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인천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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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천광역시의 '''서부'''에 위치한 자치구. 인천광역시 원도심,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국제도시와 인근 도서 지역을 관할한다. 지금의 지역 경제는 관광과 인천항, 인천국제공항 인근의 물류단지와 산업단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인천역 인근의 관광지와 동인천역의 상권, 월미도의 관광단지, 신흥동·연안동·항동의 인천항, 영종국제도시의 인천국제공항으로 나뉜다. 나중에 합병된 영종-용유도 지역 때문에 다른 지역의 중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땅이 넓은데, 무려 140.18㎢로 인천 내에서 군 지역(강화군, 옹진군)을 제외하면 가장 넓다. 대부분의 다른 특별시·광역시에 있는 중구가 그 시에서 최하위권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영종도까지 포함한 면적이고, 영종도(125.7㎢)를 제외한 본토 면적은 15㎢로 부산, 대구보단 크고 대전보다 작다.
현존하는 행정동은 신포동, 연안동, 신흥동, 도원동, 율목동, 동인천동, 북성동, 송월동, 영종동[2청] , 영종1동[2청] , 운서동[2청] , 용유동[2청] 의 12개이나, 법정동은 52개로 인천의 기초자치단체들 중에서 가장 많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본토의 각 동네들이 정(町), 정목(丁目)[5] 등으로 세분되었기 때문.
대한민국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모두 중구 관내에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영토를 처음 밟는 외국인들의 대다수는 인천광역시 중구 땅을 맨 처음 밟게 되는 것이다.'''
2. 구명 변경 논의
2015년 인천광역시에서 자치구 명칭변경 사업을 시작하면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중구에서는 행정구역명에 대해 69.8%가 부적합 및 매우 부적합하다고 응답하면서 행정구역명 변경에 찬성하는 여론을 보였다. 변경안으로는 '''제물포구'''가 63%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
2021년, 영종국제도시 주민들이 영종국제구로의 명칭 변경을 추진 중에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개명 운동에 대한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며 "추후 공론화 상황에 따라 명칭 변경을 위한 필요 절차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20년 12월 말 기준 영종지역의 인구는 94,501명으로, 원도심 인구 45,678명의 2배 이상이다.#
3. 역사
개항 이후 본래의 인천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6] 개항 이전에는 인천도호부 다소면[7] 이었으나 개항으로 인한 인천부 청사 이전으로 관교동 일대의 부내면이 구읍면으로 개칭되고, 다소면 중에서 개항장이자 현재의 중구 본토지역인 지역이 부내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의 전국 행정구역 대개편으로 인천부의 영역은 현재의 중구(영종도, 용유도 제외), 동구(작약도 제외) 일대로 축소되었고, 인천부의 나머지 영역은 부평군과 통합되어 부천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재의 미추홀구, 연수구, 남동구, 서구, 부평구 일대와 계양구 일부가 부천군에서 인천부로 (재)편입[8] 되었지만, 여전히 '인천'이라고 하면 현재의 중구와 동구 일대만을 가리켰다. 당시 서구, 미추홀구, 남동구 일대는 그냥 갯벌+농촌이었다. 옛 중심지였던 관교동 역시 아직도 시골이었으니 간석동, 구월동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1989년에는 당시 경기도 옹진군 소속이었던 영종도, 용유도 지역이 편입되었다.
이후 연수, 남동, 계양이 원래 다른 구에 속했다가 분리[9] 되고, 강화군, 옹진군이 1995년 편입되어 오늘날의 인천광역시가 되었다.
3.1. 상인천, 하인천, 동인천
인천광역시의 방위에 관련된 지명 (동인천, 하인천, 상인천)은 이 지명이 예로부터 내려오던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행정편의를 위해서 생긴 명칭이다. 당시 인천부(즉 일제강점기 부군면 통폐합 의해 축소된 인천부)는 면적이 인천항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만석동, 남쪽으로는 용현동 부근, 동쪽으로는 도화동 일대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10]
당시 한국 최대의 염전지대였던 주안과 남동구, 서구 일대(가좌동에 국한됨)는 '''경기도 부천군''' 관할이었으며, 부평구는 사실상 '''경기도 부천군의 중심지'''[11] 였고, 서구 일부(검단)는 '''경기도 김포군'''이었다. 이미 이러한 지명들이 정착한 뒤에야 주안이 1930년대에, 부평이 1940년에 인천으로 편입되었으므로 이 지역들을 무시하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빠를 것이다.[13]
일제는 편의상 인천을 '''상인천''', '''하인천''' '으로 나누게 된다. 자유공원을 중심으로[14] 동쪽은 상인천, 서쪽은 하인천으로 하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된 유적이 있는데, 바로 자유공원 밑에 있는 홍예문이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문이 아니라, 일제가 상인천 지역과 하인천 지역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1900년대 초반에 산사이를 뚫어 만든 문이다.
