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사업분야

 


1. 개요
2. 상세
3. 전자제품
3.2. 음향기기
3.4. 캠코더 및 방송영상장비
3.8. 기타
3.9. 철수한 분야
4. 엔터테인먼트
7. 관련 제품 및 브랜드


1. 개요


일본의 기업 소니의 사업분야를 정리한 문서.

2. 상세


소니와 파나소닉 사이의 각축전이 심했던 시절에는 소니는 동일본(간토)을 대표하는 기업, 파나소닉은 서일본(간사이)을 대표하는 기업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는 물론 흑색가전 특히 AV기기 분야에 한정. 다품종 소량생산 제품들을 많이 판매하기 때문에 생산하는 제품 숫자가 삼성전자보다 더 많다는 말이 있으며, 냉장고세탁기같은 백색가전은 만들지 않는다. 일본에서 전통적인 백색가전의 강자라면 파나소닉, 히타치 등의 여타 전자 대기업들이 주를 이룬다.
기업이념을 보면, 소니의 기업이념은 창의성을 중시하는 서양회사와 비슷하지만, 파나소닉의 기업이념은 집단주의, 책임, 협동 등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일본회사의 것이다. 때문에 대다수의 전자기업들에게 결여되어있는 소프트파워를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1] 전성기 소니의 세계적인 위상은 지금의 애플 그 이상이었다.
업종이 매우 다양한 것도 특징인데 엑스페리아 X1PSP에 번들로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가 딸려오는 것이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제작진들이 소니 TV 광고에 나와서 브라비아의 색표현력이 얼마나 제작과정에서 도움을 줬는지 극찬하는 쇼가 가능한게 이 덕분이다. 물론 소니가 전자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부터 이런 다양한 사업분야가 상대적으로 더 주목을 받는 측면도 있다. 2016년 1분기에는 게임 사업에서 소니 영업이익 전체의 78%가 나온다거나 2018년 기준으로 엔터테인먼트 관련 사업부가 소니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3. 전자제품



3.1. 텔레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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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트리니트론 TV. 소니 TV 전성기의 상징적인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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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공개된 브라비아 (BRAVIA) 소니의 TV 서브 브랜드. 개발과 제조는 2014년 분사된 소니 비주얼프로덕트에서 담당하고 있다.

브라비아 광고 영상 (2005)[2] 영상에 나오는 도시는 샌프란시스코이다.

브라비아 OLED TV “Desert Water” 광고 영상 (2019)
1968년 발매된 트리니트론으로 소니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명실상부한 전 세계 TV 시장의 최고 강자였다. 당시 섀도우 마스크 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혁신적인 트리니트론으로 미국의 RCA를 물리치고 TV시장 1위 자리를 차지했다.[3] 트리니트론은 많은 부분에 응용되어 휴대용 TV시장(워치맨), 모니터 시장, 대형 전광판 (점보트론)부문에서도 최고 강자였다. 70~90년대에는 디스플레이의 대명사는 소니의 트리니트론이었던 셈. 1998년에는 평면 트리니트론 베가(WEGA)를 공개하며 만년 4위라는 별칭을 얻었던 일본시장에서 1위를 먹은적이 있다.[4] 베가는 최초로 TV자체에서 SD급 방송 신호 화질을 HD급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DRC[5] 가 탑재되어 전 세계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6] 음극선관 시대의 트리니트론은 소니만의 독자적인 기술이였고 다른 업체들은 소니의 특허가 만료되어 기술공개가 되기 이전까지 이 기술을 따라하지도 못했고[7] 기술이 공개된 이후에도 소니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트리니트론과 같은 음극선관 방식의 텔레비전이 PDPLCD 텔레비전에 점차 밀려나게 된다. 하지만 소니는 음극선관 TV를 한동안 집중하면서 FED디스플레이와 OLED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투자를 진행했다. 또한 1994년 단행했던 음극선관 TV설비 대규모 투자[8]로 인하여 LCD와 PDP의 개발에 투자할 여럭이 부족해지게 되고 시기도 놓치게 되었다. 당시 소니가 트리니트론 음극선관 TV를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LCD와 PDP는 개발 초기 단계였고 오히려 트리니트론의 화질이 더욱 좋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트리니트론 기술을 발전시켜오고 세계 1위를 지켜오던 소니로써는 무리하게 LCD나 PDP에 투자하는 것보다 그보다 더욱 신기술로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투자하려 했고(과거 트리니트론으로 기술적 우위를 차지했던 것처럼), 이에 따라 FED와 OLED가 소니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분야로 선정되고, FED 디스플레이는 2006년 필드에미션테크놀러지(FET)를 설립하여 개발을 이어나가게 되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개발이 완전히 중단되게 되며 2009년 FET도 해산되게 된다.
전 세계 TV 시장에서 입지가 작아지는 상황속에서도 소니의 경영진은 비용절감을 위하여 A³ 기술연구소를 폐쇄하고[9]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이는 기술진들의 대규모 이탈을 불러오게 되며 후에 한국의 전자업체의 추월을 허용하는 계기가 된다. 2005년 새로운 액정 텔레비전 브랜드 브라비아의 출시에도 불구하고 소니의 TV점유율은 계속 하락하여 2005년 1분기 점유율 11.6%로 마지막으로 세계 TV시장 1위자리를 차지한 후 2006년부터 삼성전자에게 1위자리를 내주었으며 2010년도 이후부터는 LG전자에도 밀리며 3위권으로 추락하였다,[10] 소니는 삼성과 합작회사인 S-LCD에서 LCD TV패널을 공급받았으나 2011년 지분을 모두 삼성전자에게 매각하였다. 일본에 있는 LCD 인력은 히타치, 도시바 등 다른 일본 가전기업들의 인력과 함께 '재팬디스플레이'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해 그쪽으로 분사시켰다.[11]
OLED의 경우 2007년 '''세계 최초 OLED TV'''인 11인치 'XEL-1'을 공개하였으나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그 뒤로 정식 후속모델은 출시하지 않고 시제품만 계속 공개했다.[12] 악조건 속에서도 소니는 2013년 대만의 액정기업인 AUO와 공동개발을 통해 세계 최초 4K OLED TV[13]의 시제품을 선보이기도 하는 등 의지를 불살랐지만, 결국에는 라이벌인 파나소닉과 서로의 OLED 사업부서를 통합하고 2015년 JOLED라는 합작회사로 분사시키면서 OLED 패널 양산을 포기하게 이른다.
이렇게 차세대 디스플레이 양산에 연이어 실패하고 기존 음극선관도 빠르게 LCD와 PDP에 따라잡히면서 소니 TV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소니 TV가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여 새로운 기술 개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추락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어느 회사보다도 먼저 신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1990년대부터 다른 기업은 LCD, PDP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한 단계 높은 기술을 추구하며 FED, OLED 개발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소니 TV사업부는 2003년 이후로 계속 적자를 내면서 일본 내 직영 TV공장(소니 EMCS 소유) 생산을 중단하였고,[14] 2010년부터 세계 각지에 있는 TV 생산시설을 중국공장으로 통합을 진행했다. 2014년, 소니는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TV사업부를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로 분사시키며 소니 안팤으로 충격을 주었으며, 동시기에 한국 시장에서도 철수했다. 또한 LG전자삼성전자와의 기술격차도 사라지게 된다.
그렇지만 분사라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지속한 결과 UHD TV의 판매 호조로 11년만에 흑자에 돌아서게 되었다. 기술개발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서, 기존의 DRC기술의 후속 기술로 2004년 공개했던 '트릴루미너스 디스플레이'를 계속 발전시키며 2013년에는 QD비전이라는 미국 기업과의 제휴로 퀀텀닷 기술도 적용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세계 최초로 QD-LCD, 다시 말해 '퀀텀닷 기술을 적용한 LCD TV'[15]를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링크 즉, '''삼성의 'QLED TV'보다 한 발 빨랐던 것.''' 이 당시 QD비전과 소니가 채택한 기술은 LED 패키지 내부에 퀀텀닷을 직접 장착하는 '온 엣지' 방식으로 삼성 등이 이후 채택한 필름 방식의 '온 서피스'보다 난이도가 높았지만, 곧바로 발열에 따른 열화 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에 이후의 소니 TV들은 이 방식을 쓰지 않고 있다. 참고로 QD비전을 삼성이 2016년에 7천만불을 주고 사들였기 때문에 소니가 갖고 있던 양자점 관련 특허는 현재 삼성도 소유하고 있다.
그 이후 2016년 LG와 대형 OLED 패널 구매 계약을 맺고 2017년 2분기에 브라비아 A1 시리즈로 OLED TV 시장으로 복귀하면서 소니의 TV 매출액은 16.9% 증가했고,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2006년 따라잡힌 이래 처음으로 삼성을 추월했다.''' 2017년 3분기 기준으로 프리미엄 TV 시장 점유율 1위는 SONY, 2위는 LG, 그리고 3위가 삼성이며, 4분기에도 소니가 1위를 수성했다. 이에 삼성은 다른 조사기관의 자료를 들어가며 이례적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계속된 삼성의 거센 항의에 따라 해당 조사기관이 점유율 집계방식을 변경하였고 2018년 1분기부터는 삼성이 1위를 탈환하기는 했지만 소니가 가전 시장에서 감을 되찾았다는 평이 많다. 2019년 5월에는 96인치 8K TV 신제품을 10만달러에 출시했던 삼성이 소니의 경쟁 모델의 발매 예고가격을 의식해서 출시 한 달여만에 소니의 가격과 비슷하게 약 3만달러를 인하한 7만달러로 정정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링크[16]
OLED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마이크로 LED 시장에도 가장 먼저 진출했다. 2012년에 FHD 화질의 Crystal LED Display로 마이크로 LED의 가능성을 시험한것에 이어,[17] 2018년 기준으로 업계 최소인 30µm까지 소형화와 함께 CLEDIS 시스템으로 세계 최초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2018년 120인치 모델을 전시하였고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CLEDIS 시스템의 시연을 하고 있다. 0.4 평방미터 넓이의 디스플레이 유닛들을 조립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큰 사이즈의 패널도 만들 수 있기에 영화관 스크린이나 사이니지 납품을 우선적으로 진행중이다. 시세이도스바루가 클레디스 시스템을 채용하는 등 B2B 판매도 순조롭다는 모양. 이 분야에서의 주 경쟁자는 삼성전자가 있으며 애플도 오래전부터 자체 개발을 진행중이고 대만, 중국기업들도 양산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2019년 시점에서 학계/업계는 mLED의 기술력에서 소니가 세계 최고라고 본다.[18]

