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캐스트
1. 개요
[1]
세가에서 세가 새턴의 차세대기로 발매한 게임기. 1998년 11월 27일 일본에서 가장 먼저 발매되었다.
2001년 3월 31일 단종까지 전 세계에 약 913만 대를 판매했으며, 일본 내 판매량은 286만 대, 북미 지방은 464만 대, 유럽 지방은 163만 대 팔렸다. 최다 판매 게임은 262만장의 소닉 어드벤처.
2. 사양
CPU는 또다시 히타치의 제품인 SH-4를 사용했다. 당시 펜티엄 2 450MHz의 3배나 되는 부동소수점 연산 성능을 가지고 있어 화제가 되었다.
GPU는 3dfx, ATI 등 다양한 회사를 검토하다가 당시 NEC가 비디오로직(現 이미지네이션 테크놀로지)에서 라이선스 받은 타일 렌더링(Tile-Based Rendering, TBR) 기술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받고 기존의 방법보다 몇 배의 폴리곤이 나온다는 말에 PowerVR2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 NEC가 생산하는 칩의 수율이 너무 나빠 드림캐스트 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 되는 원인이 된다.
33.6 kbps 모뎀을 기본 탑재했다. 이후 미국 시장 발매에 맞춰 56 kbps로 업그레이드 된다.
3. 상세
드림캐스트라는 이름은 D의 식탁, 에너미 제로 등을 제작했던 이노 켄지가 지어준 이름이며, Dream(꿈)과 Broadcast(방송)의 합성어로 '꿈을 방송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부르는 약칭은 도리캬스(ドリキャス). 한국에서는 주로 드캐로 불렸다.
새턴의 실패에서 배워 개발하기 쉬우면서도 뛰어난 성능에 생산성 면에서도 신경을 쓴 하드웨어 디자인에, 화면과 키를 갖춘 외장형 메모리인 비주얼 메모리를 탑재했다. 인터넷 시대를 염두하여 모뎀과 웹 브라우저를 탑재했고, 전용 인터넷 서비스를 운영했다.
드림캐스트의 하드웨어 구조는 지금까지의 괴랄한 세가 게임기의 모습을 탈피해 합리적으로 만들어졌다. 추가 장치 덩어리가 되어 버린 메가 드라이브나 여러 개의 프로세서로 떡칠을 한 세가 새턴와 비교하면 얌전한 편이다. 하드웨어를 열어봐도 매우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을 정도다.
유사한 사양의 아케이드 게임 기판인 NAOMI가 존재한다. 쓸만하니까 만들었을 뿐이지 딱히 아케이드와 가정용 이식이라는 전략을 의식하고 만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본래 세가는 나오미의 게임을 드림캐스트 이외의 게임기에 이식할 것은 전제로 하지 않고 게임기와 나오미를 설계했기에, 나오미 기판은 드림캐스트 이외의 다른 게임기의 이식에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드림캐스트의 몰락 이후 타사의 게임기에 게임을 이식하기가 꽤 어려웠고, 이후에 기판을 생산할 때에는 타사의 게임기로 이식하기 쉽게 만들었다고 한다.[8]
개발 당시에는 막강한 성능으로 여러 모로 큰 기대를 모았으며, 당대 최고의 아케이드 기판이었던 모델 3의 버추어 파이터 3가 너끈하게 이식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성공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드림캐스트 광고로 당시 세가 전무였던 유카와 전무를 내세웠는데, 전일본 CM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정도로 완성도도 높았으며 대중적으로도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드림캐스트는 준비도 괜찮았고 서드 파티의 지원 사격도 받아 좋은 분위기에서 발매를 시작했지만 소니와 닌텐도 사이에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닌텐도는 포켓몬스터 덕분에 휴대기기 시장을 휩쓸고 있었고 수명 말기라 여겨졌던 플레이스테이션 1은 각종 대작이 지속적으로 나오며 끄떡도 없었다. 게임 마니아들이 아닌 사람들은 뒤이어 나올 플레이스테이션 2를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드파티들의 지원도 많이 받지 못했다. 결국 세가는 2001년 3월 31일, 드림캐스트에 대한 생산, 지원 중단 및 가정용 게임기 사업 포기를 선언하였고, 이렇게 드림캐스트는 세가가 만든 마지막 가정용 게임기가 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역사와 플레이스테이션 2, 엑스박스 문서를 참고하자.
삼성에서 1996년 가을에 드림캐스트가 개발에 착수할 당시 정식 발매를 검토했었으나, 전작인 삼성 새턴(한국판 세가 새턴)의 큰 실패로 인해 같은해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게임기 사업을 완전히 접게 됐다.# 게임기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이 계획은 철회되었다. 이후 현대전자와 세가가 손을 잡은 현대세가엔터테인먼트가 생겨나며[9] 여러 시도를 했으나 2000년도까지 드림캐스트의 수입에 힘을 기울였으나 세가와의 의견 차이나 정부의 일본산 비디오 게임 수입 규제로 역시 물거품이 된다.[10]
플레이스테이션처럼 병행 수입 경로로 들어온 적은 있다. 다양한 루트 [11] 에서 했다고 하지만 북미판이나 유럽판을 들여오는 곳도 있는등 중구난방이었다. 100v 전원부를 손보지 않는 등 말 그대로 수입만 한 것도 있어서 구태여 살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드캐 자체가 이미 끝물에 복사가 풀려서 시장은 엉망이 되어있었고 1년 후에는 라이벌인 '''플레이스테이션 2'''가 정식 발매되었으니 안 봐도 비디오 였던 셈. 이 때문에 정식 발매가 됐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12]
삼성전자에서 아케이드용으로 드림캐스트를 수입한 적이 있다.# 다만 이건 정식 드림캐스트가 아닌 NAOMI를 개조한 벌크용 드림캐스트이다.[13]
4. 역사
4.1. 발매 전
세가 새턴은 일본에선 초반 잘 나갔던 기세와는 달리, 1996년부터 바이오하자드와 철권 2의 밀리언셀러 달성, 크래시 밴디쿳의 대성공과 스퀘어의 파이널 판타지 7 플레이스테이션 발매 선언으로 완전히 힘을 잃어버렸다. 1998년 즈음에는 그란 투리스모, 바이오하자드 2, 철권 3, 메탈기어 솔리드가 차례대로 발매하면서 저항할 힘마저 남지 않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세가 새턴이 크게 실패한 것도 있지만 방만한 경영 탓도 컸다. 나카야마 하야오를 비롯한 경영진들은 재고 관리가 엉망이었고, 세가의 게임 개발자들은 많은 개발 비용을 들여 화려한 그래픽 얘기만 할 뿐 비용 회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오카와 이사오는 그에 대한 지적을 하면 나카야마 하야오는 게임업계에 대해 잘 모른다 같은 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오오카와는 게임은 잘 몰랐을 지라도 경영자인 그가 보기에 세가의 경영은 엉터리라고 생각했다. 오오카와는 세가는 손익계산서만 볼 뿐, 대차대조표나 현금흐름표는 살피지도 않는다며 비판했다. 결국 1997년 6월, 오오카와 이사오가 세가의 대표이사로 취임해 직접 세가의 경영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가 들어온 초기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가의 자회사나 손자 회사에 쌓여 있는 악성 재고 자산들의 상각 처리와 구조조정을 진행해 정상 회사로 만들었다. 1998년 회계 연도부터 약 4년간 이어진 대규모 손실은 저것과 새턴과 드림캐스트의 부진이 겹쳐져 벌어진 일이었다.
