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대
1. 개요
再入隊.
말 그대로 군대에 다시 가는 것. 한만두에서 파생된 말로는 '한군두'라고도 한다. "'''한''' 명이 '''군'''대를 '''두''' 번 가기"의 머리글자.
2. 타의에 의한 재입대
자발적으로 재입대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반해 재징집당하는 것. 근대 이후 군 복무가 체계화되면서 군입대는 일생의 한 번 뿐이라는 인식이 많이 남았지만 조선시기까지만 해도 한참 바쁜 농번기에도 군에 끌려가곤 했던 서민들이 왕왕 있었다. 그러나 당대에도 양반층에겐 군입대가 형벌로 취급되었는지, 정권에 찍힌 양반들은 재입대를 벌로 받기도 했다. [1]
근대화가 된 이후 드문 일이지만, 정보화 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과거에는 '''행정착오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정말 이런 사태에 처하는 사람도 있었다. 1950년대 6.25 전쟁이 발발하여 끌려가다시피 전쟁에 참가했는데, 입대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다시 군대를 가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북파공작원들 같은 경우 임무특성상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행정의 틀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 이런 경우가 많았으며, 돈 많은 집에서 자기네 집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내기 위해 뇌물을 먹여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재입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아예 돈 받고 대신 군대 가주는 걸로 먹고 산 사람도 더러 있었다. 심지어 판례에 보면 형제끼리 대신 군대 가주다가 걸려서 재판받은 경우도 있다. 대신 군대에 가준 형은 대법원에서 무죄[2] 가 나왔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중 군필+참전용사라는 입증이 안되어 휴전+전역 후 또 끌려간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안습. 전쟁 중이라 관련 서류가 손망실되는 경우가 잦았고, 급박한 상황에 군번도 없이 입대해 참전 기록조차 입증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허나 그 당시는 전후 나라가 쑥대밭이라 너나할 거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때였고, 당시 기준으로는 삼시세끼 밥 주는 군대가 사회보다 크게 나쁜 상황은 아니었던 터라. 마땅히 먹고살 거리도 못 찾았는데 오라고 하니 일단 입대하고 보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21세기 진입을 딱 2년 남겨둔 1999년에는, Y2K 문제로 인해 이미 군대를 전역한 20대의 남성들을 모두 미필자로 분류해버려서 순식간에 수백만 명의 미필자가 쏟아지는 상황으로 인한 재입대 대란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괜한 우려도 나왔다. 다행히 2000년이 되어도 이들의 재입대 사태는 터지지 않았다. 해당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애당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말년 병장+갓 예비역들이 꾸는 최악의 '''악몽'''이자 민방위가 끝난 사람들도 이런 꿈을 꾸게 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스스로''' 입대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일반 징집병 출신들보다는 악몽의 강도가 덜하다. 하지만 병역의무의 일환으로 단기복무만 하고 전역한 장교, 부사관 출신들도 군대 꿈의 악몽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조종사의 경우 의무복무기간만 채워 소령, 중령급에서 전역하여 민항으로 진출한 경우에도 마찬가지. 원,상사급 부사관이나 영관급, 장성급 장교 출신들은 군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이라 그런 현상이 덜하다고 한다.
2.1. 대체복무자가 부실복무나 복무규정위반 사유로 재입대하는 경우
공중보건의사,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의 경우 근무 도중 결격사유가 발생하면 현역병 혹은 사회복무요원으로 재입대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들의 복무 기간이 3년 안팎[3] 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드문 일이긴 하나 실제로 2년 정도 복무한 공중보건의사가 현역병으로 재입대 당한 경우가 있다. 참고로 공중보건의사는 봉급만 소위~대위급으로 받고(전문의 여부에 따라 달라짐) 서류상으로는 보충역 육군 보병이병(소총수)이다.
이들이 재입대해야 하는 결격사유는 주로 다음과 같다.
- 복무규율 위반 및 위법행위를 한 경우
- 상습적으로 무단 지각 및 결근하는 경우
- 부정한 방법으로 대체복무에 편입된 경우[4]
- 해외 출국을 했다가 정당한 사유 없이 귀국하지 않는 경우
- 복무 도중 근무하던 업체에서 해고되거나, 박사과정 학업을 그만둘 경우
- 만 35세까지 의무복무를 마칠 수 없는 경우[5]
- 자발적으로 대체복무 편입 취소를 원한 경우
- 정당한 사유 없이 기초군사훈련에 응하지 않은 경우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다.
A씨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던 도중 3주(총 22일)의 기초군사훈련을 포함하여 총 1년(365일)을 복무하다가 편입 취소되었다. 이 경우 $$N=343$$, $$M=22$$이므로 공식에 대입하면 $$D=107$$이 된다. 즉, 대체복무를 하지 않고 바로 입대했을 때보다 107일 만큼 복무기간이 단축된다. A씨가 육군 현역병으로 복무할 경우 복무 기간은 약 14.5개월이 된다.
2.2. 사관학교 및 무관후보생 퇴교자
병역미필인 남자 사관생도 및 무관후보생이 퇴교하면 병역의무를 이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병역의무를 다시 이행해야 한다. 단, 사관학교 입교시 예비생도[7] 과정이 기초군사훈련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기초군사훈련은 면제되므로 바로 자대로 보내진다. 입학 전인 예비생도과정에서 퇴교했다면 처음부터 다시. 퇴교 시점이 3학년 이상이었다면 부사관으로 의무복무를 채울 수 있다. 사관생도외의 무관후보생(부사관 후보생 등)도 기초군사훈련을 완료하였다면 기초군사훈련을 면제받고 기초군사훈련(25일) 이상 복무 (부사관 학교등에서의 생활) 했다면 그만큼 병 복무기간이 단축되고, 1학년 때 퇴교 한 경우 일병으로 시작하고 2학년으로 퇴교 했으면은 상병부터 시작한다.
사관생도나 무관후보생이 필요한 모든 과정을 다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임관평가에서 탈락하여 임관을 실패한 경우 이등병이 아닌 '''병장으로 군 복무를 시작'''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기초군사훈련은 생략하고 바로 자대 배치. 그런데 이걸 사단 신교대에서 제대로 처리를 안해서 난리가 난 사례가 있다. 1편 2편[8]
제34조(사관학교 등의 중퇴자에 대한 계급 부여) 사관학교, 육군3사관학교 또는 국군간호사관학교의 1학년 및 2학년 재학 중 또는 사관후보생과정 재학 중에 퇴교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재학기간을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비율에 따라 제32조제2항에 따른 병의 진급 최저복무기간으로 환산하여 그에 상당한 계급을 부여할 수 있다. 다만, 재학기간은 1개월을 단위로 환산하며, 1개월 미만은 환산하지 아니한다. <개정 2018. 2. 26.>
1. 사관학교, 육군3사관학교 또는 국군간호사관학교: 재학기간의 3분의 2
2. 사관후보생과정: 재학기간의 100퍼센트
전문개정 2012. 5. 1.법령 링크
2.3. 전시 예비군 재입대
전쟁이 나면 전역한 예비군들도 소집 우선순위에 따라 재입대 대상이 된다. 대체로 병 전역자 기준 동원지정 1~4년차가 최우선 순위고 7~8년차는 사실상 현역이고 예비군이고 거의 다 전멸한 뒤 맨 마지막 소집 대상이다. 법적으로 40세까지의 남성은 민방위라도 유사시 예비군으로 재동원 가능하고, 국회 동의하에 45세까지도[9] 가능은 하지만, 그랬다간 국가 말아먹기 딱 좋은데다 북한이라는 곳이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예비군을 투입해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전쟁 중후반부터 젊은이들의 씨가 말라가자,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었던 40, 50대 참전용사들도 죄다 재소집해서 전장에 투입한다. 즉, 만일 40대인 병사가 전장에 투입된다면 그 전쟁은 이미 진 거다.
2.4. 군종 신부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에서, 신학생들이 사관후보생과 같은 특별한 제도로 입대할 수 있는 특혜가 있어서는 안 된다."'''[10]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천주교 신학생들의 사관후보생 제도를 폐지하면서 했던 발언이다. 실제로, 1984년까지는 "군종 후보생"이라는 병역제도가 있었지만 폐지했다.