- 상인천 : 상인천은 현재의 동인천역을 중심으로 하여 전동, 신포동, 용동 일대를 일컬었다. 참고로 상인천중학교의 상인천은 여기서 유래한다. 원래 배다리 율목동에 있던 인천고등학교 (현 정보산업고 자리)에 병설로 생긴 까닭에 상인천 중학교로 명명된것이다. (물론 인천중학교라는 명칭을 제물포고등학교에서 이미 선점했던 까닭도 있다. 제고의 전신이 인중이기 때문이다.). 동인천은 상인천과 더불어 사용된 명칭이다.
- 하인천: 하인천은 인천역과 인천항을 중심으로 사동, 북성동, 신생동 일대를 지칭하는 곳이었다. 오래전부터 인천역 주변을 하인천이라 통칭한다. 현재 인천역 앞의 지구대도 하인천 지구대라 통칭. 과거 축현역을 상인천으로 개명한 이후 인천역을 하인천으로 통칭한 듯 하다.
3.2. 원인천
'원(原)인천' 또한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구한말의 개항을 시점으로 개항 이전의 원인천과 개항 이후의 원인천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개항 이전 원인천(전근대적 원인천): 지금의 미추홀구 관교동, 문학동 일대. 인천도호부관아와 인천향교 소재지이며, 관교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인천도호부 관청과 인천향교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문학산 기슭에 비류때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문학산성('미추홀 산성'이라고도 한다)의 흔적이 남아있다. 따라서 삼국시기때 '미추홀'은 제물포 일대라기 보다는 지금의 문학동 일대 지역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인천의 역사를 자세히 알고 있지 않는 이상, 이곳이 원인천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일반인(특히 인천 출신이 아닌 경우)이 잘 알지 못하는 편.
- 개항 이후 원인천(근대적 원인천): 개항 이후[15] 인천의 경제적, 사회적 중심이 관교-문학 지역에서 '제물포'로 옮겨짐에 따라 인천부 청사도 관교동에서 제물포로 이전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의 원인천은 '제물포'나 '동인천' 또는 '상/하인천'로도 통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원인천의 의미는 이쪽이다.
- 넓은 의미의 원인천: 넓은 의미의 원인천은 현 인천광역시 지역 중에 부평도호부(+ 김포군 검단면) 지역(부평구, 계양구, 서구)이 아닌 인천도호부 지역이었던 인천 중구, 동구, 미추홀구(+부평구 십정동), 연수구, 남동구 일대를 가리킨다. 인천도호부 지역이었던 경기도 시흥시 북부(구 소래읍)도 포함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경기도 부천시(시역 대부분이 부평도호부 소속)의 계수동과 옥길동, 경기도 광명시(시역 대부분이 오리지널 시흥군 소속)의 옥길동도 인천도호부 소속이라 이쪽 의미의 원인천에 속하긴 하나 그쪽 동네에선 존재감이 없는 동네라(...).
4. 교통
4.1. 도로교통
4.2. 철도교통
4.3. 해상교통
월미도와 영종도를 이어주는 선박이 있는데, 원래 용주해운이라는 회사가 운행했었다. 당시 2km 가량의 뱃길을 5척의 선박으로 거의 15분 간격으로 운행에 선박에서 보기 힘든 빗자루질 수송을 하고, 운임은 성인 500원, 승용차 3000원 이었다. 이렇게 하면서도 장사가 되었던 건 당시에는 인천 본토와 영종도를 도로로 이어주는 교량이 모두 없었고 이 선박만이 본토에서 영종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었다. 주말이나 명절만 되면 영종도, 용유도가 고향인 사람들로 인해 월미도에서 배를 타기 위해 온 차량들의 줄이 인천역까지 늘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생기면서 이 선박의 이용객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회사는 사원들에게 월급 지급조차 힘든 상황에 몰렸다. 결국 이 회사는 휴업을 선언했고 한동안 선박 운행이 중단되었다. 그러다 삼목-북도면 여객선을 운항하는 세종해운에서 시에서 보조금을 받고 운영을 재개했다. 지금은 배 1척(세종1호)만으로 시간당 1회씩 운행한다. 막배도 용주해운 시절에는 밤 9시까지 있었지만 현재는 6시만 되면 운행을 마친다. 운임은 성인 3500원이다.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낫고, 거리상으로는 인천 원도심과 가장 빠르게 연결되는 경로다. 하지만 영종선착장까지 운행하는 버스 노선은 인천 버스 203과 중구 공영버스 3번 단 둘 뿐인데 배차간격이 203번은 20분, 3번은 1시간이다. 매표소 근처에 자전거 거치대 및 무료 임시 공영주차장이 있으니 가급적이면 자전거 혹은 자차 이용을 추천한다. 영종국제도시 및 인근 도서지역 주민은 운임을 50% 할인받을 수 있으니 주소가 명기된 신분증을 지참하도록 하자.
