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철/논란
1. 개요
윤의철은 인성 문제뿐만 아니라 휘하 병사들 및 예비군에 대한 야박한 처우 문제로 인해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으며 급기야 2019년에는 청와대 민원 사이트를 통해 예하 부대에서 군생활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보직해임 청원글[1] 이 올라오면서 이를 성토하는 증언들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논란이 일어난 시기 자체는 군인권센터가 고발한 박찬주의 공관병 갑질 사건과 시기를 같이 하나 악질적인 면모가 많이 부각된 박찬주 대장 사건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 윤의철의 경우는 언제 어디서 사건사고가 터질 지 모르는 상황인데, 아직까지는 '''"이런 사람도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추가 실린 듯.[2][3] 결국 전역은 커녕 대한민국 합동참모차장으로 영전까지 하였다.[4]
군 전역자들 대부분이 소속과 신분[5] 을 가리지 않고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선 오래지 않아 반드시 사망사고[6] 나 무장 탈영, 총기 난사 등의 큰 사건이 일어날 법 한데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기적이거나, 사건을 은폐하거나 둘 중 하나다.
정상적인 장성급 장교는 이 따위로 병에게 막 대하고 그러지 않는다. 최소한 하급자에게 예를 갖추는 경우가 많고 그 정도 인품은 되어야 준장 이상 진급이 가능하다.
자세한 논란들은 하단 내용으로.
2. 고의적인 일과시간 미준수와 수면시간 박탈
육군 규정상 취침시간은 22시며, 기상시간은 하계 6시, 동계 6시 30분으로 충분한 수면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 그러나 경계 근무와 불침번, 당직 근무등으로 충분한 수면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8사단 장병의 증언에 따르면 기상시간이 5시, 일과 시작 시간이 6시로 앞당겨지고 그 사이 체력단련을 채운다고 한다.[7]
육군 규정이 바뀐 게 아닌 이상 7군단 예하 부대만 일과시간과 기상시간이 바뀌고 그 사이에 체력단련이 들어간다는 것은 기본 휴식 여건인 잠을 충분히 재우지 않고 그 사이에 체력단련을 시행한다는 건데 이는 엄연한 가혹행위다. 특수부대인 특전사나 해군 특수전전단조차 지옥주라고 부르는 과정이 아닌 이상 충분한 수면과 휴식은 기본적으로 보장받는다.[8]
사실 네이비 씰에서 도입한 지옥주도 목적이 잠을 안 재우고 버티는 훈련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을 골라내기 위한 과정. 즉 다시 말하자면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인원을 탈락시키기 위한 과정이며 안 그래도 야간 근무로 인해 수면 시간 4~5시간을 달리고 있는 한국군의 기상 시간을 앞당기고 그 빈 시간을 체력 단련으로 채운다는 건 병 인권을 아주 심각하게 침해한 행위이다.
3. 과도하고 혹독한 체력 강조
체력 강화에 극악할 정도로 집착한다. 제28보병사단장 시절 상관이었던 엄기학 대장(육사 37기, 제3야전군사령관)의 명령을 고의적으로 씹고 아침 알통구보[9] 를 시킨 적이 있으며, 그간의 일화가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지만, 특별한 변화는 없는 상황.
얼핏 생각하면 장병들 체력 강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실제로는 다리 부상자를 억지로 행군에서 '''발목 짚고''' 걷게 만들었다든가 밥 하느라 개인정비 시간이 부족한 취사병들이 '''특급전사를 따기 위해 취사에서 열외'''하는 수준이었다는 증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 정도면 기성세대들도 항의를 할 가능성이 높다. 굴리는 건 좋은데 부상자들만 더 늘어가면 기성세대들도 어떻게 반박을 못한다.
즉, 군대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봐도 '''비정상'''이라고 평가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하 장병들에게 계속해서 특급 수준의 체력단련 평가기준을 달성할 것만 강요하고 있다. 이로 인해 훈련과 혹사를 구분하지 않아 다친 병사들로 인한 비전투손실이 있다는 것과 이에 대한 대비책(예, 단계별 체력 단련)에 대한 관심은 보여준 적이 별로 없다.
#1 웃긴대학 사례 #2 FMkorea 사례루리웹 사례1루리웹 사례2디시 군갤7군단갤[10] 검색만 해도 좌우 떠나서 삭제한 글 포함 정말 많이 쏟아져 나온다. 온갖 짜증에 욕으로 도배될 정도로 까도 까도 끝이 없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으로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개개인의 체력이나 몸 상태, 질병 등을 고려하지 않고 열외 인원이 많은 게 싫다는 이유로 취사병에게 유격을 강요하거거나 다친 환자까지 행군을 강요해 비전투 손실을 일으키는 부분은 단골 비판 메뉴이다.
중장은 공무원 급수로는 차관급 대우[11] 이고 보수는 특정직 공무원이라서 일반직 공무원보다 더 많이 받는다. 의전과 대우는 동급의 차관들 가운데에서는 경찰청장/소방청장밖에는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의전대우가 매우 높다. 겨우 일선 지휘관이나 할 일을 하라고 그 정도 수많은 돈을 주고 의전대우를 해 주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병역은 징병제다. 징병제인 탓에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질병을 앓고 있어 검증이 안 된 인원들도 매우 많이 군대에 입대하게 되고 있다. 심지어 현역징집율이 90%를 넘어갈 정도인데,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군과 본토에서 결전 벌이다가 다 같이 죽자고 여자들에게 죽창 나눠주던 시절의 일본의 현역징집율이 65% 정도였다. 베트남전쟁과 2차대전 미국이 60%가 간당간당했다. 윤의철은 이런 대한민국 국군의 특성을 아예 무시하고 징병제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모병제 군대보다 더욱 기준이 높고 까다로우며 '''강한 훈련기준을 부하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못 하는 인원들을 잘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분명 '''중간과정이 필요'''한 법인데 윤의철은 그런 중간과정을 고의적으로 씹고 무조건 잘할 것만 강요하는게 문제. 질환, 질병을 갖고있는 병사에게 강도높은 훈련을 시키면 정예병사가 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 되거나 죽는다. ''' 해군 특전사 예비역 에이전트 H가 이르기를 '''단계적으로 굴려서 지옥주를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어준다고 한 걸 보면''' 중장이 중사 이하의 식견을 가졌다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사실 일반 신교대에서도 처음에는 제식같은 몸쓸일 없는 쉬운 일을 시키고 어느정도 적응되었다 싶을 제일 마지막에 수류탄을 시킨다.
징병제라고 해서 훈련을 물렁하게 하라는 얘기가 아니며, 징병제는 모병제보다 군 복무능력이 떨어지는 장병에 대한 배려와 관리가 훨씬 많이 필요함[13] 에도 불구하고 윤의철은 전장병에게 '''일괄''' 특급전사와 체력단련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게 비판 요지. 심지어 체력단련 인원은 육안으로 질병 명칭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식표를 달게하기도 했는데 질병 정보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민감정보다. 기사1 기사 2 심지어 군인권센터에서도 이를 두고 '''"유대인에게 다윗의 별을 달고 다니게 한 나치가 연상된다”'''고 매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과거 나치의 만행들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윤의철이 하고 있는 행동은 상식의 범주와는 매우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군에 있다보면 헬스에 관심을 갖는 병사도 있기 마련인데, 차라리 그런 병사들을 중심으로 더 케어하거나, 자기가 공부하거나, 체육학과 출신의 장병들에게 자문을 받아 체력단련 매뉴얼을 정비하든가. 허리나 관절이 아픈 환자들에게는 질책하거나 낙인을 찍는 대신 재활훈련이라도 시켜주고, 체력이 좋아진 병사들에게는 포상을 펑펑 뿌리든가 하는 식으로[14] 지휘했다면 반발이 훨씬 덜했을 것이다. 특급전사들만 데리고 장군이 직접 버스로 서울까지 데려다주는 것만 해도 병력들은 몸이 힘들어도 사기가 올라갔을 것이다.
당연히 윤의철 중장 말고도 체력을 중시하는 장성들은 있다. 당장 현 육군참모총장인 남영신 대장도 사단장 시절 체력을 굉장히 강조했고, 육사 한기수 선배인 안영호장군의 경우 체력을 강조하는 만큼 그에 따른 확실한 보상이[15] 있었다. 김승겸 대장은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체력을 얼마나 강조했는지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하다못해 윤의철 중장의 동기들인 육군사관학고 43기 중에도 체력을 강조한 지휘관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해당 지휘관들의 문서에도 서술되었듯이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부터 솔선수범을 보이거나, 확실한 보상이 존재하거나, 예하부대에 어느정도 자율성을 보장하거나, 훈련이 아닐 때는 어떤 지휘관보다도 병력들이 편하게 부대를 지휘했고, 체력을 강조하면서도 안전을 위해 무더위나 혹한기시 과도하게 체력단련을 강행하는 지휘관들을 질책한 적도 있다.
4. 체력기준의 롤모델이 미군?
윤의철은 미군을 기준으로 체력을 맞추겠다는 방침을 전달한다고 한다. 정확히는 미군 일부 '''"전투병과"''' 수준의 체력단련 수준을 강조하겠다는 의중으로 짐작된다. 미군도 사실 모두가 람보, 코만도 같은 이들은 아니기 때문. 미군은 병과 상관없이 매일 아침하는 PT와 체력검사 기준이 있다. 전투병과일 경우 부대 자체적인 기준들이 있고 비전투병과들은 PT 기준점에만 도달하면 된다.
