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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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남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일반적으로 중동 국가로 분류되기보다는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 하나로 분류된다. 수도는 카불(다리어·파슈토어: کابل, Kabul)이며, 주요 도시로는 칸다하르(قندهار, Qandahar),[7] 헤라트(هرات, Herat), 마자르이샤리프(مزار شریف, Mazar-i-Sharif)가 있다.
1919년 8월 19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1970년대 말부터 내전 상태가 고착화된 세계 최빈국이자 후발 개발도상국이다. 대한민국 외교부 및 NSC 등 정부합동부처 심의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여행금지국가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승인을 받지 않은 입국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8]
2. 국가 상징
2.1. 국호
'아프가니스탄(다리어·파슈토어: افغانستان)'이라는 국명은 아프가니스탄인을 구성하는 주요 민족인 '파슈툰인'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افغان (afğān)과 '땅'을 의미하는 ـستان (-stân)이 더해진 조어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되는 다리어로는 [avɣɒnesˈtɒn](아브거네스턴), 파슈토어로는 [avɣɑnisˈtɑn, ab-](아브가니스탄)이라고 한다. 러시아어 Афганистан[ɐvɡənʲɪˈstan]과 유사하게 /f/ 음소가 변이음인 [v]로 조음되는 유성음화가 있다.
2.2. 국기
현재의 국기로 딱 고정되기까지 옛날부터 국기가 상당히 자주 바뀐 것으로 유명하다. 역대 아프가니스탄의 국기. 124년간 22개. 대략 6년마다 한번씩 바뀐 꼴. 이는 그만큼 이 나라가 얼마나 옛부터 혼란스런 국가였는지를 대변해주는 지표다. 영국령 때는 주로 검은색이었다. 1931년부터 1973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왕국 국기를 제외하면 내전기에 거의 3년마다 한번씩 국기(11개)가 바뀌었다. 돌고돌아 다시 비슷한 문양으로 돌아오는데 근 30년이나 걸렸다. 참고로 1996~1997년 국기는 진짜 하얀색 국기였다. 또한 이때는 탈레반 지배기의 시작이기도하다. 이후 샤하다가 들어간다.
아프가니스탄의 국장은 채색된 형태와 흑백 형태가 존재한다. 국기상에서는 후자를 흰색 단독 형태로 변형하여 사용한다. 관련 영상 1, 관련 영상 2. 상단에는 아랍어로 쓰인 샤하다인 "لَا إِلَٰهَ إِلَّا ٱللَّٰهُ مُحَمَّدٌ رَسُولُ ٱللَّٰهِ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 타크비르인 "اللّٰهُ أَكْبَر ('알라는 위대하다.')", 떠오르는 햇빛 문양이 있다. 중간에는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키블라와 미흐라브(벽감), 이맘이 설교하는 민바르(설교대), 아프가니스탄 국기가 게양된 이슬람 성원이 있다. 그 하단에는 이란력으로 "۱۲۹۸(1298년, 서력기원의 1919년)"이 표기되어 있으며, 이는 아프가니스탄이 영국으로 독립한 시기를 의미한다. 주변부는 밀과 리본이 감싸고 있으며 리본 중앙에는 다리어·파슈토어로 "افغانستان('아프가니스탄')"이 표기되어 있다.
2.3. 국가
아프가니스탄의 국가는 〈국가〉이다. 제목의 파슈토어 표기를 음차한 〈밀리 수루드(''ملی سرود / Millī Surūd'')〉로도 알려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인 시인인 압둘바리 자하니(عبدالباري جهاني, 1948년 2월 14일 ~)가 작사하였으며, 아프간계 독일인인 바브라크 와사(ببرک وسا, Babrak Wassa, 1947년 6월 21일 ~)가 작곡하였다. 2006년 5월에 국가로 지정되었다.
이전까지 사용된 국가는 왕국 국가(1943–1973), 공화국 국가(1973–1978), 민주공화국 국가(1978–1992), 이슬람국·과도정부 국가(1992–2006)이다. 탈레반 정권기인 이슬람 토후국 치하에서는 국가가 쓰이지 않았다. 노래 부르기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3.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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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쿠시 산맥 한복판에 구 소련군 탱크가 방치되어 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흔적이다.
아프가니스탄 중부 사진.
힌두쿠시 산맥에 인접해 있으며, 대부분이 고산 지대이자 메마른 지역이다. 최고봉인 노샤크 산은 무려 7,492m라는 높이를 자랑하며, 그 외에는 북부 아무다리야강 유역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으로 덮여있다. 서남부 쪽에 넓은 평지가 하나더 있긴 하지만 그곳은 완전히 사막이다. 관련 파일.
한국군 소속으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채수문 중령[9] 은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산맥을 지나며 본 풍경을 말하길, '이 전쟁을 미국이 이긴다는 소리가 엄청나게 많았지만, 높고 복잡한 산들만 봐도 쏙 들어간다. 괜히 힌두쿠시[10] 라고 불린 게 아니고 소련도 괜히 고전한 곳이 아니다. 지금 미군도 이곳에 대대로 살던 지역민들이 없다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다. 위성장치? 최첨단 장비들조차 이 산과 고원들에선 먹통이 되기에 미군들도 절대로 자기들만 안 들어온다'라고 썼다. 이해가 안 간다면 실화 기반 영화 론 서바이버에서 주인공 일행이 '''전화 한방을 못 때려서 그 생고생을 하다 겨우 한명만 살아남은''' 것을 떠올리자. 그러니까 장갑차나 전차 등 차량은 절대로 못 들어간다. 험난한 산악길을 오로지 헬리콥터만 타고 이동해야 하는 현실이다.
