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나이츠/장비 도감/전용 장비
1. 개요
- 2016년 7월 7일 추가된 캐릭터 전용 장비 시스템에 따라 추가된 장비 목록이다.
- 영웅 초월이 3초월 이상이 되어야 장착 가능한 슬롯이 활성화된다.
- 기본 옵션은 아래 표에 기재된 범위 내에서 한 종류의 옵션이 붙으며, 여기에 특정 캐릭터 전용 옵션이 추가로 부여된다. 특정 옵션 목록은 본문에 정리된 바와 같다. 해당 옵션들은 모든 콘텐츠에 적용된다.
- 스페셜 던전 보상으로 3옵이 나올 경우 보상 카드가 영웅 카드처럼 일반 카드가 아니라 황금 카드로 등장한다. 기존의 전용 장비는 3옵이 아니면 쓰레기 취급을 받았으나 1, 2옵의 상향 업데이트 이후 이전의 장비들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2] 이로 인해 3옵 장비가 아닌 장비일지라도 영웅에 따라서는 오히려 1옵션이나 2옵션이 더 선호될 가능성이 보인다.
- 전용 장비는 전용 장비로만 강화가 가능하며 최대 +5 강화까지 존재한다. 공/마는 1 강화 때에는 고작 24 증가하지만 강화할수록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5강시 + 600이 된다. 체력은 +2000 이다. 그리고 방어력은 +400 이다.
- 5강 스탯이 좋은 만큼 강화가 어렵다. 전용 장비 1개당 경험치 10%씩 얻고 그 수급처도 뽑기나 많이 줘봤자 3개씩 주는 스폐셜 던전 뿐이다. 참고로 17/4/7패치 이전에는 강화할때 5개를 쓰면 50%로 강화가 성공하는데다가 실패하면 강화수치가 떨어졌고 1회당 강화비용이 15만 골드라서 엄청나게 창렬이였다. 지금은 전용 장비 50개로 1개를 확정적으로 5강이 가능하지만 이전에는 50개로도 0~2강 사이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 그림자 광석은 1개당 30%의 경험치를 주며 빛나는 광석은 100% 즉, +1강이다. 그림자 광석은 토파즈 15개로 5회, 빛나는 그림자 광석은 토파즈 40개로 3회로 제한된다. 월마다 구매횟수가 초기화된다.
- 전용 장비는 분해가 가능하며, 이때 나오는 영혼의 정수를 모아 [상점] - [영혼의 정수] 탭에서 전용 장비 관련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영웅의 잠재 능력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 각성 영웅한테 적용되는 것은 각성만 적용된다. 6성이나 신화 각성 영웅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그걸 6성 영웅에게 주면 경고! 창이 나온다.
- 마찬가지로 신화 각성 영웅한테 적용되는 것은 신화 각성만 적용된다. 6성이나 각성 영웅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그걸 6성이나 각성 영웅에게 주면 경고! 창이 나온다.
- 전용 장비의 재련은 5강을 마친 장비에만 사용가능하며 전용 장비의 일반 능력치를 소폭 올려준다. 각 옵션마다 최대치에 근접하는 수치를 가진 장비에 써야 효율적이다.[3]
- 빛의 결정은 일반 옵션을 변경시켜 주는데 기존에는 5강에 가능한데다가 변경시 강화수치가 초기화되고 랜덤이라서 원하는 옵션을 얻지 못했지만 17/4/7일자 패치로 옵션 선택이 가능해졌고 강해졌으며 강화수치도 유지된다. 단, 재련수치와 강화 경험치는 초기화된다.
- 여담으로 욕먹는 콘텐츠 중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초기에야 영웅의 단점을 보완하자는 취지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전용 장비 3옵이 강요되고 있으며 없다면 풀초월이라도 해당 영웅의 100% 성능을 낼 수 없거나 사용하는 것 자체에 지대한 문제가 생긴다. 하단의 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1, 2옵이 3옵보다 선호 된다는 건 그만큼 3옵이 구리다는 뜻이다. 사실상 신캐 출시 때마다 현금 20만원에 팔아먹는 주요 수입원이 된지 오래이며 종종 다리 없는 고양이 짤로 비유된다. 특히 이 문제는 여포의 각성 출시 때 극에 달했다. 이로 인한 비난을 인지하였는지 이 다음부터는 신규영웅 출시나 기존영웅 리메이크시 있으면 아주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식의 옵션이 늘어나 3옵션 장비의 필수성이 점점 완화되어가고 있다.[4] 그런데 각성 카일이 또다시 3옵 필수영웅으로 나오는 바람에[5] 이 문제는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 각 영웅의 전장 활용도는 아래 하위 항목에 부가 설명으로 달도록 한다. 그리고 3옵의 평가가 좋지 않더라도 일단 뜬금없이 3옵이 필수가 되는 사양의 리메이크가 될 확률이 높기에, 3옵을 얻었다면 중복이 아닌 이상은 되도록이면 보유해두는게 좋다.
- 모든 장비를 통틀어 원하는 장비 맞추기가 가장 어려운 장비이다. 그 먹기 어려운 겔리두스 악세도 지금은 자원을 모아 뽑거나 조합이라도 돌려볼 수 있는데, 전용 장비는 그런 것도 없다. 그나마 조합식 중 스킬옵션 전용 장비 조합식이 있기는 한데, 재료가 무려 스킬옵션 전용 장비 4개다. 심지어 선택권도 아닌 뽑기권 조합식인지라 스킬옵션 전용 장비가 차고 넘치는 유저가 중복되는 장비 버리는 셈 치고 돌려보는 복권 조합식에 불과하다. 전용 장비는 거의 모든 영웅에게 존재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특정 영웅의 전용 장비만 뽑는 방법도 없고, 하다못해 몬스터 길들이기처럼 특정 영웅의 전용 장비 드랍 확률을 올려준다거나 하는 것도 없기에 정말 원하는 영웅의 원하는 옵션 장비 구해서 맞춰주기가 더럽게 힘들다. 게다가 힘들게 원하는 영웅의 스킬옵션 전용 장비를 얻는다고 해도 스텟 옵션(공격력&마법력, 체력, 방어력 3가지 중 하나)까지도 완전히 랜덤이다. 당연하지만 방어력이 필요한 캐릭터가 있을 수도 있고, 공격력이 필요한 캐릭터가 있을 수도 있으니 이 옵션까지도 중요한 상황. 원하지 않는 스텟 옵션이 나오면 빛의 결정을 통해서 다시 조정해줘야 하며, 설사 원하는 스텟 옵션이 나왔다고 해도 맥스 스텟까지에 들어가는 골드나 재련석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하드한 축에 속한다.
- 현재로서 확정적으로 자신이 바라는 스킬옵션 전용 장비를 얻는 방법은 특정 캐릭터 리메이크 패치 후 2주 동안 33000원(스페셜 영웅), 11000원(일반 영웅)에 파는 특정 캐릭터의 스킬옵션 전용 장비를 구매하거나 신규 영웅이 출시되었을 때 신규 영웅의 패키지 3개를 전부 구매해서 신규 영웅의 스킬 옵션 전용 장비를 얻는 방법이 있고, 스킬 옵션 전용 장비 선택권은 두달 간격으로 갱신되는 시즌제 실시간 결투장에서 크리스탈 티어를 달성했을 때 단 하나 뿐이다. 그나마도 시즌 진행 중에 추가되는 신규 영웅들은 추가하지 않는 상황.
- 2018년 10월 19일 업데이트에서 신화 각성의 등장과 동시에 전용 장비 각성도 같이 등장했다. 각성 비용은 10만 골드로 싼 편이고 강화 수치가 유지된다. 단, 옵션 변경과 마찬가지로 경험치는 초기화되니 주의할 것.
- 영웅 성장 업적의 추가로 모든 일반영웅의 3옵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2. 목록
2.1. 스페셜 영웅
2.1.1. 세븐나이츠
2.1.2. (구) 세븐나이츠
2.1.3. 다크나이츠
2.1.4. 천상의 수호자
2.1.5. 사황 / (구)사황
2.1.6. 혁명단
2.1.7. 나이트 크로우
2.1.8. 펜타곤
2.1.9. 숨은 강자들
2.1.10. 마법 학회
2.1.11. 소속불명
2.1.12. 칠대성
2.1.13. 하이드 리퍼
2.2. 일반 영웅
2.2.1. 방어형
2.2.2. 공격형
2.2.3. 마법형
2.2.4. 만능형
2.2.5. 지원형
3. 전용 장비 시나리오
2017년 12월 28일 업데이트로, 전용 장비 도감에서 시나리오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영웅의 이야기를 담은 것만이 아니라 중요한 떡밥, 그리고 영웅의 과거와 비화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스포일러성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신화 각성 영웅들의 전용 장비를 각성시킨다고 해서, 스토리가 변경되거나 추가되는 것은 아니다.
'''이하 열람 시 스포일러 주의'''
3.1. 세븐나이츠
3.1.1. 루디
루디의 각성 이후 관계도에서 호감을 표시했던 이전의 동료들이 중립적으로 바뀌었고, 초록색의 화살표도 회색으로 바뀌어 루디의 각성을 그다지 좋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추측이 있었는데, 결국 시나리오의 추가로 대놓고 동료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던졌다'''는 내용이 나옴으로써, 루디의 각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이 확정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빛의 기사인 그가 빛을 져버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루디의 찢어진 빛의 자리 서약서''' / '''각성된 루디의 찢어진 빛의 자리 서약서'''
언젠가 내가 크리스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크리스, 이상이란 별과 같은 거야. 우리가 별에 도달할 순 없을 거야. 그래도 우린 그 별을 보며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순 있어.
빛의 뜻은 나의 이상이었고, 별이었다. 하지만 나는 별에게서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했다. 빛의 인도를 따라간 길에는 무수한 희생과 어둠만이 있었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빛의 뜻은 나에게 무엇인가? 과연 그것이 나의 별이었는가? 빛의 뜻으로 뛰어든 전쟁의 끝에 평화가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빛을 섬겼던 나의 의지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서약서를 내리쬐던 빛은 어느새 사리지고 있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빛은 나의 별이 아니였노라고. 그것이 나의 별이 아니라면, 빛의 자리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나는 서약서를 찢었다.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정말, 그게 너의 뜻인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크리스의 표정에서 이전과 같은 신뢰를 찾을 수 없었다. 모든 동료가 나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확고하게 대답했다.
"그래."
더 이상 무언가에 기대지 않을 것이다. 나의 별은 나의 의지로 찾는다. 크리스, 너만이라도 내가 옳다고 믿어줘. 내가 이것이 옳은 길이라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3.1.2. 아일린
바네사가 등장하는 시나리오에선 아일린이 힘에 취해 폭주한 것으로 묘사됐는데, 이 전용 장비 시나리오까지 종합해 보면 이성을 잃고 힘이 폭주한 것으로 보인다.'''아일린이 받은 레이피어''' / '''각성된 아일린이 받은 레이피어'''
강력한 적 앞에서 이성을 잃은 친구를 구하려면 몸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적은 보이지 않고 황량하기만 한 낯선 벌판을 바라보단 바네사는 몸을 돌려, 큰 나무에 기대 있는 자신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아일린은 20여 년만에 만난 바네사를 금방 알아보았지만, 잠시라도 기뻐할 여유가 없었다. 상처투성이의 지친 몰골로 가쁜 숨을 내쉬던 아일린은 의식이 없는 레이첼의 몸을 으스러지도록 안고 흐느꼈다.
"나 때문이야. 내가 방심하다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
"어릴 적에도, 이번에도 난 이 녀석의 등 뒤에서 구해지기만 했어. 이젠 그걸 갚을 길도 없다고!"
북받치는 감정에 울부짖는 아일린의 어깨가 떨렸다. 레이첼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하지만 바네사의 표정은 차분했다.
"갚을 기회는 있어."
"뭐......?"
"레이첼은 절대 죽지 않아.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숨이 미약하지만, 아직 살아있어."
아일린은 다급히 자신의 손을 레이첼의 코 밑으로 가져갔다. 약한 숨을 느낀 아일린은 크게 안도했다. 바네사를 들고 있던 가느다란 검을 아일린에게 내밀었다. 레이첼이 항상 애용하던 레이피어였다.
"이건 네가 갖고 있어. 힘은 폭주해버렸지만, 어찌 됐든 레이첼의 힘을 이어받았던 건 너니까. 이걸로, 널 지켜준 레이첼의 은혜에 보답해."
레이피어를 건네받은 아일린의 손이 떨렸다. 아일린은 혹여 검을 떨어뜨릴까, 그것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바네사는 레이첼의 얼굴을 향한 아일린의 두 눈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눈은 어느새 되살아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3.1.3. 레이첼
레이첼의 귀가 미디어 매체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엘프의 뾰족귀라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전용 장비에서 확실하게 레이첼을 비롯해 아그니 가문이 엘프임이 밝혀졌다.'''레이첼에게 되돌아간 맹약 반지'''
"이 별채는 아그니 가문의 가주들을 기리는 곳이란다."
원형으로 된 홀의 벽에는 초대 가주를 중심으로 역대 가주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레이첼은 그 초상화들을 보며 천천히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아그니 가문은 긴 수명을 자랑하는 엘프였음에도 생각보다 역대 가주들이 많았다. 레이첼이 그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았을 때쯤, 할아버지는 마지막 초상화 앞에 멈춰섰다.
"생각보다 초상화가 꽤 많지. 왜 그런지 알고 있느냐?"
레이첼은 고민했지만 뚜렷한 답을 내지 못했다.
"귀족의 역할을 다했기 때문이란다. 파렴치한 적들로부터 백성과 영지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 아그니 가문은 부단히 싸워야 했지. 물론... 너의 아버지도 말이다."
말을 마친 그는 마지막 초상화에 그려진 블레이즈를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레이첼과 눈높이를 맞춘 뒤, 뭔가를 손에 쥐여주었다. 역대 모든 가주들의 초상화에도 그려져 있던, 가문에 내려져 오는 붉은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할아버지, 이걸 왜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네가 아그니 가문의 미래를 이끌 것이기 때문이란다. 난 잠시 자리를 지켜줄 뿐이니까."
플레임의 커다란 손이 레이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재미있는 얘기라도 생각난 듯 얼굴에 한껏 웃음을 머금었다.
"레이첼, 그 반지에 우리 가문의 정령이 깃들어있다는 걸 아느냐?
"정령이라면... 혹시 초대 가주님과 계약했다는 불의 정령 말인가요?"
"그래, 우리 가문과 피의 맹약을 맺은 정령이지. 아마, 너라면 만날 수 있을 것 같구나."
"할아버지, 놀리지 말아요. 초대 가주님을 제외하고는 지금껏 정령을 부른 기록이 없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플레임은 평소와 같은 진지한 표정으로 레이첼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봤다.
"아니. 지금껏 뛰어난 가주들이 많았지만, 넌 다르단다. 넌 초대 가주님의 혈통을 가장 많이 이어받은 아이니까 말이야."
"정말... 제가 가문의 정령을 만날 수 있을까요?"
"믿어도 좋단다. 이 아그니 플레임의 직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레이첼은 손에 쥔 반지의 붉은 보석을 바라봤다. 보석 깊숙한 곳에서 작은 불길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불의 정령은 레이첼의 각성 시나리오에서 확인할 수 있다.
3.1.4. 제이브
정황 상 제이브가 스파이크와 함께 아이사 대륙으로 향하기 전으로 추정된다.'''제이브의 수호신 부적'''
"제이브! 또 어딜 나가려고 하느냐!"
바닥이 흔들릴 것처럼 커다란 수호신의 호통에 제이브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호신, 와이저는 금방이러도 뜨거운 콧김을 내뿜을 것처럼 무서운 표정으로 제이브를 노려보았다.
"아, 아니! 그냥 레드랑 같이 산책이나 좀 하려고......"
"폼을 보아하니 단순한 산책이 아니로군.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몰래 빠져나가려는 거냐?"
"으으...... 고리타분한 영감탱이. 또 잔소리야."
"시끄럽다. 잔말 말고 이리 와보거라."
엄한 수호신의 명 앞에 제이브는 주눅 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작은 반항의 의미로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고, 뭉그적거리며 와이저의 앞에 다가갔다.
"또 왜? 나 아직 아무 짓도 안 했어."
"그 말은 곧 할 예정이었단 소리냐? 이거나 받아두거라."
제이브의 손 위로 날아온 것은 드래곤의 머리뼈 모양을 한 장식품이었다. 그것은 와이저의 손에서 나온 것 치곤 몹시 작고, 제이브의 몸에 커다란 엑세서리처럼 장식할만한 크기였다.
"이게 뭔데?"
"부적이다. 나의 힘을 조금 담았지."
"영감이 직접 만들었다고? 이 조그만 걸?"
커다란 손으로, 자신에겐 발톱만 할 크기의 부적을 꼬물꼬물 만들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제이브가 크게 웃자, 와이저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만들진 않았을 거다."
"그럼 어떻게 만들었어?"
"알 필요 없다. 아무튼, 몸에 꼭 지니고 다니거라. 그 힘이 너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거다."
서로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와이저는 제이브의 발이 향하려는 길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이브는 딱딱한 와이저의 대답에서 자신을 향한 온정과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제이브는 와이저에게 쾌활한 표정으로 씩 웃어 보였다.
"알았어, 염려 붙들어 매시라고!"
3.1.5. 스파이크
아직 감정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제이브와 함께 아이사 대륙으로 가기 전의 시점으로 추정된다.'''스파이크 어머니의 왕관'''
정비를 마친 스파이크는 테이블에 놓인 새하얀 장식을 바라보았다. 얼음칼처럼 날카로운 눈 결정의 모양이 둥글게 이어진 그것은 여왕 라니아가 생전 늘 착용하던 왕관이었다. 스파이크 홀로 남은 널따란 방에서, 왕관은 성안의 서늘한 공기보다 더 강렬한 냉기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치 생기를 지니기라도 한 듯 영롱한 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스파이크는 테이블로 다가가 왕관을 집어 들었다.
"태양이여, 더욱 뜨거워져라. 혹한의 냉기를 녹일 만큼."
왕관을 들자마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기분을 느꼈다. 놀란 그의 손은 왕관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훗챠! 잡았다."
안도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쾌활한 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엎어진 몸을 일으켰고, 스파이크에게 흠집 하나 생기지 않은 왕관을 내밀었다.
"......제이브."
"야, 이 귀중한 걸 왜 바닥에 함부로 팽개치냐? 조심해."
제이브가 왕관을 든 손을 까닥이며 받으라고 재촉했지만, 스파이크는 쉽사리 손을 뻗지 않았다. 제이브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왕관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스파이크의 얼굴을 보고 한숨 쉬었다.
"거, 되게 미련스럽네. 아직도 고민해? 그 뜨거운 무언가를?"
"......"
"바보야, 뜨거움이 있으니 차가움이 있는 거라고. 느낀 대로 받아들여."
"그렇다면 이 뜨거운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이냐."
"난들 아냐? 내가 아닌 네 감정이잖아."
"......"
'감정'......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스파이크의 손에 어느새 왕관이 쥐어졌다. 먼저 방 밖으로 나간 제이브는 스파이크를 향해 소리쳤다,
"빨리 와! 꾸물거릴 시간 없어!"
제이브를 바라보는 스파이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왕관을 세게 움켜쥔 스파이크는 결심한 듯 그것을 품에 넣고 제이브를 따라나섰다.
3.1.6. 크리스
정작 친구는 빛의 자리 서약서를 찢어버리고 자신만의 정의를 관철하기로 했기에, 친구의 전용 장비 스토리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묘한 느낌이 든다.'''크리스의 빛의 기사 서약서''' / '''각성된 크리스의 빛의 기사 서약서'''
"크리스, 그대를 빛의 기사로 임명하노라."
나이가 지긋한 노장이 엄중한 자세로 두루마기를 내밀었고, 나는 그것을 무덤덤하게 받아 들었다. 만든 지 얼마 안 돼 빳빳한 채로 돌돌 말려있던 서약서를 길게 펼쳐보았다. 금빛으로 수놓아진 서약서의 장식은 높이 떠오른 태양광 아래에서 영광의 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곧 이보다 더욱 강하게 빛나는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빛이, 우리를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얼마 못 가, 나의 믿음은 부정당했다. 나의 기사단은 하얀 빛에 공격당했고, 나는 테라에서 쫓겨나다시피 복수자의 지옥으로 향했다. 눈 앞에 펼쳐진 절망을, 추락한 나의 명예를 인정할 수 없었다.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배신감에 이를 갈았다.
델론즈는 그런 나에게 어둠의 손길을 내밀었다. 아무 쓸모 없어진 서약서는 팽개쳐진 채, 긴 전쟁의 시간 동안 영광의 금빛을 잃어갔다. 나는 어둠을 지배하는 자리에 올랐다.
"정신 차려라. 넌 빛도 어둠도 아닌 어중간한 녀석일 뿐이야."
델론즈가 사라진 후에도, 그의 비웃음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나의 힘을,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복수자의 지옥으로 돌아온 후, 팽개쳤던 빛의 기사 서약서를 다시 펼쳐보았다. 그것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고, 색이 바래진 종이의 얼룩만이 남아있었다. 내가 빛도 어둠도 아닌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나는 오랜 시간 서약서를 바라보았다.
결국, 기사 서약서는 다시 내 품에 들어왔다. 서약서가 빛나든, 빛나지 않든 상관없었다. 나의 손에 들어온 것이 빛이든, 어둠이든 그 또한 상관없었다. 오로지 내가 지켜야할 것만을 생각했다. 그것이, 명예로운 기사로서 선택한 나의 길이었다.
3.1.7. 바네사
문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에피소드는 바네사의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바네사의 시간 기록판'''
"대체 뭐하냐니까?"
모래시계 샌디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열중하는 자신의 주인, 바네사 주위를 쉬지 않고 맴돌았다. 그러나 바네사는 샌디의 십 수 번 반복되는 질문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 앞에는 울퉁불퉁한 모양의 단단한 흙판이 있었고, 바네사의 작은 손에 꼭 쥐어진 굵은 나뭇가지는 흙판의 이곳저곳을 벅벅 긁고 있었다.
"으으,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리는 모래시계에게 표정은 없었다. 하지만 날 세워진 목소리만으로도 그의 짜증이 역력히 드러났다. 샌디는 바네사의 머리 위로 날아가 자신의 몸뚱이로 그녀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찍었고, 바네사는 흙판에 얼굴을 박았다.
"아악!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러게 왜 자꾸 내 말을 무시해?"
"내가 언제! 너나 자꾸 날 방해하지 마, 나 지금 중요한 일 하고 있단 말이야."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얼굴에 잔뜩 묻은 흙을 털어낸 바네사는 전과 같은 자세로 도로 엎드려버렸다. 샌디는 포기하지 않고 바네사의 머리 주위를 서성이며 질문을 던졌다.
"이봐, 대체 뭔데 그렇게까지 집중해? 흙판은 또 어디서 났어? 그 이상한 문자는 또 뭐야?"
"여태 본 거 기록. 아까 꼬맹이들이 갖고 놀다 버린 거 가져왔어. 문자들은 내가 만든 거고."
바네사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샌디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네가 만든 문자라고?"
"내가 아무리 천재라지만 언제 나갈지도 모를 긴 시간 동안 본 것들을 다 기억할 순 없잖아. 그리고, 아주 만약에 내 기록을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큰일 날 거 아냐?"
"그래서, 문자까지 새로 만들어가며 그걸 일일이 기록하는 수고를 한단 말이야?"
"아, 일단 좀 조용히 해! 까먹을 것 같잖아!"
신경질적인 바네사의 기세를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었다. 샌디는 바네사의 옆에서 조용히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바네사는 무른 흙판 위에 자신 외엔 아무도 글자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해괴한 문자를 길게 새긴 후,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흙판 위에 살포시 올린 바네사의 두 손 주위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흙판은 그 빛을 삼켰고, 이윽고 글자는 사라졌다.
"방금 뭐 한 거지?"
"저장. 이제 이 판은 내 일기장이 될 거야."
흙판을 안아 들고 일어선 바네사의 얼굴엔 활기가 넘쳤다. 바네사의 품에 안긴 흙판 앞을 서성이던 샌디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로, 이 아이의 의지가 세상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겠군."
3.2. (구) 세븐나이츠
3.2.1. 밀리아
'''밀리아의 드레스''' / '''각성된 밀리아의 드레스'''
겉모습은 인형처럼 아름답고 속마음은 솜처럼 부드럽다. 인간의 아이들은 이런 밀리아를 보고 아무 거리낌 없이 다가왔다. 밀리아도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은 밀리아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대상이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을 바라본다. 겁내지 않는다. 친구가 될 수 있다.
수정의 용으로 태어난 밀리아는 인간들이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원했다. 그저 난폭하고 잔인한 생명의 군주인 용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인격을 가진 한 명의 생명체로 자연스럽게 봐주기를 원했다. 그녀의 할아버지인 용의 수호신 와이저는 이런 밀리아를 걱정하고 세상에 정체를 드러내지 말라 조언했다. 그러나 그녀는 할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본모습을 인간에게 노출시키면서까지 인간의 아이들과 접촉했다. 아이들은 빠르게 나이를 먹어갔고, 순수함을 잃어갔다. 결국 밀리아 곁에서 멀어졌다. 밀리아도 인간의 마을을 찾기 보다 외로움을 선택하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어느 날 비극이 찾아왔다. 용의 지혜를 찾으려는 파괴의 기사가 용의 유적지로 쳐들어왔다.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온 기사는 유적지 주변의 원주민과 수인족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파괴의 기사는 용과의 전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했지만, 전작 그를 찾아온 것은 푸른 빛 드레스를 입고 온 한 명의 소녀였다. 밀리아는 이 때 아주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는데, 자신의 소중한 친구들이 고작 이런 나약한 존재에 의해 사라졌다는 것에 대한 허탈함 때문이었으리라. 공교롭게도 이 미소는 파괴의 기사가 소멸되기 직전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광경이 되고 말았다. 밀리아는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일대에 남아있던 제국의 군대를 한명도 남기지 않고 몰살시켰다. 와이저는 실의에 빠진 밀리아를 어떻게든 위로하려 했지만, 결국 그녀는 인간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나겠다 말한 뒤 자취를 감췄다.
3.2.2. 겔리두스
'''겔리두스의 빙하의 신부''' / '''각성된 겔리두스의 빙하의 신부'''
차갑다. 정말 차가워서 그 누구도 다가갈 수 없었다. 처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차갑지만 한 날카로운 여인 따위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얼음의 여왕이라는 것은 지나쳐 버리고 서둘러 마법의 거울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마법의 거을을 내놓지 않으면 힘으로 응징하리라. 거울을 숨겨도 결국 나의 힘 앞에 무너지리라. 그런데 웬일일까? 그 누구도 다가오지 못할 차가움과 그 누구도 대적하지 못할 힘은 서로 만나 조화를 이루었다. 심지어 서로가 그 경지를 너무나도 잘 이해한 나머지 어느 한쪽이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 불가능해질 정도가 되었다. 마치 눈이 그치고 쌓였던 눈까지 녹아내리듯이, 싸움은 잦아들었고, 적대하던 마음도 사라져 버렸다. 빙하의 신부와 혹한의 패왕은 어느새 그들이 적이었다는 사실도 잊어가기 시작했다.
겔리두스가 라니아에게 물었다. 나의 패배인가? 내 힘이 너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 라니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커다란 태양이 떠있는 동안 눈보라가 걷혀진 것 이라도 대답했다. 겔리두스는 라니아를 안아주었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그녀 마음으로부터 피어나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두사람이 함께 눈보라의 대지를 거닐던 어느 날, 멀리 대륙우로부터 소식이 들려왔다. 고향이 전란에 휩싸인 것이다. 파괴의 힘이 작은 변두리 영지에까지 여파를 끼쳐왔다. 겔리두스는 떠나야만 했다. 라니아는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모든 것은 이미 정해졌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하듯, 말 없이 거대한 도끼 한자루를 겔리두스에게 넘겨주었다. 말 못할 정도의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기 때문에 다가갈 염두 조차 나지 않는 눈보라 같은 물건이었다.
"빙하의 신부라고 이름 짓겠어. 널 떠올리게 만드니까."
겔리두스가 말했다. 라니아는 보일듯 말듯한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저 멀리 겔리두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떄까지 한 자리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
"잘가요, 나의 커다란 태양이여."
3.2.3. 파이
'''파이의 영원히 불타는 대장기''' / '''각성된 파이의 영원히 불타는 대장기'''
파이의 영원히 불타는 대장기
불타오르는 사막의 대지 위로 붉은 대장기만이 나부끼니
그 모습이 마치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과 같도다.
ㅡ노호의 역사서 [아그니아] 편에서
"조금만 쉬면 안 되나요~?"
파이는 여느 때와 같이 견습 기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지금 우린 전쟁 중이다."
"그래도 모처럼 얻은 휴일인데요!"
파이 아그니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견습 기사들을 불러 훈련시켰다.
15세 내외의 어린 견습기사들은 휴일에 훈련을 하고 있어 불만이 클 것이다. 파이라고 불만이 없었을까.