PT 테스트에서 떨어지면 진급에 불이익이 있거나 군대에서 쫓겨나 직장을 잃게 되기 때문에 PT는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과 제쳐두고 PT하라는 이야기는 또 아니다. 또한 미군은 지원제 시스템이고 직업군인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각종 자격증명이나 기장을 갖추는 것은 수년 이상 군생활을 뜻하고 있다면 진급과 봉급에 보너스로 작용한다. 또한 미군의 시스템 자체가 이런 식으로 자격을 갖추려는 자원자들을 잘 돕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충실하게 짜여져 있다. 병사부터 시작해 부사관, 장교까지 진급하고 병과를 옮겨가며 군생활을 하는 케이스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래 문단에도 서술되었듯이 그 체력 기준인 특급전사는 미군 기준으로는 특수부대 기준선에 맞먹는 수준이다. 육체적으로 상당 수준의 지원자만 모이는 미군도, 남성의 90% 이상이 모이는 대한민국 징집병들도, 모두 시일을 갖고 준비해야 달성할 수 있는 기준이다.
미국의 경우 징병제인 시절에도 그렇게 많이는 안 뽑았고, 체력이 안 되면 그냥 면제시켰다. 진주만 공습으로 전 미국인이 분노한 상황에서 혈청을 맞기 전의 스티브 로저스같은 약골은 입대를 거절시킨 것이 픽션의 일만은 아닌데, 한국의 경우 입대 자원이 극히 줄어들자 이런 약골들도 사지만 멀쩡하면 입대시키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 병사들은 일과가 끝나면 상근예비역이 아닌 이상 병영이 아닌 집에 가서 쉬는 군대도 아니고, 하다못해 민간 헬스장에 찾아가서 전문 교육을 받은 강사들하고 체력 훈련을 할 수 있는 그런 구조도 아니다. 게다가 자격을 딴다고 보너스로 포상이나 배려를 해주는 게 아니고, 자격을 딸 때까지 원래 갈 수 있는 휴가를 안 보내는 식이면 가혹행위나 다름없다. 애초에 미군은 '''성과로 진급하는 모병제''' 군대이고, 한국은 '''국민의 의무 때문에 복무하는 징병제''' 군대이다. 왜 미군들이 그렇게 죽어라고 체력 단련을 하냐면, '''진급하기 위해서'''다.
현대전에서 많은 하중을 짊어지고 전투를 행하는 보병의 특성상 척추 부상과 무릎 부상 등이 지속적으로 관찰되며 미군조차도 이런 부상을 줄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판국에 그 어떤 질병관리나 부상 관리는 관심도 없는 채 환자에게조차 체력단련만 악질적으로 강요하는 건 병력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후유증과 부상을 안겨주고 단위부대의 영구적 전투력 손실을 줄 수 있다.
즉, 위에서 언급한 체력강조는 오히려 사기에 역효과가 난다. 또한 병사들의 '''(포상)휴가에 인색한 지휘관'''이라는 평가가 많기도 하다. 일선 지휘관들 중에는 휴가 권한을 강하게 쥐고 휘하 장병들을 통제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윤의철도 이런 유형인 듯.[16]
체력은 전투력의 기본이나 체력을 양성하는 것은 끊임없는 건강 관리와 휴식이 필수적이라는 점 역시 감안해야 한다. 또한 체력단련을 이유로 예하 장병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상술한 사례와 같이 체력과 무관한 열사병으로 쓰러진 장병 한 명을 이유로 소속 부대에 연대책임을 지워 얼차려를 부과하는 건 지휘관으로서 합당한 행동이 아니다.
징병제 국가의 군대가 군복무를 생업으로 삼는 모병제 국가의 군대보다 기준이 더 '''높다.''' 윤의철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소위로 임관은 했으나 보병 병과를 놓치고 포병 병과를 받는 바람에 그걸 만회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런 괴물로 변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변명도 있으나, 국군에서 포병 병과는 보병 다음으로 숫자가 많고 장성 진급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17]
국군 장성보직이 대부분 보병사단장에서 올라가는 보직인데, 기갑부대인 기계화보병이나 특수전부대인 특공여단이 아닌 이상 보병사단장이 될 사람은 보병 병과나 포병 병과에서 나오는 게 제일 무난하기 때문. 이렇게 혹독하게 안 해도 대장까지 달 인물은 충분히 달았다는 것을 보면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김태영 대장, 김병주 대장은 포병임에도 병사들을 들볶지 않았다.
물론 강한 군대를 위해 체력은 필수 조건이지만, 억지로 쌓은 탑은 아무 의미가 없듯 호평받고 있다고 해도 결국 신뢰받는 군대가 될 수 없다. 미군은 우리보다 군대에 돈을 비교도 안 될만큼 많이 써댄다. 강한 군대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예산이 안 된다고 하면, 체력 단련을 달게 받을만한 큰 보상이라도 있어야 한다. 애초부터 국군은 징집병으로 입대를 하는 것이라 더더욱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도, 병사들을 저 따위로 형편없는 대우를 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
5. 비특급전사에 대한 불이익
특급전사는 문자 그대로 우수한 병사를 선정해 혜택을 주기 위해 있는 제도이다. 포상과 혜택들을 줌으로서 장병들의 체력 관리와 전투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유인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를 반대로 이용해서 비특급전사들의 기본권 자체를 박탈하는 방향으로 홀대하는 게 윤의철이다.
그렇다고 특급전사가 누구나 다 딸 수 있는 기준이냐? 그렇지도 않다. 특급전사의 체력 기준이면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씰의 체력시험 합격 기준과 맞먹는다.[18] 미군들도 운동선수 등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몇달을 준비해서야 특급전사 정도의 체력수준이 나오는데, 전체 남성의 90%를 동원하고 있는 한국군에서는 개인 질병의 유무와 체력 조건에 따라 특급전사 수준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고 때문에 비특급전사에 대한 징계를 줘서는 안 되는 게 인간의 상식이다. 그런데 윤의철은 규정에 없는 '''비특급전사에 대한 차등 대우'''로 군법과 육군 내규를 위반하는 월권을 저지르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다른 근무(급양, 격오지근무 등)로 받는 휴가 또한 특급전사가 아니면 나가지 못하게 막거나,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의 주말 영화 관람을 막는 등 종류 또한 다양하다.
게다가 특급전사는 사격 성적도 좋아야 하는데, 징집병들 기준으로 가장 큰 문제는 시력이다. 현역 입영 기준으로는 시력이 장애인 수준만 아니면 입영 대상인데, 그중에는 심지어 100m 과녁도 제대로 안 보인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체력이 어떻게든 되어도 시력 때문에 사격을 못해 죽었다 깨어나도 특급전사는 못 딴다.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아주 분통이 터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는 이 문제가 각 장교 교육기관(사관학교, 학사장교, 단기간부사관, ROTC)에서도 발생하여 시력이 나쁜 장교들이 임관하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장교 교육기관에서 보면 훈육장교들도 사격시험 보러 가서 탈락해서 재시험을 보기도 하는 일이 빈번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교를 교육훈련시키는, 군대 내부에서는 최고급 인재로 분류되는 이들이!''' 시력은 해당 인물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다. 가리고 골라 뽑은 장교도 이럴 지인데 하물며 무턱대고 마구 뽑아대는 병사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대한민국 육군 규정상 징계를 거쳐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징계위원회를 개최하겠다고 사전에 통보해야 하며 징계위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회의를 거쳐 징계를 심의해야 한다. 징계당사자는 이러한 징계에 헌병대와 군 법무부를 통해 징계의 정당성을 심의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또한 얼차려는 "육군 규정에 따라" 제한적으로 얼차려를 부과할 수 있다. 따라서 일사병으로 쓰러진 장병의 소속 부대에게 연대책임을 물어 뜀걸음을 지시한 것은 정당한 얼차려 부과가 아니기 때문에 불법적인 가혹행위다.
특급전사를 선정할 때는 체력 여건, 정신전력, 사격실력 여부까지 판단하기 때문에 비특급전사는 징계 사유조차 되지 못하며 당연히 정기외박/외출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얼차려 등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그 사유가 정당하고 불법적인 요소가 없어야 한다. 징계위원회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고 비특급전사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은 엄연한 차별행위며 신종 가혹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국군의 규정에도 문제가 있는데, 전투프로나 특급전사에 대한 '''포상이 너무 부족'''해 별로 동기부여가 안 된다는 점이 있다. 진급이야 어차피 간부가 아닌 이상 군대에서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어지간하면 진급하게 되어 있어서 별로 동기부여가 안 되고, 휴가도 나온다고 하나 전투프로 2박 3일, 특급전사 4박 5일 정도인데 차라리 초기에 계획했던 대로 7박 8일 또는 9박 10일이거나 너무 길면 이틀 정도만 줄여도 휴가에 눈이 먼 장병들이 눈알을 부릅뜨며 체력단련에 매진했을 것이고, 혹은 상여금으로 월급의 75%, 100%를 더 지급하는 포상 방식이었다면 충분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도 윤의철은 연설을 통해 한국군의 특급전사 기준이 미국 고등학생의 평균치라는 되도 않는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껄인 일이 있다. 미국은 세계 비만률 1위 국가고 고등학생들도 비만률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많아 학교 급식에서 피자를 빼려고 했더니 급식 업체들이 피자에 채소로 만든 '''토마토 케첩이 들어가니''' 급식 규정에 따른 채소를 만족한다라고 반대해 무산된 사건이 있다. 3명 중 한 명이 고도비만인 미국 고등학생 입장에서는 전혀 씨알도 안 먹히는 거짓말을 당당히 한 셈.[19] #
애초에 구성원 모두를 전투프로, 특급전사 등의 인간흉기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체력이 따라오는 병사들만 수행 가능한 작전계획을 작성하는 것은 지휘관의 무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민 모두를 인간흉기로 만들려던 스파르타가 한때 패권을 잡은 지 1년만에 테베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입고 비참하게 몰락한 것을 봐도 그렇다. 반면 유럽 전체를 호령한 강군 로마 제국은 모두를 인간 흉기 수준으로 훈련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휘관의 능력이나 지휘 기술을 갈고닦은 것만 보아도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는 뻔하다.
