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활동 내역

 


1. 데뷔 및 1집 활동
2. 대마초 흡입으로 인한 몰락, 그리고 부활
3. 병역 비리 그리고 한군두
4. 전역 그리고 전환기
5. 2010년: 5집 발표
6. 2011년: 노홍철과 함께 겨땀 댄스
7. 2012년: PSY WORLD(국외 진출)
7.1. 유튜브
7.2. 김장훈과의 갈등
7.3. 김장훈과의 갈등 그 이후
7.4. 그래서 표절인가?
7.5. 반미주의자 몰이를 당한 사건
8. 2013년: I'm a mother father gentleman
9. 2014년
10. 2015년: 3년 만의 새 정규 앨범, 칠집싸이다
11. 2016년: 잠깐의 최순실 게이트 논란
12. 2017년: 새로운 정규 앨범 4×2=8로 컴백
13. 2018년: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 종료
14. 2019년: 회사의 대표가 되다
15. 2020년
16. 2021년


1. 데뷔 및 1집 활동


데뷔 전까진 PC통신 나우누리 음악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가수 지망생이었으며 데뷔 전에 PC통신이 낳은 최초의 오버그라운드 가수 조PD의 '카사노바'를 피처링했고 그 덕에 1999년 10월에 기획사로부터 캐스팅되었다. 처음 싸이의 목소리만을 듣고 계약을 하려고 불렀는데, 직접 불러와 놓고 사장님이 직원들한테 "야! 어떡할 거야!"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유는 '''못생겨서'''... 결국 싸이의 그 외모 때문에 1년이 지난 2000년 10월에서야 정규 1집인 'PSY From the Psycho World!'로 데뷔하게 되었고 이 정규 1집은 2001년 1월에 발매되었다.

데뷔곡은 Shocking Blue의 'Venus'를 샘플링한 ''''.'''' 당시 뮤직 비디오 등을 봐도 별 기대 없이 꽤 저예산으로 나왔으며 지상파 무대는 꿈도 꾸지 못하고 엠넷의 <쇼킹엠>, <힙합더바이브> 등의 케이블 프로그램에 가끔씩 등장하는 등 그야말로 '''무명 가수에 가까운 안습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그가 데뷔했던 2000년 10월부터 2001년 1월의 가요계의 상황이 어땠냐 하면 조성모, 서태지, S.E.S., 핑클, god, H.O.T., 유승준, 임창정, 홍경민, 엄정화, 박지윤, 코요태, , 컨츄리꼬꼬 등 당시 가요계의 거성급 인기 스타들이 갑자기 대거 컴백하여 피튀기는 접전, 즉 별들의 전쟁을 벌이던 중이었으니...
이때는 가요계에 적합하지 않은 외모를 커버하고자 우리가 알고 있는 싸이의 모습과 다르게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것과 같은 '''동그란 알의 선글라스, 강시 모자 비슷한 검정색 비니'''를 착용하는 등 나름 힙합퍼로서 어두운 면모를 보이기 위한 컨셉으로 무대 의상을 입고 나왔는데 통통한 볼 살과 몸꽝인 덕분에 졸지에 '''가요계의 왕서방'''으로 전락하며 거의 듣보잡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싸이 본인이 아는 형님에서 회고하는 데뷔 때의 경험담에 의하면 대기실에서 방송 관계자가 자신을 보고서도 싸이 씨 어딨냐고 물어보고 방송국 앞에서 차에서 내리니까 여고생들이 "아저씨 이거 누구 차에요?"라고 묻는 등 당시에는 연예인 취급도 못 받고 다녔다.
하지만 세 달 뒤인 2001년 1월 정규 1집의 발매와 동시에 '''마침내 지상파 방송 무대에 입성'''하여 기존에 착용했던 선글라스와 비니를 처음으로 벗고서는 자신의 본래 얼굴과 헤어 스타일을 보여줬다. 지상파 무대에 나왔을 때 싸이를 처음 보게 된 대중들의 반응은 "'''순돌이'''가 오랜만에 TV에 나오냐?", "'''김현철, 쟤 왜 저러냐?'''", "'''살 찐 송강호네'''", "'''유퉁, 판 냈냐?'''" 등의 그야말로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는데[1] 이에 싸이는 개인적으로 "'''선배 가수 김현철과 가장 닮은 것 같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김현철은 그 이야기를 듣고 노발대발했다고. 그럴 만도 한 게 김현철이 <라디오 스타> 출연했을 때 김현철의 턱 쪽이 자기하고 닮았다고 김구라가 드립 치자 어이없다는 듯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는데 외모나 대외적 이미지에서 김구라보다 전혀 나을 것이 없던 싸이가 그랬다면...
외모뿐만 아니라 '''남성 패션에서 금기시되는 민소매 의상'''을 무대 의상으로 입고 나와 '''지상파 방송 활동 당시 경고를 여러 차례 먹었다.''' 경고 사유는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라고. '새'의 가사 역시 파격적이었는데 '나 완전히 새 됐어', '이 십 원짜리야', '뒤통수 조심해라' 등등 일반적인 노래 가사로는 상상이 안 될 문구들로 화제가 되었다.
그나마 후속곡 '끝'이 '새'와는 정반대 컨셉으로, 말하자면 당시 유행했던 느낌의 멜로디와 가사로 호평을 받은 편.[2] 게다가 2000년 말부터 최고의 인기 곡으로 유명했던 박지윤이 부른 '성인식'의 안무를 가미한 섹시 막춤까지 선사하는 퍼포먼스까지 가미되어 당시 대중들을 거의 멘붕시킬 정도로 상당히 파격적인 컨셉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덕분에 2000년부터 엄청난 유행을 몰고 있었던 '''엽기 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엽기 가수 싸이'''' 라는 애칭으로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여러 번 차지하면서 신인 가수로서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면서 매우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었다. 심지어 KBS 뮤직뱅크에서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3]
싸이가 데뷔한 지 2개월 만에 데뷔했던 '''가수 자두''' 역시 엽기 컨셉을 통해 ''''여자 싸이''''로 불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으니 그 파급력이 얼마나 컸는 지 짐작된다. 재밌는 건 정작 싸이 본인은 '''엽기를 의도적으로 노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는 거다. 그냥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고 애쓴 것 뿐'''인데 사실 그의 '''그런 모습 자체가 엽기'''였던 것.
참고로 그가 '새'라는 곡으로 인기 상승세를 얻을 무렵 모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는 싸이 스스로가 '많은 분들이 <전국노래자랑>에 나올 법한 외모의 사람이 댄스 가수로 활동한다는 게 많은 분들에게 오히려 신선하고 충격적인 것도 인기를 얻는 데 한 몫 했다고 봅니다.'라고 셀프 디스를 한 적도 있다.
1집의 수록곡은 인트로 아웃트로를 제외하고도 무려 18트랙으로 이 모든 곡들을 싸이 본인이 직접 프로듀싱했다. 게다가 피처링도 거의 없다. 이후 앨범들에서는 싸이 본인의 프로듀싱 비중이 상당히 줄어들고 피처링의 비중이 커진지라 '싸이는 1집에서 모든 걸 보여줬다'고 싸이를 찬양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수준. 게다가 랩 실력도 1집에 다 쏟은 듯 하다. 다 들을 필요는 없고 '새'와 '끝'만 들어봐라. 최근 나온 곡과 차이가 크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에 묻힌 수많은 트랙들을 들어보면 귀에 팍팍 꽃히는 가사 속에 담긴 직설적인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압권이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조PD가 피처링한 'I Love Sex'[4]에서는 당시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까발리며, 동시에 사회 전체에 만연한 똥군기와 강요 문화로 인해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한다. 이 곡 말고도 지금 들어봐도 충분히 충격적인 곡들이 많다. 때문에 강남스타일로 접한 싸이를 '웃기는 가수'로만 알고 있는 해외의 대다수 팬들이나 현재의 10대들이 1집을 접하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

2. 대마초 흡입으로 인한 몰락, 그리고 부활



같은 2001년 말 정규 2집인 "싸2"를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타이틀 곡인 '얼씨구'의 뮤직 비디오까지 촬영한 상태에서 11월 15일에 대마초 흡연 사실이 적발되어 경찰에 검거됐다.[5][6] 체포되던 당일 음반 마스터링을 마무리한 이후 오후 4시경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서 출근하던 도중 녹음실 바깥에서 비밀리에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당일 오후 발매되는 2집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고 당시만 해도 아무런 일도 모르던 현장에서는 소속사 직원과 매니저가 미리 사전 인터뷰를 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나, 현장에 나타나지 않던 싸이 때문에 인터뷰가 무기한 딜레이 되었고 이로 인해 결국 인터뷰가 펑크가 나서 소속사에서 잠적해버린 싸이를 찾아 나서려던 찰나, 뉴스에서 긴급체포 소식이 뜨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경찰서로 향했다고 한다. 이는 신인가수가 인터뷰 당일 대마초로 긴급 체포되어서 펑크를 낸 최초의 사례로, 전설로 남아 있다. 재판에서 마약사범으로 징역 1년을 구형받았다.
결국 그 해 신인상이 유력시되었던 그는 이 결정적인 사건으로 방송정지를 당하며, 반포중학교, 세화고등학교 후배인 성시경에게 신인상을 넘겨줬다.[7]
이후 벌금형으로 그쳤던 그는 앨범 출시 및 활동을 부득이하게 2002년으로 연기했지만, 대마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으로 인해 1집에 비해 큰 인기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자신이 졸업한 모교인 세화고등학교 교무실까지 찾아가서 선생님들에게도 잘못했다고 빌었으며, 한동안 자숙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라는 천운 덕에 싸이는 예상보다 일찍 방송 복귀에 성공했는데, 2012년 8월 13일 <힐링캠프>에서 10년 전 그때를 회고하며 말하길, 본인 이야기가 본업(?)인 자숙 도중 전 국민이 본업을 내던지고 월드컵 응원을 하는 중에 자신도 본업인 자숙을 그만두고 길거리에서 응원하다가 생방송 중인 SBS이혜승 아나운서한테 딱 걸려서 인터뷰당한 게 복귀의 물꼬였다던가.