더군다나 오늘이 바로 그녀의 생일인데 말이다.
절대로 검을 손에서 놓지 마. 적의 검은 쉬지 않으니까.
파이는 특별한 존재였지만 생일날 누군가의 축하를 받고 싶은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괜스래 아수;운 아음이 일었다. 파이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쉬는 날 억지로 붙잡혀온 아이들에게는 또 무슨 죄가 있으랴.
"오늘은 그만!"
""정말요?"
""휴일이잖아. 모두 해산!"
견습 기사들은 보호구나 검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우르르 나가버렸다.
파이는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을 느꼈다.
파이도 자리를 치운 뒤 이동하기 위해 막 등을 돌린 순간이었다.
"파이님~~~!!!"
견습기사 아이들이 폭이 넓은 리본이 달린 상자를 파이에게 건넸다.
파이가 상자를 건네 받고는 어찌할 줄 모르자, 일제히 구호를 복창하듯 외쳤다.
"생일 축하해요! 파이님!"
"저희가 직접 만든 거예요. 빨리 열어봐요~"
"상자 안에는 붉은 대장기가 자태를 뿜내고 있었다. 파이는 두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흔들어보다가 저도 모르게 자신의 가슴팍이 꼬옥 품었다.
"고,고마워..."
감정표현이 서툰 파이가 얼굴을 붉히자, 땀과 흙 범벅인 아이들의 얼굴에 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이 아이들은 늘 이런 표정을 지었겠지.
그때였다.
"파이님! 수인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바로 출격하겠다!"
"파이님! 저희도 가겠어요!"
"너희들은... 본진에서 대기해."
모두가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파이는 들은 체하지 않았다.
아직 너무 어린아이들이었다.
""파이님! 이번에 승리하면 붉은 대장기를 흔들어주세요. 여기서도 파이님이 보일 수 있도록요!."
"파이는 제자들에게 고밉다는 의미로 묵례한 뒤 전장으로 향했다.
그 이후...
인근의 아군 병참을 습격한 수인 왕국의 군대는 파의 활약으로 궤멸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본대로 복귀한 파이의 시야에서는 처참한 관경이 펼쳐져 있었다.
"양동 작전이었습니다. 파이님이 나간 사이에 본진으로 대군이 몰려와서...!"
파이는 넋 나간 사람처럼 견습기사들을 찾기 시작했다.
본진에는 살아남은 자들이 없었다.
견습기사들의 시체는 모두 같은 장소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파이가 평소 가르쳐준 대로 누구 하나 손에서 검을 놓은 아이가 없었다.
대군에 맞서 싸운 마지막 저항의 흔적이 분명했다.
파이는 죽은 견습 기사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 각각의 이름들을 나직이 불러주었다.
파이 아그니는 아무 말 없이 홀로 말 위에 올라탔다.
그녀가 기수를 돌려 수인 왕국의 본진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길다란 창에 걸린 대장깃발이 거대한 화염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3.2.4. 로지
'''로지의 이름표''' / '''각성된 로지의 이름표'''
오시즈님께,
당신은 그날도 어김없이 엘레나 여신님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이 조그만 수도원을 찾아 주셨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었지요. 하지만 당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주셨습니다. 일개 수도사인 저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죠.
제가 낯빛이 어둡다고 말씀드렸을 때 당신은 뭔가 말하려고 하는 듯 했다가 입을 꾹 닫고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떄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날을 기억하시는지요?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 같았던 눈이 그치고 당신이 수도원을 다시 찾아오신 날을 저는 선명히 기억합니다.
당신이 자리에 앉은 뒤로도 아무 말 없이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는 애써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적막함 가운데 당신이 무겁게 다문 입술을 떼셨어요.
'전 영원한 시간 속에서 끝없는 싸움을 해왔습니다.'
저는 그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이 뒤이어 이야기하셨지요.
'제 이름도 잊고, 감정이 무엇인지도잊어버렸습니다. 그저 쫒고 죽이기 위한 삶을 연명할 뿐입니다.'
그 뒤에 들려주신 이야기를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전 도대체 누구인가요?'
당신이 어떤 사람이건, 수도원에 찾아와 엘레나님을 따르고, 기도하는 것이 온전히 당신의 모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당신은 한참 동안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리셨지요?
얼마 뒤에 모든 신분과 지위를 버리고 한 사람의 구도자가 되어 이곳을 찾은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저는 오늘 당신에게'로지'라는 세례명이 적힌 목주를 드렸습니다.
로지라는 이름을 가진 성인은 전쟁에서 많은 이들을 죽인 군이었지만 엘레나님의 교리를 따른 후,
자신의 죄를 참배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참된 은혜를 배풀었습니다.
세례는 죄를 씻고 새로운 삶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수도자로서 당신만의 새로운 길을 걸었으면 합니다.
엘레나님의 축복이 늘 함께하기를...
수도사 루퍼스 배상
3.3. 다크나이츠
3.3.1. 델론즈
각성 델론즈가 각성 스킬을 사용할 시 쥐고 있는 지옥쌍검이 바로 이 클라우디아가 준 쌍검이다. 그가 각성기 사용 시 낫이 아닌 쌍검을 쥔 이유가 이 시나리오로 밝혀진 셈이다. 검신이 검게 변하고 검푸른 기운을 서리고 있는 것은 사용자인 델론즈의 영향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델론즈의 지옥쌍검''' / '''각성된 델론즈의 지옥쌍검'''
"아이쿠, 무거워....... 스놀레드, 선물이예요."
"이게 뭡니까, 공녀님?"
"보면 몰라요? 검이잖아요!"
클라우디아는 묵직한 장검 두 자루를 스놀레드의 품에 억지로 안겼다. 스놀레드는 얼떨결에 검을 받아 들고 클라우디아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얼른 뽑아보라는 눈짓을 주었고, 스놀레드는 검을 살짝 뽑아보았다. 날렵하고 긴 칼날은 평소 스놀레드가 애용하던 검과 비슷한 모양이었지만, 훨씬 반짝이고 예리했다. 스놀레드는 조심스럽게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굉장히 좋은 검이네요. 손잡이도 화려하고요."
"내 취향이에요!"
"그, 그렇군요. 그런데 검은 갑자기 왜......"
스놀레드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클라우디아는 두 볼을 살짝 붉히며 스놀레드를 올려봤다.
"전에 스놀레드의 검을 봤는데, 많이 낡은 것 같더라구요. 그런 걸로는 날 지킬 수 없잖아요. 앞으로는 이 검으로 날 호위해줘요."
클라우디아는 자신이 마련한 선물을 보며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를 본 스놀레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대신 클라우디아를 끌어안으며 평생 지키겠노라 약조했다.
"알겠습니다, 공녀님. 이걸로 공녀님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델론즈는 서늘한 눈빛으로, 들고 있던 검 두 자루를 내려보았다. 화려하고 날카로운 손잡이와 매끄러운 칼날은 검게 물들었고, 검 주위에는 검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델론즈는 양손에 검을 한 자루씩 꽉 움켜쥐었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클라우디아."
처음에는 스놀레드였을 시절의 시점으로 진행되다 마지막 부분에서 현재의 델론즈가 된 이후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이점.
3.3.2. 멜키르
브브 형제가 멜키르를 적대하는 이유가 멜키르 전용 장비에서 명확히 밝혀진다. 안그래도 멜키르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브브 형제였지만, 이 사건으로 자신들이 신전에서 쫓겨날 뻔하자 제대로 멜키르, 그리고 그를 포함한 흑마술사들을 적대하게 된 것. 브란즈가 멜키르를 '망할 흑마법사 자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이전부터도 멜키르 때문에 골치를 썩던 것이 한두번이 아니였던 듯 하다.'''멜키르의 암흑 원석'''
신전이 발칵 뒤집혔다. 신전 내부가 어지럽혀져 있었고, 벽에는 크게 금이 갔다. 그 자리에 홀로 서 있던 브란셀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그의 손에 들린 커다란 원석 또한 반쯤 부서져, 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브란즈는 울상인 동생의 얼굴을 보고 이를 갈며 그를 세게 끌어안았다.
"브란셀! 이게 무슨 짓이냐?! 더는 봐줄 수 없다고 분명히 일렀을 텐데!"
나이가 지긋한 신관이 여러 무리를 이끌고 부리나케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신관이 단단히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브란셀을 윽박지르기 시작하자, 브란즈는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왜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브란셀이 한 거 아니거든?!"
"그런데 왜 여기에...... 아니, 여신의 원석이? 이놈들이 쫓겨나고 싶어?!"
"아냐, 내가 한 거 아냐! 난 그냥 신전을 지키려고......"
브란셀이 다급하게 해명하려 입을 열지만, 이미 높게 치솟은 신관의 분노는 막지 못했다. 잘난 대사제의 후계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늙은 신관은 사고뭉치 천상인들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야말로 그들을 쫓아낼 좋은 기회였다.
"네놈들이 아니면 누가 했단 말이냐! 썩 나가지 못해?!"
늙은 신관의 손짓을 따라 젊은 사내들이 쌍둥이를 향해 다가갔다. 브란즈는 그들에게 큰 도끼를 휘둘러 막으며 소리쳤다.
"꺼져! 이 노망난 영감탱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망할 흑마법사 자식,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신전에서 멀리 떨어진 숲에 다다른 멜키르는 거친 숨을 내쉬며 나무에 기대앉았다. 그는 자신의 손안에서 번쩍이는 조각을 내려보며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파편이라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 재료라면, 강력한 어둠을 불러올 수 있겠군."
대사제의 후예가 브브 형제를 받아주었다는데, 여러 정황 상 대사제의 후예는 플라튼밖에 없다. 브브 형제를 신전에 받아준 이가 바로 플라튼인 셈. 이후 설정집에서 플라튼이 굶어 죽어가던 형제를 받아주었다고 나오면서 확정.
멜키르의 암흑 원석은 각성 스킬인 '''암흑 해방'''에서 확인할 수 있다.
3.3.3. 브란즈&브란셀
브브 형제의 스탠딩을 보면 서로 한짝밖에 없는 날개를 한쌍처럼 보이도록 등을 맞대는 모션을 취하고 있다. 전용 장비의 시나리오는 이런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브란즈&브란셀의 혼혈 날개'''
"브란즈, 우린 날개가 왜 한 짝뿐일까?"
자신의 키만 한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느릿느릿 쓸던 브란셀이 입을 열었다. 커다란 창틀에 올라서서 걸레질하던 브란즈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에이씨, 귀찮아. 안 해."
결국 참지 못한 브란즈는 걸레를 내동댕이치며 창틀에서 내려왔고, 브란셀은 그를 걱정스레 쳐다봤다.
"그치만, 우리 벌 받는 중이잖아. 다 닦아놓지 않으면 대사제한테 또 혼날 거야."
"알 게 뭐야? 겨우 책장 하나 엎었다고 난리는. 그리고, 이렇게 큰 예배당을 나 혼자 어떻게 다 닦아? 너도 하지 마, 그냥."
구시렁거리며 다가온 브란즈가 빗자루를 뺏어 던졌지만, 브란셀은 빗자루를 줍지 않았다. 대신 지친 듯이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는 브란즈의 옆에 다가가 조용히 앉았다.
"생각해봤는데, 엄마도 아빠도 날개가 두 개였잖아. 그런데 우린 서로 날개 모양도 다르고, 하나밖에 없고...... 천상에서 애들이 한 말대로 우린 괴물인 걸까?"
"야! 그 자식들이 한 소린 신경 끄라고 했지!"
형의 윽박에 놀란 브란셀은 금방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시무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내 브란즈는 무안해진 기분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 말은, 그딴 거 상관없다고. 이유를 알아봐야 달라질 것도 없고, 모양이 다르면 어때서? 그게 더 희귀하고 특별한 거 아냐?"
"브란즈......"
"각자 한 짝밖에 없으면, 같이 한 쌍을 만들면 되잖아."
퉁명스럽게 말을 뱉은 브란즈는 브란셀을 향해 곁눈질하며 그의 반응을 살폈다. 조금 전 동생을 거칠게 대한 행동에 대해 후회가 역력한 기색이었다. 브란즈의 머쓱한 눈빛과 마주친 브란셀은 이내 작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3.3.4. 플라튼
악역 집단인 다크나이츠 내에서 유일하게 선역에 해당하는 플라튼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해주는 시나리오다. 특히 이 에피소드에서는 그 동안 이지적이고 냉철한 듯 행동해왔던 플라튼의 감정적인 면을 확인할 수 있다.'''플라튼의 성스러운 큐브''' / '''각성된 플라튼의 성스러운 큐브'''
"얘야, 너는 여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아이란다. 네가 사물에 혼을 불어넣고, 다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여신께서 힘을 나눠주신 덕분이지. 네가 여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넌 여신의 사자가 된단다. 기억해두렴. 여신의 목소리는 너를 구원의 길로 인도할 거야."
어린 시절, 언젠가 대사제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대사제님께선 긴 당부와 함께 작은 상자를 내 손에 쥐여 주셨다.
"구원이 필요할 때가 오면, 이 상자를 열거라."
머잖아, 신전은 무너졌다. 뒤이어 세상이 무너졌다. 조금이라도 남은 사람들을 위해 많은 시간 동안 여신에게 기도했지만, 대답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문득, 과거 대사제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나는 다급히 상자를 찾아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큐브가 은은하고 푸른 빛을 조용히 발산하고 있었다. 큐브를 꺼내자 푸른 빛은 순식간에 넓게 퍼졌고, 신전의 형상이 나타났다. 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자, 여신은 모습을 드러냈다.
"여신이시여! 어째서, 파멸의 길을 막지 않으셨습니까? 왜 우리를 구하지 않으신 겁니까!"
나는 여신을 원망하며 울부짖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한이 서리도록 잔인한 그녀의 침묵에 나는 짓눌리듯 바닥에 엎어졌다. 북받친 나의 목소리는 어느새 떨고 있었다.
"제발, 우리를 저버리지 마시옵소서......"
"신관이여, 세상을 파괴하는 힘을 처단하라. 그 힘을 손에 넣어라."
처음 들은 여신의 몹소리는 몹시 차가웠다. 처음 보는 그녀의 진짜 모습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만이, 너희를 구원해줄 길이니라."
세상을 파괴하는 힘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신탁이 쉽게 납득될 리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유를 따지기도 전에 여신은 사라졌다. 나의 앞에는 폐허 속에서 홀로 빛나는 큐브만이 남았다. 나는 큐브를 들고 일어났다.
나는 여신의 뜻을 그들에게 전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었다. 전쟁을 위한 준비는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의 유일한 길인 여신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전달할 것을 당부받았다.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반박의 말을 삼키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떠올렸다. 세상의 멸망을 지켜본 여신의 잔인함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 끔찍한 광경을. 그리고 다짐했다. 그것이 여신의 뜻이라면, 나는 내 방식대로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참혹한 현실을 막고, 그 속에서 우리를 구하겠다고. 그것을 나 홀로 행할지라도.
플라튼이 믿는 여신이 텔루스의 파괴를 막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파괴신 네스트라이기 때문.
3.3.5. 콜트
어렸을 적의 콜트를 거두어줬던 사냥꾼은 얼마 안 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콜트의 조준경 고글''' / '''각성된 콜트의 조준경 고글'''
평소 남에게 딱히 관심 없던 대장인 거 알지? 하루는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어.
"그 안경, 왜 쓰는 거지?"
왜 물었냐고? 대장도 알거든, 내 시력 끝내주는 거. 눈에 이상이 없는데 굳이 안경을 쓸 필요가 없잖아?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대답해줬지.
"패션이야."
진짜 그뿐이냐고? 하하, 아니야. 사실, 그 안경은 사냥꾼 아저씨가 헤어지기 전에 준 거야. 왜, 있잖아. 나 어릴 적에 거둬 키워줬던. 그걸 언제 받았더라......? 이젠 그 사람 얼굴도 가물가물해.
그런데, 잘 지내겠지. 지금도 날 지켜보면서 '저, 저 싹퉁바가지 없는 녀석이 남의 세계에서도 멋대로 설치는군'이라며 혀를 끌끌 차고 있을지도 모르지. 꼬맹이들이 그랬잖아, 천상은 모든 세계에 이어져 있을 거라고.
아, 이야기가 옆으로 샜네. 다시 안경 얘기를 하자면, 내 안경은 평범한 패션 안경이 아냐. 초점을 맞추기 좋거든. 사냥꾼에게 아주 유용한 물건이지. 그래, 조준경이야.
그런데 당시엔 낡은 데다, 잡혀서 심문받았을 때 하도 맞아서 기능이 망가져 있었어. 단순히 추억거리였지, 뭐. 하핫, 좀 미련스러워 보이려나?
아무튼, 대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어. 대신 위험할 수 있으니 훈련 중엔 되도록 벗으라고 충고했지. 또 잔소리 듣기 싫어서 한동안 시키는 대로 했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아침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내 자리에 못 보던 고글이 있더라고. 렌즈 빛깔이 반짝반짝한 게, 딱 봐도 새 거였어. 조준 기능도 훨씬 정밀하고. 보급품인가 했는데 내 자리에만 딱 하나 있더라?
문득 대장 생각이 났지. 바로 찾아가 봤어. 그 여자, 그때도 대답이 한결같이 쿨하더라고. 역시, 내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상관이라니까. 네가 대장에게 반한 것도 이해되더라.
"낡아서 새것을 줬을 뿐이다. 그 정도면 사격 능률에도 도움이 되겠지."
다크나이츠의 대장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했는데 이 전용 장비 시나리오 때문에 일단 여성이라는 것만은 윤곽이 잡혀졌다.
특이하게도 콜트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시나리오다. 대화 상대는 플라튼으로 추정되었고, 후일 대장이 출시되면서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3.3.6. 실베스타
상당히 중요한 떡밥이 던져졌는데, 이 시나리오에서 '''목걸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현재 시나리오 상에서 목걸이를 얘기한다면, 에반이 지닌 목걸이밖에 없다. 그리고 태오는 에반이 걸고 있는 목걸이가 '''과거 전쟁을 싫어하는 자가 지녔던 목걸이'''라고 설명해준 바 있다. 즉, 에반이 걸고 있던 목걸이의 주인은 사실상 실베스타인 셈이다. 이 때문에 실베스타와 에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라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스포일러1][35]'''실베스타가 지닌 정화의 흔적'''
"다 모인 건가?
"그간의 고생도 드디어 끝나겠군."
"확실하게 되는 거지?"
"틀림없어. 고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
"그럼, 정화를 시작해볼까?"
우리의 정의는 순결했고, 그렇기에 어리석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었던 우리의 확신은 깨지고 말았다. 깨진 정의는 재앙이 되어 흩어졌고, 온 세상을 파괴했다.
내 손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일념 하나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고, 백성들에게 선망받아왔던 나의 힘을 그 앞에선 헛된 발악에 불과했다. 원망의 소리가 빗발쳤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 혼란을 막고, 책임을 진단 말이냐?"
"이건 우리가 바라온 평화가 아니잖아. 반드시 우리의 손으로 돌려놔야 해!"
동료들의 쓴 말에 전장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나는 금방 깨달았다. 나의 힘으로 파괴를 불렀지만,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파괴와 비슷한 힘을 가진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나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도망자라 비난받을지언정, 그것이 최선이었다. 동료들의 애타는 만류와 차가운 눈초리가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파괴의 힘을 감당치 못하고 산산이 조각난 정화의 원석을 손에 움켜쥐었다. 이 흔적 또한 내가 안고 가야 할 죄악이었다. 나는 어느새 너덜너덜해진 옷자락을 찢어 이 흔적을 감싸 품에 넣었다. 원석을 품었던 목걸이도 함께 가져가려 했지만, 결국 제자리에 두었다. 언젠가 나타날, 나를 대신해 평화를 되찾아줄 누군가를 위해서.
시나리오는 일전에 태오가 에반 원정대에게 들려준 과거 아이사 대륙을 혼란에 빠뜨린 파괴의 전쟁에 관한 것이다.
3.3.7. 팔라누스
어릴 적의 팔라누스와 대화하던 상대는 플라튼이다. 인연 시나리오에서 팔라누스와 플라튼을 '유일무이한 벗'이라는 인연으로 묶고 있으며, 대놓고 그 시나리오에 '어릴 적 플라튼은 용감한 팔라누스를 동경했고, 팔라누스는 자상한 플라튼에게 의지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과, 전용 장비 시나리오에서 대화 상대가 '자신은 언제쯤 대사제님처럼 힘에 익숙해질까'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게다가, 스페셜 영웅 소환권에서 팔라누스 선택 시 나오는 일러스트에서 대놓고 4성 외형 시절의 팔라누스와 플라튼이 함께 있으며, 플라튼이 팔라누스에게 지휘봉을 건네주고 있다.'''팔라누스의 작은 지휘봉'''
그 때가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튼, 나도 그 녀석도 때 묻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신전을 찾았다. 대사제에게 인사를 전하는 아버지의 가식적이고 딱딱한 미소에 질려, 신전 밖으로 몰래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습관처럼 신전 뒤뜰로 향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 녀석은 그곳에 혼자 멍하니 서 있었다. 녀석은 사내놈치고 왜소한 자신의 손을 들어, 나에게 말없이 인사했다. 그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오늘도 종일 마력 훈련만 했나 봐?"
"응, 그런데 오늘따라 벌써 지치네."
"언제는 안 지쳤냐? 약해빠져서는."
퉁명스러운 나의 힐난에도 녀석은 바보같이 하하 웃었다.
"이럴 땐 네가 참 부러워,"
"맨날 말만 하지 말고 너도 체력을 길러."
"노력은 하고 있는데...... 난 언제쯤 대사제님처럼 신의 힘에 익숙해질까?"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는 녀석의 혼잣말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특별한 힘을 지녔다는 이유로 온 사람들의 기대 속에 갇혀, 큰 부담감을 느꼈을 터였다. 그 점은 나도 피차일반이었다. 하지만 나는 온정이 담긴 위로 대신 냉정한 훈계를 던졌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될 때까지 노력해.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안될 거야."
내 뜻을 이해한 건지 못한 건지, 녀석은 초점 잃은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놈이었다.
"나도 요즘 좀 해이해지는 것 같긴 하지만."
너 같은 녀석이 옆에 또 있어, 그런 의미로 한 마디 덧붙였다. 녀석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참, 이거 줄게."
녀석은 품에서 웬 막대를 꺼내 내밀었다. 금색의 무늬가 그려진 작은 지휘봉이었다.
"너 생각나서 샀어. 지휘관이 꿈이랬잖아."
"장난감이냐? 짧은데?"
"어...... 아마도? 그래도 이거 보면 다시 의욕이 생기지 않을까?"
"쓸데없게."
나는 딱딱한 품평과 함께 녀석의 손에서 지휘봉을 뺏듯이 받았다. 그래도 녀석은 바보같이 해사한 웃음을 띨 뿐이었다.
3.4. 천상의 수호자
3.4.1. 트루드
이 쯤에서 트루드의 취급은 그냥 '''멍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트루드가 받은 한정판 상식사전''' / '''각성된 트루드가 받은 한정판 상식사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 나한테 이걸 주는 이유가 뭔데?"
훈련을 마친 트루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쪽 손에 든 물건을 바라봤다.
"내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야. 아마도 네 인생에 가장 필요한 물건이 될걸? 후훗."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하려 했지만, 소녀는 끝내 웃음을 참지 못했다. 트루드는 눈앞의 소녀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겉모습은 어리고 순수해 보이지만, 그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 무엇보다 소녀. 아니, 그녀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다.
"아하, 그래, 그래. 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물건이... 고작, 이런 상식 사전이란 말이지? 너... 날 너무 멍청이 취급하는 거 아니야?"
트루드의 질문에 그녀는 팔을 살짝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가 탄 물체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곧 두 사람의 눈높이는 같아졌다.
"과거 천상계 동쪽에서 고대 괴물의 습격 경보기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아니?"
소녀는 마치 수업 시간에 졸던 학생을 나무라듯, 냉정한 어조로 트루드에게 물었다.
"뭐, 뭐야! 갑자기? 그런 질문이 여기서 왜 나와!"
"네가 필요 없다는 듯이 말하니까, 확인해 보는 거야. 설마, 모르는 건 아니지? 에이, 그 녀석의 이름은 코흘리개 애들도 다 아는 건데?"
"알아! 안다고! 그... 이마에 문양이 그려져 있고... 고상한 척하는 말투를 쓰던..."
당황하는 트루드를 보며 소녀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오랜 시간 깔깔대며 웃었다. 그러고는 마치 비에 젖은 고양이라도 본 듯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런... 기억력은 조금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너무 무리한 질문을 했구나?"
"기다려, 아니야! 분명 알고 있다고!"
"208쪽을 펴봐. 녀석의 이름이 적혀있을 거야."
트루드는 잠시 그녀를 째려본 뒤, 멋쩍은 표정으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빼곡한 글씨들 속에서 그녀가 한 질문의 답을 찾아냈다.
"뭔 글씨가 이렇게 많아? 한참 찾았잖아. 그런데, 이놈 이름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 게다가 한 일도 뭐가 이렇게 많아, 뒷장까지 이어지잖아?"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놀라는 트루드를 보던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 이제 네 수준을 알겠지? 이 책은 내가 특별히 만든 거니까, 꼭 읽어두라고.[36]
네 지적 수준 때문에 같이 다니면서 창피한 게 한두 번이 아니였거든."트루드는 당장에라도 그녀의 얼굴에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생각보다 흥미진진했기에 억지로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그, 그래. 하, 하하하... 아주, 고오맙다. 잘 읽어볼게."
3.4.2. 프레이야
과거의 적은 고대의 괴물들을 암시하고 있으나, 프레이야의 명령을 받고 지상으로 내려간 발키리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프레이야가 만든 발키리의 징표''' / '''각성된 프레이야가 만든 발키리의 징표'''
"자, 이것을 받아두렴."
프레이야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은 한 발키리에게 작은 원형을 물건을 건넸다. 물건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고, 옅지만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고양이는 발키리 중 가장 강력한 군단 '에인헤랴르'의 수장인 프레이야가 가장 사랑하는 동물이자, 그녀의 상징이었다.
"이것은...."
"발키리의 징표다. 이것을 지닌 발키리는 내 권한 아래 천상계의 곳곳을 출입할 수 있지."
"이것을 제게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인헤랴르의 모든 군사들이 이 징표를 받았어. 전쟁에서 공을 세운 너도 우리 발키리 군단의 일원 중 하나로서, 이것을 지닐 자격이 있는 거야."
"황송합니다."
발키리는 프레이야에게 경배의 뜻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프레이야는 부드러운 손짓으로 발키리에게 고개를 들라 지시했다.
"황송할 것 없다. 이걸 통해, 너에게 긴밀히 내릴 임무가 있으니까."
"광휘의 주군을 위해서라면."
"기나긴 전쟁 끝에 우리 천상의 힘은 지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힘이 없는 지금의 평화는 일시적일 뿐이지. 과거의 평화를 완벽히 되찾으려면, 우리의 힘 또한 되찾아야 해. 적들이 잠든 지금이 적기다."
"말씀 이해했습니다."
발키리의 충직한 대답을 들은 프레이야는 곧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띄었다.
"그래. 모든 일에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지. 지상으로 내려가서 우리 힘의 행방을 찾고. 함께 사라진 '그 힘'도 함께 조사해라."
"천상과 지상 사이에는 장막이 있어서 쉽게 오가기 힘든데, 어떻게 보고를 드려야 할까요?"
"그것은 걱정 말거라. 그 징표를 통해, 네가 받아들인 정보를 공유 받을 수 있으니까. 때가 되면 너를 다시 천상으로 올려주마."
"분부 받들겠습니다."
발키리는 프레이야를 향해 머리를 조아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방을 나섰다. 거대한 금빛의 문이 닫힌 후, 프레이야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되찾기 위해서야. 어설픈 평화는 언젠가 쉽게 무너질 테니까."
3.4.3. 스쿨드
'''스쿨드의 운명의 물레''' / '''각성된 스쿨드의 운명의 물레'''
아주 오래된 옛날. 운명의 샘 근처에 3명의 자매들이 살았습니다.
3명의 자매들은 모두 아름다웠고, 각기 신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어요.
그중 가장 큰 언니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마치 방금 본 것처럼 말할 수 있었고,
둘째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무엇이든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막내인 셋째는 더욱 특별하게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맞출 수 있었어요.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운명의 세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상계에 큰 전쟁이 벌어지고, 운명의 세 자매들도 전쟁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세 자매를 찾아와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막내는 불길함을 느끼고 반대했지만, 두 언니는 사람들을 위해서 싸우기로 했답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신비한 능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도왔지만, 결국 전쟁 중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막내는 외롭게 홀로 남았어요. 언니들이 없는 미래를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외로움에 한참 동안 울었던 막내는 우연히 언니들의 방에서 커다란 선물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상자에는 [스쿨드에게]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그 안에는 예쁜 물레가 들어있었습니다.
함께 들어있던 편지에는 두 언니가 막내 동생인 스쿨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적혀있었습니다.
