도로 혜자스럽다.
참고로 그게 어느정도냐면 2015년 11월 환율 기준으로 '''8000원 짜리 메뉴'''에 저 정도 구성이면 미쳐 날뛰는 수준의 가성비다. 문자그대로 혜자가 따로 없다.
3.2. 의료
대신 의료비나 주차비, 집세는 엄청 비싸다. 의료비야 의료보험을 적용받으면 어느 정도 싸지기는 하지만 개인병원은 비싸다. Clinic은 한번 가면 의사 한번 보는데 한국돈으로 10만원이며 주사라도 처방하면 약값까지 포함해 치료비가 더 날뛴다(...). 클리닉이 잘 고치긴 하나 의료보험을 적용받아도 안과, 피부과 등은 가기 꺼려져 차라리 한국 가서 진료받는 편이 더 저렴할 정도다.
그 대신 영국이나 호주, 싱가포르, 뉴질랜드, 캐나다처럼 정부에서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홍콩인들은 정부 병원으로 가며, 외국인도 정부 병원에 가면 미국 달러 기준 1달러 정도의 싼 진료비로 진료받는다. 영국식 사회복지제도의 좋은 점으로 최소 미국처럼 돈 없어 아파도 진료 못 받는 일은 없다.
물론 그만큼 홍콩인들로 붐비는 건 감안해야 한다. 정부병원은 줄 서는게 영국 수준으로 긴 편이며 몇몇 수술 등은 미국처럼 대기만 터무니없이 많이 해야 하여 그냥 한국 가서 수술받고 오는 사람도 많다. 별로 위급하지 않은 라식이나 디스크 수술, 백내장, 인공관절 수술 등은 확실히 비행기 타고 한국가서 받고 오는게 훨씬 낫다.
예외적으로 구급차에 실려 오면 당장 의료진이 본인에게 다 달라 붙는다. 특히 열 나면 SARS, 메르스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덕에 의료진이 방역복을 갖추고 음압병동에 집어넣고 우선 해당 바이러스들부터 검사하며 심지어 해외여행력이 있으면 에볼라 등도 검사한다. 음성이 떠야 격리가 풀리고 퇴원한다.
구급차는 홍콩 소방처 소속 구급서에서 제공하며[10] 999번으로 호출하고 공짜다. 미국이 구급차 한번 부르면 수십 만원이 깨지는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앞선 부분이다. 그렇다고 서비스가 형편없는 것도 아니라서 한국의 119구급대처럼 질 좋고 신속하다.
4.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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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부동산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조사되었다. 홍콩 아파트의 중위가격은 세계 1위였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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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신계 사이쿵구 정관오역 일대에 들어선 아파트. 건폐율과 용적률이 매우 높아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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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신계 콰이청구에 들어선 아파트 내부 모습. 5평(16㎡) 정도 되는데 세탁기를 놓을 수 있다. 세탁기를 놓을 수 있는 집은 '''일반 집의 2배 이상''' 가격에 팔린다. 저 집은 대한민국 원화로 '''최소 15억 원''' 정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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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반도에 있는 아파트 내부 모습. 보통 홍콩에 짓는 아파트는 이런 아파트이다. 창문이 없어서 햇빛이라고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 '''단칸방'''(3.3㎡, '''1평''')이 대한민국 원화로 '''3억 ~ 4억 원'''을 호가한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무려 25층~30층 정도 되는 아파트이다. 심지어 1평도 안 되는 아파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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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등장하여 홍콩 건설 박람회에서 상까지 받은 '''캡슐아파트'''. 1평에도 못 미치는 '''2.2㎡'''짜리 집이다. 캡슐호텔을 아파트처럼 만들어서 진짜로 분양까지 했다! 홍콩 섬 중서구 사이잉푼역 앞에 들어서 있다. 1개월 월세를 받으며 월세는 5,100 홍콩 달러(한국 돈으로 대략 80만 원). 자외선 조명을 채택하고 있어서 죄다 방이 파란색이다. 같은 건물에 있는 일반 아파트는 24,500 홍콩 달러(370만 원)을 제시하고 있어서 '''1/5'''에 해당한다. 분양할 때 1분도 안 되어서 매진됐다. 기사
이 캡슐아파트 지은 건축주를 인터뷰한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영상.
홍콩 부동산 문제에 대한 Vox 영상. 위에 나온 캡슐아파트 이야기도 나온다. 여기에 폴 치머만 공공단업연맹 대표가 출연한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 문제는 심각하다. 높은 인구밀도뿐만 아니라 홍콩 경제 구조가 높은 부동산 가격에 일조한다. 똑같이 면적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이웃 마카오는 홍콩에 비해 부동산 문제가 숨통이 트이는 편으로 집도 마카오가 더 널찍하고 실내공간 자체가 마카오가 더 넓으며, 홍콩 섬 면적보다 좁은 싱가포르 역시 부동산 문제가 없으며 정부가 HBD로 집을 공급해준다. 홍콩 부동산 문제는 영국령 홍콩 초기부터 있었던 고질적 문제이다.
