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 철폐

 


1. 개요
2. 상세
3. 서원 목록
3.1. 남한
3.1.1. 서울특별시
3.1.2. 부산광역시
3.1.3. 인천광역시
3.1.4. 대전광역시
3.1.5. 대구광역시
3.1.6. 울산광역시
3.1.7. 광주광역시
3.1.8. 강원도
3.1.9. 경기도
3.1.10. 충청남도
3.1.11. 충청북도
3.1.12. 전라북도
3.1.13. 전라남도
3.1.14. 경상북도
3.1.15. 경상남도
3.1.16. 제주도
3.2. 북한
3.2.1. 평양
3.2.2. 개성
3.2.3. 강원도(북한령)
3.2.4. 황해남도
3.2.5. 황해북도
3.2.6. 평안남도
3.2.7. 평안북도
3.2.8. 함경남도


1. 개요


書院撤廢
조선 왕조 말기 흥선대원군(재위 1862년 - 1872년)의 주도하에 조선 양반 및 유림들의 학당(學堂)인 전국의 서원들을 강제로 철폐하였던 일. 서원 철폐령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서폐령(書廢令)이라고도 한다.

2. 상세


본래 서원은 조선 왕조 유림들이 학문에 정진하고 선조들을 배향하며 충효예를 가르치던 곳으로 성균관, 향교와 함께 유림의 3대 학문의 전당으로 꼽힌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대학교 및 대학원급에 속하는 교육기관이며 성년이 된 유생들에게 충효예의 교육과 선현에 대한 존경과 배향 그리고 유교의 전통성을 가르쳤던 곳이기도 하다.
초기의 서원들은 유림들의 인재 양성/충효예 교육/선현의 배향 등을 목적으로 삼았으나, 신분제도가 고착화되고 붕당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가문/학연/지연/사제관계에 관계된 온갖 비리부패가 난무하게 되었고, 선현 배향 문제도 한 사람을 중복해서 모시거나 모실만한 인물이 아닌데 가문의 명예를 위해 무리하게 모시거나 살아있는 사람을 모시는 등의 폐단이 심해졌으며[1], 더구나 성현을 모신다는 이유로 농민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이나 제사비용 징수 등의 과도한 수탈을 일삼았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을 서원으로 끌고 가 사사로이 처벌하였으며 심지어는 이를 말리던 지방관이 서원에 끌려가 곤장을 맞는 등 막장이 되어버린다. 탈세와 군역회피는 당연히(?) 따라붙었다.
이 문제가 조정까지 전해지게 되면서 숙종 조(재위 1674년 - 1720년)부터 사사로운 목적이나 착취 목적 등으로 서원을 세울 경우, 제재를 내리고 관련 유생은 과거 시험에 대한 제한을 두게 했으며 일부는 훼철화되기도 하였다. 이후, 영조 시절에 한 사람을 중복하여 둔 서원 등을 적발하여 철폐하기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서원 설립이 주춤하기는 하였으나 조정에서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단속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서원은 자꾸 늘어서 숙종의 금지령이 내려졌음에도 이후 영조가 금지령을 더 강하게 재확인해야 했을 정도였다. 거기에 서원들 사이에서 유림 및 양반들의 텃세가 날로 심해지고 폐단이 더욱 심해져 서원은 이 때를 계기로 학문 목적의 기능을 일부 상실하고 민중의 고혈을 짜내는 '''악덕 집단'''으로 낙인되어 민중들의 지탄과 비난을 받게 되었다. 양반들의 텃세가 심할수록 민중들의 고통도 더해졌으며 일부 서원은 이를 빌미로 민중으로부터 향세(鄕稅)를 과다하게 징수하기도 하는 등 병폐가 심해지기도 하였다.
이후, 1863년 고종(재위 1864년 - 1907년)의 섭정을 맡게 된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게 되면서 서원의 텃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흥선대원군은 고종과 조 대비의 권위와 입을 빌어 서원의 폐단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나가면서 서원 철폐의 명분을 쌓아나갔고, 만동묘를 철폐한 것을 시작으로 병인양요 이후, 온갖 텃세/병폐/비리로 얼룩진 전국의 서원들을 모두 철폐시키고 서원에 관련된 양반 및 유림은 퇴출하도록 하는 강경한 대응책을 내놓으며 서원과 유림들을 압박하였다.
서원 유림들과 양반가들은 만동묘 철폐 때까지만 해도 상소를 올리고 매우 강렬하게 반발했지만 고종이 매우 단호한 의지를 보이며 철폐 반대소를 꾸짖으면서 곧 사그라들었고, 유림들이 한강에 몰려들어 통곡했다는 야사와는 반대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려지던 순간에 흥선대원군의 명분이 워낙 확고했던 터라 유림들의 반응은 표면상으로는 오히려 조용했다. 유림들의 대응은 다소 소극적이었는데 흥선 대원군의 조상인 인평대군을 모시는 서원은 만들고 서원을 철폐하라는 명에도 순간을 모면하려는 방법을 썼는데 대원군은 인평대군의 서원도 가차없이 철거하고 부실하고 비리가 많은 불량한 서원은 조사를 통해 완전 철폐하도록 하고 나머지 일부 서원만을 존치하도록 하였다. 또한, 철폐된 서원의 예산은 모두 국고로 환수토록 하였고 퇴출된 서원들은 건물 자체가 강제 훼철되어 소실되었다.
