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실존 인물
1. 한국
- 경대승 - 빼어난 용모를 지녔다고 한다.
- 기탁성 - 용모가 단아했다는 기록이 있다.
- 김춘추 - 화랑 출신에 삼국사기에 영준하고 늠름한 외모라고 기록되어 있는 등 용모가 영특하고 늠름하다, 얼굴이 백옥같다던가 신선같다는 등 용모가 아름답다고 언급 및 묘사한 기록들이 한중일 삼국에 모두 다 나와 있다.
- 김유신 - 화랑 출신이다.
- 김준 -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용모가 늠름했다고 한다.
- 김홍도 - 조희룡이 쓴 호산외기란 책에 따르면 김홍도는 원래 얼굴이 시원하게 잘 생기고, 성품이 고왔으며 기상이 크고 소탈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신선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다고 쓰여 있다. 홍신유가 쓴 금강신사에서도 그 생김생김이 빼어나게 맑으며 훤칠하니 키가 커서 과연 속세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게다가 스승인 강세황도 김흥도의 외모가 눈매가 맑고 용모가 빼어나다며 칭찬하는 글을 남겼다.
- 광종 - 용모가 상당히 수려했다고 하며 키도 188cm에 달했다고 한다.
- 관창 - 사기에 따르면 용모가 우아했다고 한다.
- 금의 - 고려의 문신으로 체격이 훤칠하고 용모가 뛰어났다고 한다.
- 능창대군 - 정사인 광해군일기에 그의 외모가 훤칠하다고 언급되었다.
- 박순필 - 잘생기고 수염이 아름다웠다는 기록이 있다.
- 무령왕 - 사기에 따르면 눈과 눈썹이 그린 것 같다고 하는데 눈과 눈썹이 그림같다는 말은 예로부터 미남을 칭하는 단어중 하나다.
- 무왕 - 사기에 풍채가 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 문무왕 - 부모인 김춘추와 문명왕후를 빼닮았는지 삼국사기에 용모가 영준하며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 문종(조선) - 실록에 미남이라고 적혀있으며 외모가 명나라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는지 세종실록에 사신과 연회하는 도중 태평관이 10세인데도 용모가 옥처럼 부드럽고 음양과 보추가 예절에 맞아 칭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 사다함 - 신라 진흥왕때의 화랑. 삼국사기를 보면 외모가 청수해 화랑으로 떠받들여졌다고 한다.
- 서흥후 왕전 - 고려 후기의 왕족으로 원종의 손자이다. 상당한 미남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유응규 - 얼굴이 매우 아름다워 옥인(玉人)이라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 이항복 - 야사에 따르면 키는 많이 작아도 외모가 너무 뛰어나서 밖에 나가면 여자들이 다 쳐다보는 바람에,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다가 그게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백사집에 따르면 신장은 보통은 넘지 못했으나 외모가 걸출하고 풍채가 단정했다고 한다.
- 이덕형 - 외모가 뛰어나서 그가 조정에 출사하러 집을 나설 때면 태양이 두 개가 뜬다고 할 정도였다.
- 이석 - 봉녕군의 서자로 실록에서 풍채가 크고 훤칠하다고 언급되었다.
- 이자겸 - 북송의 관리이던 서긍이 사신을 따라 고려에 왔다가 견문록인 고려도경을 남겼는데, 여기서 이자겸에 대해 풍채가 맑으며 어진 이를 반기는 온화한 성품을 지닌 자라고 평했다.
- 이행원 -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이자 우의정. 실록에서 그를 가리켜 "외모가 아름답고 긴 수염을 가져 풍의(風儀)가 훤칠했으나 본디 쓸 만한 재능이 없었다"고 명시했다. 즉 내세울 게 얼굴밖에 없었단 소리다.
- 류성룡 - 실록에 따르면 선조가 그를 가리켜 "금옥처럼 아름다운 선비"라고 한 적 있으며 일본과 명나라에서도 미남이라고 칭찬을 지겹게 받았다고 한다. 야사에 너무 잘생겨서 여자들이 난리치는 바람에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고... 참고로 이분의 직계 후손이 배우로 일했었다.