홍콩에서는 집안에 세탁기를 놓을 수 있으면 같은 면적의 집 대비 세탁공간 있는 집의 가격이 2배로 뛰고, 집안에 화장실이 생겨나면 '''10배''' 이상 비싸진다. 거기에 홍콩은 주차장도 별도로 매매하는데 구매한 위치에 등기가 따로 설정되고 해당 위치에만 주차를 해야 한다. 심지어 주차장 한 칸이 11억 원에 팔리는 경우도 있다.[11]
집값은 일본의 도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의 뉴욕,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중국 대륙 상하이는 물론 더 면적 좁은 싱가포르보다도 훨씬 비싸며, 집도 대체로 낡고 좁아터지기로 악명높다.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라는 지표로 비교해보면 한국의 서울이 5.9배, 영국의 런던이 8.5배, 캐나다의 밴쿠버는 10.6배, 미국의 뉴욕은 6.1배인데 홍콩은 17.8배이다. 이는 집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취직해서 버는 돈을 한푼도 안 쓰고 모으면 집을 사기까지 서울은 5.9년, 뉴욕은 6.1년인데 홍콩은 17.8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부동산 관련 국제지표를 비교해보면 모나코 같은 미니도시가 아닌 이상 전 세계 1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12] 홍콩의 콩알만한 집에서도 월세가 300~500이 나온다. 집값이 세계 정상급이라 건물 한 채도 아니고 아파트 한 가구가 1000억 원도 나오는 곳이 홍콩이다.
이렇게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중국 대륙과의 국경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13] , 중국 대륙-홍콩 간 국경인 로우역에는 매일 아침마다 헬게이트가 오픈한다. 주로 셩수이 등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 동철선은 아침마다 가축수송이다. 그렇다고 해도 선전도 홍콩의 배후도시인지라 위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거주비가 1/2 가량이라고 해도 매우 비싼게 사실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도시화 때문이다. 배후지역인 신계 지구까지 합쳐도 홍콩의 면적이 넉넉치 않은데다 그 중에서도 홍콩의 개발은 오랫동안 좁디좁은 구룡반도와 홍콩 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곳에 인구 수백만의 국제도시가 들어섰으니 부동산 가격이 낮을 리가 없다.
구룡반도의 인구밀도는 km²당 4만 5천명으로 서울[14] 의 거의 3배에 가깝다. 이곳이 홍콩 중심지라 순수 주거지구가 아닌 것을 감안하면 체감 인구밀도는 훨씬 높아진다. 홍콩 섬의 인구밀도는 일단 통계상으로는 낮은데 홍콩 섬에 산이 많아 미개발지가 많아 그런 것이지 개발된 곳의 인구밀도는 매우 높다. 1998년 홍콩 반환 후 신계 지구를 개발하면서 인구를 분산시키려 하고 있지만, 워낙에 홍콩의 인구 집중화가 극심하다보니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홍콩 정부차원에서 집값을 내릴려고 공공 임대주택과 별개로 저가 아파트를 공급해놓기도 했다만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 외환위기와 겹쳐서 집값이 대폭락해서 홍콩의 집값이 싸져 버리자, 집주인들이 대규모로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고 홍콩 정부차원에서도 부동산 부양으로 경기를 회복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2002년부터 저가 아파트의 공급을 중단했고 이후로는 더 이상 집을 싸게 구입하지 못하는 무주택자의 수요에 중국의 투기자본까지 밀려오면서 말 그대로 집값이 미쳐 날뛰고 말았고, 2003년부터 2015년까지 홍콩 집값은 4배 이상 뛰었지만 그에 비례해서 소득이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젊은 층들이 집을 살 여력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당연히 전세는 없다. 홍콩의 집들이 죄다 거대한 젓가락 같은 이유가 다 거기에 있다.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특이한 모습이지만 거주민들은 죽을 맛이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신조어가 나와 다른 나라들은 재택근무가 대세임에도 홍콩은 집이 집 같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도 많았다. 대신에 사무실 입구에 열 감지기 등이 설치되는 등 보완책은 있긴 하다.
그래도 공공 임대주택 시스템은 잘 정비된 편이라 홍콩 주민들의 30% 가량이 공공 임대주택에서 살며 이런 아파트는 집세가 민간 아파트에 비해서 훨씬 싼지라 공공 임대아파트를 배정받기만 하면 금전적인 면에서 나름대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15] 그러나 이 임대주택도 1인 가구나 2인 가구를 기준으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8평, 13평, 혹은 18평이 일반적이므로 좁은 것은 마찬가지이고, 신청한 뒤에 받으려면 몇년이 걸리기 일쑤인데다가 2005년에 정책이 노년층 우선배정으로 정책이 바뀌면서 청년층이 공공주택을 받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 되었고, 집을 받을려면 몇년간 대기해야되는데 그 기간 동안 똑같이 좁으면서도 훨씬 더 많은 돈을 월세비로 날려버리기 때문에 청년층이 홍콩당국과 중국정부에 대한 불만이 엄청나게 치솟게 되는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결국 이로 인한 불만이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2019년 시위로 호된 홍역을 치르고 나서야 겨우 부동산 신대책들이 나왔다.