기후는 주로 건조기후로 건조하고 연교차와 일교차가 크며,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탁한 공기로 인해 호흡기 질환 등이 자주 유행하는 편이다. 해발 1,791m의 고지에 위치한 카불의 경우 1월 평균기온 -2.3℃, 7월 평균기온 23.7℃에 연강수량은 312mm[11] 이다. 겨울에는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가끔 영하 20도 이하도 기록되기도 한다. 이는 여름도 마찬가지로 평균기온은 서울보다 약간 시원하나 4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카불의 역대 최저기온은 -26.2°C이다.
산이 많고 나라 자체가 넓은지라 기온 편차도 꽤 큰데, 중부 산지의 차그차란(Chaghcharan, چغچران)의 경우 1월 평균기온이 -9.4℃로 모스크바(-6.5℃)보다도 더 춥고, 심지어 영하 46도가 기록된 적도 있다. 반면 서부 사막 지대에 있는 자란지(Zaranj, زرنج)의 경우 7월 평균기온은 35.0℃로 미국의 피닉스(34.9℃)와 비슷한 수준이며, 가장 높게는 영상 51℃까지 기록된 바 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록된 최고 기온은 2009년 8월 파라(Farah, فراه)에서 기록된 49.9℃이고, 최저 기온은 1964년 1월 샤흐라크(Shahrak, شهرک)에서 기록된 -52.2℃라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넓은 영토에 걸맞게 기후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이는 고도가 큰 역할을 하는데, 중북부 산악지역은 고지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난다.[12] Dsa, Dsb, Dsc 기후 모두 나타나며 일부 고산에서는 툰드라 기후마저 나타난다. 반면 남서부 저지대는 대부분 사막으로, 여름에는 무섭도록 기온이 치솟는다. 와칸 회랑이라고 알려진 북동부의 산악지대와 바다흐샨 주는 겨울이 매우 길고 미칠듯이 춥고, 영하 40도가 기록되기도 한다. 고도로 인해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보다 국토 평균기온이 낮은 나라이다.
저격의 명소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 때 카를로스 헤스콕이 세운 세계 초장거리 저격 기록은 한동안의 긴 공백 끝에 이 나라에서 네 번이나 깨졌다. 맥밀란 Tac-50이 이 나라에서 한 전투에 두 번, 이후 또 저격 기록을 갱신 및 1위를 다시 차지했고, L115A3도 기록하는 등, 진짜 저격의 명소인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AK-74로 무장한 소련군들을 무자헤딘전사들은 구식 리-엔필드 소총으로 800m 이상의 거리에서 저격함으로써 불리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의 사기를 크게 꺾어두었다. 워낙 험준한 고산 지대라 대규모 화력은 이동시키기도 어렵고 체력 안배도 쉽지 않은 곳인지라 자연히 저격수들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군의 무덤이 되었다. 이에 소련은 고심 끝에 스페츠나츠 저격수를 3배나 늘리고 민간인 마을에 마구 보복하는 등 갖은 수를 썼지만 국제 여론까지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무자헤딘 측은 소련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현재 저격 최장거리 기록도 저격수의 이름이 밝혀진 기록에 한해서는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들어진 기록이다. 현재 1위 기록(3,450m)은 현역 복무중인 특수부대 JTF-2 소속이라 신상이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에 활약한 머스킷인 제자일이 만들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워낙 지형이 험해 힌두쿠시의 척박한 산들과 여러 지역은 탈레반도 안 가고 현지인들도 모르는 곳이 허다한 탓에 특이한 일도 있었다. 예전에 미군은 정보도 지도도 없는 채로 이 근방을 헬리콥터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도중에 한 마을과 마주쳤다.그러자 마을에선 난리가 벌어졌다고 한다. 헬리콥터가 착륙하자 총을 쏴댔는데 미군도 대응하려고 보니 총들이 그야말로 골동품인 20세기 초반에 쓰던 총이었고 살의보단 경계로 쏴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현지인 통역을 통하여 설득하고 보니 이 마을은 이방인이 온지 수십여년이 넘었으며 전기도 탈레반이 뭔지도 모르는 마을이었으니 헬리콥터도 자동차도 아예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척박한 곳이라 사람들이 먹는 것은 듣보잡 채소를 길러 먹거나 마을에 얼마 안 되는 가축을 아주 드물게 먹는 수준이었고 당연히 통조림이나 인스턴트 음식은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오랫동안 고립되었기에 말도 꽤 다르게 변모되어서인지 통역인도 한참 대화에 고생했다고 한다.[13] 대개 파미르인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고립된 부족들은 다행히 탈레반의 폭정이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같은 참상은 겪지 않을 수 있었다 한다.
2020년 8월에 홍수가 일어나 70여명이 사망하였다. 관련 기사.
4. 역사
5. 정치
부패인식지수에서는 소말리아와 북한과 함께 8점[14] 을 기록, 꼴찌를 차지했지만 2014년 부패인식지수 결과 아프가니스탄 점수가 12점으로 향상되어 꼴찌를 탈출하였다. 부정부패가 엄청나다보니 탈레반이 구석으로 찌그러지기는 해도, 여전히 버틸 수 있는 원인 중 하나가 고위층은 물론이고 탈레반을 소탕해야할 경찰들도 뇌물만 받으면 대충 넘겨주는 등의 행태를 보이는 등 돈에 환장해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서 민영방송사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서 풍자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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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총선에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대통령제가 도입되었다. 2004년 첫 대선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당시 자치정부 수반이 쉽게 당선되었다. 2009년 대선에서 재선되었다. 2009년 대선에서는 2위 압둘라 압둘라 전 장관이 30.59%라는 무시 못할 득표율을 올리기도 했다. 2014년 대선에서 아슈라프 가니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2014년 대선은 부정선거 의혹으로 점철되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던 압둘라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역전당했기 때문. 결국 아슈라프 가니와 압둘라 압둘라 두 후보가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하여, 아슈라프 가니가 대통령을 맡게 되었고, 압둘라 압둘라가 최고행정관을 맡게 되었다.