나중에 설명할 자의로 재입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학교를 마치고 신부가 된 후에 교구별로 천주교 군종교구로 보낼 사제를 뽑을 때 군필자들을 포함한 (사실 전부 다[11] ) 새 사제들 중에서 희망자를 먼저 받은 다음에[12] 무작위, 혹은 생년월일 등의 기준으로 10%를 뽑아 보내기에, 하느님의 뜻으로 재입대를 하는 경우가 있다. 하느님의 뜻으로 군종 신부가 된다면 타의에 의한 재입대라 봐야 된다. [13]'''"완전군장이 무거워봐야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더 무겁겠습니까?" '''
'''"군대에서 미사 본다고 고참들한테 욕 먹어 봐야, 예수님이 먹었던 욕보다 더 많이 먹겠습니까?"'''
- KBS 스페셜 <영원과 하루 - 150년만의 공개, 가톨릭 신학교> 김성수 마르코 신부(2014년 수품, 천주교 서울대교구).#
2.5. 명예직
특정 군에 특별한 공로를 기여한 사람들은 거의 강제적(?)으로 이 방법으로 재입대가 된다. 명예직이라 근무나 훈련 같은 건 하지 않지만 군인 피복을 지급받고 진짜 군인 대우를 받는다. 대위부터 시작되어 진급되는 구조이다. 계급은 대위로 받지만 의전은 준장급으로 해준다. 이국종 교수가 석해균 선장을 살린 공로로 이런 식으로 해군 명예 대위가 되었고 이후 진급하여 중령이 되었다.
2.6. 미군의 스톱 로스 제도
이건 엄밀히 따지면 재입대가 아니라 '전역 취소'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과 이라크 저항군 간의 시가지에서의 소모전으로 바뀌면서 양측 모두 엄청난 인명을 손실하게 되고 새로 입대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으며, 결국엔 정원을 채우기도 어렵게 되었다. 더욱이 이런 시가지 소모전은 훈련으로 해결되는게 아니라 경험이 중요하기에 참전 유경험자들의 존재가 필수라는것을 느낀 미 국방부와 조지 W. 부시 정부는 현 상황을 전시상황으로 규정하고 의무복무기간이 끝난 장병들 중 상당수의 전역을 강제로 중지시키는 대통령령을 내린다. 전역이 강제로 중단된 많은 병사들은 이에 불복하여 탈영을 하여 멕시코나 캐나다로 도망가거나 반 강제적으로 다시 이라크로 돌아가서 5년 더 지옥같은 전쟁터에서 복무를 했어야했다.
3. 자의에 의한 재입대
2008년 이후로는 경제 불황의 여파로 자의로 군대를 다시 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군 모집과정의 경쟁률이 높아지기도 했다.
근래에는 국방부 부사관 모집정책이 군필자와 전문하사를 중심으로 모집하는 가닥으로 잡히면서 재입대자에 대한 처우를 많이 봐주고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군필자가 부사관에 지원하면 계급이나 리더쉽 교육 여부에 따라 양성기간을 줄여준다든지, 예비역 병장이 재입대한다면 장려금을 준다든지 하는 식이다. 2020년 기준으로 육군에서는 예비역 병장이 2년 내로 재입대할 경우 장려금 500만원을 지급한다.
현역의 신분에서 재입대를 통한 신분전환을 하려면 영관급 지휘관의 추천서, 타군 지원자는 참모총장 추천서가 필요하다. 일개 병사가 대대장 추천서도 아니고 까마득한 참모총장 추천서 받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겠지만 부대 인사과에 요청하면 군 내 인사계통을 통해서 공문이 쉽게 내려온다. 복무기간이 끝나기 전에 타군 모집과정에 합격하여 입영하게 되면 입영하게 될 군에서 현재 복무중인 군의 본부 및 자대에 입영통지 공문을 발송하며, 합격자 본인은 타군 입영을 위해 현재 복무중인 군에서는 호봉 합산을 위한 경력인정 외에는 제적처리된다.
- 병 → 부사관: 병사로 전역한 뒤 민간부사관으로 재입대한 경우는 딱히 드물지도 않다. 병 복무 도중에도 지원 가능한데(현역부사관) 일선 부대의 행정보급관 등에게 부사관 지원을 희망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
- 보충역, 병, 부사관 → 장교
군 입대 중 정말로 장교라는 직업에 동경이 생겨 임관을 원하는 장병이라면 아래의 방법들이 훨씬 현실적이다. 고졸 입대 장병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에 입학해 2학년까지 수료해야 장교 임관의 길이 넓어진다.
- 육군3사관학교 입학: 편입이기 때문에 만 19세에서 만 25세까지 지원 가능한 사관학교이며 이러한 특성 덕분에 병은 물론이고 부사관출신 재입대자가 사실상 유일하게 생도가 될 수 있는 길이다. 간호사관학교를 포함한 타 생도과정은 만 21세까지 연령제한이 있기에 병 생활 중 재수하는 케이스가 아니라면 재입대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도 된다.[14] 일각에서는 2년제라고도 말하는데, 편입 제도의 특성상 3학년시작 4학년 졸업이기 때문에 생긴 이야기로 4년제 대학교 맞다. 대신 2년동안 일반 전공학은 물론, 육사보다 더 많은 1900시간에 달하는 군사교육을 같이 수료해야 하며 이후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 재입대를 하는 생도의 경우 병, 부사관으로 복무한 1~2년을 복무기간에 가산해주기 때문에 군 경력이 없는 동기들보다 1~2호봉을 더 인정받는다. 그러나 육사, 해사, 공사와는 달리 장기복무 자원이 아니므로 장기복무 희망자는 다른 非육사 출신과 함께 장기복무자 선발에 합격해야 하며, 만약 장군이 되고 싶다면 육사출신보다는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한다. 非육사 출신 대다수의 진급 상한선이 대령이나 문재인 정부의 비육사 출신 우대정책에 따라 진급률이 높아지고 있다.
- 학군장교 지원: 임관일 기준 만 20세 ~ 27세인 자이면 되고, 병이나 부사관으로 전역한 경우 군 경력에 따라 연령제한 연장이 있기 때문에 ROTC로 재입대하는 인원도 꽤 된다. 단 특성상 군 복무도중에는 지원 불가능하고 대학을 입학하거나 재학생의 경우 복학해야 한다. 특성상 임관 후 1호봉 ~ 2호봉 합산 확정이다. 동문 파워라든지 단기복무 후 취업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는 3사보다는 ROTC가 낫다. 장기복무 자원이 아닌 3사와 학군은 장기복무를 신청해야 하는데 3사가 조금 더 유리하다고 한다.[15]
- 학사장교 지원: 자신이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보유한 전역자이거나 학사 학위를 가지고 복무 중인 현역병, 현역부사관이라면 이 방법으로 재입대가 가능하다. 해군과 공군은 단간사관 과정이 없어 학사장교가 유일. 그러나 대부분이 대학 재학 중 병으로 복무를 하므로, 학사학위를 소지한 현역병이 복무 중 학사장교를 지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늦은 나이에 병 복무 도중 학사장교를 지원한 인원이 가뭄에 콩 나듯 있다. 그러나 부사관의 경우엔 복무중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장교로 신분전환하는 사례가 많다. 만기전역 후 조종장교를 꿈꾸고 있다면 공군사관학교의 연령 제한을 넘겨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거의 이 방법으로 재입대해야한다.[16]
- 공군 조종장학생 지원. 대학 재학기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하며, 조종 특기에서 탈락이 될 경우 장학금 수혜기간동안 더 복무해야된다. 그러나 장학금 받으며 대학 공부를 한다는 거 외에는 학사장교와 똑같고, 기수도 학사장교로 받으므로 학사장교의 하위 분류에 넣는다. 실제로 조종 특기를 받고 빨간 마후라를 받은 학사 출신 조종장교 중 조종장학생 출신이 꽤 되며, 그 중에는 각 군 병장으로 병역의 의무를 마친 뒤 조종장교가 된 재입대자들도 더러 있다.
