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image] '''에티오피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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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연방 민주 공화국
የኢትዮጵያ ፌዴራላዊ ዴሞክራሲያዊ ሪፐብሊክ[1]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
'''
[image]
[image]
'''국기'''
'''국장'''
'''상징'''
'''국가'''
ወደፊት ገስግሺ ውድ እናት ኢትዮጵያ
전진하라, 나의 어머니 에티오피아
'''국화'''
칼라디움
'''국수'''
사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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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환경'''
'''영토 면적'''
1,104,300㎢ (2018년)
'''인문 환경'''
'''인구'''
117,876,226명(2021년) | 세계 12위
'''수도'''
아디스아바바
'''공용 언어'''
암하라어, 영어
'''지역 언어'''
아파르어, 하라리어, 오로모어
'''종교'''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43.5%)
개신교 (18.6%)
이슬람교 (33.9%)
토착 신앙 (2.6%)
'''민족 구성'''
오로모인 (34.5%)
암하라인 (26.9%)
티그리냐인 (6.2%)
소말리인 (6.1%)
'''군대'''
에티오피아 연방군
'''하위 행정 구역'''
'''연방주'''
9개
2개 (특별시)
'''정치'''
'''정치 체제'''
공화국, 의원내각제, 양원제, 연방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23위'''(2020년)[권위주의]
'''대통령'''
살러워르크 저우데
(ሳህለወርቅ ዘውዴ)
'''총리'''
아비 아머드 알리
(አብይ አህመድ አሊ)
'''상원 의장'''
아단 파라
(አዳድ ፋራድ)
'''하원 의장'''
타게세 차포
(ታኬሲስ ቼፖ)
'''경제'''
'''명목 GDP'''
$911억 (2019년)
'''1인당 GDP'''
$953 (2019년)
'''국부'''
$1,630억 / 세계 71위(2019년)
'''공식 화폐'''
비르 (ETB)
'''ccTLD'''
.et
'''단위'''
'''시간대'''
동아프리카 표준시 (UTC+03:00)
'''외교'''
'''UN 가입'''
1945년 11월 13일
'''여행
경보'''

'''여행
유의'''

황색, 적색 경보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여행
자제'''

오로미아주 내 (동‧서 웰레가, 보레나, 구지, 발레 지역)
'''철수
권고'''

아파르, 소말리, 감벨라, 베니샹굴-구무즈, 수단‧남수단‧에리트레아‧케냐 접경 10km 이내 지역[2]
'''국가 코드'''
ET
'''국제 전화 코드'''
+251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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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자연
5. 정치
6. 경제
7. 사회
7.1. 민족
7.2. 교통
8. 문화
8.1. 종교
8.2. 언어
8.4. 스포츠
8.5. 교육
10. 국호
11. 국기
12. 관광
13. 출신 인물
14. 창작물에서
14.1. 에티오피아 출신 캐릭터
15. 기타
1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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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티오피아는 동아프리카의 국가로 북쪽에 에리트레아, 동북쪽에 지부티, 동쪽에 소말리아, 남쪽에 케냐, 서남쪽에 남수단, 서북쪽에 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아디스아바바(አዲስ አበባ, Addis Abäba)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내륙국이기도 하다. 순수하게 인구만으로 따지면 나이지리아(약 2억)에 이은 아프리카 2위의 대국이다. 이집트(약 1억)나 콩고민주공화국(약 8400만), 탄자니아(약 5900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약 5700만)보다 인구가 많다. 2018년에는 인구 1억명을 돌파했다.
국명의 유래는 '검은 얼굴의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Αἰθιοπία(Aithiopíā)'[3]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파에톤이 태양 마차를 너무 낮게 몰아 피부가 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안드로메다가 이 나라의 공주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나일강 상류 지역에서 흑인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곳이 세상의 최남단이라고 생각해서 사하라 이남을 전부 에티오피아라고 불렀다.

2. 자연


국토의 거의 전체가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온대기후다. 당장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도 해발고도가 2,300m 이상이라서 여름, 겨울 없고 1년 내내 봄, 가을 같은 기후에 속하며,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은 적이 없다. 한마디로, 우리가 생각하는 아프리카와는 다르다. 온대기후 문서와 여기, 여기 참고. 적도 인근에 붙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겨울 혹은 밤에는 적게나마 눈이 내린다. 게다가 날씨도 건조한 편이기 때문에[4] 이 나라 사람들은 사시사철 긴팔옷을 입는다.
에티오피아 고원의 기후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단 하루에 사시사철이 들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침은 봄, 점심은 여름, 저녁은 가을, 밤은 겨울에 가까운 날씨로, 에티오피아 갈 때 아프리카에 간다고 얇은 옷만 잔뜩 가져갔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자신이 추위에 강한 편이 아니고, 장기간 체류할 일이 있다면 취침 시에 사용할 전기장판 정도를 챙겨 가거나, 밤에 입고 다닐 입고 벗기 쉬운 니트 한 벌 정도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저지대로 가면 환경이 고지대와 다르며, 동부와 북부의 저지대는 덥고 건조하다. 특히 북부엔 아파르 족이 거주하는 다나킬 사막이 있는데 이 사막 지대의 달롤(Dallol)은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이다. 이 지역의 해발 고도는 아주 낮아 -130m 정도이고, 극도로 건조하며 화산성의 형형색색의 기이한 호수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소금 암석이 많아 소금을 채취한다. 이곳의 '''연평균 기온'''은 34.4℃로 대구의 8월 평균 기온 26.4℃와 비교해 보면 압도적으로 높다.
에티오피아에는 특이하게 호주 재래종으로 유명한 유칼립투스 나무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랫동안 행한 벌목으로 숲이 크게 줄어들어 황무지가 늘어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수입해서 심었는데, 예상보다 나무들이 잘 자라서 큰 숲을 이루었다. 정작 고향인 호주에서는 기후 변화와 자연 파괴로 유칼립투스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호주 정부가 이 에티오피아산 유칼립투스를 역수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3. 역사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악숨 왕국은 한때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216년~274년, 3세기 살았던 인물)가 로마 제국·페르시아·중국[5]과 함께 4대 강국이라 했을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실제 국력은 영토·인구·군사력·기술 등을 따졌을 때 저들에 비해 한참 부족했다. 악숨 왕국은 로마의 영향력 아래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군사 지원도 받았으며, 당시 페르시아에서 인도·중국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홍해[6]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와 인도·중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했던 페르시아에 사는 마니가 악숨 왕국을 과대평가했을 수도 있다. (애초에 마니는 3세기 페르시아에 살던 인물이기에 그가 내린 평가가 무작정 정확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악숨 왕국은 당대 홍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로마와 이해관계가 맞아 동맹을 형성하면서 국력이 신장되었다.
아프리카에서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국가로 유명하다. 다만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이탈리아에게 패배하여 5년 정도 강점된 적이 있다. 이후 영국군 주도 연합군에 의해 이탈리아가 패배하면서 1941년 해방된 것이다. 그래도 강점되던 기간이 짧아 완전히 식민화됐다고 보기도 어렵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크게 비교되기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다.[7]
실제로 강점 기간 내내 이탈리아 군대는 에티오피아 전역을 장악하지 못하고 저항 세력의 게릴라전에 시달렸으며, 일부 지역은 1941년 영국군 주도 연합군이 에티오피아로 진격할 때까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지지하는 에티오피아 저항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1947년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를 포함한 연합국 진영 간의 '평화 협정(Treaty of Peace)'에서 이탈리아의 강점은 법률적으로 그 합법성이 부정되었고, 오히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 전쟁 배상금 성격의 배상금을 지급해야만 했다.
아프리카에선 나름 독보적인 이런 위치 때문인지, 한때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는 아프로 내셔널리즘의 구심점이 되어 종교적 숭배 대상(자메이카라스타파리 운동)으로 여겨질 정도였으며, 식민지에서 벗어난 아프리카 각국에서 새 국기를 제정할 때도 에티오피아의 국기 색(빨강, 노랑, 녹색)을 참고로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4. 군사