- 조광조 - 야사에 따르면 세수하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너무 곱상하다며 "이게 어찌 남자의 얼굴이냐"고 한탄했다고 한다. 또한 동춘당집에는 그의 용모를 사모한 이웃집 여자가 담을 넘어 그의 집에 들어오자 그는 예의도 모르냐며 그 여인을 혼내고 종아리를 쳐 쫒아냈다는 기록이 있다.
- 척준경 - 용모와 골격이 범상치 않았다고 한다.
- 최의 - 집권 이전에는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집권 이후 살이 많이 쪄서 역변했다고 한다.[1]
- 호동왕자 - 기록에 따르면 얼굴이 수려해 부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며, 아예 이름 자체가 수려한 남자란 뜻. 낙랑궁왕 최리가 얼굴만 보고 처음부터 귀한 집 자제라 생각했을 정도다.
- 효명세자 - 순조실록에 따르면 고귀한 분위기에 이마가 불룩 튀어나오고 용의 눈동자를 하고 있어 전체적인 외모가 매우 뛰어나고 아름다웠으며 주변사람들로부터 정조와 판박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 홍국영 - 심낙수의 '은파산고(恩坡散稿)'라는 기록에도 '눈치가 빠르고 민첩했으며 얼굴 생김새가 준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 홍국영을 가리켜 ''저 잘생긴 얼굴로 내 아들(정조)을 홀린게 분명하다.", "동궁(정조)이 그를 아끼는 것이 마치 첩에 취한 사내 같다"라고 서술했고 승정원일기에서는 눈이 나쁜 영조가 홍국영이 어떻게 생겼냐고 신하에게 물으니 승지가 그의 외모를 가리켜 매우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고 답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 화랑 - 원래는 신라 최고의 미녀인 원화를 뽑아 남정네들이 그 여인을 따르게 하는 제도였으나 1대 원화인 준정이 또다른 원화인 남모를 술먹이고 익사시켜 죽인 사건이 벌어진 후로 곱상한 미소년만 뽑아서 쓰는 제도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화랑세기>에 보면 1대 위화랑에 대해 '공의 얼굴이 백옥과 같고 입술은 마치 붉은 연지와 같고 맑은 눈동자와 하얀 이를 가졌는데, 말이 떨어지면 바람이 일었다'라고 표현돼 있다.[2]
- 효종 - 아샤에 따르면 미남이라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자뻑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 연산군 -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그 폭군 맞다. 키만 크고 외모는 별로였던 아버지와 달리 키 크고 가녀린 체구에 피부도 고운데다가 한 선비가 왕 앞에서 왕이 너무 여자같이 생겼다고 말해 귀양을 갈 만큼 외모도 여자같이 곱상하게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야사에선 그의 외모에 반해 흥청에 지원한 여성도 꽤 많았다고 한다. 부친인 성종의 외모는 거구에 우락부락한 체형이었으므로 이런 외모는 모친인 폐비 윤씨에게서 유전된 걸로 추측된다.[3]
- 유행간 - 고려시대 인물로 목종의 동성 애인이었다. 기록에 그의 외모가 아름다워서 목종이 그를 남색 상대로 삼고 총애했다고 적혀있다.
- 유충정 - 고려시대 인물로 발해 유민 출신이다. 외모가 수려해 목종의 애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 자제위 - 개인이름이 아닌 공민왕이 만든 미소년 시종집단이다. 다만 이쪽은 진위여부 논란이 있다.
- 정조 - 아들인 문효세자[4] 가 굉장한 미남이라는 가록이 실록에 있는데 효명세자는 정조와 판박이였다고 한다. 정조가 직접 쓴 일기인 일성록에서는 영조가 생전에 정조더러 너는 타고난 외모가 탁월하니 이는 나라의 무궁한 복과 다름없다는 칭찬을 했다고 한다
- 정약용 - 기록에 따르면 남자답지 않게 피부가 희고 단아하게 생겼다고 하며 정조가 그의 얼굴을 가리켜 아름답다고 언급했다고 한다.[5] 그래서인지 실제로 현 직계 6대손도 배우로 일하고 있다.[6]
- 정중부 - 비범한 외모를 가진 거구의 미남이었다고 한다.