1865년에 이르자 우암 송시열이 세운 만동묘와 화양서원을 시작으로 47개의 서원만 남기고 모든 서원이 철폐되었으며 남은 서원들마저도 일제강점기한국전쟁 등으로 일부 소실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대원군의 권위와 명분에 유림 세력이 굴복하긴 했어도 서원을 600개나 닫아버린 대원군의 강단에 불만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고 대원군 반대파들은 수시로 상소를 올려 서원을 마구잡이로 닫아버린 것의 폐단이 심하다고 비판하곤 했다. 나중에 대원군이 실각한 이후, 유림들은 고종에게 서원 복구를 대대적으로 청했는데 서원의 폐단이 심했던 것은 유림들도 알고 있던 터라 600개 다 복구해주세요~라고 하는 정신나간 양반은 없었고 화양서원이나 만동묘같은 상징적인 서원들의 복구 요구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고종은 만동묘만 복구해주고 나머지 복구 요구는 씹었다. 그나마 만동묘 복구도 제사를 국가가 주관하게 함으로써 예전처럼 만동묘 좨주들에게 권력을 주지 않았다. 유림들은 지치지 않고 복구 상소를 올렸지만 고종이 '''"너네는 서원이 없으면 성현을 존경할 줄 모르느냐?"'''라고 비웃으면서[2] 결국 시들해졌고 유림이 곧 한국사의 주도 세력에서 탈락하면서 서원 복구 요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본래 서원의 수는 650개였으나 나머지는 흥선 대원군 집권기를 넘겼지만, 사실 대부분의 서원들이 일제강점기 시절 현지 유력자의 의지로 소리소문없이 복구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 중 소수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파괴로 사라졌고, 일부는 일제강점기 때 복원되기도 했지만 광복 직후 6.25 전쟁 당시 파괴되기도 했고, 남북분단으로 인해 일부는 북한으로 넘어가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곳이 많다.
현대의 서원은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렸다. 한반도 전역에 남은 서원은 47곳이며 이 중 남한에 36곳이 남아있고, 북한에 11곳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는 80개 정도로 늘어났는데 이는 유림들이 복원했거나 복원을 추진 중인 곳이다. 그 외 나머지는 관련 유림도 없는 데다가 기록도 완전히 소실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일부는 서원 터만 남았을 뿐이다.

3. 서원 목록


굵은 이름은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이다.
출처

3.1. 남한



3.1.1. 서울특별시


1667년 창건, 1697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1573년 창건 및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으나 이후 복원되어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서원이다. 조광조, 송시열을 배향.
1681년 창건, 1691년 사액. 서원철폐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사라져 현재 노량진 사육신묘에 터만 남아있다.
1685년 창건, 1695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효령대군 묘소이자 사당이다.

3.1.2. 부산광역시


1605년 창건, 1624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송상현, 정발, 윤홍신 외 다수를 배향.

3.1.3. 인천광역시


1641년 창건, 1658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김상용, 이상길 외 다수를 배향.
1762년 창건, 1768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문학IC 인근에 있다.

3.1.4. 대전광역시


1693년 창건, 1711년 사액. 서원철폐 대상이 아니었지만 실수로 훼철되었고 이후 복원되었다. 권득기, 권시를 배향.
창건년도는 알 수 없으며 1609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김정, 정광필, 송인수, 김장생, 이시직, 송준길, 송시열, 송시영을 배향.