윤의철이 모자란 '''군인'''이기에 앞서 모자란 '''인간'''인 이유는 여기에 기인한다. 윤의철이 체력이 좋은 특급전사를 여러 혜택으로 우대했으면 이 정도로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20] 그러나 실상은 특급전사인 장병들을 보통으로 여기고 특급전사가 되지 못한 장병들을 소위 폐급인 것으로 취급하고 불법적인 징계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급전사가 아니면 모든 특박과 심지어 정기 외박과 외출까지 금지하고, 개개인의 증언에 따르면 특급전사가 되지 못한 사람에게 폭언, 욕설 등 온갖 모욕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렇게 특급전사에 목을 맬 거면 차라리 특급전사에게만 주는 2주일짜리 휴가증을 배포하는 방법이 훨씬 효과가 좋았을 것이다.
6. 병과별 차이에 기반한 체력 요구치에 대한 몰이해
당장 윤의철 본인부터가 포병 병과인 만큼, 포병과 보병의 차이를 잘 알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 포병의 대부분은 견인포병이거나 자주포병으로, 행군 능력이나 소총 사격능력보다는 각종 포탄이나 기자재 등을 운반하고 물자를 나르고 장비를 관리하는 업무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견인포 부대의 경우 원래 정식으로 훈련을 하면 한박스에 30~40kg가량 하는 포탄박스를 수백 발씩 탄약 차에 배분하고 각종 물자를 적재한 뒤 차량으로 이동해 다닌다. 이후 수시로 포를 방열하고 물자를 내리고 다시 적재하는 식으로 훈련을 한다.
즉 포병은 부대 특성상 행군이나 개인화기 사격의 중요성보다는 무거운 물자를 수시로 들고 내리는, 흔히 헬스에서 말하는 고반복 리프팅에 가까운 형태로 힘을 쓰게 된다. 실제로 부대원들도 다리 힘보다는 상체와 허리 힘이 발달하는 경우가 많다.[21] 문제는 윤의철이 그토록 강조하는 특급전사에는 이런 건 반영되지 않았다.
심지어 포병부대는 소총 사격 훈련도 보병보다 적게 한다. 하지만 특급전사를 따기 위해서는 사격훈련 성적도 좋아야 하는데, 징집병들인만큼 시력도 제각각이다. 몸은 몸짱인데 시력은 안경을 쓰고도 한자리수가 안되는 병사들은 눈이 안 좋아서 과녁을 못 맞추고, 그래서 특급전사가 못된다.
군수, 행정, 인사, 화생방 등등 지원병과들도 마찬가지다. 전방에서 전투임무를 하지도 않을 인원들이 전투병 수준의 전투력을 강요받는 것이다. 이 사태의 최정점은 앞서 말한 취사병들이 특급전사 따야 한다고 훈련하고, 부상병들을 의무대에서 끌어내 행군 시키는 식의 행정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만약 이런 요구가 원래 전투임무를 하는 보병연대 정도에서 이뤄졌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이해를 할 수 있겠으나,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각종 지원 제대를 갖고있는 사단에서도, 그리고 그보다도 거대한 군단 단위에서도 요구되었다는 것이다. 사단과 군단의 비전투 직할대가 순수 기행부대가 아니라는 점은 감안해도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얘기다. 전시에 군단 내의 모든 제대를 다 해체하여 보병으로 통일시키고, 마지막 단 한 명까지 전선으로 착검돌격을 시킬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면 필요없는 조치인 건 당연하다.
7. 기본조차 못 지킨 행군훈련
행군 중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단독 군장으로 전환하거나 포기할 경우 무조건 40km 재행군을 실시하였으며 어깨나 허리환자 중 심한 사람은 군장을 들지 못해 단독군장으로 실시하였는데 이 또한 재행군 대상이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30km 지점까지 완전군장으로 도달하였으나 몸상태 악화로 인해 나머지 10km를 단독군장으로 완주했던 사람은 추후 20km를 완전군장 아니면 40km를 단독군장으로 다시 해야 했다. 이때 복무 중이던 일, 이병들 중에 환자여서 항상 단독군장으로 행군했던 병사는 전역할 때까지 행군 마일리지 누적으로 재행군 명단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참사도 있었다.
또 가라군장을 방지하기 위해 행군 출발 전 무게측정, 절반 지점에서 무게 측정, 복귀 후 무게측정을 실시하였으며 짐을 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군장의 지퍼나 구멍 부분은 모조리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군장의 무게는 27kg을 반드시 충족해야 했으며 화생방 물자까지 넣은 완전 FM 군장으로도 27kg이 나오지 않자 물을 가득 채운 1.5리터 페트병 또는 돌을 넣어 무게를 맞췄다.[22]
그나마 행군이라도 제대로 하게 했다면 모를까. 위에서 언급한 군장을 케이블 타이로 봉인했는데 이러한 지시가 문제인 것이 행군을 하다 보면 발에 땀이 차거나 물에 젖거나 해서 양말이나 전투화를 갈아 신어야 할 때가 있는데 군장을 못 열어서 갈아 신지 못 하면 당장의 전투력 하락은 물론 이후 봉와직염으로 인한 병력 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행군 훈련이 아니라 바탄 죽음의 행진을 재현하려고 한 거 아닌가 할 수준이다. 게다가 유사시에는 군장에서 물품을 긴급하게 꺼내거나 넣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예를 들면 탄창) 군장을 케이블 타이로 봉인했다는 건 '''적의 기습을 받고 교전 중에 탄이 다 떨어져 탄창을 새로 끼워야 하는데 군장을 열지 못해 탄창을 갈아 끼우지 못하고 탄이 없어서 전멸당할 수도 있는 행동'''를 하는 것이다. 오로지 부하들이 요령 피울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만 보일 뿐 진짜 군사훈련에 대한 알고리즘에는 일절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제7기동군단장이 된 이상 앞으로의 행보도 걱정이 되는데, 7군단의 예하사단이 다들 기계화보병사단으로, 사실 기계화보병 소총수는 장갑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장갑차 기동이 어려운 산악지형이 아니면 행군을 강도 높게 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고 그럴 바에 차라리 조종수의 기동훈련을 강도가 높게 굴리거나, 소총수들의 산악행군 위주로 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승무원의 총안구사격훈련을 시키는 게 맞다. 전차 없으면 사실상 전투력이 없다시피한 전차 승무원도 마찬가지. 공병대대에게도 6주 훈련 같은 무의미할 정도로 긴 훈련을 시키는 데에는 큰 이유랄 것도 없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실질적으로 군사력에 도움이 될 만한 수준을 넘어선 무리한 훈련을 강행하는 게 윤의철의 훈련방식이다.
8. 보급실패? 실제 상황 상정?
6주 훈련 같은 강도높은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보급이 부족해 지급되는 식수를 제한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샤워장에는 녹물 냉수만 나와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 시설이 열악해 '''전술 텐트''' 배수로에 용변을 보게 하는 것은 기도비닉 유지에 큰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위생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훈련상황에서도 그렇지만 실전 상황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 수인성 전염병이라도 돌면 그냥 '''전멸'''이다.
그가 그토록 오마주하는 미군은 야외용변부스를 마련하고 야외 샤워장을 구축한다. 드럼통에 모여진 용변은 경유를 부어 말끔히 태워버린다. 수없는 전투를 통한 미군의 노하우. 수인성 전염병이 얼마나 큰 비전투 손실을 야기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임시 주둔지 배수로에 용변을 공식적으로 보게 한다? 전시였던 베트남전 한국군도 이러진 않았다.
9. 전문성에 대한 인식 부족
군사특기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그래서 군종병, 정훈병, 유해발굴병, 본부중대 등을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보직이 아니라 특급전사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특권'''으로 인식했고, 그 결과 해당 보직에 대한 전문성은 무시하고 특급전사 중에서만 배치하게 하려고 시도했다. 군종병은 군종장교들의 심한 항의로 인해 재배치하지 못했으나 유해발굴병, 본부중대 등은 특급전사만이 배치되면서 부대의 전문성이 떨어졌다. 확실히 유해발굴병은 체력이 중요한 보직이긴 하지만 특급전사가 아님에도 유해발굴병 잘 하고 만기전역하는 사람도 쌔고 쌨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임태훈 군인권센터장은 '''4개월이 되도록 통신병이 통신기 하나를 못 다루는 상황'''이라고 말할 정도.
군종부에 대해 민감했다. 군종부는 군종병과 담당관을 제외하고는 전부 성직자(군종장교)이기 때문에 원래는 지휘관일지라도 함부로 대하기가 껄끄러운 부서이지만, 한미연합사령부에서 미군 군종 목사(대령)이 강연 도중 "결국에는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했을 때, 연대/사단 군종장교들을 향해 "이제 군종부를 합법적으로 압박할 수 있겠다."라며 대놓고 사악한 미소를 드러냈으며, 기존 보병 중에서 선발된 군종병에 대해서는 참모장으로 하여금 특급전사 미달성 시 다시 보병으로 롤백하라는 공문을 내릴 정도였다. 다만 이게 문제점이 많았고 게다가 군종장교들이 강하게 항의하는 바람에 결국 없었던 일이 되었다.
82연대 예하 대대에서 군단 유해발굴병을 차출할 때, 기본 자격이 특급전사였기 때문에 문화재보존학과 출신 병사가 떨어지고 스포츠 레저 관광학부 출신 병사가 유해발굴병으로 뽑혀서 파견을 가게 되었다. 이는 전투중대에서 행정병의 비율이 많은 본부중대로의 차출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일병 3호봉 이전에 특급전사'를 딴 사람만이 정훈병 및 대대계원이 될 수 있었다.[23]
운전병도 예외없이 굴리는데, 체력단련 때문에 특기교육인 운전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났으며,[24]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다.[25]
10. 인성에 대한 평가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보이는 성과에만 연연하고 해당 장교의 평판을 고려하지 않은 진급기준을 두기 때문에 진짜 뛰어난 장교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성과가 뛰어난 장교가 진급이 더 잘된다. 사실 어느 조직이나 다 그렇기는 하지만 군대라는 조직은 그런 것만을 신경써서는 유지되기 힘든 집단이다.