오오카와는 앞으로는 네트워크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하드웨어 사업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차세대 게임기의 기획이 시작된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모뎀을 반드시 추가하도록 했다. 당시엔 모뎀이 비쌌기 때문에(1996년에 나온 새턴 모뎀도 14,800엔이었다) 사내에선 반대가 많았지만 모뎀 추가 비용을 오오카와의 사재로 충당하면서 반대를 억눌렀다.
세가 새턴의 실패로 얻은 교훈으로, 게임기의 구조를 최대한 쉽게 만들고 개발 환경을 생각하여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아 윈도 CE를 드림캐스트에 이식해 DirectX를 통한 개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드림캐스트의 본체에는 Windows CE의 로고가 있다. DirectX 덕분에 세가가 지원 중단한지 오래된 지금도 드림캐스트를 통해 동인 게임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드림캐스트는 본체에 윈도 CE를 내장하고 있지는 않다. 윈도 CE는 드림캐스트 게임 디스크, GD-ROM에 내장해 드림캐스트의 부트롬이 GD-ROM에 있는 윈도 CE를 읽어들여 구동한다. 그리고 윈도 CE를 사용하면 무거워서 대부분은 세가의 개발 도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예를 들어 NAOMI 기판으로 만든 모든 게임들은 윈도 CE를 쓰지 않았다. 세가는 새턴 시절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라이브러리를 완성하여 배포했고 새턴 시절 처음 그림을 띄우는 데만 1주일이 걸렸던 것과 달리 드림캐스트는 3시간이면 가능했으며 CD를 구울 필요도 없이 하드디스크에서 직접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해진다. 거기에 새턴의 호환 기판인 STV가 MODEL1과 MODEL2의 힘에 밀려 아케이드와의 연동이 잘 되지 못했던 점을 반성, NAOMI를 적극 밀어주기 시작했다.
드림캐스트 계획이 대중들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1997년 4월 19일, 3dfx가 나스닥에 기업 공개를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올린 보고서에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 개발에 3dfx의 부두 그래픽칩 기술이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을 공개하면서였다. 이로 인해 세가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러자 언론들은 빠르게 여러 소문들을 취재해 보도했는데, 세가가 NAOMI라는 이름의 아케이드 보드를 제작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블랙 벨트와 듀랄이란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새턴의 차세대 게임기 코드명이 DURAL이고,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3dfx의 부두 밴시와 PowerPC CPU, E-MU 시스템즈[14] 의 오디오 칩셋이 들어간 코드명 BLACK BELT, 일본 세가에서 히타치의 CPU와 NEC와 비디오로직의 PowerVR2 그리고 야마하 사운드 칩셋 기반의 코드명 GUPPY를 개발했다. 또한 1997년 5월 E3에서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버나드 스톨라 사장은 '''"세가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면서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갔다.
세가는 간부 회의를 개최해 일본 팀의 프로젝트를 채택하며 코드명도 좀 더 게임기 다운 이름인 'KATANA'로 결정했다. 사토 히데키는 차세대 게임기를 결정하는 회의에 대해 오오사카 이사오 당시 CSK 회장이 '사토는 8비트부터 새턴 때까지 실패해 많이 배웠으니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지'라며 결정했다고 말했다. 1997년 7월 22일 3dfx는 세가와의 차세대 게임기 개발 계약을 취소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양이 결정된 것은 이 이전의 시기로 보인다.
참고로 그 결과로 3dfx는 부당한 계약 파기 및 불공정 경쟁, 기밀 횡령 등을 주장하면서, 1997년 9월 2일 세가와 NEC를 상대로 캘리포니아 고등 법원에 1억 5,5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걸었다. 1998년 8월, 법원에서는 3dfx의 손을 들어주면서 세가에게 블랙 벨트 관련 3dfx의 모든 지적 재산권과 영업 기밀 및 비밀 정보들을 3dfx에게 반환하고 1,050만 달러를 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세가는 이 명령을 받아들이면서 소송이 끝나게 된다. 3dfx에서는 세가와 차세대 게임기 개발 결렬의 이유를 '전통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진 두 일본 대기업의 정치적 움직임 탓'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1997년 10월 경, 세가는 비디오 게임 관계자들에게만 드림캐스트를 카타나라는 이름으로 시연했는데, 이 당시 시연했던 게임이 MODEL3 기판으로 제작했던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 스커드 레이스였다.[15] 이 때 기술 시연이 꽤 잘 됐었고, 쉬운 개발 환경이 꽤 먹혀들어 캡콤, 남코 등의 굵직한 회사들이 연달아 개발 의사를 밝히게 된다. 세가도 새턴 때부터 서드파티 영입에 공을 들였고, 이리지마리 사장도 인간 관계를 우선하여 열심히 뛴 덕분에 이 시기에는 '같이 하시죠' 같은 권유를 제법 받았다고 한다.
이후 사람 얼굴 모델링의 시연도 했는데, 이 얼굴 모델링의 모델이 된 인물은 당시 세가 부사장였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16][17]
1998년 3월, 도쿄 게임쇼에서 이 후속 게임기의 이름을 드림캐스트라고 처음 발표했다. 이는 세가가 공식으로 차세대 게임기를 발표한 날이었으며, 동시에 첫 게임으로 D의 식탁의 후속작인 D2를 발표했다. 그 해 5월, 기자 회견을 통해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드림캐스트 모습을 드러냈다. 11,000명이 참가했고, 120곳의 서드파티가 개발 의사를 표현한 이 기자 회견은 드림캐스트의 미래를 아주 밝게 비추었다. 1998년 5월 21일, 세가는 아사히 신문에 사무라이들이 쓰러진 사진과 함께 '세가는 쓰러진 채인가?' 티저 광고를 실었고, 다음날인 22일에 사무라이들이 칼을 들고 서 있고 '11월 x일 역습, 드림캐스트' 라는 전면 광고를 싣기도 했다.
4.2. 발매 직후, 전기
1998년 11월 27일, 드림캐스트를 일본에서 최초로 출시했다. 드림캐스트는 발매 당시 준비해 놓은 15만대의 물량을 '''발매 당일 매진시켰다''' 그러나 NEC의 PowerVR2 CLX 칩셋 수율 문제로 물량이 부족했으며, 동시 발매 게임들도 버추어 파이터 3tb를 빼고 형편 없었다. 그래도 이후 발매한 소닉 어드벤처로 드림캐스트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유카와 전무를 이용한 자학적은 캠페인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이번에는 세가가 정말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주었다. 투자 분석가들 사이에서도 '''드림캐스트는 소니에게 있어서 재앙이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그러나 발매 직후 게임 가뭄으로 인해 연말 대목을 놓치고 만다.
1999년 3월 2일, 소니는 도쿄에서 플레이스테이션 미팅 1999를 통해 차세대 플레이스테이션을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실기를 공개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콘셉트만을 슬쩍 보여주는 이 행사에 비디오 게임 관계자가 1,500명 정도 모일 정도로 관심이 대단했다. 이때 드림캐스트는 한창 보급에 열을 올리는 시기였고 본격적으로 북미 출시도 준비하는 등 무척 잘 나가고 있었다.
