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무기체계/해군

 



1. 개요
3.1. 3단 갑판
3.2. 폐쇄식 2층 격납고
3.2.1. 채택이유
3.3. 초소형 함교
3.4. 하향식 연돌
3.6. 미미한 개선
3.7. 항공모함 운용의 문제
3.7.1. 전과
3.8. 특수 항공모함
3.8.1. 성능
3.8.2. 개조 원인
3.8.3. 전과
4.1. 마스트의 높이
4.2. 화력
4.3. 방어력
4.4. 속도
4.5. 전술교리 문제
4.6. 실전에서의 전과
5.1. 역할 설계 실패
5.2. 실전에서의 전과
8.1. 잠항능력의 부재
8.2. 정숙성
8.3. 어뢰 탑재 수량 부족
8.4. 공격 목표를 잘못 지정
8.5. 과도한 목적의 잠수함
8.6. 승조원 배려의 부족
9.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 해군은 여러가지로 육군보다 활약을 하고 개념은 있었다. 일본 육군은 제2차 세계 대전 내내 주요 교전국 중 최하위 수준이었던 반면, 해군은 이래 봬도 평상시에는 3위, 전성기에는 1위를 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기술력만 놓고 볼 경우 산소어뢰를 제외한 기술에 있어서 일본 해군이 자랑한다는 항공모함이나 전함 역시 미국에 비교해 확실한 열세를 보였다. 그나마 산소어뢰는 태평양 전쟁 중반까지는 제법 활약했지만 나중에 가면 제공권이 완전히 미국에게 넘어가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된다. 개전 이전엔 전력이 미국 영국에 밀리고 돈도 훨씬 적어서 일반적인 함종 외의 것으로 승부하려는 경향과, 전쟁 말의 상황이 막장이 되어 제대로 개장을 못하는 등의 이유로 타국에 없는 중뇌장순양함, 항공전함, 항공순양함, 잠수항모와 같은 특이한 함종을 많이 개발한 편이다.
다만 상대가 그 미국이라 그런 것이지 사실 일본 해군은 그래도 다른 추축국이나 프랑스 등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고 볼 수 있다. 건조기술 노하우나 이런 것은 독일에도 전수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항공기 기술력이나 철강 등 보다 기초적인 영역은 어느 정도 열세다. 특히 미국의 우수한 전함들한테 밀리는건 물론이고, 프랑스 또한 수십년동안 전함을 안만들다가 됭케르크급 전함을 만든 다음 만든게 리슐리외급인걸 생각하면 사실 일본의 건조기술이나 건조사상도 상위급으로 쳐주기 어렵다. 애초에 독일에게 건조 기술 전수해준 건 일본이 배를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독일 함선 건조의 맥이 끊겨서다.''' 그전에는 독일이 일본보다 배를 더 잘 만들었으며 미국과 영국이 아니고서는 독일이 나머지 국가에 대해서는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1]
실제로 그 리슐리외급 정도 되는 전함은 미국[2]이나 영국[3]이라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며, 이는 일본 해군에게도 마찬가지다. 대략 나가토급이나 사우스다코타급 이상이면 싸움이 된다고 하고.
그리고 파고다형 함교가 흔히들 레이더와 비교해 까이는데, 세계 5위 해군인 이탈리아는 그나마도 못했다. 더 크게 2차대전 당시의 해전사를 볼 때, 프랑스 해군은 빠른 항복으로 제대로 활약을 못했고, 이탈리아는 대체로 영국에게 압도당하기만 했다. 반면, 일본은 그래도 43년까지는 그럭저럭 설쳐댔다. 그 영국도 본토 일이 바쁘고 거리가 멀어서 일본을 크게 제지하지 못한 점을 본다면,[4] 그나마 해군 정도는 상대가 안 좋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저찌 되었건 해군 기준으로는 영미 다음 일본 다음 프랑스 이탈리아 수순. 일본 해군의 병크는 무기체계도 무기체계지만, 전략, 행정, 교육, 인사 등 관리 및 운영 시스템에서 두드러진다.

2. 일본 해군 항공대


각 문서 및 일본 해군 항공대 문서 참조바람.

3. 항공모함


항공모함은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당히 빠른 시대에 항공모함을 도입했다는 점, 그 배경이 어떻든 간에 타국은 연구조차 미미하던 항공모함 전술을 연구하고 성공적으로 시행했다는 점이 그러하다. 사실 항공모함 전술은 원래 영국이 선구자였고 진주만 공습은 이를 참고하여 계획된 것이긴 하지만, 일단 다른 나라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도 능력은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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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항공모함의 예시와, 아카기의 측면단면도

3.1. 3단 갑판


사실 일본은 당대 다른 열강들과 비교해서 항공모함에 딱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 해군의 수뇌부 역시 타국과 마찬가지로 함대결전사상이 뿌리깊게 박혀있었기 때문. 이런 일본이 해군력 증강의 방향을 항공모함으로 선회하게 한 계기는 바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었다. 이 해군조약에서 일본해군의 88함대 계획[5]이 파토났고, 수많은 일본의 거함거포주의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여튼 조약을 어길 수는 없었으니 기존의 건조중인 순양전함/전함을 설계 변경하여 아카기/카가을 건조하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기존에 실험 목적으로 운용중이었던 유일한 항공모함 호쇼는 둘째치더라도 자기네들끼리 컨셉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몰라서 난관에 부딪혔다. 결국 영국해군의 커레이저스급 항공모함을 그대로 베껴서 3층의 항공갑판을 가진 항공모함이 탄생했으나 결론적으로 실패라는 것이 드러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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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전 3단갑판의 아카기와 카가
동시에 3대를 날릴 수 있다는 것은 좋았으나 착함할 때에는 상부 1층갑판만 쓸 수 있었고, 격납고가 없어서 항공기 운영에 큰 차질을 빚었다. 항공기용 엘리베이터도 1, 2, 3층이 모두 공용하다보니 효율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결국 이렇게 삽질을 저지른 결과 일본도 이건 글러먹었다고 판단하고 3단 갑판을 포기했다. 결국 미국의 렉싱턴급 항공모함의 구조를 차용하여 아카기와 카가를 쓸 만하게 개장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3.2. 폐쇄식 2층 격납고


미군의 항모가 개방식 1층 격납고가 있었던 반면, 일본군의 항모는 폐쇄식 2층 격납고를 가지고 있었다.
개장된 아카기와 카가는 2층 격납고를 보유하여, 표면적으로는 수용 면적이 넓어져 많은 양의 항공기를 보유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함재기들의 내구성이 연약한데다가[6] 항속거리 확보를 위해서 날개 안까지 연료탱크를 무식한 방법으로 넣어놨기 때문이다.[7] 덕분에 항공기 자체가 격납고 용적을 많이 차지해버렸고, 격납고 높이가 낮아서 가면 갈수록 대형화되는 함재기를 수용하기가 힘들어졌으며 무게중심이 올라가버려 '''항행성능과 밸런스가 개판이 되고 데미지 컨트롤 능력이 심각하게 뒤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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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기의 격납고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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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카쿠의 격납고 단면도
A6M이 날개가 안 접혀서. 일본 항공모함 설계의 정수인 쇼카쿠급 항공모함에서도 저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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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넷(에식스급 CV-12)의 개방식 격납고와 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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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식스의 단면도 (5번이 개방식 격납고와 셔터)
미해군 항공모함 설계의 뛰어난 점은 무기를 장착하는 격납고나 정비고를 개방형으로 만들어 유사시 폭발물이나 항공기를 바다에 투척해 연쇄폭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숙련된 선원들의 데미지 컨트롤까지 겹쳐져서 요크타운 같은 좀비항모(?)나 엔터프라이즈같은 불침항모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면에서 일본군은 엄청나게 뒤떨어진 상태였다. 예를 들면 미 해군은 전 함선 승무원들이 피해 응급복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으나 일본해군은 복구반으로 배정된 승무원만 훈련이 된 상태였다 . 따라서 함선에 사고가 발생하면 대응 수위에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소화시설만 보아도 유류화재에 대비한 이산화탄소나 소화액을 이용한 소화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은 미 일 해군이 모두 같았으나 일본해군에는 이 시스템이 소진되거나 파손될 경우 백업 시스템이 부족했다[8]. 쇼카쿠급이나 다이호급에서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결국 침몰을 막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만든 정규항공모함이자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의 함체를 유용해서 나온 시나노는 실전 투입은커녕 완공도 안된 상태에서 침몰되었으니 피해 응급복구 능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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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항공모함인 즈이카쿠의 단면도[9]
설상가상으로 일본군 항공모함은 격납고 벽에 불이 붙어서 파손되면 응급 복구는 물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당시 일본군 항공모함은 함재기용 연료탱크를 함체에 붙여놨기 때문에, 함체가 충격을 받을 때 같이 충격을 받아 연료가 유출이 될 확률이 컸고, 이 질질 샌 기름에 불이 붙는 경우가 많았다. 덤으로 함선 자체를 움직이는 연료도 나중에 가면, 정유시설 부족과 함께 본토의 정유시설과 점령지의 유정을 연결하는 해상 수송로에 대타격을 입으면서, 함선은 저질중유로도 일단 돌아간다는 점에 착안해서 타라칸[10] 정유같이 원유에 가까운 물건을 썼기 때문에 함선 연료배관이 파손되더라도 일반적인 중유를 사용하는 연합군의 함선과는 달리 함선 연료배관에서도 휘발성 발화가스가 누출된다. 여기에 폐쇄식 격납고를 채용하면서 환기장치를 적게 설치하는 바람에 격납고에서 나오는 발화가스가 제대로 외부로 배출되지 못했고, 여기에 앞서 말한 승무원[11]의 실수까지 겹치면 시밤쾅!!! 다이호가 이런 식으로 폭침했다.[12]
거기다 일본 항공모함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2층 폐쇄식 격납고는 피격시에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다. 갑판에 있으라는 갑판장갑은 없는데다가[13], 층수가 2층이니 입는 피해는 2배이며, 폭탄이 격납고에서 폭발할 경우 그 폭압과 파편 피해는 폐쇄식 설계 때문에 고스란히 데미지를 100% 받아버리며, 설령 화재진압을 한다 하더라도 불 붙은 항공기나 기자재, 탄약, 항공유 등을 버릴 수가 없어 화재는 미칠듯이 번져나갔다. 또한 운 더럽게 엘리베이터가 고장날 경우 [14], 각종 기자재를 못 치워서 일어날 카오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5]

3.2.1. 채택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이 이런 단점들을 가진 폐쇄식 격납고를 고집한데는 이유가 있는데, 폐쇄식 격납고는 대양항해시 안전하다는 점과 격한 파도에도 내부의 함재기들을 잘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내구성이 약하고 염분에 약한 마그네슘 부품[16]이 곳곳에 사용된 제로센[17]에게 파도가 높고 강한 일본 근해에서 개방형 격납고를 사용하는 항공모함에 탑재된다는 것은 내구도가 대폭 깎이는 일이다.
염분이 쌓여봤자 얼마나 쌓이는가 궁금할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다. 물론 하얀 거품은 세제.''' 그야말로 소금에 절여지다시피 하니 내구성이 약한 A6M 같은 전투기가 주를 이루던 일본군은 폐쇄식 격납고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똑같이 폐쇄식 격납고를 항공모함에 채택한 영국 역시 주무대이자 홈그라운드인 북대서양은 파도도 험하고 바람도 많이 부는 곳이기에 폐쇄식 격납고형 항공모함을 운용했었고, 만일 영국이 개방형 격납고를 택했다면 함재기 관리부터 관리요원들의 작업환경 등의 문제로 한 고생 했을 것이다. 실전에서도 개방형 격납고를 채택한 미군 소속의 주력 항공모함들 대부분은 태평양 위주로 운용되었다. 유보트독일 수상함들을 잡기 위해 대서양에서 운용되던 레인저 정도가 예외.[18] 일본군도 폐쇄식 격납고가 갖는 약점에 대해선 인지를 전혀 안 한것은 아닌지, 쇼카쿠급의 격벽은 폭발이 일어났을 때 뚫리라고 일부러 얇게 설계되어 있었고 이는 효과를 봐서 쇼카쿠는 매 해전마다 얻어맞으면서도 44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운류급에서는 이전보다 격납고의 환기 기능을 대폭 개선시켰었고 시나노에 이르러선 개방형 격납고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문제라면 이미 미국이 34년에 완전 개방형 격납고를 채택한 레인저를 취역시켰는데, 일본군은 쇼카쿠가 41년에야 취역했다는 것....
2층 격납고도 마찬가지로 단점이 많으나 한가지 아주 명확한 장점이 있는데, '''탑재량이 뻥튀기 된다는 것이다.''' 단층 격납고에 비해 복층 격납고는 당연히 탑재량이 많을 수밖에 없고 실제로 동시기 타국의 주력 항공모함들과 비교했을 때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의 경우는 기준 배수량 23,000t으로 일본군의 쇼카쿠급 항공모함보다 3,000t 정도 적을 뿐이지만 탑재량은 개량을 가한 후기형 기준으로도 55기 대 72기로 훨씬 적고 쇼카쿠급의 경우 저기에다가 12기의 보충기까지 추가로 운용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는 격납고를 1층으로 만드는 대신 천장에 함재기를 메다는 식으로 2층 격납고와 유사하게 탑재량을 뻥튀기 했으나 이 방식은 복층 격납고보다 함재기의 관리가 까다로워지는 단점이 있으며, 항모가 어뢰에 피격당하는 등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천장에 있던 함재기가 떨어지며 대형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고 실제로 와스프급 항공모함 와스프는 피격당할 때의 충격으로 함재기들이 바닥으로 추락하며 피해가 번져 침몰하고 말았다. 게다가 단층격납고의 약점인 탑재량이 적다는 점은 어쩔 수가 없어서 날개를 전혀 접지 못하는 F4F-3을 운용하던 당시에는 렉싱턴급 항공모함에 함재기가 66기가 들어갔다. 이후 날개를 컴팩트하게 접는 F4F-4가 탑재되면서 그제야 탑재량은 80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미군 항모의 미친듯한 탑재량은 항모 구조보다는 모든 종류의 함재기가 날개가 접힌다는 강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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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리어스의 단면도
하지만 이 두 조합은 서로 안좋은 시너지를 일으켜 데미지 컨트롤 능력을 굉장히 악화시켰는데, 위의 단면도에서 나타나듯이 영국 항공모함은 탑재량을 희생해서까지 최소 3인치의 갑판장갑을 두르고 있었으며 폐쇄식 격납고의 단점을 메꾸기 위해 데미지 컨트롤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 일단 데미지 컨트롤이 몇 배나 더 힘든 폐쇄식 항공모함을 운영하려면 함선 자체의 구조와 시설도 충실해야 하며, 함내에 숙달된 정비인원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일본군은 함선의 정비, 유지에 신경을 안썼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파도가 거센 일본의 근해에서 운용하기 좋게 디자인해놓고 보니 정작 일본군 해군의 주 무대가 파도가 잔잔한 중~남태평양이었다는 것. 최적화된 디자인을 한 지역과 다른 곳에서 사용하다보니 발생한 추가적인 문제. 즉, 폐쇄식 격납고와 2층 격납고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대미지 컨트롤 능력을 확보하는 걸 등한시한 결과 폐쇄식 2층 격납고[19]의 단점이 극대화되었다고 보면 된다.[20]

3.3. 초소형 함교


앞에서 언급된 무게중심 문제로 내내 소형 함교만 설치하거나 아예 '''함교가 없는 항공모함'''도 있었다.항공기 운영과 조타, 데미지 컨트롤 및 각종 명령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함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소형 함교에서는 좋은 대책도, 능동적인 대처도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함교가 없으면 항공모함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에 대한 지시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일단 공간부터 좁아서 장교들이 모여서 회의하기에도 불편하며, 간단히 휴식을 할 수 있는 편의시설조차 없어서 제독이나 고급 장교가 비상시에 함교에 장기간 체류하면 쉽게 피로해진다. 물론 비전투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독과 고급장교에게 각자 편히 쉴 수 있는 개인공간과 복지시설이 갖추어진 것은 모든 국가의 함선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사항이지만, 당시의 일본의 함선은 일부의 경우[21]를 제외하고는 제독과 고급장교의 개인실이 함교에서 좀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작전지시와 조함이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없기 때문에 작전이 없어도 조함이나 항해관계 보고로 번잡스러운 함교 안에서 작전을 짜고 지시하는 지휘관의 집중도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즉 비상시에 피로를 못 이기고 자기 방에 돌아갔다가 큰일이 터지면 함교로 복귀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함교에 편의시설을 만들어놓아서 비상상황에서도 제독과 고급장교가 잠깐 휴식을 취하다가 일이 터지면 1-2초안에 현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작전지시 등을 위해 관련자료가 필요할 때 이를 준비하는 준비실도 없다시피하므로 회의시간이 길어지는 등 평시의 부작용도 상당했다.
이렇게 평상시에도 불편을 초래하는데, 비상시는 더 심각한 상황이 펼쳐진다. 심지어 항공모함이 피격을 당했을 때에도 무선으로 어딘가가 피격당했다, 화재, 침수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피해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웠고 아예 일부 구획은 시야로 피해상황을 확인조차 못 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격침당한 대표적인 항공모함이 다이호.
게다가 워낙 함교가 작으니 장갑은 커녕 파편을 막을 최소한의 방어능력도 매우 부족하므로 함교에 직격탄을 맞는 경우는 물론, 지근탄이나 근처에서 폭발로 인한 파편이 날아와도 함장 이하 주요 고급장교가 한꺼번에 몰살당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혼란의 도가니탕이 된 함선에서 명령권자가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혼란은 충분히 화재를 진압하고 다시 전투능력을 회복할 수준의 피해만 입은 항공모함도 화재나 침수를 적시에 막아내지 못해서 침몰당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된다[22].
물론 함교가 작으면 난기류가 덜 생기는 장점은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함교로서의 기능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작게 만들어야지, 기능에 지장을 줄 정도로 작게 만든 것은 문제임에 틀림없다.
소형 함교의 사이즈는 다음 사진과 같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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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기의 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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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의 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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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의 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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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카쿠급 항공모함즈이카쿠의 함교
쇼카쿠급은 2만톤급 중형 항모이고 소류는 그보다 작은 경항모니까 넘어간다 치더라도(이마저도 문제지만), 아카기와 카가는 각각 '''배수량 4만톤/3만 8천톤급 대형함'''인데도 연합군 항공모함에 비해선 함교가 심각하게 작다는걸 알수있다.
그나마 이건 나은 경우로, 호쇼와 류조, 타이요, 쇼호와 같은 일부 항모의 경우에는 '''함교 자체가 없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항공모함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본 호쇼는, 전쟁 중에는 연습항모로 쓰인 탓에 실제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으므로 그나마 함교가 없다는 핸디캡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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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쇼의 함교
이거야 뭐 연습용이니 그렇다 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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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조의 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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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요의 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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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호의 함교
류조의 경우에는 엄연하게 항공모함으로 전투에 투입되었지만 제대로 생겨먹은 함교 같은 건 없고, 항공갑판 밑의 창문(!?)들이 함교라고 한다. 이렇게 함교를 설치하면 항공기 통제는 물론 항해지시에도 심각한 지장을 가져오므로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그나마 류조는 좀 나은 경우로, 타이요와 쇼호는 아예 항공갑판이 함교를 가리고 있다. 애초에 선폭이 고작 20미터 남짓한 이들 경함모들은 함재기가 지나다니기도 벅찬 마당에 갑판 위에 함교를 세워놓을 자리 따위 어디에도 없었다.[24]
그리고 소규모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함교에서의 항공기 운영은 대응능력이나 편대 구성시간, 전술 면에서 일본 항모가 미국 항공모함에게 뒤떨어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비단 함재기 운영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항해 지시면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이 문제는 전략, 전술적 차질을 빚어서 태평양 전쟁 내내 미 해군에게 각개격파를 당하거나 일격을 맞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위의 2층 격납고와 소규모 함교 두 가지 문제점은 결국 안 좋은 방향으로 시너지를 일으켜 '''비능률적인 함재기 운영능력'''과 '''최악의 데미지 컨트롤 능력'''이라는 결과물로 다가왔다.
이와 비교해서 미국 항모들의 아일랜드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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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항모들에 비해 월등히 큰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군 지휘관들의 작전환경은 일본군 지휘관들보다 훨씬 쾌적했으며, 나구모 주이치처럼 중요한 순간에 불편한 여건 때문에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대전 후기로 넘어가면 미군 제독들은 항모나 전함만큼 중순양함을 기함으로 삼아 탑승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포틀랜드급 중순양함처럼 아예 기함 임무를 맡도록 설계된 함선들은 함교 인근에 작전실 등 지휘를 위한 공간이 따로 주어졌다. 이러한 편의성을 위한 설계는 일본의 함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항모라고 다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나 더, 항공모함의 함교와 전함의 함교는 사실상 동일하거나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인데, 전함의 마스트는 마천루(...)처럼 높이 쌓아올리면서 항공모함의 함교는 축소지향(...)이거나 아예 없는 걸 보면 일본 해군의 함선 설계사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물론 이건 설계사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기술의 부족이 원인인데 3연장화[26]를 못시키지만 포문을 늘려야하니 주포탑을 6기씩 올렸고 그 결과 함교에 이것저것 올리다보니 저런 괴상한 형태가 나온 것이다. 주포탑보다 더 큰 문제는 없느니만 못한 레이더였지만... 물론 이건 회로가 간단하면서 겹겹이 쌓아올리는 다이폴 안테나가 원인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 문서의 상위 문서인 일본군/무기체계 문서에 있는 레이더 항목을 참고하자.