3.2. 음향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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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Walkman TPS-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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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NW-Z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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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R-1ADAC

WH-1000XM3 TVC
소니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사업 분야[19]이다.
종합 전자기업으로는 드물게도 음향 업계에 상당한 존재감이 있다.[20] 특히 초창기에는 워크맨[21], CDP로 황제의 자리에 등극했다.[22] 자세한 내용은 관련 문서 참조. 특히 CDP 같은 경우 90년대 초반에 나온 모델이 요즘 것에 꿀리지 않는 음향을 자랑할 정도이다. 이 외에 노이즈 캔슬링[23]이라든가 CD 고정 기능[24] 본격 도입 등 음향기기 쪽으로는 네임드이다. 그 밖에도 [25], '''디지털 보이스레코더'''[26], 휴대용 라디오, 탁상용 오디오도 아직도 꽤 쓸만하다.
오디오 전성 시대의 앰프, 튜너, 턴테이블 데크, CDP 성능도 아주 좋다. 소니 개발진 특유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타사에 비해 소니만의 컨셉을 담아 내어 제작하였고, 당시 전성기 시기였던 회사의 지원 아래 특주한 부품들을 많이 사용해 물량 투입을 많이 한 아주 훌륭한 소니만의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물량 투입이 문제가 되어 수리비가 많이 나오거나 소니 특주품의 호환부품을 구하기 어려운 등의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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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유명한 이어폰으로는 MDR-E888이 있다. 무려 16년 간 생산되었다.
이쯤이면 장수만세이다. 내구성은 말이 많지만 소리 하나는 기가 막힌 제품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이어폰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오픈형 이어폰 입문기로 최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다만 좋은 해상도와 달리 공간감은 그다지 좋지 못하며, 저음역에서 퍼지는 듯한 음색도 호불호가 갈린다. 단단하고 청량감있기보다, 부드럽고 따뜻하여 듣기에 편안하다. 2012년 태국홍수로 인해 e888 생산라인이 위기에 처하면서 드디어 단종되었다. 이로써 오픈형 이어폰 최장수 떡밥은 끝났다.[27]
편의점에서 파는 몇천 원짜리부터 시작해서 수백만 원대의 고급 리시버까지의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었으며, 2010년 이어폰, 헤드폰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음향기기 브랜드로서는 Beats와 함께 한국내 인지도가 가장 높다. 특히 콩이어폰이란 이름으로 2005년에 출시된 MDR-E10LP은 값이 저렴하여 국민이어폰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예전엔 지하철 같은 데 가보면 그 이어폰 착용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이어폰의 줄 재질은 처음에는 문제가 있었는데 2009년경부터 개선된 듯하다. 현재는 MDR-E10LP가 단종되고 소형화, 색상을 보다 다양화한 MDR-E9LP가 판매 중이다.
실제로 소니 이어폰, 헤드폰은 아무거나 집어들어도 크게 후회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평균 이상의 소리를 내준다. 다만 그만큼 짝퉁이 많으니 정품을 꼭 확인하자.[28] 스튜디오용 헤드폰으로도 자주 선택받는다. MDR-V6, MDR-7506과 MDR-CD900ST가 대표 기종이다. 한편 2010년 이후 소니가 매우 공격적으로 고급 이어폰 시장에 나서고 있다. 2년 사이에 여러 종류의 고급 기종을 내놓은걸 보면... 흠좀무. 근데 시장 1위 탈환은 이미 무리가 된 것 같다. 이쪽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미 오픈형 이어폰 시장은 저물어가고 있는지라 인이어 타입을 노려야 하는데 소니가 인어어 타입에 신경쓰지 않는 동안 미국쪽 회사들이 강하게 치고 간지라...
2012년 시즌을 맞이하여 소니는 인이어 이어폰과 헤드폰에서 주목할 만한 신 제품군을 발표하였는데, 이어폰에서는 소니가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시장의 대세 유닛인 밸런스드 아마처(BA)를 독자 개발하여 탑재한 XBA 시리즈를, 헤드폰에서는 아래의 소니 뮤직과 전자부문이 협력하에 헤드폰인 MDR-1R을 발표하였다. XBA 시리즈의 경우 고음 트위터의 성능과 음색이 문제시되기도 하였으나 과감한 가격 정책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보급형 모델인 XBA-1은 한국 시장에서 BA를 사용한 소니의 최첨단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5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어 이어폰에 금액을 투자하려는 입문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MDR-1R의 경우 하이파이적인 음색과 편안안 착용감으로 헤드폰 갤러리를 비롯한 많은 게시판 및 리뷰 사이트에서 크게 호평을 받고 있다. MDR-1R의 개발자는 아까 말한 그 전설의 E888를 개발한 그 사람. 2013년에는 중고음 재생에는 BA를, 저음에는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사용한 하이브리드 이어폰(XBA-H1, H2, H3) 제품군을 출시하였으며 가격대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 2014년에는 MDR-1R의 후속 기종인 MDR-1A를 내놓았으며, 동시에 새로운 플래그십 2종을 출시하였다. 또한 2018년에는 MDR-1A의 후속 기종인 MDR-1AM2를 내놓았다.
유선만이 아니라 블루투스 헤드폰/이어폰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2015년 소니는 자체 개발한 무선 오디오코덱인 LDAC 등의 신기술을 적용한 MDR-1A의 블루투스 파생형인 MDR-1ABT를 출시했고, 하반기에는 히어온, 히어인, 히어인 노이즈캔슬링 등의 젊은층을 타겟으로 한 h.ear(일명 아이유 헤드폰/이어폰) 시리즈를 출시했다. 2016년엔 히어온의 무선/노캔 파생형인 히어온 와이어리스 NC와 히어인의 무선형인 히어인 와이어리스를 출시했다. MDR-1000X 등 플래그십 헤드폰 제품군에도 신경을 써왔는데 2018년 출시한 WH-1000XM3는 최강의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이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무선/블루투스 스피커 쪽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기준 28%로 무선 스피커 시장 점유율 1위. 2014년 출시한 SRS-X1, X2, X3, X5, X7, X9에 이어 2015년엔 상품성을 개선한 SRS-X11, X33, X55, X77, X88, X99를 출시했다.[29] 2016년엔 기존에 있던 헤드폰 라인업인 엑스트라 베이스(XB)의 블루투스 스피커 SRS-XB2, XB3와 h.ear 시리즈의 블루투스 스피커 히어고가 동시에 출시 되었다. 고급형 거치형 모델 SRS-ZR5, ZR7도 출시했다.
애플이 소니에게 음향기술 제휴를 하자고 한적이 있지만 소니가 거절했다거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의 견제를 위해 제휴를 할려고 했었다는 루머가 있었다. 2010년 즈음에 돌던 루머였는데, 그 후 애플과 MS는 자사 음향기기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소니와 이쪽 분야에서 경쟁관계가 되었다.
2015년 들어 갑자기 멀쩡한 제품 잘만들던 소니가 돌연 황금귀교에 귀의 했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오디오 커뮤니티 내에서 역대급 어그로를 이끌어낼 소식이다. 황금귀교에 귀의 했다기 보단 SD카드 재고를 비싸게 팔아먹기 위한 상술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사실 소니는 오래전부터 음향분야에서 오디오 미신을 적극적으로 채용해오던 메이커 이기도하다.
하이레졸루션 오디오 워크맨인 ZX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경쟁 기종이라 할 수 있는 아이리버의 아스탤앤컨이 일본 시장에서 선전하자 맞불을 놓을 목적인듯 하다. 다만 그 광고 내용이 황금귀들이 하던 주장들이랑 맞먹는 것들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SD카드 도료드립 등) 이 또한 오디오 커뮤니티 내에서 상당한 어그로를 끌 것이라 예상된다. 100NW-ZX100의 공식 제품 설명 제품의 상세설명을 살펴보자. 이게 정말 대기업이 제품 선전할때 쓸 문구인가 싶은 것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이제는 돈 욕심이 제대로 오른건지 MDR-1A에서 그동안 오디오 회사들 사이에서 터부시 되던 고급케이블을 대놓고 콜라보레이션 까지 하면서 팔고 있다.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인 만큼 오디오 커뮤니티 내에서 소니에 대한 악영향이 크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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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차량용 오디오 브랜드인 Xplōd도 있다.
네트워크 워크맨 및 일부 헤드폰/이어폰(말레이시아산)은 소니 말레이시아 직영공장에서, 라디오와 보이스레코더 및 일부 MP3P(중국산)는 일본 도와다오디오사의 중국공장에서, 탁상용 카세트와 일부 헤드폰/이어폰(중국산), (액티브) 스피커는 중국 Daidong-Zegna사(참조)에서, 일부 헤드폰/이어폰(태국산)은 소니 태국 직영공장에서 생산된다.
2017년 후반기 출시 제품부터 음향기기 모델명 앞부분의 작명 방식이 바뀌었다.
  • 2017년 9월 이전
    • BA 이어폰: XBA
    • 기타 모든 이어폰/헤드폰: MDR
  • 2017년 9월 이후
    • 유선 헤드폰: MDR
    • XBA 시리즈: XBA
    • 유선 커널형 이어폰: IER(In-EaR)
    • 무선 헤드폰: WH(Wireless Headphone)
    • 무선 이어폰: WI(Wireless In-ear)
    • 코드리스 이어폰: WF(Wireless codeFree)
    • 커스텀 이어폰: XJE(X Just Ear)

