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심리적 오류
1. 개요
2. 감성팔이 관련
2.1. 감정을 쓸데없이 적재하는 오류 (Loaded Language)
2.2. 동정에 호소하기 (appeal to pity) ✓
2.3. 그릇된 권위에 호소하기 (appeal to unqualified authority) ✓
2.4. 재력에 호소하는 오류(Appeal to wealth)
2.5. 힘에 호소하기 (appeal to force) ✓
2.6. 군중에 의거한 논증(Argumentum Ad Populum)
2.7. 중도에 의거한 논증(Argumentum Ad Temperantiam)
2.8. 유머에 호소하는 오류(Appeal to ridicule)
3. 사실과 가치 혼동
4. 기타
1. 개요
논리적 오류의 비형식적 오류 중 심리적 오류를 서술하는 문서다.
2. 감성팔이 관련
2.1. 감정을 쓸데없이 적재하는 오류 (Loaded Language)
쉽게 한 마디로 정리하면 TMI. 오류를 범하는 자의 본론은 따로 있지만, 그 본론에 '''감정적인''' 수식언을 마구 붙여 글의 무게를 쓸데없이 늘리는 것을 말한다.[2] '''객관적이자 논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 미화나 악화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연민에 의거하는 오류'나 '인신공격의 오류'가 동반되기도 한다. 논리성 말고 '어조'에 의존한 주장을 'loaded language'(또는 emotionally charged words)로 부른다. 반드시 감정적, 공격적 또는 모멸적인 형용사로 수식된 표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이미지 개선용 단어를 쓰거나 상용어를 쓴 문장도 포함한다. 이러한 타입의 궤변은 정보조작이나 선동 등의 수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개인을 긍정하는 논증의 오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나무위키 내에서도 이런 서술은 여러 사건사고들의 문서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미 사장된 표현인 '천하의 개쌍놈', '만악의 근원', '인간 말종' 등이나 반면교사, 적반하장 등의 부정적인 고사성어, 지랄, 개소리, 헛소리, 망언 등의 표현들을 서술 문장, 특히 '''발언'''에 리다이렉트 남발하는 것도 비슷한 예시이다. 이러는 행동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이성적이 아닌 서술임을 느끼게 하고 가독성을 심하게 떨어뜨린다. 범죄는 범죄이지만 그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또한 그런 리다이렉트를 한다고 해서 문서에 무슨 기여가 되는가?
2.2. 동정에 호소하기 (appeal to pity) ✓
동정심에 호소해서 결론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할 때 저지르는 오류이다. 동정심이란 어떤 결론에 이르게 함으로써 심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정심 자체가 결론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동정심 호소는 자주 사회적 역자들을 동정하지 않으면 비인간적이라는 주장을 펴 주장을 인정하도록 한다.[7]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논리적인 사람이 동료에 대한 동정심이 없는 메마른 사람이 아닌 점이다. 논증에서 '''아무런 논거가 없는 상태에서 동정심 하나만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오로지 동정심만으로 설득하고 논리를 펼치는 것은 결코 건전한 토론과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2.3. 그릇된 권위에 호소하기 (appeal to unqualified authority) ✓
한 전문가의 전문분야 밖의 문제에 대해 그 전문가의 의견에 호소하는 경우를 말한다. 해당 분야에 공신력 있고 전문적인 권위가 있는 정보 출처가 아니면서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여기는 오류다.
적합한 권위자의 조건은:
- 어떤 분야에서 자격증이 있거나 공인된 수련 과정을 수료한 경우.
- 고려되는 현안이 그 전문가의 전문분야에 속하는 경우.[22]
- 판단결과와는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경우.
- 판단과정에서 이해당사자 또는 관련자에게서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경우.
- 그 분야의 권위자들이 현안에 일반적으로 그 사람과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23]
1. A라는 명제가 명백히 참이다.
2. P라는 전문가가 A를 거짓이라 한다.
3. B라는 일반인이 A를 참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전문가가 A가 거짓이라고 해도 A는 참이다. 이때 C라는 다른 일반인이 B를 좆문가로 매도하며 "너는 명제를 언급할 권위가 없다."라고 하면 피장파장의 오류에 해당한다. 하지만 참과 거짓을 명백히 식별할 수 있는 건 이론과학뿐이고, 이 또한 명제 증명이 끝나면 P는 A가 거짓이라고 우기는 일이 드무니까 통계적으로 P의 발언에 무게를 실어주고자 관용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헬리콥터 부모와도 유관하다.
