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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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라남도 남해안 고흥반도 일대와 그 부속 섬들을 관할하는 군(郡). 면적은 807.34km².
반도 지형이라는 지리적으로 매우 불리한 입지임에도 한때 23만 명이라는 상당히 많은 인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20년 8월 기준 주민등록인구는 64,198명으로 그 중 농가 인구가 절반을 차지하는 농촌이다. 2읍 14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으로 보성군, 동쪽으로 여수시, 서쪽으로 득량만을 건너 장흥군, 남서쪽으로 완도군과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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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고흥군청 모습.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 200-2
1441년 흥양현 시절부터 군청으로 사용했던 자리이며 현 건물은 1985년에 건립되었으나 청사가 군 규모에 비해 비좁아 신청사를 건립하여 군청을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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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6일,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등암리 186-10에 들어선 신청사로 이전했다.
2. 역사
백제 때 고흥 땅에는 조조례현(助助禮縣), 두힐현(豆肹縣), 비사현(比史縣) 등이 있었다.
이후 신라 경덕왕 때 전국 지명의 한화(漢化, 고대 한국어 지명을 한자로 바꿈) 정책으로 충렬현(忠烈縣, 남양면), 강원현(薑原縣, 두원면), 백주현(柏舟縣, 동강면)으로 바꾸었다.
고려 초기 고이부곡(高伊部曲)[4] 이라 불리다가, 1285년 고흥현(高興縣)으로 개칭되어 '고흥'이란 명칭이 최초로 등장하였다.
조선 초기에 고흥반도에 왜구가 들끓어 잠시 현재의 보성군 조성면[5] 으로 관아를 옮겼다가(고흥반도는 잠시 보성군에서 관할하게 된다), 1441년에 고흥반도로 복귀하고 흥양현(興陽縣)으로 개칭하여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흥양'이라 불렸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고흥군(高興郡)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흥양'의 일본어 발음이 '코요'라, 같은 도의 광양과 혼동되어 바꾼 것으로 보인다.[6]
1896년 돌산군의 성립으로 거금도, 나로도, 거문도, 초도 등 부속도서를 돌산군에 내주었다가, 1914년 돌산군이 다시 여수군과 통합되는 과정에서 거금도, 나로도 등이 고흥으로 돌아왔다. 거문도, 초도 등 현 여수시 삼산면 지역은 그대로 여수에 남았다. 동시에 보성군 남면(현 벌교읍)의 일부를 가져왔다. 1973년 도양면이 도양읍으로, 1979년 고흥면이 고흥읍으로 승격되었다. 당초 낙안군 땅이었다가 돌산군에 편입되고, 돌산군 폐군 때 고흥으로 넘어온 장도는 1983년에 보성군 벌교읍으로 편입되어 제자리를 찾았다.
1960년대까지는 꽤 인구가 많았다. 1966년에는 인구가 234,592명[7] 에 달했지만, 그러나 1960년대~1990년대에 벌어진 경부ㆍ경인라인 중심의 경제 개발은 고흥군을 비롯한 전라남도의 각 시/군들의 인구가 크게 유출당했고, 고흥군도 인구 유출로 인해 1966년의 ¼ 수준으로 인구가 아주 빠르게 감소했다.
3. 지리
인구밀도가 적은 전라남도에서 또 돌출되어 있는 반도 지형인데다가 군 자체 면적도 진짜 쓸데없이 크다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상당히 광활해서[8] 타 도시로의 이동이 매우 불편하다. 고흥군 밖에서 가장 가까운 읍내인 보성군 '''벌교읍까지 나가는 데만 해도 약 30km'''다. 순천까지는 약 53km. 또한 27번 국도를 타고 '''고흥 초입인 동강면에서 도양읍까지 이동하는데 그 거리만 도로 기준으로 47km이다.''' 저 정도의 거리면 수원에서 서울까지의 직선거리에 달한다. 그래서 인구 유입은 거의 없지만 인구 유출은 상당하다. 특히 대학이 없고 일자리도 부족하기 때문에 젊은 인구의 유입이 드물며, 고령화율이 3명 중 1명 꼴인 36.7%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최고를 기록했다.[9] 그나마 예전부터 인구가 많아서 지금도 주변 군들에 비해선 인구가 많은 편이다.