인천국제여객터미널도 중구에 위치해 있었던 시기에는 중국과의 왕래도 많은 편이었으며,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이 연안부두에 있어 옹진군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근처에 수인선 신포역이 개통되면서 이용하기 편해졌다.
5. 관광
6. 금융
7. 상권
주요 상권은 동인천에 용동 먹자골목, 신포국제시장, 동인천역 북부 중앙 양키시장, 동인천 지하상가, 화평 냉면거리 등등이며 먹거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영종지역에서는 운서동 공항신도시 일대, 중산동 영종하늘도시 일대의 상권이 발달하고 있다. 부 지역은 동구지역이나, 경인선라인이 중구와 동구를 구분짓는 라인이라고 생각해보면 그리 차이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남동구와 부평구 상권의 발전으로 인해, 중구와 동구 모두 상권은 과거에 비해 매우 침체된 상황이다.
개항 직후부터 중구 지역은 인천의 중심지였다.[16] 각종 관공서들이 몰려 있었고 또한 학교도 엄청나게 몰려 있었다. 결정적으로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바다에서 건너오는 물품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중구였다. 지금까지 구제시장이 남아있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그리고 6.25전쟁이 발발하고 동인천 지역은 인천상륙작전의 여파로 답동성당, 내리교회 및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 모두 파괴되었지만 기존에 살던 주민들과 북한에서 넘어온 실향민들이 몰려들면서 엄청난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곳으로 변했다. 1970년대까지 중심지였으나 1980년부터 구월동 지역에 개발이 시작되면서 상권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인천시청도 남동구 구월동으로 옮겨가고 중심 상권 역시 남동구의 신흥 택지개발지구와 시청이 인접한 주안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92년에 입주되기 시작한 연수구 신시가지가 생기고 나자 인구가 크게 유출이 되기 시작하면서, 몰락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1996년에 향토백화점이자 지역 상권의 중심이었던 인천백화점이[17] 동구 송림동에 한국 최초의 월마트[18] 가 생기고 인천백화점 바로 앞 인현동에 뉴코아 백화점이 생기면서 도저히 운영할 수 없어 문을 닫아버려 동인천 상권이 완전 작살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 이듬해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고 미추홀구 관교동에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이 생기면서 뉴코아 백화점까지 문을 닫아버렸다. 더는 버틸 수가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나 거기에 또 막장 사건이 발생했으니...
1999년에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가 터져버리고 만다. 그 당시 동인천 지역은 인천 지역 고등학생들도 술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지금도 어느정도 존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단속을 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단속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잘 알려진대로, 가게 주인이 학생들에게 돈을 받으려고 출입구를 막은 것이 화가 되어 '''56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로 이어졌고, 그 이후로 원도심의 지위를 상실했다.