장교가 임관하기 전 무관후보생 시절에는 상호 다면평가를 하여 후보생들간에 인성 점수를 매기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장교들의 인성평가는 '''이걸로 끝'''이며 소위로 임관한 이후에는 초군반에서 단 한번만 할 뿐, 그 이후 인성평가를 아예 하지 않는다. 다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는 게, 임관 후부터는 본격 동기이자 경쟁자가 된다. 특히 대령 시절에는 '''별을 달기 위해''' 동기들을 모함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런 인성평가는 악용될 소지가 많다. 예를 들어 업무평가가 3년 연속 1~2등에 체력, 사격 능력이 특급인 사람일지라도 이혼 같은 사유로 가정사가 좋지 않으면, '''자기 관리''' 관련 선택지에 '''마음놓고''' 부정적인 내용으로 점을 찍을 수 있기 때문.
특급전사라는 성과와 휴가증 및 휴식(개인정비) 부여 부분이 비례하지 않는 경우라고 한다. 실제로 다른 부대에 비해 윤의철이 지휘하는 부대에서 특급전사가 많이 나오는 편이라서 윤의철은 저런 강공 일변도 지휘로도 중장까지 진급하고 그것도 육군특수전사령관과 더불어 대장 진급이 유력한 보직인 제7기동군단장에 보직되었다. 실제로도 김장수가 제7기동군단장에 오른 뒤에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참모의장을 건너뛰고 바로)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고 남영신은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역임하고 대장으로 진급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게 윤의철이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윤의철에 대한 물의가 올라올 때마다 공교롭게도 큰 사건이 터져 그쪽이 조명받았기 떄문이다.[26] 이 양반이 지휘하는 부대에서 자살자나 총기사고 등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운 하나는 억수로 좋은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노크 귀순 사건, 알자회의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윤의철의 진급과정이 달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27] 만약, 영관급 장교까지 상호 다면평가를 실시했더라면 어땠을지 궁금한 대목.
물론 윤의철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병력들을 쥐어짰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대한 빨리 진급해서 '''육군사관학교 43기 동기를 휘하에 두고 싶어서.''' 그러나 정작 현실은 윤의철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돌아갔으며 되려 '''윤의철의 육군사관학교 2기수 후배인 강건작이 윤의철과 동급'''까지 성장해버렸다. 이러다 강건작이 대장에 1차로 진급해버리면 그 동안 윤의철이 지은 죄에 대한 대단히 합당한 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1기수도 아니고 2기수나 되는 후배를 직속상관으로 모시는 상황, 이것이 윤의철의 그간 행적에 대한 가장 정확한 신의 답변이 될 것이다. 또한 평생에 걸쳐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의 휘하에 있어본 적이 없는 윤의철로서는 이렇게 될 경우 자신보다 나이가 2살 어린 강건작의 휘하에 있으면서 그 동안 군생활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와 경험이 될 것이다.[28]
11. 실제 증언 사례
11.1. 제92포병대대장 시절
- 04년 2군단 예하[29] 2포병여단 92대대장으로 취임.
- 강도 높은 훈련과 특급전사에 대한 열망, 보직구분 없는 훈련 참여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열외에 대한 선입견이 심했다.
- 취임 초기부터 체력단련에 집착을 보였고 크고 작은 훈련이 잦았으며, 훈련 성과에 따른 포상을 얘기하며 병사들의 훈련 참여를 독려하고 유도함.
- 155mm 견인포 특성상 일반보병과의 훈련 규모가 다르기에 세심한 주의가 요구됨. 그러나 부대내 연병장에서 견인포 훈련중 속도전을 위해 견인차량(K-711) 적재함을 고정하지 않고 탑승한 채 훈련을 진행하던 상병이 견인차량의 급출발로 (출발시 견인 된 곡사포의 무게로 인한 급가속 필수) 적재함 이탈과 그로 인한 낙상으로 포에 깔리며 사망.
- 대대장 재임시절 이등병 탈영으로 사망 등 여러 사망사고가 있었다.
- 매일 같이 간부와 병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조리병[30] 의 잦은 훈련 차출로 음식의 맛과 질은 낮아졌으며 위생 상태도 악화되었다.
11.2. 수기사 포병여단장(연대장) 시절
-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장으로 근무당시 국군청평병원 절반 이상이 포병여단 병사였다고 한다.
11.3. 수도포병여단장 시절
- 오후 3시 이후부터 취사병만 최소인원으로 남기고 전 부대원 병, 간부 전부 연병장으로 나와 전투체육했다고 한다.
11.4. 제28보병사단장 시절
- 이 사람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계기' 가 28사단에 있었다고 한다. 본인의 증언인지 주변인에게서 나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 대대가 훈련 막바지의 40Km 행군훈련을 하는데, 전 대대원 530명 중에서 230명이 열외를 하고 300명만 행군을 하는 상황에서 그마저도 180명이 단독군장에 나머지 나머지 120명은 완전 군장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까보니 100명은 가라군장이었고 20명만 완전 군장 상태였다고 한다. # 윤일병 사건과 연관짓는 경우도 있는데, 윤일병 사건은 14년 4월 발생했으며 동년 8월에 사단장이 짤리고 9월에 김승겸 사단장 이후 16년 5월에 사단장 취임이라 기강해이로 볼 수 없다.[31]
그리고 부대 성격에 따라서 애초에 열외할 인원이 많은 경우를 고려하지도 않은 듯 하고, 180명을 단독군장을 허가하는 것도 지휘관의 재량이다. 왜냐면 훈련 자체로 체력이 한계까지 몰려있는데 40km를 제대로 행군하게 되면 완전히 퍼져서 많은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하나, 그렇게 되면 부대 임무&근무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훈련의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휘관도 있지만, 임무나 근무 중에 사고가 안 나고 넘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휘관도 있기 마련이다. 실제로는 당시에는 혹서기 대대전술 훈련이었고, 당시 30도 이상 온도가 올라가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먼저 대대장이 단독군장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마저도 #
- 28사단장으로 부임하면서 직전 사단장인 김승겸[32] 이 만들어놨던 여러 종류의 휴가를 없애버림과 동시에 28사단 예하 부대 지휘관들에게 특급전사 아니면 포상 휴가를 절대 주지 말라고 개소리를 지껄였다. 간혹 포상휴가를 이미 가지고 있어도 특급 전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쓸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또 GOP의 경계 작전에 임하면 나오는 매달 3일씩의 보상 휴가를 2일로 줄였다. 후임 사단장 강건작이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용사들의 규정완화와 포상휴가 지급과 관련한 휴가지침 변경 및 김승겸 사단장이 만들어뒀던 여러 휴가지침 부활이었다.
- 28사단장 시절에도 체력 강조는 계속된다. 군(軍)에는 윗사람의 말 한 마디를 아랫사람들이 곧바로는 듣 는 문화가 있다. 때문에 사단장의 체력강화 방침을 이행하기 위해 대령급 참모장을 비롯한 중령급 참모들을 통해 장병들에게 체력단련을 압박하였다.
- 전 장병 특급전사 달성에 잔인하리만큼 집착했다. 일례로, 모 부대 순시 중 간부들과 악수하는 과정에서 비 특급간부를 보고 "자네는 왜 특급전사가 아닌가?"라고 하며 악수를 하다 말고 그냥 가버렸다.[33] 그리고 그가 부대에 오기 전에는 해당 부대 지휘부가 참모부서 및 예하 중대 내 간부/병사 특급전사 현황율을 실시간으로 최신화하여 유선보고 하라고 난리가 났다.[34] 특급전사를 취득하지 못한 병사는 외출 외박이 금지되었으며 훈련간 우수한 실적으로 포상대상자로 올라도 특급전사가 아니면 특박으로 대체되었다. 정찰 업무로 인해 단독군장을 하고 헬기를 타러 급히 뛰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옆의 병사를 보고는 '왜 자네는 상병인데 아직도 특급전사가 아닌가!'라 독려, 해당 제대 인원들이 윤 장군의 장수를 기원해드렸다는 일화가 있다.
- 이런 무자비한 성과달성 방침 덕분에, 참모장인 김홍연 대령 같은 고위 간부들까지 일선 현장에서 병사들의 성과를 독려, 독촉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성과가 부진한 경우 다른 부대 같으면, 해당 중대 지휘관을 불러 실적 압박을 가하지만, 윤 장군이 있는 곳은 유독 휘하의 영관급 참모진들이 현장의 병사들 옆에 있으면서 "직접" 성과를 독려, 독촉을 가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된다고.
- 체력 문제로 제대에서 탈락하였거나 걷는 병사가 눈에 띄면, 다가와 체력이 몇급인지 물어보거나 머리 길이가 길다는 식으로 지적이 연잇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열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고.
- 2016년 8월 국기게양식 당시 헌병대 장병이 더위에 못 이겨 탈진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윤의철은 참모장인 김혁동 대령에게 '체력단련한 지 4개월이나 됐는데 쓰러진 새끼들은 뭐냐. 헌병대는 게양식 끝나면 사단 사령부 4바퀴 뛰고 가라!'고 개소리를 지껄이고 얼차려를 부여했다. 단독군장을 하고 참석해야 되는 국기게양식 특성상 헌병대 장병들은 정말로 단독군장한 상태로 4바퀴 뛰고 부대에 복귀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더위에 쓰러진 장병은 특급전사였다고 한다. 장시간동안 높은 온도에 노출되는 것은 체력여부와 큰 상관이 없으며 전술적으로 장시간 열피로에 노출되는 경우 군의관의 의학적 조치가 필요하다.
