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나미

 


'''코나미 홀딩스 주식회사
コナミホールディングス株式会社 | Konami Holdings Corporation'''
[image]
'''설립일'''
1969년 3월 21일
'''업종'''
코나미 그룹 전체의 경영, 자회사들의 업무수행 관리
'''상장여부'''
상장 (도쿄증권거래소, OTC Pink,
런던증권거래소)
'''시가총액'''
'''7조2109억원''' (2020. 09. 12)[1]
'''기업규모'''
'''직원 수''': 4,881명 (2019년 3월 기준)
'''매상고''': 2,625억 4,900만 (2019년 3월 기준)
'''영업 이익''': 505억 2,200만 엔 (2019년 3월 기준)
'''총자산''': 3,780억 3,700만 엔 (2019년 3월 기준)
'''자본금''': 473억 9,800만 엔 (2019년 3월 기준)
'''본사'''
도쿄도 주오구 긴자1초메 11-1

'''Konami Digital Entertainment'''
'''정식 명칭'''
株式会社コナミデジタルエンタテインメント
'''영문 명칭'''
Konami Digital Entertainment Co., Ltd.
'''한글 명칭'''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설립 연도'''
2006년
'''업종'''
PC/콘솔/모바일 게임 소프트웨어, 카드게임 개발 및 공급

'''Konami Amusement'''
'''정식 명칭'''
株式会社コナミアミューズメント
'''영문 명칭'''
Konami Amusement Co., Ltd.
'''한글 명칭'''
코나미 어뮤즈먼트
'''설립 연도'''
1956년 7월 28일[2]
'''업종'''
아케이드 게임[3], 파칭코, 파치슬롯 개발 및 공급

1. 소개
1.1. 로고
2. 코나미의 오너 코즈키 가문
3. 게임성에 관하여
4. 사업 확장
5. 게임을 싫어하는 게임 회사
7. 관련 작품
8. 과거 존재했던 자회사
9. 제작진
9.1. 전 코나미 소속 제작진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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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일본게임 제작사[4]. 1969년에 창업하여 1972년 법인화하였으며, 2019년으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쥬크박스의 렌탈 및 수리 사업으로 시작하였다. 현재의 사업 분야는 비디오 게임 개발 및 유통, (일본 외부에서의) 카지노 운영, 파칭코 제작 및 유통, 헬스 클럽 운영. 한편 대한민국 네티즌들에게는 비디오 게임 개발 업체로 친숙하다. 본사는 설립 당시에는 오사카에 있었으나 1986년 고베로 옮겼다가, 1993년부터 실질적인 본사를 도쿄도 미나토구로 이전했고 1999년에 등기상으로도 완전히 도쿄로 이전하였다. 도쿄 내에서도 몇번 본사를 이전한 바 있으며 현재는 도쿄 긴자 거리에 있다.
유저 입장에서 친숙하게 보이는 이름은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Konami Digital Entertainment''')로 코나미 계열사 중 게임 개발과 판매를 담당하는 회사이다[5][6]. 과거에는 게임 개발을 담당하는 수많은 자회사들이 존재했으며 그 회사들이 주식회사 코나미로 묶여있던 형태였지만 2006년 즈음 해서 게임 관련 계열사들을 전부 합쳐서 단일한 자회사(Konami Digital Entertainment)를 따로 신설했기 때문에 이름이 저렇게 바뀌었다. 현재 자회사에 해당하던 게임 스튜디오들은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주식회사로 전부 합쳐졌으며 로고에서는 코나미를 쓰지만 실질적으로 언론 등에 노출될 때는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또는 KDE)로 호칭한다. 근데 이 KDE는 로고가 따로 있다.
1979년, 스페이스 인베이더 붐에 편승하여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모방 작품인 <스페이스 워>[7]와 <스페이스 킹>을 만들면서 게임 분야에 진출한 코나미는 (이 때는 레잔크 명의였다.) 다음 해인 1980년, 코나미 공업이라는 명칭으로 개명하여, 최초의 오리지널 게임인 슈팅 게임 디 엔드를 제작했다.
이후 그라디우스 시리즈, 고에몽 시리즈, 악마성 시리즈, 콘트라 시리즈, 트윈비 시리즈 등 80년대 명작들을 차례차례 내놓으면서 굴지의 게임 회사로 성장한 코나미는 계속해서 메탈기어 시리즈, 도키메키 메모리얼 시리즈, BEMANI 시리즈 등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실험적인 게임들은 물론, 위닝일레븐 시리즈,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 프로야구 스피리츠, 파워프로군 포켓 등 스포츠 게임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명작 게임들을 발매하였다. 또한 게임 뿐 아니라 초성신 시리즈, 유희왕[8] 등 미디어믹스 작품도 내놓고 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중 2의 Xbox 360과 PS2용 빅 레드 원을 유통하기도 했다. 현재는 자사 오락실 게임들은 모두 e-amusement라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9]
규모 면에서는 이미 여느 대기업과 비교해봐도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 회사로 피트니스 클럽[10] 등의 건강 관련 사업과[11] Biometrics water라는 고급 생수 판매,[12] '''대형 스포츠게임 스폰싱'''과 '''프로 스포츠팀 운영'''[13]까지 하고 있다. 특히 자사에서 야구게임을 제작하기 때문에 일본 내 야구 스폰싱에 대해선 일류급. 도쿄돔에 향시 광고가 달리는것은 기본이요 초창기 아시아 시리즈는 코나미의 전폭적 스폰싱덕분에 '코나미 컵 아시아 시리즈'라고 불리웠으며, 거기에 범세계적으로 진출하려고 하는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까지 광고 스폰싱을 내걸을 정도로 야구 관련에는 돈을 펑펑 쓰면서까지 스폰싱을 하고 있다.[14]
국내에서는 생소한 것들뿐이지만 그나마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건 역시 '''유희왕 카드'''. 아이들의 완구로써[15] 어른들사이에서도 인지도는 굉장히 높아 반다이와 함께 우리나라 아이들과 유희왕 팬덤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주범 중 하나이다.[16]
코나미의 본사 사옥은 도쿄도 미나토구 롯폰기 '미드타운' 내에 입주해 있었다.[17] 본사 입구 근처에 코나미 직영 자사 프랜차이즈 쇼핑몰인 코나미스타일의 오프라인 점포가 특별히 입점하였지만,불황의 여파로 인하여 2014년 12월 30일부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18] 현재는 긴자로 이전하였다.
KONMAI라는 애칭(?)이 있으며, 한국 내에서나 쓰이는 와는 달리 이건 전세계적으로 코나미를 깔때 자주 쓰인다. 국내 유희왕 TCG 광고 시엔 '''고'''나미로 쓴다. 표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고나미'''로 적어야 맞지만, 공식적인 국내 지사 명칭이 '코나미 코리아'인지라 본 문서의 제목은 '코나미'로 표기한다.[19]
과거 1990년대 직접 진출하려 했을 때에는 고나미로 적었는데, 그 증거 중 하나가 지금은 흑역사가 되어 버린 '현대세가엔터테인먼트(주)'. 당연하지만 예전부터 DDR의 엄청난 히트 덕분인지 꽤 오래 전부터 한국 시장에 기웃거린 전력이 있다. 아무튼 20세기 후반에 KONAMI가 한국에서 활동하려고 했을 때 공식적으로는 고나미로 여기저기 등록하고 다녔었기 때문에 아직도 고나미라는 표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2011년 봄 즈음에 허드슨과 합병한다는 소식이 있었고, 2011년 4월 1일 부로 허드슨은 코나미의 자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코나미에 흡수되었다.
2012년까지 게임 크리에이터 학교인 코나미 스쿨도 운영하였다. 일본의 최대규모 게임 크리에이터 학교인 닌텐도 게임 크리에이터 스쿨과 차이점은 BEMANI 시리즈의 영향덕분에 '''사운드 학과'''가 존재했다는 것으로 그래픽 5 / 프로그래밍 4 / 사운드학과 1수준으로 운영하였고 dj TAKAwac도 이 코나미 스쿨의 사운드학과 1기생이었다고 한다.