2.4. 재력에 호소하는 오류(Appeal to wealth)
어떠한 상품이나 상황 따위를 금전적인 가치로만 판단할 때나, 돈에는 옳음의 척도가 있기에 무조건 금전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들의 말은 옳다고 생각 할 때 이 오류가 발생한다. 어쩌면 합당한 논증이 될 수 있겠으나, 그런 경우가 아닐 때는 이 오류가 발생한다. 그릇된 권위와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권위의 기준이 재력일 뿐.
2.5. 힘에 호소하기 (appeal to force) ✓
어떤 결론을 받아들이도록 하고자 힘에 호소하는 것으로, 힘 있는 사람이 어떤 것을 주장하거나 요구한다고 그 사람이 가진 힘이나 위력 때문에 그것을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일 때 발생하는 오류다. 주로 언어폭력이나 물리적 폭력을 쓰는 경우가 많다. 맞을 짓을 운운하는 태도, 고문과 '협박' 등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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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군중에 의거한 논증(Argumentum Ad Populum)
말 그대로 결론을 뒷받침할 전제와 근거 부분에 군중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많은 군중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옳거나 좋다고 결론을 내리는 오류이다. 이를 감성팔이나 선동 등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문제라고 보기도 하는데, 본질적 문제는 '모든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므로 옳다. 그런데 너는 뭐라고 다른 소리를 하느냐.'라는 머릿수로 누르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다수결이면 몰라도 전체주의로 발전하면 굉장히 위험하다. 이 때문에 좀 더 노골적으로는 '다수의 호소', 또는 '주류의 호소'라고도 부른다. 이 과정에서 통계도 이에 악용된다. 선동 등이 언급되는 것은 이쪽이 다수다라는 것을 허풍으로라도 보여주기 위해서 언급하는 것이지, 선동을 통해서 소수를 다수로 만들려는 것이 본질은 아니다.
다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반대로 편을 들어준 것처럼 보이는 다수의 진솔함과 그 의견의 공신성이 부정되도록 만드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침묵하는 다수 개념과도 연관되어 있다.
2.7. 중도에 의거한 논증(Argumentum Ad Temperantiam)
어떤 사람이 중도라고 커밍아웃을 한다 해도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논거 자체가 모두 중립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즉, 이 오류는 자신이 중도임을 밝히고, 그것을 빌미로 중립적인 논거로 착각하게끔 (상대의 심리적인) 흐름을 이끌 때 해당한다.
"난 중립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얘 말이 옳아."는 명백한 중도의 오류이다. 자기가 평상시에 중립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해도, 이 진술에는 한해서 명백한 오류가 된다. 단, "철수는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잘못된 거 같고, 영희는 잘못되지 않았어. 그런데 영희도 이런 부분에 잘못이 있네."는 중도의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다. 부분적으로 지적하면서 합당함을 이끄는 것이 중립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양측에 모두까기(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잡았다고 그 사람은 전체적으로 보기에 중도일 수도 있겠지만, 부분적으로 반대나 찬성 입장을 내놓은 경우에는 한해서 중도라고 할 수 없다. A, B가 아닌 C라는 다른 입장이 있을 뿐이다.
2.8. 유머에 호소하는 오류(Appeal to ridicule)
유머에 호소하는 오류는 사랑, 쾌락, 재미 때문에 논지를 받아들이게 하거나 부적절한 유머로 상대방의 논지를 호도하는 오류다.
2.9. 새로움에 호소하기(Appeal to novelty), 전통에 호소하기(Appeal to tradition)
2.10. 원천봉쇄의 오류
해당 문서 참조.