- 헌종(조선) - 아버지를 쏙 빼닮고 아름다운 외모에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한다.
- 박영효 - 조선시대 영혜옹주의 남편이자 철종의 사위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다. 갑신정변의 주역 중 하나로 기록에 따르면 그의 외모가 고대 중국의 미남 중 한 명인 자도처럼 예쁘고 그림같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철종이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다고 한다.
- 선조 - 선조실록에 외모가 청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 태조 왕건 - 고려의 초대 왕. 용모가 훤칠하며 잘생겼다는 기록이 있다.
- 한명회 - 실록에서 키가 큰 미남이라고 기록된데다가 야샤인 신도비명에선 "얼굴이 잘나고 키가 커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대하였고, 규모와 기개가 우뚝 서 무리에서 돋보였다"고 적혀있다고 한다.
- 주몽 - 사기에 "빼어나고 기이한 골격과 외모를 지녔다"고 기록되어있다.
2. 중국
- 반악 - 서진 시대의 문학가로, 중국역사 속 가장 유명한 미남이자 미남의 대명사 중 하나. 한번 외출을 하면 그를 따라다니는 여성들이 주는 과일과 꽃을 수레에 가득 싣고 돌아온다 하여 “척과영거(擲果盈車)” 라는 말을 만들어 낸 사람. 미남의 대명사가 되어 잘생긴 남자를 표현할 때는 항상 “모사반안(貌似潘安)” 즉 “용모가 마치 반안(반악)과도 같구나.”라고 했었다
- 하후담 - 서진시대의 문학가로 딸린 옥이란 이명을 얻을 만큼 외모가 뛰어나 반악과 함께 중국사의 대표적인 미남으로 손꼽힌다.
- 송옥 - 중국 고대 시인으로 미남의 대명사 중 하나. 굴원의 제자로 알려진 초사의 명인으로 특히 그의 작품 <구변(九辨)>은 굴원의 <이소>와 함께 이대 초사 걸작으로 칭해진다.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아름답기가 송옥과도 같구나!” 라는 ‘미여송옥(美如宋玉)’ 의 문구를 볼 수 있을까?
- 고장공(난릉왕) - 중국 남북조시대의 북제(北齊)의 황족이며 무장. 목소리가 좋은데다가 너무나 섬세하고 마치 여인과 같은 아름다운 용모로 인하여 적이 겁을 먹지 않는다 하여 항상 무시무시한 투구를 쓰고 전쟁에 임했다고 한다.
- 미자하 - 춘추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며 고사성어인 여도지죄의 주인공. 기록에 따르면 위나라의 영공은 미소년들을 시중으로 데리고 다녔는데 그중 미자하가 제일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공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영공이 얼마나 그를 사랑했냐면 그가 모친이 아프단 소식을 듣고 멋대로 왕의 수레를 타고 간다던가[7] 왕에게 자신이 먹다 남긴 복숭아를 주는 등 당시 상황으로선 사형을 내려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중죄를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영공은 효자에 속정이 깊다라고 칭찬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그의 미모가 시들해지자 영공의 총애가 옅어지기 시작했고, 미자하에게 잔소리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하며 결국 영공은 복숭아와 수레일을 꺼내 그를 쫒아냈다고 한다.
- 동현 - 중국 전한의 정치가로 자는 성경이며 전한의 13대 황제 애제의 남첩이다. 외모가 아름다워 애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애제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나면 동현과 애제가 같이 잠이 들었다가 애제가 먼저 깼는데 자신의 소매를 깔고 잠든 동현을 깨울 수 없어 칼로 자신의 옷자락을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로 인해 생긴 고사성어가 옷소매를 자른다는 뜻의 단수지벽(斷袖之癖)인데 현재 남자간의 동성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고사성어로 남았다.