77번 국도 고흥 - 여수 연도교 개통으로 여수 접근성이 나아지나 했지만 고속화된 15번 국도에 비해 선형이 훨씬 구불구불하여 고흥읍내 - 여수시내는 기존처럼 벌교까지 돌아가는 게 더 빠르다고 안내된다.
반도 지형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또 하나의 신기한 점이 있다. 2020년 초까지만 해도 육로로 고흥군에 가려면 반드시 보성군을 거쳐야 했다. 특히나 십중팔구는 벌교읍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고흥과 벌교는 교류를 자주 한다. 아니, 지형상 교류를 할 이웃동네가 벌교밖에 없다(...). 이걸 잘 나타내주는 사례가 있다. 그동안 고흥군 학생들 사이에서 벌교고의 인기가 상당히 많아서, 벌교고 학생 3할이 고흥군 출신인 적도 있었다. 거기에 2014년 말에는 고흥 출신 벌교고 학생이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수시 합격했다는 현수막이 보성군 전역에 걸린 바가 있다(...). 다만 2015년에는 고흥고가 거점고 지정 버프를 받아 학생들을 많이 끌어모았다고 한다.
남부지역이라 기온은 따뜻하지만 바다가 가까워 바람이 습해 차다. 그 때문에 실제 기온은 영상인데 체감온도가 영하를 찍는 날이 많다. 또한, 바다가 가까워 눈이 오는 날이 드물다. 눈이 오면 그날로 고흥은 아비규환. 실제로 2004년 1월 고흥읍 모 고등학교에서 겨울방학 보충학습 중 타지에서 출근을 하던 교사들이 아침에 내린 눈으로 출근을 못 하여 학생들이 5교시까지 자율학습만 하고 가던 일도 있었다. 사실 윗동네인 보성만 해도 눈 왔다 하면 선생님들이 못 내려간다고 징징댄다.
한센병으로 유서깊은 국립소록도병원이 소록도에 위치해 있다. 가보면 당시 한센인들의 처참했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과거 수용 인구가 수천 명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나 현재는 1000명 이하의 환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오후 5시까지만 입장이 되니 참고할 것. 2009년에 소록대교가 완공되어, 지금은 버스로도 방문할 수 있다. 그 전에는 편도 500원인 배를 타고 들어갔다.
나로호의 발사기지인 나로우주센터도 이 곳에 있으며 사천시와 함께 항공우주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이미 3차례의 발사를 통해 전국적으로 나로우주센터가 알려졌기 때문에 군에서 홍보를 한다.
영조 때의 기록에 따르면 장사가 많이 나온다고 했으며, 실제로도 고흥 출신은 왠지 모르게 힘이 센 것 같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지성과 김태영, 김일, 노지심, 송영길 전 인천광역시장, 박남현이 있다. 더불어 미쓰라진 또한 힘 좀 쓸 것 같이 생겼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보여준 파이팅 포즈도 예사롭지 않다... "여수에서 돈 자랑, 순천에서 인물 자랑, 벌교에서 주먹 자랑 하지 마라"의 바리에이션 중에 고흥에서 힘 자랑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고흥 류씨(高興 柳氏)의 본관이고 실제로 류씨들이 많이 거주한다. 그 외로 여산 송씨(礪山 宋氏), 고령 신씨(高靈 申氏), 나주 정씨(羅州 丁氏)도 많이 거주한다.
4. 교통
철도는 없다. 대신 국도와 고속도로, 해상교통이 갖추어져 있다.
5. 경제
여담으로 이 지역의 향토기업으로는 동방고속이 있다.
5.1. 특산물
전국에서도 일조량이 많고 따뜻하기로 알려진 기후를 적절히 이용한 농업이 발달하였다.
- 두 말할 것 없이 유자가 가장 유명하다. 고흥의 유자는 일본과 중국에 대부분 수출되며 내수는 적다. 고흥 = 유자라는 공식이 심해져서 해남이나 완도 등지에서 자란 유자가 고흥농협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 석류의 인기에 따라 재배가 늘어나고 있다(유자를 관리하기가 너무 힘든 탓이기도 하다). 석류는 원산지가 이란이며 조선 초기에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신맛이 나는 석류와 단맛이 강한 종자가 있으며 특별히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지는 않는다.