3.3.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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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Alpha 7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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α시리즈와 RX시리즈, QX시리즈, 사이버샷 시리즈가 있다. 렌즈교환형 카메라 시스템인 α시리즈는 2017년 기준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 1위'''를 차지하고있다.
참고로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한 회사는 코닥이지만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상용화시킨 회사는 소니다. 1981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디지털 카메라인 마비카 시리즈를 발매한다. 당시 저장장치는 지금 보면 우습게도 3.5인치 플로피디스크...
80년대에는 마그네틱 비디오 카메라의 약칭인 마비카라는 브랜드로, 90년대부터는 사이버샷이란 서브 브랜드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고 있고, 제품 대부분에 유명한 독일 칼 자이스 렌즈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가전 회사란 이미지가 강해 전문가들에겐 같은 일본의 니콘, 캐논, 올림푸스 같은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이어져 온 광학 기기 전문 회사 제품에 인지도에서 한참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탄탄한 설계기술로 이름이 높던 미놀타의 카메라 사업부문을 2006년 고스란히 인수하고 기존의 칼 자이스 렌즈를 이용한 마케팅으로 DSLR에 도전했으나 큰 재미를 보지 못했고, 이후 기존 DSLR의 단점인 움직이는 거울을 고정식의 반투명 거울로 대체한 DSLT 시리즈를 내놓아 니콘과 캐논의 파이를 조금씩 뺏기 시작해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메라의 양대산맥인 캐논니콘의 아성을 넘보기엔 역부족일 것이라 예상했으나, 2010년 이후 미러리스 방식의 NEX시리즈와 DSLT방식의 히트로 인해 마이크로 포서드 시스템의 파나소닉과 올림푸스를 제치고 니콘마저 넘어서고, 미러리스 덕분에 판매가 줄어든 DSLR을 살리고자 카메라시장의 선두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최악의 성능을 보여준 미리러스(EOS-M)를 출시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DSLR로 돌리려는 물타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캐논마저 넘보더니, 2014년 1/4분기 이후 렌즈교환식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였다. 특히 2013년에 출시된 첫 풀프레임 미러리스는 2016년 현재에도 어느 회사에서도 만들지 않았거니와[30] 고급렌즈들도 서서히 늘려가고 있다. 한마디로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거듭나고 있다.[31] 물론 전체적인 시스템을 따지면 여전히 밀리지만 미러리스가 차세대 카메라이고 기술발전에 따라 미러리스도 많이 발전되는 반면 DSLR은 여전히 이젠 발전할 만한 부분이 없거니와 오히려 미러리스가 앞서가는 만큼 미러리스를 선두하고 있는 소니의 미래는 밝은 편이다.
마이크로 포서드 진영은 APS-C 타입의 센서를 장착한 소니의 제품들과 충성고객이 많아 그럭저럭 판매량이 나오는 삼성의 미러리스 제품들에 밀려 도태되는 중이며(하지만 삼성이 카메라 사업부 철수를 선언하면서 더 이상 삼성에서 카메라를 생산하지 않는다.) 컴팩트 카메라 부문에서는 소니의 RX-100 시리즈가 연달아 히트하며 하이엔드 디카 중의 왕좌를 차지해 캐논과 니콘의 도전을 받는 챔피언의 위치에 고수하고 있다. 또한, 소니의 이면조사 방식의 센서는 디지털카메라를 넘어 고급형 차량용 블랙박스와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앞다투어 채택되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의 스마트폰의 대부분은 소니의 센서를 사용한다고 봐도 된다. 이 부분은 반도체 문단을 참고.
SIPS라는 VIP 케어제도가 있다. 더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3.4. 캠코더 및 방송영상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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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발매한 첫 핸디캠 CCD-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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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전문가용 캠코더
소니의 방송장비 사업은 상당히 이른 1958년부터 시작하였다. 1958년 당시의 주력 방송장비는 오픈릴 테이프 녹음기. 방송장비 사업부는 아츠키 테크놀로지 센터 (카나가와현 아츠키시)에 있다. 현재 전자제조업에서 몇 안되는 소니가 1위를 차지하는 분야 중에 하나다. 소니의 방송장비는 일본의 코사이 테크 (시즈오카현 코사이시 소재)에서 생산된다. 컨슈머 제품과 달리 일본 생산을 고집하는 건 방송장비 특성상 높은 품질과 신뢰성이 요구되기 때문. 1985년 최초의 가정용 캠코더 CCD-V8을 출시했으며 같은해 공개된 CCD-M8이 핸디캠 상표를 단 최초의 캠코더다.
캠코더 및 방송장비는 전통적으로 소니가 앞서나가고 있는 분야로 특히 휴대용 방송 카메라, 소비자용 캠코더 분야는 전세계 1위로 경쟁자가 거의 없을 정도며[32] 2017년 현재 방송용 캠코더, 가정용 비디오 캠코더(핸디캠, Handycam)의 전통적인 강호로 불린다. 방송용, 특히 휴대용 방송 캠코더는 그냥 알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독점에 가까운 상태고, 테이프 포맷으로서 소니 베타캠 라인이 사실상 표준이며 제품으로도 업계 1위며, 방송용 카메라 중에서 3D에 꽤 빨리 열을 내고 있다. 스튜디오용 방송 카메라도 소니가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으나 최근에는 캐논 등 다른 회사의 점유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영화 아바타를 제작할때 소니에게 직접 카메라 제작을 의뢰하여 캐머런 감독 전용 시네알타(CineAlta) F23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다만 영화용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는 시네알타(CineAlta)라는 전문브랜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레드, 독일의 아리 등이 워낙 강세여서 쉽게 기를 펴지는 못하고 있다.[33] 소니는 카메라와 레코더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것을 고안하고 캠코더를 만들어냈으며, 캠코더 자체의 용어가 소니의 직원들이 만들어낸 상표라고 한다. 처음에는 캠코더를 상표로 사용했으나 이후 보통명사화되자 소비자용 부분에서는 1985년 핸디캠 브랜드를 소개하였다.