드림캐스트의 맥을 죽일 필요가 있었던 소니는 이 때 DVD 비디오 재생 기능과 플레이스테이션과의 하위 호환 기능을 처음으로 공개하고[18] 이 밖에도 이모션 엔진, 200억 엔의 개발비, 테크 데모 영상[19] , 천만 단위의 폴리곤 등의 과장된 스펙을 소개했다. 초조해진 세가는 결국 일본에선 발매된지 6개월만인 1999년 6월, 드림캐스트의 정가를 1만엔 인하해 19,800엔에 판매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생산 단가를 절감하지 않은 채로 그냥 가격을 인하한 것이기 때문에 대당 '''1만엔''' 가량 손해를 봤다. 메가 드라이브 시절처럼 어떻게 해서든 기계부터 깔고 보자는 계획이었을 것이지만, 새턴 때도 이러다가 크게 손해를 봤었다.
그리고 1999년 9월 9일 북미 시장에 드림캐스트를 $199의 가격으로 출시했다.[20] 북미 출시 또한 당시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로 많은 판매량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동시 발매 게임 중 소울 칼리버와 NBA2K, NFL2K, 그리고 북미 게이머들이 그렇게 기다렸고 세가 새턴에 출시될 예정이었던 소닉 게임인 소닉 엑스트림은 끝내 개발 취소되었다가 드디어 소닉 어드벤처가 출시되자 반응이 매우 좋아 백만장 이상 팔려 나갔다. 그렇게 1999년 12월 연말까지 북미에 150만대를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NBA2K와 소울칼리버의 화려한 그래픽에 북미게이머들은 감탄하며 찬사를 보냈다. 유럽에서도 반응이 좋아 1999년 12월 연말까지 50만대를 판매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드림캐스트는 세가를 부활시키고 그토록 염원하던 게임기 시장 1위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니 역시 이에 대항해 플레이스테이션 2라는 게임기 이름과 일본 출시일을 공개하고, 1999년 9월 가을 도쿄 게임쇼에 플레이 가능한 플레이스테이션 2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2000[21] 과 철권 태그 토너먼트를 전시했다.
드림캐스트는 1999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 양질의 게임을 많이 발매했다. 세가 랠리 2,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2 같은 아케이드 최신작을 집에서도 그대로 즐길 수 있었고, 캡콤이나 SNK도 프레임 삭제나 로딩 문제가 없는 초월이식 수준의 작품을 다수 제공했다. 베르세르크 천년제국의 매 편같은 준수한 오리지널 게임도 나왔고 또한 연말에 버추어 온 오라토리오 탱그램, 버추어 스트라이커 등을 시작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3 더블 임팩트, D2, 쉔무를 투입하여 어떻게든 연말 대목에서 이겨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1999년은 플레이스테이션에서도 파이널 판타지 8과 그란 투리스모 2, 사일런트 힐, 바이오하자드 3, 에이스 컴뱃 3, 패러사이트 이브 2, 디노 크라이시스, 크로노 크로스 등이나, 닌텐도 64에서도 닌텐도 올스타!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나 동키콩 64, 스타워즈 에피소드 I: 레이서, 포켓몬 스타디움 등을 월드와이드 백만 장 이상씩 팔고 있던 해였고, 그 틈에서 드림캐스트가 돋보일 여지는 없었다.
4.3. 후기
1999년 12월에 등장한 D2와 쉔무는 기존 드림캐스트 사용자들만 샀고, 게임기 판매량 견인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특히 70억 엔의 개발비를 들였던 쉔무의 실패는 드림캐스트의 몰락에 일조를 하게 된다.
결국 세가의 본래 계획대로라면 최소한 1999년 여름 무렵에는 게임들의 높은 판매량으로 시장 1위에 진입했어야 했지만 그저 그런 가속만 붙은 채로 플레이스테이션 2와의 정면 승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플레이스테이션 2의 가격인 $299와 비교하면 확실히 저렴한 $199라는 가격, 게임기로서의 성능, 게임 개발의 간편함 등 드림캐스트는 플레이스테이션 2에 비해 거의 압도적이다 싶을 정도였기 때문에 2000년 초까지만 해도 '플레이스테이션 2를 드림캐스트가 이길 수도 있다.'는 얘기가 코어 게이머들과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여전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2000년 3월 4일, SCE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발매했다. 그로 부터 6일 후인 2000년 3월 10일 GDC에서 전 세계 PC 운영 체제 시장을 쥐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 게임기 출시를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가는 플레이스테이션 2가 발매된 2000년 3월부터 드림캐스트 포기 발언을 한 2001년 3월까지, 약 1년 동안 드림캐스트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달려왔다. 2000년 한 해 동안 161개의 타이틀을 발매하였으며, 상반기에는 크레이지 택시, 여름에는 씨맨이 발매되었는데 이 씨맨이 무려 50만 장이 팔렸을 정도로 사랑받았다. 캡콤은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와 네트워크 플레이를 지원하는 대전 액션 게임을 계속 발매했고, 연말에는 본격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인 판타지 스타 온라인을 발매했다.
2000년 10월 26일, 플레이스테이션 2가 북미에서 발매됐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는 이미 일본에서 2000년 한해 동안 게임기 공급 및 게임 부족을 겪게 되었으며 이에 세가는 2000년 12월 연말 시즌이 세가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0년 12월 연말 시즌이 되자 북미 게임 유저들은 드림캐스트를 구입하는 것보다는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또 플레이스테이션 2 게임 타이틀 부족 문제 역시 하위 호환 기능을 이용해 기존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돌리거나 DVD 비디오를 보는 선택을 했다.[22]
세가는 미국에서 '''온라인 서비스 세가넷[23] 가입시 드림캐스트 무료 증정''' 또는 이미 드림캐스트가 있으면 2년 약정 조건으로 200달러의 리베이트 제공 등(!!!), 필사적으로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손해만 점점 커지고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 2는 이미 발매일에 100만 대를 출하하였고, 플레이스테이션의 기세도 2000년에는 베이그란트 스토리, 파이널 판타지 9, 드래곤 퀘스트 7, 디노 크라이시스 2, 테일즈 오브 이터니아와 같은 대형 서드파티들의 대작들이 차례대로 발매되는 등 그칠 줄을 몰랐다. 또한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과 포켓몬 스타디움 2, 마리오 테니스로 여전히 수백만 장을 판매한 닌텐도 64 역시 버거운 존재였다.