5. 정치


명목상으로는 다당제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2019년까지 에티오피아 인민혁명 민주전선(Ethiopian People's Revolutionary Democratic Front, EPRDF)의 일당 체제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멩기스투를 몰아낸 멜레스 제나위가 2012년까지 21년간 장기집권했지만, 그 후임으로 권좌에 앉은 하일레마리암 데살렌도 민주화 세력들을 탄압하면서 민주화의 길이 험난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후술되어 있듯 2018년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가 취임한 이후부턴 개혁이 추진되는 모양새.
이런 자국의 현실이 안타까웠는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정치적 행위를 해 논란이 된 게 바로 페이사 릴레사였다. 남자 마라톤에서 2위로 은메달을 받은 그는 리우 올림픽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또 리우 올림픽 폐회식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뒤 두 팔로 머리 위에 X자를 그렸다. 이는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에 나선 자신의 친척을 포함한 주민 1천 명 이상이 '''경찰의 강경 진압에 죽거나 투옥된 데 대한 저항'''이라고 릴레사는 밝혔다. 또 릴레사는 "나는 이제 에티오피아로 가면 죽거나 감옥에 갇힐 것이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논란이 커지자 에티오피아 정부는 릴레사를 영웅으로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릴레사의 에이전트는 AFP에 "릴레사가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픽에서의 정치적 언급은 메달 박탈 등의 징계 대상이지만, 민주화 시위와 관련된 이번 논란에 대해선 IOC도 난감한 모양새. 징계 때렸다간 IOC가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 하여튼 그는 이후 미국에서 몇 년간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2018년,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정부가 퇴진하고 오로미아 출신 신임 총리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가 취임한 이후 계엄령 해제와 정치범 석방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과 점진적 민주화'''가 일어나고 있다. 에리트레아와의 해묵은 영토 분쟁도 종결짓는 등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받고 있다. 이 공로로 아비 아머드 총리는 2019년 10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8년 10월 25일, 물라투 터쇼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사임함에 따라 새 대통령을 선출하였는데 살러워르크 저우데 전 아프리카연합 유엔 대표가 의회에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저우데 신임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
이때쯤 상기된 페이사 릴레사도 망명 생활을 마치고 조국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는 총리, 대통령과 함께 이젠 두 팔이 자유로워졌다는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 다만 2019년 6월 쿠데타 미수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 걸 보면 아직은 완벽히 정국이 안정되진 않은 모양. # 게다가 아비 총리의 정적인 자와르 모하메드의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에티오피아 인민혁명 민주전선이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에 의해 2019년 12월 1일부로 31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번영당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2020년 11월에 6개월 비상상태 선포와 북부 티그라이 지역에서 간밤에 군 캠프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면서 군 병력을 투입했다. # 티그라이 분쟁에서 에티오피아군의 민간인 학살이 이뤄지고 있다고 엠네스티가 발표했다. # 티그라이 분쟁이 에리트레아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 그로 인해 악숨의 공항이 파괴되는등 타격을 입었다. #