동인천역사의 인천백화점을 다른 곳에서 인수하여 nJOY 백화점으로 바꿨으나 존재감 없는 곳 신세였고 시에서도 이곳의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으나 그 노력은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게다가 그곳에 몰려 있던 학교들이 1998년 인천대건고등학교의 연수구 동춘동 이전을 시작으로 잇달아 옮겨가기 시작했다.[19]
그래서 시와 구에서 내놓은 방안이 바로 인천 차이나타운 개발과 인천 근대역사 루트 개척이었다. 그나마 성공적이어서 월미도-차이나타운-근대역사루트-신포시장, 문화의 거리-답동성당으로 이어지는 루트는 관광객들이 매우 많이 찾고 있다. 거기에 차이나타운의 유입과 MBC 주말드라마 가화만사성[20] 에 수도권 전철 수인선까지 개통되었으니 삼박자 효과를 누려서 어느 정도 상권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다 THAAD 배치에 따른 한한령으로 중국인 관광객과 중국 보따리 상인들은 물론 한국으로 유학갈 계획에 머무르다가 취소 및 보류된 중국인 유학생들[21] 까지 큰 폭으로 감소되자 일본인은 물론 주변 소중화권 대체국가들 소속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전국에 몇 안되는 개인 극장 중 애관극장이 있다. 1895년 협률사 라는 이름으로 처음 생겨서 당시엔 남사당패, 인형극, 창극 등의 공연을 주로 하였다. 1925년 애관(愛觀)으로 개명되었고 한국전쟁때 손실되었으나 1960년 개보수를 마치고 400석 규모의 극장으로 재개관했다. 2004년 전면 개보수를 통해 5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재탄생헀다. 하지만 주차 공간이 넓지는 않은편이니 주의가 필요하다. 평일 낮시간에도 주차공간이 꽉 찰 정도다.
참고로 1관의 스크린은 전국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도 몇 개 없는 매우 거대한 사이즈의 스크린이다. 이보다 큰 사이즈는 아이맥스 급 뿐이다. 이 거대한 스크린 사이즈 덕분에 애관극장을 찾는 지역 영화팬들도 많다.
인천 중구청 앞에는 관광지로 조성된 적산가옥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쭉 가다보면 인천 차이나타운이 등장한다.
8. 교육
그 외에도 화교 학교인 인천중산화교중고등학교가 중구에 위치한다.
9. 스포츠
인천지역 아마추어 축구계에서 강자로 통하는 인천 송월 FC가 중구에 소재해있으며, 20년 기준 대한민국 5부 축구리그인 K5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10. 군사
인천국제공항을 경비하는 제3경비단이 영종도에 위치하고 있다. 영종도에는 운북동에 공군 8547부대 금산 미사일기지가 위치해 있으며, 송산 인근에 육군 부대도 자리해 있다.
11. 정치
개발된지 100년이 훌쩍 넘은 구도심 지역이기 때문에 노인 및 1인가구 비중이 높고, 그래서 보수정당들이 매우 우세했던 지역이다. 여기에 인천으로 유입된 황해도 및 평안도 출신 피난민이 다수 섞여있고, 최전방은 아니지만 서해5도의 입구로서 안보 이슈에 민감하기 때문에 다른 수도권 도시들에 비해 상당히 보수정당의 지지도가 높았다. 역대 총선에서도 노무현 탄핵 역풍을 맞은 17대 총선을 제외하면 모두 보수정당에서 국회의원이 나왔고, 동구, 강화군, 옹진군과 함께 뽑았던 20대 총선에서도 전 인천시장 출신으로 평판이 매우 안좋은 안상수가 당선되었다.[28]
그러나 영종도 개발이 시작되고 신도시에 외지인들이 입주하면서 중구의 '''보수적 성향이 약화'''되고 있다. 보통 광역시의 원도심이 보수정당 강세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개발할 땅이 없는 다른 도시의 구도심들과 달리 중구는 영종도라는 미개발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종하늘도시의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되면서 '''구도심과 신도심이 섞인 특이한 지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2010년대 들어서는 토박이와 황해도 피난민 출신이 많은 원도심과 외지인과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 영종도의 민심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인구도 두 곳이 서로 비슷해 앞으로 치열한 격전이 예고된다. 실제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은 가장 확실하다고 믿었던 중구청장을 내주고 말았다. 물론 2012년 재선거에서 손쉽게 되찾아오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영종도 토박이들이 중구 원도심 표심과 비슷하게 가고있어 55:45 정도로 보수정당이 유리하지만 영종도가 더 개발된다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는 일.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는 동구와 강화군, 옹진군을 합치기 때문에 당분간 보수정당이 계속 승리할 듯 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그 구도가 뒤집어졌다.
18대 대선에서 (강화, 옹진을 제외하면) 인천에서 박근혜 후보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곳(용유동)과 문재인 후보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곳(운서동)이 모두 중구 영종국제도시에 있다.