세가는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드림캐스트 판매를 견인할만한 결정적인 게임이 없었다. 2000년은 공급 부족 문제로 플레이스테이션 2의 해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세가의 해 역시 아니었다. 심지어는 2000년 연말 시즌에 가장 많이 팔린 게임기는 드림캐스트도 아닌 플레이스테이션을 리모델링한 PS one이었다. 북미 지방에도 NBA 2K1과 NFL 2K1을 투입하였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4.4. 패배 선언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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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0년 연말 시장의 패배로 세가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2001년 1월 23일 드림캐스트 생산 중지와 플레이스테이션 2로의 게임 발매라는 루머가 유출되자 세가의 주식은 급상승했고, 25일에 보도를 일부 인정했으며, 31일에 기자 회견을 열어 가정용 게임기 사업 포기와 각 게임기로의 게임 공급을 선언한다. 심지어 2001년 1월 25일은 PS2에서 귀무자가 일본에서 처음 발매된 날이고, 귀무자는 최초의 PS2 밀리언셀러 타이틀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더욱 드림캐스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창고에 쌓인, 도 소매점에 풀린 드림캐스트는 순식간에 악성 재고가 됐는데 약 200만 대로 추산됐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1년 1월 31일부터 미국에서는 $99, 일본에서는 ¥9,900로 인하됐고, 2001년 11월 21일에는 다시 $49로 인하해 재고를 전부 소진시켰다. 이때 재고를 털며 같이 발매한 사쿠라대전 3가 제법 쏠쏠하게(34만 장) 팔렸다. 재고뿐만 아니라 부품도 잔뜩 남아 있었는데 사미의 파칭코 머신용으로 납품되어 최종적으로 150만개 정도 들어갔다고 한다.
이 여파로 세가의 재무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2001년 2월 1일 오오카와 이사오 CSK 회장은 사재 850억 엔을 세가에 출연할 계획을 밝혔다. 인터뷰 다음 달인 3월 16일 심부전증으로 별세하면서 고인의 유지대로 전액 증여했다. 모기업 CSK에서도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 증자로 1천억 엔 이상 세가에 자본을 수혈해야 했다. 또한 이 때문에 2001년에만 세가 종업원의 약 1/3 정도가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렇게 드림캐스트는 2001년을 1월 31일을 기해 스스로 사망진단서를 제출했지만 만들던 게임은 계속 나와서 2001년에 118개의 타이틀이 발매된다. 2002년까지도 세가는 사쿠라 대전4를 비롯해 여러 게임들을 발매했다. 생산 중단 선언을 하면서 18추 등급이 해금되었는데, 그 덕분에 이후 드림캐스트는 NEC 인터채널과 KID의 놀이터가 되어서 2004년까지 미소녀 게임[24] 들이 꾸준히 발매된다. 2005년 부터는 매년 게임이 두 개씩만 나와 사실상 단종 상태가 되었고, 2007년 카라스가 마지막 게임이 됐다. 보급 대수 약 913만 대, 일본 내 발매 게임 타이틀은 499개였다.
5. 후대의 평가
당대의 시점에서 보자면 세가의 '아케이드의 성공을 가정용으로' 전략을 버리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세가의 하드웨어 중에서는 성공이 점쳐질 정도로 가장 상식적으로 만들어졌다. 겉모습만 봐도 새턴의 조잡함은 날려버린 간결하고도 우아한 기판과 내부 설계, 1998년 당시에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도한 사양과 네트워크 연결성, 미니 게임도 가능한 비주얼 메모리와 게임 패드, 당대의 PC 수준을 오가는 높은 성능, VGA 연결까지 되는 기능 등 그야말로 드림캐스트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멋진 제품이었다. 쉬운 개발을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윈도우 CE까지 이식하는 등 여러모로 세가답지 않은 행보를 보여줬다.
멀티미디어가 유행하던 시절 오직 게임기임을 강조하는 플레이스테이션에 패배한 이후 제대로된 게임전용기를 만들었지만 DVD가 재생되는 플레이스테이션2에 또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엄밀히 따지면 플스2와는 제대로 된 경쟁조차 해보지 못했고 2000년도 넘어서까지 힘을 발휘한 플스1도 넘지 못한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브랜드 그 자체에(덤으로 포켓몬) 밀렸다고 볼 수 있다.
윈도 CE의 탑재나 엑스박스 발매 당시 무성했던 드림캐스트 호환 소문 등으로 인해 팬이나 언론들 사이에선 가끔 엑스박스와 드림캐스트를 선조나 정신적 후계기 쯤으로 연관짓기도 한다. Xbox/역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딱히 관계는 없다. 물론 후루카와 스스무 전 마이크로소프트 저팬 대표이사에 따르면 오오카와 이사오 회장은 빌 게이츠와 몇 번이고 만나 엑스박스를 드림캐스트와 호환되게 해달라며, 세가의 게임들을 엑스박스에 제공하여 드림캐스트 유저들을 엑스박스에 이어주고 싶다고 간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오카와는 네트워크 접속을 필수라 주장한 반면 빌 게이츠는 '게임기에 인터넷 접속은 필요없다'고 말했고 '게임기에 인터넷 접속을 얘기하면 시간 낭비이니 돌아가라'며 거절하여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북미 출시 때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판매량을 이끌었던 기세는 좋았지만 세가의 연이은 실수들이 드림캐스트 판매에 장애물이 되었다. 이 실수들의 예가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드림캐스트 매진 사태, 이에 대한 사과라면서 가격을 인하해 이전 구매자를 엿 먹였던 것, 초기 게임기 구조 상의 문제로 인해서 게임을 구동시키면 '''GD를 갈아 버린다는 이야기'''[25] 등이 초기부터 연이어 터졌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자잘한 점이라 별 문제가 되지 않았고, 결국은 게임기 판매를 견인하는 결정적인 게임이 없었다는 것이 패인이었다. 세가의 간판 게임들도 소닉 어드벤처를 제외하면 고작 30여만 장 정도만 판매하는데 그쳤다. 또한 큰 제작비를 들인 쉔무의 실패도 큰 요인이었다.
서드 파티들도 드림캐스트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도 큰 문제였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EA가, 일본 대형 회사들 중에서는 스퀘어와 에닉스가 전혀 게임을 내지 않았다. 소울 칼리버를 100만 장 판매한 남코 역시 철권 태그 토너먼트는 드림캐스트로 출시하지 않았다. 그외에도 플레이스테이션 2로 진삼국무쌍을 내놔 크게 성공한 코에이나 메탈기어 솔리드 2로 크게 성공한 코나미 역시 드림캐스트에는 적극적으로 게임을 내놓지 않았다. 더욱이 나오미 아케이드 기판 게임으로 제작됐기에 당연히 드림캐스트로 이식될 것이라 여겨졌던 테크모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 2가 플레이스테이션 2로 먼저 발표가 되는 바람에 당시 커뮤니티 에서는 한/일 할 것 없이 난리가 났었다. 이때 테크모는 플레이스테이션 2판의 판매량을 줄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드림캐스트 버전의 발표를 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밝힌걸 보면 기업들은 이때부터 이미 드림캐스트의 미래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6] 캡콤이 다른 게임 회사들에 비해 비교적 적극적인 편이었으나 거기마저도 플레이스테이션 2에 더 적극적으로 게임을 내놓았다. 귀무자와 데빌 메이 크라이는 플레이스테이션 2 독점 게임이었다.
소니의 마케팅에 말려 졌다고 하기엔 역시 세가의 마케팅에도 문제가 있었다. 유카와 전무를 이용한 자학성 광고도 사실상 실패였고, 무엇보다 당시 홍보 총괄이었던 아키모토 야스시의 희대의 망작 체킷코를 고려하면 중박 같은 소리는 절대로 못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고하자. 이 소문에 대해 언급하면 사실이 아니라며 친절하게 부인 멘션을 보내는 SNS 알바들도 있다.
드림캐스트 게임기의 디자인은 지금 봐도 세련된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코타쿠에서는 외형이 멋졌던 역사속 게임기 10선에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구성도 다른 게임기에 비해서 뛰어났다.