6. 경제


에티오피아는 아직은 농업 기반의 개발도상국으로, 세계에서 매우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의 병크들로 인하여 막장 국가로 전락했지만, 21세기 들어 안정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했으며, 8년 평균 11.4%에 달하였다. 올해 성장률 역시나 7.7%로 전망되는데, 이는 전세계 10위권 안에 든다. 물론 절대치로 보면 여전히 못 사는 축에 들지만, 한때 아프가니스탄보다 밑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을 생각해보면 많이 성장하긴 했다. 2017년 예측치 기준으로 아프가니스탄의 1인당 국민소득은 572달러인데 반해, 에티오피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846달러로 아프가니스탄은 추월한 상태이며, PPP 역시 아프가니스탄이 1,888달러인데 에티오피아는 2,104달러로 추월한 상태이다. 마이크로 크레딧(소규모 대출)도 활성화되어 있으며 국토 전반에 건설 붐이 확산되고 있다. 오가덴 등 소말리아 인접 지역은 예외이지만, 도로 공사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도시 내 높은 실업률 + 높은 출산률로 인한 급격한 인구 증가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금 보면 놀랍지만 1980년대 초반까진 한국이 에티오피아보다 인구가 많았다(...). 더 나아가 1990년대까진 이집트보다 인구가 적었지만 2001년을 기점으로 이집트의 인구를 추월했다. 2000년대 들면서 출산율이 6명대에서 4명대로 떨어지고 이를 기점으로 출생아수 증가세는 꺾였지만 그럼에도 사망률이 그만큼 하락하면서 인구 증가율은 여전히 2%대에 달하는지라 출산율이 인구 대체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2020~30년대엔 일본의 인구수를 추월할 게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어쨌든 이 인구 증가로 인하여 정부는 매년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영세 빈농 위주의 농업도 문제점으로 지적되는데,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중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아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에티오피아의 빈민층을 위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까트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이다. 에티오피아에 널려 있는 이 마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이것만 씹고 잉여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당연히 국가 발전에 위험이 될 수 있는 요소이다. 자세한 효과 등등은 해당 문서 참고.
식재료는 매우 값싼 편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공산품해외에서 수입해오기 때문에 공산품은 거의 한국의 가격과 비슷하다.[8] 가령 보급형 프라이팬이 한화 1만 5000원~2만원 정도인데, 이는 에티오피아 일용 노동자의 3일치 봉급에 준한다. 때문에 내륙국인 에티오피아 특성상 수입품을 받아오는 지부티와는 사이를 좋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 허나 이런 상황에 갑갑함을 느끼는 일부 호전적인 사람들은 "본래 우리의 속국이었던 에리트레아[9]를 침공해서 에티오피아를 다시금 바다와 접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라는 자극적인 주장을 하다가 역사 인식 문제로 주변국 국민들의 어그로를 한껏 끌어모으기도 한다.
에티오피아에는 아프리카에서 몇 안 되는 자동차 회사가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냐와 더불어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이름은 홀란드 카(Holland Car PLC, ኔዘርላንድ መኪና - 네절란드 메키나). 즉, 네덜란드 차(메키나)이다. 네덜란드와 에티오피아 자본이 합작으로 세운 회사이며 판매도 생각보단 꽤 되고 있다. 그러나 차는 중국산을 배지 엔지니어링한 차다. 사실 에티오피아 도로 위의 차는 다수가 토요타, 혼다와 같은 일제 자동차들이다.
의외로 한국산 차들의 인기도 상당한 편인데, 도로 위의 차의 75%가 일제라면, 나머지 20% 이상 정도는 한국차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차들 역시 일본 차와 비슷한 장점으로 호평을 받는데, 싸고 튼튼하고 부품 수급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부잣집 규수 생일 선물로 다마스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라고 하니 그 위상을 가늠할 만하다. 사실 한국 차들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제품들도 꽤 있고, 한류 등의 영향인지 한국에 대한 인상도 좋은 편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된 항공사이자 에티오피아의 플래그 캐리어인 에티오피아 항공은 시도때도 없이 보잉에어버스에 신 기체 발주를 넣는다. 그것도 최신 기종으로만. 2010년대 들어선 보잉보잉 787 5기를 '''추가''' 주문했고, 에어쇼에서는 뒤도 돌아볼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에어버스 A350 12기를 주문했다. 인천국제공항에도 보잉 787이 들어온다.
코로나19으로 인한 물류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에티오피아가 국영 항공사를 이용해 수출을 늘렸다. #

7. 사회


사회적으로는 치안 등 여러 부분이 아직 후진국스러운 건 사실이라, 한 기자는 2004년 들짐승이 사람을 해친다는 보도를 했다가 '''치안 문제를 어지럽힌다는 죄'''(?)로 2년이나 수감되는 코미디스런 일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기자가 한국 관련 우호적인 기사도 쓰던 기자라서 현지 거주 한국인들은 안타까워했다고.
다만 치안의 경우 자신이 주의하면 수도 권역 내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최소한 경찰들이 강도짓하고 다니는 무법 지대는 아니며, 사람들의 인식 자체도 외국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기 때문에, 외국인 대상의 소매치기를 시민들 스스로 제압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케바케라 스스로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10]
단, 아시아인에 대한 호감은 한국인일본인, 그리고 홍콩인이나 대만인에 한해서만 한정이다. 10만 명에 가까운 대륙 중국인들이 에티오피아에 있고, 중국인 범죄자들 때문에 치안 당국은 상당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시민들의 시선 또한 비슷하다. 주변 사람들이 '칭챙총~ 칭챙총~' 하고 놀리면 그냥 무시하고 가거나 암하라어로 '나는 한국인입니다'인 "더북 코리아위 넨"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다시 갈 길을 가거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7.1. 민족