3. 사실과 가치 혼동
3.1.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
기술문인 전제에서 규범문인 결론을 도출해서 생기는 오류다. 이 추론은 모든 경우에 거짓은 아니지만 모든 경우에 참도 아니며, 이러한 논법이 논리적인 추론으로서 유효하다면 개혁이나 변경은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 허용되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아래 예문의 첫 번째 발언은 "인류는 많은 전쟁과 살육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논리구조가 비슷하다. "~이다"라는 관찰사실에서 "~여야 한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없다(존재로부터는 당위가 도출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흄의 법칙이라고 하며, 이러한 오류를 Is-ought problem(~이다-~여야 한다의 혼동, 존재에서 당위 유도)라고도 한다. 전통이나 과학적 사례에 호소하는 오류와 함께 범해지는 경우도 많으며, 논점일탈의 오류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생물학적 진화론이나 진화심리학과 같이 자연과 인간의 도덕 윤리가 접점을 이루는 분야에서 이런 오류가 자주 발생하며, 오늘날의 많은 사회적 이슈들에서도 이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사회진화론이나 우생학 그리고 식민사관은 존재 자체가 자연주의의 오류나 다름없다. 주로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성소수자 차별주의자들의 논변 중 적지 않은 수가 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발간해 인간이 유전자라는 프로그램을 보존하기 위해 동작하는 기계임을 설명했다. 그 책을 보고 인간의 본능, 감정, 심지어 선행까지 모두 유전자의 명령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고 염세주의로 흑화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책의 끝에서 인간의 이성은 유전자의 폭정을 이겨낼 수 있다며 자연주의의 오류를 겪는 사람들에게 극복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도킨스는 인간이 유전자에게 지배 받고 있는 것을 사실로 해석했지만, 한편 이성을 가진 인간은 이를 이겨내 자유로울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 오류가 상당히 골치아픈 문제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꽤나 자주 범해지는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오류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이다. 특히 프리드리히 니체나 J.L. 맥키의 주장을 인용하는 도덕적 가치 부인론자들, 또는 토마스 홉스 등의 사회계약론을 계승한다고 자칭하는 부류들은 “애초에 도덕이란, 인류가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낸 발명품에 (내지는 인류의 생물학적 발달과정에서 탄생한 보편적인 생태적 습성)에 불과한 것인데, 사실과 독립적인 가치판단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게 무슨 소리냐?”라고 반문하며, 자연주의의 오류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비슷하게 많이 범해지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그래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오류임이 명백하지만 , 자연주의의 오류는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툭하면 '섭리'니 '본능'이니 하는 말로 포장되다보니 더더욱 설득력을 갖게 된다.
즉,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생물의 본능적인 법칙이라고 해도,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모성애 문서의 비판론에서 주장하듯이 자식에게 애정을 갖고 돌보는 모성애가 생물의 본능이라고 해도, 이를 따를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이건 부성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논리적 오류가 그렇지만, 어떤 주장이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한다고 해서 그 주장에 반대되는 다른 주장이 자연주의의 오류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님에도 심리적으로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기 쉽지 않다. 가령 이 뒤에 나올 첫 번째 예시에서도, 갑의 주장만 '''따로 떼어놓고 비판하는 경우''' 알게 모르게 을의 입장에 동조하기 쉬워지지만 둘을 놓고 보면 결국 번지수를 잘못 찾은 근거를 들었다는 것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자연주의의 함정의 경우에 이런 함정에는 아주 빠지기 쉽기 때문에, 아래의 예시를 읽어볼 때에도 반대 사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자연주의의 오류는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조지 무어가 처음 본격적으로 정립하고 중요하게 다루었으나, 그 이전에도 이러한 논리적 오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한 철학자들이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 등이 그 예인데, 그 중 데이비드 흄이 주장한 것이 유명하다.
3.2. 도덕주의의 오류 (Moralistic fallacy)
규범문인 전제에서 기술문인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 생기는 오류이다. 위의 자연주의 오류와는 방향이 반대인 오류. 이 쪽은 가치 판단을 이유로 사실 판단마저 긍정 또는 부정을 강제로 이끌어내는 유형이다. 도덕률은 정언적 명령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그 정언명제가 참인 경우에 나오는 결론은 윤리적 강제력을 띠는 구조가 된다. 이 주장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와 논리 구조가 비슷하다. 참고로 이 도덕주의의 오류는 양상 논리 체계에서는 형식적 오류로 환원될 수 있다. 어떤 일에 당위성이 있다는 이유로 그것이 현실임을 주장하는 것은 양상 논리 추론의 형식적 오류에 해당한다.
상술한 특성 상 자연주의적 오류를 뒤집으면 도덕주의적 오류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 과거에는 자연주의적 오류가 더 부각되었다면, 정치적 올바름이 과도하게 부각된 근래에는 자연주의적 오류만큼 흔하게 드러나는 오류가 되었다. 사실 판단으로 도덕 가치 판단을 이끌어내는 자연주의적 오류가 주된 다수자, 보수주의자들이 범하는 경우가 많다면, 도덕 가치 판단으로 사실 판단을 이끌어내는 도덕주의적 오류는 숫적으로 적은 소수자, 진보주의자들이 범하는 경우가 많다.