1.1. 로고


  • 초기 - 1969년~1986년 전반까지 사용
  • 2기 - 1986년 후반~2003년까지 쓰인 로고. 1998년 후반에 여기서 KONAMI가 이탤릭체에서 정자체로 바뀌었다.
  • 3기 - 2003년~2012년까지 사용된 로고[20]
  • 4기(현재) - 2012년부터 현재 사용 중인 로고[21]
  • 50주년 기념 - 4기 로고 위에 50th Anniversary 문구와 별 5개가 그려진 로고이다. 게임 화면에서는 3기 로고와 유사하게(단 테두리는 없음) 붉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나오지만 4기 로고처럼 흰 바탕에 붉은색 글씨로 사용하기도 한다.

2. 코나미의 오너 코즈키 가문


코나미의 주주현황
2020년 3월 31일 기준 코나미의 주주현황
초창기는 코즈키 카게마사, 나카무라 요시노부, 미야사코 타츠오 세명이서 같은 지분을 가지고 공동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구조였다.[22] 이후 나카무라와 미야사코가 코나미를 떠나면서 자연스레 코즈키 카게마사가 코나미를 차지하게 된다.[23]
코나미 주주현황을 보면 알겠지만 코나미라는 회사 자체가 사실상 코나미의 창업 가문중 하나인 코즈키 가문이 소유한 회사나 마찬가지, 코즈키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코나미 주식들은 '코즈키' 이라는 이름을 달고있는 회사와 재단으로 분산되어있다. 코즈키 가문 본인들은 직접적으로 코나미의 주식을 보유하지 않지만 그 대신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와 재단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코나미 주식을 보유하는 것. 코나미 정도의 기업에서 저 지분율이면 실질적으로 코즈키 가문이 지배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이 회사 최대주주의 명의도 現 오너인 코즈키 카게마사가 회장이고, 코즈키 회장의 아들이자 코나미의 차세대 오너인 코즈키 타쿠야(차남)[24]가 지주회사의 사장으로 있는 '''코즈키 재벌'''이다.
지배구조가 캡콤과 대비되는데 캡콤의 경우에는 최대주주는 츠지모토 가문 소유의 회사를 올려놓고 10대 대주주 명단에 츠지모토 가문 구성원을 올려놓는 방식을 통해 오너 가문이 자사(自社)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여 지배한다면 코나미의 경우에는 10대 대주주의 명단에는 코즈키 가문의 구성원이 없는 대신 코즈키 가문이 소유한 회사와 재단을 대주주 명단에 올려놓고 가문에서 소유한 재단과 회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코나미를 지배하고 있다. 사내이사 7명 중 4명도 코즈키 가문 사람들이다.