민간주택 임대료 상한제같은 정책이 없기 때문에 공공주택을 제때 배정받지 못한다면 일반적으로 벌어들이는 돈 가지고는 괜찮은 집을 구하기 힘든 건 물론이고 비싼 월세로 저축할 여유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홍콩인 청년들은 임대주택을 배정받기 전에는 캥거루족으로 사는것이 일반적인 풍경이다.
그리고 돈이고 뭐고 없는 계층이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후진국에서 온 난민이나 이민자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쪽방촌에 거주하는데 쪽방촌은 그야말로 악명이 높아서 화장실이나 주방을 공용으로 쓰는 집도 월세비가 상당하다. 중국 대륙인 노동자들도 이런 쪽방촌에 무려 4인 가족을 데려와 산다.
이러한 부동산 가격으로 아이러니하게 세탁방이 활성화되고 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느냐면 홍콩에선 서민의 주거방식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닭장방'으로 사람 1명 들어갈 정도로 작은 케이지다.
홍콩의 집값을 비롯한 부동산 가격이 비싼 것은 단순히 좁은 땅에 사람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웃한 마카오는 면적이 훨씬 작고 인구밀도는 세계 제일급이지만 주택 문제가 그렇게 심하진 않으며 마카오인들이 다른 건 다 홍콩을 부러워해도 집만은 부러워하지 않는다. 마카오는 스타벅스만 들어가도 홍콩보다 공간이 넓다. 홍콩은 산지와 낙도가 많아 개발 가능한 땅이 좁은 편이고 이 좁은 땅의 대부분이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 소유인데, 홍콩 정부가 이 땅을 부동산 업자들에게 팔아 얻는 수익이 홍콩 재정수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므로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홍콩 정부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고의로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은 세계적으로도 경제 자유도가 높아 규제가 적고 세금이 낮은 지역이라 조세를 통한 재정수입이 많지 않은 편이고 대신 땅 팔아서 얻는 수익이 재정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법인세도 관세도 없는 무관세지역 홍콩이 돈 버는 방법은 바로 땅 장사뿐이다.[16] 토지 공개념이라는 개념 자체는 오래전부터 정착되기는 했지만 막상 그에 걸맞는 정책을 펴지 않으면서 실제로는 공공의 이익보다는 세수확충 용도 및 사유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악용되어버린 셈이다.[17]
한편 법인이 직접 투표권을 갖는 정치체제로 인해[18] 이런 부동산 장사하는 사람들, 즉 대형 부동산 개발업 재벌들인 리샤우키 회장의 핸더슨 디벨롭먼트, 리카싱의 청쿵그룹, 영국계 스와이어 그룹, 향토기업 선홍카이 그룹 등이 정계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 땅값, 집값 내려가는 것이 어렵다. 집값 가지고 이들 재벌끼리 담합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홍콩 정부도 높은 집값이 사회 불안의 요인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거주인 없이 놀려두는 집에 대해 빈집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홍콩 집값이 추락하면서 졸지에 비싼 월세 문제도 해결기미가 보이고는 있으나 이번엔 경제가 세계구급으로 어려워 월세를 충당할 돈이 없다는 문제가 또 있다(...). 그래도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유탄도 있고 코로나 19의 여파까지 겹쳐 2020년대에 홍콩 부동산 가격은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대신 그만큼 없는 사람들은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다.
오히려 중국인들이 홍콩 부동산을 쓸어담으면서 추가 하락이 제한적이라고 한다. 기사 중국인들의 홍콩 부동산 매입 규모는 40억 홍콩 달러(대한민국 원화로 약 6,100억 원) 어치에 달한다.
5. 경제 구조와 규모
홍콩의 경제는 상당 부분이 서비스업에 의존한다. 1차산업과 2차산업은 비교적 약하다.
2차산업은 나름대로 흥했을 때인 1950년대~1970년대 시절도 있었지만 규모가 영세했기 때문에 1980년대 이후로 한국과 대만 그리고 1990년대 이후로는 값싼 노동력과 어마어마한 생산 쪽수를 자랑하는 중국에게 밀려서 사양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의 공산품과 식품은 홍콩산은 소수고 중국산과 수입산[19] 이 대부분이다. 홍콩산은 까우룽유업, 가든제과, 비타쏘이[20] 같은 일부이다.
일본산이 꽤 많으며 아예 일본산 공산품을 전문으로 파는 얏뿐씽(日本城, Japan Home Centre)이라는 체인점도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는 조금 줄었다.