물레는 언니들이 숨겨둔 깜짝 생일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스쿨드는 두 언니가 남겨준 선물을 받은 뒤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3.4.4. 미스트
'''미스트의 족쇄''' / '''각성된 미스트의 족쇄'''
그것은 무겁고 차가웠다.
소녀는 자신에게 채워진 족쇄를 바라보았다.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그녀조차도 알 수 없는 마법이 걸려 있는 족쇄는 쉽게 풀지 못했다.
소녀가 같혀있는 새장도 마찬가지였다.
"하앗!"
무겁고 거대한 철퇴가 새장의 기둥을 맞고 튕겨져 나왔다. 기회만 있으면 이곳에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역시나 새장에서도 알 수 없는 마법이 걸려 있어 소녀의 탈출을 막고 있었다.
소녀는 튕겨져 나온 철퇴를 감싸 안고는 시선을 돌려 새장 밖의 병사들을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때, 소녀의 눈앞에 빛이 일더니 어느새 휘황찬란한 금빛을 내뿜는 천사가 서 있었다.
소녀의 분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앞에 나타난 그녀에게 향했다.
천사는 가소로운 듯 소녀를 쳐다보며,
"기억은 없는 건가?"
라고 도도하게 말하자, 옆에 있던 로브를 입은 남자가 즉답했다.
"네, 프레이야님. 한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제?"
"...실험은... 절반만 성공했습니다."
약간의 망설임이 담겨있는 남자의 말에 프레이야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게 무슨 말이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건가?"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만, 제대로 절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항이 심해 지금은 그저 위험한 짐승일 뿐입니다."
"짐승이라..."
순간, 프레이야의 눈에 푸른 안광이 서렸다.
"문을 열어라."
"네? 지금 문을 열면..."
프레이야의 말에 반박하려던 남자는 그녀가 매섭게 노려보자,
곧바로 입을 꾹 다물고 문을 열었다.
절대 열릴 것 같지 않던 새장의 문이 열리고 프레이야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감싸고 있던 철퇴를 순식간에 프레이야에게 던졌다.
하지만 철퇴는 프레이야의 얼굴 앞에서 멈추고 곧이어 산산조각 났다.
프레이야의 검이 철퇴를 관통한 것이다.
"크야아아아!!"
"프레이야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붙잡힌 속목을 비틀었다.
그녀의 강한 힘에 무게 중심이 반대로 쏠린 소녀는 공중에 붕 뜨고 프레이야는 소녀의 목을 꽉 잡은 뒤,
새장 구석으로 던졌다.
날아간 소녀는 새장 벽에 머리를 부딪치곤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정적이 알고 마침내 한 병사가 말을 꺼냈다.
"프, 프레이야님... 괜찮으십니까?"
미쳐 끼어들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촉즉발의 상황에 병사들은 그저 넋 놓고 지켜보는 것 밖엔 할 수 없었다.
프레이야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지막이 말했다.
"... 실험은 계속 진행한다. 족쇄를 새로 채우고, 계속해서 보고하도록."
프레이야는 새장을 나서며 자신의 손목을 바라봤다.
소녀의 거센 저항이 그녀의 손목에 새겨져 있었다.
"과연... 괴물은 괴물이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뒤로 병사들이 재빨리 소녀에게 새로운 족쇄를 채웠다.
그것은 여전히 무겁고 차가웠다.
3.4.5. 레긴레이프
'''레긴레이프의 발할라 스노 글로브''' / '''각성된 레긴레이프의 발할라 스노 글로브'''
"아주 방대한 마력을 지녔습니다만... 이 아이는 그만한 마력을 지니기에 너무나도 병약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출산을 집도한 의사가 처음 한 말이라고 한다.
나는 이 한마디로 인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물론, 외부와의 교류 역시 일절 단절된 채 치료만으로 대부분의 시절을 보냈다.
최대한의 안정을 취하고 치료해야만, 이 마력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게 있어서 집안은 세상의 전부였고 집 밖은 미지의 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딱히 불만은 없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매우 잘해 주셨고
가문의 명성에 걸맞게 물질적인 부족함도 전혀 없었다.
몸에서는 항상 꽃향기가 흘러나왔고더러운 것을 손에 댄 적도 입에 댄 적도 없었다.
그래, 불만은 없었다. 다만, 부러웠을 뿐이다.
바깥에서 간간히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창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무런 걱정 없이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이 그저 부러웠다.
같이 뛰어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몸 안에 담긴 마력 덩어리가 마치 시한폭탄 같았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부모님께서 연이 있는 다른 가문의 자체들을 집으로 초대한 적 있었다.
내가 가족을 제외한 이들을 만난 건 이떄가 처음이었다.
"레긴레이프? 인사하렴. 오늘부터 네 친구가 되어줄 아이들이다."
윤기가 흐르는 금발 머리를 가진 그 남매는 빼어난 용모와 자태를 지녔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가워 보였다.
"안녕, 내 이름은 레긴레이프야!"
내가 남매의 손을 잡으며 말하자 소스라치게 놀란 그들은 황급히 잡힌 손을 빼려 했지만, 나는 그럴수록 두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차가운 표정과 다르게 손은 매우 따듯했다.
내가 놔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던 건지 아니면
내게 마음을 열었던 건지 그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프레이야. 그리고 얘이름은..."
말끝을 흐린 남자아이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바통을 건넸다.
"프레이야라고."
그렇게 말한 그녀는 내게 발할라의 풍경이 담긴 구체를 건넸다.
"이건,,,?"
"너...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바깥으로 나간 적 없다며... 발할라의 풍경을 담은 스노 글로브야. 흔들어 봐."
그녀의 말대로 스노 글로브를 흔들자,
바닥에 쌓여있던 알갱이들이 작은 풍경을 담은 하늘 안에서 춤췄다.
"예쁘다... 이거 나 주는 거야...?"
"응. 선물이야."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선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게 있어서 그것은 지금껏 받았던 어느 선물들 보다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었다.
"언젠가 함께 가자."
프레이야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스노 글로브를 가리켰다.
"발할라."
그것이 나와 프라이야, 프레이의 첫 만남이었다.
3.4.6. 라드그리드
'''라드그리드의 보조기구''' / '''각성된 라드그리드의 보조기구'''
"이제부터 이 곳이 네가 서 있을 곳이야."
프레이의 뒤로 라드그리드의 불규칙한 발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불이 꺼진 거대한 패널 앞에 서며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프레이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라드그리드에게 모선 안을 안내했다
그녀가 자유롭게 걷지 못하기에 최대한 천천히 보고자 했지만,
들뜬 마음은 숨길 수가 없어 보이는 듯 했다.
라드그리드는 그 모습을 보며 쓰게 웃었다.
설마 자신이 이런 곳에 서게 될 줄이야...
지병이 있는 어머니를 닮아 몸이 약했던 라드그리드에게있어
아버지의 후계 수업은 매일 매일이 지옥과도 같았다.
그래도 자신이 있는 위치를 알고 있기에 이를 악물고 버텨야만 했고,
어떻게든 적을 이겨내기 위해 병법서를 읽고,
몸이 아닌 머리로 누군가를 상대하는 방법을 익혔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런 중 부러진 검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만을 남긴 채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다.
그 후론 오랫동안 부자유스럽게 보조기구에 몸을 기대에 살아야만 하는 인생을 원망하며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정말...정말 후회하지 않는 거지?"
라드그리드의 물음에 프레이는 그녀에게 다가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은 그녀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언제나와 같이 웃었다.
그 짧은 계절, 자신의 잠모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했던
끊임없는 거절과 설득의 반복은, 이제 수 없이 반복되는
확인과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어. 너는 이 곳에서, 그리고 내 옆에서 나와 함께 하는 거야."
프레이의 눈에 흔들림이 없음을 라드그리드는 몇 번이고 확인 했다.
그래야만 지금 자신이 가진 불안을 떨쳐낼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프레이 또한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자존심으로 무장된 그녀가
자신 안에 담긴 보조기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부자유자한 몸에 대한 열등감을 이겨 내려 하고 있음을 있기에,
얼마든지 그녀의 바람대로 같은 말을 반복하여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라드그리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신은 평생을 이 보조기구에 지탱하여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평생을 그렇게지낼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얽맨 사슬이며 풀려날 수 없음에
원망하고 좌절했다.
하지만 부자유스러운 몸뚱아리를 지탱해 가신을 바로 서게 하고,
그의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이것임을 잘 알고 있다.
라드그리드는 다시 한번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떠 자신 앞에 놓여진 불 꺼진 패널들을 바라 보았다.
이제부터 이 곳이 자신의 전장이다.
이 곳에 서서, 자신은 모든 것을 걸어 싸울 것이다.
조금 많이 거창하고 유난스러운 그의 바램을 이루어 주기 위해.
3.4.7. 란드그리드
'''란드그리드의 상처를 가린 안대''' / '''각성된 란드그리드의 상처를 가린 안대'''
란드그리드는 쉴 새 없이 자신의 왼쪽 눈에 씌워진 안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안대 뒤에 가려진 자신의 왼쪽 눈은 그날, 초원에서 괴물의 날카로운 공격에 흐릿한 잔상만 비추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래도 라드그리드 덕분에 비록 한쪽 눈에 의지할 뿐 일지라도 창을 쥐고 휘두를 수 있게 되었고, 원하지는 않았지만, 정식 후계자의 자리까지 올랐다. 심지어 '백 승의 발키리'라 칭송받으며 전장을 누비는 지금, 오로지 눈앞의 한 사람만이 그녀를 몰아내고 있었기에 더욱 초조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풋, 정신 사나우니 당장 그 손을 멈춰라."
친부는 란드그리드의 그런 행동이 거슬렸는지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깜짝 놀라 황급히 손을 내렸지만,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손은 다시 안대를 향했다. 안대가 벗겨져 상처가 드러날까 눈치를 보며 매무새를 만지던 버릇은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질 생각이 없었다.
가문을 이어나갈 후계자는 바로 자신, 어엿한 당신의 딸, 란드그리드 뿐이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친부 앞에 앉았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초조함을 감추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새 튀어나온 버릇은, 친부의 심기를 더욱 불쾌하게 만들 뿐이었다.
자신에게 후계자 자리를 내어준 라드그리드 또한 지금은 새로운 누군가의 곁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내었다. 그것이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었을 뿐.
어떤 말을 해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한번 입을 뗴면 예리하게 번뚝이는 저 눈이 이제까지 쌓아둔 감정을 전부 터트려 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하지만 이렇게 친부의 화만 돋우고 있다 한들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굴러들어와 박힌 돌은 이제 어엿한 주석이다. 그건 모두가 인정하고 있으며, 변하지 않길 바라고 있는 어엿한 사실이다. 오늘 어떻게 해서든 친부의 고집을 꺾고, 다시는 다른 이를 돌아보지 않도록 못 박을 것이다.
그것이 라드그리드의 자리를 빼앗고 선 그 순간부터 자신이 바래 마지않던 일이었으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보다 큰 미래를 바라보는 동생을 위해서도 더 미룰 수 없는 문제였다.
란드그리드는 긴 숨을 내뱉으며 안대를 만지던 손을 멈추고, 무거운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3.5. 사황
3.5.1. 에이스
에이스 각성 후 전용 장비의 이름이 '''천우검'''으로 나오면서 에이스가 지녔던 총운검에 대해 설정 논란이 다시 불붙은 적이 있었다. 총운검에서 설정이 변경되어 월광검이 된 줄 알았더니, 또 다시 이 시나리오와 웹툰에서 나오는 과거 이야기에선 총운검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기 때문. 일단 이 시나리오에선 총운검이 천우검으로 진화했다고 추측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대체 월광검은 어디로 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은 상황이었다.'''에이스의 천우검'''
"받거라, 에이스. 이제부터 네가 이 달빛의 섬의 주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백부는 울기만 하던 나에게 총운검을 건네었다. 나약하기만 했던 나에게 총운검의 무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고 나보다 무엇이든 뛰어났던 누님이 받아 마땅하다 여겨 검을 건네었지만, 누님은 매서운 눈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즉위식이 있던 그 날, 나약하고 어린 영주에게 쏟아지는 조롱에 찬 날카로운 시선을 견디지 못한 그날 밤, 울음을 터뜨린 나를 달래기 위해 백부님은 안간힘을 썼다.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내내 울기만 하는 누님은 그저 곁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나를 부둥켜안고 달래주었을 텐데 차갑기만 한 누님의[37]
태도에 서러움은 더해갔다."에이스, 당신은 총운검의 주인으로서 달빛의 섬을 지켜야 할 분. 언제까지 어리광만 부릴 생각인가요."
결국, 울다 지쳐갈 때쯤 누님은 입을 열었고, 차가운 말은 비수처럼 꽃혔다.
"더 강해지세요. 정신을 똑바로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도중 검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누님은 주먹을 쥔 채 이를 악물며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듯했다.
"제 몫까지 달빛의 섬을 지켜주세요. 나는 그런 영주님을 위해 목숨을 걸 것입니다."
그때 누님의 눈빛과 표정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말과 표정을 되뇌며 누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주가 되리라 다짐했었으니까.
누님은 손에 든 천우검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내려진 저주의 여파는 컸고 이렇게 앉아서 대화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할아버님도 풀지 못했던 비밀을 풀어내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누님은 검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즐거워 보였다.
"예전에는 이 검이 너무나 가지고 싶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네 것이 되었네."
검을 내밀며 누님은 이야기를 이었다.
"그때와 다르지 않아. 에이스, 넌 천우검을 들고 영주로서 싸워. 난 언제나 네 뒤에서 널 지킬 거니까."
누님은 그때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분명 그 안에 있던 것은 그때와는 다른 무언가.
"나는 달빛의 섬의 영주. 에이스. 천우검을 들고 이곳을 지키겠습니다."
이 의문은 에이스에 대응하는 펫인 유의 각성 출시로 해소되었다. 각성 유의 도감 설명에서 총운검이 진화한 것이 월광검이고, 월광검이 다시 진화한 것이 천우검이라고 나오기 때문.
3.5.2. 손오공
다크나이츠, 델론즈와 거래하여 막 파괴의 힘을 받아들인 후의 시점이다. 일말의 죄책감과 양심조차도 복수심을 통해 억누를 정도인 손오공의 심정을 보여주는 시나리오.'''손오공의 관정번''' / '''각성된 손오공의 관정번'''
긴 꿈을 꾸었다. 그 너머로 나를 부르는 그리운 목소리를 들은 듯했다. 파괴의 힘의 영향으로 며칠을 눈을 뜨지 않았다고 한다. 타버릴 것만 같이 끓어오르던 힘은 이제 안정을 되찾았지만, 육체의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마저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둠은 마치 내 머릿속인 것만 같았다. 힘을 대가로 한 거래에 아직 의심이 남은 것인가, 새로운 동료이며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던 그들을 배신하고 과거의 복수를 선택한 것에 대한 죄책감인가, 머리를 아프게 짓누르던 금관은 이미 깨어져 버렸는데 다 같은 곳을 죄어오듯 머리가 아파졌다.
'하지만 난 오랜 시간 이날만을 기다렸다.'
벽에 걸어둔 푸른 관정번을 손에 들었다. 과거 삼장과 동료들과 함께했던 증거이자 추억이던 푸른 관정번은 내 안의 분노와 복수심을 다시 타오르게 했다. 복수의 불꽃으로 일말의 양심마저 깊은 심연으로 억지로 밀어내어 버린다.
이제 곧이다. 이것만 끝나면 다시 천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반드시......!
3.5.3. 여포
이 시나리오의 화자는 초선으로, 여포의 서브 시나리오와 연계되는 내용이다.'''여포를 향한 마음''' / '''각성된 여포를 향한 마음'''
난폭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내.
"아무래도 화살에 독이 묻어 있던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출혈도 멈추지 않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그 방약무인함 탓에 적투성이면서, 납치되어 갇혀있던 나 하나 구하겠다고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든 사내. 독화살에 맞아놓고 다친 것이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사내.
"천하 무쌍인 사황 여포가 제 여자 하나 못 구한다면, 많은 사람이 비웃지 않겠나? 하하하, 아니면 혹여 내가 세간의 조롱거리라도 됐으면 싶은가?"
그 무모함 때문에 눈엣가시 같은 사내에게 도움을 받는 굴욕까지 겪으시면서, 어찌 여인 하나 지키겠다고 그 목숨을 건단 말입니까!
"파괴의 조각... 타 대륙에서 넘어온 세븐나이츠...... 역시 이 몸이 나설 차례인가. 지금 당장 움직여야겠어."
그리고는 또 멋대로 가버리시면 저는 어찌하란 말입니까. 정말 제멋대로의 독불장군 같으니라고.
"몸도 성치 않은 분이...... 하지만... 말린다고 들으실 분도 아니죠."
언젠가는 제멋대로인 당신 곁에서 까맣게 타버린 제 속을 아시는 날이 오려나요. 당장이라도 붙잡아 막아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결국 당신을 선택한 순간부터 나는 각오해야만 했겠지요.
품 안에 늘 간직해오던 어머니의 손수건을 그 사람에게 건넸습니다.
"여포 님을 향한... 저의 마음입니다. 소중히... 간직해 주세요."
그저 앞밖에 볼 줄 모르는 이 바보 같은 사내가 어디를 가든지, 그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만이라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3.5.4. 린
안그래도 서브 시나리오에서 수호패를 만들 때 부족한 손재주로 개그를 보여줬던 카르마였는데, 이번 시나리오에서도 역시나 그 부족한 손재주로 수호패에 새로 매듭을 지으려 하니 안그래도 외형이 많이 망가져 있던 수호패가 더 망가졌다. 개그 포인트는 시나리오 내에서 보여주는 카르마의 손재주와, 카르마의 자신에 대한 연심을 눈치채지 못하는 둔감한(...) 린.'''린을 사모하는 자의 수호패''' / '''각성된 린을 사모하는 자의 수호패'''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와 미르의 화염이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병사들을 이끌고 서둘러 찾아간 곳에는 까맣게 그을려버린 카르마와 멀리 날아가는 미르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병사들을 물리고 카르마에게 물었지만, 여기저기 그을린 상처로 엉망진창인 그는 시선만 피할 뿐 답을 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손에 쥔 것은 무엇은 무엇입니까?"
그가 등 뒤로 감춘 오른손에 들려 있는 것을 추궁하자, 깜짝 놀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빈 왼손만 들어 보이며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 수상한 행동을 추궁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큰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닌지라, 어질러진 황궁의 정리를 명령하며 다시 정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늦은 밤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와 한숨 고르고 차를 따랐을 때, 카르마가 찾아왔다. 영문을 묻는 나에게 카르마는 자신이 이전에 건네었던 수호패를 보여줄 것을 청했다. 수호패를 건네자 카르마는 붉고 하얀 실을 꺼내어 수호패에 묶기 시작했다. 느슨하거나 삐뚠 모양새에 몇 번이고 실은 묶이고 풀어지고를 반복했다. 도대체 왜 저 매듭 하나 묶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인지, 보다 못한 내가 대신 하려 해도 자신이 하겠다며 그저 고집을 부리는 통에 언제쯤이나 끝이 나려나 그저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떳을 때는 침대 위였다. 카르마도 방을 나섰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머리맡에 놓인 수호패만이 남아있었다. 미르의 꼬리르 닮은 하얗고 붉은색의 실로 거칠게 매듭이 매어진 수호패는 이곳저곳에 찌그러진 부위가 늘어 더욱 엉망이 되어 있었다.
"직접 만든 것이 맞긴 한 것 같군요."
잠들기 전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아마도 그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손재주가 없는 사람인 듯하다.
3.6. (구) 사황
3.6.1. 태오
에이스의 조부의 이름이 '''시로다'''(화이트 필드)로 나온다.[38]'''태오의 나이트 크로우 인장'''
"까마귀는 말이야. 눈이 까만색이라 잘 안 보여서 눈이 없는 것처럼 묘사되곤 하잖아?"
"그래서 까마귀(烏)를 적을 때는 눈동자를 긋지 않지."
"그런 까마귀가 부러워."
"왜 부러운가?"
"쭉쭉 빵빵! 예쁜 여자들을 눈치 안 보고 볼 수 있잖아! 내가 눈동자를 굴려도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모를걸?! 정말 부러워!!"
"하...... 시로다. 자네의 그 파렴치한 생각은 멈추질 않는군."
보름이 떠오른 작은 동산 위. 태오는 옆에서 흥분해 마지않은 청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나는 화이트 필드라고!"
"그저 아스드 식으로 바꾸었을 뿐이지 않은가."
"요즘 그게 유행이야. 몰라? 아들 이름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손자 이름은 아스드 식으로 지을 거야. 에반! 에이스! 에밀! 어떤 게 좋은 것 같아?"
"손자들이 싫어하겠군."
시로다는 자리에 앉아 달을 바라보았다. 찬 바람이 불어오자 구름이 달빛을 가렸고, 그는 다물었던 입을 다시 열었다.
"어둠이 내린 지금이야말로 감시자가 필요한 법이지 밤을 나는 까마귀가 있으면 좋겠다 싶다."
"밤 까마귀?"
"어둠에서 눈에 띄지 않아 어디에도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거지."
"공포 정치를 하겠다는 건가?"
"아, 미처 거기까진 생각 못 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것보단 자신을 지켜보는 또 다른 양심이 있었으면 했어."
"자네다운 생각이군. 나라면 사람의 양심을 비추는 저 달빛을 지키도록 하겠네."
"음... 그런가? 그래, 태오 말이라면 맞는 거겠지.!"
"이제 바람이 차군. 들어가세."
"그럴까? 문 라이트 가디언! 어때? 멋있지 않아?"
"그만두면 안 되겠나......"
태오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날의 기억은 마치 어제처럼 생생했다. 그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나이트 크로우."
"뭐?"
오를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태오는 다시 한 번 다짐하듯 대답했다.
"우리는 이제 나이트 크로우다."
나이트 크로우라는 조직명의 유래가 확실하게 밝혀지는 시나리오다. 즉, 나이트 크로우는 태오의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시로다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6.2. 카르마
6성 카르마가 착용중인 허리띠가 이 전용 장비 시나리오에 나오는 허리띠인 것으로 보인다.[39] 과거 파괴의 전쟁 당시 살육을 저질렀던 과오 탓에 PTSD에 시달리는 카르마의 처절한 면을 볼 수 있다.'''카르마의 절망의 허리띠'''
생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이었을까. 사람들의 처참한 비명과 붉은 피가 강이 되어 흐르는 이곳은 정녕 현실이었던 것일까. 나는... 그날의 광경을 아직도 기억한다.
난 내가 저지른 잘못으로부터 도망쳤다.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계속해서 도망쳤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떤 산속이었다. 어둠이 내리깔린 숲은 나의 마음 같았다. 자리에 주저앉아 마른 울음으로 누군가 이 상황에서 구원해주길 바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해가 중천이었고 멀리서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곧장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사람 목소리는 가까워졌고 나를 발견하였다.
그는 식량을 나누어 주었고 신선의 봉우리에 오게 된 이야기를 설명했다.
"저희 부모님은 어느 작은 고을의 대장장이였습니다. 어느 날은 어떤 무리가 오더니 거대한 허리띠를 만들어달라며 협박하는 게 아닙니까. 목숨이 달린 일이라 만들어주겠다 하고는 허리띠를 만들었죠. 하지만 물건을 받으러온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부모님을 죽이고는 떠났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익숙했다. 기억 속 어딘가에서 보이는 그 광경. 카르마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 그 허리띠는 어떻게 됐습니까?"
"우습게도 부모님의 유작이기에 아직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카르마는 그의 어깨를 잡아채며 말했다.
"그 허리띠를 저에게 파십시오.....! 제발... 제발......!"
대장장이의 아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카르마가 너무나도 비참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3.6.3. 카일
그림자단의 우두머리로부터 태오 암살을 지령받았을 당시로 보인다.'''카일이 지닌 암살명령서'''
창으로 작은 빛이 스미는 빈방. 조용히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곧 빛으로 나와 그 형체를 드러냈다.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을 풍기는 사내는 의자 쪽으로 사슬 낫을 던졌다. 그러자 갑자기 사슬 낫이 공중에 멈추더니 또 다른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변하질 않는군,"
"이거 왜 이러시나. 예절 정도는 지켜줘야지. 많이 크더니 건방져졌구나, 카일."
카일이라 불린 사내는 남은 사슬 낫을 던졌지만, 상대는 그것마저 잡아냈다. 그리고 그 사슬 낫을 그대로 던져 공격했다. 그러나 카일은 사슬 낫을 자신의 팔에 감아 잡아버렸다.
"흥, 그래서 용건은?"
"이 녀석을 처리해주었으면 하는군. 자네도 잘 아는 녀석이야."
그림자 사내는 카일에게 하나의 두루마리를 건넸다. 그리고 연기처럼 흩어지더니 창문 밖으로 사라졌다. 카일은 그 자리에서 두루마리를 펼쳐보았다. 유일하게 암살에 실패했던 그 인물.
카일은 미소를 띠며 사무실을 나섰다.
3.6.4. 연희
연희가 파괴의 힘을 받아들여 각성한 후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연희가 말하는 '당신'은 연희의 어머니. 과거가 시궁창이니 만큼 어릴 때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 어머니 뿐이었고, 그 어머니와 함께했던 순간을 영원히 꿈 속에서 간직하고 싶었지만 악몽 때문에 그럴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심정을 다루고 있다.'''연희의 머리핀''' / '''각성된 연희의 머리핀'''
당신이 내 곁을 영원히 떠나가단 날, 내 조그마한 손에는 당신의 머리에 장식했던 보랏빛 머리핀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어요. 그 후, 한동안 그 머리핀을 보며 그리움의 눈물로 밤을 지새웠죠.
꿈속에서 당신과 다시 마주했을 때, 그 행복에 취해 머리핀을 보관함에 넣어두었어요. 이제 다시는 그걸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꿈의 세계에서 두 번 다시 우리가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더는 당신과 만날 수 있었던 그 세상이, 그 공간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요. 이미 그곳은 끔찍한 힘을 머금은 악몽에게 파괴되고 있었으니까. 우리의 세계가 힘없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내가, 직접 그 끔찍한 힘을 받아들이고 무너뜨려 버렸으니까.
다시 한 번, 모든 것이 사라져가네요. 나를 향해 웃어주었던 온화한 미소, 나를 꼭 감싸 안아 주었던 온기 가득한 품속. 당신의 모든 게 무정하고 하릴없이 자꾸 옅어지고 기억 속에서 흩어져만 갑니다.
당신이 또 한 번 내 곁을 떠나가던 그날 밤, 머리핀을 다시 꺼내 추억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그것을 머리카락에 꽂으며 다짐했어요. 이제 두 번 다시 당신을 놓치지 않을 거라고. 영원한 잠을 자게 되는 날까지 평생토록 함께할 거라고.
이제 이 현실의 세계에서 내가 할 일은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조용한 세상을 만드는 것 뿐.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당신이 다시 오기만을 기다릴 거예요. 기억의 끝자락을 붙잡고, 우리를 감싼 운명의 실타래가 결코 끊어지지 않길 바라며. 다시 한 번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이 보랏빛 머리핀에 조그마한 염원과 소망을 새기며.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가까이 다가와 나를 더 사랑해 주기를 바라요. 이 생의 끝에서 그 부드러운 손으로 내 눈물을 훔쳐줬던 것처럼. 저 꿈의 마지막에서 그 따뜻했던 품으로 꼭 끌어 안아줬던 것처럼.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변함없이 나를 가장 사랑해줬던 그때처럼.
3.7. 심연의 사도
3.7.1. 쥬다스
'''쥬다스의 부서진 검''' / '''각성된 쥬다스의 부서진 검 '''
"강자는 약자를 지배해야 합니다. 저희 마족들은.."
가정교사의 말을 들은 어린 나이의 쥬다스는 바로 가정교사를 쓰러트려 배운 내용을 실천해볼까 했다.
지겨운 제왕학 교습에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쥬다스의 바로 뒤에 그의 호위 기사가 매의 눈으로 쥬다스를 감시하고 있었다.
쥬다스가 무슨 움직임이라도 보이는 순간에 호위 기사는 바로 움직일 것이다.
쥬다스는 곤란한 듯 한숨을 쉬었다. 어제부터 아버지의 명으로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마족이다.
직책은 호위 기사지만 주로 하는 일은 자신에게 사사건건 간섭하여 그가 장난치거나 수업에 땡떙이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복습하지요. 왕자님. 강자는 약자를 지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강자는 응당 지배자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군.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어."
수업 중 쥬다스는 갑작스럽게 일어섰다. 가정교사가 놀라 당황하고 쥬다스 뒤에 있던 호위 기사가 쥬다스를 제지했다.
"왕자님,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복습 시간이야. 내가 이번 교습에 배운 내용은 강자는 약자를 지배해야 한다. 즉."
쥬다스가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호위 기사가 거대한 마력의 압력을 받아 뒤로 튕겨 나간다.
"난 너를 복종시켜야 한다."
그래도 썩어도 왕족 호위 기사인 그는 일어서서 대항하려 했다. 하지만 쥬다스가 다시 한번 손짓하자 기사는 두꺼운 왕성 벽을 뚫으며 튕겨 나갔다.