에티오피아는 다민족 국가이며, 에티오피아인이란 개념은 미국인이란 개념과 같이 민족보다는 국가 중심의 개념이다. 에티오피아를 이루는 주요 민족은 암하라인, 오로모인, 소말리인, 티그리냐인, 누에르족, 아파르족 등이며, 특히 인구 비율로는 암하라인과 오로모인을 양대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에티오피아의 핵심 민족은 암하라인으로서, 에티오피아 제국 시절부터 국가의 중심 민족이었다. 현재 에티오피아 공용어암하라어도 암하라인의 언어이고, 문화적으로도 영향력이 크며, 지배 민족으로 군림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민족별로 거주 지역이 비교적 잘 나뉘는 에티오피아 안에서도 암하라인은 구 소련의 러시아인처럼 일정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다.
오로모인은 인구수로 에티오피아 최다 민족이며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오로모인들이 사는 오로미아 주는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크다.[11] 최다인구에도 불구하고 암하라인 중심의 에티오피아 체제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멩게스투 군사 정권 시절에는 오로모어 사용도 억압당하여 불만이 크며, 오로모 해방 전선이라는 분리 독립 단체도 있다. 또한 에티오피아 다른 언어들이 암하라어를 표기하는 그으즈 문자를 쓰는데 비하여 오로모어만은 로마자를 쓴다. 종교적으로도 암하라인들은 에티오피아 제국을 중심으로 보는 관점에선 테와히도 정교회를 믿고 역사적으로 에티오피아 제국의 중심 민족이었던 반면, 오로모인들은 16-17세기 아프리카 중부 내륙 지방에서 대거 이주해왔으며 종교도 이슬람교가 중심이다. 에티오피아 자체는 독자적인 기독교 문화로 알려져 있지만 오로모인들의 중심 도시인 하라르만 하더라도 동아프리카 일대 무슬림들에겐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다음가는 성지로 취급받을 만큼 그 지역에선 나름 이슬람 문화의 역사와 깊이도 만만치 않다.
소말리인은 에티오피아 동부에 거주하며, 한때 이 소말리인들이 사는 오가덴 지역을 소말리아가 침공하여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티그리냐인은 약 6%를 차지하는 종족으로, 비교적 소수이지만 이웃 에리트레아에서는 다수 민족이다. 에티오피아는 종래 쓰이던 행정 구역 대신, 특정 민족이 다수인 지역을 민족주라는 개념으로 묶는 행정 개편을 하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인구가 다섯 번째로 많은 민족인 시다마(Sidama)인은 1960년대까지는 대다수가 토속 신앙을 신봉하였으나 서구 개신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인구 대다수가 개신교를 믿고 있다.
희한하게도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 중 많은 숫자가 바로 이곳 에티오피아 출신이다. 유대인 인구부족 해소를 위해 이스라엘에서 정책적으로 에티오피아에 살던 유대인들을 자국으로 이주시켜준 것. 참고로 영국인 탐험가가 에티오피아를 탐험하던 중 한 부족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의 성소 위에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 탐험가가 부족장에게 물으니,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들이 솔로몬 왕의 후손이며, 자신들 외에 다른 이들이 유대교를 믿는 줄도 몰랐다 한다. 여객기 단일 기종으로 최다 인원을 수송한 기록이 에티오피아의 유태인 탈출이다.
에티오피아 남부 내륙 지역에는 '''오모'''(Omo river)라고 칭하는 이 흐르고 있는데 이 '''오모 강''' 유역에 사는 부족들이 1974년영국인류학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수르마족(Surma), 무르시족(Mursi)[12]여성들은 일정 이상의 나이를 먹으면 피부에 일부러 날카로운 칼 등으로 피부를 따서 흉터를 내며[13] 아랫 입술을 절개해 그 사이를 넓혀 원반 모양의 판을 끼우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14] 얼굴 아래 쪽에 피어싱을 한 것이 마치 이 부족을 닮은 듯. 거의 원시 시대부족 생활 상태를 유지하며 아직까지도 생활하며, 매우 특이한 풍습을 유지하고 있기에, 이를 보려고 관광객이나 사진작가들이 주로 사진 촬영 목적으로 방문하는데, 사진 촬영할 때마다 일인당 일정 금액을 주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고 있다. 물론 에티오피아의 경제 사정이 워낙 열안한 상황이라 한국 원화 환율 가치로, 1인당[15] 이삼백 원 정도에 해당하는 현지 화폐를 주면 사진 촬영에 응한다고 한다. 보통 5~10 비르를 준다고 한다. 을 들고 나오며, 사진 촬영을 할 것을 요구하며, 돈을 요구하는 부족민들도 있는데, 총을 들고 나오는 행위는 관광객들에게 위압감을 줘서, 이 술술 나오기 위해서 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한다.
EBS 다큐, 인류 원형 탐험 - 접시 부족 에티오피아 무르시( Mursi )족

이 부족들은 여성들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특이한데, 이 부족들의 남성들은 대부분이 실 한 올 걸치지 않고 나체로(!) 생활한다. 그나마 에티오피아를 찾는 관광객들이 돈이 되고,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중요한 부분은 가리는 남성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엔 아프리카 내에서 나체로 생활하는 부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이 부족들의 남성들은 '동가(Donga)'라는 긴 장대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서로 이 동가를 휘두르며 일종의 결투를 한다. 또한 남자 아이의 성인식을 할 때도 이 동가 결투를 이용하며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가 부상을 당한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 것이, 이 부족의 남성들은 자신들이 용맹한 전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중, 수르마족은 민족 연방 체제로 가기 위한 일환으로 주민 투표를 통해 수르마족 지역 창설을 추진한다고 한다. #

7.2. 교통


에티오피아 항공이라는 아프리카에서 꽤 큰 항공사가 위치한 곳이다. 아시아에는 베이징, 방콕, 서울, 도쿄, 홍콩 등에 취항 중이다. 그 외 유럽 방향으로는 터키이스탄불, 러시아모스크바,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마드리드 등으로 가고 영국 노선도 탑승률이 높으며 인도로 향하는 노선들의 탑승률도 높다. 인도인들 역시 에티오피아를 많이들 찾으며 최근 몰려오는 중국인들과 함께 인도인들의 진출이 활발한 편이며 이쪽이 더 오래되었다.
그 외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두바이 국제공항을 거쳐오는 방법이나 캐세이퍼시픽 항공으로 홍콩 국제공항바레인 국제공항을 거쳐 오는 방법도 편하다. 에티하드 항공으로는 아부다비를 거쳐올 수 있다. UAE의 경우도 아프리카 국가들과 교류가 활발하고, 아랍인들 또한 에티오피아에서 흔히 볼수 있다.
소말리아, 지부티와 연결되는 684km의 철도가 있다. 2012년에는 중국, 터키랑 합작 투자 계약을 맺고 철도 연장 계획을 발표했다.
그 외에는 이집트, 수단, 에리트레아, 케냐 등과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특히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간에는 항공 교통량이 많다.
현재 ET672, ET673편으로 운영 중이며, 672편은 아디스아바바>>>인천>>>도쿄 방면이고, 673편은 도쿄>>>인천>>아디스아바바 방면이다.

8. 문화



8.1. 종교


민족별로 믿는 종교가 다르다. 보통 고원 지대의 농민들은 기독교를 믿고 저지대의 반농반목 민족들은 이슬람을 믿는다.
에티오피아의 실세인 암하라인, 에리트레아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티그리냐인들은 대부분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를 믿는다.
반면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오로모인, 아파르족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경우가 많지만 토속 신앙이 혼재되어 있다. 오가덴 지방의 소말리인의 경우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있다.
시다모인의 경우 개신교 인구가 전체 민족 인구의 70% 이상에 달한다. 토착신앙도 있다.