3.4. 하향식 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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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기와 즈이카쿠의 하향식 연돌
초창기 일본 항공모함들의 공통적 문제인, 측면에 부착되어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돌 역시 문제가 되었다. 연돌에서 나오는 뜨거운 매연이 난기류를 일으켜 항공기의 착함을 방해했는데, 일본 해군 기술진들은 '''연돌을 아래로 향해서 뜨거운 공기가 바닷물에 식으면 난기류가 해결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래로 향한 연돌로 인해 연돌 주위의 선실은 미친듯이 온도가 올라갔고 연돌에서 빠져나온 열기는 식기는 커녕 여전히 뜨거워서 심지어 '''항공갑판 바로 위에서 난기류가 형성'''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착함도중에 난기류로 수시로 기체들은 전복되거나 착함방향이 틀어져버려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게다가 아카기를 설계한 바보는 연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날아오는 구역의 선실을 거주구역으로 정했고, 선원들은 연기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고생해야 했으며 덤으로 배에는 각종 질병까지 유행했다.[27] 그래서 아카기의 별명은 '''살인주택 아카기'''였고, 카가의 별명은 '''바다 독수리 꼬치구이 제조기'''였다.
이 문제는 항공모함 류조를 건조하고서도 개선은 커녕 오히려 너무 비대하게 큰 격납고 때문에 최악의 능파성과 수밀성, 데미지 컨트롤이라는 삽질만 저질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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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호의 연돌 [28]
준요, 히요의 상향 대각선 연돌
위에 서술된 문제들은 소류급을 건조하면서 슬슬 개선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궁극적 설계의 완성은 히류급에서 이루어졌다. 일단 소류급 전의 일본 항공모함들은 일반적인 선체 위에 복층식 격납고를 그대로 올려두는 설계를 가지고 있으나 소류 이후의 설계는 함체 내에 하층 격납고를 설치하고 그 위에 상층 격납고를 설치해 무게중심을 낮춘 설계였다. 연돌도 히요급부터는 종래의 하향이 아닌, 상향 대각선으로 수정된다.

3.5. 캐터펄트 부재


일본군 항공모함은 캐터펄트가 없고, 함재기가 자력으로 이함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므로 함재기의 대형화에 한계가 있었다. 오요도센토쿠급에 쓰인 공기식 캐터펄트, 전함이나 순양함 등에 쓰인 화약식 캐터펄트 등이 있었지만 결함투성이인데다가 구조상 소형 함재기만 발진이 가능하거나 출격시마다 레일등의 중요 부품을 교환해야 하는 등의 단점이 있어서 항상 무거운 함재기를 대량으로 날려야 하는 항공모함에는 채용될 수 없었다. 일본도 캐터펄트를 개발하려고 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함대형 항공모함에서는 이게 큰 문제가 되는건 아니었는데 대전 당시만 해도 기본적인 함재기의 이함은 자력으로 이함하는 방식이었다. 함대형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는 경우라면 대전 말에 투입된 미 해군의 대형 함재기들도 캐터펄트 없이 얼마든지 이함이 가능했다. 어지간한 육상 단발전투기보다 무거운 F4U의 경우 25노트의 바람을 맞을 경우 66m의 이함거리를 가지고 F6F도 같은 조건에서 73m면 충분히 이함이 가능했으며 항공모함들이 30노트 내외의(빠른놈들은 34노트까지도 찍기도 한다.) 최고속력을 가지므로 25노트라는 조건을 달성하는데 어려움은 없다.[29] 이런 캐터펄트가 필수적인 장비가 된것은 함재기의 제트기화 이후의 이야기이다. 물론 저 당시 기준으로도 일단 있으면 없는것 보다는 도움이 되는건 사실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히요처럼 상선을 개조해서 만든 항공모함들은 속력이 느리다보니 함대형 항공모함처럼 함재기에게 충분한 바람을 맞게하는게 불가능했다. 함재기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크고 무거워지는데 일본군의 경우 이런 무거운(그래서 고성능인) 함재기를 운용할 수 있는 항공모함이 그만큼 제한된다는 이야기이다. 반면에 미국의 호위항공모함들은 캐터펄트가 있으므로 어떻게든 함재기를 띄울 수 있었다. 그나마 히요는 나은 편으로, 다이요 같은 소형 항공모함은 느린 속도에 짧은 갑판 탓에 제대로 된 항공기를 운용하는 게 아예 불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드웨이 해전 이후 일본군의 함대형 항공모함은 쇼카쿠와 즈이카쿠 2척밖에 안 남았다는 거다. 이들을 도와줄 항공모함은 준요처럼 속도는 느려도 덩치가 크거나, 덩치는 작아도 속도가 빠른 류조, 즈이호 정도였지만 이들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히요, 류호는 수리중이라 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캐터펄트가 없어서 비행기를 운용하는 게 불가능한 소형 항공모함들이었으니 망했어요. 일본군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이호 같은 함대형 항공모함들을 필사적으로 건조하고, 치토세 같은 30노트급 경항공모함도 마련했지만 첫 출전이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었으니 일본군 망했어요.

3.6. 미미한 개선


일본군도 설계 수정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했지만, 중량배분 문제와 노천계지 문제는 늘 일본 항공모함을 괴롭혔다. 안습. 또한 설계의 정점은 쇼카쿠급에서 이루어졌지만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이미 위의 뻘짓을 전간기에 레인저 1척으로 실험해본 다음, 바로 희대의 명작[30] 항공모함인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을 건조해냄으로써 여전히 설계사상 및 스펙 등은 미국 항공모함을 뛰어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요크타운급 이후에 등장하게 되는 항공모함은 '''2차대전기 최강의 항공모함이라 불리던 에식스급 항공모함.. 망했어요.'''
대공포의 문제점은 이 문서의 상위 문서인 일본군/무기체계 문서에 있는 거지 같은 대공포(...) 항목을 참조하자.(...)
그래도 쇼카쿠급에서 진보한 정규 항공모함 결정체인 다이호가 나오긴 했으나, 일본군에서만 결정체였던 터였고 게다가 타국항모에 비해 문제점이 많았으며 무엇보다 너무 허무하게 날아갔다.
바다 건너 라이벌을 뛰어넘지 못했고 그 라이벌들이 소속된 바다 건너의 미국이 재미없게 나오는 것도 암울한데 '''데미지 컨트롤 문제는 끝끝내 해결하지 못하였다.[31]''' 이뭐병... 물론 건조수량에 비해서 미국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고,[32] 결국 상선이나 각종 잡배들을 항모로 개조시키면서[33] 항공모함 보유수를 늘리려고 했지만 상대인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잘 생각해보자... 구체적인 예로는 전쟁 중에 100척 넘게 건조한 호위항공모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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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얻어터지는 일본군 항모들 관련 그림들
[image] 출처 : http://ww2db.com/image.php?image_id=5049
1946년, 구레 군항에서 폐함처리되는 아마기
전쟁 중 누적된 데미지 때문에 일찍 퇴역하였음에도[34] 영국 항공모함은 현대 항공모함의 기본적 특징인 항공갑판의 장갑화와 전쟁 이후에 쓰일 경사갑판, 증기 캐터펄트, 착함 시스템 등 현대 항공모함의 기초를 닦았다. 미국 항공모함은 이를 계승/발전시켜 현대 항공모함 그 자체로 남게 되는 등, 해전사에 큰 의미를 남겼다. 전술적인 면에서도 영국 항공모함은 타란토 공습을 통해 항공모함의 유용성을 보여줬고 미국 항공모함은 항공모함이 전함의 뒤를 잇는 새로운 주력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일본 항공모함은 전장에서 어느정도 활약은 했지만 미국의 항공모함을 따라잡지 못했고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그나마 이들이 전쟁사에 남긴 족적은 영국군의 타란토 공습을 발전시켜 진주만 공습으로 항공모함을 전함의 들러리가 아닌 '''해군의 당당한 전략병기'''로 만들어줬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이는 영국의 작전의(타란토 공습) 영향을 받았지만 항공모함의 집중운용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베꼈다고 폄하할 일은 아니다.[35] 그러나 초기에는 보여준 선진적인 면은 초반 이후 미국이 빠르게 패러다임을 전환하면서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밀리게 된다.

3.7. 항공모함 운용의 문제


일본군의 항공모함은 실전에선 나름대로 활약한 편이다. 진주만 공습을 훌륭하게 성공시켜 미국의 주력 함대를 문자 그대로 개박살내놓아 미국이 복구에 전념하던 6개월 동안 태평양과 인도양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기에, 일본군은 잠시나마 무적황군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물론 진주만 공습도 정치적, 전략적으로는 완전한 실패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던 미국이 '''아주 제대로 빡쳐서[36]'''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의 유명한 '''치욕의 날 연설'''과 함께 연합군 측에서 대일선전포고를 했고[37] 공습으로 주력함들의 상당수를 이탈시켰지만 전함만 몇 척 건드렸을 뿐, 유류저장고라든지 잠수함 기지, 함선 수리용 드라이독 같은 시설을 위시한 전쟁수행 역량 자체는 건드리지도 못한데다가[38][39] 저렇게 격침시킨 전함들은 2척을 제외하면 인양된후 수리받아서 복귀했다.
그 이후, 산호해 해전에서부터 운용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를 호위하기 위해 경항공모함 쇼호를 파견했는데, 쇼카쿠즈이카쿠로 구성된 주력부대가 유조선 한 척을 공습하러 간 사이에 미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침몰해버린 것. 경항공모함은 혼자서 제공권을 장악하기 힘들기에 정규항모와의 연계를 잘해야 했는데, 손발이 안 맞아서 '''쇼호를 내다버린 꼴이 되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삽질은 반복된다. 사실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군 연합함대는 야마토를 위시한 전함도 투입할 예정이었고 전함 부대는 '''11척이나 되는 대 부대(!)'''가 제1, 제2 항공함대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40] 그러나 전함 부대를 앞서 간 항공 함대 역시, 함재기 다수를 잃기는 했어도 배 자체는 멀쩡했던 즈이카쿠를, 항공대를 보충한다며 일본으로 후퇴시킨 것이다. 이렇게 삽질을 한 이유 역시 일본군의 병맛나는 사상이 원인으로 당시 일본군에서는 항공모함 항공대와 항공모함을 세트로 묶어서 봤기 때문에 항공모함 항공대가 배를 옮겨다니며 작전한다는 개념도 없었다. 같은 시각 미국이 대파된 요크타운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밤을 새서 수리하고[41], 다른 데서 항공대를 끌고 와서 보충한 것과는 천지차이. 게다가 AL작전을 실행한다며 류조준요를 알류산 열도로 보내버렸고, 이는 나구모 함대가 항공모함 4척만으로 미드웨이로 진격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42] 이후 나구모 함대는 항공모함 4척을 모두 잃는 참패를 당했고, 미국은 가장 취약했던 시기를 넘기고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과달카날 전투에서는 항공모함 세력이 모자란다면서 '''류조를 미끼로 내다 버리고''', 산타크루즈 해전으로 함재기를 대거 상실한 즈이카쿠의 항공대를 보충한다며 일본으로 또 돌려보낸다! 결국 과달카날에 남겨진 건 준요 한 척이었고, 그나마도 함재기를 제대로 보충해주지 않아서 제대로 된 활약을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일본군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싸운 엔터프라이즈에게 패배했고, 결국 과달카날에서 철수해야 했다.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경항모를 대놓고 몸빵으로 내세웠다. 당시 일 해군을 지휘했던 오자와 지사부로의 생각은 미 해군이 자신이 지휘하는 본대를 떄리고자 한다면 경항모로 구성된 함대의 상공을 통과해야하므로 상당한 피해를 강요할 수 있고 미끼를 문다면 역시 본대는 안전하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니까 경항모는 버리더라도(...) 함대형 항공모함은 공격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미군에게 큰 타격을 강요하게 된다는 계산이었으며, 그동안 후방에 있는 다이호, 쇼카쿠, 즈이카쿠, 히요, 준요, 류호의 함재기들이 미군을 유린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잠수함으로 선제공격을 걸어왔고, 함대가 분산된 탓에 대잠능력도 떨어진 일본군은 핵심전력인 다이호쇼카쿠를 잃는다. 이후 미군은 대대적인 칠면조 사냥을 감행, 히요를 침몰시키고 수백 대의 일본기를 떨어뜨렸으며 괌을 초토화시켰다. 이외에도 즈이카쿠와 준요, 전함 하루나가 큰 피해를 입었고, 경항모 치요다와 중순양함 마야도 폭탄을 맞았다. 분대와 본대 모두 미군에게 털렸으니 대실패.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결국 '''정규항모까지 미끼로 써버렸다.''' 물론 항공모함만 버린게 아니라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도 고기방패로 써버렸다.''' 항공대가 괴멸되어 빈 깡통이 된 항공모함들을 미끼로 사용해서 미국 함대를 꾀어낸 것이다. 미끼 작전 자체는 성공했지만 항공모함 즈이카쿠, 치토세, 치요다, 즈이호는 모조리 격침되었고, 이걸로 일본 항모전단은 사실상 괴멸된다. 항공대의 재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항모를 미끼로 사용한 거지만, '''구리다 턴'''으로 구리다 함대가 철수하면서 미군 상륙부대의 격멸에 실패했고 일본군은 '''귀중한 항모 4척+ 야마토급 전함 1척을 내다 버린 꼴이 되었다.'''
개장되기 전에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이었다가 개장 후 항공모함으로 함종이 바뀐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 시나노는 2차 대전 최대의 경험치 셔틀만 되었다. 시나노는 설계상으로는 위에서 언급된 기존 일본 항모의 문제점 대다수가 개선된[43] 이론상 일본 최강의 항모이자 2차대전기 최대의 군함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귀중한 항공모함이 마무리 공사를 위해 구레로 이동할 때 구축함 3척만 달랑 붙여주는 삽질을 저질렀고, 비행기의 엄호를 받지 못한 시나노는 공습을 피하기 위해 밤에 이동했지만 '''보일러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서''' 속도도 설계의 60%정도밖에 못내다가 울프팩도 아닌 '''레이더가 고장나서 그냥 떠 있던 단 한 척의''' 잠수함[44]에게 따라잡혀서 어뢰 4발을 맞고 도망친답시고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고 대미지 컨트롤도 제대로 못하다가 부실공사로 제 기능도 못하는 격벽이 무너져서 물이 쏟아져 들어와서 침몰했다. 시나노에 실려있던 '''카미카제용 미사일(?!)'''이 구명도구 역할을 해서 승조원들을 조금이나마 살려줬다는 게 그나마 다행. 일본의 막장 상황을 엄청나게 잘 보여주는 사례다.[45]

3.7.1. 전과


문서 작성중

3.8. 특수 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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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급 항공전함
일본군은 특이한 항공모함을 여러 척 건조했다. '''항공전함''', '''항공순양함''', 그리고 '''잠수 항모'''가 그것들이다. 이런 배들이 탑재하는 함재기에 대해서는 위에 있는 'XXX 전용기' 항목을 참조하자.
그러나 성능은 일본군의 무기답게 문제가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항공전함이 전쟁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건 만화니까 가능한거고,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전함으로서의 능력도 뒤떨어지고 항공모함으로서의 능력도 뒤떨어졌으니,[46]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3.8.1. 성능


항공전함과 항공순양함, 잠수항모 등은 항공모함과 다른 배의 기능을 합친 것이므로 항공모함으로서의 기능이 심하게 제약을 받는다. 항공전함만 봐도 절반은 전함이고 나머지 절반은 항공모함이니 공간이 그만큼 모자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공모함에 쓰이는 일반적인 함재기를 탑재하면 이함은 가능해도 착함은 불가능했다. 갑판이 좁아서 착함을 위한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수상기를 싣는다면 바다에 착수시켜서 회수할 수 있지만, 역시 회수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리는데다가 그 수상기의 생산이 늦어져서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탑재량도 문제가 되었다. 잠수항모의 함재기 탑재량은 3대밖에 안 되며, 가장 거대한 이세급 항공전함도 22대가 한계였다. 치토세급 경항공모함의 함재기가 30대이고, 그쪽은 그나마 정상적인 함재기를 탑재하므로 경항공모함보다도 열세인 셈이다.
문제점을 더 보고 싶으면 항공전함잠수 항모 항목 참조.