- 위개 - 진나라의 현학자 집안의 선비. 그는 마치 보석이 주위를 감싸고 빛나는 것과 같다는 평을 들은 절세미남이었다고 한다. 외출을 하면 그의 용모를 보려고 몰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결국 그를 구경하려고 둘러싼 사람들에게 시달려 27세의 나이에 요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사람들이 ‘간살위개(看殺衛玠)’ ‘구경하느라 위개를 죽였다.’ 란 말이 생겼다.
- 유기 - 정사 삼국지 유요전에 "자태와 용모가 아름다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 유표 - 정사 삼국지 후한서 유표전에 키가 매우 큰데다가 용모가 매우 준수했으며 온화하고 위엄있는 인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손환 - 정사 삼국지에 용모가 단정했다고 기록되 있다.
- 조예 - 세실신어에 따르면 머리가 긴 미남이었다고 하며, 정사기록인 위서에는 용모가 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명제기에는 용모가 수려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참고로 조비가 그를 보고 자긴 아빠 닮아 못생겼는데 쟤는 왜 미남이냐면서 열폭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빠인 조비와 할아버지인 조조는 미남이 아닌데 엄마인 문소황후가 엄청난 절세미인이라 기록된 걸로 보아, 엄마의 미모를 물려받은 걸로 보인다.
- 제갈량 - 젊은 시절부터 신장이 8척으로 훤칠하였고, 용모가 대단히 훌륭하여 당대 사람들이 그를 특별하게 여겼다는 정사의 기록이 있다. 연의나 설화 등의 사서 외의 이야기에서도 '조각한 백옥 같은 얼굴에 신선의 자태'가 제갈량의 외모에 대한 정석적인 묘사. 친형 제갈근 역시 풍채가 당당하게 잘생겼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집안 유전자가 좋았을지도.[9]
- 제갈근 - 얼굴이 길어서 문제지 정사 삼국지에서 "용모가 있다", 즉 잘생겼다고 기록했다.
- 정보 - 정사 삼국지 정보전에서 그를 가리켜 "용모가 있었다"라고 기록했다.
- 조충 - 위서 무문세왕공전 주석 위서에 따르면 '용모와 자태가 아름다워, 무리에서 남달랐기에, 특히 총애받았다.'라고 한다.
- 주유 - 정사에서 자태가 용모가 빼어나고 건장한 체격이라고 기록되었으나, 삼국지연의에서 별명인 "주랑"이 "미주랑"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꽃미남 이미지로 퍼졌다. 그래서인지 이분의 직계 후손도 미남배우로 유명하다.
- 진평 - 진나라 말기와 한나라 초기때의 모사가이자 정치가로 사마천의 사기에 미장부,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좋아 가난한 집안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당시 사람들 대부분이 허우대만 멀쩡하다 즉 얼굴 빼곤 별 볼일 없다고 평했다고 한다. 장부는 그의 외모가 준수하단 이유 하나로 손녀를 그에게 시집보냈다.
- 장온 - 정사 삼국지에 용모가 매우 탁월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정이 - 정사 삼국지에 용모가 단정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장숙 - 정사인 익부기구잡기에 용모가 휼륭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최염 - 정사 삼국지에 자태에 위엄과 기품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 하안 - 하안별전에 의하면 엄청난 미남이었기에 밖에 나가면 구경하는 사람이 거리에 가득했으며 그를 본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신선같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여담이지만 자신도 외모를 가꾸는 것을 즐겨 늘 화장으로 떡칠을 했으며 여장을 즐겼다고 한다.
- 마등 - 정사 삼국지에 얼굴이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 맹달 - 정사에 용모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관우를 배신하고 위에 항복한 이후, 오직 잘생긴 것 하나만으로 조비의 총애를 받았다.
- 석포 - 진서 석포열전에 외모가 뛰어나다고 기록되어있다.
- 원소 - 정사 삼국지 위서 원소전에서 그를 가리켜 용모와 자태가 뛰어나며 용모가 위엄있었다라고 기록했다.