4. 기타
4.1. 희망의 오류 (Wishiful thinking)
단지 희망한다는 이유으로 합리화하는 것.
4.1.1. 반(反)사실적 가정의 오류 (Counterfactual conditional)
사실이 아닌 단순한 가정을 논거로 내세움으로써 범하는 오류다. 당연하지만, 가정을 근거로 하는 추론에서 유도된 결론은, 그 가정이 정당화 되는 정도 '''이하'''로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이하"에 볼드체를 쳤음을 주목하라. 가정에서 출발한 논거는 기껏해야 그 가정이 정당한 정도만큼 정당화 된다.)
이 오류와 관련이 있는 넌센스 퀴즈 문제로 "만일 스탈린이 지금도 살아 있으면 과연 어떻게 될까?"라는 문제도 있다. 이 문제의 정답은 "그의 무덤이 없다."이다. 그 상황이라면 확실한 게 이 정도[33]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 확실하게 하려면 "그의 시신이 묻힌 무덤이 없다" 정도가 있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은 이 오류를 설명하기 좋은 명언이다.
4.1.1.1. 미끄럼 논증 (Slippery Slope) ✓
기울어진 운동장과 비슷하다. 앞에서 말한 반사실적 가정을 연속적으로 범한 것으로, 어떤 행위나 사건을 특정한 결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단계들 중 한 단계라고 가정함으로써 범하게 되는데, 원인과 결과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그 사이에 수많은 관계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면 이 오류로 이어지게 된다. 비유하자면, 차량이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면 부산으로 가기까지 수많은 나들목과 분기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그 차랑의 목적지가 부산일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과도 같은 꼴이다. 이와 관련된 이론으로 나비효과가 있다. 정치 면에서 극단주의자들이 이런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사회의 변화 양상에 대해 이 오류를 범한 논리로 대하며 사회의 변화 자체를 일체 부정/반대하거나, 거꾸로 무조건 긍정/진리로 여기는 것이다. 아래의 사형제에 대한 예시도 이와 관련이 있다. 또한 사학에서 가정은 의미 없다고 선을 긋는 것도 이 오류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가정은 가정일 뿐 역사의 흐름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다.
4.1.2. Ad Hoc
반박하는 증거가 나왔을 때도 그 증거를 무시하기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서 발생하는 오류이다. 이게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도 증명 및 반증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주장하는 게 사실일 가능성도 낮기에 때문에 반사실적 가정의 오류에 포함된다. 보통 이 오류는 그저 반대를 하기 위해 '''의문문'''으로 특수한 가능성을 제기하거나 상대에게 '''역질문'''하는 논증을 취한다.
4.1.2.1. 주의 사항: Ad hoc의 남발
예를 들어, 어떤 이론체계가 그것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Ad Hoc에 머물렀다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Ad Hoc이 성립하려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실 부정을 위한 반대를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외치는 '''논증''' 형식을 띠어야 한다. 그것이 가설 단계에 머무른다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이론체계와 다른 방법에 의해 증명 또는 반증된 것은 과학적 '증명'이지 Ad hoc이 논파되었다고 볼 수 없다. 아래는 '반사실적 가정의 오류', 'ad-hoc'으로 오해할 만하지만 논증이 아닌 사례에 불과하므로 오류가 아니다.
4.1.3. 의도확대의 오류 (False effect)
이 오류 논증은 '의도한다', '바란다', '희망한다', '믿는다', '생각한다' 등과 같은 지향적 태도와 관련된 오류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자신의 의심이 조건 없이 맞다고 믿는 태도로도 볼 수 있다.[49] 아래 예시 참고. 정신적 외상 등으로 사람의 사고가 편협해지는 것과도 연관성이 있다.
독일 장교와 마주 앉아 여행을 하고 있는 유대인이 있었다.
유대인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문 뒤 성냥불을 붙이려고 하였다.
그때 독일 장교가 벌떡 일어나 유대인이 입에 문 담배를 낚아채 문 밖으로 내던졌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기차 안에서는 금연이란 것도 모르오?"
"하지만 아직 불도 붙이지 않았습니다만."