- 단기간부사관 지원: 현역에 복무중인 병, 부사관 혹은 전역자가 간부로 지원해서 군대를 2번 이상 갈 수 있다. 병 경력도 경력으로 치기 때문에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근데 이 경우 예비군도 다시 받아야 한다(법원판례). 게다가 동원훈련, 즉 2박 3일(28시간) 입영[17] 하는 훈련이 병은 4년인 반면 간부는 6년이다. 그러나 민방위는 사실상 면제된다. 계급 정년까지 예비군에 편성되므로(훈련은 6년 동안만 받지만) 계급 정년이 가장 낮은 하사라도 40세까지, 민방위도 40세까지므로(전시에는 45세로 연장) 민방위 훈련은 없다. 참고로 민방위 훈련도 1~4년차는 1년 1회 4시간, 5년차~40세까지는 1년 1회 1시간이다(출석만 부르고 끝남).
- 전문사관 지원: 병이나 부사관으로 만기전역한 후 간호장교를 꿈꾸고 있다면 대부분 국군간호사관학교의 연령제한을 넘겨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므로 자신이 4년제 간호대학에 재학중이면서 병/부사관으로 만기전역 후 간호장교가 되고 싶다면 사회에서 간호사 면허증 등을 취득한 후 이 방법으로 재입대해야 한다. 보통 육군 전문사관 과정을 통해 간호장교가 될 수 있으며, 해군이나 공군으로 가고자 한다면 학사장교후보생의 간호특기로 지원해야한다. 다만 교수사관으로의 재입대는 27세 이전에 석사 학위를 따야 하므로 현역병으로 전역한 사람이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석사학위를 따지 않는 한 불가능하며, 부사관 출신은 더더욱 어렵다.
- 예비역의 현역 재임용: 국방부에서도 군 내 계급역전현상(대위 → 중사, 중위 → 하사, 중사 → 하사 등)을 인식한 것인지 모르지만, 전역한 인원들을 대상으로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는 예비역의 현역 재임용 제도를 최근에 실행하고 있다. 차이점은 재입대를 할 경우 기존 군 경력은 초기화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지만, 예비역의 현역 재임용 제도를 통해 재입대를 할 경우엔 전역직전 최종계급과 병과로 다시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18] 단, 기존에 계급과 병과 호봉등은 중간부터 다시 시작하지만 진급이나 장기복무의 경우 100% 확정이 된다는 뜻은 아니며, 선발인원도 그때그때마다 병과 및 계급에 따라 모집하는 인원이 변동이 되므로 지원하고 싶은 예비역 간부 전역 위키러는 수시로 각 군 모집 요강을 확인해야한다. 또한, 재임용 제도는 해당 모집년도 기준으로 계급정년, O년 이내 전역자 등의 다른 제한사항도 있기에 지원하고 싶은 위키러는 꼭 주의하자.
- 장교 → 부사관: 심지어는 장교로 전역해서 부사관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위 전역 후 부사관으로 재입대할 경우 바로 중사부터 시작하며, 부사관 전역 후 재입대자들의 경우 다음 해에 중사로 바로 진급 가능하다. 다만 요새는 장기 부사관은 지원자가 많아 경쟁이 심하다. 장기 부사관의 숫자는 연대별로 그 수가 정해지는데, 심한 곳은 20:1까지 가는 곳도 있다. 부사관을 지원했다가 장교로 다시 입대한 후 장기지원에 실패하여 다시 한 번 더 부사관을 지원, 즉 3번이나 군대 다시 가기를 선택한 용자가 신문에 난 적이 있다. 한군두가 아니라 한군세가 되겠다. 중사 진급에 실패하여 하사만 3번한 부사관도 있다.기사 그런데 재입대를 지원하게 될 경우 잘 생각해야 한다. 예비역 병이 장교나 부사관을 지원하면, 또는 예비역 부사관이 장교를 지원하면 군적이 2개로 증가하지만 반대로 예비역 장교가 부사관을 지원하면 장교로서의 군적은 말소된다. 같은 재입대이지만 높은 쪽 신분을 먼저 복무할 경우 먼저 복무한 쪽 군적이 삭제된다. 이유는 이게 남아있으면 해당 인원을 통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가령 예비역 대위가 재입대로 중사가 되었을 때 행보관에게 장교로서의 군적을 내세워서 "야 이 XX야 내가 지금 계급장은 중사지만 나 얼마 전까지 대위였어" 라면서 명령을 거부하면 골치 아파지게 된다. 부사관 장기지원이나 소령 이상 진급에 성공해서 계급 정년까지 버티고 전역하면 자신이 원할 경우 예비군에 편성되기도 한다. 이 경우 부사관 장기지원자는 행정보급관, 소령전역자는 부대대장의 보직을 받는다. 물론 원치 않을 경우 퇴역 처리된다. 다만 예비군 훈련을 원할 경우 예비역 진급심사를 할 수 있다.
- 부사관 → 부사관: 여군 부사관이 부사관으로 재입대하는 일은 자주 있지만, 장기진급 문제 등으로 인해 여군 장교들도 전역 후 하사나 중사로 재입대 하는 사례가 많이 늘었다. 사실 직업군인은 안정적이고 돈 쓸 일이 거의 없어서 돈이 잘 쌓이는 데다가, 이런저런 혜택도 많아서 생각 외로 괜찮은 직업이다.
- : 불가능하다. 애초에 병으로 다시 가라고 하면 그걸 자의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겠지만(...), 제도적으로도 병역의무를 이행한 사람은 병으로의 재입대는 불가능하다. 2013년 이후 병의 모집은 병무청 소관인데, 예비역 병장의 현역병 재입영 신청은 받아주지도 않는다. 군필자가 병무청 사이트에서 현역병 입영을 신청하면 '현역 입영 대상이 아닙니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차단되어 버린다. 가장 큰 문제는 군입대를 연장하거나 재입대하는 것이 또 다른 스펙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점. 그리고 아까 전에 언급한 예비역 장교의 현역 부사관 재입대 문제와 비슷하게 예비역 병장이 현역 이등병으로 재입대했을 경우의 병 간 서열 관계 교란 문제도 있다. 예비역 병장 출신인 이등병이 상병, 병장급 선임병한테 예비역 병장 출신이라는 구실로 뻐기고 다닌다면(...). 이게 아니더라도 병장 만기전역 경력이 있는 후임병을 두는 것 자체가 선임병 입장에서도 매우 껄끄러운 일이기도 할테고. [19] 이는 현역병 뿐만 아니라 사회복무요원 등 대체복무로 병역의무를 이행한 사람도 마찬가지. 그래서 아예 부사관이나 학사장교로 재입대하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다.
- 사관학교 퇴교자, 대체복무자의 부실복무, 복무규정위반 재입대는 타의에 의한 재입대이므로 위에 서술.
- 의병 제대, 의가사 제대, 복무 부적격자 전역자의 재복무 제도: 최근 2016년 10월 들어 의가사 전역자나 의병제대자 또는 부적격자를 위한 재복무 제도 개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 특수한 경우
- 군법무관: 장기군법무관의 경우도 '한군두'의 사례가 많다. 과거 장기 군법무관 시험은 사법시험과 똑같은 과목과 동일한 시험 방식으로 군법무관을 뽑았으며, 10년 장기근무를 마치면 변호사 자격을 주었다. 사실상 10년 군검찰에서 근무 후 변호사 자격이 생기는 셈이므로 사법시험과 같은 효과가 있는 반면, 합격선은 사법시험보다 낮은 수준이라 지원자가 많았다. 단, 사법 시험은 법원/검찰 근무 여부 상관 없이 연수원 졸업 후 바로 변호사 자격 획득이 가능하므로 같은 값이면 당연히 사법 시험이 우위. 전원책이 이 방법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군법무관 시험은 군복무를 마친 사람도 응시가 가능했는데, S대 법대가 아닌 경우 대부분 군필 후 사법시험 준비를 하므로 지원자의 80% 이상이 군필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격할 경우 9주 간 기초군사교육을 마치고 바로 중위로 임관하여 군법무관 시보 생활을 한 후 대위로 정식 군법무관이 된다. 군필자의 경우 9주 간 기초군사교육만 제외하면 군법무관 지위의 특성 상 사실상 군대 같지 않은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지원하며, 예비군까지 이미 마스터한 경우가 많아 9주 간 기초군사교육을 시시하게 받아 들인다. 단, 군법무관 특성 상 기본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기초군사교육을 수행하지 못할 신체상태가 되면 합격이 취소된다. 현역으로 전역한 합격자가 고시 합격의 기쁨으로 술김에 2층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졌는데, 이로 인해 기초군사교육 입소 후 귀가 조치를 받아 합격이 취소된 경우가 있다. 지금은 장기군법무관 시험이 폐지되었고 로스쿨 졸업 및 변호사 시험 합격자 중 장기군법무관을 모집하는데, 예전과 달리 이미 변호사 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군법무관을 모집함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자격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되어서인지 일정한 경쟁률은 유지하고 있으며, 역시 군필자도 모집대상에 들어간다.