- 원상 - 원소의 셋째 아들로 《삼국지》 위서 원소전 주석 전론에 따르면 어리고 미모가 빼어났으며 외모덕분에 원소가 후계자로 삼았다고 기록되어있으며 《전론》 간참편에선 그가 어리고 미모가 빼어난 덕분에 원소의 처는 원상을 사랑하여 수 차례 원상의 재주를 칭찬했으며, 원소 또한 원상의 외모가 아름답고 기이하다고 여겼으므로 장차 원상으로 후사를 잇도록 마음먹었다라고 명시되어있다. 《전론》 에서 조비가 원상의 외모를 묘사하기론 아예 예쁠 완(婉)자를 써서 거의 미소녀급으로 묘사하고 있다.
- 이성환 - 신월중원기 신진협전에 기록돼있는 인물로, 당 태종이 그를 보고나서 천하미남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 여범 - 정사삼국지 여범전에 용모와 자태가 빼어났다고 기록되어있다.
- 관녕 - 정사 삼국지 관녕전에 용모가 매우 수려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공손찬 - 정사 삼국지에 풍채가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목소리까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서출임에도 불구하고 태수가 공손찬의 잘생긴 얼굴 하나만 보고 자기 딸을 공손찬에 시집보냈을 정도였다.
- 용양군 - 전국시대 송나라때의 인물로 위왕의 동성애인. 미남이라고 기록되었다.
- 위소왕 - 장신의 미남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송조 - 송나라때의 인물로 위 영왕의 두번째 아내인 남자의 내연남이었다고 한다. 춘추 좌씨전에 그의 외모가 아름답고 고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 자도 - 춘추시대 정나라의 인물로 동양권에서 미남의 대명사로 쓰이는 인물 중 한명이다. 시경에 그의 외모를 칭찬하는 시구절[11] 이 있으며 그 맹자가 "자도의 미모를 모르는 건 눈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란 말을 한 적 있다.
- 추기 - 전국시대의 인물로 초나라의 송옥과 같이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미남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당시 세기의 미남으로 유명했던 만큼 나르시시즘도 있었는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외모에 감탄하는 일이 일상이였다고 한다.
- 서군평 - 전국시대의 인물로 당시 세기의 미남이던 추기와 더불어 전국시대 최고 미남이라 평을 받는 인물이며 추기도 그를 보고 자기보다 더 잘생겼다며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가졌을 정도다.
- 손소 - 기록에 따르면 키가 컸으며 행동거지와 외모가 매우 우아했다고 한다
- 가남풍의 애인과 그녀가 보쌈한 남자들 - 진나라 때의 인물들. 개인이 아닌데다가 이들은 정확하게 이름이 밝혀진 바가 전혀 없어 이리 표기한다. 기록에 따르면 가남풍은 잘생긴 궁인들을 자기 침소로 끌여들이는 일이 잦았다고 하며 미소년들을 보쌈해 즐긴 후 살해해 버렸다고 한다.
- 산음공주의 면수(남첩)들 - 위진 남북조 시대의 인물들로 개인이 아닌데다가 이들은 정확하게 이름이 밝혀진 바가 전혀 없어 이리 표기한다. 기록에 따르면 산음공주가 황제이자 남동생인 유자업에게 "너는 일만이나 되는 궁녀를 거느리는데, 나는 남편 하나만 보고 살아야 하는 건 불공평하지 않나"며 불평을 했고, 이에 유자업이 그녀에게 30명의 미남을 남첩으로 선물했다고 한다. 참고로 면수는 유자업이 만든 말인데, 머리칼과 얼굴이 아름다운 미남이란 뜻이다.
- 저연: 위진 남북조 시대의 인물. 유초옥의 고모인 남군공주의 남편으로 이부랑. 자치통감에 따르면 외모가 아름다워서 산음공주가 황제의 힘을 빌려 그가 자신의 밤시중을 들게 만들었다고 한다.
- 하집 - 위진 남북조 시대의 인물. 산음공주의 본남편으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위에 서술된 저연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미남이었다고 한다.
3. 일본
- 키무라 시게나리 - 당시 큰 키에 살결이 희고 잘생긴 당대의 미남자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자 오사카 성의 시녀들이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울며 한탄했다고 한다.
- 이토 카시타로 - 에도 시대의 인물로 신센구미의 참모이다. 용모가 단정하고 친절하였으며 언변이 좋아 덕망이 높았다고 전해진다.