3.8.2. 개조 원인


이런 어정쩡한 개조 항공모함들이 나온 이유는 전황이 나빠져 항공모함 댓수가 부족해 빵꾸난 전력을 메꾸려는 의도도 있었고, 항모가 아닌 다른 배가 정찰기 운용을 전담하게끔 하려는 목적도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공업력이 후달려서 항공모함의 대량건조가 불가능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47] 그것 때문에 일본 해군은 이상할 정도로 항공모함 급이 많은데... 기본적으로 만들어둔 항공모함들이란 것들이 뭔가가 어정쩡하거나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에(위의 일본 항공모함 항목 참조) 그걸 개량하느라(...) 삽질을 한 것도 있으며 애초에 후달리는 공업력 덕분에 상선이고 순양함이고 온갖 잡배들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한 것. 위의 항공전함이나 항공순양함도 위의 이유 때문에 탄생한 망작들.

3.8.3. 전과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
중순양함 시절에는 남방작전에 참가, 일본 육군의 강습상륙함 신슈마루와 육군 수송선 다수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자매함 미쿠마와 충돌해서 대파되었고, 항공순양함으로 개장된 후에는 함재기가 없어서 그냥 순양함으로 활동하다가 레이테 만 해전에서 중순양함 나치의 충각공격으로 대파되어 처분되었다. 전과? 그런 거 없다.
'''센토쿠급 잠수 항모'''
울리시 환초 공격을 위해 출격했으나, 공습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났다. 이후 미군에게 조사를 받고 침몰 처분되었다. 전과? 그런 거 없다.
'''오요도급 경순양함 오요도'''
함재기 자체도 문제가 있었거니와 전용 함재기의 생산댓수가 12대뿐이라 항공순양함으로는 별다른 활약상이 없다. 이후 대형 사출기를 제거하고 사령부 시설을 설치해서 연합함대 기함으로 개장되었으나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기함으로 쓰기엔 너무 좁다"는 이유로 예비 기함으로 참가했다. 이후에는 레호 작전에서 활약했으며, 최후에는 구레 군항 공습에서 미군의 공격으로 자빠져서 격침.
'''이세급 전함 이세, 휴가'''
레이테 만 해전에 미끼 역할로 참전했지만, 함재기가 없어서 그냥 전함으로 출격했다. 이세와 휴가는 살아남았지만 레이테 만 해전은 일본군의 참패로 끝났다. 이후에는 북호작전에 참가, 중형 화물선 1척 만큼의 물자를 일본에 실어오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는 구레 군항 공습으로 두 척 모두 격침되었으나, 일본에서는 전후생존함이라고 우기고 있다. 물론 우겨봤자 종전된지 한참이나 지난데다 어차피 일본의 주장대로 생존했다 쳐도 결국 고철로 스크랩 처리됐을테니 아이고 의미없다.
'''토네급 중순양함 토네, 치쿠마'''
일본군 항모전단의 눈 역할을 하는 수상정찰기의 운용 플랫폼으로서 전쟁기간 내내 활약했다. 그러나 포격전 능력은 별로 좋지 않았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정찰에 실패했으며 토네가 베허호 사건을 일으켜 민간인을 학살했고, 치쿠마가 함대 사령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기함의 머리 위로 포격을 가하는 등 막장 행각을 보여줬다. 이후 치쿠마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호위구축함에게 얻어터지는 등의 추태를 보이며 가라앉았고, 토네는 살아서 일본에 돌아왔지만 구레 군항 공습에서 미군에게 격침되었다. 일본에서는 토네가 전후생존함이라고 우기고 있으나,[48] 미군에선 격침으로 판정.

4. 전함


전함의 경우 영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라이온급 순양전함을 개량한 공고급 순양전함을 도입하는 것으로 인해 설계 사상은 '''일부''' 분야에서는 상당히 발전된 편이었다.

4.1. 마스트의 높이


일본군은 기본적으로 레이더의 성능이 떨어져서[49] 전투시 적함을 견시, 즉 정찰병의 육안으로 확인해야 했다. 일본식 표현으로는 견시원이라고 한다.[50] 이 문서의 상위 문서인 일본군/무기체계 문서의 레이더 항목에도 보면 나오지만, 태평양 전쟁 초반에 활약한 아카기, 카가 같은 항공모함들에도 레이더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배들은 견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으니 저고도, 중고도에서 기동하는 전투기들은 알 수 있지만 이들보다 고고도에서 기동하는 급강하 폭격기들은 감지할 방법도 없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대역전극인 '''운명의 5분'''을 알린 '''"敵機直上、急降下! (적기 바로 위, 급강하!)"'''도 항공모함 카가의 견시원이 고고도에서 급강하중인 엔터프라이즈 소속 급강하폭격기들을 발견하고 뒤늦게 외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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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소급 전함의 파고다 마스트와 2연장 주포탑 6기를 탑재한 모습
이러한 일본군 전함 특유의 높디높은 함상 구조물을 파고다 마스트(Pagoda Mast)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같은 함교라는 소리인데, 이게 좋은 소리는 결코 아니다. 특히 후소의 경우 이 파고다 마스트가 수면에서 40미터 넘게 올라가기도 할 정도니 말 다한 셈. 그런데 이런 현상이 항공모함에서는 정반대로 일어났다.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일본군이 레이더 기술이 뒤쳐진 것과 함께 함포의 3연장화 기술의 실용화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야마토급 전함 이전까지 일본군 전함은 2연장 주포탑을 채용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같은 화력(주포 수)을 얻기 위해서 3, 4연장 주포탑이면 3-4기로 충분할 것을 2연장 포탑을 쓰다보니 주포탑을 6기까지 탑재해야 했다. 결국 함선 전체에서 주포탑을 설치할 곳과, 주포의 사격 및 회전을 위해 비워놓아야 할 공간을 빼고 나면 '''다른 시설을 설치할 공간이 없었다'''. 결국 개량을 위해 뭔가 추가시설을 설치하자니 그나마 장착할 위치가 함교밖에 없어서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이다보니 마스트가 석탑같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런 높다란 마스트 때문에 무게중심이 너무 높아져 악천후시 배가 좌초할 가능성이 커지고, 함교가 포탄이나 폭탄 등에 피격당하면 함교의 시설이 전부 박살나서 손상 범위에 비해 피해규모가 커지는 등의 문제점이 산적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반영해 건조한 야마토급 전함에서는 드디어 자체적인 3연장 주포탑 제조 기술이 적용되었고, 그로 인해 9문의 주포를 가지면서도 주포탑을 3기만 탑재하게 되어 함체 배수량에 넉넉한 여유가 생겼고, 이로 인해 함교에 꼭 필요한 시설물 이외의 공간은 함체로 분산 배치하고 대공포를 다수 증설하며 기타 시설을 증강하는 등 혁신이 이루어졌다. 다만 고질적인 레이더 문제로 인해 파고다 마스트 문제는 여전했으며, 애초에 야마토급 전함들은 덩치부터가 이전까지의 일본군 함종을 막론하고 가장 컸기에 마스트의 높이는 상대적으로 낮아졌지만, 절대적인 높이로는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이런 야마토가 전장에 나섰을 때에는 이미 전함의 시대, 거함거포주의의 시대는 '''일본군 자신들의 손에 의해 끝이 도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장에 나선 야마토급 자매를 기다렸던 건 미국 해군의 최신형 전함이 아닌, 항공모함 전단의 대규모 함재기 편대였다.
그리고 항공모함 함교 항목을 보면 나오듯 항모의 함교가 있어도 없다시피 할 정도로 작거나, 아예 비행갑판 아래의 창문을 함교로 삼으니 일본군은 항공모함과 전함의 개념 자체부터 단단히 잘못 생각한 게 틀림없다.

4.2. 화력


함포의 공격력과 명중률이 평균 미달이라 이런 점을 최우선으로 개선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51] 지나칠 정도로 '''수중탄'''의 개념을 중시했다.
수중탄이란 것은 적함에 착탄하는 게 아닌 바다에 착탄된 포탄이 어뢰의 효과를 내는 것처럼 물속을 파고들어 흘수선 밑을 공격한다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포탄이다. 당연히 물 속에 들어가서 흘수선을 타격해야 하니 신관의 민감도를 줄여서 최대한 둔감하게 만들어야 했지만 이와 반대로 지나치게 둔감한 신관은 적함에 직접 명중할 경우 현측장갑 등 제대로 방어장갑을 두른 부위에는 신관이 작동하기도 전에 포탄이 착탄의 충격으로 부서져서 '''불발'''되었고, 비장갑구획이나 구축함같이 장갑이 빈약한 목표에는 신관이 작동하기도 전에 포탄이 함선을 완전 관통한 후 밖으로 빠져나가서 바람구멍 두 개만 뚫어놓는[52] 등 엄청난 위력 저하가 일어난다. 안 그래도 포탄을 정확하게 함선에 명중시키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명중한 포탄이 터지지도 않는 바람에 적 함선이 멀쩡하다면...
여기서 좀 웃긴 사실을 말한다면 저렇게 수중탄을 중시하면서 정작 포탑의 앙각은 +43도로 영국이나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놨다.[53] 앙각이 사거리를 늘릴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앙각이 커지면 낙각이 커지게되고 당연히 갑판을 타격할 가능성이 올라가게 되므로 최소한 갑판타격을 염두에는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되면 기껏 만든 수중탄이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도 안한건가?
사실 애초에 수중탄이라는 개념에 집착한 것부터가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유틀란트 해전 이후로 전함 간 포격전의 대세는 '갑판 및 상부구조물을 타격하여 상대를 전투불능에 빠트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본 역시 이 흐름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었고 갑판장갑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기존 전함의 갑판장갑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한 바가 있었는데,[54] 정작 수중탄 개념에만 집착하여 포탄을 망쳐놓은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또 다른 문제로 타국에 비해서 주포의 3연장화가 늦었다는 점도 있다. 미국이 1916년에(네바다급) 영국이 1927년에(넬슨급) 3연장포를 탑재한 전함을 배치한것에 비해서 일본은 1941년에 야마토급 전함으로 와서야 3연장 주포를 탑재한 전함을 배치하였다. 미국과 비교하면 25년이고 영국과 비교해도 14년 이상 늦은 셈이다. 해군 조약으로 1936년 까지 신조 전함이 없었던 시기가 중간에 들어가있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영국은 1922년에 넬슨급을 주문하였고 이때 3연장포를 탑재하는것을 요구하였다. 반면 일본이 해군조약으로 1922년에 취소한 전함의[55] 경우 2연장포탑 4기를 탑재하고 있다. 한마디로 3연장 주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타국에 비해서 늦었다는 말이다. 이것 때문에 나온 문제가 바로 위에도 나온 파고다 마스트.

4.3. 방어력


방어력 또한 문제인데 일본 해군 군함은 장갑의 재질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신규공업국으로서 강재에 대한 열처리나 침탄처리 등에 미숙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 때문에 미국의 함선용 장갑보다 13% 정도 약했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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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치 Mark 6으로 쏜 철갑탄에 관통된 야마토급 전함[56]의 660mm 주포탑 전면장갑 [57]
이 약한 장갑재는 '''중순양함'''의 사격에 측면이 꿰뚫리는 공고급 순양전함 히에이 등의 사례를 제하더라도,[58] 실제 전후의 실험에서 야마토급 전함의 포탑 전면장갑 660mm를 16인치 Mark 6으로 관통한 사례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 실험은 0도 각도로 실험한 것이라서 실제로는 야마토급 전함의 주포탑 전면장갑은 관통하는 것이 어렵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야마토급 전함의 장갑 중 세번째로 두꺼운 측면장갑은 주포탑 전면장갑보다 한참 앏은 '''410mm'''로, 일본 강판의 기술력 부족으로 인한 재질 저하 및 13,716m에서 미국제 측면장갑 520mm를 관통하는 Mark 6의 위력을 생각하면 경사장갑을 적용하더라도 충분하게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이 야마토급 전함의 측면장갑을 뚫을 수 있다.[59][60]따라서 충분히 18인치급 철갑탄을 막아야 할 야마토급 전함의 측면 주장갑을 구경이 2인치나 작은 사우스다코타의 16인치 함포에서 발사된 철갑탄이 관통해버리므로 자신이 쏜 포탄과 동급의 포탄을 맞으며 버텨야 할 전함의 기본 능력조차 보장하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사우스다코타가 사용하는 16인치 초중량탄은 18인치에 맞먹는 위력을 발휘하는 강력한 탄이라는 사실을 감안해야한다. 영국의 16인치 Mk.I의 경우 15,000야드에서도 고작 366mm를 관통할 뿐이며[61] 이를 개량한 16인치 주포의 경우에도 15,000 야드(13,716m)의 거리에서는 449mm를 관통하지만 20,000야드로 벌어지면 389mm를 관통한다.[62] 그리고 갑판 타격의 경우 35,000야드에서 184mm를 관통하므로 200~220mm의 장갑을 가지므로 85%라고 단순히 계산하면 실 방호력이 170~187mm라서 가까스로 뚫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보다 가까워지면 갑판을 뚫지 못하므로 일반적인 16인치를 상대로는 어느정도 안전한 구역이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6인치 초중량탄을 상대로는 30,000야드에서도 갑판이 얼마든지 관통당할 수 있고 측면의 경우 25,000야드가량 떨어진 거리에서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우니 방어력이 부족한건 사실이지만 이건 18인치급으로 쳐줘야하는 물건임을 감안하자.[63]
물론 선체 내의 방어력을 위한 방어 구조등은 영국의 라이온급 순양전함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많이 참고를 했으니 상당히 뛰어난 면모를 보이긴 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리벳접합''' 방식을 고수한 결과 같은 규모의 선체에 같은 두께의 장갑을 쳐발랐다면 일본쪽의 선체가 더 무겁다라는 등식은 거의 참이 되어 버린다.
다만 종종 거론되는 리벳접합의 경우에는 다소 애매하다. 일단 당시 대부분의 전함들은 리벳접합방식을 사용한 경우가 많은데 킹 조지 5세급 전함이나 아이오와급 전함들도 리벳접합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즉, 리벳접합방식 자체가 뒤떨어진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64]
또한 일본 전함들은 야마토급 이전의 전함들은 대미지 컨트롤에 대한 정성이 심히 부족했는데, 심지어 준수한 성능이라는 공고급 순양전함나가토급 전함에 함선 측면에 케이스메이트 포곽식 함포가 존재했을 정도다. 이런 포곽식 측면함포는 대포의 상하좌우각도에 심각한 제한을 가져오고, 현측장갑에 구멍을 뚫고 만들어지므로 취약점을 늘리는데다가, 전열함처럼 후방을 측면에 배치된 모든 부포가 공유하므로 단 1곳만 전함의 포탄이 관통해서 폭발하면 연쇄폭발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장갑이 두꺼운 것도 아니라서 부포곽이 있는 부위의 측면장갑은 고작 152mm 수준인데다가 포곽의 포방패는 51mm 수준이다. 그래서 타국에서는 나중에 함선을 개장할 때 포곽식 측면함포는 모두 제거하고 선회포탑식으로 따로 만드는데, 일본만은 함선을 개장하더라도 부포의 포문이 감소해서 전투능력이 저하된다는 이유로 인해 포곽식 함포를 고수한 것이다. 따라서 일부 구획에선 그야말로 종잇장같은 장갑을 가지고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그만큼 위험피격구획이 많으니 탄약고가 터져 화재가 발생할 확률은 극도로 높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해 일본에서도 할 말은 있긴 했다. 일단 공고급은 1차대전 전에 영국에 주문하여 설계/건조된 배이다. 당시 공고와 같은 시기에 건조된 대부분의 배들도 저런 방식이었다. 다만 공고급 1번함은 영국에서 건조되었고 2번함 부터는 일본에서 건조되었다. 후에 개장할때 2번함 3번함에 사용한 드릴을 1번함에 사용하려고 하니 구멍이 안 나서 영국에서 공구를 수입해서 개장했다는 일화가 있다.[65] 나가토 역시 1차대전 중에 설계/건조된 배고 2차대전 전까지 미친듯이 개조해 장갑을 강화하고 화력은 처음부터 410mm 주포를 장비해 강력했고 기동성도 처음부터 매우 뛰어나 미친듯이 장갑을 처발라 배수량이 늘어났는 데도 동시기 건조된 영/미의 동급함보다도 여전히 빨랐다. 데미지 컨트롤에 대한 정성이 부족한 건 맞지만 적어도 2차대전시기의 신전함과 비교해 설계면에서 떨어지는 부분을 까는 건 이들 전함들이 1차대전형 전함이라는걸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고급의 개장은 33~36년에 시작했고 이때까지는 각국이 포곽식과 부포탑식을 두고 우왕좌왕하던 시기였다. 당장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만 봐도 알 수 있는것이 넬슨급 전함에서 부포탑식으로 만들었다가 1934년에 개장에 들어간 워스파이트는 포곽식 부포를 유지했지만 1937년에 착공한 QE와 밸리언트는 부포탑식으로 변경했다.
거기에 일본 전함의 주포 탄약보관 방식으로 영국의 코다이트식 장약과 영국식 보관법을 그대로 베껴버리는 삽질을 저질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순양전함의 폭침에 대해 코다이트식 장약과 보관법이 큰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걸 일본이 베껴버린 것. 이렇게 되어버리니 탄약고 유폭은 피할 수가 없었고 데미지 컨트롤 능력은 바닥을 기었다. 또한 함상구조물이 쌓아놓은 게 많으니 조금만 경사를 줘도 배가 뒤엎어졌다. 이 때문에 뻑하면 탄약고에 불이 붙어서 펑, 혹은 제풀에 못 이겨 펑 해버리는 것은 일본 전함의 종족 특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66]
세계 일류수준의 산소어뢰를 개발했던 국가치고 어뢰 방어력도 한심할 수준으로 낮았다는 것 또한 큰 문제였다. 일본 전함의 최종지표였던 야마토급 전함도 벌지 설계 결함으로 인해 미국 잠수함이 날린 어뢰 한 발 맞고 벌지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 마찬가지로 잘못 설계된 철판 접합부위를 찢었기 때문에 3천톤의 침수를 당해 긴급회항했다는 사실과, 야마토급 3번함의 함체를 그대로 유용했던 시나노의 어이없는 최후를 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이쪽은 부실공사인 탓도 있기는 하다만...)[67]만일 일본 전함들이 함대결전을 위해 일제히 출항하고, 그것들을 미국 잠수함대가 일제히 기습했다면 잠수함의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대전과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 [68]
또한 자기네들이 진주만 공습 때처럼 항공모함을 굴리면서 방공의 필요성 자체는 인식했는지 대공포의 숫자도 늘리고 늦게나마 레이더도 달아주기는 했지만[69] 일본군의 대공포와 레이더의 성능이 상당히 떨어지는지라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

4.4. 속도


일본군의 구식 전함들은 너무 느려서, 항모전단의 뒤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25노트를 기준으로 속도를 맞춰놓았는데, 항공모함은 30노트로 달려가니 그냥 답이 없다. 속도를 30노트로 늘리는데 성공한 공고급 순양전함들이 유용하게 쓰인 이유 중 하나가 이거다.
물론 후소급이나 이세급은 낡은 군함들이라 느릴 수밖에 없고, 일본군도 그건 알고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속도를 올리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미군과 영국군의 구식 전함들도 항공모함을 따라가지 못해서 홀대를 받는 경우가 많았으니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속도를 늘릴 수 있었던 나가토급을 25노트로 끌어내린 점. 29노트를 내도록 개조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일본군은 고물 전함들과 속도를 맞춘다며 억지로 25노트를 내게 했고 결과는 대실패였다.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나가토급 전함 2번함 무츠가 너무 느려서 함대에서 낙오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야마토급 전함들도 27노트가 한계였고, 결국 일본군 전함들은 공고급을 제외하면 해전에 투입되기가 힘들었다.