2017년에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에 무려 17.2%차로 압승을 거뒀다. 지난 대선에서 10% 이상 박근혜 후보에게 졌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는 대승이었다. 문 후보는 보수세가 강한 인천 구도심에서도 율목동과 그나마 이긴 북성동, 동인천동을 제외한 모든 행정동에서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며 34.37%: 29.98%로 승리를 가져갔다.[29] 영종하늘도시에서는 무려 48.07%의 득표율을 얻으며 압도적인 표차를 벌렸는데, 여기에서의 승리가 중구에서의 격차를 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종도, 용유도, 무의도 원주민들은 홍준표에게 무려 39.5%의 표를 찍어주며 아직까지 압도적으로 보수정당의 손을 들어줬는데, 이렇게 지역별, 연령별, 거주민 성향에 따른 격차가 매우 극심하게 나타나 앞으로도 지역 내에서 정치적인 갈등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앞선 지역은 다음과 같다.
- 중구: 문재인 28,030(40.63%) > 홍준표 16,139(23.39%) > 안철수 15,405(22.32%)
- 1위 - 문재인: 운서동(49.1%), 영종동(43.8%), 신흥동(36.4%), 신포동(35.6%), 송월동(34.8%), 연안동(33.8%), 도원동(33.6%), 북성동(33.0%), 동인천동(32.8%), 거소/선상투표(42.3%), 관외사전투표(44.0%), 재외투표(62.6%) (9개동 + 관외투표) / 홍준표: 용유동(42.1%), 율목동(32.8%) (2개동) / 안철수: 없음
- 2위 - 문재인: 율목동 (1개동) / 홍준표: 신포동, 연안동, 신흥동, 도원동, 동인천동, 북성동, 송월동 (7개동) / 안철수: 영종동, 운서동, 용유동, 거소/선상, 관외사전, 재외투표 (3개동 + 관외투표)
11.1. 관련 문서
12. 하위 행정구역
영종동, 영종1동, 운서동은 구 영종면 지역, 용유동은 구 용유면 지역으로 2019년 개소한 제2청에서 관할한다. 나머지 본토에 있는 동들은 모두 구 다소면, 개항 이후 구 부내면 지역이다.
12.1. '''신포동'''
관할 법정동은 중앙동1~4가, 해안동1~4가, 관동1~3가, 항동1~6가, 항동7가(일부), 송학동1~3가, 사동, 신생동, 신포동, 답동이다. 인구는 5,265명.[A]
현대적 개념의 도시로서 인천이 발전할 수 있었던 기반 지역이자 1980년대까지 인천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쇼핑의 중심지였다. 신포시장,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인천아트플랫폼, 한국근대문학관, 중구청, 인천남부교육지원청, 자유공원, 홍예문, 이마트 동인천점, 답동성당, 인천중부경찰서, 올림포스호텔 인천, 하버파크호텔, 인천중부소방서, 인천지방해양항만청,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있다.
현대적 개념의 도시로서 인천이 발전할 수 있었던 기반 지역이자 1980년대까지 인천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쇼핑의 중심지였다. 신포시장,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인천아트플랫폼, 한국근대문학관, 중구청, 인천남부교육지원청, 자유공원, 홍예문, 이마트 동인천점, 답동성당, 인천중부경찰서, 올림포스호텔 인천, 하버파크호텔, 인천중부소방서, 인천지방해양항만청,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있다.
12.2. '''연안동'''
관할 법정동은 북성동1가(일부), 항동7가(일부)이다. 인구는 6,309명.[A]
소월미도(서해5도특별경비단 위치)가 북성동1가에 속하며, 나머지 인천항 지역 대부분은 항동7가에 속한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과 국제여객터미널[30] , 인천종합어시장, 롯데팩토리아울렛 인천점, 인천본부세관, 연안아파트가 있다.
소월미도(서해5도특별경비단 위치)가 북성동1가에 속하며, 나머지 인천항 지역 대부분은 항동7가에 속한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과 국제여객터미널[30] , 인천종합어시장, 롯데팩토리아울렛 인천점, 인천본부세관, 연안아파트가 있다.
12.3. '''신흥동'''
12.4. '''도원동'''
12.5. '''율목동'''
관할 법정동은 유동, 율목동이다. 인구는 3,369명[A] 인천기독병원, 율목공원, 인천광역시립도서관이 있다.
12.6. '''동인천동'''
관할 법정동은 내동, 경동, 용동, 인현동, 전동이다. 인구는 5,928명.[A]동인천역,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삼치거리, 애관극장[31] 이 있다. 동인천역 상권을 나락으로 빠뜨린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가 발생한 곳이다.