"'''예비 행위'''도 금지되어 있소."
유대인은 독일 장교의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
그런 후 얼마나 지났을까, 독일 장교가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 펼쳐 들자
이번엔 유대인이 그 신문을 낚아채 창 밖으로 버렸다.
"아니 당신, 미쳤소이까? 감히 내 신문을 뺏어서 버리다니!"
"기차 안에서 '''볼 일을 보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난 그저 신문을 펼쳤을 뿐이란 말이오!"
"'''예비 행위'''도 아니 됩니다, 장교님."
─탈무드
4.2. 발생적 오류(Genetic Fallacy) ✓
그 사이에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적절한 변화는 무시하고 이전의 어떤 한 순간으로 사람 또는 사물에게 적용하는 오류 논증이다.
4.3. 사람에 호소하는 오류 §[52]
- 인신공격의 오류와 동격에 놓기도 하나 인신공격의 오류는 '반박' 목적에만 한정되어있다. 반박뿐 아니라 '옹호' 목적까지 포함한 것을 '사람에 호소하는 오류'로 본다.
4.3.1. 인신공격의 오류 (Abusive) ✓
- 일상적인 뜻에서 쓰이는 인신공격과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므로 문서를 열람하여 구분하기 바람.
4.3.2. 피장파장 (Tu Quoque) ✓
4.3.3. 특수 환경 공격 (Circumstantial) ✓
[1] 1987. 6. 논리학의 기초 (스티븐 바커)의 역저[2] 따라서 '적재(Loaded)의 오류'라고도 한다. 이런 용도로 쓰기 위해 단어를 새로 만들거나 낯선 단어를 끌어와서 쓰는 것을 '설득적 정의'로 부른다. 그 자체로는 수사법의 일종일 뿐이니 오류가 아니지만 논쟁을 감성적으로 자기한테 유리하게 끌고 가면 문제가 된다.[3] 실제로는 폭격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고, 오폭으로 인하여 일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으나 큰 피해는 없었다는 뜻이다. 로버트 J. 굴라, 「논리로 속이는 법 속지 않는 법」, 이경석 김슬옹 옮김, 모멘토(2009), 64p.[4] '획득'이나 '정복'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말로 획득한 영토가 본래 자기네 땅이었다고 생각하게 하고 있다. [5] '어른', '성숙'이라는 말을 써서 근거 없이 '반대자는 유치한 생각의 소유자다'라는 선험적인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다.[6] 이력서 종교 항목에 자신의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구태여 언급하고 호의를 표방함으로써 자신과 종교가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지지를 유도하고 있다. 참고로 해당 표현은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 지원자 이력서에 적혀있었다. 단, 해당 프로그램은 예능의 성격을 띤 교양 프로그램이었다.[7] 사회적 문제에 대한 주장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이를 쓰기도 한다.[8] 결국 김두한은 심영의 어머니를 보고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라 백지 전향서에 서명하는 선에서 그친다. 김두한 曰 "네 어머님이 아니었다면 '''너는 오늘 시체가 됐을 것이다.'''"라고... 만약 심영의 어머니가 심영을 찾아오지 않으면 심영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9]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고발장. 이 문구는 감정이 실린 말을 사용하는 오류(Loaded Language)와도 연계된다. 이 말만 가지고 성고문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면 오류를 범하게 되지만, '''진실 여부를 가리는 수사'''를 촉구하는 고발장에 담긴 말이므로 오류라고 보기가 어렵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피해자의 단순한 증언 이외의 증거가 있었고, 유죄가 선고되었다.[10] 2017년 1월 2일자 《주간조선》2439호. 박근혜 탄핵 인용이 되기 전에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을 두고 조갑제가 주간조선에 기고한 글이다. 조갑제 문서 참조.[11] 사실, 관우는 촉나라 장군이고 제갈근은 공명의 형일 뿐 다른 나라 사람이었던 데다가 당시 촉과 오의 관계가 미적지근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관우가 제갈근의 가족이 어떻게 되든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12] 만화에서도 볼드체로 표기되어 나온다.[13] 실제로 전두환의 백담사 기거 시절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인근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다[14] 이 방법으로 운을 띄워 놓았지만 그 연구보고서가 정작 자신이 말하고 있는 분야에서 나온 연구보고서가 아닌 경우가 이 오류에 해당된다. 