2020년 2월 29일, 도하 협정 체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도로 미군 완전철수가 합의됐다. 하지만 정작 미국과 탈레반이 협의하는 중간 아프가니스탄 행정부가 여기에 전혀 끼지 못하면서 이 협정이 향후 아프가니스탄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오랜 내전과 전쟁으로 수도 없이 피를 흘렸고 장기간에 걸친 전쟁과 외세 침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이란이나 파키스탄, 인도, 우즈베키스탄 등 이웃 인접국가들을 떠도는 난민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탈레반과 외국군, 여러 지역 무장 군벌간 전투와 유혈 충돌은 끓이질 않고 있고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들어선 신정부도 부정부패로 찌들어 있는 등 나라 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이런 현재의 모습에 많은 아프간인들이 희망을 잃고, 심지어 비교적 평화로웠던 옛날 자히르 샤 왕정 시절이 살기 좋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렇듯 일각에선 왕정 붕괴 후 내전과 유혈 대학살, 외세 개입, 침략으로 헬게이트로 전락했다가 1993년 왕정이 복고되면서 나름대로 안정을 되찾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캄보디아처럼 이 나라도 왕정으로 복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허나 32년간 거친 전쟁과 내전으로 찢어질 대로 찢어지고, 법보다는 군벌과 부족 세력들의 힘이 강력해지다시피 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왕정이 복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이 왕정 복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쪽도 캄보디아와 같이 국제연합(UN) 등에서 UN 평화유지군이나 감시단 등을 파견하여 분쟁에 개입한다면 캄보디아처럼 왕정복고 이후 지금의 심각한 내전 상황이 종결되거나 혹은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처럼 왕정 폐지 후 전국에 난립하여 온갖 폭탄 테러와 게릴라 전, 양민학살 등을 자행하는 탈레반이나 여러 지역 무장 단체들이나 지방 군벌 세력들이 약화되어 붕괴될 가능성도 꽤 있다. 전 국왕이었던 자히르 샤가 2007년 사망하긴 했지만 아들이나 손자, 이외 왕족 후손들이 꽤 살아있어 이들을 새 왕으로 앉혀 입헌 군주제를 채택할 가능성도 있다.
6. 군사
7. 경제
UN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의 1인당 GDP는 668달러로 세계에서 14번째로 가난한 나라라고 하며, 이는 남한의 1/45, 미국의 1/80에 불과하다. 심지어 북한[15] 보다도 조금 낮은 정도이다.[16] 인간개발지수는 0.374로 끝에서 13번째로 앙골라와 에티오피아보다도 낮다.
중세에는 동서 교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지역[17] 이었지만 사막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도한 대항해시대로 인해 육로를 통한 동서 무역이 쇠퇴하면서 이 지역은 문맹률이 증가하고 종교 극단주의가 득세하는 후진 지역으로 전락하였다.
탈레반의 종교 극단주의로 인해 나라가 가난해졌다고도 볼 수가 있지만 빈곤 문제 때문에 탈레반 같은 종교 극단주의가 득세한다고도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웃나라인 타지키스탄은 종교 극단주의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18] 상술한 문제[19] 로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이다.
우습게도 소련과 기나긴 전쟁으로 소련군 전차라든지 온갖 장비가 고철로 남아 한때 이걸로 팔아먹었다. 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던 채수문 중령의 회고를 봐도 아프간 산지 곳곳에 소련 전차가 남았는데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제 헬기나 온갖 장비가 남아서 90년 초반만 해도 고철로 활용되던 베트남이랑 똑같았다.
마르코 폴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이라고 부른 보석, 라피스 라줄리의 최상품은 바로 이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다흐샨 주에서 나온다. 자그마치 6000년 동안 라피스 라줄리를 캔 사르이상그(سر سنگ, Sar-i Sang)라는 광산도 있다. 그 외에도 철이나 망간, 여러 광물자원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으며 힌두쿠시 산맥 쪽에는 우라늄도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어서 미국은 핵 관련 문제만으로도 100% 완전 포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다만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탈레반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20] 손을 뗄 가능성이 확실하다.
석유가 나긴 하지만 생산량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고, 현재 미국 자본이 파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을 잇는 오일 파이프라인을 아프가니스탄에 놓기 위한 지속적인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 매장량이 적다기보단 채굴 기술이 없는 것에 가까우며 어쩌면 또 하나의 기름덩어리 땅일 수도 있다. 바로 이웃인 이란의 석유 생산량을 보면 답이 나온다.
2016년 유럽연합(EU)과 아프가니스탄이 공동 주최한 "아프간 지원 회의"에서 유럽연합은 2020년 아프가니스탄에 52억 달러를 지원키로 결정하였다. 관련 기사.
유엔 세계식량기획은 아프간에서 극심한 가뭄이 들면서 320만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기근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2018년 11월 27일~28일까지 제네바에서는 아프간 지원을 논의하는 콘퍼런스가 열렸다. 관련 기사.
미국이 아프간 재건을 위한 쓴 돈이 150조원이 넘는다. 관련 기사.
7.1. 아편 생산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국이다. 이미 17세기에도 아편 재료인 양귀비 재배로 알아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1960년대 안정적인 생활을 할 당시에도 시골 지역에선 여러 생필품 부족 및 생활난으로 양귀비는 활발하게 재배되었으며 왕실이 금지하려고 했으나, 금지했더라면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굶어죽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금지를 전면 취소할 정도로 양귀비가 생활에 깊숙히 들어온 곳이 많다.
결국 단속한다고 해도 마약은 민병대의 주요 수입원 1등[21] 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소비되는 아편 계열의 마약은 아프가니스탄산이 많다.
덕분에 한때는 전세계 아편 생산량의 80%[22] 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지역을 골든 크레센트 즉 황금 초승달 지대라고 한다. 실제로 탈레반은 이 황금 초승달 지대를 장악한 것을 이용해 외국, 특히 파키스탄 마피아와 마약을 거래하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역할을 하며 장사를 해먹고 있다.