3. 게임성에 관하여


경쟁 제작사들에 비하면 (게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게임 이름만 대면 제작사가 자동으로 연상이 될 정도의) 메이저 타이틀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또한 악마성 시리즈, 위닝일레븐 시리즈, BEMANI 시리즈 등 장수 시리즈의 대부분은 시리즈가 흐르면서 다른 제작사들에 비해 유난히 우려먹기라는 비아냥을 사는 편. 실제로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매체가 CD로 변하자 어펜드 디스크 방식으로 게임 소프트를 판매하는 것을 채택해서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어펜드 디스크 문서에서도 언급되있듯이 메인 키디스크가 없으면 쓸모가 없어지니 말 다했다. 다만 가격면에서는 일반 소프트의 절반정도 수준으로 판매했다.
이처럼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부족한 대형 제작사인데도 불구하고 코나미가 업계에서 살아남는 이유는 '''무시무시한 기획력'''에 있다. 코나미는 세가, 타이토와 함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별의 별 장르를 다 개척하는 회사였으며 세가와 타이토는 과도한 도전정신으로 게임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지만 코나미는 기존의 장르에 다른 장르를 더해서 안정적인 게임성을 가진 게임들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초창기 대전액션게임이얼 쿵푸, 횡스크롤 슈팅의 바이블인 그라디우스 시리즈, 귀여운 캐릭터와 캐쥬얼한 게임성으로 미디어 믹스 사업까지 진출한 바 있는 트윈비 시리즈, 잠입액션을 유행시킨 메탈기어 시리즈 [25], 리듬게임 장르를 개척한 비트매니아[26], 그 뒤를 이어 완전히 새로운 2세대 리듬게임의 장을 연 유비트 시리즈리플렉 비트 시리즈, 수호지를 모티브 삼아 한 제국의 폭정에 대항하는 108명의 영웅들의 일대기를 그려 명작 대접을 받은 환상수호전 1·2, 미연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도키메키 메모리얼, 그리고 러브플러스까지 코나미의 히트작은 대부분 그 독창성으로 게이머들을 어필하였다. 그러나 후속작들의 게임성이 전작과 별다른 변화가 없어서 우려먹기 논쟁이 나온다는 점에서 기획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부재가 코나미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80년대 코나미는 게임기의 하드웨어 성능을 풀로 발휘한 게임들을 자주 만들었고[27], 90년대 초에는 닌자 거북이, 심슨 가족, X-MEN, 타이니 툰, 아스테릭스, 버키 오 헤어, 에일리언 2 등 인기있는 서양 판권물들을 벨트스크롤 액션게임의 형식으로 게임화하여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고전게임들을 논할 때 마다 어떤 장르이든 간에 코나미 게임들은 절대로 빠지지 않으며 80, 90년대에 MSX, 패미컴, X68000 등의 고전 콘솔기, 퍼스컴으로 게임을 즐겨온 레트로 게이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지지를 받는 편이다.
과거에는 상상하하좌우좌우BA와 같은식의 여러가지 비밀커맨드를 게임내에 숨겨두었는데 이를 코나미 커맨드라 하며, 이는 하하상상우좌우좌같은 식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일단은 상상하하좌우좌우를 코나미 커맨드라 부른다. 또, 573을 코나미 넘버라고 부른다.(5=코 7=나 3=미) 웬만한 코나미 게임에서 573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것도 이러한 이유.[28] 심지어는 한국에 정식발매된 코나미 게임의 패키지 뒷면에 써있는 고객지원센터 전화번호에도 573이 들어가 있다(...)[29]e-amusement 사이트 주소에도 573이 들어가 있다.[30]
독특한 유머감각(?)을 발휘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든 것으로도 유명. 이 점들이 폭발한 곳이 바로 파로디우스 시리즈다. 현대에 비해 여러 가지 위험한 요소들에 관대했던 시대배경까지 맞물려서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떠올리기 힘들 듯한 센스를 발휘했다. 파워프로군 포켓, 러브플러스 같은 예시를 보면 여전한 것 같기도...
다만, 이래저래 대전액션게임과는 굉장히 인연이 없는 회사이다. 격투게임의 조상이라 불리는 이얼 쿵후를 내놓은 것이 바로 코나미지만, 이 게임은 1인용으로 대전기능이 없었다. 90년대 중반에는 아케이드 시장에서 당시 가장 환상적인 그래픽을 자랑하던 MODEL3를 버로우시킬 거라며 내 놓은 코브라 기판으로 <파이팅 우슈>란 게임이 나왔으나 묻혔고,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무희>라는 게임을 내놓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고 결국 코브라 기판과 함께 시장에서 사라졌다. 실제로 두 게임 다 게임성은 그럭저럭. 간간이 코나미에서도 갖가지 기종으로 대전액션 게임이 발매되어 일부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히트를 노리기도 했으나, 지금까지 제대로 기억되는 게임이 없다. 2D대전격투는 드라군 마이트에서 맥이 끊겼으며, 악마성 드라큘라 저지먼트 역시 전례대로 말아먹었다. 철권 2를 본따서 만든 게임인 켄세이 사크리드 피스트 역시 시대를 잘못 타고난 탓에 말아먹었는데 하필이면 켄세이 사크리드 피스트가 나온 그 해에 철권 3가 나왔다. 비교가 안될 수밖에 없었으며 켄세이 사크리드 피스트는 캐릭터성이 뛰어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철권 3에게 압살당해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4. 사업 확장


코나미는 음반 사업, 피트니스 클럽[31], 야구 구단 스폰싱 등 "게임으로 벌어들인 돈을 부업으로 다 까먹는다"는 소문이 흘러다닐 정도로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는 회사로 유명하다. 심지어 90년대 중반에는 도키메키 메모리얼 펀드와 메탈기어 솔리드 펀드 등의 펀드 사업까지 벌였을 정도.
도키메키 메모리얼 펀드의 경우 사업설명회 장소에서 '키라메키 고교'의 교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시중을 들었다거나, 10주 이상 투자한 사람은 엔딩 스탭롤에 이름을 넣어주는 등등의 화제거리를 낳았으며[32] 메탈기어 솔리드 펀드의 경우 일정 금액 이상 펀드에 투자한 사람에게는 시판되지 않은 특별 패키징의 메탈기어 솔리드 패키지를 증정하였다. 그러나 펀드 자체의 수익률은 좋지 않았던 모양으로 증언에 따르면 10을 넣으면 8을 날려먹었다. 아마도 코나미가 뭔가 요술(?)을 부린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아무튼 이 일로 벌어들인 건 '''원한이었다.''' 코나미 본사의 주식을 샀다면 아무리 주가가 떨어져도 올라갈 가능성은 있는데 이건 주식이 아니라 게임제작에 투자하라 그 자체였다. 도대체 ''''돈을 투자하면 몇 배로 벌어주는 사업이니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하는 사기꾼들과 다를게 뭐가 있는가?'''
음반 사업 역시 (80년대의 코나미 구형파구락부에서 시작된) 자사의 풍부한 게임음악 컨텐츠 및 BEMANI 시리즈 리듬게임 음악 컨텐츠에서 그치지 않고, 성우들의 가창 앨범도 역시 코나미 음반사업부에서 낸 것이 많으며 소속 성우들도 여럿 있었다.[33] 코우다 마리코 등이 이 케이스였으며, 탄게 사쿠라라는 거물 역시 그녀의 가창 앨범이 코나미쪽 음반사업부에서 꽤 많이 나왔었다. 덧붙여 지금은 청산했지만 킹 레코드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었다. 다만 어느샌가 탄게의 가창음반들은 러브플러스가 나올때까지 코나미 계열 음반사에서 나오지 않았었다.[34] 또한 2000년대 중반에는 573 레코드라는 일반 음악을 위한 레이블도 연 적이 있지만 어느새 흐지부지되어버린듯 하다(...) 이때 573 레코드쪽으로 음반을 낸 가수들중에는 일본의 랩퍼인 DABO 등이 있었다.[35]
이 가운데 유희왕의 경우 코나미 혼자서 애니, 게임, 카드, '''팬북, 팬아트'''사업을 과감히 했다. 이게 왜 그랬냐면 코나미는 2차 창작 시장까지 돈으로 보고 팔아먹어서 문제인것이다. 보통의 대규모 게임 기업들은 인기유지를 위해서 팬들이 나가떨어질 이런짓은 왠만하면 자제한다. 피규어 등 별별 관련 상품을 2차 창작의 힘을 빌리지 않고 다 만들어 팔아먹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안다. 결국엔 현재는 2차 창작에 대해서 클레임을 걸지 않는 편.
파칭코 사업에도 KPE라는 이름으로 손을 대고 있는데, 그 중 매지컬 할로윈 시리즈는 대단히 유명하다.[36] 비트매니아 IIDX의 흑역사 중 하나인 비트매니아 파치슬롯을 만든 경력도 있다(...) 2005년에는 Konami Gaming, Inc을 설립 미국오스트레일리아에서 '''카지노 사업'''을 진출했다. 도박산업의 고수익으로 게임산업이 취미고 카지노와 파칭코가 주업으로 순익이 엄청나다는 소문도 있지만 연간 재무보고서를 보면 카지노 사업부인 Gaming & Systems 와 파칭코 사업부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체의 10% 내외를 각각 차지할 뿐이고 게임 사업부인 Digital Entertainment가 매출과 순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심지어 2013년 파칭코 사업부는 적자를 보았을 정도로 도박산업도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다. 결국 KPE는 2016년도까지 적자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2017년 4월 Konami amusement에 흡수합병되었다.