"요즘 기사들의 교육이 부족한 것 같지 않나 선생?"
"그.. .그렇습니다."
"그럼 난 이만..."
"왕자님!"
어느새 쥬다스 뒤로 호위 기사가 다가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가정교사가 놀라 소리치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그러나
"아, 걱정하지 말라고 배운 건 잊지 않았으니까."
쥬다스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짓 한 번으로 기사들 뒤로 다시 튕겨냈다.
쥬다스의 손에는,, 어느샌가 호위 기사의 검이 돌려있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로 가정교사의 눈에는 모든 것이 순간이동한 것처럼 보였다."
"이건 아마 아버지가 하사한 검이겠지. 네놈이 나에게 반항한 것을 생각하면 백번 죽어 마땅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봐서 이걸로 끝내겠어."
쥬다스는 나뭇가지 꺽듯이 검을 부숴버렸다.
"강자는 응당 지배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게 맞겠지 선생?"
"네.. 넵.. 맞습니다."
"그럼 나중에 보지. 이건 내가 가져간다고 알리게."
"알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3.7.2. 이브
'''이브의 이브이자 이브 아닌 이브인 것''' / '''각성된 이브의 이브이자 이브 아닌 이브인 것'''
"이브, 네가...!"
소녀를 바라보는 주인과 적들의 눈에는 모두 놀라움이 가득했다.
꼭두각시인 소녀가 창조주인 주인의 실의 의지를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제법이구나"
자신 또한 누군가의 손에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였기에 저항이라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굳이 소녀를 설득한 것은 은발의 키메라였다.
그리고 그 행위의 위험을 잘 알면서도 행한 것은, 친구의 심장을 꿰뚫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실이 움직이는 대로 벌어야만 했던 원치 않은 살육을 멈추고 싶어서였다.
손가락 파츠 끝에서 큰 균열이 일며, 파편이 튀는 것을 보았다. 균열은 순식간에 팔을 타고 목과 어깨를 넘어 가슴까지 닿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실의 장력을 거부하며 무리가 가해진 몸은 아마도 곧, 부서져 내릴 것이다.
그래도 이것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이라는 걸 생각하면, 존재할 리 없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격한 헤방감도 느꼈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소녀는 충분하다고 웃으며, 주인의 손을 잡은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몸을 내던졌다.
3.8. 혁명단
3.8.1. 엘리시아
엘리시아가 다녔던 사관학교가 이전에 루디와 크리스가 다녔던 룩스타프 기사양성 사관학교임이 밝혀졌다.'''엘리시아의 거울'''
엘리시아가 13세가 되던 해, 룩스타프 기사양성 사관학교는 이례 없는 평민 출신의 빛의 기사 후보와 최연소 신입생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루네 남작은 엘리시아의 입학을 축하하며 저택에서 잔치를 열었고, 참석한 이들은 남작을 닮아 영특하고 용감한 아이라며 그녀가 훌륭한 기사가 될 것이라 입을 모아 말했다.
"엘리시아, 입학 축하 선물은 네 방에 준비해 두었단다."
남작에 말에 엘리시아는 부푼 마음으로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금으로 장식한 화려한 테두리에 루비가 박힌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었다.
"기사에게 있어 몸가짐을 바로 하는 것은 마음가짐을 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도 매일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네가 무엇을 위해 기사가 되었는지 기억하도록 해라."
그 후로 엘리시아는 매일 남작의 말을 되뇌며, 거울 앞에서 자신을 가다듬어 왔다.
"엘리시아 님. 왕관은 잠시 이쪽으로."
신관이 내민 붉은 천 위에 엘리시아는 왕관을 올려놓았다. 자신의 위치를 증명해줄 이 왕관은 이제 곧 대신관을 통해 정식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씌워지리라. 엘리시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에게 왕관을 건네던 양부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감은 눈을 떠 바라본 거울 속에는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짐 없는 모습과 흔들림 없는 눈동자룰 한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 저는 오늘 기사 엘리시아가 아닌 여왕 엘리시아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백성과 테라 왕국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는 것. 그것만이 저의 의지입니다."
엘리시아는 몸을 돌려 취임식이 시작될 중앙 홀로 향했다.
각성 엘리시아의 스탠딩이나 일부 스킬 모션에서 보이는 거울이 바로 이 전용 장비인 것으로 보인다.
3.8.2. 키리엘
여동생이 사용하는 무기인 석궁과 비슷한 형태의 무기라는 점과, 키리엘의 4성 도감 설명과 관계도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이 쇠뇌는 과거 키리엘이 그림자단에서 암살 훈련을 받던 시절 사용하던 주 무기다. 현재는 그림자단 시절의 기억을 잃었지만 가장 몸에 익는 무기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무기를 많이 사용한 듯.'''키리엘의 쇠뇌'''
전투가 끝난 후, 성으로 복귀한 키리엘은 방에서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엘리시아는 키리엘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직접 전하기 위해 그녀의 방에 들어섰다. 무기를 만지던 키리엘은 엘리시아를 발견하자마자 벌떡 일어나 몸을 굽혔다.
"키리엘, 이번 전투도 수고했어요. 당신이 선봉에서 활약한 공이 크더군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키리엘의 형식적인 대답에 엘리시아는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무심결에 방을 둘러본 엘리시아는 키리엘의 곁에 두 종류의 무기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군요? 그러고 보니, 다양한 활을 사용하네요."
"아, 네.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만......"
엘리시아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키리엘의 곁에 다가갔다. 그녀는 단단하고 커다란 사자궁을 살펴보면서 키리엘에게 말을 이었다.
"가장 많이 쓰던 게, 이 활이었죠?"
"네, 그렇습니다."
"가끔은 이 물건도 사용하는 걸 봤어요. 마치 활 모양을 한 총 같군요. 쇠뇌라고 했던가요?"
엘리시아의 손가락은 사자궁의 옆에 놓인 쇠뇌를 향했다. 그것은 사자궁에 비해 몹시 작은 크기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날카로운 빛을 뽐내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사용하던 물건이에요."
"이것도 그분께서 가르쳐주신 건가요?"
"네. 그런데, 사실 그전부터 지니고는 있었습니다. 다른 무기에 비해 손에 금방 익는 편이었죠."
무기 감상을 마친 엘리시아는 고개를 들어 키리엘을 마주 보았다.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키리엘의 표정에서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엘리시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군요?"
"어째서 들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고개를 끄덕인 엘리시아는 키리엘에게 푹 쉬라는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섰다. 엘리시아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키리엘은 도로 자리에 앉아 쇠뇌를 집어 들었다. 하얀 천에 감싸진 쇠뇌는 키리엘의 손길을 타고 점점 더 깨끗하고 영롱한 금빛을 띠기 시작했다.
정작 인게임은 주로 사자궁을 사용하지만, 각성 전의 스탠딩 모션과 치명타 모션에서 이 쇠뇌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때 쇠뇌를 2개 소지하고 있다.
3.8.3. 라이언
진중한 다른 혁명단들과 달리 유독 튀는 분위기를 가진 라이언 답게, 역시나 스토리도 상당히 개그스럽다. 여담으로, 엘리시아와 키리엘의 반응을 보면 이렇게 회의에 늑장을 부리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던 모양.'''라이언의 전투고글'''
엘리시아는 다음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키리엘과 라이언을 바삐 회의장으로 불렀다. 이른 시각에 도착해 회의 준비를 마친 키리엘과 달리 라이언은 정시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시아와 키리엘은 이러한 상황이 익숙한 듯 침착하게 그를 기다렸다. 이윽고 라이언은 지각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키리엘은 냉정한 표정으로 그를 질책했다.
"오늘도 지각이군요. 이번엔 또 무슨 이유입니까?"
"썩 괜찮은 걸 발견해서 써보느라 늦었어."
정말 핑계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시는군요. 키리엘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지만 엘리시아는 대수롭잖게 여기며 라이언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 썩 괜찮은 것이, 새로 쓰고 온 그 고글인가 보군요."
"오! 여왕님, 정답. 멋있죠?"
라이언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글을 벗어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키리엘은 심드렁해진 눈빛으로 고글을 바라보며 물었다.
"겨우 이것 때문에 늦었단 말입니까?"
"겨우라니! 이렇게 멋진 고글을 구하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 잘 봐, 나랑 잘 어울리지? 딱 나를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라이언의 고글 자랑에 키리엘은 못마땅한 기색이었지만, 엘리시아는 작은 호기심을 띠며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고글이죠?"
"전에 쓰던 헤어 밴드가 낡아서 새 걸 사려고 시장에 갔는데, 이게 있더라고요. 마침 헤어 밴드도 질렸고 잘됐죠, 뭐. 나 이래 봬도 실용성을 아는 남자에요. 이거, 전투에도 큰 도움이 될걸."
"단순히 멋 부림이 아니었군요."
"뭐야? 이게 빛 번짐도 가려주고 얼마나 좋은데."
라이언은 고글을 다시 머리에 착용하고는 "짜잔!"을 외치며 자신의 새로운 멋을 선보였다. 키리엘은 얼마 없던 관심까지 다 잃은 듯 회의 자료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엘리시아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전투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반갑죠. 자, 회의를 시작해볼까요?"
라이언의 외형을 보면 4~6성까지는 헤어밴드를 쓰다가 각성에서 뜬금없이 고글을 쓴다. 전용 장비의 시나리오는 이러한 외형 변화를 반영한 것.
3.9. 나이트 크로우
3.9.1. 칼 헤론
상당히 의미심장한 떡밥이 던져졌는데, 칼 헤론 스스로 '''과거의 죗값'''을 언급한다는 것과, '''과거 아그니가의 저택에서 빠져나갔던 것처럼'''이라는 문구가 나온 것이다. 과거 설정을 다른 웹툰에서 알 수 있듯이, 여명의 용병단과 아그니 가문이 과거에 관련될 일은 화염의 사막을 둘러싸고 영지의 주도권을 두고 샌드스톰 가문과 아그니 가문이 벌인 전쟁 뿐이다. 그리고 레이첼의 할아버지인 플레임은 저택 내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고, 그 가슴팍엔 '''여명의 용병단의 문양이 박힌 칼이 꽃혀 있었다'''. 즉, 어떤 식으로든 '''칼 헤론이 플레임의 사망과 연관이 있다'''라는 것.[스포일러2]'''칼 헤론이 받은 태오의 서신'''
칼 헤론은 함락된 포디나를 보며 혼란에 빠졌다. 파괴된 시설물들과 주변 상황은 치열했던 지난날의 전투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하! 아직도 살아남은 인간이 있었다니!"
대여섯 명의 여명의 용병단원이 수십의 오크들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파괴의 저주로 오크들이 강해졌다 해도, 포디나가 무너진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답을 얻기 위해 양손의 쌍창을 고쳐 쥐고, 오크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래, 아일... 포디나의 여제는 광산 깊숙이 피신했단 말이지."
오크들은 파괴의 저주로 힘을 얻자, 과거의 복수를 위해 포디나를 침공했다. 뒤늦게 원정에서 돌아온 아일린은 무리한 전투로 결국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테라 왕국의 지원을 받기는 어려운가?"
"그쪽도 저희 못지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곧 다른 곳에서 지원이......"
그때 커다란 도끼가 날아와 용병단원의 어깨에 박혔다.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의 몇 배는 될 법한 오크들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그리고 거구의 붉은 오크가 부하에게 다른 도끼를 넘겨받고 있었다.
"거기 꽁지머리 인간! 감히 내 부하들을 건들다니, 곱게 죽이진 않겠다!"
"돼지 주제에 사람을 물었으니 당연히 혼나야지. 네놈들도 이 몸께 참교육을 받으러 온 거냐?"
여유롭게 말했지만 그리 녹록한 상황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용병단원들을 지키며 저 많은 적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투를 준비하는 순간, 오크들의 후미에서 급작스러운 전투가 벌어졌다. 아그니가의 문장이었다.
"기사들이여! 우리의 불꽃으로 광산의 어둠을 몰아내는 거다! 모두 돌격하라!"
칼 헤론은 선두에 선 레이첼을 보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저주에서 벗어난다면 과거의 죗값을 치르리라 다짐했었다. 하나, 그 다짐은 스스로 새긴 죄의 낙인 앞에 무력했다. 곧 오크들과 기사단의 전면전이 시작됐다. 그 틈을 타 칼 헤론은 과거 아그니가의 저택에서 그랬듯, 다급히 전장에서 도망쳤다.[40]
광산을 벗어난 칼 헤론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자 곧 새하얀 나이트 크로우의 전서구들이 날아왔다. 태오로부터 온 서신이었다.
"도망칠 핑곗거리가 생긴 건가....... 하지만 곧 다시 만나게 되겠지."
칼 헤론은 잠시 광산의 입구를 바라본 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태오에게 둥지로 복귀하라는 서신을 받기 전의 시점이다.
3.9.2. 오를리
오를리에게 과거에 '샤를'이라는 정혼자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 정혼자는 요절했고, 상심하여 달빛의 섬에 갔을 적에 태오와 만난 것.'''오를리의 양산''' / '''각성된 오를리의 양산''' / '''변환된 오를리의 생사가 기록된 양산'''
샤를.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 바다를 건너 달빛의 섬에 도착했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덕분에 그곳도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답니다. 그곳은 달빛의 섬 남부에 있는 한 숲의 중심부에 있었어요.
이른 아침이었지만 숲은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서 어두웠답니다. 하지만 숲의 중심으로 갈수록 큰 나무들은 점차 사라지고, 주변에선 형형색색의 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마침내 도착한 곳에는 당신과 사진으로 봤던 커다란 꽃나무가 있었어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양산을 폈답니다. 맞아요. 어느 오후 우리의 첫 만남 때 샤를이 선물한 양산이에요. 혼자 양산을 쓰고, 함께 보기로 했던 꽃나무를 향해 걸어갔지요. 그루터기에 앉아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렸답니다. 그리고 미약한 당신의 삶을 잡아주지 못한, 무력했던 저를 원망했지요.
달콤한 꽃향기에 취하니 점점 눈이 감기더군요. 그때, 멀리서 한 남자가 다가와 절 번쩍 안아 들었어요. 저는 잠에 취해서 당신이 제게 왔다는 착각에 빠졌죠. 그리고 손을 들어 볼을 매만졌답니다. 하지만 나무에서 멀어지며 깨달았어요. 절 안고 있는 게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도 전 마치 당신의 품에 안긴 듯 편안히 잠들었어요.
정신을 차린 곳은 꽃나무에서 멀찍이 떨어진 작은 그늘이었죠.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올랐고, 그는 두세 걸음 앞에서 꽃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제가 깬 걸 알았는지 '이 시기에 꽃나무가 내뿜는 수면향은 위험하지, 그러니 이 정도 거리에서 봐야 한다.'라고 말하더군요.
제가 다가가자 남자는 양산을 펼쳐서 기울여 줬어요. 마치, 그날의 샤를처럼. 저는 끌리듯 그의 볼에 손을 댔죠. 그러자 푸르고 깊은 눈이 절 바라봤어요. 순간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 당신이 한 말이 떠올랐어요. '언젠가 날 대신할 사람이 당신 곁에 나타날 겁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슬프지만, 그때는 저를 잊으세요. 오를리.'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그의 이름을 물었어요. 그러자 담담히 '태오.'라고 말했지요. 우린 오랜 시간 함께 꽃나무를 바라봤어요. 따뜻한 햇볕과 작은 바람에도 꽃잎들이 흩날리던, 그날과 같은 어느 오후에.......
태오와 오를리가 만나게 된 정확한 시간대는 불명. 태오는 아버지를 따라 아스드 대륙으로 가지 않고 달빛의 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3.9.3. 아킬라
5성 도감에 언급된 '최후의 전투' 중의 일화이다. 아킬라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대악마의 징표는 각성 외형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옷에 장식처럼 걸려 있다.'''아킬라가 지닌 대악마의 증표'''
"아킬라. 최후의 전투는 지금까지와 다를 거다."
"모든 상위 악마들과 그들의 지배자인 아버지도 참전하겠죠. 그 말을 하려고 적진에 온 겁니까?"
애써 담담하게 대답한 아킬라의 시선은 막사 틈새로 들어온 새벽 달빛을 향해있었다. 전쟁은 분명 패배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비롯한 혼혈 악마들이 이 땅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의 너로서는 상위 악마 하나도 상대할 수 없다. 하지만 넌 모두를 위해 전장에 서겠지."
전에 없던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마친 아버지는 아킬라의 눈높이에 맞춰 손을 펼쳤다. 그러자 곧 몸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올라 손바닥 위로 모이며 결정을 이뤘다. 아킬라는 그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대악마들이 몸속에만 존재한다는 붉은 결정인 '징표'. 그것은 힘의 근원이자 동시에 생명 그 자체이기도 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징표'를 몸에서 꺼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행동은 일절 망설임이 없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만큼, 큰 용기는 없지."
일순간 아킬라는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가 희생될 때조차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에는 존재할 리 없다고 믿었던 어떤 감정이 깃들어있었다.
"그것을... 너의 어머니를 잃고 난 뒤에야 깨달았구나."
아버지는 천천히 아킬라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의 딸아, 하지만 명심하거라. 무언가를 지키는 것은 힘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음을."
그리고 한 걸음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자, 아버지는 '징표'를 아킬라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것은 잔혹하리만큼 아름다운 선홍빛을 띠고 있었다.
"이것이 지닌 힘이 너의 의지를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아버지의 몸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아킬라는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징표'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지 못한 말에 대해 생각했다. 달빛이 사그라들고 새벽의 끝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동이 터오고, 어둠은 물러갈 시간이었다.
아킬라는 결심한 듯 손을 움켜쥐었고, 곧 막사를 나섰다. 전장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3.9.4. 타카
타카의 참전 트레일러를 보면 알겠지만, 자기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자식의 관계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타카가 받은 엘프의 쌍검'''
흑도를 꺼내 드는 태오의 모습은 평소보다 더욱 진지해 보였다. 그에 반해 이제 겨우 아홉 살인 타카의 표정엔 별다른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오를리는 먼발치서 그 모습을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봤다. 양산을 들지 않은 한쪽 손에는 고급스러운 천으로 포장된 상자가 들려있었다.
"날 이 안에서 나가게 하면 된다."
태오는 흑도로 땅에 작은 원을 그은 뒤, 그 안에 들어가며 말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타카는 태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원 앞에 선 타카는 순식간에 허리를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태오는 움직이지도 않은 채, 공격을 받아 쳐냈다. 타카는 그 힘을 이용해 단숨에 도약했고 곧바로 오른쪽 목을 노렸다. 하지만 태오는 여유롭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역시, 이 정도는 어림없군요. 그렇다면......."
이후 타카의 공격은 구르는 눈덩이처럼 점점 빠르고 강해졌다. 게다가 양손으로 검을 바꿔가며 펼치는 변칙공격에 태오도 점차 여유를 잃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상단을 내려칠 것처럼 보였던 타카는 급격히 땅에 엎드리듯 자세를 낮추고, 엄청난 속도로 쇄도했다. 동시에 갑작스러운 바람이 둘 사이에 몰아쳤다.
오를리는 돌풍과 함께 일어난 흙먼지를 양산으로 막아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둘의 윤곽이 드러났다. 태오의 발목을 겨누는 타카의 목 언저리에 흑도가 땅에 꼽힌 채 가까스로 멈춰있었다.
"굳이 발목을 노린 이유는 뭐지?"
"움직이지 못하는 사냥감만큼 쉬운 것도 없으니까요."
태오는 말없이 검을 거뒀다. 어느새 다가온 오를리는 타카를 일으켜 세운 뒤, 다친 곳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폈다. 태오는 오를리가 가져온 상자의 포장을 푼 뒤 두 사람의 앞에 섰다.
"생각보다 양손으로 검을 잘 다루더구나. 자, 열어 보거라."
그 안에는 각각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쌍검이 들어 있었다.
"가문의 창고에 오래전부터 있던 쌍검이다. 먼 옛날 계승자가 사라지며 주인을 잃었지. 아마 , 너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거다."
타카는 상자에서 쌍검을 꺼내 들고는 잠시 살펴본 뒤 내려두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마."
말을 마친 태오의 시선은 치열한 전투 흔적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원의 한 귀퉁이에는 태오의 발자국이 선명히 찍혀있었다.
"아... 그, 그게......."
타카는 마치 해서는 안 될 말을 곱씹듯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다. 말하거라."
"스승님이 아닌... 아버지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말을 내뱉은 타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의외의 말에 놀란 태오는 타카의 곁에 있는 오를리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서로의 입가에는 얕은 미소가 걸렸다. 태오는 흑도를 검집에 넣은 뒤, 돌아서며 말했다.
"좋을 대로 해라."
그 말을 들은 타카는 그제야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되었고, 오를리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오랫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타카의 전용 장비는 각성 스탠딩 모션에서 쥐고 있던 쌍검이다.
3.9.5. 오목
'''오목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 / '''각성된 오목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 '''
장지문 너머의 그림자는 조그만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제아무리 소리를 죽이고 있다 한들때떄로 들려오는 코를 훌쩍이는 소리와 크게 떨리는 어깨를 보면 타카의 예상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어제 오후, 갑작스레 찾아온 칼 헤론의 품에는 낯선 아이가 안겨있었다. 부모를 잃고 일족에게 내쫒겼다는 그 사정은 딱하나, 언제 끝없는 성벽의 저택을 떠나 전장에 설지 모를 시국에 아이를 맡는다는 건 무리수임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오를리가 칼 헤론의 저주를 풀기 위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돌린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밤 새 잠들지 못하고 울었을 아이의 눈가를 닦아주며 오를리가 중얼거린 한 마디에서, 굳이 이야기하지 않은 그 진짜 이유를 타카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타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차라리 뗴라도 쓰면 좋을 것을..."
그 한 마디가 타카를 움직였다. 아니, 마음 어딘가에서는 이미 아이의 잔뜩 충혈된 눈을 보며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고 있엇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더 망설임은 없었다. 타카가 조용히 문을 두드리자 아이는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겁먹은 듯한 아이의 눈이 보였을 때, 타카는 망설임 없이 문틈에 손을 넣어 활짝 열어젖혔다.
"네 방 앞에 걸어둘 문패다."
너무 놀라 눈물이 쏙 들어갔는지 동그랗게 떠진 그 눈동자는 타카가 예상한대로 까맣고 동그란 유리구슬 같았다.
"까마귀처럼 검은 눈동자... 오목(烏目) 그게 이제부터 네 이름이다."
아이는 쉽게 이해하지 않는 듯, 타카와 문패를 번갈아 보며 한참 동안을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
"그래. 그리고 깃털은 우리 밤 까마귀의 상징이지. 이 방은 이제부터 네 것이다."
타카의 대답에 아이의 손에 쥔 문패를 몇 번이고 더듬거렸다. 거칠게 새겨진 작은 꽃과 검은 깃털, 그리고 처음 보는 낯선 나라의 글자가 자신이 있을 곳이 생겼음을 알려준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몇 번이고.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했을 때, 아이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목 놓아 우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3.10. 펜타곤
3.10.1. 아리스
5성 도감에 언급된 귀족 연합의 공격으로 어머니가 사망했을 당시의 시나리오를 다룬 것이다. 참고로, 이 시나리오에서 아리스에게 지룡 억제 비약을 먹인 후 그녀를 거두어준 사람은 바로 클레미스인데, 이는 클레미스의 일본판 서브 시나리오로 알 수 있다. 지룡 억제 비약을 만든 것은 클레미스이며, 그 후로는 그녀가 아리스에게 비약 제조법을 알려준 듯.'''아리스의 지룡 억제 비약''' / '''각성된 아리스의 지룡 억제 비약'''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에 아리스는 흐릿해지던 정신을 바로잡았다. 이미 체력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지만, 아직도 목표까지는 수십 명의 정예병으로 가로막혀있었다.
"어머니... 제 선택을 용서하세요."
잠시 머뭇거린 아리스는 거칠게 목에 걸린 봉인구를 풀었다. 그러자 몸에서 거친 황색 연기가 피어올랐고, 지룡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봉인구를 풀다니, 곧 네 의식은 사라지고 그 몸은 내가 차지할 것이다!'
"그전에 끝내고 다시 가둬줄 테니 걱정하지 마!"
자신을 잃어버릴 듯한 힘의 격류가 몸을 덮쳤다. 아리스는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으며 정예병들을 뚫고 어머니의 원수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의식을 잃기 전 가까스로 목표에 도달해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했다.
그때, 주변에서 날아온 밧줄들이 아리스의 몸을 옭아맸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손에는 황색 용장식이 달린 노란 병이 들려 있었다.
"저놈을 살려주는 건 싫지만... 그나저나, 상태가 좀 심각하잖아? 약발이 받으려나 모르겠네."
그녀는 천천히 병뚜껑을 열며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아리스는 밧줄을 끊으려 발악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쪼여들 뿐이었다.
"당장 이걸 풀어라! 안 그럼 네놈도 처참하게 짓뭉개버릴 테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래, 그래. 입 크게 벌리고."
그녀는 고함치는 아리스의 입에 빠른 동작으로 노란 병을 쑤셔 넣었다. 그러자 곧 주변에 피어나던 황색 기운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지룡 억제 비약이 효과가 있는 걸 보면... 다행히 몸을 뺏기진 않았나 보군."
그녀는 기절한 아리스의 목에 봉인구를 채운 뒤, 손가락을 튕겨 팽팽하던 밧줄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서 쓰러진 아리스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 모습은 마치 신기한 물건을 보는 아이 같았다.
"생긴 건 완전 다른데, 무모한 성격은 어째 자기 엄마를 완전히 빼다 박았네."
아리스를 둘러업은 그녀는 몇 걸음을 걷다가 잠시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 그나저나 이 애 성격을 어떻게 감당하지? 친구 딸만 아니었으면......."
3.10.2. 클레미스
클레미스의 도감 설명에 나오는 아들의 이름이 여기에선 '''대런'''으로 나온다.[41]'''클레미스의 주술이 담긴 지도''' / '''각성된 클레미스의 주술이 담긴 지도'''
책상 위에는 수많은 지도 사본과 측량 도구들이 뒤엉켜 있었다. 바닥 또한 탐험 장비들과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발 디딜 곳이라고는 잠든 그녀가 앉은 의자 주변과 한쪽 벽면에 걸린 지도로 향하는 좁은 길뿐이었다. 막 깨어난 그녀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다. 잠도 자지 않고 조사를 거듭한 지, 나흘 만에 쓰러져 잠든 것이었다. 정신을 차릴 때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일어나셨군요. 일단, 그것부터 드세요."
고개를 들자, 눈앞에는 스튜가 담긴 작은 그릇과 커피가 놓여있었다. 커피를 집어 들어 한 번에 마신 클레미스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열 살 남짓한 소년이 사다리에 올라가 벽에 걸린 지도를 수정하고 있었다. 소년은 곳곳에 붙은 메모를 보며, 사다리 위에서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클레미스는 잔을 내려 둔 채, 천천히 지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커피 잘 마셨다. 이제 그만 내려오렴. 네가 만질 만한 것이......"
말을 멈춘 클레미스는 천천히 지도를 바라봤다. 몇 달째, 제작에 진전이 없던 지도였다. 중요한 지점은 미궁에 빠져있었고, 그걸 위한 답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는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지도의 빈 지점들을 메워갔다. 클레미스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자, 지도는 한 지점을 제외하고 완성되어 있었다.
"받으세요. 마지막은 어머니께서 완성하셔야죠."
사다리에서 내려온 아들은 마력이 담긴 펜을 내밀었다.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몇 달간 클레미스가 손에서 떼지 않던 물건이었다. 클레미스는 천천히 사다리에 올라가 비어있는 마지막 목표지점을 조심스레 그렸다. 그러자 펜촉을 땐 곳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뻗어 나왔고, 곧 지도 전체를 감쌌다.
빛에 휩싸이던 지도는 점점 작아졌고, 마침내 손에 꼭 들어올 만한 크기가 되었다. 사다리에서 내려온 클레미스는 완성된 지도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이제...... 아버지를 구할 방법을 찾으러 갈 수 있는 거죠?"
그 물음에 클레미스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웃음을 머금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 대런을 꼭 안아주었다.
3.10.3. 오르카
클레미스의 공순이 기질과 동시에 그녀의 말도 안되는 기술력이 드러나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세븐나이츠 세계관에 자동차는 존재하지 않으며, 클레미스는 자동차의 작동 원리도 모르는데다 설계도와 제작 공정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오로지 영사기에서 본 영상만 보고선 '''그걸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던 것'''.[43] 클레미스가 제작한 자동차는 오르카의 스킬인 '''불공정 거래'''와 각성 스킬 '''최후통첩'''에서 확인할 수 있다.'''오르카가 주워온 영사기''' / '''각성된 오르카가 주워온 영사기'''
"......왜 왔어, 또?"
연구실의 무거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클레미스는 갖가지 금속재료[42]
들을 늘여놓은 책상에서 눈을 떼 문을 바라보았다. 곧, 낯익은 형체를 발견한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어두운 톤의 화려한 정장 차림에, 앞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넘긴 기품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외모의 사내는 입가에 느슨한 미소를 띠며 클레미스에게 다가왔다. 사내 치곤 가느다랗고 긴 그의 손 위에는 동그란 물레의 모양이 붙어있는 이상한 기계가 놓여있었다."예상대로 여기에 있었군."