8.2. 언어


공용어는 암하라어(Amharic language, 현지어로는 '아마른냐')이다. 언어학적으로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셈어파에 속한다. 아랍어히브리어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의 언어는 유구한 전통을 가져왔으며 '게즈(Ge'ez)어'[16]라는 공통 조상을 갖는다.
티그리냐어(Tigrinya)는 에리트레아 국경 지대에서 쓰이며, 이들은 암하라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아시아어족셈어파에 속한다.
오로모어(Oromo), 아파르어(Afar)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쿠시어파에 속하며, 소말리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에티오피아 남부의 수르마족무르시족들이 쓰는 무르시어와 수르마어는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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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문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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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에티오피아 문자로 쓰인 신문
에티오피아 문자는 독특한 외양과 달리,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 알파벳과 조상이 같은 문자다. 셈족 계통인 에티오피아 지방의 언어들은 대체로 남부 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아왔는데, 이 남부 아라비아에서 쓰이던 문자가 에티오피아로 넘어와서 모음 부호를 붙이는 식으로 발전한 것. 이전에는 모음 부호를 표시하는 선 없이 아랍 문자처럼 자음만을 표기할 수 있었지만, 암하라어에는 모음이 7개(어, 우, 이, 아, 에, 으[17], 오)나 있기 때문에 모음 부호를 붙이게 된 것. 라틴 알파벳과 달리 각각의 자음 글자 위에 선을 긋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 다르지만, 위 표에서 가로 방향 끝에서 두 번째 글자('으' 모음을 결합한)들을 보면 라틴 알파벳과 유사한 글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L 발음을 나타내는 문자는 그리스 문자람다(Λ,λ)와도 유사하다.
에티오피아 문자에는 고유 숫자도 존재하는데, 그리스 문자로 표기한다. 1은 α, 2는 β, 3은 γ라는 식으로... 로마 제국으로부터 그리스어를 들여왔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되고 있다.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인 만큼 영어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영어는 초등학교 4학년 부터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아디스아바바를 비롯한 도시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많은 관광지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의외로 에티오피아에선 히브리어의 위상이 높아서 공산정권의 붕괴이후, 유대인들의 위상과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늘고 있다.

8.3. 음식




8.3.1. 커피


커피의 원산지이자 본고장이다.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생산된 커피는 특유의 다양하고 화려한 맛과 '''꽃향기'''가 나는 커피로서 미식가들에 의해 매우 높게 평가받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건식 처리를 거치며 품종 자체가 카페인이 다른 곳의 커피에 비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지역은 수세식 가공도 하는데, 남부 지역의 시다모 구지 커피와 하라르 일부 지역이 대표적이다. 단순 수세 처리가 아닌 특유의 발효 공정을 거쳐 카페인을 떨어뜨리고 복잡한 향미를 구성한다. 또한 이르가처페[18] 지역의 선드라이드 커피[19]도 유명하다. 인접국인 탄자니아와 케냐, 예멘[20]도 커피로 유명하며, 이 나라들에 커피 종자를 퍼뜨린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커피의 땅이라 불리는 만큼 스페셜티(Specialty)라 불리는 커피들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대표적인 스페셜티 커피로는 에티오피아 하치라, 에티오피아 네키세 등이 존재한다.
또한 에티오피아 정부는 자국 내 커피 재배 농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커피 품종에 상표권을 등록하였는데, 커피 주 수출업자인 스타벅스는 반발하였으며, 그들은 대신 정부에게 농민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였으나 거부하였다. 이에 국제 공정무역 단체인 옥스팜은 스타벅스를 비난했으며, 제나위 대통령까지도 스타벅스에 대하여 에티오피아 커피 수출을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내놓았다. 결국 스타벅스도 물러서서 상표권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스타벅스는 그동안 에티오피아 커피 원두를 헐값에 사가는 등의 횡포를 저질러 왔다. 이런 비난 속에 스타벅스는 수매가를 10배 이상 올린다고 밝혔으나 에티오피아에서도 이젠 스타벅스에 파느니 공정 무역으로 파는 것이 그 몇 배를 더 벌 수 있다며 피하고 있을 지경이라고 한다.

8.3.2. 까트


에티오피아나 예멘이나 지부티 같은 일부나라에선 기호품...이라고 주장하지만 마약이나 다를 거 없는 까트가 문제시되고 있다. 까트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중독성이 있고 재배에 많은 물이 필요하여 여러 모로 땅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이 카트가 허용되고 있는 게 문제. 여러 나라에 수출도 하여 돈벌이도 좋았는데 커피 다음으로 에티오피아 수출 품목 2위였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까트를 수입 금지하고 마약으로 규정지으면서 에티오피아는 수출에서도 큰 타격을 받았다. 여러 나라에 수출금지를 해제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상태.

8.4. 스포츠


마라톤에서 세계적인 강국이다. 국토가 '아비시니아 고원' 위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폐활량 키우기에 유리해 올림픽의 괴수급 마라토너가 자주 나온다. 아프리카 흑인으로는 사상 최초로 올림픽을 제패한, 그리고 단 2명뿐인 2회 연속 마라톤 제패자 중 하나인[21] 아베베 비킬라라는 선수는 올림픽을 맨발로 완주했다. 뱀발로 정식 훈련을 받은 마라토너가 아니라, 황실 호위대 소속의 군인이었다고 한다. 비킬라 아베베는 이 공적으로 일병에서 중위로 진급했다.
그런데 굴욕적인 것은,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아베베가 우승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22] 일본 측에서 에티오피아 국가를 아예 알지조차 못해서 우승했는데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 국가 대신 기미가요가 연주되고 대충 정리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베베는 훗날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이후에도 장애인 양궁 선수로 활동했으며 휠체어 탁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장애인 개썰매 대회에 나가 우승하기도 했다.
인터넷 블로그 등지에는 스토크 맨더빌 대회에 나가 탁구와 양궁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중에 노르웨이 장애인 올림픽 썰매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땄다더라, 하고 서술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베베는 장애인 올림픽에는 참가한 적이 없으며 장애인 경기의 양궁대회에 참가했을 뿐이다. 그래도 7위 정도 했다는 듯. 스토크 맨더빌 대회=장애인 올림픽(패럴림픽)이며 아베베는 그냥 스토크 맨더빌에서 치료받은 것이다. 노르웨이의 경기도 그냥 초창기 장애인 경기인 듯 하다. 노르웨이의 장애인 올림픽은 아베베가 죽은 뒤인 1980년에 열렸다(...). 아마 신화화 과정에서 과장됐거나 번역에서 오역이 일어난 모양.
2000년대 와서도 케냐와 더불어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23]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2시간 3분 벽을 처음으로 깬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2008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3분 59초)를 비롯한 선수진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2시간 2분 벽을 처음으로 깬 케냐의 키메토(2014년 9월 베를린 마라톤, 2시간 2분 57초)를 비롯하여 최근 들어 세계 1위 기록은 연이어 케냐에게 넘기고 있다.
어쨌든 에티오피아에서 마라톤을 잘하면 엄청난 출세를 하기에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게브르셀라시에만 해도 베를린 마라톤 우승 상금으로 받은 돈이 에티오피아 평균 직장인 연봉 40년어치였다. 지금은 엄청난 부자가 되어서 그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무려 6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마라톤 유망주가 유럽이나 아랍에 귀화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런데 육상선수들이 도핑이 걸려 문제가 되고 있다... 관련기사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과 다를 바 없이 축구 또한 최고의 인기 종목이다. 프리미어 리그를 비롯한 유럽 주요 축구 리그 및 주변 아프리카 리그 경기도 많이 틀어준다고 한다. 다만 인기에 비해 현재 에티오피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준은, 아프리카 내에서 에티오피아의 국력과 위상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적이 없으니... 과거엔 자국에서 열린 196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 물론 오늘날의 네이션스컵처럼 대회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이 시절이 에티오피아 축구 역사상 최전성기인 셈.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뜬금없이 1차 예선에서 소말리아를 격파하고 2차 예선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등을 이기며 엄청나게 선전하여 최종 예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최종 예선에서 나이지리아에게 1-2, 0-2로 패하면서 결국 월드컵 사상 첫 진출은 좌절.