이후에도 계속 이 분야를 선도하여 1995년에는 세계 최초 DV 형식 캠코더 CCD-VX1000를 공개했으며, 1999년에는 최초의 디지털 방식의 캠코더 TRV310을 선보였다. 2004년에는 세계 최초 HDV1080i 호환형 캠코더 HDR-FX1를 출시하며 캠코더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캠코더는 소니가 설계부터 모든 부품생산 그리고 완제품 생산까지 일원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다.[34] 최근 스마트폰으로 인하여 캠코더 시장이 축소되자 소니는 프로젝터 기능을 포함한 캠코더를 내놓는 등 제품 혁신에 노력하고 있다.
UCC를 겨냥한 블로기 브랜드도 런칭 중이다. 다만, 방송장비 시장은 원래 큰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분야이니 소니에게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꾸준한 수익을 가져다 주는 분야이며, 최근 방송장비 시장이 전면 디지털화 및 4K(UHD)로 전환하면서 수익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액션캠에도 뛰어들고 있는데 한국에서 고프로를 뛰어넘는 시장 과반수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2015년 CES에서 세계 최초의 4K 액션캠을 발표하며 입지를 굳히는 중이다. 과거 액션캠 업계를 독점하고 있던 고프로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후발주자인 소니는 액션캠 업계에 늦게 뛰어든 것에 비해 소비자에게 크게 어필하여 선두주자인 고프로의 점유율을 야금야금 깎아먹고, 그 동안 쌓아온 카메라 이미지 센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샤오미 등의 후발주자를 따돌리는 중이다. 고프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술력이니만큼 고프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격까지도 갖추고 있지만 돈값을 한다는 게 중론. 소니의 액션캠에 관한 것은 소니 액션캠 문서 참조.
샤오미의 액션캠은 출시 당시에는 엄청난 가성비로 주목을 끌었지만 샤오미의 카메라 기술력과 노하우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이 적지 않게 발견되어, 지금은 돈을 더 주더라도 고프로나 소니 액션캠을 구매하라는 분위기다. 샤오미의 액션캠에 관한 것은 샤오미 Yi 액션캠 항목 참고.
캠코더 이외에도 비디오 믹서, VCR 나 모니터 제품도 유명하다. 가격은 매우 고가이지만 안정성과 성능이 좋아서 방송국에서 많이 사용한다. VCR로는 아날로그 시절의 베타캠과 디지털 베다캠이 유명하다. 가정용 장비에서는 저화질이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많이 보급되었던 VHS규격에 밀려났지만 고화질을 필요로 하는 방송 분야에서는 많이 사용되었다. 이후 규격으로는 HD급의 녹화가 가능한 HDCAM이 있다.
전문가용 모니터도 유명하다. 특히 BVM시리즈 모니터는 트리니트론 CRT를 적용했기 때문에 브라운관 디스플레이 최고의 화질로 유명해서 방송국에서의 퇴역 이후에도 일부 고전게임 동호인 사이에서도 평가가 높은 제품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대부분 LCD 모델로 교체되었지만 CRT모니터 중 HD급 모델 일부는 아직도 방송국에서 사용한다. 최근에는 OLED에 이어 듀얼 레이어 LCD를 적용한 신제품을 주력으로 생산, 홍보하고 있다. 이런 전문가용 모니터에 들어가는 패널은 TV, 스마트폰 등과 달리 소니가 자사 일본 공장에서 직접 주문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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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문가용 모니터로 의료시장에도 진출했다. 사진은 소니의 4K OLED 의료용 모니터. 이 분야의 또다른 전통의 강호인 EIZO와 경쟁하고 있다. 현재는 올림푸스와 함께 의료산업에 공식적으로 진출한 상태이다.[35] 참고로 소니가 내놓는 이런 전문가용 모니터들은 돈 많은 사람이건 관련 직종 종사자이건 상관없이 '개인'을 대상으로 판매하기보다는 방송국, 영화 스튜디오, 대형 병원 등지에 팔거나 임대를 해주는 것이라 가격도 상상을 초월한다. 어느 정도냐면 24인치짜리 모니터 하나에 한화로 1천만원은 우습게 넘어간다(!) [36]
전문가용 음향기기도 제조하지만 이 분야에서는 젠하이저, 슈어, 하만같은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이 넘사벽급으로 유명하다. 음향쪽은 마이크는 젠하이저나 슈어, 믹서나 프로세서는 스튜더, DBX, 렉시콘같은 하만계열을 많이 사용한다. 주로 소니는 방송 음향쪽을 공략하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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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LcoS 프로젝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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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영화상영용 프로젝터
프로젝터나 영사기와 같은 기업용 테크놀러지를 포함하는 부문에서도 강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DCP 영사시스템용 4K 이상급 프로젝터는 영사기 전문 브랜드인 크리스티사의 프로젝터와 소니의 프로젝터가 양분하고 있다. [37][38] 대형 스크린에서의 선명도, 시스템 안정성과 호환성, 가격적 메리트에서 소니의 강점이 매우 크기 때문. 굳이 단점이 있다면 밝기가 약간 어두운 편이라 초대형 스크린에서는 화면이 희미하게 보이는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국내에서 4K DCP로 상영하는 극장은 거의 대부분 소니 프로젝터를 체택하고있으며 가장 빠르게 4K 전환을 완료한 메가박스는 일부 라이션스관(주인이 따로 있고 이름만 빌려주는 극장)을 제외한 전 상영관을 모조리 소니 프로젝터 시스템으로 깔았다고 한다. 신세계 센텀시티에 위치한 CGV스타리움관도 이것을 사용하는데, 스크린 크기가 크고 아름답다보니 밝기문제로 두개를 구매해 겹쳐서 사용한다고 한다.