7.1.1. 원인
7.1.1.1. 건조 기후
아편 생산량이 많은 이유는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꽃이 건조한 기후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건조한 아프가니스탄의 기후와 맞아 떨어지고, 또 양귀비가 각종 해충에 강해서 다른 농산물보다 재배하기 쉽기 때문에 농부들이 유혹에 빠진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이 산지라서 적발이 힘든 점도 있고 전쟁으로 인한 치안 부재 상태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은 완벽한 아편 생산지가 되었다.
재배 지역은 헬만드 주가 가장 많으며, 그 밖에도 칸다하르 주와 파라 주 같은 여러 지역이 엄청난 수를 재배하고 있다.
7.1.1.2. 정부의 자금확보를 위한 독려
과거에는 탈레반이 아편 생산을 금지하였지만, 탈레반이 축출된 이후로부터는 자금 확보를 위해 아편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은 아편 생산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 농부에게 보조금 지원 형식으로 공식적으로는 많은 양의 아편 농장을 일반 농장으로 바꾸고 있고 또 세계적인 곡물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여겼으나 실제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양귀비를 재배하다가 밀을 심은 이들이 한탄하길 '''"양귀비꽃 재배로 받은 돈 절반을 겨우 버는데 누가 미쳤다고 이걸 재배하겠는가!?"''' 라고 할 정도로 밀은 돈이 안 됐다.
국제 밀값이 올라봐야 정작 그들에게 돌아온 돈이 기대 이하였고 부정부패가 워낙 횡행하고 교통망이나 인프라도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어 중간업자들 및 정부요인들이 그 수익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7.1.1.3. 공권력의 부패
더구나 밀이나 석류 같은 합법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팔러갈 때 검문소를 지나칠 때마다 경찰들이 뇌물을 요구하니 열 터진 사람들은 밀이나 석류를 죄다 엎어버리는 시위를 벌일 정도로 썩은 공권력도 마약 퇴치를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아편이라는 것이 원래 음지에서 거래되는 것을 볼 때 아직도 많은 아편 농장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단속해야 할 현지 경찰들도 많은 수가 연루되어 있으며 이들이 뇌물도 받고 단속도 무마시키며 아예 겉으로는 밀이나 다른 곡물을 심고 잘 안 보이는 험난한 곳에는 한가득 양귀비를 키우는 곳이 허다하다.
게다가 미국이 허구한 날 탈레반 자금줄을 끊고자 지원하는 돈도 단속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 돈의 대다수가 횡령되어 극히 일부의 주머니로 들어가 사라지며, 단속 수준도 뇌물을 못 바치는 집안, 가장을 잃고 이거 재배로 벌어먹는 집안의 밭을 급습하여 무작정 양귀비를 베어버리는 것인데 이런 행위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 탈레반이 아니라 이젠 자체적으로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할 정도로 증오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9년 마약단속 경찰 트럭이 지뢰에 터져 23명이 죽기도 했고 양귀비 밭에 지뢰를 심어두기도 하여 단속 경찰이 죽는 경우도 종종 터진다.
더불어 마약 단속반의 적발에 불만을 품고 탈레반으로 들어가버리는 이들까지 생겨나서 미국의 고민을 늘리고 있다.
7.1.1.4. 마약 단속반의 불법행위
마약 단속에 대하여 되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 사람을 죽이려는 미국에게 매수된 매국노들의 짓으로 여기며 증오하는데 마약 단속반들이 위낙 깡패짓을 하고 다녀서, 현지인들에겐 도적이라고 악명이 높기에[23]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마약단속반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정도로 단속이 어렵다.
7.1.1.5. 양귀비 꽃의 생필품화
더불어, 마약 단속을 넘어서 재료가 되는 양귀비꽃이 '''생필품'''인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주식인 빵이나 식용유나 비누 같은 생필품을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시골이 가득한 아프간에서 양귀비가 모든 걸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양귀비 꽃잎은 과거 오스만 제국이나 여러 지역에서 잼을 만들어 먹었고 씨앗을 갈아서 빵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거니와, 식용유로도 만들 수 있으며 마약을 추출하고 남은 줄기는 말렸다가 장작으로 쓰며 남은 재는 비누로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마약을 다 파는 게 아니라 병원들도 의약품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비상약으로 쓰이는 경우도 허다하다.[24]
7.1.2. 결론
단순히 양귀비를 불태우거나 훼손하는 단속이나 다른 농작물을 대신 심으라는 종전의 행위는 일절 도움이 안된다. 그렇게 해봐야 들어오는 돈도 더 적고 무엇보다 위에 열거한 생필품 자체를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즉 저런 문제까지 다 해결해야지 마약 단속에 도움이 되는데 열악한 곳에 물자를 수송하는 문제도 어렵지만 애써서 겨우 수송해봐야 물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25] 이므로 양귀비가 많은 지역에서 재배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미국은 양귀비들을 아예 돈주고 사서 불태우는 작전까지 구사했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포기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군 내부에선 차라리 우리가 양귀비를 사는 게 괜히 헛돈 버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주장이 거센 상황이다.
참고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이복아우이던 아흐마드 왈리 카르자이(احمد ولي کرزی)의 별명은 '''마약왕'''이었다. 카르자이가 파키스탄의 전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파키스탄이 마약 유통을 단속 못한다고 불평하자 "'''당신 동생이나 잘 단속하쇼'''"라는 비웃음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왈리 카르자이 자신도 나에겐 마약이 있기에 아무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자신만만했으나 2011년 7월 12일 경호원들이 배신하여 총알 수십여 발을 맞고 끔살당했다. 그리고 탈레반이 경호원들을 매수 및 협박했다고 발표하면서 여전히 헬게이트 아프가니스탄을 증명해버렸다.