3.1.5. 대구광역시


1679년 창건, 1694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하위지, 박팽년, 이개,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를 배향.
1568년 창건, 1607년 사액. 한국의 9대 서원.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김굉필, 정구를 배향.
1564년 창건, 1660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1618년 창건, 1677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곽준, 곽재우 배향.

3.1.6. 울산광역시


1678년 창건, 1694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정몽주, 이언적을 배향.

3.1.7. 광주광역시


1578년 창건, 1654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기대승을 배향.
1601년 창건, 1603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 유팽로, 안영을 배향.

3.1.8. 강원도


1693년 창건 및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같은 자리에 흥법사 터가 있다.
1612년 창건, 1648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1630년 창건, 1659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이이를 배향.
1685년 창건, 1699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김시습, 남효온, 박심문, 엄흥도를 배향.
1650년 창건, 1652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홍명구를 배향.
1612년 창건, 1673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1619년 창건, 1668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김응하를 배향.

3.1.9. 경기도


  • 강한사(대로서원, 대로사) (여주시)
1785년 창건 및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송시열을 배향.
1580년 창건, 1625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김안국, 이언적, 홍인우, 정엽, 이원익, 홍명구, 이식 배향.
1695년 창건, 1697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박태보를 배향, 원래 서울 노량진에 있었다가 1968년에 의정부시에 복원했다.
1695년 창건 및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오두인을 배향.
1688년 창건, 1709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1691년 창건, 1693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1712년 창건, 1784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남을진, 조견을 배향.
1726년 창건 및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김창집, 이이명, 조태채, 이건명을 배향, 원래는 서울 영등포구나 동작구에 있었다가 용산구 보광동에 있던 것을 1968년에 현위치로 이전했다. 참고로 현위치 바로 옆에 김유정이 말년을 보낸 집이 있었는데 중부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지번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1656년 창건, 1663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석실로라는 도로가 인근에 있다.
1605년 창건, 1659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조광조, 양팽손을 배향.
1666년 창건, 1721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박세희, 박세훈, 홍섬을 배향.
1649년 창건, 1713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박순, 이의건, 김수항, 김성대, 윤봉양, 이화보를 배향.
1691년 창건, 1692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이덕형, 조경을 배향.
1648년 창건, 1675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조헌을 배향.
1654년 창건, 1714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조욱, 조성, 신변, 조형생, 조문형을 배향.
1650년 창건, 1694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1700년 창건, 1716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주자, 송시열 배향.
1615년 창건, 1650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이이, 김장생, 박세채를 배향.
1705년 창건 및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1576년 창건, 1608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정몽주, 정보, 이시직, 오달제 배향.
1841년 창건 및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권율을 배향.
1658년 창건, 1676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1568년 창건, 1650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성수침, 백인걸, 성수종, 성혼을 배향.
1842년 창건, 1843년 사액. 권율을 배향.
1631년 창건, 1659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이항복을 배향.
1688년 창건, 1693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윤집, 오달제, 홍익한, 김상헌, 정온을 배향.

3.1.10. 충청남도


1675년 창건, 1682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윤황, 윤문거, 윤선거, 윤증을 배향.
1634년 창건, 1659년 사액. 한국의 9대 서원.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김장생, 김집, 송시열, 송준길을 배향.
1583년 창건, 1662년 사액. 정여창, 임훈, 임윤, 정온을 배향.
1717년 창건, 1721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윤집, 오달제, 홍익한[3]을 배향.
1706년 창건, 1707년 사액. 이순신을 배향.

3.1.11. 충청북도


1679년 창건, 1727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임경업을 배향.
1731년 창건, 1736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이봉상, 남연년, 홍림을 배향.
1703년 창건, 1776년 사액, 명 신종명 의종을 배향.

3.1.12. 전라북도


1574년 창건, 1870년 훼철. 유지화를 배향.
1589년 창건, 1695년 사액, 1868년 훼철. 신숭겸을 배향.
1484년 창건, 1696년 사액. 한국의 9대 서원.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최치원,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을 배향.