12.7. '''북성동'''
12.8. '''송월동'''
관할 법정동은 송월동1~3가이다. 인구는 4,523명.[A] 북성동과 동인천동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송월아파트가 소재한 주거지역이다.
12.9. '''영종동, 영종1동'''
영종동의 관할 법정동은 중산동, 운남동, 운북동이며, 영종1동은 중산동의 일부만 관할한다. 인구는 영종동 15,767명[A] , 영종1동 43,485명이다.[A] 원래 이 지역의 행정동은 영종동 하나였으나, 2018년 1월부로 영종1동이 분동되었다. 이후 영종2동 분동이 확정되었으며, 2020년 12월 청사 부지매입[32] 이 완료되었다. 청사는 2022년 말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백운산 동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쪽으로 가면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금산IC를 통해 영종대교[33] 를 이용할 수 있다.(청라방향)
서쪽으로 가면 제2경인고속도로 영종IC를 통해 인천대교를 이용할 수 있다(송도방향).
2025년 제3연륙교가 개통하면 관내에서 곧바로 서구로 넘어갈 수 있다.
동쪽의 영종선착장에서는 월미도로 향하는 도선을 탈 수 있다.
한창 개발 중인 영종하늘도시와 랜드마크 공원인 영종 씨사이드파크가 있다.
서쪽으로 가면 제2경인고속도로 영종IC를 통해 인천대교를 이용할 수 있다(송도방향).
2025년 제3연륙교가 개통하면 관내에서 곧바로 서구로 넘어갈 수 있다.
동쪽의 영종선착장에서는 월미도로 향하는 도선을 탈 수 있다.
한창 개발 중인 영종하늘도시와 랜드마크 공원인 영종 씨사이드파크가 있다.
12.10. '''운서동'''
관할 법정동은 운서동(일부)이다. 인구는 30,842명.[A] 백운산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제2경인고속도로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만나는 공항신도시JC가 있다. 운서역 근방에 공항신도시가 위치해 있다. 인천국제공항이 동의 서부에 위치한다. 북쪽의 삼목선착장에서는 옹진군 북도면으로 향하는 도선을 탈 수 있다.
12.11. '''용유동'''
관할 법정동은 운서동(일부), 을왕동, 남북동, 덕교동, 무의동이다. 인구는 4,080명.[A] 인천공항 기준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왕산해수욕장, 을왕리해수욕장, 잠진도, 무의도(하나개해수욕장 위치), 684부대의 훈련장이었던 실미도와 2009년에야 민간인에게 개방된 팔미도가 있다. 잠진도에서 무의도를 잇는 연륙교가 2019년 개통했다. 운서동 일부도 포함되어 있는데, 공항철도 차량기지와 네스트호텔이 있는 지역이 법정동 운서동에 속한 지역이다.
13. 그 외
중구의 본토 지역을 동구에 합치면서 영종·용유·무의 지역을 분리하는 영종구 설치 논의가 있다. 영종·용유 지역의 인구가 중구 본토는 물론 동구보다 인구가 많아졌다. 영종지역 주민들은 당장 분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 명칭을 바꾸지 않으면(영종지역이 중구가 되고, 육지 지역이 동구가 되면) 국회에 갈 것도 없이 구의회의 결단(과 요식행위 적인 중앙정부의 승인)만으로 가능하다. 물론 중앙정부에서 영종 지역의 행정문제에 문제의식을 가질 경우, 중앙정부 주도로 구의회에 동의를 받아내는 방식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동구 측에서는 중구 육지의 편입에 우호적인 분위기이나 2021년 상반기 현재 중구 지방 정치의 패권을 본토 측이 차지하고 있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이후 지방선거에서 영종지역에 기반을 둔 의원이 과반이 될 경우 중구에서 중구청을 영종국제도시로 옮기고, 육지 지역은 일시적으로 출장소로 전환한 뒤 동구에 넘기면서 영종지역의 사실상 분구가 완료될 수 있다.