"정말 달갑지 않은 손님이네. 그 고물은 또 뭐야?"
"고물치고는 꽤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지."
사내는 클레미스가 늘여놓은 금속 재료들을 멋대로 밀어버리고, 빈 곳에 기계를 올려 놓았다. 제작 순서대로 정돈해둔 건데, 이 망할 자식이....... 클레미스의 미간에 주름이 더 깊어졌다. 하지만 사내는 그녀의 반응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의 이곳저곳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가장 크게 자리 잡은 버튼을 누르자, 기계에서 희미한 빛이 나타났다.
"이게 뭐 어쨌다고."
"조명 꺼."
이 건방진 놈이....... 명령하는 사내의 거만한 입을 갈겨주고 싶었지만, 화를 꾹 눌러 참으며 조명을 모조리 껐다. 그리고 곧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생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걸린 것 없는 하얀 벽에 그림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그림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어떻게 쓰이즌지도 모를 커다랗고 네모난 것이 길을 질주했다. 얼마 안 가 그것은 갓길에 멈춰 섰고, 그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 클레미스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신기한 것에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뭐야?"
"이름은 모른다. 여하튼 무언가를 기록하고 보여주는 것 같군."
"기록한다고?"
"그래. 이 움직이는 그림은 늘 똑같은 거였다."
"세상에....... 이런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디서 얻어온 거야?"
"신비의 숲 주변에 떨어져 있었다. 이 세계의 문물이 아닌 것은 확실해."
움직이는 그림이 벽에서 사라지자마자, 클레미스는 기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호기심 가득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사내는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네 말대로 제법 값어치가 나가겠는데. 이런 걸 더 만들어달란 말이지?"
"아니."
아니라고? 물질만능주의자 오르카가 이렇게 귀한 것을 만들어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야? 클레미스의 의아한 눈빛이 사내, 오르카를 향했다.
"그럼?"
"방금 봤던 검은색의 물건. 그걸 만들어내."
"......뭐? 그게 뭔데?"
"몰라. 마차처럼 이동수단인 것은 확실하다."
오르카는 다시 기계를 켜 방금 것과 같은 그림을 보여주었다. 직각과 굴곡이 고급지게 어우러진 철제의 튼튼한 칸 아래에 네 개의 바퀴를 달아놓은 커다란 이동수단이었다.
"이거만 보고 어떻게 만들어?"
"재주껏 해야지. 비용은 원하는 대로 지원할 테니, 알아서 해."
"......."
건방진 놈....... 클레미스는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연구실을 나가는 오르카의 등 뒤로 작게 욕지기를 뱉었다. 그 명령조는 뭔데? 이건 또 대체 어떻게 만들라는 거야? 마법사를 동원해서 마력으로 움직이게 해야 하나? 클레미스의 표정에 근심이 뒤덮였다.
여담으로, 오르카의 대사와 이세계의 인물인 아멜리아가 처음 떨어진 장소가 신비의 숲임을 감안해보면, 신비의 숲은 이세계와 연결된 장소인 듯 하다.
3.10.4. 세자르
클레미스의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 땅에서 실종된 아들의 행방을 찾는 것, 세자르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 목적이다.'''세자르가 지닌 에메랄드 파편''' / '''각성된 세자르가 지닌 에메랄드 파편'''
"계약한 김에, 궁금한 게 있어."
어질러진 물건들을 급하게 치운 흔적이 적나라한 연구실 안, 호기심 가득한 클레미스의 시선은 산만한 주변은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의자에 앉아 있는 세자르를 향했다.
"뭔가?"
"네가 '에메랄드 타블렛'의 파편을 갖고 있다 했지?"
"그렇다."
"언제, 어떻게 그걸 갖게 됐어?"
볼일은 끝난 듯 옷 매무새를 고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세자르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클레미스는 그가 불편해 하는 기색임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지만 이미 뱉은 질문을 철회할 생각도 없었다. 세자르는 다시 자리에 곧은 자세로 앉았다.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내 질문의 요지가 그게 아닌 거 알잖아?"
"나도 정확히 모른다. 원래는 파편의 원본이 존재했다는 것밖에."
"그런데 그게 감쪽같이 없어졌단 말이지?"
세자르는 말대답 대신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그도 자신이 가진 '핵'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낸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클레미스와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를 맺은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에 쉽게 입을 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입을 굳게 다문 세자르의 표정을 본 클레미스는 더 깊게 파고들기를 포기한 대신,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그래서, 그게 그 '존재하지 않는 땅'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
"그때 난 못 찾았는데? 어떻게 장담하지?"
"마법 학회에서 찾은 기록에 적혀있었다."
"그래? 그렇다 치고, 그걸 찾아서 어쩔 셈이야? 원체 만능인 물건이라, 탐내는 녀석들이 워낙 많아야지."
질문 이후 짧은 정적이 흘렀다. 기계와 같은 그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클레미스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그의 대답을 차분히 기다렸다. 곧, 세자르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완전해질 거다."
3.10.5. 자하라
'''자하라의 이륜차 녹턴''' / '''각성된 자하라의 이륜차 녹턴'''
자하라의 이륜차 '녹턴'
"흐억...사..살려...커헉?!"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숨통이 끊긴다.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다.
쓰러져있는 남자의 뒤로 자하라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얼굴에 밤의 도시 불빛이 반사된다.
암흑도시 000. 유락의 천칭 길드가 꽉 잡고 있는 이 어두운 도시의 중심부의 높은 건물 안에 자하라는 서 있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자하라는 옷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뭔가 더 생쳐갈게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난공불락이라고 불리는 유락의 천칭 본부에 잠입해서 암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번 의뢰는 비용도 부족했기 때문에 뭐라도 더 챙겨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문에 따르면, 유락의 천칭 창고에는 이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온갖 진지한 물건들이 보관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하라는 능숙하게 창고를 지키던 병사들을 피해 창고로 들어왔다. 창고 안에는 온갖 신기한 장치들이 널려 있었다.
새의 형태를 한 철로 만들어진 기계, 4개의 바퀴가 달려있는 철제 마차,
움직이는 사진이 나오는 기계 등 자하라의 시선을 끄는 것들은 많았지만, 자하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른 것이었다.
두 개의 바퀴가 기계 장치로 연결되어있고, 그 위에 앉을 수 있는 안장이 달려있는 처음 보는 기계였다.
이동수단처럼 보이는 그 장치는 자하라의 관심을 끌었따.
자하라는 천천히 안장 위에 올라가서 조타기처럼 보이는 손잡이를 붙잡고 당겨보았다.
경쾌한 굉음이 기계에서 울려 퍼진다. 바퀴가 재빠르게 움직여서 앞으로 나아갔다.
자하라는 순간적으로 손잡이를 쥐어서 멈춰 섰다.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기계 장치는 마치 고집이 센 말처럼 느껴졌다.
"누구냐!!"
"침입자다!!"
기계의 엔진소리를 듣고, 경기병들이 들이 닥친다.
자신을 발견하고 달려드는 병사들을 바라보던 자하라는 작은 미소를 짓고, 기계의 손잡이를 당겼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유락의 천칭 본부 창문을 부수면서 자하라가 기계장치를 타고 빠져 나간다.
길에 착지한 자하라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면서 저 멀리 사라진다.
오르카는 무표정을 부숴진 자신의 컬렉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공불락이라고 불리는 유락의 천칭 본부가 뚫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이계의 기계들이 부숴져 있었다.
오르카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총을 빼서 들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경비병 앞으로 걸어간다.
"저..저희는...크헉?!"
오르카는 경비병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쏴서 죽여버린다.
"경비병을 새로 뽑아라, 그리고..."
오르카는 총의 탄피를 비우면서 조용히 말한다.
"그 암살자 녀석에게 현상금을 걸어라. 최고 금액으로"
오르카는 뒤돌아서 창고를 나간다.
3.11. 숨은 강자들
3.11.1. 클라한
시나리오를 보건대, 진은 클라한이 리나를 습격하려고 온 괴한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오해에서 시작된 싸움이 한편으론 클라한에게 깨달음을 주었으니 어찌 보면 진은 클라한에게 있어 인생의 중요한 계기를 준 사람인 셈이다.'''클라한의 맹호장갑'''
"네가 그 유명한 싸움잡이 클라한이냐?"
아직은 달이 떠오르지 않은 어느 오후, 클라한은 괴한을 만났다. 건장한 체격이지만 허름한 행색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클라한은 대뜸 시비를 거는 듯한 그의 태도에 짜증이 났지만, 덤비지는 않았으니 참고 대답했다.
"넌 누구지?"
"그런 건 알 필요 없다! 덤벼라!"
"보아하니 너도 깨나 수련을 한 모양이로군. 좋다."
클라한은 덤비라는 그의 말에 응했다. 그것을 구경이라도 하듯 바람이 세차게 한 번 불더니 벚꽃 잎이 흩날렸다. 마지막 잎이 바닥에 떨어지자 둘은 일격을 주고받았다.
"나쁘지 않은 주먹이군. 하지만 내가 이겼다."
클라한은 쓰러진 상대를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려 했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아직 안 끝났어. 덤벼!"
클라한은 속으로 놀랐으나 얼굴로 드러내지 않았다. 상대는 눈이 반쯤 풀린 상태로 다리도 후들거렸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그 어떤 강철보다 단단하게 쥐고 있었다.
"다시 묻지. 넌 누구냐?"
"진."
"어째서 나를 막은 거지? 지금 더 싸우다간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지킬 게 있으니까 당연한 거잖아!"
클라한의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싸워온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렇게 싸운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이 장갑을 끼지 않았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지. 이젠 알 것 같군. 고맙다. 진."
"흥,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난 리나 님을 지킬 거다!"
또다시 바람이 불었다.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진의 몸은 바닥에 떨어졌다.
각성 외형에서 손에 낀 맹호장갑을 확인할 수 있다.
3.11.2. 미호
미호가 백각의 협력 요청을 받아들여 황녀로서 뒤에서 음모를 캐려는 자들을 제거하는 일을 할 때, 즉 6성 시절의 시나리오다. 미호의 잔혹한 면모를 알 수 있다.'''미호의 붉은 지갑투'''
"마마의 손 장신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미호는 궁녀들의 말에 한껏 뽐내며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이건 내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것에 장식을 더한 거야. 정말 아름답지?"
자신이 제일 처음으로 손에 넣었던 이것은 어떤 지방의 양반 부인이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 피처럼 붉은 바탕에 자잘한 말린 꽃잎들로 장식된 모습에 반해 자신의 힘으로 얻어온 첫 번째 소장품이었다. 어린 미호의 작은 손엔 헐겁기만 했던 것이 지금은 마치 그녀를 위해 준비되었던 것처럼 꼭 맞으며 그녀의 애용품이 되었다. 황궁에 들어와서는 매일 끌어모은 보석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만 치장을 더하여,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궁녀들과 부인들로부터 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미호는 자신의 붉은 지갑투를 어떻게 더욱 치장해갈지 생각하며 웃었다.
"지금 여기서 내 목숨이 끊어져도, 또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너희들의 그 흉악한 계획을 파헤칠 것이다!"
대신은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눈을 부릅뜬 채 외쳤다. 이들이 하는 말은 옳다. 이대로 이 남자를 죽여도 결국 또 누군가는 황제와 백각의 음모를 눈치채고 뒤를 캐며 방해하려 할 것이다. 미호는 그런 이들의 목숨을 몇이고 빼앗아왔다. 그것이 자신이 황궁에 있는 이유이자 조건. 미호는 먹잇감의 목에 들이민 자신의 지갑투에 힘을 더했다.
"어차피 이 아이사는 황제의 것이야.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다 그들의 계획을 어쩌지는 못해. 그보다 더 큰 힘을 손에 넣지 않는 이상 말이야."
미호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자신의 지갑투를 따라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웃었다.
정작, 미호가 한 '더 큰 힘을 손에 넣지 않는 이상 그들의 계획을 어쩌지는 못한다'는 말이 나중에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게다가 황제는 더 큰 힘을 손에 넣으려 했다가 파멸을 맞이했다.
3.11.3. 카구라
6성 도감에 언급된, 카구라의 어머니가 팔사검을 재봉인한 일에 대한 시나리오다. 고인의 생전 물품들을 불에 태우는 것은 봉인 의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례인 모양.'''카구라의 꽃무늬 손거울'''
마당에 큰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불길에 모여든 사람들 속에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었다. 카구라와 그의 언니였다. 둘은 불길 속으로 하나둘 무언가를 던지고 있었다. 옷가지며 신발 심지어 가구까지. 불길은 연기를 더욱 거세게 내뿜으며 타올랐다.
"카구라야, 이게 마지막이야."
언니는 카구라에게 작은 손거울을 건네었다. 검은 나무에 자개를 박아 아름답게 꾸며놓은 거울이었다. 카구라는 거울을 바라보다 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 가느다란 눈썹, 작지만 오뚝한 코, 얇은 입술.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깔리던 그 날, 사람들이 쓰러지는 가운데 어머니는 곧바로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 피를 내었다. 그리고는 봉인 진을 펼치기 위해 기도를 올렸다. 엄청난 영력의 파동을 일으키는 가운데 카구라의 어머니는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보고 카구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어머니는 카구라를 바라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어떤 손가락을 깨물어도 아프지 않은 게 없단다. 네 언니에게 전해주렴."
그렇게 어머니의 목숨과 맞바꾸어 팔사검의 봉인은 다시 이루어졌다.
"언니, 이건 내가 가질게."
언니는 조용히 눈물을 닦으며 돌아섰다. 다시금 바라본 거울 속에는 눈물이 비쳤다.
3.11.4. 로로
5성 도감에 언급된 자경대에 가입하는 시나리오이다. 5성 도감의 내용을 통해 이 시나리오에 나오는 청년이 자경대의 리더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는 해적에 의해 자경단이 전멸하면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로로의 자경대 배지'''
"다친 곳은 없나요?
청년의 물음에 로로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바다 위에서라면 포악한 바다 용일지라도 자신을 당해 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인간들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영리하고 강했다.
"요즘 해적들이 기승을 부려서요. 최대한 손을 써보려고는 했지만, 보다시피....."
청년이 가리킨 곳에는 민가에서 빌린듯한 작은 어선 하나가 가라앉고 있었다. 뒤를 따르는 배들 또한 조잡한 실력으로 급히 만들었을 법한 것들뿐이었다.
".....오합지졸이네."
"아.... 역시 그렇게 보이나요?"
멋쩍은 듯 웃어 보이는 청년의 몸에는 오늘의 승리가 결코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듯한 오래된 흉터들이 남아 있었다. 로로는 작은 흠집 하나 없는 자신의 희고 고운 손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 물을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해볼 생각이니?"
청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물론이죠."
"누구도 너희가 하는 일을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
"그래도 상관없어요."
"이런 일을 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닌걸요."
멀리서 해적들을 배에 모두 태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은 로로를 향해 고개를 한 번 까닥이고는 뒤돌아섰다.
"그럼, 이제 출...."
"나도 너희랑 같이 갈래."
잠시 제자리에 멍청히 서 있던 청년은 이내 환히 웃으며 자신의 옷에 달려 있던 반짝이는 배지를 떼어 로로에게 건넸다.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을 텐데 괜찮겠어요?"
로로는 이에 미소로 화답하며 배지를 받아 자신의 옷 춤에 달았다.
"상관없어.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닌걸."
3.11.5. 아멜리아
5성 시절의 이명에서도 보이듯이, 아멜리아가 하이퍼맨의 사이드킥 시절이었을 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에 히어로가 만신창이로 아멜리아의 집에 들어오는 모습으로 6성 도감 설명과 연계된다.'''아멜리아의 코믹북'''
"하, 이번 화도 정말 멋졌어."
아멜리아는 몸을 뒤척여 천장을 향해 돌아누워 책장을 덮었다. 표지에는 현재 아멜리아가 사는 도시에서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고 있는 도시의 영웅, 하이퍼맨의 모습이 멋지게 그려져 있었다. 몇 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범죄자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고,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구했다. 강한 힘과 호쾌한 미소를 띤 그는 아멜리아뿐 아니라 도시의 귀감이었으며, 모두의 희망의 빛이었다. 팬인 한 만화가가 그의 현장 일지를 만화책으로 엮어내였고, 그 만화책은 아멜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매달 발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모아왔다.
그리고 언제부터 인가 하이퍼맨의 곁에 그를 돕는 '사이드킥(조력자) AMELIA'라는 캐릭터가 추가되었고, 그녀는 하이퍼맨이 악당과 마주하는 사이, 강한 힘으로 건물의 잔해를 치우거나 사람들을 구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하이퍼맨의 조력자인 아멜리아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멋진 히어로가 되는 것을 꿈꾸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만화 속의 일에 불과할 뿐, 힘을 사용한 대가는 감사와 선망이 아닌 두려움과 기피로 돌아왔다. 자신을 위로하는 가족들 외에는 그 누구도 받아들여 주지 않는 흉측한 힘을 감추기 위해 날마다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는커녕 점점 몸의 부담을 더해가고 있었던 터였다.
학교에 화재가 있었던 그 날, 아멜리아는 동경하던 하이퍼맨과 마주했고, 그와 함께 화염 속에 갇힌 학생들을 구해내었다. 하이퍼맨은 아멜리아의 능력이 저주받은 힘이 아닌 누군가를 구할 희망의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이후 그녀는 하이퍼맨의 조력자로서 그를 돕게 되었다.
아멜리아는 점점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을 채워나갔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던 처음과는 다르게 하이퍼맨이 그녀에게 등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힘을 억지로 감추기 위해 움츠리며 몸살을 앓았던 몸은 하이퍼맨을 도우며 상처투성이가 되어 또 다른 비명을 질렀지만, 그것 또한 행복이었다.
만화책 속 영웅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비관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때와 비교하면 하루하루가 충실하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물론 사건 사고가 잦아지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날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멜리아! 저녁 먹으렴!"
아래층에서 자신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책을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활짝 열려 있던 자신의 방 창문에 지금은 파트너가 되어 버린 자신의 영웅이, 처참한 몰골로 기대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3.11.6. 아탈란테
아탈란테가 소속되어 있었던 사냥꾼 집단의 이름이 랩토르로 밝혀졌다. 더불어, 아탈란테를 돌봐준 양모 '발레오'가 나온다. 자신이 원했던 대로 망토를 물려받긴 했지만, 그 과정이 매우 비극적으로 이루어진데다 끝내 아탈란테와 발레오는 약속을 못지키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아탈란테가 두른 망토'''
"발레오가 두른 망토는 참 예쁜 것 같아. 무늬도, 색깔도, 그리고 향기도."
아탈란테가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함부로 눈독 들이면 안 되지, 아탈란테. 이건..."
하지만 아탈란테의 기대와는 달리 발레오는 언제나처럼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네, 네. 위대한 사냥꾼 집단인 랩토르의 수장임을 증명하는 의상이라는 거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44]
들었다구."아탈란테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또 토라졌군.' 발레오는 아탈란테를 보며,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아탈란테의 모친 역할을 자처한 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의 토라진 모습은 볼 때마다 귀엽다고 생각했다.
"원정 출발 전에 테라 왕국에 요청해서 멋들어진 망토를 하나 받았으면 됐잖아? 이건 낡기도 했고, 무엇보다 네 키에는 맞지 않..."
"우으으- 난 발레오가 두른 망토가 아니면 싫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 그 정도로 키 작지 않거든?!"
투정을 부리는 아탈란테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발레오는 몰래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있어 아탈란테가 자신을 언급하는 것을 듣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거리였다. 하지만 어느새 아탈란테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자, 발레오는 더 이상 그녀를 놀리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런 일에 이리 쉽게 흥분해서야. 역시 따라오기를 잘했다니까."
발레오는 아탈란테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고 엷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갖고 싶다니, 이번 원정이 끝나면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
"저, 정말?"
아탈란테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발레오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그러니까 무사히,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다? 알겠지? 우리... 예쁜 딸?"
"아? 으응."
예상치도 못한 발레오의 말에 아탈란테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발레오는 그런 아탈란테를 꼭 안아주었다.
아탈란테의 망토는 각성 외형에서 확인할 수 있다.
3.11.7. 잉그리드
5성 도감에서 스니퍼에게 구해진 이후의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에서 스니퍼 또한 잉그리드를 신경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나중에 스니퍼는 엘프 궁수를 짝사랑하게 되어서...'''잉그리드의 머리끈'''
"아, 너한테 사과해야 할 게 한 가지 있는데......."
스니퍼는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잉그리드에게 보이며 말했다. 그녀가 평소에 머리를 묶을 때, 사용하던 머리끈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끊어져 있었다. 스니퍼는 쭈볏대며 말을 이어나갔다.
"미, 미안. 그때는 몰랐는데 샤벨 타이거 무리에게서 너를 데리고 오는 도중에 실수로 머리끈을 끊어버린 것 같아."
잉그리드는 '그게 뭐?'라고 생각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없이 겸연쩍어하는 스니퍼를 바라보았다.
"호, 혹시나 네게 있어 중요한 물건인가 해서... 왜, 매번 머리를 묶는데 신경 많이 썼잖아. 그래서... 다른 거로 하나 구해왔어."
스니퍼는 머쓱한 기분을 애써 감추며 새로운 머리끈을 잉그리드 앞에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쿡."
그 순간, 잉그리드는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다.
"어... 음... 뭐가 그렇게 웃긴 거야?"
스니퍼는 잉그리드가 웃는 이유도 모른 채,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스니퍼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 샤벨 타이거의 습격에서 나를 구해준 은인이, 이런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니까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이 있잖아, 스니퍼?"
잉그리드의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스니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혹시나 해서 난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하지만 당황한 스니퍼와 달리 잉그리드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고맙다고 말했잖아? 그리고 이렇게 머리끈을 선물해 줬으면 어떻게 묶어야 어울리는지 정도는 알려줘야 할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예전에 머리를 위로 묶으면 어떻겠냐고 말했었지, 아마?"
"윽!"
잉그리드의 말에 얼굴이 더욱 붉어진 스니퍼는 뒤돌아서서 허겁지겁 자신의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제 괘, 괜찮아 보이는 것 같으니 나, 난 갈 테니까 그건 사용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스니퍼는 황급히 잉그리드의 방에서 나가버렸다.
잉그리드는 자신 앞에 놓인 머리끈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워며 중얼거렸다.
"'머리를 묶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라... 이렇게 되면 앞으로 더욱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잖아? 고마워, 스니퍼."
잉그리드의 머리끈은 6성 외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성 외형이 머리끈을 바꾸고 머리카락을 3가닥으로 묶은 것이 6가닥으로 늘어났음에도 전체적으로 머리 형태는 6성과 같게 유지하고 있다.
3.11.8. 뮬란
4성 도감에서 언급된 뮬란이 집을 떠나기 전의 이야기이다. 정황상 파괴의 전쟁 때의 후유증으로 쇠락해진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신이 대신 징집된 듯 하다.'''뮬란의 아버지가 쓰던 검'''
기나긴 전쟁으로 아이사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아버지에게 징집 소식이 날아왔다.
아버지는 이미 지난 전쟁의 후유증으로 거동조차 불편한 몸이었다. 나는 이를 두고 볼 수 만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되려 나에게 호통을 쳤다.
"한낱 계집이 무슨 전쟁이란 말이냐!"
"계집이라 하여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뜩이나 머슴마냥 단정치 못한 꼴로 매일같이 욕을 먹으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게야? 이 아비가 너 때문에 남들을 볼 낯이 없구나!"
"하지만 아버지, 그 몸으로 어찌 전장에 나가시겠단 말입니까?"
"그것이 대장부의 의무다! 사내들도 버티기 힘든 지옥 속에서 네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몇 날 며칠을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대장부인 자신이 가야 한다고 검을 들었지만, 몇 발 가지도 못해 검을 떨구고 쓰러졌다. 그 몸으로 참전해봐야, 결과는 뻔했다.
"......끝까지 반대하시겠다면, 저도 멋대로 하겠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나는 아버지 몰래 마루로 나왔다.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기 위해 마련해둔 짐 옆에 검이 놓여있었다. 나는 혹여 쇳소리가 날까 조심스레 검을 집어들었다.
아버지는 이 검에 쌓이고 쌓인 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노쇠하고,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이 무거운 무게를 혼자 짊어지도록 놔둘 수 없었다. 무엇보다, 사지 멀쩡한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냉정함에 속이 북받쳤다.
"저 또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지요."
기필코 전장에서 승리하여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검의 손잡이가 부서지도록 꽉 쥐었다. 나는 가족들이 잠에게 깰까, 서둘러 짐을 모조리 챙겨서 집을 벗어났다.
"......기어이 일을 저지르는구나."
집을 나서는 뮬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달의 걸음을 막아 세우지는 않았다. 하나뿐인 딸이 위험에 뛰어드는 꼴을 볼 수 없어 모질게 반대했건만, 결국 자식이란 녀석은 지지리도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쇠뿔보다 단단한 그녀의 고집 속에는 아버지를 향한 걱정과 누구보다 강한 의지가 담겨있음을, 아버지는 잘 알고 있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딸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무탈하게만 돌아오거라."
3.11.9. 이백
이백이 팔선주를 얻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이백의 팔선주'''
자네, 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괜찮다면 합석해도 되겠나?
하하, 고맙네. 술이란 건 함께 나눌수록 더 맛있어지는 법이지.
자, 받게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에 얽힌 이야기 하나 들려주겠네.
아주 먼 옛날,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신선이 하나 있었다네. 어찌나 술을 좋아하던지 세상에 있는 술 중 그가 마셔보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을 정도였어.
하지만 무엇 하나 그가 만족할 만한 것이 없었다네. 그래서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직접 그 술을 만들어 보기로 했지.
그의 기준은 꽤 까다로웠는지라,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했네. 향과 맛뿐만이 아니라, 감촉과 목 넘김, 심지어 그 술을 담을 병 하나까지도 세세하게 따졌지.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술이 완성되자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술을 맛보러 오라며 떠들어댔네. 호기심이 인 사람들은 그가 공지한 장소로 벌떼처럼 몰려들었지.
그런데, 이게 웬걸! 맛보게 해준다는 술은 이미 바닥이 나 있고, 신선은 잔칫상 가운데에 엎어진 채로 술에 취해 자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화가 난 사람들이 신선을 들어 내동댕이치자 그제야 일어난 신선은 크게 트림을 하며 말했다네.
너무나도 맛이 좋아 그만 다 마셔 버렸지!
술병에는 마지막 딱 한 방울의 술이 남아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한 방울의 술을 어떻게든 맛을 보려고 아우성을 쳤다네. 신선의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지.
보다 못한 여덟 명의 동료 신선들은 자신들의 힘을 모아 술병 하나를 만들어 냈는데, 그 안에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술을 떨어뜨리자 놀랍게도 병 가득 술이 차올랐다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한 잔씩 돌리고도 술은 줄어들지 않았어.
맛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극락을 보았노라고 말했지. 그리고 그 술을 '팔선주'라 부르며 칭송하기 시작했네.
그래서, 자네! 그 술을 마셔 본 소감이 어떠한가? 정말로 극락이 보이던가? 음... 그건 참... 신선한 표현법이군.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참 좋아. 나는 이제 이 술의 맛을 잘 느낄 수가 없다네. 그래서 술의 맛을 잘 아는 녀석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
흠... 그래, 자네라면 나쁘지 않아 보이는구먼.
받게나. 오늘부터 이 '팔선주'의 주인은 자네일세.
3.11.10. 아랑
5성 도감에서 나오는 도인에게 수련을 받던 시기인듯 하다.'''아랑이 직접 만든 부적''' / '''각성된 아랑이 직접 만든 부적'''
도인은 방구석에서 벽을 향해 앉아있는 아랑의 등을 탐탁잖게 쳐다보았다. 아랑의 앞에는 크고 작은 종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의 주변 방바닥은 먹물로 얼룩져 있었다. 기껏 질 좋은 비단을 만들어준 옷의 밑단은 오늘도 흙투성이였다.
도인은 조금 전, 한 마을 주민으로부터 제발 당신의 제자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막아달라는 하소연을 듣고 온 참이었다. 그의 집은 흙으로 뒤덮여 있었고,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났던 집 앞의 오백 년 묵은 향나무는 홀랑 타버려 재가 흩날렸다. 온 마을에 진동하는 향 냄새 속에서, 나무의 주인이었던 그는 주저앉아 바닥을 내리치며 통곡했다.
도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랑의 뒤로 다가갔다. 하지만 아랑은 종이 위에 열심히 붓질할 뿐, 스승의 기척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흠흠, 도인은 의도적인 헛기침 소리를 두어 번 크게 냈다. 아랑은 그제야 퍼뜩 고개를 돌려 도인을 올려 보았다.
"스승님! 언제 오셨습니까?"
"무얼 그리 열심히 하기에, 기척도 느끼지 못한 것이냐?"
"아, 부적을 좀 만들고 있었습니다. 전에 가르쳐주신 도술을 연습하고 있지요."