3.5. 스마트폰




3.6. 로봇


소니는 과거 갖고 있던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타 전자업체보다 로봇 시장에 먼저 진출하여 1999년 세계 최초의 애완견 로봇인 아이보 시리즈를 공개하였다. 2003년에는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세계 최초의 달리는 휴머노이드인 큐리오도 공개되었다.
2006년 하워드 스트링거 CEO에 의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로봇 사업이 중단되어 아이보 등의 제품들도 모두 단종되었다. 그러나 2017년 아이보 신모델을 공개하면서 로봇 사업에 재진출했다.

3.7. 반도체


반도체 자회사인 소니 세미컨덕터에서 CMOS 이미지센서를 생산하며, 2019년 매출액 기준 점유율 49.1%로 세계 1위이다.[39] 원가 후려치기로 유명한 애플iPhone 4까지의 옴니비전이나 도시바의 센서 대신 iPhone 4s에 처음으로 채택한 이래 오랫동안 거래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아이폰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이며, 삼성전자도 플래그십 제품들에 여전히 소니의 센서를 같이 사용한다.[40]
소니는 반도체를 주력 사업으로 삼는 흔한 의미의 '반도체 기업'이었던 적이 없고, 이미지센서로 각광받고 있는 지금도 반도체가 차지하는 이익 비중은 20%대에 그친다. 물론 과거에도 센서 판매를 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익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건 2009년 '''소니 엑스모어'''라는 브랜드로 CMOS 모델들을 통합하면서다. 삼성도 이를 벤치마킹하여 2017년 '삼성 아이소셀'이라는 브랜드로 자사의 이미지 센서들을 통합하였다.
2018년 1천4백억엔의 영업이익이 이미지센서에서 발생하는 등 소니에게 있어 금융, 게임 부문과 함께 효자 사업분야 중 하나가 되었다. CCD 시절부터 쌓아온 명성과 기술력이 있는데다가 시장전망도 밝아서 지금의 압도적인 위치가 한동안은 유지될 듯 하다. 2019년 3분기에는 소니가 세계 반도체 기업 점유율 순위에서 9위를 기록하며 10여년 만에 10위권 내에 포함되었다고 하며, 갈수록 늘어나는 센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까지 나가사키 현에 신공장을 건설한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DRAM 라인을 일부 전환하고 막대한 투자를 퍼부으며 추격을 시도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2019년 9월 도쿄이미지센서 연구개발센터를 개소하고 소니 출신의 엔지니어를 소장으로 영입하는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 앞으로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3.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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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irst Sony 광고 영상
1980년대 소니 아메리카에서는 북미 지역에 My First Sony라는 소니 제품을 모티브로한 유아용 장난감을 발매하기도 했다. 제품 표면에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색깔을 넣은 플라스틱과 몇 가지 위험 요소를 제거한 것을 빼고는 실제 제품과 차이가 없었고 작동도 했다. 국내에서도 1990년 인켈에서 수입하려 했으나 여러가지 문제로 없던일이 되어버렸다. 이 제품들에는 공통적으로 AVLS(Automatic Volume Limiter System) 이 달려 있어 청각을 보호한다. 당시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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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는 Palm OS를 탑재한 클리에라는 브랜드의 PDA를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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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마일로(mylo, My Life Online)라고 불리우는 개인용 통신기기 제품을 발매하기도 했다. 지금의 스마트폰과 유사한 기능을 지원했지만 전화나 메세지는 지원하지 않았다.(단 스카이프, 이메일등 인터넷을 사용하는 통신은 가능) 처음에 발매했을때는 나름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iPhone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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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리더라는 전자책 브랜드도 있는데 전자 종이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전자책 단말기를 최초로 상용화한 것도 소니였다. 하지만 적자 누적으로 인해 전자책 시장에서는 사실상 철수했고 A4 종이 사이즈의 전문가용 전자책 단말인 디지털 페이퍼를 발매하고 있다. 무려 '''600달러'''에 달하는 가격과 제한된 기능에도 불구하고 매니아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신제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10인치 기준 약 240그램에 불과한 무게와 실제 노트를 쓰는 것과 유사한 필기감 등이 장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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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글래스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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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스마트 아이 글래스
창의적인 기술 개발을 중시하는 사내 분위기에 따라 소니 글래스트론으로 불리우는 HMD사업에 1992년부터 진출했다. 글래스트론이란 명칭은 사라졌으나 현재도 신제품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2014년에는 스마트 안경인 소니 스마트 아이 글래스라는 제품도 발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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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드림머신이라는 알람 시계 라디오도 유명하다. 1950년대 부터 발매된 ICF시리즈를 모태로 한 진정한 소니의 역사를 함께한 브랜드.[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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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 vault이라는 저장장치 브랜드도 있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영화나 일본애니메이션 등에서도 자주 등장하는편.