- 오다 노부나가 - 젊은 시절엔 여자로 착각당할 정도로 잘생긴데다 키도 매우 큰 미남이었다고 한다. 오다 가문이 본래 미남 미녀를 많이 배출하는 집안으로 유명하다.
- 지고와카슈 - 사람이름이 아니라 중세 일본[12] 의 남첩이나 창부들을 일컫는 말이다. 임진왜란 후 통신사의 일행이었던 신유한이란 사람이 남긴 해유록이란 책에서 그들을 가리켜 어여쁜 총각, 미남자라고 언급한데다가 아리따움이 여자보다도 더 곱다고 기록했다.
4. 서양
- 기 드 뤼지냥 - 능력은 부족했으나 외모는 확실히 뛰어났다고 한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나폴레옹의 주변인들 중 그를 좋지 않게 보는 인물들조차 외모는 잘생겼다고 말했을 정도. 다만 황제가 된 이후에는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고 탈모도 오는 바람에 말년에는 펭귄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 나폴레옹 2세 - 당시에 미남공작이라고 불렸다.
- 줄리아노 드 메디치 - 로렌초 드 메디치의 동생. 미켈란젤로가 세상에서 제일 가는 미남이라고 극찬한 바가 있다.
- 니콜라이 1세 - 당시 유럽 제일의 미남으로 일컬어졌다.[13]
- 라파엘로 산치오 - 기록에 따르면 미남이라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자신도 여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다재다능 했을 뿐만 아니라 키도 매우 크고 외모도 목소리도 매우 빼어났다고 한다.
- 로트프 알리 칸 -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군주였다고 기록되어있다.
- 루이 15세 - 당시 주변인들에게 유럽 최고의 미남이라는 평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 무함마드 - 그에 대한 자료에서 미남이라는 묘사가 나온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 압둘라도 당시 메카에서 제일 가던 미남이라고 한다.
- 보두앵 4세 - 외모에 영향을 주는 질병인 한센병에 걸린 군주로 잘 알려져 있기에 다소 뜻밖이지만, 그의 스승이자 십자군 시대의 역사가인 기욤 드 티레의 묘사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인 아모리 1세가 비례적으로 측정된 것처럼 보기 좋게 키가 크고 멋들어졌다는 기록이 있고 보두앵 4세는 그런 아버지의 외모와 풍채를 닮았다고 한다. 또한 그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서도 나이에 비해 잘생겼다는 표현이 있다. 따라서 적어도 병의 영향이 심각해지기 전에는 미남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샤를 앙리 상송 -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로베스피에르의 목을 자른 사형집행인. 젊었을 때 상당한 미남인데다가 머리도 똑똑해 직업사기를 치며 여자를 꼬시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 아라곤의 알폰스(비셸리에 공작) - 체사레의 두번째 처남이자 루크레치아의 두번째 남편. 당시 미남으로 유명했었다고 한다.
- 아우구스투스 -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당대의 꽃미남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게르마니쿠스 - 미남에 뛰어난 능력, 좋은 성품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전한다. 사실 게르마니쿠스 뿐 아니라 황제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를 비롯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에는 미남, 미녀가 많았다고 한다.
- 알키비아데스
- 알렉산드로스 3세
- 앨버트 공 - 너무 잘생겨서 친아버지인 공작의 아들이 아니라 친어머니인 이혼당한 공작부인이 잘생긴 유대인 정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라는 헛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미남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이 그를 처음 보고 잘생겼다며 자신의 일기장에 "푸른 눈에 아름다운 코, 하얀 치아" 등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았을 정도.
- 조아킴 뮈라 - 나폴레옹의 휘하 원수이자 프랑스 제국군, 아니 당대 유럽 최강의 맹장이었는데 이런 뮈라에게 끝장나는 게 딱 두 개였다. 엄청난 미남, 엄청난 싸움실력. 심지어 총살당할때 마저도 "난 너무 잘생겼으니까 얼굴 상하게 하지 말고 심장을 쏴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 조지 고든 바이런
- 존 바이런 - 조지 고든 바이런의 부친. 당시 미남 귀족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조지 불린 - 앤 불린의 남동생. 작은누나인 앤과 근친상간을 했단 혐의[14] 로 사형당했다. 당시 외모가 잘생긴데다가 사교성도 좋아 여성들에게 인기가 엄청 났다고 한다.