WIRED지에서 실험을 했는데,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고 음료를 뿌려도 멀쩡했다. 그리고 소닉 어드벤처 시리즈, 소울 칼리버, 쉔무 등의 게임을 배출해 서양에서는 아직도 매니아층이 많으며, 단종한지 10여년도 넘어가지만 아직도 "세계 어딘가에는 드림캐스트 2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드림캐스트 HD 실제로도 관련된 떡밥이 나올 때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들썩이는 편인데, 정작 세가는 지금의 회사 규모에 비해 게임기 사업이 너무 거대해져 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진출하지도 할 수도 없게 됐다.
드림캐스트 게임 컨트롤러 내구성에 대한 불만은 주로 트리거 버튼에 있었다. 패드의 좌우 트리거 버튼에 걸리는 하중을 금형 설계 시에 충분히 예측하지 못해 내부 걸쇠 부분이 쉽게 부러지는데 해결책은 분해해서 부러진 부분을 순간 접착제로 붙이는 것. 응력이 집중되는 부분이 일정해서 한번 부러진 트리거를, 수리한 이후로는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구성이라기 보다는 설계 상의 이슈인데, 전원이 연결된 상태에서 AV 케이블을 분리하면 그래픽 단자가 망가지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며 보면 알겠지만 패드의 케이블이 패드 위쪽이 아닌 아랫쪽으로 나와있어, 패드의 내부 단선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고 그립감 또한 좋지 않았다.
패드는 새턴 시절 나이츠 인투 드림즈 게임 전용으로 발매되었던 세가 새턴 멀티 컨트롤러를 발전시킨 형태인데 비주얼 메모리라는 것 자체는 상당히 멋진 기믹이었지만 듀얼쇼크라는 정답을 보고도 이상하게 닌텐도 64 컨트롤러처럼 확장 유닛을 장착 슬롯 2개 다는 것 정도에 그친 매우 어설픈 패드였다. 세가답지 않게 버튼 수를 줄여버렸고 아날로그 스틱도 하나 뿐이어서 본격 3D 게임기임에도 제대로된 3D 게임을 즐기기 힘들었다.[27] 비주얼 메모리 유닛과 진동 유닛을 동시에 장착하면 패드 상단 부분에 하중이 쏠리면서 그립감이 상당히 훼손되었다. 게다가 드림캐스트 패드 자체가 디자인을 우선시하는 바람에 양쪽 손목이 가운데로 몰리는 어색한 파지 자세가 나오는지라... 그리고 비주얼 메모리 유닛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메모리의 커버를 분리해 따로 보관해야 하는데 분실의 위험성 때문에 평도 그닥 좋지 못했다. 대략 반년 후에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의 포켓스테이션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서 커버와 본체가 일체형으로 발매되었다.
네트워크 시대를 내다보고 인터넷 접속 기능을 넣었지만 전용 디스크인 드림 패스포트가 있어야 하고 인터넷 가입과 접속 과정도 대단히 복잡했다. 무엇보다 이것 때문에 돈을 너무 많이 써버렸다. 모뎀 자체도 비쌌고 전용 브라우저를 만드는 데도 돈을 썼으며 인터넷 접속과 통신 대전 서비스를 위한 전용 서비스 프로바이더를 세우느라 당시 농담처럼 전화국 하나를 세우는 정도의 돈이 들었다고 했는데 실제로 400억엔 정도를 썼다.
이후 모뎀 대신 LAN 어댑터가 나오는데 가격이 1만엔에 상당했으며 기존까지의 네크워크 대응 소프트웨어가 전부 전화접속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대응되는 소프트가 하나도 없었다.
6. 기타
- 컴퓨터용 모니터에 연결할 수 있는 VGA-BOX라는 것을 발매했는데, 그간 가족들과 거실에서 TV 쟁탈전을 벌여야 했던 가정용 게임기 유저들에게는 자기 방의 PC 모니터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반가운 물건이었다. 또한 VGA 박스를 사용하면 정말 뛰어난 화질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극히 일부 손에 꼽을 정도의 게임을 제외하곤 대부분 VGA 박스를 지원했다. 드림캐스트 유저 대부분은 VGA 박스를 구입했다. 사실 VGA 박스가 없어도 본래 VGA에 준하는 신호를 출력하기 때문에 저항 몇 개만 붙이면 간단하게 VGA 모딩이 가능하다.
- 후면의 직렬 포트를 통해 전용 케이블로 SNK의 네오지오 포켓과 연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단순히 포인트 데이터를 전송하여 게임 안의 콘텐츠를 사용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볼품없는 물건이다. 또한 기기끼리 연결하는 통신대전 케이블도 있다..
- AVGN도 세가가 만든 게임기 중 최초로 제대로 된 물건이라 평했다.
- 이 기기의 심볼 때문에 사이교우지 유유코는 일본에서는 드림캐스코, 대한민국에서는 바보드캐유령이라고 불린다. 심볼의 원작자도 이를 노렸다고 했다.
- 드림캐스트를 기동할 때 나오는 소리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만들었다고 한다. 개런티로 1천만엔 줬다고...
- 드림캐스트의 패드는 방향키가 십자키인데 닌텐도의 십자키 특허권이 1994년에 만료됐기 때문이다.
- 어클레임 재팬/타이토에서 발매한 드림캐스트 게임 '스피릿 오브 스피드 1937'은 공식 판매량 87장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공식적으로 드림캐스트의 마지막 게임은 2007년에 발매된 카라스이다. NG: DEV.TEAM이라는 독일의 아마추어 2D 게임 제작그룹에서 지금도 꾸준히 네오지오로 제작한 자신들의 게임을 드림캐스트로 포팅하여 판매하고는 있는데, 정식 퍼블리싱은 아니다.
- EA에서는 드림캐스트 게임을 단 한 개도 제작하거나 발매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EA는 (어찌 보면) 북미 시장에서 드림캐스트를 실패하게 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이유는 드림캐스트로 발매하는 스포츠 게임들의 EA의 독점 발매권을 요청했기 때문. 그러나 세가는 북미 시장의 드림캐스트 성공을 위해 스포츠 게임 전문 회사였던 비주얼 콘셉츠를 인수하는데 이미 천만 달러 이상 투자한 이후였다. 당연히 세가는 거부했다.[28] Wii 및 Wii U, PS Vita에서도 이유는 다르지만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EA는 이에 대해 해당 플랫폼 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개발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 당시 세가에서 개발한 음반 CD로 나온 규격인 MIL-CD[29] 를 지원했는데, 이 CD로 인해 드림캐스트의 불법 복제 방지 장치가 제대로 뚫렸다. 당시 드림캐스트 게임 디스크였던 GD-ROM의 용량은 1.2GB 였지만 이 용량을 다 사용한 게임이 드물었고 설령 있어도 동영상등 게임 플레이에 지장없는 더미 파일을 삭제하거나 2장에 나누는 식으로 게임을 불법 복제 했다. [30] 이후 2002년에 MIL-CD 규격을 지원하지 않는 드림캐스트가 나왔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의 세상이 된지 오래였다.