8.5. 교육


에디오피아는 80년대 후반부터 정부 차원에서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90년대 중초반엔 교육 예산이 전체 예산의 30%이상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2010년대에도 여전히 교육 예산은 전체 예산의 15%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으로 초등학교 취학률은 90%선에 달하며, 이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가장 높은 편이다. 초등 교육이 의무, 무상 교육은 아니지만 가정에서 의지만 있으면 학업을 하는 데 문제가 없을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률은 60%선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등 학교 취학률은 남여 모두 40%선이나, 졸업률은 남성 28%, 여성 11%로 중등 학교에서 학업을 끝내는 학생의 성별 차이가 꽤 있는 편이다.
정부에서는 학교 시설 확보와 교원 확보, 기존 교원의 처우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없는 살림에도 시설 확보에는 돈을 퍼부어 기반 시설이 전무한 낙후 지역에도 학교는 들어서 있을 정도로, 시설 측면에선 진일보한 면이 크다. 하지만 교사를 할 정도로 고등 교육을 받은 이들이 적고, 교사에 대한 처우가 열악해 만성적인 교사 부족을 겪고 있다. 2000년대부턴 교원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사범대학을 전국에 설치했고,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사범대학에 진학한 학생의 가정에 일정한 경제적 보조를 해줄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여전히 농촌을 중심으론 조혼 풍습과 여성의 교육 접근에 대한 부정적 문화가 널리 퍼져 있어, 실질적인 교육 확대의 속도가 더딘 것이 사실이나,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와는 달리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는 지속하고 있어 이런 노력이 언젠간 빛을 볼 것이란 전망이 강하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교육에 지속적인 투자를 했던 것은 정권을 잡았던 독재자들이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 출신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멩기투스의 경우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을 했고, 그 후임인 제나위 역시 에티오피아 최고의 명문 대학 출신에 취미가 독서일 정도로 지적인 인물이었다. 실제로 교육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것도 멩기투스가 정체를 대통령제로 전환한 것의 일환이었다.

9. 외교




10. 국호


중세 이래 1974년 정변 때까지는 '에티오피아 제국(የኢትዮጵያ ንጉሠ ነገሥት መንግሥተ, yeʾĪtiyoṗṗya Nəgusä Nägäst Mängəstä)'이다가, 마지막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가 폐위된 이후 '더르그(ደርግ, Därg)'라는 군부 정권을 거쳐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공화국'(የኢትዮጵያ ሕዝባዊ ዲሞክራሲያዊ ሪፐብሊክ, yeʾĪtiyoṗṗya Həzbāwī Dīmōkrāsīyāwī Rīpeblīk)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1992년 사회주의 정권이 타도되고 임시정부가 들어섰다가 1995년 연방헌법 발표 이후로 현재의 정식 국명은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 공화국(የኢትዮጵያ ፌዴራላዊ ዲሞክራሲያዊ ሪፐብሊክ, yeʾĪtiyoṗṗya Fēdēralawī Dēmokirasīyawī Rīpebilīk)'.
영문으로는 'Ethiopia'라고 하며 과거 한국에서는 이디오피아, 에디오피아 등 다양한 표기가 혼용되었으나 1986년부터 에티오피아가 확실한 표준이 되었다(기사). 다만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다른 표기가 계속 혼용되었으며, 한국에 오는 에티오피아인들은 "이디오피아가 가장 정확한 발음"이라며 한국식 표기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고 한다.[24]
옛날에는 아랍어로 الحبشة(al-Ḥabašah), 즉, '아비시니아(Abyssinia)' 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혼혈들의 나라'라는 뜻이다.

11. 국기


범(凡)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초록, 노랑, 빨강의 3가지 색과 가운데에 파란색 바탕에 노란 별무늬가 새겨진 국기이다. 초기에는 삼각형으로 된 모습이었다가 왕정시절에 지금의 3가지 색 가로형 국기에 사자 무늬를 새긴 국기로 사용했다. 그러나 1975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멩기스투 정권시절부터 3색 무늬는 유지되었지만 사자 무늬가 왕정의 잔재라며 없어지게 되고 1987년에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문장이 추가되었다. 1991년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면서 사회주의 문장을 삭제하여 3색의 국기로 있다가 1996년 지금의 파란 원 바탕에 노란 별무늬를 새긴 문장을 추가하였다.
초록색은 농업과 자연, 노랑색은 희망과 공업, 빨강은 국력과 피를 상징한다. 가운데 파란색 원 바탕의 노란 별무늬는 솔로몬의 별이라 불리우며 에티오피아의 민족 융합을 상징한다.