이 때를 기점으로 탄력을 받아 건전하게 노는 가수 이미지 전환까지 성공한다. 그 결실이 바로 2002년 정규 3집 '3마이'의 타이틀 곡이자 영화 <비벌리 힐즈 캅> 의 메인 테마 곡이었던 'Axel F'를 샘플링한 '챔피언'. 여기에 이재훈과 함께 한 '낙원'도 큰 인기를 끌면서 2집의 부진을 씻고 성공적으로 복귀하게 된다. '챔피언'은 월드컵 당시 서울광장의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하며, 3집이 발매된 9월은 6~7월의 월드컵 열기가 많이 식은 뒤였는 데도 월드컵 특수를 받았다.
이후 싸이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복무하게 되어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3. 병역 비리 그리고 한군두


2006년, 산업기능요원 복무 당시 그의 아버지가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으나 최종적으로 금품 제공으로 산업기능요원 복무 의혹은 무혐의로 판결되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복무 기간 도중 찔끔찔끔 공연을 하며[8] '''싸이가 복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게 드러나는 바람에''' 현역병 재입대 판정을 받았다. 이게 자업자득인 것이, 병특 나오자마자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자기가 중간중간에 공연 다닌 것들을 다 이야기했다. 당연히 이에 관한 민원이 들어가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에 싸이는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하면서 결국 재입대를 했다. 이때의 충격으로 인해 한때 일부 누리꾼들에게 '''중사로 전역'''했냐는 놀림을 받기도 한다. 대체 복무 기간+현역 기간 합치면 대략 5년인데, 하사 복무 기간이 4년이라 정말 이 정도 군 생활 했으면 중사 단다. 결국 금품수수혐의가 아닌 부실 근무로 인해 병특이 취소된 셈이다.[9]
한편 평소 싸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신해철은 당시 싸이가 두 번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것에 적잖이 분노하며 기자 회견을 하겠다며 싸이에게 이야기했었다. 두 번 군대에 보내는 것은 헌법상 불합리한 것이 그 이유로 그는 결론적으로 싸이는 병역법 위반으로 재복무가 아니라 '''감옥에 보내는 게 옳다'''고 했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첫 복무는 취소되었으므로 군대를 두 번 간 것이 아니다. 단 첫 복무때도 기초군사훈련은 이수했으므로 훈련소 입소를 두 번 한 것은 맞는 말이다. 즉, 한훈(련소)두. 대체 복무 4주+현역 6주, 도합 10주의 훈련을 받은 베테랑(?)인 것. 싸이도 방송에서 누누이 '훈련소를 두 번 간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군번이 2개다. 03년거 한 개, 07년거 한 개(...) 그리고 방송 나와서 한 말이지만 재입소 날짜를 받고 보니 그 날짜에서 2주만 버티면 자신은 나이 때문에 공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물의를 일으켜볼까 했다가 아내가 그냥 가라고 했단다. 이 물의라는 게 술집 가서 시비 걸고 쳐맞기. 전치 3주를 노리며. 싸이가 술집에 가서 처맞겠다는 계획을 말하자, 아내가 "그래도 싸이인데.. 후지다..."라고 말했다고. 결국 아내 덕에 갔다고 한다. 사실 그 당시 싸이의 아내는 쌍둥이 딸을 출산한[10] 상태라 가장으로서 출퇴근하여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 엄청나게 고민했다는 모양. 하지만 방송에서 언급한 것처럼 싸이가 아내 말 듣고 순순히 재입소한 것은 아니다. 재복무 도중에도 복무 만료 취소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 원심 패소에 대해 항소했지만 이마저도 패소했다.
싸이의 한훈두 관련 판례를 참고하려면 여기에 들어가서 2007년(1심), 2008년(항소심, 상고심) 판례를 참고하면 된다. 원고 이름이 없다고 판례 잘못 작성한 것은 아니니 참고할 것. 원고가 개인이 아닌 국가 기관일 경우 이렇게 원고 이름을 명시하지 않는다. 이 판례는 행정 행위의 만료 이후에 위법 사유가 발견되었을 경우, 그 행위를 취소할 수 있는 지, 취소할 경우 소급하여 무효로 할 수 있는 지에 관한 사례로 소개되기도 한다. 참고로 취소시 처분 상대에게는 침익적 행정 행위가 된다.


군대 이야기에 묻혔지만, 싸이는 2005년 11월 첫번째 제대 이후에 기존의 가요들 및 자신의 곡들을 리메이크 및 리믹스한 앨범 'Remake & Mix 18번'을 내놓았고 2006년 정규 4집 싸집으로 컴백했다. 이때 탄생한 노래가 "연예인"과 "We are the one".

4. 전역 그리고 전환기


2009년 7월 11일 마침내 전역함으로써 기나긴 국방부 퀘스트에 마침표를 찍었다. 장장 5년 여에 달하는 병역이었다. 사족이지만 싸이는 2012년 시점에서 데뷔한 지 12년이 됐다. 개중 5년을 군대로, 나머지를 기타 자숙 기간으로 빼면 실제 활동 기간은 3년이라고.
제대 이후 2009년 9월 '대학가요제'에 게스트로 나왔는데, 당시에는 조금 위축된 모습이 엿보였고 '예전의 싸이'만큼 힘있는 모습은 없었다.
군대를 두 번 갔다왔다는 이미지 덕분에[11] 싸이에 대한 동정 여론은 지금도 널리 퍼져 있다. 게다가 MC몽이나 스티브 유와는 다르게 사후 책임을 확실히 마친 케이스이므로 여론이 그에게 옹호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싸이는 결코 단순한 피해자라고 볼 수는 없다. 산업기능요원 복무 만료 취소 처분을 내린 서울지방병무청장에 대해서 취소 소송까지 걸었으나 결과적으로 패소했기 때문에 재입대한 것이다. 대신 합법적인 절차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자신의 무혐의를 증명하려는 것은 결코 도의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며,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12]
다만 싸이가 '부실 근무'를 했는지 여부는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한 문제다. 싸이가 항소한 부분도 바로 이 문제였다.
평범하게 부실 근무라고 하면 회사에 일을 안하거나, 출근도 안하거나, 업무 시간에 다른 장소 가서 놀거나 하는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부실 근무란 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산업기능요원 제도는 프로그래머에 한해서만 인정이 되는 제도지만, 그래픽 파트나 기획자 파트 등의 분야에서도 산업기능요원으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꼼수를 쓴다. 즉, 서류상으로는 프로그래머 업무를 담당하는 요원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파트의 업무를 보게 되는 것이 산업기능요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꼼수이기 때문에 실제로 발각되면 '부실 근무' 사유로 인정되어 복무가 취소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복무가 취소되었으며, 싸이 역시 그 중 하나다.[13]
하지만 판결문에 따르면, 어떤 업무를 담당했는가와는 별개로, 싸이는 근무 시간의 대부분을 개인 시간으로 이용하거나 멋대로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실한 근무 태도가 부족했다는 점이 판결에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싸이가 부실 근무를 판결받은 것과 업계의 관행 사이에는 관련성이 적으며, 여전히 도덕성 부분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싸이를 비판하고 싶다면, 취소 소송의 근거에 대해서 갑론을박 따지는 것보다, 그냥 '싸이한테도 잘못을 저지른 점은 있다' 라고 하면 아무도 반박할 수가 없다.
정작 싸이 본인은 잘못을 인정했고, 방송에 나올 때마다 한결같이 ''''군대를 두 번 간 게 아니라 훈련소를 두 번 간 거죠''''라면서 명백하게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에서는 '군대를 두 번이나 갔다오다니 불쌍하다', '억울하게 군대 두 번 갔다왔는데 싸이 좀 그만 깝시다' 하고 잘못된 이야기를 근거로 옹호하는 여론이 있다. 이런 것 때문에 게시판이 시끄러워지니까 괜히 싸이가 싫어진다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빠가 까를 만든다의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는 국방부에서 주는 상도 2개나 탔고 군대에 위문 공연도 자청해서 다니고 출연료 받은 건 장병들 회식비로 쏜다고 한다. 게다가 공연 중 사단장한테 뻐꾸기를 날려 그 날 점호도 패스하게 해주고 공연을 질질 끌어서 다음날 '''전투 휴무'''를 주도록 한다고... 국방부에서도 나쁘게 들어와서 잘 되어 나간 케이스라 싸이를 좋게 써먹는다나. 그러나 병역 비리로 걸려서 현역으로 입대했으면서 일반 현역병들처럼 제대로된 군복무라고 하기 뭐한 게 매번 연예병사처럼 위문 공연이나 다녔으니 이 마저도 군대에서 제대로 된 병역 이행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연예 병사에 준하는 특혜를 받은 것으로 보이나 이 부분에 대해선 전혀 논란이 없는 게 이상하다.
복무 도중 마침 창군 60주년이라 그 전까진 송구스러워서 마다했지만 까라면 까는 게 군인인 지라 60주년 행사에 공연을 뛰었고 그때 환호해 준 장병들이 너무 고마워서 지금도 군부대 위문 공연은 잘 다니는 모양.
본인도 한군두와 군대 이야기는 최대한 방송에서 다시 언급하지 말아주길 바라지만 어쨌든 법적으로 지은 죄이므로 평생 따라다닐 듯. 판결에 따라 재복무하여 병역 의무를 마쳤고 법적 책임을 다했으니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지킬 필요는 있겠지만 본인도 여전히 군 행사엔 적극적이다.
그런 이유로 위문 공연 다니느라 상대적으로 높은 행사 수입을 포기한 대신 기획력하면 손꼽히는 가수 김장훈과 의기투합하여 콘서트를 개최, 엄청난 볼거리와 재미로 유료 관객을 쓸어 담아 공연 수익만 100억을 가뿐히 넘기며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A급 아이돌들이 1년동안 뼈 빠지게 일해도 저만큼 수익 내기 힘들다는 걸 생각하면 무지막지한 레벨이다. 물론 콘서트 만족도는 백이면 백 대만족. 하지만 이후 싸이의 김장훈 공연 도용과 김장훈의 공연 스태프가 싸이 쪽으로 이적하면서 김장훈과의 사이가 틀어졌다.
참고로 2015년 11월 마지막 주에 진행된 네이버 V앱 생방송 일명 '싸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본인 입으로 "대체복무"와 "진 복무"라고 표현했다.