요즘에는 한국산 공산품 역시 만만찮게 보인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산이 일본산의 자리를 많이 뺏었다. 일종의 수입식품점인 759스토어에는 일본식품과 한국식품의 지분이 비등하며, 특히 화장품 업계에서는 한류 영향으로 한국 화장품이 많다. 1990년대만 해도 홍콩은 메이크업을 본국 영국의 영향으로 서구식으로 선호했으나 2000년대 한류가 범 아시아적으로 유행한 이후에는 한국식을 많이 선호한다.
금/은 등 귀금속 및 보석상, 그리고 시계상이 굉장히 많다. 중화권/동남아시아 최대의 보석상 체인인 짜우따이푹(周大福, Chow Tai Fook)[21] , 짜우쌍쌍(周生生, Chow Sang Sang), 룩푹 보석(Lukfook Jewelry)이 3대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어지간한 번화가라면 저 보석상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입주해있다. 그리고 한국 단체관광객이 자주 가는 TSL 역시 보석 및 귀금속 체인점이다.
이외에도 보석 및 명품시계등을 취급하는 상점은 한두군데가 아니다. 길거리 좌판에서조차 보석이나 시계를 취급하기도 하며 상점에서는 강력한 저작권법 및 상표법 때문에 짝퉁은 하나도 없고 100% 모두 진품이다. 짝퉁을 파는 사람들은 주로 인도인, 아랍인이거나 필리핀인 등 외국인으로 침사추이에서 기승을 부리는데 경찰이 순찰 돌면 도망간다. 홍콩은 귀금속 거래지로도 유명하여, 광산 없는 홍콩에서 수출의 1/3을 금 등의 귀금속이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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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홍콩의 경제 규모. GDP(국내총생산)가 3,504억 달러로 총 19위를 차지하였다.
홍콩은 도시권(광역권)이 없는 단일 도시란 것을 감안한다면[22] 단일 도시로서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내에 충분히 드는 경제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23] 그 외 중국 도시는 상하이가 5165억 달러로 전체 10위, 베이징이 4272억 달러로 전체 13위를 기록했고, 톈진은 3087억, 광저우는 3204억, 선전시는 3024억이다. 즉 홍콩은 중국 영토 내 3대 경제권 중 하나다.
홍콩증권거래소의 규모는 아시아에서 도쿄증권거래소,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이은 3번째이다. 그리고 IPO 개수는 중국 기업들의 상장 덕에 가장 많다.
6. 은행 및 금융업
은행업이 발달하였다. 홍콩은 뉴욕, 런던, 상하이, 도쿄, 싱가포르, 프랑크푸르트와 함께 세계 금융 중심지들 중 한 곳이다.
홍콩의 위치가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등을 잇는 좋은 위치라 아시아 금융허브는 홍콩이 되었다. 지금도 '''Asia Limited'''라는 이름을 붙인 다국적 기업은 모두 홍콩이 본거지이거나 아시아 본사이다. 도쿄/상하이 그리고 이 둘을 치고 올라오는 서울은 동아시아 역내 중심지를 두고 경쟁 중이며 두바이는 중동,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 프랑크푸르트, 파리, 마드리드 등은 유럽 지역 내 금융허브 지위를 갖는다. 그래서 홍콩에선 아시아 본사, 중국본토나 일본 등에선 동북아 지사를 두는 식의 영업이 많다. 특히 규제가 없고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 큰 메리트이다.
홍콩을 본거지로 삼는 회사는 여럿 있는데 UBS도 홍콩을 아시아 중심지로 삼고 그 말고도 HSBC, 스와이어 그룹[24] , 허치슨 왐포아[25] 등이 홍콩을 아시아에서의 중심지로 삼고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택한 이래 중국으로 투자되는 해외 자본의 많은 수는 홍콩을 거쳐 들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죽의 장막을 막 걷어낸 개혁개방 초기에는 해외 자본이 중국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중국도 그나마 잘 알고 해외 자본도 잘 아는 홍콩의 금융업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중국이 대외적으로 잘 알려진 지금에도 홍콩의 경제적 자유나 법치 수준이 중국에 비해 훨씬 높은 등의 이유로 많은 중국행 해외 자본의 중개지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등으로 인해 중국이 홍콩을 대체하는 새로운 금융 중심지를 키우려 한다는 기사가 여럿 나오고 2010년대 들어서는 상하이나 선전의 금융업이 홍콩보다도 더 크게 성장했지만 중국 대륙의 정치 및 경제제도의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홍콩의 역할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다. 중국 본토는 주식시장 개방도 안 되고, SNS 사용도 안 되고, 무엇보다 정치 및 사법 시스템에 대한 해외 자본의 신뢰도 면에서 홍콩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26] 기사
홍콩증권거래소가 홍콩의 유일한 증권거래소이며 중국본토 기업들이 뉴욕증권거래소와 함께 여기에 대거 우회상장했다. 텐센트가 대표적인 홍콩증시 상장 중국기업이다.