아랑은 때마침 완성한 부적 한 장을 들어 보이며 씩 웃었다. 부적에 적힌 한문을 읽은 도인은 눈썹이 꿈틀대는 것을 참으며 아랑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마당으로 달려나간 아랑은 부적을 제 앞으로 가볍게 던져 올리며, 짧은 주문을 외웠다.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주변에 붉은 원이 그려졌고, 원의 위로 작은 불꽃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랑이 품에서 부채를 꺼내 이리저리 휘젓자, 불꽃들은 그의 손짓에 맞춰 춤을 추듯이 흔들렸다. 화염 속성의 도술을 가르친 지 고작 이틀만의 일이었다.
"어떻습니까, 스승님?"
"그래, 늘 그렇듯 금방 잘 해내는구나."
아랑이 도술을 금방 익히는 것은 예삿일이라, 이제는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도인은 이미 익숙한 듯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고, 아랑은 우쭐하며 그간 자신이 한 고생을 조잘조잘 고했다.
"그렇지요? 제가 그간 얼마나 연습했는지 스승님께선 모르실 겁니다! 저 같은 신동도 새로운 무언가에 익숙해지려면 많은 시간과 시도가 필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
"그래서, 많은 시도를 해보느라 요 앞집의 나무를 태우고 온 게냐?"
"..."
아랑은 말대답 대신 스승을 보며 씩 웃었다. 도인 또한 제자를 따라 씩 웃었다. 짧은 정적이 흐른 후, 아랑은 제 소매 안에서 몇 장의 부적을 꺼내 움켜쥐고 냅다 집 밖을 향해 달려나갔다. 도인은 손에 들린 부채를 부러지기 직전까지 움켜쥐고, 부적을 펄럭이며 바람을 일으키는 아랑을 뒤쫓아 나갔다.
3.11.11. 항우
시점은 6성과 각성 사이의 시점으로 추정된다. 실제 역사에서도 항연은 항우의 할아버지이며, 항량은 항우의 삼촌이다.'''항우의 초진창'''
밖에서는 누군가의 비명과 금속끼리 맞붙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방 안의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파스칼의 검은 목전까지 다가와 있었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사용하더라도 패배의 순간을 조금 뒤로 미룰 수 있을 뿐이었다.
"방법이 없습니다, 아버지. 일단, 몸을 피하시고 후를 도모하는 것이..."
"항량아."
말없이 전술 판 위에 놓여 있던 장기 말을 만지작거리던 항연은 곁에 세워둔 창을 집어 들었다.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런 이들을 두고 어찌 도망갈 수 있겠느냐? 나 또한 그들과 함께 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항우와 네 가족을 데리고 몰래 빠져나가거라. 곧 결판이 날 테니 서둘러야 한다."
기어코 항량의 손에 자신의 창을 쥐여준 항연은 그대로 뒤를 돌아 문 앞에 섰다.
"그 창의 이름은 초진창이다. 나의 뜻을 이뤄줄 후손에게 물려주거라. 그 창에는 나의 염원과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붉은 협곡의 의지가 깃들어 있느니라."
"아버지가 내게 맡기신 창이다. 자신의 뜻을 이어갈 수 있는 후손에게 물려주라 하셨다."
항량에게 초진창을 받아 든 항우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는 병사들의 앞에 섰다.
"이 대륙의 주인은 우리가 될 것이다. 전쟁을 몰고 온 황제를 몰아내고, 너희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겠다! 나를 따라라! 우리의 첫 목표는 붉은 협곡이다!!!"
3.11.12. 바토리
막 흡혈귀로 각성한 6성과 성을 차지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각성 사이의 시점으로 추정된다.'''바토리의 빨간색 사과'''
성 안 곳곳에 얼룩진 혈흔은 이미 새까맣게 변질한 지 오래였다. 먼 옛날, 성대하게 성을 꾸몄던 갖은 장식과 실크 커튼은 산산조각으로 깨지고 찢어져 바닥에 나뒹굴었고, 그 위로 오랜 세월 묵은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성을 뒤흔들던 수백 명의 비명이 전부 멎어, 고요한 침묵만이 남겨진 지도 수년이 지났다.
그 속에서, 바토리는 온 얼굴에 피를 묻힌 채로 자신의 앞에 쓰러진 한 여성의 시신을 내려 보았다. 짐승에게 물어뜯긴 듯 처참하게 찢어진 목덜미와 수분이 빠져나간 듯 쭈글쭈글해진 피부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반면, 바토리의 모습은 입 주변이 피범벅인 모습조차 아름다웠다. 하얀색의 보드라운 피부결. 어둠 속에서도 반짝일 정도로 생기 넘치는 두 눈은 그녀 앞의 처참하게 쭈그러진 시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바토리는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웃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야. 내 아름다움을 되찾는 방법. 이거라고!"
바토리는 자신의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은 후, 통통하게 오른 앳된 뺨을 매만졌다. 그녀는 믿을 수가 없는 듯 제 뺨을 꼬집고, 팔을 만졌다. 온몸을 더듬을수록 그녀의 얼굴 위로 점점 화색이 돌았다.
"좋아, 이제야 알겠어. 그날 피를 마시고 싶었던 건 다 내 아름다움이 피를 갈망해서였어. 피만 있으면, 난 평생 아름다울 수 있어!"
이성을 반쯤 잃은 것 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바토리는 시신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허겁지겁 목을 물었다. 흉하게 뜯겨있던 시신의 목은 더욱 너덜너덜해졌다.
한동안 흡혈에 집중하던 바토리는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화사한 분홍색의 침대 시트와 커튼의 빛이 바래져 먼지로 더렵혀진 자신의 방 한가운데에서, 굳게 닫혀있던 나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는 진짜 사과의 크기와 거의 흡사한 유리병이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어여쁜 사과를 좋아하는 바토리를 위해, 일대에서 유명했던 유리공예가가 생일선물로 만든 작품이었다. 바토리는 유리병에 묻은 먼지를 입바람으로 날리고, 소매로 병을 깨끗하게 닦았다.
"피가 상하기 전에, 말라버리기 전에.... 얼른 담아야 해...! "
유리병을 들고 일어난 바토리는 다시 시신의 곁으로 다가갔다. 주변에는 아직 다 마르지 못한 피가 낭자했다. 그녀는 시신의 목을 졸라, 흘러나오는 피를 병에 받아냈다. 유리병 속을 채우는 피를 바라보는 바토리의 두 눈에 지독한 광기가 서서히 차 올랐다.
3.12. 마법 학회
3.12.1. 타라
6성 도감의 시점으로 추정된다. 일본 서버에 선행 출시된 같은 마법 학회의 노아와 테라파이온의 국장 알림이 언급되었다.'''타라의 황금샤워꽃 스태프''' / '''각성된 타라의 황금샤워꽃 스태프'''
그날 아침은 악몽을 꾸었던 탓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던 탓인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요 며칠 계속되는 우울함까지 더해져 더욱 무기력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늘은 화요일이었고, 혼자 뭘 할 수 있겠느냐며 유학을 반대하던 어머니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학교는 반드시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타라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겨우 등교 준비를 시작했다.
붕 떠버린 마음에 수업은 귀를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선생은 아직 단어들이 어렵냐며,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마력이니, 순환이니, 단어적인 의미는 모두 파악한 지 오래다. 자신의 고향에서 사용하는 기(氣)와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그것을 운용하는 방식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을 뿐이지. 굳이 언어게 관해 묻는다는 것은 자신을 이방인으로밖에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몰랐지만,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점심에는 기분 전환 겸, 식당에서 달걀 샌드위치만을 받아 들고 정원으로 나왔다. 아침 식사도 거른 탓에 배가 고파 베어 문 한 입은 목 언저리에서 막혀 내려가지 않았다. 이어서 넘긴 커피도 쓰기만 해서 연유를 넣어 올 것이라며 후회했다. 얼음이 함께 갈린 과일주스라도 있었다면, 좀 더 편하게 먹을 수 있었을지도... 어느 새 바싹 말라버린 샌드위치를 조심스럽게 되돌려 놓았다. 역시, 오늘은 성으로 간 친구를 따라가는 것이 좋았을까... 기분은 점점 가라앉기만 했다.
유난히 길고 지루했던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빠져나올 때, 자신에게 점점 다가오는 그립고 진한 향기를 맡았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것은 황금처럼 흐르는 꽃을 품에 안은 친구의 모습이었다.
"노아, 이건..."
"전에 언니가 그림으로 그려준 꽃이에요. 궁금해서 성에 갔다가 테라파이온의 국장님을 만난 김에 꽃에 관해 물어 봤는데,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꺅!"
진해지는 그리운 향기에 한동안의 무기력함과 우울함이 눈물이 되어 쏟아질 것만 같아서, 타라는 친구를 힘껏 끌어안았다.
"흑마법사 아저씨가 전에 가르쳐준 기억을 형상으로 만들어 주는 마법을 사용해봤어요. 역시 저한테는 너무 어려워서, 조금뿐이지만... 그래도 늦기 전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언니의 고향의 꽃을 제가 제대로 만들어 냈나요?"
"응... 응. 너무 예뻐. 노아. 정말 고마워..."
부끄러운 듯 말하는 친구에게서 꽃을 받아 들고, 줄기를 엮어 자신의 스태프를 장식했다. 향기를 가득 품고 활짝 핀 고향의 꽃은, 타지의 자신을 응원하는 듯 보였다. 마치, 저 소중한 친구처럼...
3.12.2. 노아
타라가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다.'''노아의 곰곰이 가방''' / '''각성된 노아의 곰곰이 가방'''
노아는 늘 커다랗고 낡은 가죽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녀의 등굣길을 지켜주는 친구이자 필수품인 그 가방은, 무언가 자주 잃어버리기 일쑤던 그녀를 위해 부모님이 사주신 것이다. 처음 받았던 것은 겨우 원하던 마법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였는데, 아버지는 노아를 지켜줄 것이라며, 작은 곰 인형을 보조 주머니에 넣어 주셨다. 무거운 책들을 가득히 넣어 다닌 탓에, 가방은 금방 해져, 몇 번이고 바뀌었지만 곰 인형과 투박한 디자인만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노아의 부모님은 새로운 가방을 사야 할 때면 늘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실용성이 최고라며 그녀에게 투박한 가방을 골라주었던 것은 자신들이었다. 그 후에는 아무리 새로운 예쁜 가방을 골라주어도, 결국 노아는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가방을 골라왔다. 덕분에 그녀의 가방은 여전히 커다랗고, 여전히 낡았으며, 여전히 투박했다.
"다 됐다. 어때? 귀엽지 않니?"
어느 날, 타라는 노아의 투박하기만 한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가방에 작은 리본을 하나 걸어 주었다. 리본 만이 유난히 귀여워 보이는 그 모습에 어색하고 낯설면서도 어째서인지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가방을 사야 했을 때, 처음으로 리본이 어울릴 것 같은 예쁜 가방을 원했다. 노아의 말에 부모님은 크게 기뻐하며 가방을 골라 주었다. 기뻐하는 두 분의 모습을 보아하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꽃 모양부터 오리 모양, 곰 모양 등등 책 한 권 들어가지 않을 듯한 디자인만을 골라 주신 덕에 긴급 가족회의를 열고, 좀 더 책이 들어갈 듯한 큰 가방을 고르긴 했지만...
"노아~ 새로운 가방을 샀으니, 나와 쇼핑을 하러 가자!"
타라는 노아가 가방을 바꾸는 날이면 쇼핑을 권해왔다. 함께 액세서리점을 돌며 새로운 리본이나, 예쁜 장신구를 골라 주었다. 노아와 함께 가방과 곰 인형을 꾸미며 타라 본인이 더 즐거워 보였다. 쇼핑은 지금도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자신의 변화하는 모습에 기뻐하는 타라와 부모님을 보면,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3.13. 칠대성
3.13.1. 펜리르
'''펜리르의 구속구''' / '''각성된 팬리르의 구속구'''
늑대 수인 일족들은 대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은 인간의 모습으로만 살아가다가 사춘기가 될 즈음 늑대로서의 본성을 자각하게 된다. 아직 변신에 익숙치 않은 어린 수인들은 늑대로 변신했을때의 난폭성을 통제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구속구를 만들어주는데, 성인이 되어 구속구를 버리는 날이 오기까지 구속구는 늑대 수인에게 있어 절제를 이루지 못한 미숙함을 상징한다. 즉, 구속구를 버리는 행위는 늑대수인에게 있어 어른이 된다는 일을 뜻한다.
펜리르는 어려서부터 매우 강인한 힘과 순발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보다 더 튼튼한 구속구가 필요했다. 펜리르의 부모들은 이 때문에 사춘기 시절의 펜리르를 위해 유명한 대장장이가 가공한 특별한 입마개를 준비해두었다. 그러나 매우 순박한 품성을 가진 펜리르는 부모들의 걱정과 달리 첫 번째 변신이 일어난 밤에 강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자신을 통제해냈다.
시간이 흘러 펜리르는 일족의 성인식 전통인 '달의 궤적을 쫓는 여로'라는 수행 의식을 위해 마을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직후 발키리들이 일으킨 커다란 전쟁으로 말미암아 수인족의 마을이 파괴되고 펜리르의 부모와 형제들을 발키리들에게 살해되었다. 소식을 들은 펜리르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은 참혹한 폐허로 남아있었다.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진 집터에서 펜리르가 발견한 것은 유독 튼튼하게 만들어진 구속구 뿐이었다.
펜리르는 그것을 들어 자신의 얼굴에 대보았다. 그을린 재 냄새가 메케하게 코를 찔렀지만, 아주 미약하게 부모님의 체취가 느껴졌다. 추억이 담긴 유일한 물건이 구속구 뿐이라는 생각에 펜리르의 얼굴을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펜리르는 흔들리는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 이 순간 그 어느 것보다 필요한 물건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3.13.2. 수르트
'''수르트의 부러진 뿔조각''' / '''각성된 수르트의 부러진 뿔조각'''
"준비 끝났습니다. 대장"
수르트가 넓은 평야 언덕 위에 서 있고, 그의 뒤로 수많은 불의 거인들이 서 있다.
거인들의 반대편에는 수많은 발키리들이 날아오고 있다.
"수르트님! 이건 너무 무모한 짓입니다! 전부 죽을 거라고요!"
부대장이 수르트 옆에서 외치면서 나타난다.
그는 충실한 심복이었지만, 수르트의 지시를 반대하고 있었다.
"죽는다고? 너같은 겁쟁이는 죽겠지. 난 죽지 않는다."
수르트는 부대장을 보면서 여유롭게 말한다.
"넌 내가 시선을 끄는 사이에 동족들이나 구해. 난 저 발키리놈들에게 불의 거인의 긍지를 보여주지!"
수르트가 주먹을 들어 올리자. 거인들이 괴성을 지른다.
"가자! 천상을 불태워 버리자!!"
수르트가 뛰어나가자, 불의 거인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수르트와 함께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간다.
"제길... 가자! 동족들을 구해야 해!"
부대장은 나머지 불의 거인들에게 지시한 뒤 뛰어나간다.
수르트와 부하들은 달려드는 발키리들을 날려버리면서 성문 쪽으로 뛰어간다.
성문을 지키기 위해 발키리들이 진형을 갖추어서 막아서지만, 거인들의 돌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수르트의 공격으로 성문이 부서지고, 불의 거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 네가 거인 왕의 후계자라는 녀석인가?"
성 안에서 한창 싸우고 있던 수르트의 뒤로 강렬한 섬광과 함께 도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흐하하 네놈들이 바로... 천상의 수호자구나!"
수르트는 뒤돌아서서 빛을 뿜어내는 수호자들을 바라본다.
"어디, 붙어보자고!발키리!! 흐아아압!!"
수르트가 거대한 거인의 몸을 움직여서 발키리 들에게 달려든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하찮구나."
한순간에 금빛 발키리의 공격에 수르트의 왼쪽 뿔이 부서졌다.
절대 부서진 적이 없던 뿔이 부서짐과 동시에 천상의 수호자들이 달려들어서 순식간에 수르트를 제압해버린다.
"크허억?!"
수르트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그대로 무릎이 꿇린다.
격이 달랐다.
이전까지와는 싸워보지 못한 존재.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느낄 줄은 몰랐다.
처음 겪어보는 패배의 굴욕과 엄청난 힘의 차이를 수르트는 처절하게 느꼈다.
그의 눈앞에 고고하게 빛나던 금빛 발키리는 빛나는 검으로 그의 부하들을 순식간에 도륙했다.
"안돼!..크악!"
"가만히 있어!"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있는 힘을 끌어모아 일어서려고 했으나,
다른 천상의 수호자들이 순식간에 수르트를 다시 무릎을 꿇린다.
부하들은 처리한 금빛 발키리는 거대한 봉인 마법진을 수르트에게 전개했다.
"대장!!"
그때 부대장이 달려들어서, 봉인진을 부순다.
부대장의 부하들이 천상의 수호자들에게 달려들어서 수르트를 풀어준다.
"대장! 피하십시오!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대장인 내가 도망칠 수 없어!"
"닥치고 도망쳐! 네가 잡히면 우리의 미래는 없단 말이다!"
부대장은 처음으로 수르트에게 소리를 높이며 절박하게 외쳤다.
수호자들은 순식간에 부대장의 부하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수르트는 처음으로 느낀 패배의 맛을 삼키면서 재빨리 뒤로 물러난다.
"젠장...젠장...젠자아아앙!!"
수르트는 자신을 대신해서 죽어가는 부대장과 거인 병사들을 뒤로하면서, 슬픔의 포효를 질렀다.
그날 이후,
수르트는 부러진 뿔 조각을 어디는 들고 다녔다.
발키리들에 대한 분노를 잊지 않기 위해.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3.13.3. 세이지
'''세이지의 고서''' / '''각성된 세이지의 고서'''
자신의 키보다 훨씬 커다란 책장들에 꽃힌 책들을 둘러보던 어린 세이지가 걸음을 멈췄다.
세이지는 사다리를 가져와서는 자신이 고른 책을 꺼내 내려왔다. 훅하고 책 표지에 붙은 먼지들을 털어낸 뒤, 자리로 와 책을 펴고 앉았다.
세이지가 앉은 테이블 건너편에는 대현자이자 세이지의 스승인 레자르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도 세이지는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거대한 도서관 내부엔 두 사람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 적막함만이 감돌았다.
어린 세이지는 이 고요함이 편안하고 익숙했다. 그것은 뱀의 일족인 레자르도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피를 가진 그들에게 따뜻한 대화와 감정을 나누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세이지는 그날도 별다른 일 없이 날이 저물어가도록 책을 읽는 하루가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이지의 예감은 완벽히 빗겨나고 말았다. 그날 밤, 레자르는 어린 세이지를 도서관에 홀로 남겨두고 손오공과 함께 떠나갔다.
수년 뒤 손오공이 다시 도서관을 찾아온 날 밤, 잠에서 깨어난 세이지는 다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구름의 틈 새로 보이는 달빛이 유난히도 밝게 느껴졌다. 세이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도서관에 도착한 세이지는 매일 같이 책을 읽던 자리로 가 앉았다. 건너편의 자리는 수년째 비어있었지만, 그 자리를 볼 때마다 레자르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손오공이 레자르의 죽음을 알려왔을 때 세이지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픔이나 분노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만 느껴졌다. 세이지는 레자르가 남기고 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해답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이지의 맥박이 빨라지고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세이지는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작은 확신을 얻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완전한 진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레자르의 말은 사실인 것 이다. 진리는 도서관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수수꼐끼의 해답을 안 세이지는 손오공과 함께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내일 일찌감치 그 계획을 실행하려면, 그렇다. 지금은 잠을 청해야만 한다.
3.13.4. 제라드
'''제라드의 보내지 못한 편지''' / '''각성된 제라드의 보내지 못한 편지'''
나는 아직도 그날을 후회한다.
평소에 네 말은 들은 척도 안 하던 나인데 왜 그날만큼은 네 말을 듣고 손오공을 따라 나섰는지.
아직도 그날을 후회한다.
만약 너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칠대성에 합류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때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면... 너는 죽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직도 그날을 후회한다.
왜 끝까지 조각을 지키라는 말을 너에게 했을까.
한때 너에게 열세 번째 조각을 수호해야 하는 사명을 넘겼던 나는
왜 너에게 다시 모든 것을 떠넘기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을까.
여전히 그날을 후회한다.
뒤늦게 달려갔지만, 너는 이미 수많은 발키리들의 공격에 숨을 거둔 상태였다.
싸늘한 너의 주검에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나와의 약속 때문에 홀로 조각을 지키려 했던 거겠지.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지금도 그날을 후회한다.
내가 실없이 했던 말이 너에겐 약속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너무 늦었었다.
단언컨대, 다시는 말을 가벼이 담지 않겠다.
미안하다.
하나뿐인 나의 여동생아.
부디 너를 지키지 못한 나를 용서해라.
3.13.5. 아벨
'''아벨의 수호자의 유품''' / '''각성된 아벨의 소호자의 유품'''
발키리들에게 습격 받아 초토화가 된 수호자 마을에서 죽어가는 한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조각을 품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상태는 손을 써보기 민망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나에게 조각을 건네며, 자신의 오빠인 제라드에게 건네 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순간 나는 조각을 손에 쥐고 있었다, 소녀는 숨을 쉬지 않았다.
파괴신의 조각, 저주받은 파면, 무수한 이름으로 불리던 마지막 열세 번째 파괴의 조각이 여기 있었다. 카인의 계획 대로 이 저주받은 조각은 망각의 절벽 아래로 사라져야 한다.
나는 카인의 계획대로 파괴의 조각을 버리기로 했다. 내 앞에는 어느새 거대하게 입을 벌린 괴물처럼 모든 기억을 집어삼킬듯한 망각의 절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던져진 조각은 괴물의 소화기관 같은 벼랑 속으로 삼켜져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높이 손을 쳐들어 조각을 버리려 한순간,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풀 밭에 풀어둔 양 한 마리가 금지된 숲속으로 들어간 그날, 숲속에서 처음 카인을 만났을 때 나는 지금과 비슷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피로 뒤덮인 상처와 거친 숨소리. 비록 죽어가고 있었지만, 고대 괴물에게 다가서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다가서지 마, 위험해진다."
카인의 눈빛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상처로 죽어가는 그를 돕기로 결심했고 그에게 다가갔다. 카인의 상처 부위를 살피기 위해 카인에게 손을 댄 순간, 그의 힘과 정신이 나에게로 스며들었다.
"아벨, 천상의 수호자가 이 조각을 차지하면 세상은 위험해진다."
카인의 목소리를 듣자 머리를 어지럽히는 기억들이 사라졌다. 내 손에는 아직 파괴의 조각이 들려있었다.
"아벨..."
카인의 경고는 언제나 옳았다. 이번에도 역시 그럴 것이다.
"그녀의 유언대로 제라드에게 이걸 건네주겠어요."
파는 파괴의 조각을 품에 넣고 천천히 뒤돌아섰다.
3.14. 하이드 리퍼
3.14.1. 앤티
'''앤티의 작은 열쇠들''' / '''각성된 앤티의 작은 열쇠들'''
추후 작성
3.14.2. 다이아
'''다이아의 라본 장신구''' / '''각성된 다이아의 리본 장신구'''
추후 작성
3.14.3. 잭
'''잭의 수술용 메스''' / '''각성된 잭의 수술용 메스'''
추후 작성
3.14.4. 칩
'''칩의 미학적 한 조각''' / '''각성된 칩의 미학적 한 조각'''
추후 작성
3.15. 일반 영웅
3.15.1. 방어형
3.15.1.1. 룩
챈슬러와 룩이 각성한 시점은 엘리시아가 혁명을 일으켜 테라 왕국의 여왕으로 취임한 이후로 보인다.'''룩의 왕국 기사의 증표'''
"......그대들이 테라 왕국의 기사가 되었음을 이 자리에서 선언하는 바이다.."
왕성의 거대한 회장 가운데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엘리시아는 한 명씩 두루마리를 하사하였으며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챈슬러, 룩. 두 사람이 저를 도와 왕국을 지키기로 한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저 백성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챈슬러는 엘리시아의 말에 대답했따. 룩은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여왕을 바라보았다. 어리지만 인자한 인상의 왕이었다.
"이제 물러가도 좋습니다. 두 분은 맡은 바 임무를 이행해주시기 바랍니다."
룩과 챈슬러는 긴장감이 흐르는 회장을 빠져나왔다. 회장의 문이 닫히자 룩은 깊이 숨을 내쉬었다. 챈슬러는 그의 얼굴을 보곤 살며시 웃었다.
"하하하, 어지간히 긴장했던 모양이군."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제 아내의 손을 처음 잡던 때보다 심장이 더 뛰더라니까요? 기사 두 번 했다가는 숨 막혀 죽겠습니다."
"폐활량을 늘려놓게. 앞으로 종종 뵐지도 모르니."
둘은 복도를 걸었다. 화려하게 치장된 장식과 아름다운 그림들, 복도에 서 있는 도자기나 갑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분위기에 억눌려 룩은 말도 하지 않고 걷고 있었다.
"오늘따라 조용하구만."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룩은 자신의 손에 있는 기사의 증표를 바라보았다. 이 또한 복도만큼이나 화려하게 치장된 두루마리였다. 어쩐지 투박한 자신의 손이 초라해 보였다.
"저는...... 챈슬러 님같이 원대한 생각을 품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가족을 위해 맡은 바 임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룩, 그 많은 병사 중에 왜 자네를 택했는지 아는가? 바로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때문이야. 우리는 백성을 지키는 기사로서, 왕은 백성을 다스리는 자로서 그 임무를 이행해야 하지. 누군가 그러지 않는다면 그 순간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이전처럼 혼란이 올 거야."
"그래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몰라도 괜찮네. 다만 내가 자네를 믿듯이 자네도 날 믿고 따라와 주게."
"물론입니다."
룩은 챈슬러를 따라 왕궁을 나섰다.
3.15.1.2. 에반
복수와 분노의 마음에 흑도가 반응해 그 형태를 바꾸기까지 할 정도로 에반의 세븐나이츠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잘 나타내준다.'''에반의 복수의 검''' / '''각성된 에반의 복수의 검'''
"큭!!"
"일어서라. 언제까지 주저앉아 있을 생각이냐!"
태오의 까마귀들이 쓰러져있던 에반을 향해 돌진해왔다. 에반은 까마귀 떼의 습격을 간신히 떨쳐내며 남은 힘을 다해 다시 태오에게 달려들었다.
"흐아앗!!"
에반의 검을 살짝 옆으로 흘려보낸 태오는 곧장 반격을 가하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틈도 없이 에반의 공격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무차별적인 공격을 막아내던 태오는 한숨을 내쉬며, 검에 힘을 주어 공격을 맞받아쳤다. 이에 에반은 날아가 떨어져 정신을 잃었고, 덕분에 훈련은 휴식에 들어가야 했다.
태오는 에반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건넸던 흑도는 그의 성장을 보여주듯 에반의 힘의 영향을 받아 점점 빠르게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또한, 그 기이한 형태는 그의 내면의 어둠 또한 여실히 보여주는 듯 했다.
자신들을 배신하고 버린 세븐나이츠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고대 무녀의 힘을 가진 카린이란 소녀에 대한 집착이 에반의 성장을 부추기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이용한 것은 태오 자신이었지만.
"하지만 복수에 눈이 멀어 벌써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도 곤란하지."
태오는 에반을 부축해 일어서며 말했다.
"감정이 앞서면 파괴의 힘에 먹히고 바른 수를 읽어내기 어렵다. 잠시 머리를 식히도록 해라."
정신을 잃은 에반의 손을 쥐어져 있던 기이한 형태의 검이 태오의 말에 반응하듯 울었다. 그리고 순간, 검은 또다시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3.15.1.3. 헬레니아
헬레니아의 각성 과정을 다룬 이야기이다.'''헬레니아의 홍염의 날개'''
파괴의 힘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 어떤 유혹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한심하다 느껴졌다. 하루하루 깊어지는 이 심연의 유혹을 없애고 싶었다. 고통스러웠다.
헬레니아는 초췌한 얼굴로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을 찾아 사막을 헤매었다. 언젠가 레이첼이 자랑처럼 이야기하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헬레니아, 너는 불꽃의 전사다. 너에겐 불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처음 발키리가 되던 날, 아버지가 그녀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녀는 시련을 찾아 사막을 헤메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멈추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기도 힘든 상황에 그녀의 정신보다 몸이 버티지 못했다. 탈진으로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하늘은 그녀 대신 울었다.
빗물은 그녀의 체온을 빼앗아갔다. 그녀의 열기를 머금은 빗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갑자기 잠이 몰려왔다. 그녀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 눈꺼풀을 닫아버렸다.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기력은 이미 쇠했지만, 너무 밝은 빛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적 같은 광경을 보았다.
사막의 가운데서 싹을 틔우듯 불의 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그녀는 불꽃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불길이 치솟더니 자신을 휘감아 올렸다. 주변의 빗방울은 수증기가 되어 사라졌고, 거대한 불기둥은 구름을 갈라 순식간에 비가 멈추었다.