- 군종 신부: 한국 천주교에서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다 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에서, 신학생들이 특별한 제도로 입대를 할 수 있는 특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실천, 신학교 재학 중 총원이 현역병으로 입대한다. 대부분 육군 일반 징집병으로 복무하며, 가끔 육군 모집병이나 해공군/해병대 입대자,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기도 한다. 병역면제자의 경우에는 2년의 사회봉사를 수행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 천주교 의정부교구의 주보에 김수환 추기경의 일대기와 생전의 일화나 여러가지 어록들이 실렸는데, 위의 내용도 같이 언급된 적이 있었다. 군종장교 문서의 군종 신부 문단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이는 현행 병역법에 따르면 굳이 안 해도 괜찮은 제도이다. 신학생 시절에 미리 군종신부 자원자들을 선발해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군종장교로 군 복무를 해결하게 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 경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여, 천주교의 군종신부는 대위로 임관하고 타 종교인은 중위로 임관한다. 다만 현역병으로 복무하지 않은 군종신부는 중위로 임관한다.
- 군종 목사, 군종 승려: 목사와 스님의 경우 각 교단에서 이런 의무사항을 정하지 않으므로, 재입대한 군종목사/법사는 자원한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교단에서 입대해 달라고 하여 반강제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실제로 2011년 전방 모 사단의 군종참모는 소령 군종목사였는데 이미 1990년대 초반 병장 전역을 한 예비군이었다. 사회에서 목사로 교역 활동을 하던 어느 날 교단에서 호출하길래 갔더니만 "목사님께서 군종 목사로 입대해 주셔야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그래서 며칠간 고뇌(...)에 빠져있었으나 이게 다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입대하여 소령까지 갔다 한다. 2018년 기준 해당 목사는 특전사 영내 교회 담임 목사라고.....지금은 중령 다셨다
- 조종장교의 경우 병 출신들이 의외로 많다[20] . 심지어는 대한민국 공군이 아니라 타군 병 출신자들도 더러 있다[21] . 이는 병으로 전역 후 한국항공대학교, 한서대학교 항공운항과 등에 재수 등으로 진학하거나 복학을 했다가 비행 경력을 위해 공군 장교로 재입대한 케이스. 사실 반강제라면 반강제라고 말할 수 있는데, 조종사들을 채용하는 메이저 민간 항공사들은 대개 일정 수준의 비행 경력자들만을 채용하기 때문이다. 조종사 면허를 받는 데에도 상당한 돈이 들지만[22] 비행 경력을 쌓기 위해서도 엄청난 돈지랄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공짜로 비행기를 타면서 비행 경력을 무난하게 쌓을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 공군 정도밖에 없기 때문. 단, 의무 복무기간이 10년 가량이기 때문에 조종사 지망생들이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어하는 루트이기도 하다.
- : 국군 통수권자이며, 상관모욕죄에서 상관으로 취급된다는 이유로 군인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군인이 아닌 엄연한 민간인이다. 군인이었다가 바로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이 된 경우도 민간인이 되고 나서 된 것이다. 군인이면 얽매이게 되는 여러 법과 규정에도 얽매이지 않으므로 한군두와 전혀 상관없다.
4. 다른 나라 군대로 재입대
흔치는 않지만 어떤 나라에서 군 복무를 한 사람이 이민 등의 이유로 국적이 바뀐 뒤 그 나라 군대로 재입대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보통 징병제 국가에서 이런 경우는 징병 대상자는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다른 나라에서 귀화한 사람은 징집 대상에서 제외) 군인에 대한 대우가 좋은 나라에서 자원입대하는 경우들이 있다. 한국군에서 복무했던 군 경험을 살려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군이나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하는 사례도 있다.
반대로 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외국 군대에서 복무한 뒤, 한국 국적을 유지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와서 군 복무를 마친 사례도 가끔 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군에서 복무한 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가 한국군에 입대하는 게 그겄이다. 미국 법에서도 영주권자는 물론이고 시민권자도 한국군에 의무 복무 하는 것 자체는 막지 않는다. 단, 한국군의 장교로 임관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국 정부에서는 이를 독려하기 위해서 이렇게 귀국한 입대자들에겐 추가 여비나 휴가를 제공하는 등의 혜택을 준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 어르신들 중에는 일본군, 중화민국군, 팔로군 신분 등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해방이 된 후 국군이나 북한군으로 다시 전쟁을 겪은 분들이 많다.[23] 노르망디의 한국인 자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세상이 혼란스럽던 시기에 여러 나라 군대에서 복무했던 사례는 상당히 흔하다. 탈북자들 중 북한군 장교 신분으로 탈북했다가 그대로 국군으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다.
미군에도 사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무려 '''겨울전쟁때 핀란드군'''으로 입대해서 레닌그라드 공방전때 '''독일군 무장친위대로 전향'''한뒤 전쟁 끝나자마자 소련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쳐서 '''베트남전에 그린베레로 참전해''' 작전중 헬기사고로 전사한, 무려 한군두도 아닌 '''한군삼에 한전삼(한인생 군대도 세번, 전쟁도 세번)'''을 찍은 라우리 퇴르니가 있다.
5. 실제 사례
5.1. 부실 복무로 인한 재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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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이(박재상):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복무를 마쳤으나 대체복무 중 100여 회의 콘서트를 여는 등 제대로 복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재입대했다. 산업기능요원은 일반 직장인과 똑같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군대를 2번 갔다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군대에 대해 잘 모르는 여성이나 미필 팬들이 군대를 2번 갔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싸이 본인도 이것은 부정하고 있으며 훈련소를 2번 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전에 받은 예비군훈련도 무효. 즉, 2010년에 예비군 1년차부터 다시 시작했다. 싸이는 군말없이 판결에 따라 재입대를 했다고 아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은 병무청의 지시에 불복해서 소송을 걸었으며 현역 복무 중에도 계속해서 항소하며 소송을 이어 나갔다. 그러다 상병 시절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면서 어쩔 수 없이 만기 전역까지 계속 복무하게 된 것이다. 다른 병역비리를 저지른 연예인 장혁, 송승헌등과 함께 현역 복무를 마치고 난 이후에는 크게 비난받지 않고 있다.
방송복귀하고 군대 2번 간 걸 자주 써먹었는데 자신이 불법적으로 병역을 피하려다 철퇴를 맞은 것이라 군대 2번 갔다고 방송에서 드립치는 게 꼴 보기 싫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오해가 있는 게 잘 보면 싸이 본인은 군대 얘기 안 하려고 하는데 자꾸 주변에서 2번 갔네, 중사 전역이네 드립을 쳤다. 라디오 스타에서도 윤종신의 중사 전역 드립에 본인이 "훈련소만 2번일 뿐" 이라면서 정정했다. 그리고 항상 끝인사 때 이 방송을 마지막으로 방송에서 군대 얘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이야기까지 했다. 지은 죄가 있으니 싫은 소리 듣는 게 어쩔 수 없겠지만.