2021년02월09일, 홍콩증권거래소에서 역대 처음으로 외국 국적[27] 의 홍콩 영주권자 사령탑 총재를 임명했다.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이후 많은 홍콩인들과 외국인들이 헥시트[28] 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우려되어서 임명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기사
홍콩금융관리국 총재는 홍콩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후에 자금 유출이 있다는 설에 대해서 부정했다.기사
7. 통화
홍콩은 중국 대륙과는 달리 영국령 홍콩 달러에서 계승된 홍콩 달러가 법정 통용화폐이다.
특이하게 지폐를 발행하는 은행이 중앙은행이 아닐 뿐더러 발행은행도 한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다. 무려 세 곳에서 지폐를 발행한다. 예를 들자면 원화는 전부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한국은행권이고, 엔화는 전부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일본은행권, 미국 달러는 전부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은행권이다.[29] . 중국 위안도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이 일괄 발행한다.
그런데 홍콩은 중앙은행이 없고 홍콩 달러는 HSBC[30] 와 스탠다드차타드[31] , 중국은행(홍콩법인)의 3군데에서 화폐를 발행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똑같은 액면금액의 지폐도 3종류가 존재한다.
보통 사자 얼굴이 비스듬하게 그려진 HSBC의 지폐가 가장 많다. HSBC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홍콩 화폐를 발행해 온 가장 유서깊은 곳이며 가장 보편화되어 있다. 사자 도안은 HSBC의 아주 오래된 상징물이다.
그리고 중국은행은 중국은행 빌딩인 BOC Tower가 그려져 있다. BOC Tower 역시 중국은행의 상징물로 다들 중국은행 하면 이 뾰족한 빌딩부터 생각한다. 스탠다드차타드는 물고기, 용 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쪽엔 이렇다 할 상징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령 홍콩 당시 화폐로 HSBC의 개명 전 이름인 Hong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orational limited가 적혀있는 사자 측면 얼굴이 있는 은행권도 가끔 있다. 식민지 화폐를 일괄 회수한 건 아니고 반환 후인 1998년부터 새 돈을 찍어내는 형식으로 서서히 대체했기 때문에 잘 찾아보면 식민지 화폐도 자주 보인다.
그러나 액면가가 같으면 같은 색상을 사용하기 때문에 헷갈릴 염려는 없다. 100 홍콩달러는 적색, 500 홍콩달러는 갈색, 50 홍콩달러는 녹색, 20 홍콩달러는 푸른색을 쓰는데 한국은행권 5만원과 1만원, 5천원, 1천원이 각각 색상이 다른 것과 같다.[32]
사실 본래 지폐는 각 은행에 실질적 가치를 지니는 귀금속 화폐를 맡기고 각 은행이 이를 증명하는 증서를 발행해 귀금속 화폐 대신 쓴 것에서 유래했으므로 과거에는 홍콩과 같이 사설 은행에서 지폐를 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러다가 세계 금융 대공황이나 2차대전 등 환란기들을 거쳐 지폐를 포함해 모든 화폐를 중앙은행이 독점 발행하게 된 것인데 홍콩에 과거 방식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실질적으로 홍콩 달러는 정부기관인 홍콩금융관리국(Hong Kong Monetary Authority)에서 발행량을 결정하므로 이 금융관리국이 중앙은행 역할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 독점 화폐 발행 방식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동전은 모두 홍콩금융관리국에서 발행한다. 동전은 10달러부터 5달러, 2달러, 1달러와 가끔 50센트와 20센트, 10센트를 볼 수 있다. 센트들은 모두 노란색이고 크기가 작다. 2달러와 20센트는 별처럼 뾰족뾰족 돌기가 나있다.
2007년 이후로 나온 10달러 지폐는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권으로 왼쪽 중간이 투명한 플라스틱인데 사실상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홍콩금융관리국에서 발행한다. 이는 10달러를 지폐에서 동전으로 바꾸면서 각 은행의 발행 권한을 회수했는데 나중에 동전 전환 계획이 취소되면서 10달러 지폐도 그대로 금융관리국이 발행하게 된 것이다.
선진국치고는 강력한 고정환율제인 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홍콩 달러의 가치는 7.8 HKD = 1 USD로 고정되어 있으며 홍콩의 외환보유액에 딱 맞는만큼만 화폐를 발행한다. 이는 다른 선진국들이 변동 환율제를 채택하고 보유 자산과는 관계없이 화폐를 발행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예로 선진국에 속하는 이웃인 싱가포르만 해도 변동환율제이며 원 종주국 영국도 변동환율제이고 후발 선진국 대한민국 역시 변동환율제이다. 이는 홍콩의 중계무역항과 금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 때문에 그렇다. 중계무역을 할때 환율이 계속 변하면 불필요한 리스크가 생겨버린다. 하지만 이는 역시 단점도 있는데, 미국의 통화 정책을 따라간다는 점이다. 경제 수준에 따라서 주체적으로 통화정책을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홍콩의 통화 정책은 홍콩 경제와 무관하게 미국을 따라가게 된다. 고로 경제가 좋은데 추가적으로 부양돼서 거품이 생긴적도 있고 경제가 안좋은데 더 축소될 수도 있다. 유로존의 문제점이 그대로 나타난 그리스의 경우를 보면 이것이 얼마나 큰 단점인지 알 수 있다.