5. 2010년: 5집 발표


2010년 8월 YG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자기 기획사를 운영할 때 양현석 사장이 많이 도와줬는데 아예 그냥 밑으로 들어갔다. 테디의 자가 복제가 심해지는 만큼 새로운 변화가 될 것이다. 또한 같이 작곡하던 언타이틀유건형도 같이 들어갔다. 이로 인해 YG는 음악적 폭과 더불어 무시무시한 공연 기획력도 함께 얻게 되었다.
20일 5집 발표, 기계음을 배제한 곡이 눈에 띈다. 타이틀 곡인 'Right Now'에서는 인트로에서부터 ''''내 목에 기계 소리 빼!''''라고 내질러 주신다. 더불어 앨범 수록곡 중 '싸군'이란 곡이 사람들을 빵 터뜨렸는데, 가사 중 ''''예비군 통지서와 입영 통지서를 같은 날 받아본 놈 있냐 여기서''''라는 가사는 그 노래를 듣던 많은 남성들을 빵 터뜨리게 했다. 또 자기가 출연했던 광고의 이름들을 다 열거했다. 소녀시대2AM이 컴백했는데도 불구, 그 뒤를 바짝 쫓으며 ''''형 아직 안 죽었다''''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상파 음악 프로에서는 혼자 콘서트를 하다시피 할 정도. 10월의 방송에서는 관중석에 들어온다던가 혹은 MC석에 들어오는 등...
11월 7일 <인기가요>에서도 폭발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중간에 MC인 조권, 정용화, 설리가 난입했는데 뭔가 보여준 건 싸이 못지않은 정신 세계의 소유자 조권 뿐...

6. 2011년: 노홍철과 함께 겨땀 댄스


'''"인물 순위 10위 왔네요"''', '''"아니 옛날엔 안그랬는데 살이 좀 찌신 것 같네요"''', '''"뒤에서도 볼이 보여요"''', '''"사랑니 뺐어?"'''

<무한도전>의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참여를 위해 출연하여 노홍철과 파트너가 되었다. 이때 싸이의 겨드랑이이 배인 것이 개그 소재로 활용되어서 '''싸이=겨땀'''이라는 이미지가 생겼고 '''겨싸'''(겨드랑이+싸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네이버에 싸이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겨땀이 뜬다. 하지만 본인은 겨땀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싸이가 뜬다는 것이 더 가슴 아프다고 한다.[14] 2015년 컴백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넷 방송 '싸리텔'에서는 "4년 전의 겨땀을 지금도 해명해야 할 줄은 몰랐다"라고 한다. 이 흥건한 겨땀은 다한증이라는 질병이다.
후일 <유&아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딸을 둔 아버지 박재상은 팔을 들면 안 되고 가수 싸이는 팔을 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할 지 고민하다가 '이걸로 한분기 먹고 살자.' 라는 생각에 싸이가 이겼다고. 어쨌든 가요제 당일 부른 노래 ''''흔들어 주세요''''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싸이도 출연에 만족스러운 듯하다.
2011년 9월 10일 새벽 그의 콘서트 <썸머스탠드 흠뻑쇼>가 지상파 최초로 SBS에서 추석 특집으로 방송되었다. 다만 공연을 갔다 왔던 사람들에겐 ''''SBS 실황 버전은 직접 갔을 때 느낌의 1/10000 정도''''라고 한다. 즉, 싸이 공연은 실황이나 DVD보다는 '''직관'''이라는 것. 말하자면 '''본격 콘서트 티켓 값이 안 아까운 가수'''.
현대카드 슈퍼 토크 강연 영상이며 저때 나온 말 중 ''''Breaking the Trend Making the Brand''''가 있다. 저 당시엔 말은 멋진데 확 와닿진 않은 말이었으나 바로 후술하듯이 저 신념이 좋은 의미에서 충격과 공포의 믿기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7. 2012년: PSY WORLD''''''(국외 진출)