5.2. 병역비리로 인한 재입대
- 학사장교 학력위조 사건 : 해외대학 졸업예정인 것처럼 학력을 꾸며 학사장교로 3년간 복무했던 최모씨(2012년 당시 30세)가 뒤늦게 학력위조와 병역비리 혐의에 걸려들어 장교 복무가 무효화되고 현역병으로 군대에 다시 끌려가게 된 사건. 최씨는 고교 졸업 후 유학 등을 이유로 입영을 연기하다 외국 신학대학 재학증명서와 졸업예정증명서 등을 제출하면서 학사사관후보생 선발시험에 지원하여 합격했고, 학사장교로 3년 복무 후 2006년 제대했다. 그러나 2007년 국방부는 최씨가 현역입대를 피하려고 학력을 위조한 것을 뒤늦게 파악하고, 현역병입영통지에 따르지 않은 혐의(병역법 위반)에 따라 장교임용을 무효로 하는 인사명령을 내린 뒤 현역병입영통지서를 발송했다. 최씨는 행정소송을 냈고 임관무효명령이 최씨에게 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 3심에서 입영통지서가 취소되었다. 이후 국방부가 확실히 최씨에게 장교임용 무효사실을 통지하였고 입영통지서를 재차 발송했지만, 최씨는 종교에 귀의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를 시행했다.
- 한 학군사관이 수능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수능 무효 → 대입 무효 → 학위 무효 → 학군장교 임관 무효 → 군 미필 → 그러니까 다시 현역으로 복무하라'는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다. 여기에 부정으로 임관했으니 이때까지 받은 봉급의 일정부분 반납이라는 추가타는 덤. 그나마 1년 후 항소심에서 이겨서 예비역 이등병으로 처분이 조정되었기 때문에 재입대는 면했다.
- 2016년에는 공시생 성적조작 사건이 일어났다. 이쪽은 아예 (범죄사실로 인해) 학생예비군부터 무효가 될 판.
- 2010년에는 한국에서 인정되지 않는 외국 학위를 이용해 학사장교로 임관했다가 군적이 통째로 말소, 병으로 재입대하라는 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위의 사례처럼 군필은 인정받아 재입대는 면했다.
- 필리핀의 비인가 신학대학에서 학사학위를 구매하여 임관한 육군 학사장교 42기, 44기, 46기, 48기, 그리고 후보생 50기가 적발되어 장교 임용이 취소되었다. 이들 가운데 제일 고참에 해당되는 학사 42기의 2명은 재입대는 면한 대신 병적이 말소되고 똑같이 예비역 이등병으로 조정되었으며 병역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되었다. 후배기수인 44기부터는 장교 지원자격이 평생 말소되었으며 부사관 혹은 병으로만 병역이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엄밀히 말하면 기초군사훈련을 받지 않으므로 재입대는 아니지만, 앞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가 허위진술에 의한 것으로 추후에 밝혀질 경우 법원 판결에 따라 현역 또는 보충역으로 입대할 수도 있다.
5.3. 행정 착오로 인한 재입대
- 부사관 복무 중 결격 사유가 드러나 임용이 취소되었는데 이를 불명예 전역으로 잘못 알고 있다가 6년 뒤 사회복무요원으로 재복무하게 된 사례도 있다.[25] 엄밀히 말하면 군대를 다시 간 건 아니니 재입대는 아니지만 공익근무 소집 영장을 받은 당사자는 장모님이 다시 군대가면 헤어지라고 했다며 소송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사 정확히 말하자면 재입대하라는 통지가 행정 착오인게 아닌, 불명예 전역으로 잘못 통보한게 행정 착오인 것. 차후 소송에서도 재입대 통지 취소 요청 소송을 기각하였다.##
5.4. 국난 사태, 혹은 전쟁포로 신분 하에서의 재입대
- 일제강점기 때 징병되어 끌려갔다가 광복 이후 6.25 전쟁 발발로 인해 다시 군대를 간 사람들. 대표적으로 박금석 할아버지가 있다. 이 분은 군 소속이 4번(일본군 → 중공군 → 인민군 → 국군)이나 바뀌면서 14년 복무를 했다. 기사. 이쪽은 시대적 소용돌이가 만든 경우. 2차 세계대전과 국공내전, 6.25가 낳은 진정한 시대의 아픔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전사학자들도 신빙성이 높다고 인정했다.
- 6.25 전쟁 때 포로가 된 북한군중 반공포로로 인정돼 풀려나서 대한민국 시민이 된 사람들도 국군으로 3년간 복무했다고 한다.
- 윗 사례보단 짧지만 6.25 전쟁 발발로 인해 남하한 북한군에 의해 강제 징병되었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붕괴되는 북한군에서 탈출 혹은 포로로 잡혀 다시 남한군으로 징병된 사례가 매우 많다.
- 프랑스인이 잊혀진 병사의 저자인 기 사예르는 15세의 나이에 독일 국방군 육군에 입대, 그로스도이칠란드 사단 소속으로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 싸우다가 영국군에 투항했고, 종전 이후에는 프랑스로 돌아온 후 법적인 처벌을 받는 대신에 프랑스 육군에 18개월간 복무하는 것으로 합의했고, 실제로 군복무를 수행했다. 이는 그의 부모님 중 모친이 독일인 여성이라 가능했다. 자세히 말하자면 그의 부친이 1차대전 당시 포로로 잡혀 독일에서 노동하다가 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전후에 결혼하여 기 사예르를 낳았던 것. 참고로 기 사예르의 주장에 따르면 양친 중 한 명 이상이 독일인이나 독일계일 경우 법적인 처벌 대신 프랑스군 입대, 프랑스군 복무 도중에 혹은 마치고 독일군이 된 경우에는 재입대로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경우도 많았던 모양이다.
- 후지이 히데토(藤井秀人(가명) 1930? ~ ?)[26] - 1945년 해방 당시 가족과 함께 춘천에 살았던 일본인(히키아게샤)으로, 일본으로 돌아갈 길이 끊겨서 '일본에서 막 귀국한 한국인' 행세를 하면서 연명했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6.25 때 인민군으로 징집되었다가 전투에서 낙오되어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일본인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1953년 6월에 반공포로로 석방되었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수용소에서 풀려나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부산역으로 가는 도중에 병역기피자들을 색출하는 체포조에게 체포되어 다시 국군에 강제입영되었다. 이 전후 사정을 받아들인 당시 대한민국 외무부에서 귀국허가를 함으로써 그를 근거로 1955년 10월에 제대하여 1956년 2월에야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
5.5. 자의에 의한 재입대
- 교황 요한 23세: 신학생 시절 징집되어 의무 복무 기간을 마치고 병장 전역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다시 징집, 병장으로 의무대에서 복무하다가 이탈리아군이 복무 중인 모든 사제를 군종 신부로 임명함에 따라 중위로 진급하고 전쟁이 끝나며 다시 전역했다.
- 김도인: 육군 대위로 전역한 뒤 육군 부사관 지원을 하여 중사로 임관했다. 장기복무 되기가 빡세다보니 실제로 이런 경우가 드문 게 아니다. 하지만 위 케이스는 본인이 병사들과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 장교복무 대신 부사관으로 다시 지원한 사례.
- 김도현: 이쪽은 2번이 아니라 3번. 육군 병장으로 전역하고, 공군 중사로 다시 복무한 뒤 해군 장교 지원을 해서 2015년에 해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육군·해군·공군에서 모두 복무한 희귀한 케이스가 되었다. 밑의 군 3번간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이쪽은 본인이 계속 자원해서 갔다는 것이고, 이번에는 전투부대에 있어보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그렇다고. 육해공을 모두 간 것까지 모자라서 각각 병, 부사관, 장교로 계급까지 다르게 해서 갔다는 점에서 유례없는 일. 김좌진 장군의 증손자라고 한다.
- 김재경: 육군 중위로 전역한 뒤 공군 부사관 지원을 하여 하사로 임관했으며 여군이다.[27]
- 김준영: 육군 상근 예비역 병장으로 만기전역 후 해군 특수전전단 부사관으로 재입대후 중사 때 전역했다.
- 김진홍: 공군방공유도탄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그 사람 맞다. 공군기술고등학교 10기로 입교하여 공군 하사로 임관한 뒤, 하사로 복무하다가 공군 제2사관학교 6기로 다시 입학하여 공군 소위로 임관. 보급 특기로 임관하였으나, 대위 시절 육군에서 전군된 방공포병 특기를 지원하여 최종 계급은 공군 소장.
- 손신애: 육군 중위로 전역한 뒤 육군 부사관 지원을 하여 하사로 임관했으며 여군이다.
- 신지현 : 육군 부사관, 육군 장교로 복무한 뒤, 육군 부사관으로 다시 지원하여 하사로 임관하였으며, 여군이다.