- 일본에서 들여온 부지화가 제주도에서 한라봉이라는 브랜드로 팔리는데, 고흥에서는 하나봉이라는 이름으로 재배/판매하고 있다.
- 고흥 북부,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마늘이 유명하다.
- 고흥 북부 해안가를 중심으로 꼬막이 생산되며, 이 꼬막들이 고개 너머 벌교로 건너가서 벌교꼬막이란 이름을 달고 팔리고 있다. 장도가 고흥에 있었을 적에는 거의 이름만 벌교꼬막이고 대부분의 물량을 고흥에서 책임졌지만, 장도를 벌교에 넘겨준 뒤로는 보성 관내에서 생산되는 진짜 벌교 꼬막이 비교적 늘어났다.
-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 고흥 유자, 한우, 석류, 마늘, 미역, 다시마, 김이 등록되어 있다. 총 7품목으로 전국 최다이다.
- 2012년 이후부터 시작하여 커피 재배 농가가 늘었다. 국내 최대 규모라 써붙인 고흥 '커피마을'이 대표적인데 직접 생산하고 로스팅까지 한다.
6. 정치
국회의원은 보성군과 함께 뽑는데. 지금이야 이렇지만 제헌의회 총선에서는 선거구가 '''고흥갑'''과 '''고흥을'''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보성군과 함께 뽑는다지만, 오히려 고흥의 인구빨로 보성군을 짓누른다. 실제로 보성과 고흥이 한 선거구로 묶인 회차의 총선 중에서, 보성 출신이 고흥보성 선거구에서 당선된 선거는 전부 중선거구제 시절의 선거로 고흥 출신과 동반당선되었고, 소선거구제 실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고흥-보성 선거구가 인구미달로 조정 대상이 되었는데, 서쪽의 해안선을 따라 장흥, 강진과 같이 묶이게 되었다. 그리고 20대 총선, 고흥군에서는 어김없이 고흥 출신인 신문식이 과반의 지지율을 차지했으나, 강진 출신인 황주홍 후보가 자신의 본래 지역구에 속하는 강진과 장흥뿐 아니라 이번에 합쳐진 보성, 특히 고흥과 바로 맞닿아있는 벌교읍에서도 1위를 달리면서 당선, 고흥 천하가 막을 내렸다. 해당 지역 출신 거물 정치인으로는 서민호, 신형식, 이대순, 박상천 등이 있다.
20대 총선 정당투표 결과에서 정의당이 '''2.98%'''[11] 라는, TK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아니, 그 TK에서도 고흥보다 낮은 득표율을 보여준 지역은 단 3곳(울릉군, 의성군, 영덕군)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전국에서 뒤에서 4등(...). 반대로 민중연합당은 1.35%를 받아 전국 평균보다 높았으나, 이것도 전남 22개 시군 중 뒤에서 5등. 녹색당은 0.44%를 받았는데, 전국 평균보단 낮았지만 전남 평균과 비교하면 중간 수준이었다.
19대 대선에서는 작은 시골 소도시인데도 대통령후보를 둘씩이나 배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후보와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가 그 주인공으로 전국 득표율이 사이좋게 0.1% 대지만, 그래도 고향이라고 장성민 0.6% 김선동 0.4%로 둘이 합쳐 1%대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
여담으로, 소록도가 있는 도양읍 '''일부 투표소'''(13, 14투표소)서는 민주당 계열보다 '''새누리당''' 계열 정당 득표율이 '''훨씬 더 높다'''. 이는 호남 지역 투표소 중 최고 수준. 전라도 출신이 아닌 '''외지에서 온 고령 환자'''들이 많이 머물고 있다는 점,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영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곳을 찾았으며 평생 동안 한센병 환자들의 복지를 위해 애쓴 점[12] , 그의 딸 박근혜도 찾아 '''육영수의 향수'''가 남아있다는 점 등이 주요 요인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1987년 13대 대선 당시 노태우가 김대중을 제친 곳이며, 2012년 18대 대선 때 박근혜가 62.8%를 득표하여 호남에서 유일하게 과반득표를 한 투표소가 바로 이 곳. #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투표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21대 총선에서 민생당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례 득표율(16.1%)을 얻은 지역이다.
6.1. 관련 문서
7. 하위 행정구역
고흥군/행정 문서 참고.
8. 기타
여순사건 당시 지리적 위치로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 중 하나다.