어찌됐든 현 정부든 탈레반이든 권력층이 마약 거래에 깊이 관련되어 있고 저런 생활 문제가 깊숙히 들어간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약 재배가 사라질 일은 영원히 없어 보인다.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4년도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생샨량은 약 6,400t을 기록하여 지난해보다 재배량이 17% 늘었는데 이는 사상 최대의 재배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2017년에 아프간 정부와 유엔에서 공동으로 양귀비꽃 재배조사를 한 결과, 아프간내 양귀비 재배면적이 87%(!)나 늘어나는 등 전년에 비해 급상승했다.#
8. 사회
이슬람 나라들 중에서도 엄청나게 '''폐쇄'''적이다. 샤리아를 공식 법률로 하는 것을 지지하는 여론이 99%나 되는 등[26] 이웃나라 파키스탄과 함께 원리주의 성향이 강하다.
시아파 원리주의 국가인 이란에서 만든 드라마 가지고도 저질이니 퇴폐적이라고 까대는 나라이니 말이 필요할까.
물론 이란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나라들과 견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슬람 공화국 출범 이후에도 이란은 여전히 중동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에서 그나마 순위권 안에 드는 나라이기도 하다.[27] 사실 아프간 내에서도 차이가 있기는 해서 북부 지역이나 카불 등으로 가면 나름대로 개방적인데 반해 서부나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사실 보수적인 여론이 강하기는 하지만 문화적으로 무조건 꽉 막혔냐면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라서[28] 2000년대 탈레반이 물러난 이후로 텔레비전 수상기가 급속하게 보급되면서 적어도 인도 영화나 해외 드라마 같은 것도 볼 수 있게 된데다가 언론의 자유가 생각보다는 잘 보장이 되어있는 편이기 때문에[29]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내보낸다는 상투적인 이유에서부터 정치인 비리를 폭로할 때 죽일 것이라고 협박하는 일까지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톨로TV나 1TV같은 곳은 대충 씹지만 나머지 민영방송의 경우에는 시청률이 영 좋지 않다 보니 보도를 안하는 경우가 있다.
여하튼 아프가니스탄의 부패상이나 전후 막장치안과 정치 상황이 잘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공이 크다.아프가니스탄 기준으로 제법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는 톨로TV나 1TV등 상업 방송국의 시청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데다가, 페르시아어 위성방송이나 인도/파키스탄 방송도 꽤 흥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문화적으로 개방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애초 이곳이 원래 인도문화권이었던 관계로 인도 대중문화가 인기인지라 어느 정도 서구화된 인도를 동경하며 문화적으로 개방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장노년층들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은 여전해서 갈등이 나름대로 있는 편이다.
그래도 아프간 사회의 병폐인 막장 치안이나 명예살인, 관료들의 부정부패나 기업들의 결탁 등 사회부조리와 부패상을 널리 알리고 인도 영화나 터키 드라마 등을 편성하거나 서구나 파키스탄, 인도 음악도 틀어주는 등 나름대로 개방적인 프로그램들[30] 을 많이 방영하는 등 아프가니스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많이 하기에 TV가 아프가니스탄에 끼치는 영향은 꽤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보급률이 나름대로 높으나, 인터넷은 국토의 대다수가 산지인데다가 인프라를 까는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인해 쓰는 사람이 적다.그나마도 사용자들이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인터넷 속도도 느리며 요금도 비싸다. 하지만 사회부조리를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TV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맡는다.
2015년 1월 기준 여성 가수 뮤직비디오 제작 및 공중파 송신이 가능해졌으나, 가슴골이나 다리가 조금만 보여도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록 이란에서는 히잡 차림으로 하라는 제한이 있긴 해도, 니캅 차림으로조차 연예계고 뭐고 사회 활동을 죄다 금지하고 여자를 씨암탉 다루듯 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란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매체는 저질이라고 발악할 만하다.[31]
그나마 권투에 한해서는 여성이 니캅이나 히잡을 벗고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이다. 태권도도 허용은 되지만 히잡은 하고 뛰어야 한다. 그래도 탈레반 시절 때는 두 종목 모두 여성이 할 수도 없고, 걸린다면 하거나 가르쳐 준 사람까지 동반 처형될 각오를 해야 했다. 이래저래 한국에서 파견나온 태권도 사범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도 떠돌며, 태권도 가르치다 탈레반에 걸려서 '''고문당한 사람도 있다.'''
마약, 전쟁 등의 문제로 사망하거나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상당하고 교통이나 치안 등의 문제로 인해 세계적으로 평균 수명이 중하위권이다. 남성이 58살, 여성이 62살 수준에 불과하다.
아프간에서 테러가 계속 일어나면서 온라인 쇼핑(!)이 성행하고 있다고 로이터와 톨로뉴스 등 아프간내 매체가 보도했다.#
8.1. 여성인권
[image]
1970년대 사진에서 젊은 시절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 여성들이 40년 뒤에는 할머니가 되어서는 부르카를 착용하고 다니게 되었다. 참고로 위쪽 사진은 1달 전까지만 해도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를 생각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8월 마음을 180도 바꾸어 미군 증파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 물론 위에 사진에서 나온 것과 같은 자유로운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은 그 당시에도 예외였다. 고립된 부족사회를 바탕으로 한 파슈툰족 사회는 전형적인 작은 사회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생명과 인격보다는 부족과 가문의 명예 따위가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이후의 탈레반의 극단적인 여성 인권 탄압을 뒷받침해주었다 봐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왕국 시절만 해도 1921년 아마눌라 왕이 여성교육을 강조하면서 강제결혼과 아동결혼(조혼), 신부값과 일부다처제 폐지를 법제화했고[32] 소라야 왕비도 여성인권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후 무함마드 자히르 샤 치세 들어 여성교육과 사회참여가 점차 활발해져 갔으나 자히르 샤가 쫓겨나 이탈리아로 도망가자 왕국 붕괴와 소련군 침공 등을 겪은 후 사회적 혼란으로 탈레반 따위가 득세하면서 여성 인권도 퇴보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한 러시아인 군인들의 인터뷰를 담은 아연 소년들이란 책을 읽어보면, 한 번은 소련군 몇 명이 어떤 마을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한 가정집에 들어가자, 손님 접대를 지극히 중요시하는 아프간 문화 때문에 그 집에 있었던 여성들이 마지못해하며 차와 먹을 것을 내놓았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그 집을 나오자마자 같은 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그 집으로 몰려와서 소련군에게 차와 먹을 것을 준 여성들과 아이들을 모두 돌로 때려 죽였다고 한다.[33] 알다시피 탈레반 정권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고 나서인 1996년에 들어서야 아프가니스탄에서 집권했다. 탈레반이 패퇴한 직후에는 다소 여성 인권이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여성부가 설치되었고, 여학생들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으며 여성 국회의원의 숫자도 100명에 육박하는 수준이 되었지만, 2014년쯤에 이르면 오히려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여성 인권은 후퇴하는 상황이다.