[image]
2012년 <슈퍼스타K4>의 심사위원으로 선발되었다. 예선 심사 당시 이승철 못지않은 독설을 뿜는가 하면, 눈물을 터트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만약 이때 낸 앨범이 이렇게 안터졌으면 싸이도 <슈스케> 생방송 무대에서 심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전망이었다. 하지만 앨범의 전무후무한 히트로 인해 <슈스케>는커녕 방한도 힘들어지자 탑12전만 심사했고 심사위원은 윤건으로 대체되었다.
7월 15일에 6집 EP 파트1인 '싸이6甲 Part.1'을 발매했다. 총 수록 곡은 6곡이고, 5곡이 피처링 참여로 이루어져 있다. '싸이6甲 Part.1'의 판매량은 '강남스타일'의 인기로 인해 2013년 7월말 기준으로 12만 장을 넘었으며 싸이 5집인 '싸이파이브'의 2만 장과 싸이 4집 '싸집'의 5만 3천 장 보다 높았다.
그리고 이때의 타이틀 곡 '''강남스타일'''은 해당 문서 참고. 사실 한국 가요 역사상에서도 이례적인 일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비영어권 가수가 이렇게 인기를 끄는 건 흔치 않다.
이무렵 <힐링캠프>까지 나왔는데 내용은 평이한 편이었고 진솔하게 자기의 생각을 풀어나갔는데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안 돼'라는 가부장적인 이중잣대, 여자와 연애 이야기에 불쾌함을 느낀 시청자들에게 비난을 사기도 했다. 다만 본인도 트위터로 방송을 본 후 '내가 봐도 철이 없다'고 한 걸로 보아 본인도 어느 정도 인식한 듯하다. 그리고 현아를 위해 발표한 오빤 딱 내 스타일' 역시 어마어마(?)한 반응... 어쨌거나 2012년 9월부터는 뜨다 말고 도로 묻혔다. 현아의 보컬 톤에 안 맞는 곡조라서 그렇다는 의견이 대다수. 이 곡에서는 약간 쫑알거리는 톤이 된다.
6번째 정규 앨범 <6甲 Part.1>에는 많은 가수가 참가했는데 타이틀 곡인 '강남스타일'을 제외하더라도 다른 곡에 G.DRAGON, 성시경, 리쌍, 김진표, 박정현, 윤도현이 참여했고 윤도현은 싸이에게 자신의 공연에 와줄 것을 요청했다. 싸이 전용 유투브에 올라온 곡 인터뷰. '강남스타일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에 대한 인터뷰가 있다.
미국에서 하는 2012 MTV 비디오뮤직어워드(VMA) 시상식에 초청되었다. 진정한 월드 스타...가 아니라 본인이 '''국제 가수'''라고 불러달란다...
한국 시각으로 2012년 9월 4일 저스틴 비버가 소속된 레이블인 아일랜드 데프잼 레코딩스와 음반 판권 및 매니지먼트 관련 계약을 체결한 게 알려졌다. 소주 원샷하고 도장 쾅 그리고 다음날인 5일에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계약을 체결, 한국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의 음반 판매를 담당할 것이라고.
2012년 9월 29일자(9월 20일 발표) 빌보드 핫100 차트 11위에 올랐으며 10월 6일자(9월 27일 발표)에서는 '''빌보드 핫100 차트 2위'''에 올랐다. 이는 사카모토 큐 이후 아시아권 가수로서는 최고 기록이다. 만약 빌보드 1위를 차지한다면 1996년 마카레나 이후 16년 만에 나오는 통산 7번째 비영어권 빌보드 1위 곡이며 1963년 사카모토 큐의 '위를 보며 걷자' 이후 '''49년만에 아시아 가수로는 두 번째로 빌보드 1위 등극'''이라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이전까지 빌보드 차트 진입 순위 중 최고였던 원더걸스가 76위를 한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야말로 후덜덜한 전무후무한 특급 기록'''. 물론 빌보드 1위 등극과 수성은 순탄한 일이 결코 아니며 되려 험난하다. 특히 싸이의 경우 에어플레이 등재가 된 것이 채 한 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누적 에어플레이 점수가 중요한 빌보드의 합산 방식에서 상당히 불리하기 때문.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빌보드 핫100 차트 순위권에 올랐으며 10월 6일자 차트 기준으로 1위인 마룬 5의 'One more night'와도 얼마 차이 안 난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 가수의 한국어 음악이 빌보드 최상위권에 오른다는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례적인 성과임은 분명하다.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1위 결과가 발표된 2012년 9월 20일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빌보드 차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를 축하하기 위해 '강남스타일'을 오프닝 곡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실은 신청 곡 신청이 몇몇 있었다고 한다. 그런 데다 이런 시류를 잘 반영하는 <배캠>답게 과감하게 오프닝 곡으로 선정했던 것. 그리고 배철수는 오프닝으로 이 곡을 보낸 후 친히 말씀하시길 "지금 월드 팝 음악이 된 거예요. 미국 싱글 차트 11위에 올랐다니까요. 영국 싱글 차트에도 10위 권에 있습니다. (중략) 오늘 싸이 씨가 SNS에 글을 남겼대요. '어우, 이제 싱글 차트에 올랐으니까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도 강남스타일이 나가는 건가?' 나가야죠. 그리고 혹시라도 싸이 관계자들이 또는 YG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이 방송을 들으시면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싸이는 미국 싱글 차트에 올랐으니까 언제든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늘 비워놓고 있겠습니다. 연락만 주신다면 바로 '''해외 아티스트 출연하듯이''' 출연하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오오오. 이와 같은 방송 내용이 입소문을 타면서 <배캠>은 검색어 순위권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런 기록을 세운 이상 2012년은 한국의 팝 음악 팬들에게나 싸이 본인에게나 하루하루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후 '강남스타일'은 11위에서 2위로 오르는 사이에 기네스북까지 기록을 올렸다. 기록 종목은 유튜브의 최다 '좋아요' 채택자로.
이런 세계적 인기 덕에 처음 도피 유학 장소이자 합격 후 이름만 걸치다시피 한 보스턴 대학교에서 정식으로 도네이션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2012년 10월 4일 밤 10시에 '''서울 시청 광장'''에서 '''국제가수 싸이, 서울스타일 콘서트'''를 무료 공연으로 열었다. 장소 대여 명칭을 1위 축하라고 적은 설레발 넘치는 공문은 애교. 아침부터 모여둔 관객들은 기사마다 다르지만 최소 '''6만 명'''에서 최대 '''10만 명'''이나 운집(외국인 다수 포함), 2002년 월드컵을 방불케 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떼창이 서울 시내 한복판을 강타했다. 싸이에게 있어서는 감사 인사의 의미였고 관객들 역시 싸이에게 축하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 날 조용필 이후로 다시 한 번 '''지하철 운행표가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관객들이 너무 몰려서인지 공연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공연 끝나고 버려진 쓰레기만 22톤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차린 추모 분향소가 개발살나는 등...
한편 이 날 콘서트는 인터넷 유튜브로도 생중계가 되었는데 유일하게 tv에서는 뉴스 채널인 뉴스Y하라는 뉴스는 안 하고 콘서트 전 실황을 틀어주었다. 사전에 편성 계획도 없었고 당일 10시 뉴스에서도 중계 안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잠깐 연결하려다 쭉 틀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Y에서 정시 뉴스를 공급 받고 있는 지상파 DMB 채널 QBS 시청률이 해당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MBC에서 편성한 "싸이 흠뻑쇼" 시청률이 꽤 잘 나오는 등 꽤나 군침 흘릴 만한 콘텐트인데도 불구하고 TV 생중계 편성이 안 된 이유에 대해서는 서울시 인터넷 방송이[15] 시청률 높이려고 서울시가 과욕을 부렸다는 추측이 있다. 사실 TV 공연 중계의 경우는 생방송보다는 아무래도 녹화 쪽이 더 양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며 기술적 설명을 차치하고라도 실제로 SBS 녹화판과 유스트림 생중계판을 비교해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녹화 중계는 SBS에서 사흘 뒤인 10월 7일 밤에 긴급 편성했다. 원래 2시간 30분이 넘게 진행된 공연을 1시간으로 편집한 탓에 일부 곡은 후렴부만 나왔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편집. 다만 원래 SBS 스페셜이 편성되어있던 시간대에 공연을 틀어주는 바람에 후속 시간대 편성인 음악 프로 '정재형 이효리의 유&아이'는 20분이나 뒤로 밀렸다고.
바로 다음 날인 5일 저녁 6시 30분부터 춘천의 육군 2군단에서 공연이 진행되었으며 그것도 무료로. 출연료도 기부했다. KFN국군방송에서는 '국군방송 위문열차' 프로그램 제작 최초로 TV 생중계로 제작[16]했고 한국정책방송KTV에서도 화면을 받아다 틀어줬고 심지어 JTBC를 제외한 종편 3개 채널 MBN, 채널A, TV조선은 물론 뉴스Y와 YTN도 정규 방송 집어치우고 다 틀어줬다.
2012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100인 후보에 올랐다. #. 12월 8일 4위를 기록. 1위는 북녘에 있는 그 누군가.
연말 시상식에서도 저력을 과시했으며 먼저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는 대상 중 하나인 베스트송을 포함해 3관왕을 기록했고, 거기에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조수현 감독은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했다. 이후 MAMA에서도 대상 중 하나인 올해의 노래상을 포함해 4관왕을 기록함은 물론 소속사 YG가 늘 보이콧하던[17] 골든디스크서울가요대상에서도 각각 음원 대상, 대상을 차지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골든디스크 기준 쥬얼리(2008)년 이후 처음으로 비(非)아이돌이 음원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서울가요대상 기준 빅뱅(2007년) 이후 5년만에 YG 소속 가수가 대상을 수상했다.
2012년 12월 15일 방영된 <무한도전> '2013 달력 배달'편에서 싸이의 달라진 위상이 나타났는데 뉴욕으로 배달 간 노홍철을 만나러 필라델피아에서 '''헬기'''를 타고 '''VIP''' 헬리포트에 내렸다. 싸이의 말로는 자기에게 신세를 진 사람의 보답으로 타고 온 거라고 한다. 그리고 보디가드의 엄호 속에 승용차를 타고 타임 스퀘어에서의 인지도 테스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진을 찍으며 알아봤다.
후일담으로는 2013년 1월 1일, 아침 방송 때문에 뉴욕에 간 <무한도전> 팀이 전날 싸이의 타임 스퀘어에서 공연 때문에 밤샘하고 늦잠자고 일어나 싸이는 아침 밥 먹었을까 하고 걱정했다. 그러자 김태호 PD가 대답하기를 싸이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랑 아침 식사하고 있다고 하니까 <무한도전> 팀이 경악한 것은 물론.
[image]

7.1. 유튜브


KPOP전체

PSY조회수 변화정리 ( 2012~2019.04)

강남스타일 5억뷰 달성기간 추이 "다른 5억뷰달성 KPOP과의 비교"