5. 게임을 싫어하는 게임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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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미는 이미 92년에 코나미의 히트 게임들을 개발한 유명 개발자들이 차례로 회사를 떠난 뒤에 모여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전력이 있었는데[39], 결국 악마성 시리즈의 프로듀서 이가라시 코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의 프로듀서 마츠이 테츠야, 메탈기어 시리즈의 프로듀서 코지마 히데오, 러브 플러스의 프로듀서 우치다 아키라 등의 이름이 차례로 파내어지면서 불안감을 자아냈다.
특히 코지마 히데오 방출 이후로, 트위터에서는 전세계적으로 #fucKonami라는 안티 코나미 해시태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지마 측에서 곧 출시할 게임의 날짜가 임박해오면서 '화려한 복수극'을 바라는 코지마 팬들의 염원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 캡콤과 비슷하게 단순히 투자대비 이윤이 적은 콘솔 게임 사업을 접고 소셜 게임에 집중하려는 의도로 보였고, 이에 관련된 새 CEO 발표도 있있다. 이에 대한 배경으로 2010년에 런칭한 모바일 게임 드래곤 콜렉션이 적은 개발비에 비해서 기대 이상의 히트를 친것에 반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개발비가 투자됐음에도 러브 플러스 시리즈나 메탈기어 시리즈 등의 기존 비 모바일 타이틀이 매출이 점점 줄어들자[40] 경영진과 주주의 관심이 콘솔 게임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현상을 보인 것. 이에 팬들은 사실상 코나미가 콘솔 사업을 접고, 저투자 고효율이 나오는 모바일 소셜게임에 집중할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코나미의 콘솔게임 팬들은 씁쓸하겠지만 사실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손해만 보는 애물단지를 계속 끌고갈 이유가 없고, 업계의 대세가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과 무조건 비난할 수 없을 만한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이 쪽도 모모타로 전철 시리즈를 원작자의 의견을 무시하면서까지 모바일로 내놓으려다가 분노한 원작자가 폭탄 발언까지 하며 코나미와의 관계를 아예 쫑내버리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태. 참고로 아케이드 팬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코나미의 아케이드 게임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모두 저예산으로 책정한 상태다. 이쪽도 나오키 마에다가 퇴사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은 상태.
지금은 수정된 닛케이의 보도에 따르면, 코나미의 초기 설립자 중 한명인 '코'에 해당되는 코즈키 카게마사는 창업 당시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게임으로 코 묻은 돈을 버는 게임꾼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고 하며 (게임의) 이미지가 매우 안 좋다고 생각해서 아들에게도 직업을 숨겼었다고 하며 2001년 당시 피트니스 분야에 진출했을 때 경영회의에서 죽 늘어앉은 간부들을 앞에 두고 '우리는 드디어 게임 이외의 사업을 손에 넣었다"며 감격해 하는 등 게임 산업을 굉장히 멸시한다는 문장이 있다.[41]
다만 저 닛케이의 보도도 걸러 들을 필요가 있는것이, 저 기사가 코지마 히데오 방출 논란으로 팬들이 코나미에 대한 날이 선 시기에 나온 기사로 창업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를 뒤늦게 가지고 와서 마치 코즈키 회장이 게임을 싫어하기 때문에 코지마 히데오가 방출당한 것이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질 여지가 있게 만들어진 기사이다. 아들에게도 직업을 숨기고 다녔다는 발언도 최근 게임 중독 질병코드 등록 논란 과 관련해서 국내 게임업계 사람들도 비슷한 발언을 하고 있다. 창업 당시 코나미는 게임 업종으로 구인을 하면 사람이 오지 않아 다른 업종으로 구인을 해야 했고, 첫 상장 시에도 게임업종은 상장을 시켜주지 않아서 다른 업종의 이름을 걸고 상장을 했을 정도로 당시 일본의 게임에 대한 인식은 최악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외부에 게임꾼이라 불리는 것을 기피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코지마 방출 당시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코즈키 회장 혹은 코즈키 가문이 계속해서 게임을 싫어하거나 게임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덤으로 이 기사를 보면 왠만한 블랙기업을 가볍게 넘어서는데 회사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개발자들의 게임 개발 의욕이 남아 있는게 신기할 수준.
거기에 당신이 코나미에서 일하면, 빅 브라더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라는 내부 관계자의 고발기사가 떴는데, 인권수준...
결론적으로, 코나미의 피트니스 클럽 사업도 아주 잘되고 있고, 일본 프로스포츠 라이센스 독점에[42], 가장 중요한 파칭코 사업, 그리고 카지노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일본에 만약 카지노가 합법화 되면 수혜 1순위가 될거라는 등[43]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굳이 코나미가 게임 산업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유희왕이나 위닝일레븐, BEMANI 시리즈등의 알짜 브랜드 등이 남아 있고 모바일 게임사업이 꽤 잘되고 있으므로 아직까지는 완전한 게임시장 철수는 없을 듯 하다. 다만 돈이 안되는 아케이드, 콘솔 부분의 개발 파트는 최대한 정리하고 모바일로 기존 브랜드의 뽕을 뽑아 매출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즉, 적어도 신규 대작 게임을 기대하긴 힘들거라는게 보통의 반응.