2013년에는 조혼과 강제결혼을 범죄로 정하고, 여성을 사고 파는 행위를 금지한 여권 신장 법안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고 여성의 불복종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의회에서 부결되었다.[34]
2014년에는 친척의 범죄 행위를 증언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서 가정 내 폭력에 대해서 처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관련 기사.
게다가 2016년 3월 9일에 여성이 화형당한 사건이 발생되었지만, 법원은 용의자들을 무기징역에서 징역 20년, 10년을 선고하는 사건이 발생되었다. 관련 기사.
아직까지는 여성인권이 최악이지만, 아프간은 여성 경찰 인력을 1만명으로 끌어올리려는 계획을 하는 중이고 2천명이상의 여경이 활동중이다. 관련 기사.
그럼에도 현실은 여성 인권이 최악이라서 아프간 공군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미국 망명을 신청했다. #
그리고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폐쇄 사회이다보니 여성들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부적절하게 여겨지고 심지어는 묘비에조차 여성들이 이름을 적을 수 없는 악습으로 인해 아프간의 인터넷에서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름 찾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3년뒤인 2020년이 되어서야 여성들의 이름 찾기 운동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가니 대통령은 여성에게도 신분증과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인구등록법을 개정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9월에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관련 기사.
앞서 말한 조혼은 원래 예멘이 유명하나 아프간에도 조혼이 널리 퍼져서 여성 3명중 1명이 18살 이전에 결혼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관련 기사.
한편 2017년 8월 20일에는 아프가니스탄의 킴 카다시안으로 불리우는 아리아나 사예드가 테러협박에도 불구하고 카불의 호텔에서 콘서트를 열면서 소녀 등 젊은이들이 찾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관련 기사. 그리고 2017년 8월 30일에 아프간의 바글란 주에서는 여성들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식당이 아프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관련 기사.
더 나아가 자신이 성추행, 성폭행당한 것을 폭로하는 미국의 미투운동이 아프간에도 확대되고 있다. 관련 기사.
그리고 처음으로 여성이 현지 최고 인기 오디션프로그램에서 우승하였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여권운동에 활발히 참가했던 아프간의 한 여성 언론인이 2019년 5월 11일에 카불에서 무장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관련 기사.
그리고 2월 13일에는 남성들이 산책중이던 여성의 반려견을 총으로 쏴죽인 사건이 발생되었다. 관련 기사.
아프가니스탄의 10대 소녀가 부모를 살해한 탈레반 무장대원을 사살해 SNS에서 영웅으로 떠오르며 환영을 받았다. 관련 기사. 그리고 아프간 여성들 사이에서 태권도와 주짓수 등 자기 방어 스포츠가 각광을 받고 있다. 관련 기사.
아프가니스탄에서 법률적으로 신분증과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던 여성들이 이름을 공개할 권리를 얻게 됐다. 관련 기사.
아프가니스탄에서 딸의 취업을 반대한 아버지가 남성들을 시켜 딸의 눈을 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관련 기사.
8.2. 민족
8.3. 언어
9. 교통
- 철도망은 2개 노선이 있으며 모든 노선은 화물전용으로 운영되고있다
- 땅이 넓은 만큼 국내선도 많은데, 수도에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이라고 과거에 카불 국제공항이라고 불렸던 국제공항이 있으며, 북쪽으로 올라가면 미군이나, 서양사람들이 주로 도착하는 바그람 공군기지가 있다.
10. 문화
10.1. 식문화
10.2. 스포츠
그나마 1950년대-1960년대 안정을 누릴 땐 축구가 역시 인기가 많았지만 오랜 전쟁으로 리그나 여러가지가 죄다 사라졌다. 탈레반은 축구를 아예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국제대회 참가 등은 당연 불가능했고 축구 경기 휴게시간에 축구 골대를 교수대 삼아서 교수형 집행 이벤트를 하는 등 막장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아프간 전쟁 이후 국제대회에 나왔으나 큰 골차로 대패하는 일이 많다.
자세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그 밖에 권투가 인기가 있다고 한다. 탈레반조차도 권투를 금지하진 못했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탈레반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권투도 이들의 막장 때문에 타격을 받았다.
또한 태권도도 꽤 잘하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로훌라 릭파이가 조국에 올림픽 역사상 첫 메달을 안겨줬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태권도의 인기는 상상 초월이며, 현재 약 1,000명이 넘는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크리켓도 꽤 인기가 있는데 파키스탄과 경기를 하다가 양국 팬이 난투극을 벌이는 사건도 있을 정도였다.
11. 지리
아프가니스탄은 총 34개의 주로 이루어져있다.