3.9. 철수한 분야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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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에서 생산했던 리튬이온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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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소비자에게는 Cycle Energy라고 불리우는 충전지나 외장 배터리 등도 유명했다.[43]
소니의 2차전지(배터리) 사업은 1975년 미국의 Union Carbide Corp사와 합작으로 설립되어 시작되었다. 1986년 소니에서 모두 지분을 인수한후 소니 에너지텍 주식회사가 되었다. 2차 전지 분야에서도 소니는 워크맨, 트리니트론처럼 혁신적인 일을 해내게 되는데, 1990년 '''리튬이온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고 양산'''했기[44] 때문이다. 이후 2000년대 초 산요전기가 추월하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의 리튬이온전지 생산기업이었으나 2006년 소니 리튬이온 배터리의 중대한 결함(소위 노트북 배터리 폭발 결함)으로 전 세계 IT 기업으로 납품된 960만개의 제품을 리콜하면서 그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고 세계 4위권으로 추락하였다. 이후 소니 에너지 디바이스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했다.[45] 배터리 폭발과 같은 중대한 결함이 있었으나 당시 소니 배터리의 성능은 매우 좋은 편이였다고 한다. 이후 소니 배터리는 용량을 늘리기보다는 안정성을 늘리는 보수적인 설계방향으로 선회했고, 그래서 엑스페리아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용량은 타사 경쟁기종 대비 적은 편이다. 사고 후에도 애플 등에 계속 납품하는 등 사업이 유지되기는 했으나 일본에서는 산요를 인수한 파나소닉이 강자로 떠올랐고 삼성SDI, LG화학 등의 한국 메이커들, 그리고 중국산 배터리 제조사들이 본격적으로 치고 들어오면서는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46]
이후 폭발가능성이 있는 리튬이온전지를 대체할 전고체 2차전지의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까지 양산을 시작할 계획을 세웠다. 기존 코발트산 리튬 대신에 소니는 유황 화합물을 양극으로 채택하였고 유황 화합물이 녹아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를 소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전해질을 참가하여 충방전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소니가 어려워지면서 결국 2017년 9월 무라타에 배터리 제조부문을 매각했다. 기존 리튬이온전지 제조 관련 부문만 매각하며 전고체 배터리 개발은 매각하지 않고 소니에서 계속한다고 했지만 2019년에 이마저 넘긴다.링크

3.9.2.



2014년에 PC 사업을 매각했다. 이후는 소니와 별개의 독립회사인 VAIO주식회사에서 개발 및 생산을 담당하고 있으며, 소니는 일본판매에서만 협력해주고있다. 소니는 바이오주식회사의 5%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4. 엔터테인먼트


소니는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 중 하나이지만 여러 한계점도 지적된다.
소니를 이야기할 때는 일본 컨텐츠 시장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빼놓을 수 없고 그 덕에 일본 국내 컨텐츠에 대한 유통 지배력을 높이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일본 대중문화의 유행 자체가 전반적으로 크게 퇴보해버려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사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러브레터, 모닝구무스메 등 해외에서도 잘나가던 일본 컨텐츠들의 유행, 즉 '일류 열풍'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을 것으로 예상됐던 곳은 이쪽에 투자를 선제적으로 해온 소니였다. 하지만 그 후 일본의 컨텐츠 산업이 침체되어 투자한 만큼 건지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역시 소니가 많이 투자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성공한 '쿨 재팬'의 사례로 꼽을 수 있지만 업계가 특정 매니아층 위주로 흘러가면서 서브컬처의 이미지가 더욱 강해진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일본 컨텐츠에 한정된 문제점을 제외하더라도 소니가 디즈니같은 콘텐츠 제국이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렵다. 소니는 워너브라더스유니버설에도 밀리고 있고 특히 20세기 폭스, 워너브라더스가 각각 디즈니AT&T에 인수되면서 더더욱 체급차이가 벌어진데다가[47] 애플, 넷플릭스까지 자체 스튜디오를 차리고 콘텐츠 확보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게임분야에 한해서는 소니가 그야말로 황제급 위상인지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크게 밀리지는 않을듯 싶다.[48]

4.1. 영화, 방송, 애니메이션


소니 픽처스, 애니플렉스, 퍼니메이션, 크런치롤 문서 참고.

4.2. 음악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재팬 문서 참고.

4.3. 게임




5. 금융


소니의 진정한 밥줄이라고 불리는 분야이다.[49]
일본싱가포르에서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를 주축으로 하는 금융업과 보험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리타 아키오가 미국 뉴욕에서 사업을 하고 있을때 금융회사들의 마천루 건물을 보고 자극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1979년 미국 푸르덴셜 생명과 합작으로 소니 생명보험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소니의 금융업 진출이 시작됐다.[50] 1998년 소니 손해보험, 2001년 인터넷은행인 소니 은행이 설립되고 2004년 설립된 감독회사 및 지주회사인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로 금융 사업이 재편되면서, 금융부분이 소니 사업의 주요 부분중 하나로 부상하게 된다. 현재 일본 주요 금융기업 중 하나이고, 소니가 2000년대의 한창 힘든 시절을 넘길 수 있게 해준 자금줄이기도 했다.
2020년 5월에 소니가 기업 명칭을 소니그룹으로 변경하는 플랜을 발표했는데, 이때 포함되어 있던 금융 부분 완전 자회사화가 2020년 9월 2일에 완료되었다. 이에 따라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는 소니가 지분 100%를 소유한 완전 자회사가 되었다. 참고