이렇게 말해 놓으면 이런 오류를 저지르는 사람이 정말로 멍청이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이 오류가 발생할 때는 이 오류를 아주 교묘하게 숨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놈 촘스키 참고.[15] 바리에이션(?)으로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등도 있다.[16] 김영란 씨는 해당 법률을 발의한 법조인일 뿐이고 교육 분야에 대한 전문 이력이 전혀 없었으므로 논거가 되기 어렵다. 김영란 “4년 후만이 아닌 미래 교육을 위한 공론화 과정될 것”, 그러나 그간의 이력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교육 분야입니다(최강욱曰). [17] 당연한 이야기지만, FBI는 옥매트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물론 이 광고의 주 목적은 알바몬에서 제대로 된 알바를 찾으라는 것이지만, 다단계 판매 업체가 유명하고 권위 있는 단체 이름을 팔아먹는 것도 간접적으로 풍자하고 있다.[18] 특허 자체에는 권위가 있다. 하지만 그 특허가 "'''실제로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느냐?'''"는 별개 문제다(특허는 이용 가능성, 신규성, 진보성이 있는 발명일 것을 산업상으로 요하지만 품질은 묻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특허는 '''품질을 보증하는 Q마크'''가 아니다). 문제는 특허의 권위 때문에 그 물건이 필요한지와는 관계없이 '역시, 특허를 취득했단 말이지! 분명히 좋은 거야. 특허청에서 괜히 인정했을 리가 없지!'라며 지갑을 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19] 선배의 판단이라는 이유만으로 옳은 판단이라는 뜻으로, 특히 대한민국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형만 한 아우 없다'의 그른 예이기도 하다.[20]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에서 시저가 그의 아들 푸른 눈에게[21] 사랑의 불시착에서 윤세형이 아버지 윤증평에게[22] 예를 들어 위 옥매트 광고에 FBI가 아닌 FDA가 들어갔으면 오류가 아니게 됐을 것이다.[23] 본인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전문가들 대부분이 비슷하게 내놓는 의견에는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24] 우치다 타츠루 「어른 없는 사회」, 김경옥 옮김. p137~138. 민들레(2016) [25] 나이는 '시대상황'적인 부분에서 신뢰성을 보장한다. 가령 8~9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 "내가 어렸을 때는 겨울마다 한강에서 스케이트 타고 놀았어."라고 하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물건과 고전게임 따위도 마찬가지이다.[26] 여기서 종교시설은 단지 장소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27] 실제로 리처드 도킨스은 자신의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기독교의 지옥 개념 자체가 아이들에게 정서적 폭력으로 작용했다는 사례를 들고 있기도 하다.[28] 에초에 이러한 논쟁중 자연의 섭리같은 말은 반박이나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29] 실제로 일감 몰아주기나 단가 후려치기를 하는 대기업 인사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말로서 저런 말을 단골로 써먹는다.# 또한 이는 전통에 호소하는 오류에도 포함된다. 사실 이 변명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30] 호주제 자체는 비판 거리가 차고 넘쳐, 성별 담론이 제대로 사회 문제로서 자리잡기도 전에 폐지된 제도다. 다만 이런 근거는 비합리적인 것이다.[31] 정작 이 글을 쓴 이규보는 토실을 허물어서 나온 나무로 '''자기 방에 땔 땔감'''을 마련했다고 한다(...) [32] 이 문장은 겉보기에는 사실의 진술로 보이나, 실질적인 의미에서는 그런 거 없는 규범문이다. 사람이 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이 있는가? 아니, '''"평등하다"라는 말에 대해 모든 사람이 합의하는 기준이 있는가?''' 오히려 이 문장은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하므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규범문으로 해석할 때 본래의 의미가 드러나는 문장이다. 바로 이런 문장을 논리에 끼워넣은 경우 도덕주의의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33]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의 무덤을 만들 리는 없다. 