바다흐샨 주(Badakhshān)
바드기스 주(Badghīs)
바글란 주(Baghlān)
발흐 주(Balkh)
바미안 주(Bāmiyān)
다이쿤디 주(Dāykondī)
파라 주(Farāh)
파르야브 주(Fāryāb)
가즈니 주(Ghaznī)
구르 주(Ghowr)
헬만드 주(Helmand)
헤라트 주(Herāt)
주즈잔 주(Jowzjān)
카불 주(Kābul)
칸다하르 주(Kandahār)
카피사 주(Kāpīsā)
호스트 주(Khowst)
쿠나르 주(Konar)
쿤두즈 주(Kondoz)
라그만 주(Laghmān)
로가르 주(Lowgar)
낭가르하르 주(Nangarhār)
님루즈 주(Nīmrūz)
누리스탄 주(Nūrestān)
우루즈간 주(Orūzgān)
팍티야 주(Paktiyā)
팍티카 주(Paktīkā)
판지시르 주(Panjshīr)
파르반 주(Parvān)
사망간 주(Samangān)
사르이폴 주(Sār-e Pol)
타하르 주(Takhār)
바르다크 주(Vardak)
자불 주(Zābol)
12. 관광
대한민국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금지국가'''이다. 하지만,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탈레반이 투항하거나 혹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양보하여 평화협정을 맺고 내전이 종식되어 치안이 안정된다면 관광지로 개발될 가능성도 크다. 예를 들어 수도인 카불은 예로부터 "문명의 십자로"로 불린 곳이며, 상업이 매우 발달해 있고, 피혁·가구·유리 공업 등도 행해진다. 이곳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아 향후 관광지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힌두쿠시 산맥의 봉우리들을 끼고있는 수려한 경관이 있기에 트레킹 코스 등의 관광이 성행할 수도 있다.
물론 현재는 내전과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는 국가이다. 애초에 여행금지국가이고, 자국민들도 탈출하여 난민이 되는 상황이다. 어차피 출국시에 제재받진 않지만 입국시에 여권법 위반으로 경찰이 기다려 연행되니 알아서 판단할 것.
13. 외교
14. 창작물에서
옛날부터 유명한 분쟁 지역이다 보니 여러 매체에서 등장하고 있다.
14.1.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일반인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셜록 홈즈 시리즈일 것이다. 왓슨 박사는 제2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퇴역한 군인(정확히는 군의관)으로 나온다. 이 설정은 위에도 있는 영국군이 전멸하고 의사 1명만 살아돌아온 사건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BBC에서 셜록 홈즈를 재해석한 드라마 셜록을 만들었는데, 이때도 왓슨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상이군인으로 나온다. 200년 가까운 갭이 있는데도 똑같은 설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데서 이 나라가 겪은 수난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14.2.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또한 80년대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에 주목받기도 했다.
- 람보 3가 대표적. 이 당시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소련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전사들로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 007 리빙 데이라이트에서 영화 후반부 배경이된다, 악당에게 잡혀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 공군기지에 있다, 무자헤딘의 도움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온다.
- 또한 풀 메탈 패닉! 시리즈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블랙 테크놀러지의 힘으로 이 전쟁에서 소련이 승리했다고 나온다. 주인공인 사가라 소스케가 어렸을 적 반군으로 활동한 곳으로 나온다.
-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의 배경이 되는 장소 중 중요한 곳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카불 지역.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인 1984년이 시간적 배경이다. 폭스 엔진을 통해 상당히 광범위하게 구현하고 있다. 그런데 코지마 히데오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실은 아프간 맵의 베이스로 삼은 지역은 아프간이 아니라 요르단이었다고.
14.3.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현대에는 유명한 분쟁 지역이다 보니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미디어에서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2000년대 중반엔 잠시 이라크가 이 역할을 했으나 이라크가 비교적 안정되고 미군이 철수함에 따라 다시 "요즘 분쟁지역"으로 나온다.
-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 튜토리얼 미션의 배경이 되는 곳이 이 나라의 마자르 지역이다. 여기선 GLA가 대량 살상 무기 공장을 지으며 깽판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미군기지까지 털기도 하고 오프닝씬에선 미군 헬기 세 대를 격추하기도 한다.
-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에도 등장하는데, 사방팔방에 칼레드 알 아사드의 포스터가 붙어있는 등, 2016년에도 여전히 막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 메달 오브 아너의 주 배경이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선 과거 회상 장면과 현재 시점의 미션에서 둘 다 등장한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막장 분쟁지역... 지못미.
- 클로저스의 NPC인 송은이 경정이 이곳에서 붙잡혀 총을 만들던 장인을 구출하면서 게릴라 1부대랑 전투를 했다(...)
- 할레드 호세이니 작가의 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아프가니스탄을 주 배경으로 삼고 있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아이언맨1에서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단체에 점령되어있고 작중 인물 호 인센이 이 나라가 모국이다.
15. 아프가니스탄의 도시
16. 참조 서적
《아프가니스탄: 알렉산더 대왕부터 탈레반까지의 전쟁사》,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역: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시작해서 몽골 제국과 영국, 소련, 지금의 미국으로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대외 항쟁사와 아프간 전사들의 용맹, 아프간의 영토 확장 역사 등을 다룬 책이다.