- 겨울이 되자 상의를 벗고 달리는 일명 '알통구보'를 전 장병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이 소문을 들은 제3야전군사령관[35] 엄기학 대장(육사 37기)은 28사단 방문 당시 윤의철에게 "아토피 환자에겐 좋지 않으니 아침 알통구보는 하지 마라"고 했으나 윤의철은 즉시 씹었다.[36] 그래서 병사들은 겨울에는 아침마다 점호가 두려웠다고 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경계 근무가 있기를 바랄 정도였다. 본부근무대와 통신대대 기준으로 무조건 상의를 전부 벗고 뛰어야했으며 영하 20도가 넘어가면 셔츠 한 장을 입게 해주는 아주 따뜻한 배려를 해주기도 했다.
물론 영하 20도가 넘어가는 날은 거의 없었으며 셔츠 한 장을 입는다고 해도 살점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고통은 똑같다. 이것은 최전방에서 경계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GOP부대도 예외가 없었는데 알통으로 철책을 따라 달리기도 하였고 이 모습을 경계용 카메라로 채증하여 사단장의 갈굼을 받는 윗선에 보고하기까지 한 적이 있다는 증언이 있다. 결국 모 연대 GOP 소초는 체감온도 영하 40도에 알통구보를 실시하다 한 병사가 쇼크로 쓰러지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심지어 GOP에서 당시 겨울에 bmnt시간까지 근무를 서기 때문에 10시간 정도 근무를 서게 되는데, 이러한 후반야 근무 인원들은 심지어 철수하면서 2차 철책 점검을 하고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알통구보를 3km뛰고..... 근무취침 이후, 오후 일과 집중체력단련 7km, 오후 체력단력 3km를 뛰고 근무를 들어가는 대참사를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참고로 여군도 사령/사관 근무시 예외 없이 셔츠 입고 뛰어야 했다.
- 혹한기 훈련 마지막날 훈련 다 끝나고 씻고 자는데 새벽에 재출동하였다. 간부, 병사들 전부 어리둥절해서 사유를 알아보니, 연대장들에게 "이건 내가 원하는 살아있는 훈련이 아니야!"라며 개소리나 지껄이며 억지를 부리고, 결국 전 병력이 다시 출동해 14박 15일 야외 혹한기 훈련을 실시했다고(총 30일).
- 28사단 신형 방독면 보급 후 성능 테스트 한답시고 28사단 장병 전체(연말에 바쁜 군종병, 군종장교 포함)에게 방독면을 쓰고 사단 연병장 뜀걸음을 시켰다. 그 와중에 노드 통신소 쪽은 구형이었다.
- 사단 내의 부사관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부사관 아카데미가 있었는데, 살집이 있는 부사관 한 명에게 그 사람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자네는 그렇게 살이 돼지같이 디룩디룩 쪄서 부하들을 지휘할 수 있겠나?"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 부사관은 사실 유도 선수 출신으로, 어지간한 사람보다는 체력이 좋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 부사관은 포병 출신으로 포병은 강한 지구력과 근력이 요구되는 병과이기 때문에 덩치와 관련없이 뛰어난 체력을 지녔을 것이다, 장성으로서 휘하 제대를 독려하고 칭찬은 못할지언정 이 정도의 몰상식한 언사를 한 것이다. 장성과 몰지각한 병이 무슨 차이가 있나 싶을 정도다.[37]
- 28사단에서 주로 이용하는 군병원은 국군양주병원인데 사단장 이임 이후 그 당시 복무중이던 병사들이 모조리 이곳으로 몰리다 못해 국군병원인지 28사단 의무대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여담으로 국군수도병원에서도 28사단이 많았다고 한다.
- 윤의철 휘하 병력들은 거의 스님처럼 머리를 매우 짧게 깎고 다녀야 했으며 자신이 3일 전에 머리를 잘랐다고 해도 병사 하나가 사단장 눈에 띄면 자신을 포함한 그 병사의 소속 부대가 무조건 다시 한번 머리를 깎아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였다. 머리를 언제 깎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 병력이 머리를 깎는 것이 중요할 뿐. 정작 자기는 가르마 탄 간부형 머리를 고수하고 살고 있는데, 실전적인 머리 어쩌고 할 거면 자기부터 그런 머리를 하고 다녀야 한다. 전인범 장군 역시 현역 시절 예하 부대원들의 머리를 육군 규정보다 더 짧게 유지토록 했으나, 병 뿐 아니라 본인 포함 간부 총원에게 적용했고, 그것도 아무 때나 자기가 보기에 머리 긴 병사 있다고 전부 오늘 중 이발하라고 지시하는 미친 짓은 안 했기에 윤의철처럼 크게 욕먹지 않았다. 여담으로 똥별의 한축인 전도봉 前 해병대사령관도 어느정도 상륙돌격형 머리를 고수했다.
- 2017년 잔반 처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38] 부대마다 소형 분쇄기를 나눠준 뒤, 매 식사마다 모든 잔반을 분쇄하고 잔반통에 넣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러한 지시로 인해 일부 병사들은 잔반을 일과 내내 쉬지 않고 갈아야 했다. 1달 뒤 잔반 처리 업체가 이런 식이면 더 이상 잔반을 안 가져가겠다고 말하자 이 지시는 철회되었다.
- 28사단 사단장 시절 사단본부 영내에서 시야의 사각에서 튀어나와 경례를 하지 않았다고 그 자리에서 경례만 수십 번 시켰다. 그 후 해당 병사의 부대에 통보. 간부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정말 못봐서 경례를 못한 사령부 간부 두 명에게 완전군장을 채웠다. 그 후 경례만 한 것인지 완전군장 상태로 영내구보를 시킨지는 불명. 당한 사람들은 억울한 게, 미치지 않고서야 사단장을 보고 경례를 일부러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 상급간부와 악수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이병이 악수를 잘 못하자 면전에서 여기 중대는 제식도 안 가르치냐고 갈군 적이 있다.#
- 한번은 깔깔이를 사 입는 병사들이 복장불량으로 걸려 보급 이외의 깔깔이는 PX에서 파는 것이라도 입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적이 있으나, 병사들의 불만이 컸고 더군다나 일부 간부들이 다시 건의를 드리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들리는 이야기로 깔깔이만 입은 채 돌아다니는 병사를 봐서 왜 옷차림이 그러냐고 지적을 했는데 그 병사가 추워서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깔깔이를 벗어보라고 하니 안에 아무 것도 안 입고 있었던 것. 물론 납품하는 물건이 보급은 아닌데다가 사비로 사는 것을 간섭하는 행위는 월권 행위이며, 지나친 인권 침해다.
- 얼마 있지 않았던 포상 휴가 중 하나였던 사격 특급을 따기 위해서는 사격장을 가야한다. 이것은 일종의 훈련의 하나이고 모든 훈련은 악천후일 경우 취소될 수도 있다. 한번은 날씨가 너무 고온인 나머지 "사격 훈련"을 실시할 수 없다는 명령이 내려져 사격장에 모인 병력들이 사격을 하지 못한 채 원래 부대로 복귀한 적이 있다. 하지만 복귀 후 체력 단련은 그대로 진행했다. 그 정도로 체력 단련을 매우 중요시하는 장군이다. 특히 28사단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의 휘하 장병들은 365일 중 절반은 훈련, 절반은 특급전사 측정으로 일정표가 꽉 차있었다. 실제로 한주 훈련이 끝나면 차주에는 특급전사 체력 측정과 사격 측정이 있었으며 이는 간부고 병사고 할 것 없이 28사단 장병이었다면 모두 무조건 필참해야 했었다. 7군단장으로 취임한 후에도 이러한 지휘 철학에는 변함이 없어 6주 동안 야외에서 훈련하는 계획이 잡혔고 실제로 예하사단 공병대대가 이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다. 기사 육군 훈련 끝판왕인 호국 훈련도 2주인 마당에 6주간 야외숙영을 하며 훈련을 한다면 장병들의 고통이 어떨지는.. 참고로 중대급은 4주를 하며, 이는 모든 부대에게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원래는 한해의 교육훈련 예정표에도 없던 것을 병사들을 괴롭히기 위해 무리하게 집어넣은 것이며, 이로 인해 나머지 훈련들이 미루어지거나 취소되었다. 자기 목적에 극도로 집착한 나머지 예하부대의 지휘관 재량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 행군 같은 경우에는 1호차를 타는 지휘관과 주임원사를 제외한 모든 장병이 참여했다. 이전까지는 행군을 할 때 운전병들은 식수 및 물자 추진, 의무병은 응급대기로 행군을 미참했는데 한번은 사단장이 행군 간에 이런 열외상황을 육안으로 직접 본 다음부터 한 개 대대가 행군을 하면 상급부대 또는 인접부대에서 물자 수송 및 응급 대기를 지원하였고 행군하는 대대는 이유 불문하고 운전병이든 의무병이든 모조리 행군에 참여하였다. 덕분에 본래 행군시에도 근무투입은 해야 하기에 최소 인원은 남겨두는데,[39] 사람이 없어서 발에 깁스한 병사가 탄약고 근무를 나갔다.
- 윤의철의 휘하 병력은 1~2개월에 최소 한 번씩은 행군을 해야 했다. 그 사이에 혹한기를 비롯한 다른 훈련이 있으면 당연히 추가로 있다. 행군은 기본 40km였으며 본인이 직접 시찰한 코스를 위주로 도는데 산악 코스가 대부분이었다. 부상 등의 이유로 완전 군장을 하지 못하는 장병들에게는 단독 군장으로 두번 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예비 연대인 XX연대의 일화로 끔찍하게도 실화다.[40] 특히 유격장은 감악산 중턱이라 행군시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지배적.