6. 전용 규격 집착


이 회사는 특이하게 독자적으로 자기네 전용 규격을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며, 자사 제품에는 '''무조건''' 자기네가 만든 규격의 미디어를 주로 탑재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게 잘 풀리면 돈방석에 앉지만 잘 안 풀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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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MD 레코더 MZ-R55
대표적인 것이 베타맥스하고 UMD, 그리고 MD 플레이어. 베타맥스VHS에게 발리고[51], UMD는 정말 소니만 사용하는 표준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미니 디스크는 1990년대 말 일본에서는 꽤 쓰였고 샤프, 파나소닉 등 여러 회사에서 만들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 외에도 더 있다. i LINK, '''메모리스틱'''이며, 여러가지 등등.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전용 표준이나 실패작들은 '''수확 체증 법칙으로 인한, 시장 선점의 실패 및 그에 걸맞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대부분.''' 독자 규격 제품 자체는 성능이 특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회사 정책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같다.
그리고 소니가 내세운 표준매체 관리 전략에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인 것도''' 중요하게 지적받는 실패 요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전용 플레이어 독점 정책이기도 했지만 정책 중에 '''성인용 컨텐츠 진입 불가 정책'''이 있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성인물 제작자들이 베타맥스를 포기하고 VHS로 성인물을 제작해 전세계로 판매했다. 베타맥스VHS에 밀린 것은 사실상 이것이 가장 큰 원인. 소니는 '''뉴미디어의 가장 위력적인 전파 수단은 성인용 컨텐츠'''라는 것을 간과했다.[52] 이것을 교훈삼아 훗날 소니가 앞장선 규격 중에 표준으로 선정된 블루레이 역시 성인용으로는 출시할 수 없다고 공개적인 입장을 취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성인물 제작에 대해서 아무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 유연성을 보여주어 보급을 망치는 일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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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스틱의 경우는 플래시 메모리류 제품이 시장에 퍼지기 시작한 초기에 비싼 가격으로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것이 큰 이유였는데, 사실 소니는 시장 선점의 기회가 있었다. PS2의 저장 매체로 메모리스틱이 검토된 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보다 훨씬 크고 비싸고 용량 적고 게임 데이터 저장 이외에는 쓸 수 없는 PS2 전용 메모리 카드가 채택되었다. 이는 SCE와 다른 계열사간의 관계가 안 좋아서 그랬다고...[53] 만약 PS2의 저장매체로 메모리스틱이 사용됐다면 아마 지금 모든 디카는 SD카드가 아니라 메모리스틱을 사용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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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대표적이라곤 할 수 없지만 PS Vita의 경우 UMD의 실패를 교훈삼아 표준규격을 도입하는가 했는데, 또다시 비타만의 독자규격을 무려 '''세가지(!)'''나 탑재하고 돌아왔다. 오로지 PS Vita에서만 쓰이는 전용 충전포트와 마이크로 SD카드보다 아주 약간 더 작은 비타 전용 메모리카드, UMD 슬롯을 제거하고 도입한 SD카드만한 비타 전용 카트리지다. 상기 이미지의 맨 왼쪽부터 비타용 게임 카트리지, SD카드, 비타 전용 메모리 스틱, MicroSD다. 그나마 충전포트의 경우 2세대가 나오면서 표준규격인 마이크로USB로 바뀌었다. 사실 게임 카트리지의 경우 표준규격으로 만들면 불법 복제에 취약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독자규격이라고 깔 건 못 되지만 문제는 전용 메모리카드이다. 성능은 MicroSD에 비해 떨어지는 주제에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다. 심지어 1세대 기기는 저 비싼 메모리카드를 안 사면 세이브 데이터 저장조차 불가능했으며 2세대부터는 내장메모리를 1기가 탑재하여 세이브는 가능해졌지만 용량이 큰 게임 업데이트는 메모리카드를 안 사면 못 받는다고 봐야 한다.
반면 이러한 표준매체 관리 전략을 쓰지 않은 매체는 대부분 성공했다. 대표적인 것이 1982년 발표한 3.5인치 플로피디스크이며, CD, DVD 매체 역시 성공사례. 이후 플레이스테이션의 힘으로 '''블루레이HD-DVD를 제치고 업계 표준이 되어 버렸다.'''[55][56]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0년대의 현대인들은 1테라(1,000기가) 하드가 6만원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57] CD나 DVD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단 '''1테라짜리 내장/외장 하드 하나'''가 블루레이의 고용량 규격 중 하나인 '''BDXL 표준형 100GB 미디어 한 장'''보다 가격이 저렴하거나 비슷하다.
또한 워크맨 전용 통신포트인 WM-PORT라는 독자규격도 있으나 2019년 드디어 USB 타입C로 대체한 워크맨을 발매했다.
그 외에는 필립스와 공동개발한 NFC 기술의 소니 독자 표준인 FeliCa가 일본과 일부 아시아 지역 한정으로는 범용규격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에서 발매되는 스마트폰들에는 거의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나오며 2017년 이후 출시되는 iPhone에는 전세계 모델에 공통으로 탑재된다.