이런 고정환율은 홍콩 달러는 영국의 파운드화와 연동된 역사적 관습에 유래된다.
마카오에서도 홍콩 달러를 쓸 수 있다. 사실 마카오 돈인 파타카는 한국에서 현지 환전이 힘드니 홍콩 달러를 대신 쓰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 홍콩 달러-마카오 파타카 간 교환율은 거의 1대1이나 홍콩 달러는 마카오에서 쓸 수 있는데 역은 불가능하다. 홍콩 달러의 가치가 마카오 파타카에 비해 미세하게 높기 때문이다. 마카오에서 웬만한 가게는 홍콩 달러를 구비하니까 홍콩 달러로 받고 싶으면 그렇게 말하면 된다.
사실 대체적으로 관광객이 홍콩 달러를 주면 알아서 홍콩 달러로 잔돈을 주긴 한다. 가끔 파타카만 내미는 경우도 있긴 한데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등 프랜차이즈는 홍콩 달러를 내도 파타카를 거스름으로 주는데 이 경우 홍콩에 되돌아와 환전해야 하는 귀찮음이 있다. 이들 매장들은 정책 상 할 수 없이 파타카밖에 못 준다. 어차피 택시 요금이 싼 마카오인 만큼 남은 돈은 택시비 등으로 모두 써 버리거나 홍콩에 남겨와서 시내에서 환전해 버리면 된다.
그리고 웬만하면 마카오에서 홍콩 달러를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일단 홍콩 달러가 조금 더 비싼데다 호텔 등지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의 값은 홍콩과 같기 때문에, 마카오에서 쇼핑하는 것이 어쩌면 조금 더 쌀 수는 있다.
그리고 카지노를 갈 경우 할 수 없이 홍콩 달러를 써야 하며 오히려 자국 돈인 파타카가 무용지물이다(...). 마카오 내 카지노들에서는 자국 화폐는 취급 안하고 홍콩 달러만 통용된다. 마카오 파타카밖에 없다면 카지노 내 환전소에서 환전해야 한다(...).
8. 빈부격차
빈부격차가 심한 편이다. 심지어 중국 본토보다도 지니계수가 높은데[34] , 2012년 기준으로 홍콩에서 하위 10%의 월소득은 2,070 홍콩달러[35] 에 불과했으나 상위 10%의 월소득은 95,000 홍콩달러[36] 에 달해 그 격차가 무려 45배에 육박한다. 세금과 복지를 고려해도 지니계수가 0.475로 세금과 복지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의 미국 지니계수와 비슷한 수준인데출처 홍콩은 분명히 잘 사는 나라지만 미국, 영국처럼 빈부격차 또한 심하다.
그런데 홍콩에 특별 비자로 입국한 동남아 출신의 Domestic Helper, 즉 가정부[37] 들을 제외한 수치에서는 하위 10%의 월소득이 약 9,000~10,000홍콩달러[38] 까지 상승한다. 출처
사실 홍콩의 경제시스템은 어찌보면 비인간적이라 할 정도로 차별적인데 최저임금마저도 '가사도우미 전용 최저임금' 과 '일반인 전용 최저임금'이 따로 존재하고 국가통계청에서도 이들을 포함한 통계, 이들을 포함하지 않은 통계를 따로 발표한다. 중국 대륙 및 타 동남아시아인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홍콩에 넘쳐흐르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출신 이민자 및 난민들을 제외했을 때 홍콩의 빈부격차는 작아진다. 이 낮아진 수치마저도 미국, 영국처럼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높은 편에 속할테지만 이를 통해 홍콩이 비상식적인 수준의 빈부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홍콩만큼 빈부격차가 큰 미국 역시 평균적인 미국인의 수입이 그래도 좀 높은 편인데다 미국 경찰의 강력한 공권력까지 더해져 사회질서가 유지된다. 홍콩 역시 강력한 공권력을 가진 홍콩 경찰이 있고, 평균적인 홍콩인은 유학도 활성화되고 국외여행도 활발하며 심지어 목적지도 근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나 한국, 대만, 일본부터 서유럽, 영국, 앵글로아메리카에 저 멀리 라틴아메리카, 북유럽, 남아프리카 등까지 다양하다.