헬레니아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 곳에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유혹에 물든 날개가 태워지고, 새롭게 여섯 장의 날개가 솟아났다. 불기둥이 사그라들자 헤브니아가 그녀의 앞에 있었다.
"언니."
"응, 이젠 괜찮아. 미안해. 걱정 끼치게 해서."
"아냐. 언니가 괜찮다면 됐어. 이제 언니도 날개가 여섯 장이네."
"아직 자만할 수 없어. 하지만 이것은 내가 유혹을 이겨낸 긍지의 징표야."
헬레니아는 오랜만에 환하게 웃어보였다.
3.15.1.4. 나타
멜키르에 의해 납치당하기 이전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나타의 연옥'''
나는 연꽃에서 태어났다. 나약한 몸 때문에 죽을 뻔했으나, 연꽃의 힘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힘들게 태어난 나의 탄생은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 아빠는 머리가 셋, 팔이 여섯인 나의 모습을 보고, 자식인 나를 괴물 취급하며 멀리했다. 나와 함께 연꽃에 넣어졌던 마법 무구들은 나의 본래 모습을 감추기 위한 봉인 도구였다.
시작부터 벌어진 우리의 사이는 날이 갈수록 멀어지기만 했다. 나조차도 내 본 모습이 싫어서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빠는 오랜 시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린 내가 기억했던 아빠는 언제나 보탑을 들고 나를 차가운 표정과 경계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모습 뿐이었다. 나는 아빠와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파괴의 저주가 퍼진 후 신선들이 갑자기 실종되었고, 아빠는 나에게 사건 조사를 부탁했다. 처음으로 나에게 먼저 다가와 대화를 건 그때조차 아빠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서로가 편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떠날 채비를 마친 후 보고를 위해 아빠의 방에 들렀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아빠에게서 나의 흔적을 발견했다. 아빠는 연꽃을 담은 옥구슬을 소중히 들고 있었다. 옥구슬 안에 담긴 연꽃은 내가 기억한 그것보다 몹시 작았지만, 이상하게도 너무나 친숙했다. 나는 아빠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거, 날 품었던 연꽃이야?"
아빠는 내 기척을 늦게 깨닫고 크게 놀랐지만, 금방 그렇다고 답해주었다. 내가 태어난 후 연꽃을 말려 크기를 작게 줄이고, 투명한 옥구슬에 담아 지금까지 보석함에 보관해왔다는 대답도 해주었다. 그날, 나는 아빠와 처음으로 평범한 부녀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말을 한 시간보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더 길었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내가 가져가도 돼?"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옥구슬을 나의 손에 직접 건네주었다. 나는 아빠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처음으로 전했다. 아빠는 집을 나서는 나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3.15.2. 공격형
3.15.2.1. 루리
성십자단 여성들의 전용 장비 스토리는 이어지는 데, 이 중 두번째 이야기. 루리의 입단 과정을 다루고 있다.'''루리의 성십자단증'''
그럼 이어서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에헤헤, 부끄럽네.
여러분도 아실진 모르겠지만, 아스드 대륙을 누비며 온갖 보물을 훔치는 '조커'라는 남자가 있었어요. 그 남자한테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있었는데 그걸 제가 잡아버렸거든요. 그래서 한동안은 유명해졌었죠. 아하하, 제 입으로 말하니 쑥스럽네요.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의뢰가 많이 들어왔었어요. 사실 동생 치료비 마련 때문에 조커를 잡은 거라서 그 뒤로는 평범하게 살려고 대부분 거절했었죠. 하지만, 스카우터가 저를 이곳으로 오게 했죠.
처음에는 신종 사이비인줄 알았지 뭐에요. 하하하. 사실 이름만 들으면 그렇잖아요. '성십자단'이라니. 그런데 지치지도 않고 저한테 오는 걸 보고는 한번 들어나 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더니, 인간들을, 세계를 지키는 단체라는 걸 알았죠.
동생이 걱정되긴 했어요. 병이 나아가곤 있었지만 아직 완치된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 동생이 저보고 성십자단에 들어가라고 했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언니를 존경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래서 성십자단에 들어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혼자 들어오려다가 제 총도 수리할 사람이 필요했고 니아를 추천했었죠. 그러더니 금방 들어오던데요? 그렇지, 니아?
3.15.2.2. 발리스타
발리스타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발리스타 아버지의 석궁'''
나의 아버지는 사신이었다. 자신의 타깃이 된 자들은 실패 없이 모조리 죽여버렸기 때문이었다.
잔혹한 사신은 딸인 나에게 후계자로서의 뛰어난 실력과 실력을 발휘할 자리를 주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나 또한 그에게 어떤 감정도 품지 않았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신이었고, 나는 사신의 딸이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사신은 또 다른 암살자에게 살해당했다. 죽음을 관장하던 사신은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사건은 내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부녀간의 정을 느껴본 적은 없었지만, 나의 목표였던 사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사신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그가 애용하던 석궁을 발견했다. 그가 드물게 나를 바라봐준 때에는 항상 이 석궁을 들고 있었다. 강압적인 그의 훈련 속에서 나는 그의 석궁을 수백, 수천 번도 더 봐왔다. 석궁이 없는 사신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석궁은 나에게 사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결국, 나는 석궁을 버리지 않았다. 먼지가 쌓인 석궁을 깨끗하게 닦고, 내 방으로 들고 왔다. 어린 시절, 반드시 사신처럼 강해지겠다고 주먹을 움켜쥐던 때를 생각했다. 나는 사신의 석궁을 움켜쥐며 다짐했다. 사신을 죽인 자를 내 손으로 죽이고, 나의 아버지를 능가하는 사신이 되겠다고.
3.15.2.3. 비담
각성 도감에 언급된 이정의 부탁이란 것이 바로 납치된 신선과 딸 나타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것으로 밝혀진다.'''비담의 금관'''
높이 구부러진 산등성을 따라 한참을 올랐다. 구름이 발아래에 떠 있을 만큼 높은 산에 반가운 사람을 찾아 오르고 올랐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이정 님께서 어쩐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지."
비담은 이정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로 향했다. 상처 난 나무 기둥, 터져버린 집, 불타버린 사당... 마을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흑마법사들의 짓일세."
이정은 그나마 멀쩡한 건물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얼마 전, 흑마법사들이 이곳을 공격하여 많은 신선들을 납치해갔다. 그래서 자신의 딸인 나타를 시켜 그것을 조사하게 했으나,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비담이 황녀인 린의 명령을 받아 대륙을 돌아다니게 되었으니 나타와 납치당한 신선들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그게... 아무래도 황녀님의 명령이라......."
"잘 알고 있네. 하지만...... 내가 갈 순 없지 않은가!"
이정의 주먹은 떨리고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 분노에 차오른 눈빛. 이런 이정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비담도 이정이 남은 신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였지만, 그 충격은 남달랐다.
"후...... 알겠습니다. 이정 님. 대신 제가 꼭 찾으리란 보장은 없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이지, 고맙네!!"
"그럼 서둘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이정은 비담에게 작은 금관을 건넸다. 비담은 거절하려 하였으나, 꼭 주고 싶어 하는 모양이어서 그대로 받기로 했다. 오래돼 보였지만 머리에 쓴 모습이 비담과 썩 잘 어울렸다.
각성 외형에서 머리에 쓴 금관을 확인할 수 있다. 본디 깃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가 각성 외형에서 갑자기 금관으로 바뀐 것은 바로 이 시나리오대로 이정이 줬기 때문.
3.15.2.4. 세인
성십자단 여성 전용 장비 스토리는 서로 이어져있고, 세인이 그 중 마지막 이야기이다. 세인의 단증을 받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세인의 성십자단증''' / '''각성된 세인의 성십자단증'''
"세인 이야기는 다음에..."
"아니야, 할게. 나만 안 하기엔 그렇잖아."
에스파다는 세인을 배려해서 슬쩍 넘기려 했으나, 세인은 분위기를 깨기 싫었던 것인지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이런 모습에 지크도 놀란 듯했지만, 세인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눈을 감았다.
"지크를 따라 성십자단에 들어 온 날, 나는 이 단증을 받지 못했어. 아마 대장도 알고 있었을 거야. 내가 복수심에 휩싸여 있었다는 걸.
처음엔 그런건 신경 쓰지도 않았어. 악마를 베어 넘기면 언젠가 이 마음도 풀릴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날이 갈수록 허무함이 커졌고 결국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지. 그저, 악마를 쓰러트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지. 그때 문득 난 왜 여기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
그리고... 금조교의 그날. 나의 검에 찔린 고승은 나를 원망하지 않았어. 오히려 그의 눈동자에는 자비가 있었지. 그 순간 과거의 어린 소녀가 여전히 복수심을 붙잡고 있다는 걸 알았어. 나는 그때의 어린 소녀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던 거야. 그 사실을 깨닫고 복귀했을 때, 대장이 이 단증을 건네주었어. 그제야 나는 성십자단원이 됐지. 난 더 이상 나만을 위해 검을 휘두르진 않아.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검을 휘두를 뿐."
세인은 말을 마치자 감았던 눈을 떴다. 맑은 눈동자에는 어떤 의지가 깃든 것처럼 보였다. 에스파다는 세인을 보며 가볍게 미소지었다.
"지크는 저 모양이니, 내버려 두자. 어차피 별 내용 없을 거야.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자러 갈까?"
에스파다의 말에 모두 자리에게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3.15.2.5. 소이
소이의 첫 출진을 다루는 이야기로 추정된다.'''소이의 아버지의 화살통'''
"소이, 기다리시오."
자신을 막는 풍연의 목소리에 소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아버지의 명으로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서리라. 자신을 이번 전투에서 빼려는 아버지와 풍연의 걱정은 걱정이 아닌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고, 그동안 나란히 서길 바라며 그들의 뒤를 쫓던 소이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적들에 맞서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이미 전장에 설 각오를 끝냈고 적들에게 지지 않을 자신 또한 있었다.
"풍연, 당신도 나를 막을 셈인가요?"
자신을 노려보는 소이를 바라보며 풍연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나는 스승님과 그대를 지키기로 약속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자, 받으세요. 스승님이 그대에게 보내는 것이니."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던 풍연이 건넨 것은 활이 가득 담긴 화살통이었다. 그것은 소이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것으로, 과거 그가 왕에게 직접 하사받은 물건이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던 보물이었다.
"이...건..."
"그대의 말대로 이 좁은 성벽 위에서는 활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이 효율적일 테니. 맡기겠습니다."
소이는 풍연에게서 화살통을 받아 조심히 둘러메었다. 이것이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온 명백한 신뢰의 증거라는 것쯤은 그녀도 알 수 있었다.
당신의 딸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버지.
3.15.2.6. 스니퍼
파괴의 저주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 중 하나. 괜히 위험한 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스니퍼가 지닌 화살'''
그날의 기억은 어디까지나 고통의 반복이었다. 찌르고, 잘리고, 터지는 그런 고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뜨거웠다. 몸속의 피가 전부 끓어오른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계속해서 속삭인다. 나중에 루디 님을 통해 알고 보니 파괴신의 잔념이라나.......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앓는 듯했는데 시원한 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왔다. 그때가 되어서야 정신이 돌아왔고 고통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은 아득히 깊은 곳에 갇힌 채 해매었다.
나의 과거 같았다. 부모님의 얼굴도 스쳤고 어린 나의 모습도 보였다. 카이와 대결하는 모습도 보였고 동료들과 모험을 떠나는 모습이 줄줄이 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쥬피의 모습만 보이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순간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다. 내가 정말 쥬피를 좋아하고 있나? 아니 그래도 쥬피가 연상인데? 하면서 스스로 계속 생각했다. 곧 기억은 끝나고 상상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쥬피와 데이트하는 모습, 쥬피와 쇼핑하는 모습, 쥬피와 사냥하는 모습, 쥬피와 결혼하는 모습까지.......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풀벌레 소리와 달빛에 깊은 밤이라는 걸 알았다. 목이 너무 말라 물을 마시려 할 때였다. 손에 다른 감촉이 있었다. 이불 밖으로 손을 빼보니 다른 누군가의 손이 있었다. 쥬피의 손이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자는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라? 스니퍼! 이제 깨어났네? 몸은 괜찮아? 멀쩡한 거지?"
"케켁......."
"아! 잠시 기다려. 내가 물 가져올게."
쥬피가 떠나고 자리를 보았다. 화살에 나비 날개 모양으로 종이를 붙여놓은 것이 있었다. 조잡하게 만들어졌지만, 그 정성을 알 수 있었다.
"아, 너무 열이 나길래 바람을 부르는 부적을 만들었어. 어때 괜찮지?"
"응. 이거 내가 가져도 될까?"
"물론이야. 다행이다! 스니퍼가 깨어나서. 정말......."
"쥬피?!"
쥬피는 그대로 다시 잠들어버렸다.
시나리오 묘사 상 스니퍼나 쥬피나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듯하지만 정작 설정에 의하면 쥬피는 너무 순수해서 이성에 대한 감정이 없다고 하니, 둘이 어떻게 될 지는 미지수이다.
3.15.2.7. 쥬피
쥬피의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다.'''쥬피의 화려한 나비날개'''
"와! 아빠, 이건 뭐에요?"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 한 마리가 손 위에 앉은 듯 했다. 어린 쥬피의 등 뒤에 달아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제법 큰 날개였다.
"지금은 필요 없을지 모르겠지만, 쥬피가 계속해서 활을 잘 쏘고 싶어 한다면 반드시 도움이 될 거에요."
아빠는 쥬피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했다. 마치 순수하게 반짝이는 딸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한 듯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쥬피의 호기심은 이어져갔다.
"저는 아빠처럼 활을 잘 쏘고 싶어요! 어떻게 도움이 되는 거예요?"
순수한 아이의 눈빛은 너무나 올곧아 날카로운 법이다. 그렇기에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아빠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쥬피, 세상에 날개를 가진 생명체는 많아요. 그중에서 나비만큼 바람에 민감한 것도 없지요."
"왜요?"
"나비가 너무 가볍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쉽게 휩쓸리게 되죠."
그의 말을 들은 쥬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람에 잘 휩쓸리는 나비와 활쏘기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아빠는 나에게 바람에 잘 휩쓸리는 나비를 왜 선물한 것일까. 아빠는 그 표정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대답을 꺼내었다.
"쥬피도 알고 있겠지만, 화살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요. 화살은 바람과 싸운다는 것이죠. 하지만 나비는 바람과 친구가 돼요. 그러면 보다 편안하고 멀리 날 수 있어요. 화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쉽겠죠?"
"아! 알겠어요! 그러니까 바람하고 친구가 되라는 말인 거죠?"
"맞아요! 벌써 이런 걸 깨우치다니, 쥬피는 분명 대단한 궁수가 될 거예요."
3.15.2.8. 헤브니아
헤브니아의 각성 과정을 다루고 있다.'''헤브니아의 혹한의 날개'''/ '''각성된 헤브니아의 혹한의 날개'''
언니는 언제나 뛰어났다. 검술은 뛰어났으며 방패술은 더 뛰어났다. 학업에도 소질이 있었는지 늘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요리도 나름 잘하는 편이었다. 칼을 쓰는 일은 뭐든 잘하곤 했다.
그런 언니가 자랑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고 미웠다. 같은 날 태어난 사이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늘 그렇게 생각했다. 항상 언니와 비교당하면서 자라다 보니 언니는 잘하고 나는 못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언니는 용감했다. 파괴의 저주를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불길에 들어가다니. 나로서는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겨우겨우 파괴의 힘을 억눌러 멀쩡한 척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 힘을 되레 받아들여 강해지려 하다니.
뭔가 불공평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언니는 늘 필사적이었다. 검술도, 방패술도, 공부도 요리도. 뭐든지.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죽음을 무릅쓰고 불길에 들어갔다. 나는 전력으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구하고 싶은 동료가 있다. 그를 위해서, 그녀를 위해서 나는 강해져야 한다. 지금 함께하는 모든 동료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 이 힘을 받아들여야 한다.
난 언니와 함께, 동료와 함께 싸울 것이다. 내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3.15.2.9. 메이
글로벌판 알림의 스탠딩 대사가 대놓고 메이의 비각성 스탠딩 대사를 디스하는 말이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시피, 메이의 소속이 테라파이온임이 확정.'''메이의 배송물 보관 캐리어''' / '''각성된 메이의 배송물 보관 캐리어'''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메이, 테라파이온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새내기 우편배달부랍니다~!
저는 고양이 수인이기 때문에 움직임이 날쌔죠! 그래서 우편배달부가 될 수 있었답니다. 아, 고양이 수인이라고 생선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에요! 전 생선을 아주 싫어하거든요. 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너무 싫어요! 생선보다는 달콤한 쿠키가 더 좋아요.
우편배달부가 된 이유는, 음.... 우편배달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소식을 전해 받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은 상상만 해도 보람차고 즐거울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사람에게 행복한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전해주는 것이 꿈이에요.
그리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조커 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네? 조커 님이 누구냐고요? 제 사랑! 제 연인! 이랍니다♡ 아, 사실 진짜 연인은 아니고 조커 님의 부탁으로 행세를 한 거지만... 반드시 진짜 연인이 될 거예요! 할 수 있어요!
그런 이유에서 조커 님을 만나 제 러브 레터를 전해야 하는 데, 도통 보이지 않더라구요. 대체 어디로 가신 건지... 설마 루리인지 뭔지 하는 계집애가 조커 님을 또 감옥에 가둔 건 아니겠지? 그 망할 계집애만 없으면 조커 님과 나의 인연에 방해는 없을 텐데, 어떻게 없애버릴 방법이... 헉, 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아하하....! 전 무서운 말 한 적 없는데! 잘못 들으셨나 봐요! 다, 다른 이야기를...
앗, 지금 제 옆에 있는 게 뭐냐고요? 우편물을 담은 캐리어에요! 저는 엄청나게 많은 우편물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줘야 하기 때문에 캐리어는 필수죠! 디자인은 조금 촌스럽... 아, 아니 조금 제 취향이 아니지만 괜찮아요! 회사에서 우편 배달 열심히 하라고 선물해준 거니까요. 음... 방금 제 말실수는 잊어주시는 센스, 아시죠? 국장님이 아시면, 어휴...
네? 이 안에 전부 들어가긴 하냐구요? 후후, 당연하죠! 그럼 어떻게 다 들어가냐구요? 그건... 영업 비밀이랍니다! 언제 어디든 찾아가는 것도 영업 비밀! 비밀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어요. 회사 방침이니까요. 그리고 비밀이 많을수록 더 매력적이지 않아요? 헤헤.
아무튼! 지금까지 우편배달부 메이였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루리를 적대하는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아예 루리를 없애버리는 방법을 찾으려는 얀데레틱한 대사도 내뱉으려다 말 정도.
3.15.3. 마법형
3.15.3.1. 벨리카
벨리카가 가지고 있는 현자의 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벨리카의 진리의 흔적''' / '''각성된 밸리카의 진리의 흔적'''
마법 학교에서 쫓겨나고, 흑마법을 익혔을 때 깨달았지. 아, 세상에는 학교의 고지식한 어른들이 가르치는 힘보다 더 강한 것들이 수없이 존재하는구나. 악마의 힘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 때문이야. 허구한 날 질서니 뭐니 하며 힘의 성장을 막아대는 빛의 마법 따위보다 자유롭잖아.
그리고 언제쯤이었더라. 형편없게 생긴 작은 돌을 주운 적이 있었어. 그런데 사실 그 돌은 현자의 마력이 담긴 귀한 것이었지. 난 보자마자 알 수 있었어. 그 돌을 얻고 나서, 감히 내게 덤빌 수 있는 마법사는 없어졌어. 처음엔 기분 좋았지. 그런데, 그것도 잠시더라구. 세상이 지루해졌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사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하는 힘이 분명히 존재해. 파괴의 힘이 그 중 하나지. 흥미롭지 않아? 난 이미 정점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이 전쟁을 보면서 깨달았지. 초월한 힘의 절정을 손에 넣어야만 진짜 정점에 오를 수 있어. 그러려면 힘의 진리를. 그 힘을 발현하는 우주의 진리를 찾아야 해. 알겠니? 내가 왜 우주의 진리를 찾으려 하는지.
이게 그 현자의 돌이냐고? 맞아. 뭐, 그때랑 모양이 많이 달라졌지만. 왜 달라졌냐고? 후후, 말 안 해도 예상할 수 있을 텐데? 이 돌에는 현자의 힘은 물론이고, 내가 지금까지 찾은 힘이 담겨있어. '진리의 흔적'이라고나 할까? 갈수록 진리에 가까운 힘을 담고 있으니까. 이 돌은 나에게 있어 귀한 보물이야. 그러니 소중히 다루도록 해, 세바스찬. 작은 흠집이라도 냈다간, 네 몸엔 더 큰 흠집이 남을 테니까 말이야.
3.15.3.2. 세바스찬
시점은 5성 시절로 추정된다. 고속 승진한 후배 때문에 상사에서 순식간에 부하 직원으로 전락해버리는 세바스찬의 안습한 현실을 볼 수 있다.'''세바스찬의 마법총'''
학창시절, 나는 손재주 좋은 아이로 통했다. 약한 마력 때문에 마법 실기 성적이 형편없었지만, 다양한 지식과 손재주로 위기를 넘겼다. 선생님은 "네 마력이 조금만 더 강했어도 넌 대단한 마법사가 됐을 거야."라는 아쉬움이 가득한 칭찬을 남겼다.
"그러니까, 감히 무시하지 말란 말이지, 그 망할 마녀."
직장 후임 중에 굉장한 마력을 지닌 여자가 있었다. 과거 학교에서도 우수생이었단다. 그렇다고 해서 선배를 깔볼 권리는 없는 거 아냐? 건방지게, 나보다 나이도 어린 주제!
"두고 보라고, 굉장한 걸 보여줄 테니."
"그래서? 네가 만든 거라고?"
"그래."
학생 때부터 지니고 있던 마법총을 개선했다. 약한 마력을 커버하려고 만든 마력 증폭기였다. 졸업 이후 손댈 일이 잘 없었지만, 빌어먹을 후배의 콧대를 눌러주려면 개선이 필요했다.
선배의 실력을 똑똑히 보라고 총을 직접 보여주니 꽤 마음에 든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건방진 후배는 내게 허락을 묻지도 않고 총을 쏴버렸다. 그녀의 강한 마력과 맞물린 총은 연구실 벽에 크게 구멍을 내고 말았다. 어이가 없어,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지?
"야! 미쳤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마음에 드는걸? 나도 만들어줘."
"내가 너 따위한테 뭐하러......!"
"나 승진 발령 났어."
뭐, 뭐라고? 뭔 발령?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이 뭐를 발령받아?
"그러니까, 명령이야. 나한테도 그런 쓸만한 것을 만들어와,"
"......."
그간 마녀의 콧대를 눌러주려 기 쓴 나의 노력은 쓸데없이 일이 늘어나는 불행만 가져왔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인생, 참 덧없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3.15.3.3. 소교
소교의 각성 직후 얼마 안 된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소교의 비담이 준 환약'''
가까스로 눈을 뜬 뒤에도, 소교는 종종 파괴의 저주에 인한 고통에 시달렸다. 비담은 내심 촉박한 시간을 걱정하면서도 소교를 매정하게 버리고 갈 수 없었다. 비담은 하는 수 없이 소교의 곁에 며칠 더 머물렀지만, 소교는 비담 본인도 모르는 그의 자상한 배려와 잘생긴 용모에 특별한 감정을 품은 지 오래였다.
소교가 저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될 즈음, 비담은 작은 약 상자를 내밀었다.
"받아."
"이게 뭐예요?"
약 상자를 열자 쓴 약재의 냄새가 강하게 퍼졌다. 상자 안에는 금빛의 환약이 한 알씩 예쁘게 포장된 모양으로 담겨 있었다.
"힘에 적응할 때까진 당분간 계속 먹어야 할 거 같아서 만들었어."
"비담 님..."
날 위해 비담 님께서 손수 약을....! 소교는 반짝이는 눈으로 비담을 올려보았다.
"...그 표정 뭐야?"
"비담 님께서 소녀를 위해 약까지 직접... 역시 비담 님도 그런 거군요!"
"뭐가 그런 건데? 그냥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비담은 단호한 대답을 던진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고 있어. 좀 있다 다시 올게."
비담이 방을 나서고 문이 닫히자마자, 소교는 약 상자를 품에 안으며 얼굴을 붉혔다.
저렇게 아닌 척하고 계시지만 역시 비담 님도 나를 특별히 여기시는 게 틀림없어! 행복한 착각에 사로잡힌 소교는 다시 자리에 누우며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왠지 고통 없이 달콤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3.15.3.4. 스피나
스피나가 짝사랑하는 길드장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세자르가 출시되면서 짝사랑 대상이 그일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마지막 펜타곤인 자하라가 스피나의 짝사랑 상대라는것이 밟혀졌다.'''스피나의 수줍은 고백'''
늦은 새벽, 길드 연합군의 최전방 막사 중 한 곳의 불이 켜져 있었다. 의료반을 지휘하는 하영의 막사였다.
"스피나, 아무래도 이 문장은 뭐랄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아, 죄, 죄송해요! 제가 아직 글을 배운지 얼마 안 돼서..."
스피나는 커다란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연거푸 숙여댔다. 이대로 놔두면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기에 하영은 스피나를 급히 일으켜 세웠다. 빽빽하게 쓴 편지를 찢은 스피나는 다시 편지 쓰기에 몰두했다. 그 사이 하영은 연신 하품을 하며 졸린 눈을 비볐다.
자정이 다 되었을 무렵, 막사로 찾아온 스피나를 처음 보았을 때, 하영은 무척 기뻤었다. 그동안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 성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한두 시간이 지나며 절망으로 바뀌었다. 크게 다르지 않은 수십 통의 편지를 읽고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존감이라고는 찾기 힘든 스피나가 쓴 편지라면 더더욱 말이다.
"스피나! 이 정도면 정말 완벽해요.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은 분명 스피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거에요. 이제, 그만 써도 되겠는걸요?"
하영은 최대한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목소리로 말하며, 스피나의 눈치를 살폈다.
"정말... 요?"
스피나도 스스로 꽤 만족스러웠는지 표정이 밝았다. 수십 번은 고쳐 썼으니. 더는 손 볼 것이 없어야 마땅한 편지였다. 수신자가 적혀있지 않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런데 이 편지는 누구에게 주려는 거에요?"
질문을 들은 스피나의 푸른 얼굴은 금세 빨개졌고, 부끄러운 듯 양손으로 볼을 감쌌다.
"절 구해주신 주인님... 저희 길드장님께 드릴 거에요. 곧 전선으로 오신다고 들었거든요."
"네? 하지만 스피나. 그분께서는 분명..."
하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건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가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왜... 요? 아, 역시 나 같은 건 감히 그분에게..."
스피나의 표정은 순식간에 시든 장미처럼 변해버렸다. 하영은 당황하며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하하하. 아니에요. 분명히 이 편지를 받고 좋아하실 거에요. 봐요. 스피나를 닮은 푸른색 종이에 쓰고, 이렇게 예쁜 하트 인장까지 찍혀 있는 걸요?"
"정말, 고마워요. 혼자서는... 쓸 수 없었을 거예요. 아, 벌써 동이 트네요. 전 이제 가볼게요.”
스피나는 몸을 반으로 접으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막사를 나섰다. 자신의 막사로 뛰어가는 그 뒷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그분의 정체를 알게 되면... 하긴, 사랑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뭐, 괜찮겠지?"
하영은 찢어진 수십 장의 편지지와 엉망으로 어질어진 책상을 뒤로한 채, 침대에 몸을 던졌다.
3.15.3.5. 실비아
실비아의 막나가는 성격을 알 수 있다.'''실비아의 부두인형'''
실비아는 도망치듯이 빠른 걸음으로 로비를 걷는 세바스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그에게 해코지할 것처럼 위압적이었다. 몇 날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얼굴을 들이미는 그녀의 끈기에 세바스찬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또 왜! 바쁘다니까?"
"자꾸 시간 끌지 말랬지. 언제 줄 거야?”
"넌 인내심란 게 없어? 너 따위를 먼저 신경 써줄 시간 없다니까? 그리고, 내가 왜 너한테 그 망할 어둠의 힘을 줘야 하는데? 나한테 맡겨둔 거 있냐?"
"넌 힘을 연구하는 연구 노예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세바스찬의 구겨진 미간 위로 그의 불쾌한 기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꾸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있어."
실비아는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옷에서 작은 인형을 꺼냈다. 짚으로 만든 볼품없는 것이었지만, 문제는 인형이 입은 옷차림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었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세바스찬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게 뭔데?"
실비아는 그의 질문에 말대답하는 대신 긴 바늘을 꺼내 인형을 사정없이 찌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세바스찬은 온몸에서 일어나는 따끔한 고통에 비명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악! 아악! 뭐야 이게! 으아악!"
"자꾸 피하면, 더 아프게 해줄 거야."
회심을 한마디를 던진 실비아는 서늘한 표정으로 세바스찬을 노려보았다. 쓰러진 그를 내버려 두고 복도를 지나쳤다. 얼빠진 표정으로 실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세바스찬은 벌떡 일어나며 온 복도에 메아리가 울리도록 크게 외쳤다.