7.2. 김장훈과의 갈등


2012년 10월 4일 김장훈의 자살기도 소동이 있었다. 김장훈은 누군가의 배신에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싸이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 했는데...
이후 이상호 기자[18]가 밝힌 바에 의하면 싸이는 김장훈의 공연을 좋게 말하면 벤치마킹, 나쁘게 말하자면 통째로 베껴갔으며 둘이 연합한 공연 이후로 국내 최고라고 알려진 김장훈 공연의 스태프들을 대다수 데려갔다고 한다. 동업했던 공연인 '원타치'의 성공을 서로 자신에게 공을 돌리면서 사이가 멀어졌다고. 자신이 가장 힘들 때 도와준 사람과 사이가 멀어진 건 그렇다 치고 헤어지면서 그가 도와줄 때 그와의 인연으로 만난 그의 인재들을 모두 빼갔다는 이야기인데 별로 유쾌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까지 이상호 기자가 밝힌 이야기이고, 김장훈도 싸이가 맞다는 것 그리고 배신에 힘들다는 것 정도만 공개했다.
이에 대해 김장훈 공연 스태프라고 밝힌 무명의 네티즌들이 서로 엇갈리는 증언들을 올리고 있는 과정. 김장훈이 기부하느라 스태프들 월급은 뒷전이였다고 한다. 본인은 자기가 굶더라도 스태프들을 챙겨줬다고는 하지만 김장훈 매니저였던 조빈의 이전 발언과, 김장훈의 평소 아무한테나 반말 찍찍하는 태도등을 고려하면 김장훈의 말은 변명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싸이는 대형기획사에 소속되어있다 보니 김장훈보단 대우가 더 좋을게 당연하다. 정확하게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네티즌은 모른다. 기자의 말 외에는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어떤 언급도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한 대부분에 통용되는 정보는 팩트가 아닌 소문에 가깝다. 그저 그런 식으로 사건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어쨌든 공연 표절이란 이야기는 표절시비 건이 다 그렇듯이 법적으로 너무나도 애매한 영역이고 설사 김장훈의 공연 스태프를 데려갔다고 하더라도 스태프들의 소유권(...)이 김장훈에게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전속도 아닌 스태프진 입장으로는 얼마든지 다른 가수들의 외주 작업을 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의적으로는 보기 안 좋을 수는 있을 지언정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기에 둘이 개인적으로 서로 잘 풀면 그걸로 끝날 일이었다. 김장훈도 힘들다는 말은 했지만 실명 거론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싸이가 병문안을 '가자마자' YG에서 '싸이와 김장훈은 사이가 좋다. 병문안 가서 서로 화해했다'는 식의 기사를 성급하게 올렸고 이에 6개월만에 만나러 온 게 언론 플레이를 위한 거였냐며 김장훈의 분노가 터지면서 사건이 커진 것. 애초에 양측의 매니저들끼리 사이를 좋게 하려고 꾸민 일로 공개를 위한 만남이 아니였다고 한다. 하지만 싸이 관계자 측은 한창 싸이가 탄력 받고 있는 시점에 혹시 문제가 될까봐 마음이 급했던지 김장훈 측의 동의 없이 공개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YG엔터테인먼트의 섬세하지 못한 대처가 아쉬웠다. 하지만 이 기사는 김장훈 소속사 쪽에서도 같이 낸 거라는 거. 그리고 김장훈은 정신적 충격을 이유로 앨범 발매를 무기한 연기했다. 심지어 외국으로 떠나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늘 말만 할 뿐 떠나지는 않았다.(...)
이후 김장훈과 함께 독도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서경덕 교수가 '김장훈 씨가 안정을 많이 되찾았다. 두 사람의 관계 회복을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해서 일이 일단락 되는 듯 싶었으나...
이화여대 대학원에 재학중인 예술가 고희정(제 3자)이 싸이와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를 김장훈 공연 표절로, 삼성 전자를 아이폰에 대한 표절로, 박원순 서울 시장을 싸이 서울 시청 공연에 대한 특혜로 서울중앙지검과 한국저작권위원회에 고소해버렸다. 덧붙여서 싸이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미국에 가서 장기간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는 국제 법과 미국에 제소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싸이 고소'가 네이버 1위를 먹어버렸다. 어쨌든 일단 법정에 가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되기 때문에 이제는 '끝까지 간다'라고 볼 수 있을 듯. 해당 여대생에 옹호 의견도 있지만 반대 의견이 상당히 거칠다. 저작권은 핑계고 싸이의 공연 때문에 자신의 공연이 취소된 것에 대한 앙심성 고소라는 의견이 꽤나 많다. 단순히 예술가로서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서란 의견에 말할 필요성이 적은 대중 교통 연장으로 인한 대중 교통 노동자의 피로 증가나 혈세 낭비라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물론 전체주의적 시각이 다소 들어간 경향이 있는 걸 감안해야 하는 의견이다.
그러나 '''고소한 지 단 하루 뒤'''(...)에 고희정은 블로그에 사과문을 올렸다. 처음에는 박원순 서울 시장에 대한 고소는 취하하고 직접 박원순 서울 시장에 대해 항의하는 걸로, 싸이 측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은 바라지 않는 진정서 형태로 바꿀 것이나 중앙지검 등에 고소하는 법적 조치는 계속 실행할 것이라고 했으나 나중에는 모든 고소를 취하하고 자신이 하는 일들도 모두 중단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일들만 하면서 조용히 살겠다는 '''반성문'''(...)을 올렸다. 다만 시간이 좀 흐른 뒤 뭔가 캥기는 것이 있었던 건지 본인 블로그 글들을 전부 지워버렸다. 사과문 전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그런데 보면 알겠지만 내용을 요약해보면 '내가 옳지만 내 생각과 달리 일이 너무 커져서 뒤처리가 곤란하니까 그냥 사과함ㅋ' 정도의, 반성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반성문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전형적인 무개념의 글이다.
그리고 분위기가 전환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김장훈이 싸이의 시청 공연을 보면서 우발적으로 자살 암시 글을 올린 것이 아니라 계획적이 아니냐는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 우연히 나온 것인데 네이버에서 조용히 연예인들의 소셜 활동에 주목하며 소셜 활동이 얼마나 인생의 낭비인 지 알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소셜 활동을 수집, 조사하는 네티즌이 있었다. 그다지 알려진 블로그도 아니었고 주목받고 있던 곳도 아니었기에 처음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아주 우연히 그 블로그에서 김장훈의 미투데이 글을 수집해놓을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장훈은 자신의 팬들과 함께 어떤 사람을 주어 없이 지속적으로 까고 있었는데 곳곳에서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는 것 같은 언행과 평소 김장훈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말투가 놀라웠다. 그리고 정황상 김장훈과 그의 팬들이 지속적으로 주어 없음으로 공격하고 있던 것은 싸이였는데 싸이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후부터 그런 대화가 이어졌다는 것이 또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 블로그는 순식간에 온갖 사이트로 퍼져나갔는데 이로 인해 김장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싸이는 김장훈이 팬들과 열심히 자신을 까는 동안 김장훈이 진행하는 사업 홍보를 트위터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싸이와 김장훈의 불화 사건을 최초로 타전한 이상호 기자가 왜 그랬는 지에 대해 글을 썼다. 김장훈을 도와주려고 이야기를 공개하고 오해가 생기니까 글을 썼다고. 게다가 이 기자의 말대로라면 아직까지도 김장훈은 자살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만약에 정말로 이 일때문에 기부와 애국 활동으로 인망을 쌓은 김장훈이 (이미 한 번 시도했던 자살에 성공하여) 죽는다면 월드 스타고 나발이고 싸이의 이미지가 얼마나 망가질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빠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다만 시간이 지날 수록 김장훈 측 기사만 나오는 반면 싸이 쪽의 반응은 없다시피 하니 '남보고 언플하지 말라며 자기가 언플한다', '니 퍼포먼스도 다른 사람들 것에서 따온 거 많은데 다른 사람이 니 것에서 따오면 안되는 것이냐', '공연 팀이 무슨 소유물이냐', '후배가 잘 나가니 배알 꼴려 그러는 것이냐', '기부 많이 하고 애국 활동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이런 것까지 실드를 쳐줘야 하나' 등등 오히려 김장훈 쪽으로 비난 여론이 돌아가는 상황이다. 특히 위의 글이 그 기폭제가 되었는데 '사실은 없고 감성 자극만 있다', '뜬금없이 최진실 남매는 왜 나오는 것이냐', '<강남스타일>은 뮤직 비디오와 말 춤으로 인기를 얻었는데 왜 김장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냐'라며 여론이 험악해지는 데 제대로 된 활약을 하였다.
김장훈이 심경 글을 올렸다. 요지는 자신은 언론에 어떤 말도 할 생각이 없었는데 기자가 자신이 사적으로 한 말을 허락 없이 녹취해서 언론에 퍼졌다는 것. 언론 플레이를 했다기보다는 역시 언론에서 일을 점점 크게 만드는 분위기다.
그리고 이 난리통에서도 싸이는 단 한 마디도 안하고 있었는데 기자들의 틈을 뚫고 들어가 싸이의 대답을 듣는 데 성공하였다. 그때 싸이의 말은 "장훈이 형이 지금 몸이 굉장히 안좋다. 그래서 어제 찾아봤던 것도 맞고 그냥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고 올라가는 대로 찾아뵐 예정"이었다. 김장훈이 싸이가 언론 플레이만 안하면 참겠다는 인터뷰를 했었는데 사실 그동안 싸이는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아무튼 둘이 사적으로 잘 풀면 될 일이었는데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은 인간들의 언플때문에 일이 공론화되어 사건이 지나치게 과열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조용히 지켜봐주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해서 좋을 지도 모른다. 조용해질 만 하면 김장훈 본인이 미투데이로 난리를 치긴 했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에게 핸드폰을 뺏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싸이의 매니저 역시 '두 사람은 평소에도 크고 작은 일로 자주 다투고 또 금방 화해하면서 지내왔다. 이번 건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다툼이었으나 그러한 사정이 대중에 알려지면서 일이 커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다음날'''.

결국 둘이 만나서 공연하고 술도 들이키면서 화해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확실히 하자면 '마련된' 자리가 아닌 싸이의 행사에 김장훈이 연락도 없이 무작정 찾아와 화해의 분위기를 깐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좋게 화해의 분위기로 마무리 된 것은 사실이나 원래 사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할 화해가 김장훈이 자신이 초대되지도 않은 싸이의 공적인 행사에 막무가내로 찾아와 싸이의 노래를 중단시키고 화해를 요청한 것은 아무리 봐도 올바른 화해의 방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의가 있는 것은 완전한 봉합이든 내부적 2라운드가 계속되든 적어도 언론지상이 함부로 더 건드릴 수 없게 되었으니 경사로세.[19] 자세한 내용은 여기. 결국 이 사태의 최종 패배자는 하루하루 180도 달라지는 상황에 갈대처럼 흔들린 대중.
그리고 김장훈은 그 후로 싸이 관련한 부분을 메인 타이틀로 걸고 각종 연예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7.3. 김장훈과의 갈등 그 이후


2012년 10월 11일, 9월 27일과 10월 4일에 이어 빌보드 Hot 100에서 2위를 수성, 3주 연속 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4주 연속 2위를 수성하여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도록 빌보드에 머무른 가수가 되었다. 2012년 11월 1일에도 또 2위를 수성하여 '''7주 연속''' 2위..
2012년 11월 30일 방송된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20]에 참석하여 현장을 '''싸이월드'''( & YG 패밀리 대잔치.)로 만들었다. 4관왕은 덤.

7.4. 그래서 표절인가?


누가 누구더러 표절이라 하는 건가 싶다... (링크삭제). 김장훈의 퍼포먼스도 사실상 이승환의 퍼포먼스에서 상당수 따오거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즉 엄밀히 말해서 원조라고 주장하기도 어려운 상황. 이승환 본인이 인증했다

7.5. 반미주의자 몰이를 당한 사건


2012년 12월 9일 DC 역갤의 주도로 과거 미선이 효순이 사건김선일씨 참살 사건, 아부 그레이브에서 벌어진 미군의 포로 학대 등을 비꼬는 식의 랩과 반미 퍼포먼스를 했던 사실을 발굴해 퍼뜨리면서 미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각각 2002년 연말과 2004년에 있었던 '반미 퍼포먼스'와 '반미 랩'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 '''반미퍼포먼스'''

2002년 6월 13일 장갑차에 깔려 숨진 미선이 효순이 사건에서 미군이 무죄 판결을 받자 그에 대한 항의 표시로 한 퍼포먼스이다. 취재 없이 복붙만 생활화된 언론 매체들에 의해 "'''반미 시위에 참가해서 벌인 퍼포먼스" 라고 잘못 알려져있다'''. 정확히 말해 반미 주의자가 아니라 그 사건에 부당함에 대해 항의한 것이었다.

싸이가 신해철과 함께 이 퍼포먼스를 한 것은 '''사건 당해'''이자 미군이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인 그 해 연말 11월에 있었던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MKMF)' 에서 보여준 퍼포먼스이다. 전 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흥분해있던 2002년에 일어난 가장 큰 비극이었던 이 사건은 당시 신해철이나 싸이 이외에 많은 연예인들과 아티스트들이 관련 발언을 하고 관련 작품을 창작하도록 했다.

'프로젝트X'라는 30분이 넘는 뮤직 드라마 컨셉의 DVD[21]

에 사용된 음악이었던 'The Killer'를 부르면서 한 퍼포먼스이다. 퍼포먼스의 내용은 그냥 '''모형 장갑차 부수기'''로, 그 외의 반미 퍼포먼스는 없었다.

참고로 이 곡을 부르기 전에는 월드컵 주제가인 'Into the Arena'를 공연했다.