그러나 2013년부터 대다수의 모바일 게임들도 실적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고 결국 2015년 8월 6일, 코나미는 자사에서 발매한 상당수 모바일 게임들의 서비스를 중지하고 애플 앱스토어에서 내린다는 공지를 냈다. 이는 코나미가 모바일 게임 사업에서 철수할 예정이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 iOS 9 에 대응시킬 개발인력이 없어서라는 주장 또한 존재한다. 물론 후자라고 해도 해당 부서에 예산과 인력을 할당하지 않는다는 시점에서 코나미는 더이상 게임을 개발할 리소스를 집중할 의사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행히 인앱구매자가 많은 편인 유비트 플러스리플렉 비트 플러스는 서비스를 계속 하고 있지만 최근 코나미의 행보를 보면 이 게임들 역시 앞날은 불투명하다.[44]
또한, 사일런트 힐즈 P.T. 를 중단한 시점에서, 2015년 8월 사일런트 힐이 파칭코로 돌아와서 위에서 언급된 알짜브랜드들도 매우 염려되는 상황이다.
결국 2015년 9월 18일, 해외 외신들이 '''코나미가 '위닝일레븐'(PES) 시리즈를 제외한 모든 AAA 게임 타이틀의 개발을 전면 중단한다는 루머가 도는 상황'''이라는 뉴스를 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인벤 기사)
2016년 6월, 메탈기어 솔리드 3 스네이크 이터의 리메이크랍시고 폭스 엔진으로 만든 리소스를 파칭코에 써(...) 많은 팬들이 코나미에 대해 더욱 더 큰 비난을 대차게 가하였다.
이어 2017년 10월에는 곧 20주년을 맞는 BEMANI 시리즈의 해체 위기가 닥치면서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BEMANI 시리즈 문서 참조.[45]
E3 2019에서 특별 발표를 가졌는데, 그 특별 발표라는게 PC 엔진 미니 출시 뿐이고 그 외 다른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2019년 기준으로 코나미가 줄을 잡고있는 게임은 BEMANI 시리즈, 마작 파이트 클럽, 퀴즈 매직 아카데미 등의 오락실 게임과 유희왕 카드게임, 위닝 일레븐, 프로야구 스피리츠,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등의 스포츠 계열 게임이다. 그 외 콘트라 시리즈, 봄버맨 시리즈 등 과거 IP의 리메이크 작 등을 제외하면 '''신작 게임 발매가 전무한지라''' 장기적으로 완전히 게임사업을 철수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46]
그러나 2019년 내의 코나미의 행보로는 완전히 게임사업을 철수한다는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e스포츠에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중인데, eFootball PES 2020 발매와 동시에 기존의 PES 리그를 더욱 확장시키고, BEMANI PRO LEAGUE를 발족하면서 리듬게임 역사상 최초로 프로리그를 개최하게 되었으며, e스포츠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등 상당히 친 e스포츠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앞에 언급된, 코나미와 관계가 끝난 줄 알았던 모모타로 전철 원작자의 이름을 내세운 모모타로 전철 최신작을 닌텐도 스위치로 제작하고 있거나, 모바일 게임 러브 플러스 EVERY미노 타로가 합류하는 등, 과거 불화가 있었거나 코나미를 떠난 제작자들을 다시 포용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개발 비용이 막대하지만 그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AAA 게임의 개발을 포기하고, 비교적 적은 개발비용으로 고수익을 낼수 있으면서 e스포츠 화를 통해 각종 스폰서쉽을 끌어들여 부차적인 수익까지 얻을수 있는 게임들만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하지만, 이래서는 세계 게임 시장에서 희망이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특히 트윈비 시리즈, 그라디우스 시리즈, 악마성 시리즈, 메탈기어 시리즈, 고에몽 시리즈, 도키메키 메모리얼 시리즈 등 코나미가 버린 IP 수만 해도 '오와콘 성애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부시로드, 레벨파이브 등과 어깨을 나란히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심지어 혼두라 시리즈신작마저 똥겜 취급을 받은 건 덤이다. 예전에 BGM을 어레인지하여 자사의 타 작품에 삽입하거나 자사 타 작품 캐릭터의 카메오 출연하는 건 기본이요 팬메이드 게임 '포스 기어'를 그라디우스 시리즈에 편입시킬 정도로 대단했던 팬서비스 또한 이제 옛날 애기일 뿐이라는 것 역시 현재 코나미가 비판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더불어 '저비용 고소득' 방식의 결과물[47]은 이미 3N 쪽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48] 괜히 현재에 들어 '돈나미', 'KONMAI', '셊곖쵮곲횞삾콦낪밊'등의 멸칭으로 까이는 건 아니다.
게다가 세가, 반다이남코, 스퀘어에닉스, 캡콤 등 일본의 다른 게임사들이 과거의 명작들을 리메이크[49]하거나[50] 리마스터[51]하거나 심지어 신작 형태[52]로 발매하는 동안에 정작 코나미는 이미 자신들의 개발 환경이 사실상 공중분해된 상황이기에 과거 명작의 신작 개발이나 리메이크는 커녕 제대로 된 리마스터조차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53]
이때문에 코나미의 팬들이 바라는 결과는 2개가 있다.
  • 코나미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인수되어서 코나미의 IP들이 엑스박스 시리즈의 독점작이 되는 것.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니맥스 인수로 인해 나오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MS가 일본 계열 스튜디오, 회사를 인수한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해서 꽤나 가능성있는 상황으로 보고있는데 대다수는 세가의 인수를 신빙성있게 봤기에 상대적으로 코나미는 묻혔다.