4.5. 전술교리 문제


일본군의 전함에 대한 전술교리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함대결전사상에 끝까지 집착해 전함을 써먹질 않은 것. 2차대전은 전함의 황혼기로, 훨씬 먼 거리에서 피해를 줄 수 있는 항공모함이 실전적인걸 넘어 항공기의 발전에 힘입어 최주력함이 되면서 전함은 '''최주력함'''에서는 밀려났다고 할 수 있다. 그 시대를 직접 연 장본인인 일본해군은 항모기동부대보다 전함간의 함대결전을 마지막까지도 신봉했고, 그래서 노령함인 공고급 순양전함을 제외한 나머지 전함은 제대로 일도 안 하고 놀다가 다들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뭐 항모기동부대를 중심으로 꾸리고싶어도 항공기술이 그 꼬라지여서야 불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전함들을 항구에 처박아놓은것에 대한 변명은 안 된다. 이는 최초로 항모를 적극적으로 운용한 연합함대 사령관이라는 야마모토 이소로쿠도 예외가 아니다. 미드웨이 해전이 그 꼴이 나도록 만든 장본인이 야마모토다.[70] 온 전력을 사방에 뿌려놓은 것은 그렇다 치고, 나구모의 기동부대를 최전방에 배치하면서 제대로 된 호위전력조차 붙여주지 않았다. 그가 전함 건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곧 그가 항모 위주의 전술에 눈떴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둘째로는 대지상포격을 거의 하지 않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허리가 나가도록 구르는 공고급을 제외한 모든 일본전함은 대지상포격에 신경도 안 썼다. 일제가 그렇게 혐오하던 귀축영미의 전함들은 수상전투가 없을 때 지상화력지원에 집중했음을 고려하면[71] 일본 해군의 전술적인 안목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함대결전사상에 집착하느라 전함을 그런 임무에 보내지 않은 것이라는 것, 그리고 육해군이 아예 견원지간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

4.6. 실전에서의 전과


그래도 전장에서 고군분투했다면, 94식 산포처럼 성능에 비해 적절히 활약했다는 평가라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사실상 제대로 싸운 건 공고급 순양전함 정도다. 그럼 나머지 전함들은 뭐하고 있었냐고? '''미 해군과의 결전을 대비한답시고 항구에 정박해서 놀고 있었다!'''[72] 야마토 같은 경우엔 '야마토 호텔'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이고,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이 전멸한 이후에는 미군의 밥이 되어 전과다운 전과도 세우지 못한 채 침몰해갔다.
'''공고급 순양전함'''
태생 자체가 순양전함이라 제대로된 전함과 맞짱 뜰 스펙도 아니거니와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이미 함령이 30년이 넘은 노령이었기에 제대로된 함대결전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주력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느려터진 다른 전함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30노트의 빠른 속력 덕분에 고속성능을 자랑하는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과 함께 작전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수많은 임무에 이리저리 굴러다녔고 공고를 포함한 4척 모두 태평양을 바쁘게 내달리며 미군과 싸우다가 최후를 맞이했다. 미군을 상대로 무쌍을 펼친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임무를 수행한 덕에 일본군 전함 중에서는 가장 많은 전공을 세운 최고의 수훈함이 되었다. 특히 자매함중에서는 1번함 공고가 가장 높게 평가받는다.
'''후소급 전함 후소, 야마시로'''
레이테 만 해전에서 두 척 모두 침몰했다. 다만 이쪽은 태평양 전쟁 시점에선 이미 공고급 이상의 노후함이라서 전투함으로 쓰기엔 무리가 상당했던 관계로 화력지원 임무에 투입되어 운용되긴 했다.
'''이세급 전함'''
두 척 모두 항공전함으로 개장되었다. '나도 항공모함이다' 문단 참조. 전함 시절의 전과는 그런 거 없다.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 무츠'''
나가토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미군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쫓겨 야마토와 함께 달아났고, 무츠는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순양함들을 쫓아가지 못하고 낙오되었다. 둘의 최후는 더더욱 안습해서 전후 생존함으로서 미국이 접수한 나가토는 비키니섬 핵실험의 희생양이 되었고 무츠는 항구에 계류중인 상태에서 원인 불명의 이유로 발생한 주포탑 탄약고의 화재에 의한 유폭 때문에 폭침당했다. 특히 핵실험의 희생양이 된 나가토는 비키니섬 핵실험 당시 핵을 한번 맞은 게 아니라 두 번 맞았다. 전과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나가토와 무츠는 일본의 자랑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최소한 얼굴마담 역할은 했다는 점에서 본토의 일반인들은 존재조차 몰랐던 야마토보다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 무사시, 시나노'''
야마토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미군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쫓겨 달아나는 바람에 작전을 말아먹었고, 이후 오키나와에서 일본 수뇌부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마지막 출격에 나서 개죽음을 당했다. 무사시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탱커 역할을 수행한 후 침몰했고, 시나노는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지만 작전에 나가기도 전에 미군 잠수함에게 걸려 침몰했다.[73] 그나마 언급할 수훈은 무사시의 탱커 노릇 정도.

5. 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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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양함에서 변신한 토네급 중순양함
아오바급 중순양함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일본 해군이 만든 함선중에서 가장 전투력이 높고 성능이 뛰어난 함선들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도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일본군의 다른 함선에 비해서는''' 훌륭한 점이 많다. 하지만 아래에 언급되는 각종 이유로 인해 잘해봐야 '''뛰어난 구식'''으로 전락해버리는 수모를 겪게 된다.

5.1. 역할 설계 실패


원래 중순양함은 전함의 대역인 성격이 짙다. 그래서 함대결전에서 전함을 보조하는 것은 기본이고, 순양함답게 장거리 항속성능을 살려서 구축함과 같이 통상파괴작전을 하거나, 대공방어를 전담하는 등 다방면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군은 중순양함을 함대결전시 '''산소어뢰'''를 가지고 야간에 미국의 전함전대를 습격하는 용도로만 쓸 생각으로 건조했으며, 해당 컨셉에 맞게 특화시켰다. 이런 점은 구축함 등 일본의 다른 함선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중순양함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 과무장과 무게중심 상승 - 경순양함을 제외한 순양함 이하급의 함선이 모두 가진 약점이다. 이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보조함선의 수량과 배수량이 제한을 받자, 개별 함선의 전투력을 너무 심하게 강화시키려는 조치에서 온 것이다. 그 결과 일본군의 중순양함도 배수량에 비해서 과무장을 하고, 함선의 출력을 크게 늘려서 고속을 내도록 만들어졌다. 따라서 무게중심이 크게 상승했으며, 이런 문제는 우학 사건과 제4함대 사건을 겪고 나서야 함체를 강화하고 무게중심을 조절하는 후속조치가 진행되면서 해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배수량에 비해서는 과무장이었고, 무게중심도 높은 편이었다.
  • 종이장갑 - 앞의 문단에서 언급되었지만, 과무장을 하게 되었는데 속도가 빨라야 하므로, 배수량이 제한된 상태에서는 어딘가 희생해야 할 항목이 발생했다. 여기서 일본군은 장갑을 크게 줄이는 선택을 하고 만다. 그래서 타국의 중순양함에 비해 현측장갑등 모든 면에서 장갑이 부족하며, 이는 조약 탈퇴 후에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특히 이런 문제가 심한 곳은 주포탑과 바벳이었다. 미국의 중순양함이 포탑에는 적어도 5인치(=약 127mm)의 장갑을 설치한 데 반해, 일본군의 중순양함의 포탑은 고작 파편방어수준인 25mm의 경장갑을 달며, 바벳도 평균 33mm라는 엽기적인 두께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일 해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약형 중순양함 자체의 한계에 가깝다. 영국의 카운티급 중순양함이나 요크급 중순양함도 포탑 장갑이 1인치(이정도면 25mm보다 조금 두꺼운 수준밖에 안된다.) 수준이며 미국의 중순양함들은 그래도 사정이 양호했지만 뉴올리언스급에 가서야 제대로된 대응방어를 갖추었다.[74] 그 이전의 순양함들은 일 해군보다 사정이 좀 낫기는 하지만 포탑 장갑이 부실한건 마찬가지였다. 어디조약위반함처럼 하지 않는 이상 조약형 중순양함으로 대응방어를 충실하 갖추기는 애초에 무리가 있다. 미국이야 3연장포를 달았기에 뉴올리언스급에서는 어찌저찌 달성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애초에 3연장포도 없는 상태였고 일본은 주포탑을 5개씩 올려서 이런 문제가 타국에 비해서 더 심각했던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조약형 중순양함중 이런 조건을 달성한것은 미 해군 순양함중 일부라는것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75]
그래도 기관총 사격으로 격침된 중순양함이 없다는 게 위안인데, 그럴 뻔한 중순양함이 있긴 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아오바로, 사보섬 해전에서 기관총탄에 어뢰발사관이 피격되면서 거기에 있던 산소어뢰에 불이 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오바는 재빠른 대처로 불을 껐기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 짧은 항속거리 - 순양함은 그 이름처럼 장거리 순찰을 위해서라도 항속거리가 길어야 한다. 하지만 타국의 중순양함이 8,000해리 이상의 항속거리를 가진 데 비해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항속거리가 6,000~8,000해리의 범위를 가지는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저 8,000 해리도 영국의 이야기고 미국은 10,000해리를 넘기는 경우도 제법 있다. 이렇게 항속거리가 짧아진 이유는 앞서 말한 컨셉의 실수로 인해 굳이 원거리까지 항해할 필요가 적다는 것도 있지만, 연료를 많이 잡아먹는다고 연료탱크를 줄이라는 뻘짓 지시가 더 큰 원인이었다. 심지어 묘코급 중순양함이나 타카오급 중순양함은 대개장시 연료 탑재량을 일부러 축소하는 짓거리까지 했다. 애초에 연료에 그렇게 신경을 썼다면 큰 연료탱크에 작은 양의 연료만 넣으면 될 것이지 굳이 연료탱크를 줄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삽질은 전함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는데 전함은 그 특성상 항공모함 같은 다른 주력함이나 보조함들의 연료탱크 역할도 할수 있는데 이걸 무시한 것.[76]
  • 주포탑에 얽힌 슬픈 전설 - 일본 해군은 타국보다 가장 먼저 8인치급의 주포를 순양함에 장착하려고 노력했으며,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슬픈 전설에 가깝다. 최초의 중순양함인 후루타카급 중순양함의 경우, 8인치급 주포를 장착하는데 성공했지만, 포신이 포탑당 1개인 단장 주포탑인데다가 제대로 된 바벳 시설도 없이 110kg의 중량을 자랑하는 8인치급 포탄을 인력으로 운반, 장전하는 엽기적인 구조를 가졌다. 덕분에 장전 속도가 시망급이었으며, 전투 효율도 크게 떨어지는 개뻘짓이 돼버렸다. 결국 아오바급 중순양함에서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아 장전하는 2연장 주포탑을 채용했고, 후루타카급도 나중에 2연장 주포탑을 탑재한다. 그 다음에 등장한 3년식 8인치 50구경 2연장 주포탑의 경우, 앞서 말한 종이장갑 문제뿐 아니라, 전함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접한 포신에서 발사된 포탄이 간섭현상을 일으켜서 영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증상이 발생해버렸다. 이는 포신중 하나를 0.3초 정도 지연발사하는 능력 추가로 해결했지만, 이미 러일전쟁에서 전함의 2연장 주포탑을 운용해본 일본 해군이 더 큰 대포도 아니고 보조함의 소형 주포에서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더 신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미국은 전간기에 8인치 주포의 3연장화에 성공한지 오래였다.[77] 하지만 일본군은 패전할 때까지 8인치 주포탑의 3연장화를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3연장화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예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이다![78] 그리고 자신들은 2연장 주포탑의 포 한문만 사격하고 조준을 수정해서 다른 1문을 사격한다는 교대사격을 하므로 다연장 포탑이 필요없다는 자기합리화까지 시전한다. 덕분에 미국이 8인치 주포를 9문 탑재할 경우에는 주포탑이 3기만 필요하지만, 일본군은 2연장 주포탑밖에 없어서 10문을 탑재하기 위해 주포탑을 5기나 배치해야 했으며, 덕분에 특유의 구조인 3번 포탑의 역행배치가 나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공간을 낭비하면서 동시에 일부 주포의 사계를 제한하게 되는 비효율성은 다른 것에도 큰 영향을 준다. 물론 8인치 주포의 3연장화를 성공한건 미국이 유일하기는 했고 다른 나라들도 전부 2연장에서 만족하기는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2연장 포탑 4기로 8기의 주포를 올리는데 만족했지만 일본은 다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10문을 확보하려고 했으면서도 끝까지 3연장 포탑을 개발하지 않았다.
  • 부족한 부포와 대공포 - 앞서 언급되었듯 8인치 주포를 최대 10문이나 장착해야 했고, 주포탑이 2연장밖에 없으므로 부포나 대공포를 설치할 공간과 배수량이 매우 부족해졌다. 안 그래도 전함이나 항공모함에 비해 제대로 된 지원을 못받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까지 겹치니 부포와 대공포는 그냥 약방의 감초식으로 조금 달아주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덕분에 적군의 경순양함이나 구축함처럼 빠르게 접근하는 물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항공기만 만나면 그냥 표적으로 전락해버린다. 물론 다른 함선들에 비해서는 속도가 빠르지만, 구축함처럼 민첩한 것도 아니니 적의 폭격에 매우 취약했다.
  • 산소어뢰 탑재 - 그야말로 양날의 검인 항목이다. 원래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산소어뢰를 탑재하기 때문에 뇌격능력을 크게 평가받았으며, 실제 성과도 있었다. 그래서 산소어뢰를 탑재한 것 자체가 함선의 평가를 상승시키기도 했다. 문제는 산소어뢰는 그야말로 순산소 + 가연물질 + 화약인 물건이고, 어뢰발사관이 그렇게 중장갑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초기의 중순양함은 제대로 된 장갑도 안 붙이고 함체 중앙에 어뢰발사관을 위치시켰으며, 나중의 함선들도 함체 후부에 놓긴 했으나 주포탑에도 장갑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어뢰발사관 따위에 장갑을 충실하게 붙일 이유가 없으므로 별로 장갑을 추가한 것도 아니라서 비행기가 기총소사를 제대로 갈기면 어뢰발사관이 대폭발하면서 중순양함이 굉침한다.[79] 게다가 이건 항공기뿐 아니라 구축함이나 어뢰정의 소형 함포로도 가능한 일이라서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걸 피하려면 산소어뢰를 재빨리 버려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망했어요.
실전에서도 이 문제로 격침된 중순양함이 존재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모가미와 충돌사고를 일으킨 미쿠마는 미군의 공습으로 산소어뢰가 유폭해서 침몰했고, 레이테 만 해전의 사미르 해전에서 타카오급 중순 4번함 초카이는 호위항모에서 날린 5인치포에 산소어뢰가 유폭하는 바람에 엔진과 방향타가 맛이 가서 기동불능이 되었고, 함재기의 500파운드 폭탄을 맞고 대화재가 발생해서 후지나미에게 처분당했다.
예외적인 케이스가 바로 아오바다. 아오바는 사보섬 해전에서 미군의 공격으로 바다 한가운데에서 어뢰발사관에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재빨리 불을 꺼버렸고,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는 미군의 기습으로 수십 발의 포탄을 얻어맞았는데도 산소어뢰 유폭으로 침몰하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카비엥에서는 미군의 폭격으로 산소어뢰가 유폭했는데도 해안가에 전력으로 돌진해서 좌초함으로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아오바 이랬다는 게 함정.
  • 거지같은 주거 및 복지시설 - 원래 일본군의 함선이 승무원에게 거지같은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특히 이런 증상이 심해서 묘코급 중순양함 3번함 아시가라가 관함식에 참석하러 갔다가 영국 기자에게서 "나는 오늘 처음으로 진정한 군함을 보았다. 지금까지 본 것은 전부 여객선이었다"는 찬사(?)를 들을 지경이었다.[80] 문제는 순양함은 다른 함선과는 달리 긴 항해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승무원들이 느끼는 고충이 상당했으며, 전투효율에도 매우 안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타국이 순양함의 주거 및 복지시설에 괜히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본군은 끝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 꼼수의 말로 - 모가미급 중순양함처럼 경순양함을 제조하는 척 하다가 주포만 빼면 중순양함을 만드는 등 조약의 헛점을 이용한 꼼수를 부리다가 이걸 적발해낸 미국과 영국이 맞불 작전에 들어가면서 숫자면에서도 크게 밀리게 되는 악수를 두었다. 게다가 모가미급은 경순양함을 제조하는 척하느라 본격적인 중순양함보다 배수량이 약간 적었기에, 위의 문제가 증폭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 문제가 있는 포탑 위치 - 묘코급 중순양함,타카오급 중순양함이 대표적인 사례.묘코급과 타카오급의 경우, 3번포탑이 해당된다.포신 갯수 늘리려고 한 뻘짓중 하나. 2연장 포탑을 선체에 쑤셔 넣으러다 발생한 문제이다. 미국의 볼티모어급 중순양함과 비교했을때, 선수에 위치한 포신 갯수는 같지만, 정면에서 봤을때 사용 가능한 포신 갯수는 볼티모어6 타카오/묘코 4로 포격전에서 밀린다. 3번포탑을 쓰려면 선체 옆을 노출 시켜야 하는데, 옆은 산소어뢰로 무장돼 있음으로 잘못하다간 어뢰유폭으로 굉침(...)을 먼저 당할 가능성이 크다. 한 술 더 떠서, 토네급 중순양함은 선수에 포탑이 집중배치 돼 있고, 3번,4번이 역행배치(...) [81] 이다.