14. 관련 문서
[1] 52개 법정동, 12개 행정동[A] A B C D E F G H I J K L M 2020년 1월 주민등록인구[2] 이 청사는 일제강점기 인천부청 건물을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등록문화재 제2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1985년에 구월동으로 시청을 옮기기 전까지 인천시청 건물이기도 하다.[3] 1985년 이전에는 신생동에 소재. 現 신포동 주민센터(중구 제물량로 168(舊 신생동 2-42).[4] 중구제2청은 2019년 10월 17일 영종국제도시 주민들의 행정편의를 위해 개청했다.[2청] A B C D 제2청 관할[5] 해방 이후 정은 동(洞)으로, 정목은 가(街)로 개칭되었다.[6] 개항 이전까지의 인천의 중심지는 현재의 미추홀구 관교동 일대이다. 인천도호부 청사와 인천향교가 관교동에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7] 다만 영종도, 용유도는 각각 인천도호부 영종면, 용유면이었고, 1914년 부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부천군이 폐지되어 옹진군으로 이관되었다가 1989년 인천직할시 중구에 편입되었다.[8] 부평은 원래 인천과는 '''별개의 지역'''이었다가 이 때부터 인천 관할이 되었다.[9] 남동구는 1988년, 연수구는 1995년에 남구(현 미추홀구)에서 분구되었고, 계양구는 1995년에 북구(현 부평구)에서 분구되었다.[10] 영종국제도시를 제외한 중구, 동구, 남구의 서쪽 일부만 해당한다.[11] 1914년 당시 명목상 중심지는 부천군청이 설치된 지금의 남구 관교동/문학동쪽.[12] 하지만 기존의 부평이라는 지명이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이 명칭은 바뀌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13] 현재의 개념상 방위로 칠 때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고정되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될 경우, 남동구를 중구와 남촌구로 분할하여 고정해야 하고, 서구는 북구, 중구는 서구, 동구는 화도진구, 남구는 문학구 혹은 미추홀구, 부평구는 동구[12] , 계양구와 연수구, 강화군 등은 현재대로 써야 바람직하고 옳은 명칭이 성립되는 조건이 있다. [14] 자유공원을 인천의 중심으로 둔 것은 이 당시 인천부 청사가 자유공원 기슭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부 청사는 해방 이후 경기도 인천시의 시청으로 쓰여졌고 1985년 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된 후부터는 중구청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15] 강화도 조약에 따른 제물포 개항을 한국 근대의 출발로 보는 시각이 많다.[괄호] A B 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6] 개항 이전에는 인천의 중심지는 도호부관아 소재지인 미추홀구 관교동, 문학동 일대.[17] 다른 향토백화점으로는 남동구 간석동에 희망백화점이라는 백화점이 있었는데.. 당시 인천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백화점이었다. 동인천에서도 인천백화점을 두고 셔틀버스를 타고 30~40분 걸려서 희망백화점에 장보러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18] 한국에서 선보이는 최초의 창고형 매장이었다. 월마트가 한국 업체에 밀려 철수하기 이전까지 영업했다. 지금의 이마트 트레이더스 송림점[19] 중구에서 이전한 학교들은 인천고(남구 주안동), 송도고(연수구 옥련동), 인천여고(연수구 연수동), 축현초교(연수구 옥련동), 박문초교(연수구 동춘동)이 있다. 제물포고의 연계학교인 인천중학교는 폐교되었다가 연수구 연수동에서 재개교하였다. 게다가 남은 제물포고마저 송도로 이전하려고 한다.[20] 해당 촬영지는 연경이며, 런닝맨은 물론 1박 2일과 무한도전에도 소개된 장소이다.[21] 조선족, 중국내 한국인 체류자 및 유학생 등은 제외.[22] 15.12.24 의원직 상실(정치자금법 위반)[23] 잔여임기 1년 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24] 00.2.12 구청장직 사퇴(16대 총선 출마)[25] 12.9.13 구청장직 상실(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26] 00.6.8 재보궐선거[27] 12.12.19 재보궐선거[28] 19대 총선때는 새누리당 박상은 후보가 42,995표, 민주통합당 한광원후보가 38,755표를 받아 박상은 후보가 4,240표 차이로 이겼는데 그 후보는 옹진군(인천)에서 6,849:3,723로 무려 3,126표(더블 스코어) 차이로 이겼다.[29] 율목동, 북성동, 동인천동에서 그렇게 커다란 승리를 가지지 못한 이유는 인천 토박이와 황해도 이주민이 많이 거주해서 그렇다.[30] 대중가요이자 인천 연고 스포츠팀의 응원가로 널리 알려진 일명 연안부두가 바로 이곳이다.[31]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영화관 중 가장 오래된 영화관이다.[32] 중산동 1912-2[33] 운염도, 소운염도, 매도가 다리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