6. 비판



요약하자면 '''지나친 라이센스 중시로 인한 2차 창작물 탄압, 의도적인 자사 게임 파괴(속칭 '오와콘화'.), 과도한 특허 독점 논란'''이라는 수많은 병크를 저지르고 있어 전세계 게이머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빅 브라더에 맞먹는 악명높은 블랙기업으로 일본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오르내리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54]

7. 관련 작품


90년대에 냈던 4인 플레이 가능 게임의 대부분은 3P측 캐릭터가 우대받는 경향이 강했다. (☆)
코나미사의 게임은, 아케이드 게임과 콘솔 게임을 나뉘어서 분류하도록 하겠다.

8. 과거 존재했던 자회사


1995년부터 코나미는 각 지역에 있던 개발부들을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개발부가 위치한 지역의 이름)'라는 이름로 자회사 형태로 분사하였다. 이 시기에도 본사 개발팀이 개발한 게임은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특히 콘솔 게임은 자회사들이 개발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이렇게 설립된 자회사들도 합병을 거치면서 수가 줄어들었고, 최종적으로 남아있던 개발 자회사는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도쿄,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재팬의 세곳. 2005년 4월에 모두 코나미 본사에 합병되어 다시 본사 개발팀이 되었다.
  •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오사카(KCEO) ->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KCES): 1995년 4월 설립. 분사 전 명칭은 고베 개발부. 대표작은 고에몽 시리즈,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 실황 월드 사커 시리즈 등. 2003년 후술할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를 흡수합병하면서 해당 사명으로 변경. 2005년 4월 코나미 본사에 합병.
    • (구)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KCES): 1996년 10월 함께 설립했던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삿포로와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요코하마가 2000년에 합병하여 세워진 기업. 주로 자사 게임의 세가 새턴, 드림캐스트세가 플랫폼으로의 이식을 담당하였다. 2001년에 삿포로 쪽은 당시 코나미 그룹에 편입되었던 허드슨에 양도하였고, 2003년에 상술했듯 KCEO에 흡수 합병되었지만 사명은 이쪽을 사용.
    •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고베(KCEK): 1998년 KCEO의 제1개발부가 분사하여 설립한 회사. 2002년에 KCEO에 다시 합병.
  •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도쿄(KCET): 1995년 4월 설립. 분사 전 명칭은 도쿄 개발부. 대표작은 도키메키 메모리얼 시리즈, 환상수호전 시리즈, 위닝일레븐 시리즈, 사일런트 힐 시리즈 등. 2005년 4월 코나미 본사에 합병.
  •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롯폰기(KCER): 1995년 10월 설립. 아케이드 게임 개발부 중 일부가 분사해서 설립했던 자회사. 1998년에 코나미 본사 AM사업본부에 합병.
  •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재팬(KCEJ): 1996년 4월 KCEO의 제5개발부(코지마 히데오가 소속)가 독립하는 형태로 설립. 2005년 4월 코나미 본사에 합병. 사실상 코지마 프로덕션의 전신격 정도라고 보면 되는 자회사로, 해당 자회사의 대표작이 곧 코지마의 대표작이라고 보면 된다.
    • 코나미 컴퓨터 게임즈 아오야마(KCGA): 1996년 설립. 주로 자사 게임의 PC 이식을 전문으로 진행하였다. 1998년 KCEJ와 합병.
    •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신주쿠(KCES): 주로 유희왕 게임을 비롯한 미디어 믹스 계열 게임을 제작하던 자회사. 1999년 KCEJ에 합병.
  • 코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나고야(KCEN): 1997년 3월 설립. 2002년 해산.

몇몇 IP는 여러 자회사들이 번갈아가며 개발하는 케이스도 있다(예를 들어 KCEO/KCEK와 KCET가 번갈아가며 개발했던 악마성 시리즈).

9. 제작진



  • 코나미 구형파구락부
  • BEMANI 시리즈/아티스트
  • 마치구치 히로야스[59]
  • 메탈 유키 - 사실상 활동 정지 상태.
  • 우에다 히데오[60]
  • 하기하라 토오루[61]
  • 마츠이 나오키[62]
  • 나카자토 노부야[63]
  • 오키타 카츠노리[64]
  • 코토부키 시로
  • 타카하시 카즈키

9.1. 전 코나미 소속 제작진



10. 관련 문서


  • e-amusement
  • KONMAI
  • 버블 시스템
  • 시스템 GX
  • DJ MAIN
  • 시스템 573
  • TWINKLE
  • Firebeat
  • KONAMI BEMANI PC
  • 코나미 아케이드 챔피언쉽
  • 코나미 커맨드
  • 트레져
  • 대원미디어[66]
  • [67]