'강남스타일'과 싸이의 연이은 인기 행보에 타격을 줄 것 같은 상황이 되자 팬이 아닌 일반인들까지 나서서 "평소 친분 관계가 있던 신해철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변명을 하며 싸이의 본심이 아니었다며 커버 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2002년이 월드컵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지금에선 거의 잊혀버린 일이지만 2002년은 비단 신해철이나 싸이처럼 사회 비판적인 스탠스를 취하던 연예인들만이 '반미'의 목소리를 내던 시절이 아니었다. 당시 대한민국의 미국에 대한 감정은 단기적으로는 연초부터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벌어진 김동성아폴로 안톤 오노 사건, 그리고 6월에 일어났던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으로 인해 대중적으로 안좋은 분위기가 깔려있었다. 장기적으론 2000 남북정상회담으로 미국보다 북한이 더 호감도를 갖던 시절이었으며 당시 세계 정세 역시 9.11 테러 이후 미국의 행보에 대해 전세계적인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던 유행가중 하나 'Fucking USA'였음을 잊어선 안된다(...). 여기에 상기한 사건들과 월드컵 응원 열기로 애국주의가 팽배하면서 범국민적으로 반미 감정이 높았음을 생각해보면 신해철과 싸이의 퍼포먼스는 당시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퍼포먼스였다. 무엇보다 저 퍼포먼스가 행해진 장소는 잘못 알려진 것처럼 '반미 시위 대회'가 아니라 '''M.net'''의 대표 페스티벌인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MKMF)'이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당시 반미시위에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를 포함 종교인들이나 평범한 연예인들과 일반 시민들도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 신해철과 싸이의 당시 퍼포먼스를 '일방적인 반미'의 퍼포먼스로 몰아간다는 것은 정의구현사제단들이나 당시 비판의 목소리를 내던 연예인들과 국민들을 '일방적인 반미주의자'로 모는 것과 다름없다. 이 당시 분위기를 전해주는 일화로는 KBS '뉴스8'의 앵커였던 황정민 아나운서가 반미 시위 현장에 관한 보도가 끝난 후 "부끄럽다"고 발언을 했다가 항의가 빗발치자 앵커직을 사퇴한 일이 있다. # 기사에도 있지만 황정민 아나운서의 해명은 이렇게 무기력한 입장에 놓인 것이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 '''반미 랩'''

이라크 전쟁으로 조지 W. 부시 정권의 병크가 한창이던 2004년 6월, N.EX.T의 5집이 2CD로 발매된다. 그리고 타이틀 넘버인 '개한민국'을 더불어 국가, 종교, 세대, 인터넷, 정치 등 각종 사회 비판을 한 곡들이 실린 1번 CD에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한''' 'Dear America'라는 곡이 실린다. 이 곡에는 크래쉬 안흥찬, 아레스 정욱, 스키조 허재훈, 피아 옥요한 등의 록 보컬들과 김진표, 프라임, MC스나이퍼, 싸이 등의 랩퍼들이 '피쳐링'으로 참여한다.

이 중 문제가 된 부분은 싸이의 랩 가사. 싸이의 랩 가사는 이 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하드코어한 부분'''이자 '''가장 직접적인 부분'''이다. '조지 부시 정부의 부족한 명분이나 전쟁 그 자체를 비판'하거나 '인간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한 다른 랩퍼들의 가사와 달리 싸이의 랩은 유일하게 일반적인 네티즌들이 흥분해서 할 법 한 패드립을 직접적으로 시전한다. 물론 "No More War"라는 타이틀 아래에 전세계적으로 반전 분위기가 팽배하던 그 당시 네티즌들로부터 시원하다며 '''가장 찬사를 받은 랩 파트'''가 싸이의 파트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후술된 싸이가 사과한 부분은 바로 이 'Dear America'의 랩 파트이다.

Crom[22]

:

오랜 영광의 고도 위엔 욕된 피들이 흘러내려 헛된 목숨은 모래알처럼 스며 든다

찾던 증거는 어디 있는가 어떤 명분을 아직 찾는가 언제쯤이면 만족하는가 인샬라

안흥찬(Crash): Murder, crime, genocide!

정욱(Ares): Murder, crime, genocide!

허재훈(스키조): Murder, crime, genocide!

요한(피아): Murder, crime, genocide!

Prhyme rap:

겨눈 총구 누구에게 청구, 전부 천부, 뜻을 버린 정부

cash, pepsi, bush, push 되돌아 올 것이 (crush) 이기고 졌어 지저스 뜻도 아님을 알라

JP rap:

발가벗겨진 전쟁포로 전쟁보다 더한 호로 세계평활 외쳐도 실상은 역시 쓰레기 포르노

누가 그렇게 만들었게 너 대신 외쳐줄게 빌어먹을 세계에서 제일 잘난 U.S.A

'''PSY''' rap:

'''이라크 포로를 고문해 댄 씨발양년놈들'''과 고문하라고 시킨 '''개 씨발양년놈들'''에 '''딸래미 애비 애미 며느리 코쟁이 모두 죽여'''

'''아주 천천히 죽여 고통스럽게 죽여'''

MC Sniper rap:

통제불능의 냉전상태 세계는 지목해 U.S.A 촛불시위는 시대적 위기 세계를 유린한 Bush

피부와 종교와 인간의 존엄과 그 시대의 신념과 명분이 오염된 이라크 파병을 반대 아, Fuck America

chorus: dear america

shouts: stop the war

chorus: dear america

shouts: stop the crime

(×2)

JP rap:

옷 벗길까 입을 막을까 터트릴까 너를 구해줄까 america 모든 나라 자기 맘대로 원하는 대로 이것이 바로 잘난 america

'강남스타일'의 인기가 한창일 때 이런 뉴스가 방송과 신문을 비롯한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되자 미국 내 여론도 급속하게 악화된다. 싸이의 미국 공연에 오바마 대통령이 불참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된 것은 물론 앞으로의 미국 활동에도 상당한 지장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특히나 애국주의 전통이 강한 미국이다 보니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디스도 문제가 됐지만 무엇보다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패드립성 랩이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됐다. 어쩌면 이걸로 그의 미국 내 활동 자체가 여기서 종지부를 찍고 말 가능성도 없지 않은 상황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MKMF'에서의 모형 장갑차를 부수는 퍼포먼스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반미주의자(?) 신해철의 영향"이라느니 하는 말로 커버쳐주려는 시도가 있으나 어불성설이다. 애초에 랩퍼로 데뷔한 싸이가 '피쳐링'을 하면서 남이 써준 가사나 읊고 있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고 뭣보다 싸이의 랩 파트는 'Dear America' 곡 전체의 분위기와 비교해봐도 이질적일 만큼 원색적이다. 그 결과가 옳은 것이건 옳지 않은 것이건 싸이는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던 것인데 굳이 이걸 남이 시켜서 했다느니 하는 말로 커버치려는 시도는 되려 싸이를 기획사에서 키워주는 연예인으로 격하시키는 일이다.
싸이는 응당 사과를 하였고 미국도 그러한 싸이를 이해해 주고 잘 넘겼다. 하지만 여기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싸이가 사과한 것은 'Dear America'의 랩 파트 뿐이라는 것이다. #

"8년 전 제가 공연한 곡은 전 세계 사람들이 그 당시 공감하고 있었던 반전 시위의 일부로 이라크 전쟁 당시 포로가 되어 희생당했던 무고한 시민들 및 장갑차 사건으로 숨진 두 명의 한국 여학생에 대한 깊은 애도 표출의 일부였습니다"

"저는 각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단어가 적절한 지에 대한 제한이 있음을 배웠으며''' 노래의 가사가 '''어떻게 해석 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느꼈습니다'''. 제가 사용했던 '''과도한 단어'''들로 인해 받은 상처에 대해서 저는 영원히 죄송할 것입니다"

"미군들을 위해 공연한 제이 레노쇼를 포함하여 최근 미군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이었고 모든 미국인들이 제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나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단어들이 부적절했음'''에 대해서 깊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제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해방감과 웃을 수 있는 이유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전세계 공용어인 음악을 통해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배웠고 제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싸이가 신해철과 함께 모형 장갑차를 부수고 조지 부시 정부의 무차별적인 전쟁에 대해 비판하던 그 시기는 미국인들조차 반감을 가지고 질타를 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싸이는 자신의 퍼포먼스나 의도 그 자체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으며 정확하게 '''과도한 단어'''라고 집어서 무분별하게 일반 미국인 가정을 대상으로 욕설을 한 것을 사죄한 것이다.
이 일 때문에 싸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 사람도 있고 여전히 미국인들 중 일부에서는 앙금이 남아있는 사람도 있으나 특별히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아티스트에 대해선 터치하지 않는 미국답게 적당히 쿨하게 넘어감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나게 됐다. 극우들의 의도와 달리 싸이 인기에 큰 흠집을 내지는 못한 셈. 폭스 뉴스가 "오바마가 미군 욕한 싸이 공연 보러 간다는데 이거 탄핵 감 아닌가요?"하고 까기는 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과 'Dear America' 가사를 봐도 알겠지만 미군 전체를 욕한 적은 없다. 문제가 된 싸이의 랩 파트는 아무리 확대 해석을 하더라도 '포로 고문 당사자'들에게 한정돼있고 '''굳이''' 확대 해석 해서 따지자면 고문 당사자들의 가족을 욕한 것이므로 미군이 아니라 일반 미국 시민을 욕한 것이다...
한국 시각 12월 10일(미국 시간 12월 9일 밤) '크리스마스 인 워싱턴 2012' 자선 공연에 무사히 참석하였으며 백악관 측에서도 역시 예정대로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일가족이 와서 관람하였다. 그리고 공연 이후 싸이와 오바마 대통령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일의 영향인지 M.net과 네이버 뮤직에서는 넥스트의 '개한민국' 앨범에서 'Dear America'만 서비스되고 있지 않다. 멜론은 원래 이 앨범 자체가 없으며 모든 음원사이트에서 넥스트의 '개한민국' 앨범을 들을 수 없다.