- 드림캐스트 게임 디스크도 CD 플레이어에 재생하면 "이건 드림캐스트 디스크이니 CD 플레이어에서는 재생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일부 게임은 등장 캐릭터의 목소리로 각종 애드립을 섞기도 한 모양. #
- 안드로이드로는 2013년 12월에 reicast라는 에뮬레이터가 나왔다. 듀얼코어 이상,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버전 이상의 기기에서는 꽤나 잘 돌아간다고. 다만 아직 텍스쳐가 깨지는 문제라든가 전화 오거나 화면 끄는 상황에서 다시 게임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등의 문제는 있다. 안드로이드 8.0 오레오에서도 정상적으로 동작하며 갤럭시 S8에서 전뇌전기 버추얼 온 오라토리오 탱그램을 실행하면 60프레임을 비교적 원활하게 찍어준다.
- 드림캐스트의 홍보와 관련된 상징적 인물하면 단연 유카와 전무이다. 하지만, 저런 중년 아저씨 말고 아이돌 그룹을 동원한 홍보도 있었다. 바로 드림캐스트 홍보 아이돌 체킷코. 한국내 게임 팬덤에서는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싶을 정도로 듣보이지만, 이 체킷코를 기획한 인물은 당시 세가의 사외 이사로 있었던 아키모토 야스시, 참고로 유카와 전무 CF를 기획한 것도 이 사람이다. 전설적 아이돌 오냥코클럽의 프로듀서이다. 체킷코는 전체적으로 오냥코클럽의 성공 전략을 따라간 모델이었으나 망했다. 드림캐스트가 플레이스테이션에 밀려서 사라진 것처럼, 모닝구 무스메라는 커다란 조류에 밀려버린 것. 하지만 이 체킷코 프로젝트에 아키모토 야스시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세가에 100억엔이나 투자 받았고,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자신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함구해왔다. 그러나 이 체킷코 전용 방송 말미에는 언제나 아키모토 야스시 사무소 협력이라는 자막이 나왔다는 것이 함정. 결과적으로 아키모토 야스시는 먹튀를 한 셈이었고, 이후 아키모토는 전혀 다른 콘셉트로 프로듀스한 아이돌 그룹이 제작되니, 이 그룹이 바로 AKB48이다.
- 2015년 6월, Ghost Blade라는 슈팅 인디 게임의 제작을 발표했다. 드림캐스트 독점으로!![32]
- 2017년 6월 9일 뜬금 없이 브레이커즈가 드림캐스트로 발매 되었다. 단종 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이식작이 나오고 있는 게 신기 하다(...)
- 게임라인 만화에서도 당시 게임기들의 싸움을 다룬 적이 있다. 여기에 드림캐스트도 있었다.
- 블랙핑크 '휘파람' 뮤직 비디오 초반부에 SNES와 같이 컨트롤러가 소품으로 등장한다.
- 드림캐스트의 로고는 NTSC 지역[33] 에서는 일본에서 복(福)을 상징하는 주황색 소용돌이 모양의 로고를 사용하나, PAL 지역[34] 은 파란색 소용돌이 모양의 로고를 사용한다. 관련 사진 인트로 영상 이는 독일의 기업인 티볼라 퍼블리싱[35] 이 이미 똑같은 모양의 로고를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어 분쟁을 피하기 위해 색상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 CERO 이전 일본 게임 심의는 자체 검열 시스템으로 돌아갔던지라 느슨한 편이었는데, 드림캐스트는 그 중에서도 가장 느슨한 편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드림캐스트 발매 초창기에 나온 게임들 중에는 지금은 발매하기 곤란한 꽤나 수위 높은 게임들이 있다. D2와 데스피리아가 대표적.
- 대체적으로 배경음 포맷을 ADX를 사용하는데, 이를 이용해서 GD롬 파일을 풀어서 배경음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었다. 다만 ADX 헤더가 3이여야만 한다. 헤더 4일 경우 배경음 반복 자체가 안된다.
- 보통 VGA 출력을 지원하고 모뎀을 탑재한 최초의 가정용 콘솔로 드림캐스트를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96년에 나온 애플 피핀이 먼저다. VGA 단자는 본체에 붙어있으며, 모뎀은 본래 외장형 제품을 끼워파는 형식이고(몇 달 안가 일본에서는 모뎀을 제외한 일반판을 발매한다) 피핀의 게임기인지 멀티미디어 기기인지 모를 애매한 정체성과 처참한 실적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7. 발매된 게임
- Windows CE 사용 게임의 경우 ★표 처리 (구동되는 에뮬레이터가 손에 꼽으며, 구동이 가능한 에뮬레이터에서도 Windows CE 미사용 게임에 비해서 구동속도가 떨어지는 편)
7.1. 세가
- 겟 배스 - 세가 배스 피싱[36]
- 난 도라에몽[37]
- 다이너마이트 형사 2
-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2
- 버추어 스트라이커 2 버전 2000.1
- 버추어 파이터 3
- 버추어 캅 2 ★
- 뿌요뿌요 피버
- 사쿠라 대전 3
- 사쿠라 대전 4
- 삼바 데 아미고
- 세가가가[38]
- 세가 랠리 2 ★
- 소닉 어드벤처[39]
- 소닉 어드벤처 2
- 쉔무 1,2
- 스페이스 채널5
- 스페이스 채널5 파트2
- 씨맨[40]
- 아웃 트리거[41]
- 전뇌전기 버추얼 온 오라토리오 탱그램
- 좀비 리벤지
- 크레이지 택시 1, 2
- 판타지 스타 온라인
- 젯 셋 라디오
- 츄츄 로켓
- 이터널 아카디아
- 프로야구팀을 만들자!
- J리그 프로축구 클럽을 만들자!