- 행군 마일리지 제도[41] 로 인해 날로 지쳐가는 병사들은 군장 무게를 낮추는 꼼수를 부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윤의철에게 적발되었다. 이후로 모든 예하 부대는 행군시 상급 부대의 참모가 직접 군장 무게를 일일이 재는 등 검사를 실시하게 하였다.[42] 혹여 행군 이후에 짐을 버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무게가 통과된 군장은 케이블 타이로 묶어 짐을 빼지 못하게 막았다. 행군 중간 지점에서도 한번 검사하였으며 행군이 종료됐을 시기에도 검사하였다. 그러나 이는 뜻하지 않은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본래 행군은, 특히 추운 날씨에는 중간중간 양말을 갈아신고 필요하면 전투화도 갈아 신어야 하나 케이블 타이로 묶여 교체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행군 내내 많은 장병들이 물집과 피부 파열 등으로 고생했다는 후문이 있다.
- 이렇게 행군 무게를 귀대 시점에서도 검사하는데 어느 대대 장병이 케이블 타이를 풀고 짐을 몰래 버린 후 다시 케이블 타이로 묶는 꼼수를 썼는데 적발되었다. 이에 분노하여 대대 전 장병은 다시 재행군을 하는 불상사를 맞이해야 했다.
- 자신이 미군 부대를 방문했을 때의 본 여러 훈련 모습들을 자신 사단 내에 그대로 도입하는 것을 좋아했으나 기타 처우의 동급화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예산 문제라고는 하지만, 예산이 안 되는데도 빡센 생활을 시키는 주제에 동기부여가 될 만한 무언가마저 준비하지 않겠다는 날먹 마인드인 셈이다. 병사 괴롭히기에나 급급한 싸이코패스 그 자체.
- 모든 훈련에 열외하는 걸 대단히 싫어했다. 그래서 무조건 유격에 참여시켰다 하며, 어느 정도였냐면 취사병이 10명이면 5명은 유격 때 훈련을 받고 나머지 5명은 다른 부대 유격할 때 유격 받으러 파견가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 28사단에서 거의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포상인 특급전사 휴가도 많다는 이유로 14박15일에서 9박10일로, 이후 또다시 8박9일로 줄이려고 했으나 부하 장교들의 반대로 취소된 듯 하다.
- 2017년 여름, 예비군훈련 때는 도섭을 시켰는데, 몇몇 눈치빠른 예비군이 이걸 보고 갑자기 넘어지더니 앰뷸런스 타고 도망가는 바람에 예비군 훈련에 예비군 정원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도 점심에 부식으로 콜라를 주고 저녁에는 따로 차량을 통해 대대로 데려가 샤워를 시켜주었다. 민간인이라고 나름 신경 쓴 셈이다. 물론 병사들은 그런 거 없다.
- 2018년 1월초, 82연대 2대대에서 야간에 진행하는 철야훈련(밤을 새면서 진행하는 훈련) 중 임진강을 직접 건너는 도섭훈련을 시행했다. 이전에도 2대대에 임진강 도섭훈련이 몇차례 있었지만, 날이 따뜻한 여름이나 가을이였기에 수심이 깊지 않은 강을 건너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였다. 하지만 해당 날은 영하 20도에 가까운 겨울이였고, 강까지 일부 얼어붙었기에 서있기만 해도 추운 상황에 얼음처럼 차가운 강을 건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모든 대대원이 강을 건너야 했고, 건너편에 설치된 대형 탠트에서 빠르게 전투복과 군화를 갈아신고 훈련 계속 진행했다. 대대장이 겨울 도섭훈련을 계획하였지만, 사단장의 승인이 떨어졌기에 진행한 걸로 보인다.
- 윤의철은 개인만의 체력단련 코스가 있는지 직접적으로 병력들과 함께 체력단련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래의 증언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 해당 증언들의 공통 내용 : 윤의철은 정작 체력단련 현장에 매일 나오지 않고 어쩌다 가끔씩 나왔지만 윤의철이 직접 체력단련을 하러 나온 날은 사단 사령부 내에 있는 본부근무대와 통신대대 간부들에게는 비상신호와도 같았다. 간부들은 병사들에게 제대를 조금이나마 더 크게 만드려고 노력했고 절대로 쳐지지 말고 무조건 제대를 유지하면서 뛰라고 했다. 부상으로 인해 뛸 수 없는 환자들조차 뛰지는 못하지만 걸어보겠다고 제대를 만들어 집합을 하면 윤의철은 이내 "자네들은 의지가 없나?" 따위의 개소리로 환자들의 부상을 가볍게 여기곤 했다. 물론,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사단장이 매일 나오지 않는건 어쩌면 당연하다. 사단장쯤 되면 남들 앞에서 하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정말로 시행되거나 옆에서 보조를 맞춰주기 때문.
- 추가적으로 박찬주 대장의 갑질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주말에 쉬는 간부식당 관리병을 공관으로 불러서 자신의 잔칫상을 차리라는 명령을 했었다. 실제로 주말 사지방을 하고 있다가 끌려나가 사단장과 참모들의 술상을 차리게 되었고 개인정비 시간은 당연히 보장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술을 먹느라 식사를 못 했으니 식당문을 닫지 마라. 기다려라"라고 하며 정상적이면 7시 퇴근인데 8시 30분이 되어서나 슬금슬금 나타나서는 혼자 술 먹기 적적하다고 참모장 김×동 대령을 불러 같이 먹고 다 먹고 나서도 한참을 얘기하다가 나갔다. 그날 간부식당 병사들은 점호시간이 다 되어서나 퇴근하고, 바로 불침번까지 서는 등 부조리한 일을 겪었고 일과시간마저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동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자신의 육사 동기이자 39사단장이었던 문병호 소장이 자신의 공관병에게 술상을 차리게 하고 공관병과 운전병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아서 보직해임되었다는 걸 감안하면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 그 외 자신 전속 운전병이 자신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못했는데 간부식당에서 밥 한끼 먹었다고 "병사인 네가 왜 간부식당에서 먹느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애초에 일반 운전병도 중위랑 같이 나가더라도 중위가 외식을 시켜주는 마당에 고작 간부식당에서 3천 원 밥 한끼 먹이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될 일인가 싶다. 병식당에서 먹을 수라도 있게 해주고서 말했으면 차라리 할 말이라도 없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확실한 건 이 시기 가장 힘들었던 병사들은 평소에 28사단 내 언어로 일명 "망고보직"(흔히들 말하는 땡보, 꿀보직)이었던 간부식당 관리병(서빙), 비서병, 공관병, 사단장 운전병이었고, 원래 힘들었던 간부식당 조리병은 더 할 나위없이 최악의 시기였다. 이때 위 보직의 병사들은 보통 훈련을 반절만 받고 사격도 잘 못가는 편이었는데 갑작스레 훈련을 다 받으라고 해서 남은 이는 여럿이서 하던 2배가 넘는 일과를 혼자서 시간내로 처리해야 했고, 훈련에 간 병사는 나름대로 훈련하느라 지치고 심지어 평소 사격도 제대로 안 보내줘서 특급전사 획득에 불리해 휴가도 많이 짤리고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다. 실제로 말년병장이 전역 한달 전 머리를 6mm로 밀리고 유격을 갔다 오고, 완전군장 산악행군을 가서 무릎 다쳐서 돌아와 그 후임도 괴로운 일과를 했다고 한다.
- 수색대는 17년 여름 당시 40Km 행군후 유격진행, 유격 후 200Km 전술복귀행군을 실시했는데, 수색대대 특성상 전 전투중대가 떠나버리면 DMZ작전이 수행 불가피해지는지라 1,2중대 3,본부중대로 나뉘어 훈련을 진행했다. 문제는 1,2중대 유격훈련 당시에 발생했는데, 여름이라 작전의 빈도가 급격히 높아져 3중대만으로는 DMZ 작전수행이 불가능해졌던 것. 결국 유격에 행군을 진행하고 있던 만신창이가 된 1,2중대원들이 복귀하여 작전을 나가고, 휴식시간도 주지 않고 다시 훈련으로 복귀시켰다. 당시 하루를 제외하고 전 훈련 기간에 폭염, 폭우주의보로 최악의 기상여건에서 훈련을 감행했고, 행군 코스의 산 고도가 총합 해발 8,000m를 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연천 섹터를 담당하던 DMZ 작전의 질이 얼마나 낮아졌는지는 말 안해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1.5. 제7기동군단장 시절
- 19년 6월 발표된 발언에 따르면, 훈련이 빡세다는 언급에 대해 자신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외출 외박은 특급을 위한 특권이니 특급이 아닌 이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되도 않는 개소리를 노빠꾸로 그대로 지껄였다.[43] 거기에 체력단련이 미흡한 일부 대대에서는 체력 단련 미흡자는 주말에 휴식 대신 체력단련을 실시해야 하며 핸드폰을 압수하는 병사의 기본 권리마저 침해하는 심각한 악질 이적행위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것에 관련된 증언도 있다. 그 영향 덕분인지 기사가 올라왔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보직해임을 요구하는 청원이 게재되었다.[44]
- 8사단 모 예하부대에 순시하여 지휘관, 주임원사 등 지휘하는 간부는 반드시 특급전사여야만 하고 만일 본인이 환자라면 직책을 내려놔야 한다고 일갈했다. 추가로 "도대체 지휘관들은 유치원생들과 병정놀이를 하는 유치원장을 하려고 군생활하는 거냐고..."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여단장과 여단주임원사를 갈궜다.
- 제7기동군단은 엘리트 코스인데, 윤의철 중장이 군단장으로 부임한 뒤로는 간부들조차 견디지 못하고 전역이나 전출 시도를 한다는 증언이 빗발치고 있다. 육군의 최신장비가 배치되는 7군단에서 그 허리이자 장비를 숙지할 필요가 있는 엘리트 간부들이 자꾸 나가게 되면 전투력 약화가 우려된다.