5.2. 실전에서의 전과


위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나름대로 활약했다. 공고급을 제외한 전함들은 놀고 있으니 중순양함이 개고생을 할 수 밖에 없어서였으나, 혹사의 대가로 일본군 군함 중에서도 최대의 손실을 기록했다. 모가미급과 토네급은 일본군의 공식적인 분류에 따르면 경순양함이지만, 중순양함을 건조하기 위해 일본이 꼼수를 쓴 것이므로 연합군에서는 중순양함으로 간주하며, 전후 일본에서도 중순양함으로 보고 있다.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후루타카, 카코'''
제 6전대의 일원으로 괌 전투부터 과달카날 전투까지 많은 활약을 했으나, 2번함 카코는 사보섬 해전 이후 귀환하다가 미군 잠수함에게 격침되었고 1번함 후루타카는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기함 아오바를 보호하는 임무를 완수한 후 침몰했다.
'''아오바급 중순양함 아오바, 키누가사'''
후루타카급 중순양함들과 제6전대에 소속되어 많은 활약을 했으며, 특히 1번함 아오바는 제6전대 기함으로서 과달카날에서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라는 사보섬 해전의 주역이 되는 등 대활약했고, 3번이나 침몰 수준의 대파를 당하고도 살아남았으며,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중순양함으로 기록된 군함 중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에 귀환했다. 이후 구레 군항 공습에서 대공포대로 활동하다가 미 해군과 육군 항공대의 협공으로 격침되었으나, 일본 최고의 중순양함으로 이름을 남겼다. 2번함 키누가사도 과달카날 전투에서 핸더슨 비행장을 불바다로 만드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과달카날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에게 격침되었다.
아오바는 이 항목에서 자주 거론되는데, 일본군의 무기체계가 가진 결점들을 승조원들의 노력과 행운으로 극복한 케이스라서 그렇다.
'''묘코급 중순양함 묘코, 나치, 아시가라, 하구로'''
전쟁기간 내내 많은 활약을 했지만, 자바해 해전을 비롯한 많은 해전에서 포격전 능력이 부족함을 드러냈다. 얼마나 부족한지는 항목 참조. 전후생존함은 싱가포르에서 대공포대가 되었던 묘코밖에 없으며, 이후 영국에 배상함으로 넘겨진 후 표적함이 되어 타카오와 함께 침몰 처분되었다.
'''타카오급 중순양함 타카오, 아타고, 마야, 초카이'''
과달카날에서 제8함대 기함으로 제6전대와 함께 많은 수훈을 세우고 미국 최악의 해전이라는 사보 섬 해전에서 기함이었던 초카이를 제외하면 전공 면에서는 평범한 편으로,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아타고와 마야가 미군 잠수함에게 격침되었고, 초카이가 미군의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화이트 플레인즈의 포탄에 맞아 대파(...)된 후 공습을 당해 침몰했다. 타카오는 싱가포르로 돌아가서 대공포대로 개장된 후 전후생존함이 되었으나, 묘코와 함께 영국군에 넘겨진 후 표적함이 되어 침몰했다.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 미쿠마, 스즈야, 쿠마노'''
모가미는 일본군 강습상륙함과 수송선 다수를 격침시켜 팀킬 순양함으로 명성을 날렸고, 미쿠마는 모가미와 충돌사고를 일으킨 후 공습으로 침몰했으며, 스즈야는 미군 구축함에게 얻어터져 속도가 느려진 쿠마노를 피하다가 공습을 당해 침몰했고, 쿠마노는 지휘를 개판으로 해서 모가미와 미쿠마의 충돌사고를 야기한 후 사마르 해전에서 미군 구축함 존스턴에게 얻어터져 대파되고 이후 미군의 잠수함과 함재기들에게 얻어터져 침몰했다. 전과? 그런 거 없다.
'''토네급 중순양함 토네, 치쿠마'''
'나도 항공모함이다' 항목 참조.

6. 경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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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노급 경순양함
그나마 일본군의 중순양함은 전간기의 주요 개발 품목으로 큰 관심을 받았으며, 경순양함의 배수량 배정 분량까지 뽑아내서 경순양함인척 하는 중순양함을 만들 정도로 세심한 주의와 손길이 닿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경순양함은 버려졌다는 것이다. 원래 다이쇼시대에 만들어진 5,500톤급의 경순양함은 그 시기에는 훌륭한 군함이었지만, 그 이후 '''후계자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태평양 전쟁이 벌어진 뒤인 1942년까지 경순양함이 건조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조약의 헛점을 이용해서 경순양함에 배정된 배수톤으로 중순양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가미급 중순양함 같은 물건은 서류상에서는 경순양함이었지만, 외국의 평가는 물론이고 자국 내에서도 중순양함이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기존의 폐물을 제외하고 실제로 건조된 경순양함은 아가노급 4척에 오요도급 1척밖에 안 된다.
그런 아가노급 경순양함의 전과도 역시 처참해서, 2번함 노시로가 미군의 호위항공모함 갬비어 베이를 공동격침했고, 3번함 야하기가 레이테 만 해전에서 구축함 1척을 공동격침한 게 끝.
오요도급도 마찬가지로 오요도 1척만 만들어진데다가, 트러블이 속출했고 앞서 항공전함에서 설명했듯이 함재기도 거의 없어서 사실상 전투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리고 일본군이 개발한 가장 강력한 경순양함용 무장인 3년식 60구경장 3연장 155mm 주포탑은 오로지 요요도급 1척만 탑재가 가능했다. 애초에 이 물건은 성능은 뛰어났으나 2연장 8인치 주포탑과 환장이 가능할 정도로 크기가 크기 때문에 기존의 경순양함에는 장착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모가미급 중순양함이 주포탑을 환장하면서 남은 주포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요도급 1척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야마토급 전함의 부포탑용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경순양함을 개조해서 뇌격능력을 높인 중뇌장순양함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산소어뢰 40발을 일제사격할 수 있는 쿠마改급 키타카미다. 하지만 하늘에는 미국의 함재기가 제공권을 잡았고, 야간에도 레이더로 정확하게 적함의 위치를 파악하는 미국 앞에서 전쟁 후반기에 등장한 이런 물건은 전장에 도달하는 것부터가 큰 문제였다. 결국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고속 수송함으로 개장되었으며, 나중에는 카미카제용 가이텐을 발사하는 모함으로 개장되었지만 가이텐 자체가 무용지물인데다 그나마 빨랐던 속도까지 느려지면서 완벽한 고철덩어리로 전락했다. 후대의 평가는 '''전쟁 내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군함.'''
설상가상으로 상대방이 너무 강력했다. 모가미급 경순양함(건조시 기준)을 건조하는 일본의 경순양함 대형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과 영국도 경순양함의 배수량을 늘렸고[82], 이는 큰 성공을 거둔다. 6인치 주포를 12문에서 15문까지 탑재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부포로 5인치 양용포도 12문 정도를 탑재하고 다수의 대공포도 추가되는 등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는데다가 방어력도 높고 속도도 더 빠르거나 최소한 동등할 지경이었다.[83] 여기에 더해서 숫자까지 우월했으므로 모든 면에서 일본군의 경순양함이 대적할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일본의 주력 경순양함들은 모가미 이전에 나온 물건들이 대부분이고 배수량도 브루클린급의 절반수준밖에 안되니 성능이 딸리는게 당연하다. 따라서 센다이급을 포함한 일본의 구식 경순양함은 브루클린급과 같은 대형화된 경순양함과 비교하는건 적절하지 않으며 비교할 가치도 없다. 거기다 시기, 목적, 배수량의 차이가 너무 커서 같은 경순양함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놓고 비교할 수 없다.[84] 센다이급을 비롯한 일본의 경순양함들은 구축함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자신이 주 화력을 퍼붓는 미국의 경순양함과는 달리 구축함들이 뇌격을 하는 동안 자신이 대신 공격을 받는 역할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건조한 경순양함들이 미국의 경순양함에 비해서 성능의 열세는 확실하고 이로 인하여 탱킹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으며 일본 스스로도 개함성능의 향상에 매우 힘썼다는 점에서 분명히 경순양함의 성능이 불충분한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중순양함을 만들기 위해서 경순양함을 경시했던 일본의 태도에 있다.
여기에 구축함보다 비싼 경순양함을 소모품이나 미끼로 적에게 던진다는 발상은 미국의 입장에서도 낭비인데, 안 그래도 전력이 열세가 된 일본에게는 더 큰 타격으로 돌아오는 뻘짓이었다. 또한, 경순양함의 특성상 위에 언급된 작전 외에도 할 업무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맞딱뜨릴 적 경순양함에 대해서 대응이 불가능하므로 업무 수행이 어렵거나 불가능해진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그냥 답이 없었다.
그나마 미끼 역할을 제대로 해낸 경순양함은 센다이급 2번함 진츠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위에 기술한대로 불리한 싸움을 강요당하다가 침몰해갔다. 전후까지 살아남은 경순양함은 카토리급 연습순양함 2번함 카시마, 아가노급 경순양함 사카와,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키타카미 정도다.

7. 구축함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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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메급 어뢰정과 무츠키급 구축함
유기리급 구축함
카게로급 구축함 8번함 유키카제
일본군 구축함 손실원인 1941-1945
함급(척)
수상함
잠수함
항공기
기타[85]
생존
미네카제급(13)[86]
0
7
1
0
5
카미카제급(9)
0
4
2
1
2
무츠키급(12)
1
1
10
0
0
후부키급(23)[87]
4
8
7
2
2
하츠하루급(6)
0
1
4
1
0
시라츠유급(10)
3
5
1
1
0
아사시오급(10)
4
2
4
0
0
가게로급(19)
5
4
6
3
1
유구모급(19)
4
4
9
2
0
시마카제급(1)
0
0
1
0
0
아키즈키급(12)
3
1
1
0
7
마츠급(18)
2
2
1
2
11
타치바나급(14)
0
0
2
1
11
합계
26
39
49
13
39
일본군은 함대결전에 대비하여 구축함을 보조전력으로 육성했고, 덕분에 적함에 대한 어뢰공격 능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전쟁 초중반기 연합군 해군을 상대로 위협적인 전투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대잠능력과 대공능력은 크게 떨어졌다. 즉, 이름은 구축함이지만 대형 어뢰정에 가까웠던 것.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자 미군은 항공모함에서 함재기를 출격시켜 일본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일본군의 구축함은 여기에 제대로 대항할 수가 없었다. 원래 구축함처럼 작은 함선은 주포도 대공용으로 사용하도록 양용포를 탑재하는 것이 좋은데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양용포로 하면 대함공격력이 약화될 것 같지만 구축함 이하의 함선들은 목적과 기술력, 자금의 한계상 '''대응방어를 포기'''했으므로 5인치급 함포면 평사포건 양용포건 간에 철갑탄만 쓴다면 모든 구축함의 장갑을 뚫을 수 있었다. 그리고 관통력이 높은 5인치 장포신 평사포라도 대형 경순양함 이상의 함선에게는 이빨이 박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설령 천운으로 장갑을 관통해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제대로 주지 못한다.[88] 게다가 구축함 이하의 함선들이 서로 전투를 벌일 경우에는 서로 고속으로 근접하면서 동시에 회피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포탄과 어뢰를 난사하게 되는데, 이런 전투에서는 발사 속도가 빠르고 화기관제가 우세한 쪽이 전투에서 유리하다. 그러므로 구축함의 5인치급 함포에 한해서는 양용포가 평사포보다 더 유용하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 점을 무시했다. 특히 도쿄제국대학 총장이기도 했던 히라가 유즈루 중장이 1930년대 초에 구축함의 주포를 대공-대수상 양용포로 하는 것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낸 것이 결정타였다. 일본의 함대형 구축함들이 사용한 5인치 포들은 앙각이 75도로 높긴 했지만 대함(大艦)공격만 생각하고 주퇴기의 거리가 긴 평사포(캐논)를 채택하고 장전 방식도 인력 위주라서 장전시마다 포신을 다시 수평에 가깝게 내려야 하는 등 방공전에 필요한 대량의 포탄을 고속으로 사격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89]
게다가 이 보고서가 나온 얼마 후에 5인치 대공포를 전함과 항공모함의 대공포로 장비하기 시작했는데 해당 대공포를 약간 개수해서 구축함에 달아주면 위에 언급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함공격력이 약화된다고 계속 튕기다가 전쟁 말엽에 가서야 마츠급에 5인치 대공포를 주포로 달아주기 시작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군의 대공포도 심각하게 수준미달이었고, 구축함 같은 보조함선에는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일본군 기준에서도 엿같은 구식 대공포를 수량도 부족하게 배치하는 바람에 대공능력은 국제적인 기준에서는 사실상 없다시피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아키즈키급 구축함을 만들었으나 일반적인 일본의 구축함보다 큰 녀석을 전시에 양산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고, 주포겸 대공포인 98식 10cm 65구경장 2연장 고각 포탑은### 비싸고 제조하기 어려운데다가 포신 수명도 짧고 대공전용이라 '''철갑탄이 없어서 대함공격에 큰 지장이 온다. 대공사격의 경우 다른 일본군의 함선보다는 양호했으나 레이더 성능도 낮고 레이더 연동 사격관제도 불가능하므로 객관적인 효율성은 떨어졌다.
물론 미군 잠수함의 공격에도 제대로 대항할 수 없었다. 대잠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나같은 잠수중인 잠수함을 찾아내는 물건도 수량이 부족한데다가 성능이 떨어지고, 간신히 잠수함을 찾아내더라도 폭뢰 같은 공격무기의 성능과 수량이 모두 부족한 상태라서 제대로 잠수함을 공격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본군의 귀중한 배를 호위해야 할 구축함이 자기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함대결전을 위한 대형 수상함 확보와 보조함 숫자 불리기에만 집착했던 일본 해군은 기초적인 잠수함 탐지도 못해내고 미국의 잠수함들에게 불시의 습격을 당해 차례차례 가라앉기 시작했다.
위의 문제 때문에 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는데 '''구축함이 잠수함에게 사냥당한다.''' 이건 사냥꾼이 사냥감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상기 서술된 대잠능력 부족 때문에 이게 현실화된 것이다. 심하면 일본의 항구까지 귀환한 후, 잠수함에게 공격받은 부위를 수리한 다음에 다시 출항한 일본군 구축함이 바로 항구 앞바다에서 매복한 미국 잠수함에게 어뢰공격을 받고 박살난 후 간신히 살아서 항구로 귀환한 후에 다시 도크에 처박히는 사태가 발생했고, 가토급 잠수함들 중 그라울러[90], 가드피쉬[91], '''하더'''[92]같은 구축함 때려잡는 변태 잠수함들이 등장하게 된다(...). 심한 경우 일본 구축함이 미국 잠수함을 선제 탐지하여 어뢰를 쏘거나 폭뢰를 투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잠수함이 이를 유유히 피하고 오히려 역으로 구축함을 격침시킨 사례도 발생했다.

8.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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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잠수함들은 이 항목에서 예외적으로 굉장히 괜찮은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일본에서는 자화자찬했다. 일본군이 잠수함은 물론 유보트와 비교할 만큼은 아니지만 일본군의 히든카드 산소어뢰로 무장한데다가 태평양에서 사용하기 적절한 매우 긴 항속거리, 수상 항해시 안정성을 높여주는 덩치,[93] 깊은 물 속에서도 안전하게 작동하는 어뢰발사관, 매우 훌륭한 승무원 복지 등 성능으로는 결코 타국의 잠수함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으며 자동현적장치[94]라 하여 '''잠항심도 유지를 가능케 하는 장치도 있는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다른 잠수함보다 위에 있었다.
일본군이 잠수함을 보는 시선은 러일전쟁 당시의 어뢰정의 연장선이었는데, 당시 어뢰정들이 야음을 틈타 항구에 모여있던 러시아 함대에 기습 어뢰공격을 가해 상당한 활약을 했던것에 기인한다. 여기서 재미를 꽤 본 일본군은 이후로도 어뢰전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95] 문제는 잠수함 역시도 이 연장선으로 생각한 것이다. '''한 줄로 요약하면 잠수기능 넣은 어뢰정이 적 전함 박살내는걸 기대한거다.''' 저 거대한 선체는 원양으로 나가서 적 전함을 수색하고 직접 공격하기 위한 충분한 물자 탑재를 목적으로 설계되고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시초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부터 유보트가 '''잠수함은 통상파괴작전에 적합하다'''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 물론 독일이 이후 잠수함들을 통상파괴에 집중하여 연합군이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어느정도 전과를 올렸다. 한편 유보트 때문에 고생했던 영국은 통상파괴 뿐 아니라 잠대잠 임무까지 염두에 두고 잠수함을 설계하여 잠대잠 전투에서도 매우 큰 전과를 올렸으며[96] 지중해에서는 추축국 수송선단의 씨를 말려버리는데 한몫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통상파괴 뿐 아니라 물자수송, 정찰, 조종사 구출, 대잠임무, 적 주력함 공격, 기뢰부설등 각종 임무에 투입하였고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8.1. 잠항능력의 부재