- 전미화: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 이후 공군 부사관 지원을 하여 하사로 임관했으며 여군이다. 최근에는 부대 장병들을 위해 500만원 기부를 하는 솔선수범소식이 보도되었다.
- 정영수: 육군 대위로 만기전역한 뒤 부사관을 지원해서 중사로 임관했다. 이런 사례 때문에 대위로 전역한 인원이 부사관을 지원하면 중사로 임관시키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 이무철: 해병대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그리고 프랑스로 건너가서 외인부대에 입대했으나 훈련 도중 수료하진 못하고 중도 퇴교하여 귀국했고, 후에 육군3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소위로 임관했다. 2017년 중령(진)이 되었고[28] 현재는 중령이다.
- 이지현: 특전사 전역 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으며 여군이다. 특전사 중사로 전역한 뒤 경찰공무원이 되기위해 한동안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으나, 해병대 출신인 아버지가 바라는 해병가족의 대를 잇기 위해 다시 군복을 입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 이재열: 브라질 공군병으로 1년간 의무복무한 뒤 대한민국 육군으로 의무복무하였다. 한국/브라질 이중국적자이기에 모친의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귀국 후 장기간 함께 있으려면 병역의무 이행 또는 한국 국적 포기 중 선택을 해야 했는데, 병역의무 이행을 선택하였다.
- 곽은광 : 병장으로 전역해서 군종장교 대위로 재입대한 케이스. 평택 서해은항교회 담임목사로 해군 군종 목사를 하고 소령으로 전역했다. 이는 군종장교로 복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군목의 길을 걷게 된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한다. 어릴 때 군복을 입은 아버지[29] 의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서 군인의 꿈을 가졌고 나이가 들면서 신앙을 체험 후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 군종장교를 지망해서 두가지 꿈을 모두 이루었다고 한다. 군목시절의 꿈이자 소망은 과거 월남전에 참전해 전장을 누비며 죽어가던 장병들을 위로하던 아버지와 자신에게 가장 부끄럽지 않은 군목이 되는 것이 군 생활 가운데 최대 소망이였다고 한다. 또한 이 목사 말로는 해군에 임관하자마자 초임에는 해병대를 먼저 간다고 한다.
- 오지성: 해병대 수색대에서 중사로 전역한 그해 공군 부사관으로 재입대를 하여 군복무를 하던 도중 육군 항공 준사관과정에 지원해 2019년에 수료한 뒤 육군 준위로 군복무중이다#. 일부 언론에선 국군 최초로 3군을 다 거친 인물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위에 나오는 김도현씨가 육군과 공군을 거쳐 이미 2015년에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3군을 다 거친 바 있으니 오지성씨가 최초라는건 틀린 내용이다.
5.6. 특별한 경우
- 문성원 -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로 데뷔했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은퇴. 그 후 특전사 부사관으로 입대했다가 부상으로 중도 퇴소. 이후 스타크래프트 2 게이머로 활동하다가 병으로 재입대.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장교로 제대했다가 시베리아 유형을 간 다음 병으로 재입대 당했다.
- 서경석: 1990년도 육군사관학교 50기 사관생도 선발에서 수석합격하여 입교하였다가 1달 만에 자퇴[30] 하고 재수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간 뒤, 2001년 만 29세의 늦은 나이에 육군 운전병으로 재입대하여 2003년 만기전역했다.
- 이국종 - 아주대학교병원 의과대학 교수이자 명예역 해군 중령.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센터의 장을 맡고 있다. 해군 단기수병으로 전역하였으나, 의사로 근무 중 석해균 선장을 살리는 등 해군 발전에 기여한 지대한 공을 인정받아 명예 대위로 임명되었고, 이후 명예 소령을 거쳐 중령으로 진급했다. 군의관으로 근무하지는 않았으나 실제 의사이고, 군에서 총기 사고가 터지면 이 교수의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다. 실제로 이 교수는 도서지역의 군 외상응급상황 발생을 대비하여 정기적으로 해상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명예직이라서 다른 군인들 같은 훈련이나 근무를 하지는 않지만 진짜 군인 대우를 받는 직책이라서 재입대한 거나 마찬가지다.
- 조민기: 영화배우. 1986년 9월에 입대해서 1990년 9월에 전역. 이는 중간에 전역했다가 재입대했기 때문인데, 일병 2호봉 때[31] 아버지가 이민 결정을 내려 '국외 이주 전역이라는 특별 전역을 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배우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아버지를 설득하여 이민 계획을 취소시켰다. 그리고 전역한지 2년 만에[32]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로 재입대했다. 과거 일병 시절 각 잡고 긴장하고 있던 이등병 후임이 병장이 되어 화들짝 놀라 조민기를 맞이했다고. 그런데 군번은 첫 입대 시 받았던 군번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조민기를 모르는 상병 고참들은 자기보다 군번이 높은 사람이 후임이 된 것을 고깝게 생각했는지 해코지를 많이 했다고 한다. #
- 피우진: 현 국가보훈처장. 유방암 때문에 유방 절제 수술 후 유방이 잘려나갔으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2006년 11월에 의병 제대를 당했다. 당시 계급은 중령.[33] 군 복무 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고 대한민국 국방부를 상대로 퇴역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냈고 이 소송에서 승소하여 2년 만인 2008년에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 휴 다우딩 : 영국 본토 방공전 당시 영국 공군 전투기 사령부 사령관. 영국 본토 방공전 종료 이후인 1940년 11월 제대했으나 얼마 후 다시 소집되어 항공기 생산 관련 업무를 보다가 1942년 제대했다.
- 2012년 9월 20일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국외영주권자 김수환 훈련병은 미 해병대에서 7년간 복무한 뒤 다시 훈련병으로 입소했다.
- 기사 2010년 군번 ROTC 4,200명 중 2명이 예비역 병장출신이다. ROTC에선 매우 드문 케이스이긴 하지만 일단 동기 장교들에 비해 2호봉 정도 높고, 무엇보다도 배치된 부대에서 모든 일반병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유일한 소위라는 메리트도 크다.[34]
- 2번도 많은데 3번씩이나 갔다 온 사람이 등장했다! 이 경우는 장기복무 선발에 탈락한 부사관이 많다.
- 군대 2번은 아니지만 26년간의 군복무가 무효가 되어버린 일도 있다. 다행히 문제가 해결돼서 군복무 인정이 되었다고 한다.
- 커티스 르메이: 오하이오 주립대에 ROTC로 입학하여 소위로 임관했다. 그런데 미 육군이 조종사를 선발한다는 말을 듣자 선발 과정에서 우선 순위가 사관학교 다음으로 높은 주방위군 소위로 군적을 바꿨고, 이듬해에 육군항공대 소위로 또 임관하여 조종사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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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켈리(John F. Kelly, 1950-): 미 해병대의 4성장군으로 1970년에 병으로 입대해서 1972년에 전역했다. 그 후에 대학에 진학하여 1976년에 학군사관으로 다시 소위로 재입대하여 4성장군까지 진급한 사병 출신 장성이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라인스 프리버스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질 이후 후임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어 재직 중이다.
- 라우리 알란 토르니(Lauri Allan Törni, 핀란드 태생)[35] : 계속전쟁때 핀란드군으로 참전했다가 2차대전때엔 SS 무장친위대, 베트남 전쟁때엔 그린베레로 참전했다. 스웨덴의 전쟁사 전문 파워메탈 밴드 Sabaton의 "Soldier of 3 Armies"라는 노래가 바로 라우리 토르니의 헌정곡.