- 렌타 히어로 No.1 - 메가 드라이브판의 리메이크작
- 2K 스포츠 시리즈
- NFL 2K 시리즈
- NBA 2K 시리즈
- 월드 시리즈 베이스볼 2K 시리즈
- NHL 2K 시리즈
7.2. 타회사 (세가 라이선스)
- 가로우 마크 오브 더 울브스 - SNK
- 건버드 2 - 캡콤[42]
- 건스파이크 - 캡콤
- 그란디아 2 - 게임아츠
- 기가 윙 - 캡콤
- 기가 윙 2
- 기동전함 나데시코 NADESICO THE MISSION
- 길티기어 X - 아크 시스템 웍스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드림 매치 1999 (KOF 98 초월이식) - SNK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99 에볼루션 (KOF 99 초월이식)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2000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2001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2002 (최후의 SNK 드림캐스트 이식작)
- 데드 오어 얼라이브 2 - 테크모
- 레인보우 식스(게임) -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 ★
- 리바이브 ~소생~ - 데이터 이스트
- 리볼트 - 어클레임
- 마리오넷 컴퍼니 - 마이크로캐빈 ★
- 마블 VS 캡콤 - 캡콤
- 마블 VS 캡콤 2
-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 - 캡콤
- 바이오하자드 2 밸류 플러스 ★
- 바이오하자드 3: 라스트 이스케이프
- 뱀파이어 크로니클 - 캡콤
- 베르세르크 천년제국의 매 편 상실화의 장
- 보더 다운 - G.rev
- 북으로 - 허드슨
- 비질란테 8 2nd Offense - 룩소플럭스
- 뿌요뿌요 DA! - 컴파일
- 화염성모 ~The Virgin on Megiddo~ - 스튜디오 라인
- 불타라, 저스티스 학원 - 캡콤
- 센티멘탈 그래피티 2 - NEC 인터채널[43]
- 소울 칼리버 - 남코
- 슈퍼로봇대전 α For Dreamcast ★
-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X 포 매칭 서비스 (SSF2X 초월이식) - 캡콤
- 스타 글라디에이터 - 캡콤
- 스타워즈 에피소드 Ⅰ 레이서
- 스트리트 파이터 3 (1st와 2nd의 합본)
- 스트리트 파이터 3 서드 스트라이크
-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 사이코류의 도장 포 매칭 서비스 - 캡콤
- 스폰 - 캡콤[44]
- 슬레이브 제로 - 인포그램즈(Inforgrames)
- 식신의 성 2 - 알파 시스템
- 월화의 검사 Final Edition (월화의 검사 2의 이식작)
- 엘도라도 게이트 - 캡콤 (7부작 RPG)
- 엘리멘탈 기믹 기어 허드슨
- 이카루가 - 트레져
- 죠죠의 기묘한 모험 미래를 위한 유산 - 캡콤
-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 - 팔콤, 소프트맥스 ★
- 초강전기 키카이오 - 캡콤
- 카라스 - 마일스톤[45]
- 트리거하트 에그제리카 - 와라시
- 트윙클스타 스프라이츠 - ADK
- 특촬모험활극 슈퍼히어로 열전 - 반프레스토
- 파워스톤 - 캡콤
- 파워스톤 2 - 캡콤
- 퍼즐보블 4 - 타이토 ★
- 폭렬무적 반가이오 - 트레져
- 풍래의 시렌 외전 여검사 아스카 등장 - 춘 소프트
- 헤비메탈 지오매트릭스 - 캡콤
- CAPCOM VS SNK - 캡콤
- CAPCOM VS SNK 2
- ILLBLEED - 크레이지 게임즈
- Incoming : The Final conflict - Rage Software
7.3. 타회사 (세가 비라이선스)
드림캐스트의 마지막 라이선스 게임인 카라스 이후에도 인디 게임 제작팀이 드림캐스트 게임을 출시하거나, 과거에 게임기 이식된 적이 없는 게임을 드림캐스트로 이식하고 있다. 당연히 세가 라이선스가 아니기 때문에 미디어는 GD-ROM이 아닌 CD-ROM이라서 MIL-CD를 지원하지 않는 드림캐스트에서는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일부 게임의 경우 스팀 등의 다른 플랫폼으로 나온 게임의 이식작이기도 하다.
- 4x4 JAM - Invictus Games[46]
- bleemcast![47]
- FX 유니트 유키 - Sarumaru[48]
- 건로드 - NG:DEV TEAM
- 고스트 블레이드 - HuCAST[49]
- 네오 XYX - NG:DEV TEAM
- 라스트 호프 - NG:DEV TEAM
- 무사시 간류키 - VISCO[50]
- 배틀 크러스트 - 피코린네 소프트[51]
- 뱅 버스터즈 - VISCO[52]
- 브레이커즈 - VISCO[53]
- 스트럼윈드 - Duranik
- 암드 세븐 - 아스트로 포트[54]
- 어나더 월드 20주년 기념판 - Éric Chahi
- 터프가이 - SUPER FIGHTER TEAM[55]
- 패스트 스트라이커 - NG:DEV TEAM
- 플래시백 - 델핀 소프트웨어
- 피어 솔라 - WaterMelon[56]
7.4. 미출시
[1] 3번째부터는 데브킷 한정 인트로이다.[2] 250 nm 공정. 단정밀도 부동 소수점 (FP32) 최대 연산 성능은 1.4GFLOPS. 128비트 CPU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Hitachi SH-4는 레지스터, CPU 내부 버스폭, 메모리 주소 버스가 전부 32비트인 32비트 CPU이다. Hitachi SH-4는 FPU에서 최대 128비트 벡터 연산(32비트 4차원 행렬)이 가능했는데, 이걸 가지고 마케팅을 하기 위해 '''128비트 그래픽 엔진 탑재 RISC CPU''' 라고 딱 거짓말은 안하는 수준으로 마케팅을 시전했는데 언론은 이걸 줄여서 128비트기라고 써버렸던 것이다. 비트 경쟁도 끝물이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다지 약빨이 먹힌 마케팅은 아니었는데, 유카와 히데카즈 전무가 불렀던 '소문의 드림캐스트'(噂のドリームキャスト)에도 저 대목을 언급한 가사가 있다. 여담으로 세가는 세가 새턴 때도 32비트 CPU인 SH-2가 듀얼 CPU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64비트 급'''이라는 마케팅을 시전한 전력이 있다.[3] NEC에서 250 nm 공정으로 생산했으며, 픽셀 필레이트 성능은 100Mpixel/s이다.[4] 메모리 대역폭은 800MB/s[5] 메모리 대역폭은 800MB/s.[6] 메모리 대역폭은 267MB/s[7] 사운드 처리 관련 ARM7DI 기반 프로세서 내장. 최대 64채널. 샘플링 주파수 44.1 kHz. 16 bit PCM, ADPCM, YAMAHA XG MIDI 지원[8] 이후 세가는 가정용 게임기 기반 기판에서도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나는데, 게임큐브 기반 TriForce, 엑스박스 기반 Chihiro등, 가정용을 기반으로 기판을 생산하다가 리눅스 기반의 LINDBERGH, 윈도 기반의 RINGEDGE로 갈아 탄 상태다.[9] 참고로 현대는 이전까지 닌텐도의 게임기들을 정식 발매했고, 닌텐도 64까지 발매했다. 원래 '''컴보이 돌핀'''이라는 이름으로 닌텐도 게임큐브까지 수입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10] 다만 현대에서 수입하려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게임기가 아닌 사원용 인터넷 단말기였다. 또한 PC방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려 80만 대(..)나 수입한다고 밝혔기에 당시 잡지사들은 온갖 설레발들을 쳤다.[11] (주)JAKO 수입, 유통은 GRI, 용산 총판은 SLK 이외에도 플스1을 수입한 적 있는 토마토 등[12] 이것말고 아래의 삼성전기처럼 수입한 업체는 더 있었다.[13] 벌크용 NAOMI의 경우 가끔씩 기판 뒤에 NAOMI가 아닌 드림캐스트라고 적어놓기도 했다.