옛날 전제군주들은 살아 있을 때 무덤을 만들었지만 현대에 이런 사례는 없다.[34] 인간의 뇌는 10%만 사용된다 문서를 열람하면 알 수 있겠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은 유사과학이다. 하필 이걸 뇌과학과 인연조차 없는 아인슈타인이 말했다고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더욱 잠재우기 힘든 편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이는 어쩌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10%만 쓸 수 있으면 '''장애인'''이 된다. 설령 10%만 쓴다치더라도 밑줄친 부분 자체가 이미 반사실적 가정이다. [35] 정당화 되지 않은 가설, 성경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한다.[36] 잘못된 신을 믿었다고 더 심하게 벌 받을 수도 있다. 즉, 성경에서 언급하는 야훼를 믿었더니, 저승에 가서 만난 신이 힌두교의 시바 신일수도 있다는 얘기다(...).[37] 일본의 속담. 모래바람이 불면 모래가 눈에 들어가 눈병을 앓는 사람이 많아지고, 눈병을 앓는 사람이 많아지면 시각장애인도 늘어나고, 시각장애인이 늘어나면 그들이 연주하는 샤미센의 수요도 늘어나고, 샤미센은 고양이 가죽으로 만들기에 샤미센의 수요가 늘어나면 고양이가 줄어들고, 고양이가 줄어들면 쥐가 늘어나고, 쥐가 늘어나면 그 쥐가 체를 갉아 못쓰게 만들고, 그렇게 되면 체의 수요가 늘어나 체장수가 돈을 번다는 뜻. [38] 바리에이션으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면 학교가 동성애자와 미혼모로 들끓게 된다"도 있다. 또한 성소수자 인정하면 근친상간, 수간으로 비화된다는 주장도 있다.[39] 위의 모래바람~체장수 이야기와 유사. 물론 이건 의도적으로 웃기기 위한 것이다.[40] 이쪽은 실제로는 오류와는 관계가 없지만, 이 이론을 왜곡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연쇄반응의 오류로 느끼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41] 유려한 렌틀러(왈츠 비슷한 춤곡)식 가곡인데, 대략 본인의 금 반지를 라인강에 던지면 그것을 물고기가 먹을 테고, 그 물고기를 누군가가 잡아서 왕의 식탁에 올릴 테고, 왕이 생선을 먹다가 이 금반지 누구 금반지냐고 물어볼 테고 그때 자신이 나서면 자신과 왕이 이어질 테니까 금 반지를 라인강에 던지겠다고 주장하는 내용. 그나마 열린 결말이지만 반지를 물고기가 먹어 봤자 그 물고기가 왕께 바쳐질 확률은 희박하다.[42] 인공지능의 초고속 자가진화와 초지성의 잉태 등을 예언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43] 좋은 대학에 가도 취업이 안 돼서 고시낭인 신세되는 경우도 많으며, 좋은 직장에 갔어도 무능하면 돈을 많이 벌기도 전에 잘리며, 부자에 번듯한 직장 있고도 가정이 파탄난 사람들이 많다.[44] Ad hoc이 되려면 이 가설에 반대하기 위해 로렌츠-피츠제럴드 수축 이론을 발표한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떼쓰는 논증을 했다는 예문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서 반대하기 위해 논증하는 것이 Ad hoc이지 사례 자체는 Ad hoc이 아니다.[45] 차이가 생겼다면 설명 방식에 있다. 로렌츠는 이를 원자의 수축으로 보았지만, 상대성 이론의 등장으로 이는 공간의 수축인 것으로 밝혀졌다.[46] Ad hoc이 되려면 이 가설에 반대하기 위해 전자기장을 처음 고안해낸 사람의 주장이 과학적 증명 없이 추측만으로 떼를 쓰는 논증을 펼쳐야 Ad hoc이 된다.[47] 이 업적으로 헤르츠는 '''SI 단위계 안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었다.''' 진동수를 세는 단위인 헤르츠 (1초당 진동 횟수) 가 바로 이 사람의 이름에서 나온 것.[48] 중력장은 아직도 이게 안 되고 있다. '''아이작 뉴턴이 물리학이라는 학문을 처음으로 만든 계기가 된 바로 그 물리현상이 중력임에도!!!''' 그래서 물리학자들이 중력자 및 중력파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 지금도 피똥을 싸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2016년 초 중력파가 실재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실험 데이터가 공개되었을 때 전세계가 떠들썩했던 것이다.[49] 유죄추정과 마녀사냥 문서도 참고하자.[50] 과실범 참고.[51] 다만 이런 것이 틀린 행동일 수도 있으나, 반대로 몇몇 개인의 입지가 대다수에게 영향을 미칠 만큼 커질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거시적인 관점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까지 의도확대의 오류로 싸잡아 일컫는 것은 별로 건강하지 못한 자세이다.[52] 1987. 6. 논리학의 기초 (스티븐 바커)의 역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