원래 라우리 토르니는 소련 국경 근처 핀란드 비푸리에서 태어났는데, 군복무 당시에 소련과 전쟁 중이었고 소련을 상대로 공적을 세웠으나 결국 전쟁에 패하게 되었다. 이후 당시 핀란드는 독일과 연대를 강화하면서 무장친위대에 파견을 가기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의 소련 침공이 시작되었고 토르니는 부대를 이끌고 소련군의 후방을 쳐서 놀라운 전과들을 냈기에 명성이 대단했다. 소련에서는 라우리 토르니의 활약 때문에 그의 목에 현상금을 걸 정도였고 핀란드와 독일 등지에서 온갖 훈장도 받는등 명성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돌연 핀란드는 소련과 강화를 맺게 되고 이에 반발한 라우리 토르니는 독일로 건너가 잠깐이지만 무장 친위대에 입대하였으며, 핀란드에서 저항 운동을 하려 했으나 결국 독일이 항복을 하면서 라우리도 영국군의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탈출하여 조국인 핀란드로 돌아갔으나 이미 국가가 소련의 영향하에 있었고 그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한 상태였고 사회주의 국가로 변하면서 국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36]
대통령의 사면을 받고 풀려나긴 했으나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기에 결국 부하 장교 한명과 망명을 하게 되었고, 결국 부하 장교는 잡혀서 압송이 되고 말았으며 라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도달했고, 핀란드 인들이 다수 정착한 브루클린에 도착해서 목수와 청소부 일을 하며 지냈으나 그에겐 영 맞지 않았고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롯지법[37] 이 통과되어 미군에 입대한다. 이때 본래 이름 대신에 미국식인 래리 앨런 썬(Larry Alan Thorne)으로 개명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와 비슷한 처지였던 마침 핀란드 출신 군장교 모임의 후원을 받았다. 이들은 라우리같은 직업을 잃은 핀란드 장교 및 군인들을 미국으로 이주를 돕고 장교로 일 할 수 있게 길을 터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곳에서도 명성을 쌓았기에 역시 엘리트 장교 코스를 밟았고, 이내 대위까지 승진을 하게 되었고 더 승진할 수도 있었으나 그의 야성을 버리지 못 해서 현장직으로 배속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 군사고문으로 갔었으나 자원해서 1965년에 베트남 전에서 침투 작전을 하던 중 헬리콥터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래리 썬의 흔적은 찾지 못 해서 실종처리를 하고 사망했을 거라 생각하여 소령으로 추서하였다. 그러다 1999년에서야 그의 유골과 인식표가 발견되어 2003년에 래리 썬임이 확인되면서 미국 알링턴 국립 묘지에 안장된다.[38]
그러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돌연 핀란드는 소련과 강화를 맺게 되고 이에 반발한 라우리 토르니는 독일로 건너가 잠깐이지만 무장 친위대에 입대하였으며, 핀란드에서 저항 운동을 하려 했으나 결국 독일이 항복을 하면서 라우리도 영국군의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탈출하여 조국인 핀란드로 돌아갔으나 이미 국가가 소련의 영향하에 있었고 그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한 상태였고 사회주의 국가로 변하면서 국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36]
대통령의 사면을 받고 풀려나긴 했으나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기에 결국 부하 장교 한명과 망명을 하게 되었고, 결국 부하 장교는 잡혀서 압송이 되고 말았으며 라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도달했고, 핀란드 인들이 다수 정착한 브루클린에 도착해서 목수와 청소부 일을 하며 지냈으나 그에겐 영 맞지 않았고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롯지법[37] 이 통과되어 미군에 입대한다. 이때 본래 이름 대신에 미국식인 래리 앨런 썬(Larry Alan Thorne)으로 개명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와 비슷한 처지였던 마침 핀란드 출신 군장교 모임의 후원을 받았다. 이들은 라우리같은 직업을 잃은 핀란드 장교 및 군인들을 미국으로 이주를 돕고 장교로 일 할 수 있게 길을 터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곳에서도 명성을 쌓았기에 역시 엘리트 장교 코스를 밟았고, 이내 대위까지 승진을 하게 되었고 더 승진할 수도 있었으나 그의 야성을 버리지 못 해서 현장직으로 배속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 군사고문으로 갔었으나 자원해서 1965년에 베트남 전에서 침투 작전을 하던 중 헬리콥터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래리 썬의 흔적은 찾지 못 해서 실종처리를 하고 사망했을 거라 생각하여 소령으로 추서하였다. 그러다 1999년에서야 그의 유골과 인식표가 발견되어 2003년에 래리 썬임이 확인되면서 미국 알링턴 국립 묘지에 안장된다.[38]
- 100% 지원병으로 구성된 해군, 해병대, 공군에 입대했다가 가입소기간 중 신체 이상이나 자의로 귀가조치 된 후 육군이나 타군으로 재 입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전에 입대했다 나온 군의 가입소 기간은 군 복무기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39]
- 부부 한군두(!!!)도 있다. # 이게 대한민국 최초는 아닌게, 2011년 전방 모 부대에서는 예비역 중사 부부가 각각 장교와 부사관으로 재입대한 케이스도 있었다.
- 국내 사관학교에서 교육받는 수탁외국사관생도들 중에 일본을 제외하고 1학년 가입교기간부터 다시 기초군사교육을 받는다.[40] 마찬가지로 해외로 위탁교육을 받으러 가는 한국사관생도들도 다시 기초군사교육을 받고 1학년부터 시작한다.[41]
- 로마 제국에도 한군두와 관련된 용어가 있는데, 명예 제대후 재복무한 군인들은 에보카티(Evocati)라고 불렸다. 호봉 인정을 받고 그 위에 추가 급여를 받으며 일반 군단병이 해야 하는 건설 업무[44] 가 면제되는 등 여러가지 혜택을 받았다. 상당수는 장교에 해당되는 센추리온으로 진급하였다.
- 한군두도 어렵지만 한군삼조차 있다. 학군단으로 갔다가 조울증이 도져서 도중 포기, 현역 육군으로 갔다가 조울증의 합병증인 불면증으로 훈련소 기간중 강제 퇴소 당했고, 재검 결과 4급 공익으로 빠져서 공익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 -
- 정말 희귀케이스로, 병 복무 중 미국으로 가족이 이민을 가게 되어 의가사 제대 후 미국으로 갔다가, 가족이 영구 귀국을 하게 되면서 남은 복무기간을 마저 채우라는 통지서를 받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38살에 병장으로 재입대하고 5개월 뒤 무사 전역했다고.[45] 관련 게시글(오유)
6. 기타
- 지희봉: 현역병 징집을 2번 당했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후 또 복무했다. 이 사건으로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 중국 해군도 새로 건조 된 함선들이 늘어나게 되자 최근 2년 내에 제대한 부사관들을 현역으로 복귀 시키고 있다. 다만 이들은 재입대한 사람들답게 월급과 대우는 과거 현역시절보다는 더 좋게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 북한군은 고난의 행군 등의 경제난이 겹치며 입대한 포병들의 신체수준이 미달되어 포병을 운용할 수 없게 되자 전역한 40대 포병들을 찾아내서 다시 징집하고 있다고 한다.
- 영술사가 쓴 판타지 소설 반생전기의 주인공은 모종의 사유로 인해,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자마자 시간회귀를 하게 돼 입대한 날로 되돌아가기를 수 십번을 반복하게 된다. 엔딩에서 주인공은 귀족이 되어, 좋아하던 여자와 결혼도 하고 세계도 구하는 등 충분히 성공한 삶을 살게 되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루프에 빠져 입대를 반복하게 되었다.
- 프린세스 메이커 3: 아버지의 직업이 퇴직한 기사이고 딸의 엔딩이 '여왕'이나 '왕국의 프린세스'일 경우 아버지를 현역으로 복귀시킨다. 물론 아버지가 다시 기사가 되는 것은 아니고 기사와는 비교도 안 되게 급이 높은 신분인 장군이 된다.
- 2005년 개봉된 영화 역전의 명수에서 명수는 동생 현수 대신 군대가면서 군대 두번 가게된다.
- 엔들리스 군생활편
- 영화 황산벌의 주연중의 한명인 거시기는 계백의 5천 결사대들중 유일하게 살아남는데 성공하지만 후속작 평양성에서 다시 신라군으로 징집되고 고구려와의 전쟁 도중 포로로 붙잡힌 이후엔 고구려군으로 재편성 되는 한군세를 겪게 된다.
- 레 밀리터리블의 자베르 중위는 병장 예비역 출신으로 재입대했다는 설정이 있다.
- 최악의 만우절 장난
7. 같이 보기(?)