"이 정신 나간 힘 중독자야!!"
3.15.3.6. 아리엘
아리엘이 언제나 들고 다니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아리엘의 별빛의 마법책'''
"자, 아리엘. 열 번째 생일을 축하해! 그리고 이건 선물."
"우와!! 고마워 오빠!"
나의 책장 제일 첫 번째로 꽃혀있는 책. 어릴 적, 무작정 마법사가 되고 싶다며 떼쓰던 나를 위해 오빠가 사준 책이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조힉도 하고, 역시 우리 오빠가 좀 다정해! 하면서 웃음 지어본다.
막상 받았을 땐 마법이란 것을 할 줄 몰라서 이해할 수 없는 책이었따.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기초적인 내용이 적혀있는 그저 흔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에반과의 여행이 계속되고 경험이 쌓일수록 이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내 마력이 커져감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엔 엄두도 못 내던 마법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조금씩 실력이 오른 것을 느꼈지만 방대한 마력을 전부 활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오빠를 만나러 갔다. 오빠는 항상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늘 같은 동작을 반복했고 보는 나도 지겨웠지만 땀을 흘리는 멋진 오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이건 나만의 특권... 아니 저 퍼렁댕댕 여자가! 저리 안 가냐! 확!
아무튼 그때였다. 오빠가 사주었던 별빛의 마법 책이 떠올랐다. 어릴 적에는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학교에선 배울 필요가 없었던 그 책. 당장 방으로 돌아가 책을 꺼냈다. 거의 읽지 않아서인지 새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빠 미안해...
책을 펼치자 기초적인 술식들이 나왔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술식들이었다. 빠르게 넘기다 보니 금방 책을 다 읽게 되었다. 실망감이 큰 가운데 다시 오빠의 말을 떠올렸다.
"기초 동작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일격이 되는 거란다. 그것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면 어떤 공격을 해도 최강의 공격이 될 수 있지."
다시 책을 펼쳤다. 그리고 찬찬히 하나하나 술식을 따라 했다. 그러자 막혔던 부분이 뚫린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 뒤로 별빛 마법을 익히는 데 시간을 쏟았고, 그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소중히 들고 다닌다.
3.15.3.7. 에스파다
성십자단 여성 전용 장비 스토리는 서로 이어져있고, 에스파다가 그 중 첫번째 이야기이다. 에스파다의 성십자단 입단 과정 이야기와 세인과 친구가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에스파다의 성십자단증'''
늦은 밤. 화로 주변에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따스함을 느끼고 것인지 옹기종기 앉아 손을 뻗어 불을 쬐고 있었다.
"이렇게 모여 식사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다들 고생했어. 이젠 어느 정도 안정된 것 같아."
"뛰어난 지휘자가 있는 덕분이죠."
"그냥 훈련받은 대로 했을 뿐인걸."
에스파다의 대답에는 쑥스러움이나 기쁨보다는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에스파다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난 부모에게 버려져 이곳에 왔어. 처음엔 부모에게 버림받은 게 너무 충격이어서 몇 날 며칠을 울었지. 그러다 문득 이곳에서도 버림받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재빠르게 울음을 그치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어. 무엇이든 했지. 버림받지 않으려고.
그런 내 모습이 의욕을 찾은 것처럼 보였던 것 같아. 선생님은 나에게 총을 쥐여주며 훈련을 하자고 했어. 혹독했지.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덧 특수부대원이 되어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임무 중에 악마의 피를 뒤집어쓰고는 악마의 힘을 지니게 되었지. 그걸 본 동료들은 하나둘 나를 멀리했고 결국 난 혼자가 되었어. 부모에게 버림받았을 때보다 더 사무치는 느낌이었지. 하지만 그때 세인이 나에게 다가왔어. 그리고 말없이 옆에 있어 주었지. 그 뒤로 친구가 됐어."
에스파다가 말을 마칠 때쯤 루리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두 분이 그렇게 친한 이유도 알 것 같아요."
장작 타오르는 소리가 고요함을 대신했다.
3.15.3.8. 유리
1부와 2부 사이에서 에반을 찾아다니던 유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유리의 에반 원정대 초상화''' / '''각성된 유리의 에반 원정대 초상화'''
유리는 지난 한동안 미쳐버린 듯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작 친하게 지내던 인간 두 명이 사라졌다고 천 년을 산 여우인 자신이 발광하며, 아스드와 아이사 전역을 뛰어다닌 꼴이라니. 그만큼 그들이 자신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뿐이었다.
카린이 델론즈에게 납치되고 세븐나이츠가 그녀의 희생을 앞세우기 시작하면서, 에반도 지금의 자신과 마찬가지였던 지라 진정시키려 큰 애를 먹었었다. 그런 에반을 도와 카린을 구하기로 약속했던 원정대로 에반이 사라진 후 각각의 사정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에반의 정보와 뒤를 쫓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던 자신을 말릴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편이 오히려 유리에게는 마음이 편했다. 조금은 쓸쓸했지만...
"괜찮아. 이제 곧. 이제 곧이야. 에반과 카린을 찾으면... 다시 예전처럼 모두와 함께 여행을 떠날 테니까."
유리는 손에 들려있던 작은 액자를 쓰다듬었다. 언젠가 원정대 멤버들과 함꼐 있는 모습을 그려 받았던 소중한 초상화. 그림이 그려질 동안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한 스니퍼와 에반이 핀잔을 들어가며 왁자지껄 완성된 그림.
너무나 소중한 나의 친구들...
유리는 액자를 자신의 가방에 조심스레 밀어 넣으며 다시 일어섰다.
3.15.3.9. 유신
처음 각성 유신이 출시되었을 때 관계도 상에서 세바스찬과의 관계가 실험체로 되어있기에 세바스찬이 실험한 것으로 보였으나, 전용 장비 시나리오가 공개되면서 그녀의 상사인 벨리카가 실험을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래 생활고에 시달리던 나머지 누가 봐도 악의 조직인 흑마법 연구탑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 세바스찬의 소시민적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유신의 안대'''
세바스찬은 물약을 담은 작은 유리병과 대충 만든 듯 조잡한 안대를 들고 유신에게 다가갔다. 재수 없는 마녀...... 아니, 상사님이 시키는 대로 파괴의 저주 실험을 하기 위함이었다. 실험대에 묶은 채로 누워 고통스러워하는 유신의 몰골은 이미 숱한 실험으로 야위어 있었다. 세바스찬은 몇 날 며칠 밤새워서 퀭한 눈으로 유신을 딱하게 내려 봤다.
"신선님. 안타깝지만 날 원망하진 마요.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거든.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세바스찬은 그 누구도 묻지 않은 변명을 중얼거렸다. 이미 정신이 혼미한 유신이 자신의 얘기를 제대로 듣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에게 남아있는 약간의 양심이 변명을 종용했을 뿐이었다. 변명을 마친 그는 결심한 듯 유신의 입에 물약을 털어 넣었다.
"크헉, 윽...... 흐아아아악......!!"
물약을 삼키자마자 유신의 비명과 발작이 이어졌다. 세바스찬은 그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았고, 곧 유신의 주변에 검은 오라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실험이 성공적이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유신의 몸부림은 끝날 줄을 몰랐다. 세바스찬은 결과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떨떠름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안대를 유신의 왼쪽 눈에 씌웠다. 자신의 마력을 조금 담아 만든, 약간의 치유 기능을 가진 안대였다.
"이거라도 쓰고 있으면, 좀 덜 아프겠지."
유신의 안대는 각성 외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파괴의 힘으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한 장비였던 것.
3.15.3.10. 풍연
풍연의 과거 회상과 더불어, 하얀 이리에 가입하는 과정을 나타내는 시나리오다.'''풍연이 지닌 소이의 비녀'''
"머리가 많이 길었네요."
그날, 하늘은 높게 강한 햇빛을 내리고 있었고 수련은 더디기만 했다. 도중 거추장스럽게 길어버린 머리카락을 대충 묶어 올리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소이가 말했다.
"그러게요. 곧 잘라내야 할 듯싶습니다."
나의 대답에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는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이, 이것을 받아주세요! 오늘처럼 볕이 뜨거운 날에라도 사용하시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요......?"
한참을 망설이던 소이는 자신이 지니던 비녀를 건네주며 말했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곁눈질을 하며 수줍어하는 듯한,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이 어딘지 이상해서 웃음이 나오던 것을 참았던 기억이 있다.
멍하니 올려다본 하늘이 마치 그날과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곧 온몸을 찢어놓는 듯한 감각에 몸을 부여잡으며 뒹굴었다.
"크윽...!!!"
나는 스승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소이를 지켜내기로 약속했었다. 그 마음은 시간이 흐르고 형태를 바꾸어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소이가 영문 모를 고열로 생사를 넘나들 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절망 속에서 리나 님의 도움을 받아 에반을 다시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소이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멍하니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의 한심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렇게 가만히 누워 쉬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각오를 새로 한다.
"다시 시작해도 될까?"
물어오는 에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어쩐지 멀리 매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3.15.4. 만능형
3.15.4.1. 녹스
생전 크리스의 부하로 있던 시절부터 각성하는 시점까지 녹스의 인생역정을 서술한 시나리오다.'''녹스의 부러진 검조각'''
훌륭한 충성심을 가진 명예로운 기사가 있었다.
명예로운 기사는 빛의 자리를 존경했지만, 자신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빛의 기사를 위해 꿈을 포기했다. 그는 점점 멀어지는 시야를 비관하며 기사의 지라를 떠나려 했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빛의 기사를 위해 자리에 남았다. 기사는 자신의 빛이 되어주겠다는 빛의 기사를 위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검을 들기로 다짐했다.
정체 모를 공격을 받은 기사는 악마의 힘에 의해 되살아났고, 빛의 기사를 따라 복수를 준비했다. 그는 악마의 힘에 침식당하면서도 과거의 맹세만은 잊지 않았다. 빛의 기사는 빛을 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기사의 빛이었다. 그를 위해 적을 쓰러뜨리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빛의 기사만을 걱정했다. 기사는 자신의 빛을 지켜낸 영광의 최후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기사는 또다시 부활했다. 기사가 쓰러뜨렸던 적은 쓰러지지 않았고, 기사는 적을 향해 더럽혀진 충성을 행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맹세는 모두 잊어버렸다. 기사가 맞이했던 영광은 어둠에 의해 더럽혀졌다. 빛을 위해 들었던 그의 검은 처참히 부서졌다.
명예로웠던 기사는 빛을 잃었고, 훌륭했던 그의 충성심은 영광을 저버렸다.
3.15.4.2. 니아
성십자단 여성 전용 장비 스토리는 서로 이어져있고, 니아가 그 중 세번째 이야기이다. 파괴의 저주가 퍼진 이후 니아의 정신적 성장을 다루고 있다.'''니아의 성십자단증'''
아, 네 맞아요. 루리 언니가 저를 추천해줘서 저도 입단해게 됐어요.
물론 나이가 너무 어린 탓에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입단시킨 걸 보면 아마도 제 기술이 탐났을 거예요. 아스드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계 기술이니까요! 볼트를 보시고는 깜짝 놀랐다니까요?
사실 처음에는 장난 같은 기분으로 들어온 것도 있었어요. 실험재료도 제공해준다고 하니 얼마나 신났겠어요. 이리저리 엉뚱한 것도 만들기도 하고, 볼트도 개조하고...
그런데 아마, 파괴의 저주가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 거에요. 복도에 부상자들이 피를 흘리면서 너무 아파하는데 저 자신이 너무 철없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땐 이미 루리 언니도 훌륭한 성십자단원처럼 행동하고 있던 때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은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고민을 했어요. 난 장난 같은 마음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잖아요? 그래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치유 기계를 만들고 있더라구요. 그 뒤로는 장비개조를 통해서 단원들의 생존력을 올릴 방법을 모색했어요.
아시다시피 실패한 것도 많았는데, 그 이유가 제가 전투를 경험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루리 언니에게 부탁해서 전선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다들 말리셨잖아요. 그땐 사실 자존심 많이 상했다구요. 볼트가 얼마나 잘 싸우는데. 물론 제가 잘 싸우는 건 아니지만. 볼트가 있고 없는 전투는 큰 양상을 보였죠.
그걸 통해서 제 능력을 증명했고 이젠 어엿한 단원이 되었죠. 이제 제 이야기는 끝인 것 같네요.
이제 남은 사람은 세인 언니네요.
3.15.4.3. 리
리가 에반 원정대에서 이탈한 이후의 행적을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에 깨달음을 얻는 장면은 흡사 원효의 해골물 일화를 생각나게 한다.'''리의 깨닫음의 염주'''
무너진 기둥과 부서진 기와, 움푹 파인 마당. 금조교의 풍경은 그때의 상황을 담고 있었다. 리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소매를 걷어붙였다.
파인 마당에는 흙을 퍼와 다져 넣어 다시 평평하게 만들었다. 무너진 기둥은 다시 세웠고 부서진 기와는 멀쩡한 기와로 바꾸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서서히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비가 내렸다. 방에서 잠을 자던 리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잠에서 깨어난다. 몇십 년을 살았던 자신의 방인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밤이 깊어 내일 고치기로 하고 빗물이 떨어지지 않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른 공간, 다른 공기, 다른 느낌. 똑같이 생긴 방이었지만 어쩐지 불편했다.
다음날, 비가 그쳤고 리는 곧바로 지붕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작업이어서 금방 고치고는 다른 장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오후부터 다시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비가 내렸다.
깊은 밤, 리는 잠에서 깨어 잠시 비몽사몽 해우소에 들렀다. 모든 근심을 덜어내는 곳이라 그런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이 덜 깨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진 때였다.
비가 그친 맑은 아침, 리는 잠에서 깨어 보니 자신의 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왠지 모를 불편한 감각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옮겼다. 그러자 문득 본인이 왜 불쾌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새벽에 해우소에 갔다 왔을 때는 그렇게 기분이 상쾌했다가 지금에서야 불쾌감을 느끼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던 타인의 방, 하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방이라 믿자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리는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리는 타인의 방에 있던 염주를 차고는 길을 나섰다.
각성 리가 들고 있는 염주는 전용 장비의 외형과 전혀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수련을 거듭하면서 염주 또한 리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가 가져간 염주는 따로 두고 새로운 염주를 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3.15.4.4. 아라곤
아라곤이 엘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여 연합군 사령관을 맡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아라곤의 연합군 사령관 임명장'''
"아라곤, 제가 당신에게 연합군 사령관을 맡긴 것은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첫 번째는 여왕님께서 직접 지휘하실 수 없는 상황입니다. 새로운 왕이 자리를 자주 비우면 국민들의 불안은 커질 테니까요.
두 번째는 키리엘, 라이언 대장은 이만큼 대규모 부대를 지위해본 적이 없다는 것. 이어서 여왕님의 직속 부대를 두고 싶으신 것도 있겠죠.
세 번째는 루디 님의 측근이었던 제가 지휘하게 됨으로써 국민들 간의 화합을 유도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모든 책임을 저에게 돌리고 쉽게 버릴 수 있다는 점. 아닙니까?"
아라곤은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그 당당함에 모두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엘리시아는 무관인 아라곤이 이만큼 추측해낼 줄은 몰랐다 오히려, 자신이 의도한 바를 넘어 이해하고 있었다.
"놀랍군요. 하지만 틀린 점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에게 책임을 전가해서 버릴 생각은 없어요."
"실례했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확실히 하지 못한 제가 잘못이지요. 그래서, 제 제안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선 당신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라곤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따. 정적은 길게 가지 못했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사람의 지지율은 떨어질 것입니다. 충신인 아라곤이 루디를 버리고 나를 택했다고 하겠죠.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국민을 지켜야 합니다. 대답은 지금 당장 안 주셔도 됩니다. 이걸 가지고 가세요. 모든 절차는 밟아놨습니다. 내킬 때 대답해주세요."
엘리시아는 지금 답을 주지 않아도 되니 나중에라도 알려달라 했다. 아라곤은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어두운 방을 밝히는 촛불이 일러이는 가운데 하얀 머리가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아라곤은 엘리시아에게 받아온 임명장을 읽고 또 읽었다. 펜타곤을 비롯한 길드 연합과 왕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임명받는 내용이었다. 벽에 걸린 또 다른 임명장을 보았다.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아무런 효력이 없는 총사령관 임명장.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지금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용서나 이해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켜온 것을 지켜야만 당신이 살아온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3.15.4.5. 지크
다른 성십자단 대원들과 달리 지크의 전용 장비 시나리오는 개그 그 자체다. 거기에 니아가 주는 선물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전투 보조장치로 받아들이는 지크의 무식하면서도 순수한 일면 또한 확인 가능.'''지크의 니아표 학습기계'''
깊은 어둠 속, 정체를 밝히지 않은 인물들이 작은 원탁에 모여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 기계 같은 건 만들 수 없어? 지크가 더욱 영리해지면 전투에도 유리해지고, 결국 모두의 생존력도 올라갈 것 같은데."
"음...... 글쎄요. 그건 뇌와 관련해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거라서요. 게다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 건 교육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에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 학습기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는 건 어떨까요? 주입식으로 계속해서 교육하다 보면 몸에 익어서 좋은 습관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요?"
"오! 그건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뇌보다는 학습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런 기계는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럼 어떤 지식을 교육할 건가요?"
"생활 상식. 다시 말해 매너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겠군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교육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건 해보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시뮬레이션을 해서 직접 가르치는 게 나아 보이네요. 그리고 오답을 내렸을 경우 가벼운 충격을 주어서 벌을 가하는 방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벌이 없다면 배우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공학도 아니였어?"
"저도 교육받는 입장이어서 교육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럼, 그렇게 착수 부탁해."
"알겠어요."
그리고 얼마 후.......
"지크 씨! 지크 씨를 위해 만들었어요. 꼭 써주세요."
"니아...... 나 감동이야. 네가 날 위해서 이런 전투 보조장치를 만들어 줄 줄이야. 꼭 쓰고 다닐게!!"
니아는 기뻐하는 지크의 모습을 잠시 보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루리, 세인, 에스파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이에요."
니아의 말 한마디에 모두 소리 없이 환호했고, 지크의 방에선 기괴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3.15.4.6. 챈슬러
대놓고 초반부터 각성 전의 외형을 가지고 셀프 디스를 시전한다(...). 심지어 각성 전의 스탠딩 대사까지 그대로 패러디.'''챈슬러의 왕국 기사의 증표'''
"자네 요즘 들어 말이 많구먼."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아니야, 오히려 말이 없던 때보다 보기 좋네. 진작 말 좀 하고 다니지 그랬나."
"사실 어릴 때 제가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 동생들도 놀림을 많이 받곤 했는데, 그 때 동생을 지켜주겠다는 생각에 처음 경비대에 입단했었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훈련장에 금발의 미청년과 사자 머리의 사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둘은 많이 더운 듯 상의를 벗고 있었고 그 위로 시원하게 물을 뿌렸다.
"저도 사실 챈슬러 님이 투구를 벗기 전까진 험상궂은 아저씨 얼굴일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목소리도 이렇게. 승리를 쟁취하라!!"
룩은 웃음을 참다가 결국 터져버렸고, 그 모습에 챈슬러도 덩달아 웃었다. 룩은 겨우 웃음을 진정시키며 왜 그렇게 정체를 감추고 다녔는지 물었다. 챈슬러는 얼굴에 붙은 머리칼을 떼면서 대답했다.
"기사가 되고 싶었네. 진짜 기사가......"
"이미 그러시지 않습니까?"
"맞아. 이 기사의 증표를 받을 때 나도 무척이나 떨렸네.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가 생각해보니 이제 겨우 시작이었어."
"아니 어째서입니까?"
"기사라는 본분을 다해야만 기사로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네. 기사가 도둑질을 하면 그자를 기사라 부를 수 있겠는가?"
챈슬러의 질문에 룩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변변찮지만 나도 귀족 출신이네. 그것으로도 쉽게 지위가 오르고 기사가 된다 생각하니 그것은 내 속에 있는 기사와는 달랐네. 그래서 정체를 숨기고 다녔던 것이지. 자네처럼 말이야. 맡은 바 본'''문'''[45]
을 다 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실천해야지. 그럼 이만 돌아가지.""네. 그런데 저기 담 너머에 아낙들은 아시는 분들입니까?"
"무시해도 되네. 어서 가지."
챈슬러의 과거가 여기에서 확실히 밝혀진다. 귀족 출신이며, 그저 지위로 기사 자리를 획득했다는 것에 회의를 느껴 진정한 기사가 되기 위해 커다란 투구로 정체를 감췄다는 것.
3.15.5. 지원형
3.15.5.1. 리나
리나의 하얀 이리 가입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리나의 백화 머리핀'''
"적들을 리나가 있는 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아라!"
다급한 발소리와 명령을 내리는 데이지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올수록, 리나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자신도 싸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리나는 이를 악물고 굳어가는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에이스가 황제의 명으로 황성으로 떠나고 얼마 후, 리나의 불길한 예언은 적중한 듯 황성으로부터 파괴의 저주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주의 힘으로 되살아난 반란군 망령의 습격까지 더해져 달빛의 섬은 지옥과 같았다. 리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날, 모든 것을 예견하면서도 에반과 세븐나이츠를 황성으로 보낸 자신을 후회하며 연주를 계속하는것 뿐이었다.
커다란 굉음이 울리며 리나는 손을 멈추었다. 끊어져 버린 비파줄을 바라보며 리나는 더 망설일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향했다. 사당 이곳저곳에 타오르는 불꽃을 피하며 겨우 나온 마당은 역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쓰러진 시체들 사이로 망령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며, 리나는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멀리 쓰러져있는 소녀를 공격하는 망령의 모습을 보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짚으며 내달렸다. 망령을 밀쳐내고 소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이미 소녀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소녀가 소중히 쥐고 있던 하얀색의 꽃만이 바닥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리나는 꽃을 주우며 예견된 어둠을 막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에 크게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리나는 흐려진 시선 너머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껴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듯, 무언가 다른 느낌을 지닌 그림자는 리나를 향해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살아있었군요. 리나."
3.15.5.2. 카린
프롤로그 시점에서 언급된 에반이 카린을 고블린 무리에서 구한 것의 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카린의 어머니의 유품'''
고블린들의 습격으로, 평화로웠던 작은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여느 때와 같이 조용한 바람 소리를 감상하며 독서를 즐기던 카린은 짧은 시간 안에 뒤바뀐 처참한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쯤, 그녀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집을 벗어나고 있었다.
길바닥에 어지럽게 쓰러져있는 수많은 사람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다. 수풀에 몸을 숨긴 카린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묻기도 전에 어머니의 다급한 당부를 들어야만 했다.
"위험하니 절대로 이 숲을 벗어나지 말거라. 너만은 반드시 살아야 한다. 가엾고 착한 내 딸, 네가 가진 그 힘이 너를...”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는 가까이서 들려온 고블린들의 괴성에 의해 끊겼다. 어머니는 긴장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다, 결심한 듯이 입술을 깨물며 카린의 손에 자신의 커다란 목걸이를 쥐여주었다.
"이거, 꼭 지니고 있으렴. 그리고 혹시라도 몬스터들을 발견하면 바로 도망치거라. 엄마도 뒤쫓아갈 테니 걱정 말고..."
어머니는 카린이 손을 뻗기도 전에 일어나 수풀 밖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것이, 카린이 본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은 뭐였을까..."
일과를 마친 후 방에서 휴식을 취하던 카린은 또다서 옛일을 떠올렸다. 몇 시간 전 에반과 자신의 과거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지만,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 채 대화는 흐지부지 끝나버렸기 때문에 재차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카린은 자신의 옷 주머니 안에서 어머니의 목걸이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았지만, 어머니의 마지막 말뜻을 알 길이 전혀 없었다.
"언제쯤이면 어머니의 말씀에 미련을 버릴 수 있을까...?"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내 힘이 어떤 것인지. 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카린은 하나뿐인 어머니의 유품을 품에 안았다.
3.15.5.3. 클로에
클로에와 반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클로에는 반의 성장한 모습을 모르는 듯 하다.'''클로에의 반 목걸이'''
"반~ 반~ 나 초코 쿠키가 먹고 싶어~!!"
"이거, 놓고, 이야기해. 숨 막혀 죽겠어."
"초~코~쿠~키~"
고양이 귀를 한 소녀는 끊임없이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녀에게 끌어안긴 작은 고양이는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비벼 댔다.
"알았어! 가서 사 올게."
"으으으응~ 오늘은 같이 나갈 거야."
"그러고 보니 오늘 장날이었군. 클로에, 결국 시장 구경하러 나가고 싶었던 거구나?"
"에헤헤. 역시 반이야! 똑똑해!"
작은 고양이 반은 한숨을 내쉬었다. 클로에는 여전히 순수한 미소로 그런 반을 끌어안고 문을 나섰다. 둘의 외출이 시작되었다.
시장은 붐볐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희귀한 물건들, 엄청난 사람들이 클로에의 시선을 빼앗았고 반은 그런 그녀를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반! 저쪽에 신기한 먹거리가 있어! 가보자!"
클로에가 먹거리 쪽으로 가려는 순간 한 꼬마 아이와 부딪혔다.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지만, 꼬마 아이의 사과는 받지도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얘~ 조심해서 다녀아지~ 안 그래? 반?"
클로에는 말을 끝내는 순간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까 그 꼬마와 부딪치면서 반을 잃어버린 듯 했다. 클로에는 시장 곳곳을 헤매며 반을 찾아다녔지만, 반은 어디에도 없었다. 클로에는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납치당한 것이 아닐까, 너무 작아서 밟혀 죽은 것이 아닐까, 마녀에게 잡아 먹힌 게 아닐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인상 좋은 한 아저씨가 다가왔다.
"얘야, 네가 찾는 고양이를 저쪽 골목에서 본 것 같은데, 가보는 게 어떻겠니?"
"정말요? 감사합니다!"
클로에는 그의 말에 곧바로 달려갔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림자만 드리워있었다. 그때 더 큰 그림자가 클로에 위로 드리워졌다.
"어? 아까 그 아저씨..."
"아가씨 우리랑 함께 가줘야겠어!"
덩치 큰 사내들이 칼을 들고 클로에를 위협하였다. 클로에는 너무 무서워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팔다리가 떨렸고, 이 현실이 그저 꿈이길 바랐다. 사내의 손이 다가오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쓰레기는 치워야지!"
잘생긴 고양이 신사가 사내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 신사는 마치 춤을 추듯 자연스럽게 사내들을 손쉽게 제압했고, 마지막 남은 사내는 상대가 되지 않겠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동료를 버리고 도망쳐버렸다.
클로에는 정말 꿈이라도 꾼 것처럼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그때, 반이 나타났다.
"클로에, 어딜 갔었어. 너 주려고 이거 사 왔단 말이야."
반은 막대에 꽃힌 작은 사탕을 클로에에게 건넸다. 클로에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반을 끌어안았고 반은 조용히 클로에의 품에 돈주머니를 넣었다.
"그리고, 이것도. 이 목걸이를 차고 있으면 클로에가 어딜 가더라고 그 위치를 알 수 있어. 항상 차고 다녀."
클로에는 반을 끌어안고는 얼굴을 비벼댔다. 반의 얼굴은 괴로워했지만, 미소를 띠고 있었다.
3.15.5.4. 하영
하영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하영의 반혼등''' / '''각성된 하영의 반혼등'''
언제부터 '반혼등'이 전해져 왔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가문은 대대로 그것을 통해 영혼들과 교류하고, 힘을 빌려 황제를 모셨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반혼등'의 선택을 받지 못한 반쪽짜리 제사장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권력에 집착했고, 그것은 여러 가문을 향한 억압으로 이어졌다. 황제의 권력을 이용한 횡포는 점점 심해졌고, 그에 따른 분노는 소리 없이 쌓여만 갔다.
그리고 파괴의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우리 가문은 많은 적의 표적이 되었고, 아버지는 내게 '반혼등'을 맡기며 눈앞에서 희생당했다. 피난 행렬 속에서도 나와 식구들을 노리는 자들은 많았고, 그때마다 나와 '반혼등'은 희생 속에 지켜졌다. 우리는 가까스로 아스드 대륙에 도착하여 피난민들과 함께 신비의 숲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이후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져 나갔다. 나는 황실 제사장의 딸도, 가문의 후계자도 아닌 평범한 소녀로 자라는 듯 했다.
가문의 사당이 보였고, '반혼등'의 마지막 주인이던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그 주변의 사람들 또한 과거 '반혼등'의 주인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고, 손에 뭔가를 쥐여주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내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것만 같았기에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때였다. 내 어깨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곳엔 아버지를 비롯해 날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아버지는 왠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을 두려워 말거라. 앞으로 수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모두 널 도울 것이다.'
아버지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내 손안에서 천천히 빛이 붐어져 나왔다. 점점 강렬해지는 빛에 휩싸여 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곳은 내 방이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로 가득 찬 방안은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몸을 일으키자, 옆에 서 있던 어머니는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을 손에 쥐자 마치, 오래전에도 겪어본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반혼등'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듯 작게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