[1] ''Jomhūrī-ye Eslāmī-ye Afġānestān''[2] ''Da Afġānistān Islāmī Jumhoryat''[3] 출처[권위주의] 2.85점[4] 출처[5] 그 외에 우즈베크어, 기타 30여 개의 방언[4] 도 쓰인다.[6] 2012년 조사에 의하면 수니파의 비율이 90%, 시아파의 비율이 7%에 가깝다.[7] 'قندهار'는 다리어 표기이다. 또 다른 영어 표기인 'Kandahar'는 파슈토어 표기인 'کندهار'를 옮긴 것이다.[8] 이는 외국도 비슷하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북한을 "여행 연기를 추천함" 단계에 두는 반면, 아프가니스탄은 "대피 권고" 단계이다.[9] 대령까지 역임하고 예편했다.[10] '''힌두교인들이 죽어간 무덤이라는 뜻'''. 종종 인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납치된 힌두교인들이 이동 과정 중 힌두쿠시 산맥에서 얼어죽는 경우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11] 강수량은 비교적 겨울과 봄에 많은 편이다.[12] 고지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은 많지 않은데, 이를 볼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 아프가니스탄이다.[13] 출처: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14] 100점 만점[15] 696$ 정도[16] 북한의 경우 통계를 내기 어려워 수치가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확실한 것은 북한과 비교해야 할 정도로 경제가 궁핍하다는 것이다.[17] 압바스 칼리프 조에서 도시 계획을 짤 때 주로 아프가니스탄의 도시들을 참고했었을 정도였다.[18] 탈레반조차 진압하지 못한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그래도 여기는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들을 토벌하였다.[19] 동서 교역의 쇠퇴로 인한 전통 산업의 궤멸.[20] 현 아프간 정부를 전복시키고 Again 1996을 하는 것까지는 상관없지만 외국의 테러 집단과 다시 손 잡는 일이 없을 것.[21] 매해 최대 40억 달러 추정. 이 정도 돈이라면 탈레반 및 부족들이 4무장에 엄청난 수익이 되며 나아가 그것은 정부군 및 미군 희생을 부채질한다.[22] 자료마다 다르지만 어떤 자료는 전세계 생산량의 약 93%까지였다.[23] 얼마나 적나라한 행패를 부리는지 예시를 들면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들이 현지 취재를 하는데 마약 단속반들이 벌이는 행패도 문제임을 보여주었다. 외국 기자가 보는 앞에서 그들은 식사 시간이 되자 단속 대상이 아닌 사람들의 밭에서 채소까지 훔쳐서 싸온 도시락과 같이 지들끼리 실컷 먹어버렸단다. 기자들이 하도 어이 없어서 "돈도 안 주고 멋대로 훔쳐먹어도 되냐?"고 따졌더니 한다는 소리가 '''"어차피 우릴 싫어하는데 뭐하러 좋게 대해주냐?"'''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니 현지인들은 탈레반을 따라서 저런 놈들을 죽여버리는 게 낫다며 무섭도록 증오하고 있다.[24] 가난한 나라들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심지어 종전 후 1950년대 및 1960년대 한국 시골에서도 병원갈 돈도 없고, 병원 가기도 어려운 지역에서 몰래 심은 양귀비꽃에서 추출한 아편을 극소수량으로 약 대신 쓰기도 했다. 1950년대~1960년대도 아니고 현재에도 양귀비 밀경작의 90% 이상이 도서/농촌 지역의 60대 이상 노인들의 소규모 경작이다.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조차 오지에서는 암암리에 행해지며, 경찰들도 무작정 잡을 수가 없어서 너무 크게 지은 곳만 시범 케이스로 붙잡는 형편이다.[25] 보나마나 그걸 일부가 가로채서 배를 채울 게 뻔하다. 종전에 시행하던 밀이나 여러 농작물 씨앗조차도 도중에 상당수가 착복되어 사라졌다.[26] 그러나 이것이 국민들의 진심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이 공포정치를 펴던 나라였고 현재도 탈레반이 반군으로 저항하고 있는 나라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사는 주민들이 과연 반대 의사를 대놓고 표방할 수 있을까? 사실상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압박 때문에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해석된다.[27] 그럼에도 여성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인권탄압이 심한 나라로도 악명이 자자하다.[28] 사실 인도/중동이나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위성방송이 생각 이상으로 잘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할리우드 영화나 유럽 축구리그 경기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수준이 된 지 꽤 되었다.[29]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다. 또다른 심각한 문제로는, 탈레반 세력이 여전히 큰 세력으로 잔존해있기 때문에 이들이 '''방송사에 테러를 저지른다거나 영화감독, 배우들에게 살해협박과 테러를 저지르거나''' 배우에게 압박을 가하는 일이 많다. 대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유명 배우이자 100편이 넘는 영화들을 찍은 영화감독인 살림 샤힌(Salim Shaheen)은 과격 무슬림들로부터 비종교적 액션 영화를 제작한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살해협박을 받고 있으며, 스튜디오에 로켓포 공격이 날아와 스태프 9명이 죽은 적도 있다고 한다.[30] 하지만 한국 기준으로 본다면 심심하다.[31] 사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란은 호메이니 이후에도 서남아시아 기준에서는 그다지 수구적인 사회 분위기는 아니었다. 호메이니 이후 이란의 사회상에 학을 떼고 미주로 이민 온 이란계 미국인들의 불평을 토대로 이런 이미지가 생겨났지만, 현대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호메이니 이후의 사회상에 많은 이란인들이 불만을 가졌던 이유는 보수성 때문이 아니라 '''실패한 경제정책''' 문제가 더 컸다고 한다. 어디든지 마찬가지지만 '''양극화'''는 국가원수의 '''죽음을 부른다.'''[32] 물론 시대적 상황상 한계는 있었다.[33] 참고로 일부 산악 부족 문화에서는 손님 접대를 준비된 형식에 맞추어 제대로 하지 못하면 대대손손 치욕으로 삼는 풍조가 있다. 손님 접대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피의 복수가 벌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해당 인터뷰를 한 소련군이 만약에 아프간 민간인의 집에 들어갔다가 살해당했다 하더라도 집 안에서 외부인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34] 물론 당연하겠지만 이건 핑계고 실제로는 정부 관료들이나 고위직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매매에 관련되어 있어서라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바차바지라고 해서 어린 남자애를 가지고 성매매를 하는 풍습이 돈 꽤나 있는 고위직들을 중심으로 은근히 펴져 있지만 제대로 처벌이 받지 않을 정도라 여성 인권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