고흥의 전화번호는 국번이 83X(1998년까지만 해도 3X)으로 시작하나 도양읍, 도덕면, 금산면은 84X국으로 시작한다. 여담으로 거금도(금산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완도군 금당면도 면사무소 빼고는 다 84X국 전화번호를 사용한다.
고흥군 구청사 터는 조선시대 흥양현 관아(1441년)의 정통을 이어받아 577년 동안 지방청사의 성지로 쓰였기 때문에, 군에서는 역사적인 장소로 인식하고 있어서 신청사로 이전하면서 역사계승제를 올리기도 했다.
땅 모양(고흥반도)이 홍콩과 닮았다. 고흥군 남쪽의 거문도[13] 는 실제로 영국군에게 점령된 적이 있다.
2019년 9월 현재 영덕군과 함께 미세먼지 측정기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이다.(초미세먼지 측정기만 설치.)
옹진처럼 태풍이 자주 상륙하는 곳이기도 하다. 남쪽을 향해 있는데다 한반도 남해안에 위치해 있어 위도도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1987년의 '''셀마''', 2002년의 '''루사''', 2007년의 '''나리''' 따위의 강력한 태풍이 상륙한 적이 많다.
서울 노원구에 고흥군 출신이 두 번째로 가장 많이 거주하며, 서울에서 고흥군 출신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관악구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이 고흥군 출신이며, 고흥군과 자매결연을 맺었고, 실제로 재경 고흥향우회 회원 수가 서울에서 2위이다.
9. 출신 인물
이전부터 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유명한 인물들도 많이 나온 편이다.
- 강기정: 정치인
- 김선동: 정치인.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통합진보당의 김선동이다.
- 김수
- 김승남: 제19대, 21대 국회의원.[14]
- 동초 김연수(1907~1974): 판소리 명창이며 일제강점기 당시 임방울과 함께 판소리의 양대산맥이었다. 고흥문화회관에 가면 그의 기념비가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김연수관'이 있다.
- 김영광: 축구선수.
- 김일: 前 프로레슬러.[15]
- 김재규: 강원지방경찰청장
- 김철근
- 김태영: 前 축구선수.
- 김한식(목사)
- 김현웅: 前 법무부장관.
- 김화진
- 노지심: 前 프로레슬러.
- 류상철
- 류성갑
- 목일신: 아동문학가이자 시인. 누가누가 잠자나로 유명하며, 딸이 재불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목수정이다.
- 목치숙: 독립운동가. 목일신의 부친이다.
- 미쓰라진: 가수.[16]
- 민지영
- 박남현: 배우. 무술로 다져진 몸으로 청와대 경호실에 지원해 투기, 달리기 1등을 기록했으나 범상치 않은 인상으로 인해 떨어졌다. 관련 문서 참조.
- 박병종: 민선 4~6기 고흥군수.
- 박상천: 변호사, 정치인.
- 박재영(프로게이머): 前 프로게이머
- 박종석: 경륜선수. 피겨선수 박소연[17] 의 아버지. 현재는 귀향해서 고향 영남면 금사마을에서 농장을 운영한다고 한다.
- 박지성: 축구선수
- 박철웅: 교육자, 정치인. 민립대학 조선대학교를 사유화하였던 이홍하[18] 의 선배격이다.
- 백인철: 前 WBA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 박종팔, 유제두 등과 함께 한국에 몇 안되는 중량급 챔피언 중 한 명.
- 서민호: 정치인.
- 손문경: 정치인.
- 손영춘: 배우. 현재 인지도는 다소 잊혀졌지만 과거 KBS 주말연속극 '순심이'에서 연기한 '칠득이'는 바보의 대명사로 아직도 널리 알려져 있다.
- 송갑석: 제20, 21대 국회의원[19]
- 송귀근: 現 고흥군수.
- 송기석: 前 국회의원
- 송두영
- 송삼현: 전 검사장
- 송상락: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 송언종: 초대 민선 광주광역시장.
- 송영길: 정치인. 前 인천광역시장.[20] 現 국회의원[21]
- 송유석: 야구인.
- 송재구
- 송하성
- 송훈
- 신문식: 정치인.
- 신선호 : 기업인. 前 율산그룹 회장, 前 센트럴시티 의장. 자세한 내용은 센트럴시티 참조.
- 신장용
- 신중식: 정치인. 밑의 신형식의 동생이다.