7. 관련 제품 및 브랜드





[1] 파나소닉도 소니를 따라한다며 1990년 유니버설 그룹을 인수했지만 기업 문화의 차이가 너무 커서 갈등을 빚었고 막대한 손실이 이어지면서 5년만에 토해냈다.[2] 2006년, 칸 광고제(Cannes Lions 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에서 가전 부분(Home Electronics&Audion-Visual)과 최고 음악 부분(Best Use of Music)에서 황금 사자상(Gold Lion)을 수상, 2006년 6월에 런던에서 열리는 Midsummer Awards에서 그 해 가장 우수한 작품에게 주어지는 Grand Prix 상을 수상했다.[3] RCA사는 소니에게 주도권을 내준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결국 1986년 부도를 맞고 64억 달러에 GE에 인수되었다. 현재 북미 지역에만 사업을 진행하는 브랜드로 전락했다.[4] 일본 TV 시장에서 소니가 1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타 전자회사간의 경쟁이 너무 심하고 파나소닉의 막강한 유통력으로 2등라인이었다. 타 일본 업체들은 1960년대 이전부터 컬러 TV를 공개했으나 소니는 그보다도 늦은 68년이 되어서야 트리니트론을 공개하여 시장진입이 늦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트리니트론의 성능이 입증되어 TV수상기 최초로 1973년 에미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샤프 등 일본 회사들이 위기에 빠지고 파나소닉이 PDP에서 철수하고 TV사업을 축소하면서 프리미엄 TV 위주로 재편한 소니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5] 2004년에 소니와 삼성이 크로스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였을때 삼성측에서 가장 원하던 소니의 특허 중에 하나가 DRC였다. 소니측에서 차별화 특허로 계약 대상에서 제외시키느라 엄청 고생했다는 후문.[6] 베가는 사실 소니가 인수한 독일의 전자회사 이름이다.[7] 들어가는 부품과 구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인 것도 있다.[8] 미국 및 멕시코 제 2 공장 신축 및 폴란드 공장 설비 증대와 같은 전 세계 지역의 투자이다.[9] DRC와 액정기술을 연구하던 소니의 최첨단 기술 연구소중 하나다. 연구소장인 곤도 테츠지로는 소니를 퇴사하면서 "더이상 소니는 기술회사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곤도 테츠지로는 당시 쿠다라기 켄과 함께 소니의 제 2의 이단아로 불리던 인물로 소니에서 가장 많은 특허수를 보유한 뛰어난 연구자였다. 곤도는 20여명의 부하직원과 함께 퇴사해서 아이큐브드라는 새로운 연구소를 만들었고 DRC를 뛰어넘는 ICC기술을 만들어서 도시바나 샤프등에게 판매하고 있다.[10] 2010년 일본 시장에서는 다시 만년 4위로 돌아갔다.[11] 이 회사는 대형패널이 아니라 스마트폰용 패널을 생산했지만 OLED 패널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누적된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2019년 대만-중국 컨소시엄에 인수됐다.[12] OLED 기술의 난이도가 높은데다가 정상 제품을 생산하려면 불량품도 정상 제품만큼 나와서 상용화하기 어려웠다. 삼성이나 LG는 이런 낮은 수율에도 불구하고 일단 투자를 집행하고 양산을 시작해서 3장 찍어서 2장 버리는 한이 있어도 서서히 수율을 높여나간 결과 성공을 거머쥔 것이다. 예를 들어서 LG는 2013년부터 OLED 대형패널 양산을 시작했는데 '''2018년 말에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성공했다.''' 소니 또한 대형화 단계까지 개발을 진행했기 때문에 대형 패널을 양산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 소니에게 먼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2008년 소니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하워드 스트링거 CEO가 대규모 연구 인력을 감축하고 개발중지를 선언하는 바람에 놓치게 되었다.[13] 8K OLED는 LG디스플레이가 2018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14] 2009년 일본 내 4개 공장을 폐쇄했으며, 남아있는 건 아이치 현 이나자와시의 공장 하나 뿐이다.[15] 왜 소니가 이 기술을 'QLED'라고 부르지 않았는지는 QLED 문서에 설명되어있는 명칭논란을 참고.[16] 발매 즉시 '''정가'''의 30%를 인하해버리는 것은 중저가 제품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라 논란이 되었다. 물론 애초에 8K는 인간의 눈으로 구별이 어렵고 대응하는 컨텐츠도 부족해 LG전자파나소닉은 초기 진입조차 망설였던 시장이고, 그래서 삼성도 10만달러라는 상징적인 가격을 책정했던 것으로 보인다.[17] 이때에는 mLED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다. 칩의 크기가 630um이었기 때문.[18] 마이크로 LED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소니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삼성 포함)은 정확한 의미의 '마이크로 LED'를 내놓았다고 보기 어렵다.[19] 소니가 무너진 백화점에서(...) 시작했던 사업이 바로 단파라디오 수리업이었고, 초창기 주력 상품들도 음향기기(방송국 납품용 오픈릴 테이프 녹음기, 라디오)였다.[20] 그나마 가장 근접한 사례를 꼽으면 소니와 CD를 공동개발하기도 한 네덜란드필립스가 있다. 인수합병에 의한 사례까지 포함할 경우 2016년 하만 카돈을 인수하면서 음향업계에 진출한 삼성전자도 있다.[21] 세계 10대 발명품 중 하나로 알아주었으나 독일 발명가의 제품을 표절했다고 알려지면서 소니가 백기를 들며 합의한 일로 망신당해야 했다. 워크맨 문서 참조[22] '''극''' 초반기의 주력 상품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였다. 이 소니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인기 상품으로 등극하기까지는 영업사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는데 서류가방을 끼고 명함을 뿌리며 공손히 인사하는 일본 영업맨의 전설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후일,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성공을 발판으로 뉴욕 한복판에 전시관을 내는 소니를 보고 미국의 현지 일본 영업사원들이 모두 모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23] 그나마 2011년에 출시된 MP3에서 죄다 빠졌다. 하치만 A 시리즈만 A30부터 다시 노이즈 캔슬링이 들어갔다.[24] CD놓는 곳에 작은 갈퀴를 달아 CD를 고정시켜 CDP를 흔들어도 튀는 현상이 없다.[25] 한국에서는 2000년대 후반까지 어학용으로 꽤 많이 쓰였다. 지금은 아예 단종된 상태이다.[26] 이중에 후덜덜한 가격의 고급 기종이 있다. 다만 저음이 아쉽게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27] 오픈형 이어폰이 사양세가 된 현재로서는 e888의 16년 기록이 영영 안깨질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이어폰 중 최장수 모델은 1991년에 출시된 에티모틱 리서치의 ER4이다.[28] 소니코리아 정품은 가장 저가형인 MDR-E9LP를 제외하면 이어폰/헤드폰 전 라인업에 정품 스티커가 붙어있다.[29] LDAC 때문에 2015년 이후 출시된 소니의 무선 스피커는 대부분 aptX를 지원하지 않는다.[30] 예외로 라이카가 있지만 가격이나 구조나 전혀 다르다.[31] 캐논과 니콘외엔 어느 회사에서도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올라간 회사가 없다.[32] 방송장비 및 캠코더 시장에서 경쟁자는 JVC, 파나소닉, 캐논, 히타치 정도가 있다. 방송영상장비 시장은 일본 기업들의 영향력이 강하다.[33] 아리의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에 들어가는 이미지 센서가 소니의 제품이긴 하다.[34] 단 카메라 렌즈는 제외. 영화 쪽에서는 아리의 렌즈를 사용하고 있으며 전문가용 스튜디오 카메라의 렌즈는 캐논, 소비자용 캠코더의 렌즈는 독일의 칼 자이즈와 소니의 G렌즈를 사용하고 있다.[35] 올림푸스의 내시경기술과 소니의 이미지 센서 기술을 결합하여 내시경 카메라등을 개발 및 발매하고 있다.[36] 실제로 WWDC에서 소니 BVM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비교함.[37] 소니의 프로젝터는 자사가 개발한 SXRD라는 LCoS 패널을 사용한다. TI사의 DMD와는 경쟁관계라고 봐야 한다. 출처[38] 초기 DCI 호환 DLP영사기 메이커는 크리스티, 바코, NEC 3사였다. 이 시절엔 DLP는 2K(2048x1080)뿐이었고 SXRD를 채용한 소니만이 4K를 지원했다.[39] 2위는 17.9%의 삼성전자이며 SK하이닉스는 2.1%로 5위이다. [40] 소니의 경우 엑스페리아 1에서 주 카메라를 제외한 나머지 3개의 전·후면 카메라에 삼성 센서를 사용한 바 있다.[41] 시계 라디오의 경우 과거에 파나소닉이 플립식 시계를 장착한 기종도 만들었었다.[42] 에네루프를 생산하는 공장이다.[43] AA/AAA형 충전지의 경우 2016년 이후 생산품 기준으로 FDK Twicell[42]에서 생산중.[44] 양산은 일본의 화학회사 아사히 카세이와 함께 했다.[45] 2011년에는 소니가 배터리 사업을 접을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루머에 그쳤었다.[46] 이 여파로 갤럭시 S8부터는 안정성을 고려해 공급선에 소니의 배터리를 추가했으나 2019년 갤럭시 노트10부터는 해당 물량이 LG화학으로 대체되었다.[47] 디즈니야 말할 것도 없으며 타임워너는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 유니버설은 미국 최대 인터넷 회선기업인 컴캐스트가 모회사이다.[48] 세계적으로 젊은층의 게이머들에게 소니의 영향력은 무지막지하게 높다.[49] 삼성 역시 삼성생명이 제법 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있다.[50] 여담으로 삼성그룹은 정반대로 먼저 시작한 보험업이 삼성전자에 출자.[51] 베타맥스VHS는 그 유명한 사회학 이론 '경로 의존법칙'의 대표적인 예로 인용된다.[52] 한 예로,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었을 때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다름아닌 검열삭제였다. 이와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의 IT보급에 큰 영향을 준 3대 요소로 스타크래프트, PC방, 이 사람의 동영상이라는 말이 종종 나오기도 했다.[53] 초기 SCE는 다른 소니 계열사들에게 굉장히 무시당했다고 한다. 애들 게임기나 만든다고. 물론 플레이스테이션은 대히트를 치고 그외 나머지 사업들은 죄 말아먹은 후에는 상황 역전.[54] 소니 계열사들끼리는 서로 경쟁하도록 되어 있다. 경쟁을 통한 성장을 기대한 것 같은데 현재는 이것이 독이 되어 서로 자폭하는 모양새(...).[55] 물론 CD, DVD, 블루레이 모두 소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56] HD-DVD가 경쟁에서 밀려난 것은 이미 CD류의 광매체 시대가 지나버린 것을 안 도시바 진영에서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긴하다.[57] 2011 태국 홍수로 하드 값이 두 배 이상 폭등했지만, 반사이익은 블루레이가 아닌 SSD가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