8. 2013년: I'm a mother father gentleman


4월 12일에 전세계에 새 싱글을 발표하고 다음 날 4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Happening' 콘서트를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 와중에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아싸라비아(assaraVia)'라는 곡이 타이틀 곡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싸이는 '아싸라비아'란 곡을 포함하여 다른 곡들 중에 한 곡을 정한다고 밝혔었다.
4월 12일 싱글 'GENTLEMAN'의 음원이 전세계에 발매되면서 동시에 국내 각종 음원차트를 올킬했으며, 국내 활동 계획은 'Happening' 콘서트 이후 별도로 없다고 하며 콘서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국외 프로모션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4월 13일에 'GENTLEMAN' 의 뮤직 비디오가 공개되었다. 신곡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상태에서 뮤직 비디오의 반응을 보아야 성공 여부가 점쳐질 듯하다. 뮤직 비디오의 주요한 특징은 <무한도전> 멤버들 전원이 등장하고 현아 대신 가인 이 등장한다. 또한 이번 뮤직 비디오는 "'''강남스타일보다 더 B급 스러워진''' 뮤직 비디오"로 평가받고 있다. 일단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데도 일단 4월 15일, 2일만에 5천 만을 넘는 조회수를 쏟아내고 있다. 또한 국외에서도 패러디 동영상이 쏟아져 나오는 중.
그러나 곧 대한민국 국내에서의 매우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10년만에 '''가왕19집'''이 등장했기 때문. '조용필 VS 싸이' 구도가 등장하게 되자 싸이는 트위터에서 "어쩌다 제가 감히 가왕님과 공통점을 갖게 된 걸까요. 영광입니다 선배님"이라는 의견을 남겼다.
무지막지했던 초기 반응에 비해 '젠틀맨' 자체의 인기는 '강남스타일'에 비해 그리 썩 좋지 못하다. YouTube에서 '강남스타일'과 비교했을 때 좋아요에 비해 싫어요의 비율이 증가했으며 조회수도 반동 폭이 크게 꺾인 상태이다. 빌보드 순위에서는 초기에는 12위로 등장하여 5위로 상승했으나 곧 지속적으로 순위가 하락해 49위에 랭크되었다. 이에 싸이가 원 히트 원더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평가가 증가하고 있다.
2013년 6월 9일, 드디어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 입성했다. 8만 관객들과 시건방 춤, 말 춤 등을 함께 추었던 싸이는 관객들에게 "내가 14살이었을 때 퀸이 웸블리스타디움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며 "이것은 나의 꿈이었다"고 감격을 금치 못했다.
2013년 6월 17일, 토론토에서 열린 '머치 뮤직 비디오 어워즈'에서 '강남스타일'로 "세계적 인기 뮤직 비디오상" 을 수상했다. 이후 싸이는 트위터에서 '머치 뮤직 비디오 어워즈'의 축하 공연에서 부른 '젠틀맨'이 마지막 방송이 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젠틀맨' 활동을 종료한다고 선언했다.
2013년 9월 중에 정규 앨범으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는 음원 최종 보스와 복귀 시기가 겹치게 되어 저번 같은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을 듯 하였으나 복귀 시기가 계속 미뤄지면서 공백기가 길어졌다다.
여담으로 아는 형님에서 고백하기를 이때가 자신이 데뷔한 이래에 가장 힘든 시기였음을 밝혔다. 강남스타일의 성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눈떠보니 갑자기 너무 높이 올라가 있어서 정신이 멍했다고. 그후 몇년간 태연한척 했었지만 강남스타일 같은 곡을 왜 다시 쓰지 못하는지에 대한 자괴감 비슷한게 들었다고하며 한참 뒤에야 벗어났다고 한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왜 아직까지 강남스타일이 그렇게 떴는지 미스테리하다고...

9. 2014년


양현석을 통해 컴백 떡밥이 풀렸으나 세월호 사건 때문에 4월 컴백이 미뤄졌다.
그 뒤 우리나라 시각으로 6월 9일에 미국 ABC방송을 통해 신곡 '행오버'를 발표했다.
'행오버' 유튜브 조회수 300만 건을 돌파했다.
그리고 발표 20시간만에 조회수 1000만을 돌파했다.
6월 11일 17시 40분(한국 시간 기준) 3500만 돌파가 확인되었다.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위에 26위에 랭크됐다.
'대디'라는 곡으로 컴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사 '행오버' 오피셜 뮤직 비디오에서 2014년 여름에 발표한다고 했지만 연기되었다.
12월 3일 '강남스타일' 유튜브 조회수가 유튜브 영상 중 '''최초로 32비트 정수 최대값인 2,147,483,647번을 넘어버렸다.'''
처음에는 0으로 표시되다가 다시 카운트되고 있다. 32비트 정수를 넘기는건 예상된 일이었고, 0으로 표시된 건 이벤트였다. 기사

10. 2015년: 3년 만의 새 정규 앨범, 칠집싸이다


2015년 초, 출시될 새 앨범 'Daddy'의 출시 일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2015년 12월 1일 7집으로 컴백했다. 제목은 바로 '''칠집싸이다'''. 모티브부터 칠성사이다이다. 컴백 일주일 전부터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패러디한 "싸이 리틀 텔레비전"을 네이버 V앱과 제휴하여 생방송으로 진행했는데, 하루에 한 곡씩 곡의 일부와 일러스트를 공개했다. 참고로 이 방송에서 '육갑 파트 2'로 가기에는 시기도 애매해지고 해서 걍 흑역사로 묻기로 했다고 밝혔다.
타이틀 곡은 '나팔바지'와 'Daddy'로, 더블 타이틀 곡. 국내용으로는 80년대 펑키 리듬이 흥겨운 '나팔바지'로 활동하고, 인터내셔널 트랙으로 EDM 스타일의 '대디'를 밀기로 했다고 한다. 유튜브 조회수는 '대디' 쪽이 트리플 스코어로 높지만 '나팔바지' 쪽에도 '이게 '대디'보다 낫다'는 국외 팬들의 댓글이 많아서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자세한 앨범 설명은 해당 문서 참고.
공개 직후 'Hangover'와 같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예상 외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강남스타일'때의 음악과 뮤비보다 훨씬 낫다는 반응도 심상찮게 보이고 있다'''. 이 뮤직 비디오들은 바로 디지페디의 작품이다. 일단 발매와 동시에 롤링스톤, 빌보드, MTV, 퓨즈TV같은 음악 매체들뿐만 아니라 BBC 등 보도 언론까지 리뷰를 탔고, 뮤직 비디오는 공개 '''반나절'''만에 142만 뷰('대디'), 58만 뷰('나팔바지')를 기록 중. 그리고 공개 하루 만에 500만 뷰('대디'), 170만 뷰('나팔바지')를 기록 중.
앨범에 수록된 트랙은 총 9곡으로, 피쳐링 참여 가수들은 '''자이언티, CL, 준수, Will.I.Am[23], 전인권, 개코, 에드 시런[24]'''이다. 앨범 재킷에서 5~6집까지 쓰이던 일러스트레이터 호조(HOZO)의 싸이 캐릭터가 사라지고 'Hangover'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던 스타일의 싸이 초상화가 등장. 다만 싸이 캐릭터가 완전히 폐기된 건 아니고 라이브 공연 때 무대 뒤 스크린으로 'Daddy' 컨셉의 싸이 캐릭터가 나오기는 한다.
발매와 동시에 국내 음원 차트 8개를 모두 '''올킬'''하는 위엄을 달성했다. 그리고 공개 이틀만에 '대디'는 1000만 뷰, '나팔바지'는 320만 뷰를 달성했다. 12월 3일 '대디'는 2000만 뷰, '나팔바지'는 570만 뷰를 달성했다.
'Daddy'의 유튜브 조회수가 12월 3~4일 경부터 계속 조회할 때마다 줄어들었다 늘었다 하다가 12월 6일 기준 25,171,640뷰로 하루종일 조회수가 변하지 않았다. 비단 싸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날 대부분의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 카운터가 멈췄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방탄소년단태티서도 조회수 카운터가 멈추면서 손해를 봤다. 댓글에도 "The View Freezed?"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고 싸이 본인도 이것을 알고 있다. # 어쨌든 좋아요 수가 50만이나 되는 것을 보면 실 조회수는 5천만~1억 정도로 추정. 한 번에 다 합산해서 오를 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지만 오류가 나긴 난 듯하다.
다행히도 2015년 12월 6일 23시 59분 '대디'의 조회수는 29,395,411를 기록했다. 그나마 풀린 지 하루만에 400여만 건을 올리며 회복세를 보이긴 했다. 그 멈췄던 타이밍의 조회수 집계가 너무나 아쉬울 따름. 그때는 12시간에 500만 페이스였기 때문에.
이후
2015년 12월 7일 '대디'는 3200만 뷰, '나팔바지'는 850만 뷰를 돌파했다.
2015년 12월 8일 '대디'는 3900만 뷰, '나팔바지'는 1000만 뷰를 돌파했다.
2015년 12월 9일 '대디'는 4000만 뷰를 넘었다. 또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97위로 데뷔했다.
2015년 12월 10일 '대디'는 4500만 뷰, '나팔바지'는 1100만 뷰를 돌파했다.
2015년 12월 10일 JTBC 뉴스룸에 출연했다. #
그리고 2015년 12월 12일 '대디'가 드디어 5000만 뷰를 돌파했다.
다시 5일만인 2015년 12월 17일 '대디'가 6000만 뷰를 돌파했다.
그리고 역시 5일만인 2015년 12월 22일 '대디'는 7000만 뷰를 돌파했다.
2015년 12월 30일 '대디'가 8000만 뷰를 돌파했다.
2016년 1월 8일 '대디'가 9000만 뷰를 돌파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19일에 1억 뷰를 돌파했다'''
하지만 유명세를 타던 대디가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최악의 노래 4위에 선정됐다. 이유는 식상한 춤과 가사라고. 하지만 'DADDY'와 함께 선정된 곡들의 가수들이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라, 싸이가 그들과 맞먹는다는 긍정적인 여론이 들렸다.