[1] 645,033백만엔[2] 전신인 타카사고전기산업주식회사(高砂電器産業株式会社)의 설립일. 코나미 그룹에 편입된 것은 2011년 1월 1일. 코나미 50주년을 코나미 홀딩스를 기준으로 2019년에 기념하는 것으로 보아 그룹 편입 이전의 역사는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3] 원래는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관할이었으나, 2016년 11월에 현 기업으로 이관되었다.[4] 다만 후술하겠지만 최근에는 종합 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5] 아케이드 게임은 예외. 과거에는 아케이드 게임도 KDE에서 제작되었으나 2016년부터 아케이드 게임 사업은 Konami amusement로 분리되었다.[6] 코지마 히데오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부사장직을 맡기도 했다.[7] 동명의 비디오게임 조상중 한분과는 전혀 다른 게임이다.[8] 유희왕은 처음부터 코나미가 담당했던 것이 아닌 토에이 애니메이션, 반다이 남코가 라이센스를 쥐고 있었다.[9] 다만 좀 넓게 보면 안쓰는 게임기들도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유희왕 OCG 듀얼 터미널. 이쪽은 자체 카드를 쓴다.[10] 원래는 mycal 그룹 계열의 체인이었는데, 경영난으로 그룹이 해체되고 그중 피트니스클럽 분야가 코나미로 넘어간것.[11] 피트니스클럽에서 자사의 게임 댄스 댄스 레볼루션을 이용하고 있다.[12] 수원지가 북알프스라고 광고하는 물건이다. 다만 시중에서 구하기는 어려우며 코나미 스포츠클럽 체인 및 롯폰기 코나미 본사 사옥 인근 자판기에서만 구할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또한 Beatmania IIDX의 악곡인 Biometrics Warrior와는 관련이 있을거라는 농담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13] 국제대회 메달리스트 전용 페이지.[14] 축빠들에게도 익숙한 회사인데, J리그 선수와 팀 정보 라이센싱을 독점 보유하고 있었으며 J리그 공식 스폰서를 오랫동안 맡아 오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FMFIFA 시리즈에는 J리그가 없었다.[15] 유희왕 카드 뒷면의 왼쪽 상단에 대놓고 KONAMI라고 적혀있다. 다만 한국은 제작/검수는 KONAMI가 담당하고 유통은 대원미디어를 통해 발매되고 있다.[16] 실제로 예전에 유희왕이 어린이들의 도박이라고 기사까지 뜬 적이 있다. [17] 단 행정구역상으로는 아카사카에 속한다. 미드타운은 롯폰기 힐즈 둘째가라면 서러운 롯폰기 최고의 주상복합시설 중 하나이며 코나미뿐만 아니라 후지필름 본사, 미츠이부동산, CISCO 일본지사 등 쟁쟁한 기업들이 입주한 지역이다.[18] 즉 코나미스타일은 원래대로 온라인 쇼핑몰만 남은 셈이 되었다.[19] 한때 일본 기업이라 일본어 표기인 コナミ를 따르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 하에 고나미라고 등록된 적도 있었다.[20] 현재의 청담어학원의 로고와 비슷하다.[21] 사실 기존에 로고 이미지가 빠지고 글씨만 기존의 코나미레드 색상으로 삽입되는 형태다. 2012년 초부터 점진적으로 교체했으며(APPEND FESTIVAL 영상에서부터 사용한 사례가 있음) 2013년 1월에는 거의 교체가 완료되었다.[22] 코나미라는 이름부터가 이들의 이름 앞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코'''즈키 카게마사, '''나'''카무라 요시노부, '''미'''야사코 타츠오.[23] 코나미의 회사 연혁에는 코즈키 카게마사만 창업주로 기제되어 있고 나카무라와 미야사코의 이름이 쏙 빠져있는 것을 보면 나카무라와 미야사코가 회사를 떠나게 된 계기가 코즈키와의 불화 때문이 아니었나 추측할 수 있다. 정상적인 은퇴였다면 다른사람도 아닌 사명에 흔적이 남아있는 공동창업주가 기제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24] 2012년, 아버지로부터 지주회사의 사장직을 양도받았다.[25] 유명세때문의 최초의 잠입 게임이라고 착각받지만, 사실 게임계에서 최초의 잠입 요소를 사용한건 캐슬 울펜슈타인이다(울펜슈타인 3D의 원작). 물론 일본 최초나 콘솔 최초라고 하면 얼추 맞지만...[26] 이쪽도 기초 아이디어는 이미 1996년부터 존재했기에 엄밀히 말하면 최초는 아니다. 그러나 최초로 뮤직 시뮬레이션 게임(현재 리듬게임이라 불리우는 그것)의 기반을 만들어놓은건 사실이다.[27] 특히 코나미는 MSX 시장에 애착을 보였는데 별도의 사운드칩인 SCC를 발매하여 MSX의 열약한 사운드 스펙에서 아름다운 음색을 들을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스페이스 맨보우와 같은 게임들에서는 MSX 2에서 16비트 게임기에서나 볼 수 있는 부드러운 스크롤을 구현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패미컴콘트라그라디우스, 슈퍼패미컴AXELAY 등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을 닌텐도 계열의 게임기로 아케이드 원작보다 뛰어난 게임성으로 이식하여 이른바 '초월이식'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28] 예를 들면 코나미의 슈팅게임들의 초기 최고점수가 57300점이라든가...[29] 코나미 코리아 철수 이후 유니아나의 코나미 게임 고객지원센터 전화번호에도 들어간다.[30] 사이트주소를 보면 중간에 573이 들어가있는게 보인다.[31] 피트니스 사업의 일환으로 생수,수소수,단백질 보충제 등 건강식품도 판매하고 있는데 이것은 피트니스 클럽에 구비된 물품 판매에 가까우며 따로 생수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32] 근데 웃긴건 조금 투자가 아니라 '''기본 투자가 10주였다.''' 즉 '''10주 미만은 퇴장'''이라는 뜻이었다.[33]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성공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한것 같다.[34] 탄게와 코나미, 혹은 코나미쪽에서 음반을 취입한 성우들과 코나미측의 갈등이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확실치 않음[35] 컴필레이션 앨범 한정. 비트매니아 IIDX 가정용 9th, 10th에 CS 전용곡으로 실린 판권곡 극히 일부가 573 레코드로 나온 가수들의 노래를 편집해서 게임용으로 수록한 것.[36] 팝픈뮤직 과 마찬가지로, '''공식 설정집이 나왔다.'''[37] 왼쪽에서부터 위닝 일레븐 시리즈리오넬 메시, 메탈기어 시리즈네이키드 스네이크,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단테이다.[38] 위에서부터 "코지마 히데오 X까", "메탈기어 시리즈 X까", "사일런트 힐 X까", "다 X까", "너도 X까(...)"[39] 심지어 캡콤 초기 성공의 주역인 오카모토 요시키 역시 코나미에서 영입된 사람이다.[40] 러브 플러스는 NEW 러브 플러스에서 KOTY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말아먹었고 MGS 시리즈는 정확히는 망하진 않았지만 4편이 엄청난 제작비 대비 4~600만장 밖에 팔리지 못해서 재미를 별로 보지 못한게 문제인듯 하다. 게다가 애시당초 코나미가 코지마를 내쫓고 내놓은 메탈기어 서바이버로 인해 "코지마가 제작하지 않은 메탈기어는 메탈기어가 아니다"란 부정적인 여론까지 조성되어 망조가 들었다.[41] 한국에선 게임규제 등에서도 보여지듯이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지만, 과거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도 게임에 대한 인식은 매우 좋진 않다. 