- 19년 8월 8일 오전, 군인권센터에서 한 달간 진행한 인권침해 상담과 제보 결과를 발표했다.# 그중 충격적인 부분은 체력단련 열외 인원을 줄이겠답시고 저지른 일. 우선 그는 뜀걸음 등 체력단련 열외자를 줄이기 위해 "체력단련 제한인원은 육안 식별 가능토록 하라"는 구두지시를 내려 환자들에게 소속, 계급, 이름, 병명, 담당 군의관 등을 적은 목걸이형 명찰을 걸게 했다. 예를 들어 치질로 수술했으면 목에다 "나 치질 걸렸습니다"하고 광고해야 하는 꼴, 거기다 환자 TO라는 것을 만들어 부대별로 환자수에 제한을 뒀다고 한다. 군인권센터의 발표로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으니,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부분.[46]
- 급기야는 하반기 장성 인사에서 7군단장은 허강수로 교체되었고 윤의철은 교육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일단 최전선 기동군단에서 후방 교육사령부로 대놓고 좌천시켜 전투병력 소모율을 줄인 것까진 좋았지만...
11.5.1. 악질적인 예비군 착취
제7기동군단장 시절에 "예비군들은 전시에 현역 간부들의 부하인데, 왜 존댓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않고 반말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면서 "그런 걸로 민원 받아서 헌병수사 하는 건 잘못됐다"라고 개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군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인성마저도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지금은 평시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림도 없는 뻘소리다.
그런데 저런 소리를 예비군 동대장이 했더라면 바로 민원을 받게 되고, 그렇게 해서 동대장 직위가 해제된다. 윤의철은 무려 중장씩이나 되는 계급을 갖고 있기에 저런 소리를 해도 끄떡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2019년 6월 기사에 의하면 7군단에서 '''예비군''' 훈련으로 야외 숙영 + '''비닐밥''' + 4시간 이하 취침[47] 을 실시했다는 보도가 올라왔다. (예하 공병여단에서 실제로 한 일이다.)
7기동군단 예하부대의 동원 예비군의 경우 상비군인 7군단 장병들과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산 속에서 모기에게 뜯기며 야외 숙영을 하며 훈련을 받는 게 아니라 장갑차에 분승하여 기동훈련을 하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다. 실전과 같은 훈련을 위해서라면 작전간 기동을 위해 전투식량이 배분되지, 비닐밥이 추진되지 않는다. 실전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며 7군단 실제 임무와 동떨어진 향토사단 예비군이나 시행할 훈련을 준비하며 홀대한 것은 '실전같은'이라는 명분 자체와 전혀 동떨어진 것이다.
왜 예비군들에게 실전과 같은 훈련을 시키지 않느냐 하면 예비군의 규모는 상비군의 규모를 가뿐히 압도할 정도로 병력수가 많고 실제 전쟁에서는 단순한 기동과 보급만으로도 수조 원은 가뿐히 깨진다. 대부분이 상비군인 미군조차 이라크 전쟁으로 경제가 휘청일 정도로 돈이 들기 때문에 상비군이 아닌 예비군들은 소집 후 감만 유지시키는 수준에서의 훈련을 시키는 것. 실전과 같은 명목을 대며 실전과 같은 훈련이 아닌 예비군 홀대로 나아가는 건 그저 돈 몇푼 아껴보겠다고 예비군들을 착취하는 것에 불과하다.
11.6. 육군교육사령관 시절
- 좀 얌전히 있겠지 기대한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소식이다. 아들이 KCTC에서 복무한다고 밝힌 어느 남성에 따르면, 대항전훈련 후 KCTC 병사들에게 평일에도 전투휴무를 부여하나 윤의철 사령관이 특급전사 80%를 목표로 내걸고, 심지어 공수교육과 헬기레펠까지 시켰다고 한다. 어쩌면 이러지 말라고 참모차장에다 박아버린 걸지도. 특전사와 교환비가 비슷하게 나오는 KCTC 장병들이 얼마나 고깝게 생각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될것이다.
- 결국 이번에도 학군출신 임관동기(학군 25기)인 박상근 중장으로 교체되었다.
11.7. 합동참모차장 시절
- 2020년 12월 대한민국 합동참모차장으로 영전하였으나 실권력은 없는 한직이라 정말 마지막 보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48] 말 그대로 참모직이다. 병력한테 보고를 받는 위치가 아닌, 보고를 해야 하는 위치인 것이다.[49] 즉 최종적으로 보고를 받아 명령을 내리던 직책의 사람에게서 명령을 내릴 권한 상당수를 박탈해 목줄을 제대로 채운 것이라고 보면 된다. 비상식적인 훈련 지침이 논란이 되어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좌천된 후에도 여전히 예하 부대에 강도 높은 훈련만을 강조하자 아예 참모직으로 발령시킨 것으로 보인다. 자기보직 기간을 채우지도 못하고 인사 이동된걸 보면 사실상 좌천이다.
12. 기타
- 증언에 따르면, 주말에 휴식을 박탈하고 불법적인 수단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이쯤되면 북한의 명장인지 의심이 되는 수준이다.
- 육사 출신의 자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잘못된 신념이 강하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임태훈 군인권센터장이 말했다. #
[1] 2019년 6월 초 기준 서명자 약 14,000명 이상. 청원마감까지 총 20,081명이 동의했다. 이쯤되면 윤의철이 휘하에 둔 병력과 비슷한 숫자다.[2] 신인균은 주간동아에 그를 옹호하는 기고문을 게재했다.기고문[3] 다만, 굳이 필요하다면 아니다 싶은 지시를 '''강력하게 브레이크를 걸''' 상급자가 필요하다는 말도 있다.[4] 영전으로 표현했으나 과거엔 대장 인사가 보임되는 대장급 지위였지만 중장급으로 격하되었고, 실권이 없어 육해공 전부 본부장급 자리를 뺏어가는 합참차장 자리를 차지하는걸 꺼리는 추세다. 육군 출신 중장들에겐 한직으로 평가받는다. 동기가 대장으로 진급한 상황이라 다음 인사때 진급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옷을 벗어야한다. 7군단장직 이후 계속 임기를 못채우고 있는것을 감안하면 좌천으로 보는게 맞다.[5] 병사와 그 가족뿐만 아니라 예비군 부사관과 장교들 까지[6] 예를 들면 군 '간부'가 체력 검정 중 사망하는 사고[7] 28사단 사단장 당시엔 6시 기상이었다. 평소 기상 시간은 6시 30분, 주말+휴일은 7시.[8] 물론 특전사의 경우 간부 위주의 부대이고 말단 하사들은 이등병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게 예비역들 공통의 증언이다. 자기 주특기 다 하고 부대 업무도 다 하고 선배나 고참들 심부름까지 하고 자는 게 보통이라고들 한다. 특히 통신 관련 주특기라면 훈련 중에 자다가도 수시로 송수신을 해야 되어서 제대로 못 잔다고 보면 된다.[9] 상의 탈의 상태에서 진행하는 구보[10] 댓글들을 보다보면 이순신 장군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이 FM을 강조하고 병사들에게 엄격한 벌을 내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병사들에게 포상도 주었으며 본인이 솔선수범했던 군인이었으므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다(...)[11] 공무원들의 서열과 급여를 결정하는 인사혁신처의 기준. 준장까지는 인사혁신처 기준에서도 경우에 따라 준장기준 1~2급을 왔다갔다하지만 중장은 그런 것도 없다. 그 어떠한 기준으로 보더라도 차관 고정.[12] 입대 시험 중에 25m 수영이 있다.[13] 모병제에서는 애초에 군 복무능력이 떨어지면 '''군 입대시험 낙방'''이다. 특히 프랑스 외인부대의 경우 '''수영을 할 줄 모르면 다른 분야를 뭘 어떻게 잘하든 무조건 탈락'''[12] 이다. 게다가 현재 대한민국의 현역 판정률이 90%에 가까울 정도다. 이는 세계 2차대전 전시상황의 미국(약 50~60%)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즉, 시체가 아니면 군대로 끌고가는 상황이나 다름없으며, 나치 국민돌격대 수준의 징집률을 자랑하는 중이다. 즉 '''몸 상태가 성치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혹독한 훈련을 강요하는 건 끔찍한 인권침해다.'''[14] 다만 이 경우 병들 사이에서 여론이 '''ㅈ같은 놈인데 페이는 빡세게 준다.''' 라고 했을 것이다.[15] 포상 이외에도 경계근무를 간소화하는 등[16] 28사단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있었던 많은 종류의 휴가를 특급전사를 달성했을 때의 포상을 제외하고 '''전부 없앴다'''. 다른 종류의 포상휴가를 가지고 있더라도 특급전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특급전사 달성에만 집착하다 보니, 참모진들을 비롯한 예하 부대 지휘관들은 특급전사가 아닌 병사들을 모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17] 애초에 일반 보병사단에서도 포병 1개 연대는 반드시 붙는다.[18] 다만 여기서 말하는 '미니멈' 기준은 행정적으로 정한 것이고, 실제로 이 미니멈 기준 근처에 머무르는 사람은 BUDS 클래스를 절대 통과 못한다고 보면 된다. 실제 BUDS 클래스를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수주동안 다른 훈련을 거진 통과하고 훈련 후반부에 한 훈련생이 군장에 기념품을 챙겨가다가 걸린 장면이 있다. 