일본 잠수함은 완전 잠항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순잠형 기준 '''70~90초''', 해대형 기준 '''70~80여초''', 로급 기준 '''60~65초'''정도로 '''매우 길고''', 크기와 무게 중심 때문에 급격히 잠항하려 하면 재수 없을 경우 그대로 회복력을 잃고 지옥까지 다이빙 해버릴 수도 있었다.
현대의 잠수함들에게 큰 중요성을 차지하지는 않으나 2차대전기 잠수함들이 왜 잠수완료시간을 중요하게 여겼느냐면, 우선 2차대전기 잠수함들은 현대의 잠수함들 마냥 항상 물 속으로 잠수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사실상 가잠함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며 배터리 충전 등을 위해서 상당시간을 부상한 상태로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갑작스레 구축함이나 대잠 초계함 등의 기습공격을 받으면 거진 신나게 두들겨맞거나, 심하면 들이받힐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잠수함 입장에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대잠초계기라도 날아드는 순간 데꿀멍을 시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감안해야 했다.
실제로 독일이 전쟁 초반에 700톤급 잠수함을 주로 사용한 이유가 잠항 속도나 수중에서의 균형 회복 등을 따져봤을 때 저 정도 잠수함이 가장 적절했고, 개전 이전에 조약으로 배수량 제한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들 덕분에 VII형 유보트의 경우 실전에서 급속잠항시 17초가 걸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잠항능력을 기록했으며 그 위의 체급을 지닌 잠수함은 소수의 원거리 작전용 잠수함 및 대양에 나간 다른 유보트에게 물자 보급을 담당하는 보급선이었다.
미군 잠수함 역시 덩치가 크고 잠항 속도가 다소 둔한 단점이 있지만, 광대한 태평양에서 활동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대형화는 불가피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기술력은 충분했기에 개량을 거치고 승조원의 훈련을 강화하여 가토급 잠수함 기준으로 급속 잠항에 걸리는 최소 시간이 30여초[97]여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미국 잠수함들의 큼직큼직한 덩치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빠른 속도인데 애당초 가토급을 위시한 미국 잠수함들은 '''대공레이더와 수상레이더를 탑재해 조기에 일본군 항공기나 군함을 탐지하고 미리 잠수'''해버리는 경우가 많아 그나마 있는 단점들도 묻혀버렸다(...).
일본 잠수함의 형편없는 잠수완료시간의 원인은 잠수함의 덩치에서 오는 무식하게 큰 용량의 밸러스트 탱크와, 덩치에 비해 형편없을 정도로 작게 뚫어놓은 자유충수구역 배수구였다. 본디 배수량이 다소 큰 잠수함의 경우에는 덩치에 걸맞게 밸러스트 탱크 역시도 덩치가 커지게 마련이었고, 그에 따라 잠수시에 유입을 시키는 해수가 밸러스트 탱크 안에 차는 시간이 덩치가 다소 작은 잠수함들에 비해 늦기 때문이다.
즉, 덩치에서 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고 일본 잠수함은 타국 잠수함들에 비해 훨씬 더 용적이 넓은 밸러스트 탱크로 인해 그만큼 충수완료가 늦어지게 되고, 또한 쬐끄만하고 그닥 효율적이지 않은 배수구와 그 위치까지 더해진데다가 타국 잠수함에 비해 상수까지 커져서 잠수완료시간은 시궁창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뢰나 기관등의 중량물 배치, 효율적인 밸러스트 탱크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했고 물론 이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라 복층식으로 배수구를 뚫어보는 시도도 해봤지만 '''잠수하면서 가장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할 선수 부력 탱크의 배수구 크기는 제일 쬐끄만하다.''' 아니, '''없는 경우도 있다.'''
덩치에 의해서 오는 단점들중 다른 하나로는 잠수완료 후에도 잠항이나 부상각 등에서 제한이 온다는 것인데, 전후 미 해군 보고서에 따르면 안정적인 심도 도달을 위한 잠항각은 좋아봐야 15도 정도가 한계라고 보고하고 있었다. U보트가 보통 25도는 우습게 내려가고, 실전 기록에 따르면 '''56도'''[98]라는 제정신나간 잠항각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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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적국인 영국, 미국, 소련의 사례를 잠깐 들자면, 윗 사진에 나온 영국 해군 T급 잠수함의 경우에는 극한의 잠수완료시간을 얻어내기 위해서 선체 '''측면의 배수구를 아예 일렬로 큼직큼직하게 뚫어버렸고'''[99], 선수 부분의 필요없는 자유충수구역에 '''외부 어뢰발사관을 추가'''해버려 자체적인 화력강화도 꾀함과 동시에 '''전방 상부갑판을 상당수 절단'''[100]해버리고 폭 역시도 좁혀버려 실질적인 자유충수구역의 용적을 줄여버리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근 20~25초 사이의 신속한 잠수완료시간을 손에 얻어냈다. 아쉬운 점이라면 외부 어뢰발사관의 형태가 문제인데, 빨리 잠수할수는 있어도 수중 저항을 상당히 만들기 때문에 수중속력에서는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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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토급 잠수함의 경우 역시도 초창기에는 단일 배수구로 뚫어놓고 있었지만 오버홀 작업을 거치거나 태평양 전쟁 중반기에 건조된 잠수함들의 경우에는 '''배수구를 아예 선체 상부갑판의 선미까지 대놓고 일렬로 뚫어버렸고''' 발라오급 잠수함의 경우에는 복층으로 배수구를 많이 뚫어버리기도 했다. 선수 부력 탱크 배수구 역시도 적절한 위치에 큼직큼직하게 잘 뚫어놨으며 함교 내의 여분 공기가 남아 잠수완료시간이 늦어지는것을 감안해 함교 양 측면에 승무원 통행로 겸 함교 배수구를 뻥 뚫어버리는 노력을 기울였고 심할경우 '''일부는 아예 함교 바로 앞에 이런 출입구를 내버리는 비범함을 선보였다.''' 또한 상대적으로 선수 방향으로 상당히 몰려있는 밸러스트 탱크 위치로 인해 그 큼직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최단 30초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길수 있었다. 덩치 자체에서 오는 한계를 각종 꼼수로 해결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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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실질적 주력인 S급의 경우 '''본래 설계자체가 독일 U보트의 배다른 자매다.''' 그래서 U보트에서 흔히 볼수 있는 옆으로 늘려진 형태의 배수구를 가지고 있는데, 선수 부분부터 선미까지 쭈욱 잘 뚫어놓은데다가 '''간격이 매우 촘촘하다.''' 거기에 잠수함 자체의 비교적 작은 덩치까지 합해졌고 밸러스트 탱크가 압력선체 쪽으로 많이 파묻혀버린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실질적인 밸러스트 탱크의 용적 자체도 줄은 편이고 상부갑판의 넓이 역시도 좁은 편이기에 S급 역시도 25초 정도의 괜찮은 잠수완료시간을 기록해내고 있는 판국.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선수 배수구가 뚫려있지 않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나 '''애당초 갑판의 넓이가 저렇게 좁으니''' 개선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테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까지는 못 느꼈을 듯 하다.
이렇듯 일본 이외의 나라들이 '''누가 더 빨리 대가리를 박느냐'''를 가지고 미친듯이 짱구를 굴리고 있을 동안, 일본은 정말이지 엉뚱한 구석에서 투자를 하고 있었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물론 일본군도 눈이 없는건 아니고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순잠형 잠수함들의 경우에도 영국의 T급 잠수함이나 미국의 가토급과 유사한 일직선의 배수구를 화끈하게 뚫어버리고 배수구 역시도 복층으로 뚫은 과감함은 선보였으나 '''여전히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할 선수 부분의 배수구는 쬐끄만하거나 아예 안 뚫려있다!''' 센토쿠급의 경우 이런 한심했던 잠수완료시간에 대한 반성이 반영되었던지 40초라는 대기록[101]을 세우긴 했으나... '''센토쿠급이 언제 실전배치되었는지 잘 생각해보자.'''
잠항 심도는 유보트보다 크게 떨어져서, 저 덩치에도 불구하고 안전심도는 100m 정도다. 일본군은 양호한 잠수심도라고 했지만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셈이다. 심지어 몇몇 함선(로급(이(1등)로(2등)하(3등) 잠수함)은 75m 미만이라는 기가 막힌 잠항심도를 자랑했다.
낮은 심도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선체 접합의 상당수가 리벳 접합식이라는 것이 원흉'''이 되었고 '''일부 구획에서나 제한적으로 용접 접합이 이루어졌기 때문'''[102]인데, 그 당시에 활약했던 독일군 유보트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인 7형은 230미터까지 잠수 테스트를 했고, 설계 상으로는 최대 250 ~ 295m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 예상되었다. U-boat가 나오는 영화에서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더 잠수한다'라며 최대 잠항심도 이하로 내려가는 장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며, 실제로 비상잠수를 통해 적의 폭뢰공격을 피한 사례가 많다. RO-11역시 유보트와 동급의 700톤급 잠수함이라는걸 생각하면 기술력의 차이가 엄청난 셈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깊게 잠수할 수 있는 유보트도 대잠세력에게 집중공격을 받아 손실이 많았는데, 그보다 더 느리게 잠수하고, 얕은 심도만 유지가능한 일본군 잠수함이 문제가 없다는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모순'''이다. 그나마 일본군의 2등 잠수함들은 유보트와 비슷한 중~소형 체급에 잠항속도 하나만큼은 빨라서 이들을 추적하던 영국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잠항심도가 저 꼴이었기 때문에 폭뢰에 극도로 취약해서 결국 생존률은 거기서 거기였다. 더더욱 끔찍한 것은 수중항해시의 선회력이 정말 형편없었다는 점이었는데 VII형 유보트 기준으로 7노트 속력으로 항해시 360도 선회하는데에 280초가 소요되어 대전기 잠수함들중 가장 민첩한 편이었으나 그나마 작은 편인 로급의 경우 비슷한 조건에서 ''''10분'''이 소요되었고, 순잠형들은 '''12분을 초과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적인 미군의 주력 잠수함 살몬급 잠수함의 경우도 75m를 기록했으며 가토급 잠수함도 안전심도가 90m였다는 점이지만, 실전에서는 살몬급의 경우 폭뢰로 손상을 입고 176m까지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른 기록이 남아있으며 가토급의 경우 120미터까지 내려가서 폭뢰를 피한 사례가 있는데다 복원성이 좋아서 잠수하다가 회복력을 잃고 지옥으로 다이빙한 일은 없었다. 또한 신뢰성과 정비성도 매우 좋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미군은 여기에도 만족을 못했는지 안전심도 120m를 찍는 발라오급 잠수함 128척을 찍어냈다. 일본군 잠수함도 안전심도가 100m니까 겨우 20m만 차이난다고 할지 모르지만, 발라오급 잠수함 USS 탱은 첫 번째 출격에서 일본군에게 쫓길 때 612피트(약 187m)의 심도까지 잠수해서 탈출했다.

8.2. 정숙성


커다란 덩치로 인한 정숙성 저하가 이호 잠수함들의 약점이었는데 안습한 급속잠항 능력, 그리고 초기형 이호들의 별로 깊지 않은 잠항심도와 안좋은 시너지를 일으켜 '''조용하고 은밀하게''' 적을 괴롭혀야할 잠수함이 타국의 것에 비해 쉽게 위치가 들통나버렸다. 이는 정말 큰 문제였는데 왜냐면 수상전투력이 형편없는 잠수함은 수상주행중에 적함이나 적 공군기에 발견 되면 최대한 빨리 깊이 잠수해야 한다. 그런데 긴급잠수 시간도 한세월 걸리고, 기껏 잠수해 봤자 잠항심도가 뻔한 관계로 폭뢰공격을 피해 도망치기도 쉽지 않은 일본군 잠수함은 전쟁 말기엔 대부분이 격침당해 주력 잠수함이던 순잠 을형의 경우 단 두 척만 살아남을 정도였다.
그럼 미군 잠수함의 정숙성은? 아래로 내려가면 미군의 격침전과가 나오니 그걸 참고하자.

8.3. 어뢰 탑재 수량 부족


일본군 잠수함은 어뢰 탑재량이 많아봤자 12~20발 정도로 덩치에 비해 굉장히 모자랐단 것도 단점이다. 동시기 미국의 주력 잠수함인 가토급은 일본의 1등 잠수함보다 한 체급 낮은(2,424t) 잠수함이면서도 24발.
그나마 품질 면에서는 일본군의 어뢰가 미군 어뢰보다 뛰어났다. 미군의 어뢰가 워낙 형편없는 성능을 자랑했기에 탑재량은 부족해도 전투력은 오히려 비슷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군도 어뢰의 문제점을 알고 성능을 개량했고, 전쟁 후반기에는 상당히 우수한 성능의 어뢰를 보유하게 되었다. 한편 일본군의 자랑이었던 산소어뢰의 경우 매우 뛰어난 속도와 성능을 자랑했지만 '''유폭 가능성이 높다.''' 화력을 위해 안정성을 갖다 버린 설계라서 실제로 산소어뢰 유폭때문에 가라앉은 네임드 일본해군 함선들이 몇척 있다.

8.4. 공격 목표를 잘못 지정


일본해군은 잠수함 어뢰에 함급 할당량이 있었다. 10개의 어뢰가 있으면 6개는 전함에, 3개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에, 남은 1발은 수송선에 사용하도록 규정해둔 것인데... 당시의 어뢰는 직진어뢰가 대부분이고 유도어뢰도 개발단계인지라 현대와 같은 정밀한 유도어뢰가 아니므로 동일목표에 2-3발 사격은 기본인데다가 아무리 수송선이라도 단 1발의 어뢰만 맞았다고 격침되는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으므로 사실상 수송선에 대한 공격은 안중에도 없는 셈이다. 이건 순양함이나 구축함을 대상으로도 적용할 수 있는데, 어뢰 3발로 순양함 한 척을 끝장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일본군의 묘코급 중순양함 묘코는 USS 데이스가 쏜 6발의 어뢰를 모두 피했고, 중순양함 아오바는 대파 상태에서 7발의 어뢰를 모두 피했다.[103] 일본군이 할 수 있다면 미군도 해낼 수 있다는 뜻이므로, 함급 할당량을 정한 건 일본군의 큰 실수였다. 유도어뢰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상 2차대전기에 유도어뢰를 실전배치한 국가라 해봐야 독일과 미국뿐이었다.
반면 미군은 [104] 일본 군함보다는 수송함을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그 결과 일본의 수송라인은 완전히 끊어졌다.
이런 꼴을 보다 못한 독일군은 "미군의 수송선을 공격하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히 합리적인 충고를 해줬지만 멍청한 일본군은 그 충고를 듣지 않았고 미군 잠수함을 막지도 못했다. 게다가 대본영이나 군령부, 연합함대만 그랬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일선에서 군함을 이끌고 싸우는 장교들도 이런 개념을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단 널리 알려진 것과 다르게 일본군 잠수함이 수송함을 기피하진 않았다고 일본은 주장한다. 순잠 을형 에이스인 기니시 타카이시 중좌만 해도 12척의 수송선을 격침시켰고 과달카날에서도 급유함들이 격침당해 미군의 해상작전이 중지되는 일도 있는 등 결코 그 잠수함을 다루는 이들이 수송함의 위험성을 모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유보트들과 다르게 전쟁 후기에도 자신들의 장점을 살려 연합군 함선들을 격침시키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105]
국가
잠수함 보유수
잠수함 상실수
손실률
잠수함 격침전과척수
잠수함 격침전과톤수
독일
1,210
752
62.14%
2,000
14,500,000
미국
298
47
15.77%
1,150
4,860,000
영국
228
71
31.14%
493
1,500,000
일본
182
130
71.42%
170
1,000,000
일본은 '''잠수함 손실률이 가장 높은 주제에 전과가 가장 적다.''' 제대로 된 해군도 없고 공군의 지원도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연합군의 대잠전력에게 잠수함만으로 부딪치는 계란으로 바위깨기를 한 유보트보다도 손실률이 더 높다는 것은 한마디로 답이 없다는 것. 다만 유보트의 경우에도 대전 중반까지는 항공전력의 위협이 적은 지역을 골라서 작전하기는 했고 격침 시킬 표적이 넘쳐나기도 했지만 영국과 미국의 격침전과와 비교해도 초라한 수준이라 변명의 여지는 없다.
게다가 일본이 잠수함의 주 목적으로 삼았던 군함을 대상으로 하면 더 안습해지는데, 일본군 잠수함이 올린 전과란 것이 항공모함 2척, 호위항공모함 1척, 중순양함 1척, 구축함 1척에 불과하다.[106] 이에 비해 통상파괴작전에 주 목적을 둔 미군 잠수함은 일본 상선을 격침하면서 짬짬히 군함도 때리면서 전함 1척, 항공모함 4척[107], 경항공모함 4척, 중순양함 3척, 경순양함 8척, 구축함 35척, 잠수함 26척 (이중 1척은 유보트)라는 전과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군 잠수함은 원래 목적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통상파괴작전도 잘 수행하지 못하는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게다가 잠수함은 다른 함선과는 달리 함장의 지휘하에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가장 많은데도 불구하고 전과가 저 따위인 것을 보면, 윗선 뿐 아니라 아래도 별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잠수함의 성능이 워낙 딸리다보니 유능한 함장과 승무원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전과를 더 올렸을지는 미지수.
그리고 위에서 나름대로 잠수함 에이스와 통상파괴작전 사례를 늘어놓았는데, 딱 자랑할만한 것이 저 정도밖엔 안되는데다가 유보트와 비교하면 태양 앞의 촛불처럼 매우 빈약한 전과다. 게다가 일본군이 미국 수송라인을 괴롭힌 적은 딱 저 시기, 과달카날 전역 전기 빼고는 없다. 얼마나 자랑할 것이 없기에 일본 국내에서는 타국에서는 격침 전과로 넣지도 않는 항공모함 1척, 전함 1척의 손상도 당당하게 전과랍시고 자랑하는 안습한 경우까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저런 말도 안되는 대본영의 제약 덕분에 미군은 아무 제약없이 마음껏 상륙전과 물자수송을 할 수 있었으며, 일본군 잠수함들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어뢰 한발을 수송선에 날린 이후에는 미군 수송선을 봐도 소 닭보듯 하며(...) 공격할만한 미군 전투함들을 찾아 하릴없이 떠돌다가 구축함 등 대잠 세력에게 걸려서 허무하게 격침되었다. '''전쟁에는 전혀 재능이 없는''' 대본영 수뇌부로부터 주먹구구식 전술을 강요받은 일본 잠수함들은 누워서 떡먹기인 수송선 격침조차도 수행 못하고 함대 총톤수만 낭비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대본영은 리스크가 큰 잠수함 진영들을 고집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개선'''이다. 산개선은 적 함대의 손쉬운 포착을 위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잠수함들이 1열 횡대로 줄을 지어 배치를 시키는 진형인데한번 잠수함의 위치가 발각되면 나머지 잠수함들의 대강의 위치들을 그대로 파악당하게 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 상태에서 '''암호가 뚫리면서''' 지옥도가 펼쳐지게 되는데 당장 그 성능 좋다던 유보트들도 암호가 뚫리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암호 뚫린 것을 깨닫고 온갖 트릭을 써서 살아남으려 했는데 대본영은 암호가 뚫린 것도 모르고 그런 진영들을 고집했다. 덕분에 아무리 구축함이 잠수함을 잡기 위한 함이라고 하지만 호위구축함인 DE-635 잉글랜드 단 1척이 12일만에 6척의 일본군 잠수함을 혼자서 잡는 위업을 세우게 되었다. 출처.
결국 내놓은 해결책이라는것이 산개선의 개량 진형인 '''산개면'''이다. 물론 이 산개면의 효과에 대해서는 '''"산개선이나 산개면이나 그게 그거..."'''라는 일본 잠수함장과 승무원들의 증언으로 대신한다.