일본에서 거주하거나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놀라는것 중 하나는 한국에서는 게임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부정적이진 않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20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는 게임회사에 취직을 하면 그다지 좋은 시선으로 안 봤었다. 코즈키 회장의 저 발언 역시 당시 일본에서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42] JPB. J리그 디비전 1은 현재 일렉트로닉 아츠와 계약이 된 상태.[43] 이쪽은 가능성이 높지않지만 2020 도쿄 올림픽의 유치로 들어올 외자유치를 위해 카지노를 합법화 할지도 모른다는 썰이 제법 돌고 있다.[44] 다만. 오락실에 하루종일 박혀 살 수 없는 중~고수급 유저들은 어지간해선 이걸 사서 채보를 연습하기 때문에.. 코나미가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 닫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락실 이외의 장소에서 채보를 연습할 길이 사라지면 그 리듬 게임은 하드코어 유저와 일반 유저의 격차가 까마득하게 벌어지면서 망한다(...) 펌프를 예로 들어보면. 유튜브도 없던 이 당시 고스트 패턴으로 풀콤 찍어대던 중고딩들의 실력은 인터넷으로 얻어다 인쇄해 외운 채보에서 많은 부분이 나왔다. 특히 펌프는 라이프 게이지를 소실하면 끝까지 플레이를 보장할 수 없는 게임이기까지 했으므로...[45]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은 몇년내로 시리즈가 종료될 예정이라고 공지까지 나온 상태이다. 즉 현재 코나미에서 발매되는 콘솔 게임은 위닝을 제외하면 없다.[46] 팬들이 바라는건 남아있는 모든 판권들을 매각 처분하는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코나미가 자사가 갖고 있는 IP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거나 과도한 금액을 요구할 경우 아무도 이 IP를 사가지 않는, 실질적인 IP들의 사장상태가 되면 후속작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각 시리즈들의 팬들에겐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 게다가 사일런트 힐같은 일부 프렌차이즈는 원작자들이 떠나고 난 뒤 엉뚱한 쪽으로 돌려버린 까닭에 회복도 힘든 상황이다.[47] 저퀄리티, 양산형, 현질유도 등 각종 고질병들.[48]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지만 사실 수익성 면에서는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유비소프트급이나 되는 회사들조차 AAA게임 개발비용 대비 리스크때문에 저비용 고소득형 게임 개발로 선회하겠다 하는게 아닌 것.[49] 몬스터 월드 시리즈, 성검전설 3 TRIALS of MANA, FF7R 등.[50] 특히 캡콤은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의 성공으로 다시 재조명 받는 중이다.[51] 미스터 드릴러 드릴랜드, 게임천국 CruisinMix Special[52] 버블보블 4 프렌즈, 록맨 11, 베어너클4, 코튼 리부트! 등.[53] 물론 봄버맨 시리즈, 혼두라 시리즈, 모모타로 전철 시리즈 등 몇몇 예외가 있긴 하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말그대로 '예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며 심지어 그 예외마저도 현재 코나미의 행보을 보아 언제 토사구팽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건 없는 일이다.[54] 1994년과 1998년에 석세스의 코튼 시리즈 중에서 슈퍼 패미컴으로 발매한 코튼 100%과 세가 새턴으로 발매한 코튼 부메랑이 선택 화면에서 그라디우스와 파로디우스 시리즈를 표절했다는 의혹 이후로 코나미는 2차 창작에 대해서는 경고를 하고 안 그러면 고소해서 돈을 갈취했다. 실력을 무보수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코믹 마켓에서는 네임드 작가가 상당하다. 이는 게임회사들도 마찬가지여서 코나미에서 개발한 게임 시스템을 노리고 게임을 제작할 경우에는 코나미가 즉시 고소해서 피의 대가를 치뤄야 했다.[55] 에스퍼(초능력자)라고도 불리는 한 소년이 책 속의 이세계에서 모험하는 스토리을 담은 RPG 게임이다. FDS용으로 출시되었다. 여담으로 이 게임의 결말은...[56] 11세의 책벌레 소년이자 에스퍼(초능력자) '마모루 군'이 요정과 함께 책 속의 이세계을 여행하는 스토리을 담고 있다. 1탄과는 달리 패미컴용 롬팩 형태로 발매되었으며 표지 일러스트, 매뉴얼 등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이 귀엽게 그려져 있다.[57] 국내에서 구경해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6인플레이 기판일때 한정. 3P가 울버린이다(!!!)[58] 특이하게도 일본에선 발매가 안됐다.[59] 그라디우스 시리즈의 아버지. 나의 그라디우스[60] 上田 英生. AXELAY의 메인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다.(AXELAY의 개발 이후에 참여한 게임의 스태프롤에는 'AXELAY.UEDA' 또는 'H.’AXELAY’.UEDA' 로 표기되었다. 스파크스터 이후에는 'H.’SPARK’.UEDA' 로 표기,) 슈퍼패미컴스파크스터의 메인프로그램, X68000판 악마성 드라큘라의 메인프로그램&디렉터를 담당하였으며, 플레이스테이션 & 세가 새턴으로 발매된 그라디우스 디럭스 팩, 사라만다 디럭스 팩,극상 파로디우스다! 디럭스 팩, 나왔다 트윈비 얏호! 디럭스 팩의 개발&이식을 담당하였다. (이 시점부터 'H.’DELUXE’UEDA'로 표기)일본 게임스태프@위키 X68000판 악마성 드라큘라 개발후기 코멘트 X68000판 악마성드라큘라 인터뷰(영문) 플레이스테이션 판 ≪그라디우스 디럭스팩≫ 개발후기 코멘트 세가새턴 판 ≪극상 파로디우스다! 디럭스팩≫ 개발후기 코멘트 사라만다 디럭스팩≫의 개발후기 코멘트(영문)[61] 萩原 徹. 악마성 드라큘라 X 피의 윤회의 디렉터(동시에 프로그램도 담당했다). 악마성 드라큘라 X 월하의 야상곡에서는 프로듀서&디렉터로 게임의 개발을 지휘 하였다(마찬가지로 프로그램도 담당). 이 때의 IGA는 어시스턴트 디렉터, 시나리오&프로그램 담당이었다.) 일본 게임스태프@위키 97년 월하의 야상곡 개발자 인터뷰(영문)[62] 松井 直樹. 코나미MSX개발팀 소속으로 그라디우스 2를 만들었으며, MSX판 그라디우스 시리즈를 이끌었던 개발자. 메탈기어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것은 이 사람에 의한것 이라는 설이 있다. (이 시절의 코지마 히데오는 기획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퇴사까지 결심했다고 한다.) 그를 다룬 외국의 메탈기어 팬사이트의 리뷰 MSX판 스내쳐에서는 수퍼바이저로 참여했으며, MSX개발팀의 해체후에는 게임보이판 네메시스, 모터크로스 매니악스 등의 게임디자인에 관여하였다. 하드 록헤비 메탈을 좋아해서 사내(社內)밴드 '메탈슬레이브' 에서 보컬&사이드기타을 담당하였다. 이상, 일본 그라디우스wiki를 참고.[63] 中里 伸也. 콘트라 시리즈의 프로듀서겸 디렉터(콘트라 스피리츠에서 부터 계속). 그 외 담당한 게임은 로켓나이트 어드벤처즈(디렉터) 등이 있다. 일본 게임스태프@위키 콘트라 시리즈 개발코멘트[64] 沖田 勝典. 댄스 댄스 레볼루션, 드럼매니아의 제작에 참여했었고, 마작 파이트 클럽을 개발한 프로듀서. 현재는 코나미 어뮤즈먼트의 사장.[65] 関 貞策.[66] 유희왕 카드의 한국 유통사.[67] 오타라기 보다는 발번역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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