12. 관광


볼레 국제공항 입국자에 한해 도착비자 혹은 전자비자를 발급받아 갈 수 있다. 육로 입국시엔 일반 비자가 필요하다.
2015년 기준 에티오피아 대부분의 지역은 여행 유의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2014년 들어 알샤바브 등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조직의 테러가 빈번해진 것도 원인일 듯. 다만 '''오가덴 주와 아파르 주, 국경 지역은 철수권고 지역'''인데, 오가덴 주는 다름아닌 소말리아와 인접한 곳인데다가[25] 과거 영토 문제로 오가덴 전쟁도 일어났던 지역이다. 아파르 주는 에리트레아와의 분쟁이 원인인 듯 하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북부에 몰려있다.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중세 암굴 사원으로 유명한 '''랄리벨라''', 수십미터 높이의 오벨리스크로 유명한 고대 도시 '''악숨''', 그리고 17 ~ 19세기 수도였던 곤다르가 유명하다. 그 외에 바다보다 낮은 땅 (해발 - 100m)인 다나킬 사막의 소금 광산은 탐험가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다. 평균 기온 20도 대를 유지하여 아프리카 국가들 중 선선한 편인 에티오피아에서 유별나게도 한여름엔 68도까지 올라가는 극도의 더위를 느낄 수 있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비는 이동 시에 경유지로서 주로 들리며, 이슬람 문화를 간직한 동부 지역의 '''하라르'''도 최근 관광객이 늘고 있다. 하라르 지방은 커피의 원산지로서 진짜 수제 커피를 찾는다면 가볼만 하다. 다만 남수단과 접한 서부, 케냐와 접한 남부, 그리고 소말리아와 분쟁이 있는 동남부 오가덴 지역은 치안이 불안정하고 볼거리도 많지 않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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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리벨라에 위치한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
에티오피아 동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신앙이 수 천년간 우세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관련 유적이 많다. 그래서 성지 순례 관광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중. 인천국제공항에 취항, 2018년 6월 2일부터 직항으로 운항하는 에티오피아 항공도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아디스아바바를 포함한 국토의 전반적인 관광지들이 아직 개발, 개척이 미숙한 상태라 오로지 관광 목적으로 체류하기엔 그 매력요인이 적을 수도 있다. 대개는 수도 시내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국립 박물관의 루시를 보러 가거나,[26] 바로 그 옆의 아디스아바바 대학, 그리고 몇몇 전통 시장이나 신생 쇼핑몰 정도만 들리는 편. 대중교통이 편리하지도 않고,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기에 차가 없다면 어디로 옮겨다니기가 쉽지 않다. 다만 2015년 여름에 아디스아바바 시내에 경전철이 개통되어 대중교통이 조금이나마 편리해졌다.
과거와 다르게 혐중 감정이 점점 심해지면서 같은 동양인인 한국인 입장에서 여행하기 상당히 위험한 장소가 되었다. 한국인이 백인을 보면 일단 미국인을 떠올리는 것처럼 에티오피아인들에게 동양인 =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배낭 여행객들의 여행기가 종종 블로그에 올라오곤 했다만 지금은...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때문에 에티오피아를 친중 국가로 생각할 수 있는데, 빨대 꼽는 사람들은 친중, 빨대 꼽힌 사람들은 반중이라 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중국-아프리카 관계 문서 참조

13. 출신 인물




14. 창작물에서


퇴마록에서 '모세의 계약궤'가 숨겨진 장소로 이 나라가 등장한 적도 있었다.
1970년대, 마쓰가에 하리의 『에티오피아 그림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 궁정의 시녀들은 식탁에 식기를 평행이나 직각이 되게끔 배열하지 못한다.
  • 호적도 없고 결혼 선물도 없다. 그 때문에 살인도 현행범이 아니면 범인의 실재성이 문제가 될 정도다.
  • 이혼율이 높고 이혼을 둘러싼 분쟁도 없다.(큰 재산이 없기 때문) 덧붙여서 이혼의 원인으로 가장 많은 것은 남편의 술 중독이다.
  • 실업률은 약 90%로, 수도 아디스아바바에는 거지떼가 넘쳐난다. 그에 대한 대책이란 거지를 트럭에 싣고 숲에 가서 버리는 것.
  • 골프장은 있지만 떼가 왔다갔다하고 있다. 양이 골프장 잔디를 먹으면 잔디 길이가 꼭 알맞게 된다고 한다.
  • 명함에 어떤 칭호를 써 넣어도 상관없다.
  • 원숭이에게 물린 상처가 봉합만으로 완치된다. 이것은 에티오피아인에게 항체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이들에게서 스웨덴 사람들의 10배 내지 20배의 면역 글로불린 수치가 나오는데, 맨발로 생활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발바닥으로부터 균이 비집고 들어와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역사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적당히 구워진(...) 에티오피아인 신화처럼 실제로 에티오피아인들과 이웃 수단, 지부티, 소말리아인 등 동북아프리카 흑인들은 주변 남수단이나 케냐, 우간다의 흑인보다 피부색이 연하고 외모도 좀 다른 편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인종주의가 심하던 시절엔, 에티오피아인들은 원래 흑인이 아니었고 로마 제국의 군인들이 아프리카로 갔다가 정착했다며 띄워주는 허황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는 중동의 셈계 백인들이 지금의 에티오피아 땅으로 가서 흑인들과의 혼혈 결합을 통해 지금의 에티오피아인이 된 것이지만... 러시아의 대시인 푸쉬킨의 조상인 유명한 표트르 대제의 흑인 시종, 아브람 페트로비치 가니발이 에티오피아인이라는 것도 사실 이런 19-20세기스런 유사역사학적 인종이론에 따라 서양 학자들이 '진짜 오리지널 사하라 이남 흑인이 유럽 사회에 적응하고 대문호를 후손으로 배출할만큼 지능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깐 그나마 백인에 가까운 에티오피아인이 분명함!'이란 식으로 왜곡하여 발생한 가설이다. 관련 학자들의 자세한 연구에 따르면 가니발은 에티오피아하고는 눈곱만큼의 관련도 없는 아프리카 반대편에 있는 현대 카메룬 일대 출신이었다고 본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에서는 4편5편등장했다. 문명 4에서의 지도자는 기독교를 진흥시킨 군주 가운데 하나인 자라 야콥(Zara Yaqob)으로 창조적, 조직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고유 유닛은 에티오피아인을 이루는 민족 가운데 하나인 오로모 족에서 따온 오로모 전사인데 선제 공격을 받지는 않으면서 이쪽에서는 가하여, 머스킷 총병을 대체하는 유닛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하다. 또한 악숨 왕국 시대에 많이 세워졌던 석판(스텔레)는 창조적 특성이 있는 바람에 빛이 바라는 감은 있지만 문화를 추가로 제공해주어 국경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 준다. 한편 5편의 지도자는 하일레 셀라시에이며, 특성인 '아두아의 정신' 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침탈당하면서도 독립을 유지해온 근현대사가 반영되어 자신보다 더 많은 도시를 가진 문명들을 상대로 전투력 보너스를 받는다. 또한 석판은 문화 대신 신앙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어 나왔으며, 6.25 전쟁에도 참전했던 황실 근위대 메할 세파리가 산업 시대의 고유 유닛으로 등장하여 튼튼한 방어벽을 세울 수 있게 돕는다.또한 6편의 뉴 프론티어 패스 3번째 문명으로 등장하였다.지도자는 메넬리크 2세이며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문화 유적인 암굴교회가 고유 시설로 나왔고 아두와 전투에서 활약한 오로모 기병대가 고유유닛으로 등장했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결성된 나일 강 주변 국가들의 연합체인 "나일 강 연합(Nile River Coalition)" 을 주도하는 국가로 묘사되는 데, 이 NRC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 이집트 수도 카이로까지 털어먹은 세력으로 등장한다.