8.5. 과도한 목적의 잠수함


일본 해군 잠수함은 '''육군 부대에 대한 수송작전'''도 담당을 하게 되었는데 '''육군 소속 군함''' 항목에도 나와있듯 사실 이는 처음엔 포위된 육군 부대에 대해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보급물품을 전달하는 잔머리를 굴리다 생긴 것이다. 문제는 이걸 가면 갈수록 '''정식작전으로 편입시켜댄것...''' 물론 이런 짓이 힘들고 삽질해대는 육군이 아니꼬와서 이런 수송작전을 중단하긴 했다만..[108]
미군의 잠수함들도 게릴라에 대한 보급이나 격추된 파일럿을 구출하는 등의 작전에 투입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잠수함을 투입하기 알맞은 임무에 투입한 것이지 일본처럼 섬에 고립된 연대급, 사단급 병력 부대에 좁은 잠수함으로 실어나를수 있는 한줌정도의 작은 물자를 던져주라고 밀어넣은게 아니다. 훨씬 빠르고 함내 공간도 여유가 있는 구축함으로 물자를 던저주고 도망가는 도쿄 익스프레스로도 제대로 된 보급은 불가능한데, 잠수기능을 위해 속도도 적재량도 전부 희생한 잠수함으로 깔짝거려봤자...
미국 잠수함대는 좀 더 나아가서 대범한 작전을 다수 시행했는데, 중요 타격점에 로켓탄이나 덱건을 쏴갈기거나 '''일본의 주요 항구에 기뢰를 부설'''하기도 했다. 심지어 USS 바브는 일본군 점령지인 사할린에 로켓탄을 퍼붓고, '''수병들을 상륙시켜 철도를 폭파해버리기까지 했다.''' 이 수병들은 코만도 같은 특수부대원이 아닌 평범한 수병들이었지만, 현대적인 특수부대 작전에서 특수부대를 잠수함으로 투입하는 작전의 시초가 되었다. 일본 수송라인의 대부분을 끊어버린 것이 미국 잠수함이다. 1944년 말에 도달하면 미국 잠수함이 너무 많은 일본 선박을 잡은 덕분에 일본 내에서 선박 공급량이 소모량도 충족하지 못해서 바다 위에 일본 선박이 없어지는 결과가 나오자 정크선 같은 소형 목재 선박까지 어뢰로 격침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일본군은 이것도 모자라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로 함재기를 탐재한 잠수항공모함'''[109]을 미국 서해안에 투입시켜 미국 본토나 파나마 운하에 대한 함재기 폭격이나 덱건을 이용한 포격을 한다는 둥 가이텐 모함으로 카미카제 작전에 투입한다는 둥 미국 서해안에서 폭탄 단 열기구를 보내겠다는 둥 얼핏보면 꽤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많이 만들었다. 문제는 시원찮은 성능의 수상기에서 떨어트릴수 있는 수십키로 짜리 폭탄 한두발로 입힐 작은 데미지를 위해 물자도 없는 나라가 아예 전용 항공기와 세계 최대급 잠수함을 제작한다는 난리법석으로 물자 낭비에 더욱 열중한거다. 폭탄 열기구 역시 지구를 반바퀴 돌아 대충 날아가는 물건이니 정밀한 타격을 기대하기는 아주 무리였고.
잠수 항모가 공격 준비를 완료한 시점이 '''1945년 4월'''... 독일이 패배한게 같은 해 5월이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게 4개월후인 8월이므로 시점에서 파나마 운하의 파괴와는 관계없이 이미 일본은 끝장날 기세였다. 그나마 1942년에 잠수함 I-25에서 출격한 수상기가 오리건 주의 삼림에 소이탄을 투하했으나, 나무 몇 그루를 태우는 업적을 달성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미국 산림청 소속 소방관들이 출동하여 금세 화재를 진압했다.=
결국 자기들 할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얼마 있지도 않은 물자와 에너지를 엉뚱한 삽질하는데 잔뜩 쏟은거다.

8.6. 승조원 배려의 부족


좋은 편이었다는 승조원 배려에도 구멍이 있었다.
일단 타국 해군은 잠수함 근무가 워낙 열악한 점을 인정하여 식사라도 풍족하게 해주려고 배식의 양과 질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런데 일본 해군은 잠수함 승조원은 운동부족에 햇빛을 제대로 쬐지 못하는 상황에서 식사를 많이 하면 비만 및 '''피부병'''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상한 이유로 도리어 배식량을 줄였다. 물론 정신력 드립치면서 한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승조원들을 배려한다고 한거지만, 사기에 영 좋지 못한것은 당연지사. 대신 장기보존에 적합한 식재료 공급과 신선제품 공급에 신경을 쓰긴 썼다. 그런데 그 결과라는게 수경재배 양파, 상추 정도에 적은 식사양까지 합쳐 영 시원찮았다.[110] 잠수함 승조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반찬으로 '''케찹'''을 뽑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 케찹은 부피를 줄이고 보관을 오래도록 하려고 사각형으로 포장해 열풍건조시킨 고형 케찹이다. 그나마 이거 하나는 매끼 밥위에 올려먹을 정도로 풍족하게 나와서 뜨거운 밥위에 녹여먹는게 유일한 낙이었다는 증언이 나오는 판국이다. 때문에 당시 승조원들의 증언에서 거의 반드시 언급되는 추억 보정의 부식이다.[111]
나름 승조원의 복지를 챙겨준다고 잠수함마다 군의관을 태운 것도 호불호가 갈린다. 이들 군의관이 대부분 피부과나 '''정신과''' 전공자였던 점 때문인데, 보통 잠수함은 포격 등에 노출되는 외상보다는 좁고 햇볕이 거의 안 들고 불결한 환경에 노출되며 생기는 각종 피부질환과 폐쇄공포증 치료를 위해 이들이 선발된 것이다. 보통 일선 전투함이나 육상 야전부대의 경우 외상을 입은 승조원을 응급처치 해줄 외과 군의관을 선호하긴 하나, 피부과나 정신과 군의관이라고 해서 응급처치를 못 하는 건 아니고 전공과가 뭐든 간에 일단 의대 졸업한 의사라는 면에서[112] 오히려 의무부사관이나 약식으로 의무교육을 수료한 다른 승조원들보다 응급처치도 잘 했을 듯 하지만, '''그냥 외과의를 태우는게 더 나았을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도 이들 비외과 군의관이 쓰잘데기 없었다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단지 외과의를 태웠으면 효과가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정도이다. 실제로 함내에서 정신적인 문제로 패닉 상태에 빠진 함장을 정신과 군의관이 진정시켜 무사히 귀환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일본 잠수함은 실용성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덩치가 어느 정도 있는 배들이었기에 군의관과 의무실 등을 둘 충분한 여건이 보장되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기자재의 보호를 위해 에어컨을 설치해서 냉각을 하는 미군 잠수함도 열대지방에서는 실내온도가 40도에 육박해서 고통에 시달려야 했는데, 센토쿠급 같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아예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에어컨 용량이 약했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대부분의 일본 해군 잠수함은 더위로 승조원이 쓰러지기도 했고, 선내의 각종 기기에 이슬이 맺혀서 오동작을 일으킬 확률이 엄청나게 증가하므로 전투효율이 떨어졌다. 그리고 냉각장치가 있더라도 가동 소음이 워낙 커서 적에게 탐지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있어도 사용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8.7. 함대결전사상


고대 시절부터 해군이 있는 이유가 자국 해역과 수송라인을 지키는 것인데, 일본군의 경우 함대결전사상을 채택한 덕에 시대에 뒤떨어져 잘못된 방식으로 잠수함을 발전시켰으니 전쟁에서 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일본군의 가장 큰 적은 언제나 멍청한 수뇌부였고 당연히 그 책임도 매우 크지만, 위에서 멍청한 전략전술을 현장에서 나름대로 상황에 맞춰서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따른 일본군 장교와 사병도 그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잠수함처럼 독자 행동이 가능한 함선의 경우에는 변명의 여지도 없다. 현장을 위한 변명을 굳이 하자면 잠수함 성능이 저따위인데 뭘 더 할 수 있겠냐마는...
일본 해군이 군항을 폭격했다면 미군은 도시를 폭격했다. 아, 물론 군항도 폭격하긴 했고.