- 신진식: 前 배구선수.[22]
- 신형식: 정치인.
- 오승록: 現 서울특별시 노원구청장
- 우오현: SM그룹 회장.
- 유송화: 제2부속실비서관
- 윤종기: 現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 윤화섭: 現 경기도 안산시장
- 이대순: 정치인.
- 이동섭: 前 국회의원
- 이호건: 배구선수.
- 이홍하: 서남대학교 등의 설립자이자 악명높은 비리 사학인.
- 장성민: 방송인, 정치인. TV조선에서 장성민의 시사탱크를 진행하였다.
- 장세동: 하나회 출신 중 극히 드문 非영남, 특히 호남 출신으로 제5공화국(전두환)의 핵심 요인(심복)까지 오른 인물. [23]
- 장외룡: 前 축구선수.
- 장용호 : 前 양궁선수.
- 정국진
- 정기영: 정치인.
- 정진철(정치인):제10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세무사
- 주봉현: 前 울산광역시 정무부시장
- 주승용: 정치인.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 지연태: 정치인.
- 진종근
- 천경자: 화가.
- 최문휴
[1]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2] 고흥읍, 점암면, 두원면, 영남면, 과역면, 남양면, 동강면, 대서면[3] 도양읍, 풍양면, 도덕면, 금산면, 도화면, 포두면, 봉래면, 동일면[4] '고이'는 고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역대 문헌을 보면 '묘부곡'(猫部曲)이란 표기도 보인다.[5] 고려시대 보성의 속현, 조선시대에는 폐현된 옛 조양현의 읍치가 있었다.[6] 이와 같은 사례로 충청남도 홍성(원래 홍주였으나 같은 도의 공주와 일본어 발음이 '코슈'로 같아 개칭), 경상북도 영주(원래 영천_榮川이었으나 같은 도의 영천_永川과 한국어·일본어 발음이 모두 같아 개칭_일본어 발음은 '에이센') 등이 있다.[7] 1966년 당시는 이촌향도가 본격화되기에 앞서 의료수준이 올라가 전체적으로 자연증가율이 매우 높던 시기였기 때문에 농어촌지역의 인구도 꽤 많은 편이었다.[8] 면적이 도내에서 해남군, 순천시에 이어 세 번째로 넓다. 원래는 네 번째였으나 고흥만 간척지가 생기면서 화순군을 제치고 3위로 올랐다.[9] TV조선과 JTBC에서 관련 취재를 한 적이 있다. 30년 뒤 우리의 모습? 국내 최고령 지역 고흥을 가다(TV조선) 노인인구 비율 '전국 최고'…전남 고흥군에 가보니(JTBC)[괄호] A B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0] 김승남 후보의 고향[11] 소숫점 위치를 잘 보자. 29%가 아니라 2%다![12] 소록도에는 주민들이 육영수 여사를 기리는 공덕비까지 세웠을 정도이다[13] 하지만 거문도는 여수시에 속한다[14] 지역구 : 전라남도 고흥군·보성군·장흥군·강진군[15] 거금도 출신.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가져 많은 후원을 했던 박정희 前 대통령이 김일 선수에게 무슨 큰 걸 해주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보라고 해서 김일 선수가 고향 거금도에 전기를 놓게 해달라고 했다고. 그래서 거금도에 낙도 치고는 1970년대에 일찌감치 전기가 들어왔다.[16] 거금도 출신. 성장은 경기도 광명에서 하였다. 같은 에픽하이 멤버인 타블로의 부모님도 역시 거금도 출신이다.[17] 박소연 선수 자신은 나주시에서 나고 자랐다.[18] 실제로 이홍하는 사학 운영 방식에서 박철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홍하 역시 조선대학교 출신이다.[19] 지역구 : 광주광역시 서구 갑[20] 재미있는 것은 위의 강기정과는 고향 선후배임에 동시에 고교(광주 대동고) 선후배이기도 하다. 송영길이 선배.[21] 지역구 : 인천광역시 계양구 을[22] 성장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해서 거기서 배구를 시작했다. [23] 안기부장 시절에 고흥지역 원로들이 장세동을 만나려고 했었다가 그가 끝까지 거부하여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장세동이 대선에 나왔을 때 윗동네 벌교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함께 선거 벽보가 훼손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