1인당 GDP는 42,437 미국 달러 정도 되며 2015년 기준 전체 산업 평균임금은 198만원[39] 이다.출처(pdf)이다. 그리고 5인 이상 사업체 기준 임금 중위수는 2016년 기준으로 243만원이다.출처
하지만 평균급여는 홍콩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감안하면 이보다 더 높을 것이다. 원래 중화권 내진 영연방 국가에서는 저임금 정책을 주로 써서 임금과 GDP의 괴리가 크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대만은 무려 10년동안 임금동결을 한적도 있다. 그래서 1인당 GDP는 2만 달러가 넘지만 평균임금이 120~140만원 사이이다. 영연방의 경우도 1차 산업 위주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나라들이 많은 지라 아무래도 2, 3차 산업 위주의 한국, 일본 등에 비해서는 월급이 적을 수 밖에 없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도 미국과 영국의 고임금에 끌려 미국이나 영국으로 가는 청년들이 많을 정도다.
그러니까 임금 수준이 아닌 사회안전망이나 반부패 지수 등이 선진 지역을 결정한다는 결정적인 반증이 영연방/중화권 국가들의 저임금 정책이다. 이 경우 영연방 국가 선진국인 싱가포르가 밀어붙인 모양으로 부동산 값이나 공공요금을 통제를 잘해야 장점이 잘 발휘되는데 공공요금 통제는 그럭저럭 되는 편이나 부동산 값 상승은 이어지는 바람에 젊은 층이 빈민이 되어가는 문제가 터지고 있는 중이다. 싱가포르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HBD라는 국가가 공급하는 주택 서비스를 실시 중인데 홍콩도 도입 여론이 많으나 부동산 재벌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이들의 반발을 뚫고 하기 힘들다. 부동산 재벌들은 당장 전기, 가스, 수도, 철도 등 각종 인프라도 갖고 있고 토지세를 많이 납부하는 큰 손이라 홍콩 정부도 이들을 다루기 어렵다.
홍콩은 선진국급 1인당 GDP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래 평균임금이 연간 4~5% 정도의 나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아 기존의 저임금정책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환 후 홍콩 주민들의 평균급여에는 많은 변화가 없었던 것에 비해 물가, 특히 주거비용은 대폭 상승했기에 기존의 저임금 정책을 계속하다간 청년층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 뻔하므로 홍콩 정부에서도 이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행정장관 직선제 선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 해 9월 철회해야 했던 중국 등으로의 범죄인 인도법안이였지만 그 뒤의 원동력은 청년층의 사회불만이 있었다. 특히 부동산 문제 때문에 불만이 컸는데 이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영국령 시절부터 이어온 100년 가까운 카르텔이 끊겨야 해결 가능한 일이다. 싱가포르처럼 국가에서 주택을 영구 임대해주는 방안도 괜찮지만 부동산 업체들이 워낙 로비력이 막강해 힘들다.
[1] GDP 관련 순위는 마카오와 홍콩을 독립국으로 간주했을때의 순위이다.[2] https://en.wikipedia.org/wiki/Hong_Kong#Economy [3] https://tradingeconomics.com/hong-kong/rating [4] 이것이 홍콩의 건전한 산업육성을 방해해서 현재까지도 홍콩이 제조업쪽으로 별 볼일 없고, 부동산 가격 폭등을 일으켜 극악한 빈부격차를 만들어냈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홍콩은 땅이 좁고 인구가 터무니없이 적어 공업으로 먹고사는 건 불가능하다.[5] 반환 당시 홍콩 GDP는 중국 GDP의 25%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3%에 지나지 않는다. 2000년대 중반까지 홍콩과 중국 본토간의 봉급수준 차이가 어마어마했지만 2020년 기준으로는 임금차이가 크게 줄어들었고 대도시 지역이나 잘사는 지역 한정이지만 중국 본토인들이 부동산 투기 등 자산수익의 영향으로 웬만한 홍콩인들보다 풍족하게 사는 경우가 흔해졌다.[6]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홍콩의 금융계는 시위를 반대했다. 금융계는 시위로 손해를 많이 봤고 시위에 적대적일 수 밖에 없었다. 금융계 재벌들은 대부분 친중파 진영으로 보수파이다.[7] 싱가포르의 Chili Crab과 같은 요리다.[8] 없는 건 아니다. 일본 요리의 영향으로 지하철역 등에 30 홍콩달러에 초밥을 파는 테이크아웃 체인도 있고 이래저래 초밥집이 많은 편이다.[9] 비싼 건 50 홍콩달러+[10] 물론 소방서에 배치된 구급차도 있다. 번호마다 다 다르다.[11] 이는 대부분의 나라가 공통사항이다. 의외로 대한민국이 특이한 경우에 해당한다. 대한민국이 아파트 주차장에 대해 관대한 편인 이유는 대부분 공동주택 1채당 1면 이상의 주차장이 확보되어야 하며, 집값에 주차장 비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용면적과 분양면적이 다른 사유가 입주민이 같이 사용하는 공용면적에 있고, 이 공용면적에 주차장 면적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불합리하다기 보다는 굳이 차량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집만 있으면 되지 주차장 비용까지 들여가며 집을 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 반영되는 점도 있다.