- 조지 5세
- 청년왕 헨리 - 헨리 2세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의 차남이자 사자심왕 리처드 1세와 결지왕 존 왕의 친형. 어려서부터 미남으로 유명했고 키가 동생 리처드처럼 컸다고 한다.
- 체사레 보르자 - 당시 절세미남으로 유명했다고 하며, 여동생인 루크레치아도 세기의 미녀로 이름이 높았었다.
- 펠릭스 멘델스존 -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음악실력, 사교성을 갖춘 덕분에 수많은 여성들이 그를 사모했다고 한다.
- 펠릭스 유수포프 - 그리고리 라스푸틴을 죽인 러시아 공작. 젊었을 때부터 미남소리를 많이 들었던 데다가 여장했을 때 여자보다 더 예쁜 탓에 에드워드 7세를 비롯한 남자들이 그가 남자인지 모르고 그에게 홀렸을 정도였다.
- 필리프 2세 -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라이벌로 유명한 그 인물. 존엄왕이라는 명칭이 유명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대단한 미남이었다.
- 필리프 4세 - 미남이라서 미남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 프란츠 리스트 - 매우 잘생긴 외모와 초절기교의 피아노 실력, 사교성까지 갖춰서 당대 음악계의 아이돌이었다.
- 프란츠 1세 - 당시 별명 자체가 지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피조물이었을 정도로 미모에 대한 평판이 자자했다고 한다. 다만 프란츠 1세 역시 나이가 들면서 비만이 되어 역변했다고 한다.
- 프랑수아 프렐라티 - 프랑스 중세시대의 인물로 흑마법사이자 연금술사였으며 질드레를 악마숭배자 및 연쇄살인범과 강간범으로 만든 인물이다. 질드레의 재판기록에 그를 가리켜 미남이라고 명시했다.
- 한스 악셀 폰 페르센 - 프랑스 역사서를 보면 그가 워낙 미남이라서 여자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당시의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 안티노우스 - 미남이란 기록이 상당히 남아있다.
- 프랑수아 1세
- 펠리페 1세 - 별명이 미남왕이였다.
[1] 이는 나폴레옹 1세와도 비슷하다.[2] 다만 위화랑은 실존했는지에 대해 진위여부가 있다.[3] 야사에 따르면 폐비 윤씨는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주위가 서늘해질 만큼 상당한 미녀였다고 한다.[4] 어떤 바보가 효명세자랑 문효세자를 헷갈려 했냐. 효명세자는 정조의 손자다. 순조의 고명아들.[5] "약전의 중걸한 풍채가 약용의 아름다운 풍채보다 낫다" - 다산시문집 15권중 선중씨의 묘지면에서 정조가 정약용과 정약전에게.[6] 완전히 똑같진 않겠지만 손자의 손자의 손자일 뿐이라 그리 촌수도 멀지 않고 게다가 직계인 만큼 정해인의 얼굴은 생전 정약용의 진짜 얼굴과도 상당히 판박이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7] 당시 왕이 아니거나 왕의 허락없이 왕의 수레를 타면 발뒤꿈치를 자르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8] 장비가 미남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사는 아니다.[9] 근데 이분의 조카는 미남이 아니라 상당히 개성 넘치는 외모였다.[10] 아버지께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셨기 때문이다.[11] 중매쟁이 말만 믿고 자신의 남편감이 자도같은 미남일 거라고 믿었던 여성이 실제로 남자를 만나자 실망한다는 내용이다.[12] 최소 에도 시대부터 최대 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되었을 거라고 추측된다.[13] 당시 로마노프 왕가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미남, 미녀였지만 수많은 애인을 두는 등, 사생활이 문란했다. 이때문에 품위가 없다며 다른 유럽의 왕족들에게 무시당했다고.[14] 사실 정황상 누명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