3.1.13. 전라남도


1657년 문강공(文康公) 은봉(隱峯) 안방준(安邦俊) 선생의 도학(道學)과 절의(節義)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1704년(숙종 30년)에 사액(賜額) 서원이 되었다가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지만, 2012년 11월 10일 지역 유림들과 후손들이 전남 보성군 보성읍 동암2길 100에 다시 복설함.
1590년 창건, 1662년 사액. 한국의 9대 서원.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김인후, 양자징을 배향.

3.1.14. 경상북도


1570년 창건, 1575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길재,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을 배향.
1561년 창건, 1575년 사액. 한국의 9대 서원.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이황, 조목을 배향.
1572년 창건, 1863년 사액. 한국의 9대 서원.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류성룡, 유진을 배향.
1561년 창건, 1623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김유신, 설총, 최치원을 배향.
1543년 창건, 1550년 사액. 한국의 9대 서원.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안향, 안축, 안보, 주세붕을 배향.
1518년 창건, 1789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황희, 황효헌, 전식, 황뉴를 배향.
1572년 창건, 1574년 사액. 한국의 9대 서원.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이언적을 배향.
1702년 창건, 1716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송준길을 배향.

3.1.15. 경상남도


1606년 창건, 1676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이정, 김덕함을 배향.
1552년 창건, 1566년 사액. 한국의 9대 서원.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정여창, 강익, 정온을 배향.
1607년 창건 및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김천일, 김시민 외 다수를 배향.
1606년 창건, 1663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이순신을 배향.
1737년 창건, 1768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이술원을 배향.
1634년 창건, 서원철폐로 훼철, 현재는 관해정 등 일부 시설만 남아 있다. 정구, 허목을 배향.

3.1.16. 제주도


1576년 창건, 1682년 사액.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김정, 김상헌, 정온, 송인수, 송시열을 배향.

3.2. 북한


아쉽게도 대한민국 국적자는 현재로서는 갈 수 없거나 직접 볼 수 없는 서원들이다. 현재 남포, 함경북도, 양강도, 자강도는 서원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3.2.1. 평양


  • 무열사
1593년 창건 및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석성, 이여송, 양원, 이여백, 장세작을 배향.
1658년 창건, 1683년 사액, 1868년 훼철. 선우협을 배향. 훼철 이후에는 평안도 일대의 유교경전과 책판 보관.

3.2.2. 개성


  • 숭양서원
1573년 창건, 1575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정몽주, 서경덕, 김육, 우현보, 김상헌, 조익을 배향.

3.2.3. 강원도(북한령)


  • 충렬서원 (김화)
1650년 창건, 1652년 사액. 홍명구(병자호란 때 순절)를 배향했고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되었다.

3.2.4. 황해남도


  • 문회서원 (배천)
창건년도는 알 수 없으며 1568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안당, 신응시, 오억령, 김덕함, 이이, 성혼, 조헌, 박세채를 배향.
  • 봉양서원 (장연)
1695년 창건, 1696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박세채를 배향.
  • 청성묘 (해주)
1687년 창건, 1701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백이, 숙제를 배향.

3.2.5. 황해북도


  • 태사사 (평산)
창건년도는 알 수 없으며 1796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고려 개국공신신숭겸, 유금필, 복지겸, 배현경을 배향.

3.2.6. 평안남도


  • 삼충사(와룡사) (평원)
1603년 창건, 1750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제갈량, 악비, 문천상을 배향.
  • 충민사 (안주)
1681년 창건, 1682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남이흥, 박명룡, 김준 외 다수를 배향.

3.2.7. 평안북도


1787년 창건, 1794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휴정을 배향.
  • 표절사 (정주)
1813년 창건, 1824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정시, 한호운, 백경한, 박지환, 허항, 제경욱, 김대택을 배향.

3.2.8. 함경남도


  • 노덕서원 (북청)
1627년 창건, 1687년 사액. 서원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이항복, 김덕성, 정홍익, 민정중, 오두인, 이상진, 이세화를 배향.
  • 문회서원 (함흥)
1575년 창건, 1576년 사액, 1871년 훼철. 이계손, 한준겸, 유강, 이후백, 문덕교, 이강화, 남구만을 배향.

[1] 이는 고종도 언급한 사실이다.[2] 흥선대원군에 반대하며 집권한(?) 고종도 반대할 정도라면 이미 이 집단이 맛이 가도 많이 갔다는 뜻이 된다.[3]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가 죽은 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