이를 발견한 교관이 반쯤 놀리듯이 팔굽혀펴기 100번 하면 가져가게 해주겠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진짜 100번을 하고 기념품을 챙겨 훈련하러 가는 장면도 있다. 즉, 100번 정도는 그냥 껌으로 하는 사람들도 어렵게 통과한다.[19] 비만률이 이 정도다보니 당뇨나 심장질환이 많아 체력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윤의철은 유도선수 출신 부사관에게 "자네는 그렇게 살이 돼지같이 디룩디룩 쪄서 부하들을 지휘할 수 있겠나?"라고 폭언을 했다는 점을 상기하자.[20] 다만 특급전사를 우대하는 만큼 비특급전사들이 반발할 수도 있으니 완벽히 욕을 안 먹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대받는 특급전사들은 윤의철을 상대적으로 좋은 지휘관이라고 생각하고 옹호해줄텐데, 이와 반대로 특급전사도 한대하는 주제에 비특급전사들은 온갖 징계를 먹이며 폐급으로 취급하니 결국 특급전사/비특급전사 양쪽에서 욕을 먹게 되는 것.[21] 물론 이러한 힘을 갖기 위해선 강한 지구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포병들 또한 보병 못지않은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22] 80연대 예하 모대대에서 전 군 최초 40km를 20시간 동안 행군한 사례가 있다. 당시 사단장이 순방 왔었는데, 행군 속도가 이 따위인 부대가 어딨냐며 격려 아닌 욕을 먹은 사례가 있다. 이때 옆 연대인 82연대에도 불똥이 튀어 쉬는 시간도 줄여가며 행군을 강행한 적도 있다.[23] 여담으로 PX병도 이와 같은 규정으로 차출되었다.[24] 견인포부대에 경우 적재칸에 포반원들과 포탄 등 물자가 적재되고 화포도 견인해야하기 때문에 가능한 A급 운전병(교육이수로 분류 A,B,C급)이 운전해야 하며 B급 운전병이라면 고참간부를 선탑시킨다. 참고로 C급은 영내에서도 교육 때만 운전대를 잡는다.[25] 원칙적으론 다음 날 배차가 난 운전병은 불침번도 서면 안 된다.[26]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이 그러하고, 2019년 최근에 일어난 해상판 노크 귀순 사건이 터지자 윤의철에 관한 이야기는 조용히 묻히거나 오히려 반사이익을 누리게 된 것일 수도 있다.[27] 실제로 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진급 절차를 거친 장성들의 공통점은 대놓고 병사들을 들볶는 행동을 극도로 자제했으며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원만한 방침을 유지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제7보병사단장을 지낸 서정열 장군은 절절포(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정신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과자 세트를 장병들에게 선물하는 행사를 시행했고 서욱 국방부장관도 상당히 온화한 성격이었으며 엄격한 훈련을 강조한 남영신 장군 본인의 성격도 인성 리더십을 강조할 만큼 온화한 성격이었다. 남영신 장군의 경우 교육학 전공자라 교육훈련에는 전문가다. 타군, 특히 대한민국 공군으로 갔으면 인사교육 특기(당시에는 인사행정과 교육특기로 분리되어있어 정확히는 교육특기)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다. 한마디로 병사들을 마구 볶는 사람은 장성이 된다 해도 중장 이상의 진급이 불가능했다는 증명이 현직 대장급 장성만 찾아도 수두룩하다.[28] 당장 강건작 중장의 45기가 아닌 44기에서 대장 진급자가 나온 상태에서 윤의철의 대장 진급이 계속 누락된다면 결국 윤의철 본인은 전역을 할 수 밖에 없다.[29] 이때 제2군단장이 김관진 중장이었다.[30] 보통의 일반병과 달리 조리병은 쉴 수 있는 날이 없다.[31] 애초에 윤의철 전임자인 김승겸은 을지무공훈장 수여자고 윤일병 사건으로 난리가 난 이후로 28사단을 완전작전도 성공시키고 부조리까지 잡아내는 강력한 부대로 바꾸는 전설급 군인이다![32] 겨우 1기수 차이 직속 선배이다.[33] 사실 간부가 특급전사가 아니라는 것이 드문 일이기는 하다.[34] 현황률이 실시간으로 보고가 되는지 82연대 3대대에서 소대 전인원 특급전사(신교대라 몇 명 없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달성 당시 군의 모범이라며 찾아가서 치켜세우고 공문을 내린 적이 있다.[35] 당시 제28보병사단장의 직속상관이었다.[36] 이는 엄연한 명령불복종이다. 그러다가 엄기학 사령관과 후임인 김운용 사령관(육사 40기)에게 조인트 털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28사단장 연장 건의를 군단장이 반려시켜버렸다는 소문이 한때 무성했다. 더군다나 엄기학 대장과 같은 육사 37기면 43기인 윤의철이 갓 소위 임관했을 때 이미 대위는 달고 중대장 임무를 수행중이었을 것이며, 육사 40기인 김운용 대장도 윤의철이 갓 육사에 입교했을 때 졸업, 임관을 앞둔 4학년 선배였다.[37] 사실 나이 20, 30대의 젊은 군 간부의 경우 살집이 있는 인원이면 사실상 근육돼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위관급 장교는 그런 지방질 몸매로는 사관학교 등지의 혹독한 훈련을 못 견디거나 살이 쏙 빠져서 나온다 [38] 잔반 처리 비용은 부피 단위로 나온다.[39] 일반적으로는 말년을 남긴다.[40] 그 연대의 모 대대는 부상으로 혹한기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면 목발 짚은 사람일지라도 완전군장 행군시켰다.[41] 유격 40, 혹한기 40, 전후반기 전술행군 80, 총 160km를 반드시 해야 했었다. 낙오자는 연대 단위로 재행군 실시. 이게 문제인 이유는 82연대 훈련대대들은 다른 훈련으로 하는 행군만 해도 저걸 훌쩍 넘기는데 꼭 저 훈련으로 마일리지를 채워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리디스크 환자 등은 단독행군으로 행군을 해야 하는데 이때 군장을 메지 않고 행군을 했다며 한 번 더 재행군을 시켜 80km 행군을 해야 했다.[42] 돌아올 때도 다시 측정하였다. 복귀 행군으로 지친 병사들은 연병장에 세워 무게를 다시 쟀다. 만약 무게가 급감한 군장이 있다면 바로 이름을 적어갔다.[43] 육군 규정에 따르면 이론적으로 훈련성과 미흡 및 체력 저하를 명목으로 휴가나 외출, 외박을 제한하는 건 가능하지만 징계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중,대대급이 결정할 문제지 군단까지 올라갈 문제가 아니라는 것.[44] 당연하지만 기본권 침해다. 징집당한 병도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이기 때문에 휴일에 이유 없이 과업을 명령할 수는 없다. 초병, 당직근무에 대한 특별근무가 법률에 지정된 것도 이런 이유에 기인한 것.[45] 중국에서는 최고기온이 40도가 넘으면 그날은 관공서나 업체가 전부 쉬도록 하는 규정이 있는데, 현실은 아무리 더워도 중국 기상청 '공식발표'는 39.5도를 넘어가지 않는다...[46] KBS, YTN, 연합뉴스, MBC, 한겨레[47] 기사에 중간 올라온 내용에 의하면 취침시간은 00시 ~ 06시라고 언급은 하는데 실제로는 예비군 훈련을 하다보면 불침번 근무 2시간 + 취침시간 4시간이라서 기사 제목 그대로 "4시간 이하 취침"이 맞다.[48] 이미 김승겸, 김정수(이상 육사 42기), 안준석(육사 43기) 장군이 대장 진급에 성공했고 성공하지 못한 장성들 중에서도 윤의철과 같은 해에 임관한 황대일 장군(1군단장 역임 후 육군군수사령관), 김정수 장군(이상 육사 43기, 특전사령관 역임 후 육군사관학교장), 최진규 장군(학사 9기,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 1년 후배인 김현종 장군(제5군단장), 박정환 장군(이상 육사 44기, 합참 작전본부장), 허강수(3사 23기, 제7기동군단장), 박양동(학군 26기, 제6군단장) 등 경쟁자들이 많다. 육군에게 합참차장직은 한직이듯이 이들에게 순위가 밀린다.[49] [image]
당장 이 사진만 봐도 합참에서의 중장의 위치를 짐작해볼 수 있다. 참고로 위 사진에서 칠판을 든 중장은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이었던 황중선 중장(육사 32기)이며 그 옆에서 정장을 입고 설명을 하는 인물은 김태영 당시 국방부장관(육사 29기)이다. 그리고 뒤에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은 김중련 당시 합동참모차장(해사 30기, 육사 32기 상당)이다. 일단 본인 위에 합동참모의장을 비롯한 대장 7명이 있는데다 중장들 가운데서도 해병대사령관, 군사안보지원사령관의 서열이 높기에 일선부대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없다. 게다가 합참은 군기 확립, 교육, 훈련 등을 컨트롤하는 군정권이 없어 특급전사 깽판이 불가능하며 위 사진처럼 국방부장관이나 합동참모의장 옆에서 칠판 셔틀을 하고 있어야 할 수도 있다.
당장 이 사진만 봐도 합참에서의 중장의 위치를 짐작해볼 수 있다. 참고로 위 사진에서 칠판을 든 중장은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이었던 황중선 중장(육사 32기)이며 그 옆에서 정장을 입고 설명을 하는 인물은 김태영 당시 국방부장관(육사 29기)이다. 그리고 뒤에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은 김중련 당시 합동참모차장(해사 30기, 육사 32기 상당)이다. 일단 본인 위에 합동참모의장을 비롯한 대장 7명이 있는데다 중장들 가운데서도 해병대사령관, 군사안보지원사령관의 서열이 높기에 일선부대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없다. 게다가 합참은 군기 확립, 교육, 훈련 등을 컨트롤하는 군정권이 없어 특급전사 깽판이 불가능하며 위 사진처럼 국방부장관이나 합동참모의장 옆에서 칠판 셔틀을 하고 있어야 할 수도 있다.