14.1. 에티오피아 출신 캐릭터



15. 기타



16. 관련 문서



[1] ''yeʾĪtiyoṗṗya Fēdēralawī Dēmokirasīyawī Rīpebilīk''[권위주의] 3.38점[2] 외교부 해외 안전여행.[3] αἴθω(aíthō, 검게 타다) + ὤψ(ṓps, 얼굴)[4] 건기 한정.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를 보면 연 평균 강수량이 그래도 1,000mm 이상 되며, 우기와 건기로 나누어진다.[5] 마니가 살던 시절 중국은 분열기였다.[6] 19세기에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뚫은 것도 이 홍해 루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으며, 현대 미국도 홍해를 중요하게 여기고, 중국 역시 이 곳을 핵심 이권이 달린 지역으로 여겨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를 이 지역에 위치한 지부티에 건설하였다.[7] 남아프리카 공화국라이베리아도 '식민지화를 받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로 함께 거론된다. 다만 독립성의 경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사실상 독립하기는 했지만 아직 대영제국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었으며 90년대 이전까지 소수의 백인 이주민들이 다수의 아프리카 흑인 토착민들을 누르고 통치하는 나라였고, 라이베리아는 미국의 해방 노예들이 건너와 원주민 흑인들을 노예로 삼아 만든 나라로 미국의 비호를 받았기 때문에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8] 원래 식재료는 부패가 쉽고, 운반, 보관이 어렵지만, 공업 제품은 그렇지 않아 국가간 이동이 원활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9] 티그리냐인이 인구의 55%를 차지하는 에리트레아는 민족 구성이 판이하게 달라, 에티오피아 중앙 정부와 갈등을 거듭하다가 결국 전쟁을 치르고 독립했다. 에리트레아가 떨어져나간 현재의 에티오피아에서 티그리냐인이 차지하는 인구 비중은 전체의 6% 남짓에 불과하다.[10] 간단히 생각하자. 지구상에 한국보다 치안이 좋은 나라는 하나도 없다. 화성연쇄살인사건보다 더 큰 살인이 매년 나는 나라가 널렸다. 안전국가로 한국과 최대로 비슷한게 이 세상에 일본 하나 뿐이다. 유럽이나 미국인들 중에는 자신의 나라와의 압도적 범죄율 차이나 치안율 차이를 보고 한국은 살인사건 자체가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한국은 살인사건이나 강력범죄, 조직범죄가 없나? 있다. 즉 여기도 어차피 한국보다는 비교도 안 되게 위험하니 방심하면 언제라도 죽는다. 당신도 여기서 한국에서보다 더 심하게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강도살인을 당할 수 있다. 한국보다 안심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걸 명심하자.[11] 수도 아디스아바바도 오로미아 주에 둘러싸여 있다.[12] 두 부족은 서로 가까운 친척뻘이라고 한다. 그래서 풍습이 거의 비슷하다.[13] 흉터가 아물면 피부가 울룩불룩 튀어나온다.[14] 이 부족에서는 여성이 흉터를 내고 더 큰 원반을 끼우는 것이 매력 있다고 평가받는다.[15] 성인뿐만 아니라 영유아, 아동 또한 별도로 1인당 지급.[16] 실제 발음은 그으즈에 가깝다. 중간의 으 부분에 여린히읗을 넣어 발음하면 거의 똑같다.[17] 한국어의 ㅡ처럼 얘도 자음이 연속해서 붙는 걸 막기 위해 땜빵으로 들어가는 담당이다.[18] 마이너한 언어가 으레 그렇듯 통용되는 표기가 여러 개인데, 영어로는 보통 Yirgacheffe가 가장 흔하다. 예가체프라는 명칭은 이걸 잘못 읽은 것. 현지 언어로는 첫 번째 e가 ㅓ, 두 번째 e가 ㅔ다. 그리고 사실 y 앞의 i는 ㅣ가 아니라 ㅡ.[19] 나무에 달린 상태로 마를 때까지 뒀다가 따는 커피.[20] 요즘은 물량이 없어서 못 먹지만, 과거 예멘의 항구인 무카 항에서 수출된 커피는 최고급 커피로 유명했다. 거기서 탄생한 브랜드가 "모카 커피"[21] 다른 1명은 구 동독의 발데마르 치에르핀스키(1976, 1980). 단 이 기록은 아베베 비킬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미국과 자유진영 국가들이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22] 대회가 있기 바로 이전 달에 맹장수술을 받았다. 그 몸상태로 대회에 출전한 것 자체가 괴물인 것.[23] 마라톤은 그때그때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대회 신기록이라는 말은 쓰이나 세계 기록을 일컬을 땐 세계 최고기록이란 용어를 사용한다.[24] 관련기사. 다만 이런 야사는 나라마다 다 있으니 특별하다 할 건 없고, 명칭에 정말 문제가 있는 경우 국가간의 요청으로 명칭을 공식적으로 정정하면 바로 반영해 주니 이건 결국 에티오피아 정부가 신경을 안 쓴다고 보는 게 옳다. 한국과 하등의 이해관계도 없는 벨라루스가 자국을 '벨로루시라 부르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하자 한국은 바로 해당 표기를 폐기하고 벨라루스로 정정한 사례가 있다.[25] 특히 알샤바브가 자리잡고 있는 남부 소말리아와 접하고 있다. 그래서 소말리아에서 알샤바브가 에티오피아로 건너가 많은 테러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26]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가는 것이 좋다. 그냥 정말 오래된 원숭이 뼈가 잘 놓여져 있는 느낌.[27] 다만 애석하게도 한국에서는 코로나19가 다른 국가에 비해 잘 잡힌 바람에 가을 들어서는 에티오피아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한국을 4배 이상 한참 추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