8. 관련 문서
[1] 대표적인 예로 <심생전>의 작가인 이옥을 들 수 있다. 정조 시기 문체반정 이후 형벌로 군입대를 선고 받아 3번이나 군복무를 해야했다.[2] 대법원 1974. 7. 23, 74도1399.[3] 현역 산업기능요원은 2년 10개월로 약간 짧고 전문연구요원은 정확히 3년이며, 공중보건의사는 훈련소에 있는 기간은 복무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3년 1개월.[4] 이 경우 복무 기간 전체가 무효가 된다.[5] 원래 병무청에서는 대체복무자를 선발할 때 이 여부를 심사하여 결정하지만, 모종의 사유로 복무기간이 연장되다가 소집해제일에 만 35세를 넘기는 경우 이러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6] 기초군사훈련을 받지 않으면 $$M=0$$, 2020년 혹은 그 이전에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면 $$M=29$$, 2021년 혹은 그 이후에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면 $$M=22$$가 된다.[7] 일명 기초군사훈련 생도(약칭 기훈생도)라 부른다.[8] 이 경우 해결 된 모양이지만 급여는 이전에 이등병/일병 급여와 병장 급여 차액을 전부 지급을 받게 되고 바로 병장으로 진급된다.[9] 대위 이하 예비역 간부는 40세까지, 소령 이상은 각 계급별 정년까지 예비역이다.[10] 이 발언은,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이후, 천주교에서 매주 발매하는 주보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일화를 나열하면서 처음 언급된 내용이다.[11] 신학교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뜻에 의해 2학년 마치고 일률적으로 군대에 입대하고 있다. 군에 입대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기간 동안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전역 후 신학교에 입학한 사람은 제외한다. 그리고 훈련소에서 군종 신부, 군종 목사, 군종 스님 전부 다같이 훈련을 하는데 군종 신부 쪽은 예비군 훈련 분위기라고 한다.[12] 모 신부는 "나는 군인도 신부도 같이 꿈꿔왔기에 군종신부를 정말 하고 싶다"면서 소속 교구장 주교를 찾아가 "저 좀 군종신부로 보내달라"고 하소연을 해서 그토록 원하던 군종 신부를 해서 꿈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때 훈련 성적도 우수한 성적으로 임관했다고 한다.[13] 다만 군대를 2번 가야 한다는 거부감과 훈련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신부들에 비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일단 국군에 위임한 상태기 때문에 품위유지비는 안 나오지만 그래도 중위, 혹은 대위 1호봉으로 받는 급여가 품위유지비에 비해 넘사벽인 것도 있고 군대를 2번 간다거나 훈련을 또 받는다는 점도 종교적 신념으로 생각하면 일종의 고행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천주교적 관념으로 보면, "더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피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고 신부들은 4대 의무 중에서 '순명의 서약'이 있다.[14] 장교지원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직접 모집요강을 보고 해당년도 생년월일까지 따져서 본인에게 어느 진로가 더 나을지 결정할 것.[15] 학군단에 합격하면 군장학생을 신청하여 일명 학군장학생을 하는 게 좋다고 한다.[16] 예외는 있다. 항공대, 한서대, 한국교통대에 재학중이라면 학군으로도 지원 가능.[17] 동원미지정자라도 마찬가지. 단, 학생은 제외.[18] 쉽게 풀어서 해석/비유하자면, 재입대는 온라인 게임으로 치면 기존에 키우던 캐릭터를 지우고, 새로운 캐릭터로 다시 시작하는 것(새직업 or 기존직업으로 캐릭터를 다시 키움)이나, 현역재임용은 기존에 키웠던 캐릭터를 복구하여 중간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19] 여러분이 2014년 9월에 입대한 현역 육군 상병이라 치자. 어느날 더플백을 메고 자대로 전입온 이등병이 2011년에 입대하여 2013년에 공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하고 2015년에 육군 이등병으로 자진 재입대한 사람이라면 그 기분이 어떤지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근데 그전에 그 월급과 그 대우를 처음부터 다시 받고 싶은가? 차라리 장교나 부사관으로 가는 것이 훨씬 낫다.[20] 물론, 공군사관학교 출신자 중에서 선발된 조종장교후보생들은 병 출신이 없다. 제도상으로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런 예는 전무하다.[21] 병으로 의무복무를 마쳤다면 군 경력을 인정받아 호봉에 합산된다. 물론, 겨우 월급 몇 만 원 더 받는 것 뿐이며 진급에서의 특전은 없다.[22] 교육 비용이 상당하다. 일단 시뮬레이터 1시간 한 번 타는 데에만 무려 10만원이 넘는다.[23] 국군이나 북한군 복무 중 포로가 된 뒤 군복을 바꿔입고 다시 전장에 투입된 경우도 많았다.[24] 참고로 우측에 있는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인터뷰어라는 찬사를 받는 래리 킹.[25] 사회복무요원으로 발령받은 이유는 1년 이상의 징역/금고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력이 있는 경우 신체등급에 상관없이 4급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26] 일본 미야기 현 출생으로, 1945년 해방 당시 15살이라고 했으니 출생년도는 1930년도로 추정. 이후 행적은 미상. 1992년 경향신문 보도 당시 62세로 표기됨.[27] 2004년 기사로 2014년 현재 시점에선 해당 인원에 대한 근황이나 자세한 정보가 없다.[28] 이 당시 보직이 부대대장인데 현역이 부대대장이 되는 경우는 대대장 이취임식이 임박한 상황에서 중령진급 예정자가 대대에 전입오고 전임 대대장이 임기를 완료하는 상황에서 임무를 인수인계하는 과정에 있을 경우이다.[29] 아버지도 월남전에 참전한 군종장교 출신이다.[30]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알려졌다. 자세한 내막은 서경석 문서로.[31] 이 때는 육군 기준 2년 6개월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9개월쯤 지난 1987년 6월경으로 보인다.[32] 다만 최종 전역이 1990년 9월이었음을 감안하면 재입대 시점은 1988년 12월경이다. 왜냐하면 최초 입대일과 최종 전역일이 48개월인데 당시의 복무기간 2년 6개월을 빼면 공백이 18개월이므로, 1987년 6월에 전역했다가 1988년 12월에 재입대한게 시기상 맞기 때문.[33] 그러나 임관년도(1979년 임관)가 임관년도인지라 그 당시에 피우진 본인이 중령임에도 불구하고 갓 진급한 준장(1982년 임관)이 피우진보다 후임이었다.[34] 군 경력 없이 소위로 임관하면 부사관들은 둘째치고 상병장들보다도 짬이 딸린다. 지금이야 엄연히 계급이 높으니 상병장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소대장 길들이기라고 해서 신임 소위를 상병장들이 대놓고 우습게 보는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터진 사건이.....[35] 미국에서 개명한 이름은 래리 앨런 썬(Larry Alan Thorne)[36] 사실 그를 비롯한 공을 세웠던 핀란드 장교들이 비슷한 결말을 맞이하여 감옥에 끌려가는 수모를 당했다.[37] 유능한 해외 인력의 군입대 허용법[38] 시신 발견이 늦은 이유는 공식 추락 보고 위치가 실제 추락 위치와 틀렸던 탓으로 알려졌다.[39] 2017년부터는 귀가를 한 경우 가입소기간도 군생활 일자에 포함된다 [40] 본국의 학년에 상관없이 다시 1학년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보통 1학년 1학기에 한국사관학교 위탁교육신청을 한다고.[41] 1학년을 마치고 해외로 위탁교육을 받기 때문에 한국인 동기들보다 임관이 1년 늦다. 따라서 졸업을 하고 임관을 하면 계급이 중위다.[42] 진짜 재입대는 아니었고 전쟁 시 현재 소재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나라 국방부도 특수병과 예비군에게 비슷한 절차를 거친다.[43] 참고로 이 기사를 쓴 기자가 바로...[44] 진지 구축, 보급창 건설, 도로 건설. 로마 군단은 새 주둔지에 도착하면 무조건 진지를 구축하고 도로를 새로 깔았다. 로마 군단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 문명 5의 로마 문명에서도 군단병의 특성으로 구현되었다.[45] 마냥 봐줄 수만도 없는 것이, 이 사례를 그냥 봐주게 되면 이 사례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46] 일종의 드립으로 보면 된다.[47] 재입대를 소재로한 한국 라이트 노벨. 물론 이세계 속 군대지만, 작중 묘사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대한민국 국군.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육군 생활에 가깝다.[48] 원래 지구인 해병대 출신이었으나 천국에서 구원받아 밤의 감시단 소속으로 현지 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