[14] E-MU 시스템즈는 이미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가 1993년에 완전 인수한 자회사가 되어 있었다. 1998년에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가 엔소닉(Ensoniq)을 인수한 후 E-MU 시스템즈와 함께 합병해 상표로만 남았으며, 2002년에 부서까지 해산했다.[15] 하지만 쉔무 개발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드림캐스트용은 개발을 취소했다.[16] 드림캐스트 말기에 세가팬을 울린 걸작이자 센스가 빛난 세가가가에서는 인명 한자중 入을 人으로 바꿔서 히토마지리라고 나온다(...).[17] 이 사람은 사실 게임 업계가 아닌 자동차 업계에서 전설적인데 혼다의 전성기를 이끌어갔던 인물이다. 혼다에서 20년간 근속하면서 주로 모터사이클 및 F-1 엔진 개발에 참여했고 혼다 = 스포츠 등식이라는 이미지 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혼다의 타 브랜드 대비 월등하게 우월했던 스포츠 성향은 그가 혼다를 떠난 이후 거의 없어지다시피 소멸되었다. 이리마지리가 혼다를 떠난 것도 1990년대부터 스포츠 성향 대신 승용차 기반 RV시장 개척과 선점을 포커스로 바꾸고 F1에서도 철수한다는 혼다 내부의 결정에 반대해서라는 후문이 있었을 정도.[18] 이는 그 당시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능으로 인식했으나, 나중에는 드림캐스트의 몰락에 큰 일조를 하게 된다.[19] 이 날 공개된 테크 데모 중 파이널 판타지 8의 무도회 영상은 세간에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발매한지 한 달도 안된 대히트친 게임의 CG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돌릴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것은 트릭으로 덜렁 둘이서만 춤추는 장면 뿐인지라 별 거 아닌 거였지만...[20] 그 당시 드림캐스트의 광고 모토가 '9/9/99 for $199'이었다.[21] 그러나 정작 폴리포니 디지털의 개발자, 야마우치 카즈노리의 반대로 플레이스테이션 2와 동시 발매 하려던 계획은 실패했고, 그 이듬해 2001년 4월에 그란 투리스모 3: A-spec으로 발매된다.[22] 플레이스테이션 2 발매 초기인 2000년에는 본체와 함께 가장 많이 팔린 타이틀은 게임이 아니라 영화 매트릭스 DVD 비디오였을 정도.[23] 보통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나 XBOX LIVE, 닌텐도 네트워크에 가까운 형태이자, 이들의 시초.[24] 에로게 전연령(예외도 존재) 이식작들/다시 말해서 갸루게[25] 이 때문에 후기 모델에서는, GD 삽입 부분에 고무 스폰지를 넣어서 접촉 면을 띄우고, 먼지를 흡착했다. 이 고무 모양이 수염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소위 '''수염 드캐'''이다.[26] 데드 오어 얼라이브 2 드림캐스트판은 사실 이미 1월에 북미에서 발매가 되었지만 당시 인터넷 사정으로는 미국 게임계 소식을 빠르게 알기란 쉽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어서 발매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27] 프롬 소프트웨어가 제작한 프레임 그라이드라는 게임이 있었는데 카메라 조작을 하려면 몬헌잡기를 해야했다.[28] 훗날 사미가 세가를 인수하면서 비주얼 콘셉츠를 테이크 투 인터렉티브에 되팔아버린다. 이 비주얼 콘셉츠라는 회사는 현재의 2K가 된다.[29] CDP에 넣으면 그냥 음악 CD지만, MIL-CD 규격을 지원하는 기기에 넣으면 뮤직 비디오가 함께 나온다.[30] 롬 파일이 셀프 부팅을 지원해야 하며 용량을 맞추기 위해서 영상/음성 데이터를 저용량으로 인코딩하거나 제거해야 한다. 이를 디스크 저글러라는 디스크 툴로 구워주면 된다. 디스크 저글러의 호환성 문제가 생긴 지금은 imgburn용 플러그인이 있다. 오버버닝으로 구워도 되지만 멀티세션을 적절하게 설정해야 했다.[31] EPL의 아스날 FC, 라 리가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세리에 A의 UC 삼프도리아, 리그앙(당시명은 르 샹피오나)의 AS 생테티엔 등.[32] 그만큼 단종된지 10여년이 넘어가는 아직까지도 드림캐스트발 게임이 많이 나오고 있다.[33]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 일본, 미국 등이 있다.[34] 대표적인 나라가 유럽 지역과 호주 등이 있다.[35] 이쪽도 세가와 마찬가지로 게임 유통을 하는 업체이며, 현재는 모바일 게임을 유통하고 있다.[36] MODEL3의 이식작. 후속작도 나왔으며 드림캐스트 컬렉션에도 수록되었다. 문제는 PC판의 경우 전체화면을 지원하지 않는다.[37] 세가 토이 제작. 그래픽은 PS용으로 나온 다른 도라에몽 게임보다 훌륭함.[38] 처음에는 세가 직영 온라인 쇼핑몰인 세가 다이렉트롤 통한 한정판매였지만 세가 팬들의 성원끝에 일반판으로도 출시.[39] 드림캐스트 첫 작품.[40] AVGN이 처음으로 리뷰한 드림캐스트 게임인 만큼 괴작 반열에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쌍방향 대화 등의 참신한 시도 덕분에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명작 반열에 들기도 하는 특이한 게임. 드림캐스트 게임 가운데 최고 판매량을 찍었으며, 플레이스테이션 2로 이식하기도 하였다. 본작의 후속작을 기대하는 사람도 2015년 현재까지 많고, AVGN도 리뷰에서 게임 자체는 상당히 참신한 게임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41] 세가넷에 연결해야만 즐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전용 대전 게임. 단 세작품밖에 존재하지 않는 일본산 FPS이며, 게임 플레이 자체는 전뇌전기 버추얼 온의 인간 스킨판같은 느낌이다.[42] 원작은 사이쿄 제작이지만 드림캐스트판은 캡콤에서 이식했다. 숨겨진 캐릭터로 모리건 앤슬랜드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 가능했던 것.[43] 드림캐스트 그래픽 칩 PowerVR CLX2를 생산해 준 NEC의 자회사로 드림캐스트 말기 숱한 에로게를 전 연령 이식한 회사이기도 하다. 정작 센티멘탈 그래피티 시리즈는 망했지만...[44] 건담 vs 시리즈의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난투슈팅형 게임. 이 작품의 컨셉은 헤비메탈 지오매트릭스로 이어졌다.[45] 드림캐스트 최후의 발매작.[46] 본래 모바일 및 PSP로 발매된 오프로드 레이싱 게임.[47] 플레이스테이션 에뮬레이터 bleem!의 드림캐스트판. 각 게임에 대응하는 블림캐스트 부트 CD를 따로 발매하는 정책이었으나 철권 3, 그란 투리스모 2, 메탈기어 솔리드 이렇게 3종류만 발매되고 제작팀이 해체되었다.[48] 본래 2018년에 PC 엔진 CD로 출시한 인디 게임으로서, 1년 뒤 2019년에 드림캐스트로 이식되었다.[49] 이후 고스트 블레이드 HD라는 이름으로 스팀, 플레이스테이션4, 닌텐도 스위치로 이식되었다.[50] 2017년 11월 27일에 발매되었다. 정식 라이선스 발매지만, 에뮬레이터 구동.[51] 스팀에 등록된 게임의 이식작.[52] 원래 네오지오로 만들었다가 발매 취소된 게임으로, 2010년에 NCI라는 업체에서 비스코 라이선스로 네오지오/네오지오CD로 발매를 했으며 드림캐스트판은 2018년 11월 8일 발매. 정식 라이선스 발매지만, 에뮬레이터 구동.[53] 2017년 6월 9일에 발매되었다. 정식 라이선스 발매지만, 에뮬레이터 구동.[54] 스팀에 등록된 게임의 이식작.[55] MS-DOS용으로 판다소프트에서 만든 그 대전격투게임 맞다. 2021년중 드림캐스트판 발매예정.[56] 21세기에 메가 드라이브용으로 개발된 RPG이며, 이후 드림캐스트로도 이식되었고, Wii U/Xbox One/플레이스테이션4/스팀으로 HD버전이 출시되었다.[57] 이식할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