9. 관련 문서




[1] 1차 대전시의 독일은 영국에 이은 해양강국이었으나 1차 대전 패전과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으로 모든 함선을 잃어버리고 함선 건조와 보유에 제약이 걸렸으며 전후의 혼란으로 설계능력을 갖춘 인원들을 잃어버렸다. 독일은 전투력 유지를 위해, '''자동차를 통해서 전차 훈련을 시키고, 글라이더로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했지만, 전투를 위한 무기들을 만들 설계능력과 기술력은 대전막바지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재무장을 시작한 이후에는 필사적으로 회복을 시작했지만, 전쟁이 너무 빨리 터지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괜히 에리히 레더 제독이 '''이제 크릭스마리네는 장렬히 죽는 일만 남았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나마 있던 전함마저 이런저런 삽질로 잃어버리거나 못쓰게 되자 남은건 유보트밖에 없게 되었다.[2]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4척, 아이오와급 전함 4척이 리슐리외를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전력이며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척도 조약의 영향으로 성능의 제약이 걸려있지만 맞상대와 제압이 가능하다.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매사추세츠는 리슐리외급 전함 2번함 장 바르를 일방적으로 두들겼다. 비록 장 바르가 미완성이었다고는 하나 최소한 장갑 구획은 완성된 상태였고 사우스다코타급의 주포가 유효타를 낼 수 있다는 점은 확인된다.[3] 전함간 1대1 대결로는 힘들다. 일단 넬슨급, 킹 조지 5세급 전함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KGV는 주포가 14인치라서, 넬슨은 주포가 16인치지만 실패작이라서 화력에서 밀린다. 하지만 항공모함과 연계하거나 전함들로 다구리를 치면 가능하다.[4] 오히려 말레이 해전실론 해전에서 일본한테 지는 바람에 일본이 더 기고만장해졌다.[5] 8척의 전함과 8척의 순양전함의 함대를 건설해 자신들의 입지를 분명히 하고 영미 해군을 압도하려는 계획.[6] 어느 정도로 약한지 하면 A6M의 경우 급강하 속도 제한이 초, 중기형 기준 630km/h 정도 될까말까 한 629km/h 정도였고, 그 이상으로 속도가 붙으면... 공중분해된다. 비교해보면 이 당시 미군의 주력 함재기인 F4F 와일드캣이 아예 기체강도를 믿고 급강하 속도 제한이란 걸 걸어놓지도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7] 일본군 아니랄까 여기서도 병크가 터지는데, 정작 전함부터 시작해서 항공모함을 포함한 배들은 오히려 연료탱크를 축소시키면서 항속거리를 줄이고 있었다.[8] 실제 미드웨이 해전에서 아카기의 경우 명중탄은 단 한발이었지만 이 명중탄이 격납고의 소화시설을 작동불능으로 만들어 결국 화재진압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9] 그림을 자세히 보면, 격납고 바닥에 흰 줄이 비행기 모양으로 그어져 있는데, 일본군 항모에서 함재기들을 최대한 탑재하기 위해 그은 '주기선'이다. 바로 위에 있는 에식스의 단면도와 대조해 보자. [10]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북부에 있는 도시.[11] 정확히는 승무원을 지휘하는 장교.[12] 정확한 다이호의 침몰 원인은 함정 연료로 쓰던 타라칸 정유가 아니라 어뢰 충격으로 새어나와서 기화한 항공유다. 필리핀 해 해전#s-3.5.2 문서를 참고하자.[13] 물론 이 당시 비행갑판에 장갑을 갖춘건 영국의 항공모함 정도이며 이로인한 무게중심의 상승등이 문제가 되어 함재기 탑재수가 경항모 수준이었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14]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중간에서 멈춘다든지 아니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경우 엘리베이터 통로가 굴뚝 역할을 해서 화재현장의 연기를 배출하면서 산소를 공급, 화재를 키우는 현상이 발생한다[15] 쉽게 생각해서, 집에 가스가 터져 불이 났을 때, 창문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을 생각해보면 된다. 개방식이라면 창문이라도 깨고 탈출하기나 하지, 폐쇄식은 긴급 탈출하기도 곤란한 데다가 환풍기도 개판이라 시밤쾅!!!이라...(...)[16] 게다가 제로센의 기체 재료는 무게를 가볍게 한답시고 알루미늄 합금을 썼는데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문제는 부식이 잘 되고 취성이 강해서 잘 깨지는 초초두랄루민(Extra Super Duralumin. 약칭 ESD.)을 썼다는 것. 그것 때문에 급강하 속도도 제로센 초-중기형 기준 630km/h보다 조금 못미치는 629km/h 정도였다. 즉, 1km/h 만 더 올라가도 동체와 날개 연결 부위에 금이 간다. 제로센의 기체 강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제로센의 원래 이름인 A6M 항목을 참고하자.[17] 실제로 좀 더 해상에서의 운용이 긴 수상기형 제로센인 2식 수상전투기 루페(Rufe)는 마그네슘 부품을 다수 제거하는 통에 기체 설계가 상당히 변경되어 생산하는 회사마저 나카지마로 바뀌었을 정도였다.[18] 태평양 함대 소속이던 요크타운도 가끔씩 대서양에서 유보트 사냥을 하긴 했다. 진주만 공습 당시 진주만에 항공모함이 한 척도 없던 이유는 이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진주만 공습 이후 대서양에 배치된 함정들은 태평양으로 차출된다.[19] 핵심 문제인 대미지 컨트롤 능력의 부재는 격납고의 구조가 문제가 아님을 보여줬는데, 특히 시나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20] 오죽하면 전후 미군의 보고서에서 일본의 군함에는 대미지 컨트롤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고 깠다고 한다.[21] 이 일부의 경우도 야마토급 전함을 위시한 극소수 전함들이다.[22] 미드웨이 해전에서 카가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카가는 초반기에 함교에 직격탄을 받아 함장 이하 지휘부가 일시에 전멸[23] 아래의 이미지들 출처는 http://blogs.yahoo.co.jp/kenchick07[24] 참고로 류조류조 문서에 있는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배의 상단이 하단보다 훨씬 크다는 치명적인 문제로 인해 일반적인 항공모함 함교인 아일랜드 형 함교를 설치할 경우, 항진하는 방향에 폭뢰가 있든지 어뢰라도 와서 급히 변침을 한다면 균형을 못 잡아서 넘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25] 출처: http://hsfeatures.com/yorktownrc_1.htm[26] 당시 연합군측 전함들 중에는 3연장 주포탑도 아니고 4연장 주포탑을 단 것도 있었다.(킹 조지 5세급, 리슐리외급)[27] 실제로 카가에서 이질이 유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카기는 한 술 더 떠서 결핵까지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다..[28] 비행기가 그냥 해수면을 향해 돌진하는 이상한 광경인데, 필리핀 해 해전에서 다이호를 향해 어뢰가 다가오자 파일럿 고마쓰 상사가 막 이함한 함재기로 어뢰를 향해 다이빙, 모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문제는 다이호로 오는 어뢰가 한 발이 아니었다는 거.[29] http://www.wwiiaircraftperformance.org/f4u/f4u.htmlF4U, F6F, F4F.[30] 엔터프라이즈의 활약도 뛰어났지만 렉싱턴급 항공모함에서 완성된 항모의 설계 개념이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에서 더욱 개선되어 개방형 격납고를 설치한데다 항공기의 운용 능력도 최고조를 찍어 이후로 기본적으로 동일한 시스템을 유지하게 된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에식스급 항공모함.[31] 데미지 컨트롤 문제 때문에 격침당한 대표적인 항공모함이 위에서 언급된 다이호다. 그 뒤에 나올 시나노의 경우는 데미지 컨트롤 문제 이전에 부실공사가 원인.[32] 이건 미국의 역량이 넘사벽이었던 것도 있지만...[33] 일례로 항모인 히요급만 해도 원래는 크루즈선(...)으로 건조될 예정이었던 배였다. 다만 히요급은 일제 정부에서 전시에 항공모함으로 개조할 것을 전제로 지원받아 건조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장에 나가 보지도 못하고 개장 후 함재기 인수 겸 마지막 작업하러 가다가(...) 레이더가 고장난 단 한 척의 잠수함에게 걸려서(...) 단 네 발의 어뢰를 맞고 격침당해서(...) 최단명 항공모함(...)으로 이름이 알려진 시나노야마토급 전함 3번함이었다(...).[34] 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전후 영국 경제가 더 큰 이유라고 보기도 한다. 미국이었으면 수리해서 사용할만한 상태이나 영국의 경제는 그야말로 개판이었기에 정말로 괜찮은게 아닌 이상은 그냥 스크랩처리했다는것.[35] 미국도 개념 자체는 있었고 어니스트 킹 제독이 1938년에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운용하는 훈련을 한적도 있었다.[36] 제대로 빡친 거 맞다. 오죽했으면 행정명령 9066호를 통해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일본계를 포함한 모든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강제수용조치를 취했겠나?[37] 그리고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추축국 전체가 미국과 전쟁상태로 돌입하게 된다.[38] 심지어 전함 바로 옆에 항공유를 만재한 유조선이 있었는데도 그건 그냥 건너뛰었다.[39] 이에 관한 설로는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당시 현장을 지휘하던 나구모 주이치와의 관계가 매우 안좋았고 총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전황을 듣고 전략적 목표인 항공모함들에 대한 타격소식이 없자 유류시설 및 정비시설 타격하라는 3차 공격을 지시했으나 나구모 주이치는 이미 2차공격으로 재기불능급의 큰 피해를 입혔다고 판단했는지 이를 씹어버리고 퇴각해버리는 악수를 뒀다 라는 이야기도 있다.[40] 전함을 뒤로 뺴둔거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항공모함에게 충분한 호위부대가 없었다는건 분명히 문제다. 왜냐 하면 항공모함은 주 목적이 함재기로 공격하는 것이므로 적의 항공기를 상대하는 대공포를 제외하면 자체 방어가 안되다시피 하기에 상대방이 만약 항공모함을 어뢰나 포로 정면 공격하면 그냥 격침된다. 함재기들 입장에서는 착함을 해야 하는 항공모함이 먼저 사라지는 셈이니... 이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공항을 이륙한 항공기가 착륙을 해야 하는데, 착륙할 공항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셈.''' 물론 주간에 다수의 항공모함으로 구성된 함대에 대응할 수 있는건 항공모함 뿐이니 전함을 탱킹으로 내세우는것도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대공사격을 해줄 호위함은 충분히 붙여줘야 했다.(항공모함을 논할 때 왜 항모전단으로 묶어서 논하는지 생각해보자.) 실제로 미드웨이 해전필리핀 해 해전 당시 미군은 '''일본군 연합함대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항공모함 기동부대 앞에 잠수함들을 깔아놨다.'''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정보수집을 우선으로 하고 있었기에 나왈급 잠수함 SS-168 노틸러스가 아라시를 유인하면서 본의 아니게 '운명의 5분'을 열었지만...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가토급 잠수함 두 척이 '''정규 항공모함 을 각각 사냥했다!'''[41] 심지어 요크타운은 최소 3달의 수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지만 당장 작전에 투입할 배가 없기 때문에 진주만에서 3일 동안 응급수리만 받은 채로 곧장 미드웨이 해전에 투입되었다. 그래서 내부는 아직도 만신창이라 기술자들이 연신 수리를 계속하고 있던 상태. 역으로 이 덕분에 미드웨이 해전에서 받은 파손 역시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수습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요크타운은 일본 해군 연합 함대를 두번이나 속여먹는다.[42] 사실 미드웨이 해전 항목에도 있지만 전함이 주축이 된 본대는 항공모함이 주가 된 제1, 제2 항공함대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미 해군은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항공모함만 탈탈 털어먹고는 재빨리 퇴각해버린다.(이 때 미 해군에는 전함이 없었으므로 포격전이 되면 기껏 이겨놓고 역전당할 게 뻔했다.) 실제로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미군의 목표는 ''''일본군의 항공모함만 골라서 격멸한다.''''였다. 잠수함과 뇌격기들의 무장인 어뢰의 신뢰도 문제만 일찍 해결됐으면 미 해군은 일본군 항공모함 항공대와 항공모함들을 따라오는 전함 부대(본문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일본군 해군은 미드웨이 공략을 위해 '''전함만 11척'''을 투입할 예정이었다!)를 함재기로 공격할 필요도 없이 '''잠수함으로 공격해서 잠수함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대전과를 썼을지도 모른다!'''[43] 셔터가 달린 개방식 격납고 채택, 정상적인 사이즈가 된 함교 등[44] 이로 인해 발라오급 잠수함 SS-311 아처피시는 '''어뢰 단 여섯발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모든 미 해군 잠수함 중 최대 실적을 올렸다. 그리고 단 한 척의 잠수함이 격침시킨 '''단일 함선 전과로 배수량 7만톤'''이라는 이 기록은 지금도 안 깨지고 있다.[45] 오카가 물위에 뜬 건 연료와 탄두가 채워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나노의 승조원들이 나중에 오카 설계자들을 만나 "덕분에 살았다. 고맙다"고 하자 오카 설계자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고. [46] 이렇게 하면 함선의 길이가 길지 않으면 밑의 전함 부분에 있는 대로 '''파고다 마스트'''(...)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항목의 이세급 항공전함의 사진을 보자. [47] 이 당시 항공모함은 대형 엘리베이터 정도를 제외하면 기술적으로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전투함을 중간에 항공모함으로 개수한 이유도 이대로 만들어 봤자 전투함에 들어갈 포나 장비가 부족해서 제대로 전투에 써먹을 수가 없으니 항공모함 개수해서 써먹으려고 한 것. [48] 솔직히 세토 내해의 얕은 수심을 고려해보면 구레 군항 공습에서 착저라고 적힌 군함들은 말로만 착저지 사실상 격침이다.[49] 사실 2차대전 이전 일본에서 고성능 안테나가 개발된 적이 있으나, 이를 이용해 레이더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것은 연합군 측이었고, 정작 개발국인 일본은 이를 아예 무시해 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이 문서의 상위 문서인 일본군/무기체계 문서의 야기 우다 안테나 항목을 참고할 것.[50] 이 견시원들 중에서 초기형 레이더에 필적하는 탐지범위를 보이는 비범한 시력을 지닌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견시원들을 두고 제식병기마냥 MK1. Eyeballs라 부르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 [51] 이 문제점은 사우스다코다를 집중사격한 키리시마의 사례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사우스다코타가 16인치 대응방어를 갖춘 전함인 반면에 키리시마의 주포가 14인치라서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관통이 안 되는 게 맞다. 문제는 키리시마가 사격한 거리가 5km도 안되는 근거리였는데도 이렇다할 피해를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거기다가 117발중 고작 2발을 맞추는 한심한 명중률은 덤이다. 반면에 같은 전투에서 워싱턴은 키리시마에게 75발의 발사해서 9발을 명중시켰다. 물론 당시 미 함대를 지휘했던 윌리스 A 리 제독이 미 해군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레이더 전문가이고 워싱턴 승무원들의 포술 숙련도도 대단히 뛰어났던건 감안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압도적인 차이이다.[52] 실제로 호위항모를 포격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레이테 만 해전#s-3.5.3 참고[53] 참고로 흘수선 타격에 집착했던 크릭스마리네의 전함 포탑의 앙각은 +30 정도.[54] 미완성 전함 도사를 대상으로 한 포격 시험에서, 기존 전함의 갑판장갑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시험에서 수중탄이 도사에 침수 피해를 입힌 것이 확인되었고 이것이 수중탄에 집착하는 발단이 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55] Number 12 Class Battleship.[56] 야마토급 전함#s-5.3 항목에서 보면 3번함인 시나노의 주포탑 전면장갑으로 나온다.[57] 해당 테스트는 상당히 근거리에서 0도로 발사한 결과물이므로 뚤리는게 정상이며 그래서 테스트와는 달리 실전에서는 아이오와급의 주포로 관통하기는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야마토 최후의 전투에서 부포가 아주 쉽게 뚤린 후 부포 탄약고 유폭으로 큰 데미지를 입었다. 문제는 일본군 답게 부포탄약고 바로 옆에 주포 탄약고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아슬아슬하게 주포 탄약고 유폭은 지나갔지만 만약에 터졌으면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58] 단지 히에이가 싸운 그 전투는 불꺼진 술집의 난타전이라 불릴정도의 개판에 옆에 보이면 쏘는 초 근접전이었다[59] 전함의 측면 주장갑 경사도는 잘 해봐야 20도 수준이기 때문에 45도 경사장갑을 채용한 T-34처럼 방어력이 크게 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서 경사장갑으로 늘어난 방어도는 스펙과는 달리 실전에서는 많이 깎인다. T-34의 45mm 전면장갑은 45도 경사장갑을 채용해서 스펙상 90mm의 방어력을 자랑해야 하지만 실전의 결과로는 60mm-70mm 수준의 방어력만 보였다.[60] 전후 미군 조사에 의하면 실재 장갑재의 수준은 345mm이며 경사장갑으로 인해 430mm의 효과를 낸다고 했다.[61] 16"/45 (40.6 cm) Mark I[62] 16"/45 (40.6 cm) Marks II, III and IV[63] 16"/45 (40.6 cm) Mark 6[64] 사실 그 시대에 리벳 접합이 주로 쓰인 이유는 잠수함의 압력선체에 쓰는 용접이 수상함용 강재와 맞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렇다고 용접만 보고 잠수함용 강재를 수상함에 그대로 적용시키려니 단가가 폭등한다. 그럴 바에야 리벳 접합을 그냥 쓰자가 되어버린 것.[65] 그런데 2번함 히에이도 일단 부품은 전부 영국에서 들여와서 일본에서 만들었으므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보인다. [66] 그렇지만 가만히 있다가 혼자 터진 사례는 나가토급 무츠 1건인데 이것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조사중 사보타주의 가능성이 거론되었으나 갑자기 군부측에서 조사를 중지시켰고 정확한 원인을 밝혀지지 않았다.[67] 물론 야마토 어뢰 피격 사건 후 야마토와 무사시는 해당 부분들이 개선되었고 무사시나 야마토는 각자의 최후에 엄청난 수의 어뢰를 맞고 나서야 격침되었다. 그리고 미제 항공어뢰는 잠수함용 어뢰와 비교해도 탄두에 작약량이 90%는 되기 때문에 약하다고 못한다.[68] 실전에서 그렇게 될 뻔 한 사례가 몇개 있는데 대표적인 게 미드웨이 해전이다. 물론 미드웨이 해전 당시만 해도 Mark. 14 어뢰의 신뢰도 문제가 심각했던 미군이었으니... 자세한 내용은 가토급 잠수함의 문제점 항목에서 어뢰 대목을 참고할 것. 아니면 어뢰 스캔들 문서로 들어가서 보면 훨씬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69] 구식 전함들도 42~43년에는 레이더를 장착하기 시작했고 대공포의 숫자도 증가했다.(정확한 설치시점은 대충 미드웨이 해전 이후로 보인다. 애초에 전파탐신이 필요없고 견시로 대응하면 된다고 하다가 크게 데인 것이 바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 급강하 폭격기, SBD 돈틀리스들에게 당한 운명의 5분이므로.)[70] 나구모에게는 전술적인 실책에 대한 책임을 물을지언정 전략적인 실책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미드웨이 해전의 책임을 묻자면 처음부터 작전목표의 우선순위조차 제대로 매기지 않은 야마모토의 실책이 제일 크다.[71] 물론 미군도 연안화력지원에는 주로 구형 표준전함들을 투입했고 신형 고속전함들은 그보다는 드물게 투입했다. 표준전함들이 지상화력지원에 대한 경험이 더 풍부했기 때문에 명중률이나 실질적인 목표달성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신형 전함들은 주로 함대 방공임무를 맡는 경우가 많았고, 이동 간 대함사격에 익숙하다보니 연안화력지원을 맡을 때면 엉뚱한 곳만 헤집어 놓기 일쑤였다고 한다.[72] 사실 미드웨이 해전 당시에는 항공모함이 주축이 된 제1, 제2 항공함대 뒤를 따라오고 있긴 했다. 그런데.. 간격이 너무 멀었다.(항공모함의 방어력은 의도해서 집어넣지 않고는 순양함과 구축함 같은 다른 수상함들에 비해 거의 0에 수렴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것 역시 멍청한 짓이다.) 그래서 일본군 연합함대 진로에 깔아둔 잠수함대로부터 이걸 보고받은 미군은 일본군의 항공모함만 골라서 탈탈 털어먹고는, 전함끼리의 포격전이 될 미드웨이 해전 2차전을 회피해버렸다.(이걸로 인해 미드웨이 해전을 프랭크 플레처 제독에 이어 지휘한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은 까임권을 얻었으나, 훗날 밝혀진 기록으로는 이 판단이 정확했다. 이때 미군은 전함이 없었다. 만약 2차전이 일어났다면 다 이겨 놓은 해전을 말아먹는 꼴이다.) 문제는 이때 Mark.14 어뢰의 문제가 해결됐으면, 잠수함대가 항공모함이 주축인 제1, 2 항공함대와 전함이 주축인 본대를 기습해서 잠수함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대전과를 만들 뻔했다는 거. 이때 미국이 노스캐롤라이나급을 조금 더 빨리 취역시키거나 살아남은 전함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아마 역사에 길이 남을 전함 무쌍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적의 전함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상대라곤 한방만 스쳐도 바로 골로 가는 순양함 이하 함급과 항공모함밖에 없으니...[73] 잠수함이 아니란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단 한 척의 잠수함이다. 그래서 시나노는 항목에 들어가서 보면 알겠지만, 단 한척의 잠수함이 격침시킨 역대 최대의 군함이라는 기록만 조공했다.(더 안습은 이 기록이 대규모 세계대전이 다시 발발해서 니미츠급 항공모함 중 한척이라도 격침당하지 않는 한 영원히 남을 기록이라는 거.)[74] 펜사콜라급, 노샘프턴급의 포탑 장갑이 19~64mm, 포틀랜드급은 34~64mm이다.[75] 그런데 이게 나중에 야마토급에서 문제를 터뜨리는데 모가미의 주포탑을 거의 그대로 야마토에 가져다 올리는 삽질을 했다. 당연히 해당 부포탑은 물장갑이었다.[76] 예외적으로 나가토급 전함은 개장하면서 항속거리도 늘렸다.[77] 대신 이쪽도 간섭현상을 해결하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고 한다.[78] 일본이 8인치 3연장 주포탑을 개발할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18.1인치 포탑의 3연장화에 성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나가토급 전함카가급 전함을 설계할 때 네바다급 전함처럼 2연장과 3연장 포탑을 2기씩 혼용하자는 제안이 나온 사실로 보아 이 시점에서 이미 전함용 3연장 포탑의 개발이 가능하리라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79] 어뢰의 앞부분이 어뢰발사관 밖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니 뭐...[80] 참고로 영국 해군의 군함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거주성이 썩 좋다고는 못하는데 그 영국이 저런 말을 할 정도면 뭐...[81] 전체 포탑의 1/2[82] 정작 일본은 경순양함으로 쓰는게 아니라 중순양함으로 바꾸려고 꼼수를 부린거였지만.[83]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타운급 경순양함[84] 셔먼은 4호 전차와 비교해서 평가해야지 티거나 판터랑 놓고 비방하면 그게 정당한 비교는 아니지 않는가.[85] 해안포, 기뢰, 자침, 충돌등[86] 시마카제, 나다카제 제외[87] 미유키 제외[88] 기껏 뚫어 봐야 거기가 탄약고가 아닌 이상에야 별로 뭣도 없는건 똑같다.[89] 그리고 75도가 높기는 하지만 대공용으로 쓰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운 각도기도 하다.[90] 가토급 잠수함 4번함. 첫 초계항해부터 '''혼자서 제18 구축대를 조져버린 잠수함.''' 그 외에도 구축함 시키나미, 해방함 히라도를 격침시키는 공적을 세웠으나, 최후에는 구축함 시구레, 해방함 치부리 및 제19호 해방함으로 구성된 호위함대의 대잠공격으로 추정되는 공격에 의해 격침되었다.[91] 역시 같은 가토급. 밑에 서술한 역관광의 주인공.[92] 가토급 잠수함 46번함. 하야나미, 미나즈키, 타니카제, 마츠를 격침시켜 '''구축함 킬러'''로 악명을 떨치던 잠수함이었다. 구축함 외에도 자매함 하도(SS-255, Haddo)와의 공동전과이긴 하지만 대잠 해방함 3척을 동시에 격침시켰고 그로 인해 한때 일본군의 대잠초계전력에 큰 구멍이 생겼을 정도로 맹활약했다. 다만 이 하더도 최후에는 다른 해방함인 제22호 해방함에 의해 격침당했는데 얄궂게도 그 자리에 제22호 해방함과 함께했던 배가 일본군에 의해 노획된 미 구축함 스튜어트(제102호 초계함)였다.[93] 일단 여기까지는 과장은 있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요소에서 문제가 많이 있었다. 가령 태평양의 수온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수온과 비교해도 가장 높았다. 그런 상황에 에어컨을 달지도 않거나, 달아놔도 풍량이 너무 약해서 잠수함 내 장비들이 고장을 일으켜대는 사태까지 왔을 정도니...[94] 일종의 중량 보상탱크. 잠수함이 항해를 하면서 소모하는 연료 등으로 손실된 중량을 해수로 대신 채워넣어 일정심도를 유지하게 한다.[95] 그러나 망망대해 대양에서 그것도 움직이는 상대를 대상으로는 썩 효율적이지 않았다는게 문제...[96] 유보트 상대로 손실비가 6:1에 가까우며 V급 잠수함의 벤튜어러는 특이한 기록도 하나 세웠다. 해당문서 참고.[97] 참고로 프랑스 해군의 르두터블급이 35초, 소련의 S급 잠수함이 20초, K급 잠수함이 65초다.[98] 하지만 이러면 배터리의 유산이 흘러 유독가스가 발생하게 된다. 유산이 흐르지 않는 최대 한계는 보통 45도.[99] 이런 배수구의 형태는 현대 서방권 잠수함들은 기본사양으로 가지고 있는 형태이다.[100] 하지만 이러면 수상항해시 갑판 위는 수시로 물바다가 되고 수상항해시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U보트 역시도 자주 이랬다.[101] 사실상 일본 잠수함들중 제일 빠른 기록이다.[102] 이 문제 때문에 전후 미 해군이 노획한 일본 잠수함에 대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합판 이탈 및 누수가 수시로 기록되었다고 평가했다.[103] 아오바가 세 번째로 대파된 후, 수리를 위해 일본으로 돌아가던 중에 벌어진 일이다. 아오바가 7발의 어뢰를 피했다는 것은 일본측 주장이지만, 아오바가 속한 수송선단에 23발의 어뢰가 날아왔고 아오바가 한 방도 안 맞은 건 사실이다.[104] 당시 미 해군 잠수함대 수병들과 뇌격기 조종사들 사이에서 악명 높던 어뢰 스캔들의 원흉, Mark-14 어뢰와 Mark-13 항공어뢰 때문에 한동안 잠수함이건, 뇌격기건, 급강하 폭격기건 일본 해군 군함만 만났다 하면 어뢰는 일단 뒤로 미루고 잠수함은 덱건, 뇌격기와 급강하폭격기는 수평폭격으로만 일본 해군 군함들을 상대했을 정도다! 당시 미 해군 잠수함대의 '''"만일 병기국에서 어뢰를 똑바로 안 만들어줄것 같으면 우리 잠수함대는 함선국에 요청해서 어뢰 대신에 함선을 잡아 끌어당겨 구멍을 낼 갈고리 장대를 내놓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나, 뇌격기 조종사들의 '''"효과도 없는 어뢰 쓰느니 차라리 철갑탄이나 쓰련다."''' 같은 불평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105] 군함의 역사. James L. George. p289와 Evans, David C; Peattie, Mark R (1997). Kaigun: strategy, tactics, and technology in the Imperial Japanese Navy, 1887–1941. Annapolis, Maryland: Naval Institute Press. p497.[106] 이 전과에 불명확한 군함격침전과를 추가해도 구축함 2-3척에 어뢰정이나 기타 보조함 몇 척이 추가되는 것 뿐이다. 그뿐 아니라 항공모함 한 척도 사실상 빼야 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요크타운을 I-168이 어뢰로 잡았다고 해서 저렇게 집어넣은 건데, 사실 요크타운은 이미 미드웨이 해전 도중에 일본의 공격을 '''레이더로 미리 감지하고''' 항공대를 엔터프라이즈로 보내버리면서 함생을 사실상 끝냈다. 그리고 어뢰에 맞았어도 침몰될 때까지 엄청나게 오래 버티면서 떠 있었다. 게다가 I-168이 요크타운을 격침시킬 때 요크타운은 함장을 포함해서 승조원이 전원 퇴함한 상태였다. 간단히 말하면 빈집털이.[107] 미군 잠수함이 잡은 네 척의 항공모함 중에는 원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전함이었던 항공모함도 있다! 그리고 저 미군 잠수함이 잡은 정규항공모함 네 척 중 이 단 한 번의 해전에서 당한 거다.[108] 이것 때문에 육군이 만든 게 삼식잠항수송정이다.[109] 이 센토쿠급 역시 2차대전 최대크기의 덩치를 지닌 잠수함이였지만, 함재기 M6A 세이란을 탑재해야한다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정작 잠수 성능은 개떡같았다.[110] 잠수함 내에서 신선한 유기농 야채를 만드는 계획은 현대 미군도 연구중인 과업이라 이걸 시도한 자체는 나름대로 인정해줄만 하다. 문제는 결과가 저 모양이라는거. 게다가 그 의의라는것도 승무원에게 얼마나 체감이 되었을까?[111] 참고로 일본 수상함대는 전황이 가장 안좋을때에도 먹는것 하나는 아주 풍족하게 먹었다. 민간 여객선의 고급요리를 하던 조리사들을 징집하여 요리를 맡겼고, 영국 해군의 영향을 받아서 주말마다 카레라이스를 먹는가 하면 과일통조림과 사과와 마카로니 샐러드등이 나왔을 정도. 육군 장교들이 회의차 함선에 들어오자 도미 소금 구이와 도미 회,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맥주를 대접해줬다는 기록도 나온다.[112] 전공과는 의과대학 졸업 및 의사면허 취득 후 정하는거라 전공과가 무엇이든 일단 기본적인 내용은 다 배운 상태다. 실습도 당시 의대 교육과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과 똑같다고 보면 2년간 병원 실습도 했을테니, 전문의가 해야하는 전문적인 치료는 힘들겠지만 일단 경험도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