10.1. 테이크 아웃 드로잉 분쟁


2015년 싸이와 그가 건물주로 소유한 건물의 세입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 당시 싸이가 소유한 한남동의 모 건물에는 예술가들이 카페를 차리고 운영 중이었는데, 새로운 사업을 위해 카페를 없애려 하였다. 이 조치는 당시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사회 문제와 겹쳐 논란을 일으켰고, 다른 예술가들이 세입자 편에서 지지 선언, 활동을 하면서 적잖은 소동이 일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테이크 아웃 드로잉 분쟁 문서를 참고하자.

11. 2016년: 잠깐의 최순실 게이트 논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과정에서 정유라 특혜를 폭로한 안민석 더민주 의원이, 비선실세 최순실장시호회오리축구단을 통해 자신들과 친분이 깊은 특정 연예인에게 특혜를 몰아주었다고 주장하였는데, 해럴드경제를 필두로 이 혜택을 받은 연예인이 싸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각종 정부 행사에 여러 번 참석하였으며 최순실의 지인이자 게이트 공범자로 지목된 차은택과 MV 감독과 연예인의 관계로 함께 일했고, 한때 회오리축구단 소속이었다는 사람은 싸이가 아니냐는 것. # #2 KBS,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다른 언론에서도 관련 보도를 써냈다. # #2 #3
논란이 커지자 소속사 측이 사실 무근이라면서 허위 주장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회오리축구단의 '싸이'라는 이름은 '싸비'라는 이름을 잘못 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11월 11일 안민석 의원[25]실 측에서도 싸이는 최순실 연예인이 아니라는 해명 보도를 했다. # 너도나도 최순실 연예인이 싸이라고 입을 맞추다가 아니라고 하니까 입 싹 닫는 상황에 대해서 싸이는 '''웃프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12월 23일과 24일 양일 간(콘서트 시작시간이 23:50부터인지라 사실상 24일, 25일 공연이었다.) 고척 스카이돔에서 'PSY CONCERT 올나잇스탠드[26] 2016 싸드레날린 콘서트'를 개최했다. 콘서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신곡을 이미 다 준비해 놨는데 요즘 상황이 신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지라 미뤘다고 한다. 2017년에 조금이라도 기분을 낼 만 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신곡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상기한 축구단 의혹에 대해서도 콘서트 중간중간 에둘러 해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12. 2017년: 새로운 정규 앨범 4×2=8로 컴백


5월 10일 오후 6시에 8집으로 컴백을 했다.
[image]
5월 1일 오전 11시, YG엔터테인먼트가 공식 블로그를 통해 포스터를 공개했다. 커버로 미루어 보아 앨범 이름은 '싸이팔' 이 될 듯.
[image]
또한 앨범 수록곡 전체가 공개되었다. '칠집싸이다'와 마찬가지로 더블 타이틀 곡으로 확정되었다.
자세한건 해당 문서 참조
이 앨범을 내면서 단독 아시아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유튜브 구독자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2017년 5월 30일,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출연하여 이 앨범의 의미와 제작과정, 이후의 계획이나 활동 등을 인터뷰했다. 영상
2017년 7월 11일, 유튜브 전체 조회수 1위를 지키고 있던 '''강남스타일'''이 영화 분노의 질주7 OST '''See you again'''에 의해 2위로 밀려났다. 그러나 이 영상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 스페인어 뮤직비디오에게 다시 1위를 뺏겼다.
New Face의 뮤직비디오에는 Apink손나은이, I Luv It의 뮤직비디오에는 배우 이병헌피코타로가 출연했다.

13. 2018년: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 종료


본인이 5월 대학축제투어 기간 동안 스스로 밝히기를 현재 곡을 쓰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에 9집을 발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식입장 전문] YG, 싸이와 8년만에 전속계약 종료.."아름다운 이별"
YG측은 5월 15일 싸이와 8년 전속계약을 끝맺으며 아름다운 이별을 한다고 밝혔다. 전속계약을 마치더라도 돈독한 관계는 이어나갈 것이라고도 전했다.
10월 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군의 날 70주년 기념식 때 축하공연을 했다.

14. 2019년: 회사의 대표가 되다


2019년 1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소속사 '''P NATION'''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향후 자신의 활동은 물론 자신의 프로듀싱 경험을 살려 후배 양성에 힘 쓴다고 한다.[27] 그리고 설립 당일 P NATION의 첫번째 아티스트로 래퍼 제시를 영입했다. 그후 3일뒤인 1월 27일 작년 큐브엔터테인먼트와 결별한 현아, 이던을 영입했다.
이후 꾸준히 컴백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싸이의 인스타그램에서는 작업중인 음원의 피처링을 타블로에게 부탁했다는 걸 밝혔고 팬들에게 컴백을 싱글 발매로 할지 앨범 발매로 할지 묻는 등, 컴백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5월 21일에 자신의 공식 트위터를 통해 7월에 컴백한다고 공지했다.#

15. 2020년


모모랜드Ready Or Not 작곡에 참여했다.
래퍼 D.Ark를 영입했다.

16. 2021년


SBS에서 2가지 색채를 지닌 2개의 다른 보이그룹 프로듀스를 모토로 내건 오디션 프로그램 라우드에서 박진영과 함께 심사위원 겸 보이그룹 프로듀서으로 나온다. 2020년 말일까지 오디션 지원기간이며 코로나19 상황을 봐가며 촬영일정을 조율할 듯하다.
[1] 심지어 나이 지긋한 중년들은 자녀들과 지상파 음악 방송을 보다가 싸이가 나오자 '''"시장에서 일수 도장 찍어주게 생긴 건달이 가수 데뷔했냐?"'''는 반응을 보였다고.....[2] 끝으로 처음 지상파 1위를 차지 했을 때, "사실 99년에 이 '끝'이라는 노래로 데뷔하려 했었는데 그 때 1위를 하는 상상을 많이 했었다."라고 소감을 말한 적이 있었다. 상기했듯이 외모 크리로 1년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새가 아닌 끝이 데뷔곡이 됐을 것이다. 참고로 끝 방송용 음원과 정규 앨범 음원이 다르다.[3] 이 때가 2001년, 그러니까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방송 분위기였음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파격 그 자체인 셈.[4] 이정현의 앨범에 먼저 실렸었는데 이때는 'I Love X'라는 순화된 제목의 곡이었다.[5] 전형적인 연예계 11월 괴담.... (이 무렵에는 황수정마약 사건으로 구속됐다.)[6] 참고로 이 시기는 H.O.T.가 해체된 지 6개월 후,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가 일어난 지 3개월 후, 그룹 god 리더 박준형의 퇴출 사건이 일어난 지 2개월 후였고 걸프렌드가 대리녹음 파문으로 와해된 지 1달이 지난 시점이었다.[7] 우연히도 성시경은 당시 사건이 터진 싸이, 황수정 두 사람들과 엮인 게, 싸이는 세화고 선배인 데다가 성시경이 <밤그대> DJ 대타를 뛰기 전에 DJ를 맡은 사람이 황수정이다.[8] 이건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2003~2005년 사이 가졌던 공연들이 바로 이것에 해당한다.[9] 병특업계에는 생각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회사에서 국외 출장 보냈다가 편입 취소 크리 먹고 군대 다시 간 사람도 있고 심지어 밤샘 근무 하고 오전에 찜질방에서 자다가 "근무지 이탈"로 군대 다시 가는 경우도 있다. 두 케이스 모두 싸이와 마찬가지로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10] 아이러니하게도 이 딸들은 국군의 날에 태어났다.[11] 윗 문단에 이미 서술했듯이, 정확히 말하면 훈련소 입소를 두 번 한 것이다.[12] 패소하긴 했지만, 항의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복무 만료 취소에 대해 법적으로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면, 적법한 절차에 의거하여 취소 소송을 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히려 이걸 비난하는 쪽이 도의적으로 잘못된 행동. 취소 소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는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서 SK 와이번스가 취한 행동을 참고하면 좋다.[13] 싸이는 산업기능요원으로서 테스터 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14] 지금은 싸이를 검색해도 겨땀이 연관 검색어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겨땀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싸이가 뜬다.[15] 유튜브와 유스트림 모두 서울라이브 계정으로 방송됨.[16] 원래 라디오 녹음 방송이다.[17] 단, 싸이 불참+지드래곤 대리 수상으로 타협을 본 듯.[18]MBC 기자. 현재는 고발뉴스, 팩트TV 등의 중책을 맡고있다. 영화 <다이빙벨>의 감독도 담당.[19] 언론에서 이 일을 더 다루지 못하도록 '''김장훈과 싸이''' 둘이 서로 짜고 일부러 이런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20] 후술된 퍼포먼스가 있었던 MKMF가 바로 이 MAMA의 전신이다.[21] 차승원, 권상우, 김민정 주연. 체코 올로케. OST 발매는 2003년 2월 6일[22] 신해철의 예명[23] 타이틀 곡 'Daddy'는 Will.I.Am과 함께 작업한 곡으로, 'I Got It From My Mama'가 리믹스되어 등장한다.[24] 정확히 말하자면 에드 시런의 곡 'Sing'을 싸이가 리믹스한 것을 앨범에 실은 것.[25] 사실 연예인은 그냥 안민석의 개드립일 뿐이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 실컷 변죽 울려놓곤 시원하게 밝힌 건 하나도 없다.[26] 말그대로 리얼 밤샘 콘서트. 싸이가 2003년부터 개최하고 있으며, '''막차 타고 와서 첫차 타고 돌아가는 콘서트'''로 유명하다.[27] 이미 싸이가 자신의 앨범 프로듀싱은 물론 콘서트의 상세 내용, 동선, 무대 모두 자신이 결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