[12] 비슷한 사정의 싱가포르와 대조하자면 싱가포르는 HBD라는 정부에서 무상으로 싱가포르인들에게 제공하는 국영 주택들이라 더 싸고 쾌적하다.[13] 중국 대륙에 살면 집값은 홍콩보다 저렴하지만 중국 대륙에 살면 자유가 없고 그게 아니더라도 대륙의 인터넷 통제로 인해 VPN이 강제되며 통신요금도 로밍 때문에 올라간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14] km²당 1만 6천명[15] 물론 외국인에겐 이런 혜택이 없으므로 자취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죽어난다. 특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에서 온 가족 딸린 외노자는 주택건물 위에 증축한 옥탑방 같은 곳에서 사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며 하층민을 구성하는 인도계 홍콩인들도 마찬가지다.[16] 이웃한 마카오는 반면 포르투갈 식민지 때 포르투갈 정부가 카네이션 혁명으로 독재가 끝나자 카지노를 허가해 카지노에서 걷은 세금으로 99%를 충당하고 그 액수가 정부 재정을 충당하고도 남아돌아 마카오인들에게 돈을 나눠줄 정도이니 굳이 땅 장사에 목숨걸 이유가 없다. [17] 그리고 중국 본토도 홍콩의 영향을 받았는데 토지를 민간에 팔아넘길때 소유권 자체는 넘겨주지는 않고 단지 토지를 70년간 임대를 할수있다고 규정된 것이 홍콩의 영향을 받은것이다. 지방정부와 공무원, 건설회사들의 돈벌이용이나 부동산 투기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18] 홍콩/정치 참조[19] 주로 일본, 대만과 영국, 미국 제품이 많았는데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는 일본산은 줄고 그 자리를 한국산이 대체했다. 영국과 미국산은 여전히 인기가 많은데 신뢰도가 높아서이다.[20] 維他奶, 두유/음료업체[21] 표준중국어로는 저우다푸라고 하며 한국 언론상에서는 보통화 발음인 '저우다푸'라는 표기를 많이 쓴다. 보석기업이라기에는 자주 언론에 거론되며 홍콩에서는 가장 큰 기업 중 하나다. 이웃 광동성 광저우에는 저우다푸 센터라는 중국 대륙 내 지사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도 대거 진출해 있다.[22] 홍콩 - 선전시 - 둥관 - 광저우 - 포산 - 중산 - 주하이 - 마카오를 주강삼각주로 엮기도 하며 중국/홍콩/마카오 정부가 주강삼각주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하여 하지만, 정치체제가 각기 달라 유럽연합 식 경제공동체에 더 가깝다. 홍콩-마카오 간도 넘어가려면 출입국 심사부터 다 거쳐야 하고 전화도 로밍된다.[23] 참고로 한국 수도인 서울은 경인 광역권 즉 수도권을 모두 합산해 경제규모가 매겨지고 제2도시 부산도 부울경으로 묶여서 순위가 매겨진다. 한국은 서울 광역권인 세계 4위인 수도권 및 세계 20위대인 부산 광역권 부울경권이 있다.[24] Swire Group, 캐세이퍼시픽 항공 그룹의 캐세이퍼시픽, 캐세이드래곤, 홍콩 익스프레스 등의 모회사이며 부동산 회사이다. 본사는 런던에 위치한다.[25] Hutchison Whampoa, 왓슨스의 그 곳으로 동남아시아 최대 재벌 리카싱 가족이 소유한다. 영국의 허치슨 그룹을 인수한 후 토착화시켰다.[26] 홍콩이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게 사실 영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 금융의 핵심은 아직도 런던과 뉴욕이기 때문이다.[27] 아르헨티나 국적의 백인[28] 자유민주주의 선진국가로 이민가는 것.[29] 미국도 중앙은행은 없고 연준이 중앙은행 역할을 대신한다. 미국은 연방국가이기 때문이다.[30] 항셍지수의 그 항셍은행(恒生銀行)이 HSBC 자회사이다.[31] 渣打, 사타. 한국의 금융덕들도 간혹 사타라고 부른다. SC제일은행의 모기업인 그 SC로, 2010년에는 은행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여 150달러 지폐가 발행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은행장 이상 직급을 가지게 되면 500 홍콩 달러를 케이스에 담아서 준다.[32] 한국은행권 1만원은 초록색 땜에 배추이파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홍콩달러는 50 홍콩달러가 초록색이라 배추이파리다.[33]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비싸다보니 이렇게 밤마다 맥도날드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다. 안정적인 수입을 버는 사람들도 집값 때문에 노숙한다. 홍콩의 많은 맥도날드 매장은 24시간 영업한다. [34] 중국 본토는 0.45, 홍콩은 0.47[35] 약 30만 원[36] 약 1,300만 원[37] 하녀가 아니다. 이들은 엄연히 가사도우미, 즉 Domestic Helper이다.[38] ~약 150만원 가량[39] 14511 HK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